꼬삼비 비구 사건
꼬삼비 지방의 고시따 수도원에는 각기 오백명의 제자들을 거느린 학식과 덕망이 높은 두 비구가 살고 있었다. 이 두 스승 비구중 한 비구는 계를 가르치는 율사였고, 다른 한 비구는 경을 가르치는 강사(講師)였다.
어느 날 강사 비구는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오다가 사소한 계율을 범했다. 계율에 따르면 화장실을 사용하고 난 다음 준비된 물통의 물을 쏟아 변기를 깨끗하게 씻은 다음에 물통을 거꾸로 해놓고 나와야만 하는데, 이 비구는 급히 나오다가 그만 완벽하게 뒷처리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침 공교롭게도 율사 비구가 그 뒤에 바로 화장실을 사용하게 되어 그것을 발견했다. 율사 비구는 강사 비구에 물었다.
"도반이여, 비구께서는 물통에 물을 남겨 놓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계율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셨습니까?"
"저는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계율에 저촉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참회를 하겠습니다."
그러자 율사 비구는 말했다.
"이것은 분명히 계율에 어긋납니다만,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꼭 허물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율사 비구는 강사 비구에게 계율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고, 이 일은 없었던 일로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자기의 제자들에게 돌아 간 율사 비구는 이렇게 말했다.
"저 강사 비구는 계율을 범했다. 그러고도 자기의 허물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 율사 비구의 제자들은 강사 비구의 제자들을 만나 그들의 스승을 비난했다. 그리고 이 소식은 강사 비구의 제자들을 통하여 강사 비구에게도 전해졌다. 이에 강사 비구는 율사 비구를 찾아가 항의했다.
"도반이여, 지난번에는 그 일이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므로 허물이 되지 않는다고 하시더니, 이제는 그것이 허물이라고 하시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렇게 시작된 다툼은 서로가 서로를 거짓말쟁이로 몰아 붙이게까지 되어 집단적인 사태로 번져갔다. 그런 끝내 마침내 율사 비구는 강사 비구의 허물을 공식적으로 선언해 버렸다. 율사 비구는 말하기를 이 허물에 대한 벌로써 모든 비구들은 강사 비구들에게 일체의 대화를 나누거나 말을 걸어와도 대답을 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두 비구 집단의 이런 불화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급기야는 두 비구를 따르는 재가 신자들에게까지 번져갔다. 그리고 그들은 두 비구들을 따라서 배우는 비구들과 재가 신자들까지 두 파로 갈라지고 나자, 이번에는 신자들과 가까운 일반인들까지도 서로 불화하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천인들과 범천들까지도 다툼이 일어나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러던중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같은 상황을 말씀드렸다. 세존께서는 두 차례나 사람을 보내어 꼬삼비 비구들을 타이르시었다.
"비구들이여, 서로 화합하여라."
그렇지만 세존께서 받으신 회답은 화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세존께서는 탄식하시었다.
"비구 승가가 이로써 평화가 깨어지고 분열이 일어나겠구나."
세존께서는 직접 꼬삼비에 가셨다. 세존께서는 양쪽의 비구들을 모두 불러모아 놓고 그들이 화합하지 아니하는 허물을 지적하시었다. 세존께서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승가의 사부대중이 모여서 서로간의 잘못을 참회하고 용서하는 거룩한 우뽀삿타(Uposattha. 포살법회)을 직접 행하시면서 또다시 서로 화목할 것을 충고하시었다. 그런데도 비구들의 마음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각기 서로 나뉘어져서 끊임없이 자기들이 옳다고 주장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세존께서는 그 사실을 아시고 말씀하시었다.
"비구들이여, 다툼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다툼을 그만 두어라."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설법하시었다.
"비구들이여, 다툼.논쟁.불화.의견 충돌 따위는 거룩한 비구들의 모임인 승가에 있어서 아무런 이익이 없느니라. 화합과 단합의 힘은 참으로 엄청난 것이니, 화합을 하게 되면 작은 메추라기들도 힘쎈 코끼리를 물리치느니라(자따카 357에 이 이야기가 있음). 비구들이여, 그러니 더 이상 다투지 말고 힘써 화합하라. 다툼이 계속될 때 그 피해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다투는 그 사람에게로 돌아갈 뿐이다."
세존께서 이렇게까지 간곡하게 타일렀지만 그래도 그들은 끝내 화합하지 못했고, 세존께서는 이때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었다.
