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논문·평론

인도및 동남아 불교의 이상인간

실론섬 2015. 10. 25. 13:28

인도 및 동남아 불교의 이상인간

안양규

 

1. 들어가는 말

11. 초기불교의 이상 인간상: 붓다(Buddha)

III. 동남아시아 불교의 이상 인간형: 아라한{arahant) 과 보살

N. 인도의 대숭불교 이상 인간상 : 홈睡(bodhisattva)

V. 맺는말

 

1 . 들어가는 말

 

모든 불교도들은 역사적인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그와 같이 覺者(Buddha)가 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면서 覺者에 대한 견해가 달라지고 있다. 원래 成佛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지만 석가모니불에 대한 존경심으로 인해 부파불교 시대에는 佛대신 아라한(arahant)을 중생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인으로 보았다. 대승불교는 보살(Bodhisattva, 覺有情)을 새로운 이상적 인간상으로 제시하였다. 중국의 輝불교는 祖師와 輝師라는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하였다. 이상의 이상적 인간상을 종합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주요한 작업이겠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본 연구에서는 성인상을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고찰하교 자 한다. 성인 내지 聖人像이 국가나 사회 구성원에게 구체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에 중심을 두고자 한다.  

 

종교상의 위인으로서 신성시되고 숭앙 받는 인격자라는 의미에서의 성인에는 불교의 開祖인 석가모니를 비롯하여 용수와 같은 종교적 이상의 구현자 둥 많은 역사적 인물을 들 수 었다. 한편 불교문헌에서 그려지고 있는 성인상을 역사적인 성인상에 비해 우리는 이념적인 (ideal) 성인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인 인간상이 직접적으로 대중들을 접촉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면 이념적인 인간상은 관념적으로 대중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초기불교의 성인상을 다루는데 있어 역사적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하며 그 이후 전개된 불교에서는 그 시기별의 특정에 따라 성인상올 다루고자 한다.

 

초기경전은 붓다의 언행록이라고 할 만큼 역사적인 붓다의 모습을 생생히 전하고 있으므로 이념적인(ideal) 성인상과 역사적인(historical) 이상상으로서의 붓다가 나누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부파불교 시기 이후부터 형성된 불교에서는 관념적인 성인상과 역사적인 이상상이 동일인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문현상에 보이는 이념형올 먼저 제시하고 그 이념형에 가까운 인물형을 제시하는 것이 방법론적으로 바람직할 것이다.

 

II. 초기불교의 이상 인간상: 붓다(Buddha)

 

한 종교의 교주의 삶은 그 종교를 신봉하고 있는 신자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신도들은 교주의 삶올 그 모법으로 삼고 자신이 처해 있는 사회에서 구현하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교주의 일생은 그 종교의 성격 내지 신자들의 인성에 결정적인 인자로 작용한다. 불교의 개조인 붓다의 삶은 다른 어떤 종교의 교주보다 평온스러웠다. 평온스러운 그의 일생은 불교를 평화의 종교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붓다에 대한 시각이나 신앙은 불교사 속에서 다양하게 전개되어 갔다. 불타관의 변천사를 전체적으로 연구하는 작업은 거대한 작업이므로 다른 기회로 미루고 단지 본고에서는 초기불교 경전에 국한하여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붓다를 다루고자한다.

 

1. 스승으로서의 붓다 그 역활과 한계

 

1) 길 안내자로서의 붓다

담마파다Dhammapada) 에서 “如來는 유일한 스승이다" (Dhp 276) 라고 말히듯이 무엇보다도 붓다는 훌륭한 스숭의 역할을 수행하고 잇다. 초기 불교 경전올 살펴보면, 위대한 스승으로서의 붓다의 모습이 잘 나타나 었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여 제자들을 진리의 문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산피술처럼, 붓다는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하거나 신앙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근기에 맞추어 문답올 통하여 최상의 진리에 이끄는 진리의 안내자로 그려지고 있다.

 

如來 십호를 통하여 스승으로서의 붓다를 볼 수 있다. 여래 십호는 제자들이 어떻게 붓다를 여기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명호 중 무상사, 天人師, 調細文夫, 조어장부는 스승으로서의 붓다의 모습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기장 훌륭한 스승이라는 의미에서 무상사로 일컬어진다. 天과 인으로 대표되는 모든 중생들의 스승이라는 의미에서 붓다를 천인사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말을 잘 훈련시키듯이, 붓다는 중생들을 잘 가르치고 이끈다는 의미에서 조어장부라고 일컫는 것이다. 나머지 명호는 스승이 갖추어야 할 자질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각한 이후의 붓다의 행적율 살펴보면 스숭으로서의 역할의 어려움과 그 의의를 붓다는 충분히 자각하고 있다. 정각 직후 붓다는 중생들에게 법올 설하는 것을 주저하였다가 범천의 간청에 의해 설법올 결심한다. 붓다가 법용 설하는 것은 자비 때문이다. “붓다는 (중생들의)복지를 동정하여 그들을 가르친다"( SN 1 p.lll; cf SN 1 p.206.) 붓다 자신을 포함하여 아라한의 숫자가 61 명에 이르렀을 때, 붓다는 제자들에게 중생들을 위하여 전도할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나서 “나 역시 법올 설하기 위해 우루밸라의 세마가마니로 가겠다"(Vin ii pp.20-21. )고 자신의 소명을 실천하고 있다. 붓다의 전도선언을 통해 성인이 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었다

 

자애로운 스승으로서의 붓다의 최후 모습은 『열반경』에 잘 나타나 있다. 마지막 여행길에서조차도 붓다는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시고 제자들로 하여금 수행올 하도록 격려하는 모습올 볼 수 있다. 80이리는 고령에 긴 여행올 하는 것조차 힘든데 제자들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가르침을 베풀고 있는 것은 스숭으로서의 모습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붓다는 입멸 직전 제자들에게 불법에 관해 의문이 있으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자유롭게 질문하라고 세 번씩이나 요청한다.(DN ii p.l55.) 초전 법륜부터 입멸까지 붓다의 일생은 스승의 삶 그 자체이다.

 

붓다 자신도 단지 길올 안내하는 邊師에 불과할 뿐이라고 자신의 역할과 한계를 분명히 하였다. 붓다는 이와 같은 사실올 오래된 성의 비유를 가지고 설명했다. 어떤 사랍이 광야를 여행하다가 옛사람이 다니던 오래된 길을 만났다. 그는 그 길을 따라갔다가 사람이 살지 않는 한 옛 성을 발견했다. 그는 이 옛 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모두 그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살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 비유에서 여행자는 옛 길과 옛 성을 발견했을 뿐이지 그 길과 성을 자신이 개척하고 만든 것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붓다도 옛 사람들이 밟았던 길을 따라 수행한 결과 法을 깨달아 붓다가 되었고, 그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가르쳐 많은 이익이 되게 하였다는 것이다.

