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화엄(華嚴) II

華嚴經文義要決問答 화엄경문의요결문답

실론섬 2016. 11. 26. 15:10

華嚴經文義要決問答 화엄경문의요결문답
表員 표원

1. 7처와 9회의 의미
2. 육상의 의미
3. 십전을 세는 비유의 의미
4. 연기의 의미
5. 깊은 뜻을 탐구하는 의미
6. 보법의 의미
7. 법계의 의미
8. 일승의 의미
9. 교법을 나누는 의미
10. 십지의 의미

 

화엄경문의요결문답 華嚴經文義要決問答

황룡사(皇龍寺)1) 석(釋) 표원(表員)2) 지음

1) 황룡사(皇龍寺):경상북도 경주시에 구황동에 있던 절. 신라 진흥왕 때인 553년
   에 착공하여 569년에 완공된 신라불교의 중심 사찰로 지금은 탑과 금당 강당지
   등 절터만 보존되어 있다. 높이 225척의 장대한 구층탑(九層塔)과 3만 5천근의
   장륙존상과 십대제자상, 49만근의 거대한 황룡사종 등을 갖추었던 신라의 국찰
   (國刹)이다.
2) 표원(表員):8세기 전반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화엄 승려. 이『화엄경
   문의요결문답』에 나타난 것으로 보면 법장의 사상을 바탕으로 원효를 계승한
   인식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1. 7처와 9회의 의미[七處九會義]

 

세 가지 문으로 분별한다. 첫째는 이름을 풀이함[釋名]이고, 둘째는 본

체를 드러냄[出體]이고, 셋째는 문답으로 분별함[問答分別]이다.

皇龍寺釋表員集
七處九會義.3)
三門分別. 第一釋名, 第二出體, 第三問答分別.
3) 韓2 pp.350b2~353a5

 

1) 이름을 풀이함

7과 9는 숫자이다.〈대수석(帶數釋)4)이다.〉 처(處)는 머무름이니 그쳐서 머무

는 곳을 이른다. 회(會)는 만남, 또는 크게 계산하는 것이다.〈『가원(佳苑)』5)
“사방의 군국(郡國)6)들이 일대의 사실을 기록하고 이를 총합하여 계산하였는데, 이것을
회(會)라 한다.”7)라고 하였다.〉 
지금 살펴보니, 여기서는 다함없는 법계(法界)8)

의 대중이 다함없는 법계의 공간에 모였으므로 회라고 이름한 것이다.

第一釋名者.
七九數名.〈帶數釋也〉 處者居也, 謂止居之處. 會者遇也, 又大
計也.〈佳苑云, “四方郡國, 錄一代之事, 總而計之, 名曰會也.”〉 今案無盡
法界大衆, 集會無邊法界處中, 故名會也.
4) 대수석(帶數釋):두 낱말 이상으로 만들어진 복합어를 해석하는 방식인 육리합
   석(六理合釋) 중의 하나이다. 육리합석은 의주석(依主釋), 지업석(持業釋), 상위
   석(相違釋), 유재석(有財釋), 인근석(隣近釋), 대수석(帶數釋)이다. 의주석은 주
   체가 되는 낱말에 의지하여 해석하는 것으로서, 가령 ‘왕자’라는 복합어는 ‘왕’
   이라는 단어에 의거하여 ‘아들’의 성격을 분명히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지업석
   은 주어와 수식어를 구별하여 해석하는 것으로서, 가령 ‘고산(高山)’을 ‘높은 산’
   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상위석은 서로 어긋나는 낱말이 묶여 있는 단어를 해
   석하는 것으로서, 가령 ‘왕신(王臣)’을 ‘왕과 신하’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유재석
   은 복합어 자체가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가령 ‘황의(黃衣)’라고 하면 그 뜻
   이 ‘황의를 입은 사람’ 혹은 ‘황의의 성자’로 해석되는 것이다. 인근석은 그 말을
   해석할 적당한 단어가 없을 경우 비슷한 개념의 단어를 사용하여 해석하는 것
   으로서, 가령 ‘강의 근처’를 한문으로 ‘하반(河畔)’이라고 하여 ‘두둑[畔]’을 의미
   하는 단어를 끌어와 해석하는 것과 같다. 대수석은 숫자가 들어 있는 단어를 해
   석하는 것으로서, 가령 삼계(三界), 오온(五蘊) 등의 복합어이다.
5)『가원(佳苑)』:작자와 간행시기에 대해서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내용으로 보
   아 한(漢)나라 이후의 저술일 것으로 추정된다.
6) 군국(郡國):한나라 때 실시된 지방의 통치제도이다. 수도와 가까운 곳은 ‘군
   (郡)’을 두어 황제가 직접 다스리고 먼 지역은 ‘국(國)’을 두어 제후를 봉하였다.
7)『주례(周禮)』「천관(天官)」소재(小宰)에 “요와 회로써 출납을 다스린다.”(聽出入
   以要會)라고 하였는데, 그 주(註)에서 “한 달을 계산하는 것을 요라 하고, 한 해
   를 계산하는 것을 회라 한다”(月計曰要 歲計曰會)라고 하였다.
8) 법계(法界):우주에 있는 존재를 ‘법(法)’이라고 하며, 그 존재 세계를 ‘법계’라고
   한다. 혹은 진리의 표출이라 보아서 진여(眞如) 또는 법신(法身)과 동의어로 사
   용하기도 한다.

 

2) 본체를 드러냄

법장(法藏)9)스님은 말했다. “소승(小乘)10)은 색(色) 등의 사진(四塵)11)

과 사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대(四大)12)와 같은 실제의 물질[實色]을 본

체로 삼는다. 삼승(三乘)13) 가운데 초교(初教)14)는 범부와 소승과 초지(初

地)15) 이전의 보살들은 모두 아뢰야식(阿賴耶識)16)을 본체로 삼는다. 초지

이상의 보살들은 두 가지 뜻이 있으니, 보토(報土)17)의 보살들은 똑같이 아

뢰야식을 본체로 삼고, 이지(二智)18)가 드러난 보살들은 유식지(唯識智)19)

를 본체로 삼는다. 종교(終敎)20)의 경우는 다만 여래장진여(如來藏眞如)21)

를 본체로 삼는다. 일승(一乘)22)은 다함없는 법계의 삼세(三世)23) 전체에

있는 사람[人]과 법(法), 원리[理]와 현상[事] 등의 모든 법을 본체로 삼는

다.”24)〈생각건대, 지금은 뒤의 일승을 가지고 앞의 소승과 삼승 등을 바로잡았다. 
핵심으로 안목이 되는 것은 뒤에 요약되어 나온다.〉

第二出體者.
法藏師云, “若小乘者, 色等四塵并能造四大實色爲體. 若三乘
中, 初教者, 凡小地前, 俱以賴耶識爲體, 地上二義, 報土亦同,
賴耶爲體, 若二智所現, 卽以唯識智爲體. 若依終教, 但以如
來藏眞如爲體. 若一乘, 以無盡法界通三世間人法理事等諸法
爲體.”〈案, 今正以後也前小三乘等. 宗爲眼目, 出後門中略也.〉
9) 법장(法藏)스님:643~712. 화엄종의 제3조. 자는 현수(賢首), 호는 국일법사(國
   一法師)이며, 향상대사(香象大師)라고도 부른다. 화엄종의 제2조 지엄(智儼)에
   게 수학했다. 화엄종의 대성자이며, 측천무후에게 신임을 받았다. 77세의 나이
   로 천복사(薦福寺)에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화엄료간(華嚴料簡)』,『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대승밀교경소(大乘密敎經
   疏)』,『범망경소(梵網經疏)』,『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화엄강목(華嚴綱
   目)』,『화엄현의장(華嚴玄義章)』 등이 있다.
10) 소승(小乘):‘작은 수레’라는 의미로서 대승(大乘)에 상대적으로 붙여진 명칭이
    다. 대승이 큰 수레로서 중생을 제도한다면 소승은 작은 수레로 중생을 제도한
    다는 의미이다. 이 명칭은 부파불교 시대에 대승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상대방
    의 교학을 폄하하여 붙인 말로서 소승의 사람들은 자신의 깨달음에만 안주하여
    중생구제에 소홀하다고 비판하였다.
11) 사진(四塵):물질[色]·냄새[香]·맛[味]·감촉[觸]의 네 가지의 대상 영역[四境]
    을 말한다.
12) 사대(四大): catvāri mahā-bhūtāni, 사대종(四大種) 또는 사계(四界)의 약칭. 지
    (地)·수(水)·화(火)·풍(風)의 네 가지 요소를 말한다. 대(大)는 원소라는 뜻이
    다. 지는 견고한 것을 본질로 하고 그 본질을 보존하며 유지하는 작용, 수는 습
    성(濕性)을 본질로 하는 작용, 화는 열을 본질로 가져 태우는 작용, 풍은 움직이
    는 성질이 있고 만물을 성장시키는 작용. 이 네 가지 요소가 모여 물질이 생긴다
    고 생각하였다.
13) 삼승(三乘):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을 합하여 이르는
    말이다. 성문승은 사성제(四聖諦)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구하는 자이며, 연각
    승은 연기법(緣起法)을 관조하여 깨달음을 구하는 자이다. 그러나 이들은 중생
    구제의 발심을 아직 일으키지 않은 유정(有情)이다. 그러므로 소승(小乘)으로
    분류된다. 보살승은 성문승과 연각승의 깨달음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중생구
    제의 발심을 일으킨 유정이다. 그러나 아직 정(情)의 습기가 남아 있기 때문에
    각유정(覺有情)이라고도 부른다.
14) 초교(初教):삼승(三乘)을 초교(初敎)와 종교(終敎)의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다. 초교는 성문성과 연각승, 그리고 초지(初地) 이전의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迴向)까지의 보살에 대한 가르침이고, 종교는 초지 이상
    의 십지(十地)보살에 대한 가르침을 말한다.
15) 초지(初地):십지(十地)의 첫 번째 지위를 말한다. 십지(十地)는 보살이 부처가
    되기까지 수행해야 하는 52단계 중에서 제41단계부터 제50단계까지(화엄 41위
    에서는 31위에서 40위까지)이다. 지(地)는 주처(住處)·주지(住持)·생성(生成)의
    뜻이다. 십지는 차례대로 초지(初地), 2지, 3지 10지 등으로 부르기도 하고, 제
    1 환희지(歡喜地), 제2 이구지(離垢地), 제3 명지(明地), 제4 염지(焰地), 제5 난승
    지(難勝地), 제6 현전지(現前地), 제7 원행지(遠行地), 제8 부동지(不動地), 제9 선
    혜지(善慧地), 제10 법운지(法雲地) 등으로 부른다.
16) 아뢰야식(阿賴耶識): ālaya-vijñāna의 음역으로서 제8식을 말한다. 유식설(唯
    識說)에서 말하는 식 중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식(識). 과거에 지은 업의 영향이
    종자로서 축적되어 현재와 미래에 걸쳐 자기의 심신은 물론 경계를 만들어내는
    근원이 되는 것.
17) 보토(報土):이타(利他)의 국토로서 타수용신(他受用身)이 사는 정토이다. 여기
    서의 타수용신은 초지 이상의 보살을 위해 설법하고 교화하는 부처님의 몸이다.
18) 이지(二智):근본지(根本智)와 후득지(後得智)이다. 근본지는 mūla-jñāna이
    고,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지혜이다. 후득지는 prstha-labdha-jñāna이고, 근
    본지를 얻은 이후에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일으키는 지혜이다.
19) 유식지(唯識智):모든 현상을 인식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아는 지혜이다.
20) 종교(終敎):앞의 주) 14 참조. 삼승을 초교와 종교로 나눈 가운데에서 초지 이
    상의 십지보살에 대한 가르침을 말한다.
21) 여래장진여(如來藏眞如):여래장은 모든 중생에게 여래의 성품이 있다는 의미
    이고, 진여는 진리의 다른 말이다. 그러므로 여래장진여는 모든 중생에게 여래
    의 성품이 있는 것이 진리라는 의미이다.
22) 일승(一乘):유일무이(唯一無二)의 수레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를 내포하
    고 있다. 일승 사상의 근거는『화엄경』과『법화경』등에서 찾는다. 일승 사상에
    의하면,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과 보살승(菩薩乘)의 삼승(三乘)도 모
    두 일승으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이라고 한다. 즉 일승은 대승불교의 궁극적 진
    리를 의미한다.
23) 삼세(三世):과거, 현재, 미래의 세계.
24)『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권3「노사나불품(盧舍那佛品)」大35 p.158b23~
    c2. 若小乘 以子母七微及色等四塵并能造四大實色爲體 若三乘中凡小地前 俱以
    賴耶識爲體 地上二義 報土亦同賴耶識爲體 若二智所現 卽以唯識智爲體 故攝論
    云 菩薩及如來 唯識智乃至爲淨土體故 若依終教 俱以如來藏眞如爲體 若一乘以
    無盡法界通三世間 人法理事等諸行相卽互爲其體

 

3) 문답으로 분별함

묻는다. 7처는 어디이며 9회는 어떤 것인가?

답한다. 인간 세상의 3곳, 천상의 4곳이다.〈이것이 7처이다.〉 제2회, 제7회,

제8회는 보광명전(普光明殿)25)에서 거듭 모였으므로 9회가 된다.〈진역(晉譯)
『화엄경』26)에는 8회로 되어 있는데, 제7회가 빠져 있다. 참고하라.〉 
그런데 이 뜻을 

약하여 세 가지 문으로 간략히 하면, 첫째는 가르침의 뜻[教義]과 현상의

모습[事相]을 말하는 것이고, 둘째는 장행의 과목[長科]과 본문의 부분[本

分]을 말하는 것이고, 셋째는 생겨나는 순서를 말한다. 첫째에 두 가지 뜻

이 있으니 앞은 총괄하여 설한 것이고 뒤는 개별적으로 설한 것이다.

第三問答分別
問云, 何七處, 何者九會耶?
答, 人中三, 天上四.〈是七處也.〉 第二第七第八, 重會普光明殿,
爲九會.〈晋經, 八會, 欠第七重會, 准也.〉 然將欲料簡此義, 略作三
門, 一辨教義事相, 二長科本分, 三辨生起次第. 初中二義, 先
總後別.
25) 보광명전(普光明殿):부처님이『화엄경』에서 제2회, 제7회, 제8회 때에 설법을
    한 장소로서, 마갈타국의 보리도량 옆에 있다고 한다.
26) 진역(晋譯)『화엄경』:동진시대에 불타발타라에 의해 412년에 번역된 것. 흔히
   『60화엄』또는 60권『화엄경』또는 진본(晋本)이라고 부른다. 그 후 대주시대
    (695~699)에 실차난타에 의해 80권『화엄경』이 간행되어『80화엄』또는 주본(周
    本)이라고 부른다.

 

전체적으로 설한다.

묻는다. 이 경전은 어디서 설하였는가?

답한다. 연꽃처럼 더러움과 깨끗함이 원융한 곳에서 설하였다.〈이 뜻은 뒤
에 따로 나온다.〉

묻는다. 언제 설하였는가?

답한다. 부처님께서 처음 성도한 후 14일에 설하셨다. 왜냐하면 바로 그

때 일체의 구세(九世)와 십세(十世)27)를 포섭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시기의 설은 곧 일체 시기의 설이다.〈이 뜻도 역시 뒤에 따로 나온다.〉

27) 구세(九世)와 십세(十世):구세(九世)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각각 3세가
    있으므로 9세가 된28) 시불(十佛):『화엄경』에서 설하는 열 가지 종류의 불신(佛身). 해경십불(解境十
    佛)과 행경십불(行境十佛)이 있다. 해경십불은 진실한 지혜로써 일체의 존재를
    보면 모두 부처님의 현신(現身)이라는 의미로서 그 모습을 열 가지로 나눈 것이
    다. 그것은 중생신(衆生身), 국토신(國土身), 업보신(業報身), 성문신(聲聞身), 벽
    지불신(壁支佛身), 보살신(菩薩身), 여래신(如來身), 지신(智身), 법신(法身), 허공
    신(虛空身)이다. 그리고 행경십불은 보살의 수행이 완성된 부처의 경계를 열 가
    지로 나눈 것이다. 그것은 정각불(正覺佛), 원불(願佛), 업보불(業報佛), 주지불
    (住持佛), 화불(化佛), 법계불(法界佛), 심불(心佛), 삼매불(三昧佛), 성불(性佛),
    여의불(如意佛)을 말한다.
29) 노사나불(盧舍那佛): Vairocana-Buddha.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라고도 한
    다.『화엄경』을 설하는 교주. 구역 60권『화엄경』에서는 노사나불로, 신역 80권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로 번역하였다.『화엄경』에 따르면 노사나불은 한
    량 없는 겁 동안 공덕을 수행하여 정각을 이루고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에 머
    물면서 대광명을 놓아 시방을 두루 비추며 털구멍에서 화신의 구름을 내어 끝
    없는 경전의 바다를 연출한다고 한다. 중국 불교교학에서는 노사나불과 비로자
    나불을 구분하여 법신 비로자나불, 보신 노사나불, 화신 석가모니불의 삼신설
    을 세웠다. 십세(十世)는 화엄교학에서 말하는 것으로서 구세에 전체
    를 통괄하는 하나를 더한 것이다.

 

묻는다. 이 경전은 누가 설하였는가?

답한다. 이 경전은 시불(十佛)28)의 노사나불(盧舍那佛)29)이 설하였다. 이

부처님은 일체의 부처님을 포섭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번의 설법은

곧 일체의 설법이다.〈이 뜻도 역시 뒤에 나온다.〉

 

묻는다. (이 경전은) 어떤 근기(根機)30)들을  위하여 설하였는가?

답한다. 보현보살 등 해회(海會)31)의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설하였다. 왜

냐하면 하나의 해회(海會) 대중이 일체의 해회 대중을 포섭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해회 대중을 위하여 설한 것은 곧 일체의 해회 대중을 위

하여 설한 것이다.〈아래의 문장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
30) 근기(根機):사람이 가진 종교적인 소질이나 능력을 뜻하는 말로 근(根)은 근본
    이 되는 힘이고, 기(機)는 발동하는 능력이다. 근기는 사람마다 타고난 정도가
   다르므로 사람에 따라 교법을 이해하는 수준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31) 해회(海會):바다같이 넓은 곳에 청중이 들어찬 모임. 여러 성중들의 모임을 말
    하는데, 바다가 덕이 높고 크다는 것을 비유하여 하는 말이다. 징관의『화엄경
    수소연의초』참조.(『華嚴經隨疏演義鈔』권1 大36 p.5c2~4. 云被難思之海會
    者, 以深廣故. 謂普賢等衆, 行德齊佛, 數廣刹塵, 故稱爲海.)

 

묻는다. 이 경전은 무슨 선정에 의거하였는가?

답한다. 해인삼매(海印三昧)32)에 의거하였다. 해인삼매가 일체의 삼매를

포섭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삼매에 의거한 것은 곧 일체의 삼매

에 의거한 것이다.〈아래 문장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
32) 해인삼매(海印三昧): sāgara-mudrā-samādhi. 일체의 모든 사물이 바닷물에 비
    추어 나타나듯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이 마음속에 나타나는 삼매이다. 부
    처님이『화엄경』을 설할 때 해인삼매에 들었다고 한다. 주 1)참조.

묻는다. 이 경전은 무슨 법을 설하였는가?

답한다. 화엄무진법문해(華嚴無盡法門海)를 설하였다. 화엄의 하나하나

가 모두 일체의 법문을 포섭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법을 설한 것

은 곧 일체의 법을 설한 것이다.〈아래의 문장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뜻은

별도로 서술할 것이다.〉

묻는다. 몇 가지 경전을 설하였는가?

답한다. 두 가지이다. 첫째는 이 세계의 교설이고, 둘째는 시방(十方)33)
의 교설이다. 이 세계의 교설 가운데 또 세 가지 본(本)이 있다. 상본(上本)
은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34)의 게송으로 이루어진
사천하미진수(四天下微塵數)35)의 품이고, 중본(中本)은 49만 8천 8백 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진 1천 2백개의 품이고,〈이상의 두 가지 본은 용궁에 숨겨져 있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하본(下本)은 10만 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진 38개의 품
이다.36)〈옛날에는 일반적으로 이렇게 설명했지만 후에는 바뀌어 48품을 설했다고도

하고 또는 39품을 설했다고도 한다.37) 참고하라.〉 또한『보안경(普眼經)』38)이 있는데,
수미산에서 만들어 모은 붓으로 4대해(大海)의 물로 만든 먹물을 가지고
한 개의 품을 쓰더라도 끝까지 다 쓰지 못하는데, 이와 같은 품들이 티끌의
수보다 많다. 이 경전은 오직 대보살 등이 다라니(陀羅尼)39)의 힘으로 받아
지닐 수 있는 것이지 패엽(貝葉)40)에 기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41) 왜냐
하면 이 세계의 교설이 총(總)이 되어 시방세계(十方世界)의 교설이 권속
(眷屬)이 됨을 반드시 포섭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부(部)가 전체
의 부를 포섭한다. 지금 있는 것은 10만개의 게송 가운데 단지 4만 5천개의
게송〈진역『화엄경』은 3만 6천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진 39품 80권〈진역『화엄경』은
34품 60권 또는 50권〉이 세상에 전한다.〈위의 일곱 가지 문답으로 그 전체적인 설을
마친다.〉
33) 시방(十方):열 가지 방향으로서 동, 서, 남, 북, 동남, 서남, 서북, 동북의 팔방에
    상, 하를 더해 시방이다.
34)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십삼천대천세계(十三千大千世
    界)는 열 개의 삼천대천세계이고, 미진수(微塵數)는 티끌만큼이나 많은 수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열 개의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티끌만큼이나 많은 수를 뜻
    한다.
35) 사천하미진수(四天下微塵數):사천하(四天下)는 수미산의 사방에 있다고 하는
    네 개의 대륙으로서 남섬부주(南贍部洲), 동승신주(東勝身洲), 서우화주(西牛貨
    洲), 북구로주(北俱盧洲)이다. 미진수(微塵數)는 티끌만큼이나 많은 수를 의미한
    다. 그러므로 사천하미진수는 사천하에 있는 티끌만큼이나 많은 수를 뜻한다.
36)『화엄경』을 상본(上本), 중본(中本), 하본(下本) 등으로 나누어 설명한 내용은
   『화엄경탐현기』권1(大35 p.122b12~21)과『화엄경문의강목(花嚴經文義綱目)』 
    권1(大35 p.493b1~5) 등에 나온다.
37) 법장(法藏)의『화엄경전기(華嚴經傳記)』권1(大51 p.153b2~3)에는 48품으로 
    되어 있고, 혜원(慧苑)의 『속화엄경약소간정기(續華嚴經略疏刊定記)』 권1(卍3
    p.570b18~19)에는 39품으로 되어 있다.
38)『보안경』은『화엄경』「입법계품(入法界品)」에 등장하는 해운(海雲)비구의 
    내용에서 언급된 경전으로서, 부처님이 해운비구에게 보안(普眼) 법문을 설하신 
    경전이다.『화엄경』은 대본(大本)과 약본(略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에서의 
   상본(上本), 중본(中本), 하본(下本)을 합친 것이 약본(略本)이고,『보안경』이 
    대본(大本)이다.
39) 다라니(陀羅尼):dhāranī. 총지(總持) 등으로 한역되기도 한다. 부처님의 가르
    침으로서 신비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지는 주문.
40) 패엽(貝葉):패다라엽(貝多羅葉)의 약어. pattra는 잎이라는 뜻인데 이를 한역
    하여 ‘패다라엽’이라고 하였다. 고대 인도에서는 종려 잎을 따서 장방형으로 잘
    라 표면을 편평하게 한 후 그곳에 문자를 새기고 기름을 흘려 새긴 문자의 자취
    를 검게 만들었으며, 그 잎마다 중앙에 구멍을 내어 하나로 묶어 책을 만들었다
    고 한다.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경전을 만들 때에도 패다라엽에 문자를 새
    겼기 때문에 불경(佛經)을 패엽경(貝葉經)이라고도 한다.
41)『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22b8~12. 如下海雲比丘所受持普眼經 以須彌山聚
    筆 四大海水墨 書一品修多羅 不可窮盡 如是等品 復過塵數 此是諸大菩薩陀羅尼
    力之所受持 亦非貝葉所能書記.

總者.
問, 此經何處說耶?
答, 蓮華染淨圓融處說.〈此義後當別出.〉
問, 何時說耶?
答, 佛初成道, 第二七日說. 謂卽此時中, 攝一切九世十世故.
是故一時說卽一切時說.〈此義亦當後別出.〉
問, 此經是誰說耶?
答, 是十佛盧舍那說. 謂此佛卽攝一切佛故. 是故一說卽一切
說.〈此義亦當後出之.〉
問, 爲何機說耶?
答, 爲普賢等海會諸菩薩說. 以此一海會衆, 卽攝一切海會衆
故. 是故爲一海會衆說, 卽爲一切海會衆說.〈如下文云云.〉
問, 此經依何定耶?
答, 謂依海印三昧. 以此海印三昧, 卽攝一切三昧故. 是故依
一三昧, 卽是依一切三昧.〈如下文云云.〉
問, 此經說何法耶?
答, 謂說華嚴無盡法門海. 以此華嚴一一皆攝一切法門. 故說
一法卽說一切法.〈如下文云云. 此義下當別述也.〉
問, 說幾許經耶?
答, 有二種, 一此界說, 二十方說. 此界之中卽有三本. 上本,
有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偈四天下微塵數品. 中本, 有四十九
萬八千八百偈一千二百品.〈此上二本, 隱在龍宮不出.〉 下本, 有十
萬偈三十八品.〈舊常說如此也, 更後說四十八品, 又云三十九品也. 准之.〉
又有普眼經, 以須彌山聚筆, 四大海水墨, 書一品修多羅, 猶
不能窮盡, 如是等品, 復過塵數. 此亦但是大菩薩等, 陀羅尼力
之所受持, 亦非貝葉所能書記. 以此界所說爲總, 必攝十方所
說爲眷屬故. 是故一部卽攝一切部. 今此所有, 卽是十萬偈中,
唯有四萬五千偈〈晋經, 三萬六千偈〉 三十九品八十卷〈晋經, 三十四
品六十卷, 亦是五十卷〉, 流傳於此.〈上來七問答, 辨其總竟.〉

 

여기서부터는 개별적 교설을 밝힌다.
제1회는 부처님께서 연화장장엄세계해(蓮華藏莊嚴世界海)42)의 마가다
43)의 보리도량(菩提道場)44)에서 해회(海會)의 보살들과 함께 계실 때 보
현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받아서 모든 부처님의 비로자나여래
장신삼매(毗盧舍那如來藏身三昧)〈진역『화엄경』의 여래정장삼매(如來淨藏三昧)이
다.〉에 들어 화장세계(華藏世界)45)의 의과(依果)46)와 대위광동자(大威光童
)47)의 정인(正因)48)을 설하였다. 여기에는 모두 6품 11권이 있다.「세주
묘엄품(世主妙嚴品)」제1〈5권이며, 제1권부터 제5권까지이다. 진역『화엄경』의「세간
정안품(世間淨眼品)」이다.〉은 그 서분(序分)을 밝혔다.〈다음은 정종분(正宗分)을 밝
힌다.〉「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제2〈1권이며, 제6권이다.〉,「보현삼매품(普賢
三昧品)」제3,「세계성취품(世界成就品)」제4〈이상의 2품은 합하여 1권이며, 제
7권이다.〉,「화장세계품(華藏世界品)」제5〈3권이며, 제8권부터 제10권까지이다.〉,
「비로자나품(毗盧遮那品)」제6〈1권이며, 제11권이다. 진역『화엄경』은 이상의 5품
을 따로「노사나불품(盧舍那佛品)」이라고 하였다.〉이다. 이 5품 중에서 앞의 4품은
비로자나불의 의과(依果)를 밝혔고, 마지막 1품은 부처님의 과거세의 정인
(正因)을 밝혔으니 즉 대위광동자이다.
自下明其別說.
第一會, 佛在蓮華藏莊嚴世界海, 摩竭提國, 菩提場中, 與海會
菩薩衆俱, 普賢菩薩, 承佛神力, 入一切諸佛毗盧舍那如來藏
身三昧〈晋經, 如來淨藏三昧〉, 說華藏依果, 威光正因也. 合六品
一十一卷. 世主妙嚴品第一〈五卷, 從第一至第五, 晋經, 世間淨眼品〉,
明其序分〈次明正宗〉. 如來現相品第二〈一卷, 第六〉, 普賢三昧
品第三, 世界成就品第四〈已上兩品共一卷, 第七〉, 華藏世界品第
五〈三卷, 從第八至第十〉, 毗盧遮那品第六〈一卷, 第十一. 晋經, 此上五
品, 分名盧舍那佛品〉. 此五品中, 初四品, 明毗盧舍那依果, 最後一
品, 明佛往因, 卽大威光童子也.
42) 연화장장엄세계해(蓮華藏莊嚴世界海):연화장세계의 광대하고 끝이 없는 바다
    에 비유한 것.
43) 마가다국:Magadha. 마게다(摩揭陀)로 음역. 삭존 당시에 가장 강성했던 인도의
    나라. 인도 동북부에 있는 비하르(Bihar)주 남부를 중심으로 번영했던 왕국으로,
    서기전 6세기에 빔비사라( Bimbisāra, 頻毘娑羅)왕이 왕사성(王舍城,Rājagrha)으
    로 도읍을 옮겨 나라를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아들 아자타샤트루(Ajātaśatru, 阿闍
    世)가 즉위하여 코살라( Kosalā)국, 카시( Kāsī)국, 바이샬리( Vaiśāli)국을 정복하
    였다. 이후 난다( Nanda)왕조, 마우리야( Maurya)왕조를 거치면서 파트나( Patna)
    를 중심으로 북인도 통일제국을 건설하고 수세기동안 북인도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서기 4세기에 굽타( Gupta)왕조가 마가다에서 일어나 북인도를 통일
    하고 광대한 영토를 확보하여 번영을 누렸으나, 6세기 중엽에 굽타왕조가 멸망하면
    서 마가다의 지위는 급속히 하락하였다.
44) 보리도량(菩提道場):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장소이다. 즉 지금의 붓
    다가야에 있는 보리수 밑의 금강좌를 말한다.
45) 화장세계(華藏世界):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연꽃에서 나온 세계, 또는 연꽃
    중에 들어 있는 세계라는 뜻. 비로자나불의 과거의 발원과 수행에 의해 청정하
    게 장엄된 세계이고 십불이 교화를 베푸는 경계. 세계의 가장 아래에 풍륜(風
    輪)이 있고, 그 위에 향수해(香水海)가 있고, 그중에 하나의 대연화가 있고 미진
    수(微塵數)의 세계가 20중으로 중첩되는 중앙세계종을 중심으로 111세계가 그
    물처럼 둘러 세계망(世界網)을 구성하고, 갖은 보물로 꾸며, 부처님께서 출현하
    시고 중생들도 충만한 광대무변한 세계. 『화엄경』의 이런 묘사와 달리『범망
    경』에서는 1천 잎의 대연화가 있고, 그 잎 하나하나에 백억의 수미산·사천하·
    남염부제 등이 있으며, 비로자나불이 본원으로서 꽃대 위에 앉아 몸을 변화하여
    1천석가가 되어 천 개의 잎마다 존재한다고 묘사한다.
46) 의과(依果):과보(果報)에 정과(正果)와 의과(依果)가 있는데, 정과는 깨달음에
    의한 과보이고, 의과는 숙업(宿業)에 의해 받은 과보이다.
47) 대위광동자(大威光童子):『화엄경』권11「비로자나품」(大10 p.54c11~15)에 
    나오는 인물로서 염광명대성(焰光明大城)의 희견선혜왕(喜見善慧王)의 태자이다.
48) 정인(正因):직접적인 원인.

 

제2회는 부처님께서 보광명전에서 해회의 보살들과 함께 계실 때 문수

사리(文殊師利)49)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서 여래의 삼업(三業)50)
과 십신(十信)51)의 법문을 설하였다. 여기에는 6품〈4권〉이 있다.「여래명호
품(如來名號品)」52) 제7,「사성제품(四聖諦品)」제8〈이상의 2품을 합하여 1권이
며, 제12권이다.〉,「광명각품(光明覺品)」제9,「보살문명품(菩薩問明品)」제10
〈이상의 2품을 합하여 1권이며, 제13권이다.〉,「정행품(淨行品)」제11,「현수품(賢
首品)」제12이다.〈이상의 2품이 2권이며, 제14권과 제15권이다.〉이 6품 중에 앞의
3품은 부처님의 삼업〈신(身), 어(語), 의(意)의 순서는 이에 준거한 것이다.〉을 밝혔
고, 뒤의 3품은 십신의 행법〈해(解), 행(行), 덕(德)의 순서는 이에 준거한 것이다.53)
다른 곳에서는 처음에 행(行), 다음에 원(願), 마지막에 덕(德)으로 풀이하기도 하였다.54)
을 밝혔다.
第二會, 佛在普光明殿, 與海會菩薩衆俱, 文殊師利, 承佛神
力, 說如來三業, 及信位法門. 於中六品〈四卷〉. 佛名號品第
七, 四聖諦品第八〈已上二品共一卷, 第十二〉. 光明覺品第九, 菩薩
問明品第十〈已上二品共一卷, 第十三〉. 淨行品第十一, 賢首品第
十二〈已上二品共二卷, 第十四第十五〉. 此六品中, 初三品, 明佛三
業〈身語意, 如次准之.〉, 後三品, 辨信行法〈解行德, 如次准之. 又釋初
行次願後德.〉.
49) 문수사리:문수보살을 말한다. 문수보살은 부처님의 협시보살로서 지혜와 깨달
    음을 관장한다.
50) 여래의 삼업(三業):삼업이란 원래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으로서 몸
    과 언어와 마음으로 짓는 선악의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여래
    의 삼업이란 여래의 몸과 언어와 마음이 나타난 모습을 형용한 것을 말한다. 즉
    문수사리보살이「불명호품」에서는 여래의 몸에 대해서 설하였고,「사성제품」
    에서는 여래의 가르침을 설하였으며,「광명각품」에서는 여래의 깨달은 마음에
    대해 설하였다.
51) 십신(十信):보살이 부처가 되기까지 수행해야 하는 52단계 중에서 최초의 10단
    계이다.『화엄경』에서 설하는 보살행의 단계는 41위이지만 일반적인 52위에 따
    라 이 부분의 법문을 십신으로 해석한 것이다. 신(信)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
    극히 믿는 것이다.
52) 원문의「불명호품」은『80화엄경』에서는「여래명호품」이다.
53)『화엄경탐현기』권4「명호품(名號品)」에는 “이「불명호품」은 신업이 편만하게
    응함을 밝혔으니, 부처님의 명호가 몸에 의지하여 세워졌기 때문이다. 「사제품」
    은 부처님의 구업이 널리 두루함을 밝혔고, 「광명각품」은 부처님의 의업이 편만
    하게 깨달았음을 밝혔다.”(大35 p.167a20~22. 此明正報, 正報之中不過三業, 此品明
    身業遍應, 謂名號依身而立故. 四諦品, 明佛口業普周, 光明覺品, 明佛意業遍覺.)라고
    하였다.
54)『화엄경탐현기』권4「명난품(明難品)」에는 “신위 가운데에 해, 행, 덕이 있는데,
   「명난품」은 해를 밝혔다.”(大35 p.175b21~22. 信中解行及德, 明難辨解.)라고 하였
    는데, 여기서의「명난품」은 본문에서의「보살문명품」에 해당한다. 그리고 권4
    에는 “「정행품」의 뜻이 있게 된 것은 해 다음에는 행, 또 행 다음에는 원이니, 의
    미가 차례대로 있기 때문에「정행품」이 오게 된 것이다.”(大35 p.184c20. 來意者,
    前解次行, 又前行次願, 義次第故來.)라고 하였다.(김천학, 1998, p.30 주 49), 50), 51)
    참조)

 

제3회는 부처님께서 도리천궁(忉利天宮)55)의 묘승전(妙勝殿) 위에서 해
회의 보살들과 함께 계실 때 법혜보살(法慧菩薩)56)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서 보살무량방편삼매(菩薩無量方便三昧)에 들어가 십주(十住)57) 
의 법문을 설하였다. 여기에는 모두 6품이 있다.「승수미산정품(昇須彌山頂
品)」58) 제13,「수미정상게찬품(須彌頂上偈讚品)」제14,「십주품(十住品,)」
제15〈이상의 3품은 합하여 1권이며, 제16권이다.〉,「범행품(梵行品)」제16,「초발심
공덕품(初發心功德品)」제17〈이상의 2품은 합하여 1권이며, 제17권이다.〉,「명법품
(明法品)」제18이다.〈1권이며, 제18권이다.〉이 6품 중에 처음의 2품은 제3회의
서분〈경을 설한 장소와 집회의 대중〉에 해당한다. 그리고 뒤의 4품 중에 앞의 3
품은 자분(自分)59)〈해, 행, 덕의 순서는 이에 준거한 것이다.60)〉을 밝히는 것이고,
나중의 1품은 승진분(勝進分)61)으로서 이후의 방편에 나아가려는 것이다.
第三會, 佛在忉利天宮, 妙勝殿上, 與海會菩薩衆俱, 法慧菩
薩, 承佛神力, 入菩薩無量方便三昧, 說十住等法門. 於中合
六品. 昇須彌頂品第十三, 須彌頂上偈讚品第十四, 十住品第
十五〈已上三品, 共一卷, 第十六〉. 梵行品第十六, 初發心功德品第
十七〈已上二品, 共一卷, 第十七〉. 明法品第十八〈一卷第十八〉. 此六
品, 初二品, 是當會序〈嚴處集衆〉. 後四品中, 初三品, 明自分〈解
行德, 如次准之.〉, 後一是其勝進, 趣後方便也.
55) 도리천궁(忉利天宮):도리천에 있는 궁전. 도리(忉利)는 Trāyastrim3 śa의 음역
    으로서 33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도리천은 삼십삼천(三十三天)이라고 한역된
    다. 도리천은 욕계의 여섯 하늘 중에 두 번째 하늘로서 수미산의 정상에 있으며,
    그 중앙에는 제석천의 궁전인 선견성(善見城)이 있고 그 안에 도리천궁이 있다
    고 한다.
56) 법혜보살(法慧菩薩):혜(慧)라는 글자가 붙은 열 명의 보살 곧 십혜(十慧)보살
    중에서 첫 번째 지위의 보살이다. 십혜보살은 각각 시방의 자기 자리에 머물며
    설법하여 십주(十住)를 완성한다. 법혜보살의 자리는 동방이다.
57) 십주(十住):보살이 부처가 되기까지 수행해야 하는 52단계 중에서 제11단계부터
    제20단계까지이다. 주(住)는 마음이 진실한 공(空)의 이치에 안주하는 것이다.
58) 원문의「승수미정품」은『80화엄경』에서는「승수미산정품」이다.
59) 자분(自分):수행 하나하나의 계위마다 자분(自分)과 승진분(勝進分)이 있다. 자
    분은 그 계위의 과덕(果德)을 말하고, 승진분은 더 높은 계위로 나아가려고 하
    는 것을 말한다.
60)『화엄경탐현기』권5「십주품」에는 “「십주품」은 위(位)를 밝혔고,「범행품」은
    행(行)을 밝혔고,「초발심공덕품」은 덕(德)을 찬탄하였다. 또 처음은 해, 두 번
    째는 행, 세 번째는 덕인데, 위의「명난품(明難品)」 등의 세 품과 같다.”(大35
    p.195c14~16. 初品明位 次品明行 後品歎德 又初是解 次是行 後顯德 同上明難等三
    品)라고 하였다.(김천학, p.31 주 55) 참조)
61) 승진분(勝進分):수행의 계위에서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제4회에서는 부처님께서 야마천궁(夜摩天宮)62)의 보장엄전(寶莊嚴殿)
에서 해회의 보살들과 함께 계실 때 공덕림보살(功德林菩薩)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서 보살선사유삼매(菩薩善思惟三昧)〈진역『화엄경』에는 보살선
복삼매(菩薩善伏三昧)라고 되어 있다.〉에 들어가 십행(十行)63) 법문을 설하였다.
여기에는 모두 4품〈3권〉이 있다.「승야마천궁품(昇夜摩天宮品)」제19,「야마
궁중게찬품(夜摩宮中偈讚品)64)」제20,「십행품(十行品)」제21〈이상의 3품은
합하여 2권이며, 제19권, 제20권이다.〉,「십무진장품(十無盡藏品)」제22이다.〈1권이
며, 제21권이다.〉이 4품 중에 앞의 2품은 서분〈앞의 제3회와 같다〉이고, 뒤의 2품
은 제4회의 정종분〈처음의 1품은 정위(正位)이고, 나중의 1품은 오래 쌓은 수행으로 성
취를 이룬 이후의 단계이다.〉에 해당한다.
第四會, 佛在夜摩天宮 寶莊嚴殿, 與海會菩薩衆俱, 功德林
菩薩, 承佛神力, 入菩薩善思惟三昧〈晋經, 菩薩善伏三昧〉, 說十
行法門. 於中合四品〈三卷〉. 昇夜摩天宮品第十九, 夜摩天宮
中偈讚品第二十, 十行品第二十一〈已上三品共二卷, 第十九, 第
二十〉. 十無盡藏品第二十二〈一卷, 第二十一〉. 此四品中, 初二品,
序〈同前會〉, 後二品, 是當會正宗〈初一品, 正位, 後一品, 蘊行成就,
生起後位〉.
62) 야마천궁(夜摩天宮):야마천에 있는 궁전. 야마천은 Yāma-deva의 음역으로
    서 욕계의 여섯 하늘 중에서 세 번째 하늘이다.
63) 십행(十行):보살이 부처가 되기까지 수행해야 하는 52단계 중에서 제21단계부
    터 제30단계까지이다. 행(行)은 이타행(利他行)을 가리킨다.
64) 원문의「야마천궁중게찬품」은『80화엄경』에서는「야마궁중게찬품」이다.

 

제5회는 부처님께서 도솔천궁(兜率天宮)65)의 일체보장엄전(一切寶莊嚴
殿)에서 해회의 보살들과 함께 계실 때 금강당보살(金剛幢菩薩)이 부처님
의 위신력을 받아서 보살지광삼매(菩薩智光三昧)〈진역『화엄경』에는 보살명지
삼매(菩薩明智三昧)로 되어 있다.〉에 들어가 십회향(十迴向)66) 법문을 설하였다.
여기에는 모두 3품〈12권〉이 있다.「승도솔천궁품(昇兜率天宮品)」제23〈1권
이며, 제22권이다.〉,「도솔궁중게찬품(兜率宮中偈讚品)」제24,「십회향품(十
迴向品)」제25이다.〈전품과 합쳐 모두 11권이다. 제23권부터 제33권까지이다.〉 이 3
품 중에 앞의 2품은 서분〈앞에서와 같다.〉이고, 뒤의 1품은 제5회의 정종분을
밝혔다.
第五會, 佛在兜率天宮, 一切寶莊嚴殿, 與海會菩薩衆俱, 金
剛幢菩薩, 承佛神力, 入菩薩智光三昧〈晋經, 菩薩明智三昧〉, 說
十迴向法門. 於中合三〈一十二卷〉. 昇兜率天宮品第二十三〈一
卷, 第二十二〉. 兜率宮中偈讚品第二十四, 十迴向品第二十五〈并
前品合一十一卷, 從第二十三至三十三〉. 此三品中, 初二品, 序〈同前〉,
後一品, 辨其正宗.
65) 도솔천궁(兜率天宮):도솔천에 있는 궁전. 도솔천은 Tusita-deva의 음역으로
    서 욕계의 여섯 하늘 중에서 네 번째 하늘이다
66) 십회향(十迴向):보살이 부처가 되기까지 수행해야 하는 52단계 중에서 제31단
    계부터 제40단계까지이다. 회향(迴向)은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에 의해 쌓인
    모든 공덕을 중생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제6회는 부처님께서 타화자재천궁(他化自在天宮)67)의 마니보장전(摩尼

寶藏殿)에서 해회의 보살들과 함께 계실 때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이 부

처님의 위신력을 받아서 대지혜광명삼매(大智慧光明三昧)〈진역『화엄경』에는
보살대승광명삼매(菩薩大乘光明三昧)라고 되어 있다.〉
에 들어가 십지(十地) 법문을

설하였다. 여기에는 1품 6권이 있으니,「십지품(十地品)」제26이다.〈6권이며,
제34권부터 제39권까지이다.〉
第六會, 佛在他化自在天宮, 摩尼寶藏殿, 與海會菩薩俱, 金
剛藏菩薩, 承佛神力, 入大智慧光明三昧〈晋論經, 菩薩大乘光明三
昧〉, 說十地法門. 一品六卷. 十地品第二十六〈六卷, 從第三十四至
第三十九〉.
67) 타화자재천궁(他化自在天宮):타화자재천에 있는 궁전. 타화자재천은 Paranirmita-
    vaśa-vartin의 한역으로서 욕계의 여섯 하늘 중에서 여섯 번째 하늘이다.

