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야단법석

“갈마법 적용 주장은 어불성설”/마성 스님

실론섬 2016. 7. 25. 14:08

[마성스님 특별기고] 이자랑 교수의 ‘직선제 비판’을 반박한다
“종헌종법과 청규로 운용되는 현재 조계종에 갈마의 원칙 적용?”

[팔리문헌연구소 소장 마성스님이 지난 7월 20일 동국대 이자랑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가 <법보신문>에 기고한 ‘직선제는 율장에 언급된 갈마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요지의 글에 대한 반론을 <미디어붓다>에 보내왔다. 마성 스님의 이번 글은 조계종 총무원장 선출과 관련하여 율장의 갈마법을 현재의 한국불교 현실에서는 적용시킬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함으로써 이자랑 교수의 주장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을 비판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마성 스님은 이 글을 <미디어붓다>에 단독으로 보내왔음을 밝힌다. 편집자]  

승가의 지도자 선출제도
이자랑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가 조계종 총무원장 선출제도와 관련하여, 「직선제, 과연 율장의 이념에 부합하는가?」라는 글을 <법보신문>(2016년 7월 20일자)에 기고했다. 이자랑 교수는 이 기고문에서 직선제는 율장에 언급된 갈마(羯磨)의 원칙에 어긋나며, 직선제로 승가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은 갈마의 이념을 살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승가는 갈마를 통해 화합을 실현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는데, 직선제는 승가의 화합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율장에 나타난 승가의 지도자 선출을 위한 갈마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승가에서의 갈마는 ‘여법(如法)’과 ‘화합(和合)’을 강조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갈마는 결과보다도 그 과정이나 절차를 중시하고 있다. 비록 만장일치로 채택된 결과라 할지라도 석존의 법(法)과 율(律)에 어긋난다면 무효로 처리하는 것이 승가 고유의 갈마법이다. 이처럼 불교승단에서는 전원참석과 만장일치라는 갈마를 통해 승가의 화합을 실현해 왔다.

 

이러한 전통은 남방 상좌부에서는 지금도 그대로 전승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율장의 내용을 오늘날의 조계종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율장이라는 텍스트를 해석함에 있어서 이자랑 교수는 율장의 내용을 그대로 실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율장의 내용을 오늘날의 한국불교에서는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이 때문에 학술회의에서 서로 다툰 적도 있다.

이번 조계종 총무원장 선출제도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자랑 교수는 직선제가 승가 고유의 회의법인 갈마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율장에 명시된 갈마를 통해 승가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방법을 현재의 조계종 총무원장 선출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조계종은 율장에 의해 운용(運用)되지 않고, 종헌종법과 청규에 의해 운용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조계종이라는 종단은 사부대중으로 구성된 교단(敎團)인지, 비구와 비구니로 구성된 승단(僧團)인지조차 불명확하다. 조계종 종헌 제8조에 “본종은 승려(비구․비구니)와 신도(우바새․우바이)로서 구성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종헌에 따르면, 조계종은 사부대중으로 구성된 교단에 해당된다. 그러나 중앙종회는 비구․비구니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것도 비구니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몇 자리를 배정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조계종은 승단에 해당된다.

첫째, 조계종을 승단이라고 규정한다면, 승가의 지도자 선출에 재가자인 우바새와 우바이는 전혀 관여할 수가 없다. 그리고 율장에 의하면 비구승가의 지도자를 선출하는데, 비구니승가가 관여할 수 없다.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붓다 재세시의 비구승가와 비구니승가는 완전히 분리되어 별도로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러한 율장의 원칙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 비구니는 참여할 수가 없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둘째, 조계종을 교단이라고 본다면, 승가 고유의 의사 결정 방법인 갈마 자체를 실시할 수가 없다. 갈마는 현전승가의 전원참석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만일 재가자의 참여를 허락한다면, 그 범위를 한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전원참석을 원칙으로 하는 갈마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승가 고유의 갈마는 승가의 위계질서가 명확히 확립되어 있는 현전승가(現前僧伽)에서만 가능하다. 이를테면 상좌부의 종주국(宗主國)으로 알려져 있는 스리랑카의 경우는 승가의 위계질서, 즉 먼저 출가한 자가 윗자리[上座]에 앉는 전통이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승가의 지도자를 투표로 선출하지 않는다. 승납에 따라 자동적으로 그 직위를 승계해 나갈 뿐이다.

