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밀린다 팡하

나선비구경 하권

실론섬 2016. 2. 8. 20:17

나선비구경 하권

역자 미상[『동진록』에 부록되어 있음]

이창숙 번역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사람이 착한 일을 하려고 하면 마땅히 앞서 착한 일을 해야 합니까, 곧 뒤에 해야 합니까?”

“마땅히 앞서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뒤에 하는 것은 사람에게 이익이 되지 않습니다. 대왕께서 목이 마를 때 땅을 파서 우물을 만들려고 하면 갈증이 가십니까?”

“갈증이 가시지 않습니다. 앞서 우물을 파놓아야 합니다.”

“그런 까닭으로 착한 일도 앞서 해놓아야 합니다. 배가 고플 때 사람으로 하여금 씨 뿌려 경작하게 하면 곡식이 곧 익어서 먹을 수 있습니까?”

“먹을 수 없습니다. 먼저 준비를 해 놓아야 합니다.”

“사람도 이와 같이 먼저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착한 일을 하면 사람의 몸에 이롭지 않습니다. 비유하자면 왕에게 원한이 있는데 그때를 당해서 전투에 필요한 것을 갖추려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안 됩니다. 원한이 있으면 미리 준비해야 마땅합니다.”

“부처님께서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먼저 스스로 생각해서 착한 일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뒤에 하는 것은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대도(大道)를 버리고 사도(邪道)를 취하는 것을 하지 말며, 어리석은 사람을 모범으로 삼아서 착한 일을 안 하고 악한 일을 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후에 주저앉아 울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이 바른 길을 버리고 부정한 길을 취하면 죽음에 임해서 후회합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대사와 같은 여러 사문들은 세간의 불과 지옥의 화열은 같지 않다고 말합니다. 또 말하기를 작은 돌을 세간의 불에 던져 저녁에 이르러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큰 돌을 취해서 지옥의 불 가운데 놓으면 즉시 불이 꺼진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또한 말하기를 사람이 악한 일을 하여 지옥에 가서 수천만 세가 지나도 그 사람은 불에 타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또한 믿지 않습니다.”

나선이 물었다.

“물속에 있는 이무기나 교룡(蛟龍)이나 용이나 물고기나 자라가 모래를 먹고 산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실제로 모래로 밥을 삼습니다.”

“모래가 소화가 됩니까?”

“다 소화가 됩니다.”

“그 뱃속에 새끼를 배면 그 새끼도 소화가 됩니까?”

“소화되지 않습니다.”

“왜 소화가 안 됩니까?”

“본래의 복덕이 있기 때문에 소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이 수천만 세가 지나도 불에 타 죽지 않는 것은 그가 지은 악을 다 갚지 못했기 때문에 타 죽지 않는 것입니다.”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사자나 호랑이나 이리는 다 육식을 하는데 먹은 뼈가 뱃속에 들어가면 그것들이 소화되어 없어집니까?”

“소화됩니다.”

“그 뱃속에 있는 새끼도 또한 소화됩니까?”

“소화되지 않습니다.”

“왜 소화되지 않습니까?”

“본래의 복덕이 있기 때문에 소화되어 없어지지 않습니다.”

“소나 말이나 큰 사슴이나 사슴은 풀을 먹고 삽니까?”

“풀을 먹고 삽니다.”

“그 풀들은 뱃속에서 소화가 됩니까?”

“다 소화가 됩니다.”

“그 뱃속에 새끼를 배면 그 새끼도 소화가 됩니까?”

“소화되지 않습니다.”

“왜 소화되지 않습니까?”

“본래의 복덕이 있기 때문에 소화되지 않습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악한 일을 많이 한 것이 다 갚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불에 타 죽지 않는 것입니다.”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세간의 여인들은 음식이 다 맛있어서 자기의 뜻대로 음식을 먹는데 그 먹은 음식이 뱃속에서 소화가 됩니까?”

“소화가 됩니다.”

“뱃속에 아기를 배면 그 아기도 소화가 됩니까?”

“아기는 소화가 되지 않습니다.”

“왜 소화가 되지 않습니까?”

“본래의 복덕이 있기 때문에 소화되지 않습니다.”

“지옥 가운데 있는 사람도 이와 같아서 수천만 세가 지나도 타 죽지 않는 것은 악한 일을 한 것들이 다 갚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타 죽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은 지옥 가운데서 태어나고, 지옥 가운데서 자라고, 지옥 가운데서 늙으며, 그 생이 다하면 지옥 가운데서 죽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대사와 같은 여러 사문들은 천하의 땅은 모두 물 위에 있고, 물은 바람의 위에 있고, 바람은 하늘 위에 있다고 말하는데 나는 이를 믿지 않습니다.”

나선은 먼저 왕의 먹을 가는 물을 취해서 손가락으로 그것을 찍어 들면서 왕에게 물었다.

“바람이 물을 쥔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열반의 도에서는 과거에 있었던 일이 없습니까?”

나선이 말했다.

