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화엄(華嚴) I

一乘法界圖圓通記 일승법계도원통기

실론섬 2016. 11. 25. 16:34

一乘法界圖圓通記 일승법계도원통기

 

1. 저자[定造者]

2. 제목 해석[釋題]

 

일승법계도원통기 권상 一乘法界圖圓通記卷上1)
고려국 귀법사 원통수좌 균여 설함 高麗國 歸法寺 圓通首座 均如 說
1) 저본(底本)은『한국불교전서』제4권에 실린『일승법계도원통기』로서, 2권(卷) 1
   책(冊)으로 되어 있다. 이『일승법계도원통기』는 그 발문에 의하면 지원(至元)
   24년(1287) 정해(丁亥) 5월에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개판한 것으로 보인다. 한
   국불교전서에서 저본으로 한 것은 동국대학교 소장본으로서, 1900년대에 필사
   된 것이다. 이를 규장각소장본[경성(京城) 송석하(宋錫夏) 소장의 간본(刊本) 필
   사]으로 교감하였다. 여기에서는『일승법계도원통기』가운데 저자 논란을 결정
   짓는 ‘정조자(定造者)’와『일승법계도』의 제목을 해석하는 ‘석제(釋題)’ 부분만
   을 뽑아 실었다.

 

장차 이 글을 세 문으로 분별하여 해석하려고 한다. 첫째는 지은 이를

결정하는 것이고, 둘째는 제목을 해석하는 것이며, 셋째는 문장을 따라 해

석하는 것이다.

將釋此文, 三門分別. 一定造者, 二釋題目, 三隨文釋.

 

1. 저자 [定造者]

 

첫 번째 가운데 어떤 이는 말하였다. “7언 30구의 시는 지엄스님이 지

은 것이고, 해석은 의상스님이 저술한 것이다. 말하자면『원상록(元常錄)』

에 이르기를, ‘의상스님이 지엄스님의 처소에서 화엄을 전수받을 때, 지엄

스님이 7언 30구의 시를 지어서 의상스님에게 주니, 의상스님은 곧 검은

글자[墨字] 위에 붉은 인[赤印]을 그어서 바치자 [지엄]스님이 찬탄하기

를,「너는 법성을 궁극적으로 증득하여 부처님의 뜻을 통달하였으니 마땅

히 해석을 지으라」고 하였다. 의상스님이 처음에 40여 장의 해석을 지어

서 [지엄]스님에게 올리니, 스님은 부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의 여부를 알

아보려고 부처님 전에 이르러 원을 세우고 태웠는데 모두 다 타버렸다. 또

60여 장을 지어서 바쳤는데, 또한 다 타버렸다. 또 80여 장을 지어 [지엄]

스님에게 바치니, 스님은 의상스님과 함께 또 앞에서와 같이 태우니, 그

가운데 탄 것과 타지 않는 것이 있었다. 타지 않은 글이 지금 세상에 행해

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初中, 一云.“ 七言三十句詩, 則儼師所造, 能釋則相公所述.
謂元常錄云,‘ 相公於儼師所, 受花嚴時, 儼師造七言三十句
詩, 以授相公, 相公則於墨字上, 畫赤印以獻, 師歎曰,「 汝窮
證法性, 達佛意旨, 宜造於釋.」 相公初造四十餘紙釋以進師,
師欲知合佛意否, 將至佛前, 立願燒之, 悉皆燒盡. 又造六十餘
紙進, 亦燒盡. 又造八十餘紙進師, 師共相德, 亦如前燒之, 於
中有燒不燒. 不燒之文, 今行於世.’”

 

어떤 이는 말하였다. “최치원이 지은『전(傳)』2) 가운데 말하기를, ‘의상

스님이 지엄스님의 처소에서 화엄을 전수받을 때에 꿈에 어떤 신인이 용

모가 매우 훌륭해 보였는데, 의상스님에게 「스스로 깨달은 것을 저술하

여 남에게 베푸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였다. 또 꿈에 선재가 총명약 10

여 알을 주었으며, 또 푸른 옷을 입은 동자를 만났는데 세 번이나 비결을

주었다. 지엄스님이 그것을 듣고「신인이 영험을 나에게는 한 번 주었는

데 너에게는 세 번이나 주었으니 멀리서 건너와 부지런히 수행한 그 결과

가 이에 나타난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오묘함을 궁구하여 얻은 것을 편

찬하라고 명함을 인하여, 이에 붓을 떨쳐『대승장(大乘章)』10권을 편집

해서 [지엄]스님에게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길 청하였다. 지엄스님이 「뜻

은 매우 아름다우나 문장이 옹색하다」고 말하였다. 이에 물러나서 번거로

운 곳을 삭제하고 사방으로 통하게 해서,『뜻을 세워 현묘함을 높이다[立

義崇玄]』라고 이름하니, 대개 그 스승이 지은『수현분제(搜玄分齊)』3)의 

을 숭상하고자 함이다. 지엄스님이 이에 의상스님과 함께 부처님 전에 나

아가 원을 맺고 태우며 또 말하기를, 「말이 성인의 뜻에 꼭 맞다면, 원컨대

불에 타지 말아지이다」라고 하였다. 이미 다 타고 남은 것 속에서 210자를

얻으니, 의상스님으로 하여금 줍게 해서 간절히 서원하고 다시 맹렬한 불

길 속에 던졌으나 끝내 재가 되지 않았으므로 지엄스님은 눈물을 머금으

며 감탄하고 칭찬하면서 그것을 조합하여 게송으로 만들게 하였다. 방문

을 닫고 여러 날 만에 30구를 이루니, 삼관(三觀)4)의 오묘한 뜻을 포괄하

고 십현(十玄)의 남은 아름다움을 거양하였다’라고 하였다.”〈이상〉

一云,“ 崔致遠所述傳中云,‘ 相公於儼師所, 受花嚴時, 夢有
神人, 貌甚魁偉, 謂相公曰, 「以自所悟著述, 施人宜矣.」 又夢
善財授聰明藥十餘劑, 又遇靑衣童子, 三授秘訣. 儼師聞之曰,
「神授靈貺我一爾三, 遠涉勤修厥報斯現.」 因命編次窺奧所得,
於是奮筆, 緝大乘章十卷, 請師指瑕. 儼曰, 「義甚佳詞尙壅」,
乃退而芟繁爲四通, 號曰立義崇玄, 盖欲崇其師所著搜玄分齊
之義. 儼乃與相詣佛前, 結願焚之, 且曰,「 言有脗合聖旨者,
願不爇也.」 旣而煨燼之餘, 獲二百一十字, 令相捃拾, 懇誓更
擲猛焰竟不灰, 儼含涕嗟稱, 俾綴爲偈. 閉室數夕, 成三十句,
括三觀之奧旨 擧十玄之餘美.”〈已上〉
2) 전(傳)은『부석존자전(浮石尊者傳)』을 말한다.『부석존자전』은 최치원(崔致遠)
   이 지은 의상스님의 전기로서, 완본은 전하지 않으며『삼국유사』권4「의상스님
   전교」에 나오는「최후본전(崔侯本傳)」이 그 내용의 일부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의
   천의『신편제종교장총록』(韓4, p.682c)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의천 당시에는
   유통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학자이면서 불교와 인연이 깊었던 최치원은『사산
   비명(四山碑銘)』과 기(記)·원문(願文)·찬(讚) 등의 불교관계 저술 및『석순응전
   (釋順應傳)』·『석이정전(釋利貞傳)』·『부석존자전』·『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
   등의 승전(僧傳)을 저술하였다. 이 중에 『법장화상전』은 최치원이 해인사에 은
   거한 몇 년 뒤인 904년에 지어졌는데,『부석존자전』은『법장화상전』 이전에 저
   술된 것으로 보인다.
3)『수현분제(搜玄分齊)』는 지엄스님이 27세 때 지은『대방광불화엄경수현분제통
   지방궤(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5권)를 말하며, 줄여서『수현기』라
   한다.『육십화엄』에 대한 주석서로서, 이 책의 구성은 먼저『화엄경(華嚴經)』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그 다음부터는 품별로 해석하고 있다. 품별 해석
   에서는 품의 이름, 품의 위치, 품의 내용, 경문 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4) 삼관(三觀)은 관법을 세 가지로 나눈 것으로서, 각 종파마다 차이가 있다. 화엄
   종조 두순스님의 저술로 알려져 있는『법계관문』에서는 삼관은 진공관(眞空
   觀)·이사무애관(理事無碍觀)·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7언 30구도 또한 의상스님이 지은 것이다. 뒤의 뜻도 그럴 만

하지만, 그러나 반드시 최치원의 『전(傳)』에 의거하여 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 해석은 이미「자서(自叙)」에 “이법[理]에 의지하고 가르침[敎]에 근

거하여 간략히 반시(槃詩)를 짓는다”5)고 말하였으니, 해석한 것 또한 도주

(圖主) 스스로 지었다고 단정한 것이다. 어찌 옆에서 증거를 끌어올 필요

가 있겠는가? 하물며 지엄[至相]스님의 행장 가운데 이 7언 30구를 지은

일을 싣지 않음이겠는가?

故七言三十句, 亦相公所述也. 後義可許, 然不必依崔傳定也.
今釋旣自敍云,“ 依理據敎, 略制槃詩”, 則所釋亦是圖主自述
斷矣. 何須傍引證據耶? 况至相行狀中, 不載制此七言三十句
事耶?
5) 의상(義湘),『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韓2, p.1a7).