 

제7회는 부처님께서 다시 보광명전에서 해회의 보살들과 함께 계실 때

보현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서 찰나제제불삼매(刹那際諸佛三昧)

에 들어가 십정(十定)68) 등 수생(修生)69)과 본유(本有)70)의 인과법문을 설

하였다. 여기에는 모두 11품〈13권〉이 있다.「십정품(十定品)」제27〈4권이며, 제
40권부터 제43권까지이다. 진역『화엄경』에는 이 품이 빠져 있다.〉,「십통품(十通品)」
제28〈진역『화엄경』의「십명품(十明品)」이다.〉,「십인품( 十忍品)」제29〈이상의 2품
은 합하여 1권이며, 제44권이다.〉,「아승기품(阿僧祇品)」제30,「수량품(壽量品)」
제31〈진역『화엄경』의「수명품(壽命品)」이다.〉,「제보살주처품(菩薩住處品)」71)
32〈이상의 3품은 합하여 1권이며, 제45권이다.〉,「불부사의법품(佛不思議法品)」제
33〈2권이며, 제46권과 제47권이다.〉,「여래십신상해품(如來十身相海品)」제34,
「여래수호광명공덕품(隨好光明功德品)」제35이다.〈진역『화엄경』의「불소상광
명공덕품(佛小相光明功德品)」72)이다. 이상의 2품은 합하여 1권이며, 제48권이다.〉 이 9품
은 차별인과(差別因果)73)를 밝혔는데 이것은 또한 수생인과(修生因果)라
고도 말한다.「보현행품(普賢行品)」제36〈1권이며, 제49권이다.〉,「여래출현품
(如來出現品)」제37〈진역『화엄경』의「보왕여래성기품(寶王如來性起品)」이다. 3권이
며, 제50권부터 제52권까지이다.〉의 2품은 평등인과(平等因果)74)를 밝혔는데 이
것은 또한 본유인과(本有因果)라고도 말한다〈운운〉.
第七會, 佛重會在普光明殿, 與海會菩薩俱, 普賢菩薩, 承佛
神力, 入刹那際諸佛三昧, 說十定等修生本有因果法門. 於
中合一十一品〈一十三卷〉. 十定品第二十七〈四卷, 從第四十至第
四十三, 晋經, 欠此品也〉. 十通品第二十八〈晋經, 十明品〉, 十忍品第
二十九〈已上二品共一卷, 第四十四〉. 阿僧祇品第三十, 壽量品第
三十一〈晋經, 壽命品〉, 菩薩住處品第三十二〈已上三品共一卷, 第
四十五〉. 佛不思議法品第三十三〈二卷, 第四十六第四十七〉, 如來十
身相海品第三十四, 隨好光明功德品第三十五〈晉經, 小相光明
功德品. 已上二品共一卷, 第四十八〉. 此九品, 明差別因果, 亦是修生
因果〈云云〉. 普賢行品第三十六〈一卷, 第四十九〉, 如來出現品第
三十七〈晉經, 寶王如來性起品, 三卷, 從第五十至第五十二〉. 此二品, 明
平等因果, 亦名本有因果〈云云〉.
68) 십정(十定):열 가지 큰 삼매로서, 보광대삼매(普光大三昧), 묘광대삼매(妙光大
    三昧), 차제편왕제불국토심통삼매(次第遍往諸佛國土神通大三昧), 청정심심항대
    삼매(淸淨深心行大三昧), 지과거장엄장대삼매(知過去莊嚴藏大三昧), 지광명장대
    삼매(智光明藏大三昧), 요지일절세계불장엄대삼매(了知一切世界佛莊嚴大三昧),
    중생차별신삼매(衆生差別身三昧), 법계자재대삼매(法界自在大三昧), 무애륜대
    삼매(無礙輪大三昧)이다. 大10 p.212c9~15 참조.
69) 수생(修生):수행에 의해 얻어진 것.
70) 본유(本有):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
71) 원문의「보살주처품」은『80화엄경』에서는「제보살주처품」이다.
72) 원문의「소상광명공덕품」은『60화엄경』에서는「불소상광명공덕품」이다.
73) 차별인과(差別因果):수행에 따라 생겨난 인과.
74) 평등인과(平等因果):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인과.

 

제8회는 보광명전에서 해회의 보살들과 함께 계실 때 보현보살이 부처님

의 위신력을 받아서 불화장엄삼매(佛華莊嚴三昧)〈진역『화엄경』에는 장(莊)자가
빠져있다.〉에 들어가 보혜보살(普慧菩薩)이 200구로 묻자, 보현보살이 2,000
구로 답하여 6단계의 행덕(行德) 법문을 설하였다. 여기에는 1품〈7권〉이 있
으니「이세간품(離世間品)」제38이다.〈7권이며, 제53권부터 제59권까지이다.〉
第八會, 普光明殿, 與海會菩薩衆俱, 普賢菩薩, 承佛神力, 入
佛華莊嚴三昧〈晋經, 脫莊字也.〉, 普慧菩薩二百句問, 普賢菩薩
二千句答, 說六位行德法門. 於中一品〈七卷〉, 謂離世間品第
三十八〈七卷, 從第五十三至第五十九〉.

제9회는 부처님께서 실라벌국(室羅筏國)75) 서다림(逝多林) 급고독원(給
孤獨園)76)의 대장엄중각(大莊嚴重閣)에서 해회의 보살들과 함께 계실 때
부처님께서 스스로 사자빈신삼매(師子頻申三昧)에 들어가〈진역『화엄경』의
사위국 기환림77) 내지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78)이다.79)〉돈점입법계법문(頓漸
入法界法門)80)을 설하셨다.81) 여기에는 1품〈21권〉이 있으니,「입법계품(入法
界品)」제39이다.〈21권이며, 제60권부터 제80권까지이다.〉
第九會, 佛在室羅筏國, 逝多林, 給孤獨園, 大莊嚴重閣, 與海
會菩薩衆俱, 佛自入師子頻申三昧〈晉經, 舍衛國祇桓林中, 乃至奮迅
三昧〉, 說頓漸入法界法門. 於中說一品〈二十一卷〉, 入法界品第
三十九〈二十一卷, 從第六十至第八十〉.
75) 실라벌국(室羅筏國):슈라바스티( Śrāvastī). 사위국(舍衛國). 중인도 왕국이다.
    본래는 코살라( Kosalā)국 도성 이름이었는데 나라 이름으로 대신하였다. 석
    존이 살아 계실 때 프라세나짓( Prasenajit, 波斯匿)왕이 이 나라를 통치하였다.
    유명한 기원정사가 있어 부처는 성도 후 45년 설법하는 동안 이곳에서 25년을
    머물만큼 자주 와서 지냈고 많은 중요한 설법이 이루어졌다.
76) 급고독원(給孤獨園):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의 줄임말이다. 코살라국의
    제타(祇陀, Jeta) 태자가 소유한 숲에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 Anāthapindada,
    수닷타 Sudatta)가 세운 절이란 의미이다. 왕사성의 죽림정사(竹林精舍)와 함
    께 초기의 불교 사원을 대표하는 곳이다. 부처가 이곳에서 여름 안거를 가장 많
    이 지냈고, 이곳에서 설했다고 하는 경전도 많다.
77)『화엄경』(60) 권44「입법계품」에서는 사위성 기수급고독원 대장엄중각강당(佛
    在舍衛城 祇樹給孤獨園 大莊嚴重閣講堂)이라 하였다.
78)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 simha-vijrmbhita-samādhi. 사자빈신삼매(師子
    嚬伸三昧)라고도 한다. 사자가 분발하여 떨쳐 일어나면 그 기세가 빠르고 용맹
    한 것처럼 부처의 대위신력을 나타내는 선정이 그와같음을 비유한 것이다.『화
    엄경』입법계품 등에 나온다.
79)『화엄경』(60) 권44「입법계품」大9 p.676a6~677a15
80) 돈점입법계법문(頓漸入法界法門):법계에 한 순간에 들어가는 돈(頓)과 점차적
    으로 들어가는 점(漸)의 법문.
81) 부처님이 스스로 설법하였다는 견해는 표원의 독특한 해석으로 평가된다.(김천
    학, p.35 주) 75 참조)

 

묻는다. 이 경전을 설하는 곳은 정토인가, 예토인가?

답한다. 어디라고 한들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묻는다. 둘 다 잘못이 있다. 만약 예토라고 한다면 보배연못과 보배나무

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게다가 “이때에 화장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82)

하였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만약 정토라면 설한 9회의 장소가 어찌하여

모두 사바세계인 인간과 천상에 있는가?

답한다. 혜원(慧苑)83)스님은 말하기를, “화장세계와 사바세계는 그 모습

으로 보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모습의 본성에서 본다면 걸림 없이

원융하다.”84)라고 하였다.〈비록 이러한 말이 있기는 하지만 분명하지 않다.〉

법장스님은 말하기를, “몇 가지 4구(四句)85)가 있다. 첫째, 염(染)과 정

(淨)의 4구이다. 첫째는 염이니, 마가다국의 7처 9회 등은 정상(淨相)을 덮

기 때문이다. 둘째는 정이니, 화장세계해는 그 자리가 금강처럼 견고하여

염상(染相)이 다 없어지기 때문이다. 셋째는 둘 다 갖춤이니, 화장세계 안

의 사바세계는 염과 정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여 숨고 나타남에 장애가

없다. 넷째는 둘 다 갖추지 못함이니, 염과 정의 모습이 다한 동일한 법계

에서는 각각의 모습이 형태를 잃어 두 가지 모습이 다 없어지기 때문이다.

둘째, 통(通)과 국(局)의 4구이다. 첫째는 국이니, 이 하나의 세계를 말한다.

둘째는 통이니, 시방의 세계 모두를 말한다. 셋째는 둘 다 갖춤이니, 하나

와 시방의 세계를 다 갖춘 것을 말한다. 넷째는 둘 다 갖추지 못함이니, 모

습이 다하여 본성으로 돌아간 것을 말한다. 첫째 국은 이곳이 일체의 국토

를 포섭하고, 또 이곳의 하나하나의 티끌 등이 모두 일체의 끝없는 국토의

바다를 포섭한 것을 말한다. 둘째 통은 이 세계가 일체 국토에 들어가고,

또 이 하나하나의 티끌 등이 모두 일체 모든 국토의 티끌 등에 통하는 것을

말한다. 셋째 둘 다 갖춤은 포섭하고 들어감이 함께 나타남을 말한다. 넷째

둘 다 갖추지 못함은 모습이 없어져 둘 다 사라짐을 말한다. 셋째, 의(依)와

정(正)의 4구이다. 첫째는 정이 의에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자리에 계시

고, 또 부처님이 곧 국토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의가 정에 있는 것이다. 국

토가 부처님 안에 있고, 또 국토가 곧 부처님의 몸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둘 다 갖춤이고, 넷째는 둘 다 갖추지 못함이다.〈아울러 준거하여 생각하라.〉”
86)라고 하였다.

82) 여섯 가지로 진동:세상에 상서로운 조짐이 있을 때 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한
    다고 한다. 여섯 가지는 한 방향으로 움직임[動], 흔들려 일어남[起], 솟아 오름
    [涌], 큰 소리[擊], 은은한 소리[震」, 포효하는 소리[吼]이다.
83) 혜원(慧苑):673~743?. 현수 법장의 제자. 스승인 법장이『화엄경』의 소(疏)를
    완성하지 못하고 입적하자 스승의 뜻을 이어 완성한 것이『속화엄경약소간행
    기(續華嚴經略疏刊行記)』이다. 후대에 청량 징관(?~839)에 의해 혜원의 견해는
    법장의 견해와 다른 것이 많다고 하여 배척받았으며 결국 화엄종의 정계(正系)
    에 포함되지 못하였다.
84)『속화엄경약소간정기(續華嚴經略疏刊定記)』권2「세주묘엄품」 卍3 p.601c20~
    21. 華藏娑婆 就相說異 以相從性 無礙圓融.
85) 사구(四句):존재에 대한 4종의 분류법이다. 즉 존재를 유(有), 무(無), 역유역무
    (亦有亦無), 비유비무(非有非無)의 4종류로 나누어 고찰하는 것이다.
86) 염정사구(染淨四句)와 통국사구(通局四句)는 징관(澄觀)의『대방광불화엄경소
    (大方廣佛華嚴經疏)』(권1 大35 p.505b13~20. 或唯染, 摩竭等覆淨相故. 或唯淨, 
    其地金剛染相盡故. 或俱, 隱顯無礙故. 或俱非, 各相形奪二相盡故. 次明通局交徹二
    四句者. 謂或局, 此一界故. 或通, 該十方故. 或俱, 卽此卽遍故. 或泯, 二相盡故. 又
    或局, 此界攝一切故. 或通, 此入一切故. 或俱, 卽攝卽入故. 或泯, 形奪相盡故.)의 
    내용과 유사하고, 의정사구(依正四句) 또한 같은 책의 내용(『大方廣佛華嚴經疏』 
    권1 大35 p.504b13~15. 有四句. 一或唯依, 佛卽剎故. 二或唯正, 剎卽佛故. 三俱. 
    四泯. 思之可知.)과 유사하다. 그런데 표원의 활동 연대가 740년 전후이므로 이 글
    을 저술할 당시에 징관의『대방광불화엄경소』를 보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
    러므로 본문에서 인용하고 있는 사구(四句)의 내용은『화엄경탐현기』등에서 취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일치하는 문장은 보이지 않는다. 김천학, p.37 주 84) 참조.

問, 說此經處, 爲淨爲穢耶?
答, 設爾何失.
問, 二俱有過. 謂若是穢, 不現寶池寶樹, 亦不應言‘爾時華藏
世界六種振動’. 若是淨者, 說九會處, 何故皆在娑婆人天?
答, 慧苑師云,“ 華藏娑婆, 就相說異, 以相從說性, 無礙圓融
也.”〈雖有此說, 無分明也.〉 法藏師云,“ 有數四句. 一染淨四句. 或
染, 謂摩竭提國, 七處九會等, 覆淨相故. 或淨, 謂華藏海, 其地
金剛等, 染相盡故. 或俱, 謂華藏內娑婆界, 染淨存泯, 隱顯無
礙. 或俱非, 謂染淨相盡, 同一法界, 各相形奪, 二相盡故. 二
通局四句. 或局, 謂此一界. 或通, 謂該於十方. 或俱, 謂要具前
二. 或俱非, 謂相盡歸性. 或局, 謂此處攝一切刹, 又此處一一
塵等, 皆攝一切無邊刹海. 或通, 謂此界入一切刹, 又此一一塵
等, 皆通一切諸刹塵等. 或俱, 謂攝入俱現. 或俱非, 謂形奪雙
泯. 三依正四句. 或正在依, 謂佛在坐等, 又佛卽刹故. 或依在
正, 謂刹居佛內, 又刹卽佛身故. 或俱. 或非.”〈並准思之〉

 

묻는다. 만약 위에서 설한 바와 같다면87) 7처 9회가 모두 서로 뒤섞여 혼

란스러울 것이다. 예를 들면, 도리천에서 십주를 설할 때 이미 허공에 편만

하여 한 명의 어리석은 범부[毛道]88)에까지 이르렀다고 하였다. 그런데 야

마천 등에서 십주를 설하였는지, 설하지 않았는지 알지 못하겠다.

답한다. 어느 쪽이라 한들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87) 이 부분의 문답은 법장의『화엄경지귀(華嚴經旨歸)』(大45 p.590a13~b11)에 있는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따라서 “위에서 설한 바”의 의미는 본문의 사구(四句)에
    대한 것이 아니라『화엄경지귀』의 문장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즉『화엄경지귀』
    에서는,『화엄경』은 일체의 모든 장소에서 동시에 설해졌다고 설명한 이후에
    “만약 위에서 설한 바와 같다면 7처 9회가 모두 서로 뒤섞여 혼란할 것이다.”라
    고 질문하고 있다.(김천학, p.40 주 93)
88) 어리석은 범부[毛道]: bāla-prthag-jana의 한역인 모도범부(毛道凡夫)의 줄임
    말로서 어리석은 범부라는 뜻이다.

 

묻는다. 둘 다 잘못이 있다. 만약 그곳에서 설하지 않았다면 설한 곳이

편만하지 않았을 것이고, 만약 그 곳에서도 설했다면 무엇 때문에 『화엄

경』에서 다만 “도리천에서는 십주법을 설하였고 야마천 등에서는 십행 등

을 설하였다”89)고 하겠는가?

답한다. 여기서 십주를 설한 도리천은 이미 시방의 모든 진도(塵道)90)

편만해 있다. 그러므로 야마천 등에는 모두 도리천이 있는 것이다. 즉 이와

같이 야마천 등에 편만한 도리천에서 십주법을 설하였으므로 도리천이 널

리 편만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도리천이 그대로 야마천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야마천 등에서 십행 등을 설한 것도 모두 도리천

등에 편만하나 야마천이 그대로 도리천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땅히 이렇

게 알아야 한다. 만약 십주와 십행 등의 모든 계위가 상호 포섭한다는 관점

에서 본다면 피차가 없게 되어 각각 법계에 편만하고, 만약 모든 계위가 서

로 돕는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피차가 있게 되어 함께 법계에 편만하다. 나

머지 각각의 품에 있는 각각의 곳도 모두 이와 같다.

89)『화엄경』의 7처 9회에서, 제3회에는 도리천궁에서 십주법을 설하였고, 제4회에
    는 야마천궁에서 십행법을 설하였는데, 그것을 말한다.
90) 진도(塵道):예토(穢土)와 같은 의미로서, 번뇌에 가득 차 있는 세계를 말한다.

問, 若如上說, 則七處九會, 皆悉雜亂. 如忉利天說十住時, 旣
遍虛空, 周側毛道. 未知夜摩等處亦說住不.
答, 設爾何失.
問, 二俱有過. 謂若彼不說, 則說處不遍, 若彼亦說, 何故, 經
中唯云,“ 忉利說十住法, 夜摩等處說十行”等?
答, 此說十住, 忉利天處, 旣遍十方一切塵道. 是故夜摩等處,
皆有忉利. 卽於如是遍夜摩等忉利天處, 說十住法, 是故忉利
無不普遍, 仍非夜摩. 夜摩等處說十行等, 皆亦遍於忉利等處,
仍非忉利. 當知亦爾. 若約十住與十行等, 全位相攝, 則彼此互
無, 各遍法界, 若約諸位相資, 則此彼互有, 同遍法界. 餘一一
品一一處, 皆亦如是.

 

묻는다. 다른 부처님이 설한 곳과 노사나불이 설한 곳은 서로 보는가? 보

지 않는가?

답한다. 어느 쪽인들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묻는다. 둘 다 잘못이 있다. 만약에 서로 본다면 서로 편만함에 어그러지

고, 서로 보지 못한다면 주인[主]과 손님[伴]91)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답한다. 서로 주인이 되고 손님이 되는 것에는 통틀어 4구(四句)가 있다.

주인과 주인이 서로 보지 못하고, 손님과 손님도 또한 그러하니, 각각 법계

에 편만하여 피차가 서로 없으므로 서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주인은 손님

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서로 보고, 손님은 주인과의 관계에서 또한 그러하

니, 모두 법계에 편만하여 피차가 서로 있으므로 서로 보지 못함이 없는 것

이다. 예를 들면 노사나불이 주인이 되고 증득한 곳이 손님이 되어 주인이

없으면 손님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노사나불과 증득한 곳은 동시에

법계에 편만하다. 가령 동쪽에서 보면 법을 증득한 곳이 동쪽이니, 거기에

는 노사나불이 있다. 즉 동쪽이 있고 노사나불이 그곳에 와서 증득한 것이

다. 이와 같이 하나하나가 법계에 편만하며 일체의 예토에 막힘이 없고 걸

림이 없다.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問, 餘佛說處, 與舍那說, 爲相見不?
答, 設爾何失
問, 二俱有過. 謂若相見, 卽乖相遍, 若不相見, 不成主伴.
答, 互爲主伴, 通有四句. 謂主主不相見, 伴伴亦爾, 各遍法界,
彼此互無, 故無相見. 主之與伴, 其必相見, 伴主亦爾, 共遍法
界, 此彼互有, 故無不見. 如舍那爲主, 證處爲伴, 無有主而不
俱伴. 故舍那與證處, 同遍法界. 設於東方, 證法東處, 彼有舍
那. 還有東方而來作證. 如是一一, 遍周法界, 一切塵道, 無障
無礙. 思之可見.
91) 주인[主]과 손님[伴]:주체와 그에 딸린 것. 주체와 종속. 화엄학에서 법계연기
    (法界緣起)를 말할 때 이것이 주(主)가 되면 저것이 반(伴)이 되고, 저것이 주가
    되면 이것이 반이 되어, 이와 같이 주와 반이 갖추어져 덕을 포섭함이 무진한 것
    을 주반구족(主伴具足)이라고 한다. 또 만유가 각각 주가 되고 반이 되어 상즉상
    입하여 중중무진한 것을 주반무진(主伴無盡)이라 한다. 이런 설명은 화엄 법계
    연기의 내용을 설하는 십현문(十玄門)의 하나인 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具德
    門)을 가리킨다.

 

묻는다. 무슨 문헌을 증거로 일처(一處)가 곧 일체처(一切處)라고 하는가?

답한다.『화엄경』에서 “하나하나의 티끌 속에 불국의 바다가 안주해 있

고, 부처님이 구름처럼 두루 지켜 주시어 일체를 완전히 감싸주시네.”92)

고 하였고, 또 “한 털 구멍 속에 한량없는 불국토가 청정하게 장엄되어 널

리 안주하며, 저 일체처에 계신 노사나불이 해회의 대중 속에서 바른 법을

연설하신다.”93)라고 하였으니, 하물며 7처 9회로써 시방법계를 모두 포섭

하지 못하겠는가?

92)『화엄경』(60) 권3「노사나불품」大9 p.410b27~28. 一一微塵中, 佛國海安住. 佛雲
    遍護念, 彌綸覆一切.
93)『화엄경』(60) 권3「노사나불품」 大9 p.410c22~24. 一毛孔中, 無量佛剎, 莊嚴淸
    淨, 曠然安住, 彼一切處, 盧舍那佛, 於衆海中, 演說正法.

 

묻는다. 마가다국에서 설하였는데, 그 나라 중생들이 모임에 참석하였는

가, 참석하지 않았는가?

답한다. 혜원스님은 “어느 쪽인들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묻는다. 둘 다 잘못이 있다. 만약 참석했다면 경전에서 왜 말하지 않았는

가? 만약 참석하지 않았다면 왜 그곳에서 설법했겠는가?

답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법을 드러내기 위함이고,

둘째는 근기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법을 드러낸다고 한 것은 마가다국이

모든 나라 가운데 으뜸이고, 제1회가 9회 중에서 제일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였다. 근기에 대응한다고 말한 것은 모임 가운데 시방

에서 새로 온 보살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서원에 따라 이 나라에 태어

났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근기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굳이 교화 받

는 중생인 속인들을 열거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뒤의 두 문은 별기(別
記)에서 설한 것과 같다.〉94)
94) 이 부분의 문답은 혜원(慧苑)의 『속화엄경약소간정기(續華嚴經略疏刊定記)』권
    2「세주묘엄품」(卍3 p.601c22~602a3)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운운(云
    云)”이라는 글자로서 이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속화엄경약소간정
    기』에는 구체적인 내용을 별행장(別行章)에 미루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말하
    는 별기도 이 별행장을 말한다.(김천학, p.47 주 122) 참조)

問, 以何文證, 知乎一處卽一切處等耶?
答, 經云,“ 一一微塵中, 佛國海安住, 佛雲遍護念, 彌綸覆一
切.” 又云,“ 一毛孔中, 無量佛刹, 莊嚴淸淨, 曠然安住, 彼一
切處, 盧舍那佛, 於衆海中, 演說正法.” 況七處九會處而不該
攝十方法界耶.
問, 旣在摩竭說, 彼國衆生, 有預會不?
答, 慧苑師云,“ 設爾何失.”
問, 二俱有過. 若有預者, 經何不言耶, 若無預者, 何須此說耶?
答, 此有二義, 一爲表法, 二爲應機. 言表法者, 謂摩竭國, 是
諸國之上首, 第一會爲九會之最初, 故此說也. 言應機者, 會中
菩薩, 除十方新來, 餘皆隨願, 生於此國, 斯卽應機. 何必要列
凡俗方是所化之衆.〈云云. 後二門如別記說.〉

2. 육상의 의미[六相義]

 

세 가지 문으로 분별한다.

 

1) 이름을 풀이함

육(六)은 숫자이다. 모든 법의 본체적인 형상을 상(相)이라고 한다. 즉 총

상(總相)과 별상(別相), 동상(同相)과 이상(異相), 성상(成相)과 괴상(壞相)

을 말한다. 법장스님은 “총상이란 하나가 다덕(多德)95)을 포함하는 것이고,

별상이란 다덕이 동일하지 않은 것이니, 별상은 총상에 의지하여 저 총상

을 완성시킨다. 동상이란 다의(多義)가 서로 어긋나지 않으면서 함께 하나

의 총상을 완성시키는 것이고, 이상이란 다의가 서로 상대하여 각각 다른
것이다. 성상이란 이러한 여러 뜻이 연기(緣起)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고, 괴
상이란 여러 뜻이 각각 자법(自法)96)에 머물러서 옮겨가지 않는 것이다.”97)
라고 하였다.

六相義.98) 三門分別.
第一釋名者.
六者數名. 諸法體狀, 目之爲相. 謂總相別相, 同相異相, 成相
壞相. 法藏師云,“ 總相者, 一含多德故, 別相者, 多德非一故,
別依止總, 滿彼總故. 同相者, 多義不相違, 同成一總故, 異相
者, 多義相望, 各各異故. 成相者, 由此諸義緣起成故, 壞相者,
諸義各住自法, 不移動故.”
95) 다덕(多德):많은 구성요소를 의미한다. 여기서의 덕(德)은 존재를 구성하는 온
    갖 요소를 의미한다
96) 자법(自法):자기의 존재모습.
97)『화엄일승교의분제장(華嚴一乘教義分齊章)』권4 大45 p.507c6~10. 總相者 一含
    多德故 別相者 多德非一故 別依止總 滿彼總故 同相者 多義不相違 同成一總故
    異相者 多義相望 各各異故 成相者 由此諸義緣起成故 壞相者 諸義各住自法 
    移動故.
98) 韓2 p.355c7~358a17.

 

2) 본체를 드러냄

늠법사(懍法師)99)는 “통괄해서 보면 법계연기(法界緣起)100)를 본체로 삼
지만, 개별적으로 보면 총상은 중도(中道)101)를 본체로 삼고, 별상은 이제
(二諦)102)를 본체로 삼으며, 동상은 여여(如如)103)를 본체로 삼고, 이상은
만법(萬法)을 본체로 삼으며, 성상은 연집(緣集)104)을 본체로 삼고, 괴상은
연기(緣起)105)를 본체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第二出體者.
懍法師云, “通則法界緣起爲體, 別則總相以中道爲體, 別相以
二諦爲體, 同相以如如爲體, 異相以萬法爲體, 成相以緣集爲
體, 壞相以緣起爲體.”
100) 법계연기(法界緣起):법계무진연기(法界無盡緣起), 무진연기(無盡緣起), 십현연
     기(十玄緣起), 일승연기(一乘緣起)라고도 한다. 화엄교학의 연기론으로서, 우주
     만유가 서로 인과 관계를 맺고 있어서 하나가 곧 일체이고 일체가 곧 하나라는
     논리이다.
101) 중도(中道):단(斷)과 상(常)의 두 견해와 유(有)와 무(無)의 두 극단을 떠난 진
     리의 길.
102) 이제(二諦):진제(眞諦)와 속제(俗諦). 제는 실다운 진리, 변하지 않는 진리, 성자
     가 본 참다운 진리의 가르침이라는 뜻. 진제( Paramārtha-satya)는 승의제(勝義
     諦)·제일의제(第一義諦)라고도 한다. 사성제(四聖諦)의 고(苦)·집(集)·멸(滅)·
     도(道)의 사제(四諦)를 말하는데, 이 가르침이 진실되고 둘도 아니기 때문에 진
     제라고 부른다. 속제( samvrti-satya)는 세속제(世俗諦)·세제(世諦)라고도 하
     며, 세속의 법을 따라 생멸 등의 진리가 존재한다고 설하는 논리. 즉 세간의 사
     실과 속지(俗地)의 이치를 가리킨다.
103) 여여(如如):tathatā. 생멸변화하기 이전의 본래의 상태이며, 우주 만유(萬有)
     의 보편적인 상주 불변하는 본체. 여여는 진여(眞如)·여실(如實)·법계(法界)·
     법성(法性)·실제(實際)·실상(實相)·여래장(如來藏)·법신(法身)·불성(佛性)·
     자성청정신(自性淸淨身)·일심(一心)·부사의계(不思議界) 등으로 불린다.
104) 연집(緣集):여러 조건이 모여 새로운 존재를 성립시킴.
105) 연기(緣起):새로운 조건이 발생하여 존재를 변화시킴.

 

3) 문답으로 분별함

묻는다. 무슨 의도로 육상을 말하였는가?

답한다. 법장스님은 말하기를, “정집견(定執見)106)을 깨뜨려 연기가 원

융한[緣起圓融]107) 법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러한 이치가 앞에 드러나면,

일체의 미혹과 장애는 하나가 단절됨에 따라 일체가 단절되고, 수행의 공

덕은 하나가 이루어짐에 따라 일체가 이루어진다.”108)라고 하였다. 처음부

터 끝까지 모두 한결같고 원인과 결과가 동시이므로 차이가 없다.〈자세한 것
은 경전에 설한 것과 같다.〉
第三問答分別.
問, 以何意故, 辨六相耶?
答, 法藏師云,“ 破定執見, 以顯緣起圓融之法. 此理現前, 一
切惑障, 一斷一切斷, 行德, 一成一切成.” 始終皆齊, 因果同
時等.〈廣說如經〉
106) 정집견(定執見):확신하여 집착하는 견해.
107) 연기가 원융한[緣起圓融]:조건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 원만하게 융화되는 것.
108)『화엄경탐현기』권9 십지품 大35 p.282a21~23. “一切惑障,一滅一切滅, 一切行位,
     一成一切成”으로 다소 다르다.

 

묻는다. 육상은 4구(四句)와 8불(八不)109) 등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답한다. 불자생(不自生)과 불타생(不他生) 등의 4구110)와 불유(不有)와
불무(不無) 등의 4구111), 불생(不生) 등의 8불(八不)과 10불(十不)112) 등은

모두 현상[相]을 모아 원리[理]에 들어감으로써 하나의 적멸에 순응하는
것이다. 지금의 육상은 원리에 들어가 원융하고 저 현상을 상즉(相卽)하고
상입(相入)113)하게 하여 보현법(普賢法)114)을 성취하게 한다. 이러한 점에
차이가 있다.
問, 其四句八不等, 有何差別耶?
答, 不自生不他生等四句, 及不有不無等四句, 并不生等八不
十不等, 皆悉會事入理, 以順一寂. 今此入理圓融, 彼事使相卽
相入, 成普賢法. 有斯左右耳.
109) 8불(八不):여덟 개의 부정으로서 불생(不生), 불멸(不滅), 부단(不斷), 불상(不
     常), 불일(不一), 불이(不異), 불거(不去), 불래(不來)이다.
110) 불자생(不自生), 불타생(不他生), 불공생(不共生), 불무인생(不無因生)의 4구를
     말한다. 김천학, p.79 주 281) 참조.
111) 불유(不有), 불무(不無), 불역유불역무(不亦有不亦無), 불비유비무(不非有非無)
     의 4구를 말한다.
112) 10불(十不):8불(八不)에 다른 두 개의 부정을 더한 것이다. 『대지도론』 권34(大
     25 p.313a11~12)에서는 불수(不受), 부동(不動), 불착(不著), 불의(不依)를 더하여
     12불(十二不)을 설하고 있다.
113) 상입(相入):현상적으로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을 개념상에서 융합
     시킨다는 의미.
114) 보현법(普賢法):부처님의 자비가 지극한 것을 보현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보현
     법은 부처님의 지극한 자비라고 할 수 있다.

 

묻는다. 무엇 때문에 다만 여섯이고 더 많지도 적지도 않은가?

답한다. 무릇 모든 연기법은 세 가지 문을 필요로 한다. 첫째는 지말(枝

末)이 근본에 의지하여 일어남과 일어나지 않음이 있는 것이다.〈『논』에서 “별
상이 근본에 의지한다.”고 한 것은 총상에 의거하여 별상을 여는 것을 밝힌 것이며, “저 근
본을 가득 채운다.”고 한 것은 별상이면서 오히려 총상을 성립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115)

둘째는 저 일어난 바의 지말이 이미 근본을 띠고 있기 때문에 서로 상대하

여 (둘 사이에) 같음과 다름이 있는 것이다. 셋째는 저 근본을 띤 지말이 이

미 근본이 되기 때문에 본체에 대해 보존됨과 무너짐이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세 가지를 갖추지 못하면 연기법을 성립시키지 못한다. 그 세 가지에 각

각 둘이 있기 때문에 다만 여섯이라고 하였다.

問, 何故唯六不多不小耶?
答, 汎諸緣起法, 要有三門. 一末依於本, 有起不起.〈謂論云, “別
依本者, 明依總開別, 滿彼本者, 還能成總也.”〉 二彼所起末, 旣帶於本,
是故相望, 有同有異. 三彼帶本之末, 旣爲本收, 是故當體, 有
存有壞. 若不具此三, 不成緣起. 三中各二故, 但唯六.

 

묻는다. 연기법이 일체의 장소에 통한다고 하는데, 그 뜻을 완전히 이해

하기 어려우니 그 모습[相]을 분명하게 설명해 주기 바란다.

답한다. 법장스님이 지금 또 조건[緣]으로써 집을 이루는 비유를 간략히

들어 설명하였다.116)
116) 이 아래의 문답은 법장의『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大45 p.507c20~509a3)의 내
     용과 거의 일치한다.

 

묻는다. 무엇이 총상(總相)인가?

답한다. 집[舍]이 그것이다.

 

묻는다. 집은 단지 서까래 등의 여러 조건[緣]들로 이루어진 것일 뿐인

데 무엇이 집인가?

답한다. 서까래가 곧 집이다. 왜냐하면 서까래가 있어야만 집을 지을 수

있고, 만약 서까래가 없으면 집을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서

까래를 얻은 때라면 집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묻는다. 만약 서까래가 완전히 독자적으로 집을 지을 수 있다면 기와 등

이 없어도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인가?

답한다. 아직 기와 등이 없는 때라면 서까래가 아니므로 지을 수 없다는

것이지, 서까래인데 지을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지금 지을 수 있다고 말

한 것은 단지 서까래가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일 뿐이지, 서까

래가 아닌데 집을 짓는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서까래는 원인과

조건이기 때문이다. 아직 집을 완성하지 못했을 때에는 원인과 조건이 없

기 때문에 이것은 서까래가 아니다. 만일 이것이 서까래라면 반드시 집을

전체적으로 완성하겠지만, 만일 완전히 지을 수 없다면 서까래라고 이름할

수 없다.

 

묻는다. 만약 서까래 등의 여러 조건들이 각자 작은 힘을 내어 집을 짓되

완전하게 짓지 못한다면 무슨 잘못이 있는가?

답한다. 단(斷)과 상(常)의 잘못이 있다. 만약 집을 완전하게 이룰 수 없

고 작은 힘뿐이라면 여러 조건들 각각의 힘이 부족한 것이다. 이 여러 개

의 작은 힘으로는 하나의 완전한 집을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

(斷)이다. 모든 조건들의 힘이 부족하여 집이 완전하게 될 수 없는데도 완

전한 집이 있다고 집착한다면 원인도 없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상(常)이다. 또한 만약 완전하게 이루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의 서

까래가 없는 때에도 집이 완성되어 있는 것 같지만 집이 완전히 이루어지

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작은 힘으로 완전하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님

을 알 수 있다.

 

묻는다. 하나의 서까래가 없을 때에는 왜 집이 성립되지 않는가?

답한다. 단지 이것은 망가진 집이고, 훌륭한 집이 아니다. 그러므로 훌륭

한 집은 온전히 하나의 서까래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하나

의 서까래에 달려 있다면 서까래가 곧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묻는다. 이미 집이 곧 서까래라는 것은 나머지 널판자와 기와 등도 곧 서

까래라는 것인가?

답한다. 총괄하면 모두 서까래이다. 왜냐하면 만약 서까래를 없애버리면

(나머지 조건들도)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서까래가 없으면

집이 성립될 수 없고, 집이 성립되지 못하면 들보나 기와 등의 명칭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들보와 기와 등은 곧 서까래이다. 만약 (들보와 기와 등

이 서까래와) 상즉하지 않는다면 집은 성립할 수 없고 들보와 기와 등도 모

두 성립하지 않는다. 이제 이미 함께 성립되었기 때문에 상즉함을 알 수 있

다. 하나의 서까래가 이미 이러하니 나머지 서까래도 따라서 그러하다. 그

러므로 일체의 연기법이 성립되지 않으면 그만이겠지만 성립된다면 서로

녹아 융통하여 걸림 없이 자재하며 원만하고 지극해서 헤아리기 어렵고

인식 밖에 벗어나 있다. 법성(法性)의 연기(緣起)는 일체처에 통한다. 준하

여 알라.

問, 緣起法, 一切處通, 難窮其趣, 冀礭陳其相也.
答, 法藏師, 今且略就緣成舍辨.
問, 何者是總相?
答, 舍是.
問, 此但椽等諸緣, 何者是舍耶?
答, 椽卽是舍. 何以故. 爲椽令獨能作舍, 若離椽, 舍卽令不成
故. 若得椽時, 卽得舍耶.
問, 若椽全自獨作舍者, 未有瓦等, 亦應作舍?
答, 未有瓦等時, 不是椽故不作, 非謂是椽而不能作. 今言能
作者, 但論椽能作, 不說非椽作. 何以故. 椽是因緣. 由未成
舍時無因緣故, 非是椽也. 若是椽者, 其畢全成, 若不全作,
不名爲椽.
問, 若椽等諸緣, 各出小力作, 不全作者, 有何過失?
答, 有斷常過. 若不全成, 但小力者, 諸緣各少力. 此多箇少,
不成一全舍. 故是斷也. 諸緣並少力, 皆無有全, 執有全舍者,
無因有. 故是常也. 又若不全成者, 去却一椽時, 舍應猶成在,
舍旣全不成. 故知非小力並全成故.
問, 無一椽時, 豈非舍耶?
答, 但是破舍, 無好舍也. 故知好舍全屬一椽, 旣屬一椽. 故知
椽卽是舍也.
問, 旣舍卽是椽者, 餘栿瓦等, 應卽是椽耶?
答, 總並是椽. 何以故. 却椽卽無故. 所以然者. 若無椽, 卽
舍不成, 舍不成故, 不名栿瓦等. 是故栿瓦等卽是椽也. 若不
卽者, 舍卽不成, 栿瓦等並皆不成. 今旣並成故, 故知相卽
耳. 一椽旣爾, 餘椽例然. 是故一切緣起法, 不成卽已, 成則
相容融, 無礙自在, 圓極難思, 出過情外. 法性緣起, 一切處.
准知.

 

묻는다. 둘째 별상(別相)이란 무엇인가?

답한다. 서까래 등의 여러 조건들이 전체와 구별되기 때문이다. 만약 구

별되지 않는다면 전체의 의미는 성립되지 않는다. 개별이 없을 때는 전체

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본래 개별로써 전체를 이루기 때문

에 개별이 없으면 전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개별이란 곧 전체가

있기 때문에 개별이 되는 것이다.

 

묻는다. 만약 전체가 그대로 개별이라면 전체가 성립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답한다. 전체가 그대로 개별이기 때문에 전체가 성립될 수 있다. 마치 서

까래가 곧 집이므로 총상이라고 하며, 집이 곧 서까래이므로 별상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만약 집과 상즉하지 않는다면 서까래가 아니고, 만약 서까

래와 상즉하지 않는다면 집이 아니니, 총상과 별상은 상즉한다. 잘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묻는다. 만약 상즉한다면 왜 별상을 설하는가?

답한다. 상즉하기 때문에 별상이 성립된다. 만약 상즉하지 않는다면 총

상은 별상의 밖에 있게 되므로 총상이 아니고, 별상은 총상의 밖에 있게 되

므로 별상이 아니다.〈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묻는다. 만약 구별하지 않는다면 무슨 잘못이 있는가?

답한다. 단(斷)과 상(常)의 잘못이 있다. 만약 개별로서의 서까래와 기

와가 없다면 그 때문에 전체로서의 집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

은 단(斷)이다. 만약 개별적인 서까래나 기와 등이 없는데 전체로서의 집이

있다고 한다면 원인도 없이 집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상

(常)이다.

問, 第二別相者, 何耶?
答, 椽等諸緣, 別於總故. 若不別者, 總義不成, 由無別時, 卽
無總故. 此義云何? 本以別成總, 由無別故, 總不成也. 是故別
者, 卽以總爲別也.
問, 若總卽別者, 應不成總耶?
答, 由總卽別故, 是故得成總. 如椽卽是舍, 故名總相, 卽是椽
故, 名別相. 若不卽舍, 不是椽, 若不卽椽, 不是舍, 總別相卽.
可准思之.
問, 若相卽者, 云何說別?
答, 只由相卽, 是故成別. 若不相卽者, 總在別外, 故非總也,
別在總外, 故非別也.〈思之可解.〉
問, 若不別者, 有何過失耶?
答, 有斷常過. 若無別椽瓦, 無別椽瓦故, 不成總舍. 故是斷也.
若無別椽瓦等, 而有總舍者, 無因有舍. 故是常也.

 

묻는다. 셋째 동상(同相)이란 무엇인가?

답한다. 서까래 등의 여러 조건들이 조화되어 집을 지을 때 서로 어긋나

지 않으므로 그 모두를 집의 조건이라고 이름하고, 다른 것을 짓는 것이 아

니므로 동상이라고 이름한다.

 

묻는다. 이것은 총상과 어떻게 다른가?

답한다. 총상은 오직 하나의 집에 대해서만 말한 것이다. 지금 여기서의

동상은 서까래 등 여러 조건들에 의거한 것이다. 비록 (조건들의) 본체는

각각 다르지만 집을 완성하는 능력의 측면에서는 그 뜻이 같기 때문에 동

상이라 이름 한다.

 

묻는다. 만약 그 뜻이 같지 않다면 무슨 잘못이 있는가?

답한다. 만약 그 뜻이 같지 않다면 단(斷)과 상(常)의 잘못이 있다. 왜냐

하면 만약 그 뜻이 같지 않다면 서까래 등의 여러 조건들이 서로 위배되어

집을 지을 수 없어서 집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斷)이다. 만약

서로 어긋나 집을 지을 수 없는데도 집이 있다고 집착한다면 원인도 없이

집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상(常)이다.

問, 第三同相者, 何耶?
答, 椽等諸緣, 和同作舍, 不相違故, 皆名舍緣, 非作餘物故,
名同相也.
問, 此與總相, 何別耶?
答, 總相, 唯望一舍說. 今此同相, 約椽等諸緣. 雖體各別, 成
舍力義齊故, 名同相也.
問, 若不同者, 有何過耶?
答, 若不同者, 有斷常過也. 何者. 若不同者, 椽等諸緣, 互相
違背, 不得作舍, 舍不得有. 故是斷也. 若相違不作舍, 而執有
舍者, 無因有舍. 故是常也.

 

묻는다. 넷째 이상(異相)이란 무엇인가?

답한다. 서까래 등의 여러 조건들이 각자의 형태와 종류에 따라 서로 다

르기 때문이다.

 

묻는다. 만일 다르다면 같지 않은 것이 아닌가?

답한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것이다. 만약 다르지 않다면 서까래가 1장 2

척일 경우 기와도 똑같은 크기가 되어서 본래의 조건법[本緣法]117)을 무너

뜨리기 때문에 앞에서 모두 함께 집을 완성한다고 한 뜻을 잃게 된다. 지금

은 이미 집을 완성하여 똑같이 조건이라고 이름하였지만 다르다는 것을 알

것이다.

117) 본래의 조건법[本緣法]: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조건으로서의 존재.

 

묻는다. 이것은 별상과 어떻게 다른가?

답한다. 앞의 별상이라는 것은 다만 서까래 등의 여러 조건들이 하나의

집과 구별되기 때문에 별상이라고 하였고, 지금 이상이라고 하는 것은 서까

래 등의 여러 조건들이 번갈아가며 서로 상대하여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묻는다. 만약 다르지 않다면 무슨 잘못이 있는가?

답한다. 단(斷)과 상(常)의 잘못이 있다. 왜냐하면 만약 다르지 않다고

한다면 기와는 곧 서까래와 똑같이 1장 2척이 되어야 하므로 본래의 조

건법을 무너뜨리게 되어 집을 완성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斷)

이다. 만약 본래의 조건법을 무너뜨려 집을 완성하지 못하였는데 집이

있다고 집착한다면 원인도 없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상(常)이다.

問, 第四異相者, 何耶?
答, 椽等諸緣, 隨自形類, 相差別故.
問, 若異者, 應不同耶?
答, 只由異故, 所以同耳. 若不異者, 椽旣丈二, 瓦應亦爾, 壞
本緣法故, 卽失前齊同成舍義也. 今旣舍成, 同名緣者, 當知
異也.
問, 此與別相, 何異耶?
答, 前別相者, 但椽等諸緣, 別於一舍, 故說別相. 今異相者,
緣等諸緣, 迭互相望, 各各異故.
問, 若不異者, 何失?
答, 有斷常失也. 何者. 若不異者, 瓦卽同椽, 丈二壞本緣法,
不成舍. 故是斷也. 若壞緣不成舍, 而執有舍者, 無因有. 故
是常也.