“열반의 도에서는 과거에 있었던 일이 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몸에 탐착해서 몸을 아끼고, 아깝게 여기며 여기에 머무르기 때문에 능히 득도하여 생로병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도를 배워서 몸의 안팎을 아끼거나 아깝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은애가 없게 되며, 은애가 없으면 탐욕이 없게 되며, 탐욕이 없으면 포태(胞胎)를 하지 않으며, 포태가 없으면 탄생이 없고, 탄생이 없으면 늙음이 없고, 늙음이 없으면 병이 없고, 병이 없으면 죽음이 없고, 죽음이 없으면 걱정이 없고, 걱정이 없으면 울음이 없고, 울음이 없으면 고통이 없고, 드디어 열반의 도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도를 배우는 모든 사람들은 다 열반의 도를 성취합니까?”

“누구나 다 열반의 도를 성취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바르게 열반의 도를 향해 가는 사람은 바른 일을 배워서 압니다. 마땅히 봉행해야 할 것은 이를 봉행하고, 봉행하지 않아야 할 것은 이를 멀리 합니다.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은 이를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은 이를 생각하지 않습니다.이와 같이 하여 열반의 도를 성취합니다.”

“열반의 도를 성취하지 못한 사람도 열반의 도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압니까?”

“그렇습니다. 열반의 도를 성취하지 못해도 열반의 도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은 압니다.”

“열반의 도를 성취하지 못한 사람이 열반의 도가 사람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사람이 일찍이 손이나 발이 잘려 본 일이 없었는데도 그 아픔이 얼마나 심한지를 알 수 있습니까?”

“손이나 발이 잘려 본 일이 없었어도 그 아픔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 아픔을 알 수 있습니까?”

“손이나 발이 잘린 사람이 아파서 지르는 소리를 듣고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열반의 도를 성취한 사람이 열반의 도는 사람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는 것이라고 전하는 말을 듣고서 이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부처님을 뵌 일이 있습니까?”

“뵌 일이 없습니다.”

“나선대사와 같은 여러 스님들께서는 부처님을 뵌 일이 있습니까?”

“여러 스님들 역시 부처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나선대사나 여러 스님들께서 부처님을 뵙지 못하였으니 부처님은 정녕 없으셨던 것 아닙니까?”

“대왕께서는 5백 개의 시냇물이 한 곳으로 모이는 곳을 보았습니까?”

“나는 보지 못하였습니다.”

“왕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도 보셨습니까?”

“그분들도 다 보지 못하셨습니다.”

“대왕의 아버님이나 할아버지도 다 이 5백 개의 시냇물이 모이는 곳을 보지 못하셨으니 천하에 이 5백 개의 시냇물이 모이는 곳은 없는 것이 아닙니까?”

“나나 나의 아버님이나 할아버님이 보지 못하였다고 하여도 이 물은 실제로 있는 것입니다.”

“나나 여러 스님들이 부처님을 뵙지 못하였다고 하여도 부처님은 실제로 계셨던 것입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부처님보다 더 훌륭한 이는 없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부처님보다 더 훌륭한 이는 없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부처님보다 더 훌륭한 이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까?”

“만약 사람이 바다에 들어가 보지 않았다면 어찌 바다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다섯 개의 큰 강이 있습니다. 5백 개의 작은 강물이 큰 강으로 흘러듭니다. 큰 강 중의 하나는 항(恒, Ganga강)이라 하고, 둘째는 신타(信他, Sindhu강)며, 셋째는 사타(私他, Sta강)며, 넷째는 박차(博叉, Vaksu 또는 Vanksu강)이며, 다섯째는 시피이이(施披夷爾)입니다. 이 다섯 개의 강물은 주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갑니다. 바닷물은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대왕께서는 이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득도한 분들이 모두 말하기를 부처님보다 더 훌륭한 분은 없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부처님보다 더 훌륭한 이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하여 압니까?”

“글자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 줄 아십니까?”

“글자를 만든 사람의 이름은 ‘질(質, Tissa)’이라고 합니다.”

“대왕께서는 질이라는 분을 만나보셨습니까?”

“질이라는 분은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만나보지 못하였습니다.”

“대왕께서는 질이라는 분을 만나보지 못하셨는데 그 분이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옛날의 글자를 가지고 서로 전해가며 가르치므로 질이라는 분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같은 이유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전과 계율을 보고 부처님을 뵌 것과 다름이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도는 깊고 깊어서 사람을 상쾌하게 만듭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율을 알게 된 이후에 서로 이를 모범으로 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처님보다 더 훌륭한 이는 없다고 아는 것입니다.”

“나선대사께서는 부처님 경전의 도를 보고 이를 행하신 지가 오래 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시설하신 가르침과 계율은 사람의 마음을 매우 상쾌하게 만드니 늙을 때까지 받들어 행할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사람이 죽은 이후에 현재의 몸은 후생에까지 따라가지 않습니까?”

“사람이 죽은 이후에는 새 몸을 받기 때문에 현재의 몸은 따라가지 않습니다. 비유하자면 등불 가운데 심지가 서로 연이어 타는 것과 같습니다. 먼저 심지가 있는 가운데 새 심지가 연이어 탑니다. 사람의 몸도 이와 같아서 먼저 몸을 가져가지 않고 새 몸을 받습니다. 대왕께서 어렸을 적에 스승을 따라서 글을 배우고 경을 읽지 않았습니까?”

