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043. 교리 문답의 큰(긴) 경(Mahāvedallasuttaṃ)

실론섬 2016. 4. 12. 15:37

교리문답의 큰(긴) 경 

M43 Majjhima Nikàya I 5. 3. Mahàvedallasuttaü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마하꼿티까 존자는 해거름에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두 분이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누신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서 마하꼿티까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하꼿타따(까) 존자(ayasma Mahakotthita, Mahakotthiko)는 앙굿따라 니까야 제1권 '하나의 모음(A1:3-10)에서 무애해(patisambhida)를 얻은 비구들 가운데 최상이라고 언급되고 있는 분이다. 그는 사왓티의 부유한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세가지 베다에 통달했다고 하며 세존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여 곧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AA.i.286)

 

2. "도반이여, '지혜롭지 못한 자, 지혜롭지 못한 자'라고 불립니다. 어떤 점에서, 벗이여, '지혜롭지 못한 자'라고 불립니까?"

"'철저하게 알지 못한다(꿰뚫어 알지 못한다), 철저히 알지 못한다.'고 해서, 도반이여, 지혜롭지 못한 자라고 불립니다. 무엇을 철저히 알지 못합니까?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철저히 알지 못합니다.

'철저히 알지 못한다, 철저히 알지 못한다.'라고 해서, 도반이여, 지혜롭지 못한 자라고 불립니다."

 

"고맙습니다, 도반이여."라고 마하꼿티까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의 설명을 기뻐하고 감사한 뒤에 이어지는 질문을 했다.

 

"도반이여, '지혜로운 자, 지혜로운 자'라고 불립니다. 어떤 점에서 지혜로운 자라고 불립니까?"

"도반 꼿티따여, '철저히 안다, 철저히 안다.'라고 해서, 도반이여, 지혜로운 자라고 불립니다. 무엇을 철저히 압니까?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그는 철저히 알고,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철저히 알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철저히 알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철저히 압니다.

'철저히 안다, 철저히 안다.'고 해서, 도반이여, 지혜로운 자라고 불립니다."

 

"도반이여,  ‘식(識), 식(識)’이라고 불립니다. 도반이여, 어떻게 식(識)이라고 불립니까?"

"도반이여, '인식(認識)한다(분별해서 안다), 인식한다.'라고 하여 식(識)이라고 불립니다. 무엇을 인식합니까?

'즐거움이라고 인식하고, 괴로움이라고 인식하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이라고도 인식합니다. 

도반이여, '인식한다, 인식한다'라고 하여, 도반이여, 식(識)이라고 불립니다.”

 

"도반이여, 혜(慧)와 식(識)이라고 하는 이 법들은 연결된 것입니까 아니면 분리된 것입니까이 법들을 구별하고 구별하여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이 가능합니까?"

"도반이여, 혜(慧)와 식(識)이라고 하는 이 법들은 연결된 것이고,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이 법들을 구별하고 구별하여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도반이여, 철저히 안 것(꿰뚫어 안 것)을 분별해 알고, 분별해 안 것을 철저히 압니다. 그래서 이 법들은 연결된 것이고,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이 법들을 구별하고 구별하여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혜(慧)와 식(識)이라고 하는 연결된(결합된) 것이고 분리된 것이 아닌 이 법들에게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혜(慧)와 식(識)이라고 하는 연결된 것이고 분리된 것이 아닌 이 법들 가운데  혜(慧)는 닦아야 하는 것이고, 식(識)은 철저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것들의 차이점입니다."

 

3. "도반이여, '느낌(감수작용. 受), 느낌'이라고 불립니다. 어떤 점에서, 도반이여, 느낌이라고 불립니까?"

"'경험한다(느낀다), 경험한다.'라고 해서, 도반이여, 느낌이라고 불립니다. 무엇을 경험합니까? '즐거움도 경험하고, 괴로움도 경험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도 경험합니다. '경험한다, 경험한다.'라고 해서,도반이여, 느낌(수.受)이라고 불립니다."

 

"도반이여, '인식(지각작용. 想), 인식'이라고 불립니다. 어떤 점에서 인식(상.想)이라고 불립니까?"

"도반이여, '인식한다(안다), 인식한다.'해서 인식이라고 해서, 도반이여, 인식이라고 불립니다. 무엇을 인식합니까(압니까)? '푸른색이라고도 인식하고, 노란색이라고도 인식하고, 붉은 색이라고도 인식하고, 흰색이라고도 인식합니다. 도반이여, '인식한다.'라고 해서, 도반이여, 인식이라고 불립니다."

 

"도반이여, 느낌과 인식과 식(識)이라고 하는 이 법들은 연결된 것입니까, 아니면 분리된 것입니까? 이 법들을 구별하고 구별하여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은 가능합니까?"

