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 조계종의 상징적 인물인 송담(88) 스님이 지난 9월 12일 조계종 종단 탈퇴를 선언한 뒤 조계종단이 들썩거리고 있다. 송담 스님은 인천 용화선원 원장이자 법보선원 이사장. 그는 당시 탈종 이유로 “조계종의 수행 가풍이 맞지 않다”고 말했다. 자승 총무원장이 이끄는 조계종이 수행집단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났고 더 이상 한국 불교를 대변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비판으로 해석됐다.
송담의 탈종 선언에서 두 달이 지나면서 조계종 안팎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비구, 비구니와 함께 사대부중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재가불자들이 송담 스님의 종단 탈퇴 선언 원인이 종단의 부패에 있다면서 총무원을 겨냥한 집단행동에 나섰다. 재가불자연대는 12월 초 조계종 총무원의 개혁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연대 측은 조계사에서 3000여명의 신도가 참석, 종단 자정을 촉구할 계획이다.
‘청정한 바른 불교를 희망하는 재가불자들의 모임’(공동대표 우희종 서울대 수의대 면역학 교수, 김종규 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 원장, 김경호 지지협동조합 이사장)은 이에 앞서 지난 10월 14일 선언문을 내고 “한국 불교의 정신적 스승인 송담 큰스님이 탈종 선언을 한 현실에 참담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면서 “수행 가풍이 맞지 않는다는 스님 말씀은 타락한 수행 풍토를 만든 정치승들을 척결하지 못한 종도들에 대한 뼈아픈 질책이자 준엄한 경책”이라고 주장했다.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146명의 재가불자들은 “종단은 송담 스님의 승적을 즉각 회복하고 여법하게 모셔야 한다. 정치파벌은 모두 해체하고 출가초심 수행자의 본보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12월 8일 동안거 시작에 맞춰 전국선원 수좌회 소속의 승려가 총무원이 있는 조계사에서 종단의 자정을 촉구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 지난해 9월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의 연임에 반대하는 전국선원수좌회 소속 스님들이 조계사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이진한 조선일보 기자
재가불자들과 이판승들은 자승 총무원장을 중심으로 한 사판승들의 힘이 견제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강조한다. 재가불자들 사이에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쥔 승려들의 전횡이 커질까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자승 총무원장은 송담 스님이 종단탈퇴를 선언한 뒤인 지난 10월 중앙종회 선거에서 압승, 자기 계파만으로도 종법 개정이 가능한 의석 수를 확보했다. 국회에 비유하면 개헌이 가능한 전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확보했다. 80명의 중앙종회 의원 중 자승 원장의 계파인 ‘불교광장’ 소속 의원이 56명이다. 중앙종회의 야당 격인 종책모임 ‘삼화도량’(회장 영담스님)은 15석가량을 얻는 데 그치며 선거에서 완패했다. 자승 총무원장은 보다 강력한 집권기반을 마련했고, 견제하고 균형을 유지해야 할 반대세력은 위세가 꺾였다.
중앙종회 의원 선거 초기만 해도 삼화도량 측은 장주 스님의 도박폭로 건을 재론하며 자승 총무원장의 직무정지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공세적 모습을 보였으나 선거 패배 이후에는 잠잠해졌다. 이번에 쌍계사 몫으로 서울 봉은사 전 주지였던 명진 스님이 중앙종회에 진출한 정도가 그나마 야당 측의 성과라면 성과다. 자승 원장과 대척점에 섰던 명진 스님이 중앙무대에서 집권세력을 얼마나 견제할지가 관심을 끄는 정도다.
현재 조계종단은 집권세력인 불교광장의 핵심 승려 200명 정도로 구성돼 있다. 조계종 소속 전체 승려는 1만4000여명. 전체 승려의 1.4% 정도인 총무원장 세력이 요직을 독점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재가불자연대는 이들이 주요 보직을 나눠 갖고 정부 보조금을 멋대로 사용한다고 비판한다.