 

봇다는 제자들이 자신에게 의존적인 신앙행위를 하는 것을 환영하지 않았다.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자주적으로 풀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었다. “너희들 개개인은 자신을 자신의 섬으로 만들지, 다른 어떤 것도 의지처로 삼지 말라. 너희들 개개인은 법을 자신의 섬으로 만들지, 다른 어떤 것도 의지처로 삼지 말라 "(DN ii p.100) 이상의 인용문에서 ‘자기 자신을 자신의 섬’으로 삼으라고 하는 것이나 ‘법을 자신의 섬’으로 삼으라고 하는 것은 외형적인 어떤 권위자나 조직의 수장에게 의존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먼저 지존과 자립올 확보하라는 것이다. 담다파다<Dhamrnapada) 에서 “자기 자신이야 말로 자신의 구세주이지, 다른 어떤 구원자가 있겠는?"(Dhp 160)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결코 어떠한 조직도 스승도 수행자가 추구하는 열반을 중득 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불교의 개인적인 성향에 일조한다. 불교의 개인적인 성향으로 말미암아 불교 단체가 하나의 조직체로서 사회 문제에 관여하는 것융 초기불교 경전에는 찾아 볼 수 없다.)

 

2) 붓다의 교화 방식 

붓다는 흔히 가장 훌륭한 의사로 비유되고 있듯이 중생의 고통올 제거하는 것을 그 주 된 역할로 하고 있다. 붓다의 모든 가르침을 포괄하고 있는 사성제에서 의사로서 의 붓다의 역활을 볼 수 있다. 사성제 중 고성제는 병의 상태률 살펴보는 진찰의 단계로, 집성제는 병의 원인올 찾아내는 단계로, 멸성제는 그 질병이 사라진 건강 한 상태를 예상하는 단계로, 도성제는 건강한 상태에 이르기 위한 방법이 제시되는 처방의 단계로 비유된다. 훌륭한 의사가 병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처방을 내려 환자가 질병올 극복하게 할 수 있듯이 붓다도 중생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붓다의 역할과 그 한계이다. 의사의 처방만으로 환자의 병이 고쳐질 수 없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 환자가 필요한 것을 충족되어야 하듯이 붓다도 중생에게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할 뿐이고 중생을 직접 고통에서 구원할 수는 없다. 중생 각자가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해야 할 당위가 요청된다. 붓다는 중생에게 고통의 증상에 따라 약을 주지만 그 약올 복용하여야 하는 것은 환자인 중생의 몫이다.

 

붓다 설법의 특색으로 對機說法을 말한다. 상대방의 놓력에 상용하여 법올 설하는 것으로 철저히 상대자 각각의 개성과 성향을 고려한 것이다. 개개인이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개인적으로 붓다에게 질문하여 그 해결점올 찾는 것을 경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개인 대 개인의 문답은 불교의 개인적인 성향에 일조한 요인임에 툴림없다. 대중 선동가나 정치 지도자로서의 모습올 붓다에게서 찾이볼 수는 없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불교가 주로 문제삼는 고통의 문제를 집단적으로 해결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부정하고 있으므로 불교가 다분히 사회 참여에 소극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붓다의 교화 방식 중 두드러진 것은 문답을 통해 이성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점이다. 붓다는 다양한 문답 형식을 통해 질문자가 스스로 자신의 의문을 이성적으로 풀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질문의 성질에 따라 적절히 그 답변 방식올 선택하고 있다. 일상 생활 속에 보이는 비유롤 통해 설법하는 것 이외에도 4종의 문답방식이 전통적으로 알려지고 있을 정도로 붓다는 문답을 통해 진리 세계로 이끌고자 하였다. 독일의 저명한 불교학자 율덴베르크(Oldenberg) 는 붓다의 설법양식과 소크라테스의 대화방식올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초기경전에 보이는 “문답들의 논리적 구조률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서 소위 소크라테스 논법이라고 칭하는 변중법적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일상생활의 인연에 기초하여 정신의 진리를 밝히는 것도 동일하며, 초기단계에 지나지 않지만 귀납법올 사용하고 있는 것도 동일하다."

 

신통변화률 사용하여 대중을 교확하는 것울 붓다는 자제하였다. 붓다가 날란다(Nalanda)에 머물고 있올 때 케밧다(Kevaddha) 라는 재가신자가 붓다에게 비구들로 하여금 기적올 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한다. 만약 비구들이 재가신도들 앞에서 기적을 행한다면 날란다 주민들이 훨씬 더 많이 불교에 귀의할 것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붓다는 기적을 행하는 것은 불교 교학의 목적은 아니다라고 단언하면서 그 요청을 거절한다. 그리고 덧불였다.“나는 기적을 행하는 것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기 때문에 싫어하고 꺼리며 수치스럽게 여긴다."(DN 1 p.213) 붓다의 가르침은 기본적으로 보편적인 이성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이러한 신통력에 현혹되어 진정한 자기 변혁으로부터 주의를 돌리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붓다는 초능력의 행위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율장에서는 비구들이 일반대중 앞에서 초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계율을 어기는 것으로 금지하고 있다.(Vin ii p.l 12)

 

2. 정치 사회문제에 대한 붓다의 입장

 

초기경전에서 붓다가 정치 • 사회 둥 세속의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오직 『육방예경』 둥 몇몇 경전에서만 재가자에게 業說을 중심으로 세속의 윤리 규법을 가르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초기경전은 세속의 문제보다 세속으로부터의 초극 즉 출세간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世間事는 出世間事에 종속되어 있어 그만큼 중요시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세속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지만 세속의 문제에 대한 붓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정은 경전 성립사를 살펴보면 이혜 할 만한 일이다. 봇다의 가르침이 그의 사후 출가 비구들에 의해 정리되고 유지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으므로 거의 대부분의 초기 경전이 출가자를 중심으로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근본 적으로 붓다가 세속 문제보다 종교적인 영역에 더 관심을 기울였으므로 재가자에 관한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었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다.)

