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전(ayatana.處.처)
처(터전)의 원어는 'ayatana' 이다. 한역에서는 보통 '처(處)'로 번역하는데, 이 경우 단순한 의미의 '장소(place)'로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좀더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하자면 '터전'으로 번역하는게 옳다. 'ayatana'란 '기르다'. '양육하다'. '연장하다'. '확장하다.'의 의미를 지닌 'ayati' 에서 유래한 말이다. 즉 '자라나는 곳'이라는 원어적 의미에서부터 비롯되어, 경전에서 나오듯이 눈.귀.코.혀.몸.마음이라고 하는 '여섯의 감각요인(根.근. indriya)'과 그에 대응하는 시각대상.소리.냄새.맛.감촉.마음현상등의 '대상적 요인(境.경. visaya)' 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ayatana'는 일반적으로, '마음(心.citta)'과 마음의 작용(心所.cetasika)'이 일어나기 위한 '의지처(所緣.소연.arammana)' 로 정의되는데, 이는 곧 그들의 여섯 '감관'과 그에 대응하는 '감각대상'들이 이러한 '마음'과 '마음의 작용'이 발생하는 '터전(foundation or base)'이 된다는 의미이다.
◎ 타심통(他心通 paracitta-vijānana)
타심통(他心通 paracitta-vijānana)이란 육신통(六神通, abhiññā)의 하나로,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이다. 그리고 육신통은 ① 신족통(神足通, iddhi-vidha), ② 천이통(天耳通, dibba-sota), ③ 타심통(他心通, paracitta-vijāhana), ④ 숙명통(宿命通, pubbenivāsa-anussati), ⑤ 천안통(天眼通, dibba-cakkhu), ⑥ 누진통(漏盡通,āsavakkhaya-ñāṇa)이다.
◎ 탐욕과 비탄
'탐욕과 비탄'으로 옮긴 원어는 아윗자 도마나싸(abhijjhā-domanassa)이다. 여기서 도마나싸(domanassa)는 산스끄리뜨 du(나쁜,사악한)+manas(마음)의 합성어인 durmanas의 곡용을 취해서 이루어진 dumanasaya의 빨리어이다. 경에서는 나쁜 마음의 작용 즉 정신적 고통을 총칭하는 말로 나타나기도 하며 구체적으로는 ‘낙담,우울,실의, 고뇌, 슬픔,비탄’ 등을 뜻한다. 아비담마에서 이것은 불만족한 정신적인 느낌이다. 이 느낌은 오직 성냄에 뿌리를 둔 마음과 함께 일어나며 그런 마음은 필수적으로 이 느낌을 수반한다. 그러므로 불만족,즉 괴로운 정신적인 느낌은 항상 불선법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것은 무기에 속하는 괴로운 육체적인 느낌과도 다르고 선하거나 불선하거나 무기에 속하는 기쁨이나 평온과도 다르다. 그리고 이것은「대념처경」에서는 크게 두 가지 문맥에서 나타나는데 하나는 사성제의 고성제에서 나타나는 dukkha-domanassa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서 나타나는 abhijjhā-domanassa이다. 전자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으로 후자는 ‘탐욕과 비탄’으로 해석한다.
◎ 탐욕의 빛바램(사라짐)
‘탐욕의 빛바램’이라 번역한 위라가(virāga)는 vi(분리)+rāga(탐욕)의 합성이다. PED에서 ‘absence of rāga, dispassionateness, indifference towards (abl. or loc.) disgust, absence of desire, destruction of passions; waning, fading away, cleansing, purifying; emancipation, Arahantship.’이라고 설명되듯이, ‘탐욕의 부재, 탐욕의 빛바램, 공평무사함, 혐오에 대한 평온, 청정해짐, 해탈, 아라한과’ 등으로 정의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이욕(離慾)이라 번역했다.
◎ 탑묘(塔廟)
‘탑묘(塔廟)’로 번역한 쩨띠야(cetiya/Sk.caitya)는 원래 ‘기념물’이 일차적인 의미였다. 다시 말해서 쩨띠야는 원래 불교 이전부터 있었던 신성한 곳, 즉 영묘(靈廟)를 가리켰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불상이나 사리를 모시고 예배를 드리는 곳을 통칭하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지제(支堤)라고도 음역하였다. 이러한 쩨띠야는 다음과 같은 세 종류가 있다.
(1) 사라리카(Śarīraka): 다뚜 쩨띠야(dhātu-cetiya)라고도 하며, 부처님이 입멸하신 뒤에 남기신 사리(舍利, śarīra)를 가리킨다.
(2) 빠리보가카(Paribhogaka): 바루, 가사, 지팡이, 물병, 좌복과 같이 부처님께서 직접 사용하시던 물품들과 보리수와 부처님의 발자국 같은 상징물을 가리킨다.
