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서천 28대로 계계상승(繼繼相承)한 법등(法燈)은 달마스님을 효시(嚆矢)로하여 동토(東土)에서 그 빛을 밝히고, 장차 한 꼿이 다섯 잎이 피어날[一花開五葉] 씨앗을 비로소 뿌리시니, 이것이 달마정전(達磨正傳)의 원류(源流)입니다. 이 법은 6대로 면면히 전하여 6조 혜능대사에 이르러 그 큰 꽃을 피우니, 아래로 남악(南嶽)스님과 청원(靑原)스님의 양대맥을 이루고, 다시 오가칠종(五家七宗)이 벌어져서 천하에 울창한 대선림(大禪林)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남악스님 아래서 천하 사람을 답살(踏殺)한 한 망아지가 나왔으니 그 분이 마조(馬祖)대사로서 백장(百丈)스님이 그 법을 잇고 다음으로 이 <전심법요>의 설법자인 황벽(黃檗)선사가 나왔으며, 그 아래로는 조석(祖席)의 영웅으로 칭송되는 임제(臨濟)선사가 출현하여 임제종의 종조(宗祖)가 된 것입니다.
달마선종(達磨禪宗)이라고 하면 한 마음의 법[一心法]을 말한 것이니, 이른바 '문자를 세우지 않고 교 밖에 따로이 전한 것[不立文字敎外別傳]'이며,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는 것입니다.
<전심법요>는 그 내용에서 달마선종의 정통사상과 육조스님께서 말씀한 식심견성(識心見性)의 돈교법문(頓敎法門)을 가장 투철하고 명료하게 설파한, 종문(宗門)의 대표서라고 예로부터 일컬어온 어록입니다.
일반적으로 <전심법요>라고 하면 <완릉록>을 포함하여 일컫는데, 그 상부를 <황벽단제선사 전심법요> 하부를 <황벽단제선사 완릉록>으로 나누어 부릅니다.
대사의 재속(在俗) 제자인 배휴(裴休 797-870)가 그의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그가 강서(江西)의 종릉(鍾陵)에 관찰사로 재임할 때인 회창(會昌) 2년(842)에 용흥사(龍興寺)에서 대사께 문법하던 것을 필록(筆錄)하여 두었다가, 대사께서 입적하고 난 다음 그 대강을 대사의 문인들에게 보내어 청법(聽法) 당시의 장노(長老)들과 대중의 증명을 얻어서 세상에 유포시킨 것입니다. 배휴가 서문을 쓴 해가 대중(大中) 11년(857)이므로, 대사께서 입적한 지 2-3년 뒤로 추정됩니다.
<전심법요>는 배휴 자신이 종릉과 완릉 두 곳에서 문법하던 것을 직접 기술한 것이며, <완릉록>은 배휴가 완릉의 개원사에서 문법하던 기록을 기저(基底)로하여 뒤에 시자들 측에서 엮은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그것은 <전심법요>에서는 배휴 자신의 이름으로 직접 쓰고 있으나, <완릉록>에서는 "배상공이 운운..." 하면서 시종일관 제3인칭으로 기술한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완릉록>에서는 <전심법요>의 내용과 더러 중복된 부분이 있음을 보게 되는데, 그 후반부 "대사는 본시 민현의 사람이다[師本是 中人]"로부터는 옛 유통본에는 본래 없던 부분으로서 전반부보다 분량이 더 많으며, 당 대중년간(848-859)에 또 다른 사람에 의하여 추가로 기술된 것으로 사료됩니다.
여기에서는 대사의 출생 및 출가 인연에 관해서 짤막하게 언급하고 있으며, 대사께서 초기에 천태(天台)에서 노니시던 일과 귀종(歸宗) 염관(鹽官) 남전(南泉) 등의 선사들을 찾아 제방을 역방(歷訪)하면서 문답하고 거량(擧揚)하던 대사의 기봉(機鋒)과 기연(機緣)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한 배휴가 홍주 개원사에서 벽화를 보고 거량하다가 개오(開悟)한 사유를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후반부는 송나라 원풍(元 ) 8년(1085)에 편찬되었다가 명나라 만력(萬曆) 17년(1589)에 재편된 <사가어록(四家語錄)]에 실려 있는 것입니다.