 

붓다의 탄생 설화를 살펴보면 종교적인 영역과 사회적인 영역이 구분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봇다가 탄생한지 몇 일 지나지 않아 선인이 갓 태어난 싯달타의 장래를 예언한다. 싯달타가 출가하면 붓다가 되고 그렇지 아니하면 이상적인 군주인 전륜성왕이 된다고 예언한다. 여기서 우리는 종교적인 성인으로서의 붓다와 세속적인 군주로서의 전륜성왕이 서로 대치되고 있는 것윷 알 수 있다. 싯달타의 부왕은 아들이 출가하지 않도록 온갖 수단을 동원하지만 싯달타는 결국 출가하여 종교 지도자가 된다. 붓다가 출가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온 종교의 영역이 정치의 영역보다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전륜성왕은 세속의 군주로서 정치,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것이 자신의 직분임에 비해 붓다는 종교적인 문제를 자신의 임무로 여기므로 사회 문제에 관여에 대해서 매우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붓다는 경제적, 물질적 행복은 身口意의 나쁜 업에서 벗어난 청정한 생활에서 발생하는 정신적 행북의 16분의 의 가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가르치고 있다.(AN ii p.68경제적 복지는 육체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종교적 삶과 무관하다면 진실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물질적 행복을 그 자체의 궁극적 목표로 삼지 않는다. 즉 물질이란 보다 높고 숭고한 목표인 열반의 성취에 도움이 되어야 하며 그렇지 아니하면 적어도 그 궁극적인 목표의 추구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출가 수행자에게는 육체의 유지에 필요한 만큼의 소유물만 인정되었다.  

 

붓다 당시 정치 상황율 간략히 정리해 보면 부족 연합국가가 점차 마가다(Magadha)나 코살라(Kosala) 와 갈은 군주 7}에 의해 정복당하고 있었다. 대체로 붓다는 점차 강력해지고 있는 군주<Bimbisara와 Pasenadi) 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여 그들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았다. 왕족 출신의 젊은이들이 붓다의 승단에 귀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불교는 교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반대급부적으로 불교의 승가 일부 계율은 왕들의 요청에 따라 제정되거나 새로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붓다는 왕권의 영향력에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고 오히려 그들을 교화시키는 입장 에 있었다. 마가다의 빔비사라왕은 붓다를 위해 죽립정사를 지어줄 정도였다. 아자타삿투는 붓다 사후 숭가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붓다와 그의 숭가는 절대왕권과 충돌 없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자타삿투(Ajãtassatu, 493-462 B.C.) 가 왕사정 결집 때 비구들에게 말했듯이, “당신들온 법의 권위자(dhammacakka)이고 나는 권력의 권위자{anacakka)이다."(Sp 1 p.lO; Vin v p.l.) 우리는 그의 선언에서 성의 세계와 속의 세계가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붓다가 현실의 사회문제 내지 정치 문제에 직접 판여한 얘는 무척 드물다. 설령 개입하더라도 그 방식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극적인 것이다. 붓다는 인도 전통의 카스트제도를 부정하였다. 카스트제도는 엄격한 신분계급 제도로 출생에 의해 개개인의 위치가 정해지고 죽을 때까지 신분 변화가 용납되지 않고 자신이 속한 계급의 사람들과 결혼 둥 사회적 활동이 용납된다. 이러한 세습적인 신분제에 대해 붓다는 행위에 의거하여 인간의 지위가 결정된다고 가르친다. “출생에 의해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출생에 의해 브라흐만이 되는 것이 아니다. 행위(업)에 의해 천한 사람도 되고 행위에 의해 브라흐만도 된다"(Sn 136)

 

전쟁 문제에 대해서도 붓다가 취한 행동은 매우 개인적이고 수동적이다. 한두가지 예를 들어 보자. 극심한 가뭄에 카필라맛투(Kapilavatthu) 와 그 이웃 나라인 콜리야(Koliya)가 로히니(Rohini) 강을 사이에 두고 물을 둘러싼 싸움이 일어났다. 양쪽 국가는 생존의 문제로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다. 붓다는 그들 사이에 개입해서 인간의 목숨이 물보다 더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가르침으로써 분쟁을 소멸시킨다.(J v pp.412-4) 붓다의 개입은 결국 자신의 인격에 영향올 받은 두 진영의 화해로 성공을 거둔 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개인적 해결 방식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코살라국이 붓다 자신의 고국인 카필라밧투롤 공격하려고 할 때, 코살라국의 침공을 저지하지는 못했다. 붓다는 코살라국의 군대가 오고 있는 길목에서 있는 고목 밑에 앉아서 개인적인 정에 호소하여 2번 저지하지만 결국 코살라국은 카필라밧투를 전멸해 버렸다.(DhA iii p. 4) 또 하나의 실패한 예는 마가다국이 맛지국을 침공하려고 계획하면서 마가다국의 왕이 대신올 붓다에게 보내어 승리 가능성올 묻는다. 붓다는 우회적으로 맛지국이 화합 단결하고 있음을 역설하여, 전쟁을 막으려고 하지만 결국 마가다는 맛지국을 전멸해 버린다.(DN ii pp.72ff)

 

붓다는 전쟁과 사회 문제의 근본 원인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의 이기심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으므로 개인적인 수행의 완성을 가르치고 있다. “수천 번 전쟁에서 수천의 사람을 정복하는 자보다 자신을 정복하는 자가 가장 위대한 정복자이다."(Dhp viii 4) 요컨대 붓다는 전쟁 문제에 대하여 개인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자제하고 있고 또한 조직적인 차원에서 문제 해결을 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붓다의 이런 소극적인 태도는 전쟁등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은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이 이기심에 근거하고 있다는 전제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인다. 사회 변혁보다 먼저 개인의 변혁이 우선시 되고 있는 것이다.

 

3. 개인의 완성 :8정도의 실천

 

고타마(Gotama) 는 정각 직전 년간의 엄격한 고행이 마치 극단적인 쾌락주의 삶과 마찬가지로 무의미함을 자각하고 포기한다. 그리하여 열반에 이르는 길로 중도를 수행한다. 중도란 양극단을 떠난 중용의 길로 지나치게 쾌락적인 생활도 반대로 극단적인 고행생활도 아닌 몸과 마음의 조화를 유지 할 수 있는 正道를 말한다. 쾌락적인 생활은 속의 생활에 매몰되어 聖의 세계와 단절된 삶을 말하고 고행은 속의 생활을 단절하고 성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두 유형의 삶을 피하는 것이 중도이다. 성속의 조화로운 관계를 표출한 것이 중도라고 할 수 있다.