 

2. 제목 해석[釋題]

 

두 번째 제목을 해석하는 중에 처음의 아홉 글자는 바른 제목이고, 뒤

는 모서리의 수와 글자수를 든 것이니, 이것은 곧 제목의 각주이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일승의 두 글자는 의지하는 바의 근본 가르침이고, 법계

도란 해석하는 글[章]의 이름이다”라고 하였고, 어떤 이는 말하기를, “아

홉 글자는 모두 해석하는 글의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처음 뜻은 『교분기

(敎分記)』6)에 준하면, 화엄일승(華嚴一乘)7)은 의지하는 바의 근본 가르침

이며, 『교분기』는 해석하는 글의 이름이니, 지금 이것 또한 그러하다. 말하

자면 화엄일승은 아래로 법화일승(法華一乘)8)과 심밀일승(深密一乘)9) 

을 가려내며,『교분기』는 위로 증분을 가려내니, 지금 이것은 저것에 준례

하므로 그러하다. 지금 해석은 뒤의 뜻에 의한다. 말하자면 무릇 해석하는

제목 중에 해석되는 경의 이름을 두니, 반드시 경의 제목과 같아야 하지만

경의 제목에는 일승이라는 말은 없다. 그러므로 모두 해석하는 글의 이름

이다.

第二釋題中, 初之九字則正題, 後擧角數及字數, 此卽是題脚
也. 一云, “一乘二字, 所依本敎, 法界圖者, 能釋章名,” 一云,
“九字並是能釋章名也.” 初義者, 准敎分記, 則花嚴一乘者, 所
依本敎, 敎分記者, 能釋章名, 今此亦爾也. 謂花嚴一乘者, 下
簡法花一乘及深密一乘等, 敎分記者, 上簡證分也, 今此例彼
故爾也. 今釋依後義. 謂凡能釋題中, 安所釋經名, 必須同於經
題, 然於經題无一乘言, 故並能釋章名也.
6)『교분기(敎分記)』는 현수법장(賢首法藏)이 지은 것으로서,『일승교분기(一乘
   敎分記)』·『화엄교분기(華嚴敎分記)』·『화엄일승교의분제장(華嚴一乘敎義分
   齊章)』·『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오교장』 등이라고도 한다.『교분기』의 
   판본에는 송본(宋本)·연본(鍊本)·화본(和本)·『초본(草本)』 등 여러 가지가 있
   다. 법장이 의상에게 보낸 글[『삼국유사(三國遺事)』「의상전교(義湘傳敎)」조(韓
   6, p.349a1-b2);『원종문류(圓宗文類)』「현수국사기해동서(賢首國師奇海東書)」
   (韓4, pp.635c5-63613)]에 의하면, 법장은 이 책을 저술한 이후에 신라의 유학승 
   승전(勝詮)이 귀국할 때 다른 저술과 함께 의상에게 보내어 검토해 주기를 부탁하였
   다고 한다. 그래서 의상은 지통(智通)·진정(眞定)에게 질정하게 하였고 그 검토
   본이 함께 유통되니, 이것이 초본(草本)이다. 균여는『석화엄교분기원통초』에
   서 “의리분제(義理分齊)를 아홉 번째로 한 것은 초본이고 이와 반대로 한 것은
   연본이다”(韓4, p.245a22-24)라고 하였는데, 초본과 연본의 큰 차이는 법장이 직
   접 저술한『교분기』가운데 제9 소전차별(所詮差別)과 제10 의리분제(義理分齊)
   의 순서가 바뀌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균여가 이 연본의『교분기』에 주석을 한
   것이『석화엄교분기원통초』이다.
7) 화엄일승(花嚴一乘)은『화엄경(華嚴經)』에서 설하는 일승의 가르침이다. 화엄
   교학에서는 화엄일승과 법화일승을 구분해서 법화일승을 동교일승, 화엄일승
   을 별교일승이라 한다. 법장의『화엄오교장』권1에서는 별교일승에서 일승과
   삼승의 차이를 밝힌 뒤 삼승이 본래 일승법임을 밝히고, 동교일승에서는 방편
   을 없애어 실상에 돌아가는 문(일승)과 실상을 잡아 방편을 이루는 문(삼승)으
   로써 일승과 삼승이 융섭하여 그 체가 둘이 아님을 보였다.(大45 p.478b24-25,
   p.479c15-21).
8) 법화일승(法花一乘)은『법화경』에서 설하는 일승의 가르침이다.『법화경』에
   서 설하는 일승은 성문(聲聞)·연각(緣覺) 및 보살의 각기의 실천법이 모두 실
   은 유일한 진실의 가르침을 구현하고 있다고 하는 취지이다. 삼승 그대로가
   일승으로 융합된다고 하는 천태종의 설이며.『묘법연화경』권1「방편품」(高9,
   p.732b11-12; 大9, p.8a17-18)의 “오직 일승의 법만 있을 뿐 둘도 없고 셋도 없다”
   라고 한 것에 근거한 것이다.
9) 심밀(深密)은『심밀경』, 즉『해심밀경(解深密經)』을 말한다. 앞에서의 화엄일승
   과 법화일승의 논리에 의거하여『해심밀경』의 입장에서 일승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해심밀경』의 교설 역시 심밀일승이라 표현하고 있으나, 균여는 법
   화일승과 함께 이는 화엄일승과 다름을 설하고 있다.

 

아래에서 말하기를, “일승법계도의 시(詩)와 하나의 도인(圖印)을 합한

것은『화엄경(華嚴經)』과『십지론(十地論)』에 의거하여 원교의 핵심[宗要]

을 나타낸 것이다”10)〈이상〉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오직『화엄경』과『십지

론』만이 의지할 바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묻는다. 만약 그렇다면 『교분기』의 이름은 어떻게 아는가?

답한다. 그것 또한 ‘화엄’ 두 글자로써 의지하는 바를 삼고, ‘일승’ 이하

는 해석하는 글의 이름으로 삼는다. 마치 중권의 제목에서 말하기를, “

엄경(華嚴經)』 중에 일승의 가르침을 세우는 분한의 뜻”11)이라 한 것과 같

다. ‘중(中)’자로써 의지하는 주체와 대상을 나누기 때문이다.

下云,“ 一乘法界圖合詩一印, 依花嚴經及十地論, 表圓敎宗
要”〈已上〉. 故唯花嚴經及十地論, 是所依故爾也.
問. 若爾, 敎分記名云何會耶?
答. 彼亦以‘花嚴’二字爲所依,‘ 一乘’以下爲能釋章名. 如中
卷題云,“ 花儼經中一乘立敎分齊義,” 以‘中’字隔能所依故也.
10)『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韓2, p.8b7-9).
11) 균여가『석화엄교분기원통초』에서 해석한『교분기』(연본 3권)의 상권과 하권의
   제목은 ‘화엄일승교분기’로 명명되고 있으나, 중권의 제목은 ‘화엄경중일승입
   교분제의(花儼經中一乘立敎分齊義)’인 것이다.

 

묻는다. 이 가운데서 의지하는 바[所依]를 들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

인가?

답한다. 짓는 이의 선교가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하다. 또한 저『화

엄교분기』는 책에 이름을 짓는[命書] 가운데서 다만「교분기」라 하였을

뿐이니, 한 장(章)의 제목에서 이와 같이 증감이 같지 않다. 또 지엄스님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花嚴經)』 가운데「수현분제통지방궤」’라고 하

였고, 법장스님은 『화엄경탐현기(花嚴經探玄記)』12)라 하였으며, 청량스님

은『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花嚴經疏)』13) 등이라 하였으니, 이와 같이

하나가 아니다. 지금 이것은 우선 한 가지 뜻을 따라 ‘일승법계도’라 한 것

이다. ‘일’은 다른 것이 없다는 뜻이고, ‘승’은 돌고 구른다는 뜻이다.

問. 此中不擧所依者何耶?
答. 以作者善巧非一故爾也. 且如花嚴敎分記, 於命書中, 但
云,‘ 敎分記,’ 則於一章題, 如是增減不同. 又儼公云,‘ 於大
方廣佛花嚴經中, 搜玄分齊通智方軌,’ 藏師云,‘ 花嚴經探玄
記,’ 淸掠云,‘ 大方廣佛花嚴經疏’等, 如是非一. 今此且從一
義云,‘ 一乘法界圖’也. 一者无他義, 乘者運轉義也.
12)『화엄경탐현기(花嚴經探玄記)』는 법장이 지은 저술로서『육십화엄(六十華嚴)』
    에 대한 주석서이다. 줄여서『탐현기』라고 하며, 현재 20권이 전한다. 법장은 의
    상이 신라로 귀국한 이후에 2권이 미완인『탐현기』20권을 다른 저술과 함께 보
    내어 질정을 부탁하였고[『원종문류』「현수국사기해동서」(韓4, pp.635c5-63613)],
    의상은 이것을 진정(眞定), 상원(相圓), 양원(亮元), 표훈(表訓) 등 네 명의 뛰어
    난 제자들에게 각기 5권씩 나누어 강의하게 하였다.[최치원(崔致遠),『법장화상
    전(法藏和尙傳)』(韓3, p.775c11-14)].
13)『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60권)는 청량징관(淸凉澄觀, 738~839)
    스님이 저술한『팔십화엄(八十華嚴)』에 대한 주석서이다. 이는 줄여서『화엄경
    소』·『청량소(淸凉疏)』·『화엄대소(華嚴大疏)』 등이라고도 부른다. 이 책은 크
    게 가르침이 일어난 인연[敎起因緣]·장과 교와 거두어지는 곳[藏敎所攝]·뜻과
    이치의 분제[義理分齊]·가르침을 받는 근기[敎所被機]·교체(敎體)의 얕고 깊
    음[敎體淺深]·종취(宗趣)의 공통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宗趣通局]·부류와 품
    과 회[部類品會]·전역할 때의 감응과 통함[傳譯感通]·제목을 총체적으로 해석
    함[總釋經題]의 열 부분으로 나누어서『화엄경(華嚴經)』의 종취(宗趣),『화엄경
    (華嚴經)』의 가르침이 설해지게 된 10가지 인연, 4법계설과 십현문,『화엄경(華
    嚴經)』의 부류(部類)와 39품 7처 9회,『화엄경(華嚴經)』의 번역과 그 유통 과정
    의 감응, 경의 제목, 경문의 뜻을 풀이함 등으로 서술하였다. 783년(또는 784년)
    에『화엄경소』를 짓기 시작하여 787년에 완성하고 다음해에 이『소(疏)』를 강
    의하였다. 처음에 대중들을 위하여 이『소』를 강의할 때 밝은 구름이 강당 뜰 앞
    의 공중에 머물렀다고 하며[『법계종오조략기(法界宗五祖略記)』(卍134, p.550b9)],
    매일 천 명의 스님들이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광청량전(廣淸涼傳)』 하권(大51,
    p.1120b24-25)].

