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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의 모음 - 1. 이익 품(Ānisaṁsa-vagga. AN10.1-10)

실론섬 2014. 8. 28. 16:56

제1장 이익 품 Ānisaṁsa-vagga (AN 10.1-10)

 

kimatthiyasuttaṃ (AN 10.1-어떤 목적 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따삔띠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유익한 계들에게 어떤 목적과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아난다여, 유익한 계들에게 뉘우침(후회함) 없음의 목적과 뉘우침 없음의 이익이 있다.

 

“세존이시여, 뉘우침 없음에게 어떤 목적과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아난다여, 뉘우침 없음에게 환희의 목적과 환희의 이익이 있다."


“세존이시여, 환희에게 어떤 목적과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아난다여, 환희에게 희열의 목적과 희열의 이익이 있다.”


“세존이시여, 희열에게 어떤 목적과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아난다여, 희열에게 편안함의 목적과 편안함의 이익이 있다."

 
“세존이시여, 편안함에게 어떤 목적과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아난다여, 편안함에게 행복의 목적과 행복의 이익이 있다.”


“세존이시여, 행복에게 어떤 목적과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아난다여, 행복에게 삼매의 목적과 삼매의 이익이 있다."

 
“세존이시여, 삼매에는 어떤 목적과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아난다여, 삼매에게 있는 그대로 봄의 목적과 있는 그대로 봄의 이익이 있다."

“세존이시여, 있는 그대로 봄(여실지견.如實知見)에는 어떤 목적과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아난다여, 있는 그대로 봄에는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의 목적과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의 이익이 있다."

“세존이시여, 염오와 탐욕의 떠남에는 어떤 목적과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아난다여, 해탈지견의 목적과 해탈지견의 이익이 있다.

 

아난다여, 이렇게 유익(有益)한 계(戒)들에게 후회 없음의 목적과 후회 없음의 이익이 있고, 후회 없음에게 환희의 목적과 환희의 이익이 있고, 환희에게 희열의 목적과 희열의 이익이 있고, 희열에게 편안함의 목적과 편안함의 이익이 있고, 편안함에게 행복의 목적과 행복의 이익이 있고, 행복에게 삼매의 목적과 삼매의 이익이 있고, 삼매에게 있는 그대로 봄의 목적과 있는 그대로 봄의 이익이 있고, 있는 그대로 봄에게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의 목적과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의 이익이 있고,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에게 해탈지견의 목적과 해탈지견의 이익이 있다. 아난다여, 이렇게 유익한 계들은 점진적으로 최상으로 나아간다."

 

cetanākaraṇīyasuttaṃ (AN 10.2-의도적으로 행해져야 함 경)
2. “비구들이여, 계를 지키고 계를 구족한 자는 ‘나에게 뉘우침이 없음이 생기기를.’하는 의도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비구들이여, 계를 지키고 계를 구족한 자에게 뉘우침이 없음이 생기는 것은 법다운 것이다. 


비구들이여, 뉘우침이 없는 자는 ‘나에게 환희가 생기기를.’하는 의도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의도적으로 행하지 않아도 된다).

비구들이여, 뉘우침이 없는 자에게 환희가 생기는 것은 법다운 것이다(당연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환희하는 자는 ‘나에게 희열이 생기기를.’하는 의도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비구들이여,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기는 것은 법다운 것이다.


비구들이여, 희열을 느끼는 자는 ‘내 몸이 편안하기를.’하는 의도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비구들이여,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이 편안한 것은 법다운 것이다.


비구들이, 몸이 편안한 자는 ‘내가 행복을 경험하기를.’하는 의도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비구들이여, 몸이 편안한 자가 행복을 경험하는 것은 법다운 것이다.


비구들이여, 행복한 자는 ‘내 마음이 삼매에 들어 지기를.’하는 의도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비구들이여, 행복한 자의 마음이 삼매에 드는 것은 법다운 것이다.


비구들이여, 삼매에 든 자는 ‘내가 있는 그대로 알고 보게 되기를.’하는 의도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비구들이여, 삼매에 든 자가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은 법다운 것이다.


비구들이여,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자는 ‘내가 염오하고 탐욕이 떠나기를.’하는 의도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비구들이여,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자가 염오하고 탐욕의 떠남은 법다운 것이다. 