"도반이여, 느낌과 인식과 식(識) 이라고 하는 이 법들은 연결된 것이고,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이 법들을 구별하고 구별하여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도반이여, 경험한 것을 인식하고, 인식하여 안 것을 분별해 압니다. 그래서 이 법들은 연결된 것이고,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이 법들을 구별하고 구별하여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4. "참으로 도반이여, 다섯 가지 감각의 근(기능)이 청정해서 풀려났을 때 의식에 의해 무엇이 이끌립니까(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도반이여, 다섯 가지 감각의 근이 청정해서 풀려났을 때 의식에 의해 '무한한 허공'이라는 공무변처가 이끌리고, '무한한 의식'이라는 식무변처가 이끌리고, '아무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가 이끌립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끌리는 법을 무엇으로 철저히 압니까?"

"참으로 도반이여, 이끌리는 법을 지혜의 눈[慧眼.혜안]으로 철저히 압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혜(慧)는 무엇을 위하 것입니까?"

"참으로 도반이여, 혜는 완전한 지혜와 철저한 지혜와 버림을 위한 것입니다."

 

5. "그러면 도반이여, 바른 견해[正見]가 생기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바른 견해가 생기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다른 이로부터 듣는 것과 지혜롭게 마음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도반이여, 바른 견해가 생기게 하는 이런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바른 견해는, 도반이여, 몇 가지 구성요소들의 도움을 받은 마음의 해탈[心解脫]의 결실[果]과 마음의 해탈의 결실의 이익으로부터 생기고,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의 결실과 지혜에 의한 해탈의 결실의 이익으로부터 생깁니까?"

"바른 견해는, 도반이여, 다섯 가지 구성요소들의 도움을 받은 마음의 해탈의 결실과 마음의 해탈의 결실의 이익으로부터 생기고, 지혜에 의한 해탈의 결실과 지혜에 의한 해탈의 결실의 이익으로부터 생깁니다. 여기, 도반이여, 바른 견해는 계의 도움으로 생기고, 배움의 도움으로 생기고, 법담의 도움으로 생기고사마타[止]의 도움으로 생기고, 위빳사나[觀]의 도움으로 생깁니다. 도반이여, 이런 다섯 가지 구성요소들의 도움을 받은 마음의 해탈의 결실과 마음의 해탈의 결실의 이익으로부터 생기고, 지혜의 해탈의 결실과 지혜의 해탈의 결실의 이익으로부터 생깁니다."

 

6 "도반이여, 몇 가지 존재[有.유]가 있습니까?"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존재가 있습니다. 욕계 존재, 색계의 존재, 무색계의 존재입니다."

 

"도반이여, 어떻게 미래에 다시 태어남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무명에 휩쌓이고 갈애에 묶인 중생들이 여기저기서 즐기기 때문에 이렇게 미래에 다시 태어남이 있습니다."

 

"도반이여, 어떻게 미래에 다시 태어남이 없습니까?"

"도반이여, 무명이 사라지고 명지(明知)가 생기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이렇게 미래에 다시 태어남이 없습니다."

 

7. "도반 사리뿟따여, 무엇이 초선(初禪)입니까?"

"여기, 도반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것이, 도반이여, 초선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초선에는 몇 가지 구성요소가 있습니까?"

"도반이여, 초선에는 다섯 가지 구성요소가 있습니다. 여기, 도반이여, 초선을 성취한 비구에게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와 기쁨과 즐거움과 마음이 한 곳에 집중됨[心一境性]이 있습니다. 도반이여, 초선은 이런 다섯 가지 구성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초선은 몇 가지 구성요소가 버려졌고 몇 가지 구성요소가 갖춰졌습니까?"

"도반이여, 초선은 다섯 가지 구성요소가 버려졌고, 다섯 가지 구성요소가 갖춰졌습니다. 여기, 도반이여, 초선을 성취한 비구에게 감각적 쾌락이 버려지고, 성냄이 버려지고, 해태와 혼침이 버려졌고, 들뜸과 후회가 버려졌고, 의심이 버려졌습니다.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와 기쁨과 즐거움과 마음이 한 곳에 집중됨이 있습니다."

 

8. "도반이여, 다른 대상과 다른 영역을 가지는 눈의 근(기능), 귀의 근, 코의 근, 혀의 근, 몸의 근의 다섯 가지 근은 서로의 영역과 대상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다른 대상과 다른 영역을 가지는 이런 다섯 가지 근에게 무엇이 의지처이고, 무엇이 그들 각자의 영역과 대상을 경험합니까?" 

"도반이여, 다른 대상과 다른 영역을 가지는 눈의 근, 귀의 근, 코의 근, 혀의 근, 몸의 근의 다섯 가지 근은 서로의 영역과 대상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서로의 영역과 대상을 경험하지 않는, 다른 대상과 다른 영역을 가지는 이런 다섯 가지 근에게 마음(의,意)이 의지처이고, 마음이 그것들들의 영역과 대상을 경험합니다."

