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溟堂大師集 사명당대사집(惟政 유정)
謾書 아무렇게나 쓰다
藏舟計拙事多違 서툰 계책을 쓰다 보니 어그러지는 일이 많고
坐到更深不掩扉 앉은 채로 사립문도 닫지 않은 채 밤이 깊었네.
細數三千八百策 삼천 팔백의 계책을 자세히 살펴보니
方知四十九年非 사십 구 년의 세월이 잘못 되었음을 알겠네.
秖今穿耳人誰在 지금 시대에 귀가 뚫린 이1)가 누가 있으며
從古枯禪世所稀 옛날부터 올곧게 참선하는 이 세상에 드물도다.
鐘盡月沈天欲曙 종이 울리고 나니 달 지고 하늘 밝아오는데
始驚寒露濕蘿衣 비로소 차가운 이슬에 옷이 젖는 것을 알고 놀라네.
1) 귀가 뚫린 이 : 영리한 사람, 불법을 이해하는 사람.
己亥秋 奉別邊注書
1599년 가을 변(邊) 주서(注書)2)와 이별하며
2) 조선시대 왕의 명령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담당하던 관리.
恭承朝命下轅門 공손히 조정의 명령 받고 군문(軍門)으로 내려오니
夷夏山河到此分 오랑캐와 중화의 땅이 여기에서 갈라졌네.
四海風塵猶轉戰 온 세상에는 전란이 여전한데
十年征戍更從軍 십 년 동안 변방 지키다 또다시 종군하네.
城隅落照看廻鳥 성 모퉁이 낙조에 돌아오는 새 쳐다보고
天外歸心望去雲 하늘 바깥의 돌아가고픈 마음 구름만 바라보네.
掃盡妖氛定何日 요사한 기운 쓸어버릴 날 언제일까
撥灰金鴨細香焚 화로에 재 헤쳐서 향을 피우노라.3)
3) 저자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성곽을 축조하는 등의 일로 인하여 산으로 돌
아가지 못하고 계속 종군하였다. 이러한 심정을 읊은 시이다.
過震川 진천(震川)4)을 지나면서
4) 진천은 충청북도에 있는 지명. 임진왜란에 승병 대장으로 출전하여 활약하던
중의 한 시점으로 보인다.
古驛重陽抱劍悲 옛 역에서 중양절(重陽節) 맞아 칼을 안고 슬퍼하노라니
病身唯有月相隨 병든 몸에 오직 달만이 서로 따르누나.
衡峯燒芋眞吾願 형봉(衡峯)에서 토란 굽기5)가 참으로 내 소원인데
官路乘肥豈我宜 벼슬 길과 살진 말타기가 어찌 내게 맞으리.
瘴海十年空遠戍 독물 바다에 십년토록 헛되이 먼 변방 지키니
香城何日定歸期 산으로 돌아갈 날 언제일까.
天淸一雁江東遠 맑은 하늘 한 마리 기러기 멀리 강 동쪽으로 날아 가는데
明滅燈前攬弊衣 가물거리는 등불 앞에서 헤진 옷 집어 드네
5) 형봉(衡峯)에서 토란 굽기 : 중국 당(唐)나라 때 이필(李泌)이란 사람이 도를 묻
기 위해 형악사(衡嶽寺)에 남이 먹고 남은 밥을 먹고 사는 나잔(懶殘)이란 수행
자를 찾아 갔다. 나잔은 마침 토란을 굽고 있다가 이필을 보고 재상 노릇이나 한
십 년 하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謹奉洛中諸大宰乞渡海詩
일본으로 사신을 떠나면서6) 서울에서 여러 대신들을 모시고
6) 유정이 임진왜란이 끝난 후인 1604년(61)에 일본으로 사신을 가서 전쟁포로 3
천 5백 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年來做錯笑餘生 몇 년 동안 엉뚱한 짓하여 여생이 우습게 되었구나
數月荷衣滯洛城 수개월이나 수행복 차림으로 서울에 머물렀네.
愁病平分送春恨 근심하는 내 분수는 봄을 보내는 한이요
歌吟半惱憶山情 노래하는 괴로움은 산을 생각하는 정이라.