“그랬습니다. 나는 그것을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대왕께서는 스승에게서 경서를 배웠는데 스승께서는 어떻게 본 경서에 대해 알고 계셨을까요? 아니면 대왕께서 그 본 경서 모두를 탈취해낸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스승께서는 계속해서 스스로 본 경서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다.”

“사람의 몸도 이와 같아서 먼저의 몸을 놓아두고 새 몸을 받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상주(常住)의 주체인 영혼[智]이란 없는 것입니까?”

“상주의 주체인 영혼[智]은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과일이나 열매를 도둑질한다면 그 사람은 잘못이 없는 것입니까?”

“잘못이 있습니다.”

“처음에 나무 묘목을 심었을 때 아직 과일이 열리지 않았었는데 도둑질한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만일 묘목을 심지 않았다면 과일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도둑질 한 사람에게서는 본받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도 이와 같아서 현재의 이 몸으로 착한 일도 하고 악한 일도 합니다. 그리고 후세에 다시 태어나 새 몸을 받습니다.”

“사람이 먼저의 몸으로 지은 착한 일이나 악한 일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이 지은 모든 착한 일이나 악한 일은 그림자처럼 그 몸을 따라다닙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몸은 없어지지만 그가 행한 것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비유하자면 불을 켜고 밤에 책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불이 꺼져도 그 글자는 계속해서 있습니다. 불을 켜면 다시 글자를 볼 수 있습니다. 금생에 지은 행은 후생에도 남아있어 이를 받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나선대사께서는 선악의 소재를 분별하여 가리킬 수 있습니까?”

“선악의 소재를 알 수가 없습니다.”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나무에 아직 과일이 열리지 않았을 때 대왕께서는 어떤 나뭇가지 사이에는 과일이 열릴 것이고, 어떤 나뭇가지 사이에는 과일이 열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분별하여 가리켜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미리 알아서 말할 수 있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 득도하지 못하면 선악의 소재를 미리 알 수 없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후생에 다시 태어날 사람은 자신이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그 태어날 사람은 그것을 스스로 압니다.”

“어떻게 압니까?”

나선이 말했다.

“비유하자면 농가에서 씨 뿌려 경작할 때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그 사람은 당연히 곡식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압니까?”

“알게 됩니다. 그 밭에서 곡식이 많이 나오리라는 것을 압니다.”

“사람도 그와 같아서 후생에 태어날 사람은 그것을 미리 압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진정 열반이란 없는 것 아닙니까?”

“진정 열반은 있습니다.”

“나선대사께서는 내게 부처님께서 어디에 계신지 가르쳐주실 수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어디에 계신지 가르쳐드릴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열반하셔서 가셨기 때문에 부처님 계신 곳을 가르쳐드릴 수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큰 불을 켰다가 즉시 그 불을 끈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그 불빛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열반해 가셨습니다. 어디에 계신지 알 수 없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또 나선에게 물었다.

“사문들은 그 자신의 몸을 아깝게 여깁니까?”

“사문들은 자기 몸을 아깝게 여기지 않습니다.”

“사문들이 자기 몸을 아깝게 여기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스스로 움직이거나 쉬며, 눕기도 하고, 편안하거나 따뜻하게 하고, 음식을 먹으며 스스로를 잘 보호하려고 합니까? 왜 그럽니까?”

“대왕께서는 일찍이 전투를 해본 일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일찍이 전투를 해본 일이 있습니다.”

“전투를 할 때 일찍이 칼날이나 투구나 화살로 인해 상처를 입은 일이 있습니까?”

“나는 일찍이 칼날에 상처를 입은 일이 있습니다.”

“칼날이나 투구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을 때 어떻게 합니까?”

“나는 고약과 솜으로 치료합니다.”

“상처를 아깝게 여기기 때문에 고약과 솜으로 치료하는 것입니까?”

“나는 상처를 아깝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특별히 상처를 아깝게 여기지 않는다면 왜 고약과 솜으로 치료하여 그것을 보호하는 것입니까?”

“나는 상처를 빨리 낫게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문도 그와 같습니다. 몸을 아깝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음식을 먹기는 하지만 마음으로 즐겨서 아름다워지려고 하거나 좋은 것을 취하거나 신체를 좋게 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신체를 유지해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을 봉행하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부처님의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몸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 있는데 이것이 아홉 궁(弓)1)의 상처가 되며, 이 모든 구멍에서는 냄새가 나고 깨끗하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32상(相) 80종호(種好)를 갖추신 몸으로 모두 금색이시고 빛나셨습니까?”

“부처님께서는 32상 80종호를 갖추신 몸으로 모두 금색이며 빛이 나셨습니다.”

“부처님의 부모님께서도 32상 80종호를 갖추신 분으로 모두 금색이며 빛나셨습니까?”

“부처님의 부모님께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32상 80종호를 갖추셨는데 부모님께서는 그렇지 않았다니 부처님께서도 그렇지 않으셨던 것 아닙니까?”

왕이 다시 물었다.