비구들이여, 염오하고 탐욕이 떠난 자는 ‘내가 해탈지견을 실현하기를.’하는 의도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비구들이여, 염오하고 탐욕이 떠난 자가 해탈지견을 실현하는 것은 법다운 것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은 해탈지견의 목적과 해탈지견의 이익이 있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여실지견.如實知見)은 염오(厭惡)와 탐욕의 사라짐의 목적과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의 이익이 있다. 삼매는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의 목적과 있는 그대로 봄의 이익이 있다. 행복은 삼매의 목적과 삼매의 이익이 있다. 편안함은 행복의 목적과 행복의 이익이 있다. 희열은 편안함의 목적과 편안함의 이익이 있다.환희는 희열의 목적과 희열의 이익이 있다. 뉘우침 없음은 환희의 목적과 환희의 이익이 있다. 유익한 계들은 뉘우침 없음의 목적과 뉘우침 없음의 이익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 언덕에서 저 언덕에 도달하기 위해 이렇게 법들이 법들을 생기게 하고, 법들이 법들을 완성하게 한다.”

 

paṭhamaupanisasuttaṃ (AN 10.3-의지처 경1)
1. "
비구들이여, 계(戒)를 경시하고 계를 잃은 자에게 뉘우침 없음의 조건은 상실되었다. 뉘우침 없음이 없을 때, 뉘우침 없음을 잃은 자에게 환희의 조건은 상실되었다. 환희가 없을 때, 환희를 잃은 자에게 희열의 조건은 상실되었다. 희열이 없을 때, 희열을 잃은 자에게 편안함의 조건은 상실되었다. 편안함이 없을 때, 편안함을 잃은 자에게 행복의 조건은 상실되었다. 행복이 없을 때, 행복을 잃은 자에게 바른 삼매의 조건은 상실되었다. 삼매가 없을 때, 삼매를 잃은 자에게 있는 그대로 봄의 조건은 상실되었다. 있는 그대로 봄이 없을 때, 있는 그대로 봄을 잃은 자에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의 조건은 상실되었다. 염오와 탐욕의 떠남이 없을 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을 잃은 자에게 있는 그대로 봄의 조건은 상실되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가지와 잎을 잃은 나무가 있다. 그 나무의 새싹도 잘 자라지 못하고, 껍질도 잘 여물지 못하고, 백목질도 잘 여물지 못하고, 심재(心材)도 잘 여물지 못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계(戒)를 경시하고 계를 잃은 자에게 뉘우침 없음의 조건은 상실되었다. 뉘우침 없음이 없을 때, 뉘우침 없음을 잃은 자에게 환희의 조건은 상실되었다. 환희가 없을 때, 환희를 잃은 자에게 희열의 조건은 상실되었다. 희열이 없을 때, 희열을 잃은 자에게 편안함의 조건은 상실되었다. 편안함이 없을 때, 편안함을 잃은 자에게 행복의 조건은 상실되었다. 행복이 없을 때, 행복을 잃은 자에게 바른 삼매의 조건은 상실되었다. 삼매가 없을 때, 삼매를 잃은 자에게 있는 그대로 봄의 조건은 상실되었다. 있는 그대로 봄이 없을 때, 있는 그대로 봄을 잃은 자에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의 조건은 상실되었다. 염오와 탐욕의 떠남이 없을 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을 잃은 자에게 있는 그대로 봄의 조건은 상실되었다.

 

비구들이여, 계(戒)를 중시하고 계를 갖춘 자에게 뉘우침 없음의 조건은 갖추어졌다. 뉘우침 없음이 있을 때, 뉘우침 없음을 갖춘 자에게 환희의 조건은 갖추어졌다. 환희가 있을 때, 환희를 갖춘 자에게 희열의 조건은 갖추어졌다. 희열이 있을 때, 희열을 갖춘 자에게 편안함의 조건은 갖추어졌다. 편안함이 있을 때, 편안함을 갖춘 자에게 행복의 조건은 갖추어졌다. 행복이 있을 때, 행복을 갖춘 자에게 삼매의 조건은 갖추어졌다. 삼매가 있을 때, 삼매를 갖춘 자에게 있는 그대로 봄의 조건은 갖추어졌다. 있는 그대로 봄이 있을 때, 있는 그대로 봄을 갖춘 자에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의 조건은 갖추어졌다. 염오와 탐욕의 떠남이 있을 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을 갖춘 자에게 해탈지견의 조건은 갖추어졌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가지와 잎을 갖춘 나무가 있다. 그 나무의 새싹도 잘 자라고, 껍질도 잘 여물고, 백목질도 잘 여물고, 심재(心材)도 잘 여문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계(戒)를 중시하고 계를 갖춘 자에게 뉘우침 없음의 조건은 갖추어졌다. 뉘우침 없음이 있을 때, 뉘우침 없음을 갖춘 자에게 환희의 조건은 갖추어졌다. 환희가 있을 때, 환희를 갖춘 자에게 희열의 조건은 갖추어졌다. 희열이 있을 때, 희열을 갖춘 자에게 편안함의 조건은 갖추어졌다. 편안함이 있을 때, 편안함을 갖춘 자에게 행복의 조건은 갖추어졌다. 행복이 있을 때, 행복을 갖춘 자에게 삼매의 조건은 갖추어졌다. 삼매가 있을 때, 삼매를 갖춘 자에게 있는 그대로 봄의 조건은 갖추어졌다. 있는 그대로 봄이 있을 때, 있는 그대로 봄을 갖춘 자에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의 조건은 갖추어졌다. 염오와 탐욕의 떠남이 있을 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을 갖춘 자에게 해탈지견의 조건은 갖추어졌다."