 

묻는다. 다섯째 성상(成相)이란 무엇인가?

답한다. 이러한 여러 조건들로 말미암아 집의 의미가 성립된다. 집을 완

성하기 때문에 서까래 등을 조건이라고 하였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집과

조건의) 두 가지가 모두 성립되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 성립되었기 때문에

성상임을 알 수 있다.

 

묻는다. 지금 서까래 등의 여러 조건들을 보면 각기 자신의 존재[自法]에

머물러 있어 본래 집을 짓지 않았다. 무슨 원인으로 집의 의미가 성립된다

고 하는가?

답한다. 단지 서까래 등의 여러 조건들이 짓지 않기 때문에 집의 의미가

성립될 수 있다. 왜냐하면 만약 서까래가 집을 짓는다면 본래의 조건법[本

緣法]을 잃기 때문에 집의 의미가 성립될 수 없다. 지금은 집을 짓지 않기

때문에 서까래 등의 여러 조건들이 바로 앞에 드러나 있다. 이렇게 드러나

있기 때문에 집의 의미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만약 집을 짓지 않았

다면 서까래 등은 조건이라 이름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이미 조건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집을 지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묻는다. 만약 (집의 의미가) 성립되지 않는다면 무슨 잘못이 있는가?

답한다. 단(斷)과 상(常)의 잘못이 있다. 왜냐하면 집은 본래 서까래 등의

여러 조건들로 성립되는데 지금은 이미 모두가 집으로 되지 못하였다. 그

러므로 이것은 단(斷)이다. 본래 집이 완성되어야 서까래라고 이름하는데

지금은 이미 집을 짓지 않았기 때문에 곧 서까래도 없으니, 이 또한 단(斷)

이다. 만약 집이 완성되지 않는다면 집은 원인도 없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상(常)이다. 또한 서까래가 집을 짓지 않았는데 서까래라는 이름을

얻었다면, 이 또한 상(常)이다.

問, 第五成相者, 何耶?
答, 由此諸緣, 舍義成故. 由成舍故, 椽等名緣. 若不爾者, 二
俱成. 今現得成, 故知成相耳.
問, 見椽等諸緣, 各住自法, 本不作舍. 何因得有舍義成耶?
答, 只由椽等, 諸緣不作故, 舍義得成. 所以然者. 若椽作舍者
卽失本緣法故, 舍義不得成. 今由不作故, 椽等諸緣現在前. 由
此現前故, 舍義得成矣. 又若不作舍, 椽等不名緣. 今旣得緣
名, 明知定作舍也.
問, 若不成者, 何失?
答, 有斷常過. 何者. 舍本作椽等諸緣成, 今旣並不得有舍.
故是斷也. 本以成舍名爲椽, 今旣不作舍, 故卽無椽, 亦是斷.
若不成者, 舍無因有. 故是常也. 又椽不作舍, 得椽名者, 亦
是常也.

 

묻는다. 여섯째 괴상(壞相)이란 무엇인가?

답한다. 서까래 등의 여러 조건들이 각각 자신의 존재에 머물러 있어 본

래 집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묻는다. 지금 서까래 등의 여러 조건들을 집을 지어 완성한 것을 보는데,

무엇 때문에 본래 짓지 않는다고 하는가?

답한다. 다만 짓지 않기 때문에 집의 존재[舍法]가 성립된다. 만약 집을

짓는다면 자신의 존재에 머물지 않는 것이니, 집의 뜻은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짓는다는 존재를 잃게 되어 집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이미 집이 성립되었으므로 짓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묻는다. 만약 짓는다면 무슨 잘못이 있는가?

답한다. 단(斷)과 상(常)의 두 가지 잘못이 있다. 만약 서까래가 짓는다고

말한다면 곧 서까래의 존재를 잃는 것이다. 서까래의 존재를 잃기 때문에

집은 조건이 없게 되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斷)이다. 만약

서까래의 존재를 잃고도 집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서까래가 없이 집이 존재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상(常)이다.

問, 第六壞相者, 何耶?
答, 椽等諸緣, 各住自法, 本不作故.
問, 現見椽等諸緣, 作舍成就. 何故, 乃說本不作耶?
答, 只由不作, 舍法得成. 若作舍者, 不住自法者, 舍義卽不成
何以故. 作者失法, 舍不成故. 今旣舍成, 明知不作也.
問, 若作者, 有何失?
答, 有斷常二失. 若言椽作者, 卽失椽法. 失椽法故, 舍卽無緣,
不得有. 故是斷也. 若失椽法, 而有舍者, 無椽有. 故是常也.

 

묻는다. 어떤 이치에 의거하여 육상을 밝힌 것인가?

답한다. 원효스님은 말했다. “‘이 가운데 총상과 별상의 두 가지 상은 법

계연기의 도리를 드러낸 것이니, 그 개별의 조건들로써 전체의 덕을 일으

킨 것이다. 동상과 이상의 두 가지 상은 그 연기가 상응(相應)하는 도리를

밝힌 것이다.〈별상은 동상이 없으면 총상을 이루지 못하고, 동상은 이상이 없으면 완전
히 성립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별상 가운데에 동상과 이상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상응하여
하나의 총상이 완전히 성립된다.118)〉성상과 괴상의 두 가지 상은 이 연기가 단
(斷)과 상(常)의 양 극단을 떠난 도리를 드러낸 것이다.〈성립되기 때문에 없는
것이 아니며, 무너지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단지 성립되기만 하고 무너지
지 않으면 늘어나기만 하는 극단에 떨어지고, 오직 무너지기만 하고 성립되지 않으면 줄어
들기만 하는 극단에 떨어진다. 지금은 성립됨과 무너짐이 있으므로 두 극단을 떠났다. 두
극단을 떠났기 때문에 이것이 곧 중도이다. 성립됨도 있고 무너짐도 있는 것은 하나의 중
간이 아니라 이것은 깊고 깊은 연기의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119)
問, 約何道理, 明六相耶?
答, 元曉師云, “此中總別二相, 標其法界緣起道理, 以其別緣,
而起總德. 同異二相, 明其緣起相應道理.〈以別無同相, 不成總故,
同無異相, 不成滿故. 以有別中有同異相, 乃得相應, 成一總滿〉 成壞二相,
顯此緣起, 離邊道理.〈以成故非無, 以壞故非有. 若但成非壞, 墮增益邊,
唯壞無成, 墮損減邊. 今有成壞, 故離二邊. 二邊離故, 卽是中道, 有成有壞, 亦
非一中, 是謂甚深緣起道理.〉”
118) 원문에서 주(註)로 처리된 이 부분과 아래의 부분은 원효스님의 글에 대해 표원
     이 부가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인 것 같다.
119) 이 부분은 출처가 불분명하다. 다만 이와 똑같은 문장이 수령(壽靈)의『화엄오
     교장지사(華嚴五敎章指事)』중권(大72 p.252b)에 실려 있다.(김천학, p.95 주 
     373) 참조)

 

묻는다.『논』에서 “현상[事]은 제외하니, 현상[事]이란 음계입(陰界

入)120) 등이다.”121)라고 하였으니 무슨 뜻인가?

답한다. 법장스님은 말했다. “이는 그 뜻을 분별하고 정한 것으로서, 도

리에 의거하여 융통(融通)을 설한 것이지 오음(五陰)122) 등의 현상의 모습

[事相]을 분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외한 것이다.”123) “위에서 ‘언설의

해석이다’라고 한 것은 부처님의 교설임을 정한 것이다. 이 가운데에서 육

상의 언설을 살펴본다고 하는 것은 경문을 해석하기 위해서이니, 마땅히

이 뜻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이 부분을 해석하면서 육상을 풀이한 것은 이

것이『십지경』의 글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논주(論主)124)가 해석한 뜻일
뿐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125)〈이 글은 아래 경전의 제4 대원(大願)의 첫 부분에
나오는 것으로서 경전 해석가의 자설(自說)이지 논주가 마음대로 지은 것이 아니다.126)

“또한 이 가운데 동상과 이상은 진역『화엄경』에서의 유상(有相)과 무상

(無相)이다.127) 이는 다른 종류이지만 각각 총상을 띠고 있기 때문에 ‘유’는

‘동’이라 했고, 그러나 각각은 서로 (자성이) 없기에 ‘무’는 ‘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128)

問, 論云,“ 除事, 事謂陰界入等,” 何耶?
答, 藏師云,“ 此辨定其義, 謂約道理說融通, 非是陰等事相中
辨, 故除簡之.”“ 上言, 言說解釋者, 是定敎, 謂於此中, 安此
六相之言說, 爲欲釋經文, 應知此意. 又釋此中釋六相, 非是此
處經文, 但是論主解釋之意, 應知.”〈謂此文, 出在下經第四大願初中,
經家自說, 非是論主率意而作〉,“ 又此中同相異相者, 晋經, 有相無相
者. 以於別類, 各帶於總, 名有是同, 然各互無, 名無是異. 故
不相違.”
120) 음계입(陰界入):모든 삼라만상을 세 가지로 나눈 것으로서 음(陰)은 5온(蘊),
     계(界)는 18계(界), 입(入)은 12처(處)를 의미한다. 오온은 일체 유위법을 모아
     다섯 가지 종류로 구별한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을 말한다. 12처
     는 주관에 속하는 감각기관인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6근(根)과 객관에 속하는 지각되는 대상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
     (觸)·법(法)의 6경(境)을 합친 것이다. 그리고 18계는 감각기관인 안·이·비·
     설·신·의의 6근과, 그 지각 대상인 색·성·향·미·촉·법의 6경과, 이 감각기관
     과 대상을 연하여 생긴 인식 주관인 안·이·비·설·신·의의 6식(識)을 합친 것
     이다.
121)『십지경론(十地經論)』권1 大26 p.125a1. 除事, 事者, 謂陰界入等.
122) 오음(五陰):오온(五蘊, pañca-skandha). 물질계와 정신계의 양면에 걸치는 일
     체 유위법(有爲法)을 모아 다섯 가지 종류로 구별한 색(色)·수(受)·상(想)·행
     (行)·식(識)의 총칭.
123)『화엄경탐현기』권9 십지품 大35 p.282b14~15. 此辨定其義, 謂約道理說融通, 
     非是陰等事相中辨, 故除簡之.
124) 논주(論主):여기서의 논(論)은『십지경론』이므로 논주는『십지경론』의 저자인
     세친을 말한다.
125)『화엄경탐현기』권9 십지품 大35 p.282b10~13. 此言說解釋者, 是定教. 謂於此
     中, 安此六相之言說, 爲欲解釋經文, 應知此意. 又釋此中釋六相, 非是此處經文, 但
     是論主解釋之意, 應知.
126)『화엄경탐현기』권9 십지품 大35 p.282a28~29. 此文 出在下經第四大願中, 經家
     自說, 非是論主, 率意而作.
127)『대방광불화엄경』권23 십지품 大9 p.545b27~28. 總相, 別相, 有相, 無相, 有成,
     有壞.
128)『화엄경탐현기』권9 십지품 大35 p.308a24~26. 論中同相異相, 此名有相無相者,
     以於別類, 各帶於總, 名有是同, 然各互無, 名無是異, 故不相違.

 

묻는다.『논』에서 “세계의 성괴(成壞)와 같다”129)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답한다. 원효스님은 말했다. “쉬운 것으로 어려운 것을 드러낸 것이니,

삼천의 세계가 하나의 세계를 성립시키는 것처럼 곧 성(成)이면서 곧 괴

(壞)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구절을 설한 것은 현상을 들

어 원리를 비유한 것이니, 세계가 성립될 때는 풍륜(風輪)130) 등의 법이 차

례로 모여서 세계가 있고, 세계가 무너질 때는 산과 바다 등의 사물이 차례

로 흩어져 없어져 세계가 없는 것과 같다. 십구의(十句義)131)의 전체와 개

별도 그 뜻이 서로 비슷하다. 개별을 묶어서 전체를 성립시키는 것은 세계

가 성립되는 것과 유사하여 없다고 말할 수 없고, 전체를 흩어서 개별을 만

드는 것은 세계가 무너지는 것과 유사하여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세계

의 성괴는 현상의 성괴이므로 성립될 때에는 무너짐이 아니고, 무너질 때

에는 성립이 아니다. 육상의 성괴는 원리의 성괴이므로 성립이 곧 무너짐

이요 무너짐이 곧 성립이다. 단지 약간 비슷한 점을 취하여 비유를 삼았을

따름이다.”132)

129)『십지경론』권1 大26 p.125a5. 如世界成壞.
130) 풍륜(風輪):수미산의 맨 밑에 있으면서 세계를 바치고 있는 네 종류의 대륜(大
     輪) 증의 하나이다. 그 네 종류는 아래부터 허공륜(虛空輪), 풍륜(風輪), 수륜(水
     輪), 금륜(金輪)의 순서로 있다고 한다.
131) 십구의(十句義):구의(句義)는 pada-artha의 한역으로서, 말에 의해 나타난 대
     상이라는 뜻이다. 십구의는 존재가 생겨나고 없어지는 원리를 열 가지 말의 범
     주에 의해 설명하는 것이다. 그 열 가지는 실(實), 덕(德), 업(業), 동(同), 이(異),
     화합(和合), 유능(有能), 무능(無能), 구분(俱分), 무설(無說)이다.
132) 이 부분은 출처가 불분명하다. 다만 이와 똑같은 문장이 수령(壽靈)의『화엄오교
     장지사(華嚴五敎章指事)』중권(大72 252c)에 실려 있다.(김천학, p.98 주 391) 참조)

 

법장스님은 말했다. “백억 개의 사천하(四天下)133)가 모여 하나의 사바세

계를 성립시키듯이 드러냄을 나타낸 것을 간략히 말하여 성(成)이라고 한

다. 만일 분별하여 자세히 말하면 백억 개의 차별된 것이 하나의 사바세계

로 하여금 의지하여 머물 데가 없게 하므로 괴(壞)라고 한다.”134)

133) 사천하(四天下):수미산의 사방에 있다고 하는 네 개의 대륙. 사대주(四大洲)라
     고도 한다. 사천하는 남섬부주(南贍部洲), 동승신주(東勝身洲), 서우화주(西牛貨
     洲), 북구로주(北俱盧洲)이다.
134)『화엄경탐현기』권9 십지품 大35 p.282b20~22. 如百億四天下, 合成一娑婆界, 
     略言標顯爲成, 若分別廣說, 百億差別, 合一娑婆無所依住, 故爲壞.

 

수나라의 혜원(慧遠)법사135)는 말했다. “‘현상[事]은 제외하니, 현상[事]

이란 음계입(陰界入) 등이다.’ 피차가 서로 상대하니 개별 현상은 막히고

걸림이 있어 이러한 육상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제외한다고 한 것

이다. 만약 현상의 모습[事相]을 포섭하여 본체의 뜻을 따른다면 음과 계

와 입 등의 하나하나에 모두 무량함을 갖추게 된다. 지금은 또한 하나의 색

음(色陰)136)에서 동일한 몸에 갠지스강의 모래알 같이 많은 불법을 갖추고

있으니, 고(苦), 무상(無常), 공(空), 무아(無我) 등의 일체 불법을 말한다.

이러한 모든 법은 의미는 다르지만 본체는 같으며 서로 연집(緣集)하여 하

나의 형상을 성립시키니, 그 형상을 총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총상에서

모든 형상을 내놓으니, 고(苦)의 형상에서부터 진실인 연기(緣起)의 형상

에까지 이르르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한량없는 차별의 형상을 별상이라고

한다. 고(苦) 등의 법에는 모두 형상의 뜻이 있으므로 이를 동상이라고 한

다. 형상의 뜻이 비록 같지만 저 형상의 고(苦)는 형상의 무상(無常)과 다

르므로 이를 이상이라고 한다. 의미의 문은 비록 다르지만 그 본체는 다르

지 않아서 형상이 융섭되어 하나가 되기 때문에 성상이라고 하니, 성상은

간략함[略]137)과 같다. 본체는 비록 구별되지 않지만 뜻의 문은 항상 달라

서 여러 형상이 되어, 그것을 가리켜 괴상이라 하니, 괴상은 자세함[廣]138)

과 같다. 실제에 근거해서 말하면, 앞에서 말한 네 개의 문은 의미를 충분

히 나타냈고, 같고 다름에 의거하여 (성상과 괴상의) 두 문이 성립되기 때

문에 육(六)이 된다. 이것이 바로 대승의 깊은 강령이며 원만하고 원통한

묘문이다.”139)라고 하였다.〈늠법사도 모든 문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지만 번잡
하여 생략한다.〉

135) 혜원(慧遠)법사:523~592. 흔히 정영사(淨影寺) 혜원(慧遠)이라 부른다. 13세에
     출가하였다. 북주 무제의 폐불 칙령에 맞서 환속한 이후 무제를 찾아가 논박하
     도 하였다. 그 후 은거하였다가 무제가 죽고 난 이후 문제에게 존경을 받았다.
     저서로는『대승의장(大乘義章)』,『십지경론의기(十地經論義記)』,『화엄경소(華
     嚴經疏)』,『대반열반경의기(大般涅槃經義記)』,『법화경소(法華經疏)』,『유마경의
     기(維摩經義記)』,『승만경의기(勝鬘經義記)』,『무량수경의소(無量壽經義疏)』등
     이 있다.
136) 색음(色陰):오온(五蘊)의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 중에서 색(色)
     만을 표현한 것이다.
137) 간략함[略]:위에서 법장이 ‘간략히 표현하면 성(成)이 된다.’고 한 의미와 같다.
138) 자세함[廣]:위에서 법장이 ‘자세히 말하면 괴(壞)가 된다.’고 한 의미와 같다.
139)『대승의장(大乘義章)』 권3 大44 p.524a8~b15의 내용을 줄인 것이다.

 

법장스님은 아래와 같이 게송을 지었다.140)

하나가 곧 여럿을 갖추니 총상이라 이름하고

여럿은 곧 하나가 아니니 이는 별상이네.

여러 종류 스스로 전체에서 동상을 이루고

각각 몸은 달라서 같은 데서 이상을 나타내네.

하나와 여럿의 연기의 이치 오묘하게 성상이 되고

괴상은 자기 법에 머물러 항상 짓지 않네.

오직 지혜의 경계일 뿐 현상적인 인식이 아니니

이러한 방편으로 일승에 모이네.

140) 아래의 게송은『화엄일승교의분제장(華嚴一乘教義分齊章)』권4(大45 p.508c24~
     509a3)에 있는 것이다. 이 게송은 원래 법장의 스승인 지엄(智儼, 602~668)이 지
     은 것이라고 한다.(김천학, p.101 주 410) 참조)

問, 論云,“ 如世界成壞者,” 何義耶?
答, 曉云,“ 以易顯難, 如三千界成一世界, 卽成卽壞. 易可
了知. 又說此句擧事喻理, 謂如世界成時, 風輪等法, 次第聚
集, 則有世界, 世界壞時, 山海等物, 次第散滅, 則無世界. 十
句總別, 其義相似. 攬別成總, 似世界成, 不可說無, 散總作
別, 似世界壞, 不可說有. 但世界成壞, 是事成壞故, 成時非
壞, 壞時非成. 六相成壞, 是理成壞故, 成卽是壞, 壞卽是成.
但取小分相似爲喻.” 藏師云,“ 如百億四天下, 合成一裟婆
界. 略言標顯爲成. 若分別廣說, 百億差別, 令一娑婆無所依
住故爲壞.” 隋慧遠法師云, “‘除事, 事謂陰界入等’, 彼此相
望, 事別隔礙, 不具斯六, 所以除之. 若攝事相, 以從體義, 陰
界入等一一之中, 皆具無量. 今且就一色陰之中, 同體具有恒
沙佛法. 謂苦無常空無我等一切佛法. 是等諸法, 義別體同,
其相緣集, 以成一色, 色名爲總. 就此總中, 開出諸色, 所謂
苦色, 乃至眞實緣起之色. 如是無量差別之色, 是名爲別. 苦
等法上, 皆有色義, 名之爲同. 色義雖同, 然彼色苦, 異色無
常, 是名爲異. 義門雖殊, 其體不別, 色攝爲一, 是故爲成, 成
猶略也. 體雖不別, 義門恒異, 得爲多色, 目之爲壞, 壞猶廣
也. 拷實論之, 說前四門, 辨義應足, 爲約同異, 成前二門, 故
有六也. 此乃大乘之淵綱, 圓通之妙門.”〈懍法師諸門廣述, 繁言故
略之.〉 藏法師, 乃爲頌曰,
一卽具多名總相, 多卽非一是別相.
多類自同成於總, 各體別異現於同.
一多緣起理妙成, 壞住自法常不作.
唯智境界非事識, 以此方便會一乘.

 

3. 십전을 세는 비유의 의미[數十錢喻義]

 

세 가지 문으로 분별한다.

 

1) 이름을 풀이함

수(數)는 수량이니 1부터 10에 이르는 것 등이다. 일은 숫자의 명칭으로,

한번에 두 원만한 숫자에 의지하여 십을 나타내니, 다함이 없음을 나타

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전(錢)은 재화로서 개원보(開元寶)141) 등을 말한다.

유(喻)는 비유하고 견주는 것이다. 법의 유사한 점을 서로 견주어 보는 것

이 유(喩)의 의미이다.

數十錢喻義.142) 三門分別.
第一釋名者.
數者數量也, 以一至十等也. 一者數名. 依一周圓數, 以表十
也, 欲表無盡故. 錢者財也, 謂開元寶等也. 喻者比也, 類也.
況法相似, 是喻義也.
141) 개원보(開元寶):개원통보(開元通寶)의 줄임말로서 당나라의 대표적인 동전이
     다. 여기서의 개원(開元)은 연호가 아니고 개국건원(開國建元)을 의미한다. 이
     동전은 당나라 초기인 621년(武德 4) 처음으로 주조 발행되었고, 그 후 역대 왕
     조 화폐의 표준이 되었다.
142) 韓2 p.358a18~360b8.

 

2) 본체를 드러냄

막힘 없고 걸림 없는 연기의 법계를 본체로 삼는다.

第二出體者.
以無障無礙緣起法界爲體.

 

3) 문답으로 분별함

묻는다. 돈을 세는 비유로 무슨 뜻을 드러내고자 하는가?

답한다. 법장스님은 “대연기다라니법(大緣起陀羅尼法)을 나타내고자 하

기 때문이다.”143)라고 하였고, 의상(義相)스님144)은 “연기실상다라니법(緣
起實相陀羅尼法)을 보이고자 한다.”145)고 하였으며, 원효스님은 “보법(普
法)146)의 뜻을 말한 것이다.”147)라고 하였다.
143)『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에서 “묻는다. 이미 일(一)이라고 말했으면 왜 일 가
     운데에 십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답한다. 대연기다라니법이다. 만약 일이 없
     다면 일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음을 확실히 아는 것이다.”(大45
     p.503c4~6. 問, 旣言一者, 何得一中有十耶? 答, 大緣起陀羅尼法, 若無一卽一切不成
     故, 定知如是.)라고 하였다.
144) 의상(義相)스님:625~702. 신라 화엄종의 개창자. 황복사에서 출가한 후 당에
     유학하여 지엄에게서 화엄을 배우고 『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를 지어 일(一)
     과 다(多)가 걸림 없이 거듭 전개되는 법계연기 사상을 정립하였다. 귀국한 후
     부석사(浮石寺)를 비롯한 여러 절을 세우고 많은 제자들과 화엄사상을 연마하
     고 정진하며 화엄종을 펴 나갔다. 한편으로 교단에서 관음신앙과 미타신앙을
     선도하여 사람들이 불교 신앙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하였다. 제자들이 확
     장하여 창건하고 운영한 화엄십찰은 통일신라 불교계의 중추를 이루었고 이후
     에도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일승법계도』외에『아미타경의기』가 저술
     로 알려졌고,「백화도량발원문」등 의상의 사상을 담고 있다고 알려진 저술이
     몇 개 있지만 저술은 많지 않다. 제자로는 지통(智通) 진정(眞定) 도신(道身) 표
     훈(表訓) 등 여러 뛰어난 제자가 있다.
145)『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권1에서 “만약 연기실상다라니법을 보려면 먼저 십
     전을 헤아리는 법을 깨달아야 한다.”(韓2 p.6a22~23. 若欲觀緣起實相陀羅尼法者,
     先應覺數十錢法.)라고 하였다.
146) 보법(普法):화엄 교학에서 말하는 별교일승(別敎一乘). 일체법이 서로 투영되
     고 교섭하여 하나의 법에 모든 법이 갖추어져 있는 도리이다.
147) 이 문장은 원효의『보법기(普法記)』에서 인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보법
     기』가 현존하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이 가운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체(異體)이고, 둘째는 동체(同體)이

다. 처음의 이체에서 보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상입(相入)이고 다른

하나는 상즉(相卽)이다. 이렇게 두 가지 문이 있는 이유는 모든 연기에 두

가지 뜻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유력(有力)과 무력(無力)의 의미로서 이것은 작용력에 대한 것이

고, 둘째는 유체(有體)와 무체(無體)의 의미로서 이것은 자체(自體)에 대한

것이다. 앞의 뜻으로 인해 상입할 수 있고, 뒤의 뜻으로 인해 상즉할 수 있

다. 처음에 자신은 온전히 유력(有力)이어서 타자를 포섭할 수 있고, 타자

는 온전히 무력(無力)이어서 자신에게 들어갈 수 있다. 타자가 유력(有力)

이고 자신이 무력(無力)이면 그 반대가 됨을 알 수 있다. 자체(自體)에 의

거하지 않으므로 상즉이 아니고 작용력이 서로 통하므로 상입이 성립된다.

또한 둘 다 유력(有力)이거나 둘 다 무력(無力)인 경우는 각각 완전히 갖추

지 못했으므로 저것이 상입하지 않음이 없고, 유력무력(有力無力)과 무력

유력(無力有力)인 경우는 둘 다 아니기 때문에 항상 상입한다.

 

둘째는 공(空)과 유(有)의 경우이다. 자신이 있다면 그때 타자는 반드시

없으므로 타자는 자신과 상즉한다. 왜냐하면 타자는 자성(自性)이 없고 자

신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음에 자신이 공(空)이라면 그때 타자는 반드시

유(有)이므로 자신은 타자와 상즉한다. 왜냐하면 자신은 자성(自性)이 없

고 타자가 작용하기 때문이다.〈혹은 말하기를, “만약 하나의 조건[緣]이 없다면, 나
머지도 일어남[起]을 성립시키지 못하며, 일어남이 성립되지 않으므로 조건의 뜻이 무너
진다. 그러나 하나의 조건을 얻게 되면 온전히 일체가 일어남을 성립시키며, 하나의 일어
남이 성립되기 때문에 조건의 뜻이 비로소 성립된다. 그러므로 하나의 조건은 일어남의 주
체[能起]이고, 여러 조건과 결과는 모두 일어남의 대상[所起]이다. 이는 곧 여럿이 하나
를 위해 성립되므로 여럿은 무체(無體)이고, 하나가 능히 여럿을 만들므로 하나는 유체(有
體)148)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의미는 나중에 다시 설명할 것이다.〉 둘 다 유(有)

이거나 둘 다 공(空)인 경우는 각각 완전히 갖추지 못했으므로 저것이 상

즉하지 않음이 없다. (자신은) 있고 (타자는) 없거나 (자신은) 없고 (타자는)

있는 경우는 둘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항상 상즉한다.149) 또 본체가 작용을

수용하여 별도의 작용이 없으므로 오직 상즉할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연

기(緣起)는 성립되지 않는다. 자성(自性)이 있다는 등의 잘못된 견해는 이

를 보면 알 수 있다.

148)『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24b19~23. 以若闕一緣, 餘不成起, 起不成故, 緣義卽
     壞. 得此一緣, 令一切成起, 所起成故, 緣義方立. 是故一緣是能起, 多緣及果俱是所
     起. 是卽多爲一成, 多是無體, 一能作多, 一是有體.
149) 이 부분의 해석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어 고려의 균여는 이들 견해를 정리
     소개하였다.(김천학, p.108 주 438) 참조)

第三問答.
問, 欲顯何義, 以數錢喻耶?
答, 法藏師云,“ 欲表大緣起陀羅尼法故.” 義相師云,“ 欲示緣
起實相陀羅尼法.” 元曉師云,“ 詮普法義故.” 此中有二, 一者
異體, 二同體. 就初中有二, 一相入, 二相卽. 所以有此二門者,
諸緣起皆有二義故. 一有力無力義, 此望力用, 二有體無體
義, 望此自體. 由初義故得相入, 由後義故得相卽. 初中自有全
, 所以能攝他, 他全無力故, 所以能入自. 他有力自無力, 反
上可知. 不據自體, 故非相卽, 力用交徹, 故成相入. 又由二力
二力各不俱故, 無彼不相入, 有力無力無力有力無二故, 是
故常相入. 二空有中, 由自若有時他必無, 故他卽自. 何以故.
由他無性以自作故. 二由自若空時他必是有, 故自卽他. 何以
. 由自無性用他作故.〈一云, “若闕一緣, 餘不成起, 起不成故, 緣義則
壞. 得此一緣, 全一切成起, 一起成故, 緣義方立. 是故一緣是能起, 多緣及果俱
是起. 是卽多爲一成, 多是無體, 一能作多, 一是有體.” 然此義後更說也.〉 以
二有二空各不俱故, 無彼不相卽, 有無無有無二故, 是故常相
卽. 以體収用, 無別用故, 唯是相卽. 若不爾者, 緣起不成.
有自性等過, 見之可思.

 

처음의 이체문 중에서 상입을 먼저 밝힌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이 있다.

하나는 세어 올라감[向上去]150)이고 다른 하나는 세어 내려옴[向下來]151)

이다.152) 세어 올라감에 열 가지 문이 있다. 첫 번째는 일(一)로서 이는 근

본수이다. 왜냐하면 조건[緣]으로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열 번째는

일중십(一中十)이다. 왜냐하면 일이 없다면 십(十)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

이다. 즉 일에 전력(全力)이 있기 때문에 십을 포섭하는 것이다. 따라서 십

은 일이 아니다. 나머지 아홉 문을 논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 하나하나에

모두 십이 있음을 이의 예에 따라 알 수 있다.〈의상스님이 “중문(中門)153)에서 세
어 올라옴[向上來]과 세어 내려감[向下去]을 말하고 즉문(卽門)154)에서 세어 올라감[向
上去]과 세어 내려옴[向下來]을 말한”155) 것은 앞뒤의 말에 착오가 있으므로 취하지 않는
다.156)〉 
세어 내려오는 수[向下數]에 또 열 가지 문이 있다. 첫 번째는 십이

다. 왜냐하면 조건[緣]으로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열 번째는 십중일

(十中一)이다. 만약 십이 없다면 일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일은 전

력(全力)이 없어서 십에 귀속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은 십이 아니다. 나머

지도 예와 같다. 이처럼 근본과 지말의 두 문(門) 가운데 열 가지 문을 갖추

고 있듯이 나머지 하나하나의 동전 가운데에도 이에 준하여 생각하면 된

다.〈여기서 수를 세는 법은 첫 번째는 십이고, 두 번째는 십중구(十中九)이고, 내지 열 번
째는 십중일(十中一)이다.157)〉 이것은 이문(異門)에 의거하여 서로 상대하여 설
한 것이다.158)
於中先明相入. 此中有二門, 一向上去, 二向下來. 向上去中,
亦有十門. 一者一是本數. 何以故, 緣成故. 乃至十者, 一中十.
何以故, 若無一, 卽十不成故. 則一有全力故, 攝於十也. 仍十
非一. 餘九門, 亦如是, 一一皆有十, 准例可知.〈義相師云, “中門
中, 向上來, 向下去, 卽門中, 向上去, 向下來,” 前後言錯, 故不用也.〉 向下數
中, 亦十門. 一者十. 何以故, 緣成故, 乃至十者, 十中一. 謂若
無十, 則一不成故. 則一無全力, 歸於十也. 仍一非十矣. 餘例
然. 如是本末二門中, 具足十門, 餘一一錢中, 准以思之.〈此中
數數法者, 一者十, 二者十中九, 乃至十者十中一.〉 此約異門, 相望說耳.
150) 세어 올라감[向上去]:동전을 제1전부터 제2전, 제3전에서 제10전으로 세어 올
     라가는 것.
151) 세어 내려옴[向下來]:동전을 제10전부터 제1전으로 세어 내려오는 것.
152) 법장이『오교장』에서 말한 이 부분의 표현은 없고 바로 향상수(向上數) 그리고
     향하수(向下數)로 표현하였으며,(大45 p.503b24 ; 28) 다음에 이체문 중에서 향상
     거 향하래를 표현하였다.(p.503c26)
153) 중문(中門):위에서 말한 “일중십 십중일(一中十十中一)”의 내용이다.
154) 즉문(卽門):위에서 말한 “일즉십 십즉일(一卽十十卽一)”의 내용이다.
155)『일승법계도』韓2 p.4a24~b2 ; c14~15.
156) 이 십전유의 설명을 법장은 이를 이체와 동체로 나누고, 이체문을 상입과 상즉
     으로 나누어 각각 향상거와 향상래로 설명하고, 동체문은 중문과 즉문으로 나
     누어 각각 일중다 다중일과 일즉다 다즉일로 설명하였다. 이에 비해 의상은 중
     문과 즉문으로 나누어 중문은 향상래와 향하거, 즉문은 향상거와 향하래로 나
     누어 말하였다. 의상의 설명 방식이 법장에게서 이체와 동체로 거듭된 형태로
     변화하였다. 그런데 표원은 의상의 설명 중 향상래와 향하거라는 표현이 맞지
     않으므로 이를 쓰지 않는다고 언명하였다. 이는 표원이 보다 정리된 법장의 수
     십전유를 따르고 의상의 것을 따르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이점에서도 표원의
     사상적 계승을 확인할 수 있다.
157) 표원이 의상의 향상래, 향하거 표현을 문제삼아 부정하고 법장의 저술을 인
     용하였지만, 의상의 저술과도 유사한 표현이 많다. 이는 법장이 의상의 견해
     를 수용 발전시켜 수십전유를 설명하였음을 말해준다. 의상은 “若欲觀緣起實
     相陀羅尼法者, 先應覺數十錢法. 所謂一錢乃至十錢, 所以說十者, 欲顯無量故.”
    (『일승법계도』韓2 p.6a22~24.)라고 전제하고 중문과 즉문으로 나누어 설명한
     다.(p.6a24~b12. 此中有二. 一者 一卽十, 十中一. 二者 一卽十, 十卽一. 初門中有二. 
     一者向上來, 二者向下去. 言向上來中, 有十門不同. 一者一. 何以故, 緣成故, 卽是本數.
     乃至十者一中十. 何以故, 若無一, 十卽不成, 仍十非一故. 餘門亦如是. 准例可知. 言向
     下去中, 亦有十門. 一者十, 何以故, 緣成故. 乃至十者十中一, 何以故, 若無十, 一卽不
     成, 仍一非十故. 餘亦如是, 生變如是. 勘當卽知, 一一錢中, 具足十門, 如本末兩錢中具
     足十門. 餘八錢中, 准例可解.)
158) 이 문단은『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 大45 p.503b24~c4의 내용과 약간의 차이
     는 있으나 대부분 같다. 주 151)과 같이『오교장』에 없는 부분이 있어 이를 원효
     의 저술에서 인용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부분뿐만 아니라 다음
     부터 십전유 끝부분까지『오교장』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어, 원효의 저술이 그렇
     게 같은 내용을 서술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 부분만 원효의 인용이라
     고 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오교장』의 인용에 표원이 표제 등과 마지막 게
     송 등 일부 구절을 추가하여 구성했다고 보는 것이 더 가능성이 크다.

 

묻는다. 이미 일이라고 말했다면 어찌하여 일 가운데에 십(十)이 있을 수

있는가?

답한다. 대연기다라니법은 만약 일이 없다면 일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

에 그와 같음을 확실히 아는 것이다. 이 뜻은 무엇인가? 일이라고 말한 것은

자성(自性)으로서의 일이 아니라 조건[緣]으로 성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 가운데에 십이 있는 것이니, 이것이 조건으로 일이 성립된 것이

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자성은 조건이 없어서 일이라고 이름할 수 없다. 그

러므로 일체의 연기하는 것은 모두 자성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조건을

제거하면 일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 가운데에 다(多)를

갖추고 있어야 비로소 연기(緣起)의 일이라고 이름 하는 것이다.

 

묻는다. 하나의 조건을 제거하여 (일체가) 성립되지 않으면 이것이 곧

자성이 없는 것이다. 자성이 없는데 어떻게 일과 다의 연기가 성립될 수

있는가?

답한다. 오직 자성이 없어야만 일과 다의 연기가 성립될 수 있다. 왜냐

하면 이 연기가 바로 법계가(法界家)의 진실한 덕이기 때문이며 보현경계

의 구비된 덕으로서, 자재하여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화엄경』에 “보살은

연기법을 잘 관찰하니, 하나의 법에서 많은 법을 이해하고 많은 법에서 하

나의 법을 이해한다.”159)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일중십(一中十)과 십중일

(十中一)이 서로 용납하여 걸림이 없어 서로 옳다고 고집하지 않음을 마

땅히 알아야 한다. 하나의 문(門)에 이미 열 가지 의미가 갖추어져 있으니,

그 하나의 문에 모두 무진(無盡)의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머지 문도

이와 같다.

159)『화엄경』(60) 권28「십인품(十忍品)」에서 “이 보살은 모든 법이 다 허깨비 같다
     는 것을 깊이 깨닫는다. 연기법을 관찰하여 하나의 법에서 수많은 법을 이해하
     고 수많은 법에서 하나의 법을 이해하는 것이다.”(大9 p.580c27~29. 此菩薩深入諸
     法皆悉如幻 觀緣起法 於一法中解衆多法 衆多法中解了一法.)라고 하였다.

 

묻는다. 하나의 문에 십(十)을 남김 없이 포섭하였는가, 그렇지 못한가?

답한다. 남김 없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왜냐하면 일중십(一中十)

이므로 남김이 없고, 십중일(十中一)이므로 남김이 없음이 아니기 때문이

다. 4구에 의한 잘못의 방지, 오류의 제거, 덕의 드러냄 등의 예에 준하여

알 수 있다. 개별적인 여러 문도 이와 같은 예에 준한다. 연기의 오묘한 이

치도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첫 번째 문을 마친다.〉160)

160)『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 大45 p.503c4~25. 의상의 서술도 유사하다.(『일승법
     계도』 韓2 p.6b13~17. 問旣言一者, 何得一中名爲十也? 答大緣起陀羅尼法, 若無一, 
     一切卽不成. 定知如是其相. 如所言一者, 非自性一, 緣成故一. 乃至十者, 非自性十, 
     緣成故十. ; b24~c10. 是故當知. 一中十, 十中一, 相容無礙, 仍不相是. 旣一門中具
     足十門. 故明知. 一門中有無盡義, 如一門, 餘亦如是. 問一門中攝十盡不? 答盡不盡. 
     所以者何. 須盡卽盡, 須不盡卽不盡故. 其義云何? 以一事辨一多故卽盡, 以異事辨一
     多故卽不盡. 又一事中一多義不相是, 卽是多一事故卽多. 是一四句護過失非顯德. 
     准之可解. 異事亦准同.) 여기 제시한 두 글 사이에 의상 사상의 특징으로 지적되는 
     중도의(中道義)와 무주(無住)의 서술이 있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問, 旣言一者, 何得一中有十耶?
答, 大緣起陀羅尼法, 若無一卽一切不成故, 定知如是. 此義
云何? 所言一者, 非自性一, 緣成故. 是故一中有十者, 是緣成
一. 若不爾者, 自性無緣, 不得名一也. 是故一切緣起, 皆非自
性. 何以故, 隨去一緣, 卽一切不成. 是故一中則具多, 方名緣
起一耳.
問, 若去一緣而不成者, 此卽無性. 無自性者, 云何得成一多
緣起?
答, 由只無性, 得成一多緣起. 何以故, 由此緣起, 是法界家實
德故, 普賢境界具德, 自在無障礙故. 華嚴云, “菩薩, 善觀緣
起法, 於一法中, 解衆多法, 衆多法中, 解一法.” 是故當知, 一
中十十中一, 相容無礙, 仍不相是. 一門中, 旣具足十義, 故知
門中, 皆有無盡義. 餘門亦如是.
問, 一門中攝十, 盡不盡?
答, 盡, 不盡. 何以故. 一中十故盡, 十中一故不盡. 四句護過
去非顯德等, 准之可解耳. 別別諸門中, 准例如是. 緣起妙理,
應如是知.〈第一門竟〉

 

처음의 이체문 중에서 두 번째는 즉(卽)의 의미이다. 이중에 두 가지 문

이 있다. 하나는 세어 올라감[向上去]이고, 다른 하나는 세어 내려옴[向下

來]이다. 세어 올라감에 열 가지 문이 있다. 첫 번째는 일(一)이다. 왜냐하

면 조건[緣]으로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열 번째는 일즉십(一卽十)

이다. 왜냐하면 일이 없다면 십이 없기 때문이다. 일은 체(體)가 있지만 나

머지는 모두 공(空)하므로 이 일이 곧 십이다. 이와 같이 세어 올라가서 열

번째에 이르면 모두 앞과 같으니, 그에 준하여 알 수 있다. 세어내려옴에도

열 가지 문이 있다. 첫 번째는 십이다. 왜냐하면 조건으로 성립되기 때문이

다. 그리하여 열 번째는 십즉일(十卽一)이다. 왜냐하면 십이 없다면 일도

없기 때문이다. 일은 체가 없지만 나머지는 체가 있으므로 그러므로 이 십

이 곧 일이다. 이와 같이 세어 내려가서 첫 번째에 이르면 모두 앞과 같으

니, 그에 준하여 알 수 있다.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의 동전이

곧 여러 동전임을 알아야 한다.161)

初異體門中, 第二卽義者. 此中有二門, 一者向上去, 二者向下
來. 初門中有十門. 一者一. 何以故, 緣成故. 乃至十者, 一卽
十. 何以故, 若無一, 卽無十故. 由一有體, 餘皆空故, 此一卽
是十矣. 如是向上, 乃至第十, 皆各如前, 准可知耳. 言向下者,
亦有十門. 一者十. 何以故, 緣成故. 乃至十者, 十卽一. 何以
故, 若無十, 卽無一故. 由一無體, 是餘有故, 是故此十卽是一
矣. 如是向下, 乃至第一, 皆各如前, 准可知耳. 以此義故, 當
知一一錢卽是多錢耳.
161)『화엄일승교의분제장』 권4 大45 p.504c25~505a6. 의상의 서술도 유사하다.(『일
     승법계도』 韓2 p.6c14~21. 第二門. 此中二門, 一者向上去, 二者向下來. 初門中十門不
     同. 一者一. 何以故, 緣成故. 乃至十者一卽十. 何以故, 若無一, 十卽不成故, 緣成故. 第
     二門中亦有十門. 一者十. 何以故, 緣成故. 乃至十者十卽一, 若無十, 一卽不成故. 餘者
     准例. 以此義故, 當知一一錢中具足十門.)

 

묻는다. 만약 일(一)이 십(十)에 즉(卽)하지 않는다면 무슨 잘못이 있는가?

답한다. 만약 즉(卽)하지 않는다면 두 가지 잘못이 있다. 첫째는 (일이)

십전(十錢)을 성립할 수 없다는 잘못이다. 왜냐하면 만약 일이 십에 즉하지

않는다면 여러 하나하나가 십을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

하나가 모두 십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이미 십이 성립되었다면 일이 곧

십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둘째는 일이 성립되지 못하는 잘못이 있다. 왜

냐하면 만약 일이 십에 즉하지 않는다면 십이 곧 성립될 수 없고, 십이 성

립되지 못하기 때문에 일의 뜻도 성립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만약 십이 없

다면 무엇이 일이겠는가. 그러므로 지금 이미 일을 얻었다면 일이 십에 즉

함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또 만약 상즉하지 않는다면 연기문에서 공과 유의

두 뜻이 바로 앞에 드러나지 않아 곧 큰 잘못을 이루게 된다. 자성(自性) 등

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묻는다. 만약 일이 십에 즉한다면 마땅히 일이 아니어야 하고, 만약 십이

일에 즉한다면 마땅히 십이 아니어야 한다.

답한다. 단지 일이 곧 십이 되기 때문에 일이라고 이름 하는 것이다. 왜

냐하면 일이라는 것은 이른바 일이 아니라 조건[緣]으로 성립된 것으로 자

성(自性)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이 여럿[多]에 즉(卽)하는 것

을 일이라고 이름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일이라고 이름할 수 없다. 왜

냐하면 일은 자성이 없어서 조건 없이는 일이 성립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십이 일에 즉하는 것도 앞의 예에 준하여 취하고 함부로 집착하면 안 된다.

마땅히 준하여 알아야 한다.

 

묻는다. 위에서의 일과 여럿의 뜻은 동시에 함께 원만한가? 아니면 전후

의 차이가 있는가?