 

소나{Sona) 經은 중도롤 거문고 줄의 비유로써 설명하고 있다. 거문고 줄은 지나치게 팽팽해도 그와 반대로 지나치게 느슨해도 좋은 소리를 낼 수 없다. 거문고가 가장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그 줄이 적당한 상태롤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열반을 얻기 위한 수행의 길도 극단적인 고행이나 지나친 쾌락적인 행동을 피하고 중도를 실천해야 한다. 이 중도를 구체적으로 말한 것이 팔정도이다. 광대한 불교의 체계를 三學으로 요약되는데 8정도 체계 속에 계.정.혜 삼학이 내재해 있다. 8정도는 완전한 성인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정어(바론 말), 정업(바른 행위) 정명(바른 직업)은 세속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윤리덕목으로 자신의 외적인 활동올 정화시키는 것이다. 正精進(바른 노력), 正念(바른 명상), 正定(바른 정신집중)은 자신의 마음올 정화시키는 것이다. 그릇된 사고나 산란한 마음을 고요하게 靜止하여 내면을 가꾸는 것이다. 正見(바른 견해), 正思(바른 생각)은 육체와 정신이 정화된 것을 바탕으로 하여 지혜로서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상 정도의 실천을 보면 일상생활 가운데서 종교적 이상의 인간상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의 힘이나 신비적인 힘에 의해 구원받는 것과 같은 인간을 이상적인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성인은 세간 속에 살면서도 번뇌를 단절하고 지혜로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세속에 오염되지 않는다. 이러한 성인의 삶을 붓다는 연꽃으로 비유하고 었다. "연꽃이 연못에서 태어나 수면 위로 성장하여 더러운 물에 오염되지 않듯이 여래도 이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였지만 이 세상의 더러움에 의해 오염되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초월하여 머문다."(SN iii p.l39) 이것이 초기불교 경전에서 묘사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세속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물질적인 복지에 관심을 보이는 대숭불교의 보살상과 대조적이다.

 

III. 동남아시아 불교의 이상 인간형 :

아라한(arahant)과 보살

 

붓다가 정각한 직후 다섯 명의 비구률 교화하고 그들이 모두 정각을 이룰 때 붓다는 이 세상에는 붓다 자신을 포함하여 6명의 아라한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선언한다. 여기서 우리는 붓다와 아라한의 차이는 면지 정각의 선후에 있는 것뿐이지 정각의 내용에는 전혀 차이가 없는 것이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이 최초의 불교 경전이 견지한 입장이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붓다에 대한 초인간화 내지 신격화가 진행됨에 따라 붓다와 아라한 사이에는 커다란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러한 차별의식은 부파불교 시대에 이르게 되면 완연한 모습을 갖추게 되어 붓다라는 이상 목표 대신에 아라한이라는 낮은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 부파불교에 이르러 아라한이 더 이상 붓다의 동의어가 아니고 불제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목표가 된 것이다.

 

남방상좌부는 계율율 엄수하는 원시불교 이래의 전통융 지니고 있으며, 스리랑카 • 미얀마 • 타이 • 캄보디아 • 라오스 둥 동남아시아에 유포되어 있는 불교를 말한다. 계율을 중시하는 남방 불교는 출가자와 재가자의 구분이 뚜렷하며 재가자는 출가자에 종속되어 있다.

 

1. 아라한{arahant)

 

1) 설법자로서의 아라한

붓다와 마찬가지로 아라한도 제자들에게 설법하는 것을 주 임무로 삼고 있다. 그리하여 논서에서는 아라한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이유는 중생올 교화하는 것을 그 목표로 삼는다. 달리 말하면 아라한이 법을 설할 수 없게 된 경우는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아라한이 법을 중생에게 설하지 않은 것은 붓다에 의해 我慢心(asmimãna) 에 기인한다고 비판되었다. 아라한은 모든 번뇌를 제거한 자이므로 아만심이 있을 수가 없다. 아라한은 이미 아만심을 제거한 자이므로 설법을 하지 않는 아라한이 있다면 진정한 아라한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라한은 중생들에게 법을 설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는 셈이다.

 

아라한과 동의어로 쓰이는 善友(kalyãlanamitta) 라는 용어만 보더라도 아라한의 역할과 그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善友란 종교적인 길을 걷고 있는 벗이라는 의미로 이 말에는 두 가지 용법이 있다 1. 훌용한 벗 2. 종교적인 충고자. 선우는 보통 아라한울 의미하고 붓다의 경우처럼 제자들에게 법올 설하는 자이다. 따라서 동남아불교에서 선우는 법올 설하는 스숭이다.

 

스승으로서의 아라한은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가르칠까? 동남아불교는 기본적으로 초기불교롤 보수적으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초기경전에 근거하여 이 문제에 답할 수 있다. 붓다의 전도 선언에 제시된 지시를 그대로 아라한은 따르고 있다고 보인다. 그럼 먼저 전도선언올 인용해보자.

 

“비구들이여! 나는 인간과 신들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너회들 역시, 그것에서 벗어났다. 길을 떠나거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세상에 대한 동정심에서, 기쁨을 위해, 이익올 위해, 신들과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가거라. 두 사람이 같은 길올 가지 마라.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법올 설하여라. 法의 정신(義)에 따라, 법이 쓰여진 대(文) 따라 법을 설하라. 법의 완전무결한 깨끗함 가운데서 수행생활의 실천을 설명하여라. 본래부터 욕망에 의해 눈이 멀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만약 법을 설하는 것을 그들이 듣지 않는다면 그들은 혜맬 것이다. 그러나 저들 욕망에 의해 눈이 멀지 않온 사림들은 법에 귀의할 것이다."

(Vin ii pp.20- 1

 

내용을 분석해 보면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아라한은 중생들에 대한 자비심으로 가져야 한다. 2) 가르치는 방식에 있어서 언설로 합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3) 설법의 대상자로서는 욕망이 적은 사람을 선택한다.

