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분별관법경(分別觀法經) 제 3 [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설법하리라. 그것은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며 마지막도 또한 묘하다.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청정을 구족하고 범행(梵行)을 나타낸다. 이를 분별관법경(分別六處經)이라 하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그러자 모든 비구들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이러이러한 관법이 있다. 너희들이 이렇게 관(觀)하고 나면, 비구들아, 너희들의 마음은 밖으로 나가 흩어지고, 마음이 안에 머무르지 못하며, 집착하지 않으면서 두려워하게 된다.
비구들아, 이러이러한 관법이 있다. 너희들이 이렇게 관하고 나면, 비구들아, 너희들의 마음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마음이 안에 머물고, 집착하지 않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하면 다시는 생 노 병 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을 고통의 끝이라 하느니라."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편안히 앉으셨다.
이에 비구들은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여러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세존께서는 이런 이치를 간략히 말씀하시고 자세히 분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편안히 앉으셨습니다.
(비구들아, 이러이러한 관법이 있다. 너희들이 이렇게 관하고 나면, 비구들아, 너희들의 마음은 밖으로 나가 흩어지고, 마음이 안에 머무르지 못하며, 집착하지 않으면서 두려워하게 된다. 비구들아, 이러이러한 관법이 있다. 너희들이 이렇게 관하고 나면, 비구들아, 마음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마음이 안에 머물고, 집착하지 않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하면 다시는 생 노 병 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을 고통의 끝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여러분, 누가 능히 조금 전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자세하게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비구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존자 대가전연(大迦?延)은 항상 세존과 여러 지혜로운 범행인들로부터 칭찬을 받습니다. 존자 대가전연이라면 조금 전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자세히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다 같이 존자 대가전을 찾아가 이 뜻을 설명해 달라고 간청해 봅시다. 만일 존자 대가전연이 그것을 분별해 주거든 우리들은 그것을 잘 받아가집시다.'
이에 비구들은 존자 대가전연을 찾아가 문안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존자 대가전연이여, 세존께서는 간략히 이런 이치를 말씀하시고 자세히 분별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편안히 않으셨습니다.
'비구들아, 이러이러한 관법이 있다. 너희들이 이렇게 관하고 나면, 비구들아, 너희들의 마음은 밖으로 나가 흩어지고, 마음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으면서 두려워하게 된다. 비구들아, 이러이러한 관법이 있다. 너희들이 이렇게 관하고 나면, 비구들아, 너희들의 마음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마음이 안에 머물고, 집착하지 않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하면 다시는 생 노 병 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을 고통의 끝이라 하느니라.'
저희들은 곧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여러분, 조금 전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누가 자세하게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존자 대가전연은 항상 부처님과 여러 지혜로운 범행자들로부터 칭찬을 받습니다. 존자 대가전연이라면 조금 전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자세하게 분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존자 대가전연이여, 저희를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그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존자 대가전연이 말했다.
"벗들이여, 제가 비유를 들어 말할 터이니 들어 보십시오. 슬기로운 사람은 비유를 들어 말하면 곧 그 뜻을 이해할 것입니다.
벗들이여, 어떤 사람이 나무 심[實]을 구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나무 심을 구하기 위하여 도끼를 가지고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큰 나무가 뿌리와 줄기 마디 가지 잎 꽃 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보고 뿌리와 줄기 마디와 심은 건드리지 않고 그저 가지와 잎만 건드렸습니다. 지금 벗들의 말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세존께서 현재 계시는데, 그 분을 내버려두고 제게 와서 그 뜻을 묻다니요. 무슨 까닭인가? 벗들은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세존은 곧 눈이요 지혜며, 이치요 법이며, 법의 주인이요 법의 장수이십니다. 진리[眞諦]의 이치를 말씀하시고, 일체의 이치를 나타내심은 오직 세존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벗들은 마땅히 세존께 나아가 '세존이시여, 이것은 무엇이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고 그 이치를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세존께서 말씀하시거든 여러분은 마땅히 잘 받아 가지십시오."
그러자 비구들이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존자 대가전연이여. 세존께서는 눈이요 지혜며, 이치요 법이며, 법의 주인이요 법의 장수이십니다. 진리의 뜻을 말씀하시고, 일체의 이치를 나타내심은 오직 세존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마땅히 세존께 나아가 '세존이시여, 이것은 무엇이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고 그 뜻을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세존께서 말씀하시면 저희들은 마땅히 잘 받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존자 대가전연께서는 항상 세존과 여러 지혜로운 범행인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존자 대가전연이시라면 조금 전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자세히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존자 대가전연이여, 저희를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존자 대가전연이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벗들이여, 모두 제 말을 들으십시오, 벗들이여, 어떻게 비구의 마음이 밖으로 나가 흩어지는가?