 

묻는다. 일승이란 무엇이 일승인가?

답한다. 어떤 이는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이 둘이 없는 일승이다”라

하고, 어떤 이는 “동(同)·별(別)의 일승을 갖추었다”고 하며, 어떤 이는

“오직 별교일승이다”라고 하였다. 처음 뜻은 아래에서 말하기를, “묻는다.

어째서 도인에 오직 한 길[一道]만 있는가? 답한다. 여래의 한 음성[一音]

을 나타내기 때문이니, 이른바 하나의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이다”14)〈이상〉

라고 하였다. 오교(五敎)15)의 법은 오직 여래의 하나의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問. 一乘者, 何一乘耶?
答. 一云, “善巧无二之一乘”, 一云, “具同別一乘”, 一云, “唯
別敎一乘也.” 初義者, 下云, “問. 何故, 印文唯有一道? 答.
表如來一音故, 所謂一善巧方便.”〈已上〉 五敎之法, 唯是如來
一善巧方便故爾也.
14)『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韓2 p.1b10-11).
15) 오교(五敎)는 부처님의 가르침 전체를 다섯 가지로 나눈 것이다. 법장은『화엄
    오교장』권1에서 오교를 소승교(小乘敎)·대승시교(大乘始敎)·종교(終敎)·돈
    교(頓敎)·원교(圓敎)로 나누었고(大45, p.481b7-8),『화엄경탐현기』권2에 의하
    면, 보살만을 열거할지라도 주반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은 동교일승이며 만약
    주반을 구족하면 곧 별교일승이니,『화엄경(華嚴經)』의 설과 같다고 하여(高47,
    p.481c21-22; 大35, p.132b22-24),『화엄경(華嚴經)』을 별교일승에 배대하였다. 또
    한 의상은 “『일승법계도』의 시(詩)와 하나의 도인(圖印)을 합한 것은『화엄경(華
    嚴經)』과『십지경론』에 의거하여 원교의 핵심[宗要]을 나타낸 것”(韓2, p.8b7-9)
    이라고 하여『일승법계도』가 원교에 해당함을 나타내었고, 균여는『원통기』상
    권에서 “원교는 근본이며 이것의 방편이 곧 아래 사교이니, 원교 및 사교를 갖
    추어 드는 까닭에 오교를 갖추었다고 말한다.”(韓4, p.2b14-15. 圓敎則本, 此之方
    便則下四敎. 以具擧圓及四敎, 故云具五.)라고 하였다.

 

묻는다.「서(序)」16)에 말하기를, “위대한 성인의 훌륭한 가르침은 [일정

한] 방법이 없어 근기에 응하고 병에 따라서 하나가 아니다”17)〈이상〉라고

하였다. 큰 성인이 이미 오교 근기의 병에 응하여 승(乘)의 가르침이 하나

가 아닌데, 어찌하여 일승이라 하는가?

답한다. 오교가 비록 다르지만 여래가 중생을 거두는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의 뜻은 하나여서 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가운데서 ‘훌륭하

고 교묘한 방편’이라고 하였다.『오교장(五敎章)』에서 “근본과 지말이 녹아

서 융합하여 오직 하나의 큰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의 법이다”18)라고 말하

였고, 또 “혹은 오교를 갖추니 방편을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19)라고 말하

였다.『십유식장(十唯識章)』20)에 “총체적으로 10문을 갖추니 동교를 기준

으로 하여 설하였다”라고 말하였고,『융회장(融會章)』21)에 “일승과 삼승은

동일한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이다” 등이라고 말하였으니, 모두 한 가지 뜻

이다.

問. 序云,“ 大聖善敎无方, 應機隨病非一.”〈已上〉 大聖旣應五
敎機病, 乘敎非一, 何云一乘耶?
答. 五敎雖別, 然如來攝生善巧之義, 一而无二故也. 是故此
中, 云‘善巧方便.’ 五敎章云, “本末鎔融, 唯一大善巧法,” 又
云,“ 或具五敎, 以攝方便故.” 十唯識章云,“ 摠具十門, 約同
敎說”, 融會章云,“ 一乘三乘同一善巧”等, 並一義也.
16) 의상은 반시를 주석한『법계도기』「자서(自敍)」에서 반시를 지은 목적과 독서
    법(讀書法)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반시를 지은 목적을 설명하고 있다.
   「자서(自敍)」에 의하면, 의상은 반시를 지어서 이름에 집착하는 무리가 이름 없
    는 참된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고자 하였다.
17)『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韓2, p.1a5).
18) 법장(法藏),『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권1(大45, p.482a15).
19)『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권1(大45, p.482b5).
20)『십유식장(十唯識章)』은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그 저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으
    나, 법장의『화엄경탐현기』 권13에 열 가지로 유식을 설하는 부분이 있다.(高47,
    pp.682b27-683a24; 大35, p.347a2-c2).
21)『융회장(融會章)』에 대해서는 종효(宗曉)가 편찬한『사명존자교행록(四明尊者
    敎行錄 )』에 “天台敎與起信論融會章”(大46, p.865c16)이란 말이 보이고, 지반(志
    磐)이 지은『불조통기(佛祖統紀)』에는 “起信融會章”(大49, p.194a4)이라 한다. 또
    한 의천의『신편제종교장총록』에 “지례(智禮)가 저술한『별리수연이십문(別理
    隨緣二十問)』1권이『융회장』에 붙어 있다”(韓4, p.696b20)고 한 것으로 보아 의
    천 당시 고려에 유통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뜻은, 아래의 ‘그러므로 행자’의 문장이니, 별교일승과 방편일

승을 기준으로 하여 해석하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지금 해석은 오직 다

섯 번째 원교일승이다. 아래에서는 “『일승법계도』는『화엄경(華嚴經)』과

『십지론(十地論)』에 의거하여 원교의 핵심[宗要]을 나타낸 것이다”22)이상〉

라고 말하였다. 원교의 핵심은『일승법계도』와 한 뜻이니, 모두 다섯 번째

원교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第二義者, 下‘是故行者’文, 約別敎一乘及方便一乘釋故爾也.
今釋唯第五圓敎一乘也. 下云, “一乘法界圖, 依花嚴經及十地
論, 表圓敎宗要.”〈已上〉 圓敎宗要, 與一乘法界圖是一義, 而並
是第五圓敎故爾也.
22)『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韓2, p.8b7-9).

 

묻는다. 만약 그렇다면 무슨 까닭에 아래 문장에서 모두 굴곡이 삼승임

을 변별하였는가?

답한다. 비록 아래 문장에서 모두 삼승을 들고 있으나, 근본으로 삼는

바를 기준으로 하면 오직 별교일승을 나타낼 뿐이니, 지금은 근본으로 삼

는 바를 좇아 말했을 뿐이다.

問. 若爾, 何故, 下文並辨屈曲三乘耶?
答. 雖於下文, 並擧三乘, 然約所宗, 則唯現別敎一乘, 今從所
宗云耳.

 

묻는다. ‘그러므로 행자’를 해석하는 가운데 동(同)·별(別)을 함께 설하

여 동별일승을 갖추었다고 말할 만한데, 어찌하여 그렇지 않다고 하는가?

답한다. 바로 별교일승 행자를 기준으로 하여 반(伴)인 권속을 겸하는

것을 해석한 것이니, 뜻 가운데 아울러 방편일승을 변별할 뿐이다.

問. 釋‘是故行者’中, 具說同別, 可云具同別一乘, 何云不
爾耶?
答. 正約別敎一乘行者, 釋兼於伴眷屬, 義中並辨方便一乘耳.

 

묻는다. 아래에서 말하기를, “여래의 일음(一音)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이다”23)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곧

오교를 통틀어 가리켜 일음이라 이름하고, 또한 하나의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이라 이름한 것이니, 다만 이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은 둘이 없는 일

승인데, 어찌하여 다섯 번째 원교라고 하였는가?

답한다. 아래에서 말하기를,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은 [일정한] 방법이

없어서, 법계에 응하여 걸맞고, 십세에 상응하여 원융만족하기 때문이다.

곧 이 뜻은 원교(圓敎)에 해당한다”24)〈이상〉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의

큰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이 되는 때에 도리어 다섯 번째 원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또 근본과 지말이 녹아서 융합하여 하나의 크고 훌륭하고 교묘

한 [방편]의 법이 될 때에도 또한 그러하다.

問. 下云,“ 表如來一音故, 所謂一善巧方便,” 此則通指五敎,
名爲一音, 亦名一善巧故, 但是善巧无二之一乘, 何云第五圓
敎耶?
答. 下云, “善巧无方, 應稱法界, 十世相應, 圓融滿足故, 則是
義當圓敎.”〈已上〉 故爲一大善巧方便時, 還當第五圓敎故也.
又本末鎔融, 爲一大善巧法時亦爾也.
23)『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韓2, p.1b10-11).
24)『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韓2, p.1b14-15).

 

묻는다.『오교장』에서 말하기를, “혹은 열어서 둘로 한다. 첫째는 근본의

가르침이니, 말하자면 별교일승은 모든 가르침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지말의 가르침이니, 말하자면 삼승·소승 등은 저것으로부터 흘러

나온 바이기 때문이다”25)라고 하였다. 곧 근본과 지말이 녹아서 융합하는

가운데 오교를 갖추는데 어째서 오직 원교라고 하는가?

