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논문·평론

정전으로서의 아가마(Āgama) 발굴을 위한 시론/김준호

실론섬 2015. 12. 1. 14:27

정전으로서의 아가마(Āgama) 발굴을 위한 시론

김 준호/부산대 인문학연구소 HK전임연구원

 

[차례]

Ⅰ. 시작하며

Ⅱ. 니까야와 아가마

    1. 첫 번째 정전화 작업: 불교문헌학

    2. 두 번째 정전화 작업: 남북 양전의 비교․ 대조

Ⅲ. 부파의 제논서와 아가마 발굴

    1. 제논서의 경설에서 아가마 발굴의 문제점

    2. 정전 아가마 발굴을 위해 가능한 방법들:「구사론」과「청정도론」

Ⅳ. 맺으며

 

[국문초록]

이 글은 현존하는 5 니까야와 4아함에서 부처의 직설(친설)을 찾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모색이다. 현재 초기불전으로 간주되고 있는 5니까야와 4아함경은 부처의 직설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처의 직설 그대로 간주하기에도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어느 시기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특정부파에서 편집된 불전이라는 사실은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자는 현재 정전으로 받들고 있는 아가마(전승된 가르침)에서 부처의 직설(아가마)로 간주해도 좋을만한 아가마는 진정 어떻게 찾아야 할까라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하여 두 가지 연구방법론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는, 5니까야와 4아함경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서술양식의 차이이다. 나아가 하나의 교설이나 수행방법론이 서로 다른 서술형태, 그것도 서술 내용상의 불일치 또는 모순을 보이고 있는 형태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다. 필자는 이와 같은 서술상의 차이나 모순을 단순히 전승 과정에서 파생된 문제점이나 편집상의 오류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 같은 차이나 모순은 특정의 교설이나 수행방법론에 대해 부처의 직설이냐의 여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의 과정이 개입된 결과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논서에서 인용된 아가마의 내용이다. 각기 북전과 남전불교를 대표하는「구사론」과「청정도론」에서는 초기경전의 내용이 많이 인용되었다. 기존의 연구에서 이에 대한 주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들을 취급하는 방식에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곧,「구사론」에서는 경문의 내용이 어떠한 맥락에서 인용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특정한 교의의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해서 초기경문이 인용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청정도론」에서는 인용된 초기의 경설과 상호 모순되는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경설을 역으로 추적하는 방법을 쓸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작업의 결과가 곧바로 부처의 직설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겠지만, 직설을 발굴하려는 하나의 시도로서의 의의는 있을 것이다.

 

Ⅰ. 시작하며

 

초기불교에 대한 연구는 1990년부터 이땅에 소개된 위빠사나 명상에 대한 관심의 고조와 더불어 21세기에 들면서 가히 폭발적이라 할만큼연구성과가 축적되고 있다. 1970년대 초에 김동화, 고익진 선생에 의해 팔리어본 니까야의 존재를 알게 된 것에 비하면 가히 비약적인 성과라 할 것이다. 이제 팔리어 원전 독해능력이 없이는 초기불교 전공자로 자처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공감대도 충분히 형성된 듯하다. 논자 또한 초기불교 전공자로서 이 같은 분위기를 바람직하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런 마음 또한 지우기가 어렵다. 종교의 텍스트, 그것도 정전이라는 이름표가 붙을 경우, 하나의 텍스트로 향하는 무한의 신뢰속에 벌어지는 폐쇄적인 경직성을 늘 시원찮게 바라보는 논자의 선입견이 작용했기 때문일까?

 

아가마란 ‘전승된 가르침’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서 ‘정전으로서의 아가마’란 ‘부처의 직설’을 가리키는 말로 쓴다. 아함경은 한역된 것이고, 니까야는 팔리어본이므로 둘 다 부처의 직설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의 텍스트일 뿐이다. 논자가 우려하는 바는 현재 우리 학계에서 양산되고 있는 초기불교에 대한 연구성과가 거의 대부분 니까야만을 정전으로 삼고있는 부당한 전제에서 나온다는 사실 때문이다. 니까야는 말 그대로 부파에 의해 편집된 것일 뿐인데도 텍스트 자체의 문제점에 대한 반성적 성찰 없이, 니까야에 나오기만 하면 곧 그것은 바로 부처님 말씀이라는 편향된 시각을 걱정하는 것이다.

 

하나의 텍스트가 아니라 유일한 텍스트라는 시각은 패쇄와 경직성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그러한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인문학으로서 불교학의 길이 요원함은 물론 그저 호교론이나 종파주의만 고집하게 될 것이라는 진단은 논자의 지나친 기우일까?

 

이 글에서는 초기불교 텍스트 자체에 놓여 있는 이같은 문제점을 되짚어 보아, 현존하는 텍스트에서 부처의 직설을 발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장으로 삼는다.