답한다. 동시적인 원만함에 즉하기도 하고 전후의 차이에 즉하기도 한

다. 왜냐하면 이 법성의 연기는 역(逆)과 순(順)을 갖추고 있어서 동체에

어긋나지 않으며 덕용(德用)에 자재하고 걸림이 없기 때문에 모두 그와 같

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묻는다. 위에서 말한 감[去]과 옴[來]의 뜻은 그 모습이 어떠한가?

답한다. 본래의 자리는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항상 가고 온다. 왜냐하면

감[去], 옴[來], 움직이지 않음[不動]은 곧 하나의 현상[一物]이기 때문이

다. 다만 지혜를 내어 원리를 드러내기 위해서 가고 온다는 등의 뜻을 설할

따름이다. 만약 지혜를 없애버린다면 일체를 말할 수 없게 된다. 위에서 본

것과 같은 과분(果分)이 바로 그런 것이다.162)

162) 이 부분의 2개의 문답은 의상의 서술과 유사하면서 다소 차이가 있다.(『일승법
     계도』 韓2 p.7a1~9. 問如上多門, 一時俱圓耶, 前後不同耶? 答卽圓卽前後不同. 
     何故如是. 須圓卽圓, 須前後卽前後. 何以故, 法性家內德用 自在無鄣礙故, 由緣成
     故. 皆得如是. 問如上所說來去義, 其相云何? 答自位不動, 而恒來去. 何以故, 來去
     者隨緣義, 卽是因緣義. 不動者向本義, 卽是緣起義.)

 

묻는다. 만약 지혜로 말미암는다면 애초부터 있는 것이 아닌데 어찌하여

“예로부터 이와 같다”고 말하는가?

답한다. 만약 지혜를 없애버린다면 연기를 논할 수 없으니, 지혜에 의거

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이와 같다”고 설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립되지 않

으면 그만이지만 성립된다면 처음과 끝을 떠난 것이기 때문이다. 지혜와

법은 예로부터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묻는다. 지혜로 말미암기 때문인가? 법이 그와 같기 때문인가?

답한다. 지혜로 말미암는다고도 하고, 법이 그와 같다고도 한다. 왜냐하

면 동시에 구족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뜻은 이에 준하여 생각하라. 이체문

의 대단을 마친다.163)

163)『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 大45 p.505a6~b7.

問, 若一不卽十者, 有何過失?
答, 若不卽, 有二失. 一不成十錢過. 何以故, 若一不卽十者,
多一亦不成十. 何以故, 一一皆非十故. 今旣得成十, 明知一
卽是十也. 二一不成過. 何以故, 若一不卽十, 十卽不得成, 由
十不成故, 一義亦不成. 何以故, 若無十, 是誰一. 故今旣得一,
明知一卽十. 又若不相卽, 緣起門中, 空有二義, 卽不現前, 便
成大過. 謂自性等, 思之可知.
問, 若一卽十者, 應當非是一, 若十卽一者, 應當非是十.
答, 只爲一卽是十故, 是故名爲一. 何以故, 所言一者, 非是所
謂一, 緣成無性一. 爲此一卽多者, 是名一. 若不爾者, 不名一.
何以故, 由無自性故, 無緣不成一也. 十卽一者, 准前例取, 勿
妄執矣. 應准知之.
問, 上一多義門, 爲一時俱圓耶? 爲前後不同耶?
答, 卽圓, 卽前後. 何以故, 由此法性緣起, 具足逆順, 同體不
違, 德用自在無障礙故, 皆得如是.
問, 如上所說去來義, 其相云何?
答, 自位不動, 而恒去來. 何以故, 去來不動, 卽一物故. 但爲
生智顯理故, 說去來等義耳. 若廢智, 一切不可說. 如上果分
者, 卽其事也.
問, 若由智者, 卽非先有, 云何說言,“ 舊來如此”?
答, 若廢智, 卽不論緣起, 由約智故, 卽說“舊來如此.” 何以故,
不成卽已, 成卽離始終故. 智及與法, 舊來成故.
問, 爲由智耶? 爲法如是耶?
答, 爲由智耶, 爲法如是耶. 何以故, 同時具足故. 餘義, 准以
思之. 大段異體門說.

 

두 번째 동체문에도 두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는 일중다(一中多) 다중

일(多中一)이고, 두 번째는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이다. 첫 번째

의 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일중다(一中多)이고 둘째는 다중일(多中

一)이다. 첫째의 일중다(一中多)는 열 가지 문이 같지 않다. 첫째는 일(一)

이다. 왜냐하면 조건[緣]으로 성립되기 때문에 근본수인 일에 십(十)을 갖

추고 있다. 왜냐하면 이 일전(一錢) 자체가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二)가

일이 되기 때문에 곧 이의 일이 되고, 더 나아가 십이 일이 되기 때문에 곧

십의 일이 된다. 그러므로 이 일 가운데에 스스로 열 개의 일을 갖추고 있

을 뿐이다. 따라서 일은 십이 아니다. 이것은 즉(卽)의 문이 아니기 때문이

다. 처음의 일전(一錢)이 이미 그러하므로 나머지 이(二), 삼(三), 사(四), 이

상의 구(九)의 문도 모두 이와 같으니, 예에 준하여 알 수 있을 뿐이다. 둘

째의 다중일(多中一)도 열 가지 문이 있다. 첫째는 십이다. 왜냐하면 조건

으로 성립되기 때문에 십중일(十中一)이다. 왜냐하면 이 일이 십과 더불

어 일이 되기 때문이다. 즉 저 처음의 일은 십의 일 가운데 있으니, 십의 일

을 떠나서는 처음의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일은 십 가운데의 일

이다. 따라서 십은 일이 아니다. 나머지 구(九), 팔(八), 칠(七), 내지 일까지

모두 이와 같으니, 예에 준하여 생각해야 한다.

第二同體門中, 亦有二義. 一者一中多, 多中一, 二者一卽多,
多卽一. 初門中二, 一者一中多, 二者多中一. 初一中多者, 十
門不同. 一者一. 何以故, 緣成故, 是本數一中具十. 何以故,
由此一錢自體是一. 復與二作一故, 卽爲二一, 乃至與十作一
故, 卽爲十一. 是故此一之中, 卽自具有十箇一耳. 仍一非十
也. 以未是卽門故. 初一錢旣爾, 餘二三四已上九門中, 皆各如
是, 准例可知耳. 二者多中一, 亦有十門. 一者十. 何以故, 緣
成故, 十中一. 何以故, 由此一與十作一故. 卽彼初一, 在十一
之中, 以離十一卽無初一故. 是故此一卽十之中一也. 仍十非
一矣. 餘下九八七, 乃至於一, 皆各如是, 准例思之.

 

묻는다. 이것은 앞의 이체와 어떻게 다른가?

답한다. 앞의 이체는 처음의 일이 뒤의 아홉 가지 다른 문에 대해서 상입

할 뿐이다. 지금 여기서는 동체로서 일 가운데에 본래부터 십을 갖춘 것이

지 전후의 다른 문에 대하여 설한 것이 아니다.164)

問, 此與前異體, 何別耶?
答, 前異體者, 初一望後九異門相入耳. 今此同體一中自具十,
非望前後異門說也.
164)『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 大45 p.505b7~24.

 

두 번째의 즉(卽)의 뜻 가운데 일즉십(一卽十)과 십즉일(十卽一)의 두 가지

문이 있다. 첫째의 일즉십(一卽十)에도 열 가지 문이 있어 같지 않다. 첫째는

일이다. 왜냐하면 조건[緣]으로 성립되기 때문에 일즉십이다. 왜냐하면 이 십

이 곧 그대로 처음의 일이기 때문이며, 별도의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

로 이 십이 그대로 일이다. 나머지 아홉 문도 모두 이와 같음을 준하여 알 수

있다. 둘째의 십즉일(十卽一)에도 열 가지 문이 있어 같지 않다. 첫째는 십이

다. 왜냐하면 조건으로 성립되기 때문에 십즉일이다. 왜냐하면 저 처음의 일

이 곧 그대로 십이기 때문에 다시는 자체의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처

음의 일이 그대로 십이다. 나머지 아홉 문도 예에 준하여 알 수 있다.

二者卽義中, 一卽十, 十卽一, 亦有二門. 一者一卽十, 亦有十
門不同. 一者一. 何以故, 緣成故, 一卽十. 何以故, 由此十卽
是初一故, 無別自體故. 是故此十卽是一也. 餘九門皆亦如是,
准之可知. 二者十卽一者, 亦十門不同. 一者十. 何以故, 緣成
故, 十卽一. 何以故, 以彼初一卽是十故, 更無自一故. 是故初
一卽是十也. 餘九門, 准例知之.

 

묻는다. 이 동체문에서의 일즉십(一卽十) 등은 다만 이 십을 포섭하는 것

인가, 무진(無盡)을 포섭하는 것인가?

답한다. 이것은 모두 지혜로부터 성립되므로 십이어야 할 경우는 그대로

십이고, 무진이어야 할 경우는 그대로 무진이다. 이러한 (숫자상의) 증감은

지혜에 따라 취한 것이다. 그대로 십이라는 것은 앞에서 해석한 것과 같다.

무진이라는 말은 하나의 문에 이미 십이 있는 것이다. 이 십은 다시 스스로

번갈아가며 상즉 상입하여 겹겹의 무진을 성립한다. 그러나 이 무진중중

(無盡重重)165)은 모두 처음의 문에 포섭된다.

165) 무진중중(無盡重重):중중무진(重重無盡)과 같은 의미. 끝없이 겹치고 겹치는
     모습.

 

묻는다. 다만 자체의 하나의 문에 있는 무진중중을 포섭하는가, 다른 문

의 무진까지도 포섭하는가?”

답한다. 혹은 함께 포섭하기도 하고, 혹은 자체의 무진만을 포섭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만약 자체의 하나의 문에 무진이 없다면 다른 일체의 문에

도 무진이 모두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처음의 동체문이 동체

문과 이체문에 있는 무진을 남김 없이〈십중무진에 이르기까지〉포섭하여 그 

만한 궁극의 법계를 모두 포섭하지 않음이 없다. 혹은 다만 동체문의 무진

만을 포섭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나머지 이체문이 허공과 같기 때문이며,

서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스스로 구족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포섭할

것이 없다. 이것은 다만 지혜에 따라 일을 취한 것이기 때문에 어긋남이 없

다. 이와 같이 하나의 문이 이미 무궁함을 구족하여 무진하게 하며, 상즉과

상입 등이 무진을 성립하기에 이른다. 나머지 하나하나의 문도 모두 이와

같이 각각 무진의 무진이 성립함을 이에 준하여 알아야 한다. 이것은 세간

에 쓰이는 동전에 의거하여 저 일승연기(一乘緣起)의 무진다라니법을 비

유한 것일 뿐이고, 그 법이 단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경험

[情]을 버리고 이치에 맞게 생각해야 한다166) .야마천궁(夜摩天宮) 정진림

보살(精進林菩薩)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읊은 것과 같다.167)

166)『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 大45 p.505b24~c22.『화엄경』게송 전까지『오교장』
     에서 인용하였다.
167) 게송은『화엄경』(80) 권19「야마궁중게찬품(夜摩宮中偈讚品)」(大10 p.101b17~18.
     譬如算數法, 增一至無量, 數法無體性, 智慧故差別.)에 나오는 것이다.

 

수를 세는 법에 비유하여

하나를 더하여 무량에 이르는 것처럼

세는 법에는 체성이 없으나

지혜 때문에 차별이 있네.

問, 此同體中, 一卽十等者, 爲只攝此十耶, 爲攝無盡耶?
答, 此並隨智而成, 須十卽十, 須無盡卽無盡. 如是增減, 隨智
取矣. 卽十如前釋. 言無盡者, 一門中旣有十. 然此十, 復自迭
相卽入重重成無盡也. 然此無盡重重, 皆悉攝在初門中也.
問, 但攝自一門中無盡重重, 皆悉亦攝餘異門無盡耶?
答, 或俱攝, 或但攝自無盡. 何以故, 若無自一門中無盡, 餘
切門中無盡, 皆悉不成故. 是故初門同體, 卽攝同異二門中無
盡無餘〈乃至十重〉, 窮其圓極法界, 無不攝盡耳. 或但攝自同體
一門中無盡. 何以故, 由餘異門如虛空故, 不相知故, 自具足
故, 更無可攝. 此但隨智而取一, 不差失也. 如此一門, 旣具足
無窮, 令無盡, 及相卽相入等, 成無盡者. 餘一一門中, 皆悉如
是, 各無盡無盡成, 宜准知之. 此且約現事錢中, 況彼一乘緣起
無盡陀羅尼法, 非謂其法只如此也. 應可去情, 如理思之. 如夜
摩天宮精進林菩薩偈云, “譬如算數法, 增一至無量, 數法無體
性, 智慧故差別.”

 

4. 연기의 의미[緣起義]

 

세 가지 문은 앞과 같다.

 

1) 이름을 풀이함

늠(懍)법사는 말하였다. “서로 서로 말미암으니 그것을 조건[緣]이라고

하고, 조건이 일정하게 머물러 있지 않아서 일(一)과 다(多)가 조건을 따르

니 그것을 일어남[起]이라고 한다.『대반야경』에서는 ‘평등하여 일어나지

않으니, 그래서 연기라고 한다.’168)라고 하였다.”

緣起義.169) 三門同前,
第一釋名者.
懍法師云,“ 更互相由, 名之爲緣, 緣無住著, 一多從緣, 名之
爲起. 大般若經云,‘ 平等不起, 故名緣起.’”
168)『대반야경』권593 大7 p.1069a25. 平等無起 故名緣起.
169) 韓2 pp.360c4~362a12.

 

2) 본체를 드러냄 

법장과 원효 두 스님은 무애법계(無礙法界)를 본체로 삼았다. 늠법사는

말했다. “일(一)이면서 이(二)인 것이 연기의 본체이다. 일은 스스로 일이

아니라 이를 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일이 생겨난다. 이는 스스로 이가 아니

라 일을 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이가 생겨난다. 이의 일이 일이 되고 일의

이가 이가 되는 것이 연기의 본체이다. 일이라고 말한 것은 유(有)도 아니

고 무(無)도 아니다. 하나의 모습이면서 모습이 없는 것이니, 일이 아닌 일

이다. 이라고 말한 것은 유가 아닌 유이고 무가 아닌 무이다. 유가 아닌 유

는 토끼 뿔170)의 무를 깨뜨리고, 무가 아닌 무는 허공의 유를 깨뜨린다. 유

를 깨뜨려 무를 설하니 이것은 무이되 무가 아니고, 무를 깨뜨려 유를 설하

니 이것은 유이되 유가 아니다. 유가 아니기 때문에 유이면서 무이고, 무가

아니기 때문에 무이면서 유이다. 이것이 유이고 이것이 무인 것을 이름하

여 이라 한다. 이는 이라는 모습이 없으며, 이가 없으면서 이이다.”

第二出體者.
藏曉二師, 以無礙法界爲體. 懍師云,“ 而一而二171)爲緣起體.
一不自一, 緣二故起一, 二不自二, 緣一故起二. 二一爲一,
一二爲二, 爲緣起體. 所言一者, 無有無無. 一相無相, 非一爲
一. 所言二者, 非有之有, 非無之無. 非有之有, 以破兎角之無,
非無之無, 以破虛空之有. 破有說無, 此無非無, 破無說有, 此
有非有. 以非有故, 有而是無, 以非無故, 無而是有. 是有是無,
名之爲二. 二無二相, 無二而二也.”
170) 토끼 뿔:거북이의 털과 함께 없는 것을 들어 다투는 잘못을 말함. 거북이는 본
     래 털이 없고 토끼는 뿔이 없다. 거북이가 물 속에서 헤엄을 치다 몸에 물풀이
     붙었는데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물풀을 털로 잘못 알았다. 또 귀를 쫑긋 세운 토
     끼를 보고 귀를 뿔로 잘못 알았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거북이 털과 토끼 뿔[龜毛
     免角]을 현실 중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유명무실(有名無實)한 것을 말하면서, 이
     를 범부가 실제의 아(我)나 실제의 법에 잘못 집착하는 것에 비유하였다.
171) 원문의 爲二를 而一而二로 교감함

 

3) 문답으로 분별함 

묻는다. 연기라는 것은 그 뜻이 무엇인가?

답한다. 여러 스님의 설이 있다.

第三問答分別.
問, 緣起者, 其義云何?
答, 有數師說.

 

첫째, 의상스님은 말했다. “연기는 성(性)을 따라 분별됨이 없는 것으로

서, 곧 상즉하고 상융(相融)하여 평등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니 바로 제일의

제(第一義諦)172)의 체에 따른 것이다. 인연(因緣)은 세속에 따른 차별로서,

곧 원인[因]과 조건[緣]이 서로 상대하여 무자성(無自性)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니 바로 속제(俗諦)173)의 체이다.”174)

一義相師云, “緣起者, 隨性無分別, 卽是相卽相融, 顯平等義,
正順第一義諦體也. 因緣者, 隨俗差別, 卽是因緣相望, 顯無自
性義, 正俗諦體也.”
172) 제일의제(第一義諦):paramārtha-satya. 제(諦)는 진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제일의제는 최고의 진리라는 의미이다. 즉 완전한 깨달음의 지혜로서 도달할
     수 있는 경지를 말한다. 진제(眞諦)·승의제(勝義諦) 등으로 불린다.
173) 속제(俗諦):samvrti-satya. 세속의 법을 따라 생멸 등의 진리가 존재한다고 설
     하는 논리. 즉 세간의 사실과 속지(俗地)의 이치를 가리킨다. 진제(眞諦)와 대칭
     되는 말로 세속제(世俗諦)·세제(世諦)·유제(有諦) 등으로 불린다.
174) 의상의『일승법계도』에는 글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韓2 p.7a11~16. 因緣者 隨俗
     義別 卽是因緣相望 顯無自性義 正俗諦體也 緣起者 隨性無分別 卽是相卽相融 顯平等
     義 正隨第一義體也.)

 

둘째, 수나라의 혜원스님은 말했다. “인연(因緣)의 뜻은 연기(緣起)라고

도 이름하며, 연집(緣集)이라고도 이름한다. 이는 원인과 조건을 가탁하여

모든 법이 있기 때문에 인연이라고 말하고, 법이 조건에 의지하여 일어나

므로 연기라고 말하며, 법이 조건을 따라서 모이므로 연집이라고 말한다.

이를 나누면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유위(有爲), 둘째는 무위(無爲), 셋

째는 자체(自體)이다. 유위라는 것은 생사(生死)의 법이니, 그 본체가 무상

(無常)하여 생멸함이 있으므로 유위라고 한다. 업으로부터 생겨난 번뇌는

원인과 조건에 의해 있는 것이므로 인연이라고 한다. 무위라는 것은 이른

바 열반이니, 그 본체가 생멸하는 것이 아니므로 무위라고 한다. 도리에 의

거하여 있으므로 인연이라고 한다. 이 두 법은 모두 앞의 원인에 따라 뒤의

결과가 모여 일어난 것으로서 이것은 사연기(事緣起)175)이다. 자체라는 것

은 앞에서 말한 생사와 열반의 법으로서 법의 자성(自性)에 해당하니 모두

연기이다. 그 모습은 어떠한가? 생사의 본성이 곧 여래장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여래장 가운데 갠지스강의 모래알같이 많은 일체의 불법을 구족하고

있어도 이 모든 법이 체성이 같고 서로 서로 연하여 모여 있어 홀로 자성을

지키고 있는 법은 하나도 없다. 비록 하나의 자성도 없지만 자성 아닌 것이

없다. 하나의 자성도 없기 때문에 모든 법이 같고, 자성 아닌 것이 없기 때

문에 법계의 문이 다르다. 생사가 이미 그러하니 열반도 또한 그러하다. 동

체의 모든 법도 서로 모여 성립되기 때문에 인연이라고 하고, 또 연기라고

도 하고, 연집이라고도 한다. 이 자체 가운데 다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유위(有爲)의 여래장〈허망을 따라 염(染)이 된다.〉이며, 둘째는 무위(無爲)의 
여래장〈허망을 떠나므로 정(淨)이라 한다.〉이며, 셋째는 자체〈조건을 없애고 
실상을 논한다.〉이다.”176)
175) 사연기(事緣起):현상에서 일어난 연기법.
176)『십지경론의기』권1(卍45 p.34c9~23)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二隋慧遠師云, “因緣之義, 亦名緣起, 亦名緣集. 謂假因託緣,
而有諸法, 故曰因緣, 法起藉緣, 故稱緣起, 法從緣集, 故名緣
集. 分別有三, 一是有爲, 二是無爲, 三是自體. 言有爲者, 生
死之法, 體有無常生滅所爲, 故名有爲. 從業煩惱因緣而有, 故
名因緣. 言無爲者, 所謂涅槃, 體非生滅, 名曰無爲. 藉道而有,
故曰因緣. 此之二法, 皆從前因, 集起後果, 是事緣起. 言自
者, 卽前生死涅槃之法, 當法自性, 皆是緣起. 其相云何? 如說
生死本性卽是如來之藏. 如來藏中, 具足一切恒沙佛法, 而此
諸法, 同一體性, 互相緣集, 無有一法獨守自性. 雖無177)一性,
而無不性. 無一性故, 諸法皆如, 無不性故, 法界門別. 生死旣
然, 涅槃亦爾. 同體諸法, 互相集成, 故曰因緣, 亦名緣起, 及
與緣集. 此自體中, 復有三種. 一者有爲如來之藏〈隨妄爲染〉.
二者無爲如來之藏〈離妄名淨〉. 三者自體〈癈緣論實〉.”
177) 대본의 是를 뒷 문장에 의해 無로 교감함(『대승의장』권1 大44 p.488b3 참조)

 

셋째, 늠법사는 말했다. “연기의 본체는 둘이 없지만, 작용을 펼치면 네 가

지가 있다. 첫째는 유위연기(有爲緣起), 둘째는 무위연기(無爲緣起), 셋째는

자체연기(自體緣起), 넷째는 법계연기(法界緣起)이다. 유(有)는 스스로 있

는 것이 아니라 무(無)를 조건으로 하여 유가 일어난 것이므로 유위연기라

고 한다. 무는 스스로 없는 것이 아니라 유를 조건으로 하여 무가 일어난 것

이므로 무위연기라고 한다. 유위와 무위가 두 가지 작용이 되고, 유위도 아

니고 무위도 아닌 둘이 아닌 것[不二]이 본체가 된다. 둘이 아닌 것은 스스

로 둘이 아닌 것이 아니라 연기한 둘이 아닌 것이다. 자(自)는 스스로 자인

것이 아니라 타(他)를 조건으로 하여 자를 일으킨 것이며, 체(體)는 스스로

체인 것이 아니라 용을 조건으로 하여 체를 일으킨 것이므로 자체연기라고

한다. 둘도 없고 둘이 아님도 없는 것이 평등이 되고, 둘이고 둘이 아닌 것이

차별이 된다. 차별은 스스로 차별이 아니라 평등을 조건으로 하여 차별이

일어나고, 평등은 스스로 평등이 아니라 차별을 조건으로 하여 평등이 일어

난다. 평등과 불평등이 모두 평등하니, 이것을 법계연기라 한다.

 

묻는다. 어떤 글에서 증명할 수 있는가?

답한다. 「이세간품」에서 ‘하나 가운데 무량한 것이 있고, 무량한 것 가운

데 하나가 있으니, 막히지도 않고 걸리지도 않는다.’라고 하고, 전체적으로

결론짓기를 ‘이 모든 것이 연기이다. 만약 한 법이라도 연기가 아니라면 부

처님 법이 아니다.’178)라고 하였다. 또『유마경』에서는 ‘연기에 깊이 깨달

아 들어가 모든 잘못된 견해를 끊으며, 유와 무의 두 극단에 더 이상의 습

기는 없다.’179)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연기에 깨달아 들어가지 못하면 잘못

된 견해를 면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등을 말했다.〉
178)『화엄경』「이세간품」에 일치하는 문장은 발견되지 않는다. 본문에서 인용한 것
     은 그 전체의 뜻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유사한 구절로는 권5「여래광명각품」大
     9 p.423a1 一中解無量, 無量中解一과 권33「보현보살행품」大9 p.609a17 一中知
     無量, 無量中知一 정도가 있다.
179)『유마경』권1「불국품(佛國品)」大14 p.537a20~21. 深入緣起, 斷諸邪見, 有無二
     邊, 無復餘習.

 

三懍師云,“ 緣起體無二, 開用爲四種. 一有爲緣起, 二無爲緣
起, 三自體緣起, 四法界緣起. 謂有不自有, 緣無起有, 名有爲
緣起也. 無不自無, 緣有起無, 名無爲緣起也. 有爲無爲爲二
用, 非有爲非無爲不二, 爲本體也. 不二, 非自不二, 緣起二不
二. 又自, 不自自, 緣他起自, 又體不自體, 緣用起體, 故名自
體緣起也. 無二無不二爲平等, 亦二亦不二爲差別. 差別, 不
自差別, 緣平等起差別, 平等, 不自平等, 緣差別起平等. 平等
不平等, 皆悉平等, 名法界緣起. 問, 何文爲證? 答, 離世間品,
‘一中有無量, 無量中有一, 無障無礙.’ 總結云,‘ 悉是緣起,
若有一法非緣起者, 非佛法也.’ 又維摩云, ‘深入緣起, 斷諸耶
見, 有無二邊, 無復餘習.’ 故知不入緣起, 未免邪見.〈云云〉’”

 

넷째, 법장스님은 말했다.

“묻는다. 어떤 원인과 조건이 있어서 이 모든 법이 이와 같이 혼융무애함

을 얻을 수 있는가?

답한다. 원인과 조건이 무량하여 자세히 말하기 어렵다. 대략 열 가지를

들어 이 무애(無礙)를 해석한다. 첫째, 연기하여 서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둘째, 법성이 융통하기 때문이다. 셋째, 각각 마음만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넷째, 허깨비 같아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 크기가 정해져 있지 않

기 때문이다. 여섯째, 무한한 원인으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일곱째, 과덕(果

德)180)이 원만하고 지극하기 때문이다. 여덟째, 뛰어나게 통달하여 자재하

기 때문이다. 아홉째, 삼매의 큰 작용 때문이다. 열째, 해탈을 헤아리기 어

렵기 때문이다. 처음에 ‘연기하여 서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 것

〈나머지 아홉 문은 다른 곳에서 설명하였다.〉구체적으로 세 가지 문이 있다. 

째는 모든 조건이 각각 다르다는 의미이다.〈또한 모든 조건이 서로 다른 문

[諸緣互異門]이라고도 한다. 즉 이체이다.〉둘째는 서로 두루하고 서로 돕는다는 

의미이다.〈또한 모든 조건이 서로 호응하는 문[諸緣互應門]이라고도 한다. 즉 동체

이다.〉 째는 함께 존재하여 걸림이 없다는 의미이다.〈또한 다른 것에 응함에 

걸림이 없는 문[應異無礙門]이라고도 한다. 즉 동체와 이체를 함께 말한다.〉첫째 

모든 조건이 각각 다르다는 것은 모든 조건이 서로 상대하여 있으므로 체(體)

와 용(用)이 각각 구별되어 서로 섞이지 않아 비로소 연기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약 그렇지 않으면 모든 조건이 어지럽게 섞여 본래의 조건법[本緣法]을 잃

게 되어 연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는 모든 조건이 각각 스스로의 하나를

지키는 것이다. 둘째 서로 두루하고 서로 돕는다는 것은 이 모든 조건들이

서로 두루 응해야만 비로소 연기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또 만약 한 조건이

많은 조건에 두루 응한다면 각각 저 많은 조건과 더불어 전체로서의 하나

가 되기 때문이다. 이 하나는 많은 조건을 갖춘 하나이다. 만약 이 하나의

조건이 여럿 중의 하나를 갖추지 않으면 돕고 응함에 두루하지 않아서 연

기가 성립되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하나가 각각 일체로서의 하나를 갖추

는 것이다. 셋째 함께 존재하며 걸림이 없다는 것은 무릇 하나의 조건이 앞

의 두 가지를 갖추어야 연기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스스로 하나에

머물면서 두루 응할 수 있고, 많은 조건에 두루 응해야 드디어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唯一]와 여럿 중의 하나[多一]가 자재하여

걸림이 없다. 이상의 세 가지 문은 모두 연기 본래의 법을 밝힌 것이다.

180) 과덕(果德):결과로서의 공능.

 

묻는다. 이미 연기 본래의 법의 이름이라고 들었는데, 그 뜻을 알지 못하

겠는데 무슨 뜻인가?

답한다. 이상의 세 가지 문에 각각 세 가지 뜻이 있어서 서로 의지하고 있

다. 첫째는 유력(有力)과 무력(無力)의 뜻으로, 이로써 상입할 수 있다. 둘

째는 서로 형상을 빼앗는 유체(有體)와 무체(無體)의 뜻으로, 이로써 상즉

할 수 있다. 셋째는 체(體)와 용(用)이 유(有)와 무(無)를 융섭한다는 뜻으

로, 이로써 상즉과 상입이 동시에 자재하다. 첫째의 이문(異門)이 상입하는

것은 모든 조건의 작용력이 서로 번갈아 의지하여 서로 형상을 빼앗기 때문

에 각각 온전한 유(有力)과 온전한 무력(無力)의 뜻을 가져 연기가 비로소

성립됨을 말한다.『십지경론』에서 ‘원인이 생기지 않음은 조건이 생기기 때

문이고, 조건이 생기지 않음은 스스로의 원인이 생기기 때문이다.'181)라고

한 것과 같다. 만약 각각 유력만 있고 무력이 없다면 결과만 많아지는 잘

못이 있게 되니, 하나하나가 각각 생기기만 하기 때문이다. 만약 각각 무력

만 있고 유력이 없다면 결과가 없는 잘못이 있게 되니, 함께 조건을 갖추지

못해 모두 생겨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기는 서로 말미암는 뜻

을 필요로 하고 유력과 무력을 갖추어야 한다. 하나의 조건이 없으면 일체

가 성립되지 못한다. 나머지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하나가 능히 여럿을 지

닐 수 있으면 하나는 유력이어서 여럿을 포섭할 수 있다. 여럿이 하나에 의

지하면 여럿은 무력이어서 하나에 스며들어간다. 하나의 유력으로 말미암

아 반드시 더불어 여럿의 유력을 갖출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하나도 여럿

을 포섭하지 않음이 없다. 또 여럿의 무력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더불어 하

나의 무력을 갖출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여럿도 하나에 들어가지 않음이

없다. 만약 하나가 지니고 여럿이 의지함[一持多依]이 이미 그렇다면 여럿

이 지니고 하나가 의지함[多持一依] 또한 그러하다. 위와 반대로 생각해 보

라. 그러면 여럿이 하나를 포섭하지 않음이 없으며, 하나가 여럿에 들어가

지 않음이 없다. 하나가 여럿을 상대하여 지님과 의지함이 있고 유력과 무

력이 있으며, 항상 여럿이 자기 속에 포함되고 자기는 여럿 속에 스며들어

동시에 걸림이 없게 되는 것과 같다. 여럿이 하나를 상대하는 것도 그러함

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둘 다 존재하고 둘 다 없어진다[俱存雙泯]는 두 문

구가 걸림이 없음도 이에 준하여 생각해 보라.”182)

181)『십지경론』권8에는 “깊이 관찰하는 데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타자가 짓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원인이 생겨나는 것이고, 둘째는 스스로 짓는 것이 아니
     라 조건이 생겨나는 것이다.”(大26 p.170b19~20. 深觀者有四種. 一者有分非他
     作自因生故, 二者非自作緣生故.)라고 하였다.
182)『화엄경탐현기』권1(大35 p.124a8~b18)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四法藏師云,“ 問, 有何因緣, 令此諸法, 得有如是混融無礙?
答, 因緣無量, 難可具陳. 略提十類, 釋此無礙. 一緣起相由故.
二法性融通故. 三各唯心現故. 四如幻不實故. 五大少無定故.
六無限因生故. 七果德圓極故. 八勝通自在故. 九三昧大用故.
十難思解脫故. 初言‘緣起相由故’者〈餘後九門, 別處說, 云云.〉
曲有三門. 一諸緣各異義〈亦名諸緣互異門, 卽異體也.〉. 二互遍相
資義〈亦名諸緣互應門, 卽同體也.〉. 三俱存無礙義〈亦名應異無礙門, 卽
雙辨同異也.〉. 言諸緣各異義者, 謂諸緣相望, 要須體用各別, 不
相和雜, 方成緣起. 若不爾者, 諸緣雜亂, 失本緣法, 緣起不成,
此則諸緣, 各各守自一也. 二互遍相資義者, 謂諸此緣, 要互相
遍應, 方成緣起. 且如一緣遍應多緣, 各與彼多, 全爲一故. 此
一, 則具多箇一也. 若此一緣不具多一, 則資應不遍, 不成緣
起. 此則一一各具一切一也. 三俱存無礙義者, 謂凡是一緣, 要
具前二, 方成緣起. 以要住自一, 方能遍應, 遍應多緣, 方是一
故. 是故唯一多一, 自在無礙. 此上三門, 總明緣起本法. 問, 旣
聞緣起本法名也, 未知其義何耶? 答, 此上三門中, 各有三義,
互相依持. 初有力無力義, 由此得相入也. 二互相形奪有體無
體義, 由此得相卽也. 三體用融有無義, 由此卽入同時自在也.
初異門相入者, 謂諸緣力用遞相依持, 互形奪故, 各有全力全
無力義, 緣起方成. 如十地論云,‘ 因不生緣生故, 緣不生自因
生故.’ 若各唯有力, 無無力, 則有多果過, 一一各生故. 若各唯
無力, 無有力, 則無果過, 以同非緣俱不生故. 是故緣起要相由
義, 具力無力. 如闕一緣, 一切不成. 餘亦如是. 是故一能持多,
一是有力能攝多. 多依於一, 多是無力潛入一. 由一有力, 必不
得與多有力俱. 是故無有一而不攝多也. 由多無力, 必不得與
一無力俱. 故無有多而不入一也. 如一持多依旣爾, 多持一依
亦然. 反上思之. 是則亦無多不攝一, 一不入多者也. 如一望多
有持有依, 全183)力無力, 常含多在己中, 潛己在多中, 同時無
礙. 多望於一, 當知亦爾. 俱存雙泯, 二句無礙, 亦准思之.”
183) 대본의 令을 全으로 교감함.

 

5. 깊은 뜻을 탐구하는 의미[探玄義]

 

세 가지 문(門)은 앞과 같다.

 

1) 이름을 풀이함

뜻의 바다가 매우 깊어서 정념의 표현을 넘었고,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현(玄)이라고 이름한다. 추구하고 추구하여 의미를 드러내기 때문에

탐(探)이라고 이름한다. 깊은 까닭이 있기 때문에 의(義)라고 이름한다.

探玄義184)
三門同前.
第一釋名者, 義海究深, 超過情表, 不可思議, 故名爲玄. 推攬
顯意, 故名爲探. 有深所以, 故名爲義.
184) 韓2 pp.363b17~366a12.

 

2) 본체를 드러냄

걸림이 없는 법계(法界)185)를 근본으로 삼는다. 혜원(慧苑)186)스님은 말

했다. “두 종류의 본질적인 사상[體事]187)이 있다. 첫째는 순수하고 깨끗하

여 번뇌가 없는 것으로 이것은 덕상(德相)이 의지하는 본질적인 사상이다.

둘째는 번뇌와 번뇌 없음에 통하는 것으로 이것은 업용(業用)이 의지하는

본질적인 사상이다. 물질[色]·마음[心]·시간[時]·장소[處]·몸[身]·세계

[方]·가르침[敎]·의의[義]·실천[行]·지위[位]를 말하니, 이러한 열 가지

법을 들어 앞의 두 가지를 통틀어 분별한다.”188)〈등등〉
第二出體者. 以無礙法界爲體. 慧苑師云, “二種體事. 一純淨
無漏, 是德相所依體事. 二通漏無漏, 是業用所依體事. 謂色心
時處身方教義行位, 擧十法, 通辨前二.”〈云云〉
185) 법계(法界):dharma-dhātu. 모든 사물의 근원을 뜻한다. 특히 대승불교에서는
     종교적인 본원을 의미하며, 여기에 경계라는 의미의 ‘계’를 붙여 진리의 세계를
     상징한다. 그래서 법계는 진여(眞如)와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진리 자체로서
     의 부처, 즉 법신불을 뜻하기도 하며, 화엄(華嚴)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세계
     를 뜻하기도 한다.
186) 혜원(慧苑):673?~743. 법장(法藏)에게 사사하여, 법장이 이룩하지 못한『신역
     화엄경(新譯華嚴經)』의 주석을 완성하였고,『속화엄경약소간정기(續華嚴經略疏
     刊定記)』15권을 저술하였다. 그러나 법장과 교판론에 차이가 있어 이후 전통적
     으로 두순(杜順)→지엄(智儼)→법장→징관(澄觀)→종밀(宗密)의 5조설(五祖說)
     을 취하고 혜원은 배제되었다. 그런데 표원은 혜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그는 저
     작에서 여러 논사들의 설을 많이 인용했지만, 징관(738~839)의 말은 인용하지 않
     았다. 따라서 표원은 법장 이후 징관이 5교판을 다시 한번 확실히 한 후, 혜원의 설
     을 부정했을 때 생존하지 않았거나 저술을 남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87) 혜원은 사사무애(事事無礙)를 설명하면서 총상이 삼상(三相)에 의해 드러나는
     데, 삼상은 체사(體事), 덕상(德相), 업용(業用)이라 하고, 체사는 존재 세계의 사
     상(事象)을 내포와 외연의 구조로 분류하고 그것을 사사무애의 체로 여기는 본
     질로서의 사상을 말하며, 덕상은 내포의 양상, 업용은 내포의 작용으로 설명하
     였다.(김천학, p.153 주 627) 참조)
188)『속화엄경약소간정기(續華嚴經略疏刊定記)』권1 卍3 p.590c9~11.

 

3) 문답으로 분별함

묻는다. 이미 정념[情]을 초월했다고 하였는데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답한다. 법장 스님이 말했다. “대략 열 가지 문을 들어서 그 요점을 파악

해보면, 첫째 동시에 모두 갖추어 상응하는 원리[同時具足相應門], 둘째 넓

고 좁음이 자재하여 걸림이 없는 원리[廣狹自在無礙門], 셋째 하나와 여럿

이 서로 받아들이면서도 같지 않은 원리[一多相容不同門], 넷째 온갖 법이

서로 하나 되어 자재한 원리[諸法相卽自在門], 다섯째 숨음과 드러남이 은

밀히 성립되는 원리[隱密顯了俱成門], 여섯째 미세한 것들이 서로 받아들

여 세워지는 원리[微細相容安立門], 일곱째 인드라 그물 같은 법계의 원리

[因陀羅網法界門], 여덟째 사법에 의탁하여 법을 드러내고 앎을 내는 원리

[託事顯法生解門], 아홉째 십세가 하나가 되나 다르게 이루어지는 원리[十

世隔法異成門], 열째 주체와 객체가 원융하게 밝아 덕을 갖춘 원리[主伴圓

明具德門]이다.189) 그러나 이 열 가지 문은 같은 연기로 걸림 없이 원만하

게 융합되어 있으니, 한 가지 문을 따라 일체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마땅

히 생각할 수 있다.

189) 이상 열가지 문을 풀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
     門):제법(諸法)이 동시에 구족 원만하여 서로 조응(照應)하는 것, ② 광협자재무
     애문(廣狹自在無礙門), 고십현에서는 제장순잡구덕문(諸藏純雜具德門):수행하
     는 데 일(一)·다(多)의 행이 서로 즉입(卽入)함을 말하며, 순일(純一)한 행 가운
     데 복잡한 행이 그대로 덕으로서 갖추어져 서로 구애받지 아니하는 것, ③ 일다
     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알과 다가 서로 융섭하여 장애가 없지만, 항상 각
     자의 특징을 잃지 않고 그 본성을 유지하는 것, ④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
     門):알과 다의 체(體)가 융통무애하여 다가 곧 일이고, 일이 곧 다인 것, ⑤ 은밀
     현료구성문(隱密顯了俱成門):일과 다는 은밀하고 현묘하지만, 연기에 의하여
     둘 사이에 선후가 없는 것, ⑥ 미세상용안립문(微細相容安立門):일은 다를 함유
     하고 다는 일을 포용하여 일과 다가 파괴되지 않는 것, ⑦ 인다라망법계문(因陀
     羅網法界門):일체, 즉 알과 다가 상즉 상입(相卽相入)하여 마치 인드라[因陀羅]
     의 그물에 달린 수많은 보주(寶珠)가 서로 그림자를 비추듯이, 서로 포용함이
     한이 없는 것, ⑧ 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차별적 사물[현상계]에 가탁
     하여 법[진리]을 나타내고, 사람으로 하여금 요해(了解)의 지(智)가 생기게 하
     는 것. 현상계의 사물 그대로가 진리임을 가리킨다. ⑨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
     異成門):세(世) 즉 시간의 관점에서 보아 알과 다의 상즉 상입을 밝히는 것. 과
     거·현재·미래의 3세에 또 각각 3세가 있어 9세가 되며, 9세는 상즉 상입하여
     일념(一念)이 된다. 9세에 일념이 더해져 10세가 된다. ⑩ 주반원명구덕문(主伴
     圓明具德門):일체는 여래장심(如來藏心)을 그 본성으로 하여 이 마음 이외의 것
     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견해이다.

 

첫째 문 가운데 열 가지 뜻이 갖추어져 있다. 첫째 교법과 의의[敎義]를

갖춤, 둘째 원리와 현상[理事], 셋째 대상과 지혜[境智], 넷째 실천과 지위

[行位], 다섯째 원인과 결과[因果], 여섯째 의지와 주체[依正], 일곱째 본체

와 작용[體用], 여덟째 사람과 법[人法], 아홉째 부정과 긍정[逆順], 열째 감

응[應感]을 갖춤이다.”190)

190)『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권1 大35 p.123a28~b8.
     이후 표원은 십문(十門)의 순서나 명칭은 법장의『탐현기』를 따르며, 그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탐현기』와『화엄오교장』을 교차로 인용하거나 요약하여
     인용하고 있다. 십문(十門)은 내용과 순서에 따라 고십현(古十玄)과 신십현(新
     十玄)으로 구분한다. 즉 법장은 『화엄오교장』에서는 스승인 지엄의 십현문을 그
     대로 따랐으나『탐현기』를 저술하면서 수정을 하였다. 그래서『탐현기』 이후에
     보이는 십현설을 신십현(新十玄)이라 하고, 그 이전의 십현설을 고십현(古十玄)
     이라고 부른다. 고십현에 속하는 것은 지엄(智儼)의 『십현문』과 『대방광불화엄
     경수현분제통지방궤(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 법장의 『화엄문의강목
     (華嚴文義綱目)』『화엄금사자장(華嚴金獅子章)』『화엄일승교의분제장(華嚴一乘
     敎義分齊章)』이며, 법장의『탐현기』와 청량징관(淸凉澄觀)의『화엄경소(華嚴經
     疏)』등의 십현은 신십현이라고 한다. 신십현에서는 고십현의 제장순잡구덕문
     (諸藏純雜具德門)과 유심회전선성문(唯心迴轉善成門)을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
     在無碍門)과 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具德門)으로 고쳤는데, 이는 사사무애연
     기를 이사무애로 혼동할까 염려해서였다. 그리고 고십현의 비밀은현구성문(秘
     密隱顯俱成門)은 은밀현료구성문(隱密顯了俱成門)으로 명칭을 바꾸었으나 그
     내용은 같다.

 

이상의 열 가지 법은 동시에 상응하여 하나의 연기를 이루어 앞과 뒤, 처

음과 끝과 같은 것들의 구별이 없으며, 하나를 따라 각각 나머지 모든 뜻이

갖추어지니 섞여 있어도 잡스럽지 않아 연기의 궁극을 이룬다.

 

혜원스님은 “이 문은 총괄한 것이고, 뒤의 아홉 가지 문은 각론이다.”라

고 하였다.191)
191)『간정기』권1 “이 때문에 이 문은 뒤 아홉 문의 총론이고, 뒤 아홉 개는 이 문의
     각론이다.”(卍3 p.591b17. 是故此門, 爲後九門之總, 後九, 是此一門之別.)
     第三問答分別.

