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논문·평론

[불설 비불설 논쟁] 토론문화 드문 불교학계의 이변 - 안성두 교수

실론섬 2015. 9. 8. 22:07

권오민 경상대 철학과 교수가 「문학/사학/철학」(여름 제17호)에서 초기경전으로 일컬어지는 아함과 니까야 또한 대승경전과 마찬가지로 붓다의 ‘친설’로는 볼 수 없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이후 “니까야에는 ‘친설’이 담겨있다”는 팔리문헌연구소장 마성 스님을 비롯해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장, 황순일 동국대 교수 등과 권오민 교수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오고 갔으며, 조성택 고려대 교수도 “최초 경전 편찬은 구술이 아닌 문자에 의해 성립됐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런 가운데 이번에는 안성두<사진> 서울대 교수가 이번 논쟁에 대한 평가 등을 정리한 기고문을 보내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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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민 교수(이하 논자)의 「불설과 비불설」이란 논문을 둘러싸고 지난 두어 달간 법보신문의 지면을 통해 벌어진 불교학자들 간의 논쟁은 참으로 직접적인 논쟁문화가 드문 불교학계에서 하나의 이변으로 받아들여져도 좋을 것이다. 이 논쟁의 경과를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지켜보면서 필자가 받은 인상은 우리 학계가 얼마나 이런 종류의 진지한 문제제기와 이를 둘러싼 토론을 갈구해 왔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토론에 있어 질문 자체가 갖는 보다 긍정적 역할은 대답을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또 다른 질문을 유도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이번 논쟁과정에서 누구의 입장이 옳은가 하는 것은 부차적이며, 중요한 점은 이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이 각자의 견해를 그것이 논자의 입장에 대한 오해에 근거하든 또는 확장된 이해에 의거하든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풍토를 마련했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필자가 뒤늦게 이 논쟁에 대해 끼어든 이유는 논자의 문제제기에 대해 적어도 당시의 대승불교를 전공한 학도의 일인으로서 옳건 그르건 어떤 반응이라도 보이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전에 다시금 「불설과 비불설」을 몇 차례 반복해서 읽으면서, 재삼 논자의 원전읽기의 깊이와 이차문헌에 대한 폭넓은 독서에 대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실로 이 논문은 아비달마에 대한 논자의 오랜 학문적 연찬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역작으로서, 「경량부와 비유자의 의미와 관계」(2008), 「구사론에서의 경량부 (I)+(II)」(2009) 등의 논문에서 행했던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불설(佛說, buddha-vacana)이 논서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명쾌하게 논의하고 있다.


논자는 이제까지 그 난해함과 방대함으로 인해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텍스트의 하나로 간주되어 왔던 중현의 『순정리론』을 지렛대로 삼아 이전 시기에서 행해진 불설에 대한 논의가 가진 해석학적 함의를 풀어내고 있는데, 이런 과정에서 논자가 보여준 원전자료의 섭렵과 비판적 논의는 한국불교학계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고 해도 과찬은 아닐 것이다.


「불설과 비불설」의 논의를 통해 필자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불설의 논의가 오로지 대승불교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부파 내부에 있어서도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고 하는 논자의 지적이다. 논자가 말하고 있듯이 이 문제는 대승의 기원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한 시사를 준다. 대승의 기원이 대승경전의 편찬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불설로서의 ‘경(經)’을 ‘창작’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내부자적 시각에서 핵심적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논자의 주장은 대승의 기원과 관련해 논의지평을 확장하는 촉매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중복되는 점은 있겠지만 이 논문의 가치와 논점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먼저 논자의 설명을 간략히 요약하겠다.


필자가 논문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논자의 주장의 핵심은 세 가지 점에 있다. 

(1)불설은 석가모니불의 친설(親說)뿐 아니라 법성(法性)에 부합되는 가르침도 포함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불설이란 법성/도리에 부합되는 ‘잘 설해진 것(subhāsita)’의 측면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에게 전승된 체계로서의 아함이나 니카야는 특정한 학파소속성을 떠나서는 생각될 수 없다. 즉 각 학파에 의해 도리에 부합되는 것으로서 수용된 것이다.