 

Ⅱ. 니까야와 아가마

 

초기불교사상의 연구가 석가모니 부처의 직설(直說)을 탐구하는 작업이라 한다면, 주요 텍스트는 팔리(Pāli)어로 쓰여진 5니까야(Nikāya; 部)와 한역(漢譯)된 4아함(阿含; Āgama), 그리고 산스크리트어와 티벳어로 된 몇몇 사본 및 단편으로 구성된다. 니까야는 전체의 내용이 모두 온전하게 남아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각각의 부파(18-20개)가 따로 전승하고 있던 아가마의 전모가 아니라, 남방상좌부가 전승해온 경장일 뿐이라는 점에서 니까야 그 자체를 부처의 직설이라고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방상좌부라는 일개 부파에 의해 전승되고 편찬된 경전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니까야는 부처의 직설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텍스트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니까야가 바로 부처의 직설을 담은 정전이라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논자가 즐겨 쓰는 표현에 따르면 그저 남전(南傳)일 뿐이다.

 

이에 반해 한역 4아함은 태생부터가 번역된 결과물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작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원본(Urtext) 아가마는 현재까지 몇몇 사본이나 단편만 발견되었기 때문에 대규모의 고고학적 발굴성과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온전하게 원본을 복원하는 일은 불가능 할 것이다. 만약 원본이 온전하게 발굴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곧 그 원본은 과연 특정 부파가 전승해오는 과정에서 자의적 편집이나 해석을 거치지 않은 순수한 부처의 직설 그 자체일까라는 의문이 다시 또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아함은 단일부파의 전승인 니까야와는 달리 여러 부파가 전해오던 내용들이 뒤섞여 있어서,2) 각 부파 사이에 존재했던 주요 교설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료로서의 가치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곧 4아함도 부처의 직설 그 자체는 아니지만, 정전의 단면을 어느 정도는 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4아함 역시 북전(北傳)일 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겠으나, 이미 나름대로 자세하게 논의한 적이 있으므로3) 생략하고, 여기서는 정전으로서의 아가마에 대한 논의로 초점을 모으기로 한다.

2) 前田惠學에 따르면, 대부분의 학자들은 장아함은 法藏部, 중아함과 잡아함은 有部계통, 
   증일아함은 大衆部계통으로 파악하고 있다.(前田惠學, 原始佛敎聖典の成立史硏究, 
   東京: 山喜房佛書林, 1964, p.8). 松本文三郞과 같이 증일아함을 法藏部소속으로 주장
   하는 소수의 의견도 있다(같은 책, p.12).
3) 졸고, 초기불교 禪定說의 체계에 관한 연구 (부산대 철학박사 학위논문, 2007),pp.8-17. ; 
   졸고, ‘사띠(sati) 논쟁’의 공과(功過) ,「불교학리뷰」제4집, 2008,pp.196-200 참조.

 

1. 첫 번째 정전화 작업: 불교문헌학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현존하는 니까야와 아함이 모두 정전으로서의 위상이 불완전하다면, 산스크리트 사본이나 단편의 발굴 및 교정본 편집에 기울이려는 노력은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드용에 따르면, 인도불교의 연구에서 네팔에서 발굴한 산스크리트 사본들과 세일론에서 온 팔리어 사본들에 토대를 두고 연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은 뷔르누프에서 비롯된다고4) 한다. 이른바 원전의 비판교정과 언어 및 문체의 분석, 그리고 비판적 번역 등의 작업을 포괄하는 불교문헌학적 방법으로써, 원전들이 적절하게 교정․편집되어 해석․번역되고 나면, 종교적․철학적 관념들의 발전과정 연구도 가능해질 것으로5) 기대하고 있는 셈이다.

4) J.W.de Jong, 강종원 편역, 「현대불교학연구사-문헌학을 중심으로-」, 2004, p.51.
5) J.W.de Jong, 강종원 편역, 같은 책, p.171.

 

초기불교 연구의 경우, 1881년 리즈 데이비스(Rhys Davids)가 팔리어 성전협회(Pāli Text Society)를 창립하여 1930년에 이르기까지 5니까야 전체를 출판하면서 본격화되었다. 드용의 말을 다시 빌리면, 발트슈미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대반열반경』 및 그에 대응되는 원전들을 분석하여, 팔리어역․티벳역․한역에서 그에 대응되는 구절들을 부가하여 산스크리트어 원전을 교정․편집하여 출판하였다. 발트슈미트가 주의 깊게 교정․편집한 단편들의 교정본은 사본독해에 깊은 신뢰를 가져오기에 충분했으며, 나아가 이러한 작업들을 사진판으로 재생산해냄으로써 검증까지 가능하게 하였다. 특히 대응관계에 있는 여러 원전들을 분석하고, 산스크리트어 단편들을 그에 대응되는 다른 언어로 된 구절들과 함께 출판함으로써 관련된 모든 사료들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6) 점에서 정전 만들기에 대한 훌륭한 모범사례로 평가할만하다.

6) 드용, 위의 책, pp.131-133.

