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역 아함경/증일아함경

24. 고당품(高幢品)

실론섬 2015. 6. 22. 19:08

24. 고당품(高幢品) ①


[ 1 ]

(이 소경과 비슷한 내용의 경으로는 『잡아함경』 제35권 981번째 소경인 「당경(幢經)」이 있다.)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천제석(天帝釋)이 삼십삼천(三十三天)에게 말하기를 '그대들이 큰 전쟁에 나갔을 때, 만일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생기거든 그대들은 높이 걸려있는 나의 큰 당기[幢]를 돌아보아라. 만약 나의 이 당기를 돌아보면 곧 두려움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만일 내 당기가 기억나지 않거든 저 이사천왕(伊沙天王)1)의 당기를 생각하라. 그 당기를 생각하면 모든 두려움은 곧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만일 내 당기와 이사천왕의 당기가 기억나지 않거든 그 때에는 마땅히 저 바류나(婆留那)2) 천왕(天王)의 당기를 생각하라. 그 당기를 생각하면 모든 두려움은 곧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이제 또 너희들에게 말한다. 만일 어느 비구(比丘)·비구니(比丘尼)·우바새(優婆塞)·우바이(優婆夷)들이 어떠한 두려움이 있어 온 몸의 털이 곤두서거든, 그 때에는 꼭 나를 생각하라.

'이 분은 여래·지진(至眞 : 阿羅漢) 등정각(等正覺)·명행성위(明行成爲)·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士)·도법어(道法御)·천인사(天人師)·불중우(佛衆祐)라는 명호(名號)를 지니신 분이시다. 그 분이 이 세상에 출현하셨다.'

비록 두려움이 있어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하더라도 곧 저절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만일 또 나를 기억할 수 없거든 그 때에는 마땅히 법(法)을 기억하면 된다.

'여래의 법은 매우 미묘(微妙)하여 지혜로운 사람이 배우는 것이다.'

이미 그 법을 생각하고 나면, 온갖 두려움은 곧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만일 나를 기억하거나 법을 기억할 수 없거든 그 때에는 마땅히 성중(聖衆)을 기억해야 한다.

'여래의 성중은 매우 화순(和順)하며, 법다운 법을 성취하였고 계(戒)를 성취하였으며, 삼매(三昧)를 성취하였고 지혜(智慧)를 성취하였으며, 해탈(解脫)을 성취하였고 해탈견혜(解脫見慧)를 성취하였다. 

그러므로 이 성중을 4쌍8배(四雙八輩)라고 말하나니, 이들은 곧 여래의 성중으로서 공경할 만하고 섬길 만한 세상의 복밭[福田]이다. 이것을 일러 여래의 성중이라고 말한다. 만약 이 성중을 기억하고 나면 온갖 두려움은 곧 저절로 다 사라질 것이다.

  

비구들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석제환인(釋帝桓因)은 아직 음욕·성냄·어리석음이 있는데도 삼십삼천(三十三天)들이 그 주인[主 : 釋帝桓因]을 기억하면 곧 두려움이 없어지거늘, 하물며 음욕·성냄·어리석음이 없는 여래를 기억하는데 무슨 두려움이 있겠느냐? 만약 어떤 비구라도 여래를 기억하면 어떤 두려움도 곧 저절로 다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부처님과 법과 성중, 이 3존(尊)을 기억해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1) 팔리어로는 sana devaraja라고 한다. 또는 이사나천(伊舍那天)이라고도 하며, 번역하여사배자(司配者)라고 한다. 욕계(欲界) 제6천인 자재천(自在天)의 천주이다. 호세(護世) 8방천의 하나로 시방호법신왕(十方護法神王)의 하나이며, 12천(天)의 하나이다.

2) 팔리어로는 Varuna라고 하며, 천왕의 이름이다.


[ 2 ]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당시 발기(拔祇)5)국 경내에는 비사(毘沙)라고 하는 귀신이 있었다. 그 귀신은 그 나라 안에 있으면서 매우 흉악하고 포학하여 그 나라 백성들을 수없이 많이 죽였다. 날마다 하루에 한 사람씩 죽이기도 하고, 혹은 날마다 두 사람·세 사람·네 사람·다섯 사람·열 사람·스무 사람·서른 사람·마흔 사람·쉰 사람씩 죽였다. 그 때 그 나라에는 온갖 귀신들과 라찰(羅刹) 따위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발기국 백성들은 한곳에 모두 모여 의논하였다.

'우리들은 이 나라를 피해서 다른 나라로 가자. 이 나라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

그때 그 악한 귀신 비사는 그 나라 백성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지를 알고 그 백성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이곳을 떠나서 다른 나라로 가지 말아라. 왜냐 하면, 너희들은 끝내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너희들이 날마다 한 사람씩 잡아 가지고 와서 내게 제사를 올리면 나는 결코 너희들을 못 살게 굴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발기국 백성들은 날마다 한 사람씩을 잡아 가지고 가서 그 악한 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 귀신은 그 사람을 잡아먹고 나서는 그 해골을 다른 산에다 던져버렸다. 그래서 그 산골짜기에는 사람들의 뼈가 가득 찼다.

  

그때 선각(善覺)이라는 장자(長者)가 그 나라에 살고 있었는데, 그는 재물이 풍족하고 보배도 많았다. 그는 재산을 천억이나 쌓아두었고 나귀·노새·낙타 따위는 이루 다 헤아릴 수조차 없었으며, 금·은 보배와 자거(車?)·마노(馬瑙)·진주(眞珠)·호박(琥珀) 등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 장자에게는 나우라(那優羅)라고 하는 외동아들이 있었다. 그 장자는 그 아들을 매우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 잠깐도 그의 눈 앞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던 차에 그 나라 백성들은 약속에 따라 '다음 번에 어린 나우라를 귀신에게 제사할 차례가 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나우라의 부모는 그 아이를 목욕(沐浴)시키고 좋은 옷을 갈아 입혀 가지고 그 귀신이 있는 무덤 사이로 데리고 갔다. 거기 이르러서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소리 높여 울부짖으면서 말하였다.

  

"모든 신들과 땅의 신들은 다 함께 증명(證明)하소서. 우리들에게는 오직 이 외동아들 하나밖에 없습니다. 원컨대 여러 신명(神明)들은 마땅히 이를 증명하소서. 그리고 스물 여덟 큰 귀신왕(鬼神王)들도 마땅히 다 함께 이를 보호하여 어떻게든지 이 액(厄)을 면하게 하소서. 또 사천왕(四天王)께도 귀의(歸依)하나이다. 부디 이 아이를 보호해주시어 이 액난(厄難)을 면하게 해주소서. 또 석제환인에게도 귀명(歸命)하오니, 원컨대 이 아이의 목숨을 구제하여 주소서. 또 범천왕(梵天王)께도 귀명하오니 부디 이 운명을 벗어나게 해주소서. 모든 귀신들과 세상을 보호하는 이들께도 귀명하오니, 이 액을 벗어나게 해주소서. 모든 여래의 제자로서 번뇌가 다 없어진 아라한(阿羅漢)들에게도 또한 귀명하오니, 이 아이로 하여금 이 액운을 벗어나게 해주소서. 모든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달은 벽지불(?支佛)께도 귀명하오니, 이 아이로 하여금 이 액에서 벗어나게 해주소서. 저 여래(如來)께 지금 또 귀의하나이다. 여래께서는 항복하지 않는 이를 항복 받으시고 건너지 못한 자를 건네주시며, 얻지 못한 이에게는 얻게 하시고 벗어나지 못한 자에게는 벗어나게 해주시며, 열반(涅槃)에 이르지 못한 이에게는 열반에 이르게 하시고 구호해주는 이가 없는 사람을 구호해주시며, 장님에게는 눈이 되어 주시고 병 든 자에게는 큰 의사가 되어주시나이다. 또 하늘·용·귀신과 일체 사람들·마(魔)·천마(天魔) 중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이시고 가장 으뜸가는 분이시라, 아무도 따를 이가 없사옵니다. 존경할 만하고 귀하게 여길 만한 분이시며, 사람을 위해 좋은 복 밭이 되오니 여래보다 더 나은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하오니 여래께서는 부디 밝게 살피소서. 원컨대 여래께서는 이 지극한 마음을 비춰보소서."

  

나우라의 부모는 곧 그 아이를 귀신에게 바치고 나서 그곳에서 떠나갔다. 그때 세존께서 청정(淸淨)한 천안(天眼)과 또 천이(天耳)로 그 일을 환히 보고 또 그 말을 다 들으셨다. 나우라의 부모는 한없이 울었다. 세존께서는 신통[神足]의 힘으로 악귀(惡鬼)가 사는 그 산으로 가셨다. 그 악귀들은 설산(雪山) 북쪽에 있는 악귀 귀신들의 소굴에 모여 있었다. 세존께서 그 악귀들이 있는 소굴에 들어가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가부좌하고 앉으셨다.

  

어린 나우라는 그 악귀의 소굴로 점점 다가갔다. 어린 나우라는 멀리서 악귀의 소굴에 머물러 계시는 여래(如來)를 보았다.

그 몸은 광명이 불꽃처럼 찬란하게 빛났는데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시고 생각을 매어 앞에 두시며, 얼굴이 단정(端正)하여 세상에서 가장 기이하신 모습이었다. 모든 감각기관[根]은 고요하고 온갖 공덕을 다 얻었으며, 모든 마(魔)를 모조리 항복 받았다. 이와 같은 온갖 덕(德)을 이루 다 헤아려 따질 수가 없었다. 게다가 32상과 80종호로 그 몸을 장엄(莊嚴)한 것은 마치 저 수미산(須彌山)이 여러 산들 중에 가장 우뚝한 것과 같았으며, 얼굴은 해와 달과 같았고 또한 금산(金山)과도 같아서 그 광명이 아주 멀리까지 비추었다. 그는 그러한 것을 보고 나서 곧 기쁜 마음이 생겨 여래에게로 향해가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분은 틀림없이 악귀(惡鬼) 비사가 아니다. 왜냐 하면 내가 지금 저 분을 보자마자 기쁜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설사 저 분이 악귀라 하더라도 나를 마음대로 먹으라고 하리라.'

  

세존께서 나우라에게 말씀하셨다.

"나우라야, 네 생각과 같다. 나는 여래·지진(至眞)·등정각으로서 너를 구원하고 저 악귀를 항복 받기 위하여 일부러 여기에 왔다."

나우라는 이 말을 듣고는 기뻐 뛰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곧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세존의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그에게 미묘한 법을 설명해 주셨다. 설하신 논(論)은 보시론[施論]·계율론[戒論]·천상에 나는 데 대한 논[生天論]이었으며, 탐욕은 더럽고 악하며 번뇌[漏]는 깨끗하지 못한 행(行)이므로 출가하여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세존께서는 어린 아이 나우라가 마음으로 환희(歡喜)하고 뜻이 부드러워진 것을 보시고 모든 부처님들께서 항상 말씀하셨던 법인, 괴로움[苦]·괴로움의 발생[集]·괴로움의 소멸[盡]·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해주셨다. 그러자 그 어린 아이는 그 자리에서 모든 번뇌[塵垢]가 다 없어지고 법안(法眼)이 청정하게 되어, 그는 법을 봄으로써 법을 얻고 온갖 법을 다 성취하였으며, 온갖 법을 다 받들어 받았다. 그리하여 아무 의심이 없이 여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부처님과 법과 성중(聖衆)에 귀의하여 5계(戒)를 받았다.

  

악귀 비사는 제가 본래 살고 있던 굴로 돌아왔는데, 그 악귀는 세존께서 단정히 앉아 사유하면서 꼼짝도 하지 않으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는 곧 성을 벌컥 내면서, 여래를 향해 우레를 울리고 벼락을 치며, 혹은 칼을 비처럼 쏟아 붓기도 했다. 그러나 그 칼은 미처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모두 우발연화(優鉢蓮華)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 귀신은 더욱 성을 내어 모든 산과 강과 석벽(石壁)을 비처럼 쏟아 부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미처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갖가지 음식으로 변화하였다.

  

그 악귀는 큰 코끼리로 변화하여 여래를 향해 외쳤다. 그 때 세존께서는 다시 큰 사자왕(獅子王)으로 변화하셨다. 그러자 귀신은 갑절이나 더 큰 사자의 몸으로 변신하여 여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세존은 큰 불 더미[火聚]로 변화했다. 그 때 귀신은 더욱 더 성을 내어 머리 일곱 개가 달린 큰 용(龍)으로 변화했다. 그러자 세존께서 곧 커다란 금시조(金翅鳥)로 변화하셨다.


그 귀신은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통력은 이제 다 나타내었다. 그러나 저 사문은 털끝도 까딱하지 않는다. 내 이제 저에게 가서 깊은 이치를 물어보리라.'

그 귀신이 세존께 물었다.

"나 비사는 지금 깊은 이치를 물으려고 합니다. 만일 나에게 대답해주지 못하면 나는 네 두 다리를 잡아 저 바다 남쪽에 던져버리리라."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악귀야, 반드시 알아야 한다. 내가 스스로 관찰해보건대 하늘·사람·사문·바라문·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것들 중에 능히 내 두 다리를 잡아 바다 남쪽으로 던질 만한 자는 아무도 없다. 묻고 싶은 일이 있으면 곧 물어 보거라."

  

악귀가 물었다.

"사문이여, 어떤 것이 과거(過去)의 행(行)이고, 어떤 것이 현재(現在)의 행이며, 어떤 것이 그 행이 사라지는 것인가?"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악귀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눈은 과거의 행이다. 과거에 지은 인연의 느낌으로 그 행이 이루어진 것이다. 귀·코·혀·몸·뜻도 과거의 행이다. 과거에 지은 인연의 느낌으로 그 행이 이루어진 것이다. 악귀야, 이것이 바로 과거의 행이니라."

  

비사 귀신이 물었다.

"어떤 것이 현재의 행인가?"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입으로 짓는 네 가지, 뜻으로 짓는 세 가지가 그것이다. 악귀야, 이것을 일러 현재의 행이라고 한다."

  

그러자 악귀가 물었다.

"어떤 것이 행(行)의 사라짐인가?"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악귀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과거의 행이 모두 사라져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또한 새로 짓지도 않아서 그 행이 영원히 생기지 않고 아주 사라져 남음이 없으면, 그것을 일러 행의 사라짐이라고 한다."


그 악귀가 세존께 아뢰었다.

"나는 지금 매우 배가 고픕니다. 무슨 까닭에 내 밥을 빼앗습니까? 이 아이는 내가 먹을 음식입니다. 사문이여, 그 아이를 내게 돌려주십시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내가 도(道)를 이루기 전 보살로 있었던 때에 어떤 비둘기 한 마리가 내게 몸을 던지며 구원해 달라고 간청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때에도 오히려 목숨을 아끼지 않고 그 비둘기를 죽음에서 구해주었거늘, 하물며 여래가 된 오늘에 어찌 이 아이를 너에게 주어 네 밥이 되게 하겠느냐? 너는 지금 악귀로서 네가 가지고 있는 신력(神力)을 다 부리더라도 나는 결코 이 아이를 너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어떠냐? 너는 일찍이 가섭(迦葉) 부처님 때에 사문이 되어 범행(梵行)을 닦아 가졌었는데, 나중에 계(戒)를 범하는 바람에 지금 그 악귀의 몸으로 태어났느니라."

  

악귀는 부처님의 위엄한 신력을 받들어 과거에 지은 온갖 악행(惡行)을 되살려 기억하게 되었다. 악귀는 부처님의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예를 올리고 말하였다.

"저는 지금 미련하기 그지없어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고, 곧 여래에 대하여 그런 마음을 내었습니다. 바라건대 세존께서는 저의 참회(懺悔)를 받아주소서."

이와 같이 세 번 네 번 되풀이하였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허물을 용서하노라. 다시는 범하지 말라."

  

세존께서 비사 귀신을 위해 미묘한 법을 설명하시어 기뻐하게 해주셨다. 그 악귀는 수천 냥 금(金)을 손에 받들고 세존께 드리면서 말하였다.

"저는 지금 이 산골짜기를 초제승(招提僧)1)들에게 보시하나이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저의 이 수천 냥 금을 받아 주소서."

이와 같이 두 번 세 번 되풀이하였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산골짜기만 받으시고 곧 다음 게송을 말씀하셨다.


