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대단한 시험이라서 아이들 미래를 재단하나
온갖 희생 치르고도 소수만 살아남는 입시 지옥
누가 희망 갖고 아이 낳겠나… 어디서 창의·활력 찾겠나
- 양상훈 논설주간
소수의 성공을 위해 대다수를 패배자, 낙오자로 만들어 이 나라가 가진 잠재력의 대부분을 죽이고 마는 입시 지옥의 문이 다시 열렸다. 한때는 이 입시 지옥이 마치 우리나라가 가진 경쟁력의 원천인 것처럼 선전되던 때도 있었다. 실제 그랬던 시기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이 입시 지옥은 사회를 황폐화시키고 나라를 거덜낼 저주일 뿐이다.
북핵, 중국 산업의 위협 등 우리가 당면한 수많은 문제가 있다. 그 모든 문제를 다 합친 것보다 더 큰 단 하나의 문제가 저출산·고령화다. 당장 저출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경제·정치·사회·안보 모두 대재앙을 마주할 일만 남는다. 10년도 남지 않았다.
늦게 결혼했는데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를 알고 있다. "아이를 초등학교부터 입시 학원으로 밀어 넣을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그 돈을 댈 능력도 없다. 돈을 대고도 좋은 대학에 갈 가능성은 1%다. 좋은 대학에 가도 취직이 어려운데…. 결국 아이가 우리처럼 되거나 더 못하게 될 텐데 그걸 생각하면 고개가 흔들어진다. 아이 하나는 정말 낳고 싶지만, 아이도 우리도 불행하게 되고 싶지는 않다."
우리나라의 입시 지옥과 취직 지옥은 사람이 자식을 낳겠다는 본능마저 주저하게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입시 지옥의 근원은 대학 서열화다. 어느 나라든 좋은 대학이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1등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서열화된 나라는 없다. 어느 등수 밖의 대학으로 나간 사람들에게 세상은 자기와는 상관없는 '그들만의 리그'가 된다. 어느 분이 서울에 있다고 해서 '서울대'로 불리는 한 대학에서 강연을 하다 중간에 그만두고 학생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나도 이류 대학 나왔다. 더러운 꼴 많이 보고 살았다. 그러나 오기는 있었다. 너희는 오기도 없느냐…." 피해의식과 패배의식에 젖은 학생들이 너무 안타까워 분노가 치밀었다고 했다.
입시 지옥에서 승리한 소수가 우리 사회에 기여한 것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여한 것의 몇 배, 몇십 배의 잠재력이 사라지고 있다. 일본 노벨 과학상 수상자의 절반이 지방대 출신이다. 심지어 지방대 출신으로 석사학위도 없는 사람이 노벨화학상을 탔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탄 일본인 3명 중 2명도 지방대 교수다. 나고야대는 학교 내에 '노벨상 거리'까지 만들었다. 우리는 이 거대한 잠재력을 턱도 없는 편견과 아집으로 다 죽이고 있다. 한국 지방대와 일본 지방대의 차이는 한쪽은 '루저'이고 한쪽은 아니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일부 대학 외엔 다 '나머지'가 된 한국적 현실의 뒤에서 대다수 학생은 포기를 택하고 있다. 우리 고교 교실에서 학생 절반은 매일 엎드려 잠만 잔다. 교사도 이들을 외면한다.
미국 교포의 아들이 주립대와 하버드대에 동시에 합격했다. 당연히 하버드대에 보내려는데 비싼 등록금 때문에 고민이 컸다. 이웃 미국인들은 그 고민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 주립대는 매우 훌륭한 학교"라는 것이 그들의 답이었다. 이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고 정상이다. 30여년 전만 해도 지방의 국립대는 서울의 주요 대학들에 견줘 뒤지지 않았다. 이제는 하늘과 땅의 차이 같다. 지방 국립대의 한 교수는 "학생들이 자기 인생에 미리 한계를 긋는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거냐"고 한탄했다.
우리는 수십년 동안 매년 수십만의 젊은이들을 하찮은 시험 성적으로 줄 세우고 '너는 안 돼'라는 낙인을 찍어 내동댕이쳐왔다. 그것이 업(業)이 되고, 언젠가 보복을 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사회에 창의와 활력이 사라지고, 소외된 이들의 쇳소리가 끊이지 않더니 마침내 저출산이라는 대재난이 우리를 근본부터 뒤흔들고 있다.
오늘 아침 수험장으로 향하는 학생들에게 "모두 시험 잘 보라"고 말하는 것은 뻔한 거짓말일 뿐이다. 이 제도로는 어차피 다수가 밀려날 수밖에 없다. 오늘 밤 수많은 수험생 가정이 눈물과 좌절, 고통에 잠길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전하며 교육 제도와 풍토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용기 있는 혁신이 나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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