"비구들이여, 한때 브라흐마닷따라는 왕이 까시 국의 왕으로서 베나레스를 다스리고 있었다. 브라흐마닷따라는 왕은 꼬살라의 디가띠 왕국을 공격하여 점령했고, 디가띠 왕은 목숨을 부지하여 도망치기는 하였으나 비참하게 살다가 최후를 맞게 되었다. 이때 디가띠 왕은 죽음을 맞이하면서 아들인 디가우 왕자에게 '너는 절대로 브라흐마닷따 왕에게 원한을 품지 말것이며 복수하려 하지 말라. 만일 이런 내 뜻을 저버린다면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디가우 왕자는 뒷날 브라흐마닷따 왕의 측근이 되어 쉽게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수가 있었는데도 복수심을 참아 냈다. 그것이 한 번이 아니라 여러번이었고 그는 도리어 왕의 생명을 보호해 주었는데 그런 선행이 계기가 되어 디가우 왕자는 잃었던 나라를 평화롭게 되찾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두 나라 사이에는 그 이후로는 아무런 다툼이 일어나지 않고 서로간 자기의 주권을 지키며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
비구들이여, 활과 창을 가지고 권력을 행사하는 왕들도 이 같은 인욕과 용서로써 어려움을 견디어 좋은 결과를 얻었거늘 하물며 너희들은 출가 수행자로서 얼마나 더 인욕하고 용서해야 마땅한 일이겠느냐? 너희 비구들은 세상사를 다 버리고 계율과 담마(법)를 의지하여 스스로 지혜롭게 되고, 사려깊게 되고, 인욕과 용서를 닦아서, 그 덕으로써 세상을 빛나게 하며, 세상에 알려져야 마땅하다."
그렇게까지 간절히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마침내 이렇게 생각하시었다.
"이제 저들은 여래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여래는 차라리 저들을 떠나 숲 속에 들어가 홀로 조용히 지내는 것이 나으리라."
이렇게 생각하신 세존께서는 어느 날 꼬삼비에서 탁발을 마치시고 나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으시고 직접 가사와 발우를 지니시고 홀로 발라카 마을의 소금 굽는 곳에 도착하시었다. 거기에서 바구라는 이름을 가진 비구를 만나시어 숲 속에 들어가 홀로 조용히 좌선 수행하는 법을 말씀해 주신 다음에 여행을 계속하시어 동부 대나무 숲에 이르시었다. 세존께서는 거기에서 다시 세 젊은이를 만나시어 여럿이 모여 살아갈 때 얻는 행복을 설법하신 다음 빠릴레이야까라는 곳에 도착하시었다. 그곳은 아름다운 살라 나무가 많은 매우 아늑한 숲이었다. 세존께서는 이곳에서 숲 속에 사는 한 코끼리의 시중을 받으시며 조용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게 되었다.
한편 꼬삼비에 사는 재가 신자들은 세존을 뵈려고 승원에 갔다가 세존께서 계시지 않은 것을 알고 비구들에게 세존께서 어디에 가셨는지를 물어 보았다. 그때는 비구들도 세존께서 빠릴레이야까 숲 속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신자들이 비구들에게 되물었다.
"세존께서 왜 그곳에 홀로 계시는 것입니까?"
비구들은 마지 못해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우리들을 화합시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셨지만 우리가 끝내 화합하지 못했기 때문이오."
재가 신자들은 그간의 정황을 꼬치꼬치 물은 다음에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여기 있는 비구들은 세존에 의해서 출가한 세존의 제자들로서 세존으로부터 직접 타이르는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서도 그 말씀을 따르지 않고 다툼을 계속했다. 이들은 그런 잘못 때문에 그 화는 우리에게까지 미쳐서 우리마저 세존을 뵈올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것은 비구들의 잘못이다. 우리는 이런 비구들에게 음식을 올릴 필요가 없고, 자리를 마련해 줄 필요도 없고, 존경심을 표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그날부터 꼬삼비 재가자들은 이 같은 결정을 실행했다.
비구들은 탁발을 나갔다가 거의 음식을 받지 못하고 되돌아 오게 되었다. 그런 상황은 갈수록 심해져서 마침내는 음식을 전혀 받아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런 신자들의 비협조 때문에 비구들은 거의 기아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 힘든 상황이 며칠간 계속되자 두 비구 집단 간에 서로간 화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침내 서로 용서를 빌고 잘못을 고백했다. 그런 비구들에 대해서 신자들은 세존에게 가서 비구들이 용서를 받아와야만 자기들은 비구들을 공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비구들은 세존을 찾아가려고 했지만 그때는 마침 우기도 한창이어서 비가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고 그때문에 그들은 세존께 갈 수가 없었다.