(2)이러한 전승된 ‘성교(聖敎)’와 불설의 차이에 대한 인식은 이미 부파불교시기에 확정되었다. 양자의 차이는 이미 이종철 교수 등에 의해 지적되었지만, 상기논문의 가치는 이를 여러 텍스트 개소의 인용을 통해, 특히 세친과 동시대인인 중현의 『순정리론』을 통해 제시하고 증명하고 있다는 데 있다. 논자에 따르면 불설은 『대반열반경』에서의 네 가지 ‘위대한 교설’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후 경과 율에 따른다는 규정을 넘어 법성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새로운 기준을 도입함에 의해 주로 유부의 문헌에서 인(人)·문(文)·미요의경(未了義經)·지(知) 대신에 법(法)·의(義)·요의경(了義經)·지(智)에 의지해야 한다는 4의(四依)의 해석학적 작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즉 불설의 내용과 진리성은 역사적 붓다로서의 석가모니의 친설 여부가 아니라 그의 언어적 교설이 붓다의 원의도와 의미를 반영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으며, 그런 한에 있어 불설의 확정기준은 올바른 논리와 부합되는 것이다. 논자는 이 차이가 이미 유부아비달마 문헌에서도 당연한 것으로 전제되고 있었고, 대승의 선구자들도 이런 구별에 기본적으로 입각해서 대승불설론을 주창하고 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3) 이러한 중현의 유연한 입장과 대비되는 인물이 경량부의 조사 슈리라타이다. 논자에 따르면 슈리라타는 “부파에 의해 결집 전승된 성교(聖敎, āgama) 중에서 불타가 직접 설한 것만을 경(불설)으로 인정하였으며, 이에 따라 스스로 경량부라 호칭했을 것이다.” 『순정리론』의 진술에 의거해 경량부는 일종의 경전근본주의자의 관점을 가진 학파로 간주하면서 여기서 이 학파의 명칭도 나왔을 것이라고 보는 논자의 해석은 기존의 연구를 뛰어넘는 매우 창의적인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이 논문의 위험성(?)은 읽어가면서 너무나 논지가 뚜렷하기 때문에 원전과 비교해 논문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가지 않는 한 거의 논자의 주장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에 있다. 논자의 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해서는 그가 인용하는 여러 자료들, 특히 『순정리론』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지만, 범본이나 티베트역이 없는 이 논서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 때문에 이제껏 이 책을 들출 엄두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하겠다.


사실 그것이 어찌 필자뿐이겠는가? 논자가 지적하듯 이 시기의 아비달마사상을 전공한 학자들에게 있어서조차 이 논서를 본격적으로 연구에 반영한 이는 아마 오래전 타계한 사사키 겐쥰(佐佐木現順) 교수나 이 책의 심불상응법에 대해 연구했던 콕스(C. Cox)를 제외하고는 드물 것이다. 논자의 『순정리론』번역이 빨리 출간되기만을 학수고대할 뿐이다. 이하는 위의 세 가지 점과 관련해 논자와는 약간 다른 관점에서의 문제제기이다. 


논자는 『대반열반경』의 이본(異本) 중에서 “법상 중에 있는 것” 또는 “아비담과 상응해야 한다”는 규정을 첨가한 이본의 편찬연대가 후대일 경우라고 추정한다.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의 진행은 일반적이기 때문에 그의 추정에는 일면 타당성도 있지만, 법성이나 법상 등의 추가가 이본들의 학파소속성에서 유래한 것은 아닌가의 여부도 검토할 소지는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법성이나 법상 등과 부합된다고 할 때 그것은 후대에 편찬된 아비달마문헌의 내용과의 일치성을 말하기보다는 논모(論母, mātṛkā)의 내용과의 일치성을 가리키고 있다고 보인다. 경장의 편찬이 최초기 논모의 성립시기보다 시기적으로 앞선다고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논자는 도리 혹은 정리(yukti)를 법성의 동의어로 간주하지만 과연 이것이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불설의 확대된 정의에 포함되는 “법성에 위배되지 않는” 것으로서의 불설의 기준을 청변의 『중관심송』의 설명과 관련시켜 ‘도리=법성’의 방식으로 설명하는 데에서 두드러진다. 법성을 표현하는 정형구는 “붓다가 세상에 나건 나지 않건 그러한 것”이지만, 그러나 청변이 제시하고 있는 반대론자의 대승비불설의 근거는 “다른 도리를 설하기 때문”이다.