 

중생에 대한 자비심 이외에 어떠한 다른 동기나 목적의식은 없다. 봇다가 설법하는 이유는 중생의 행복을 위함이듯이 아라한들도 중생의 안녕과 이익을 위해 법을 설할 것이 요청되고 있다. 교화 방법은 붓다가 사용했던 방식을 사용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언설로 법을 설하는 것으로 다른 어떤 방법도 제시되고 있지 않다. 기적이나 점술과 같은 방법에 의존하지 말고 오로지 언어에 의해 이성적으로 설할 것이 요청되고 었다. 義가 이치 또는 條理나 의미라고 한다면, 文은 형식이나 표현의 방식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학습시켜야 할 의미나 내용은 그 자체로서도 중요하지만, 그 의미나 내용이 어떻게 표현되어 제시되느냐 하는 것이 더욱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의문구족은 석존의 설법의 방법론적 기본원리인 ”상대방의 능력에 알맞게 설법한디{隨機說法J."는 의미를 보다 구체화한 지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설법자로서의 아라한은 무엇보다도 언어에 능통해야 한다. 일부 지식

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라 각 지방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설법대상자에 대하여 무차별적으로 중생들에게 법을 설하는 것이 아니라 들을 자질이 있은 사람에게 먼저 법올 설한다는 것은 현실적인 포교 방법론이다. 이것은 결코 중생올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현실 인식 이변에는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기능하다라는 것올 시인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에 비해 대숭불교에서 보살은 한 명이라도 중생이 고통의 세계에 남아 있다면 성불하지 않겠다는 보살의 서원과 대조적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붓다와 마찬가지로 아라한도 중생들의 정신적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자신의 역할을 자신의 주요한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울 살펴보았다. 중생들을 교화할 목적으로 불교의 계율을 어기는 일은 있올 수 없다. 아라한은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계율을 어길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아라한이 할 수 없는 5가지 종류의 일이 나열되고 있다. ①살생하는 것 ②주어지지 않은 것을 취하는 것 ③성행위 ④거짓말하는 것 ⑤재물을 축적하고 향유하는 것.(DN üi p. 5; MN 1 p.523) 이상 5가지는 모든 불교인들이 지켜야 하는 오계를 연상시킨다. 단지 五歲에서는 ⑤대신 술을 먹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인도불교가 동남아시아에 전입될 때 동남아시아의 문화수준은 상대적으로 불교문화보다 저급하였기 때문에 불교가 교육 문화 둥 사회 전반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불교를 전한 승려들은 당연히 일반인의 교육을 맡게 되었다. 숭려들은 재가자를 대상으로 佛法을 설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지만 한편 재가지들에게 일반 교육, 특히 읽기, 쓰기 등도 가르쳤다. 이러한 활동은 재가자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었을 것이므로 그들로부터 선우로서 존경받았을 것이다. 19세기 말 스리랑카의 문맹율보다 영국의 문맹률이 더 높았을 정도로 스리랑카 불교인들은 교육의 혜택을 숭려로부터 받고 있었다.

 

2) 福田(puññakkheta) 으로서의 아라한

아라한(arahant)이라는 문자의 의미는 한역에 ‘應供’이라고 의역되듯이 “공양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자”라는 뜻이다. 물론 공양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다는 것은 당연히 정각의 성취가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라한은 수행을 완성한 사람이다. 응공으로서의 아라한은 재가자들에게 있어서는 福德을 짓는 원천이 된다. 정각을 성취한 아라한에게 의식주 등의 공양을 제공함으로써 재가자는 복덕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따라서 응공은 복덕이라는 관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게 된다. 아라한을 공양하여 얻는 공덕은 브라흐만교에서 행해지는 제식보다 훨씬 더 많은 결과를 초래된다고 밝히고 있다. “사람이 백년동안 聚火를 숲에서 돌보는 것과 잠시 동안이나마 자신을 수양한 사랍에게 공양하는 것 중 후자의 공양이 백년동안 제사지내는 것보다 더 낫다."(Dhp viii 8)

 

복전 사상은 아라한이 재가자에게 어떠한 이익을 가져다 주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만 이러한 사상 이면에는 재가자는 결코 아라한이 될 수 없다는 생각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아라한은 출가자로서 생업 활동에 종사하지 않으므로 재가자들로부터 보시를 받는다는 당위를 확보해 주지만 동시에 재가자는 보시만 하는 존재로 남게 된다. 출가 수행자들에게 보시를 하여 공덕올 쌓아 사후 천상에 태어나 안락한 삶을 누린다는 것이 재가자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천상에 태어나는 것온 결코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천상은 윤회 세계의 일부로서 인간계보다 더 나은 세계일 뿐이다. 재가자는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출가자는 열반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구분은 자연히 재가자는 출가자보다 열둥한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붓다의 가르침 중 어디에도 재가자가 열반을 성취할 수 없다라는 편파적인 가르침온 없다. 물론 출가자에게 보시률 통한 천상에 태어난다고 가르치는 경전이 었기는 하지만 부피불교가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재가자에게 열반의 성취가 닫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밀린다팡하에서 우리는 출가자 우위의 견해를 확인할 수 있다.

 

복전이란 복을 생산해 내는 터전이라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붓다를 최상의 복전이라고 하여 불복전이라고 하고 붓다는 따르는 제자들의 무리인 숭가도 승복전이라고 하여 좌구, 침구, 의복, 음식물들을 바쳤다. 이러한 복전사상은 일반 재가신자들의 생활 양식에 영향을 주게 된다. 붓다나 승려에 대한 공양이 널리 일반 민중들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된 충(빈곤자, 병자) 둥에까지 확산되어 사회의 복리가 증진된다. 보시 내용울 살펴보면, 복전사상이 사회변화 및 향상에 미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불교 교단올 위한 사찰이나 탑 조성 그리고 승려에게 음식을 시주하는 것 이외에 1. 동산에 과일수 심기, 2. 다리와 배 만들기, 3. 여행자를 위해 우물 만들기 등이 나열되고 있다. 버어마 불교도들의 보시 내용도 거의 동일하다는것을 알수 있다.

 

2. 정치 사회문제에 대한 아라한의 입장

 

아라한의 탈세속적인 성향은 대숭불교의 보살상에 비하면 현저하다. 아라한의 스트레오타입은 무엿보다도 고행을 하는 모습이다. 13가지 고행은 일상적인 세속의 삶으로부터 초극하는 것이다. 상좌부의 아라한이 엄격한 계율을 강조하는 것은 출가자의 삶과 숭단올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사회 문제에 대한 아라한의 소극적 태도가 세속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온 아니다. 불교 승가의 기능을 살펴보면 승단이 재가자와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도 종교에서 최초로 불교가 정주 생활을 조직적으로 시작했다. 우안거 제도가 실시되면서 승려들은 우기 개월 동안 일정한 곳에서 공동 생활을 하게 되었다. 점차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유행하지 않고 우기 기간이 아닌 시기에도 일정한 사원에서 정주하는 비구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정주 생활이 그 당시 불교와 외도를 구분시켜주는 외형적인 표시가 되었다.

 

일단 형성된 사원은 초세간적인 수행자와 세속에 머물고 있는 재가자를 연결해 주는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출가자는 세속의 인연을 끊고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서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재가자가 출가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쉽지 않다. 수행자가 계속 이곳 저곳올 유행하고 있으면 사원의 성립 및 정주 생활의 정착은 유행하는 출가자와 재가자가 서로 교류할 수 있는 통로인 셈이다. 이러한 점에서 출가자가 재가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수 있다.