 

dutiyaupanisasuttaṃ (AN 10.4-의지처 경2) 
4. 거기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이에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사리뿟따 존자이시여" 라고. 사리뿟따 존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도반들이여, 계를 경시하고 계를 잃은 자에게 뉘우침 없음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뉘우침 없음이 없을 때, 뉘우침 없음이 없는 자에게 환희는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환희가 없을 때, 환희가 없는 자에게 희열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희열이 없을 때, 희열이 없는 자에게 편안함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편안함이 없을 때, 편안함이 없는 자에게 행복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행복이 없을 때, 행복이 없는 자에게 삼매는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삼매가 없을 때, 삼매가 없는 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여실지견.如實知見]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없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없는 자에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염오와 탐욕의 떠남이 없을 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이 없는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가지와 잎을 잃은 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무의 새싹도 잘 자라지 못하고, 껍질도 잘 여물지 못하고, 백목질도 잘 여물지 못하고, 심재(心材)도 잘 여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도반들이여, 계를 경시하고 계를 잃은 자에게 뉘우침 없음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뉘우침 없음이 없을 때, 뉘우침 없음이 없는 자에게 환희는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환희가 없을 때, 환희가 없는 자에게 희열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희열이 없을 때, 희열이 없는 자에게 편안함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편안함이 없을 때, 편안함이 없는 자에게 행복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행복이 없을 때, 행복이 없는 자에게 삼매는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삼매가 없을 때, 삼매가 없는 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여실지견.如實知見]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없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없는 자에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염오와 탐욕의 떠남이 없을 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이 없는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도반들이여, 계를 중시하고 계를 갖춘 자에게 뉘우침 없음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뉘우침이 없을 때, 뉘우침 없음을 갖춘 자에게 환희는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환희가 있을 때 환희를 갖춘 자에게 희열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희열이 있을 때 희열을 갖춘 자에게 편안함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편안함이 있을 때 편안함을 갖춘 자에게 행복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행복이 있을 때 행복을 갖춘 자에게 삼매는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삼매가 있을 때 삼매를 갖춘 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있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을 갖춘 자에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염오와 탐욕의 떠남이 있을 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을 갖춘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가지와 잎을 갖춘 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무의 새싹도 잘 자라고, 껍질도 잘 여물고, 백목질도 잘 여물고, 심재(心材)도 잘 여무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도반들이여, 계를 중시하고 계를 갖춘 자에게 뉘우침 없음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뉘우침이 없을 때, 뉘우침 없음을 갖춘 자에게 환희는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환희가 있을 때 환희를 갖춘 자에게 희열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희열이 있을 때 희열을 갖춘 자에게 편안함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편안함이 있을 때 편안함을 갖춘 자에게 행복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행복이 있을 때 행복을 갖춘 자에게 삼매는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삼매가 있을 때 삼매를 갖춘 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있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을 갖춘 자에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염오와 탐욕의 떠남이 있을 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을 갖춘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tatiyaupanisasuttaṃ (AN 10.5-의치저 경3)
5. 거기에서 아난다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아난다 존자이시여" 라고. 아난다 존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도반들이여, 계를 경시하고 계를 잃은 자에게 뉘우침 없음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뉘우침 없음이 없을 때, 뉘우침 없음이 없는 자에게 환희는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환희가 없을 때, 환희가 없는 자에게 희열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희열이 없을 때, 희열이 없는 자에게 편안함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편안함이 없을 때, 편안함이 없는 자에게 행복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행복이 없을 때, 행복이 없는 자에게 삼매는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삼매가 없을 때, 삼매가 없는 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여실지견.如實知見]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없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없는 자에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염오와 탐욕의 떠남이 없을 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이 없는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가지와 잎을 잃은 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무의 새싹도 잘 자라지 못하고, 껍질도 잘 여물지 못하고, 백목질도 잘 여물지 못하고, 심재(心材)도 잘 여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도반들이여, 계를 경시하고 계를 잃은 자에게 뉘우침 없음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뉘우침 없음이 없을 때, 뉘우침 없음이 없는 자에게 환희는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환희가 없을 때, 환희가 없는 자에게 희열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희열이 없을 때, 희열이 없는 자에게 편안함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편안함이 없을 때, 편안함이 없는 자에게 행복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행복이 없을 때, 행복이 없는 자에게 삼매는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삼매가 없을 때, 삼매가 없는 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여실지견.如實知見]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없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없는 자에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염오와 탐욕의 떠남이 없을 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이 없는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도반들이여, 계를 중시하고 계를 갖춘 자에게 뉘우침 없음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뉘우침이 없을 때, 뉘우침 없음을 갖춘 자에게 환희는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환희가 있을 때 환희를 갖춘 자에게 희열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희열이 있을 때 희열을 갖춘 자에게 편안함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편안함이 있을 때 편안함을 갖춘 자에게 행복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행복이 있을 때 행복을 갖춘 자에게 삼매는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삼매가 있을 때 삼매를 갖춘 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있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을 갖춘 자에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염오와 탐욕의 떠남이 있을 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을 갖춘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가지와 잎을 갖춘 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무의 새싹도 잘 자라고, 껍질도 잘 여물고, 백목질도 잘 여물고, 심재(心材)도 잘 여무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도반들이여, 계를 중시하고 계를 갖춘 자에게 뉘우침 없음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뉘우침이 없을 때, 뉘우침 없음을 갖춘 자에게 환희는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환희가 있을 때 환희를 갖춘 자에게 희열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희열이 있을 때 희열을 갖춘 자에게 편안함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편안함이 있을 때 편안함을 갖춘 자에게 행복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행복이 있을 때 행복을 갖춘 자에게 삼매는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삼매가 있을 때 삼매를 갖춘 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있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을 갖춘 자에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염오와 탐욕의 떠남이 있을 때 염오와 탐욕의 떠남을 갖춘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samādhisuttaṃ (AN 10.6-삼매 경)
6. "
세존이시여, 비구가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이 없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없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없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없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식무변처에 대해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없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없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지만, 그러나 인식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습니까?”