“사람의 자식은 다 부모를 닮습니다. 부처님의 부모님이 그렇지 않으셨다면 부처님도 정녕 그렇지 않으셨던 것 아닙니까?”

“부처님의 부모님께서는 32상 80종호를 갖추시지 않으셨고 금색에 빛나지 않으셨지만 부처님께서는 32상 80종호를 갖추시고 금색에 빛나셨습니다. 대왕께서는 일찍이 연꽃을 보셨습니까?”

“보았습니다.”

“이 연꽃은 땅에서 나서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그 빛깔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다시 진흙탕 빛깔과 같겠습니까?”

“땅이나 진흙탕 빛깔과는 다릅니다.”

“부처님의 부모님은 32상 80종호를 갖추지 않으셨지만 부처님께서는 이 상을 갖추셨고, 부처님께서는 세간에 태어나셔서 세간에서 자라셨지만 세간의 일을 닮지 않으셨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제7천의 범천왕과 같이 그 행하는 바가 청정하여 여자와 만나는 일이 없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여인과 떨어져 있어서 깨끗하며 허물이나 더러움이 없었습니다.”

“만일 부처님께서 제7천왕의 행하는 바와 같으시다면 부처님은 제7천왕인 범천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까?”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제7천왕은 유념(有念)입니까, 무념(無念)입니까?”

“제7천왕은 유념입니다.”

“그렇기 때문이 제7천왕과 위의 여러 하늘들은 모두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코끼리의 울음소리는 어떤 소리와 비슷합니까?”

“코끼리의 울음소리는 기러기의 울음소리와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코끼리는 기러기의 제자가 되어야 할 것인데 각각 다른 종류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제7천왕인 범천의 제자는 아닌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경전과 계율을 배워서 알고 봉행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모든 경전과 계율을 배워서 알며 봉행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떤 스승에게서 경전과 계율을 배우셨습니까?”

“부처님에게는 스승이 없었고, 부처님께서 득도하셨을 때 여러 경전의 도를 스스로 아셨습니다. 부처님은 여러 제자들이 배워서 아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것을 여러 제자들은 늙을 때까지 봉행해야 할 것입니다.”

왕이 또 나선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슬퍼서 울며 눈물을 흘립니다. 사람들이 부처님의 경전을 들을 때 역시 슬퍼서 울며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같은 것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사람이 부모를 위해서 우는 것은 다 은혜와 사랑을 생각해서입니다. 은혜를 생각하며,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괴로움은 다 어리석은 괴로움입니다. 부처님의 경전을 듣고 우는 것은 다 자애의 마음에서 세간의 고통을 생각하고 우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울음은 그 복덕이 매우 큰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또 나선에게 물었다.

“득도하여 해탈한 사람은 어떤 점에서 다릅니까?”

“해탈하지 못한 사람은 탐욕심이 있고, 해탈한 사람은 탐욕심이 없습니다. 그저 음식을 먹고 명을 유지하기 위할 뿐입니다.”

“내가 세간의 사람들을 보니 다 몸을 상쾌하게 하려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 하며,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사람이 해탈을 얻지 못하면 음식을 먹는 것은 왕성하게 되기 위한 것이 되거나 좋은 맛을 즐겨서 먹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해탈을 얻으면 비록 음식을 먹긴 하지만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고, 좋은 맛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명을 유지하기 위해 그러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사람이 집에서 하는 일들 속에서 영원에 관한 일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사람은 괴로운 일이 있을 때 영원에 관한 일을 생각합니다. 대왕께서는 어떻게 이것을 생각하십니까? 본래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생각하십니까, 기억으로 생각하십니까? 일찍이 배운 것이 있은 후에 그것을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일찍이 배운 것이 있은 후에는 그것을 잊지 않습니다.”

“대왕께서는 이때 본래적인 마음이 없기 때문에 잊어버리는 것 아닙니까?”

“나는 이때 생각하는 것을 잊습니다.”

“마치 왕이라는 것을 빌려서 그 모습으로 하는 것과 같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기억합니까? 만약 처음으로 했던 것이 이미 있어서 기억하는 것이고, 현재 하는 것은 그것을 기억해서 알고 있는 것입니까?”

“과거의 일들은 다 기억해서 알고 있으며, 현재의 일들도 기억해서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단지 과거의 일들만 기억하고 새로운 일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령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 있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사람이 처음으로 글을 배우는데 기교는 헛된 것입니까?”

“사람이 새로 서화를 배우는데 기억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제자로 하여금 배워서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사람은 어떤 일들에 대해 기억을 하는 것입니까?”