 

사원의 사회적 기능은 붓다의 가르침 중 중도에 근거하고 있다. 불교가 지나치게 사회 문제에 관여하게 되어 하나의 사회 집단으로 변질되거나, 반대로 너무나 사회 문제에 무관심해서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극단을 피하는 것이다. 지나친 세속주의나 극단적인 탈세속주의를 피하고 성의 입장에서 속에 적당히 관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재가자로부터 존경을 받는 수행자는 세속에서 벗어나는 은둔주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세속에 머물면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입장에 서게 된다. 붓다나 그의 제자들이 사회 일상사에 보이는 태도가 소극적인 이유는 이러한 입장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초기불교와 달리 부파불교 특히 현재의 동남아시아 불교는 국가 권력과의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스리랑카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경위를 살펴보면 불교와 국가권력과의 밀착을 볼 수 있다. 전숭에 의하면 아소키왕은 자신의 아들 마힌다(Mahinda)를 스리랑카에 보내서 불교를 포교하도록 했다. 그 당시 스리랑카 왕은 이들을 환영하고 스리랑카에 불교가 뿌리내리도록 많은 조치를 해주었다. 스리랑카의 불교 전도에 왕권의 힘은 상당한 영향력올 발휘한 것이다. 스리랑카 등 동남아시아 국가의 왕들온 불교를 국가종교로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은 불교의 수호자로 표방하였다. 물질적으로 승가를 지원하면서 국왕은 승가의 운영에 대해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승려가 정치권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세속적인 문제에 직접 활동하는 것은 금기시 되었다.

 

버어마 불교의 예률 들어보자. 다른 어떤 동남아시아 국가보다도 버어마 불교는 자국의 국민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버어마인들로부터 최고의 존경올 받는 승려들은 “명상에 전념하는” 자들이다. 이들로 말미암아 상가는 존경율 받게되고 재가신자를 교화할 수 있게 된다. 19세기 버어마에서 활동했던 비간데트(Bigandet)주교는 버어마 불교률 연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버어마에서는 그들(숭려)은 국가 경영이나 국가 정책 방향에 관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않는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일부 숭려가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였지만, 전통적으로 보아 미얀마의 승려는 종교적인 측면에서 일반 재가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승가와 정치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음을 볼수있다.

 

3. 보살로서의 붓다

 

보살의 일반적인 정의(定義)는 ‘보리를 구하고 있는 유정으로서의 求道者'를 의미한다. 현생에 붓다가 되기 전 전생에 수행했던 인물로서의 역사적 인물을 보살이라고 호칭한 것이다. 대승불교 이전의 보살 사상, 특히 상좌부의 보살 사상은 붓다의 전생을 담고 있는 본생담(jataka) 에 드러난다. 본생담은 붓다 사후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뒤 창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慧悲, 忍尊 둥의 선행을 실천하고 있는 수행자인 보살을 기리고 었다.

 

본생 보살의 실천 수행도는 아라한{성문)의 수행도와 다·른 것으로 오로지 붓다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찬양된다. 보살은 장구한 기간 동안 전생에서 보시, 지계, 인욕둥 10바라밀을 힘들게 실천하여 현생에서 붓다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붓다의 깨달음을 찬미한 것이다. 한편 이러한 영웅적인 본생담을 접하면서 불자들은 보시등 윤리적인 실천행을 하고자 하는 교훈을 받을 것이다. 보살은 타인에 대한 봉사, 관용이라든가 불행과 고난에 대한 인내롤 실천하고 있은 이야기가 본생담의 주요한 내용을 이루고 있는데 특히 보시 사상은 각별하다. 보살이 자신의 몸의 일부인 눈이라든가 팔 다리 나아가서는 사랑하는 자신의 처자까지도 털끌만한 아쉬움 없이 그것을 희망하는 자에게 보시한다는 이야기는 철저한 利他行의 자비를 보여주는 것이다.

 

붓다의 선한 덕과 자질을 찬양하고 신앙하는 분위기에서 형성된 개념이 보살이다. 그렇지만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자신의 깨달음에 전념하고 있는 아라한과 매우 대조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自利중심의 아라한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 전생담에 보이는 보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붓다가 전생에 이렇듯 상상하기조차 힘든 이타행을 했다는 이야기는 붓다에 대한 존경과 찬탄의 마음을 일으키지만 대숭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보살과는 달리 일반 중생들은 결코 그러한 이타행을 감히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IV. 인도의 대숭불교 이상 인간상: 보살(bodhisattva)

 

1. 보살의 이념

최초기에 보살은 구도자로서의 석가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특히 연등불수기(석존이 연등불로부터 佛院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계기로 하여 석가롤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 즉 보살이라 일컫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오로지 역사적인 석가만을 가리키던 보살이 복수로서 중생을 뜻하게 된 것은 본생담의 석가가 出家 비구에 국한되지 않고 왕 · 대신 · 직업인 • 鷹厭이기도 하였으며, 나아가 과거 · 현재 • 미래세계에 다수의 붓다가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석가보살과 같은 특정의 보살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成佛의 서원을 일으켜 보살의 길로 나아가면 그 사람이 바로 보살이며, 장차 成佛할 것이라는 이른바 대승불교의 보살사상이 생겨났다.

 

대승불교의 보살의 관점에서 보면 아라한은 자신의 개인적인 구원을 성취하는데 만족히여 타인의 행복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관심이 없다. 따라서 아라한은 이기적이라고 펌하된다. 보살의 이상은 ‘上求홈提 下化중生(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 ‘自未度 先度他(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올 먼저 제도한다)’라는 말로 요약되듯이 타인의 구제에 적극적이다. 사홍서원은 모든 보살의 마음가짐을 공식화하고 있다. ①聚生無邊훌願度: 중생의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한명도 빠짐없이 구제하겠다는 맹세, ②煩腦無盡寶鷹顧: 무수한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겠다는 맹세, ③法門無置醫願學: 광대무변한 붓다의 가르침을 모두 배우겠다는 맹세, ④佛道無土활願成: 가장 존귀하고 그 이상 뛰어난 것이 없는 불도를 성취하겠다는 맹세. 사홍서원 중 ①이 먼저 제시되고 있는 것은 이타행을 강조한 것임은 재언할 필요가 없다. 아라한은 스스로 고통의 윤회 세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수행의 동기이지만 보살은 그들과 달리 일체중생을 구제하는데 수행의 근본동기가 있다.