답한다. 근본은 곧 화엄이 근본이고, 지말은 곧 이하 사교[下四敎]26)

지말이다. 그러나 이 근본과 지말이 녹아서 융합하여 도리어 다섯 번째 원

교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問. 五敎章云,“ 或開爲二. 一本敎, 謂別敎一乘爲諸敎本故.
二末敎, 謂三乘小乘等, 從彼所流故.” 則本末鎔融中, 可具五
敎, 何云唯圓敎耶?
答. 本則花嚴本, 末則下四敎末. 然此本末鎔融 則還是第五圓
敎故爾也.
25)『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권1(大45, p.482a15-17).
26) 이하 사교[下四敎]는 화엄오교판에서 말하는 오교에서 원교(圓敎)를 제외한 가
    르침. 즉 소승교(小乘敎)·대승시교(大乘始敎)·종교(終敎)·돈교(頓敎)를 말한다.

 

묻는다. ‘혹은 오교를 갖추니 방편을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곧 원교 가운데 오교를 갖추는 것인가?

답한다. 원교는 곧 근본이니, 이것의 방편이 곧 아래 4교이다. 원교와 4

교를 갖추어 들기 때문에 다섯을 갖추었다고 말하니, 방편을 거두어들이

는 가운데 오교를 갖추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 총체적으로 10문을

갖추니, 동교를 기준으로 말하면, 경에 이르기를, “삼계가 허망하니 오직

한 마음이 지은 것이다”27)라고 하였다. 해석에 10문이 있는데 뒤의 3문은

바로 별교에 해당한다. 그러나 뒤의 셋의 반(伴)은 권속의 뜻이니, 앞의 7

문을 밝힌다. 그러므로 앞의 일곱이 동(同)이니 뒤의 셋도 또한 동교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승·삼승이 동일한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이기 때

문에 동교가 된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별교일승이 동교삼승과 다름을 변

별하였고 다시 별교 가운데서 동·별 2교를 논하여 마쳤는데, 다음에 동교

가운데서 또한 동·별을 논할 때에 ‘근기를 따르기 때문에 별교라 하고 동

일한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이므로 동교라 이름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므

로 동일한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의 동교란 이하의 4교인 것이다.28)〈『공목
장』29) 중에 볼 수 있다.〉

問. 或具五敎以攝方便故, 則圓中具五敎耶?
答. 圓敎則本, 此之方便則下四敎. 以具擧圓及四敎, 故云具
五, 非謂攝方便中具五敎也. 又摠具十門, 約同敎說者, 經云,
“三界虛妄, 唯一心作,” 釋有十門, 而後三門, 正當別敎. 然於
後三之伴眷屬義, 明前七門. 是故前七是同, 非謂後三亦同敎
也. 一乘三乘同一善巧故爲同敎者, 前中旣辨別敎一乘, 與同
敎三乘之異, 更於別敎中, 論同別二敎竟, 次於同敎中, 亦論同
別時云,‘ 隨機故名別敎, 同一善巧故名同敎.’ 是故同一善巧
之同敎者, 下四敎也.〈孔目中可見.〉
27)『육십화엄(六十華嚴)』권25「십지품(十地品)」에서는 “삼계는 허망하여 다만 이 마
    음이 지은 것이다.”(高8, p.178c23-24; 大9, p.558c10. 三界虛妄, 但是心作.)라고 하였
    고,『팔십화엄(八十華嚴)』권37「십지품(十地品)」에서는 “삼계에 있는 것이 오직
    한 마음뿐이다.”(高8, p.651c9-10; 大10, p.194a14. 三界所有, 唯是一心.)라고 하였다.
28) 지엄의『공목장』에는 “동교 중에도 또한 동·별이 있으니 일승·삼승은 동일한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이다.”(大45, p.586c12-13. 同敎之中, 亦有同別, 一乘三乘, 同
    一善巧.)라고 되어 있다. 본문의 내용은 균여가『공목장』에 있는 내용을 종합 정
    리한 것으로 보인다.
29)『공목장(孔目章)』(4권)은 지엄스님이 62세 이후에 지은 책이다. 갖춘 이름은『화
    엄경내장문등잡공목(華嚴經內章門等雜孔目)』이며,『화엄공목장(華嚴孔目章)』·
   『화엄경공목장(華嚴經孔目章)』·『화엄경잡공목(華嚴經雜孔目)』이라고도 한다.
    이 책은 『육십화엄(六十華嚴)』에 기초하여 147개의 문제를 가려서 하나하나마
    다 소승·대승초교·종교·돈교·일승 등의 해석들이 어떻게 다른지를 밝혀 화
    엄교의를 선양한 것이다. 주석서로는 존현(尊玄)의『화엄공목장초(華嚴孔目章
    抄)』와 응연(凝然)의『화엄공목장발오기(華嚴孔目章發悟記)』등이 있다. 이 외에
    도 균여가 주석한『공목장기(孔目章記)』(8권)가 있었다고 하나[혁련정(赫連挺)
    찬(撰),『균여전(均如傳)』(韓4, p.512b8)], 현존하지 않는다.

 

묻는다. 원교의 핵심은 『일승법계도』와 더불어 이미 한 뜻인데 무슨 까

닭에 법계를 치우쳐 드는가?

답한다. 이 경의 종취 가운데 대원(大遠)법사30)는 “화엄삼매가 근본[宗]

이 된다”31)고 하였고, 유(裕)법사32) 등은 “매우 깊은 법계의 마음 경계가

근본이 된다”33)고 하였다. 내지 법장스님은 “인과연기의 이법이 실다운 법

계[因果緣起理實法界]로써 근본을 삼는다”34)고 하였으니, 옛부터 여러 선

덕(先德)들은 모두 “이 경은 법계로써 근본을 삼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도주(圖主)는 뜻에 경의 근본[經宗]을 취하여 또한 법계로써 제목을 삼은

것이다. 청량이 제목에 대하여 말하기를, “온갖 미묘함을 머금어도 남음이

있으며, 말을 초월하여 멀리 벗어나는 것은, 그 오직 법계뿐이구나!”35)

고 하였다.

問. 圓敎宗要, 與一乘法界圖, 旣是一義, 何故, 偏擧法界耶?
答. 此經宗趣中, 大遠法師云, “花嚴三昧爲宗,” 裕法師等,
“甚深法界心境爲宗.” 乃至, 藏公,“ 以因果緣起理實法界爲
宗,” 從古諸德皆云, “此經以法界爲宗.” 是故, 圖主意取經宗,
亦以法界爲題名也. 淸涼發題云, “含衆妙而有餘, 超言辭而逈
出者, 其唯法界歟!”
30) 대원(大遠, 523~592) 법사는 수나라 때 정영사(淨影寺)의 혜원(慧遠)스님을 말한
    다. 대원이란 그 몸집이 크다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이 밖에 수나라 때 살
    았다고 해서 수원(隋遠), 정영사(淨影寺)에 머물렀다고 해서 정영이라 부르기
    도 한다. 대원은 『화엄경(華嚴經)』의 종취(宗趣)에 대해, “화엄삼매로써 종을 삼
    았으니, 인행(因行)의 꽃이 능히 불과(佛果)를 장엄하였다.”(『화엄경탐현기』권1,
    高47, p.470a24-25; 大35, p.120a11-12. 以華嚴三昧爲宗, 謂因行之華能嚴佛果.)
   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법장은 “이루어야 할 행덕만을 얻고 의지할 법계를 잃어버
    린 것이 된다.”(『화엄경탐현기』권1, 高47, p.470a25-26; 大35, p.120a12-13. 
    但得所 成行德, 遺其所依法界.)고 논하였다. 또한 대원이『화엄경(華嚴經)』을 네 
    부분으로 나눈 것이『화엄경탐현기』에 소개되고 있다. 즉 초품을 연기정기분(緣
    起淨機分)이라 하고, 두 번째「사나품(舍那品)」을 표종책지분(標宗策志分)이라고 
    하며, 세 번째「명호품(名號品)」으로부터 아래로 제8회에 이르기까지를 현도책수
    분(顯道策修分)이라고 하고, 네 번째 끝에 보현이 설한 게송을 촉루유통분(囑累
    流通分)이라고 하였다.[『화엄경탐현기』 권2(高47, p.475a15-18; 大35, p.125
    b3-6)]. 법장은『화엄경탐현기』권1에서 진(陳)나라의 진제(眞諦) 삼장 등이 점
    교(漸敎)와 돈교(頓敎)의 2교(敎)를 정립하고, 점교는『열반경』등이 이에 속하고 
    돈교는『화엄경(華嚴經)』 등이라고 하였는데, 뒤에 대원 법사 등도 이 설과 같다
    (高47, p.461b1-c4; 大35, p.110c24-28)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대원은『화엄
    경(華嚴經)』을 돈교(頓敎)에 배대하였음을 알 수 있다.
31)『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권1에는 “대원 법사는 화엄삼매로써 근본을 삼았
    다.”(高47, p.470a24-25; 大35, p.120a11. 大遠法師, 以華嚴三昧爲宗.)라고 되어 
    있다.
32) 유(裕) 법사는 수(隋)나라 상주(相州) 연공사(演空寺)의 영유(靈裕, 518-605)이
    다. 속성은 조씨(趙氏)이며, 곡양(曲陽) 사람이다. 6세 때 어머니를 따라가서 계
    (戒)를 받았으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자 학업에 전념하였다. 그 후 15세에 아
    버지가 죽은 뒤 삼년상을 마치고 응각사(應覺寺)로 가서 보(寶) 선사에게 출가
    하기를 구하였으나 보 선사는 “나는 너와 인연은 있지만 스승은 아니다”고 하
    며 다른 훌륭한 곳을 찾아가라고 하자, 정주(定州)로 가서 구족계를 받았다. 그
    는 도빙(道憑)으로부터『십지론』을 듣고 대은(大隱)으로부터『사분율』을 배
    웠다.『열반(涅槃)』·『지론(地論)』·『대집(大集)』·『반야(般若)』·『잡심(雜
    心)』·『성실(成實)』을 통달했고,『화엄』은 더욱 조예가 깊어『화엄소(華嚴
    疏)』 및『지기(旨歸)』를 합하여 9권을 지었다.[법장,『화엄경전기(華嚴經傳
    記)』권2(大51, pp.160a12-161a11)]. 유 법사는 『화엄경(華嚴經)』 본문 해
    석 중 청분(請分)의 질문을 분리하여 124종의 물음이라 하였는데, 처음의 열은 
    법신 자체의 행에 대해 묻고, 중간의 1백은 보신(報身)의 닦음을 일으킴[起修]
    의 행을 묻고, 뒤의 열넷은 방편신(方便身)의 평등한 행을 물은 것이라고 하였
    다.[법장,『화엄경탐현기』권4(高47, p.515b20-23; 大35, p.168b7)].
33)『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권1(高47, p.470a27-28; 大35, p.120a14-15).
34)『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권1(高47, p.470b7-8; 大35, p.120a23).
35) 징관(澄觀),『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권1(大35, p.503a6-7). 징관
    은 이에 대하여『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권1에
    서 “온갖 미묘함을 머금어도 남음이 있다는 것은 사사무애법계이고 말과 생각
    을 초월하여 멀리 벗어났다는 것은 사법계를 융섭해 떨쳐버려서 그 오직 법계
    뿐이다.”(大36, p.2c6-8. 含衆妙而有餘, 事事無礙法界也, 超言思而逈出, 融拂四
    法界, 其唯法界歟!)라고 주석하였다.