 

問, 旣言超情, 豈得可知耶?
答, 法藏師云 “略擧十門, 攝其綱要. 謂一同時具足相應門, 二
廣狹自在無礙門, 三一多相容不同門, 四諸法相卽自在門, 五
隱密顯了俱成門, 六微細相容安立門, 七因陀羅網法界門, 八
託事顯法生解門, 九十世隔法異成門, 十主伴圓明具德門. 然
此十門, 同一緣起, 無礙圓融, 隨有一門, 卽具一切, 應可思之.
就初門中, 有十義具足. 一教義具足, 二理事, 三境智, 四行位,
五因果192), 六依正, 七體用, 八人法, 九逆順, 十應感具足.”
此上十法, 同時相應, 成一緣起, 無有前後始193)終等別, 隨一
各具餘一切義, 參而不雜, 成緣起際. 慧苑師云,“ 此門爲總,
後九是別.”
192) 대본에는 異이나『탐현기』에 따라 果로 교정함
193) 내용에 의해 如를 始로 교정함

 

둘째 광협무애문(廣狹無礙門)이란 나눔[分]은 나눔이 없음[無分]이며 나

눔이 없음은 나눔이니, 걸림이 없이 자재한 것이다. 마치 하나의 티끌이 법

계에 두루 퍼져 있으면서도 본래의 자리를 파괴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 때

문에 혹은 오직 넓어서 끝이 없고, 혹은 한계가 분명하고, 혹은 그대로 넓

고 그대로 좁고, 혹은 넓고 좁음이 둘 다 없어진다. 혹은 앞의 네 가지를 갖

추니 이는 깨닫는 경지[解境]이기 때문이다. 혹은 앞의 네 가지를 끊으니

이는 실천의 경지[行境]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모두 이를 기준으로 한다.〉194)
二廣狹無礙者, 以分卽無分, 無分卽分, 無礙自在也. 如一微
塵, 普周法界, 而不壞本位也. 是故或唯廣無195)際, 或分限歷
然, 或卽廣卽狹, 或廣狹俱196)泯, 或具前四197), 以是解境故,
或絕前四, 以是行境故.〈下皆准此〉
194)『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23b27~c3. 二卽彼華葉普周法界而不壞本位. 以分卽
     無分無分卽分, 廣狹自在無障無礙. 下云, 此大蓮華其葉遍覆一切法界. 是故或唯廣
     無際, 或分限歷然, 或卽廣卽狹, 或廣狹俱泯, 或具前四, 以是解境故, 或絕前五, 以
     是行境故. 下皆准此.
195)『탐현기』에 의거하여 無礙를 無로 교감함.
196)『탐현기』에 의거하여 俱廣狹泯을 廣狹俱泯으로 교감함.
197)『탐현기』는 五이나 이 대본의 四가 맞는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일다상용문(一多相容門)은 곧 하나의 법이 펼쳐져 두루 일체 법 가

운데 들어가서 일체를 포섭하여 자기 안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펼쳐지

고 포섭하는 것이 같은 시간에 이루어지니 이미 막힘과 걸림이 없다. 『화엄

경』의 게송에서 “하나의 부처님의 땅으로 시방을 채우고, 시방이 하나에 들

어가니 또한 남음이 없네.198) 세계의 본래 모습 또한 무너지지 않으니, 비

할 바 없는 공덕이기에 그럴 수 있네.”라고 하였다.199)〈혜원 스님은 “일다상망
(一多相望)의 여섯 구절은 하나 가운데 하나가 있는 것, 여럿 가운데 여럿이 있는 것, 하나
가운데 여럿이 있는 것, 여럿 가운데 하나가 있는 것, 하나 가운데 여럿 중의 하나가 있는
것, 여럿 가운데 하나 중의 여럿이 있는 것이다.”200) 라고 하였으니, 나머지 크고 작은 것들
도 이것에 준한다.〉
三一多相容門者, 則此一法舒已, 遍入一切法中, 卽攝一切, 令
入己內. 舒攝同時, 旣無障礙. 此經偈云,“ 以一佛土滿十方,
十方入一亦無餘. 世界本相亦不壞, 無比功德故能爾.”〈慧苑師
云,“ 一多相望六句, 謂一中有一, 多中有多, 一中有多, 多中有一, 一中有多一,
多中有一多.” 餘大少等准之.〉
198)『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23c3~7. 三卽此華葉, 舒己遍入一切法界中. 卽攝一
     切令入己內, 舒攝同時旣無障礙, 是故鎔融. 或有四句六句, 准前思之. 下云, 以一佛
     土滿十方, 十方入一亦無餘.
199)『화엄경』권3「노사나품」 大9 p.414b21~22.
200)『간정기』권1 卍3 p.591c11~15.

 

넷째 제법상즉문(諸法相卽門)은 하나의 현상이 자기를 없애고 타자와

것과 같아지는 것이다. 본체를 들어 온전히 저 일체법이 되며 항상 다른 것

을 포섭하여 자기와 같게 하니, 저 일체법 전체가 곧 자기의 본체이다. 하

나와 여럿이 상즉(相卽)하여 섞이지만 장애나 걸림이 없다.201)『화엄경』에

서 “초발심 보살이 곧 부처이다.”202)라고 하였다. 이러한 연기의 미묘한 이

치로 말미암아 처음과 끝이 모두 균등하여, 처음을 얻음이 곧 끝을 얻음이

며 궁극의 끝이 바야흐로 근원의 시작이다. 또 말하기를 “하나의 지(地)의

지위에 있으면서 두루 일체의 모든 지의 공덕을 포섭한다.”203)고 하였다.

이 때문에 하나를 얻으면 일체를 얻는 것이다. 또 말하기를 “하나가 여럿이

고 여럿이 하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204)라고 하였으니 십신(十信)의

마지막 마음의 지위가 곧 부처가 된다는 것이 그러한 것이다.

四諸法相卽門者, 謂此一事, 廢己同他. 擧體全是彼一切法,
而恒攝他同己, 全彼一切法, 卽是己體. 一多相卽, 混無障礙.
經云,“ 初發心菩薩卽是佛故.” 由此緣起妙理, 始終皆齊, 得
始卽得終, 窮終方原始. 又云,“ 在於一地, 普攝一切諸地功德
也.” 是故得一卽得一切. 又云,“ 知一卽多, 多卽一故也.” 十
信終心卽作佛者, 卽其事也,
201)『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23c7~10. 四此一華葉, 廢己同他. 擧體全是彼一切
     法, 而恒攝他同己, 全彼一切, 卽是己體. 一多相卽, 混無障礙.
202)『화엄경』권9「초발심공덕품」大9 p.452c4.
203)『화엄경』 권1「세간정안품(世間淨眼品)」大9 p.395b25~26. 住於一地, 普攝一切,
     諸地功德.
204)『화엄경』권8「보살십주품(菩薩十住品)」大9 p.446a4~5. 所謂知一卽是多, 多卽是一.

 

묻는다. 동체일문(同體一門) 가운데 그대로 일체가 남김 없이 포섭된다

면 일시에 모두 나타나는 것인가, 전후가 있는 것인가?205)

답한다. 하나의 문 가운데 일시에 환하게 일체를 드러내 보이는 것은 미

세문(微細門)의 포섭에 속하는 것이고, 숨김과 비춤이 서로 겹겹으로 나타

나는 것은 인다라 포섭에 속하는 것이다. 나머지 의미는 곧 같음이자 곧 다

름이며, 곧 많음이자 곧 적음이며, 곧 있음이자 곧 없음이며, 곧 시작이자

곧 마침이다. 이와 같이 자재롭게 일체의 끝없는 법문을 갖추고 있다. 이에

(하나를) 들어 으뜸으로 삼으면 나머지는 곧 따르게 된다. 도리에 하나라도

차이나 잃음이 없으니, 예로부터 이와 같았다.206)
205)『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 大45 p.505b14. 이하 질문 7개는 『오교장』에서 취하
     였다.
206)『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 大45 p.505b14~20. 이하 답 7개는『오교장』에서 취
     하였다. 問如同體一門中卽攝一切無盡者, 爲一時俱現耶, 爲前後耶? 答於一門中,
     一時炳然現一切者, 屬微細攝, 隱映互現重重者, 屬因陀羅攝, 餘義卽同卽異, 卽多
     卽少, 卽有卽無, 卽始卽終. 如是自在具足一切無盡法門. 仍隨擧爲首, 餘卽爲伴, 道
     理一不差失舊來如此.

 

묻는다. 일문 가운데 일체가 갖추어져 있으면 나머지 문은 어떻게 작용

하는가?

답한다. 나머지 문은 허공과 같다. 왜냐하면 동체일문 가운데 일체를 포

섭하여 다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207)
207)『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 大45 p.505b22~24. 問若一門中, 卽具足一切無盡自
     在者, 餘門何用爲? 答餘門如虛空, 何以故, 同體一門并攝一切無不盡故.

 

묻는다. 이 동체 가운데 일체를 포섭한다는 것은 단지 스스로의 문[自門]

가운데 일체인데, 어찌 나머지 문 가운데 일체를 포섭한다고 하는가?

답한다. 이미 자신의 일체를 포섭하고 후에 나머지 하나하나의 문 가운

데 남김 없이 일체를 포섭한다. 왜냐하면 법계연기는 하나가 없으면 일체

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법계의 집[法界家]208)의 진실된

덕만을 논하기 때문에 그 끝의 한계는 말할 수 없다.

208)『오교장』에서는 법성가(法性家)임.(大45 p.505b29)

 

『화엄경』의 게송에서는 말한다.

“말할 수 없는 여러 겁 가운데

말할 수 없는 일체를 연설하네.

말할 수 없는 겁은 오히려 다 함이 있지만,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은 다 할 수 없네.”209)

또 게송에서 말한다.

“일체 중생의 마음은 모두 분별하여 알 수 있고

모든 국토의 먼지도 오히려 그 수를 헤아릴 수 있으며

시방 허공 세계의 털 하나도 헤아릴 수 있지만,

보살의 초발심은 끝내 헤아릴 수 없네.”210)
209)『화엄경』권29「심왕보살문아승기품(心王菩薩問阿僧祇品)」大9 p.586c18~23의
     게송을 부분 인용하였다.
210)『화엄경』권9「초발심보살공덕품(初發心菩薩功德品)」 大9 p.458b21~24.

 

진실로 일승법문을 말미암아 하나를 얻으면 곧 일체를 얻기 때문이며,

원인과 결과가 모두 평등하여 선후의 구별이 없기 때문이다. 『십지경론(十

地經論)』에서는 “십신 지위의 보살로부터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

의 법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연기이다. 육상(六相)211)의 총상(總相)과 별상

(別相) 등의 의미로 그것을 포괄한다.”212)고 하였다. 원인과 결과가 동시에

서로 용납하고 서로 상즉하여 각기 일체를 포섭하여 서로 주체가 되거나

객체가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서, 그것을 깊이 생각해야만 하니, 이 일은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 또 말하기를 “처음에 마음을 냈을 때 바로 바른 깨

달음을 이루는 것으로서, 지혜의 몸이 갖추어지는 것이지 다른 사람으로

인해 깨닫는 것이 아니다.”213)라고 하였다. 〈이러한 말은 헤아릴 수 없다.〉214)
211) 육상(六相):화엄종에서 만유의 모든 법에 낱낱이 6종의 모양이 있음을 말한다.
     총상(總相)·별상(別相)·동상(同相)·이상(異相)·성상(成相)·괴상(壞相) 등이다.
212)『십지경론』권1 환희지(歡喜地)의 해석에서 취합하였다.
213)『화엄경』권8「범행품(梵行品)」大9 p.449c14~15. 初發心時, 便成正覺, 知一切法
     真實之性, 具足慧身, 不由他悟.
214)『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 大45 p.505b26~c17. 問此同體中所攝一切者, 但應攝
     自門中一切, 豈可攝餘門中一切耶? 答旣攝自一切, 復攝餘一一門中無盡一切, 如
     是重重窮其法界也. 何以故. 圓融法界無盡緣起, 無一一切並不成故, 此但論法性家
     實德故, 不可說其邊量. 故此經偈云, 不可言說諸劫中, 演說一切不可說. 不可說劫
     猶可盡, 說不可說不可盡. 又偈云, 一切衆生心, 悉可分別知. 一切剎微塵, 尚可算其
     數. 十方虛空界, 一毛猶可量. 菩薩初發心, 究竟不可惻. 良由此一乘圓極自在無礙
     法門, 得一卽得一切故耳. 因果俱齊無前後別. 故地論云, 以信地菩薩乃至與不可思
     議佛法爲一緣起, 以六相總別等義而用括之, 明知, 因果俱時相容相卽, 各攝一切互
     爲主伴, 深須思之此事不疑. 又此經云, 何以故, 此初發心菩薩卽是佛故, 悉與三世
     諸如來等, 亦與三世佛境界等, 悉與三世佛正法等, 得如來一身無量身三世諸佛平
     等智慧, 所化衆生皆悉平等. 又云, 初發心時便成正覺, 具足慧身不由他悟. 如是云
     云無量. 廣如經文.

 

묻는다. 이러한 것들은 원인 가운데 덕을 찬탄하는 것일 뿐인데, 어떻게

결과인 덕이라 할 수 있는가?

답한다. 이 일승(一乘)의 뜻은 원인과 결과가 바탕을 같이 하여 하나의

연기를 이루는 것이니, 이것을 얻으면 저것을 얻고 저것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상즉하기 때문이다. 만일 결과를 얻지 못하면 원인도 원인으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결과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215)
215)『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 大45 p.505c17~20. 問此等歎因中德耳, 豈可卽滿德果
     耶? 答此一乘義, 因果同體成一緣起, 得此卽得彼, 由彼此相卽故. 若不得果者因卽
     不成因. 何以故, 不得果等非因也.

 

묻는다. 곳곳에서 과분(果分)216)은 말할 수 없는 것이고 단지 인분(因

)217)만을 말한다고 하였다. 무슨 까닭에 십신의 마지막 마음[終心]에 부

처가 되어 과법(果法)을 얻는다고 하는가?218)

답한다. 지금 부처가 되었다고 말한 것은 단지 처음에 듣고 본 이후에 두

번째 생에 이르러서 부처가 되는 실천을 완성하고,219) 마지막 마음의 지위

에서 원인의 지위[因位]가 끝까지 가득찬 자가 세 번째 생에 저 궁극의 경

지의 자재하고 원융한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원인의 본질은 결과에

의해 성립되기 때문이다. 다만 원인이 가득찬 자가 그대로 깨달음의 바다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깨달음의 경계이기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뿐이다. 이는 용녀나 보장엄동자(普莊嚴童子)나 선재동자(善財童子)

나 도솔천자(兜率天子) 등이 삼생(三生) 가운데 곧 그 과보를 얻었다는 뜻

과 같다. 자세한 것은 경에서 말한 것과 같다.220)
216) 과분(果分):분은 분제(分齊)의 뜻. 인의 범위를 인분(因分), 이에 대한 과의 범
     위를 과분(果分)이라 함. 불타의 깨달음의 내용인 진여의 세계는 불과(佛果)를
     깨달은 이가 아니면 알 수 없고 중생에게는 설명해 보일 수 없는 것이고[果分不
     可說], 불타가 될 인의 위치에 있는 중생을 위해 그 기연에 따라 설한 가르침은
     그 중생이 알 수 있는 것[因分可說]이라 한다.『십지경론』에서 설한 것을 법장이
    『화엄오교장』에서 해설하였다.
217) 인분(因分):위의 주 과분(果分) 참조.
218)『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 大45 p.505c20~22. “묻는다. 위에서 과분(果分)은 연
     (緣)을 떠나 상(相)을 말할 수 없는 것이어서 다만 인분(因分)을 논한다고 하였
     다. 어째서 십신의 마지막 마음에 부처가 되어 결과로서의 법을 얻는다고 분별
     하는가?”(問上言果分離緣不可說相, 但論因分者, 何故十信終心, 卽辯作佛得果法耶?)
219) 원문의 ‘至第二生 卽成佛行’은 『오교장』에서는 ‘至第二生 卽成解行’이라 하였다.
220)『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 大45 p.505c22~29.『오교장』에 의하면 마지막에 ‘應
     準思之’가 생략되었다. 마지막 부분을 다시 해석하면 “널리 이 경과 같이 분별
     하니, 마땅히 이에 준하여 생각하라.”이다. 答令言作佛者, 但從初見聞已去, 乃
     至第二生卽成解行, 解行終心因位窮滿者, 於第三生卽得彼究竟自在圓融果矣.
     由此因體依果成故, 但因滿者卽沒於果海中也. 爲是證境界故, 不可說也. 此如龍
     女及普莊嚴童子善財童子并兜率天子等, 於三生中卽克彼果義等. 廣如經辯應準
     思之.

 

묻는다. 위에서 말하기를 “한 생각 그대로 부처가 된다” 라고 했는데, 삼

승(三乘) 중에 이미 이러한 뜻이 있는데 이것과 어떻게 구별되는가?221)

답한다. 삼승은 이치를 보면 한 생각 그대로 부처가 된다 라고 하였다.

지금 이 일승은 한 생각 그대로 일체의 가르침과 의미, 진리와 사법(事法),

원인과 결과, 사람과 법(法) 등을 갖추게 되며, 모두 동시에 갖추고 있어 동

시에 〈열개의 중층의〉 부처가 된다. 그런데 이 한 생각과 백천겁은 다를 것이

없다. 마땅히 잘 생각해야 한다.222)
221)『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 大45 p.505c29~506a2.
222)『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 大45 p.506a2~12. “답한다. 삼승은 이치를 보면 일념
     이 그대로 부처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의 이 일승은 일념 그대로 일체의 가
     르침과 의미, 진리와 사법, 원인과 결과 등을 갖추고 있다. 위와 같은 일체 법문
     과 일체 중생이 모두 때를 같이 하고, (열겹의) 때를 같이 하여 부처가 된다. 그
     후 모두 새롭게 의혹을 끊고 또한 학지(學地)에 머물지 않고 정각을 이루며, 시
     불을 갖추니, 이는 다함 없이 거스르거나 따르는 공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나
     아가 인다라의 경계와 미세의 경계와 구세와 십세 등의 경계 등이 두루 여러 지
     위에 통한다. 이는 십신의 마지막 마음 이후에 십해·십행·십회향·십지 그리고
     불지 등이 동시에 두루 이루어 전후가 없이 일체를 갖출 뿐이다. 그런데 이 일념
     과 백천겁은 다르지 않다. 바로 마땅히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答三乘望理, 爲一
     念卽得作佛. 今此一乘, 一念卽得具足一切敎義理事因果等. 如上一切法門, 及與一切
     衆生皆悉同時同時同時同時同時同時同時同時同時同時作佛. 後皆新新斷惑, 亦不住
     學地而成正覺, 具足十佛以顯無盡逆順德故. 及因陀羅微細九世十世等遍通諸位. 謂說
     十信終心已去, 十解十行十迴向十地及佛地等, 同時遍成無有前後, 具足一切耳. 然此
     一念與百千劫無有異也. 直須思之.)

 

問, 如同體一門中, 卽攝一切無盡者, 爲一時俱現耶, 爲前
後也?
答, 於一門中, 一時炳然, 現一切者, 屬微細門攝, 隱暎互現重
重, 屬因陀羅攝者. 餘義卽同卽異卽多卽少卽有卽無卽始卽
終. 如是自在具足一切無盡法門. 仍隨擧爲首, 餘卽爲伴. 道
理一不差失, 舊來如是.
問, 若一門中, 卽具足一切者, 餘門何用?
答, 餘門如虛空. 何以故, 同體一門中, 並攝一切, 無不盡故.
問, 此同體中所攝一切者, 但應自門中一切. 豈可攝餘門中一
切耶?
答, 旣攝自一切, 後攝餘一一門中, 無餘一切. 何以故, 法界緣
起無一, 一切並不成故. 此但論法界家實德故, 不可說其邊量.
此經偈云, “不可言說諸劫中, 演說一切不可說. 不可說劫猶可
盡, 說不可說不可盡.” 又偈云, “一切衆生心, 悉可分別知. 一
切剎塵微, 尚可算其數. 十方虛空界, 一毛猶可量. 菩薩初發
心, 究竟不可測.” 良由一乘法門, 得一卽得一切故, 因果俱齊,
無先後別故. 地論云,“ 以信地菩薩, 乃至與不可思議佛法. 爲
一緣起, 以六相總別等義而用括之.,” 明知因果俱時, 相容相
卽, 各攝一切, 互爲主伴, 深須思之, 此事不疑. 又云,“ 初發心
時便成正覺, 具足慧身, 不由他悟.”〈云云無量〉
問, 此等歎因中德耳. 豈可卽果德耶?
答, 此一乘義, 因果同體, 成一緣起, 得此卽得彼, 由彼此相卽
故. 若果不得者, 因卽不成因. 何以故, 不得果, 故非因也.
問, 處處果分不可說, 但說因分者. 何故十信終心, 卽辨作佛得
果法也?
答, 今言作佛者, 但初從見聞已去, 至第二生, 卽成佛行, 終心
因位窮滿者, 於第三生, 卽得彼究竟自在圓融果矣. 由是因體
依果成故. 但因滿者, 卽沒於果海中也. 爲是證境界故, 不可
說耳. 此如龍女及普莊嚴童子善財童子兜率天子等, 於三生中,
卽尅彼果義等. 廣如經辨.
問, 上云,“ 一念卽作佛”者. 三乘之中, 已有此義, 與此何別,?
答, 三乘望理爲一念卽作佛. 今此一乘, 一念卽得具足一切教
義理事因果人法等, 皆悉同時, 同時〈十重〉作佛. 然此一念與
百千劫, 無有異也. 宜須思之.

 

다섯째 은밀현료문(隱密顯了門)223)은 하나가 여럿을 포섭하면 하나가

드러나고 여럿이 숨으며, 일체가 하나를 포섭하면 하나가 숨고 여럿이 드

러난다는 것이다. 드러남과 드러남은 함께 갖추어지지 않고 숨음과 숨음은

병존하지 않아서, 숨음과 드러남, 드러남과 숨음은 동시에 걸림이 없다.224)

『화엄경』에서 말하기를 “이쪽에서 정수(正受)225)에 들어가면 저쪽에서 삼

매에서 일어난다. 안근(眼根)226)이 정수에 들어가면 색진(色塵)227)이 삼매

에서 일어난다.”228)고 했다. 마치 첫째 동전 가운데 열 개의 동전을 완전히

드러남[顯了]이라 하고, 둘째 동전이 첫째 동전 중 열 개를 기대하는 것을

깊숙이 숨음[隱密]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왜냐 하면 이것을 보면 저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고, 서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록 서로 보지 못하지

만 이쪽이 이루어지면 저쪽도 이루어지기 때문에 함께 이루어진다[俱成]

고 한다.229)
五隱密顯了門者, 謂一能攝多, 則一顯多隱, 一切攝一, 則一
隱多顯. 顯230)顯不俱, 隱231)隱不並, 隱顯顯隱, 同時無礙. 經
云,“ 於此方入正受, 他方三昧起. 根入正受, 色塵三昧起.” 如
第一錢中十錢名爲顯了, 第二錢望第一錢中十卽爲隱密. 何
以故, 見此不見彼故, 不相知故. 雖不相見, 然此成卽彼成故,
名俱成也.
223) 이 은밀현료문은『탐현기』의 은밀현료구성문(隱密顯了俱成門)의 꽃의 비유
     와『오교장』의 비밀은현구성문(祕密隱顯俱成門) 내용을 함께 인용하여 구성
     하였다.
224)『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23c11~15. 五華能攝彼, 卽一顯多隱, 一切攝華, 卽一
     隱多顯. 顯顯不俱, 隱隱不並, 隱顯顯隱, 同時無礙, 全攝俱泯, 存亡俱成. 句數同前.
     下云, 東方見入正受, 西方見三昧起等.
225) 정수(正受):대경(對境)을 관하는 마음과 관할 바 대경이 일치되어, 바른 마음으
     로 대경을 섭입(攝入)하는 마음의 상태

226) 안근(眼根):caksur-indriya. 5근의 하나. 안식(眼識)의 있는 데가 되어 안식으
     로 하여금 형태·색채 등을 감각케 하는 시각 기관. 곧 눈.
227) 색진(色塵):5진(塵)의 하나. 6진의 하나. 안근(眼根)·안식(眼識)의 대경. 곧 물
     질 세계. 진성(眞性)을 더럽히고, 번뇌를 일으키므로 진(塵)이라 함.
228)『화엄경』권7「현수보살품(賢首菩薩品)」(大9 p.438b17~c6)을 요약한『오교장』을
     인용하였다.(권4 大45 p.506b23~24.)
229)『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 大45 p.506c5~8. 如上第一錢中十錢名爲顯了, 第二錢
     望第一錢中十卽爲祕密. 何以故, 見此不見彼故, 不相知故. 雖不相知見, 然則成此
     彼成故, 俱名成也.
230)『탐현기』에 의해 多를 顯으로 교감함.
231)『탐현기』에 의해 一을 隱으로 교감함.

 

여섯째 미세상용문(微細相容門)은 이 위의 여러 뜻이 처음과 끝, 같음

과 다름, 앞과 뒤, 거스름과 순응함 등 일체 법문이 한 생각 중에 동시에 밝

게 빛나고 머리를 가지런히 하여 드러나 명확하지 않음이 없으니, 비유하

면 날아오는 화살의 머리가 가지런하여 분명히 드러나는 것과 같다. 『화엄

경』에서 “보살이 한 생각 가운데 도솔천에서 내려와 태(胎)에 들어감으로

부터 사리를 유통시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다 드러난다.”고 했으며,232)

또 “한 티끌 안에 미세한 국토가 있어 청정하게 장엄되어 밝고 편안히 머문다.”

고 하였다.233)〈마땅히 이치대로 생각해야 한다.〉234)
六微細相容門者, 此上諸義, 始終同別, 前後逆順等一切法門,
於一念中, 炳然同時, 齊頭顯現, 無不明了, 猶如來箭齊頭現了
故. 經云,“ 菩薩於一念中, 從兜率天, 降神入胎, 乃至流通舍
利, 皆悉顯現.” 又云,“ 於一塵中, 微細國土, 莊嚴淸淨, 曠然
安住.”〈宜如理思〉
232)『화엄경』「이세간품(離世間品)」“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모든 깨끗한 업을 갖
     추었기 때문에, 도솔천에서 세간을 내려오신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일이 있기 때문에 천상에서 내려와 그 어머니 태에 의탁한다. 그 열 가지
     란 이른바 마음이 용렬한 중생들을 교화하여 성숙시키기 위한 것이다.”(권42
     大9 p.666b14~17. 菩薩摩訶薩, 具足如是等一切淨業故, 從兜率天下生世間, 佛子 
     菩薩摩訶薩, 有十種事故, 降神母胎, 何等爲十, 所謂爲敎化成熟小心衆生故.)를 요약
     한 것이다.
233)『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23c15~16. 六此華葉中微細剎等, 一切諸法, 炳然齊
     現. 下云, 於一塵中, 微細國土, 曠然安住. 이는『화엄경』권3「노사나불품」大9
     p.410c21~26 “한 터럭 중에 한없는 부처 세계 청정한 장엄으로 편안히 머물렀
     네. 그 모든 곳마다 계시는 노사나불 대중 바다 가운데서 바른 법 연설하네. 한
     티끌 안에 작은 국토가 있고, 모든 티끌들이 그 가운데 들어 있네.”(一毛孔中, 無
     量佛刹, 莊嚴淸淨, 曠然安住. 彼一切處, 盧舍那佛, 於衆海中, 演說正法. 於一塵內, 微
     細國土, 一切塵等, 悉於中住.)에서 뜻을 엮어 쓴 것.
234)『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 大45 p.506b10~17. 五者微細相容安立門. 此上諸義,
     於一念中具足始終同時別時前後逆順等一切法門, 於一念中, 炳然同時, 齊頭顯
     現, 無不明了. 猶如束箭, 齊頭顯現耳. 故此經云, 菩薩於一念中, 從兜率天降神母
     胎, 乃至流通舍利, 法住久遠, 及所被益諸衆生等, 於一念中皆悉顯現. 廣如經文.
     又云, 一毛孔中無量佛剎, 莊嚴淸淨曠然安住. 又云, 於一塵內, 微細國土, 一切塵
     等, 悉於中住. 宜可如理思之.
    

일곱째 인다라망문(因陀羅網門)은 하나하나의 작은 티끌 가운데 각각

모든 끝없는 세계235)가 두루 나타나고, 세계 가운데 다시 작은 티끌이 있으

며, 저 모든 티끌 안에 다시 세계가 있어 이처럼 거듭하여 다함이 없는 것

을 말한다. 이는 마음의 작용으로[心識] 생각하여 헤아림이 미치는 것이

아니니, 마치 제석천의 그물의 하늘의 구슬이 밝게 빛나서 서로 서로 비추

고 그림자는 또 그림자를 나타내어 다하여 없어짐이 없는 것과 같다. 『화엄

경』에서 “인다라망 세계 등과 같다.”236)고 하였고,237) 또 “하나의 작은 티끌

중에 각각 나유타처럼 무수히 많은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시어 그 가운데에

서 법을 설하신다.〈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238) 하나의 작은 티끌 중에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의 나라와 수미산, 금강위산(金剛圍山)239)이 나타나는데 세

간은 좁아지지 않는다.〈기세간[器世間]〉240) 하나의 작은 티끌 가운데 삼악도
(三惡道)241)와 하늘·인간·아수라가 나타나는데 각각 업보를 받는다.242)〈중
생세간[衆生世間]〉243)”
고 하였다. 또 “모든 부처님 세계의 작은 티끌처럼 (많

은), 그곳에 부처님들께서 한 터럭 구멍에 앉아계시고, 모두 헤아릴 수 없

는 보살의 무리가 있어, 각각 보현행(普賢行)을 함께 설하신다. 헤아릴 수

없는 세계의 한 터럭에도 모두 보리연화좌에 앉아서 일체 제 법계에 두루

가득 차 계셔서, 일체의 터럭 구멍에 자재롭게 나타난다.”244)고 하였다. 또

“하나의 작은 티끌에 나타나 보이는 것처럼 일체의 작은 티끌도 이와 같

다.”245)고 하였다.〈등등〉 

235) 찰해(刹海)는 찰토대해(刹土大海)로서 시방세계, 곧 우주를 를 말함. 찰은 국토,     
     해는 대해의 의미임.
236)『화엄경』권23「십지품(十地品)」大9 p.545c12~13.
237)『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23c16~21. 七華葉一一微塵之中, 各皆竝現無邊剎     
     海, 剎海之中復有微塵, 彼諸塵內復有剎海. 如是重重不可窮盡, 非是心識思量所     
     及. 如帝釋網天珠明徹, 互相影現, 影復現影, 而無窮盡. 下文 如因陀羅網世界等.
238)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화엄종에서 말하는 세 종류의 세간 중 하나이다. 일체     
     의 번뇌·망상을 떠난 지혜에 따라 정각을 얻은 지자(智者)의 세계, 즉 삼계윤회     
     를 초월한 출세간(出世間)을 가리킨다.
239) 금강위산(金剛圍山): Cakravāda-parvata. 철위산(鐵圍山)·윤위산(輪圍山)·금     
     강산(金剛山)이라고도 한다. 불교의 세계관에 따르면, 세상 한 가운데 있는 수미     
     산을 9개의 산과 8개의 바다가 둘러싸고 있다. 이를 구산팔해(九山八海)라 하는     
     데, 이 중 가장 바깥쪽에 있는 산이 금강위산이다.
240) 기세간(器世間):화엄종에서 말하는 세 종류의 세간 중 하나이다. 중생이 살고     
     있는 국토를 가리킨다.
241) 삼악도(三惡道):악인이 죽어서 가는 세 가지의 괴로운 세계. 지옥도·축생도·
     아귀도를 말한다.
242)『화엄경』권26「십지품(十地品)」大9 p.564a16~21. 於一微塵中, 各示那由他, 無     
     量數諸佛, 於中而說法. 於一微塵中, 見無量佛國, 須彌金剛圍, 世間不迫迮. 於一微     
     塵中, 見有三惡道, 天人阿脩羅, 各各受業報.     
     이 내용을『오교장』에서 인용한 부분을 재인용한 것이다.『화엄일승교의분제     
     장』권4 大45 p.506a15~19.
243) 중생세간(衆生世間):화엄종에서 말하는 세 종류의 세간 중 하나이다. 중생과     
     국토를 형성하는 요소로서의 오온, 즉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을     
     가리킨다
.244)『화엄경』권3「노사나불품」大9 p.408a15~18
245)『화엄경』권6「현수보살품」大9 p.434c18.

 

이러한 것들은 모두 진실된 의미이며, 변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

것은 여리지(如理智)246) 중의 여량경(如量境)이다. 그 나머지의 변하여 이

루어진 것 등은 이 예에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법성(法性)의

진실된 덕성이기 때문이다. 법이 이와 같으니 분별하여 말하는 경계가 아

니다.247)〈정념을 버려야 생각할 수 있다〉

246) 여리지(如理智):근본지(根本智). mūla-jñāna. 근본무분별지(根本無分別智)·
     실지(實智)·진지(眞智)라고도 한다. 무분별지(無分別智)의 하나. 후득지(後得
     智) 곧 여량지(如量智)에 상대된다. 모든 지의 근본이 되며 진여의 미묘한 이치
     를 증득할 수 있는 것으로, 평등하여 여실하며 차별이 없기 때문에 무분별지라
     고 한다. 10바라밀 중의 반야바라밀을 말한다. 이에 비해 여량지는 근본지에 의
     해 진리를 깨달은 후에 다시 분별하는 얕은 지혜를 일으켜서 의타기성의 세속
     의 경계를 아는 지혜이다.
247)『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 大45 p.506a13~27. 원문의 ‘此是法性實德’은『오교
     장』에서는 ‘此並是法性家實德’이며, ‘非分別情謂境界也’는 ‘분별된 정념의 인
     식의 경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非謂分別情識境界)’이다. 四者因陀羅網境界
     門. 此但從喻異前耳. 此上諸義體相自在, 隱顯互現重重無盡. 故此經云, 於一微塵
     中, 各示那由他, 無數億諸佛, 於中而說法. 於一微塵中, 現無量佛國, 須彌金剛圍,
     世間不迫迮. 於一微塵中, 現有三惡道, 天人阿脩羅, 各各受果報. 此三偈卽三世間
     也. 又云, 一切佛剎微塵等, 爾所佛坐一毛孔. 皆有無量菩薩衆, 各爲具說普賢行.
     無量剎海處一毛, 悉坐菩提蓮華座. 遍滿一切諸法界, 一切毛孔自在現. 又云, 如一
     微塵所示現, 一切微塵亦如是. 餘者云云無量. 廣如經辯. 此等並是實義非變化成,
     此是如理智中如量境也. 其餘變化等者不入此例. 何以故. 此並是法性家實德, 法
     爾如是也.

 

七因陀羅網門者, 謂此一一微塵之中, 各皆普現無邊剎海, 剎
海之中, 復有微塵, 彼諸塵內, 復有剎海. 如是重重不可窮盡.
非是心識思量所及, 如帝釋網天珠明徹, 互相影復現影而無窮
盡. 經云,“ 如因陀羅網世界等.” 又云,“ 於一微塵中, 各示那
由他, 無數億諸佛, 於中而說法〈智正覺世間〉, 於一微塵中, 現無
量佛國, 須彌金剛圍山, 世間不迫迮〈器世間〉, 於一微塵中, 現
有三惡道, 天人阿修羅, 各各受業報.〈衆生世間〉” 又云,“ 一切
佛剎微塵等, 爾所佛坐一毛孔, 皆有無量菩薩衆, 各爲具說普
賢行. 無量剎海處一毛, 皆坐菩提蓮華座, 遍滿一切諸法界, 一
切毛孔自在現.” 又云,“ 如一微塵所示現, 一切微塵亦如是.”
〈云云〉 此等並是實義, 非變作成. 此是如理智中, 如量境也. 其
餘變作等者, 不入此例. 何以故, 此是法性實德. 法爾如是, 非
分別情謂境界也.〈可去情思之〉

 

묻는다. 위에서 “하나의 티끌 중에 헤아릴 수 없는 국토가 나타난다”고

한 것은, 이것은 한번 거듭 나타났을 뿐인데 어떻게 중중(重重)이 이루어진

다고 하는가?

답한다. 이곳에서 화엄을 설할 때 모든 티끌 중에서도 이와 같이 (설한

다)고 하며, 그 작은 티끌 중에서 화엄을 설할 때도 또한 모든 티끌 중에서

도 이렇게 설한다고 한다. 이와 같이 변화하고 거듭하여 다함이 없고 다함

이 없다.

 

묻는다. 만일 이 글에 근거한다면 거듭하고 거듭되어 다함이 없는 것은

어떤 구분이 있고 어떻게 그 처음과 끝 등을 분별할 수 있는가?

답한다. 그 지혜에 따라 취하는 것이니, 하나를 들어 으뜸으로 삼으면 나

머지는 따르게 된다. 그 으뜸된 것에 근거하는 것을 중심[當中]이라 하고 나

머지는 따르는 식구[眷屬]가 되어, 법계가 다하도록 인다라가 이루어진다.

 

묻는다. 이 뜻은 위의 미세문과 어떻게 다른가?

답한다. 머리를 가지런히 하여 밝게 나타나는 것은 미세문의 포섭이며,

거듭거듭 은밀하게 비추어 서로 나타내는 것은 인다라문의 포섭이다. 이

러한 여러 가지 뜻은 모두 달라서 같지 않으니, 마땅히 자세하게 생각해야

한다.248)
問, 上云,“ 於一塵中現無量剎”等者, 此是一重現而已, 何成重
重249)耶?
答, 此方說華嚴時, 一切塵中亦如是, 彼微塵中說華嚴時, 亦云
一切塵中亦是說. 如是展轉重重, 無盡無盡.
問, 若據此文, 重重無盡, 有何分齊, 云何辨其始終等也?
答, 隨其智取, 擧一爲首, 餘卽爲伴. 據其首者, 卽名當中, 餘
卽眷屬, 盡窮法界因陀羅成也.
問, 此義與上微細, 云何別耶?
答, 齊頭炳然現者微細攝, 重重隱暎互現因陀羅攝. 此等諸義,
並別不同, 宜細思之.
248)『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 大45 p.506a28~b10.『오교장』에서는 네 번째에 인
     다라망경계문을, 다섯 번째에 미세상용안립문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세
     번째 질문과 답은 다섯 번째인 미세상용안립문 부분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
     나 순서가 바뀌었을 뿐 그 둘의 차이점을 설명하여 혹시 있을 수 있는 혼란을
     방지하려는 내용은 같다. 問上一塵中現無量佛剎等者, 此但是一重現而已. 何
     故乃云重重現耶? 答此方說華嚴經時, 云一切微塵中亦如是說彼微塵中說華嚴
     經時. 亦云一切微塵中亦如是說. 如是展轉卽重重無盡也. 宜準思之. 問若據此文
     重重無盡, 有何分齊云何辯其始終等耶? 答隨其智取, 擧一爲首餘則爲伴. 據其
     在等, 皆悉如是攝一切法無窮法界並悉因陀羅成也. ; b19~22. 問是義與上因陀
     羅何別耶? 答重重隱映互現, 因陀羅攝齊頭炳然顯著微細攝. 此等諸義並別不同.
     宜細思之.
249)『오교장』에 의해 重을 重重으로 교감함.

 

여덟째 탁사현법문(託事顯法門)은 사상(事相)을 보는 것을 말하니, 곧

이다이 없는 법계를 보는 것으로, 이는 이것에 의탁하여 따로 드러낼 것

이 있는 것이 아니다.『화엄경』에서 “이 화개(華蓋) 등은 무생법인(無生法

忍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250)
八託事顯法門者, 謂見此事, 卽是見於無盡法界, 非是託此別
所表. 經云,“ 此華蓋等, 從無生法忍所起等.”
50)『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23c21~23. 八見此華葉, 卽是見於無盡法界, 非是託
     此別有所表. 下云, 此華蓋等, 從無生法忍所起等.『화엄경』의 구절은 명확하지 않
     으나, 권13「여래승도솔천궁일체보전품(如來昇兜率天宮一切寶殿品)」에 나오는
     (大9 p.482a17~19. 無生法忍所起雜寶鈴網普覆莊嚴一切法界, 出過諸天所供養上, 供
     養如來, 入無礙智慧.) 정도가 근접한다.

 

묻는다. 삼승 중에 이러한 뜻이 있는데 이것과 어떻게 다른가?

답한다. 삼승은 다른 사상(事相)에 의탁하여 다른 이치를 나타낸 것이다.

지금 이 일승이 의탁한 사상은 저 드러난 도리와 다시 다르지 않으니, 모든

원리와 현상과 교법과 의미를 갖추고 있어 포섭하여 다하지 않음이 없다.251)
問, 三乘之中, 以有此義, 與此何別?
答, 三乘託異事相, 表顯異現. 今此一乘所託之事相, 卽是彼所
顯道理, 更無異也, 具足一切理事教義, 無不攝盡者也.
251)『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 大45 p.507a22~26. 問三乘中以有此義, 與此何別? 答
     三乘託異事相表顯異理. 今此一乘所託之事相, 卽是彼所現道理, 更無異也. 具足一
     切理事教義及上諸法門, 無不攝盡者也. 宜可如理思之.

 

아홉째 십세격법문(十世隔法門)은 위의 여러 가지 뜻이 일체법에 두루

하며 일체의 시간을 갖추는 것이다. 삼세에 각각 세 가지가 있고, (이것을)

포섭하여 일념이 되기 때문에 십세(十世)가 되는 것을 말한다. 시간은 따

로 체(體)가 없이 법(法)에 의지하여 세워지는데 법이 이미 걸림이 없으니

시간 또한 그와 같다. 『화엄경』에서 “과거의 모든 겁을 미래와 지금에 안치

하고, 미래와 현재겁252)을 돌려 과거세에 둔다.”253)고 하였으며,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 곧 한 생각이고, 한 생각은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

다.”254)라고 하였다.255) 또한 “혹 긴 겁이 짧은 겁에 들어가고 짧은 겁이 긴

겁에 들어가며, 부처님이 계시는 겁이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겁에 들어가

고,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겁이 부처님이 계시는 겁에 들어간다.”256)라고
하였다.〈등등〉

252)『화엄경』에 는 未來劫이 未來現在劫이다.
253)『화엄경』권43「이세간품(離世間品)』大9 p.674b17~18. 未來劫은『화엄경』에서
     는 未來現在劫이다.『탐현기』에는 未來一切劫이라 하였다.(『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23c27)
254)『화엄경』권9「초발심공덕품」 大9 p.451a20~21.
255)『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23c24~29. 九卽此一華旣具遍一切處, 亦復該一切
     時. 謂三世各三, 攝爲一念, 故爲十世也. 以時無別體, 依華以立, 華旣無礙, 時亦如
     之. 是故下云, 過去一切劫, 安置未來今, 未來一切劫, 迴置過去世. 又云, 無量劫卽
     一念, 一念卽無量劫等.
256)『화엄경』권27「십지품」大9 p.572c19~25. 所謂一劫攝阿僧祇劫, 阿僧祇劫攝一
     劫, 有數劫攝無數劫, 無數劫攝有數劫, 一念攝劫, 劫攝一念, 劫攝非劫, 非劫攝劫,
     有佛劫攝無佛劫, 無佛劫攝有佛劫, 過去未來劫攝現在劫, 現在劫攝過去未來劫, 未
     來過去劫攝現在劫, 現在劫攝未來過去劫, 長劫攝短劫, 短劫攝長劫, 諸劫攝相, 皆
     如實知. 이 내용 중에 일부를 인용한 것이『오교장』이다. 大45 p.506c23~507a2.
     故此經云, 或以長劫入短劫, 短劫入長劫, 或百千大劫爲一念, 一念卽百千大劫, 或
     過去劫入未來劫, 未來劫入過去劫, 如是自在時劫無礙, 相卽相入渾融成矣. 이것이
     다시 요약되어 이『요결문답』의 구절이 되었다.

 

이상의 여러 뜻은 모두 십세 중에 자재롭게 나타나 연기를 이루기 때문

에 상즉과 상입이 된다.

九十世隔法門者, 此上諸義, 遍一切法, 復該一切時. 謂三世
各三, 攝爲一念, 故爲十世也. 以時無別體, 依法以立, 法旣無
礙, 時亦如是. 經云,“ 過去一切劫, 安置未來今, 未來現在257)
劫, 迴置過去世.” 又云,“ 無量劫卽一念, 一念卽無量劫等.”
又云,“ 或以長劫入短劫, 短劫入長劫, 有佛劫入無佛劫, 無佛
劫入有佛劫等.”〈云云〉此上諸義, 悉於十世, 自在顯現, 成緣起故, 得卽入也.258)
257)『화엄경』에 의해 現在 추가
258『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4 大45 p.506c21~22. 此十世具足別異, 同時顯現成緣起
     故, 得卽入也.