벗들이여, 어떤 비구는 눈으로 색(色)을 보면 식(識)은 색의 모양을 먹고[食], 식은 색의 즐거운 모양에 집착하며, 식은 색의 즐거운 모양에 묶입니다. 그리고 그 색의 모양[相]과 맛[味]은 마음을 결박해 밖으로 나가 흩어지게 합니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또 뜻으로 법을 알면 식은 법의 모양을 먹고, 식은 법의 즐거운 모양에 집착하며, 식은 법의 즐거운 모양에 묶입니다. 그리고 그 법의 모양과 맛은 마음을 결박해 밖으로 나가 흩어지게 합니다.
벗들이여, 이렇게 하여 비구의 마음은 밖으로 나가 흩어집니다.
벗들이여, 어떻게 비구의 마음이 밖으로 나가 흩어지지 않는가?
벗들이여, 어떤 비구는 눈으로 색을 보아도 식은 색의 모양을 먹지 않고, 식은 색의 즐거운 모양에 집착하지 않으며, 식은 색의 즐거운 모양에 묶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색의 모양과 맛은 마음을 결박하지 않고, 마음은 밖으로 나가 흩어지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뜻으로 법을 알아도 식은 법의 모양을 먹지 않고, 식은 법의 즐거운 모양에 집착하지 않으며, 식은 법의 즐거운 모양에 묶이지 않습니다. 그 법의 모양과 맛은 마음을 결박하지 않고 마음은 밖으로 나가 흩어지지 않습니다.
벗들이여, 이렇게 하여 비구의 마음은 밖으로 나가 흩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벗들이여, 어떻게 비구의 마음이 안에 머무르지 않는가?
벗들이여, 어떤 비구는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읩니다. 그리하여 각(覺)이 있고 관(觀)이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러나 그의 식이 악을 여의는 맛에 집착해 그것에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그것을 인연하고, 그것에 묶이면 그 식은 안에 머무르지 못합니다.
또 벗들이여, 비구는 각과 관을 이미 쉬고, 안이 고요하여 한마음이 됩니다. 그리하여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 2 선을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러나 그의 식(識)이 선정의 맛에 집착해 그것에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그것을 인연하고, 그것에 묶이면 그 식은 안에 머무르지 못합니다.
다시 벗들이여, 비구는 기쁨의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습니다. 이는 저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 기억[念] 즐거움에 머묾[樂住] 공(空)입니다. 바로 이 제 3 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러나 그의 식이 기쁨이 없는 맛[無喜味]에 집착하여 그것에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그것을 인연하고, 그것에 묶이면 그 식은 안에 머무르지 못합니다.
벗들이여, 비구는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捨] 기억[念] 청정(淸淨)이 있는 제 4 선을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러나, 그의 식이 평정과 기억과 청정의 맛에 집착하여 그것에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그것을 인연하고, 그것에 묶이면 그 식은 안에 머무르지 못합니다.
벗들이여, 비구는 일체의 색이라는 생각을 벗어나서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멸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한량없는 공(空)으로 들어가 이 한량없는 공처(空處)를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러나, 그의 식이 공의 지혜[空智]의 맛에 집착하여 그것에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그것을 인연하고 그것에 묶이면 그 식은 안에 머무르지 못합니다.
벗들이여, 비구는 일체의 한량없는 공처를 벗어나서 한량없는 식으로 들어가고, 이 한량없는 식처를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러나, 그의 식이 식의 지혜[識智]의 맛에 집착하여 그것에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그것을 인연하고, 그것에 묶이면 그 식은 안에 머무르지 못합니다.
벗들이여, 비구는 일체의 한량없는 식처를 벗어나서 무소유로 들어가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러나, 그의 식이 무소유의 지혜[無所有智]의 맛에 집착하여 그것에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그것을 인연하고, 그것에 묶이면 그 식은 안에 머무르지 못합니다.
벗들이여, 비구는 일체의 무소유처를 벗어나서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으로 들어가고 이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러나, 그의 식이 무상의 지혜[無想智]의 맛에 집착하여 그것에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그것을 인연하고, 그것에 묶이면 그 식은 안에 머무르지 못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여 비구의 마음은 안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벗들이여, 어떻게 비구 마음이 안에 머무르는가? 여러분, 어떤 비구는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읩니다. 그리하여 각이 있고 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러나, 그의 식이 떠나는 맛에 집착하지 않아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것을 인연하지 않고, 그것에 묶이지 않으면 그 식은 안에 머물게 됩니다.