 

그리스어와 라틴어 고전연구에 오래된 역량을 축적하고 있는 유럽의 연구자들이 200년 넘게 인도고전어를 연구한 결과, 이제 그들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마가디어, 간다라어, 티벳어 사본은 물론 한문원전 번역을 넘어서서 일본학계의 연구결과까지 흡수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유럽의 문헌학적 연구성과 특히 사본 및 단편들을 직접 해독하려는 연구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주로 함부르크와 비엔나 대학에서 유럽의 문헌학적 연구방법을 직접 배워온 이들에 의해 이미 사본연구의 결과물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7) 

7) 강성용, adhikarana 연구Ⅰ-고대 인도의 논쟁, 논리전통에서의 adhikarana 연구
(「철학」   제79집, 한국철학회, 2004, pp.55-79), adhikarana 연구Ⅱ-vadhavidhana 단편들에
   대하여 (「철학」제80집, 한국철학회, 2004, pp.59-82) ; 안성두, 울너사본의 현황조사와 
   샘플링 작업 (「인도철학」제25집, 2008, pp.175-214), 圓測<해심밀경소> 티벳역의 
   성격과 의의 (「인도철학」제27집, 2009, pp.207-246).

 

그러나 이와 같은 지난한 작업의 결과로써 편집․교정해낸 텍스트가 몇몇 개별경전의 내용을 집중적으로 복원․발굴하는 데에는 성과를 낼 수 있겠지만, ‘부처의 직설’을 그대로 담고 있는 정전의 복원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1987년 8월 ‘초기불교’를 주제로 라이덴에서 개최된 ‘제7회 세계 산스크리트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슈미트하우젠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보면 여전히 난제가 남아있음을 엿볼 수 있다.

 

첫번째 부류는 주로 영국의 연구자들로 니까야 대부분을 붓다의 직설로 인정하며, 경전급 원전들이 붓다의 가르침의 진수를 전해주는 것으로 믿는다. 두 번째 부류는 최초기의 불교 교리의 복원, 즉 붓다 자신의 가르침만 가려내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들은 불교 경전들이 성문화되기 이전 수 세기에 걸쳐 구전되는 과정에서 변화되었고, 성문화된 후에도 계속해서 개정되었다고 보고 있다. 세 번째 부류는 앞서 첫 번째 부류와 유사한데, 불교 경전에 대해 최상의 문헌비판적 방법론을 적용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다. 이런 연구자들은 불교 경전들의 역사적 층위 혹은 불교 교리의 발전단계들을 구분할 수 있다고 믿는다.8)

8) 드용, 앞의 책, p.223에서 재인용. ; 이영진, 초기불교 텍스트에서 나타난 상수멸
   (saññāvedayitanirodha)의 불일치와 모순 ,「인도철학」 제19집(서울: 인도철학회,2005), 
   pp.94-97 참조.

 

인용문에 그대로 나타나듯이, 불교문헌학의 지난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처의 직설을 원래대로 복원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다. 수많은 사본을 발굴․교정․편집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부처의 직설인지의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엄밀한 문헌비판적 방법론을 동원하여 불교 교리의 발전단계를 나누는 데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들은 경전에서 발견되는 상호모순되는 듯한 다양한 異說들을 검토하여 역사적 발전개요를 구성해보려는 시도로써 난점을 해결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이같은 문제의식은 아카누마 치젠(赤沼智善)이 「한파사부사아함호조록(漢巴四部四阿含互照錄)」을 완성하면서(1929) 일본 불교학계에서도 팔리어본과 한역본의 비교․대조작업이라는 방법론으로 오랫동안 다루어온 것이므로 아래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두 번째 정전화 작업: 남북 양전의 비교․ 대조

팔리어본 5니까야와 한역본 4아함경을 비교․대조하는 작업으로 정전을 복원하려는 노력은 이미 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9) 이 연구방법론은 남전 니까야와 북전 아함경에서 서로 일치하는 경설(經說)을 찾아내어, 한쪽에만 발견되는 경설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간주하거나 부처의 직설에 좀더 가까울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9) 이 방법론의 연구사 및 자세한 설명은 졸고, 초기불교 선정설의 체계에 관한 연
    구 , pp.12-14 참조.

 

그런데 연구자마다 동일한 방법론을 적용하면서도 초기불전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먼저 이들 연구자에게 발견되는 기본적인 태도는, 남북 양전에 공통으로 발견되는 경설을 정전(부처의 직설)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10) 그러나 양전 간에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설에 대해서는 뚜렷한 견해의 차이를 보여준다.

10) 宇井伯壽,「인도철학연구」제2, 원시불교자료론 , 岩波書店, 1965, p.139 ; 실제 팔리와 
    한역을 비교해보아도 또 각 아함을 대조해도 각기 특유의 차이가 때로는 교리상의 모순
    까지도 확인되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단순히 팔리경장에 있다든가 
    또는 어떠한 아함에 설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해서, 이것이 곧바로 원시불교의 자료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체를 비교대조하여 각각 공통되는 부분을 채용하는 
    일이 필요하게 된다.