지관 전 총무원장 시절 총무원장 종책특보로 일한 김영국 연경정책연구소장은 “조계종이 갈 데까지 갔다는 얘기를 듣는 데 자승 원장을 견제할 세력마저 마땅치 않다. 집권세력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재가불자들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종단 쇄신을 책임지는 결사본부장 도법 스님에 대해서도 재가불자들은 “자정보다 집권세력의 방패가 되는 측면이 더 강하다. 종단 개혁을 위해 도법 스님이 총무원을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총무원 측은 송담 스님 탈종의 직접적 원인을 법인법 제정에 따른 이견 때문으로 보고 있다. 조계종 중앙종회는 지난해 ‘법인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을 제정하고 각 사찰 산하의 재단을 총무원에 등록하도록 강제했다. 총무원 측은 불교계의 법인 현황 파악을 위한 법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조계종 내 200여개의 재단 중 절반은 “재단 운영의 자율성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송담 스님이 주도해온 법보선원의 경우도 재단 형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조계종단의 법인법에 따라 총무원에 관련 사무를 등록해야 한다. 하지만 법보선원은 총무원의 관리 아래에 놓이는 것을 거부하고 제적원을 제출했다.
송담 스님의 탈종에는 25개 교구본사 중 하나인 용주사(경기도 화성 소재) 주지 선임을 둘러싼 갈등도 작용했다는 말이 나온다. 용주사의 경우 전통에 따라 선방 스님 중에서 위촉되어 왔다.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다른 교구본사의 주지직과는 다른 풍토다. 그런데 지난 8월 자승 총무원장 측과 가까운 성월 스님이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주지 선거를 관철시켰고 당선됐다. 수행승의 가풍에 따라 주지가 임명되어온 관례가 깨지고 승려들을 상대로 한 선거전이 벌어진 것에 송담 스님과 제자들이 실망했다는 후문이다. 용주사 신임 주지 성월 스님이 말사인 수원사 주지를 교체하는 과정에서도 논란이 빚어졌다. 30여년 동안 수원사를 이끌어온 성관 스님이 주지 자리에서 해임되자 일부 신도들은 반대집회를 열며 반발했다. 수원사 신임 주지에는 자승 총무원장의 측근인 총무원 호법부장 출신의 세영 스님이 품신됐다.
이처럼 총무원이 중앙 통제를 강화하자 이에 반발, 송담 스님과 그의 제자들이 용주사에 탈종계를 제출했는데 결국 이판승의 세계에 사판승이 밀고 들어온 것을 경계한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영국 연경정책연구소장은 “총무원의 중앙집권 강화정책이 이판승들이 지켜온 가풍과 충돌하게 됐다”며 “용주사 주지 선거에서도 금품이 오고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자질이 부족한 스님이 말사에 임명되면서 신도들이 반발했다”고 말했다.
실제 총무원이 제정한 법인법에 대해 반발하는 세력은 수행집단인 이판승 계열이다. 송담 스님이 이끌고 있는 법보선원과 수행 승려들의 본산 격인 선학원은 그동안 사판승이 통제하기 어려웠던 이판승들의 영역이었다. 전국에 500여개 사찰을 보유한 선학원의 경우 총무원이 독립 종단의 형태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서 향후 운영에 적극 관여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이렇게 되자 선학원 측은 총무원에 재단 등록을 거부하고 임원진이 “조계종 종헌, 종법에 동의할 수 없음”을 이유로 제적원을 제출한 상태다. 이에 맞서 총무원은 지난 10월 초 선학원 이사장인 법진 스님에 대해 ‘종단 법통을 문란하게 한 죄’를 물어 멸빈(승적 발탈)을 결정했다.
현재 총무원은 법인관리법 시행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 확산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총무원 측은 “종단은 법인 운영에 관여할 법적 근거가 없고 관여할 이유도 없다. 법인의 이사 선임에도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는 해명서를 발표했다. 총무원은 조계종 인터넷 홈페이지에 ‘법인관리법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코너를 만들어 메인 화면에 띄우기도 했다.
자승 총무원장은 송담 스님의 탈종 문제로 진퇴양난에 놓였다는 게 종단 안팎의 시각이다. 자승 총무원장은 송담 스님과 마찬가지로 25개 교구본찰 중 하나인 용주사 문중 출신이다. 특히 송담 스님은 자승 총무원장의 은사와 같은 반열에 있다. 송담 스님은 자승 총무원장의 은사인 정대스님의 사형이며 이에 따라 자승 총무원장은 송담의 조카 상좌인 셈이다.