  동산을 주어 시원함을 보시하고

  큰 강물에는 다리를 놓아주며

  커다란 배를 만들어 시설(施設)해주고

  온갖 양생(養生)의 도구를 베풀어주는 등


  밤이나 낮이나 게을리 하지 않으면

  그가 얻는 복 헤아릴 수 없이 많으리니

  법의 이치와 계율을 성취하여

  마침내 후생에는 천상(天上)에 태어나리라.


그 귀신이 세존께 아뢰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혹 무슨 분부하실 일이 없으십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네 본래의 형상을 버린 뒤에, 세 가지 법의(法衣)2)를 입고 사문(沙門)이 되어, 발기성(拔祇城)에 들어가서 가는 곳마다 또는 네가 있는 곳마다 이렇게 외쳐라.

'여러분은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여래께서 이 세상에 출현(出現)하시어 항복하지 않는 이를 항복 받으시고, 건너지 못한 이를 건네주시며, 해탈하지 못한 이는 해탈하는 방법을 알게 해주시고, 구호(救護)해줄 이가 없는 이를 구호해주시며, 장님에게는 눈이 되어 주십니다. 그리하여 모든 하늘·세상 사람·용·귀신·마·천마·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것들 중에서 가장 존귀하시고 최상(最上)이신 분이라서 그 분과 동등할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공경할 만하고 귀하게 여길 만하여 사람들의 좋은 복 밭이 되고 있다. 그는 오늘 어린 나우라를 구원하고 아울러 비사 악귀를 항복 받으셨다. 너희들은 거기 가서 그 분의 교화(敎化)를 받아야 한다.'

이렇게 소리쳐 말하라."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새존이시여."

  

비사 귀신은 사문으로 변화하여 세 가지 법의를 입고 마을로 들어가 이렇게 교화하며 외쳤다.

"오늘 세존께서는 어린 나우라를 제도하시고 비사 악귀를 항복 받으셨다. 너희들은 가서 그 분의 가르침을 받아라."

  

그리고 나자 발기 국경 안에는 많은 백성들이 불꽃처럼 치성하게 많았다. 그때 장자(長者) 선각(善覺)은 이 말을 듣고 나서 기뻐 뛰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는 8만 4천 사람을 거느리고 세존의 처소를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려 그의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발기국 백성들은 혹은 세존의 발에 예를 올리기도 하고, 혹은 손을 들고 있는 이도 있었다.

8만 4천 대중들이 이미 한 쪽에 앉았다.

  

그러자 세존께서 그들을 위해 점차적으로 미묘(微妙)한 법을 설명하셨다. 여기에서 설하신 논(論)은 보시론·계율론· 천상에 태어나는 데 대한 논이었으며, 탐욕은 깨끗하지 못한 생각이요, 번뇌[漏]는 큰 걱정거리라고 말씀하셨다. 세존께서 저 8만 4천 대중들이 마음으로 기뻐하고 있는 줄을 아시고 그들을 위하여 모든 부처님들께서 항상 말씀하셨던 괴로움·괴로움의 발생·괴로움의 소멸·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그 자리에 있던 저 8만 4천 대중들에게 이 법을 설하시자, 그들은 모두 저마다 그 자리에서 온갖 번뇌[塵垢]가 다 없어지고 법안(法眼)이 청정하게 되었다.

  

비유하면 마치 희고 깨끗한 옷이 쉽게 빛깔에 물들여지는 것처럼, 이 8만 4천 대중들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든 번뇌가 다 없어졌고 법안이 청정하게 되어, 법을 얻고 법을 보며, 온갖 법을 분별(分別)하되 조금도 의심이 없고, 두려움이 없는 경지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부처님과 법과 성중(聖衆)에게 귀의하여 5계(戒)를 받았다.

  

나우라의 아버지인 장자가 세존께 아뢰었다.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저의 청(請)을 받아주소서."

세존께서는 잠자코 그 청을 받아들이셨다. 그 장자는 세존께서 잠자코 청을 받아들이신 것을 알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리고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는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놓고 이른 아침에 사람을 보내 아뢰었다.

"때가 되었나이다."

세존께서는 때가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발기성으로 들어가 장자의 집으로 가셔서 자리에 앉으셨다. 이 때 장자는 세존께서 자리에 앉으신 것을 보고 손수 짐작(斟酌)하여 갖가지 음식을 골고루 돌렸다.


세존께서 공양을 다 마치신 것을 보고 그는 깨끗한 물을 돌리고는 곧 자리를 가져다가 세존의 앞에 앉아서 세존께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사부대중들이 필요로 하는 의복·음식·평상·침구·의약 등을 모두 저의 집에서 가져다 쓰십시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장자야, 네가 말한 대로 그렇게 하리라."

 

세존께서 곧 장자를 위해 미묘한 법을 말씀해 주시고, 설법을 마치신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가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팔을 굽혔다 펴는 동안만큼의 아주 짧은 시간에 발기국에서 사라져 사위국 기원정사(祇園精舍)로 돌아오셨다.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사부대중들 중에 그 누구든지 의복·음식·평상·침구·의약 등이 필요하거든 마땅히 저 나우라 아버지인 장자의 집에서 가져다 쓰도록 하라."


세존께서 다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우리 우바새(優婆塞)들 중에서 물건을 아까워하지 않고 보시하기로 제일 가는 제자는 바로 나우라의 아버지이니라."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1) 팔리어로는 catuddisasa gha라고 한다. 번역하여 사방승(四方僧)이라고 하는데, 즉 객승(客僧)을 이르는 말이다.

2) 출가 수행하는 비구가 입는 세 가지 의복(衣服). 첫째, 승가리(僧伽梨)이니, 이는 중의(重衣)·대의(大衣)·잡쇄의(雜碎衣)라고 번역한다. 9조(條)로부터 25조까지 있으며, 마을이나 궁중에 들어갈 때 입는 옷이다. 둘째, 울다라승(鬱多羅僧)이니, 이는 상의(上衣)·중가의(中價衣)·입중의(入衆衣)라고 번역한다. 7조 가사를 말하며, 예불(禮佛)·독경(讀經)·청강(聽講)·포살(布薩) 등을 할 때 입는 옷이다. 셋째, 안타회(安陀會)이니, 이는 5조 가사를 이르는 말이며, 내의(內衣)·중숙의(中宿衣)라고 번역한다. 절 안에서 작업을 하거나 잠을 잘 때 입는 옷이다.


[ 3 ]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석시(釋翅) 니구류(尼拘留) 동산에서 대비구(大比丘)들 5백 명과 함께 계셨다.

그때 석씨의 호성(豪姓) 수천 사람들은 세존의 처소를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려 그의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모든 석씨들이 세존께 아뢰었다.

"오늘 당장 왕이 되어 이 나라를 다스리면 우리들의 종성(種姓)은 곧 썩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자리[位]가 당신에게서 끊어지 않게 하소서. 만일 세존께서 출가(出家)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이 천하에 전륜성왕이 되어 사방 천하를 다스리고 1천 아들을 둘 것이요, 또한 우리들 종성의 이름이 멀리 퍼져서 '전륜성왕이 석씨 종족에서 나왔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마땅히 왕이 되어 천하를 다스림으로써 왕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게 하소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왕의 몸이니 그 이름을 법왕(法王)이라고 한다. 왜냐 하면 나는 지금 그대들에게 물으리라. 어떤가? 모든 석씨들아, 전륜성왕은 7보를 두루 갖추고 용맹스런 1천 아들을 둔다고 말했는가? 나는 지금 삼천대천찰토(三千大天刹土) 중에서 가장 높고 최상이어서 아무도 나를 따를 이가 없으며, 7각의(覺意)의 보배를 성취하였고 무수(無數) 천(千) 성문(聲聞)의 아들들이 따르고 있다."

  

세존께서 곧 이 게송을 말씀하셨다.


  이제 만일 왕의 자리 가지면

  얻은 뒤에는 다시 잃게 되지만

  이 법왕의 자리는 가장 훌륭하여

  끝도 없고 또한 시작도 없다.


  훌륭하기에 빼앗을 수 없으니

  이 훌륭함이야말로 가장 뛰어나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한량없는 행(行)은

  자취도 없거니 누가 그 자취를 따르랴.


"그러므로 모든 구담(瞿曇)들아, 마땅히 방편을 구해 바른 법의 왕이 되어 다스려야 하느니라. 모든 석씨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모든 석씨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4 ]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어떤 비구가 세존의 처소를 찾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그 비구가 세존께 아뢰었다.

"혹시라도 이 색(色)은 영원히 존재하고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 것입니까? 오랫동안 세상에 존재하여 이동(移動)하지 않기도 합니까? 혹 통(痛 : 受)·상(想)·행(行)·식(識)도 영원히 존재하고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 것입니까? 오랫동안 세상에 존재하여 이동하지 않기도 합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비구들아, 어떤 색도 영원히 존재하고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 것은 없고, 오랫동안 세상에 존재하는 것도 없다. 또한 어떤 통·상·행·식도 영원히 존재하여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 것은 없고 오랫동안 세상에 존재하는 것도 없다.


또 비구들아, 만일 어떤 색이 영원히 존재하고 변하거나 바뀌지 않거나 오랫동안 세상에 존재한다면, 범행(梵行)을 닦는 사람이 분별할 수 없을 것이요, 통·상·행·식이 오랫동안 세상에 존재하고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다면, 범행을 닦는 사람이 분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색으로써 분별하지 않고 세상에 오래도록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범행을 닦는 사람은 곧 그것을 분별하여 괴로움의 근본[苦本]을 다 없앤다. 또한 통·상·행·식은 오랫동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범행을 닦는 사람은 그것을 분별하여 괴로움의 근본을 다 없애는 것이다."

 

세존께서 흙을 조금 집어 손톱 위에 얹어놓고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어떤가? 비구야, 이 손톱 위의 흙이 보이는가?"

비구가 대답하였다.

"예, 보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마땅히 요만큼이라도 색이 이 세상에 항상 존재한다면, 범행을 닦는 사람은 그것을 분별하여 괴로움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그만큼이라도 색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곧 범행을 닦아 괴로움의 근본을 없애는 것이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비구들아, 나는 옛날에 대왕이 되어 사방 천하를 다스릴 때에 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렸고 7보인, 윤보(輪寶)·상보(象寶)·마보(馬寶)·주보(珠寶)·옥녀보(玉女寶)·거사보(居士寶)·전병보(典兵寶)를 완전하게 갖추었었다.

  

비구들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나는 전륜성왕이 되어 온 천하를 다스릴 때에 8만 4천 마리의 신령한 코끼리가 있었는데, 그 코끼리의 이름은 보호(菩呼)라고 하였었다. 다시 8만 4천 대의 우보(羽寶)로 꾸민 수레가 있었는데, 혹은 사자 가죽으로 뚜껑을 덮기도 했고, 혹은 이리나 개가죽으로 뚜껑을 덮기도 하였으며, 모두 당기를 달고 높은 일산을 씌웠었다. 다시 8만 4천 개의 높고 넓은 누각이 있었는데, 마치 천제(天帝)가 살고 있는 궁전 같았고, 또 8만 4천 개의 강당(講堂)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법강당(法講堂)과 비슷했다.


또 8만 4천 명의 미녀(美女)가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은 천녀(天女)와 같았고, 다시 8만 4천 개의 높고 넓은 자리가 있었는데, 모두 금(金)과 은(銀) 등 7보를 가지고 사이사이를 꾸몄으며, 또 8만 4천 벌의 의복(衣服)이 있었는데, 모두 화려한 문채(文彩)로 수를 놓았고 매우 부드러웠으며, 또 8만 4천 가지 음식이 있었는데 여러 가지 맛을 골고루 갖추었었다.

 

비구들아,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나는 큰 코끼리를 타고 다녔는데, 빛깔이 매우 희고 좋았다. 입에는 여섯 개의 어금니가 있었으며, 금과 은으로 장식하였고 몸은 능히 날아다녔으며, 또한 몸을 숨기기도 하였고, 혹은 크게도 했다가 혹은 작게도 하곤 하였었다. 그 코끼리의 이름은 보호라고 하였다.

  

또 나는 신령스런 말을 타고 다녔는데, 그 말의 꼬리털은 붉은 색이고 걸을 때에도 몸을 흔들지 않았으며, 금과 은으로 장식하였고 몸은 능히 날아다녔으며, 또한 몸을 숨기기도 하였고, 혹은 크게도 했다가 혹은 작게도 하곤 하였었다. 그 말의 이름은 모왕(毛王)이라고 하였다.

  

또 나는 그 때 8만 4천 개의 높고 넓은 누각이 있었다. 그 중 한 누각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누각의 이름은 수니마(須尼摩)라고 하였으며 순금(純金)으로 지었었다. 또 나는 그 때 한 강당 안에서 살았는데 그 강당의 이름은 법설(法說)이라고 하였으며, 순금으로 지어진 것이었다. 


또 나는 우보로 만든 수레를 타고 다녔었는데, 그 수레의 이름은 최승(最勝)이라고 하였고 순금으로 만든 것이었다.

  

또 나는 그 때 한 옥녀(玉女)를 거느렸는데 그들은 좌우에서 모시기를 자매처럼 하였었다. 


또 나에게는 8만 4천 개의 높고 넓은 자리가 있었다. 나는 그 중의 한 자리를 썼는데 금·은·영락(瓔珞)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배로 장식하였었다.


또 나는 미묘한 옷을 입었었는데 마치 하늘 옷[天衣]과 같았으며, 먹는 음식의 맛은 마치 감로(甘露)와 같았었다.

  

내가 전륜성왕이었던 그때 8만 4천 마리의 신령한 코끼리들이 아침마다 올 때에는 문 밖에서 상해(傷害)를 당하는 사람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었다. 그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8만 4천 마리의 신령스런 코끼리가 아침마다 올 때에 문 밖에서 상해를 당하는 사람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는 지금 마음 속으로 그것을 둘로 나누어, 4만 2천 마리가 아침마다 와서 축하하게 하고 싶다.'

  

비구들아,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과거에 어떤 복을 지었고, 또 어떤 덕을 쌓았기에 지금 이런 위력(威力)을 얻어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다시 생각하였다.

'세 가지 일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나는 이런 복을 얻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은혜로 베푸는 것, 자애롭고 어진 것, 자기를 잘 지키는 것을 말한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관찰해야 할 것이다. 나는 모든 행(行)이 아주 사라져 남음이 없었고, 마음대로 노닐면서도 만족할 줄을 몰랐다. 이른바 만족이란 성현(聖賢)의 계율(戒律)에 대한 만족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가? 비구들아, 이 몸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인가,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도 너는 과연 '이것은 곧 나요, 나는 곧 저의 것이다'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느냐?"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통(痛 : 受)·상(想)·행(行)·식(識)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비구가 대답하였다.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가령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과연 '이것은 내 것이요. 나는 저의 것이다'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느냐?"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까닭에 비구들아, 모든 존재하는 색(色)이 과거·미래·현재의 것이거나, 또는 크거나 작거나 좋거나 추하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그것은 다 내 것이 아니고, 나도 또한 저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지혜로운 이께서 깨달으신 것이다. 또 모든 느낌[痛]이 과거·미래·현재의 것이거나 또는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그것은 내 것이 아니고, 나는 저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지혜로운 이가 배우신 것이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하느니라.

  

만일 성문(聲聞)인 사람이 눈에 대해 싫어하고 걱정하며, 빛깔에 대해 싫어하고 걱정하며, 안식(眼識)에 대해 싫어하고 걱정하며, 눈을 연(緣)하여 생기는 괴로움과 즐거움도 또한 싫어하고 걱정하며, 또는 귀에 대해 싫어하고 걱정하며, 소리에 대해 싫어하고 걱정하며, 이식(耳識)에 대해 싫어하고 걱정하며, 이식을 의지하여 생기는 괴로움과 즐거움도 역시 싫어하고 걱정하거나, 코·혀·몸도 그렇게 하고, 뜻에 대해 싫어하고 걱정하며, 법도 또한 싫어하고 걱정하며, 또는 뜻을 의지하여 생기는 괴로움과 즐거움도 싫어하고 걱정해야 한다.

  

이미 이런 것들을 싫어하고 걱정하면 그는 곧 해탈 할 것이요, 이미 해탈하고 나면 곧 해탈지혜(解脫知慧)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나고 죽음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쳤으므로, 다시는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될 것이다."