 

첫째 부류는 양전을 비교․대조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내용상의 불일치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태도이다. 니까야와 아함 사이의 기본적인 일치 사실을 강조하며 초기불교의 역사성을 대변한 라모뜨의 주장이 대표적이다.11) 팔리본을 중심으로 하여 일치하는 부분을 표본경설로 삼되 한역본의 차이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인다는 태도에서나,12) 북전 4아함이나 남전 4니까야가 내용적인 면에서나 여러 가지 종합적인 판단에서는 별개의 것이 아니고, 약간의 배열순서나 구성면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13) 조용길의 관점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11) 에띠엔 라모뜨, 호진 옮김,「「인도불교사2」(서울:시공사, 2006), p.396 ; 경전편찬이 
    늦게 이루어졌다는 것이 비록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초기불교를 평가하기 
    위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확실한 증거-또는 실마리-는 니까야와 아가마 
    사이의 근본적인 일치이다. 이 증거 또는 실마리는 2,500년의 거리를 두고 세워진 
    학술적인 가설들보다 더 큰 무게를 가지고 있다.
12) 木村泰賢, 박경준 역,「원시불교사상론」, 1992, 경서원, pp.25-26. ; 대체로는 한역․
    팔리의 일치하는 자료를 본위로 하면서도, 때로는 한역으로만 전해지고 팔리문 쪽에는 
    없는 것일지라도 본인의 연구상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본다면, 팔리문이 빠르고 한역 쪽이 늦게 성립된 
    것에 속한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한편 내가 본 바에 의하면 한역에는 
    팔리성전의 편집자가 고의로 생략한 것처럼 보이는 재료도 있으므로, 팔리문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하여 반드시 모두가 나중의 부가적인 부분일 뿐이라고는 단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가 있으므로 나는 한역만의 자료라도 도외시 하지 않는 
    것이다. : 木村泰賢, 「원시불교사상론」, 박경준 역, 경서원, 1992, pp.23-24. ; 다시 
    말해서 서로 다른 전승들 사이에서 일치하는 바가 있다는 것은, 비록 순전히 원시적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가장 오랜 전승에 속한다고 간주할 수 있는 것이며, 
    거기서 일치하지 않는 바는 그 부파 특유의 전승일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등, 연구상 여러가지의 단서를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것은 한역에 의하든 팔리문에 의하든 예로   
   부터 전해진 것의 전체가 아니라 도중에 산실된 것도 적지 않은 듯하기 때문에, 어느 
    쪽에서는 전해지고 다른 쪽에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하여 그 부파 특유의 것이라고 
    단정하기가 어렵다는 사정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어느 정도 그 표준이 된다는 
    점은 쟁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 이렇게 하여 한역과 팔리본의 정리가 이루어지면, 
    다시 그 일치하는 부분에 대하여 일치하지 않는 것을 참조하는 동시에 다양한 증빙자료에 
    비추어, 그 중에서 신(新)․고(古)를 결정하는 것이 제2단계의 작업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매우 어려운 작업이어서 과연 그 목적을 완전히 달성할 수 있는 시기가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이지만, 하여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금후 이 방면에 
    노력을 기울이는 연구자의 기본 원칙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엄격한 의미에서 진정한 
    원시불교의 연구는 이렇게 할 때라야 비로소 완전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13) 조용길, 根本經典으로서의 阿含經의 分析的考察,「한국불교학」제25집, 1999, 
      p.103.

 

이에 반해 내용상 일치되는 부분은 부파로 분열되기 이전에 공통으로 간직하던 아가마 곧 정전으로 간주하고,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부파분열 이후 각 부파별로 따로 작성, 편찬한 내용으로 구분하려는 경우이다. 이와 같은 가정에서는 초기불전 안에서 다시 고층(古層)과 신층(新層)을 구별하려는 문헌비평으로도 연결된다.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가 확립한 바에 따르면, 『숫타니파타』 및 남전 상응부의 Sagāthavagga는 아쇼카왕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서, 그 중에서도 다시 『숫타니파타』안의 아타카(Aṭṭhaka) 와 파라야나(Pārāyana) 는 석존에 가까운 시대의 사상을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14) 이러한 자료론에 따라 현존하는 초기불전은 ‘운문경전(최초기불전)→산문경전(초기불전)→논서(아비달마)’로 사상사적 전개를 가늠할 수 있다는 일본 불교학계의 전통적인 방법으로 계승되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연구방법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중에는 남북전 비교․대조방법의 전제, 즉 남전과 북전에 공통되는 부분을 추출하면 원본 아가마를 구성할 수 있다는 이른바 원초형태설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특히 눈에 띈다. 

14) 中村元, 원시불교성전성립사 연구의 기준에 대해서 ,「원시불교의 사상 下」, 春秋社, 
    1981, pp.259-494. ; 여기서 나카무라는 운문경전의 중요성에 대한 기존의 연구성과
    를 정리한 뒤 자신의 의견을 추가한다. 편의상, 간략히 요약하여 소개한다. ; 1) 운문 
    시구의 구절에는, 때로 우파니샤드 문구 혹은 우파니샤드 사상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적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초기 古우파니샤드에 직접 연결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되는 점도 있다. 그런데 산문 부분은 우파니샤드 문구 혹은 사상과 매우 떨어져    
   있다. 2) 운문 시구 안에서는 쟈이나교 성전의 운문 시구와 거의 완전하게 동일한    
   것이 적지 않다. 즉 『숫타니파타』나 『『담마파다』 등에서는 공통적인 시구가    
   존재한다. 또 원시불교 성전의 운문부분의 사상이나 표현법이 쟈이나교 성전 혹은 
    아지비카교의 그것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특히 운문 부분에 나오는 술어 
    중에서는 후세의 불교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것과 같은 쟈이나교적인 표현이 있다. 
    또 번뇌의 열거방식으로서도 아비달마의 그것과 달리, 쟈이나교의 열거방식과 일치
    하는 것이 있다. 3)운문부분 속에서는 불교 특유의 술어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거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술어는 바라문교 성전이나 쟈이나교 성전 속에 나타나는 
    것 정도라고 말해도 좋다. 이에 반해 경전의 산문부분에서는 불교 특유의 술어가 
    대단히 많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에 의해서 산문부분이 오래되었다고 해도 
    모든 운문의 시구가 오래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분명히 나중에 부가된 것도 
    있다. (같은 책, pp.273-274).