“아난다여, 비구는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이 없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없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없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없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식무변처에 대해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없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없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지만, 그러나 인식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이 없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없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없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없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식무변처에 대해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없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없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지만, 그러나 인식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습니까?”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이러한 인식을 가진다.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수승하다. 이것은 모든 형성된 것들[行]이 가라앉음[止]이요,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림이요, 갈애의 소멸이요, 탐욕의 떠남이요, 소멸이요, 열반이다.’라고.

이렇게, 아난다여, 비구는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이 없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없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없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없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식무변처에 대해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없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없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지만, 그러나 인식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다.”

 

sāriputtasuttam (AN 10.7-사리뿟따 경) 

7.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비구가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이 없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없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없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없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식무변처에 대해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없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없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지만, 그러나 인식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습니까?”

“도반 아난다여, 비구는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이 없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없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없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없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식무변처에 대해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없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없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지만, 그러나 인식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이 없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없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없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없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식무변처에 대해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없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없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지만, 그러나 인식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습니까?”

“도반 아난다여, 한때 나는 여기 사왓티에서 어둠의 숲에 머물렀습니다. 거기서 나는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이 없었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없었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없었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없었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없었고, 식무변처에 대해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없었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없었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없었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었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식이 있었던 그런 삼매를 얻었습니다.”

 

“도반 사리뿠다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그때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도반 아난다여, 내게는 ‘존재의 소멸인 열반, 존재의 소멸인 열반’이라는 다른 인식이 일어나고 다른 인식 소멸합니다. 
예를 들면, 도반 아난다여, 장작더미에 불이 타고 있으면 다른 불꽃이 일어나고 다른 불꽃이 소멸하는 것과 같이, 내게는 ‘존재의 소멸인 열반, 존재의 소멸인 열반’이라는 다른 인식이 일어나고 다른 인식이 소멸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그때 내게는 존재의 소멸인 열반의 인식이 있었습니다.”