  

비구들은 세존의 이와 같은 가르침을 듣고는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서 조용히 사유하면서 스스로 수행하였다. 좋은 집안의 자제로써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法衣)를 입고 출가하여 도(道)를 배우는 이유는, 곧 나고 죽음이 이미 다하였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쳤으므로 다시는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구들은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5 ] ①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마갈국(摩竭國)의 도량수(道場樹) 밑에서 처음으로 부처가 되었다. 


세존께서 문득 이렇게 생각하셨다.

'나는 지금 이 매우 심오(深奧)한 법을 얻었다. 이 법은 이해하기 어렵고 깨닫기 어려우며, 밝히기 어렵고 알기 어려우며, 지극히 미묘(微妙)하여 지혜로운 사람만이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우선 누구를 위해 이 법을 설명해야 할까? 내 법을 알아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세존께서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셨다.

'라륵가람(羅勒迦藍 : 阿羅邏迦羅摩)은 모든 감각기관[根]이 이미 익숙해졌으니 마땅히 먼저 제도해야 할 만한 사람이다. 또 그는 나에게 법이 있는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였을 때에 어떤 하늘이 허공에서 세존께 아뢰었다.

"라륵가람은 죽은 지 이미 이레나 지났습니다."

세존께서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내 법을 듣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말았구나. 만일 내 법을 들었다면 그는 곧 해탈하였을 것이다.'


세존께서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셨다.

'그러면 나는 지금 제일 먼저 누구에게 설법해주어서 해탈을 얻게 해야 하나? 울두람불(鬱頭藍弗)을 우선 제도해야겠다. 지금 그에게 설법을 해주자. 그가 내 법을 듣고 나면 아마도 제일 먼저 해탈하게 될 것이다.'

세존께서 이렇게 생각하실 때에 다시 어떤 하늘이 허공에서 말하였다.

"그는 어제 밤중에 죽었습니다."

세존께서 곧 이렇게 생각하셨다.

'울두람불이 죽다니, 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내 법을 듣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말았구나. 만일 내 법을 들었다면 그는 곧 해탈하였을 것이다.

  

세존께서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셨다.

'그렇다면 누가 먼저 이 법을 듣고 해탈할 수 있을 것인가?'

세존께서는 다시 곰곰이 생각하셨다.

'나는 저 다섯 비구의 힘을 많이 입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그들은 내 뒤를 늘 따랐었다.'

세존께서 다시 이렇게 생각하셨다.

'지금 저 다섯 비구들이 살아 있을까?'


세존께서는 곧 천안(天眼)으로 그 다섯 비구가 있는 곳을 관찰해 보셨다. 그들은 바라내(波羅▩) 시에 있는 선인(仙人)이 살았던 녹원(鹿苑)에 머물고 있었다.

'나는 이제 저곳으로 가서 저 다섯 비구들에게 제일 먼저 설법해주어야겠다. 저들이 내 법을 듣고 나면 틀림없이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

  

세존께서는 이레 동안 도수(道樹 : 菩提樹)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으셨다.

세존께서 곧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나는 지금까지 이 자리에 앉아

  나고 죽음의 괴로움을 겪다가

  기어이 지혜(智慧)의 도끼를 잡아

  나고 죽는 뿌리를 아주 잘랐다.


  하늘의 왕은 여기에 이르러

  모든 마(魔)와 원수의 권속들을

  다시 방편으로써 항복 받고는

  해탈의 갓을 쓰게 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이 나무 밑에서

  금강(金剛) 평상에 앉아

  일체를 아는 지혜를 얻었고

  마침내 걸림 없는 지혜에 이르렀다.


  나는 지금까지 이 나무 밑에 앉아서

  나고 죽음의 괴로움을 보고는

  이미 죽음의 근본을 끊었으며

  늙음과 병도 영원히 남지 않았네.


세존께서 이 게송 읊기를 마치시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바라내국을 향해 떠나시려고 하셨다.


이때 우비가(優毗伽)라는 범지(梵志)가 멀리서 세존의 광명(光明)이 빛나 해와 달의 광명을 가리는 것을 보고는 세존께 아뢰었다.

"구담(瞿曇) 스승이시여, 지금까지 살아 계셨습니까? 누구를 의지하여 출가하여 도를 배우셨습니까? 항상 어떤 법을 연설하시어 가르치시기를 좋아하십니까? 또 어디에서 오셨다가 어디로 가시려고 하십니까?"


세존께서 저 범지(梵志)들에게 다음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아라한(阿羅漢)이 되어

  세간(世間)에서 뛰어나 견줄 이 없다.

  천상(天上)과 또 이 인간(人間) 세상에서

  나는 가장 높은 이가 되었노라.


  또 내게는 스승도 없고

  나와 더불어 동등한 이도 없노라.

  홀로 높아서 견줄 이 없고

  싸늘해져서 따뜻한 기운이 없다.


  나는 지금 법륜(法輪)을 굴리기 위해

  저 가시나(加尸那)로 가려 하나니

  거기에서 이제 이 감로(甘露)약으로써

  눈멀고 어두운 이 깨우치련다.


  저 바라내국은

  가시(加尸) 국왕이 다스리는 나라이다.

  그곳에 다섯 비구가 살고 있으니

  그곳에서 미묘(微妙)한 법을 말하려 한다.


  그들로 하여금 도를 빨리 이루게 하고

  누진통(漏盡通)을 얻게 하여

  나쁜 법의 근원을 없애게 하려고 하노니

  그런 까닭에 나는 가장 훌륭하니라.


범지는 찬탄하면서 머리를 숙이고 합장하고는 손가락을 튀기며 빙그레 웃으면서 발길을 돌려 떠나갔다.

  

세존께서 바라내국으로 가셨다. 

다섯 비구들이 멀리서 세존이 오시는 것을 보고 서로 의논하였다.

"저 사문 구담이 멀리서 오고 있다. 생각[情性]이 어지럽고 마음은 순수하지 못하다. 우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또 일어나서 맞이하지도 말고 또 앉으라고 청하지도 말자."


다섯 비구들은 이런 게송 말하였다.


  저 사람은 존경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또 친근하게 대하지도 말자

  잘 왔다고 인사도 하지 말고

  자리에 앉기를 청하지도 말자.


다섯 비구들은 이 게송을 마치고 나서 모두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세존께서 다섯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점점 그들 가까이에 가셨다. 그 때 다섯 비구들은 저도 모르게 일어나 맞이하면서 혹은 자리를 펴기도 하고, 혹은 물을 가지고 오기도 하였다. 그러자 세존께서 곧 자리에 앉아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들은 끝내 제 본성[本限]을 온전히 가지지 못하는구나.'


 다섯 비구들은 세존을 '그대[卿]'라고 불렀다.


세존께서 다섯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무상지진(無上至眞)·등정각(等正覺)을 경(卿)이라고 부르지 말라. 왜냐 하면 나는 이미 무상지진·등정각이 되어 훌륭한 감로(甘露)를 얻었노라. 각자 스스로 생각을 오로지 하고 내 법을 들어라."

다섯 비구들이 세존께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그대는 본래 고행(苦行)할 때에도 오히려 상인(上人)의 법을 얻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지금 그 어지러운 마음으로 어떻게 도를 얻었다고 말하는가?"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다섯 사람들아, 너희들은 일찍이 내가 거짓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더냐?"

다섯 비구들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여래·등정각은 이미 감로(甘露)를 얻었다. 너희들은 다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내 설법을 들어라."

  

세존께서 곧 이렇게 생각하셨다.

'나는 지금 이 다섯 사람을 충분히 항복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는 세존께서 다섯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 가지 진리[四諦]가 있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괴로움에 대한 진리[苦諦]·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苦習諦]·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苦盡諦]·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진리[苦出要諦]가 그것이니라.

  

어떤 것을 괴로움에 대한 진리라고 하는가? 

이른바 태어나는 괴로움[生苦]·늙는 괴로움[老苦]·병드는 괴로움[病苦]·죽는 괴로움[死苦]과 근심·슬픔·번민의 괴로움[憂悲惱苦]·시름하고 근심하는 고통[愁憂苦痛]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원수나 미운 사람과 만나는 괴로움[怨憎會苦]·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괴로움[恩愛別苦]이며,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또한 괴로움이다. 긴요한 것만을 취하여 말하면 5성음고(盛陰苦)라고 한다. 이것을 일러 괴로움에 대한 진리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라고 하는가?

이른바 느끼고 애착하는 부분들을 모으고 쌓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자꾸 모으며 뜻으로 항상 탐하고 집착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라고 하는가? 

이른바 저 애욕을 남김없이 모두 없애 다시는 생겨나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진리라고 하는가? 

이른바 성현(聖賢)의 8성도(聖道)인, 바른 소견[等見]·바른 다스림[等治]·바른 말[等語]·바른 업[等業]·바른 생활[等命]·바른 방편[等方便]·바른 생각[等念]·바른 선정[等定]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네 가지 진리의 법이라고 하느니라.

  

그리고 또 다섯 비구들아, 이 네 가지 진리의 법에서 괴로움에 대한 진리라는 것은 거기에서 안목이 생기고 지식이 생기며, 밝음이 생기고 깨달음이 생기며, 광명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는 것이니라. 괴로움에 대한 진리라는 것은 진실하고 결정된 것이라서 허무한 것이 아니고 거짓이 아니며, 마침내 달라지지 않는 것으로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괴로움에 대한 진리라고 하느니라.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라는 것은 전에는 미처 듣지 못했던 법으로서, 거기에서 안목이 생기고 지식이 생기며, 밝음이 생기고 깨달음이 생기며, 광명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는 것이니라. 또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라는 것은 진실하고 결정된 것이라서 허무한 것이 아니고 거짓이 아니며, 마침내 달라지지 않는 것으로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라고 하느니라.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라는 것은 전에는 미처 듣지 못했던 법으로서, 거기에서 안목이 생기고 지식이 생기며, 밝음이 생기고 깨달음이 생기며, 광명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는 것이니라. 또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라는 것은 진실하고 결정된 것이라서 허무한 것이 아니고 거짓이 아니며, 마침내 달라지지 않는 것으로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라고 하느니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진리라는 것은 전에는 미처 듣지 못했던 법으로서, 거기에서 안목이 생기고 지식이 생기며, 밝음이 생기고 깨달음이 생기며, 광명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는 것이니라. 또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진리라는 것은 진실하고 결정된 것이라서 허무한 것이 아니고 거짓이 아니며, 마침내 달라지지 않는 것으로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진리라고 하느니라.

  

다섯 비구들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네 가지 진리가 3전(轉) 12행(行)1)이 되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면 위없는 무상정진(無上正眞)·등정각(等正覺)을 이룩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 네 가지 진리가 3전 12행이 되는 것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알았기 때문에 무상지진·등정각을 이룩하였느니라.

  이렇게 설법하실 때에 아야구린(阿若拘?)은 모든 번뇌[塵垢]가 다 없어지고 법안(法眼)이 깨끗하게 되었다.

 

존께서 구린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법을 체득하여 법을 얻었느니라."

구린(拘?)이 대답하였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법을 얻어 법에 이르렀습니다."


지신(地神)은 이 말을 듣고 이렇게 외쳤다.

지금 여래께서는 바라내국에 계시면서 법륜(法輪)을 굴리시고 있다. 온갖 하늘·세상 사람·마(魔)·천마(天魔)·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것들은 그 누구도 굴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여래께서는 이 법륜을 굴리시고, 아야구린도 이미 감로의 법을 얻었다."

  

사천왕(四天王)들은 그 지신들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다시 서로 전해 알렸다.

"아야구린은 이미 감로의 법을 얻었다."

  

삼십삼천(三十三天)도 사천왕에게서 그 말을 들었고, 염천(艶天)은 삼십삼천에게서 들었으며, 그렇게 자꾸 전해져서 마침내는 저 도술천(兜術天)과 범천(梵天)까지도 다음과 같은 소리를 전해 들었다.

'여래께서는 바라내국에 계시면서 법륜을 굴리시고 있다. 온갖 하늘·세상 사람·마(魔)·천마(天魔)·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것들은 그 누구도 굴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여래께서는 이 법륜을 굴리시고 있다.'

  

그리하여 그를 곧 아야구린(阿若拘? : 처음으로 잘 알았다는 뜻)이라고 이름하게 된 것이다.

  

세존께서 다섯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중 두 사람이 여기에 머물러 가르침을 받을 때에는 세 사람은 나가서 걸식(乞食)을 해 가지고 와서 그 세 사람이 얻은 음식을 여섯 사람이 나누어 먹도록 하라. 또 세 사람이 여기에 머물러 가르침을 받을 때에는 두 사람이 나가서 걸식을 해 가지고 와서 그 두 사람이 얻은 밥을 여섯 사람이 나누어 먹도록 하라."

  

세존께서 이렇게 가르치시자 다섯 비구들은 생(生)함이 없는 열반법(涅槃法)을 얻었고, 또한 남이 없고·늙음이 없으며·병듦이 없고·죽음이 없음을 이루어 모두 아라한(阿羅漢)이 되었다. 그 때 이 삼천대천찰토(三千大天刹土)에는 다섯 아라한이 있게 되었고 부처님까지 모두 여섯이 되었다.

  

세존께서 다섯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누구든지 세상에 나가 걸식할 때에는 부디 혼자 다니지 말라. 그리고 또 중생들 중에는 근기가 순수하고 익숙하여 제도를 받을 만한 사람도 있다. 나는 지금 우류비(優留毗)라는 마을로 가서 그곳에 머물면서 설법을 할 것이다."

  

세존께서 곧 우루비라는 마을로 가셨다. 그당시 니련(尼連)이라고 하는 강 가에는 가섭(迦葉)2)이라는 수행인(修行人)이 살고 있었다. 그는 천문(天文)과 지리(地理)를 모두 해박하게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고 저 나뭇잎까지도 계산하여 모두 분명하게 알았으므로, 그는 그 때 5백 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날마다 그들을 교화(敎化)하고 있었다. 가섭이 있는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돌집[石室]이 있었고 그 돌집 속에는 독룡(毒龍)이 살고 있었다.

  

세존께서 가섭의 처소에 이르러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밤에 저 돌집에서 하룻저녁 묵으려고 하는데 허락해주겠는가?"

가섭이 대답하였다.

"내가 저 돌집을 아까워해서 그러는 게 아니오. 다만 거기에는 독룡이 있는데, 그 독룡이 혹 당신을 해칠까 걱정될 뿐이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이여, 괴로워 할 것 없다. 용은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그저 하룻밤 묵는 것을 허락해주면 되오."

가섭이 대답하였다.

"꼭 묵고 싶으면 묵으시오."

  

세존께서 곧 돌집으로 들어가셔서 자리를 펴고 주무시다가 다시 가부좌하고 앉아,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생각을 매어 앞에 두고 계셨다. 이 때 독룡이 세존께서 앉아 계시는 것을 보고 곧 불[火毒]을 토하였다. 그러자 세존께서 자삼매(慈三昧)에 들어가셨다가 다시 자삼매에서 깨어나셨고, 또 화염광삼매(火焰光三昧)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용(龍)이 토해내는 모든 불과 부처님의 광명이 한데 어우러졌다.

  

 가섭이 밤에 일어나서 별자리를 살펴보다가 돌집 안에서 일어나는 큰 불빛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나서 그는 곧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이 구담 사문은 얼굴이 매우 단정하였는데, 이제 용에게 해를 입어 죽는 모양이구나. 참으로 가엾은 일이다. 내가 아까 그에게 거기에는 독룡이 살고 있어 머무를 수 없다고 말하였다."


가섭이 다시 5백 제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물병과 높은 사다리를 가지고 가서 저 불을 끄고, 그 사문을 저러한 어려움에서 구해 내도록 하라."


가섭은 5백 제자를 데리고 돌집으로 달려가 불을 끄기 시작하였다. 혹은 물을 뿌리기도 하고, 혹은 사다리를 놓기도 했지만, 그 불길은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다 여래(如來)의 위신력(威神力) 때문이었다.

  

세존께서는 자삼매에 들어가 점차 저 용으로 하여금 다시는 성을 내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자 그 사나운 용은 두려운 마음이 생겨 동쪽 서쪽으로 마구 치달리면서 돌집을 빠져나가려고 애를 썼으나 도저히 그 돌집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사나운 용은 여래를 향해 가더니 그만 발우 속으로 들어가 머물고 있었다.