“사람에게는 대체로 열여섯 가지 일이 있어서 기억을 하게 됩니다. 첫째는 예부터 한 일에 대해 기억을 합니다. 둘째는 새로 배우는 것에 대해 기억을 합니다. 셋째는 큰 일이 있으면 기억을 하게 됩니다. 넷째는 좋은 일을 생각해서 기억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일찍이 겪은 고통에 대해 기억을 하고, 여섯째는 스스로 사유한 것에 대해 기억하고, 일곱째는 일찍이 안 잡다한 일에 대해 기억하고, 여덟째는 사람이 가르쳐주어 기억하는 것이고, 아홉째는 특징에 대해 기억합니다. 열째는 일찍이 잊어버린 것에 대해 기억을 하며, 열한 번째는 기호(記號)에 대해 기억을 하며, 열두 번째는 산술(算術)에 대해 기억하고, 열세 번째는 빚진 것에 대해 기억하고, 열네 번째는 일심(一心)을 기억하고, 열다섯 번째는 독서에 대해 기억하고, 열여섯 번째는 일찍이 부탁받은 것이 있어 다시 보게 되어 기억합니다. 이것이 열여섯 가지 일이 있어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예부터 한 일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부처님의 제자이신 아난(阿難)의 여제자인 우바이(優婆夷) 구수단파(鳩讐單罷)는 천억 세 전의 숙명의 일들을 기억했으며, 그 밖의 다른 도인들도 과거의 일들을 능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난의 여제자 같은 이는 많습니다. 과거를 생각하면 문득 이를 기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왕이 또 물었다.

“새로 배운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이 일찍이 배워서 알고 요량하여도 이를 잊어버립니다. 그러다 다른 사람이 이를 요량하는 것을 보고 즉시 이를 기억합니다.”

“큰일에 대해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비유하자면 태자를 세워 왕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는 귀합니다. 이런 것이 큰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생각해서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비유하자면 사람이 초청을 받는 일이 있습니다. 지극한 마음에서 그를 귀빈으로 대접합니다. 초청을 받은 사람이 생각하기를 ‘언젠가 누구의 초청을 받았었는데 지극한 대접을 받았다’고 기억하면 이것이 좋은 일에 대해 기억하는 것입니다.”

“겪은 고통을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비유하자면 사람이 매를 맞거나 감옥에 갇힌 일이 있었으면 이것이 겪었던 고통을 기억하는 것이 됩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비유하자면 사람이 일찍이 본 바가 있는 가실(家室)이나 종친이나 축생들은 스스로 생각해서 기억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잡다한 것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비유하자면 사람이 만물의 이름이나 안색이나 향취나 초고(酢苦) 등 여러 가지 일에 대하여 생각하면 이것이 일찍이 한 잡다한 일에 대하여 기억하는 것입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사람이 가르쳐주어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이 스스로 기뻐서 주위 사람을 잊습니다. 그 가운데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잊어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이 가르쳐주어 기억하는 것입니다.”

“특징으로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이나 소나 말은 각각 자신의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특징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잊었던 것을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비유하자면 사람이 죽게 되면 잊히게 됩니다. 자주자주 혼자 생각해서 이를 기억하게 되는 것이 일찍이 잊었던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기호에 대해 기억을 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글을 배우는 사람은 글자의 차례를 압니다. 이것이 기호에 대해 기억하는 것입니다.”

“산술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이 함께 요량하여 성취하면 그 모든 책술(策術)을 알아서 분명하게 됩니다. 이것이 산술에 대해 기억하는 것입니다.”

왕이 또 나선에게 물었다.

“빚진 것에 대해 기억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이 빚이 있으면 마땅히 갚아야 합니다. 이것이 빚진 것이 기억이 되는 것입니다.”

“일심(一心)이 기억이 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문은 일심으로 여러 생을 내려오면서 수천억 세의 일들을 스스로 생각합니다. 이것을 나는 일심이 기억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독서가 기억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임금이 옛날 책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이 어느 임금 어느 신하 때의 책인 것이라고 기억하여 말합니다. 이것이 독서가 기억이 되는 것입니다.”

“일찍이 부탁받은 것이 있어 다시 보게 되어 기억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이 부탁받은 것이 있었는데 이를 눈으로 보고 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부탁받은 일이 기억이 되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과거의 일과 처음 시작하는 미래의 일들을 다 알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가령 부처님께서 모든 일들을 알고 계신다면 어찌하여 한 번에 제자들을 가르치시지 않습니까? 왜 조금씩 가르치십니까?”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나라 안에 의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의사가 있습니다.”

“그 의사는 천하의 모든 약들에 대해 다 알고 있습니까?”

“그 의사는 모든 약들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 의사가 사람의 병을 치료하면서 한 번에 약을 다 줍니까, 조금씩 줍니까?”

“아직 병이 들지 않았는데 미리 약을 줄 수는 없습니다. 병이 들어야 약을 줍니다.”

“부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의 모든 일들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한 번에 천하의 사람들을 다 가르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당연히 조금씩 가르침과 계율을 주어서 이를 봉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대사와 같은 사문들은 말하기를 ‘사람이 세간에서 나쁜 짓을 많이 해도 임종에 당해서 염불을 하면 사후에 천상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나는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또한 말하기를 ‘한 생명을 살생해도 죽은 후에 지옥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나는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사람이 작은 돌을 물 위에 놓으면 그 돌이 뜹니까, 가라앉습니까?”

“그 돌은 가라앉습니다.”

“백 개의 큰 돌을 배 위에 놓으면 그 배가 가라앉습니까?”

“가라앉지 않습니다.”