 

열째 주반원명문(主伴圓明門)은 이 원교(圓教)259) 법은 이치가 홀로

일어남이 없이 반드시 주체와 객체가 따라서 생기는 것이다.『화엄경』에서

“이 대연화(大蓮華)는 세계의 바다의 티끌의 수와 같은 꽃이 있어 이를 권

속을 삼는다.”260)고 하였다. 또 “대위광태자(大威光太子)261)〈진경(晋經)에서는
보장엄동자(普莊嚴童子)〉가
 부처님께서 설하신『일체법계무구장엄경(一切法界

無垢莊嚴經)』을 듣고 세계의 작은 티끌 수 만큼의 수다라가 있는 것으로써

권속을 삼았다.”262)고 하였다. 또 “한쪽이 주체가 되면 시방은 객체가 되는

것처럼, 나머지 방위도 그러하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주체와 주체, 객체

와 객체는 각각 서로 보지 못하며 주체와 객체, 객체와 주체는 갖추어진 덕

을 원만하게 밝힌다.263)

十主伴圓明門者, 此圓教法, 理無孤起, 必主伴隨生, 經云,
“此大蓮華, 有世界海塵數華, 以爲眷屬”, 又云,“ 大威光太子
〈晉經普莊嚴童子〉, 聞佛說一切法界無垢莊嚴經, 有世界微塵數修
多羅, 以爲眷屬”, 又,“ 如一方爲主, 十方爲伴, 餘方亦爾”, 是
故主主伴伴各不相見, 主伴伴主, 圓明具德.
259) 원교(圓教):원만한 교법.『화엄경(華嚴經)』에 ‘원만인연수다라(圓滿因緣修多
     羅)’ 또는 ‘원만경’이란 말이 있는 데서 기인하여 이것으로 교상판석(敎相判釋)
     을 삼고, 점돈원(漸頓圓)의 3교를 세웠다.『화엄경』을 원교라 한 것은 북위(北魏)
     의 혜광(惠光)이 처음이며, 그 후 천태의 4교, 화엄의 5시(時), 도선(道宣)의 교판
     에 이 명목을 사용하면서 자기가 가장 믿는 경전을 원교에 배당한다.
260)『화엄경』에서 일치하는 구절은 없으나, 권4「노사나불품」(大9 p.416c23~a1)의
     다음 구절이 비슷한 용례이다. 時彼林中, 有一道場, 名寶華莊嚴. 其道場前, 有大
     蓮華, 名華焰具足, 縱廣百億由旬, 十億蓮華眷屬圍遶. 時彼世界過百歲已, 有佛出
     世, 如是次第, 有十須彌山塵數如來出興于世. 其最初佛, 名一切功德本勝須彌山
     雲. 時佛處彼大蓮華上, 眉間白毫放大光明, 名一切功德覺. 有十佛世界塵數光明
     以爲眷屬.
261) 대위광태자(大威光太子):『화엄경』에서 사승신(四勝身)으로 성불하는 동자. 구
     역에서는 보장엄동자(普莊嚴童子). 석가모니불의 전신으로, 견문(見聞)·해행·
     중입(證入)의 삼생(三生) 성불 중 해행(解行)성불의 승신으로서 그 마지막에 과
     해(果海)에 들어가 끝내 성불한다.
262)『화엄경』권4「노사나불품」大9 p.418a18~24. “보장엄동자는 그 부처님을 보고
     는 부처를 생각하는 삼매와 넓은 문이며 바다의 창고인 삼매, 한량없는 지혜로
     법륜을 굴리는 삼매, 매우 깊은 즐거워하는 삼매 등을 얻었다. 그 때 부처님은
     일체법계자성이구장엄(一切法界自性離垢莊嚴)이라는 경과 그에 따른 세계의 티
     끌 수 만큼의 수다라를 권속으로 삼아 말씀하셨다. 보장엄동자는 그 경을 듣자
     곧 삼매를 얻었으니, 그 이름은 모든 법의 넓은 문이며 기쁨의 창고인 삼매와 일
     체 법에 들어가는 방편 바다의 삼매였다.”(普莊嚴童子, 見是如來已, 卽得念佛三昧,
     普門海藏三昧, 無量智持轉法三昧, 甚深法樂三昧, 時佛說經, 名一切法界自性離垢莊
     嚴, 有世界微塵等修多羅, 以爲眷屬, 普莊嚴童子, 聞是經已, 卽得三昧, 名一切法普門
     歡喜藏三昧, 入一切法方便海三昧.
263)『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23c18~22. 第十主伴圓備門者, 謂此普法教, 不孤起,
     必主伴隨生. 如下文普莊嚴童子聞佛說一切法界無垢莊嚴經, 有世界微塵數修多羅
     以爲眷屬. 如是等文處處皆有. ; 123c29~124a4. 十此圓敎法理無孤起, 必眷屬隨生.
     下云, 此華有世界海塵數蓮華以爲眷屬. 又如一方爲主, 十方爲伴, 餘方亦爾, 是故
     主主伴伴, 各不相見, 主伴伴主, 圓明具德.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같은 동류(同類)이고 다른

하나는 이류(異類)이다. 첫째 동류는 마치 십주(十住)264)를 설하는데 시방

에 각각 열 가지 땅의 티끌 수 만큼의 보살이 와서 증명하여 같이 법혜(法

慧)라고 하면서, 우리들의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도 십주를 설하는데 대중

의 식구와 언설[名味句] 265) 등이 다르지 않다고 하는 것과 같다.266)그러니

하나의 『십주경(十住經)』이 시방에 각각 열 개의 국토가 있어 티끌 수 만큼

의 수다라를 권속으로 삼는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하나의 십주처

럼 나머지 모든 곳에서 설한 십주도 모두 티끌 수 만큼의 권속을 포섭한다.

십주가 이미 그러하니 나머지 십행(十行) 등 하나하나의 품(品)과 모임자

리[會座]도 모두 법의 수와 양을 증명함이 있다. 미루어 해석하면 알 수 있

을 것이다.

264) 십주(十住):보살 수행계위 52위 중 제11위부터 제20위까지의 계위. 화엄41위
     에서는 제1위부터 제10위. 10신(信)의 계위를 지나서 마음이 진제(眞諦)의 이치
     에 안주하게 되는 계위. ①발심주(發心住), ②치지주(治地住), ③수행주(修行住),
     ④생귀주(生貴住), ⑤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 ⑥정심주(正心住), ⑦불퇴주(不退
     住), ⑧동진주(童眞住), ⑨법왕자주(法王子住), ⑩관정주(灌頂住).
265) 명미구(名味句)는 아비담(阿毗曇) 9분 중의 하나. ①분별설계(分別說戒) ②분별
     설세간(分別說世間) ③분별설인연(分別說因緣) ④분별설계(分別說界) ⑤분별설
     동수득(分別說同隨得) ⑥분별설명미구(分別說名味句, 名句文) ⑦분별집정(分別
     集定) ⑧분별설집업(分別說集業) ⑨분별설제음(分別說諸陰)(원측,『解深密經疏』
     권1 韓1 p.22b13)
266)『화엄경』권8「십주품」大9 p.446c3~10. 佛子善說是法, 我等諸人, 同名法慧. 所從
     來國, 同名法雲. 彼諸如來, 同號妙法. 我等佛所, 亦說十住. 大衆眷屬名味句身, 等
     無有異. 是故佛子, 我等承佛神力, 來詣此土, 爲汝作證. 如此四天下須彌山頂妙勝
     殿上說十住法, 十佛世界微塵數等諸大菩薩來此作證, 一切十方亦復如是.

 

두 번째 이류는 한 장소와 한 세계에 따라 한 부류의 근기를 위해 한 회

좌의 법을 설함이 이미 시방 등에서 설한 것과 결합되고 통함이 없음을 말

한다.267) 때문에 주체가 되는 경전은 아니지만 역시 주체와 함께 뛰어난 방

편이 되기에 일가가 된다. 이 때문에 주체가 되는 경전은 반드시 시방의 티

끌 수 만큼 많은 세상에서 동시에 같이 설하지만, 수반되는 경전은 그렇지

않아서 장소에 따라 각기 다르다. 이 때문에 하나하나의 주체가 되는 경전

은 각기 티끌 수 만큼이나 많은 권속이 있다.268)
267)『화엄경탐현기』에서는 ‘旣無結通十方等說’로 ‘無’자가 있다. 따라서『탐현기』를
     따른다면 “이미 시방 등에서 설한 것과 결합하여 통함이 없다.”가 된다.
268)『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19c22~120a5. 此眷屬經有其二義, 一同類, 二異類.
     初同類者, 如說十住十方各有十剎塵數菩薩來證, 同名法慧, 我等佛所亦說十住. 大
     衆眷屬名味句身等無有異. 是故當知一十住經十方各有十剎塵數修多羅等以爲眷
     屬, 如一十住餘一切處所說十住皆攝爾許塵數眷屬. 十住旣爾餘十行等一一品會皆
     有證法. 數量准釋可知. 二異類者, 謂隨一方一界爲一類機說一會法. 旣無結通十方
     等說, 故非主經. 然亦與主爲勝方便故爲眷屬. 是故主經必十方塵道同時同說, 伴經
     不爾隨方各別. 是故一一主經各有塵數眷屬.

 

또한 옛 장소(章疏) 가운데 제장순잡구덕문(諸藏純雜具德門)과 유심회

전선성문(唯心迴轉善成門)을 설하여269) 그 의미의 문이 헤아릴 수 없으니

모두 말할 수 없을 뿐이다.

269) 법장은『화엄오교장』에서는 스승인 지엄의 십현문을 그대로 따랐으나『화엄경
     탐현기』를 저술하면서 수정을 하였다. 그래서『탐현기』 이후에 보이는 십현설
     을 신십현(新十玄)이라 하고, 그 이전의 십현설을 고십현(古十玄)이라고 부른다.
     고십현의 제장순잡구덕문(諸藏純雜具德門)과 유심회전선성문(唯心迴轉善成門)
     을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碍門)과 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具德門)으로 고
     쳤는데, 이는 사사무애연기를 이사무애로 혼동할까 염려해서였다. 그리고 고십
     현의 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顯俱成門)은 은밀현료구성문(隱密顯了俱成門)으로
     명칭을 바꾸었으나 그 내용은 같다.

 

然此有二義, 一同類, 二異類. 初同類者, 如說十住, 十方各有
十剎塵數菩薩來證, 同名法慧, 我我等佛所, 亦說十住, 大衆
眷屬, 名味句身, 等無有異. 是故當知, 一十住經, 十方各有十
剎塵數修多羅等, 以爲眷屬. 如一十住, 餘一切處所說十住,
皆攝爾許塵數眷屬. 十住旣爾, 餘十行等, 一一品會, 皆有證法
數量. 准釋可知. 二異類者, 謂隨一方一界爲一類機, 說一會
法, 旣無270)結通十方等說. 故非主經, 然亦與主爲勝方便, 故
爲眷屬. 是故主經必十方塵道同時同說, 伴經不爾, 隨方各別.
是故一一主經, 各有塵數眷屬. 亦古章疏中, 說諸藏純雜具德
門, 唯心迴轉善成門, 義門無量, 不可具陳耳.
270)『탐현기』에 의해 無 추가.

 

위에서 밝힌 열 가지 문의 뜻들은 같은 연기여서 걸림이 없이 원융하여

한 가지 문에 따라 일체가 갖추어진다는 것을 마땅히 생각할 수 있다.271)

처음이 이미 그렇다면 나머지 광협문 등의 아홉 가지 문이 모두 각기 앞의

십시(十時)를 갖추었는데 단지 문에 따라 다를 뿐이다. 이 때문에 하나하

나의 문 가운데 각기 백천 개의 (문)들이 있다.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

다.272) 〈하나의 사상(事相)의 법이 스스로 열 가지 뜻을 가지고 있고, 이 열 가지 문을 갖
추고 있으니 백 문이 되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나머지 교법과 의미 등도 또한 각기 이에
준하기 때문에 천 문이 이루어진다. 교법과 의미 등이 자신의 부류의 열 가지 뜻과 동시의
십문을 기대하면 천 문이 있게 된다. 저 동시문 등도 또한 자신의 부류의 십문과 교법과 의
미 등을 기대하면 역시 천 문이 이루어진다. 미루어 생각하면 알 수 있다.273)
上來所明十門義等者, 同一緣起, 無礙圓融, 隨有一門, 卽具
一切, 應可思之. 如初旣爾, 餘廣狹等九門, 皆各具前十時,
但隨門異耳. 是故一一門中, 各有百千等. 思之可見.〈謂如一事
法帶自十義, 具此十門, 則爲一百. 餘教義等, 亦各准之, 故成千門. 如教義等
望自類十義, 及同時十門有此千門. 彼同時等亦望自類十門及教義等亦成千門.
准思可見.〉
272)『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23b10~13. 隨一各具餘一切義, 如初門旣爾, 餘廣狹等
     九門, 皆各具前十對, 但隨門異耳. 是故一一門中各有十百千等. 思之可見.
273)『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24a4~8. 如一事華帶自十義, 具此十門卽爲一百門.
     餘教義等, 亦各准之, 故成千門. 如教義等望自類十義, 及同時等十門, 有此千門. 彼
     同時等, 亦望自類十門, 及教義等, 亦成千門. 準思可見.

 

6. 보법의 의미[普法義]

 

세 가지 문(門)은 앞과 같다.

 

1) 이름을 풀이함

보(普)는 두루 미친다는 것이니, 두루한다는 뜻을 보(普)라고 말한다. 법

(法)은 자체(自體)라는 뜻이고 법칙[軌則]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인 설명과 같
다.〉일체법이 상입(相入)하고 상시(相是)하는 것을 말한다. 상입이라 하는

것은 원효 스님이 말하기를 “일체 세계가 하나의 작은 티끌에 들어가고, 하

나의 작은 티끌이 일체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하나의 작은 티끌처럼
일체 또한 그러하다〉
 삼세의 모든 겁이 한 찰나에 들어가고, 한 찰나가 삼세의

모든 겁에 들어간다.”라고 하였다.〈한 찰나와 같이 일체의 찰나도 그러하다.〉 마치

모든 크고 작은 것과 빠르고 (느린) 상입과 같이 나머지 모든 문의 상입도

그러하다.274) 상시(相是)를 설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여, 모든 법과 모든 문

에서 하나가 곧 일체이고 일체가 곧 하나임을 말한다. 이처럼 넓고도 넓어

서 보법이라고 한다.275)

普法義276)
三門同前.
第一釋名者. 普者溥也, 謂遍義是普也. 法自體義, 軌則義.〈如
常說也〉 謂一切法相入相是. 言相入者, 曉云, “謂一切世界入一
微塵, 一微塵入一切世界.〈如一微塵一切亦爾〉 三世諸劫入一剎那,
一剎那入三世諸277)劫.〈如一剎那, 一切亦爾〉 如諸大少促相入, 餘
一切門相入亦爾, 如說相是亦爾, 謂一切法及一切門, 一是一
切, 一切278)是一. 如是廣蕩, 名爲普法.
274) 원효의『화엄경소』 韓1 p.495a5~6에서는 ‘大少促’을 ‘非大非小非促非奢’이라 하
     였다.
275) 원효의 교판사상에서 중요한 보법의 의미를 풀이한 현존 자료로서 유일하다.
276) 韓2 p.366a13~367c18.
277) 원문의 謂는 諸로 교감함
278) 다른 사본에 의해 一切 보완(김천학, p.176 주 743) 참조)

 

2) 본체를 드러냄

장애 없는 법계를 근본으로 삼는다.

第二出體者. 以無礙法界爲體.

 

3) 문답으로 분별함

묻는다. 어떠한 인연으로 이 모든 법(法)이 이와 같이 융화되어 걸림이

없게 하는가?

답한다. 법장 스님은 말했다. “인연은 헤아릴 수 없어 갖추어 말할 수 없

지만 열 가지를 들어 이 걸림없음[無礙]을 설명한다. 첫째, 크고 작은 것

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大少無定] 둘째, 각각 오직 마음이 나타

난 것이기 때문이다.[各唯心現] 셋째, 환상과 같아서 실제가 아니기 때문

이다.[如幻不實] 넷째, 한 없는 원인으로 생기기 때문이다.[無限因生] 다섯

째, 뛰어나게 통달하여 자재하기 때문이다.[勝通自在] 여섯째, 삼매가 크

게 작용하기 때문이다.[三昧大用] 일곱째, 생각하기 어려운 해탈이기 때문

이다.[難思解脫] 여덟째, 결과의 덕이 원만하고 지극하기 때문이다.[果德圓

極] 아홉째, 연기가 서로 말미암기 때문이다.[緣起相由] 열째, 법성이 융통

하기 때문이다.[法性融通].”279)
279) 질문과 답은『탐현기』를 인용하였는데 순서가 다르다.『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24a8~14. 問有何因緣令此諸法得有如是混融無礙. 答因緣無量難可具陳, 略提
     十類釋此無礙. 一緣起相由故, 二法性融通故, 三各唯心現故, 四如幻不實故, 五大
     小無定故, 六無限因生故, 七果德圓極故, 八勝通自在故, 九三昧大用故, 十難思解
     脫故.『화엄경지귀(華嚴經旨歸)』에도 같은 내용이 나오는데, 순서는 같으나 내
     용이 다소 다르다.『화엄경지귀』大45 p.594c25~29. 法相圓融實有所因, 因緣無
     量略辨十種. 一爲明諸法無定相故, 二唯心現故, 三如幻事故, 四如夢現故, 五勝通
     力故, 六深定用故, 七解脫力故, 八因無限故, 九緣起相由故, 十法性融通故

 

원효 스님은 말했다. “요약해서 말하면 열 가지 종류의 원인이 있다. 첫

째, 하나와 일체는 서로 거울과 그림자가 되는 것이 제석천의 그물과 같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와 일체와 함께 서로 인연이 모여서 돈을 세는 법과 같

기 때문이다. 셋째, 모든 것은 오직 식(識)이어서 마치 꿈의 경계와 같기 때

문이다. 넷째, 모든 것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마치 환상과 같기 때문

이다. 다섯째, 동상과 이상이 일체에 통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지극이 크고

지극히 작아서 동일하여 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법성의 연기는 현상

과 본성을 떠나 있기 때문이다. 여덟째, 일심(一心)의 법체(法體)는 같지도

다르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홉째, 걸림없는 법계는 극단도 중도도 없기 때

문이다. 열째, 법계는 법 그대로여서 막힘도 걸림도 없기 때문이다.”280)
280) 이에 따르면 원효와 법장이 모든 법의 혼융무애(混融無碍)한 이유를 설명하는
     말은 다르지만, 그 내용은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위의 두 스님은 각각 열 가지 문을 두어 비록 번거롭고 자세히 말했지만,

지금 법장스님의 첫째 항목과 원효 스님의 여섯째 항목을 취해 그 핵심을

보인다.

 

법장 스님이 말했다. “크다 라고 하는 것은 크다고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은 것에 들어갈 수 있고, 작은 것은 작다고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큰 것을 용납할 수 있다.『십주품』에서 ‘금강위산의 수가 헤아릴 수

없으나, 모두 하나의 터럭 끝에 안치할 수 있으니, 지극히 큰 것에 작은 모

습이 있음을 알고자 하여, 보살이 이로 인해 처음 발심하였네.’라고 하였

다.281) 해석하면, 여기에서 크다는 것은 크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작은 모

습이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282)
281)『화엄경』권3「십주품」 大9 p.447b2~3.
282)『화엄경지귀』大45 p.595a1~5. 初無定相者, 謂以小非定小故能容大, 大非定大故
     能入小. 十住品云, 金剛圍山數無量, 悉能安置一毛端, 欲知至大有小相, 菩薩因此
     初發心. 解云, 此中明大非大故有小相也.

 

묻는다. 세계가 작은 티끌에 들어가고 수미산이 겨자씨에 들어갈 때, 이

미 크고 작은 형태가 있어 작은 것이 늘어나지 않고 큰 것이 줄어들지 않는

다면 어떻게 서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답한다. 공의 이치의 뜻[空理義]으로 말하면, 세속제(世俗諦)에서는 헛

되고 임시적인 것이지만 승의제(勝義諦)에서는 본래 공이다. 헛되고 임시

적인 것에 미혹되면 작은 것과 큰 것으로 장애가 되지만, 환상으로 변한 것

임을 완전히 깨달아 뜻에 통달하면 어찌 서로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하물

며 크고 작은 차이가 드러나는 것은 미혹된 집착이 있기 때문이니, 공(空)

의 진정한 뜻에 통달하면 어찌 걸림이 있어 통하지 않음이 있겠는가?〈이것
은 청변종(淸辨宗)287)이다.〉
287) 청변종(淸辨宗):청변 등이 주장하던 일체개공(一切皆空)의 학설을 선양한 인
     도의 학파, 곧 중관학파를 말한다. 청변(淸辨, Bhāvaviveka. 500~570경)은 인
     도 중관학파의 논사로 승호(僧護, Samgharaksita)에게 사사(師事)하고 대승
     경전과 용수(龍樹)의 교설을 익혔다. 후에 남인도에서 공(空)의 뜻을 선양하였
     고, 호법(護法, Dharmapāla)과 공유(空有)논쟁을 했다고 전해진다. 청변은 용
     수를 따라 진유(盡有)의 공을 주장했다.『중론석(中論釋)』·『대승장진론(大乘
     掌珍論)』·『반야등론석(般若燈論釋)』·『중관심론송(中觀心論頌)』 등의 저술이
     있다.

 

이치에 맞는 뜻[應理義]288)으로 말하면, 대략 여덟 가지 해석이 있다. 첫

째, 집착하는 것이 있다고 집착하기에 크고 작은 것이 매우 다르다. 집착하

는 대상이 공(空)하다는 것을 알면 무엇이 작고 무엇이 크겠는가? 둘째, 의

타기성(依他起性)289)을 통달하지 않아 진실로 크고 작은 것이 있다고 한다.

본체가 허망하고 거짓인데 어떻게 이치에 통하지 않겠는가? 셋째, 사물이

크고 작음을 이루기에 혹은 용납할 수 없다. 원성실성(圓成實性)290)은 융

통한데 어떻게 서로 받아들이지 못하겠는가? 넷째, 법이 작용이 있다고 집

착하면 크고 작은 것이 이에 어긋난다. 법의 원인과 조건을 알아 함께 허망

하면 어찌 융통하겠는가? 다섯째, 미혹한 마음으로 경계에 집착하면 실제

의 경계는 누가 수용할 것인가? 깨달음의 경계는 모두 식(識)인데 어찌 누

구인들 얻지 못하겠는가? 여섯째, 법에 진실로 모습이 있다면 크고 작음을

수용하지 못한다. 모습이 없다는 것을 진실로 삼으면 무엇이 크고 무엇이

작겠는가? 일곱째, 진여(眞如)에 들어맞지 못하여 어리석은 마음으로 멀

리 떨어지게 된다. 진실을 알아서 거짓임을 통달하면 지혜가 밝아져 통할

수 있다. 여덟째, 낮은 단계의 범부의 마음은 통달하여 품을 수 없다. 높은

단계의 사람의 위력이라면 어떤 일에 능하지 않겠는가?〈이것은 호법종(護法
宗)291)이다.〉292)

288) 응리(應理)는 유식과 연관이 있는 말이다. 법상종의 완성자 규기(窺基)는 자은
     8종(慈恩八宗)에서 제7종 승의개공종(勝義皆空宗) 다음으로 마지막 제8종을 응
     리원실종(應理圓實宗)이라 하여, 법상종의 다른 이름으로 쓰인다.
289) 의타기성(依他起性):para-tantra-svabhāva. 유식 삼성(三性) 가운데 하나. 다
     른 인연에 의존해서 생기는 상태. 일체의 현상은 모두 인연이 화합하여 생겨나
     고, 인연이 다하면 모든 법도 사라져 없어진다. 즉 일체의 법은 유(有)이면 비유
     (非有)이고 무(無)이면서 비무(非無)이다.
290) 원성실성(圓成實性):parinispanna-svabhāva. 유식 삼성(三性) 가운데 하나. 진
     실성(眞實性)이라고도 한다. 의타기성(依他起性)의 식(識)으로부터 허망한 분별
     이 없어진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의타기성 이외에 특별한 다른 세계가 있는 것
     은 아니다. 현상세계를 있는 그대로 아는 것, 실체를 그대로 자각하는 것, 존재
     의 진상을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원성실성이다. 의타기성에서 변계소집성(遍計
     所執性)인 주체가 원성실성의 깨달음으로 전환한다. 스스로 미망에 싸여있는
     것은 변계소집성이며, 자기를 깨닫는 것은 원성실성이다.
291) 호법종(護法宗):인도의 유식논사인 호법이 선도한 학파, 곧 유식학파. 호법(護
     法, Dharmapāla. 530~561경)은 유식 10대논사 중의 한 사람. 남인도 출신으로
     대·소승교학에 정통하여 마가다국 날란다사에서 널리 교화하여 학도가 수천
     명이었다고 한다. 29세에 대보리사(大菩提寺)로 가서 저술에 전념하다 입적하
     였다. 저술로는『대승광백론석론(大乘廣百論釋論)』·『성유식보생론(成唯識寶生
     論)』·『관소연론석(觀所緣論釋)』 등이 있다. 그의 사상이 현장에 의해 『성유식론
     (成唯識論)』으로 정리되어 법상종의 교학이 성립되었다.
292) 이 부분의 원전은 밝혀지지 않았다. 김천학은 문맥상으로 보아 원효의 저술에
     서의 인용으로 본다.(김천학, p.180 주 754) 참조)

 

問, 世界入微塵, 須彌入芥時, 旣有大少之形, 而不增少不減
大, 如何得相容耶?
答, 空理義云, 世俗虛假, 勝義本空. 迷虛假以礙心, 小大由
隔, 悟幻化而通意, 何不相容? 況乎大少懸著, 由迷執有, 達空
勝義, 何礙不通?〈此淸辨宗也〉 應理義云, 略有八釋. 一執有所
執, 大小懸殊. 知所執空, 何少何大? 二不達依他, 謂真大少.
體之虛偽, 何理不通? 三事成大少, 或不能容. 圓成融通, 何不
相納? 四執法有用, 大少乃乖. 知法因緣, 同虛豈融? 五迷心
執境, 實境誰容? 悟境皆識, 何誰不得? 六法真有相, 大小不
容. 無相爲真, 何大何小? 七未契真如, 愚心杳隔. 知真達偽,
智洞能通. 八下位庸心, 不能通含. 上人威力, 何事不能?〈此護
法宗也〉

 

원효스님이 말했다. “첫째로는 남방의 설에서 말하기를, ‘이미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고 칭하였으니 오직 성인의 경계이다. 이승이 헤아릴 수 없

는데 범부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그래서 내버려두고서 해

석하지 않을 뿐이다.

 

둘째는 북방의 논사293)가 말하기를 ‘큰 것은 크다는 형상이 없기 때문에

큰 것이 작은 것에 들어갈 수 있고, 작은 것은 작다는 형상이 없기 때문에

작은 것이 큰 것을 수용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293)『정명현론(淨名玄論)』권3 大38 p.870c3~5. 北土地論師云, 大無大相, 故大得入     
     少, 少無少相, 故少得容大. 이 구절과 비교하면 원문의 此主는 北土地論師 곧 北
     土의 오기임을 알 수 있다.

 

셋째는 논사294)가 말하기를 ‘큰 것은 스스로 큰 것이 아니고 작은 것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큰 것이며, 작은 것은 스스로 작은 것이 아니라 큰 것으

로 말미암기 때문에 작은 것이다. 작은 것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큰 것이니

큰 것을 소대(小大)라고 하고, 큰 것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작은 것이니 작

은 것을 대소(大小)라고 한다. 작은 것은 것이 바로 대소이기 때문에 큰 것

을 수용할 수 있고, 큰 것이 바로 소대이기 때문에 작은 것에 들어갈 수 있

다.’라고 하였다. 즉 이는 둘째 논사가 세운 뜻을 깨뜨린 것이다. 이미 크다

는 형상이 없다고 말했으니 곧 큰 것이 없는데, 어떤 큰 것이 작은 것에 들

어가는가? 작은 것은 작다는 형상이 없으니 곧 작은 것이 없는데, 무엇이

큰 것을 수용하겠는가? 만일 형상이 없는 큰 것과 형상이 없는 작은 것이

있기 때문에 수용하고 들어간다고 말한다면, 지금 거듭 그것을 생각해 보

건데 형상 없는 큰 것이란 큰 것이 있는 것인가, 큰 것이 없는 것인가? 만일

큰 것이 있다고 말한다면 오히려 형상이 있는 것이 되고, 형상이 없다고 한

다면 큰 것이 없는 것이 된다. 형상이 없으면서 큰 것이 있다는 것은 이치

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295)
294) 이 견해는 삼론가(三論家)의 설로 본다.(김천학, p.183 주 763) 참조) 길장의『정
     명현론』의 구절과 유사하다.
295)『정명현론』권3 大38 p.870c5~11. 今請問之, 旣大無大相, 是則無大, 誰入小耶. 小
     無小相, 是卽無小, 誰容大耶. 若云有無相之大無相之小, 故得容入者, 今重考之, 無
     相之大, 爲猶有大, 爲無大耶. 若有大, 卽猶有相, 如其無相, 則無有大. 若言大無相
     而有大者, 亦應無大而有相耶. 雖有此言, 未見其理, 故並不用之.
   『정명현론』은 길장(吉藏)이 『유마경』의 요지를 해설한 책이므로, 길장의 견해를
     원효가 인용하였고, 이 원효의 저술을 다시『요결문답』에서 인용한 것이 된다.

 

넷째는 셋째 논사의 견해를 논파하는 것이다. 소대(小大)라고 말한 것은

대소(大小)보다 큰 것인가, 대소보다 크지 않은 것인가? 만일 크지 않다고

말한다면, 소대(小大)라고 이름 하지 못한다. 소대는 대소와 같기 때문이

다. 만일 크다고 말한다면, 대소는 소대에 들어갈 수 없다. 대소는 소대보다

작기 때문이다. 만일 비록 대소는 소대보다 작고 소대는 대소보다 커지만

들어가지 못함의 들어감[不入入]이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면,

들어감의 들어가지 못함[入不入]이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니, 들어

감의 들어가지 못함은 들어가지 못함의 들어감과 다르기 때문이다. 대소가

소대와 다른 것과 같기 때문에 대소는 소대에 대해서 들어가지 못함의 들

어감이므로 들어갈 수 있고, 소대는 대소에 대해서 들어감의 들어가지 못

함이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 만일 들어가지 못함의 들어감이기 때문에

소대도 대소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면, 크지 않음의 큼이기 때문에 소

대도 또한 대소이다.

元曉師云,“ 一南方說言, 旣稱不思議, 唯聖境界. 二乘不測,
凡豈能解? 故且置而不釋耳. 二北土296)師云,‘ 大無大相故, 大
得入小297), 小無小相故, 小得容大.’ 三師云, ‘大不自大, 由小
故大, 小不自小, 由大故小. 由小故大, 大名小大, 由大故小,
小名大小. 以小是大小, 故得容大, 大是小大, 故得入小.’ 則
破第二師立義, 言旣無大相, 是卽無大, 誰大入小耶? 小無小
相, 是卽無小, 誰容大耶? 若言有無相之大無相之小故得容入
者, 今重考之, 無相之大, 猶有大而無大耶? 若言有大, 卽猶有
相, 如其無相, 卽無有大. 無相有大, 不應理故. 四破第三師義.
言所言小大, 爲大於大小耶? 爲不大於大小耶? 若言不大者,
卽不名小大, 以小大同於大小故. 若言大者, 卽不得入大小於
小大. 以大小小於小大故. 若言雖大小小於小大, 小大298)大於
大小, 而以不入入故得入者, 以入不入, 故不能入, 以不入入異
於入不入故. 如大小異於小大故, 大小於小大, 以不入入故得
入, 小大於大小, 以入不入故, 不得入. 若言以不入入故, 小大
亦入大小者, 以不大大故, 小大亦是大小.
296)『정명현론』에 따라 此主는 北土로 교감함.(김천학, p.182 주 762) 참조)
297) 少는 小로 교감. 이후 이 문단에서 小와 少가 함께 쓰였으나 의미상 모두 小로
     바꿈.
298) 다른 사본에 의해 小大 보완.(김천학, p.185 주 769) 참조)

 

만일 이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저것 또한 허용되지 않으며, 만일 모두

허용된다면 대소가 어지럽게 섞이니, 이 때문에 셋째 논사의 견해도 상입

(相入)의 의미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미 상입하지 못하는데 어찌 상시(相

是)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지금 곧 상입과 상시를 밝힌다. 상입의 이유는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가지가 있다.

 

지금 또 하나를 내면, 지극히 크고 지극히 작다는 것은 균등하여 동일하

기 때문에 크고 작은 것이 있는 것이 모두 상입할 수 있다. 『화엄경』에서

‘지극히 큰 것이 작은 형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자, 보살이 이로 인해 처음

으로 발심하였네.’299)라고 한 것과 같으니, 이 뜻이 무엇인가? 지극히 크다

고 말하는 것은 바깥이 없음[無外]을 말하니, 그 바깥이 있다면 지극히 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극히 작은 것도 이와 같아서 안이 없음[無內]을

말하니, 안이 있다고 한다면 지극히 작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깥이 없

이 큰 것은 크게 비어 있음[大虛]을 말한 것이고, 안이 없이 작은 것은 허공

에 가까움[隣虛]을 말한 것이다. 안이 없기 때문에 바깥도 없으니, 바깥과

안은 반드시 상대(相待)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지극히 작은 것은 지극히 큰

것과 균등한 것이다. 크게 비어 있음은 바깥이 없기 때문에 안도 또한 없다.

이는 곧 지극히 큰 것은 지극히 작은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지극히 큰

것에 작은 형상이 있다고 말한다. 만일 이와 같이 크고 작은 것이 같은 양이

라는 것을 안다면 모든 크고 작은 것에 모두 장애가 없게 되니, 이것이 불가

사의한 해탈이다. 그러므로 이로 인하여 처음 발심했다고 말한다.

 

무슨 뜻인가? 수미산이 비록 크더라도 오히려 바깥이 없는 것보다는 작

고, 겨자씨가 비록 작아도 오히려 안이 없는 것 보다는 크다. 크게 비어 있

음은 바깥이 없어 겨자씨에 들어가도 남음이 없으니 지극히 작은 것과 같

기 때문이며, 허공과 가까움은 안이 없어 수미산을 포함하고도 남음이 있

으니 지극히 큰 것과 같기 때문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하물며 높

은 자리가 방장(方丈)에 들어가고 수미산이 겨자씨에 들어가는 것에 있어

서랴! 겨자씨가 비록 작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크게 비어 있는 것보다도 크

고, 수미산이 비록 크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극미(極微)보다도 작다.300)

300) 극미(極微): paramānu. 물질을 분석하여 아주 작은 것에 이르러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단위. 극미진(極微塵)이라고도 하고, 구역에서는 인허(鄰虛)라고 한다. 1
     극미를 중심으로 하여 상하와 사방의 6방으로 극미가 모인 일단을 미(微) 또는
     미진(微塵)이라 하고, 7미를 1금진(金塵), 7금진을 1수진(水塵), 7수진을 1토모진
     (兎毛塵), 7토모진을 1양모진(羊毛塵), 7양모진을 1우모진(牛毛塵), 7우모진을 1
     극유진(隙遊塵)이라 한다. 금진이나 수진은 금이나 물을 통과할 정도의 작은 것
     을 말하며, 토끼·양·소털은 그 털 정도의 작은 크기를 말한다. 극유진은 창 틈
     새로 스며들 수 있는 작은 크기로서, 우리들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빛 가운데
     떠다니는 작은 먼지를 말한다. 극미는 그 작은 단계가 거듭되는 아주 작은 것을
     말한다.

 

지금 가는 극미와 같은 수미산이 작은 태허(太虛)보다도 큰 겨자씨에 들

어가는데, 이와 같이 상입(相入)한다면 어떤 어려운 것이 있겠는가? 다만

겨자씨가 비록 태허보다 크다 해도 그 작은 양이 늘어나지 않고, 수미산이

비록 극미보다 작더라도 그 높은 형상이 줄어들지 않는다. 이러한 도리로

말미암아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크고 작은 것이 상

입(相入)하는 원인이며 상시(相是)하는 조건으로, 이는 같은 데서 나오니

동상(同相)과 이상(異相)이 서로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이상(異相)이

라고 하는가? 모든 법은 자상(自相)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동상(同相)이

라 말하는 것은 모든 법이 하나의 형상의 지혜의 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

체법은 모두 존재하는 것이니 스스로의 형상이 있기 때문이며, 또한 모두

존재하지 않으니 다른 형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함께 옳은 것은 함

께 그른 것이며, 모든 법은 모두 하나라는 것 등의 이와 같은 같고 다름은

서로 버리거나 떠나지 않는다. 다름이 같음을 떠나지 않기에 일체가 곧 하

나이고, 같음이 다름을 떠나지 않기에 하나가 곧 일체이다. 이러한 도리로

말미암아 하나와 일체는 막힘도 없고 걸림도 없다. 그러므로 7일이 1겁이

되고, 1겁이 7일이 된다.301)〈등으로 말한다.〉

若此不許, 彼亦不許, 若皆許者, 大小雜亂. 是故當知第三師
義, 亦不得成相入義也. 旣不相入, 何得相是? 故今便明相入
相是. 相入之由, 非一衆多. 今且出一, 所謂至大至小, 齊一量
故, 所有大小, 皆得相入. 如華嚴經言,‘ 欲知至大有小相, 菩
薩因此初發心.’ 是義云何? 言至大者, 所謂無外, 如有302)其
外, 非至大故. 至小亦爾, 所謂無內, 設有內者, 非至小故. 無
外之大, 所謂大虛, 無內之小, 所謂隣虛. 無內故亦無外, 外與
內, 必相待故. 是卽至小齊於至大. 大虛無外故, 亦無內. 是卽
至大同於至小. 故云至大有小相也. 若能知如是大小同量, 卽
於一切大小, 皆得無所障礙, 卽是不可思識解脫. 故言因是初
發心也. 何者? 須彌雖大, 而猶小於無外, 芥子雖小, 而猶大於
無內. 當知大虛無外, 入芥子而無遺, 同於至小故, 隣虛無內,
含須彌而有餘, 同於至大故. 況乎高座入於方丈, 須彌入於芥
子. 芥子雖小, 而猶巨於大虛, 須彌雖大, 而猶細於極微. 今將
細極微之須彌, 入寬大虛之芥子, 如是相入, 有何所難? 但以芥
子雖巨大虛, 而不增其細量, 須彌雖細極微, 而不咸303)其高形.
由是道理不可思議耳. 是謂大小相入之由, 相是之緣, 亦出一
種, 所謂同相異相不相離故. 何謂異相? 諸法自相各異故. 言同
相者, 所謂諸法一相智門. 謂一切法皆是有, 有自相故, 亦皆無,
無他相故. 同是是同非, 皆法皆一等, 如是同異不相捨離. 以異
不離同故, 一切是一也, 同不離異故, 一是一切. 由是道理, 一
與一切, 無障無礙. 故能以七日作一劫, 以一劫作七日.〈云云〉
302) 다른 사본에 의해 有 보완.(김천학, p.187 주 773) 참조)
303) 내용으로 보아 成을 咸으로 교감. 咸은 減의 뜻.(김천학, p.188 주 777) 참조)

 

또 모든 법이 막히거나 걸리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유마경』에서 ‘수보

리여. 부처님을 보지 못하고 불법을 듣지 못하여 저 외도의 여섯 스승이 너

의 스승이 되어, 그로 인해 출가하고 그 스승이 떨어지는 곳에 너도 역시

따라서 떨어져야 이에 음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싸우지 않는 삼매

[無諍三昧]를 얻으면 일체 중생도 이 삼매를 얻을 것이다. 너에게 보시한

것을 복전(福田)이라고 할 수 없고, 너에게 공양한 자는 삼악도에 떨어져

많은 마귀와 더불어 함께 손을 맞잡고 모든 수고로움의 벗이 될 것이니, 너

와 여러 마귀와 모든 번뇌가 똑같아서 다르지 않다. 모든 중생에게 원망하

는 마음을 갖고, 여러 부처님을 비방하고, 불법을 훼손하고, 대중의 무리에

들어가지 않아 끝내 열반304)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네가 만일 이와 같이

하면 이에 음식을 얻을 것이다.’305)라고 한 것과 같다.”

304) 멸도(滅度)는 장애를 없애고 고통을 건넜다는 뜻으로[滅障度苦], 생사의 번뇌를
     넘어 열반을 이룸을 말함.
305)『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권상「제자품(弟子品)」大14 p.540b29~540c12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동상과 이상이 서로 떨어지지 않은 문에서 하나와 일

체가 곧 서로 상시(相是)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막힘이나 걸림이 없음을

설한 것이다. 진리법의 공과 무의 두 문에 대한 것이 아니니, 그 까닭은 법

공문(法空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수보리306)가 통달한 것은 저 (일반
중생들이) 마땅히 듣지 못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나머지 뜻은 별도로 말한
것과 같다. 이상의 여러 논사의 뜻을 취하고 버리는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
306) 선길(善吉)은 수보리(須菩提)의 의역이다.

 

又說諸法無所障礙, 如維摩云,‘ 若須菩提, 不見佛, 不聞法,
彼外道六師, 是汝之師, 因其出家, 彼師所墮, 汝亦隨墮, 乃可
取食. 汝得無諍三昧, 一切衆生, 亦得是定. 其施汝者, 不名福
田, 供養汝者, 隨三惡道, 爲與衆魔共一手作諸勞侶, 汝與衆
魔及諸塵勞, 等無有異. 於一切衆生, 而有怨心, 謗諸佛, 毀於
法, 不入衆數, 終不得滅度. 汝若如是, 乃取食.’”
案云, 此就同相異相不相離門, 一與一切更互相是, 故作如是
無障礙說. 非約諦法空無二門, 所以然者, 對法空門. 善吉307)
所達, 不應聞彼懼故.〈餘義如別說也. 此上諸師義, 取捨任情.〉
307) 다른 사본에 따라 善吉 보완함.(김천학, p.191 주 790) 참조)

 

7. 법계의 의미[法界義]

 

세 가지 문은 앞과 같다.

 

1) 이름을 풀이함

법장 스님은 말했다. “법(法)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자체의 본성

[自性]을 가진다는 의미이고, 둘째는 규칙[軌則]의 의미이고, 셋째는 의식

의 대상[對意]이라는 의미이다. 계(界)에도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원인

[因]의 의미로 (이것에) 의지하여 성스러운 도(道)가 생기기 때문이다. 둘

째는 본성의 의미이고, 셋째는 나누어 구별한다는 의미이다.”308)

 

늠(懍) 스님은 말했다. “자체의 있는 그대로를 법이라고 한다. 도성이 갖

추어 벌려진 것을 계라고 한다.”

法界義309)
三門同前.
第一釋名者. 法藏師云,“ 法有三義. 一是持自性義, 二是軌則
義, 三對意義. 界亦三義. 一是因義, 依生聖道故. 二是性義, 三
是分齊義.” 懍云,“ 自體如實, 名之爲法. 該羅都城, 名之爲界.”
308)『화엄경탐현기』 권18 大35 p.440b11~18.『화엄경』「입법계품」을 해석하는 네
     가지 문(門) 중 첫 번째 제목을 해석함[釋名] 부분이다. 여기에는 분명(分名), 회
     명(會名), 품명(品名)이 있는데,『탐현기』에서는 품명에서 인용하였다.
309) 韓2 p.372b4~373c10 ; 375a23~376a6.

 

2) 본체를 드러냄

늠 스님은 “여여(如如)함을 본질로 삼는다.”고 하였다.

 

혜원 스님은 말했다. “권교소승(權敎小乘)의 이교(二敎) 중에서는 사

법(事法)은 심법(心法)310)과 심(心)과 심불상응법(心不相應法)311)이 능히

만든 색(色)을 그 본성으로 삼는다. 소승교의 이법계(理法界)는 생공(生

空)312)이 나타내는 무위(無爲)를 본성으로 삼는다. 권교대승(權教大乘)313)

의 이법계는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이 나타내는 불변진여(不變眞如)314)

를 그 본성으로 삼는다. 실교대승(實教大乘)315)의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

法界)는 위(爲)와 무위(無爲)는 둘이 아니고 녹아서 융합된 법계를 그 본성

으로 삼는다.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는 위(爲)와 무위(無爲)는 둘이

아닌 상온(常蘊)316)을 그 본성으로 삼는다.〈만일 작용을 구별하는 것과[辨用] 의
거하는 바[所依]를 겸하여 드러내면 번뇌와 오온을 통틀어 본성으로 삼는다.〉”

310) 심법(心法):오위의 하나. 우주 만유(宇宙萬有)를 물질적 존재와 마음의 이원(二
     元)으로 나눌 때, 물질적 대상에 대하여 인식 작용을 하는 것이다.
311) 심불상응법(心不相應法):유식에서 유위 무위의 제법을 심법(心法)·심소유법
     (心所有法)·색법(色法)·심불상응법·무위법(無爲法)의 다섯 가지 백법으로 분
     류한 중의 하나. 심과 상응하지 않는 것이라는 뜻. 유위법 중에서 물질적 존재인
     색법에도, 정신인 심법에도, 정신작용인 심소유법에도 속하지 않는, 실체적으로
     이해한 일종의 세력을 말한다. 득(得)·명근(命根)·중동분(衆同分)·이생성(異
     生性)·무상정(無想定)·멸진정(滅盡定)·무상사(無想師)·명신(名身)·구신(句
     身)·문신(文身)·생(生)·노(老)·주(住)·무상(無常)·유전(流轉)·정이(定異)·
     상응(相應)·세속(勢速)·차제(次第)·방(方)·시(時)·수(數)·화합성(和合性)·
     불화합성(不和合性)의 24종이다.
312) 생공(生空):인공(人空), 또는 아공(我空)이라 함. 상일주재(常一主宰)의 뜻을 가
     진 아(我)가 있다고 하는 주관적 미집(迷執)을 없애기 위하여 공(空)하다고 말하
     는 것. ‘나’라 하는 것은 5온(蘊)이 화합한 것으로 참으로 ‘나’라 할 것이 없고 공
     무(空無)한 것임을 말한다.
313) 권교대승(權教大乘):권대승교(權大乘敎). 방편을 겸하지 아니한 진실한 교법을
     말한 실대승교(實大乘敎)에 나아가기 위해 방편으로 설교한 교법(敎法). 석가모
     니가 근기가 낮은 중생을 위하여 진실한 교리에 끌어들이려는 방편으로 말한
     것이다.
314) 불변진여(不變眞如):수연진여(隨緣眞如)에 상대되는 말. 진여의 본체는 결국
     평등하여 변하지 않음을 말함. 곧 본성의 진심에 상주하는 불성. 이 불변의 본체
     가 외부의 무명인 조건[緣]에 따라 3계 6도에 낳는 것을 수연진여라 한다.
315) 실교대승(實教大乘):실대승교(實大乘敎). 대승교 가운데 방편을 곁들이지 아니
     한 참된 가르침.
316) 상온(常蘊):5온의 하나. 사람에게는 사물을 상상(想像)하는 선·악, 사(邪)·정
     (正)의 온갖 정상(情想)이 있음. 이것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원효스님은 말했다. “법계를 통틀어 말하면 네 가지 구절을 벗어나지

않는다. 첫째는 유위법계(有爲法界), 둘째는 무위법계(無爲法界), 셋째는

유위무위법계(有爲無爲法界), 넷째는 비유위비무위법계(非有爲非無爲法

界)이다.”