 

보살은 자신의 서원을 완성하기 위해 6가지의 바라밀법울 수행환다. ①보시바라밀: 財廳 • 無훌備 • 法施 둥 널리 자비를 베푸는 행위, ②持械바라밀; 계율을 지키는 것, ③忍尊바라밀: 인내하는 것, ④精進바라밀: 항상 수양에 힘쓰고 게으르지 않는 것, ⑤輝定바라밀: 마음을 고요하게 통일하는 것, ⑥지혜바라밀: 분별의 지식이 아닌 無分別智를 얻는 것. 초기불교나 동남아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인 8정도에 비하면 6바라밀은 무엇보다도 보시바라밀이 두드러진다. 나머지 다섯 바라밀은 8정도에서 유사한 것을 찾올 수 있지만 보시바라밀은 그렇지 아니하니 대승불교의 보살행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바라밀 중 보시가 가장 먼저 제시되고 있는 것은 이타행의 중요성을 대변하고 있다.

 

대승불교의 보살사상 중 기본적인 두 개념은 서원과 回向이다.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 서원이며 자기의 쌓은 善根功德을 남을 위해 돌리겠다는 것이 회향이다. 보살은 스스로 깨달음올 성취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머물러 일체중생을 먼저 이상세계[피안]에 도달하게 하는 뱃사공과 같은 자라고 자처하고 있다.

 

2. 횡식적인 출가주의 배격

대승의 보살은 在家 • 出家를 불문하고 모든 불교도 전체로 확대되었다. 대승불교는 부파 중에서 진보적 · 혁신적이었던 大聚部 및 재가신자 집단, 즉 보살승이 중심이 되어, 그 당시까지 우세한 세력을 유지하던 전통적 • 보수적 불교에 대항하였던 종교운동이며, 그때 스스로를 大乘으로 자칭하고 기존의 불교를 소승으로 낮추어 불렀다. 대승불교 이전의 불교는 世間과 出世間울 엄격히 구분하고 전자를 후자에 종속시켰지만, 대승불교는 세간도 이외에 별도로 출세간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승불교는 空의 교리로 聖의 세계와 洛의 세계가 확연히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不二) 相郞의 관계에 있다고 가르친다. 아라한은 우전 자신이 열반을 구하고 번뇌롤 단멸하여 육도윤회를 해탈하는 것이 제일의 목적인 것에 비하여 보살은 윤회와 열반을 不二로 보기 때문에 윤회 속에서 종교 수행을 완성하고자한다.

 

대승불교도는 새로이 경전올 만들어서 전대의 출가우위를 강조하는 불교를 비판하고 세간에서의 이타행을 강조한다. 대승불교 최초기 경전인 반야부 계통은 설일체유부가 윤희와 열반을 양분하여 실체시하는 것에 대해 空으로써 이러한 이분법을 지양하고 윤회와 열반의 상즉불이 관계를 논중하고 있다. 『반야경』의 空의 논리에 의해 윤회 속에 열반이 있으므로 윤회하는 현실 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중시하는 재가주의 경전이 형성되고 널리 유포된 것이다.

 

『유마경』은 대표적로 재가신자의 우월성을 대변하며 전대의 출가불교를 드리마틱하게 공격한다. 붓다는 사리불 등 상수제자들로 하여금 유마의 병을 문안하도록 요청하지만 사리불, 목건련, 가섭 들은 하나같이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한다. 출가 아라한으로서 붓다의 10 대 제자로 알려진 사리불등이 자신의 열등함을 고백하고 있는 것은 부파불교의 출가 아라한 위주의 불교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유마거사는 비록 재가자이지만 출가한 아라한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올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유마거사에게 당했던 지난 일들올 들어, 그에게 병문안을 갔다가 법 문답을 통해서 어떠한 감당하지 못할 일이 있을까 염려하여 모두 사양하고 있는 것이다.

 

문수사리보살이 유마거사에게 당신의 병은 무엇으로 인하여 생겼으며 생긴지가 얼마나 오래되었으며 어떻게 해야 그 병이 낫겠느냐고 질문한다. “일체 중생이 병들었기 때문에 나에게 병이 있습니다. 만약 일채 중생에게 병이 없게 되면 나의 병도 없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들을 위하여 생사에 들어갑니다. 생사가 있는데는 곧 병이 있습니다. 만일 중생들이 병을 여의게 된다면 보살에게도 다시는 병이 없을 것입니다." 보살과 중생이 하나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성문이나 연각이 자신의 깨달음에 안주하지만 보살은 자신의 깨달음뿐만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보살은 중생들의 고통에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보살은 중생들의 고통을 공유하면서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을 보이는 대자비의 사상이다. 앞서 살펴본 『유마경』의 유마거사와 마찬가지로 『숭만경』의 숭만 부인은 재가자 특히 부녀자로서 설법의 주체가 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겠다.

 

『화엄경』은 출가 • 재가라는 분별된 입장을 버리고 보살행올 설한다. 이 경전은 그 이론적 근거로서 깨달음의 세계와 중생의 세계가 하나의 진실한 세계로부터 융통무애하게 출현한 것이라고 보고 자리 즉 이타, 이타 즉 자리라는 입장올 견지하여 속의 세계를 강조한다. 대승불교의 이제설은 설일체유부의 二調說이 二元대립으로 끝나고 말았는데 비해 강한 실천적 지향에 의해 통일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제설이란 진실 그 자체로서의 절대적인 진리와 윤회하는 세계의 상대적 진리를 말한다. 부파불교에서는 진제와 속제가 분립되고 속제는 평가 절하되어 있으나 대승불교에서는 양자의 구분을 부정한다.

 

3. 보살행: 속의 세계에로

대승불교에 이르러 성과 속이라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이 부정되면서 초기불교와 부파불교에서 등한시되었던 洛의 영역이 크게 부각되고 긍정적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아라한은 출가 수행자로서 세속의 문제에 관여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단지 재가자들에게 법을 설하는 것을 주된 생활의 목표를 삼았다. 이에 비해 대승의 보살은 법보시 이전에 중생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물리적인 것에도 관심을 보이고 그들의 요구를 충족해 주려고 노력한다. 열반의 추구를 위해 재물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열반과 윤회의 不二相郞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윤회의 세계에 살고 있은 중생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如來장 사상은 공의 사상과 다른 측면에서 중생계의 현실을 긍정한다. 공 이론이 성속의 양분을 인정하지 않아 속이 성의 위치로 전환되지만 如來藏 사상은 성이 속에 잠재적으로 내재해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속을 긍정하게 되는 것이다. 초기 대승불교의 부정적 표현인 공 이론이 중기 대승불교에 이르러 여래장이라는 긍정적인 용어로 바뀐 것이다. 여래장 사상의 근저에는 중생의 현실태가 불완전한 것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여래라고 하는 이상태와 완전히 동일하다고 보는 생각이 놓여있다.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의 권유에 의해서 53 인의 선지식을 방문하고 그들로부터 가르침올 받고 최후로 보현보살울 만남으로써 정각을 이루었다는 이야기가 『화엄경』의 입법계품의 중심 내용이다. 선재동자의 구도행각에서 스숭의 역할을 했던 이들을 살펴보면 불교 내의 선지식뿐만 아니라 외도 · 부녀자 • 유녀 둥으로부터 그 가르침울 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올 수 없다. 일상생활 속에 있는 진리롤 강조한 것으로 진리가 현실과 유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단지 사찰에서만 불도가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 어디에서나 불도가 구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입법계품은 선재동자를 통하여 보여주고 었다.