논자는 “청변이 불설/비불설의 판정기준으로 삼은 것은 정리(正理, yukti, nyāya)와 추론(anumāna)”이었고, 이를 다시 『중관심송』의 구절에 따라 부연설명하면서 “성전이 성전일 수 있는 것은 다만 ‘전해져 온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이론적 타당성을 갖는가, 갖지 않는가, 진실지와 해탈을 지향하는 논리적 사고와 상응하는가, 상응하지 않는가에 달려 있고” 이를 검토하는 방법이 추론이라고 말한다. 이런 논리에 따라 “잘 설해진 것이 불설”이라는 유부와 유식에서 확립된 경전관이 청변에게도 타당함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대승은 정리에 따른 성전과 모순되지 않기에 불설”이며, 따라서 “베단타의 말일지라도 올바르게 설해진 것은 모두 불설”인 것이다.


청변이 정리와 추론을 같은 차원에서 하나의 인식수단(量)으로 언급한 것은 전통적으로 인식수단을 직접지각(現量)과 추리 또는 성언량을 포함시켜 설명하는 방식에서 볼 때 분류상 조금 문제가 있다고 보이지만, 여기서 필자의 문제제기는 논자가 제시하는 ‘도리=법성’의 등식이 아니라 도리(道理, yukti)라는 단어의 의미 내지 외연이다.


유식학파에 따르면 도리는 법성과 동의어가 아니라 법성은 4종 도리의 하나에 포함될 뿐이다. 4종 도리란 관대(觀待)도리, 작용(作用)도리, 증성(證成)도리, 법이(法爾)도리로서, 마지막 법이도리가 즉 법성으로서의 이치를 말한다. 이 4종의 도리는 성문지를 위시한 여러 유식문헌에서 언급되고 있는데, 여기서 도리란 제법을 관찰하는 방법(yoga), 방편(upāya)으로 풀이되고 있다. 반면 도리가 추론과 같은 논증수단의 의미에서 사용되는 것은 세 번째 증성도리에 국한되고 있는데 그 의미는 ‘논거에 의해 증명하는 도리’이다. 성문지에 따르면 증성도리는 제법의 무상성 등의 불교적 진리를 신뢰할만한 전승을 얻은 사람, 직접지각, 추론의 세 가지 인식수단을 논거로 해서 논리적 증명을 행하는 것이다. 반면 법이도리란 “제법의 진실성을 [세간에서] 인정된 사물의 성질(법성)로서, 불가사의한 법성으로서, [수행자가] 안주하는 법성으로서 믿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도리=법성’의 등식은 외연관계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이며, 다만 이런 추론 등의 인식수단을 논거로 해서 법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중관학파에 속하는 청변의 경우 유식학파가 사용하는 도리의 개념을 달리 이해하고 사용했을 수도 있겠지만 논자가 인용하는 청변의 문장은 법이도리의 맥락이 아니라 증성도리의 맥락에서 불설의 진리성을 확정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논문의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가장 독창적 부분은 경량부의 상좌 슈리라타의 성전관과 유부의 그것과의 용해할 수 없는 차이점을 보여주면서 논자가 슈리라타를 경전근본주의자로 해석하는 점이다. 그렇지만 떠오르는 의문은 논자의 해석이 옳다면 그러한 경량부적인 엄격한 경전관으로부터 어떻게 ‘종자설’과 같은 ‘새로운’ 이론이 제안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더구나 경량부도 ‘독립된’ 학파로서 삼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들은 무엇에 의거해서 논장의 진리성을 확립할 수 있는지의 문제도 제기된다.


중국주석가들에 의해 경량부설로 귀속되는 『유가론』의 여러 이론 중에서 예를 들어 104 번뇌설은 적어도 『유가론』의 설명에 따르는 한 역시 번뇌를 삼계와 사제 및 견소단(見所斷), 수소단(修所斷)에 따라 분류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 분류틀은 슈리라타에 의해 부정되지 않았던가? 나아가 종자설이 알라야식 등의 유식학 이론의 발전에 끼친 결정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왜 현장은 슈리라타의 저작은 번역하지 않고 중현의 것을 번역했는가 하는 의문도 남는다.


하지만 이런 의문은 논문 전체의 취지에 비하면 극히 지엽적인 것이다. 논자의 불설에 대한 논의는 ‘어떻게 불교는 다양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이해하는데 있어 사사키 시즈카(佐佐木閑)의 교단사적 연구에 못지않은 중요한 포인트를 해명해 주고 있다. 논자가 논문의 ‘사족’에서 말하고 있듯이 ‘불교의 개방성’이야말로 학문적 차원에서는 물론 실천적 차원에서도 우리 시대 불교(학)의 가장 중대한 과제일 것이다. 이에 어떻게 응전하는가에 따라 불교학과 불교계의 앞날이 달려있을 것이다.



   안성두 서울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