세존께서 오른 손으로 독룡의 몸을 어루만지시면서 게송을 말씀하셨다.


  용의 몸을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다.

  용과 용이 한곳에 모였으니

  용이여, 해칠 마음 일으키지 말라.

  용의 몸을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다.


  항하강 모래 알 같이 많은 과거에도

  모든 부처님들께서 반열반(般涅槃)하셨건만

  너는 마침내 한 번도 만나지 못했으니

  그것은 분노의 불 때문이니라.


  여래에 대해 착한 마음 가지고

  그 성내는 독을 빨리 버려라.

  성내는 그 독을 버리고 나면

  곧 천상(天上)에 태어나게 되리라.


주) 

1) 여기에서 3전이라는 것은 시상전(示相轉)·권상전(勸相轉)·증상전(證相轉)을 말하는 것이며, 12행이라는 것은 이 3전이 각각 안(眼)·지(智)·명(明)·각(覺)의 네 가지 행상(行相)을 갖춤으로써 모두 합하여 12행상이 되는 것이다. 매 하나의 진리마다 각각 3전 12행상이 있기 때문에 4제에 모두 12전 48행상이 갖추어지는 것이다.

2) 3가섭 형제 중 우류비가섭(優留毗迦葉, Uruvela-kassapa)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는 우루빈나가섭(優樓頻那迦葉)이라고 쓰기도 한다.



24. 고당품 ②


[ 5 ]② 

사납기 그지없던 용은 혀를 내어 여래의 손을 핥으면서 여래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튿날 아침에 세존께서는 그 사나운 용을 손에 받쳐들고 가섭(迦葉)에게로 가서 말씀하셨다.

"이 사나운 용은 매우 흉악하고 포학했었으나, 이제는 이미 항복을 받았노라."


가섭은 그 사나운 용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세존께 아뢰었다.

"중지하시오, 그만 중지하시오. 사문이여, 앞으로 다가오지 마시오. 용은 우리를 모두 해칠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이제 이미 이 용을 항복 받았다. 결코 아무도 해치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이 용은 이미 교화(敎化)를 받았기 때문이다."

  

가섭과 그의 5백 제자들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고 찬탄하였다.

"매우 기이한 일이로다. 이 구담(瞿曇) 사문은 매우 큰 위신력(威神力)을 가지고 있어서 이 사나운 용을 항복 받아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하셨다. 비록 그렇지만 아직 우리들이 얻은 참다운 도[眞道]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가섭이 세존께 아뢰었다.

"큰 사문(沙門)이시여, 이제 90일 동안 제 청(請)을 받아주소서. 필요한 의복·음식·평상·침구와 병들고 수척한 사람을 위해 의약을 모두 공급하여 드리겠습니다."

  

세존께서는 잠자코 가섭의 청을 받아주셨다. 그리고 세존께서 이 신룡(神龍)을 큰 바다에 놓아주셨다. 그러자 저 사나운 용은 그 바다에서 수명대로 살다가 목숨을 마친 뒤에는 사천왕(四天王)의 하늘에 태어났다. 이때 여래께서 다시 돌집으로 돌아와 계셨다. 


가섭은 갖가지 음식을 준비한 다음에 세존께 나아가 아뢰었다.

"음식이 이미 준비되었습니다, 어서 가셔서 공양하시기 바랍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아, 먼저 가거라. 내가 뒤따라가리라."


가섭이 떠나간 뒤에 세존께서는 곧 염부제(閻浮提) 경계에 가셔서 염부수(閻浮樹) 밑에서 염부(閻浮) 열매를 따 가지고 가섭의 돌집에 먼저 돌아와 앉아 계셨다. 


가섭은 세존께서 돌집 안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고 아뢰었다.

"사문이시여, 어느 길을 거쳐서 이 돌집에 오셨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떠난 뒤에 나는 염부제 경계에 가서 염부 열매를 따 가지고 여기에 돌아와서 앉아 있는 중이다. 가섭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과일은 매우 향기롭고 맛이 있어 먹을 만하다."

가섭이 대답하였다.

"저는 그 과일이 필요 없습니다. 사문께서나 드십시오."


가섭은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사문은 대단한 신통(神通)과 위력(威力)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능히 염부의 경계에 가서 이런 맛있는 과일을 따 가지고 오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얻은 참다운 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세존께서는 그것을 드시고 나서 돌아와 쉬셨다.


이른 아침에 가섭이 세존께서 머물고 계시는 곳으로 가서 아뢰었다.

"공양 때가 되었습니다, 어서 가셔서 공양하소서."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먼저 가거라, 내가 뒤따라가리라."

 

가섭이 떠난 뒤에 세존께서는 곧 염부제로 가셔서 아마륵(阿摩勒) 열매를 따 가지고 가섭의 돌집으로 가섭보다 먼저 돌아와 앉아 계셨다.

가섭이 세존께 아뢰었다.

"사문이시여, 어느 길을 거쳐서 이 돌집에 오셨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떠난 뒤에 나는 염부제 경계에 가서 이 열매를 따 가지고 왔다. 이 과일은 매우 향기롭고 맛이 있다. 하나 집어서 맛을 보아라."

가섭이 대답하였다.

"저는 그 과일이 필요 없습니다. 사문께서나 많이 드십시오."

  

가섭은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사문은 대단한 신통(神通)과 큰 위력(威力)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내가 떠난 뒤에 이 과일을 따 가지고 오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미 얻은 참다운 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세존께서는 그것을 드시고 나서 돌아와 쉬셨다.

  

이튿날 가섭이 세존께서 머물고 계시는 곳으로 가서 아뢰었다.

"공양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어서 가셔서 공양하소서."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먼저 가라, 내가 뒤따라가리라."


가섭이 떠난 뒤에 세존께서는 곧 북울단왈(北鬱單曰)로 가셔서 저절로 생산되는 쌀[自然粳米]을 가지고 가섭의 돌집으로 가섭보다 먼저 돌아와 계셨다.

가섭이 세존께 아뢰었다.

"사문이시여, 어느 길을 거쳐서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떠난 뒤에 나는 울단왈에 가서 저절로 생산되는 쌀을 가지고 왔다. 이 쌀은 매우 향기롭고 맛이 있다. 만일 필요하거든 한 번 먹어보아라."

가섭이 대답하였다.

"저는 그 쌀이 필요 없습니다. 사문께서나 드십시오."


가섭은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사문은 대단한 신통력과 큰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내가 떠난 뒤에 이 과일을 따 가지고 오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미 얻은 참다운 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세존께서는 그것을 드시고 나서 돌아와 쉬고 계셨다.

  

이튿날 가섭이 세존께서 머물고 계시는 곳으로 가서 아뢰었다.

"공양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어서 가셔서 공양하십시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먼저 가거라, 내가 곧 뒤따라가리라."


가섭이 떠난 뒤에 세존께서는 곧 구야니(瞿耶尼)로 가셔서 하리륵(呵梨勒)1) 과일을 가지고 가섭의 돌집으로 가섭보다 먼저 돌아와 앉아 계셨다.


가섭이 세존께 여쭈었다.

"사문이시여, 어느 길을 거쳐서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세존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떠난 뒤에 나는 구야니로 가서 이 과일을 따 가지고 왔다. 매우 향기롭고 맛이 있다. 만일 필요하거든 한 번 먹어보아라."

가섭이 대답하였다.

"저는 그 과일이 필요 없습니다. 사문께서나 드십시오."


가섭은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사문은 대단한 신통력과 큰 위력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그렇지만 내가 이미 얻은 참다운 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세존께서는 그것을 드시고 나서 돌아와 쉬고 계셨다.

  

이튿날 가섭이 세존께서 머물고 계시는 곳으로 가서 아뢰었다.

"공양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어서 가셔서 공양하십시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먼저 가라, 내가 곧 뒤따라가리라."

가섭이 떠난 뒤에 세존께서는 불우체(弗于逮)로 가셔서 비혜륵(毗醯勒) 과일을 가지고 가섭의 돌집으로 가섭보다 먼저 돌아와 앉아 계셨다.

가섭이 세존께 여쭈었다.

"사문이시여, 어느 길을 거쳐서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떠난 뒤에 나는 불우체로 가서 이 과일을 따 가지고 왔다. 매우 향기롭고 맛이 있다. 만일 필요하거든 한 번 먹어보아라."

가섭이 대답하였다.

"저는 그 과일이 필요 없습니다. 사문께서나 드십시오."

 

가섭은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사문은 대단한 신통력과 큰 위력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그렇지만 내가 이미 얻은 참다운 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세존께서는 그것을 드시고 나서 돌아와 쉬고 계셨다.


가섭이 거대한 제사를 지내려고 하자, 그의 5백 제자들이 도끼를 가지고 장작을 쪼개려고 하였다. 그러나 손에 든 도끼가 아래로 내려가질 않았다. 이때 가섭이 생각하였다.

'이것은 틀림없이 사문이 하는 짓이리라.'

가섭이 세존께 여쭈었다.

"지금 장작을 쪼개려고 하였는데 무슨 일인지 도끼가 아래로 내려가질 않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도끼질을 하고 싶으냐?"

"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도끼는 곧 내려갔다. 그 때 아래로 내려간 도끼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그때 우비가섭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께서는 왜 가비라위를 바라보면서 앉아 계실까?'

그는 곧 앞으로 나아가 꿇어앉아 세존께 아뢰었다.

"알지 못할 일입니다. 세존께서는 왜 가비라위를 향해 돌아앉으셨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여래는 세간에 있으면서 마땅히 다섯 가지 일을 행해야 한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법륜(法輪)을 굴리는 것이요, 둘째는 아버지를 위해 설법하는 것이며, 셋째는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는 것이요, 넷째는 범부(凡夫)를 인도해 보살행(菩薩行)을 하도록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보살에게 기별(記?)을 주는 것이다.  

가섭아, 이것을 일러 여래께서 세간에 출현하여 마땅히 행해야 할 다섯 가지 일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이때 우비가섭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여래께서는 짐짓 친족(親族)이 있는 본국[本邦]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 쪽을 향해 앉으신 것이리라.'

  

다섯 비구들은 니련강 가로 와서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그 리고 존자 우다야(優陀耶)는 멀리 세존께서 가비라위를 향해 앉아 계신 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께서는 틀림없이 가비라위로 가시어 여러 친척들을 만나고 싶어하시는구나.'

  

우다야는 곧 앞으로 나아가 꿇어앉아 세존께 아뢰었다.

"제가 지금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세존께서 허락하여 주소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묻고 싶은 일이 있으면 어서 물어보아라."

우다야가 세존께 아뢰었다.

"여래의 생각을 살펴보오니 세존께서는 아마도 가비라위로 마음이 향해 있는 듯하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네 말과 같다. 우다야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너는 먼저 백정왕(白淨王)7)에게 가거라. 내가 바로 뒤에 따라가리라. 왜냐 하면 찰리(刹利) 종족을 먼저 사자(使者)로 보내어 알리고 나서 나 여래(如來)가 가야 하기 때문이다. 너는 왕에게 가서 '이레 뒤에 여래가 와서 왕을 뵈올 것이라'고 말하여라.

우다야가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우다야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여민 뒤에 세존의 발에 예를 올리고, 세존의 앞에서 사라지고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길로 가비라위의 진정왕(眞淨王)의 처소를 찾아가서 백정왕의 앞에 섰다. 그때 진정왕은 대전(大殿) 위에서 여러 채녀(?女)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우다야는 허공을 날고 있었다. 진정왕은 우다야가 손에 발우와 지팡이를 들고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곧 두려워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사람인가, 사람이 아닌가? 하늘인가, 귀신인가? 야차인가, 나찰[閱叉]인가? 용인가, 귀신인가?"


진정왕이 우다야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다시 다음 게송으로 우다야에게 말하였다.


  하늘인가, 귀신인가?

  혹은 건답화(乾沓和 : 乾?婆)인가?

  네 이름은 무엇인가?

  나는 당장 알고 싶구나.


그러자 우다야가 다시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저는 하늘도 아니요

  또한 건답화도 아닙니다.

  저는 이 대왕의 나라인

  가비국(伽毗國)에 사는 사람입니다.


  옛날에는 18억(億)이나 되는

  폐마(弊魔) 파순(波旬)의 무리를 무너뜨리신 분

  그는 저의 스승 석가문(釋迦文)이시고

  저는 그 분의 진정한 제자입니다.


그러자 진정왕도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그 누가 18억이나 되는

  폐마 파순의 무리를 부수었느냐?

  누구의 이름이 석가문이기에

  너는 지금 찬탄하여 말하느냐?


우다야가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여래가 처음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천지(天地)가 두루 크게 진동하였다.

  그 서원(誓願) 이제 다 이루었기에

  지금은 실달(悉達)이라 이름하였네.


  그는 18억이나 되는

  폐마 파순의 무리를 항복 받았으니

  그 이름은 석가문이라 하시며

  그는 이제 불도(佛道)를 이루셨네.


  그 사람은 석씨의 사자(師子)이시고

  나는 구담(瞿曇)의 제자로서

  오늘 사문(沙門)이 되었는데

  내 본래 이름은 우다야라 합니다.


진정왕은 이 말을 듣고 곧 기쁜 마음을 품고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우다야에게 말하였다.

"어떠냐? 우다야여, 실달 태자는 지금도 그대로 계시느냐?"

우다야가 대답하였다.

"석가문 부처님은 현재 살아 계십니다."


왕이 물었다.

"이제 부처가 되었느냐?"

우다야가 대답하였다.

"이제는 벌써 부처가 되었습니다."

  

왕이 또 물었다.

"지금 여래는 어디 계시느냐?"

우다야가 대답하였다.

"여래는 지금 마갈국(摩竭國) 경계 안에 있는 니구류 나무 밑에 계십니다."

  

그러자 왕이 대답하였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우다야가 대답하였다.

"수억의 여러 하늘들과 1천 비구들과 사천왕(四天王)들이 항상 그의 곁에 있습니다."

 

왕이 물었다.

"그가 입은 옷은 어떤 옷이냐?"

우다야가 대답하였다.

"여래께서 입으신 옷은 가사(袈裟)라고 부릅니다."


왕이 물었다.

"어떤 음식을 드시느냐?"

우다야가 대답하였다.

"여래의 몸은 법을 음식으로 삼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어떠냐? 우다야여, 여래를 뵈올 수 있겠느냐?"

우다야가 대답하였다.

"왕은 시름하거나 답답해하지 마십시오. 이레 뒤에는 여래께서 이 성(城)으로 들어오실 것입니다."

  

이 말을 듣자 왕은 매우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 손수 음식을 주어 우다이를 공양하였다. 그리고

왕은 큰 북을 울려 그 나라 백성들에게 칙명을 내려, 길을 편편하게 닦고 더러운 것들을 다 치우고 향수(香水)를 땅에 뿌리며, 비단으로 만든 번기와 일산을 달고 광대로 하여금 풍류를 울리게 하는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다시 나라에 명령을 내려 '모든 귀머거리·장님·벙어리들은 한 사람도 나타나지 못하게 하라. 지금부터 이레 뒤에는 실달(悉達)이 이 성으로 들어오실 것이다'라고 하였다. 진정왕은 부처님이 장차 성에 들어오실 것이라는 말을 듣고 이레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세존께서 이레가 지나자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신통력[神足力]으로 가비라위에 가는 것이 좋겠다.'

세존께서 곧 모든 비구들에게 앞뒤로 빙 둘러싸여 가비라위로 가셨다. 그곳에 이르러 곧 성 북쪽에 있는 살로원(薩盧園)으로 가셨다. 진정왕은 실달께서 가비라위의 북쪽에 있는 살로원에 도착하셨다는 말을 듣고, 여러 석씨(釋氏)들을 데리고 세존께서 계시는 곳으로 갔다.


세존께서 다시 이렇게 생각하셨다.

'만일 진정왕께서 직접 여기에 오시게 한 것은 나의 처신이 옳지 못하다. 내가 지금 가서 만나 뵈리라. 왜냐 하면 부모님의 은혜(恩惠)는 막중하고 나를 기르신 정(情)은 매우 깊기 때문이다.'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데리고 성문(城門)으로 나아가 땅에서 일곱 길쯤 떨어진 허공 위를 날고 있었다.