그러면 그때 세존께서는 어떻게 생활하시었는가.
세존께서는 그 숲 속에서 코끼리 한 마리를 만나게 되었다. 그 코끼리는 코끼리 무리를 벗어나 홀로 숲 속을 방황하다가 세존을 만났는데 코끼리는 이런 생각으로 무리를 벗어났던 것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많은 암 코끼리.숫 코끼리. 새끼 코끼리. 젊은 코끼리와 함께 살아간다면 여러가지 불편이 있을 것이다. 먹는것, 마시는 것도 아주 나쁜 것 밖에는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제 이같은 무리 생활에서 벗어나 홀로 살아가고 싶다.'라고. 그래서 이 코끼리는 무리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살라 나무가 있는 잘 보호된 이 숲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때 마침 세존께서는 거기에서 가까운 곳에 계시었는데 코끼리는 세존을 찾아가 뵈었다. 코끼리는 세존께 다가가 엎드려 인사를 올린 다음 빗자루를 찾았다. 그러나 빗자루가 눈에 띄지 않았으므로 발로 나무 밑을 고르는 한편 힘센 코로 나무덩쿨주위를 모두 정리했다. 그리고는 나뭇가지를 꺾어서 자리를 잘 쓸어 깨끗이하여 세존으로 하여금 앉으실 수 있게 준비해 드렸다. 이 영특한 코끼리의 세존 시봉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코끼리는 물병을 코로 말아서 들고 가서 맑은 물을 떠왔고 또 더운 물까지 만들어 올렸다. 코끼리는 어떻게 더운 물을 만들었는가. 코끼리는 나무와 나무를 서로 비벼서 불이 만들어지면 그 불로 돌맹이들을 달구었으며 그돌들을 웅덩이로 가지고 가서 빠트렸다. 그렇게 하자 물이 더워졌다. 웅덩이의 물이 적당하게 더워지면 코끼리는 세존께 가서 물이 더워졌음을 전해 올린다. 그러면 세존께서는 코끼리를 칭찬하시고 나서 그 웅덩이의 물로 목욕을 하시었다. 그러면 코끼리는 그동안에 야생의 여러가지 과일을 준비하여 세존께 올렸던 것이다.
세존에 대한 빨리레이야까 코끼리의 시봉은 사람의 그것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세존께서 마을로 탁발을 가실 때가 되면 코끼리는 가사와 발우를 머리 위에 얹어서 세존의 뒤를 따랐다. 그러다가 세존께서 마을 가까운 곳에 이르시면 세존께서는 빠릴레이야까 코끼리에게 말씀하시었다.
"빨릴에이야까야, 너는 이제 더 이상 나와 함께 갈 수가 없다. 자, 이제 가사와 발우를 다오."
그러면 코끼리는 자세를 낮추어 가사와 발우를 세존의 손에 얹어 드렸다. 그리고는 세존께서 탁발을 마치고 돌아오실 때까지 거기에서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윽고 세존께서 탁발을 마치시고 마을을 벗어나 숲에 도착하시면 코끼리는 앞으로 나아가 세존의 가사와 발우를 받아서 안전한 장소에 보관한다. 그런 다음 세존 곁에 남아서 나뭇가지를 흔들어 부채질을 해드리곤 했다. 밤에는 사나운 짐승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큰 나무를 코로 감고 주위를 돌면서 밤을 샜다. 그러다가 해다 떠올라 날이 밝아지면 다시금 세존께서 사용하실 물을 떠다 드리는 것이었다.
그때 코끼리가 이렇게 세존을 잘 시봉하면서 크고 작은 일을 해내는 것을 유심히 비켜보던 원숭이 한 마리가 있었다. 원숭이는 자기도 코끼리처럼 세존을 위해 무언가 보람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숭이는 이곳저곳을 바쁘게 뛰어다닌 끝에 벌집 하나를 찾아냈다. 원숭이는 나뭇가지로 벌집 안에 있는 꿀을 꺼내어 커다란 나뭇잎에 담아 세존께 공손하게 올렸다. 그런데 웬일인지 세존께서는 그 꿀을 잡수시지 않으시었다. 원숭이는 이상하여 다시 그 꿀을 살펴보고는 그 속에 아기벌 몇마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원숭이는 그 부분을 잘라내고 나머지를 다시 세존께 올렸고 세존께서는 그 꿀을 맛있게 잡수시었다.