여기 번역에 사용한 원본은 명본(明本) <4가어록> 가운데 제4권<황벽단제선사전심법요> 및 제5권<황벽단제선사완릉록>을 모본으로 삼아 번역하였습니다. 원풍 8년판의 <4가어록>에는 <완릉록>의 전반부밖에 실려있지 않았으나, 명나라 때 재편하면서 <천성광등록(天聖廣燈錄)] 제8권에서 그 후반부를 옮겨 증보(增補)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4가어록>은 일명 <마조4가록>이라고도 일컫는 바, 곧 마조, 백장, 황벽, 임제 등 조계정전(曹溪正傳)의 4대(代) 조사 스님의 어록을 함께 엮은 어록으로서 임제종황룡파(黃龍派)에서 자가(自家)의 종지종통(宗旨宗統)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편찬-유포시킨 것이며 종문의 가장 핵심적인 어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광서(光緖) 9년(1883) 감로사(甘露社)에서 <법해보벌(法海寶筏)> 가운데 <전심법요>와 <완릉록>을 포함시켜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 유통본은 융희(隆熙) 원년(1907) 운문사(雲門寺)에서, 그리고 융희 2년(1908) 범어사(梵魚寺)에서 간행된 <선문촬요(禪門撮要)> 상권에 <전심법요>와 <완릉록>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서도 역시 <완릉록>의 후반부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황벽스님의 법문들은 <조당집(祖堂集)> 권16,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9, <송고승전(宋高僧傳)> 권20, <천성광등록(天聖廣燈錄)> 권8,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 권2,3, <4가어록(四家語錄)> 권4,5, <오등회원(五燈會元)> 권4, <지월록(指月錄)> 권9 등에 단편적이고 부분적이면서 내용이 서로 다르게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명나라 때 증보 재편된 <4가어록>은 <전심법요>와 <완릉록>의 교재로서는 가장 완벽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심법요>의 유통본은 지금까지 체제와 내용에서 크게 변질됨이 없이 유행되어 왔으나, 다만 결미(結尾)의 "어떻게 하여야 계급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如何得不落階級]" 이후의 한 단이 <4가어록>에서는 <완릉록>의 결미로 옮겨 싣고 있는 점이 다릅니다.
다음으로 황벽스님과 배휴와의 관계 및 대중황제와의 인연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황벽스님 말년의 교화 시기는 당 무종의 회창법란(會昌法難)이 자행되던 때(842-845)로서, 당시 장안과 낙양에는 각각 4개 사찰만을, 각 주에는 1주에 1개 사찰만을 남기고 모조리 폐사시켰으므로 모든 승려들은 자연히 산곡에 은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이런 관계 때문에 사실상 대사의 말년의 행리(行履)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배휴는 당시 지방장관으로 재직하다가 선종(대중황제)이 즉위하고 나서 조정의 상공(相公) 벼슬에 올라 중앙행정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완릉록>에서 보인 바처럼 홍주(洪州) 개원사(開元寺)에서 벽화를 보고 황벽스님에게 거량하던 중, 황벽스님이 "배휴야!"하고 부르자 배휴가 "예!"하고 대답하니 대사가 "어느 곳에 있는고?" 하는 말 끝에 깨치고 이 기연으로 대사의 재속제자(在俗弟子)가 된 것입니다.
그는 대사뿐만 아니라 위산 영우( 山靈祐)선사에도 귀의 하였으며, 화림 선각(華林善覺)과도 교분이 있었고, 규봉 종밀(圭峰宗密)과는 도연(道緣)이 깊었습니다. 배휴가 종릉, 완릉 두 곳에서 대사를 모시고 조석으로 문법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그 문답 내용을 필록하여 둔 것을 대사의 입멸 후 광당사(廣唐寺)의 옛 법중(法衆)의 증명을 얻어 세상에 유포시킨 것이 <전심법요>인 것입니다. 이처럼 배휴라는 훌륭한 필록자를 얻음으로서 황벽스님의 법문이 세상에 크게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중 황제는 본시 당 헌종(憲宗)의 아들로서 어려서부터 영특하였는데, 열 세 살 때 형 목종(穆宗)의 용상에 올라가 장난삼아 좌하의 신하들을 읍(揖)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뒷 날 동생의 아들인 무종(武宗)으로부터 빈척( 斥)을 당하여 사지(死地)에서 구출되어 입산하고, 향엄지한(香嚴智閑) 선사 밑에서 사미가 되었다가 나중에 염관 제안(鹽官齊安)선사 회하에서 서기(書記)를 보았습니다.
당시 황벽스님은 수좌(首座)로 있었는데, 하루는 불전(佛殿)에 예배하는 대사께 대중사미가 뒤에서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아니하고..."하는 물음으로 거량하다가 대사로부터 뺨을 두 차례 얻어맞았습니다. 뒷날 대중사미는 당나라 황제가 되었는데 그가 제 16대 선종(宣宗)입니다. 선종은 앞날의 일을 생각하고 대사께 '추행사문(추行沙門)'이란 호(號)를 내렸는데, 당시 상공으로 있던 배휴의 주청(奏請)에 의하여 '단제선사(斷際禪師)'로 개호(改號)하였던 것입니다. 대중황제는 전제(前帝)인 무종이 폐불(廢佛)을 한 탓으로 조정의 위신이 실추된 것을 다시 일으키는 데 노력하였으며, 불교를 중흥시킨 공로가 컸습니다.