“배 위에 있는 백 개의 큰 돌은 배 위에 있기 때문에 가라앉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비록 본래 악해도 일시에 염불을 하면 이로 인해 지옥에 들어가지 않고 천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작은 돌이 물에 가라앉는 것은 사람이 나쁜 짓을 하고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몰라서 죽은 후에 지옥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대사께서는 어떤 연고로 도를 배우고 사문이 되셨습니까?”

“나는 과거의 고(苦)와 현재의 고와 앞으로 닥쳐올 고를 버리고, 다시 이 여러 고들을 받지 않으려고 도를 배워 사문이 되었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고는 내세에 있는데 어찌하여 미리 도를 배우고 사문이 됩니까?”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대왕께서는 적국이나 원수진 집이 있다면 서로 공격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적국이나 원수진 집이 있다면 항상 서로 공격하려 할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적군의 왕이 올 때에 당해서 전투에 필요한 도구를 준비하고 수비를 하고 참호를 팝니까? 미리 준비를 합니까?”

“마땅히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어찌하여 미리 준비를 합니까?”

“적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준비하는 것입니다.”

“적이 미래에 올 텐데 왜 미리 준비합니까?”

나선이 왕에게 다시 물었다.

“배고플 때 씨를 뿌리고 목마를 때 우물을 파지, 무엇 때문에 미리 준비하겠습니까?”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제7범천(梵天)이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매우 먼 곳에 있습니다. 대왕의 궁전에 큰 돌과 같은 것을 제7범천에서 떨어뜨리면 6일 동안 떨어진 후에 땅에 닿습니다.”

왕이 말했다.

“대사와 같은 사문들은 말하기를 ‘나한도(羅漢道)를 성취하면 사람이 팔을 굽혔다 폈다 하는 사이에 날아서 제7범천에 닿는다’고 합니다. 나는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수천만억 리를 가야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빠를 수가 있겠습니까?”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대왕께서는 본래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셨습니까?”

“나는 본래 대진국(大秦國)에서 태어났습니다. 나라 이름은 아려산입니다.”

“아려산에 가려면 여기서 몇 리나 됩니까?”

왕이 대답했다.

“2천 유순(由旬)으로 합하면 8만 리가 됩니다.”

“대왕께서는 일찍이 여기서 멀리에 있는 본국의 일에 대해 생각해보신 일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항상 본국의 일에 대해 생각합니다.”

“대왕께서 본국의 일을 다시 생각하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나는 즉시 그것을 생각합니다.”

“대왕께서는 8만 리를 갔다 오시는데 어떻게 그리 빨리 갔다 오십니까?”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만일 두 사람이 동시에 죽었다고 합시다. 한 사람은 제7범천에 가서 태어나고, 한 사람은 계빈(罽賓)에 태어난다면 계빈국은 7백20리를 가야 하는데 누가 먼저 도착하겠습니까?”

나선이 말했다.

“자, 아려국을 생각해 보십시오.”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계빈국을 생각해 보십시오.”

“생각했습니다.”

“이 양국 가운데 어느 곳에 빨리 갑니까?”

“똑같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죽어서 한 사람은 제7범천에 태어나고, 다른 한 사람은 계빈국에 태어나도 똑같습니다. 만일 한 쌍의 나는 새가 있는데 한 마리는 높은 나무에 앉고, 한 마리는 낮은 나무에 앉는다면 어느 새의 그림자가 땅에 먼저 생기겠습니까?”

“그 그림자는 동시에 땅에 생깁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죽었는데 한 사람은 제7범천에 태어나고, 한 사람은 계빈국에 태어난다면 그 도착하는 것도 같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사람은 몇 가지 일을 배워 도를 알게 됩니까?”

“사람은 일곱 가지 일을 배워 도를 압니다. 그 일곱 가지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선악에 대한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정진(精進)이며, 셋째는 도를 좋아하는 것이며, 넷째는 좋은 일을 위해 뜻을 굽히는 것이며, 다섯째는 도를 생각하는 것이며, 여섯째는 한마음을 가지는 것이며, 일곱째는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왕이 또 나선에게 물었다.

“사람은 이 일곱 가지 일을 배워야 도를 알게 되는 것입니까?”

“모두가 이 일곱 가지 일을 배워 도를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선악을 아는 것 그 한 가지를 가지고도 압니다.”

“하나를 가지고도 안다면 어찌하여 일곱 가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사람이 칼을 칼집에 든 채 잡고서 벽에다 대면 그 칼이 부러질 수 있습니까?”

“부러질 수 없습니다.”

“사람이 비록 명철해도 이 여섯 가지를 행해야 지혜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사람이 집에서 착한 일을 해서 복을 얻는 것이 큽니까, 악한 일을 해서 재앙을 얻는 것이 큽니까?”

“사람이 착한 일을 해서 복을 얻는 것이 큽니다. 악한 일을 해서 재앙을 얻는 것은 적습니다. 사람이 집에서 악한 일을 해도 매일매일 스스로 이를 참회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잘못은 날로 작아집니다. 사람이 집에서 착한 일을 하면 매일 밤 이를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을 얻는 것이 커집니다. 옛날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 그 나라 안에 손발이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연꽃을 꺾어서 부처님께 올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이 손발이 없는 사람은 죽어서 91겁 후에 지옥이나 축생이나 아귀도 중에 태어나지 않으며 천상에 태어나리라. 천상에서 그 명을 다한 후에는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착한 일을 적게 해도 복은 크게 받는다는 것을 압니다. 악한 일을 한 사람이 스스로 참회하면 그 잘못은 매일매일 소멸해서 다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잘못을 해도 그 재앙은 적어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지혜 있는 사람이 악한 일을 하는 것과 어리석은 사람이 악한 일을 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재앙을 더 많이 받습니까?”