 

법장 스님은 말했다. “법계에는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소입(所入)법계의

뜻으로 다섯 문이 있다. 처음 네 가지 법계는 원효스님이 열거한 것과 같으

며,〈뜻을 해석하는데 같지 않은 것이 있을 뿐이다.〉 다섯째는 무장애법계(無障礙法
界)이다.317) 두 번째는 능입(能入)법계를 밝힌 것에 역시 다섯 문이 있다.
첫째는 정신(淨信), 둘째는 정해(正解), 셋째는 수행(修行), 넷째는 증득(證
得), 다섯째는 원만(圓滿)이다.318)”〈등등을 말했다〉
317)『화엄경탐현기』 권18 大35 p.440b25~27. 셋째 有爲無爲法界가 亦有爲亦無爲
     界로 다를 뿐 나머지 이름은 같다.
318)『화엄경탐현기』 권18 大35 p.441a14~15.

 

第二出體者. 懍云,“ 以如如爲體.” 慧苑師云,“ 權小二教中, 事
法以心法及心并不相應, 能所造色, 以爲其性. 小乘教, 理法
界, 以生空所顯無爲性. 權教大乘, 理法界, 以二空所顯不變真
如而爲其性. 實教大乘, 理事無礙法界, 以爲無爲無二, 鎔融法
界, 而爲其性. 事事無礙法界, 以爲無爲無二, 常蘊爲性.〈若兼
顯辨用所依則通有漏五蘊爲性〉” 元曉師云, “通論法界, 不出四句. 一
有爲法界, 二者無爲法界, 三者有爲無爲法界, 四者非有爲非
無爲法界.” 法藏師云, “法界有二. 先所入法界義有五門. 初四
法界, 同曉所列〈釋義不同有耳〉, 五無障礙法界. 二明能入, 亦有
五門. 一淨信, 二正解, 三修行, 四證得, 五圓滿.”〈云云〉

 

3) 문답으로 분별함

(1) 4종법계

묻는다. 늠 스님이 “무릇 본질[體]의 차이를 논하면 헛됨과 진실됨에서

잘못된다.”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답한다. 네 가지 종류로 본질을 간추리면, 첫째는 수연법계(隨緣法界),

둘째는 대연법계(對緣法界), 셋째는 망연법계(忘緣法界), 넷째는 연기법계

(緣起法界)이다.

 

가) 수연법계

앞의 세 가지 문 중 법계의 본질이란, 법계는 경계와 지혜[境智]가 아니

지만 조건에 따라 경계와 지혜를 설하며, 법계는 물질과 정신[色心]이 아니

지만 조건에 따라 물질과 정신을 설하는 것이다. 이는 흘러가는 곳을 따라

여러가지 맛이 있지만 그 여러 가지 맛이 모두 본래의 맛이 아니듯이, 조건

을 따라 차별이 있지만 차별이 법계는 아니다. 다만 이름과 글자가 있을 뿐

법은 없다. 정념에 따라 설하는데, 정념은 법계가 아니기 때문에 첫째 수연

법계 중에는 법계의 본질이 없다.

 

나) 대연법계

둘째 대연법계는 무릇 있음[有]에 집착하는 병은 없음[無]를 설하여 치

료하고, 없음에 집착하는 병은 있음을 설하여 치료한다.〈항상됨[常]과 항상됨

이 없음[無常] 등 모두가 이런 예이다〉 병에 대응하는 것은 법계가 아니나, 치료

할 수 있는 약이기에 임시로 법이라고 이름한다. 만일 다시 이 법에 집착

하면 오히려 다시 병이 생긴다. 병이 치료되면 약은 버리는 것이니, 이렇게

갖추어졌을 때 청정[淨]하다고 말한다. 단지 치료했다는 것을 버릴 뿐만 아

니라 버렸다는 것도 버려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연법계 중에는 법계의

본질이 없다.

 

다) 망연법계

셋째 망연법계는 조건을 잊고 대상[對]도 잊는 것이기 때문에 망연법계

라고 한다. 얻는 것이 있다는 것을 잊고 얻는 것이 없다는 것을 잊으며, 둘

이라는 것을 잊고 둘이 아니라는 것도 잊으며, 또한 잊었다는 것도 잊는다.

단지 이름[名]을 잊을 뿐만 아니라 법계의 본질도 잊고 법계의 작용도 잊

기 때문에 법계의 본질을 세우지 않는다. 무릇 세우지 않는다는 것이 또한

법계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라) 연기법계

넷째 연기법계는 앞에서 조건을 잊어서 의지하고 집착할 것이 없고, 이

제 다시 이 조건을 잊으므로 망연(忘緣)이라고 한다. 조건을 잊은 후에야

연기법계의 뜻이 세워진다.

 

第三問答分別.
問, 懍云,“ 凡論體異, 濫於虛實.” 何耶?
答, 以四種簡體, 一者隨緣法界, 二對緣法界, 三忘緣法界, 四
緣起法界. 前三門中, 法界體者, 法界非境智, 隨緣說境智, 法
界非色心, 隨緣說色心. 此隨流處有種種味, 然種種味. 皆非
味, 隨緣有差別, 差別非法界. 但有名字下無法. 隨情而說, 情
非法界故, 第一隨緣法界中, 無法界體,
二對緣者, 夫著有之病, 說無以治, 著無之病, 說有以治, 著無
之病說有以治.〈常無常等一切例此〉 所對病, 非是法界, 能治之藥,
假名爲法. 若復執此法, 還復成病. 病治藥去, 俱時說淨, 非但
遣治, 亦復遣遣. 故對緣中, 無法界體.
三忘緣者, 忘緣忘對故, 曰忘緣法界也. 忘有所得, 忘無所得,
忘二, 忘不二, 亦復忘於忘. 非但忘名, 亦忘法界體, 忘法界用,
故不立法界體也. 夫不立者, 亦法界中一故.
四緣起法界者, 前忘緣旣無所依著, 今復忘此緣, 謂之忘緣. 忘
緣也然後, 乃立緣起法界義耳.

 

일체법은 여여(如如)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實相]은 본래 생기지 않

으며 지금 없어짐도 없다. 늘어남도 줄어듬도 없고, 있음[有]도 없음[無]

도 없으니 있으면서도 없다. 있음은 없음의 있음이고, 없음은 있음의 없음

이다. 없음과 있음은 둘이 아니니, 이는 둘이 아니면서 둘이다. 있음도 없

고 없음도 없으니, 이는 둘이면서 둘이 아니다. 또한 둘이기도 하고 둘이

아니기도 하며, 둘이면서 둘이 아님이 없다.〈항상됨[常]과 항상됨이 없음[無常]
등 모두가 이런 예이다.〉
 지금 연기법계 중에 본질이 없으면서 본질이니 여여

(如如)함으로써 법계의 본질로 삼으며, 연기가 걸림이 없음을 법계의 작용

으로 삼는다. 본질도 없고 작용도 없어 작용이 본질이고 본질이 작용이며,

여여함이 연기이고 연기가 여여함이다.

 

묻는다. 경계와 지혜라는 구절 중에 무슨 까닭에 법계가 아니라고 하였

는가?

답한다. 경계와 지혜는 역시 허망한 말의 정념에서 나온다. 병든 정념은

법이 없다.

 

묻는다. 끊어 얻는다와 버려 얻는다는 구절 중에서 역시 궁극적으로는

제거된다고 하였는데 무엇을 법계라고 하는가?

답한다. 병에 걸리면 반드시 그것을 없애야 하는데, 병을 없애는 것이지

법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묻는다. 중도(中道) 구절 중에 연(緣)을 잊고 나면 병이 없다고 하였는데,

무슨 까닭으로 법계의 본질이 아니라고 하는가?

답한다. 만일 허망함을 떠났다 해도 연기의 법을 밝히지 못한 것은 법계

의 본질이 아니다. 본질에는 반드시 작용이 있는데, 이미 작용을 논하지 않

았으니 역시 아직 본질을 밝히지 못한 것이다.

 

묻는다. 이미 연기기 아니라면 마땅히 연기법계 중에 들어갈 수 없지 않

은가?

답한다.『경』에서 말하기를 “그대는 마땅히 일체 법계를 알아 이 무분별

법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였다.〈이 중 다섯 구절은 다시『법경론(法鏡論)』
을 기준으로 한다.〉
一切法如如, 實相本不生, 今亦無滅. 無增無減319), 無有無無,
而有而無也. 有是無有也, 無是有無也. 無有無二, 是不二二
也. 無有無無, 是二不二也. 亦二亦不二也, 無二不二也.〈常
無常等一切例也〉 今緣起法界中, 無體而體, 以如如爲法界體也,
緣起無礙, 爲法界用也. 無體無用, 用體體用, 如如緣起, 緣
起如如.
問, 境智節中, 何故非法界?
答, 境之與智, 亦出妄語之情, 病情無法
問, 斷得及遣得節中, 亦究竟被除, 何名法界?
答, 帶病須破之, 除病不除法.
問, 中道節中, 忘緣旣無病, 何故非法界體?
答, 若離虛妄, 未明緣起法者, 非法界體, 體必有用, 旣未論
用, 亦未明體.
問, 旣非緣起, 不應入緣起法界中?
答, 經云,“ 汝應知一切法界, 莫捨此無分別法’”〈此中五節更准鏡
論也〉
319) 원문의 滅을 減으로 교감함.(김천학, p.234 주 932) 참조)

 

(2) 4종연집법계

또 연법계(緣法界) 중에 네 가지 종류를 연다. 첫째는 유위연집법계(有爲

緣集法界), 둘째는 무위연집법계(無爲緣集法界), 셋째는 자체연집법계(自

體緣集法界), 넷째는 평등연집법계(平等緣集法界)이다.320)
320) 이 연집법계(緣集法界)를 표원 화엄학의 특색으로 보고, 표원 화엄이 차별을 초
     월하여 평등을 추구하고 삼매관행으로 종결지음으로써 원효의 사상을 충실히
     계승하였다고 보는 연구성과도 있다.(김두진, 2002『신라 화엄사상사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pp.161~192)

 

가) 유위연집법계

만일 있음[有]를 밝힌다면 일체가 존재한다. 이는 생겨남이 있고 없어짐

이 있으며,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으며, 생사가 있고 열반이 있으며, 중(中)

과 중이 아님이 있으며, 일상(一相)321)과 무상(無相)322)이 있으며, 가진 것

이 없음[無所有]이 있음을 이른다. 대개 기다림[待]이 있고 대응함[對]이

있는 것을 유위법(有爲法)323)이라고 말한다. 생겨나지 않으면서 생겨나고,

없어지지 않으면서 없어지니, 없어지기만 하고 생겨나지 않으면 생겨난다

는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금 다만 생겨남과 없어짐이 성립하기 때문

에 집(集)이 된다. 원인과 결과가 서로 성립하고 기다림과 대응함이 서로

성립하기에 이르러 유위연집(有爲緣集)이 되니, 집(集)이 없는 집(集)이다.

又緣法界中, 開爲四種. 一者有爲緣集法界, 二者無爲緣集324)
法界, 三者自體緣集法界, 四者平等緣集法界. 若明有則一切
有. 所謂有生有滅, 有因有果, 有生死有涅槃, 有中非中, 有一
相無相, 有無所有. 夫有待有對, 有謂有爲法也. 不生而生, 不
滅而滅, 滅而非生, 生義不成. 今只生滅成, 故爲集也. 因果相
成, 乃至待對相成, 爲有爲緣集, 無集之集也.
321) 일상(一相):차별이 없고 절대 평등한 진여(眞如)의 상
322) 무상(無相):진여(眞如) 법성(法性)은 미(迷)한 생각으로 인식하는 것과 같은 현
     상의 모양이 없는 것
323) 유위법(有爲法):원인과 조건과의 결합을 통하여 현실로 나타나는 여러 현상
324) 원문의 起는 의미상 集으로 교감함.(김천학, p.235 주 938) 참조)

 

나) 무위연집법계

만일 없음[無]를 밝힌다면 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른바 생겨남이 없

고 없어짐이 없으며, 원인이 없고 결과가 없으며, 생사가 없고 열반이 없으

며, 중(中)이 없고 중 아님이 없으며, 일상과 무상이 없으며 가진 것이 없음

이 없음에 이르기까지 기다림도 없고 대응함도 없는 것을 무위법(無爲法)325)

이라고 한다. 대개 걸림이 없고 가진 것이 없어, 법을 따라 없음을 밝혔기 때

문에 많은 것의 본질이 없어져 곧 무위법이 된다. 없음과 없음이 서로 성립

하여 모두 둘이 없는 법수(法數)에 들어가므로 무위연집(無爲緣集)이 된다.

若明無則一切無. 所謂無生無滅, 無因無果, 無生死無涅槃, 無
中無非中, 無一相無相, 乃至無無所有, 無326)待無對者, 謂無
爲法也. 夫無礙無所有, 而歷法明無, 故多體無, 卽爲無爲法
也. 無無互相成, 皆入無二法數, 爲無爲緣集也.
325) 무위법(無爲法):인연을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생멸(生滅)의 변화를 떠나
     상주 불변하는 참된 법
326) 의미상 無를 보완함.(김천학, p.235 주 940) 참조)

 

다) 자체연집법계

만일 유위(有爲)도 아니고 무위(無爲)도 아니어서 둘이 아닌 것이 되면

이를 자체(自體)라고 한다.『경』에서 “법은 자체(自體)를 이름한다.”327)

고 하였고, 또 “자체는 본래 공(空)하여 둘이 아니고 다함이 없다.”328)고 하

였다. 만일 법을 따라 둘이 아님을 밝힌다면 많은 둘이 아닌 것이 있어서

모이니 자체연집(自體緣集)이 된다. 유위와 무위는 두 개의 작용이 되니,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어서 곧 있음과 없음의 본체가 된다. 본질은 조

건을 따라 만들어지지 않아서 자법(自法)이라고 이름하니, 자법은 본래 공

(空)이다. 만일 자체가 둘이 아닌 것을 본다면 유위를 보지 않고 무위를 보

지 않으니 둘이 없음이 없지 않은 것을 평등법계(平等法界)라고 한다. 다만

둘만이 둘이 없음을 성립시키고, 다만 둘이 없음만이 둘을 성립시키며, 다

만 평등만이 불평등을 성립시키고, 다만 불평등만이 평등을 성립시킨다.

若非有爲非無爲, 爲不二者, 謂之自體. 經云, “法名自體”, 又
云,“ 自體本來空, 有不二不盡.” 若歷法明不二, 則有衆多不二
而集, 爲自體緣集329)也. 有爲無爲爲二用, 非有非無, 卽爲有
無之本體也. 體不從緣造, 名爲自法, 自法本來空也. 若見自體
無二, 不見有爲, 不見無爲, 不無無二, 謂平等法界. 只二成無
二, 只無二成二, 只平等成不平等, 只不平等成爲平等.
327)『성실론』에 이 구절이 있으나 여기서의 인용인지는 분명하지 않다.(권7 大
     32 p.289c8) 법상(法上)의『십지론의소(十地論義疏)』에도 나오며(권1 대85
    p.772a2~3) 혜원(慧遠)의『십지경론의기(十地經論義記)』에도 나온다.(권1 卍45
     p.26a1)
328)『십지경론』 권2 大26 p.132b10
329) 의미로 보아 원문의 起는 集으로 교감함.(김천학, p.236 주 942) 참조)

 

라) 평등연집법계

연집법계 중에 또 평등연집법계(平等緣集法界)에 대해서 다시 세 종류

가 있다. 첫째는 법계연집(法界緣集), 둘째는 법계무장애(法界無障礙), 셋

째는 법계해탈(法界解脫)이다. 이와 같이 평등은 진리가 없고 교설이 없으

면서 진리이고 교설이다. 교설의 진리이기 때문에 이집(理集)이고, 진리의

교설이기 때문에 교집(教集)이며, 진리와 교설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법집

(法集)이다. 법이 없고 사람이 없으면서 법이고 사람이다. 사람의 법이기

때문에 법집이고, 법의 사람이기 때문에 인집(人集)이며, 사람과 법이 둘이

아니기에 행집(行集)이다. 행위가 사람과 법과 다름이 없고, 사람과 법이

행위와 다름이 없기 때문에 대승(大乘)이다. 이것이 대법계연집(大法界緣

集)이다.

 

만일 모임[集]이 없고 흩어짐[散]이 없으면서 모임이고 흩어짐이면, 흩

어짐의 모임이고 모임의 흩어짐이다. 생사의 열반과 열반의 생사, 있음의

없음과 없음의 있음, 일체의 막힘도 없고 걸림도 없는 것에 이르는 것이 법

계무장애(法界無障礙)이다.

 

만일 모임을 얻을 수 없고 흩어짐을 얻을 수 없으며, 생사를 얻을 수 없

고 열반을 얻을 수 없으며, 있음을 얻을 수 없는 데에 이르면, 둘과 둘이 아

님, 또한 둘임과 또한 둘이 없음, 둘이 없음과 둘이 없음이 없음 또한 얻을

수 없다. 장애 없음도 얻을 수 없고, 해탈과 불해탈도 얻을 수 없다. 이처럼

언어를 초월하면[絶言] 언어를 초월한 것도 얻을 수 없으니, 얻을 수 없음

을 법계해탈(法界解脫)이라고 한다.

緣集法界中, 又就平等緣集法界中, 復開爲三種. 一者法界緣
集, 二者法界無障礙, 三者法界解脫. 若此平等, 無理無教, 而
理而教. 教理故理集也, 理教故教集也, 理教不二故法集也.
無法無人, 而法而人, 人法故法集也, 法人故人集也, 人法不二
故行集也. 無行異人法, 無人法異行, 故大乘也. 是爲大法界緣
集也. 若無集無散, 而集而散, 散集集散. 乃至生死涅槃, 涅槃
生死, 有無無有, 一切無障無礙者, 法界無障礙也. 若集不可
得, 散不可得, 乃至生死不可得, 涅槃不可得, 有不可得, 二不
二, 亦二亦無二, 無二無無二, 亦亦不可得. 無障礙不可得, 解
脫不解脫, 亦不可得. 如此絕言, 只言絕亦不可得, 不可得謂
法界解脫也.

 

(3) 4법계와 5법계

가) 유위법계

묻는다. 원효와 법장 두 스님의 사법계와 오법계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답한다. 첫째는 유위법계(有爲法界)이다.〈두 스님이 동일하게 말함〉두 가지

문이 있다. 첫째는 본식(本識)이 능히 모든 법의 종자를 지니고 있음을 법

계라고 이름한다.『섭대승론』에서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의 계(界)330)이다.”

등이라 한 것과 같다.〈이것은 같은 뜻에 따른 것이다.〉 둘째는 삼세의 모든 법의

차별의 끝을 법계라고 이름한다.『화엄경』에서 “모든 부처님께서 과거의 모

든 법계를 모두 남김 없이 알고, 미래의 모든 법계를 모두 남김 없이 알고,

현재의 모든 법계를 모두 남김 없이 안다.”331)고 하였기 때문이다.332)

問, 曉與藏二師, 四乃五法界, 同異云何?
答, 初有爲法界.〈二師同云〉 有二門. 一本識, 能持諸法種子, 名
爲法界. 如論云,“ 無始時來界”等〈此約同義〉 二三世諸法差別
邊際, 名爲法界. 經云,“ 一切諸佛, 知過去一切法界, 悉無
有餘, 知未來一切法界, 悉無有餘, 知現在一切法界, 悉無有
餘”故.
330)『섭대승론본(攝大乘論本)』大31 133b15~16. 無始時來界, 一切法等依. 由此有諸
     趣, 及涅槃證得. 진제(眞諦)와 불타선다(佛陀扇多)의 한역본에서는 찾아지지 않
     는다.
331)『화엄경』권31「불부사의법품(佛不思議法品)」大9 p.597c12~14.
332)『화엄경탐현기』권18 大35 p.440b27~c4. 初有爲法界有二門. 一本識能持諸法種
     子名爲法界. 如論云, 無始時來界等. 此約因義. 二三世諸法差別邊際名爲法界. 不
     思議品云, 一切諸佛知過去一切法界悉無有餘, 知未來一切法界悉無有餘, 知現在
     一切法界悉無有餘等.

 

나) 무위법계

둘째는 무위법계(無爲法界)이다. 〈두 스님이 동일하게 말함〉 역시 두 가지

문이 있다. 첫째는 본성이 청정한 문[性淨門]으로 범부의 위치에 있지만

본성이 항상 청정하기 때문이다. 진공(真空)333)이 한 가지 맛이어서 차별

이 없기 때문이다.〈이 뜻은『대지도론(大智度論)』334)등에 나온다.〉둘째는 더러움

을 떠나는 문[離垢門]이다. 대치(對治)335)로 말미암아 비로소 청정함을 나

타내기 때문이다. 수행의 얕고 깊음을 따라 열 가지 종류로 나뉘기 때문에

편만법계(遍滿法界) 등 열 종류의 법계가 있다.〈이 뜻은 『중변론(中邊論)』336)
에 나온다.〉337)338)

二無爲法界.〈二師同云〉 亦有二門. 一性淨門, 謂在几位, 性恒
淨故. 真空一味, 無差別故.〈此義出智度論等〉 二離垢門, 謂由對
治, 方顯淨故. 隨行淺深, 分十種故. 如遍滿等十種法界.〈此義
出中邊論等〉
333) 진공(真空):진여의 이성(理性)은 일체 미혹한 생각으로 보는 형상을 여의었으
     므로 진공이라고 함.
334)『대지도론(大智度論)』:『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의 주석서. 산스크리트 원전은
     없고 구마라집(鳩摩羅什)의 한역본만이 전한다.
335) 대치(對治): pratipaksa. 도(道)로써 번뇌를 끊는 것. 번뇌를 끊는데 4가지의 대
     치가 있다고 한다.
336)『중변론(中邊論)』:『중변분별론(中邊分別論)』. 대립하는 2변(邊)을 지양한 중도
     의 의의를 분별해서 논한 것이다. 세친(世親)이 저술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게
     송은 무착(無着)이 미륵(彌勒)에게서 전수받아 세친에게 전한 것이고 장행 부분
     만 세친이 지은 것이다.
337)『중변분별론(中邊分別論)』大31 p.454c21~455a12에는 수행의 차이에 따른 법계
     에 대한 설명이 있다.
338)『화엄경탐현기』권18 大35 p.440c4~7. 二無爲法界亦有二門. 一性淨門, 謂在凡位
      性恒淨故, 真空一味無差別故. 二離垢門, 謂由對治方顯淨故, 隨行淺深分十種故.

 

다) 역유위역무위법계

셋째는 역유위역무위법계(亦有爲亦無爲法界)이다.〈법장 스님이 말함〉 두

가지 문이 있다. 첫째는 형상을 따르는 문[隨相門]이다. 수온(受蘊)339)·

온(想蘊)340)·행온(行蘊)341) 및 다섯 종류의 색(色)342)그리고 여덟 가지 무

위(無爲)343)를 이르니, 이 열 여섯 가지 법은 오직 의식(意識)이 아는 것이

기 때문에 18계 중에 법계라고 이름한다. 12처 문도 법처(法處)라고 한다.〈이
뜻은『대법론(對法論)』344)에 나온다. 원효공은 이것을 세 번째 문으로 하였다.〉 

둘째는 걸림이 없는 문[無礙門]이다. 일심법계(一心法界)를 말하니, 진여문과 

생멸문의 두 가지를 포함하고 유위와 무위가 의지하는 바를 통틀어 만든다. 진

속법(眞俗法)에 치우치는 곳이 없으며, 일체문에서 통하지 않는 바가 없다.

이 때문에 장애가 없다[無礙]고 설하여 이름한다. 그것은 물을 포섭한 파

도는 조용하지 않고, 파도를 포섭한 물은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때문에

『화엄경』에서 “무위계(無爲界)에서 유위계(有爲界)가 나오는데 무위의 본

성을 허물지 않으며, 유위계에서 무위계가 나오는데 유위의 본성을 허물지

않는다.”345)고 하였다.346)『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347)서 “하나의 법계

(法界)에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이 서로 응하지 않아서 갑자기 생각

이 일어나는 것을 무명(無明)이라고 한다.”348)라고 하였다.〈원효공은 이것을
넷째 문으로 하였다. 이 경의 종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겸하여 세 가지가 있으나

앞에서는 이것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三亦有爲亦無爲法界者.〈法藏師云〉 亦有二門. 一隨相門. 謂受
想行蘊, 及五種色, 并八無爲, 此十六法, 唯意識所知故, 十八
界中名法界也. 十二處門, 亦名法處.〈此義出對法論也. 曉公此爲第
三門〉 二無礙門. 謂一心法界, 含有真如生滅二, 通作有爲無爲
所依. 於真俗法, 無所偏黨, 於一切門, 無所不通. 是故說名無
礙. 其猶攝水之波非靜, 攝波之水非動. 故經云,“ 於無爲界,
出有爲界, 而亦不壞無爲之性, 於有爲界, 出無爲界, 而亦不
壞有爲之性.” 起信論云,“ 不達一法界, 故心不相應, 忽然念
起, 名爲無明.”〈曉公此爲第四門. 此經宗正在此中. 兼有三, 前不出此故.〉
339) 수온(受蘊):괴로움과 즐거움, 또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느끼는 마음의
     작용.
340) 상온(想蘊):어떤 일이나 사물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상상하여 보는 여러 가지
      의 감정과 생각
341) 행온(行蘊): samskāra-skandha. 5온의 하나. 4대로 이루어진 색온(色蘊)이 수·
     상의 2온(蘊)을 거치면서 더욱 단단하게 집착이 가해진 상태이다.
342)『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大31 p.696b27~28. “법처(法處)에
     속하는 색(色)은 대략 다섯 종류가 있으니, 극략색(極略色)·극형색(極逈色)·
     수소인색(受所引色)·편계소기색(遍計所起色)·자재소생색(自在所生色)을 말한
     다.(法處所攝色者 略有五種 謂極略色·極逈色·受所引色·遍計所起色·自在所生色)”
     라고 하였다.
343)『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31 p.702a29~702b3. “이 무위법은 다시 여덟 가지 종
     류가 있으니, 선법진여(善法眞如)·부선법진여(不善法眞如)·무기법진여(無記法
     眞如)·허공(虛空)·비택멸(非擇滅)·택멸(擇滅)·부동(不動)·상수멸(想受滅)을
     말한다.(此無爲法, 復有八種, 謂善法眞如 不善法眞如 無記法眞如 虛空非擇滅擇滅 不
     動及想受滅.)”라고 하였다.
344)『대법론(對法論)』:『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대승아비달마
     집론』을 주석한 것으로서, 유가행파의 법상을 해설한 이 논서는 법상종(法相宗)
     에서 소의(所依)로 하는 11논 가운데 하나이다. 무착의 제자인 사자각(師子覺)
     이 저술한『대승아비달마집론』에 대한 주석서를 안혜(安慧)가『대승아비달마
     집론』과 합하여 편찬한 것이다.
345)『화엄경』권15「십회향품(十廻向品)」大9 p.496b10~12.
     ‘其猶攝水之波’부터는『화엄경탐현기』大16 p.440c12~15에서 인용하였다.
346)『화엄경탐현기』권18 大35 p.440c7~15. 三亦有爲亦無爲者. 亦有二門. 一隨相門,
     謂受想行蘊及五種色并八無爲, 此十六法唯意識所知, 十八界中名爲法界. 二無礙
     門, 謂一心法界具含二門, 一心真如門, 二心生滅門, 雖此二門, 皆各總攝一切諸法,
     然其二位恒不相雜. 其猶攝水之波非靜攝波之水非動. 故迴向品云, 於無爲界出有
     爲界而亦不壞無爲之性, 於有爲界出無爲界而亦不壞有爲之性.
347)『기신론(起信論)』:『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馬鳴)이 짓고 진제(眞諦)가
     한역. 범본이 확인되지 않은 이유로 저자가 마명이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
     하여 진위 논쟁이 벌어졌으며, 지금은 대체로 중국 찬술설을 인정하는 경향이
     다. 대승의 법(法)과 의(義) 및 대승에 대한 신심(信心)과 수행을 설한 논서로써,
     이론과 실천의 두 측면에서 대승불교의 중심사상을 요약하여 설한다. 이 논서
     는 화엄종·천태종·선종·정토종·진언종 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348)『대승기신론』 大32 p.577c5~7.

 

라) 비유위비무위법계

넷째는 비유위비무위법계(非有爲非無爲法界)이다. 역시 두 가지 문이 있

다.〈이 뒤로는 모두 법장 스님이 말한 것이다.〉 첫째는 형태가 사라지는 

문[形奪門]이다. 조건이 원리의 조건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에 유위(有爲)가 

아니며, 원리가 조건의 원리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에 무위(無爲)가 아니다. 

의 본질은 평등하여 형태가 사라지고 (유위 무위) 둘 다 없어진다.『대품반

야경(大品般若經)』349) 제39권에서 “수보리가 부처님께 ‘이 법은 평등한데

이것이 유위법입니까, 무위법입니까?’라고 사뢰었다. 부처님께서 ‘유위법

도 아니며, 무위법도 아니다. 왜 그러한가? 유위법을 떠나서 무위법을 얻을

수 없고, 무위법을 떠나서 유위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이것

은 유위성(有爲性)이며 무위성(無爲性)이다. 이 두 법은 합쳐지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는다.’라고 하셨다.”350)라고 하였다. 〈이것을 이른 것이다.〉 

둘째는 의지함이 없는 문[無寄門]이다. 이 법계는 형상을 떠나고 본성을 떠났기

때문에 (유위도 무위도) 아니다. 형상을 떠났기 때문에 유위가 아니고, 본성

을 떠났기 때문에 무위가 아니다. 또 이것은 진제(真諦)이기 때문에 유위가

아니며, 안립제(安立諦)351)이기 때문에 무위가 아니다. 또 두 가지 이름과

말로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이유로 둘 다 아니다. 『해심

밀경(解深密經)』352) 제1권에서 “일체법은 대략 두 종류가 있는데 유위와 무

위이다. 이중 유위는 유위도 아니고 무위도 아니며, 무위는 무위도 아니고

유위도 아니다.”353)라고 하였다.〈여기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설명하였다.〉354)

四非有爲非無爲者, 亦有二門.〈自此以後共法藏師述之〉 一形奪
門. 謂緣無不理之緣故, 非有爲, 理無不緣之理故, 非無爲. 法
體平等, 形奪雙泯. 大品三十九云,“ 須菩提白佛言,‘ 是法平
等, 爲是有爲, 是無爲法.’ 佛言, ‘非有爲法, 非無爲法. 何以
故. 離有爲法無爲法不可得355), 離無爲法有爲法不可得. 須菩
提, 是有爲性無爲性, 是二法, 不合不散.’”〈此之謂也〉 二無寄
門. 謂此法界, 離相離性故, 非此二. 由離相故, 非有爲, 離性
故, 非無爲. 又由是真諦故, 非有爲, 由是356)安立諦357)故, 非
無爲. 又非二名言所能至故, 是故俱非. 解深密經第一云,“ 一
切法者, 略有二種, 所謂有爲無爲. 是中有爲, 非有爲非無爲,
無爲358), 非無爲非有爲.”〈乃至廣說〉
349)『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 구마라집
     등이 부분적으로 번역한 것은 많이 있었으나 현장이 전부 다 번역하여 끝마쳤
     다. 반야부의 여러 경전들을 집대성한 것으로, 현장 당시까지 번역된 경전과 현
     장이 새로 번역한 경전을 총체적으로 수록하고 있다.
350)『대반야바라밀다경』권26 大8 p.415b13~20.
351) 안립제(安立諦):생각과 말로 미치지 못하는 진여를 가설로 차별과 명목을 세워
     나타냄을 말한다.
352)『해심밀경(解深密經)』:유식(唯識)의 깊은 뜻을 8품으로 나누어 설한 경전. 중기
     대승경전에 속하며, 정확한 성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무착(無着, 385~470)의 저
     술인『섭대승론』에 인용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성립된 것으로 보인
     다. 유식의 경계를 밝히고 유식의 관법과 행과(行果), 그리고 최고의 경지는 유
     무(有無)의 2가지 모습과 분별지를 떠나 있다는 것과 아뢰야식의 나타남과 그 3
     가지 성품을 밝혔다.
353)『해심밀경』권1 大16 p.688c23~26. 一切法者略有二種, 一者有爲, 二者無爲. 是中
      有爲, 非有爲非無爲, 無爲, 亦非無爲非有爲.
354)『화엄경탐현기』 권18 大35 p.440c15~29. 四非有爲非無爲者亦二門. 一形奪門,
     謂緣無不理之緣故非有爲, 理無不緣之理故非無爲, 法體平等形奪雙泯. 大品經
     三十九云, 須菩提白佛言, 是法平等, 爲是有爲法, 爲是無爲法. 佛言非有爲法非無
     爲法. 何以故. 離有爲法無爲法不可得, 離無爲法有爲法不可得. 須菩提是有爲性無
     爲性. 是二法不合不散, 此之謂也. 二無寄門, 謂此法界離相離性故非此二. 由離相
     故非有爲, 離性故非無爲. 又由是真諦故非有爲, 由非安立諦故非無爲. 又非二名言
     所能至故, 是故俱非. 解深密經第一云, 一切法者略有二種, 所謂有爲無爲. 是中有
     爲非有爲非無爲, 無爲非無爲非有爲. 乃至廣說.
355) 의미로 보아 得 보완.(김천학, p.253 주 983) 참조)
356)『탐현기』에도 非로 되어 있으나 의미로 보아『탐현기』다른 유통본의 是를 따
     름.(김천학, p.253 주 985) 참조)
357)『탐현기』에 따라 諦 보완
358)『해심밀경』과『탐현기』에 따라 無爲 보완

 

마) 무장애법계

다섯째는 무장애법계(無障礙法界)이다. 역시 두 가지 문이 있다. 첫째는

널리 포섭하는 문[普攝門]이다. 위의 네 가지 문은 하나를 따르면 나머지

일체를 포섭함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선재동자가 혹은 산과 바다

를 보고, 혹은 집과 건물을 본 것도 모두 법계에 들어간다고 한다. 둘째는

원융한 문[圓融門]이다. 원리로써 현상을 융합하기 때문에 모든 현상에 구

분된 한계[分齊]가 없음을 말한다. 작은 티끌이 작지 않아서 열 가지 국토

를 수용하며, 국토의 바다가 크지 않아서 티끌에 스며들어감을 말한다. 현

상으로써 원리를 융합하기 때문에 모든 원리는 한계가 없지 않다. 하나와

여럿이 걸림이 없는 것을 말하니, 혹은 일법계(一法界)라 하고 혹은 제법계

(諸法界)라 한다.「성기품(性起品)」에서 “비유하자면 제법계는 한계를 둘

수 없으니 일체는 일체가 아니며, 보는 것이 아니고 취할 수도 없다.”359)

하였다. 이것은 제법이 곧 제법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노사나품(盧舍那

品)」에서 “이 연화장 세계 안에서 하나하나의 작은 티끌 가운데 일체 법계

를 본다.”360)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가 곧 하나가 아님을 밝힌 것이다. 그러

므로 선재동자가 혹 잠시 손을 잡으니 많은 겁이 지나고, 혹은 누각에 들어

가 널리 삼천세계를 본다고 한 것이 모두 이런 부류이다.

 

위의 다섯 가지 문과 열 가지 뜻은 법계에 들어가는 것을 총괄적으로 밝

힌 것이다. 마땅히 총상·별상의 원융한 육상(六相)을 준거로 해야 한다.361)

五無障礙法界者. 亦有二門. 一普攝門. 謂於上四門, 隨一卽
攝餘一切故. 是故善財, 或覩山海, 或見堂宇, 皆名入法界. 二
者圓融門. 謂以理融事故, 全事無分齊. 謂微塵非小, 能容十
剎, 剎海非大, 潛入塵也. 以事融理故, 全理非無分. 謂一多無
礙, 或云一法界, 或云諸法界. 性起品云,“ 譬如諸法界, 分齊
不可得, 一切非一切, 非見不可取.” 此明諸則非諸362)也. 舍那
品云,“ 於此蓮華藏世界之內, 一一微塵中, 見一切法界.” 此明
一卽非一也. 是故善財或暫時執手, 遂經多劫, 或入樓觀, 普見
三千, 皆此類也.
上來五門十義, 總明所入法界. 應以總別圓融六相准之.
361)『화엄경탐현기』 권18 大35 p.440c29~441a14. 此明諸則非諸也를 此明諸也로 쓴
     외에는 모두 일치한다.
362)『탐현기』에 의해 則非諸 보완.

 

8. 일승의 의미[一乘義]

 

세 가지 문(門)은 앞과 같다.

 

1) 이름을 풀이함

일(一)은 다른 것이 없다는 뜻이다. 원인은 달리 향하는 바가 없고 결과

는 달리 받음이 없어, 원인과 결과가 서로 성립하더라도 그 본질은 성립되

지 않음을 일이라고 이름한다. 승(乘)은 실어 나른다는 뜻이다. 움직여서

사람을 운반하여 타는 것이기 때문에 승(乘)이라고 이름한다. 또 일도(一

道)는 모든 성인이 다니는 길이며, 따로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일도라고

한다. 도(道)는 잘 통한다는 것을 의미로 삼으며, 승(乘)은 잘 옮기는 것을

공능으로 삼는다. 승은 움직여서 나아가고, 나아가 보리에 이른다. 도(道)

는 고요하면서 통하고, 통하여 열반에 들어간다.

 

만일 이러한 뜻에 의한다면 본질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다만 도(道)는

승(乘)이 없고 행(行)은 나아가 향함이 있어, 오직 승만 있으면 도에 어긋

난다. 또『경』에서 “즉 이 법계에서 다섯 가지 도(道)에 유전하면 중생이라

고 하며, 흐름을 돌이켜 근원을 다하면 부처라고 설하여 이름한다.”363)라고

한 것과 같다. 만일 이 뜻에 의하면 본질은 나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건을 따라 옮기고 움직임이 있으니 승(乘)의 뜻에 정확하게 해당

한다. 행(行)은 생겨나고 없어지지만 감도 없고 옴도 없기 때문에 옮겨 움

직임이 없으니 도(道)의 이름에 바로 해당한다.

363) 여기에서 말하는 경은『불설부증불감경(佛說不增不減經)』이다. 법장은 경의 인
     용이라 하여 이곳의 인용과 비슷한 구절을 말하였는데,(『화엄경탐현기』권2 大35
     p.130c21. 故經云, 法身流轉五道名曰衆生. ; 권15 p.384c23~24.) 실제『부증불감경』
     의 명칭을 언급한 부분에서는 경설의 내용과 비슷하게 서술하였다.(『탐현기』권
     6 大35 p.226a29~b2. 不增不減經云, 衆生界法界無二無別. 卽此法身以惑污故流轉五
     道名爲衆生.)『부증불감경』의 해당 부분은(大16 p.467b6~8.) “舍利弗, 卽此法身過
     於恒沙, 無邊煩惱所纏從無始世來隨順世間, 波浪漂流往來生死名爲衆生.” 이다.
     원효의『대승기신론별기』에도 비슷한 인용이 있다.(大44 p.231a9~10. 如經云, 卽
     此法界, 爲諸煩惱之所漂動, 流轉五道, 名爲衆.) 그러나 후반부는 전거를 확실히 알
     수 없다.

 

꿰뚫어 말해보면, 원리 가운데 도(道)와 승(乘)의 뜻을 갖추고 있다. 형상

을 떠난 문[離相門]에서 보면 본래 고요하기 때문이고, 본성을 떠난 문[離

性門]에서 보면 조건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작용[行] 가운데에도 도

(道)와 승(乘)의 두 가지 의미를 갖추고 있다. 생겨나고 없어지는 문[生滅

門]에 의하면 옮겨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고, 서로 이어지는 문[相續門]에

의하면 옮겨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 명칭에 의하여 언어대로 뜻을 취하면 이것을 지혜의 장애라고

말한다. 모든 얻는 것이 있는 것은 승(乘)이 아니다. 이는 곧 본질[理]이거

나 작용[行]이거나 모두 얻는 것이 없어야 비로소 성인이 다니는 곳이며

타는 것이 된다. 성인이 타는 것은 작용이 없고 본질이 아니며, 성인이 다

니는 곳은 본질이 없고 작용이 아니다. 본질이 없고 작용이 없는 까닭에 비

로소 본질과 작용이 되며, 도(道)가 없고 승(乘)이 없어야 이에 도와 승이

된다. 이름을 해석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뜻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령 곧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명칭에 의

해 뜻을 분별하더라도 다시 그 명칭의 의미를 깨뜨리지 않는다면 명칭에

얽매인다고 하지 명칭을 해석한다고 하지 않는다.〈위는 원효 스님의 말이니, 
마땅히 자세히 기록해서 알아야 한다.〉364)
364) 원효의 견해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원효의 일승(一乘)에 관한 생각을 알 수 있
     는 자료이다.

 

一乘義365)
三門同前.
第一釋名者. 一者無他之義. 因無異趣, 果無別酬, 因果相成,
其體不成, 名之爲一. 乘者運載之義. 行能運人, 所乘故名爲
乘. 又一道, 一切聖人所遊之路, 更無別岐, 故名一道. 道以能
通爲義, 乘以能運爲功. 乘動而出, 出到菩提. 道靜而通, 通入
涅槃. 若依此義, 理非遷動. 但道無乘, 行有進趣, 唯乘乖道. 又
如經說, “卽此法界, 流轉五道, 名爲衆生, 返流盡源, 說名爲
佛.” 若依此意, 理非生滅, 故能隨緣而有運動, 正當乘義. 行是
生滅, 無去無來, 故無遷動, 直當道名. 通而言之, 理中具有道
乘之義. 就離相門, 本來靜故, 約離性門, 隨緣動故. 行中亦具
道乘二義, 依生滅門, 無遷動故, 依相續門, 有遷動故. 若依是
名, 如言取義, 是謂智障. 諸有所得非乘, 是卽若理若行, 皆無
所得, 方爲聖人所遊所乘. 聖人所乘, 無行非理, 聖人所遊, 無
理非行. 所以無理無行, 方爲理行, 無道無乘, 乃爲道乘. 當知
非釋名之爲難, 得意之不易耳. 設使直爾依名辨義, 不還破折
其名義者, 是謂結名, 非釋名也.〈上來元曉師言, 宜審記知之.〉
365) 韓2 pp.376c20~377c20.

 

2) 본체를 드러냄

요약하여 말하면 세 가지가 있으니 본성[性], 작용[行], 작용의 결과[行

果]이다. 본성에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상성(常性)과 무상성(無常性)이다.

성(性)이라고 말하는 것은 여래장의 이치로서, 강가강의 모래와 같이 많은

성덕(性德)366)을 갖추어 작용의 결과를 가지고 바른 원인[正因]을 만들 수

있다.〈『불성론(佛性論)』367)에서 말한 것과 같다.〉 무상(無常)과 상(常)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성종성(性種性)368)과 습종성(習種性)369)을 말한다.〈『유가론(瑜伽
論)』370)에서 말한 것과 같다.〉
작용의 본질은 발심한 이후 등각(等覺) 이후까지

닦는 만행을 그 본질로 삼는다. 결과의 본질은 묘각지(妙覺地)371) 중에서

삼신(三身)의 깨달음을 그 본질로 삼는다.

