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논문·평론

언어는 소통을 위한 것

실론섬 2014. 8. 19. 14:12

언어는 소통을 위한 것
마성/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한국불교가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승가의 대사회적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붓다는 ‘전도선언’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전도의 길을 떠나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불교와 승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스승의 가르침을 한국불교는 외면해 왔다. 다시 말해서 한국불교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대승불교가 표방하는 보살도의 실천보다도 자신의 수행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사람들을 피해 산사에 안주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불교도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붓다 재세시에는 이러한 스승의 가르침을 제자들이 몸소 실천했기 때문에 종교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붓다의 가르침이 인도의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붓다가 바라나시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진리의 수레바퀴(法輪)를 굴린 다음,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설했다. 그 결과 위로 왕에서부터 아래로 불가촉천민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붓다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붓다의 가르침은 누구나 한번만 들어도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붓다는 당시 바라문들이 쓰던 귀족어인 산스크리트(범어)을 사용하지 않고, 일반 민중들이 사용하던 속어인 프라크리트(방언)로 법을 설했기 때문이었다. 언어는 근본적으로 소통을 위한 것이다. 한때 바라문 출신의 제자들은 붓다의 말씀을 산스크리트로 번역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붓다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산스크리트로 번역하면 배우지 못한 일반 대중들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선승들은 12세기 중국 송나라 시대의 언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한문으로 게송을 읊어야만 법어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과 총림방장들의 해제법어를 비교해 보면, 누가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인가를 명백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언어란 소통을 위한 것이다. 듣는 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라면 그것은 이미 죽은 언어[死語]에 불과하다. 선승들이 아직도 그 죽은 언어를 되풀이 하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조선시대를 살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법을 듣는 청중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불교도들이 “백의관음은 설하는 바 없이 설하고, 남순동자는 듣는 바 없이 듣는다(白衣觀音無說說 南巡童子不聞聞).”는 경지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의 법어들은 법을 설하는 화자(話者)도 그 의미를 모르고 설하고, 법을 듣는 청자(聽者)도 그 의미를 모르고 듣는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승가의 대사회적 기능을 다하려면 제일 먼저 법어의 형식부터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만일 선승들이 앵무새처럼 죽은 언어를 되풀이한다면 한국불교의 발전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부처님께서 지금 이 시간 한국에 오신다면, 아마 모든 국민들이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 그것도 중학생 이상이면 다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어 법을 설할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법회 식순과 같은 공지사항을 굳이 한문으로 표기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한문을 모르는 사람은 공지사항을 알 필요가 없다는 뜻인지 궁금하다. 공지사항은 근본적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한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한국불교계를 선도했던 백용성과 한용운은 지금의 선승들과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었다. 백용성은 국내에서 최초로 화엄경을 한글로 번역했다. 그는 일생동안 수많은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여 보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글 찬불가를 직접 작사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에 이미 한글 의식문을 법회에 도입했다.

한용운도 불교경전을 번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가 편집한 <불교대전>은 한권으로 가려 뽑은 대장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이 책을 편집한 것은 불교경전을 한 사람이라도 더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그는 ‘님의 침묵’과 같은 시를 한글로 지었다. 꼭 한문으로 시를 지어야만 유식해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일부 선승들이 지은 한문 게송은 운율과 문법에도 맞지 않는 것이 많이 발견된다.

1950년대 세계불교도대회에 한국의 고승 다섯 명이 참석한 일이 있었다. 각국을 대표하여 연설하는 시간에 한국의 고승이 등단하여 주장자를 들어 보이고, 크게 세 번 내리 친 다음, ‘악!’하고 고함을 지르고 내려왔다. 그 대회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영문 기사를 스리랑카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 기사를 읽었을 때 필자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국의 고승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장자를 휘두르고 고함을 질러 세계불교지도자들로부터 조롱꺼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불교도 변해야 할 때가 되었다. 변하지 않으면 한국불교는 자멸하고 만다. 언제까지 종권과 주지 싸움에만 매달릴 것인가? 불교도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기간 동안 숨죽이며 지내고 있었다. 필자도 한국불교 승려의 한 사람으로서 이 기간 동안 꼼작하지 않고 엎드려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한국불교는 수행불교에서 참여불교로, 소비불교에서 생산불교로, 받는 불교에서 주는 불교로, 부자를 위한 불교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불교로, 자신의 편안을 위한 불교에서 이웃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불교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땅에서 불교의 영향력은 점차 땅에 떨어지고 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외면하고, 권력과 결탁한 한국불교의 과보인지도 모르겠다. 만일 승려가 권력과 재물을 위해 다툰다면 그는 이미 수행자이기를 포기한 자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계기로 승가의 대사회적 기능이 무엇이며, 진정한 수행과 교화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많은 불교도들도 필자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교닷컴》「마성단상」2014년 8월 19일 ―
출처 : 팔리문헌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