 

주) '다섯 가지 감각기능인 이들 눈의 기능과 귀의 기능과 코의 기능과 혀의 기능과 몸의 기능은 서로 다른 대상과 다른 영역을 갖고 있어 서로 다른 영역과 대상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코가 맛을 알 수 없고, 귀가 형상을 볼 수 없고, 눈이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뜻이다.)

 

9. "도반이여, 눈의 근, 귀의 근, 코의 근, 혀의 근, 몸의 근의 다섯 가지 근(기능)이 있습니다. 도반이여, 이런 다섯 가지 근은 무엇을 연(緣)하여 유지됩니까?"

"도반이여, 눈의 근, 귀의 근, 코의 근, 혀의 근, 몸의 근의 다섯 가지 근(기능)이 있습니다. 도반이여, 이런 다섯 가지 근은 수명(생명력)을 연(緣)하여유지됩니다."

 

"다시 도반이여, 수명은 무엇을 연(緣)하여 유지됩니까?"

"수명은 온기(체열)를 연(緣)하여 유지됩니다."

 

"다시 도반이여, 온기는 무엇을 연(緣)하여 유지됩니까?"

"온기는 수명을 연(緣)하여 유지됩니다."

 

"도반이여, 이제 우리는 사리뿟따 존자의 말씀을 이렇게 압니다. 

'수명은 온기를 연하여 유지된다.'라고. 다시 도반이여, 이제 우리는 사리뿟따 존자의 말을 이렇게 압니다. '온기는 수명을 연(緣)하여 유지된다.'라고."   

"그렇다면, 도반이여, 어떻게 이 말씀의 의미를 보아야 합니까?" 

"도이여, 그렇다면 그대에게 비유를 말하겠습니다. 비유에 의해서도 어떤 현명한 사람들은 말의 의미를 압니다. 예를 들면, 도반이여, 기름 등불이 타고 있을 때 불꽃을 연(緣)하여 빛이 나타납니다. 빛을 연(緣)하여 불꽃이 나타납니다. 이처럼, 도반이여, 수명은 온기를 연(緣)하여 유지되고, 온기는 수명을 연(緣)하여 유지됩니다."

 

10. "도반이여, 수명이라는 것은 느낌(경험되는 법들)과 같은 것입니까, 아니면 수명과 느낌은 서로 다른 것입니까?"

"도반이여, 수명과 느낌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도반이여, 수명이 느낌과 같은 것이라면 상수멸을 증득한 비구에게 출정(出定)이 알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도반이여, 수명과 느낌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상이 알려집니다."

 

"도반이여, 몇 개의 법들이 이 몸을 떠날 때 이 몸은 무감각한 나무토막처럼 던져지고 팽개쳐져 누워있습니까?" 

"도반이여, 수명과 온기와 의식의 세 개의 법들이 이 몸을 떠날 때 이 몸은 무감각한 나무토막처럼 던져지고 팽개쳐져 누워있습니다."

 

"도반이여, 죽은 자와 상수멸을 증득한 비구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도반이여, 죽은 자에게 몸의 작용[身行]은 그치고 진정됩니다. 말의 작용[口行]은 그치고 진정됩니다. 마음의 작용[心行]은 그치고 진정됩니다. 수명이 다하고, 온기는 식고, 감각기능들은 파괴됩니다. 상수멸을 증득한 비구에게 몸의 작용은 그치고 진정됩니다. 말의 작용은 그치고 진정됩니다. 마음의 작용은 그치고 진정됩니다. 수명은 다하지 않고, 온기는 식지 않고, 감각기능들은 아주 분명합니다. 도반이여, 이것이 죽은 자와 상수멸을 증득한 비구의 차이점입니다."

 

11. "도반이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마음의 해탈(心解脫)의 증득을 위한 조건은 몇 가지입니까?"

"도반이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마음의 해탈의 증득을 위한 조건은 네 가지입니다. 여기, 도반이여,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마음의 해탈의 증득을 위한 조건은 이런 네 가지입니다." 

 

"도반이여,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무상심해탈.無相心解脫)의 증득을 위한 조건은 몇 가지입니까?"

"도반이여,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의 증득을 위한 조건은 모든 표상(상.相)들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 것과 표상이 없는 요소[界]를 마음에 집중함입니다. 도반이여, 표상없는 마음의 해탈의 증득을 위한 조건은 이런 두 가지입니다."

 

"도반이여,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의 유지를 위한 조건은 몇 가지입니까?"

"도반이여,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의 유지를 위한 조건은 모든 표상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 것과 표상이 없는 요소를 마음에 집중하는 것과 이전의 준비(결심) 세 가지입니다도반이여,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의 유지를 위한 조건은 이런 세 가지입니다."