 

"이들 여러 본에 공통되는 요소만을 추출하여 이른바 최대공약수적인본을 만들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오랜 형식을 재생할 수는 없다. 각 본 특유의 맛이 잃어지는 것 뿐만 아니라 원형에 가깝다는 보증을 얻을 수도 없는 것이다.

 

부처의 최초설법이 엄밀하게 역사적인 의미에서 어떠했는가 하는 것은 현재의 우리들로서는 학문적인 방법으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와 동시에 또한 어느 전승도 어떤 의미에서는 부처의 참뜻을 전하는 데 충실하다고 하는 점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지금 예를 든 최초의 설법만으로 국한시켜서 생각해 보아도, 그 중의 특정부분에 대하여 A본은 B본보다도 오랜 형식을 보존하고 있다고 말 할 수가 있는 경우도 있으며, 더욱 그것을 확대하여 A본은 B본보다도 대체로 오랜 전승에 속한다고 하는 것까지는 추정하여도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A본으로부터 B본이 파생하였다고 할 수는 없으며, 또 A본과 B본의 공통되는 기원으로서 일찍이 X본이 존재했다고 상정하는 것도 용이하지 않다. 요컨대 A본이 B본보다도 오랜 형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는 정도의 것밖에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원초적인 성전의 내용은 물론, 그러한 본이 일찍이 있었다고 하는 것조차 단정할 수가 없다.15)"

15) 渡辺照宏, 金無得역,「경전성립론」, 경서원, 1993, pp.44-46.

 

와타나베 쇼오코[渡辺照宏]는 부처의 설법 자체가 상대방의 능력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르게 말해진 것이므로 일관된 서술형태를 상정하는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점을 먼저 강조하였다.16) 그렇지만 와타나베의 비판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인용문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원초형태설 자체에 내재된 문제점을 들어 부파분열 이전의 원 텍스트의 존재를 가정하는 관점에 강한 의문을17) 제기한 것이다.

16) 渡辺照宏, 위의 책, pp.18-22.
17) 渡辺照宏, 같은 책, pp.42-46.

 

이와 같은 비판적 문제제기를 염두에 두면, 유럽의 근대불교학이 재구성한 불교사의 기본골격에서 전제하고 있는 두 가지 사실에 의문을 품게 한다. 조성택 교수의 논의를 빌리면, 유럽의 근대불교학에서는 “첫째, 불교는 본래 하나의 교단에서 출발하여 역사적 과정 속에서 여러 교단으로 분열되었다. 둘째, 현존하는 초기 경전간의 내용적 차이는 본래의 동일성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를 전제하고 있다고18) 한다.

18) 조성택, 초기불교사 ‘재구성’에 대한 검토 , 불교학연구」제23호, 불교학연구회, 
    2009, pp.145.

 

계속해서 그는 붓다 당시에 이미 다양한 언어가 허용되고, 아니 오히려 권장되었던 것이 불멸 후 곧바로 일종의 표준화 작업(표준언어 및 표준 텍스트)에 들어갔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고 본다. 소위 1차결집의 역사성을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곧 붓다 당시부터 언어의 소통적 기능을 강조하여 다양한 지방의 속어사용을 권장해왔기 때문에, 초기불교는 텍스트 언어적 측면에서 일종의 무정부적인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19) 조성택은 남북 양전의 형식적인 일치보다 내용상의 불일치가 훨씬 더 크다고 한다. 그는 남북 양전에서 발견되는 내용상의 불일치 지적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모본 텍스트를 상정하기보다는 비슷한 모티프를 각기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의도를 가지고 만들고 전승해왔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까울 수 있다는 지적에는20)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19) 조성택, 위 논문, p.147.
20) 조성택, 같은 논문, p.151-152.

 

논자가 초기불전을 연구해오면서 줄곧 가졌던 문제의식도 조성택과 다르지않다. 처음에는나카무라의방법대로쿠다카니까야에속하는『숫타니파타』, 『담마파다』, 『테라가타․테리가타』 등의 운문경전을 최초기 불전이라 가정하고, 디가․상윳따․맛지마․앙굿따라 니까야 등의 산문경전을 초기불전으로 분류하여 개념의 변이, 서술형태 등을 근거로 ‘최초기불교→초기불교’로 사상사적 전개를 구성하려 한 적이 있었다.21)

21) 졸고, 初期佛典에 나타난 止觀槪念(「한국선학」제1집, 2000).