진정왕은 세존께서 단정하기 비길 데 없어 세상에 아주 드물고 모든 감각기관[根]은 고요하여 아무 잡념(雜念)이 없으며, 몸에는 32상과 80종호로 그 몸을 장엄하신 것을 보고 기쁜 마음이 생겨, 곧 머리를 조아려 그의 발에 예를 올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찰리의 왕종(王種)으로 이름을 진정왕이라고 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 누리는 수명(壽命)을 무궁하게 하시오. 그러므로 대왕은 마땅히 바른 법으로 다스려 교화하고 삿된 법[邪法]을 쓰지 마십시오. 대왕이시여,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바른 법으로 다스려 교화하는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천상(天上)처럼 좋은 곳에 태어나십니다."

 

세존께서 곧 공중을 걸어서 진정왕의 궁중으로 갔다. 그곳에 이르러 자리에 앉으셨다. 그 때 왕은 세존이 좌정(坐定)하신 것을 보고 손수 온갖 맛있는 음식들을 담아 골고루 돌렸다. 세존께서 공양을 마치시는 것을 보고는 깨끗한 물을 돌리고, 다시 조그만 자리를 하나 가지고 와서 앉아 설법을 들었다.

  

세존께서 진정왕을 위해 묘(妙)한 이치를 차례대로 설명하셨다. 여기에서 논한 논은 시론(施論)·계론(戒論)·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일에 대한 논(論)이었고, 탐욕은 더러운 행이므로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말씀하셨다.

  

세존께서 왕(王)의 마음이 열리고 마음에 이해가 생긴 것을 보시고 여러 불세존(佛世尊)께서 항상 설하셨던 법인, 괴로움[苦]·괴로움의 발생[集]·괴로움의 소멸[盡]·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을 모두 왕에게 설명하셨다. 진정왕은 곧 그 자리에서 모든 번뇌[塵垢]가 없어지고 법안(法眼)이 깨끗하게 되었다. 세존께서는 왕을 위해 설법하시기를 마친 다음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가셨다.


진정왕은 널리 석씨의 무리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사문들의 얼굴이 매우 추(醜)하다. 그런데 찰리의 종족으로서 여러 범지들을 거느리고 있는 것이 마땅치 않다. 찰리 석씨의 종족으로서 또 찰리 종족을 거느리는 것이 묘한 일이로다."

여러 석씨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대왕의 가르침과 같이 찰리 종족이라면 도로 찰리의 무리들을 거느리는 것이 참으로 묘한 일입니다."


왕은 나라에 명(命)을 내렸다.

"형제가 두 사람이면 한 사람은 반드시 도를 닦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꼭 중(重)한 벌을 줄 것이다."

모든 석씨들은 '형제가 두 사람이면 반드시 한 사람은 도를 닦아야 한다. 만일 이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중한 벌을 주리라'라고 하는 영(令)을 들었다. 


그때 석씨(釋氏) 종족인 제바달두(提婆達兜)가 석씨 종족인 아난(阿難)에게 말하였다.

"진정왕께서 오늘 칙명을 내리시기를 '형제가 두 사람이면 반드시 한 사람은 도를 닦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너는 이제 출가하여 도를 배워라. 나는 집에서 살림을 돌보리라."

그러자 아난은 기뻐 뛰면서 대답하였다.

"형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석씨 종족인 난타(難陀)가 석씨 종족인 아나율(阿那律)에게 말하였다.

"진정왕께서 칙명을 내리시기를 '형제가 두 사람이면 꼭 한 사람은 도를 닦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중한 벌을 받으리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너는 출가하여라. 나는 마땅히 집에서 살림을 도우리라."

석씨 아나율은 이 말을 듣고 기뻐 뛰면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형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진정왕은 석씨 종족인 곡정(斛淨)10 ·석씨 종족 숙정(叔淨)2) ·석씨 종족 감로(甘露)3) 를 데리고 세존이 계신 곳으로 갔다. 그 때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탔는데, 첫 번째는 흰 수리에 흰 일산과 흰 말에 멍에를 메웠고, 두 번째는 푸른 수레에 푸른 일산과 푸른 말에 멍에를 메웠으며, 세 번째는 누런 수레에 누런 일산과 누런 말에 멍에를 메웠고, 네 번째는 붉은 수레에 붉은 일산과 붉은 말에 멍에를 메웠다. 

이때 모든 석씨들도 어떤 이는 코끼리를 타기도 하고 어떤 이는 말을 타고서 모두들 모여들었다.


세존께서는 멀리 진정왕이 여러 석씨들을 거느리고 오는 것을 보시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 석씨 대중들과 진정왕의 대중들을 보아라. 비구들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저 삼십삼천(三十三天)이 공원으로 나갈 때에도 또한 이 법처럼 하여 조금도 다름이 없었느니라."

  

그때 아난은 크고 하얀 코끼리를 탔는데, 하얀 옷에 흰 일산이었다. 세존께서는 그를 보시고 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저 석씨 아난이 탄 흰 코끼리와 흰 옷이 보이느냐?"

모든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예,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저 사람은 장차 출가하여 도를 배워 제일 많이 듣는 것으로써 제일인자가 될 것이요, 항상 내 곁에서 나를 모시게 될 것이다. 


또 너희들은 이 아나율을 보았는가?"

모든 비구들이 말하였다.

"예,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저 사람은 장차 출가하여 도를 배워 천안(天眼)으로 제일 가는 이가 될 것이다."

  

진정왕과 그의 형제 네 사람과 난다와 아난은 모두 다섯 가지 장식[五好]4)을 버리고 걸어서 세존의 앞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세존의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진정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젯밤에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찰리 종족으로서 범지들을 거느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 찰리의 무리를 거느리는 것이 옳다.'

그래서 나는 곧 나라에 영을 내려 '형제 두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한 사람은 출가하여 도를 배우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한 일입니다. 대왕이시여, 대왕께서는 천상(天上)과 인간(人間)에 많이 이익을 주어 편안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왜냐 하면 선지식(善知識)은 좋은 복밭[福田]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도 선지식을 인연하여 남·늙음·병듦·죽음에서 벗어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석씨의 무리들은 곧 도를 닦게 되었다.

진정왕이 세존께 아뢰었다.

오직 바라옵건대 세존께서 우다야를 가르치셨던 것처럼 이 새로운 비구들을 잘 가르쳐 주십시오. 왜냐 하면 이 우다야 비구는 대단한 신통력(神通力)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컨대 우다야 비구가 항상 궁중에 있으면서 교화(敎化)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오랜 세월 동안 평안함을 얻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왜냐 하면 이 비구에게는 큰 신통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처음 우다야 비구를 보았을 때에 곧 기쁜 마음이 생겨서 나는 곧 생각하기를 '제자인데도 저런 신통력이 있는데 하물며 그 스승이신 여래에게 어찌 이보다 더한 신통력이 없겠는가?' 라고 하였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대왕의 말씀과 같습니다. 이 우다야 비구는 대단한 신통력과 큰 위덕(威德)이 있습니다."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제자들 중에 지식이 많고 국왕(國王)의 사랑을 받기로 첫째가는 이는 바로 아야구린(阿若拘?) 비구이고, 능히 사람에게 권유하고 교화시키기로 첫째 가는 이는 바로 우다야(優陀耶) 비구이며, 민첩성과 지혜를 겸하기로 첫째 가는 이는 바로 마하남(摩訶男)이고, 항상 날아다니기를 좋아하기로 첫째 가는 이는 바로 수바휴(須婆休) 비구이며, 공중(空中)을 왕래(往來)하기로 첫째 가는 이는 바로 바파(婆波) 비구이고, 제자가 많기로 첫째가는 이는 바로 우비가섭(優毗迦葉) 비구이며, 공(空)을 관하기로 첫째 가는 이는 바로 강가섭(江迦葉) 비구이고, 지관(止觀)으로 첫째 가는 이는 바로 상가섭(象迦葉) 비구이니라.

  

세존께서는 진정왕을 위해 미묘(微妙)한 법을 자세히 설명하셨다.

그러자 왕은 그 법을 듣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려 세존의 발에 예를 올리고 물러갔다.

  

모든 비구들과 진정왕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1) 팔리어로는 Dhotodana라고 한다. 이는 곧 곡반왕(斛飯王)이며, 세존의 숙부(叔父)이고 진정왕(眞淨王)의 아우이다.

2) 팔리어로는 Sukkodana라고 한다. 이는 곧 백반왕(白飯王)이며, 세존의 숙부이고 진정왕(眞淨王)의 아우이다.

3) 팔리어로는 Amitodana라고 한다. 이는 곧 감로반왕(甘露飯王)이며, 세존의 숙부이고 진정왕(眞淨王)의 아우이다.

4) 또는 오위용(五威容)·오의식(五儀式)이라고도 하며, 국왕의 다섯 가지 장식을 말한다. 『중아함경』 제11권 62번째 소경인 빈바라왕영불경(頻婆羅王迎佛經)에 의하면 첫째 검(劍), 둘째 일산[蓋], 셋째 천관(天冠), 넷째 주병불(珠柄拂), 다섯째 엄식사(嚴飾?)라고 하였고, 『증일아함경』 제13권 제23 지주품(地主品) 첫 번째 소경에 의하면 첫째 일산, 둘째 천관, 셋째 검, 넷째 이사(履?), 다섯째 금불(金拂)이라고 하였다.



24. 고당품 ③


[ 6 ]

(이 소경과 내용이 비슷한 경으로는 『중아함경』 제55권 202번째 소경인 「지재경(持齋經)」과 오(吳) 시대 지겸(支謙)이 한역한 『불설재경(佛說齋經)』과 실역(失譯) 『우바이타사가경(優婆夷墮舍迦經)』과 유송(劉宋) 시대 저거경성(沮渠京聲)이 한역한 『불설팔관재경(佛說八關齋經)』이 있다.)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15일까지의 사이에 세 개의 재법(齋法)이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8일·14일·15일이 그것이다.


비구들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런 때가 있다. 즉 8일의 재일에는 사천왕(四天王)이 그의 여러 신하들을 보내 세상을 두루 살펴보게 한다.

'누가 선(善)한 일을 하고 누가 악(惡)한 짓을 하는가? 어떤 중생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사문(沙門)·바라문(婆羅門)·어른[尊長]들에게 공경하는가? 어떤 중생이 보시(布施)하기를 좋아하고 계(戒)를 닦고 인욕(忍辱)·정진(精進)·삼매(三昧)를 닦으며, 경전의 뜻을 연설하고 팔관재(八關齋)1) 지키는가?' 하고 자세히 분별하게 한다.

  

만일 어떤 중생이던지 부모·사문·바라문과 모든 어른에게 효도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그 신하들은 사천왕에게 보고한다.

'지금 저 세간(世間)에는 부모·사문·도사(道士)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는 이는 하나도 없고, 4등심(等心)2)으로써 중생들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중생이 아무도 없습니다.'

  

사천왕은 그 말을 듣고 나서는 곧 근심하고 걱정하며 슬퍼한다. 사천왕은 곧 도리천(?利天)으로 올라가서 선법강당(善法講堂)에 모여, 그런 사실을 제석천왕(帝釋天王)에게 자세히 갖추어 아뢴다.

'천제(天帝)시여, 마땅히 아셔야만 합니다. 지금 저 세간에는 부모·사문·바라문과 어른들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는 중생이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삼십삼천(三十三天)은 그 말을 듣고 나서 모두들 근심하고 걱정하며 슬퍼한다. 왜냐 하면 모든 하늘의 무리들은 줄어들고, 아수륜(阿須倫 : 阿修羅)의 무리들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또 이런 때도 있다. 만일 세간에 부모·사문·바라문과 모든 어른들에게 효도하고 순종하고 8관재를 가지며, 덕(德)을 닦아 깨끗해지고 털끝만큼도 금계(禁戒)를 범하지 않는 중생이 있으면, 그 사자(使者)는 기뻐 뛰면서 어찌할 줄을 몰라하며 사천왕에게 아뢴다.

'지금 저 세상에는 많은 중생들이 부모·사문·바라문, 그리고 모든 어른들에게 효도하고 순종한다고 합니다.'

  

천왕들은 그 말을 듣고는 매우 기뻐하면서 곧바로 석제환인(釋帝桓因)의 처소로 달려가서 그 사실을 자세하게 갖추어 아뢴다.

'천제시여, 꼭 아셔야만 합니다. 지금 저 세간에는 많은 중생들이 부모·사문·바라문과 그리고 여러 어른들에게 효도하고 순종한다고 합니다.'

  

제석(帝釋)과 삼십삼천은 모두 기뻐하며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 왜냐 하면 하늘의 무리는 더욱 늘어나고 아수륜의 무리가 자꾸 줄어들며 지옥의 고문은 저절로 쉬어져 고통이 없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14일의 재일 때에는 사천왕이 그 태자(太子)를 내려보내 온 천하를 골고루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선행(善行)과 악행(惡行)을 살펴보게 한다.

'어떤 중생들이 부처님을 믿고 법을 믿으며 비구승(比丘僧)을 믿는지, 부모·사문·바라문과 그리고 어른들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는지, 보시를 좋아하고 8관재를 가지며 6정(情)3)을 막고 다섯 가지 욕망[五欲]4)을 방제(防除)하는가?'

  

이런 것들을 관찰하여 만일 중생들이 바른 법을 닦지 않고 부모·사문·바라문에게 효도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그 때 태자는 사천왕에게 달려가서 사천왕에게 보고한다. 사천왕은 그 말을 듣고 나서 근심하고 걱정하고 슬퍼하면서 석제환인에게 가서 그 사실을 자세히 갖추어 보고한다.

'대왕이시여, 마땅히 아셔야만 합니다. 지금 저 세간에는 부모·사문·바라문과 모든 어른들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는 중생들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제석천왕과 삼십삼천은 모두들 근심하고 걱정하며 슬퍼한다. 왜냐 하면 하늘의 무리는 자꾸 줄어들고 아수륜의 무리가 점점 늘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중생들이 부모·사문·바라문과 모든 어른들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며 8관재를 잘 가지면, 그 태자는 기뻐 뛰면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곧 사천왕에게 가서 보고를 드린다.

'대왕이시여, 마땅히 아셔야만 합니다. 지금 저 세간에는 부모·사문·바라문과 모든 어른들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는 이가 많다고 합니다.'

  

사천왕은 그 말을 듣고 나서 매우 기뻐 뛰며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곧 제석의 처소를 찾아가서 그 사실을 자세히 갖추어 보고한다.

'대왕이시여, 마땅히 아셔야만 합니다. 지금 저 세간에는 부모·사문·바라문과 모든 어른들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며, 삼보(三寶)에 귀의하고 자애로운 마음으로 충고하며, 성실하여 속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천제(天帝)와 사천왕, 그리고 삼십삼천은 모두 기뻐 뛰면서 어쩔 줄을 몰라한다. 왜냐 하면 하늘의 무리들은 자꾸 늘어나고 아수륜의 무리는 점점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비구들아, 꼭 알아야 한다. 15일 날 계율을 해설할 때에는 사천왕이 몸소 내려와서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살펴본다.

'어떤 중생이 부모·사문·바라문과 모든 어른들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는가,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8관재와 여래(如來)의 재법(齋法)을 잘 가지는가?'

  

그리하여 만일 중생들이 부모·사문·바라문과 모든 어른들에게 효도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사천왕은 곧 근심하고 걱정하고 슬퍼하면서 제석천왕에게 가서 그 사실을 자세히 갖추어 보고한다.

'대왕이시여, 마땅히 아셔야만 합니다. 지금 저 세간에는 부모·사문·바라문과 모든 어른들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는 중생들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제석천왕과 삼십삼천은 모두들 근심하고 걱정하며 슬퍼한다. 왜냐 하면 하늘의 무리는 자꾸 줄어들고 아수륜의 무리만 점점 늘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또 만일 중생들이 부모·사문·바라문과 모든 어른들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며 8관재를 잘 가지면, 사천왕은 기뻐 뛰며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곧 제석의 처소로 달려가서 그 사실을 자세히 갖추어 보고 드린다.

'대왕이시여, 마땅히 아셔야만 합니다. 지금 저 세간에는 부모·사문·바라문과 모든 어른들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는 이가 많습니다.'