 

『초(抄)』 가운데 해석해 말한다. “처음 법계 중에 반드시 어떤 이가 물을

것이다. ‘여러 교가들의 장소(章疏)에 대체로 먼저 여래가 중생을 위하여

중생에게 보이시기를 먼저는 작은 것으로 하고 나중은 큰 것으로 하며, 혹

은 형상이 없는 것을 형상으로 나타내며 말이 없는 것을 말로 보임을 서

술하는데, 지금은 무엇 때문에 최초로 문득 법계를 서술하는가?’ 그러므

로 이제 답한다. ‘[법계]는 이 경의 근본[宗]으로 하는 바이기 때문이며, 또

모든 경의 통체(通體)이기 때문이며, 또 모든 법의 통의(通依)이기 때문이

며, 일체 중생의 미혹과 깨달음의 근본이기 때문이며, 모든 부처님의 증득

하신 바 궁극이기 때문이며, 모든 보살행이 이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며, 처

음에 성도하셔서 단박에 설하신 것이 나머지 경에서 점차가 있는 것과 같

지 않기 때문이다.’”36)〈이상〉 그러므로 이러한 것이다.

抄中釋云. “初法界中, 應有問言. ‘諸家章疏, 多先敍如來, 爲
物示37)生, 先小後大, 或无像現像, 无言示言, 今何故, 最初便
敍法界?’ 故今答云. ‘以是此經之所宗故, 又是諸經之通體故,
又是諸法之通依故, 一切衆生迷悟本故, 一切諸佛所證窮故,
諸菩薩行自此生故, 初成頓說38), 不同餘經有漸次故.’”〈已上〉
故爾也.
36) 징관,『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권1(大36, p.2c14-21).
37) 원문에는「應」으로 되어 있다.(大36, p.2c15).
38) 원문에는「説」뒤에「故」자가 있다.(大36, p.2c20).

 

묻는다. 법계를 근본으로 삼으면 이룬 바 행덕(行德)을 잃고, 인과를 근

본으로 삼으면 의지하는 바 법계를 잃는다. 이와 같이 어김을 변별하면 지

금 오직 법계를 드는 것은 뜻이 이미 원만하지 않으니, 이것은 또한 잃음

이 있는가?

답한다. 어김을 변별하는 까닭은 법계를 듦은 곧 단일의 참된 법계이다.

인과를 얻음은 곧 수생(修生)39)에 국한되므로 잃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

로 광통(光統)40)은 곧 인과이실(因果理實)을 근본으로 삼으니, 능의(能依)

와 소의(所依)를 갖추어 뜻과 이법이 두루 원만하다.41) 법장스님은 곧 앞

을 의지해서 연기법계를 더하였다.42) 청량(淸涼)43)은 말하기를, “만약 말은

간략하지만 거두어 다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곧 법계연기로써 근본[宗]

을 삼는다”44)고 하였으니, 이는 곧 인과를 모아 법계와 같게 함이니 곧 법

계인과이며, 아울러 법계이다. 또 법계를 거두어서 인과를 이루는 것은 곧

인과법계이니, 아울러 인과이다. 앞의 문에 의거하면 법계는 근본이 되니

인과를 잃지 않고, 뒤의 문에 의거하면 인과가 근본이 되니 법계를 잃지

않는다. 이와 같은 도리에 의거하여 다만 ‘법계’라고 말할 뿐이지, 한 변

(邊)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問. 法界爲宗, 失所成行德, 因果爲宗, 失所依法界. 如是辨違,
則今唯擧法界, 義旣未圓, 此亦有失耶?
答. 所以辨違者, 擧法界則單眞法界. 得因果則局於修生, 故有
失也. 是故, 光統則因果理實爲宗, 具能依所依, 義理周圓. 藏
公則仍前而加緣起法界. 淸涼云, “若約言略攝盡, 則以法界緣
起爲宗,” 是則會因果同法界, 則法界因果, 並是法界. 又攝法
界以成因果, 則因果法界, 並是因果, 依前門則法界爲宗, 不失
因果, 依後門, 則因果爲宗, 不失法界. 依如是道理, 但云‘法
界,’ 不局一邊也.
39) 수생(修生)은 수성(修成)이라고도 한다. 수행의 공덕에 의해서 본유의 덕을 개
    발하여 불덕(佛德)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지엄스님은 법계연기를 보리정분
    (菩提淨分:淨門)과 범부염법(凡夫染法:染門)의 두 가지로 나누고 정문은 본유
    (本有)·본유수생(本有修生)·수생(修生)·수생본유(修生本有)의 4문으로 분류하였
    다. 이것은 중생에게 청정한 성품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 청정한 성품이 자
    각되는 과정을 4가지 측면에서 파악한 것이다. 수생은 가르침에 의하여 수행함
    으로써 현실적으로 깨달음의 싹이 새로 생겨 나오는 연기의 측면을 말하고, 수
    생본유는 실천에 의해서 여래장의 본래적인 청정한 성품이 나타나게 된다고
    하는 연기의 측면이다. 수생본유는 수생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서 실천을 통하
    여 무분별지(無分別智)가 획득되고 그것에 의해서 본유의 진실이 나타나게 되
    는 연기의 측면을 가리키는 것이다.[지엄,『수현기』 권3(高47, p.45a13-b7; 
    大35, pp.62c25-63a22)].
40) 광통(光統, 468-537)은 율사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 지론종 남도파의 초조이다.
    휘는 혜광이고 속성은 양(楊)이며, 정주(定州) 출신이다. 13세 때 아버지를 따라
    낙양에 들어가 불타선다(佛陀扇多)를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당시 사람들은 그
    를 성사미(聖沙彌)라 불렀다. 늑나마제와 보리유지가 각각 한역한『십지경론』
    을 읽고 범본과 대조하여 한 본을 만들었다. 또한『사분율소(四分律疏)』·『갈마
    계본(羯磨戒本)』등을 저술하여 사분율을 부흥시켜 당나라 초기에 도선(道宣)율
    사가 사분율종(四分律宗)을 개창하는 원류가 되었으며,『화엄경(華嚴經)』·『열
    반경』·『십지경』·『지지경』 등에 대한 주소(註疏)를 지었다. 북위 말기에는 
    낙양(洛陽)에서 국승도(國僧都)를 역임하였으며, 후에 임금의 명령을 받고 업(鄴)
    으로 들어가 국통(國統)의 직책을 맡았으므로 혜광승통(慧光僧統)이라 하였다. 그
    는 인연종(因緣宗)·가명종(假名宗)·부진종(不眞宗)·진종(眞宗)의 4종 교판을
    주장하였는데,『아비담론(阿毘曇論)』은 인연종에,『성실론(成實論)』은 가명종
    에,『반야경』·『대지도론』·『중론』·『십이문론(十二門論)』은 부진종에,『화
    엄경(華嚴經)』·『열반경』·『십지경론』등은 진종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저서로
    는『현종론(玄宗論)』·『대승의율(大乘義律)』·『인왕칠계(仁王七誡)』 등이 있
    었다고 전한다.[법장,『화엄경전기』 권2(大51, p.159b13-14)].
41)『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권1(高47, p.470b5-6; 大35, p.120a20-22).
42)『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권1(高47, p.470b7-11; 大35, p.120a22-28).
43) 청량(淸涼, 738~839)은 중국 화엄종 제4조 징관(澄觀)을 가리킨다. 자는 대휴(大
    休)이고, 속성은 하후(夏候)이다. 월주(月州) 회계(會稽:소흥) 산음(山陰) 사람이
    며, 청량산에 있었으므로 청량대사라 하고 화엄보살·화엄소주(華嚴疏主)라고
    도 부른다. 11세에 응천산(應天山:사천성) 보림사(寶林寺)의 홍패(洪霈)선사에
    게 출가하여『법화경』을 외웠으며, 14세에 은사를 만나 득도(得度)하였다.(『송
    고승전(宋高僧傳)』권5, 大50, p.737a5-7). 출가하여 먼저 담일에게서 남산율종
    을 배웠으며, 화엄·계율·삼론·기신·천태 등을 두루 배웠다. 청량징관은 화엄
    종 법장의 뒤를 이어서 화엄의 가르침에 관한 저술과 종의(宗義)를 밝히고 넓히
    기에 노력하였다. 청량징관은 선사로 출발하였으나 현수법장의 뒤를 이어서 선
    과 화엄의 교섭을 이루었고, 규봉종밀(圭峰宗密, 780~841)이 그 뒤를 이었다. 
   『팔십화엄(八十華嚴)』의 주석서인『화엄경소』와,『소』에 대한『수소연의초
    (隨疏演義鈔)』·『화엄현담(華嚴玄談)』을 지었고, 40권『화엄경(華嚴經)』 번
    역장에 참여하여 『정원신역화엄경소(貞元新譯華嚴經疏)』를 남겼다. 그 외에도 
    『화엄약책(華嚴略策)』·『법계현경(法界玄鏡)』·『삼성원융관(三聖圓融觀)』·
   『화엄경강요(華嚴經綱要)』·『오온관(五蘊觀)』·『십이인연관(十二因緣觀)』 
    많은 저술을 남겼다. 당시 유통된 것이 4백여 권이라고 하며[『법계종오조략기
    (法界宗五祖略記)』(卍134, pp.549b6-553a9)], 현존하는 것만 40여 종에 이
    른다. 이 가운데『화엄경소』는 신라말 범수(梵修)가 한국에 들여왔으며, 조선 
    숙종 7년(1681)에 임자도(지금의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섬) 앞바다에 떠내려 
    온 배에 많은 경전이 실려 있었는데 그 속에서『화엄경(華嚴經)』과『소초』의 
    합본을 얻은 뒤로 불교 강원 대교과의 교재로 채택되었다. 징관은 덕종(德宗)·
    헌종(憲宗) 등 중국 7대 황제들의 왕사·국사를 지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이가 
    수천 명이었고, 그의 법을 이은 제자도 1백 여 명이나 되었는데, 그들 가운데 종
    밀(宗密)·승예(僧叡)·보인(寶印)·적광(寂光) 등 4명이 특히 뛰어났다고 한다. 
   『송고승전(宋高僧傳)』(大50, p.737a4-c20)·『신승전(神僧傳)』(大50, p.
    1004b23-c11)·『불조통기(佛祖統紀)』(大49, p.293b3-293c3) 등에 그의 
    전기가 전한다.
44) “만약 말은 간략하지만 거두어 다하는 것을 취하면, 마땅히 법계연기의 부사의
    함으로써 종을 삼는다고 말해야 한다.”(징관(澄觀),『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
    佛華嚴經疏)』권3, 大35, p.522a21-22. 若取言略攝盡, 應言法界緣起不思議爲宗).