 

그러나 이같은 방법론을 계속 적용하면서 연구를 진행한 결과, ‘최초기 불교→초기불교’의 도식적인 분류가 폭넓게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이 드러난다는 사실이 매우 곤혹스러웠다. 그러다가 생각을 바꾸어, 남북 양전간의 나타나는 내용상의 불일치는 부파불교 시대에 부처의 직설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여과과정이 어떤 형태로든 현존하는 니까야와 아함에 반영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조성택과 같이 모본 텍스트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은 아직 거두지 않았지만, 어쩌면 다양한 해석과 논쟁의 결과가 내용상의 불일치라는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 법보신문을 뜨겁게 달구었던 ‘불설(佛說; 直說, 親說) 논쟁’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권오민 교수가 「문학|사학|철학」에 佛說과 非佛說22) 논문을 발표하면서 발단이 된 논쟁이다. 이 글에서 권오민은 불설/비불설 논쟁이 대승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소승의 내부는 물론 불교사상사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곧 “현존하는 아비달마 논서를 통해서 보면, 각 부파는 자신들의 교학적 견지에 따라 불설을 달리 취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개변하기도 하였고 독자적으로 편찬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그들에 의해 결집 전승된 성전(아함)은 결코 동일하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서로의 성전(혹은 이에 근거한 견해)을 불설로 인정하지 않기도 하였다”는23) 것이다.   

22) 권오민,「문학|사학|철학」제17호(2009년 여름호), pp.118-183.
23) 권오민, 위 논문, pp.140-141.

 

각 부파가 서로 논쟁하였다는 사실은 이상할 것 없는 얘기이지만, 대론자가 제시한 경증(經證)의 적용이나 해석상의 오류를 지적하는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문제였다. 권오민이 제시한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잘못 전승한 것이라거나 자의적으로 개변한 것이다. (2) 법상(法相)에 위배된다. (3) 자신들의 견해와 달라 송지(誦持)하지 않는다. (4) 그들이 독자적으로 편찬하였다.24) 이 4가지 이유 때문에 그들이 제시한 경설(經說)을 불설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부파불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초기불전의 원본의 존재가 이미 논서 상의 대론자들에게서 서로 부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며, 나아가 부파불교 이후에도 종파적 입장을 견지하는 한 불설/비불설 논쟁 자체는 무의미한 것이 될 수 있겠다는 점 때문이었다. 더 나아가 현존하는 니까야와 아함은 편집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논쟁의 산물이기도 하므로 니까야 및 아함경을 비판적 문헌비평의식 없이 부처의 직설 또는 정전으로 삼으려는 태도가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정녕 정전으로서의 아가마는 복원할 수도 발굴할 수도 없는 것일까?

24) 권오민, 같은 논문, pp. 145-154.


Ⅲ. 부파의 제논서와 아가마 발굴


주지하다시피 아비달마의 諸논서는 아가마에 대한 1차적 해석물이다. 이상의 논의처럼 현재의 문헌학적 방법으로 아가마의 원본 또는 정전을 확정할 수 없다면, 아비달마 논서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곧 아비달마의 제논서에서 인용하는 경설(經說), 즉 어떤 상황에서 어떤 교설이 경증으로 인용되어 대론자를 논박하는 데 쓰이는지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 살펴야 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초기불전과 마찬가지로 논서 역시「청정도론(淸淨道論;Visuddhimagga)」으로 이어지는 남전 7론25)과「구사론(俱舍 論;Abhidharmakośa-śāstra)」으로 이어지는 북전 7론26)으로 나뉜다. 이외에도 중기에 속하는 북전 논서인「발지론(發智論)」,「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과 후기에 속하는 북전 논서인「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잡아비담심론(雜阿毘曇心論)」,「아비달마순정리론(阿毘達磨順正理論)」,「아비달마장현종론(阿毘達磨藏顯宗論)」등이 주요 논서로 꼽힌다. 그 밖에 법장부 소속의「사리불아비담론(舍利弗阿毘曇論)」과 경량부 계통의 논서로 추정되는「성실론(成實論)」등도 주목할만한 논서들이다.

25)「법집론(dhammasaṅgani)」,「분별론(Vibhaṅga)」,「논사(Kathāvatthu)」,「인시설론
    (Puggalapaññatti)」,「계론(Dhatūkathā)」,「쌍론(Yamaka)」,「「발취론(Patthāna)」.
26)「집이문족론(集異門足論)」,「법온족론(法蘊足論)」,「시설족론(施設足論)」,「식신족론
    (識身足論)」,「계신족론(界身足論)」,「품류족론(品類足論)」.

 

이 방대한 논서들을 하나 하나 독파해가면서 거기에 인용된 경설을 기존의 니까야 및 아함경과 정밀하게 대조하는 작업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점 때문에 이들 제논서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는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1. 제논서의 경설에서 아가마 발굴의 문제점

조성택과 권오민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현존의 니까야와 아함경을 비교․대조하여 원본 아가마를 가려내려는 노력에 그치지 않고, 정전으로서의 아가마에 대한 그 어떤 전제도 하지 않는 태도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든다. 이 말은 기존의 남북 양전 비교․대조․분석작업에 제논서에 나타나는 경설도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된다.27)

27) 平川彰編著, 양기봉 역,「불교연구입문」, 경서원, 1988, pp.90-91. ; 그런데 당연하기는 
    하나, 아비달마 논서에는 아함경이나 니까야의 인용이 많다. 또한 특정 경전을 주제로 한 
    논의가 자주 나온다. 이러한 인용들이 어떠한 경전에 해당하는지를 안다면 아비달마 불교
    의 배경이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아비달마 연구에는 원시경전에 통달함이 필요
    하다.