  

석제환인과 사천왕, 그리고 삼십삼천은 모두들 매우 기뻐 뛰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왜냐 하면 하늘의 무리들은 자꾸만 늘어나고 아수륜의 무리들은 점점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니라."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15일 날 8관재법은 어떻게 가져야 하느냐?"

이때 모든 비구들이 세존께 아뢰었다.

"여래께서는 바로 모든 법(法)의 왕(王)이시고, 모든 법의 인(印 : 증명)이십니다.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마땅히 저희 모든 비구들을 위해 그 이치를 설명하여 주십시오. 저희 모든 비구들은 그것을 듣고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었다가 잘 생각해 보도록 하라. 나는 꼭 너희들을 위해 자세히 분별하여 해설해주리라. 비구들아,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매월 8일과 14일과 15일에 계(戒)를 해설하고 재(齋)를 가질 때에 사부대중들에게 가거든 이렇게 말하라.

'나는 오늘 재일(齋日)에 8관재법을 가지고 싶습니다. 오직 바라건대 존자들은 나를 위해 설명해보시오.'


그때 사부대중들은 마땅히 너희들을 위해 8관재법을 설명할 것이다.

그들은 먼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선남자여, 지금 네 성명(姓名)을 말해 보아라.'

너희가 자기의 이름을 말하면 그 다음에 8관재법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그때 교수(敎授)되는 사람은 마땅히 그 사람을 시켜서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하게 할 것이다.

'나는 이제 여래의 재법을 받들어 가지겠습니다. 나는 내일 아침에 청정한 계를 닦아 모든 나쁜 법을 제거해 버리겠습니다. 만약 몸이 짓는 나쁜 행(行)·입이 짓는 나쁜 말·뜻이 짓는 나쁜 생각[念], 즉 몸이 짓는 세 가지와 입으로 짓는 네 가지와 뜻이 짓는 세 가지의 모든 나쁜 짓을 이미 지었고 또 장차 지을 것입니다.

  

혹 탐욕(貪欲) 때문에 짓는 것, 혹은 성냄 때문에 짓는 것, 혹은 어리석음 때문에 짓는 것, 혹은 호족(豪族)이라는 이유 때문에 짓는 것, 혹은 나쁜 벗 때문에 짓는 것, 혹은 현재 세상의 몸과 다음 세상의 몸과 무수(無數)한 몸으로 혹 부처님을 모르고 법을 모르며, 혹은 비구승과 싸우고, 부모와 스승을 죽였을 것입니다. 나는 이제 스스로 숨기지 않고 모두 드러내어 참회합니다. 계와 법을 의지하여 계행(戒行)을 성취하기 위하여, 여래의 8관재법을 받겠습니다.'

  

어떤 것이 8관재법인가? 

진인(眞人 : 阿羅漢)처럼 마음을 가져, 이 목숨을 마칠 때까지 죽이지 않고 또한 살해할 생각을 가지지 않으며, 중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나 아무개는 내일 아침까지 재를 가져, 죽이지 않고 해칠 생각을 하지 않으며 일체 중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겠습니다.'

 

또 진인처럼 삿된 생각이 없이 목숨을 마칠 때까지 도둑질하지 않고 보시(布施)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나 아무개는 목숨을 마칠 때까지 도둑질을 하지 않기 위하여, 지금부터 내일 아침까지 재를 지니겠습니다.'

  

또 진인처럼 마음을 가져 '나는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음일(淫佚)하지 않고 삿된 생각이 없이 항상 범행(梵行)을 닦아 몸이 향기롭고 깨끗하게 할 것이며, 오늘은 음행하지 않는 계율을 가져 또한 내 아내도 생각하지 않고 남의 여자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겠으며, 내일 아침까지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또 아라한처럼 목숨을 마칠 때까지 거짓말을 하지 않고 항상 지극히 정성스러워 남을 속이지 않으며, 지금부터 내일까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또 아라한처럼 술을 마시지 않아서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며, 부처님의 금계(禁戒)를 지켜 범하지 않는 것이다.

'나도 장차 그와 같이 오늘부터 내일 아침까지 술을 마시지 않고, 부처님의 금계를 가져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또 아라한처럼 목숨을 마칠 때까지 재법(齋法)을 부수지 않고, 항상 때를 맞추어 음식을 먹되, 조금 먹어도 만족할 줄을 알아 맛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나도 역시 그와 같이 목숨을 마칠 때까지 재법을 무너뜨리지 않고, 항상 때를 맞추어 음식을 먹되, 적게 먹어도 만족할 줄을 알며, 맛에 집착하지 않고 오늘부터 내일 아침까지 잘 지키겠습니다.'

  

또 아라한처럼 높고 넓은 평상에 앉지 않는 것이다. 높고 넓은 평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金)·은(銀)·상아(象牙)로 만든 평상·뿔로 만든 평상·부처님의 자리·벽지불(?支佛)의 자리·아라한(阿羅漢)의 자리·스승님의 자리를 이르는 말이니, 아라한은 이런 여덟 가지 자리에 앉지 않는다.

'나도 그런 자리에 올라가 앉음으로써 그 자리를 침범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또 아라한처럼 향과 꽃과 연지[脂]와 분(粉)으로 장식하지 않는 것이다.

'나도 그와 같이 이 목숨을 마칠 때까지 향과 꽃과 연지와 분으로 몸을 장식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나 아무개는 이런 여덟 가지 일을 여의고 8관재법을 받들어 가지리니, 그 공덕으로 부디 세 갈래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이런 공덕으로 인하여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 따위의 여덟 가지 어려움에 들지 않게 하소서. 또 항상 착한 벗[善知識]을 만나고 나쁜 벗[惡知識]을 따라 종사하지 않게 하며, 좋은 부모의 집에 태어나고 불법(佛法)이 없는 변두리 지방에 태어나지 않게 하며, 수명이 긴 천상(天上)에도 태어나지 않게 하고 남의 노비(奴婢)가 되지 않게 하며, 범천(梵天)도 되지 않고 제석천왕(帝釋天王)의 몸도 되지 않게 하며, 전륜성왕(轉輪聖王)도 되지 말게 하여지이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 앞에 태어나서 스스로 부처님을 뵙고 그 법을 들어 모든 감각기관이 어지럽지 않게 하고, 만일 내가 삼승(三乘)의 행(行)을 향해 서원(誓願)을 세우면 빨리 그 도과(道果)를 얻게 하여지이다.'


이와 같이 원을 세우느니라.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만일 어떤 우바새(優婆塞)나 우바이(優婆夷)로서 이 8관재법을 가지면, 그 선남자와 선여인은 장차 세 가지 길로 나아갈 것이다. 즉 인간 세계나 천상에 태어나거나, 혹은 반열반(般涅槃)할 것이니라."

  

세존께서 곧 다음 게송 말씀하셨다.


  살생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며

  음행하지 말고 거짓말을 하지 말며

  술을 피하고 향과 꽃을 멀리 하라.

  맛에 집착해 재법을 범하는 이

  노래하고 춤을 추며 창기(倡伎)가 된다.


  아라한처럼 버리기를 배우고

  이제 8관재를 가져서

  밤낮으로 그것을 잊지 않으면

  거기는 나고 죽는 고통 없으리.


  다시는 돌아 나올 기약이 없으리니

  사랑하는 이들과 모이지 말고

  미워하는 이들과 만나지 말라.


  원컨대 이 몸[五陰]의 괴로움과

  온갖 병과 나고 죽는 고통 없애고

  열반에 들어 모든 근심 없으리니

  나는 이제 스스로 귀의하노라.


"그런 까닭에 비구들아,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8관재법을 지켜 모든 괴로움을 여의고 좋은 곳에 태어나고자 하는 사람이나, 온갖 번뇌[漏]를 없애고 열반(涅槃)에 들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모든 방편(方便)을 구하여 8관재법을 성취(成就)하도록 노력하여라. 인간의 영화로운 자리는 족히 귀하다 할 것이 하나도 없지만, 천상의 즐거움[快樂]은 이루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위없는 복(福)을 얻으려고 하거든 마땅히 방편을 구해 이 재법(齋法)을 성취하도록 하라. 나는 이제 거듭 부탁하나니,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8관재법을 성취하여 사천왕천(四天王天)에 태어나기를 구하면 그는 곧 그 소원을 이룰 것이다. 왜냐 하면 계를 가지는 사람은 다 그 소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과 같은 이치를 말하는 것일 뿐이다.

'인간의 영화로운 자리는 족히 귀하다고 할 것이 없다.'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8관재를 가지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천상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다. 즉 염천(艶天)에도 태어나고, 도술천(兜術天)·화자재천(化自在天)·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도 태어나서 마침내 헛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계를 가지는 사람의 소원은 모두 다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비구들아, 나는 이제 거듭 너희들에게 부탁(付託)하나니,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8관재법을 가지면 욕계천(欲界天)에 태어나고자 하는 이나 색계천(色界天)에 태어나고자 하는 이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 하면 계를 가지는 이의 소원은 다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 선남자와 선여인이 8관재법을 가지면 무색계천(無色界天)에 태어나고자 하더라도 또한 그 소원은 모두 이루어질 것이다.

  

비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8관재법을 가지면 네 가지 성(姓)4)의 집안에 태어나고자 하더라도 다 태어날 수 있을 것이요, 1방(方)의 천자 또는 2방·3방·4방의 천자가 되려고 해도 또한 그 소원을 다 이룰 수 있을 것이요, 전륜성왕이 되려고 하여도 그 소원을 모두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계를 가지는 이의 소원은 다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성문(聲聞)이 되고 연각(緣覺)이나 부처가 되려고 하여도 다 그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다 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5계와 10선행(善行)은 어떤 소원이던지 다 이룰 수 있다.

 

모든 비구들아, 만일 도(道)를 이루고자 하면, 마땅히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1) 또는 8재계(齋戒)·8계재(戒齋)·8계(戒)라고 쓰기도 한다. 속가에 있는 사람이 하루 밤 하루 낮 동안 지키는 계율. 중생을 죽이지 말라, 훔치지 말라, 음행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 먹지 말라, 꽃다발을 쓰거나 향 바르고 노래하고 풍류를 연주하거나 가서 구경하지 말라, 높고 넓은 평상에 앉지 말라, 때 아닐 때 먹지 말라는 8가지인데, 이 중 여덟 번째는 재(齋)이고 나머지는 계(戒)이다.

2) 4무량심(無量心)이라고도 하며, 자애로운 마음[慈]·불쌍히 여기는 마음[悲]·기뻐하는 마음[喜]·평정한 마음[捨]을 말한다.

3)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뜻[意]을 말한다. 구역(舊譯)에서는 육정(六情)이라고 하였고 신역(新譯)에서는 6근(根)이라고 하였는데 근(根)에는 정식(情識)이 있기 때문에 정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4) 첫째 바라문(婆羅門)이니 또는 범지(梵志)라고 하기도 하며, 번역하여 정행(淨行)이라고 한다. 승려(僧侶)나 학자(學者)의 계급(階級)으로 4성 중 최상위(最上位)이다. 둘째 찰제리(刹帝利)이니 또는 찰리(刹利)라고 하기도 하고 번역하여 전주(田主)라고 한다. 국왕(國王)이나 무사(武士)의 계급이다. 셋째 폐사(吠舍)이니 또는 폐사(吠舍)라고 하기도 하고 번역하여 상고(商賈)라고 하며 평민계급이다. 넷째 수다라(首陀羅)이니 또는 전다라(?陀羅)라고 하기도 하며 번역하여 농인(農人)이라고 하는데 노예(奴隸)의 계급이다.


[ 7 ]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현재 세상에서 세 가지 일을 가지면 그런 선남자와 선여인은 한량없이 많은 복을 얻을 것이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현재 세상에서 믿음을 가지면 그런 선남자와 선여인은 한량없이 많은 복을 얻을 것이다. 만일 현재 세상에서 재물을 가지면 그런 선남자와 선여인은 한량없이 많은 복을 얻을 것이다. 만일 현재 세상에서 범행을 가지면 그런 선남자와 선여인은 한량없이 많은 복을 얻을 것이다.

  

비구들아, 이것을 일러 현재 세상에서 세 가지 일을 가지면 한량없이 많은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존께서 이런 게송을 말씀하셨다.


  믿음·재물·범행은 얻기 어려운 것

  계를 가지는 이만이 받아 가질 수 있다.

  이 세 가지를 깨달아 알고 나서

  지혜로운 사람은 수시로 보시 행한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편안함을 얻고

  모든 하늘들도 보호해 주나니

  그는 거기에서 스스로 즐기면서

  다섯 가지 욕락에 만족할 줄 모른다.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아,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라면 마땅히 방편을 구해 이 세 가지 법을 성취해야 할 것이니라.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8 ]

(이 소경에 대한 이해를 도울만한 전적로는 요진(姚秦) 시대 불타야사(佛陀耶舍)와 축불염(竺佛念)이 함께 한역한 『사분율(四分律)』 제43권과 유송(劉宋) 시대 불타집(佛陀什)과 축도생(竺道生)이 공역(共譯)한 『오분율(五分律)』 제25권이 있으며, 비슷한 내용의 소경으로는 『중아함경』 제16권 72번째 소경인 「장수왕본기경(長壽王本記經)」과 『중아함경』 제48권 184번째 소경인 「우각사라림경(牛角娑羅林經)」과 오(吳) 시대 강승회(康僧會)가 한역한 『육도집경(六度集經)』 제1권 10번째 소경과 실역(失譯) 『장수왕경(長壽王經)』이 있다.)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구심성(拘深城)의 구사라원(瞿師羅園)1) 동산에 계셨다.

그당시 거기에는 구심(拘深)이라는 비구가 있었는데 그는 항상 싸우기를 좋아하여 온갖 악행(惡行)을 저지르고 얼굴을 맞닥뜨리고 말을 하며, 때로는 칼이나 몽둥이를 휘두르기도 하였다.


세존께서 이른 아침에 그 비구의 처소에 가셔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은 부디 싸우지 말고 서로 시비(是非)하지 말라. 모든 비구들은 마땅히 서로 화합(和合)해야 한다. 한 스승을 섬기는 제자들로서 물과 젖처럼 그래야 하겠거늘 왜 그렇게 서로 싸우느냐?"

구심 비구가 세존께 아뢰었다.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그런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시지 마십시오. 저도 지금 그런 이치를 스스로 생각하고 지나온 일들에 대하여 저의 허물이 있음을 잘 알고 있나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어떠냐? 너희들은 임금을 위해 도를 닦느냐, 아니면 그 누구를 두려워하여 도를 닦느냐, 그도 아니면 세상이 험하기 때문에 도를 닦느냐?"

모든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비구들아, 너희들은 나고 죽음을 여의고 싶어서 함이 없는 도[無爲道]를 구하여 그 도를 닦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5음(陰)으로 이루어진 몸은 진실로 영원히 보전하기가 어려우니라."

모든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말씀과 같이 저희 족성(族姓)의 집안 자제들이 출가하여 도를 닦는 까닭은 함이 없는 도를 구해 5음으로 이루어진 이 몸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비구들아, 이제부터는 도를 닦으면서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한다. 주먹으로 서로 가격하지도 말고 얼굴을 맞닥뜨리고 시비하지도 말며, 서로 대하여 욕설도 하지 말라. 너희들은 마땅히 이런 행(行)을 성취하여 같은 스승에게서 똑 같이 법을 배워야 한다. 또한 반드시 이 여섯 가지 법을 실천하고 몸과 입과 뜻으로도 이 행을 실천하고 온갖 범행(梵行)을 닦는 이를 공양해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그것은 저희들의 일입니다. 세존께서는 이 일에 대하여 걱정하지 마십시오."

  

세존께서 구심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어떤가? 이 어리석은 사람들아, 너희들은 왜 여래의 말을 믿지 않느냐? 너희들은 이제 '여래께서는 이 일에 대하여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너희들은 스스로 그 삿된 소견의 과보를 받게 될 것이다."

  

세존께서 그 비구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과거 아주 오랜 옛날에, 이 사위성(舍衛城)에 장수(長壽)라는 왕이 살고 있었다. 그는 총명하고 슬기로워 모르는 일이 없었고 더구나 칼 쓰는 솜씨가 매우 능숙했다. 그러나 보물이 모자라 창고를 채운 일이 한 번도 없었고, 재물은 점점 줄어들었으며, 네 가지 군사도 그리 많지 않았고, 대신들도 자꾸만 줄어들었다.

