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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 天國'과 '데모 亡國' 사이

실론섬 2014. 10. 14. 11:38


데모 메카로 전락한 세종로 일대… 집회·시위 하루 30번 맞는 서울
정부, 無실체 국민정서에 휘둘려 '떼쓰는 게 萬能' 의식 더 키워
民意 전달할 확실한 통로 갖추고 法 엄격 집행해 무법천지 끝내야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2008년 10월 27일자 칼럼에서 나는 "오세훈 (서울) 시장이 야심 차게 만들고 있는 광화문 광장도 어쩌면 데모의 또 다른 메카가 될 공산이 크다"며 "머지않아 광화문 광장이 완공되면 시청 앞 광장과 쌍벽을 이루며 대한민국 시위 및 집회 장소의 양대 산맥을 이룰 것이 틀림없다"고 썼다.

이 예언 아닌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애써 시위 및 농성에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던 서울시 당국의 인내(?)는 마침내 '세월호 유족회' 측의 불법 농성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번 무너지면 전례(前例)가 되고, 그러지 않아도 당국의 허가 따위는 우습게 알아온 시위 세력이 전례를 내세워 광화문 광장으로 마구 밀려 들어올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근자에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는 허구한 날 데모 아니면 시장(市場)으로 바뀌며 밤낮으로 교통 혼잡에, 확성기 고성에, 음식 냄새에 시달린다. 데모만 났다 하면 경찰은 보란 듯이 대형 경찰 버스로 체인을 만들어 주변 도로의 1개 차선(대규모 데모 때는 2개 차선)을 완전히 에워싸는 방식으로 대처한다. 때로는 데모대(隊)보다 경찰 버스가 교통 혼잡의 주범이 된다. 어쩌면 일부러라도 교통체증을 유발해 데모에 대한 시민들의 불평과 원성을 유도하는 치사한 방법일는지도 모른다. 도농(都農) 직거래의 명분을 타고 장(場)이 서는 날이면 그 업소들의 차량 수십 대가 시청 앞과 청계천 광장 주변을 온종일 며칠씩 점령한다. 이것이 인구 1000만명이 넘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서 거의 매일이다시피 일어나는 광경이다.

서울에서 일어나는 집회·시위는 매년 1만여건이다. 2013년에는 1만219건이었고, 금년에는 8월까지 이미 8600건으로 집계됐다. 이런 추세로 보면 금년 말에는 2만건에 육박할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평균하면 서울에서 매일 30여건의 집회·시위 또는 데모가 있었다는 얘기다.

왜 우리는 이렇게 데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에 사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막힌 사회여서 그런가? 데모를 해야 일이 잘 풀리는 세상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우리가 본질적으로 체제 저항적이거나 전투적인 국민이어서 그런가? 서울에 근무했던 어느 외국 외교관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남북한 사람이 같은 민족 맞느냐?"면서 북한 주민은 60년 넘게 독재 권력에 반항 한번 안 하고 사는데, 남한 사람들은 너무 쉽게 거리로 뛰쳐나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선왕조가 세계에 유례가 드물 만큼 장기 집권했던 것을 자랑처럼 얘기하는데 뒤집어보면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저항 없이 굴종의 시대를 살아왔다는 말도 된다.

그런 우리가 지금 '데모 천국'에 살고 있다. 우리가 민주화를 이루어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설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시위와 농성으로 해결할 것인가? 언제까지 데모만 하고 언제까지 경찰과 충돌만 할 것인가? 언제까지 '떼거리' 국민으로 비치는 것을 방치할 것인가? 그것도 우리의 4·19나 최근 홍콩의 민주화 시위, 미국 흑인 차별에의 항거 같은 인간 본래의 자유를 위한 투쟁이 아닌 사안들로 말이다. 우리가 여기서 데모 만능(萬能)의 사고방식에 종지부를 찍지 못하면 우리의 삶의 방식은 심각한 파국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그것을 막는 노력은 정부의 엄격한 법 집행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만일 우리의 법 체계에 민의(民意)의 원활한 전달을 방해하거나 이해관계 해결에 미진한 요소가 있다면 그것부터 고치자. 그러나 일단 체계가 확립되면 추상같은 법의 집행이 따라야 한다. 국회의원이건 권력층이건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집회·시위의 법을 어기는 사람에게 가혹하리만치 엄한 철퇴를 내려야 한다. 이것을 집행할 의지가 없는 정권이라면 데모로 망해도 싸다는 말을 들어도 도리가 없다. 당국은 합법적 집회에 대해서는 일시·장소·규모·기간 등을 홈페이지나 언론에 공시해 시위와 집회를 법의 테두리 안에 수용해야 하고, 시위자들은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 불법·폭력 시위에 주눅이 든 상황에서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선진사회, 선진국가가 될 수 있다.

한 전직 고위 경찰은 "경찰이 열심히 뛰어봤자 사고가 나면 경찰만 당하는데 경찰이 왜 나서겠느냐"면서 "정권적 차원에서 대통령의 이름을 걸고 나서지 않는 한, 우리 시위 문화의 개선은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라고 했다. 행정 당국도 '국민 정서'를 내세우며 무슨 수로 '세월호 단식농성' 같은 것을 막겠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고 한다.

국민 정서란 정체도 없고 책임도 없는 존재다. 오늘 동(東)으로 가던 '정서'는 내일 곧바로 서(西)로 간다. 나라를 다스리고 국민을 책임지는 일이 정서로 가늠된다면 우리는 무법천지에서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