<전심법요>는 구사하고 있는 언어들이 간명하고도 평이하며 격외언구(格外言句)의 고준(高峻)한 말들을 사용치 않으면서도 선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선(禪)의 개론서로서의 성격뿐만 아니라 조계정전의 정통 선사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긴요한 어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계의 원류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이 <전심법요>를 통한 황벽스님의 문정(門庭)을 통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佛紀 2532年 端午節 해인사 백련암(海印寺 白蓮庵) 백련선서간행회(白蓮禪書刊行會) 圓澤 和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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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벽 희운 선사는 당나라 때의 걸출한 선승으로서 육조혜능-남악회양-마조도일-백장회해로 이어지는 법을 전해 받아 임제종의 시조인 임제의현에게 전해주었다. 중국의 현 복건성 복주 사람으로 복주의 황벽산에서 출가하였고 그후 백장회해의 제자가 되어 가르침을 받았다. 대안사와 용흥사, 개원사에서 주석하며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했다. 단제선사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경덕전등록, 오등회원, 조당집 등에 선사의 행적이 실려있다.
이 책은(황벽어록)은 상국 배휴가 기록한 전심법요와 완릉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짧은 대화나 간단한 법어를 수록한 대개의 선어록과 달리, 황벽선사의 가르침을 기록한 전심법요와 완릉록은 길고 쳬게적인 대화와 상세한 법어를 싣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황벽선사의 어록은 육조혜능에게서 비롯되고 마조도일과 백장회해를 통해 정립된 조사선의 가르침을 자세하고 분명하게 전하고 있어 후대에 조사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뒷날 임제종의 황룡해남이 중국 조사선의 황금시대를 누렸던 마조, 백장, 황벽, 임제 등 4명 선사의 어록을 모아 사가어록을 간행하여 임제옹의 종지를 전하는 전거로 삼았는데, 황벽선사의 어록인 전신법요와 완릉록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완릉록에는 성철스님의 말씀으로 유명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구절이 있고, 조계종 종지인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는 표현도 전심법요에 처음 등장한다. 오직 한 개 마음뿐이다. 황벽선사와 오랜 세월 문답을 주고 받은 배휴는 전심법요의 서문에서 말하길 "일심(一心)만을 오로지 전했을 뿐, 다시 다른 법은 없으셨다."고 했다. 이 말을 뒷받침하듯이 전심법요는 이렇게 시작된다.
"모든 부처와 모든 중생들이 오로지 한 개 마음이고, 다시 다른 법은 없다. 지금 이대로가 곧장 이것이니 생각을 움직이면 어긋난다. 마치 허공과 같아서 테두리가 없으니 헤아릴 수 없다." 또 말한다.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니, 부처가 곧 중생이다. 중생일 때에도 이 마음은 줄어들지 않고, 부처일 때에도 이 마음은 불어나지 않는다. 나아가 육도만행과 강바닥 모래알같이 많은 공덕을 보내 다 갖추고 있으니 수행에 의지하여 더할 필요가 없으며, 인연을 만나면 베풀고 인연이 사라지면 고요히 쉰다. 만약 이것이 부처임을 확실히 믿지 못하고, 모습에 집착하여 수행함으로써 효과를 바란다면, 모두 망상이어서 도와느느 어긋난다."
마조 선사가 말한 "이 마음이 곧 부처다(즉심시불)"를 이어받은 이 법문은 마음의 실상을 분명히 전하고 있다. 오로지 하나의 마음뿐이고, 이 마음이 부처이고 중생이며, 이 마음은 완전무결하여 수행을 통해 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 마음이 부처임을 믿지 못하고 모습에 집착하여 수행으로 다시 부처를 구하고자 하면, 오히려 더욱 잃는다고 말한다. "다만 중생은 모습에 집착하여 밖으로 구하니, 구할수록 더욱 잃는다. 부처로 하여금 부처를 찾게 하고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잡으려 하니,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더라도 끝내 얻을 수 없다."
구하면 더욱 잃을 뿐 아니라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더라도 끝내 얻을 수 없다니!. 그러면 구도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이 바른 길인가? 이 의문에 대한 선사의 대답은 더할 나위 없이 명쾌하다.
"이들 중생은 생각을 쉬고 헤아림을 잊는다면 부처는 저절로 앞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렇듯 선사는 전심법요의 첫머리에 이미 선의 정수를 다 밝혀주었다. 그러나 선을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가 무르익어 한 점 의혹이 없을 때까지 의문이 그치질 않기 마련이다. 이에 선사는 제자들과 문답으로, 상당시중으로, 몸짓 등으로 계속해서 법을 가리키며 마음의 실상을 자세히 밝혀준다.
<황벽어록>은 불자라면 누구나 궁금해 할 의문들에 대한 명쾌한 답변들이 수록돼 있어 선을 공부하는데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황벽어록> 김태완 지음. 침묵의 향기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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