 

jhānasuttaṃ (AN 10.8-선(禪) 경)
8.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은 있지만 계를 지키지는 못했다. 이렇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수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키지만 많이 배우지 못했다. 이렇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수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많이 배웠지만 법을 설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수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법을 설하지만 회중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수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회중에 참여하지만 두려움 없이 회중에게 법을 설하지는 못한다. 이렇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수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두려움 없이 회중에게 법을 설하지만 율을 호지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수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율을 호지하지만 숲속에 머물지 않고 외딴 거처를 의지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수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숲속에 머물고 외딴 거처를 의지하지만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선정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지는 못한다. 이렇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수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선정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지만,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지 못한다. 이렇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와 같이 생각하면서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키고, 많이 배우고, 법을 설하고, 회중에 참여하고, 두려움 없이 회중에게 법을 설하고, 율을 호지하고, 숲에 머물고 외딴 거처를 의지하고,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선정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를 통한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수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키고, 많이 배우고, 법을 설하고, 회중에 참여하고, 두려움 없이 회중에게 법을 설하고, 율을 호지하고, 숲에 머물고 외딴 거처를 의지하고,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선정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를 통한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 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모든 곳에서 기쁨을 주는 자요, 모든 것을 원만하게 갖춘 자이다.”

 

santavimokkhasuttaṃ (AN 10.9-평화로운 해탈 경)
9.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은 있지만 계를 지키지는 못했다. 이렇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수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키지만 많이 배우지 못했다. 이렇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수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많이 배웠지만 법을 설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수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법을 설하지만 회중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수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회중에 참여하지만 두려움 없이 회중에게 법을 설하지는 못한다. 이렇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수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두려움 없이 회중에게 법을 설하지만 율을 호지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수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율을 호지하지만 숲속에 머물지 않고 외딴 거처를 의지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수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숲속에 머물고 외딴 거처를 의지하지만 물질[色]을 초월하여 물질이 없는[無色] 저 네 가지 평화로운 선정을 몸으로 체험하여 머물지 못한다. 이렇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수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숲 속에 머물고 외딴 거처를 의지하지만 물질을 초월하여 물질이 없는 저 네 가지 평화로운 선정을 몸으로 체험하여 머물지만,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를 통한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지 못한다. 이렇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키고, 많이 배우고, 법을 설하고, 회중에 참여하고, 두려움 없이 회중에게 법을 설하고, 율을 호지하고, 숲에 머물고 외딴 거처를 의지하고, 물질을 초월하여 물질이 없는 저 네 가지 평화로운 선정을 몸으로 체험하여 머물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를 통한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 수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키고, 많이 배우고, 법을 설하고, 회중에 참여하고, 두려움 없이 회중에게 법을 설하고, 율을 호지하고, 숲에 머물고 외딴 거처를 의지하고, 물질을 초월하여 물질이 없는 저 네 가지 평화로운 선정을 몸으로 체험하여 머무르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를 통한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 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모든 곳에서 기쁨을 주는 자요, 모든 것을 원만하게 갖춘 자이다.”

 

vijjāsuttam (AN 10.10-명지(明知) 경)

10.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은 있지만 계를 지키지는 못했다. 이렇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수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킬 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키지만 많이 배우지 못했다 ··· 많이 배웠지만 법을 설하지는 않는다 ··· 법을 설하지만 회중에 참여하지는 않는다(못한다) ··· 회중에 참여하지만 두려움 없이 회중에게 법을 설하지는 못한다 ··· 두려움 없이 회중에게 법을 설하지만 율을 호지하지는 않는다 ··· 율을 호지하지만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한 생, 두 생, 세 생 ···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해 내지 못한다 ···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하지만,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리지만, 모든 번뇌가 다하여 ···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지 못한다. 이렇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키고, 많이 배우고, 법을 설하고, 회중에 참여하고, 두려움 없이 회중에게 법을 설하고, 율을 호지하고, 수많은 갖가지 전생의 삶들을 기억한다. 한 생, 두 생 ···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쟁의 거처를 기억하고,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리고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를 통한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 수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지키고, 많이 배우고, 법을 설하고, 회중에 참여하고, 두려움 없이 회중에게 법을 설하고, 율을 호지하고,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하여 한 생, 두 생 ···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하고,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 차리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를 통한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 때, 그는 이 구성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제1장 이익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