세존께서 자신이 공양한 꿀을 잡수시는 것을 본 원숭이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마구 소리치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춤을 추었다. 그러다가 밟은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아래로 떨어졌고 마침 거기에 솟아있던 뾰족한 다른 나무가지에 깊이 찔려 버렸다. 원숭이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그렇지만 세존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으로 공양을 올린 선업의 결과로 33천상세계에 태어나 거대한 황금 누각에 살면서 수천명의 선녀를 거느리는 복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세존께서 빨릴에이야까 코끼리의 시봉을 받으시며 우기 안거를 숲 속에서 보내고 계신다는 사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사왓티의 재가 신자들, 특히 승가의 큰 조력자인 아나타삔디카와 위사카등은 붓다의 시봉자인 아난다 존자에게 소식을 보내어 여러가지를 요청을 했다. 그 내용은 주로 너무나 오랫동안 세존을 뵙지 못하여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난다 존자는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마침내 오백 명의 비구들과 함께 세존을 모셔오기 위해서 빨릴에이야까 숲으로 향했다. 아난다 존자는 빨릴레이야까 숲에 도착하자 이렇게 생각했다.
'세존께서는 홀로 조용히 숲 속에 계신 지가 석 달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갑자기 오백 명이나 되는 많은 비구들과 함께 세존 앞에 나타나면 번거로우실 것이다. 이 비구들을 여기에 남겨두고 혼자 세존께 가서 세존의 뜻이 어떠하신지 알아 보는 것이 좋겠다.'라고.
그래서 아난다 존자는 나머지 비구들을 그 자리에 기다리게 하고 혼자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갔다. 이때 코끼리는 다가오는 아난다 존자를 보고는 경계심을 내어 커다란 방망이 하나를 코로 감고 걸어나갔다. 그러자 세존께서 말씀하시었다.
"코끼리야, 그 비구를 경계하지 말아라. 그는 여래의 시자인 아난다이니라."
그러자 코끼리는 곧 무기를 버리고 아난다 존자의 가사와 발우를 받아 들려고 했다. 아난다 존자는 그 친절을 거절하는 한편 계율에 정해진 대로 자신의 소지품을 붓다께서 사용하시는 반석 위에 놓지 않고 흙바닥에 놓았으며, 공손한 태도로 세존께 존경의 예를 표했다. 코끼리는 이 비구가 계율을 잘 지키는지 어떤지를 유심히 관찰했는데 곧 이 비구는 계율을 잘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에게 물으시었다.
"너는 혼자서 왔느냐? 아니면 다른 동행자가 있느냐?"
"오백명의 비구들과 함께 왔습니다."
"그들을 이리로 데려 오너라."
아난다 존자는 잠시 그곳을 떠났다가 오백 명의 비구들과 함께 다시 세존에게로 왔다. 아난다 존자는 비구들과 함께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출가시기 전에 존귀한 신분의 태자이셨기 때문에 몸이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분이십니다. 이 외로운 숲 속에서 홀로 계신 것이 무려 석 달인데 얼마나 어려움이 많으셨습니까?"
그러자 세존께서 미소를 띠시면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것은 잘못 안 것이다. 여래는 아무런 불편도 없었다. 이 빨릴레이야 코끼리가 모든 일을 잘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여래가 빨릴레이야 코끼리와 같은 동반자를 만난 것은 실로 다행한 일이다.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여래가 만일 빨릴레이야까 코끼리와 같은 훌륭한 동반자를 얻지 못하였을 때는 어떻게 해야 했겠느냐?. 비구들이여, 그럴 때는 차라리 화합하지 못하는 동반자를 버리고 홀로 고요하게 지내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다음의 게송 세 편을 읋으셨다.
만일 진실하고 지혜로우며
덕 높은 벗을 만나거든
그와 함께 즐겁게 살며 마음 집중을 잘 수행하여
삶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라
그러나 만일 진실하고 지혜로우며
덕 높은 벗을 만나지 못하거든
마치 왕이 한번 점령한 땅을 미련없이 포기하듯
홀로 자유로이 살아가라
마땅가 코끼리가 홀로 숲 속을 거닐듯이
그럴 때는 차라리 홀로 살아가라
어리석은 자와는 벗이 될 수 없느니라
다만 홀로 살아갈지니
악행을 범함이 없이 자유로이 숲 속을 거니는
저 마땅가 코끼리처럼
세존께서 이 게송을 읊으셨을 때 오백명의 비구들은 모두 아라핫따 팔라를 성취하였다.