 

처음부터 사상사의 선후만을 따져서, 논서의 해당 경설은 각 부파에서 추가했거나 편집․해석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배제하려는 태도는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아가 이제 니까야와 아함경에 나오는 교설만 가지고 부처의 직설이라거나 순수한 원본 또는 정전이라고 믿는 태도에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고 해서 초기불전과 논서의 차이를 무시하고 완전히 동일하게 취급하자는 말은 아니다. 니까야, 아함, 논서에 언급된 경설 이 셋을 구분하되 미리 사상사적 발달의 경로를 서둘러 가늠하지 않고, 모두 논쟁의 결과물이거나 특정한 교의를 변호하기 위한 합의의 산물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자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 논의가 여기에 이르면, 우직한 길을 걸어가겠노라는 성심과 열의가 생기는 한편, 자괴감 또한 든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원전비평 작업에는 원전을 제대로 읽어내는 데만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벳어, 한문의 해독 능력이 필요하고, 관련 연구자들의 성과를 습득하려면 유럽 언어와 일본어에도 부담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전으로서의 아가마를 발굴하는 것은 고사하고 관련 텍스트를 제대로 읽어갈 것이라고 다짐하는 순간, 언어의 장벽에 부딪치고 텍스트의 엄청난 두께에 압도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언어장벽과 텍스트의 두께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를테면 니까야와 아함경의 비교․대조 작업을 힘들여 해내기만 하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정전으로 여길만한 경문(經文)이 쉽사리 나타나지 않는 경험은 연구자를 당혹스럽게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니가야와 아함경이라는 남북 양전을 비교해보면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펼칠만한 경증이 자주 발견되기 때문이다. 논자가 비유했듯이, 이 작업은 차라리 퍼즐맞추기에 가깝다.28)

28) 졸고, ‘사띠(sati) 논쟁’의 공과 , p.199.

 

이쯤 되면 심재관의 비판이 떠오른다. 그에 따르면, 한국에서 불교학을 하는 이들에게는 두 가지 식민성이 보인다고 한다. 첫째는 우리가 실질적인 학문 활동에서 제1세계의 지식체계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고, 둘째는 학문과 실존이 점점 괴리되어 자신이 연구하는 학문이 자신에게 삶을 설명할 주체적인 언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29)

29) 심재관,「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책세상, 2001, p.126.

 

여기서 말하는 첫 번째 식민성을 그의 말에 따라 다시 풀면 이렇다. 곧 그는 유럽과 일본에서 진행되는 문헌학적 연구가 불교학 내에서 항구적인 가치를 갖는 것인가를 묻고 싶은 것이다. 아주 세련되고 치밀한 문헌학적 연구를 보여주는 일본의 편집증적 연구방법을 답습하는 것이 한국의 불교를 위해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30) 지적인데, 사실 그의 말에 동감되는 점이 많다.

30) 심재관, 같은 책, pp.128-129.

 

그러나 서두에서 밝혔듯이 니까야의 경설만을 정전으로 받들거나 몇몇 개별 경전에 나오는 이야기만으로써 ‘불교에서는’, ‘부처님께서는’이라는 말을 쉽게 쓰고 있는 논문이 아직도 발견되는 현실을 돌아볼때 문헌학적 엄밀함과 문헌비평이라는 과정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본이나 단편은 제외하더라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한문 원전만큼이라도 성실하게 읽고 풀어내는 작업에 진력하는 것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쉽고도 현실적이며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사론」과「청정도론」을 제외하면, 저 방대한 북전의 논서들은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지 않은가?   

 

2. 정전 아가마 발굴을 위해 가능한 방법들: 「구사론」과 「청정도론」

「구사론」에서 아가마를 발굴하기 위한 작업은 이미 선학들의 연구성과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먼저, 서성원은 「구사론」에서 세 번이나 인용되고 있는 <잡아함경>의 第一義空經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증일아함경>에도 들어 있는 이 경전이 비록 니까야에서는 발견되지 않지만, 발레 푸셍이 산스크리트 단편들을 이용하여 재구성하려 했으며, 라모뜨에 의해 복원되었다고 한다.31) 이미 「구사론」에서 인용된 第一義空經이라는 경설 내용은 한역본과 복원된 산스크리트어본이 확보된 셈이다.   

 

이와 같은 연구성과를 지침으로 삼아「구사론」을 제대로 읽어가는 일을 이미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잡아함>의 第一義空經과 꼭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유사한 논지나 대의를 보이고 있는 니까야의 해당 경설을 발굴하여 서로 대조해보는 여지도 남겨둘 수 있다.

31) 서성원, 第一義空經과 Vasubandhu ,「인도철학」제3집, 인도철학회, 1993, p.10.