 

묻는다. 두순(杜順)45)화상의 삼관(三觀)46) 중에 진공관(眞空觀)은 이법

계(理法界)이고, 이사무애관(理事無礙觀)은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이며, 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은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인데, 지금

이 법계는 어느 법계에 해당하는가? 

답한다. 저 처음의 두 관은 동교에 해당하며, 뒤의 한 관은 별교에 해당

한다. 청량의 삼관(三觀)47)도 또한 그러하니, 지금 이 법계는 오직 사사무

애법계인 것이다.

問. 杜順和尙三觀中, 眞空觀則理法界, 理事无碍觀則理事无
碍法界, 周遍含容觀 則事事无碍法界, 今此法界當何法界耶?
答. 彼初二觀當於同敎, 後之一觀當於別敎. 淸涼三觀亦爾, 今
此法界, 唯是事事无碍法界也.
46) 삼관(三觀)은 『법계관문(法界觀門)』에 설해진 진공관(眞空觀)·이사무애관(理事
    無碍觀)·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을 말한다.『법계관문』은 두순의 저술로 알려
    져 있으나, 법장의 『발보리심장(發菩提心章)』에 그 전문(全文)이 인용되어 있는
    것으로 인하여 법장의 저술을 두순에 가탁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법계관문』은
    수·당시대 중국불교의 새로운 형성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화엄철학을 종교로
    서 성립시킨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법계관문』의 내용은 절대공
    으로서 색공무애한 관행적인 입장으로 이해되는 진공관(眞空觀), 이 진공관을
    통해 드러난 법계의 폭과 깊이를 이(理)와 사(事)의 열 가지 관계로 풀이한 이사
    무애관(理事無碍觀), 사사무애법계를 10문(門)으로 나누어 십현문(十玄門)을 설
    명한 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 등 삼관(三觀)으로 구성되어 있다.
47) 청량의 삼관은 사법계설(四法界說)과 연관되어 있다. 즉 징관은『화엄법계현경
    (華嚴法界玄鏡)』(大45, p.672c20-22)에서 진공관은 이법계(理法界), 이사무애관
    (理事無礙觀)은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은 사사무
    애법계(事事無礙法界)로 설명하였다.

 

묻는다. 아래에서 말하기를, “삼승의 가르침 가운데 또한 고요하면서도

항상 작용하고, 작용하면서도 항상 고요함이 있는데, 이와 같은 뜻을 무

슨 까닭에 이법에 즉한 문에 치우치고 현상에 즉하지 않아서 자재하지 않

다고 위에서 말하였는가? 답한다. 이법과 현상이 상즉[理事相卽]하므로

이와 같은 뜻이 있다. 현상과 현상의 상즉[事事相卽]을 말하는 것은 아니

다”48)라고 하고, 내지 “만약 별교일승에 의하면, 이법과 이법의 상즉[理理

相卽] 또한 가능하고 현상과 현상의 상즉 또한 가능하다”49)라고 하며, 내

지 “또한 이법의 인다라[理因陀羅]와 현상의 인다라[事因陀羅] 등의 법문

을 구족함이 있기 때문이다. 열 부처님과 보현[보살]의 법계의 집 가운데

이 같은 등의 장애 없는 법계의 법문이 있어서 매우 자재하기 때문이다”50)

〈이상〉라고 하였다. 저 세 법계 가운데 해당되지 않는 바가 없는데 어찌하

여 오직 사사무애법계뿐이라고 하는가?

問. 下云, “三乘敎中, 亦有寂而常用, 用而常寂, 如是等義, 何
故上云51), 偏卽理門, 不卽事中, 不自在耶52)? 答. 理事相卽
故, 有如是義, 非謂事事相卽,” 乃至“若依別敎一乘, 理理相卽
亦得, 事事相卽亦得,” 乃至“亦有具足理因陀羅53), 及事因陀
羅54)等法門故. 十佛普賢法界宅中, 有如是等无障碍法界法門,
極自在故.”〈已上〉 彼三法界中, 无所不當, 何云唯事事无碍法
界耶?
48)『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韓2, p.6a10-13).
49)『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韓2, p.6a15-16).
50)『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韓2, p.6a17-20).
51)『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에는「言」으로 되어 있다.(韓2, p.6a11).
52)『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에는「也」로 되어 있다.(韓2, p.6a12).
53)『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에는「羅」뒤에「尼」가 더 있다.
54)『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에는「羅」뒤에「尼」가 더 있다.

 

답한다. 이법과 이법의 상즉 등과 이인다라(理因陀羅)·사인다라(事因陀

羅) 등이란 모두 저 주변함용관의 사사무애법계에 해당하고, 저 이법계(理

法界)는 이 가운데 삼승의 이법에 해당하며, 저 이사무애법계는 이 가운데

이법과 사법의 상즉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뜻이 있는 것이며, 사법

과 사법의 상즉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答. 理理相卽等, 理因陀羅事因陀羅等者, 並是當於彼周遍含
容觀之事事无碍法界也, 彼理法界, 當此中三乘之理也. 彼理
事无碍法界, 當此中理事相卽, 故有如是義, 非謂事事相卽也.

 

묻는다. 별교일승 가운데 이법과 이법의 상즉·사법과 사법의 상즉 등의

사구를 갖추고 있으므로 이사인다라(理事因陀羅) 등을 구족한다. 그러므

로 이법계, 이사무애법계를 논할 수 있는 것인데, 무슨 까닭에 일승 가운

데 오직 사사무애법계만을 논하는가?

답한다. 십현의 십문[十玄十門]55)을 구족한 법이 주변함용함을 사사무

애라고 이름하는 것은, 삼승 가운데 혹은 이(理)를 홑으로 들어 무애(無

礙)를 논하고, 혹은 다만 이사만을 들어 무애를 논하지만 사사무애를 논

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삼승을 간별하고자 하므로 사사무애라고 말할

뿐이다. 실제로는 십현의 십법[十玄十法] 가운데 이사(理事) 등 일체 모든

법의 무애 자재함을 구족하기 때문에 리리무애, 이사무애 등을 갖추어 논

하는 것도 가능하다. 청량은 의지하는 바 체의 사[體事] 가운데서 십법을

묶어 세우고 이 법 위에서 이법계의 봄[見]으로써 하고, 이사무애법계의

봄 등으로써 한다. 그러므로 사사무애의 십현십법 중에 이사 등의 모든 법

을 구족하였지만 그러나 삼승을 대하여 간별하는 까닭에 다만 ‘일승이 사

사무애이다’라고 한다.