이러한 전통 때문에 가장 먼저 출가한 자가 종정(宗正)이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상좌부에서 종정이 되려면 수행력도 중요하지만, 우선 건강하게 장수해야 된다는 농담이 승려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태국의 경우는 승단의 최고 지도자인 승왕(僧王)은 태국의 국왕이 임명하기 때문에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제도 자체가 없다. 승왕은 그 밑에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여 실무를 담당하게 한다.


또한 상좌부 전통에서는 승납이 낮은 자가 높은 자를 지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이러한 전통에서는 선거가 오히려 승가의 위계질서를 파괴하는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경우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이를테면 종회의원 선거에 스승과 제자가 출마하기도 하고, 교구본사 주지 선거에 사형사제가 출마하는 경우도 있으며, 사숙과 조카가 출마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상대방의 허물을 드러내는 괴문서가 나돌기도 한다. 이러한 진흙탕 싸움은 법정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승가 고유의 위계질서가 완전히 파괴된 한국불교에 2500여 년 전 붓다가 제정한 승가 고유의 자치 규범인 갈마법을 적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백보 양보하여 승가 고유의 갈마법으로 조계종의 총무원장을 선출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그 갈마를 관장할 갈마사(羯磨師)는 어떻게 선출할 것인가. 갈마사 없이 갈마는 진행될 수 없다. 승가에서 갈마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율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십송율≫, ≪오분율≫, ≪승기율≫에 다섯 가지 자격을 갖춘 지사(知事=羯磨事)에 대한 언급이 나타난다. ≪십송율≫ 권34에서는 갈마사에 해당되는 “유나(維那)는 불수애(不隨愛), 불수진(不隨瞋), 불수포(不隨怖), 불수치(不隨痴), 정(淨)과 부정(不淨)을 아는 등 다섯 가지 법[五法]을 구족한 자로서 갈마사의 역할을 한다.”고 되어 있다.

이와 같이 현재의 조계종에서 이러한 다섯 가지 자격을 갖춘 갈마사를 찾는 것이 총무원장을 선출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만일 그와 같은 갈마사를 찾았다고 한다면, 그 분을 총무원장으로 선출하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이자랑 교수의 주장은 그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현재 조계종 총무원은 현전승가의 개념보다는 사방승가의 개념에 더 가깝다. 현재의 교구본사는 현전승가의 전통에 가깝고, 총무원은 현전승가를 관리 감독하는 입장에 놓여 있기 때문에 사방승가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현전승가에서 실시하는 갈마법을 총무원장 선출에 적용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만일 이자랑 교수가 주장하는 승가 고유의 갈마법을 한국불교에 적용시키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교구본사나 지역별로 여법한 현전승가를 복원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불교에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혀 고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근현대한국불교사에서 선각자들은 결사(結社)를 통해 현전승가의 전통을 복원시키려고 몇 차례 시도한 적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결사는 1921년 방한암 선사의 건봉사 만일선원 결사, 1925년 백용성 선사의 도봉산 망월사 참선만일결사, 1947년 가을부터 1950년 3월까지 이성철 선사 등이 주도했던 봉암사 결사 등이다. 이처럼 선각자들은 결사를 통해 원래 승가의 모습을 되찾고자 노력했다. 특히 봉암사 결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고 했던 것이 여법한 현전승가의 전통을 되살리고자 했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현재의 한국불교 승단을 붓다시대의 초기불교승단으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대승불교의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붓다가 제정한 갈마법에 따라 승가가 운영되는 현전승가를 복원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가능성을 선각자들이 시도했던 결사정신에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재 조계종의 총무원장 선출제도로 거론되고 있는 직선제는 비록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임은 분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상황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대표자를 뽑는 직선제가 가장 민주적이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간선제인 염화미소법이나 종단쇄신안은 어떤 불순한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상에서 언급한 것은 초기불교와 율장을 전공한 학자로서 승가의 지도자 선출제도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私見]임을 밝혀둔다.   

 

 

마성/ 팔리문헌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