벗들이여, 비구는 각과 관을 이미 쉬고 안이 고요해져 한마음이 됩니다. 그리하여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 2 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닙니다. 이 때 그의 식이 선정의 맛에 집착하지 않아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것을 인연하지 않고, 그것에 묶이지 않으면 그 식은 안에 머물게 됩니다.
벗들이여, 비구는 기쁨의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습니다. 이는 저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 기억 즐거움에 머묾 공입니다. 바로 이 제 3 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닙니다. 이 때 그의 식이 기쁨이 없는 맛에 집착하지 않아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것을 인연하지 않고, 그것에 묶이지 않으면 그 식은 안에 머물게 됩니다.
벗들이여, 비구는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과 기억 청정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닙니다. 이 때 그의 식이 평정과 기억과 청정의 맛에 집착하지 않아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것을 인연하지 않고, 그것에 묶이지 않으면 그 식은 안에 머물게 됩니다.
벗들이여, 비구는 일체의 색이라는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멸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한량없는 공(空)으로 들어가 이 한량없는 공처를 성취하여 노닙니다. 이 때 그의 식이 공의 지혜의 맛에 집착하지 않아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것을 인연하지 않고, 그것에 묶이지 않으면 그 식은 안에서 머무르게 됩니다.
벗들이여, 비구는 일체의 한량없는 공처를 넘어 한량없는 식으로 들어가고 이 한량없는 식처를 성취하여 노닙니다. 이 때 그의 식이 식의 지혜의 맛에 집착하지 않아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것을 인연하지 않고, 그것에 묶이지 않으면 그 식은 안에 머무르게 됩니다.
벗들이여, 비구는 일체의 한량없는 식처를 벗어나 무소유로 들어가고 이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노닙니다. 이 때 그의 식이 무소유의 지혜의 맛에 집착하지 않아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것을 인연하지 않고, 그것에 묶이지 않으면 그 식은 안에서 머무르게 됩니다.
벗들이여, 비구는 일체의 무소유처를 넘어 비유상비무상으로 들어가고 이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닙니다. 이 때 그의 식이 무상의 지혜[無常智]의 맛에 집착하지 않아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것을 인연하지 않고, 그것에 묶이지 않으면 그 식은 안에 머무르게 됩니다. 벗들이여, 이렇게 하여 비구의 마음은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벗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집착하지 않으면서 두려워하게 되는가?
벗들이여, 어떤 비구는 색염(色染)을 떠나지 않고, 색욕(色欲)을 떠나지 않으며, 색애(色愛)를 떠나지 않고, 색갈(色渴)을 떠나지 않습니다.
벗들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색염을 떠나지 않고, 색욕을 떠나지 않으며, 색애(色愛)를 떠나지 않고, 색갈(色渴)을 떠나지 않는다면 그는 색을 얻고자 하여 색을 구하고, 색에 집착하며, 색에 머물게 됩니다. 그래서 '색은 곧 나[我]요, 색은 내 소유다'라고 생각합니다. 색을 얻고자 하여 색에 집착하고, 색에 머물러 '색은 곧 나요, 색은 내 소유다'라고 생각한 뒤에는 식은 색에 대하여 집착하게 됩니다. 식이 색을 집착한 뒤에는 그 색이 변하고 바뀔 때마다 식도 색을 따라 바뀝니다. 식이 색을 따라 바뀐 뒤에 그는 두려움을 일으켜서 마음이 그 가운데 머무르게 됩니다. 마음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곧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나니, 이것이 집착하지 않으면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각(覺. 수) 상(想) 행(行)도 또한 그러합니다.
어떤 비구는 식염(識染)을 떠나지 않고, 식욕(識欲)을 떠나지 않으며, 식애(識愛)를 떠나지 않고, 식갈(識渴)을 떠나지 않습니다.