 

"도반이여,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에서 출정하기 위한 조건은 몇 가지입니까?"

"도반이여,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에서 출정하기 위한 조건은 모든 표상들에 마음 기울임과 표상이 없는 요소들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 것의 두 가지 입니다. 도반이여,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에서 출정하기 위한 조건은 이런 두 가지입니다."

 

12. "도반이여, 무량한 마음의 해탈(무량심해탈.無量心解脫)과 무소유의 마음의 해탈(무소유심해탈.無所有心解脫)과 공한 마음의 해탈(공심해탈.空心解脫)과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무상심해탈.無相心解脫)이라고 하는 이 법들은 의미도 다르고 표현도 다른 것입니까, 아니면 의미는 같은데 표현만 다른 것입니까?"

"도반이여, 무량한 마음의 해탈과 무소유의 마음의 해탈과 공한 마음의 해탈과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 도반이여, 이 법들을 의미도 다르고 표현도 다른 것으로 설명하는 방법이 있고, 도반이여, 이 법들을 의미는 같은데 표현만 다른 것으로 설명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도반이여, 어떤 방법이 이 법들을 의미도 다르고 표현도 다른 것으로 설명하는 방법입니까?"

"여기, 도반이여, 비구는 자애(자비)를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와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와 사방 모든 곳에, 일체의,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해치고자 함이 없는, 자애를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 연민을 수반하는 마음을 ··· 기뻐함을 수반하는 마음을 ··· 평정을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와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와 사방 모든 곳에, 일체의,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해치고자 함이 없는, 평정을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이것이, 도반이여, 무량한 마음의 해탈(무량심해탈.無量心解脫)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무소유의 마음의 해탈(무소유심해탈.無所有心解脫)은 무엇입니까?"

"여기, 도반이여, 비구는 일체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것이, 도반이여, 무소유의 마음의 해탈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공한 마음의 해탈(공심해탈.空心解脫)은 무엇입니까?"

"여기, 도반이여, 비구는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 가거나 빈 집으로 가서 이렇게 숙고합니다. '이것은 나거나 나에 속한 것에 의해서 공하다.'라고. 이것이, 도반이여, 공한 마음의 해탈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무상심해탈.無相心解脫)은 무엇입니까?"

"여기, 도반이여, 비구는 모든 표상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서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것이, 도반이여,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입니다. 이 방법이, 도반이여, 이 법들을 의미도 다르고 표현도 다른 것으로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도반이여, 어떤 방법이 이 법들을 의미는 같은데 표현만 다른 것으로 설명하는 방법입니까?"

"도반이여, 탐욕도 한계를 만들고, 성냄도 한계를 만들고, 어리석음도 한계를 만듭니다. 번뇌 다한 비구에게 그것들은 제거되고, 뿌리 뽑혔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었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도반이여, 무량한 마음의 해탈들이라고 하는 한 흔들리지 않는(부동.不動의) 마음의 해탈이 그들 가운데 최상이라고 선언됩니다. 또한 그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해탈은 탐욕에 의해 공하고 성냄에 의해 공하고 어리석음에 의해 공합니다(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공합니다).

 

도반이여, 탐욕도 있는 것이고, 성냄도 있는 것이고, 어리석음도 있는 것입니다. 번뇌 다한 비구에게 그것들은 제거되고, 뿌리 뽑혔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었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도반이여, 무소유의 마음의 해탈들이라고 하는 한 흔들리지 않는(부동.不動의) 마음의 해탈이 그들 가운데 최상이라고 선언됩니다. 또한 그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해탈은 탐욕에 의해 공하고 성냄에 의해 공하고 어리석음에 의해 공합니다.

 

도반이여, 탐욕도 표상을 만들고, 성냄도 표상을 만들고 어리석음도 표상을 만듭니다. 번뇌 다한 비구에게 그것들은 제거되고, 뿌리 뽑혔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었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도반이여,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들이라고 하는 한 흔들리지 않는(부동.不動의) 마음의 해탈이 그들 가운데 최상이라고 선언됩니다. 또한 그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해탈은 탐욕에 의해 공하고 성냄에 의해 공하고 어리석음에 의해 공합니다. 

도반이여, 이것이 이 법들이 의미는 같고 표현만 다르게 되는 방법입니다."

 

idamavocāyasmā sāriputto. attamano āyasmā mahākoṭṭhiko āyasmato sāriputtassa bhāsitaṃ abhinandīti.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마하꼿티까 존자는 즐거워하면서 사리뿟따 존자의 말씀을 기뻐했다.

 

Mahāvedallasuttaṃ niṭṭhitaṃ tatiyaṃ.

교리문답의 긴 경(M43)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