浮杯謾道堪乘海 잔 하나 띄우고서 감히 바다를 건넌다고 말하고
飛錫初羞誤說兵 지팡이 날려 병사(兵事)를 잘못 말함이 먼저 부끄럽네.
爲國重輕諸老在 나라를 위하는 온갖 일은 여러 노장들이 있으니
願承珠唾賁東行 원컨대 아름다운 시로써 동쪽 걸음 빛내 주소서.
贈行脚僧 행각하는 스님에게
爾從江海來 그대는 강과 바다를 따라 왔다가
還從江海去 다시 강과 바다를 따라 가는구료.
江海路迢迢 강과 바다의 길이 멀고 아득한데
重逢又何處 다시 만날 곳 또 어디일지.
萬瀑洞 만폭동(萬瀑洞)7)
7) 만폭동(萬瀑洞) : 금강산 내금강에 있는 계곡 이름. 수많은 폭포와 소가 있다.
此是人間白玉京 이것은 인간 세계에 있는 백옥경(白玉京)8)이니
琉璃洞府衆香城 유리로 만들어진 마을이요 향기의 성(城)이라.
飛流萬瀑千峯雪 수많은 폭포가 날아 떨어지고 천 봉우리엔 눈인데
長嘯一聲天地驚 길게 내뿜는 한 소리에 천지가 놀라네.
8) 백옥경(白玉京) : 천제(天帝)가 사는 궁전.
秋軒夜坐 가을 난간에 밤 깊도록 앉아
獨坐無眠羈思長 잠들지 못하고 홀로 앉아 이런 저런 생각 하던 차에
數螢流影度西廊 몇 마리 반디불이 서쪽 회랑으로 흐르듯 지나가네.
崇山月出秋天遠 높은 산에 달 솟아 머나먼 가을 하늘
一夜歸心鬂已霜 온 밤 돌아가고픈 마음에 귀밑머리 이미 세었네.
寫懷 생각을 쓰다
邇來多病歎龍鐘 요즈음은 병이 많아 탄식으로 눈물 흘리고
親友凋零半已空 친우들도 세상 떠나 반이 이미 없어졌네.
獨有雲松與麋鹿 오직 구름과 소나무와 사슴만이 있어서
暮年相伴老重峯 늘그막에 서로 벗해 겹겹의 봉우리 속에서 늙어가네.
贈靈雲長老 영운(靈雲) 장로(長老)에게
千魔萬難看如幻 천의 마귀와 만의 어려움도 헛 그림자일 뿐이니
直似灘頭掇轉船 여울 가에 뒤흔들리는 배와 같다네.
呑透金剛竝栗䓶 금강석을 궤뚫고 밤송이를 삼킬 때에
方知父母未生前 비로소 부모가 나를 낳기 전의 소식을 알리라.
靑鶴洞秋坐 가을 날 청학동(靑鶴洞)에 앉아
西風吹動雨初歇 서풍이 건듯 불고 비는 갓 그쳤는데
萬里長空無片雲 만 리 먼 허공에 한 점 구름조차 없구나.
虛室尸居觀衆妙 텅 빈 방에 죽은 듯이 있으면서 자연의 묘함을 살피자니
天香桂子落紛紛 하늘 향기 머금은 계수나무 꽃 어지러이 떨어지네.
贈閑長老 한(閑) 장로에게 드림
衣下麽尼依舊在 옷 아래 마니주를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으니
不須虛認鏡中頭 거울 속의 모습을 진짜인 줄 착각하면 안 된다네.
翻身直到故園裏 몸 돌려 곧바로 고향의 뜰에 이르면
一見爺孃方始休 비로소 부모님이 쉬고 계신 걸 한번 보리라.
贈蘭法師 난(蘭) 법사에게 드림
萬疑都就一疑團 만 가지 의문은 모두가 하나의 의심 덩어리로 되나니
疑去疑來疑自看 의심하고 의심하여 의심을 스스로 살피면
須是拏龍打鳳手 반드시 용을 낚아채고 봉황을 때려잡는 솜씨가 되리니
一拳拳倒鐵城關 한 주먹에 철성(鐵城)의 관문을 무너뜨리리라.