벗들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식염을 떠나지 않고, 식욕을 떠나지 않으며, 식애를 떠나지 않고, 식갈을 떠나지 않는다면 그는 식을 구하고자 하여 식을 구하고, 식에 집착하며, 식에 머물게 됩니다. 그래서 '식은 곧 나요, 식은 내 소유다'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식을 얻고자 하여 식을 구하고 식에 집착하며 식에 머물러 '식은 곧 나요, 식은 내 소유다'라고 생각한 뒤에는 식(識)은 식(識)에 대하여 집착하게 됩니다. 식이 식을 집착한 뒤에는 그 식이 변하고 바뀔 때마다 식도 식을 따라 바뀝니다. 식이 식을 따라 바뀐 뒤에 그는 두려움을 일으켜서 마음이 그 가운데 머무르게 됩니다. 마음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곧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나니, 이것이 집착하지 않으면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벗들이여, 이와 같은 것이 비구가 집착하지 않으면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벗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집착하지 않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가?
벗들이여, 어떤 비구는 색염을 떠나고, 색욕을 떠나며, 색애를 떠나고, 색갈을 떠납니다.
벗들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색염을 떠나고, 색욕을 떠나며, 색애를 떠나고, 색갈을 떠난다면 그는 색을 얻으려고 하지 않아서 색을 찾지도 않고, 색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색에 머무르지도 않게 됩니다. 그래서 '색은 나가 아니요, 색은 내 소유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색을 얻으려고 하지 않아서 색을 구하지도 않고, 색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색에 머무르지도 않아, '색은 나가 아니요, 색은 내 소유도 아니다'라고 생각한 뒤에는, 식은 색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습니다. 식이 색을 집착하지 않은 뒤에는 그 색이 변하고 바뀔 때에도 식은 색을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식이 색을 따라 변하지 않은 뒤에는 그는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고 마음도 그 가운데 머무르지 않게 됩니다. 마음이 알기 때문에 곧 두려워하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나니, 이것이 집착하지 않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각 상 행도 또한 그러합니다.
어떤 비구는 식염을 떠나고, 식욕을 떠나며, 식애를 떠나고, 식갈을 떠납니다. 여러분, 만일 어떤 비구가 식염을 떠나고, 식욕을 떠나며, 식애를 떠나고, 식갈을 떠난다면 그는 식을 얻으려고 하지 않아 식을 구하지도 않고, 식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식에 머무르지도 않게 됩니다. 그래서 '식은 나가 아니요, 식은 내 소유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식을 얻으려고 하지 않아 식을 구하지도 않고, 식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식에 머물지도 않아, '식은 나가 아니요, 식은 내 소유도 아니다'라고 생각한 뒤에는, 식은 식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습니다. 식이 식을 집착하지 않은 뒤에는 그 식이 변하고 바뀔 때에도 식은 식을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식이 식을 따라 변하지 않은 뒤에는 그는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고, 마음도 그 가운데 머무르지 않게 됩니다. 마음이 알기 때문에 곧 두려워하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나니, 이것이 집착하지 않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벗들이여, 이와 같은 것이 비구가 집착하지 않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벗들이여,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간략히 말씀하시고 자세히 분별하지 않은 채,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편안하게 앉으셨습니다.
'비구들아, 이러이러한 관찰이 있다. 너희들이 이렇게 관찰한다면, 비구들아, 마음이 밖으로 나가 흩어지고, 마음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으면서 두려워하게 된다. 비구들아, 이러이러한 관찰이 있다. 너희들이 이렇게 관찰한다면 마음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마음이 안에 머물고, 집착하지 않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하면 다시는 생(生) 노(老) 병(病) 사(死)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을 괴로움의 끝[苦邊]이라 하느니라.'
이처럼 세존께서는 간략히 말씀하시고 자세히 분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이 글귀와 이 글로써 이와 같이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벗들이여, 세존께 나아가 이 말을 자세하게 말씀드리고 나서, 만일 세존께서 말씀하신 이치와 같거든 여러분은 마땅히 받아 가지십시오."
이에 비구들은 존자 대가전연의 말을 듣고 잘 받아 외우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존자 대가전연을 세 번 돌고 떠났다.
그들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아까 이 이치를 간략히 말씀하시고 자세히 분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편안하게 앉으셨습니다. 이에 존자 대가전연은 이러한 글귀와 이러한 글로써 그것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세존께서는 들으시고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그는 내 제자 중에서 눈이 있고 지혜가 있으며, 법이 있고 이치가 있는 사람이다. 왜냐 하면 스승이 제자들에게 그 이치를 간략히 말하고 자세히 분별하지 않자 그 제자가 이런 글귀와 이런 글로써 그것을 자세히 설명하였기 때문이다. 가전연 비구가 설명한 그대로를 너희들은 마땅히 받아 가져라. 왜냐 하면 이치를 살펴 설명한다면 응당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세존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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