 

『화엄경』의 선재동자를 통하여 보살행을 살필 수 있다. “대자비심으로 평등히 장애없이 -切(중생)에게 널리 보시하여 모두 滿足스럽게 한다. 옴식올 구하는 자에게 軟食올 주고 衣服을 구하는 자에게 衣服을 주고 香華를 구하는 자에게 華를 준다." 金銀 塵尼 둥 모든 진귀한 寶物, 창고에 저장된 일체의 것, 모든 春屬, 城롭, 聚落도 모두 이와 같이 중생에게 널리 보시한다." 중생의 요익은 정신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면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가난한 자를 만족하게 하고 병자를 낫게 하고 위험에 처한 자롤 편안하게 하고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두려옴을 멈추고 근심하는 자는 모두 즐겁게 한다."  

 

법장 비구의 48서원은 전형적인 이타행을 표현한 것으로 여기에는 종교적인 수행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의식주 둥에 관한 생활자료의 충족, 교통기관의 완비, 신분 철폐, 교육, 위생 둥 일상적인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법장 비구의 서원은 무엇보다도 빈궁고의 구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나는 무량겹 동안 大施主가 되어 널리 모든 빈궁고를 구제하지 못한다면 결코 정각을 이루지 않을 것이다. "

 

중생의 정신적 물질적인 행복에 관심을 기울이는 관세음보살의 이타행은 법화경에 잘 소개되어 있다. 관세음보살이 어떤 보살보다도 유명해진 것은 널리 서민생활 에 호응하여 그들의 요구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측 홍수 둥 천채 지변의 위험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사회문제까지 해결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고 있다. 『법화경』 서품에서 많은 보살들이 지신의 모든 재산을 보시하고 있은 것을 불 수 었다. “金銀, 摩尼 … 즐거이 보시한다... 爛擔...보시한다. 또한 보살은 신체, 手足과 처자를 보시한다."

 

『유마경』에서 유마 거사는 빈민을 구제하는 보시는 이 뚫婆 世界에 있는 10가지 善法 중 제일올 구성하고 었으므로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보시로 모든 빈민올 搬受한다" 라고 유마 거사가 표현하고 있돗이 그는 자신의 재산이 소진되는 것울 개의치 않고 모든 빈민을 구제하려고 재물에 의한 利他行올 표방하고 었다. 여기서 보시가 법보시가 아니라 물질적인 보시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겠다.

 

중생의 의식주 일채를 해결해 주려는 자비의 대원을 세운 지장보살은 종종 입상으로 거리에 세워져 있는 것올 혼히 볼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일상적인 생활속에서 일체 중생의 갖가지 理的 · 械理的 고통을 구제해 주는 보살이라는 점과 깊은 관계률 갖고 있다. 지장보살은 삼계의 모든 중생이 열반을 얻기 전에는 자신은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고 발원을 세워 중생과 늘 함께 하고 있다. 중생에게 생멸의 고통이 있고 생사를 되풀이하는 한 지장보살은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하므로 成佛보다 중생제도의 利他行에만 전념한다.

 

승만부인은 10가지 맹세를 세우는데 그 중 재물에 인색하지 않고 모든 재물을 모두 약한 자의 구제에만 사용하려는 원을 내세우고 있다. 여기서도 무엇보다도 물질적인 보시가 중요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승불교가 권력층이나 부유한 세력가에게 영합하면서 보시를 이끌어내지는 않았다. 『법화경』에서 보살이 접근해선 안 되는 다섯 부류의 사랍 중 첫 번째가 왕, 왕자, 대신, 관리 등 권력층을 들고 있다.

 

v. 맺는말

 

이상적인 인간상은 사회의 진행 및 그 방향에 주요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사회구성원의 삶의 모델로 제시되면서 모든 구성원이 본받기를 요구받는다. 사회구성원이 모범 모델을 얼마만큼 수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성격과 방향이 결정된다. 역사적으로 이상적인 인간상은 종교의 세계에서 두드러지게 제시되고 있다. 붓다나 예수 둥과 같은 교주의 삶은 신자들에게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삶의 이정표로 여겨진다.

 

본고에서는 불교의 이상 인간상을 지역별로 시대별로 살펴보았다. 불교의 이상 인간상이 모두 利他行을그 핵심으로 하고 있는 점에서 모두 같지만 그 구체적인 활동에는 차이가 있음을 살펴보았다. 즉 이상 인간상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변천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초기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으료 제시된 붓다는 위대한 스숭으로서 聖의 세계를 제자들에게 알리는 것을 자신의 주된 사명으로 여겼으므로 세속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국가권력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였다. 

 

부파불교의 연장선상에 있는 동남아시아 불교는 아라한을 이상 인간상으로 여겼다. 아라한은 출가자만이 가능하다고 보는 출가주의률 우위에 두고 세간으로부터의 해탈을 강조했다. 출가위주의 아라한 불교는 성속의 구분이 뚜렷하고 洛은 聖에 종속되어 부차적인 의미를 지녔다. 따라서 속의 세계에서 성의 세계로 전입하는 것이 중요시되었기 때문에 그 길을 제시해주는 法布施카 중요시되었다. 그러나 대숭불교는 이러한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부정하고 속의 세계를 둥한시하지 않고 현실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는 중생을 위한 財布施가 보살행의 기초가 되었다.

 

초기불교나 부파불교와는 달리 인도의 대숭불교는 교리적으로 성속의 엄격한 구분을 애매하게 만들어서 불교의 전통적인 영역인 성의 영역이 세속화되는 성향의 가능성을 만들어 내었다. 역사적으로 속의 세계에서 성의 실현이라기보다는 성이 속에 매몰되어버린 것 같다. 세속화의 심화과정은 중국불교에서 더 심화되고 한국불교에서 더 한층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논의하고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