자승 총무원장이 송담 스님의 탈종계를 수리하지 못하는 것도 선승의 법통을 잇는 문중의 어른이 종단을 떠나는 것을 방관할 경우 자신의 뿌리가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승과도 같은 문중의 어른을 처벌할 경우 전국 수좌승들의 반발에 직면할 게 자명하다. 이에 따라 자승 원장은 송담 스님의 탈종계를 반려하는 모습을 보이며 “송담 스님의 큰 뜻을 받들어 잘 모시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상태다. 총무원 기획국장인 남전 스님은 주간조선에 “송담 스님의 탈종계를 반납하고 우리가 어른을 조금 더 잘 모시겠다는 참회의 메시지를 전했다. 탈종의 문제를 재고해 주시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남전 스님은 재가불자들이 총무원의 자정을 촉구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늘 있어 왔던 얘기들 아니냐”고만 말했다.

- 송담 스님
특히 재가불자연대는 송담 스님 탈종을 계기로 이판승과 사판승의 경계를 구분 짓는 방식으로 종단의 운영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재가불자연대 측은 “이판과 사판은 성격이 다르다. 지금 집권당이나 야당세력은 모두 사판인데, 누가 권력을 잡아도 비슷한 부정부패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일탈이 수행을 하는 이판승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총무원의 권력이 비대해지면서 욕심이 커진 듯한데 이번 기회에 이판과 사판의 영역이 공존하는 형태로 종단의 운영방식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가불자연대가 자승 원장을 압박하는 수단은 조계종 총무원 안팎에서 벌어진 부정과 비리 사건이다. 도박·횡령·뇌물 사건이 종단 내부에서 끊이질 않는 걸 대표적인 종단의 세속화로 꼽고 있다. 1999년 서울 강남의 해림도박사건이 대표적이다. 이후 일부 승려의 해외원정도박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고 2012년 백양사 인근에서 도박을 하던 조계종 주요 승려들의 동영상이 공개돼 큰 파장을 낳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장주 스님이 현 종단의 최고위층 인사와 도박을 했다면서 검찰에 자수하는 사건도 있었다. 종단 최고위 인사의 이름까지 거명된 장주 스님의 폭로 건에 대해 검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이를 공개했던 장주 스님이 오히려 멸빈당했다.
배임·횡령 사건도 잊을 만하면 발생한다. 2009년 충남 공주 마곡사 범용 전 주지스님이 배임수재 혐의로 법정구속된 바 있고 법화사 시몽 스님은 2010년 국고보조금 유용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 2012년에는 표충사 주지스님이 사찰 소유 토지를 불법 매각해 45억원을 챙겨 달아나는 사건이 있었다. 일부 승려는 교구본사 주지 재임 시에 말사 주지 자리를 돈을 받고 파는 사례도 있다.
승려의 정체성을 흔드는 사건도 벌어졌다. 2011년 은해사 돈명 스님은 결혼증명서 사본이 공개돼 논란이 됐다. 재가불자연대는 특히 돈명스님에 대한 총무원의 처벌과정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재가불자연대 측은 “비구의 정체성을 흔든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자승 총무원장과 가깝다는 이유로 가벼운 징계로 마무리됐다. 종단 내 도박사건을 폭로한 스님들이 멸빈을 당한 것과 비교된다”고 했다.
총무원장과 종단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 의원 선거 때마다 금품살포설이 끊이질 않는 것도 문제다. 지난 10월 임기 4년의 중앙종회 의원 선거에서 자승 총무원장의 계파가 재적의원의 3분의 2 이상을 확보했는데 일각에서는 1표당 상당액의 금품이 오고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재가불자연대를 이끌고 있는 서울대 우희종 교수는 “권력을 쥔 승려들의 일탈 차원을 넘어 조계종 자체의 정체성이 무너지고 있고 있다. 자승 총무원장이 자정과 혁신을 하겠다고 했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송담 스님은 탈종 선언을 통해 이와 같은 불교의 위기를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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