  

바라내국(婆羅▩國)에 범마달(梵摩達)이라는 왕이 있었다. 그 왕은 용맹스럽기 짝이 없었고 굳세고 건장하여 모두를 항복 받지 못한 이가 없었고, 돈과 재물, 그리고 7보가 창고에 가득했으며, 네 부류의 군사들도 또한 모자람이 없었으며, 대신들도 수없이 많았다.


범마달왕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장수왕(長壽王)은 도와주는 신하들도 없고 재물도 모자라며 게다가 보물도 없다. 나는 이제 가서 그 나라를 공격하리라.'

범마달왕은 곧 군사를 일으켜 그 나라를 공격했다.

장수왕은 범마달왕이 군사를 일으켜 자기 나라를 공격해 온다는 말을 듣고 곧 계책을 세웠다.

'나는 지금 비록 7보와 재물, 그리고 대신들과 네 가지 군사가 하나도 없고, 저 왕은 비록 온갖 군사들이 많지만, 나는 오늘 내 한 사람의 힘으로도 충분히 저 백천 군사들을 무너뜨리고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을 다 죽일 수 있다. 그러나 한 세상의 영화를 위해 영원한 죄를 지을 수는 없다. 나는 차라리 지금 이 성을 내주고 다른 나라로 가서 살지언정 저들과 싸우지 않으리라.'


장수왕은 대신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첫째 부인과 단 한 사람만을 데리고 사위성(舍衛城)을 나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사위성 안에 있던 대신들은 장수왕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곧 범마달왕에게 사신[信使]을 보내 이렇게 말하라고 하였다.

'원컨대 대왕은 우리나라로 오십시오. 지금 장수왕은 어디로 갔는지 그가 간 곳을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범마왕은 가시국(迦尸國)으로 가서 그 나라를 다스렸다.

  

그때 장수왕의 둘째 부인(夫人)은 아이를 배어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다.

부인은 꿈을 꾸었다. 그 꿈은 이러했다.

'사위성에서 아이를 낳았다. 해가 뜰 때에 네 부류의 군사가 모두 손에 다섯 자쯤 되는 칼을 들고 빙 둘러싸고 있었는데, 혼자서 아이를 낳는데도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꿈을 꾸고 깨어나 그 사실을 장수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부인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깊은 산 속에 있소. 무슨 인연으로 저 사위성에서 아이를 낳겠오. 당신이 지금 아이를 낳고자 하면 사슴처럼 그렇게 낳을 것이오.'

부인이 말하였다.

'만일 제가 그렇게 낳지 못하면 바로 죽고 말 것입니다.' 

장수왕은 이 말을 듣고 나서 곧 그 날 밤에 옷을 갈아입고 아무도 거느리지 않고 혼자서 사위성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 장수왕에게는 한 대신(大臣)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선화(善華)라고 하였다. 그는 조그만 일이 있어서 성을 나오다가, 성으로 들어오는 장수왕을 보았다. 저 선화라는 대신은 왕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왕을 버려 두고 가버렸다. 그는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리면서 되돌아갔다. 장수왕은 곧 그를 좇아가다가 아무도 없는 으슥한 곳에 이르러 말하였다.

'제발 소문을 내지 말라.'

대신이 대답하였다.

'예, 대왕님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알 수 없는 일입니다만 대왕께서는 무슨 하교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장수왕이 말하였다.

'나의 옛 은혜를 기억하거든 곧 그것을 되돌려 갚아야 할 것이다.'

신하가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무슨 분부이던 다 시키시면 제가 마땅히 그대로 하겠습니다.'

장수왕이 말하였다.

'내 아내가 어젯밤 꿈에 이 성 안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네 부류의 군사들이 빙 둘러싸고 있었는데, 매우 단정한 한 사내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만일 꿈대로 아이를 낳지 못하면 이레 안에 반드시 죽고 말 것이다.'

대신이 대답하였다.

'제가 이제 왕의 명령대로 그 일을 감당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떠나갔다. 그 대신은 즉시 범마달왕에게로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레 안으로 대왕의 군사들 중 상병(象兵)·마병(馬兵)·차병(車病)·보병(步兵)이 얼마나 되는지 보고 싶습니다.'

그러자 범마달왕이 곧 곁에 있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였다.

'즉시 가장 뛰어난 군사들을 재촉하여 선화의 말대로 하라.'

  

선화 대신은 이레 안에 곧 군사들을 모아 사위성에 배치해 놓았다. 부인은 이레 안에 그 도시 안으로 왔다. 선화 대신은 멀리서 부인이 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어지신 부인이여.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그 부인은 네 부류의 군사들을 보고는 매우 기뻐하며 좌우 신하들에게 명(命)하여 큰 장막을 치게 하였다. 부인은 해가 뜰 때가 되어 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는 단정하기가 세상에 보기 드물었다. 부인은 아기를 안고 산 속으로 돌아갔다. 


장수왕은 멀리서 아기를 안고 오는 부인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아이의 수명(壽命)이 길게 하여지이다.'

부인이 왕에게 아뢰었다.

'바라건대 왕께서는 아기의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왕은 곧 그 아이의 이름을 장생(長生)이라고 지었다. 장생 태자의 나이 여덟 살 때에 부왕(父王) 장수는 조그만 일이 있어 사위성에 들어갔다.

  

장수왕의 옛날 신하 겁비(劫比)는 성(城)으로 들어오는 장수왕을 만나자,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뚫어지게 보고 나서는, 곧 범마왕이 있는 곳으로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은 너무 방일(放逸)하십니다. 지금 장수왕이 이 성에 와 있습니다.'

  

러자 왕은 매우 성을 내면서 곧 좌우 신하들에 명하여 장수왕을 잡아오라고 하였다. 그때 측근 신하들은 겁비를 데리고 가서 동서(東西) 사방으로 찾아 나섰다. 그 때 겁비는 멀리서 장수왕을 보고 곧 눈으로 가리키며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장수왕입니다.'

그들은 곧 그 앞에 나아가 장수왕을 잡아 범마왕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이 사람이 장수왕입니다.'

  

온 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장수왕이 잡혔다는 말을 들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부인도 장수왕이 범마왕에게 붙잡혔다는 말을 듣고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이제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차라리 대왕과 함께 목숨을 같이하리라.'

부인은 그 태자를 데리고 사위성으로 들어가면서 부인은 태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너는 이제 네 살길을 찾도록 해라.'

  

그러자 장생 태자는 그 말을 듣고 나서도 잠자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인은 범마왕이 있는 곳으로 갔다. 왕은 멀리서 그 부인이 오는 것을 보고 기뻐 뛰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즉시 대신들에게 명하여 부인과 장수왕을 끌고 네거리에 가서 그들의 몸을 네 동강을 내라고 하였다.


모든 대신들은 왕의 명령을 받고 장수왕과 그 부인의 몸을 뒤로 묶어 가지고 사위성을 돌면서 온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 보게 하였다. 그 때 백성들은 그것을 보고 누구나 마음이 아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장생 태자가 그 대중들 가운데 있다가 자기의 부모를 끌고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다가 끌고 가서 죽이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도 그는 얼굴빛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장수왕은 장생 태자를 돌아보면서 말하였다.

'너는 남의 장점도 보지 말고 또 남의 단점도 보지 말라.'


그리고는 곧 이런 게송을 말하였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그치지 않나니

  옛날부터 이런 법이 있어왔다.

  원한을 없애면 원한을 이기나니

  이 법은 영원히 변치 않는 법이다.


대신들이 서로 말했다.

'저 장수왕은 매우 어리석다. 장생 태자가 어떤 사람이기에 우리들의 앞에서 저 왕은 태자에게 이런 게송을 외우는 것일까?'


장수왕은 모든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어리석지 않다. 다만 이 가운데서 지혜로운 사람만이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내 한 사람의 힘만으로도 이 백만(百萬) 무리들을 쳐부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렇게 하면 이 중생들이 수없이 죽어갈 것이다. 내 한 몸 때문에 여러 세상 동안에 죄를 받을 수는 없다. 원한을 갚으면 원한은 끊이지 않는다. 이것은 옛날부터 있어온 법이다. 원한이 없으면 원한을 이길 수 있다. 이 법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다.'

  

모든 신하들은 장수왕과 그 부인을 네거리로 끌고 가서 그들의 몸을 네 동강을 내고, 그대로 버려 둔 채 제각기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장생 태자는 해질 무렵에 나무와 풀을 주워 모아 부모를 화장하고 떠나갔다.

  

범마달왕은 높은 누각[樓] 위에 올라가 멀리서 어린아이가 장수왕과 그 부인을 화장하는 것을 보고 측근 신하들에게 명하였다.

'저 애는 틀림없이 장수왕의 친척일 것이다. 너희들은 어서 가서 저 아이를 잡아오너라.'


모든 신하들이 미처 그를 잡으러 가기 전에 그 아이는 벌써 달아났다. 장생 태자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범마왕은 우리 부모를 죽였고, 또 우리 나라를 빼앗아 살고 있다. 내가 부모의 원수를 갚으리라.'


장생 태자는 곧 거문고를 잘 타는 스승에게 가서 말하였다.

'나는 이제 거문고 타는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거문고 타는 스승이 물었다.

'지금 너의 성(姓)은 무엇이며, 부모는 어디에 있는가?'

아이가 대답하였다.

'저에게는 부모가 없습니다. 저는 본래 이 사위성에 살았었는데, 우리 부모는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거문고 타는 스승이 말하였다.

'거문고 타는 법을 배우고 싶으면 배우도록 해라.'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장생 태자는 곧 거문고 타는 기술과 노래 곡조를 배웠다. 장생 태자는 본래 총명(聰明)하여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 거문고 타는 기술과 노래 곡조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 때 장생 태자는 거문고를 안고 범마달왕의 처소에 있는 코끼리 외양간으로 가서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혼자 거문고를 타면서 또 청아한 노래를 불렀다.

  

 범마달왕은 높은 누각 위에서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곁에 있는 신하에게 물었다.

'저 아이는 어떤 사람이기에 코끼리 외양간에서 혼자서 거문고를 타고 노래를 부르면서 저렇게 놀고 있는가?'

신하가 대답하였다.

'이 사위성에 사는 어떤 아이가 혼자서 거문고를 타면서 저렇게 노래를 부르며 놀고 있습니다.'

왕이 시자(侍者)에게 말하였다.

'너는 저 아이에게 명하여 여기 와서 놀게 하여라. 내가 저 아이의 노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 시자는 곧 아이를 불러 왕이 있는 곳으로 오라고 하였다. 범마달왕이 아이에게 물었다.

'네가 어제 밤에 저 코끼리의 외양간에서 거문고를 탔느냐?'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범마달이 말하였다.

'너는 지금 내 곁에서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어보아라. 내가 너에게 의복과 음식을 대주리라.'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때 장생 태자는 범마달의 앞에서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그 솜씨는 매우 절묘하였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범마달왕은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장생 태자에게 말하였다.

'이제부터 너는 나를 위해 내 보물창고를 지키도록 하여라.'

  

그러자 장생 태자는 왕의 분부를 받은 뒤로 한 번도 실수가 없었으며, 그는 항상 왕의 뜻을 따라 먼저 웃어 보이고 뒤에 말하되 늘 왕의 뜻을 먼저 알아차리곤 하였다.


범마달왕이 다시 명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는 사람됨이 매우 총명하다. 나는 다시 너에게 명한다. 너는 이 궁중 안의 일을 모두 책임지고 알아서 처리하라.'


장생 태자는 궁중 안에 있으면서 거문고 타는 기술과 노래 부르는 법을 모든 기녀들에게 가르치고, 또 코끼리 타는 법과 말 타는 기술을 가르치는 등 무슨 일이든 모르는 것이 없었다.


어느 날 범마달은 공원 관사에 나가 서로 즐기면서 놀고 싶어서 장생을 명하여 보배 깃털로 만든 수레를 정비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장생 태자는 곧 왕의 분부를 받고 곧 깃털로 만든 수레를 준비하고, 금(金)과 은(銀)으로 만든 안장(鞍裝)과 굴레를 코끼리에게 씌워 수레를 장식하였다. 그는 왕에게 돌아와 아뢰었다.

'수레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왕은 때를 아소서.'

  

범마달왕은 보배 깃털로 만든 수레를 타고 장생을 시켜 수레를 몰게 하고, 네 부류의 군대를 거느리고 갔다. 장생 태자가 수레를 몰고 앞서 가면서 늘 대중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범마달왕이 장생 태자에게 물었다.

'지금 군사들은 어디에 있는가?'

장생이 대답하였다.

'신은 군사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잠깐 멈추어라. 내가 지금 몹시 피로하여 조금 쉬고 싶다.'

장생 태자는 곧 수레를 멈추고 왕을 쉬게 하였다. 그 당시는 군사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때 범마달왕은 곧 장생 태자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었다. 장생 태자는 왕이 잠든 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왕은 나의 큰 원수이다. 나의 부모를 죽였고 우리 나라를 빼앗아 살고 있다. 지금 원수를 갚지 않으면 언제 그 원수를 갚을 수 있겠는가? 내가 이제 저 왕의 목숨을 끊어놓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그는 오른손으로 칼을 빼고 왼손으로 그 머리카락을 잡았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하였다.

'아버지께서 임종하실 때에 나에게 타이르기를 (장생아, 너는 꼭 알아야 한다. 남의 장점(長點)도 보지 말고 또 남의 단점(短點)도 보지 말라)고 하시면서 다시 게송을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그치지 않나니

  옛날부터 이런 법이 있어왔다.

  원한을 없애면 원한을 이기나니

  이 법은 영원히 변치 않는 법이다.


내 이제 이 원수를 용서해야 하겠다.'

  

이와 같이 생각하고는 곧 칼을 도로 꽂았다. 이렇게 두 번 세 번 되풀이하다가 다시 생각하였다.

'이 왕은 나의 큰 원수이다. 나의 부모를 죽였고 우리 나라를 빼앗아 살고 있다. 지금 원수를 갚지 않으면 언제 그 원수를 갚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 지금이야말로 내가 바로 이 원수의 목숨을 끊을 절호의 기회이다. 그래야만 원수를 갚는 것이 된다.'

  

다시 부왕(父王)께서 당부하셨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너 장생아, 너는 부디 남의 장점도 보지 말고 남의 단점도 보지 말라.'

또 부왕의 이런 분부도 생각났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그치지 않는다. 옛날부터 이 법은 있어온 것이다. 원한을 없애면 원한을 이긴다. 이 법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다.'

  

이렇게 당부하셨으니 나는 지금 이 원한을 버려야 하겠다. 그리고는 곧 칼을 도로 꽂았다. 그때 범마달왕은 장수왕의 아들 장생 태자가 자기를 잡아죽이려고 하는 꿈을 꾸고 몹시 놀라 이내 잠에서 깨었다.

  

장생 태자가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무슨 일로 그렇게 놀라 깨셨습니까?'

범마달왕이 대답하였다.

'좀 전에 내가 잠을 자고 있었는데 꿈에 장수왕의 아들 장생 태자가 칼을 빼어 나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 때문에 놀라 깨었다.'


그러자 장생 태자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 이 왕은 내가 장생 태자인 줄 이미 알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고는 곧 오른손으로 칼을 빼고 왼손으로 그 머리카락을 잡고 왕에게 말하였다.

'내가 바로 장수왕의 아들 장생 태자이다. 왕은 곧 나의 큰 원수이다. 내 부모를 죽이고 우리 나라를 빼앗아 살고 있다. 지금 원수를 갚지 않으면 앞으로 언제 갚겠는가?'

  

그러자 범마달왕이 장생 태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내 목숨은 네 손 안에 있다. 부디 용서하여 내 목숨을 살려다오.'

장생이 대답하였다.

'내가 왕을 용서하여 살려 줄 수는 있겠지만 왕은 내 목숨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왕이 장생에게 말하였다.

'제발 나를 살려 다오. 내가 결코 너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장생 태자와 왕은 서로 목숨을 살려주고 끝내 서로 해치지 않기로 맹세하였다.

  

비구들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때 장생 태자는 왕을 살려 주었다.

그러자 범마달왕이 장생 태자에게 말하였다.

'원하건대 태자야, 나와 함께 성으로 돌아가자. 어서 보배 깃털로 만들어진 수레를 준비하여 국내로 돌아가자.'