“어리석은 사람이 악한 일을 할 때 재앙을 더 많이 받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이 악한 일을 하면 재앙을 적게 받습니다.”

“대사께서 하시는 말씀을 잘 모르겠습니다.”

왕이 말했다.

“내가 나라를 다스릴 때 대신이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중하게 다스립니다. 백성이 죄를 지으면 그 죄를 가볍게 다스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혜 있는 사람이 악한 일을 하면 그 재앙이 크고, 어리석은 사람이 악한 일을 하면 그 재앙이 적으리라고 봅니다.”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비유하자면 불에 달궈진 철이 땅에 있는데 한 사람은 불에 달궈진 철이라는 것을 알고 한 사람은 모릅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불에 달궈진 철을 잡을 때 어느 쪽이 손을 더 많이 데이겠습니까?”

“모르는 쪽이 손을 데입니다.”

“그 몸과 입을 잘 제어하지 못하면 경계(經戒)도 잘 견지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그 몸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선이 말했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그 몸과 입을 잘 제어하고 능히 그 경계(經戒)를 잘 견지하여 그 한마음으로 4선(禪)을 성취합니다. 그리하여 헐떡거리지 않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우리가 바다라고 부를 때 이 바다는 물 때문에 바다라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것 때문에 바다라고 하는 것입니까?”

“사람이 바다라고 부르는 까닭은 물과 염분이 각각 반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다라고 부릅니다.”

“어찌하여 바다는 모두 짜고 소금 맛을 가지고 있습니까?”

“바다가 짠 이유는 담축(啖畜) 이래 오래 됐습니다. 또한 물고기와 자라와 벌레들이 많이 물 속에 잠겨 있기 때문에 짭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사람이 도를 성취하고 나면 심오한 여러 가지 일을 다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람이 도를 성취하고 나면 심오한 일들을 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경전은 가장 심오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여러 가지 일들을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지혜로 그 여러 가지 일들을 판단합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명기(命氣)와 지혜와 자연의 이 세 가지는 같은 것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명기에서 깨달음이 나옵니다. 지혜에서 도가 나옵니다. 자연은 허공으로서 거기에는 사람의 정신은 없습니다.”


왕이 또 나선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람에 대하여 깨닫는다’고 합니다. 이 사람에 대하여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지금 눈으로 물건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맛을 알고, 몸으로 부드럽고 거친 것을 알며, 뜻으로 선악에 대한 일을 압니다. 사람에 대하여 깨닫는 것은 어디에서 합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일을 하고도 참회할 줄 모르기 때문에 재앙이 큽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악한 일을 하면 그것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서 매일 참회하기 때문에 재앙이 적어집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사람이 이 몸으로 날아서 제7범천에도 이를 수 있고, 또 울단왈(鬱單曰)에도 이를 수 있고, 또한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습니까?”

“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 몸을 가지고 제7범천이나 울단왈에나 또는 원하는 곳에 갈 수가 있습니까?”

“대왕께서는 어렸을 때 땅에서 일장(一丈)을 뛰려고 생각하신 일이 없습니까?”

“내가 어렸을 때 뛰려고 생각한 일이 있습니다. 땅에서 일장을 뛰려고 했습니다.”

“도를 성취한 사람이 제7범천에 뛰어 오르려고 하는 것이나 울단왈에 이르려고 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대사와 같은 사문들은 뼈의 길이가 4천 리가 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몸의 뼈의 길이가 4천 리가 됩니까?”

“대왕께서는 일찍이 큰 바다 가운데 질(質)이라는 이름의 큰 물고기가 있는데 그 몸의 길이가 2만 8천 리가 된다고 들으신 일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나도 일찍이 그것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와 같이 2만 8천 리가 되는 물고기의 갈비뼈 길이가 4천 리라면 대왕께서는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대사와 같은 사문들은 ‘나는 숨을 헐떡거리는 일을 멈출 수가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숨이 헐떡거리는 일을 멈출 수가 있습니까?”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일찍이 마음[志]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으십니까?”

“들어본 일이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마음이 사람의 몸속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마음이 사람의 몸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왕께서는 어리석은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십니다.”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사람이 능히 눈으로 본다면 눈동자를 빼서 이를 멀리해서 보면 더 넓게 멀리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귀를 찢어서 소리를 들으면 더 넓게 멀리 들을 수 있지 않습니까? 코를 터트려서 향기를 맡으면 더 많이 맡을 수 있지 않습니까? 입술과 입으로 맛을 알면 더 많이 알지 않습니까? 살갗을 찢으면 거칠고 부드러운 것을 더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의식을 뽑아서 거기에 생각을 담으면 더 많이 담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일은 매우 어렵고, 부처님께서 아시는 바는 매우 미묘합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부처님께서 하신 일이 어떻게 어렵고 어떻게 미묘합니까?”