여기에 다시 혼조 요시후미가 티벳어본까지 실어서 편집한「구사론소의아함전표(俱舍論所衣阿含全表)」(1984)를 참조하면, 각 판본들을 점더 정밀하게 비교․대조할 수 있어서 더욱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전으로서의 아가마 발굴과 관련하여 좀더 눈에 띄는 성과는 최봉수의 연구에서 만날 수 있다. 최봉수는 산스크리트어본「구사론」에서 얻

어지는 아가마 경설 500개를 표본경설로 삼아 남북전 아함 상호간의 교리적 일치․불일치의 상황을 먼저 살피고자 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남전과 북전 아함의 성립은 모두 부파불교시대에 이루어지므로 부파불교 즉 아비달마불교와의 연관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이유, 그리고 아비달마불교와의 연관에 있어서 매우 합목적적이라는 점, 더욱이 구사론은 범어 원본이 발간되어 있어 현존하는 대부분의 아비달마 논서가 한역본이라는 데서 오는 자료상의 약점을 보완한다는 점을 들어32) 표본경설 추출작업에 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32) 최봉수,「원시불교 자료론」, 경서원, 1991, pp.21-22.

 

그런데 최봉수가 표본으로 간주한 500개의 경설은, 18세기 일본의 승려였던 법당(法幢)이「아비달마구사론계고(阿毘達磨俱舍論稽古)」이란 저술에서 4아함경 등에서 성실하게 찾아내어 그 출처를 밝혀놓은 것이라 한다. 더욱이「구사론」의 제주석서와 소속부파에 대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고 하니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저작임을 알 수 있다.

 

최봉수는 법당이 파악한 483개의 아함경문을 토대로 하여 실제로는 경문인데 누락된 것, 경문으로 볼 수 없는 부분, 대응경전으로 볼 수 없는 부분, 중복 부분, 단순 제목 등의 부분을 제외하고난 뒤 400개의 경문을 추출하였다. 따라서, 그의 연구에 기대면「구사론」에 나타난 아가마의 경설을 추출하여 현존하는 5니까야와 4아함을 비교․대조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경설을 취급하는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는 최봉수의 방법에 동의하지만, 경설에서 발견되는 상이한 교설들을 해석하는 태도는 달리 할 것이다. 앞에서 논의했듯이, 논자는 서로 다른 교설의 존재를 오히려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최봉수와 같이 교리적으로 서로 다른 표현을 모두 불설로 간주하는 태도를 취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 이유에서 그러하다. 서로 다른 교설의 양립 속에서 오히려 부처의 직설을 찾으려는 긴 과정의 일단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구사론」에서 인용한 아가마가 남북 양전의 어디에 속하든, 또 공통되는 것이든 한쪽에만 나타난 것이든, 특정한 경설을 인용하여 어떤 주장을 펼치는 데 이용하고 있는가이다. 어떤 주장을 합리화 시키려고 경증을 인용하고 있는지가 비판적으로 텍스트를 해석하려는 태도에서는 중요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때 특정한 주장이나 교설을 반증시킬만한 경증이 남북 양전 중 어딘가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용하지 않았다면「구사론」이 지향하는 교학적 관점이나 가치를 더듬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된다. 


한편 남전 7론의 대표인「청정도론」에 나오는 아가마 경설에 대해서는 좀더 접근하기 쉬운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1975년에 출판된 팔리어본「청정도론」에는 해당되는 아가마의 경문 출처가 이미 명시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간략한 경설에서 개념의 의미를 분명히 하여 그 의미를 자세하게 풀어낸 것이「청정도론」이므로, 여기서 다룬 경설에만 주목하면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럴 경우에는 남방 상좌부의 시각에만 매몰될 여지가 있다. 니까야만을 유일한 정전으로 취급하는 태도를 양산할 우려도 있다.

 

「청정도론」에서는 좀더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곧청정도론에서 추출한 특정 니까야가 전하는 교설과는 상이한 관점을 보이는 경문은 존재하지 않는가를 살피는 일을 다시 지적하고 싶다. 아무래도 유부로 알려져 있는 북전의 4아함경을 살펴 교설의 차이를 분석하는 작업이 아가마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 또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주기 때문이다.

 

Ⅳ. 맺으며


초기불교 연구에서 영원한 숙제는 부처의 직설을 온전하게 발굴해낼 수 있는가일 것이다. 지금까지 현존하는 남북 양전 텍스트 자체의 한계를 중심으로 이 문제를 검토해 보고, 제논서에 발견되는 아가마의 경설을 보완할 경우 정전으로서의 아가마 발굴은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해왔다.

 

제목에서 시론이라는 단서를 붙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글이 정전으로서의 아가마 발굴 연구결과를 제시한 것이 아니라, 현재 니까야만을 정전으로 대하는 연구자의 편향적인 태도는 재고될 필요가 있으며, 현존하는 텍스트 자체에 내재한 이중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중성이란 정전으로서의 가능성 즉 어떤 형태로든 부처의 직설이 담겨져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러한 정전 만들기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과정과 결과로 나타난 서로 다른 교설의 존재 그대로가 정전 아가마와 별개일 수 없다는 조심스런 모색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제 긴 여정이 남아 있다. 초기불전인 남북 양전을 여태까지 해오던 태도보다 좀더 엄밀하게 비교․대조하는 작업은 물론 부파불교의 논서들을 하나씩 읽어가는 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감당해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부처의 직설을 알아가려는 노력이야말로 우리 불교학에서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문제라고 믿기에 묵묵히 가야할 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