問. 別敎一乘中, 具理理相卽事事相卽等四句故, 具足理事因
陀羅等. 是故, 可論理法界, 理事无碍法界, 何故一乘中, 唯論
事事无碍法界耶?
答. 具足十玄十門之法周遍含容名爲事事无碍者, 以三乘中,
或單擧理論无碍, 或但擧理事論无碍, 而不得論事事无碍. 是
故, 欲簡三乘, 故云事事无碍耳. 實則十玄十法中, 具足理事等
一切諸法无碍自在故, 理理无碍, 理事无碍等具論亦得也. 淸
涼, 於所依體事中, 束立十法, 於此法上, 以理法界見, 以理事
无碍法界見等. 是故, 事事无碍之十玄十法中, 具足理事等諸
法, 然對簡三乘故, 但云,‘ 一乘是事事无碍也.’
55) 십현의 십문[十玄十門]은 십현문 각각이 모두 구족한 십문을 일컫는다. 곧 사
    람[人]과 법(法)·이치[理]와 현상[事]·가르침[敎]과 뜻[義]·앎[解]과 행(行)·
    원인[因]과 결과[果]·분제의 경계[分齊境位]·스승과 제자의 법에 대한 지혜
    [師弟法智]·주와 반의 의보와 정보[主伴依正]·역과 순의 체용이 자재함[逆順
    體用自在]·중생의 근욕에 따라 시현함[隨生根欲示現]이니, 하나의 십현문 가운
    데 이 열 가지 문이 모두 구족되어 앞뒤가 없다고 설한다.[지엄,『수현기』(高47
    p.2b11-c8, 大35 p.15a22-b24)]

 

‘법(法)’이란 자성을 지닌다는 뜻이며, 궤칙의 뜻이며, 의(意)를 대한다

는 뜻이다. ‘계(界)’란 인(因)의 뜻이며, 성품[性]의 뜻이며, 분한[分齊]의

뜻이다. 말하자면 해인정(海印定) 가운데 교법의 보배를 내기 때문에 인

(因)의 뜻이며, 모든 법이 의지하는 바 성품이기 때문에 성품의 뜻이며, 모

든 법을 구족하여서 해인법계를 이루지만 그러나 이 모든 법은 서로 섞이

거나 혼란스럽지 않기 때문에 분한의 뜻이다. ‘도(圖)’란 그림으로 그린 것

이니, 붉은 획은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을 비유하고, 검은 글자는 중생세

간(衆生世間)을 비유하며, 종이는 기세간(器世間)을 비유한다. 이와 같이

세 가지 세간을 구족한 해인법계를 비유한 것이므로 ‘법계도’라 한다.

‘法’者, 持自性義, 軌則義, 對意義. ‘界’者, 因義, 性義, 分齊
義. 謂海印定中, 出生敎法寶故, 是因義, 以是諸法所依性故,
是性義, 具足諸法, 而成海印法界, 然此諸法不相雜亂故, 是
分齊義也. ‘圖’者, 圖畫也, 赤畫况智正覺世間, 黑字况衆生世
間, 紙况器世間, 如是以况具足三世間之海印法界, 故云‘法界
圖’也.

 

‘합시일인(合詩一印)’이란, 어떤 이는 말하기를, “글자와 붉은 획이 서로

합한 시가 이룬 바 하나의 인(印)”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말하기를, “7언

30구의 시를 합한 하나의 인(印)”이라고 하였다. 만약 배당한다면, 어떤

이는 말하기를, “처음의 9자(字)56)는 아홉 모임[會]에 해당하고 54각(角)57)

은 55선지식58)에 해당한다”고 하였으니, 처음과 뒤의 문수는 한 사람이므

로 54라 한 것이며, 210자는 제7회 「이세간품(離世間品)」의 2백 가지 물음

인 까닭에 2백이라 하고, 낱낱의 물음에 각각 열 개의 답이 있으므로 10이

라 한 것이다.59) 그러나 이 뜻 가운데서 이 도인은 진본경(晋本經)60)에 의

하여 서술된 것이기 때문에 9회(會)에 배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合詩一印’者, 一云,“ 字與赤畫相合之詩所成之一印,” 一云,
“合七言三十句詩之一印也.” 若配當者, 一云,“ 初之九字, 當
於九會, 五十四角, 當於五十五知識,” 以初後文殊唯是一人,
故云五十四也. 二百一十字者, 第七會離世間品二百問, 故云
二百, 一一問皆有十答, 故云一十也. 然此義中, 以此圖印依晋
本經所述故, 配九會難也.
56) 9자(字)는 ‘일승법계도합시일인(一乘法界圖合詩一印)’ 아홉 글자를 말한다.『총
    수록』「대기」에서는 이 아홉 글자를 지엄스님의 오중해인에 배대하여 설명하였
    고(韓6, p.768b1-c1; 高45, p.141b1-16), 「법기」에서는 ‘합시일인(合時一印)’
    은 한줄의 붉은 선이 모든 검은 글자와 합하여야 비로소 원만한 인(印)을 이루기 때
    문에 ‘합시’라고 하였으며(韓6, p.770c22-23; 高45, p.144a10-11), 「진기」에서
    는 시(詩)란 도문에 7언 30구가 있으므로 ‘시’라고 말하였을 뿐이지, 운(韻)을 기준으
    로 하여 말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韓6, p.771a7-8; 高45, p.144a15-16).
57)『총수록』「진기」에서는 “54각은 선지식인 사람을 표방하니 말하자면 55선지식
    이다. 처음과 뒤의 두 문수를 합하였기 때문에 오직 54이다.”(韓6, p.771a15-16;
    高45, p.144a20-b1. 五十四角者, 表人知識, 謂五十五知識也. 以合初後二文殊故, 
    唯五十四.)라고 하였다. 또한 「대기」에서는 “54각은 보현입정관해인에 배대된다.”
    (韓6, p.768b14-15; 高45, p.141b9. 五十四角, 配普賢入定觀海印.)고 하고, “「성
    기품」의 열 가지 음성을 가지고 오승의 근기에 차례대로 배대하면 곧 오십이니, 이
    는 능히 응신(應身)의 부처님이 사섭과 사무량을 갖춘 것이기 때문에 사각이라 말
    하는 것이다.”(韓6, p.771a12-14; 高45, p.144a18-19. 將性起品十種音, 歷對五乘
    機, 卽成五十, 此能應佛, 具將四攝四無量故, 云四角也.)라고 하였다.
58) 55선지식은『화엄경(華嚴經)』「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의 가르침
    에 의해서 차례로 보현보살에 이르기까지 순례하여 만나게 되는 선지식들이다.
    보통은 53선지식이라 하는데 문수보살은 처음과, 마지막 선지식인 보현보살을
    만나기 직전에 다시 만나기 때문이고, 덕생 동자와 유덕 동녀는 한 곳에서 만나
    기 때문에 총 55선지식이다. 선재동자는 복성(福城)의 동쪽 장엄당(莊嚴幢) 사
    라림(娑羅林)의 큰 탑 아래에서 문수보살에게서 부처님 법을 듣고 발심을 하였
    고 자신은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으며 교만심으로 생사의 고통 속에 갇혀 있음
    을 깨닫고 해탈의 문을 찾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그 길을 가르쳐 주기를 문수
    보살에게 청하였다. 문수보살은 보살행을 구족하고 보리도를 성취하려면 지혜
    가 있어야 하고 온갖 지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지식을 찾아가서 법
    문을 들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에 선재는 차례차례로 이어서 선지식들을 찾
    아다니며 해탈도를 성취하게 된다. 이렇게 선재가 선지식과 만남으로 해서 도
    달되는 지위는『화엄경(華嚴經)』전편에서 말하는 화엄보살도의 42계위와 그
    속에서 수행하는 10바라밀에 차례로 배대되는데, 처음 문수보살은 신위(信位)
    에 해당하며, 마지막 보현보살은 전보살도와 불과행위(佛果行位)를 총망라하는
    자리이다. 이들 선지식의 계위는 법계로 향해가는 점차적인 단계가 아니라 일
    위일체위(一位一切位)이다. 선재는 각 선지식에게서 모두 해탈문을 증득하며,
    문수보살로부터 보현보살에 이르기까지 보살의 수행계위를 두루 지나는 선재
    의 지위는 일체에 두루하기 때문에 보현의 지위와 같다.
59)『육십화엄(六十華嚴)』권36~권43「이세간품(離世間品)」에서 보혜보살(普慧
    菩薩)이 보현보살에게 2백 가지 질문을 하고, 그 각각의 질문에 대해 보현보살이
    열 가지씩 대답한 것을 말한다.(高8, p.254b4-299b8; 大9, pp.631c22-669b12).
60) 진본경(晋本經)은 동진시대에 불타발타라가 번역한『육십화엄(六十華嚴)』으로
    서, 7처8회 설이다. 지엄과 의상은 이 진본경에 의거하였다.

 

54각 210자란 각의 수와 글자 수가 우연히 이와 같을 뿐이니 별도로 표

시하는 것은 없다. 또 무슨 뜻으로 오직 지말법회[末會]의 55선지식 및 제

7회의 2백 물음과 열 가지 답만을 비유하고 나머지는 들지 않았는가? 그

러므로 그렇지 않음을 안다. 또 어떤 이는 해석하기를, 글자 수는 대경(大

經) 중의 뜻을 비유함을 나타낸 것이 아니다. 후세 사람이 자의적으로 이

인문(印文)의 글자를 더하고 덜까 봐 표식할 뿐이다. 말하자면 옛적에 어

떤 법상학인(法相學人)61)이 화엄의 ‘초발심시변성정각’의 말을 믿지 않고

‘변(便)’자를 고쳐 바꾸었으니, 이런 경우가 있을까 봐 그런 것이다. 마치

속전(俗典)인 『도경덕경(道經德經)』62)을 전하는 이가 말하기를, “이 글에 5

천 문장이 있으니, 대개 더하고 덜함이 있을까 염려한 때문인 것이다”라

고 한 것과 같으니, 옛 해석이 그러하다. 지금 해석은 만약 마음을 관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여 굳이 말한다면 곧 아래 글에서 말하기를, “도인은 여

래의 일음(一音)을 나타내기 때문이다”63)〈이상〉라고 하였으니, 일음은 어업

성기(語業性起)64)여서 그 가운데 열 가지 음성65)을 갖추어 설한다. 여래는

이 열 가지 음성으로 오승의 근기에 응하므로 ‘오십’이라 하니 이것은 능

히 부처에 응하며, 사섭(四攝)과 사무량(四无量)을 구족하여 교화하는 대

상에 응하므로 ‘사각(四角)’이라 한다. 이 인(印) 가운데 나타나는 바 삼세

간의 법이 바로 십현십법(十玄十法)이다.