 

그러자 태자는 수레를 준비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함께 보배 깃털로 만들어진 수레를 타고, 사위성으로 돌아왔다.

  

범마달왕은 곧 여러 신하를 모아놓고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그대들이 장수왕의 아들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 중의 어떤 대신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마땅히 수족(手足)을 끊어버리겠습니다.'

  

다른 한 대신은 이렇게 말하였다.

'마땅히 그의 몸을 세 동강으로 내겠습니다.'

  

또 다른 한 대신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마땅히 잡아죽이겠습니다.'


이때 장생 태자는 왕의 곁에 앉아서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장차 다가올 말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범마달왕은 직접 장생 태자를 붙잡고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이 장수왕의 아들 장생 태자이다.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니 그대들은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왜냐 면 장생 태자는 내 목숨을 살려주었으므로 나도 또한 이 사람의 목숨을 살려 주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러자 모든 신하들은 이 말을 듣고 일찍이 보지 못했던 일이라고 찬탄하였다.

'이 왕과 태자는 참으로 기이한 일이며 매우 특이한 일이다. 능히 원수에 대해서 원수를 갚지 않는구나.'

  

범마달왕이 장생에게 물었다.

'너는 충분히 나를 죽일 수 있었는데, 왜 나를 놓아주고 죽이지 않았느냐?

그 이유가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다.'

장생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시여, 잘 들으십시오. 부왕(父王)께서 임종하실 때에 저에게 말하기를 (너는 남의 장점도 보지 말고, 또 남의 단점도 보지 말아라)라고 하셨고, 또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그 원한은 쉬지 않는다. 이 법은 옛날부터 있어왔던 것이다. 원한을 없애면 원한을 이긴다. 이 법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많은 신하들은 그 태자의 부왕이 말했다는 말을 듣고 모두들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이 왕의 말은 현혹하는 말이다. 장생이란 어떤 사람인가?)

  

그러자 장수왕은 대답하였습니다.

(그대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가운데 지혜로운 사람은 나의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으므로 나는 아버지의 이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의 목숨을 살려준 것입니다.'

  

범마달왕은 이 말을 듣고 나서, 그가 한 일이 매우 기특하다 하고 일찍이 보지 못했던 일이라고 찬탄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능히 돌아가신 아버지의 명령을 지켜 잊어버리지 않았구나.'


범마달왕이 태자에게 말하였다.

'네가 지금 말한 이치를 나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제 나를 위해 그 이치를 설명하여 나로 하여금 이해하게 하라.'

장생 태자가 대답하였다.

'대왕이시여, 잘 들으십시오. 제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범마달왕께서 장수왕을 잡아 죽였을 때에, 만일 장수왕에게 본래부터 아주 친한 신하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다시 왕을 죽일 것입니다. 또 만일 범마달왕의 신하가 있다면 그들은 또 장수왕의 신하들을 죽일 것이니, 이것을 일러 원한과 원한은 마침내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원한을 끊어버리려면 오직 남에게 원한을 갚지 않는 것뿐입니다. 나는 지금 이런 이치를 관찰하였기 때문에 왕을 해치지 않은 것입니다.'

 

범마달왕은 이 말을 듣고 나서 매우 기뻐 뛰면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 왕태자는 매우 총명하여 충분히 그런 이치를 자세히 설명한다.'

 

범마달왕은 곧 장생 태자를 향해 이렇게 참회(懺悔)하였다.

'장수왕을 죽인 것은 내 죄이다.'

그리고는 천관(天冠)을 벗어서 장생에게 주어 쓰게 하고 다시 딸을 주어 아내로 삼게 하고는, 사위국과 그 나라 백성들을 모두 되돌려주어 장생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였다. 그리고 왕은 곧 바라내(波羅▩)로 돌아가 그 나라를 다스렸다.

  

비구들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옛날의 모든 왕들에게는 이런 떳떳한 법이 있어서, 비록 나라를 두고 다투는 일이 있었어도 오히려 서로 참고 견디어 해치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하물며 너희 비구들은 견고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도를 배우면서, 탐욕·성냄·어리석은 마음을 버려야 하겠거늘, 이제 다시 서로 다투어 화순(和順)하지 않고 저마다 서로들 참을 줄을 모르며 참회하여 고치지 않는구나.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이런 이치를 보고 싸움이란 옳지 못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동일한 스승의 제자요, 물과 젖과 똑 같은 처지이다. 부디 서로 싸우지 말라."

  

세존께서 곧 이런 게송을 말씀하셨다.


  싸움이 없고 다툼이 없이

  자애로운 마음으로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

  일체 중생을 괴롭히지 않는 것을

  모든 부처님께서 칭찬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아, 마땅히 인욕(忍辱)을 수행하도록 하라.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구심(拘深) 비구가 세존께 아뢰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그런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은 저희들이 꼭 알아야 할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비록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그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곧 그를 버려두고 발기국(跋耆國)으로 떠나가셨다.

  

그 당시에 발기국에는 세 족성자(族姓子)가 있었으니, 아나율(阿那律)·난제(難提)·금비라(金毗羅)였다. 그 족성자들은 함께 규칙을 정하였다. 만일 어떤 사람이 걸식(乞食)하러 나가면 그 뒤에 남아 머물러있는 사람은 물을 뿌려 땅을 쓸고 깨끗하게 청소를 하는 등 무슨 일이든지 하나도 빠짐 없이 하고, 밥을 얻어 오는 사람은 머물러 있던 사람들과 서로 나누어 먹되, 넉넉하면 좋겠지만 좀 모자라면 마음대로 가기로 하고, 만약 남은 것이 있으면 그릇에 담아 다른데 버리기로 하였다. 또 만일 맨 마지막에 밥을 빌어 오는 이가 있어 풍족하면 좋겠지만 좀 모자라면 그릇에 있는 밥을 가져다가 발우에 채워두자고 하였다.

  

곧 물병을 가져다가 한곳에 두기로 하고 또 날마다 집을 소제하기로 하였다. 다시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서는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생각을 매어 앞에 두고 묘한 법을 생각하자고 하였다. 그들은 또 끝내 서로 이야기하지 말고 각기 잠자코 있기로 하였다.

  

존자 아나율이 탐욕(貪欲)은 깨끗하지 못한 것이라고 관찰하여, 생각이 기쁘고 편안하게 되어 첫 번째 선정에서 놀았다. 난제와 금비라도 아나율이 마음 속으로 생각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곧 탐욕은 깨끗하지 못한 것이라고 관찰하여, 생각이 기쁘고 편안하게 되어 첫 번째 선정에서 놀았다. 만일 또 존자 아나율이 두 번째 선정, 세 번째 선정, 네 번째 선정을 생각하면, 그 때 존자 난제와 금비라도 두 번째 선정, 세 번째 선정, 네 번째 선정을 생각하였다.

  

또 만일 존자 아나율이 공처(空處)·식처(識處)·불용처(不用處)·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를 생각하면, 존자(尊者) 난제도 공처·식처·불용처·유상무상처를 생각하였다. 만일 또 존자 아나율이 멸진정(滅盡定)13)을 생각하면, 존자 난제와 금비라도 멸진정을 생각하였다. 그들은 이와 같은 모든 법(法)들을 다 생각하였다.

  

그 당시에 세존께서는 사자원(師子園)으로 가셨다. 동산을 지키던 사람은 멀리서 세존이 오시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사문(沙門)께서는 이 동산 안으로 들어오지 마시오. 왜냐 하면 이 동산에는 세 족성자가 있소. 그들의 이름은 아나율·난제·금비라입니다. 부디 시끄럽게 굴지 마시오."


그때 존자 아나율은 깨끗한 천안(天眼)과 청정한 천이통(天耳通)으로, 동산지기가 세존에게 그런 말을 하여 세존을 동산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을 들었다. 존자 아나율이 곧 밖으로 나아가서 문지기에게 말하였다.

"막지 말아라. 세존께서 지금 여기 오시고 계신다.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뵙고 싶다."


아나율이 곧 안으로 들어가 금비라에게 말하였다.

"빨리 나오시오. 세존께서 지금 문 밖에 와 계십니다."

그러자 존자 세 사람은 곧 삼매(三昧)에서 일어나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의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서서 제각기 칭송하며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존자 아나율은 앞으로 나아가 세존의 발우를 받고, 존자 난제는 앞으로 나아가 자리를 펴고 존자 금비라는 물을 가져다 세존의 발을 씻어드렸다.


세존께서 아나율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세 사람은 이곳에 있으면서 서로 화합(和合)하여 다른 생각이 없고 걸식도 마음대로 잘 되느냐?"

아나율이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걸식하기는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왜냐 하오면, 만일 제가 첫 번째 선정을 생각하면 난제와 금비라도 첫 번째 선정을 생각하고, 만일 제가 두 번째·세 번째·네 번째 선정과, 공처·식처·불용처·유상무상처와 멸진삼매를 생각하면, 그 때 난제와 금비라도 또한 첫 번째 선정·두 번째·세 번째·네 번째 선정과, 공처·식처·불용처·유상무상처와 멸진삼매를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런 법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아나율아, 너희들은 혹 그 때에도 또한 상인(上人)의 법을 얻느냐?"

아나율이 대답하였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다시 상인의 법을 얻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상인의 법이냐?"

아나율이 대답하였다.

"이러한 묘한 법이 있는데 그게 바로 상인의 법입니다. 또 저희들은 자애로운 마음을 1방에 두루 채우고, 다시 2방·3방·4방·4유(維)·상하까지도 또한 그렇게 하며, 일체 중생 모두에게까지 자애로운 마음을 두루 채워 수없이 많고 한량없이 많으며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유희(遊戱)하고 있습니다. 다시 가엾이 여기는 마음·기뻐하는 마음·보호하는 마음을 1방에 두루 채우고, 2방·3방·4방·4유·상하에까지도 그렇게 하며 스스로 유희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을 일러 '저희들이 다시 상인의 법을 얻었다'라고 말합니다."

 

존자 난제와 금비라가 아나율에게 말하였다.

"우리들이 어느 날 그대에게 가서 그런 이치를 물었기에 지금 세존의 앞에서 스스로 그렇게 말하십니까?"

아나율이 말하였다.

"그대들은 예전에 나에게 와서 그 이치를 물은 일이 없다. 다만 모든 하늘이 나에게 와서 그 이치를 말하였다. 그런 까닭에 나는 세존의 앞에서 그 이치를 말하였을 뿐이다. 다만 나는 오랜 세월 동안 그대들의 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대들도 그 삼매를 얻었기 때문에 세존의 앞에서 이렇게 말하였을 뿐이다."

  

이 법을 말할 때에 장수(長壽) 대장(大將)이 세존께 찾아와서 머리를 조아려 그의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장수 대장이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오늘 이 사람들을 위해 설법하셨습니까?"


세존께서는 지금까지 있었던 사실들을 장수 대장에게 자세하게 말씀하셨다. 


그러자 대장이 세존께 아뢰었다.

"이 발기국은 통쾌하게도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이 아나율·난제·금비라, 세 족성자가 스스로 놀면서 교화하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대장이여. 네 말과 같다. 발기국은 대단한 이익을 얻었다. 발기국은 고사하고 마갈타(摩竭陀)도 유쾌하게 좋은 이익을 얻었다. 그것은 곧 이 세 족성자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마갈타 대국(大國)의 백성들로서 이 세 족성자를 잘 기억한다면 언제나 편안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대장이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일 현(縣)·읍(邑)·성곽(城郭) 안에 이 세 족성자가 있으면 그 성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편안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족성자가 태어난 집도 큰 이익을 얻을 것이요, 나아가서는 이 거룩한 사람을 낳은 부모들이나 다섯 친척들까지도 만약 이 세 사람을 기억하면 역시 큰 이익을 얻을 것이다. 


또 하늘·용·귀신들도 이 세 족성자를 기억하면 아주 큰 이익을 얻을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아라한을 찬탄하여 말하면 그것은 또 이 세 사람을 찬탄하는 것이고, 만일 어떤 사람이 탐욕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으며 성냄이 없는 사람을 찬탄하면 그 또한 이 세 사람을 찬탄하는 것이며, 만일 어떤 사람이 복밭[福田]을 찬탄하면 그 또한 이 세 사람을 찬탄하는 것이다.

  

나는 3아승기겁(阿僧祇劫) 동안 부지런히 애써 위없는 도[無上道]를 성취하여, 이 세 사람으로 하여금 이 법을 이루게 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대장이여, 마땅히 이 세 족성자에 대하여 기뻐하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 대장이여,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대장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1) 팔리어로는 Ghositarama라고 한다. 번역하여 미음정사(美音精舍)라고도 하는데, 이는 구사라 장자가 석존(釋尊)께 보시한 원림(園林)이다.


[ 9 ]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3결사(結使 : 번뇌)가 있어서 중생들을 얽어매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가지 못하게 한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몸에 대한 그릇된 소견[身見]과 계율에 대한 그릇된 소견[戒禁取見]과 의심[疑]을 일컫는 말이니라.

  

어떤 것을 몸에 대한 그릇된 번뇌[邪結]라고 하는가? 

몸이 곧 나라고 헤아려 나라는 생각을 내고, 중생(衆生)이라는 생각을 가져 명(命)이 있고, 수(壽)가 있으며, 사람이 있고 사부(士夫)가 있으며, 인연이 있고 집착함이 있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일러 몸에 대한 그릇된 소견의 결박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의심의 번뇌[疑結]라고 하는가? 

'나라고 하는 것이 있는가, 나라고 하는 것이 없는가? 생(生)이 있는가, 생이 없는가? 나라고 하는 것·남이라고 하는 것·수명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가, 나라고 하는 것·남이라고 하는 것·수명이라고 하는 것이 없는가? 부모라고 하는 것이 있는가, 부모라고 하는 것이 없는가? 금생(今生)과 후생(後生)이 있는가, 금생과 후생이 없는가? 사문(沙門)과 바라문(婆羅門)이 있는가, 사문과 바라문이 없는가? 세상에 아라한이 있는가, 세상에 아라한이 없는가? 증득한 이가 있는가, 증득한 이가 없는가?'라고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니, 이것을 일러 의심의 번뇌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계(戒)에 대한 그릇된 소견이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나는 장차 이 계를 지킴으로써 큰 족성의 집안에 태어나고, 장자(長者)의 집안에 태어나며, 바라문의 집안에 태어나고, 혹은 천상(天上)이나 여러 신(神)의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계에 대한 그릇된 소견이라고 하느니라.

  

비구들아, 이것이 이른바 '3결사(結使)가 있어서 중생들을 얽어매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마치 두 마리 소가 한 멍에 속에서 끝내 서로 떨어지지 못하는 것처럼, 이 중생들도 다 그와 같아서 3결사에 얽매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가지 못하느니라.

  

어떤 것이 이 언덕이며, 어떤 것이 저 언덕인가? 

이 언덕이라고 말하는 것은, 몸에 대한 그릇된 소견이 바로 그것이요, 저 언덕이라고 말하는 것은 몸에 대한 그릇된 소견이 사라져 없어진 것을 말한다. 


비구들아, 이것을 일러 '3결(結)이 중생을 얽어매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가지 못하게 한다'고 하는 것이니라.

  

그런 까닭에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방편을 구해 이 3결을 없애도록 해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10 ]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삼매(三昧)가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공삼매(空三昧)·무원삼매(無願三昧)·무상삼매(無想三昧)이다.

  

어떤 것을 공삼매라고 하는가? 

공(空)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법은 다 공허(空虛)한 것이라고 관(觀)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공삼매라고 말한다.

  

어떤 것을 무상삼매라고 하는가? 

무상(無想)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법은 조금도 생각할 것이 없고 또한 볼만한 것도 없다고 관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무상삼매라고 말한다.

  

어떤 것을 무원삼매라고 하는가? 

무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법을 구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무원삼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비구들아, 만일 이 세 가지 삼매를 얻지 못하면, 오래도록 나고 죽음에 있으면서 스스로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아서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방편을 구해 이 세 가지 삼매를 얻어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당기[幢]·비사(毗舍)·법왕(法王)과

  구묵(瞿默)과 신통의 교화[神足化]와

  재계(齋戒)·현재전(現在前)과

  장수(長壽)·결(結)·삼매(三昧)에 대해 설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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