(3) 웃데사카(Udeśaka): 부처님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기념적인 건축물로 좁은 의미의 쩨띠야와 같지만 넓은 의미에서 탑, 정사, 법륜(法輪) 등도 포함한다.
◎ 태어남
생명체가 태어나는 네 가지 방식을 사생(四生, catasso-yoniyo)이라고 하며 다음과 같다.
(1) 태생(胎生, jalābuja): 모체의 자궁에서 태어나는 사람과 포유류가 이에 해당한다.
(2) 난생(卵生, aṇḍhaja): 알에서 태어나는 조류와 어류가 이에 해당한다.
(3) 습생(濕生, saṃsedaja): 습한 곳이나 오폐물에서 생겨나는 모기, 지렁이, 구더기 등의 일부 애벌레가 이에 해당한다.
(4) 화생(化生, opapātika): 완전히 성장한 육체를 가지고 자연발생적으로 태어나는 지옥중생, 천인, 아귀, 아수라가 이에 해당한다.
◎ 토대(處, vatthu)
여기서의 토대(處, vatthu)란 식(識, viññāṇa)이 일어날 때 의지하는 물질적 토대를 말한다. 그러므로 안식(眼識, cakkhu-viññāṇa)은 눈(cakkhu)이라는 감성의 물질을 토대로 하고, 이식(耳識, sota-viññāṇa)은 귀(耳, sota)를, 비식(鼻識, ghāna-viññāṇa)은 코(鼻, ghāna)를, 설식(舌識, jivhā-viññāṇa)은 혀(舌, jivhā)를, 신식(身識, kāya-viññāṇa)은 몸(kāya)이라는 감성의 물질을 토대로 한다. 그리고 의식(意識, mano-viññāṇa)은 모두 심장토대(hadaya-vatthu)를 근거로 한다. 여기서 요점을 간추리면 전오식(前五識) 즉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은 모두 문과 토대가 같다. 즉 안식(眼識)은 눈이라는 감성을 그 문으로 하고 눈이라는 감성을 토대로 하여 일어난다. 그리고 모든 의식(意識)은 반드시 마음을 문으로 한다. 즉 모든 의식은 반드시 심장토대를 근거로 일어난다. 그러나 모든 의식은 그 문이 다르다. 그러므로 눈의 인식과정에서 일어나는 의식은 눈을 문으로 가지면서 심장토대를 근거로 한다. 귀의 인식과정에서 일어나는 의식은 귀를 문으로 가지면서 심장토대를 근거로 한다. 의문인식과정(mano-dvāra-vīthi)에서는 모든 의식은 마음을 문으로 하고 심장토대를 근거로 한다.
◎ 투란차(偸蘭遮, sthūlātyaya thullaccaya)
투란차(偸蘭遮, sthūlātyaya thullaccaya)란 거칠다·추대(麤大)의 의미이고, 추죄(麤罪)라고 의역한다. 투란차는 율장의 여러 곳에 사용되고 있으나 그 의미의 설명은 적다. 그 이유의 하나는 이 말이 학처 속에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바라이(波羅夷)·승잔(僧殘)·니살기바일제(尼薩耆波逸提)·바일제(波逸提) 등은 학처 속에 사용되고 있으므로, 조문해석에서 어구의 설명이 되어 있다. 『비
니모경(毘尼母經)』 권7(大24 p.843a9-12)에 “투란차는 무엇인가? 투란차는 추악죄 주변에서 생기기 때문에 투란차라고 한다. 또 투란차는 큰일을 일으키려고 하였는데 이루어지지 않아서 투란차라고 한다. 또 돌길라에서 악한 말보다 무거운 것이기 때문에 투란차라 한다. 云何名爲偸蘭遮? 偸蘭遮者 ,於麤惡罪邊生故, 名偸蘭遮. 又復偸蘭遮者, 欲起大事不成 ,名爲偸蘭遮. 又復偸蘭遮者, 於突吉羅, 惡語重故, 名爲偸蘭.”라고 하였다.
◎ 통찰 (빠띠웨다, paṭivedha)
'통찰’로 번역한 빠띠웨다(paṭivedha)는 PED에서 ‘literally piercing, i.e. penetration, comprehension, attainment, insight, knowledge.'라고 설명되듯이, 출세간의 도를 통찰하고 성스러운 과를 증득하는 것이다. 주석서에서는 법(Dhamma)을 빠리야띠(pariyatti), 빠띠빠띠(paṭipatti), 빠띠웨다(paṭivedha)의 세 가지 측면으로 설명하고 있다. 빠리야띠란 부처님의 가르침이 기록된 삼장(Ti-piṭaka)을 공부하는 교학을 말하고, 빠띠빠띠란 계·정·혜 삼학을 닦는 수행을 말하며, 빠띠웨다란 이러한 빠리야띠와 빠띠빠띠를 통하여 출세간의 도를 통찰하고 성스러운 과를 증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