五十四角二百一十字者, 角數字數偶如是耳, 无別所表. 又以
何義, 唯况末會五十五知識及第七會二百問一十答, 不擧餘
耶? 故知不爾也. 又有釋云, 字數者, 非是表况大經中義, 恐有
後人自意增損此印文字, 故標之耳. 謂昔有法相學人, 不信花
嚴初發心時便成正覺之言, 改易便字, 恐有此類故爾也. 如俗
典道經德經傳之者云,“ 此文有五千文, 盖恐有增損故也,” 古
釋爾也. 今釋若約觀心强說, 則下文云, “印表如來一音故.”〈已
上〉 一音是語業性起, 而彼中具說十種音聲. 如來以此十音, 應
於五乘機, 故云五十, 此能應佛, 具足四攝四无量, 應於所化,
故云四角, 於此印中, 所現三世間法, 是十玄十法也.
61) 법상학인(法相學人)은 법상종의 가르침을 배우는 사람들을 말한다. 법상종은
    유식종(唯識宗)으로서 소의 경전은『해심밀경』·『성유식론』·『유가사지론』 
    등이며, 인도에서는 무착·세친이 세우고, 중국에서는 현장(玄奘)이 인도의 계현
    (戒賢) 논사에게 배워 온 것을 제자인 규기(窺基)에게 전한 것이다. 규기는 자
    은사(慈恩寺)에 주석하였으므로 자은종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원측(圓測)이 당나라에 가서 현장에게『유식론』과『유가론』을 배우고『유식
    소초(唯識疏抄)』를 지었다. 신라 경덕왕 때에 진표가 금산사에서 계법(戒法)과 
    점찰법(占察法)을 겸수하여 실행하고, 법상종의 종지를 제자 영심(永深)·보종(寶
    宗)·신방(信芳) 등에게 전하여 법주사·동화사 등지에서 크게 떨쳤다.
62)『도경덕경(道經德經)』은 노자가 지은 『도덕경』을 말한다.『도덕경』은 5천 
    자이며, 상·하편 총81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편은 도경(道經), 하편은 덕경(德
    經)이라 부른다. 상편 도경에는 주로 도(道), 즉 형이상학적 원리를 풀었으며, 하
    편 덕경에서는 도에 입각한 덕(德), 즉 행동적인 것을 풀었다.『도덕경』의 저자
    인 노자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사마천의『사기』「열전」에 의하면 노자는 
    초(楚)나라 사람이며, 성은 이(李)이고 이름은 이(耳)이다. 그의 학문은 자신을 숨
    기고 이름을 나타내지 않기를 힘쓰는 것이었으며, 무위(無爲)로써 스스로 화하
    고 청정으로써 스스로 바르게 된다고 하였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래로 남
    북조시대에는 중국의 고유사상과 불교가 섞이는 유·불·도 삼교융합의 색체를
    띠었는데, 불교의 열반(涅槃)이나 공(空)은 무위(無爲)로써 이해되고 받아들여
    졌다.『노자』가 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그가 죽은 뒤의 일로 보이며,
    왕필(王弼)의『노자주(老子註)』 등 여러 주석서가 있다.
63)『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韓2, p.1b10-11).
64) 어업성기(語業性起)는『육십화엄(六十華嚴)』권34「보왕여래성기품(寶王如來性
    起品)」(高8, p.242b15-21; 大9, p.620a16-21)에 의하면, 여래는 감로의 바른 법
    을 비 내리려 할 때 열 가지 음성, 스무 가지·백 가지·천 가지·백천 가지 내지 한
    량없는 음성으로 분별해서 설법하여 일체 중생을 다 기쁘게 하지만, 여래의 미
    묘한 음성은 ‘나는 갖가지로 설법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법계는 청정하여 차
    별이 없지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설법이 동일하지 않다고 하였다. 법장은『화
    엄경탐현기』권16에서 여래의 열 가지 음성을 해석하면서 이 부분을 성기어업
    (性起語業)으로 표현하였다.(高47, p.740b22; 大35, pp.409c3-410b16).
65) 법장은『화엄경탐현기』권16에서 여래의 열 가지 음성을 열 가지 비유로써 설
    명하였는데, 그 각각의 비유는 부처님의 평등하게 법을 설하시는 음성[平等說法
    聲]·일정한 방소가 없이 두루 나타나시는 음성[無方應現聲]·방일함을 경계하
    시는 음성[敎誠放逸聲]·법라의 원만한 음성[法螺圓音聲]·근기가 성숙하여 홀
    로 듣는 음성[根熟獨聞聲]·같고 다름에 걸림이 없는 음성[一異無礙聲]·길이 선
    근을 기르는 음성[長養善根聲]·점차로 법을 설하시는 음성[漸次說法聲]·갖가
    지로 차별하는 음성[種種差別聲]·법계에 두루 진리를 비 내리는 음성[普雨法界
    聲] 등이다.(高47, pp.740c7-741b15; 大35, pp.409c3-410b16).

 

아래 글에서 “연기의 실상(實相)인 다라니법을 관(觀)하고자 한다면 먼

저 열 개의 동전을 세는 법[數十錢法]을 배워야 한다”66)고 하며, 내지 아래

에서 말하기를, “동전 가운데 첫 번째 내지 열 번째가 같지 않으나 상즉하

고 상입하여 걸림 없이 서로 이루는 것과 같이, 비록 원인[因]과 결과[果],

이법[理]과 현상[事], 사람[人]과 법(法), 앎[解]과 행(行), 가르침[敎]과 뜻

[義], 주(主)와 반(伴) 등의 여러 많은 문이 다르나 한 문을 설함에 따라

일체를 다 포섭한다”67)〈이상〉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비유의 십(十)과 법의

십(十)을 합하여 이십이 된다. 십현 가운데 낱낱이 이십을 갖추므로 2백

이 되며, 본래의 십현을 아우르므로 일십(一十)이 된다. 법과 비유가 이십

(二十)이고 본래의 십현을 아우르므로 삼십(三十)이 된다. 이 삼십을 총합

하여 ‘대방광불화엄경’ 일곱 글자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일곱 글자로써

시를 짓는다.

下文,“ 欲觀緣起實相陀羅尼法者, 先應學68)數十錢法,” 乃至
下云,“ 如錢中第一乃至第十不同, 而相卽相入无碍相成, 雖
因果, 理事, 人法, 解行, 敎義, 主伴等, 衆多門別, 隨說69)一
門, 盡攝一切.”〈已上〉 故喩十法十合爲二十. 於十玄中, 一一具
二十, 故爲二百, 幷本十玄, 故爲一十. 法喩二十, 幷本十玄,
故爲三十. 摠此三十, 不出‘大方廣佛花嚴經’七字故, 以七字
造詩.
66)『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韓2, p.6a21-22).
67)『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韓2, p.7a19-22).
68)『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韓2, p.6a22)에는「覺」으로 되어 있다.
69) 저본에는「託」으로 되어 있으나,『일승법계도』에 따라「說」로 해석하였다.

 

그러므로 법문이 비록 광대하나 210자를 벗어나지 않으며, 이 210자를

총괄하여 30구를 벗어나지 않는다. 또 이 30구를 총괄하여 일곱 자의 제목

을 벗어나지 않는다. 또 이 일곱 자는 가장 청정한 법계를 벗어나지 않으

니, 그러므로 ‘법계도’라 한다. 서술한 바 옳고 그름은 오직 부처님만이 아

시는 바이나, 법을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한 까닭에 굳이 이 해석을 들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옛 대덕(大德)이 말하기를, “이 인(印)은 총상인이고,

73인은 별상인이다”70)라고 하였다. 또 이 별상의 73 가운데 삼제(三際)71)

총이며, 이 삼제 중에 각각 70을 갖추므로 210이다. 그러므로 ‘210자’라 한

다. 지금 이 삼제의 인(印) 중에 갖춘 바 210인을 합하여 하나의 해인을 이

룸을 나타내고자 하니, 총상의 인(印)이므로 그러하다.

是故, 法門雖廣, 不出二百一十字, 括此二百一十字, 不出三十
句. 又括此三十句, 不出七字題名. 又此七字, 不出最淸凈法
界, 故云‘法界圖’也. 所述是非, 唯佛所知, 然慕法心極故, 强
有斯釋耳. 又古德云, “此印是摠相印, 七十三印是別相印.” 又
此別相七十三中, 三際是摠, 此三際中, 各具七十, 故二百一十
也. 故云‘二百一十字’也. 今欲現合此三際印中所具二百一十
印成一海印, 摠相印故爾也.
70)『총수록』「대기」에 “이 인(印)은 총이고, 73인은 별이다.”(韓6, p.771b12-13; 高45,
    p.144b12. 此印爲總, 七十三印爲別.)라고 한 것으로 보아 옛 대덕은「대기」의 저
    자를 가리키는 듯하다.「법기」에 의하면, 지엄스님이 73가지의 인(印)을 지었으
    나 다만 그 하나의 인[一印]의 뜻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며, 의상 화상이 깊이 스
    승의 뜻을 얻었기 때문에 오직 이 하나의 근본인을 지은 것이라고 하였다.(韓6,
    p.771a4-6; 高45, p.144a13-14. 儼師雖作七十三印, 但欲現其一印之義, 而相和尙深得
    師意故, 唯作此一根本印也.)
71) 삼제(三際, trikānd 3 3 aka)는 삼세(三世)와 같다. 시기에 대해서 세 부분으로 나눈
    것으로서, 전(前)·중(中)·후(後)의 세 가지 제(際), 즉 과거·현재·미래를 말한
    다.『총수록』(韓6, p.782a9-17; 高45, p.155b11-17)과 균여의 『석화엄지귀장원통초
    (釋華嚴旨歸章圓通鈔)』(韓4, pp.139c16-140a1)에는 의상스님의 제자인 지통(智通)
    이 ‘삼세가 한 순간’이라는 이치를 깨닫고 뒷날 의상스님에게 인가의 증표로서
    법계도인(法界圖印)을 받았다는 일화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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