贈默山人 묵(默) 산인(山人)에게 드림
參禪不用多言語 참선하는 데 많은 말이 필요 없으니
只在尋常默自看 다만 평소에 말없이 스스로를 살피면 된다네.
趙州無字如忘却 조주(趙州)의 무(無) 자를 잊어버린다면
雖口無言我不干 비록 입이 말을 하지 않아도 내 간섭하지 않으리.
我師天竺金仙氏 나의 스승은 인도의 부처님이니
直使跉跰返故園 절름발이도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시도다.
自是不歸歸便得 이로부터는 돌아가지 않아도 곧 돌아감을 얻으리니
月臨靑桂有啼猿 달이 푸른 계수나무에 떠오르고 원숭이 울음 있도다.
在竹島 有一儒老 譏山僧 不得停息 以拙謝之
죽도(竹島)에 있을때 어떤 늙은 유학자가 산승이 쉬지도 못한다고
나무라기에 서툰 솜씨로 사례드리다
西州受命任家裔 서주(西州)에 명을 받은 임씨(任氏) 가문의 후예로
庭戶堆零苟不容 집안이 영락하여 잠시 몸 둘 곳도 없었네.
無賴生成逃聖世 의지해 살 데가 없어서 세상을 피하여
有懷愚拙臥雲松 어리석음과 못남을 품고서 구름과 소나무에 누웠네.
山河去住七斤衲 산과 강을 오가는 데는 일곱 근(斤) 장삼이요
宇宙安危三尺筇 우주의 안위(安危)에는 세 척의 지팡이라.
是我空門本分事 이것이 우리 불가의 본분인데
有何魔障走西東 무슨 마귀의 장애가 있어서 동서로 달리는가.
在馬島館 庭菊大發 感懷
대마도(對馬島)9) 여관에서 뜰에 국화가 가득 핀 것을 보고
9) 대마도(對馬島) : 한국의 부산과 일본의 후쿠오카 사이에 있는 섬. 조선 시대에
두 나라를 오갈 때 반드시 이 섬을 거쳐서 다녔다.
蕭蕭落葉下汀洲 쓸쓸히 낙엽은 모래톱에 지고
天末歸雲海北秋 하늘 끝 돌아가는 구름에 바다 북쪽은 가을.
節過重陽不歸去 절기는 중양절(重陽節)을 지났건만 돌아가지도 못하는데
黃花空遣遠人愁 누런 꽃은 공연히 멀리 온 사람을 시름겹게 하네.
旅遊心緖亂如麻 나그네 마음은 난마(亂麻)와 같이 어지러워
落日空瞻北去鴉 떨어지는 해에 북으로 가는 까마귀만 부질없이 바라보네.
誰道山僧無顧念 누가 산승은 돌아보는 마음이 없다고 하였는가
夢魂頻度漢江波 꿈속에서 혼령이 자주 한강의 물결 넘는 것을.
錦屛回夢夜蒼蒼 꿈 깨고 보니 비단 병풍에 밤이 어둑어둑한데
雲盡天晴碧海長 구름 다한 하늘은 맑고 푸른 바다는 아득하네.
門掩候蟲殘月曙 문 닫히고 가을 벌레 우는데 새벽달 밝아오고
寄衣無處有淸霜 옷 보내 올 곳도 없건만 맑은 서리 내리는구나.
在本法寺 除夜 본법사(本法寺)10)의 섣달 그믐날 밤
10) 본법사(本法寺) :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때 들른 절이다.
四海松雲老 이 넓은 세상에 이 늙은이는
行裝與志違 차림새와 생각이 서로 어긋나네.
一年今夜盡 한 해도 오늘 밤으로 다하는데
萬里幾時歸 만 리 먼 땅 돌아갈 날 언제이리.
衣濕蠻河雨 옷은 오랑캐 나라의 비에 젖는데
愁關古寺扉 오래된 절의 사립문이 닫힌 걸 근심하네.
焚香坐不寐 향을 피우고 앉아서 잠들지 못하니
曉雪又霏霏 새벽 눈이 부슬부슬 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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