이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사왓티의 많은 재가 신자들은 세존께서 제따와나 승원으로 돌아오시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이에 세존께서도 다시 비구들에게 돌아가시기를 허락하시고 길 떠날 준비를 하도록 이르시었다.
이때 코끼리는 비구들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비구들이 의아해 하자 세존께서는 그것은 코끼리가 비구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일러주시었고, 코끼리는 곧 숲 속에 들어가서 바나나를 비롯한 많은 과일을 등에 싣고 나왔다. 세존께서 코끼리에게 말씀하시었다.
"빨릴레이야까야, 여래는 이제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 이제 여래는 다시 이곳으로 오지 않을 것이다. 빨릴레이야까야, 너는 그동안 여래를 잘 시봉하였으나, 지금의 너의 몸으로서는 선정삼매에 들 수가 없고, 내적 관찰을 수행할 수도 없고, 도와 과를 성취할 수도 없다."
세존의 말씀을 듣자 코끼리는 자기의 큰 코를 입 안에 넣었다가 빼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비구 일행을 따라 마을이 있는 곳까지 왔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코끼리에게 이르시었다.
"빨릴레이야까야, 마을 사람들은 너를 해칠 수도 있다.. 여기에서 멈추도록 하여라."
그러자 코끼리는 거기에서 멈춰서서 계속 울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세존과 비구 일행이 자신의 시야에서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너무나 가슴이 아픈 나머지 그 자리에서 쓰러지더니 곧 죽고 말았다. 그러나 코끼리는 세존에 대한 정성스런 봉사.존경.애정.신심이 공덕이 되어 그 즉시 33천상세계에 빨릴레이야가라는 이름을 가진 천왕으로 태어나 황금 누각에서 살면서 일천 명의 선녀를 거느리는 복을 누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긴 여행 끝에 마침내 사왓티의 제따와나 수도원에 도착하시게 되었다. 이 소식은 꼬삼비 비구들에게도 전해졌고, 비구들은 세존께 용서를 구하고 참회하기 위해서 사왓티로 출발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전해 들은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꼬살라국의 왕으로서, 또한 사왓티 성의 성주로서, 화합할 줄 모르는 저 비구들을 이곳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승가의 유력한 후원자였던 아타타삔디까의 생각도 그에 관한 한 마찬가지였다. 그도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 역시 제따와나 수도원의 창립자로서 이 수도원에 계율을 지키지 않는 그런 비구들을 들여 놓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세존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리고 아나타삔디가여, 그들 비구들은 결코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잠시 서로간 의견상 차이가 있었을 뿐이며, 여래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이제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알아서 스스로 용서를 구하러 온다 하니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꼬삼비 비구들이 세존이 계신 제따와나 수도원에 도착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들을 다른 비구들과 분리하여 별도로 머물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다른 비구들은 그들과 함께 있지 말라고 말씀하시었다.세존을 뵙기 위해 승원에 온 신자들은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그렇게 다투기만 하던 꼬삼비 비구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세존께서는 따로 머물고 있는 꼬삼비 비구들을 일러주시었다. 그러면 신자들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럴 때마다 꼬삼비 기구들은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런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을 때 그들은 마침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세존의 앞에 엎드려서 흐느껴 울며 용서를 간청했다. 세존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참으로 큰 잘못을 저질렀다. 너희들은 거룩한 여래의 제자로서 스승의 여러 가지 충고와 노력을 모두 거절하고 끝끝내 화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비록 행실이 착하지 못하여 사형 선고를 받을 지경에 이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는 부모의 말을 거역하지 않는 법이다. 하물며 너희는 담마(법)의 부모인 여래의 충고를 거절하고 너희들의 주장만을 고집하여 불화를 일으킴으로서 수행을 저버리고 스스로 나쁜 업를 지었으니 이것을 어찌 작은 허물이라고 하겠느냐? 비구들이여, 옛날에 부모의 말씀을 귀히 여겨서 잘 지킨 결과 잃었던 나라를 되찾은 왕자가 있었다. 너희는 마땅히 그 왕자를 본받아야 한다."
세존께서는 꼬삼비 국왕의 전생담인 디가우 왕자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해주시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어리석은 자들은 목숨에 끝이 있을 알지 못하고
무의미한 다툼을 계속한다.
그러나 현자는 이 같은 사실을 알아
모든 다툼을 쉬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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