"부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속을 통찰하시니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아시고, 그것을 다 이해하십니다. 눈에 관한 일을 다 아시며, 귀에 관한 일을 다 아시고, 코에 관한 일을 다 아시고, 입에 관한 일을 다 아시며, 몸에 관한 일을 다 아시고, 장사[販事]에 관한 일도 다 아시고, 그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도 다 아시고, 정신에 대한 일도 다 아십니다.”

나선이 물었다.

“사람이 바닷물을 취해서 입에 머금으면 이것은 어느 샘의 물이며, 이것은 어느 개울의 물이며, 이것은 어느 강의 물이라고, 입 안의 물을 구별해서 알 수 있습니까?”

“여러 종류의 물이 합해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각각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바는 매우 어려운 것으로 각각 구별해서 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정신으로는 사람의 몸속에 있는 여섯 가지 일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아십니다. 마음으로 생각하는 대로 따르면 눈으로 보는 데에 이르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대로 따르면 듣는 데에 이르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대로 따르면 코로 냄새 맡는 데에 이르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대로 따르면 입으로 맛보는 데에 이르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대로 따르면 몸이 괴로움과 즐거움과 춥고 따뜻하고 거칠고 단단한 것을 아는 데에 이르러서 마음으로 생각하는 대로 따라 그 향하는 바가 있으면 부처님께서는 그것들을 분별해서 아시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나는 이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왕은 즉시 옆에 있는 신하에게 명을 내려 4단(端)의 직물을 취해서 이를 기름에 담가 횃불을 만들도록 했다. 나선이 돌아가는데 배웅하되 그 공경하는 것을 왕에게 하듯 하라고 하니 옆에 있는 신하들이 모두 왕의 명령을 받들겠다고 했다. 


왕이 말했다.

“스승을 모시되 나선대사 같은 분을 모시고, 제자를 두되 나 같은 사람을 두면 도를 빨리 성취할 수 있으리라.”


왕이 묻는 여러 가지 질문에 나선이 즉시 대답하니 왕은 크게 기뻐했다. 왕은 즉시 창고에서 10만에 해당하는 좋은 옷을 꺼내서 나선에게 올리고 나선에게 말했다.

“이제 가신 뒤에 어느 날 나선대사께서 8백의 사문과 함께 오셔서 궁중에서 공양을 드시면 좋겠습니다. 또 원하시는 것이 있으시면 제가 다 드리겠습니다.”

나선이 왕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도를 닦는 사람입니다.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나선대사께서는 자신을 보호하셔야 하고, 나도 내 몸을 보호하여야 합니다.”

나선이 물었다.

“내 몸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며, 또 대왕의 몸을 보호하여야 한다고 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나선대사께서 여러 가지 의문을 다 풀어주셨는데도 왕이 아무 것도 하사하지 않는다면 왕이 인색하다고 사람들이 수근거릴까 두렵습니다. 또 혹은 나선대사께서 왕의 의문을 풀어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왕이 아무 상도 내리지 않았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릴까 두렵습니다.”

“나선대사께서 받으시는 것이 나에게 복을 받게 하시는 것이고, 나선대사 역시 그 이름을 보호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사자가 우리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항상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처럼 나도 지금 나라를 위해 성 안에 있지만 그 마음은 기쁘지 않습니다. 나라를 벗어나 도를 배우고 싶습니다.”


왕이 말을 마치자 나선은 즉시 절로 돌아갔다. 나선이 돌아간 후 왕은 남몰래 혼자서 ‘나는 나선대사에게 어떤 일들을 물었으며, 나선대사는 나를 위해 어떤 일들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주었나’ 하고 생각했다. 왕은 또 ‘나의 의문에 대해 나선대사가 대답을 못해 준 것이 하나도 없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나선 역시 절에 돌아가서 ‘왕이 나에게 어떤 것을 물었으며, 나는 어떻게 대답하였나’ 하고 혼자 생각하였다. 나선은 ‘왕의 의문을 내가 모두 풀어주었구나’ 하고 혼자 생각하였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날이 밝았다.


다음날 나선은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왕의 궁전에 들어가 왕의 전각에 올라앉았다. 왕은 나선에게 예를 올린 후 물러나 앉았다. 왕이 나선에게 말했다.

“나선대사께서 가신 후 나는 혼자 생각하였습니다. 대사께 무엇을 물었으며, 대사께서 어떻게 대답해 주셨나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물은 것에 대해 대사께서 모든 의문을 풀어주신 것도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며 기쁘고 안심되어 누웠는데 날이 밝았습니다.”

나선이 말했다.

“나도 절에 돌아가서 생각하였습니다. 대왕께서 나에게 어떤 것에 대해 물었으며, 내가 어떻게 대답하였나를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또 생각하기를 대왕의 물음에 대해 내가 즉시 의문을 풀어주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기뻤는데 날이 밝았습니다.”


말을 마치자 나선이 돌아가려고 하였고, 왕은 즉시 일어나 나선에게 예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