366) 성덕(性德):만물은 모두 각각 본성에 선·악, 미(迷)·오(悟) 등 여러 가지 성능     
     을 갖추었다는 뜻.
367)『불성론(佛性論)』:세친(世親) 지음. 진제(眞諦) 한역. 불성(佛性)을 체계적으로     
     논한 것으로서, 소승(小乘)·외도(外道)·대승(大乘)의 일부 무리가 일체 중생에     
     게 모두 불성이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음을 논박하여 중생에게는 모두 본래부     
     터 불성이 갖추어 있는 것을 밝혔다.
368) 성종성(性種性):선천적으로 갖추고 있는 깨달음의 소질 또는 보살의 인행(因     
     行)으로부터 과(果)에 이르는 행위종성(行位種性)을 6위로 나눈 것. (1) 습종성     
     (習種性). 10주위(住位)로 공관(空觀)을 연습하여 견혹(見惑)·사혹(思惑)을 깨     
     뜨리는 성(性).(2) 성종성(性種性). 10행위(行位)로서 공(空)에 머물지 않고, 나     
     아가 가성(假性)을 분별하는 성(性). (3) 도종성(道種性). 10회향위(廻向位)로서     
     중도(中道)의 묘관(妙觀)을 닦아 온갖 불법을 통달하는 성(性). (4) 성종성(聖種     
     性). 10지(地)위로서 중도의 묘관에 의하여 무명(無明)의 일분을 깨뜨리고 성위     
     (聖位)에 증입(證入)하는 성(性). (5) 등각성(等覺性). 다음의 묘각(妙覺)에 대하     
     여 오직 한 등급(等級)의 차가 있을 뿐으로 전의 모든 위보다 나은 위. (6) 묘각     
     성(妙覺性). 단증(斷證)이 끝나고 3각(覺)이 원만한 위없는 불과(佛果).
369) 습종성(習種性):수행 등에 의해 후천적으로 갖추게 된 깨달음의 소질.
370) 『유가론(瑜伽論)』:『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미륵보살 짓고, 무착보살 엮음.     
     현장(玄奘) 한역. 유가행자(瑜伽行者)의 경(境)·행(行)·과(果) 및 아뢰야식설·     
     삼성설·삼무성설·유식설 등에 대해 해설한 논서로서 대승불교 완성기의 사상     
     을 대표한다. 유식학파의 중도설과 연기론 및 3승교의 근거가 되며, 특히 법상     
     종(法相宗)의 중요 논서이다.
371) 묘각지(妙覺地):보살 수행의 지위 점차인 52위(位)나 41위의 마지막 지위. 등각     
     위(等覺位)에 있는 보살이 다시 1품의 무명을 끊고 이 지위에 들어간다. 온갖 번
     뇌를 끊어버린 부처님의 자리이다.

 

원효스님이 말했다. “또한 교법에 의거해서 마땅히 이렇게 말해야 한다.

진리를 궁극까지 설한다는 것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왜 그런가? 이(理)이

고 사(事)이며, 염(染)이고 정(淨)인 모든 법이 모두 승(乘)의 본질이니, 어

떤 곳에 법이 있으면서도 승(乘)이 아닌 것이 있겠는가?”

第二出體. 略說有三, 謂性行行果. 性有二義, 謂常無常性. 言
性者, 如來藏理, 具恒沙性德, 能與行果而作正因.〈如佛性論說〉
無常常者, 有二義, 謂性種性及習種性.〈如瑜伽論說〉 行體者, 發
心已去, 等覺以還, 所修萬行, 以爲其體. 果體者, 妙覺地中,
三身菩提, 以爲其體. 曉云, “且依法門, 應作是說, 盡理而說,
未必然也. 何者? 若理若事, 若染若淨, 一切諸法, 皆是乘體.
何處有法而非乘耶?”

 

3) 문답으로 분별함

묻는다. 어떻게 일체의 모든 법이 모두 승(乘)의 본질[體]인지 알 수 있

는가?

답한다. 원효공께서 말했다. “‘기바(耆婆)372)라는 의사가 항상 「천하에 있

는 것 중에 약이 아닌 것이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보살도 그렇다. 일체법

을 설함에 깨달음이 아닌 것이 없다.’373) 또『경』에서 ‘음욕이 곧 도(道)이

며, 성내는 것과 어리석음도 또한 그렇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일 중에 헤아

릴 수 없이 많은 부처님의 도(道)가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도를 분별한다면, 이 사람은 부처님에게서 멀리 있는 것이니

마치 하늘과 땅과 같다.’374)고 하였다. 이러한 글들에 의해 모든 법이 도가

아님이 없음을 알 수 있다.

372) 기바(耆婆): Jīvaka. 인도의 사위성에 살던 의사. 기바가(耆婆伽)·시박가(時
     縛迦·尸縛迦)·기바(祇婆)·시바(時婆)라고도 한다. 석가모니에게 귀의하여
     석가의 풍병과 아나율의 눈병, 아난의 창병 등을 치료하여 의왕으로 존경받
     았다.
373)『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권9 大13 p.54c28~55a1. 舍利弗, 如耆婆醫王常作
     是言. 天下所有無非是藥. 菩薩亦爾. 說一切法無非菩提.
374)『대지도론』권6 大25 p.107c21~24. 婬欲卽是道, 恚癡亦如是, 如此三事中, 無量諸
     佛道. 若有人分別, 婬怒癡及道, 是人去佛遠, 譬如天與地.
     『제법무행경(諸法無行經)』大15 p.759c13~16. 貪欲是涅槃, 恚癡亦如是, 如此三
     事中, 有無量佛道. 若有人分別, 貪欲瞋恚癡, 是人去佛遠, 譬如天與地.

 

그런데 이러한 글은 대략 몇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자성정심(自性淨心)

을 도제(道諦)375)라고 한다. 일체의 모든 법은 본성이 공(空)하지 않음이

없고, 본성이 공한 것은 본성이 청정한 깨달음[性淨菩提]이다. 그러므로 모

든 법은 깨달음이 아닌 것이 없다고 설한다. 둘째는 계율·선정·지혜 등을

도(道)라고 한다. 계율·선정·지혜의 본연과 음욕·성냄·어리석음의 본연

은 오직 하나같아서 둘도 없고 구별도 없다. 그래서 음욕 등이 곧 도라고

설한다. 셋째는 무분별지(無分別智)376)가 도(道)이다. 바른 본질인 무분별

지는 진여를 증득할 때 삼세의 모든 법이 함께 일심(一心)에 드러나니, 하

나의 법도 깨달은 마음을 떠나서 있지 않다. 그래서 나고 죽음과 도가 합

치한다고 설한다. 넷째는 법계는 법 그대로이다. 일체의 모든 법이 서로 끼

어드는 것이, 마치 시방 삼세가 모두 하나의 티끌에 들어가고 하나의 티끌

이 시방세계에 들어가며, 한 생각이 한없는 시간에 들어가고 한없는 시간

이 한 생각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이처럼 모든 부처님의 지혜가 탐욕스러

운 마음에 들어가고, 한 생각의 탐욕스러운 마음이 모든 부처님의 지혜에

들어간다. 그래서 나고 죽음이 도와 합치한다고 설한다. 다섯째는 막힘과

걸림 없는 법계의 법문에 의지함이다. 단지 하나와 일체가 다시 서로 끼어

들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의 법이 일체이며 모든 법이 하나이다. 그래서 음

욕 등이 곧 도라고 설한다. 여섯째는 자기의 마음이 없음[無自心]에 이르

러 들어가는 것이다. 일체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삼으며 여래는 자기의 몸

이 없어 일체의 몸을 몸으로 삼는다. 그 까닭은 오랜 시간 동안 쉼 없이 무

아관(無我觀)377)을 닦아서 자기의 몸과 마음이 없다는데 이르며, 3아승기

378) 동안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복을 쌓았기 때문에 일체의 자기의 마음

을 감득할 수 있다. 만일 하나의 형상을 두어 자신의 본질로 삼는다면 아집

(我執)을 제거하지 않은 것이니 성인이라 할 수 없다. 하나의 형상이 있어

도 스스로가 갖추지 못하면 약이 갖추어지지 않아 의왕(醫王)이 되지 못한

다. 참으로 얻는 것이 없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것이 없어서 이를 이름하여

원만하고 위없는 바른 깨달음[圓滿無上正等菩提]이라고 한다. 이러한 뜻에

의거하기 때문에 일체법이 깨달음이 아닌 것이 없다고 설하니, 기바가 말

한 것과 같다. 이 성스러운 가르침과 모든 도리로 말미암아 마땅히 모든 법

이 승의 본질임을 알아야 한다.”

375) 도제(道諦): mārga-satya. 사제(四諦)의 하나. 번뇌와 업을 끊고 열반에 도달하
     는 길을 이른다.
376) 무분별지(無分別智): nirvikalpa-jñāna. 올바르게 진여를 체득하는 지혜, 진여의
     모양은 우리들의 언어나 문자로서는 어떻게 형용할 수도 분별할 수도 없으므로,
     분별심을 가지고는 그 체성에 계합할 수 없다. 그리하여 모든 생각과 분별을 여
     읜, 모양 없는 참 지혜로만 비로소 알 수 있다. 이런 지혜를 무분별지라 한다.
377) 무아관(無我觀):오정심관(五停心觀)중 하나. 우리들의 몸과 마음은 지·수·화·
     풍·공·식 등 6종의 원소가 가(假)로 모인 것이므로 어떠한 모양이나 실체가 없
     다고 관하는 것이다.
378) 원문의 삼무수겁(三無數劫)은 삼아승기겁(三阿僧祇劫). 삼무수대겁(三無數大
    劫)·삼겁(三劫)이라고도 한다. 보살이 수행을 모두 마쳐 성불에 이르는데 필요
    한 시간. 아승기(阿僧祇, asam3 khya)는 헤아릴 수 없는 수, 곧 겁(劫)을 말한다.
     매우 오랜 시간을 일컫는 이름이다. 대(大)·중(中)·소(小)의 삼겁의 구분이 있
    는데, 3번의 아승기대겁을 삼아승기겁이라 한다. 이 사이에 각 대겁마다 각각
     수만의 여러 부처님들이 출현한다고 한다.

 

법장 스님이 말했다. “일승에 두 문이 있으니 첫째는 별교(別教)이고 둘
째는 동교(同教)이다. 별교 중에 다시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성해과분(性海
果分)은 설명할 수 없는 의미에 해당하니, 가르침과 더불어 상응하지 않아
곧 시불의 경계이다. 둘째는 연기인분(緣起因分)이니 보현(普賢)의 경계이
다. 이 두 가지는 둘이 아니어서, 전체를 두루 거두어들이니 물과 파도와
같다. 생각해보아라.”379)
379)『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1 大45 p.477a13~19. 初明建立一乘者. 然此一乘教義分
     齊, 開爲二門. 一別教, 二同教. 初中二. 一性海果分, 是不可說義. 何以故, 不與教相
     應故, 則十佛自境界也. 故地論云, 因分可說果分不可說者是也. 二緣起因分, 則普
     賢境界也. 此二無二全體遍收, 其猶波水. 思之可見.

 

第三問答.
問, 以何得知一切諸法皆是乘體?
答, 曉公云,“ 如耆婆醫, 常作是說.‘ 天下所有莫非是藥.’ 菩
薩亦爾. 說一切法莫非菩提. 又經云, ‘婬欲卽是道, 恚癡亦復
然, 如是三事中, 無量諸佛道. 若有人分別, 婬怒癡及道, 是人
去佛遠, 猶如天與地.’ 依此等文, 故知諸法莫不是道. 然此等
文, 略有數意. 一者自性淨心, 名道諦. 一切諸法, 無不性空,
性空亦是性淨菩提. 故說諸法莫非菩提. 二者戒定慧等, 是名
爲道. 戒定慧如, 婬怒癡如, 唯一如無二無別. 故說婬等卽是
道也. 三者無分別智是道. 正體無分別智, 證真如時, 三世諸
法, 並現一心, 無有一法離覺心. 故說生死與道合也. 四者法界
法爾. 一切諸法更相涉入, 如十方三世皆入一塵, 一塵亦入十
方世界, 一念入無量, 無量入一念. 如是諸佛智慧入貪心, 一念
貪心入諸佛慧. 故說生死與道合. 五者依無障礙法界法門. 非
但一與一切更相涉入, 亦乃一法是一切, 諸法卽是一. 故說婬
等卽是道也. 六者至入無自心. 一切以心爲心, 如來無自身,
一切身爲身. 所以然者, 長時無間, 修無我觀, 故能得至無自身
心, 三無數劫集無量福, 故能感得一切自心. 若存一相爲自體
者, 我執不除, 非謂聖人. 設有一相不自備者, 卽藥不具, 不作
醫王. 良由無所得故, 無所不得, 乃名圓滿無上正等菩提. 依此
義故, 說一切法莫非菩提, 如耆婆說. 由此聖教及諸道理, 當知
諸法皆是乘體.”
法藏師云,“ 一乘爲二門, 一別教, 二同教. 初中亦二. 一是性
海果分, 是當不可說義, 不與教相應, 卽十佛境界. 二緣起因
分, 卽普賢境界也. 此二無二, 全體遍收, 猶水波. 思之.”

 

9. 교법을 나누는 의미[分教義]

 

세 가지 문(門)은 앞과 같다.

 

1) 이름을 풀이함

분(分)이라 하는 것은 나눈 범위[分齊]이고, 또 나누어 판별한다는 의미

이다. 교(敎)는 교법(敎法)이니, 설명된[所詮] 의미의 얕고 깊음에 따라 설

명하는[能詮] 교법 역시 차별이 있다.

 

법장 스님은 말했다. “가르침의 종류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이것은 뜻에

대해 나눈 것으로 시기와 형식[事]에 따른 것이 아니다. 첫째는 소승교(小

乘敎)이고, 둘째는 대승시교(大乘始教)〈초교(初敎)라고도 한다〉이고, 셋째는 종
교(終敎)〈취교(就教)라고도 한다〉이고, 넷째는 돈교(頓教)이고, 다섯째는 원교
(圓教)〈지설교(至說教)라고도 하며, 이 별교(別敎)와 같다.〉이다.

 

첫째 소승교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대승시교는『해심밀경』 중의 제2, 제3시교가 똑같이 정성이승(定性

二乘)380)은 모두 부처가 될 수 없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그것을 합쳐서 총

괄하여 한 가지 가르침이 된다. 이것은 아직 대승의 법과 이치를 다하지 못

했기 때문에 대승시교를 세운다. 셋째 종교는 정성이승과 무성천제(無性闡

提)381)가 모두 마땅히 부처가 되어 바로 대승의 지극한 가르침을 다한 설법

이므로 종교를 세운다. 그러나 위의 (시교와 종교의) 두 가르침은 모두 교

화의 지위에 따라 점차로 수행이 완성되므로 모두 점교(漸敎)라고 한다. 그

래서 『법고경(法鼓經)』382) 중에서, ‘공문(空門)으로 처음을 삼고 불공문(不

空門)으로 끝을 삼는다.’383)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 경에서 ‘가섭이 부처님

께 사뢰기를,「모든 대승 경전은 공(空)의 의미를 많이 설합니다.」라고 하

니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이르시되,「모든 공에 관한 경전에도 더 설할 것

이 있으나, 오직 이 경전만이 위 없는 설법으로써 더 설할 것이 없다.」384)

고 하셨다.’라고 하였다.385)〈이는 곧 공의 이치로 보면 나머지가 있어서 시교라고 하
며, 여래장으로 보면 항상 위 없는 곳에 머무르므로 종교라고 한다.〉386)
 넷째 돈교는 단

지 한 생각도 생기지 않는 것을 곧 부처라고 한다. 위지(位地)에 의해 점차

설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돈교를 세운다.『사익경(思益經)』387)에서 ‘모든

법의 바른 본성을 얻는 자는 하나의 지위가 정해져 있지 않고 모든 지위에

이른다.’388)고 한 것과 같고,『능가경(楞伽經)』389)에서 ‘초지가 곧 팔지이니

무소유에 이르기까지 어떤 순서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390) 또 말하기를

’점(漸)이란 망고 열매391)가 서서히 익는 것이지 갑자기 익는 것이 아닌 것

과 같다. 돈(頓)이란 거울의 모습이 갑자기 나타나지 서서히 나타나는 것

이 아닌 것과 같다.’392)라고 하였다.393)〈이것을 이른다.〉다섯째 원교는 하나의

지위가 일체의 지위이며, 일체의 지위가 하나의 지위임을 밝힌다. 이 때문

에 십신(十信)이 마음에 가득차면 오위(五位)394)를 포섭하여 바른 깨달음

등을 이룬다. 보현법계에 의하면 제석천의 그물이 중첩되어 주체와 객체를

갖추기 때문에 원교라고 하니 이 경전 등에서 설한 것과 같다.”395)

380) 정성이승(定性二乘):정성연각(定性緣覺)과 정성성문(定性聲聞). 정성(定性)은
     보살·연각·성문의 삼승에 각각 그렇게 될 유일한 종자를 갖춘 중생을 말한다.
     이에 비해 세 종자를 갖추고 아직 결정되지 않은 부류를 부정성(不定性)이라
     한다. 부정성은 이승의 수행을 한 뒤 대승으로 전향할 수도 있지만 정성연각과
     정성성문은 각각 벽지불과와 아라한과만을 얻도록 정해진 부류이다. 법상종에
     서는 중생이 선천적으로 같지 않은 성질을 가진 다섯 가지 부류로 나뉜다고 한
     다[五姓各別]. 그중의 첫째 보살정성에 이어 둘째 셋째가 정성이승이고, 그 다
     음은 부정종성(不定種性)과 무종성(無種性)이다. 무정성은 영원히 미혹한 세계
     에 빠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고 선인을 닦아야 인천에 태어날 수 있는 부류
     를 말한다.
381) 무성천제(無性闡提):일천제(一闡提). 성불의 인(因)이 없어서 성불할 수 없는
     중생. 오성각별의 다섯째 무종성.
382)『법고경(法鼓經)』:대법고경(大法鼓經).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가 한역하였다.
     불명(佛名)의 공덕과 열반의 상주(常住), 그리고 중생들에게 여래장이 있음을
     말하고,『법화경』에 나오는 궁자(窮子)와 화성(化城)의 두 비유를 들어 3승은 방
     편이요 1승이 진실임을 밝혔다.
383) 이는『오교장』에서 출처를『대법고경』이라 한 것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384)『대법고경』 권2 大9 p.296b8~10.
385) 법장의 해석 중에서 나머지는『탐현기』의 인용이나 이 부분은『화엄일승교의
     분제장』(권1 大45 p.481b24~27)에서의 인용. 法鼓經中以空門爲始, 以不空門爲終.
     故彼經云, 迦葉白佛言, 諸摩訶衍經多說空義. 佛告迦葉, 一切空經是有餘說, 唯有
     此經是無上說, 非有餘說.
386)『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1 大45 p.481c4~6. 此則約空理有餘, 名爲始教. 約如來
     藏常住妙典, 名爲終教.
387)『사익경(思益經)』:『사익범천소문경(思益梵天所問經)』. 망명(網明)과 사익범천
     등을 위하여 만유제법의 공적한 이유를 말하였다.
388)『사익범천소문경』大15 p.36c6~8. “만일 어떤 사람이 모든 법의 바른 성(性)을
     듣고 부지런히 정진하기를 설한 것처럼 수행한다면 일지(一地)에서 (다른) 일지
     (一地)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若人聞是諸法正性 勤行精進, 是名如說修行, 不從一
     地至一地)를 다소 다르게 인용하였다.
389)『능가경(楞伽經)』:『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 부처님이 능가산에서 대혜보
     살(大慧菩薩)을 위하여 여래장(如來藏) 연기(緣起)의 이치를 설한 것이다.
390)『능가경』을 인용한 것은『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1(大45 p.481b15~19)에서 인용
     하고 있다. 따라서『탐현기』와『오교장』에서 필요에 따라 인용했음을 알 수 있다.
391) 원문의 엄마륵과(掩摩勒菓)는 아마륵과(阿摩勒果)를 말한다. āmala, āmlikā. 여
     감자(餘甘子)라고 의역한다. 신 맛이 나는 과일로 식용 또는 약용으로 쓴다. 그
     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능가경』에서 말한 것처럼 흔히 인도의 맛있는 과일로
     꼽는 망고가 맞다. 망고는 암몰라(菴沒羅, āmra) 또는 암마라(菴摩羅)·암라
     (菴羅) 등으로 음역한다.
392)『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 권2 大16 p.596a25~26. 漸淨非頓, 如菴羅果漸熟
     非頓. ; b4~5. 漸而非頓, 譬如明鏡頓現衆像而無分別.
393)『화엄일승교의분제장』권1 大45 p.481b15~19. 故楞伽云, 漸者如菴摩勒果漸熟非
     頓, 此之謂也. 頓者言說頓絕理性頓顯解行頓成一念不生, 卽是佛等. 故楞伽云, 頓
     者如鏡中像頓現非漸, 此之謂也.
394) 오위(五位):수행의 다섯 단계. 10신, 10주, 10행, 10회향, 10지.
395)『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15c4~20. 第九以義分教. 教類有五, 此就義分, 非約
     時事. 一小乘教, 二大乘始教, 三終教, 四頓教, 五圓教. 初小乘可知. 二始教者, 以
     深密經中第二第三時教同許定性二乘俱不成佛故, 今合之總爲一教. 此旣未盡大乘
     法理, 是故立爲大乘始教. 三終教者, 定性二乘無性闡提悉當成佛, 方盡大乘至極之
     說, 立爲終教. 然上二教並依地位漸次修成, 俱名漸教. 四頓教者, 但一念不生卽名
     爲佛, 不依位地漸次而說, 故立爲頓. 如思益云, 得諸法正性者, 不從一地至於一地,
     楞伽云, 初地卽八地乃至無所有何次等. 又下地品中十地猶如空中鳥跡, 豈有差別
     可得. 具如諸法無行經等說. 五圓教者, 明一位卽一切位一切位卽一位, 是故十信滿
     心卽攝五位成正覺等, 依普賢法界帝網重重主伴具足故, 名圓教. 如此經等說.

 

分教義396)
三門同前.
第一釋名者. 言分者分齊, 亦分判義. 教者教法, 謂所詮義隨
淺深, 能詮之教亦有差別.
法藏師云, “教類有五, 此就義分, 非約時事. 一小乘教, 二大
乘始教〈亦名初教〉, 三終教〈亦名就教〉, 四頓教, 五圓教〈亦名至
說教, 同此之別教〉. 初小乘可知. 二始教者, 以深密經中第二第
三時教, 同許定性二乘俱不成佛故, 故令合之, 總爲一教. 此
旣未盡大法理, 是故立爲大乘始教. 三終教者, 定性二乘無
性闡提, 悉當成佛, 方盡大乘至極之說, 立爲終教. 然上二教,
並依位地397)漸次修成, 俱名漸教. 故法皷經中,‘ 以空門爲
始, 以不空門爲終.’ 故彼經云, ‘迦葉白佛言,「 諸摩訶衍經,
多說空義.」 佛告迦葉, 「一切空經是有餘說, 唯有此經是無上
說, 非有餘說.」’〈此卽約空理有餘名始教, 約如來藏常住無上名爲終教〉
四頓教者, 但一念不生, 卽名爲佛, 不依位地漸次而說, 故立
爲頓. 如思益云,‘ 得諸法正性者, 不定一地, 至於一切地.’
楞伽云,‘ 初地卽八地, 乃至無所有何次?’ 又云,‘ 漸者, 如掩
摩勒菓漸熟非頓, 頓者, 如鏡中像頓現非漸.’〈此之謂也〉 五圓
教者, 明一位卽一切, 一切位卽一位. 是故十信滿心卽攝五
位, 成正覺等. 依普賢法界帝網重重主伴具足, 故名圓故. 如
此經等說.”
396) 韓2 p.382c4~383c18.
397)『오교장』에 의해 化位를 位地로 교감함.

 

2) 본체를 드러냄

교법의 본질을 전체적으로 논하면 얕음에서 깊음에 이르기까지 대략 열

가지 문이 있다. 첫째, 언어로 말하여 본질을 분별하는 문[言詮辨體門], 둘

째, 말해진 것을 모두 포섭하는 문[通攝所詮門], 셋째, 두루 모든 법을 갖추

고 있는 문[遍該諸法門], 넷째, 연기는 오직 마음이라는 문[緣起唯心門], 다

셋째, 조건을 모아 실상에 들어가는 문[會緣入實門], 여섯째, 원리와 현상

이 서로 걸림이 없는 문[理事無礙門], 일곱째, 현상이 융합하여 서로 포섭

하는 문[事融相攝門], 여덟째, 제석천의 그물이 중첩되어 있는 문[帝網重重

門], 아홉째, 해인이 밝게 드러내는 문[海印炳現門], 열 번째, 주체와 객체가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는 문[主伴圓備門]이다.398)
第二出體者. 通論教體, 從淺至深, 略有十門. 一言詮辨體門,
二通攝所詮門, 三遍該諸法門, 四緣起唯心門, 五會緣入實門,
六理事無礙門, 七事融相攝門, 八帝網重重門, 九海印炳現門,
十主伴圓備門.
398)『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17c10~14. 第五能詮教體者. 通論教體, 從淺至深, 略
     有十門. 一言詮辯體門, 二通攝所詮門, 三遍該諸法門, 四緣起唯心門, 五會緣入實
     門, 六理事無礙門, 七事融相攝門, 八帝網重重門, 九海印炳現門, 十主伴圓備門.

 

첫째, 언어로 말하여 본질을 분별하는 문[言詮辨體門]에 두 가지가 있

다. 첫째는 소승〈세 가지 설이 있다〉이고 둘째는 대승이다. 대승 중에 네 가지

구절이 있다. 첫째는 임시적인 것을 포섭하여 진실에 의지함[攝假依實]이

니, 오직 음성을 본질로 삼는다. 둘째는 거짓을 나누어 진실을 달리함[分假

異實]이니, 명칭 등을 본질로 삼는다. 셋째는 임시적인 것과 진실을 합하

여 분별함[假實合辨]이니, 소리도 명칭도 (본질로 삼는다.) 『십지경론(十地

經論)』에서 “설하는 것은 두 가지 일로써 설하며, 듣는 것은 두 가지 일로써

듣는다.”399)라고 하였으니 음성과 명칭을 말한다. 넷째는 임시적인 것과 진

실이 둘 다 부정됨[假實雙泯]이니, 소리도 명칭도 아니다. 곧 공(空)이기 때

문이다. 『유마경』에서 “문자의 성질을 떠난 것, 이것이 곧 해탈이다.”400)

고 하였다. 이상 네 가지 구절은 하나의 가르침의 본질이다. 이 때문에 공

(空)과 유(有)가 걸림이 없는 것을 대승법(大乘法)이라고 한다. 공이라는

것은 유와 다르지 않으니, 유는 거짓된 유[幻有]이고, 거짓된 유는 완전하

게 전체가 공이다. 유는 공과 다르지 않으니, 공은 진공이고 진공은 깊고

고요하여[湛然] 전체가 유이다. 이 때문에 공과 유는 터럭만큼의 차별401)
없다.402)

初中有二. 先小乘〈三說云云〉 後大乘. 中有四句. 初攝假依實,
唯聲爲體. 二分假異實, 以名等爲性. 三假實合辨, 亦聲亦名
等. 十地論云,“ 說者以二事說, 聽者以二事聞.” 謂音聲名字.
四假實雙泯, 非聲非名, 以卽空故. 維摩云,“ 文字性離, 是卽
解脫.” 此上四句, 爲一教體. 是故空有無礙, 名大乘法. 謂空
不異有, 有是幻有, 幻有完然擧體是空. 有不異空, 空是真空,
真空湛然, 擧體是有. 是故空有無毫差別.
399)『십지경론』권1 大26 p.129a20. 說者以此二事說, 聽者以此二事聞.
400)『유마힐소설경』권1 大14 p.540c19. 文字性離, 無有文字, 是則解脫.
401) 差別은『화엄경탐현기』에는 分別임.(권1 大35 p.118a20)
402)『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p.117c14~118a23. 법장의 설명에서 필요한 부분만
     간략하게 인용하였다.

 

둘째, 말해진 것을 모두 포섭하는 문[通攝所詮門]이다. 말하는 것에 통

할 뿐만 아니라 말해진 것에도 통한다.403)『유가론』 81권에서 “모든404) 경

전의 본질은 대략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글이며 다른 하나는 뜻이

다.”405)라고 한 것과 같다.〈해석하면 뜻은 글귀에 의지하여 드러내기 때문이다.〉406)

二通攝所詮門者. 非但能詮, 亦通所詮, 如瑜伽八十一云,“ 諸
契經體, 略有二種, 一文, 二義.”〈解云, 以義依文句得顯故.〉
403) 원문의 ‘非但能詮 亦通所詮’는『화엄경탐현기』에서는 ‘非但如前取能詮敎 亦漸
     通取所詮之義’ 이다.
404)『유가사지론』은 謂라고 했으나『탐현기』에서는 諸라 하였고, 이『요결문답』은
     『탐현기』를 그대로 인용하였다.
405)『유가사지론』권81 大30 p.750a1~2. 謂契經體, 略有二種. 一文, 二義.
406)『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18a23~28.

 

셋째, 두루 모든 법을 갖추고 있는 문[遍該諸法門]이다. 일체의 모든 법

이 모두 교법의 본질이 됨을 말한다. 유위법과 무위법으로써 중생이 깨달

음을 열게 하지 못함이 없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아래 글에서 “꽃다발로 덮

인 보배로운 땅과 향나무와 구름 낀 누각의 법계 법문이 부처님의 일이 아

님이 없다.” 라고 한 것과 같다. 마치 승음보살과 앉았던 연화대가 곧 사람

과 법, 교법과 의의, 수행과 지위, 원인과 결과, 본체와 현상에 통하는 것과

같다.〈총괄하여 뛰어난 이해와 실천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모두 교법의 본질이 된다.〉407)

三遍該諸法門者. 謂一切諸法悉爲教體. 謂有爲無爲法, 以無
不能令408)生開覺故. 如下文,“ 華鬘寶地香樹雲閣, 法界法門,
無非佛事”. 如勝音菩薩及所坐蓮華, 卽通人法教義行位因果
理事.〈總能發生勝解行故, 並爲教體.〉
407)『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18a28~b4.
408)『탐현기』에 의해 全을 令으로 교감함.

 

넷째, 연기는 오직 마음이라는 문[緣起唯心門]이다. 이 위의 모든 차별된

교법이 모두 오직 마음이 나타난 것이 아님이 없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모

두 오직 식(識)으로써 본질로 삼는다. 이상에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는 본질과 그림자가 상대함[本影相對]이고 둘째는 설함과 들음을 모두 포

섭함[說聽全攝]이다.

 

첫째 중에 네 가지 구절이 있다. 첫째는 오직 본질일 뿐 그림자는 없음

[唯本無影]이다.〈소승〉 둘째는 본질이며 그림자임[亦本亦影]이다. 대승시교

와 같다. 중생의 마음 밖에 부처의 미묘한 색과 소리 등이 있다.〈호법(護法)
논사 등과 같다.〉 
셋째는 오직 그림자일 뿐 본질은 없음[唯影無本]이다. 대승

종교와 같다. 중생의 마음을 떠나서 불과(佛果)에 색과 소리 등의 현상의

양상과 공덕이 있지 않다.〈용군(龍軍)이나 견혜(堅慧)409) 논사 등과 같다. 넷째는

본질도 아니고 그림자도 아님[非本非影]이다. 돈교와 같다. 바로 마음 외에

부처의 색 등이 없고 중생의 마음 안에 나타나는 부처이다. 역시 형상이

공(空)함에 해당한다.〈용수 등과 같다〉 이러한 네 가지 설은 모두 하나의 교법
의 본질로 원융하고 걸림이 없어 모두 서로 방해됨이 없다.〈각각의 성스러운
가르침은 얕은 데에서 깊은 데까지 중생을 포섭하기 때문이다.〉

409) 견혜(堅慧): Sthiramati. 서력 4~5세기 경 중인도 나란타사의 학승으로 덕혜
     (德慧)와 함께 유명한 스님. 저서로『대승법계무차별론(大乘法界無差別論)』1권
     과『구경일승보성론(究竟一乘寶性論)』5권이 있다.

 

둘째 설함과 들음을 모두 포섭함[說聽全攝]에도 역시 네 구절이 있다. 첫째

는 마음을 떠나 그밖에 교화할 중생이 없으니 하물며 설해진 가르침에 있어

서랴.〈모든 중생은 따로 자체가 없으며 여래장을 가져서 중생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여래
장은 곧 부처님의 지혜를 증득하는 것을 자체로 삼으니 부처님의 마음과 지혜를 떠나서는 한
가지 법도 얻을 수 없다.〉 
둘째는 모든 것이 중생의 마음 가운데 있어서 중생의 마

음을 떠나서 따로 부처님의 덕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부처님이란 중생의 마음 중
에서 진여를 증득하여 부처가 된 것을 말한다.〉 
셋째는 하나의 성스러운 가르침에 따

라 전체가 오직 두 가지 마음이니, 앞의 두 설은 서로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

다.〈중생의 마음 안의 부처가 부처의 마음 안에 있는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하고, 부처의 마음
안의 중생이 중생의 마음 안의 불법을 듣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전부 받아들여 설함과 들
음이 걸림이 없으니 이것을 깊고 깊은 도리라고 한다.〉 
넷째는 혹 저 성스러운 가르침

이 모두 두 가지 마음이 아니니, 양쪽 모두 형태를 벗어나서 나란히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고, 두 지위를 융합하여 사라지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410)

410)『화엄경탐현기』 권1 大35 pp.118b5~119a8.『탐현기』의 이 부분의 내용을 필요
     에 따라 요약하여 인용하였다.

四緣起唯心門者. 此上一切差別教法, 無不皆是唯心所現. 是
故俱以唯識爲體. 此上有二義, 一本影相對, 二說聽全攝. 初中
四句. 一唯本無影.〈小乘〉 二亦本亦影. 如大乘始教. 衆生心外
佛有微妙色聲等.〈如護法論師等〉 三唯影無本. 如大乘終教. 離衆
生心, 佛果無有色聲事相功德.〈如龍軍堅慧師等〉 四非本非影. 如
頓教中. 非直心外無佛色等, 衆生心內所現之佛, 亦當相空.〈如
龍樹等〉 此前四說, 總爲一教體, 圓融無礙, 皆無相妨.〈以各聖教,
從淺至深, 攝衆生故〉 二說聽全攝者, 亦有四句. 一離心以外, 無所
化衆生, 況所說教.〈謂諸衆生, 無別自體攬如來藏, 以成於衆生. 然此如來
藏, 卽是佛智證爲自體, 離佛心智, 無一法可得.〉 二總在衆生心中, 以離
衆生心無別佛德故.〈謂佛證於衆生心中真如成佛〉 三隨一聖教, 全唯
二心, 以前二說不相離故.〈謂衆生心內佛, 爲佛心中衆生說法, 佛心中衆
生, 聽衆生心中佛法. 如是全收, 說聽無礙, 是謂甚深道理.〉 四或彼聖教, 俱
非二心, 以兩俱形奪不並現故, 雙融二位, 無不泯故.

 

다섯째, 조건을 모아 진실에 들어가는 문[會緣入實門]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근본으로써 말단을 거두어들이는[以本收末] 것이다. 모든 성

스러운 가르침은 모두 진실로부터 흘러나온다.〈바다가 밀물을 일으키지만 짠
411)을 잃지 않는 것과 같다.〉
 둘째는 양상을 모아 본성을 나타내는[會相顯性]

것이다. 저 모든 차별된 교법이 모두 연기에 따른다. 연기에 따르기 때문에

반드시 자성(自性)이 없고, 자성이 없으므로 곧 진여(眞如)이다. 그렇기 때

문에 헛된 상[虛相]412) 근본으로부터 다하고 진성(眞性)이 근본으로부터

나타난다.413)
五會緣入實門者, 亦有二義. 一以本収末. 以諸聖教皆從真
流.〈如海起潮, 不失醎味.〉 二會相顯性. 謂彼一切差別教法, 悉從
緣起. 從緣起故必無自性, 無自性故卽是真如. 是故虛相本盡,
真性本.
411) 원문의 ‘醎’는『화엄경탐현기』에서는 ‘鹹’라 하였으나, 뜻은 같다.
412) 원문의 ‘虛相’은『화엄경탐현기』에서는 ‘空相’이다. 그러나 의미로 보아 虛相이
     어야 한다고 한다.(김천학, p.313 주 1240) 참조)
413)『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19a8~17.『탐현기』의 내용을 필요에 따라 요약하
     여 인용하였다

 

여섯째, 원리와 현상이 서로 걸림이 없는 문[理事無礙門]은 역시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모든 교법은 전체가 진여이니, 현상의 양상의 뚜렷한 차

별이 걸림이 없다. 둘째는 진여는 전체가 일체법이 되니, 한 가지 맛이 깊

고 고요하여 평등함에 걸림이 없다. 전자는 파도가 곧 물이어서 움직이는

양상이 걸림이 없는 것과 같고, 후자는 물이 곧 파도여서 습기의 본질을 잃

지 않는 것과 같다.414)
六理事無礙門者, 亦有二義. 一謂一切教法擧體真如, 不礙事
相歷然差別. 二真如擧體, 爲一切法, 不礙一味湛然平等. 前
則如波卽水, 不礙動相, 後則如水卽波, 不失濕體.
414)『화엄경탐현기』 권1 大35 p.119a17~21.

 

일곱째, 현상이 융합하여 서로 포섭하는 문[事融相攝門]은 역시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상재(相在)이고 다른 하나는 상시(相是)이다.415)〈이 두 가
지 문은 보통 말한 것과 같다.〉
七事融相攝門者, 亦有二義, 一相在, 二相是.〈此二門者如常說也〉
415)『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19a26~27.

 

여덟째, 제석천의 그물이 중첩되어 있는 문[帝網重重門]이다.416)〈보통 말
한 것과 같다.〉
八帝網重重門者.〈如常說也〉
416)『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19b29.

 

아홉째, 해인(海印)417)이 밝게 드러내는 문[海印炳現門]은 앞의 무진교

법(無盡教法)과 같다. 모든 것은 여래의 해인삼매(海印三昧)418) 중에 동시

에 밝게 나타난다. 교화되는 근기라고 해도 같은 연기이기 때문에 오직 이

삼매해만을 이 교법의 본질로 삼는다.〈아래 글에서 “일체를 나타내 보여 남음이
없으니 해인삼매의 힘 때문이다.”419)라고 한 것과 같다.〉420)
九海印炳現門者, 如前無盡教法. 皆是如來海印定中, 同時
炳然顯現. 設所化機, 亦同緣起, 是故唯以此三昧海, 爲斯教
體.〈如下文云,“ 一切示現無有餘, 海印三昧勢力故.〉”
417) 해인(海印):바다에 풍랑이 그쳐 파도가 조용해지고 물이 맑아지면 삼라만상 모
     든 것이 도장 찍히듯 그대로 바닷물에 비쳐 보인다는 뜻으로, 이에 비유하여 부
     처님의 마음 속에는 인식의 물결이 생기지 않고 맑고 깨끗하여 매우 밝고 고요
     해서 삼라만상이 일시에 다 비치듯 과거와 현재·미래의 모든 법이 밝게 나타난
     다는 것을 말한다.
418) 해인삼매(海印三昧): sāgaramudrā-samādhi. 조용한 바다에 삼라만상이 모두
     드러나듯 인식 작용이 그쳐 맑고 깨끗하며 밝고 고요한 상태. 해인정(海印定).
    『화엄경』은 이 해인정에 의해 나타난 만유를 여실하게 설한 것이라 한다.
419)『화엄경』권6「현수보살품(賢首菩薩品)」大9 p.434c6.
420)『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19c11~15.

 

열째, 주체와 객체가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는 문[主伴圓備門]이다. 이 보

법(普法)의 가르침은 홀로 일어나지 않고 반드시 주체와 객체에 따라 생겨

남을 말한다.〈보장엄동자(普莊嚴童子)가 “부처님께서 『일체법계무구장엄경(一切法界無
垢莊嚴經)』을 설하시어 세계의 작은 티끌만큼 많은 경전을 권속으로 삼는다”421) 라는 것
을 들은 것과 같다.〉422)
十主伴圓備門者. 謂此普法教不孤起, 必主伴隨生.〈如普莊嚴童
子, 聞“佛說一切法界無垢莊嚴經, 有世界微塵修多羅以爲眷屬”也.〉
421)『화엄경』권4「노사나불품(盧舍那佛品)」大9 p.418a20~24. 時, 佛說經名一切法界
     自性離垢莊嚴, 有世界微塵等修多羅以爲眷屬. 普莊嚴童子聞是經已, 卽得三昧, 名
     一切法普門歡喜藏三昧, 入一切法方便海三昧.
422)『화엄경탐현기』권1 大35 p.119c18~21.

 

10. 십지의 의미[十地義]

 

세 가지 문(門)은 앞과 같다.

 

1) 이름을 풀이함

십(十)은 숫자의 이름이니, 2로 나누면 5가 되는 수를 10이라고 부른다.

지(地)는 비록 여러 논서의 해석이 다르지만,『십지경론』에 의하면 네 가

지 의미로 분별하여 해석한다. 첫째 생(生), 둘째 성(成), 셋째 주(住), 넷째

지(持)이다. 그래서『십지경론』에서 “부처님의 지혜를 만들어 완성하여 머

물러 보존하는 것을 지라고 한다.”423)고 하였다.

423)『십지경론』 권1 大26 p.127a6~7.

 

혜원 스님이 말했다. “생과 성은 불과에 대해 처음에 일어나는 것을 생이

라고 하고 마지막으로 채워지는 것을 성이라고 한다. 또한 부처님에 대해

원인이 되는 것을 생이라고 하며 조건이 되는 것을 성이라고 한다. 지(地)

의 한 가지 법이 어떻게 하여 원인이 되며 또 조건이 되는가? 이제 과거

의 시간[因時]에 의거하면 결과가 전혀 있지 않지만 있을 수 있음을 말하

기 때문에 원인이라고 한다. 저 미래의 과보[當果]에 의거하면 결과가 있을

수 있으니, 있을 수 있는 법을 지(地)가 나타내게 하므로 그것을 조건이라

고 한다. 또 지(地)에는 증도(證道)과 교도(敎道)의 구별이 있을 수 있고, 결

과로는 성정(性淨)과 방편(方便)의 다름이 있다.424) 성정과(性淨果)로 보면

증득한 도리가 원인이 되고 교법의 도리가 조건이 되며, 방편과(方便果)로

보면 교법의 도리가 원인이 되고, 증득의 도리가 조건이 된다. 그래서 지에

대해서 원인을 설하고 조건을 설하는 것이 가능하다. 주(住)라고 하는 것은

마땅히 나누는 것에 대해 말하니, 덕이 이루어지는 곳을 주라고 이름한다.

지(持)라고 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모두 대하는 것이다. 초지가 2지를 기

대하는 것을 지(持)라고 설하며, 내지 불지(佛地)를 기대하기까지 여러 지

가 다음을 기대하는 것과 같으니, 차례로 그런 예이다.

424) 원문의 ‘果’는『대승의장』에서는 ‘異’이다.

 

지(地)의 법은 다르지만 하나의 문에 열 가지를 설하니 열 가지 이름은

무엇인가? 첫째 환희지(歡喜地), 둘째 이구지(離垢地), 셋째 발광지(發光

地)〈진경(晋經)과 『십지경론』·『십지경』에서는 모두 명지(明地)라고 한다.〉, 

넷째 염혜지(燄慧地)〈(『진경』·『십지경론』·『십지경』에서는 모두 염지

(炎地)라고 한다.〉, 다섯째 난승지(難勝地), 여섯째 현전지(現前地), 일곱째 

원행지(遠行地), 여덟째 부동지(不動地), 아홉째 선혜지(善慧地), 열째 법운지

(法雲地)이다.”425)
425)『대승의장』권14 大44 p.749b13~c4. ‘第一釋名者’부터 필요에 따라 인용하였다.
     디른 곳에 비해 인용 글자의 차이가 많은 편이다. 옳게 판단되는 글자는 원문에서
     교감으로 표시하였다. 第一釋名. 所言地者論釋不同, 依毘婆娑住處解地. 故彼論言,
     十階住處名爲十地. 若依地持兩義辨釋. 一持義解地, 故彼論首標擧地法, 以持釋之.
     二能生釋地, 彼論言, 自受行故名之爲住, 攝受衆生, 因之爲地. 若依地論四義辨釋,
     一生二成三住四持. 故彼論言, 生成佛智住持名地, 生之與成望於佛果, 始起名生, 終
     滿曰成. 亦可, 望佛爲因名生, 爲緣稱成. 地之一法云何爲因, 而復稱緣. 據今因時果
     全未有, 辨無令有, 故名爲因. 據彼當果果是可有, 可有之法地能令現, 目之爲緣. 亦
     可, 地有證教之別. 果有性淨方便之異, 望性淨果證道爲因, 教道爲緣, 望方便果教道
     爲因, 證道爲緣, 故得就地說因說緣. 所言住者當分爲言, 德成之處名之爲住. 所言持
     者通望因果, 如似初地望二地說持, 乃至望佛諸地望後次第例然. 良以地中備含多義
     故, 致釋者種種別異. 地法不同, 一門說十, 十名是何. 一歡喜地二離垢地三名明地四
     名炎地五難勝地六現前地七遠行地八不動地九善慧地十法雲地.

 

十地義426)
三門分別.
第一釋名者. 十者數名, 數分二五, 稱之爲十.
地者, 雖諸論釋不同, 且依地論, 四義辨釋. 一生, 二成, 三住,
四持. 故彼論言,“ 生成佛智住持名地.” 遠公云,“ 生之與成,
望於佛果, 始起名生, 終滿曰成. 亦可望佛爲因名生, 爲緣稱
成. 地之一法, 云何爲因, 而復稱緣? 據今427)因時, 果全未有,
辨可令有, 故名爲因. 據彼當果, 果是可有, 可有之法, 地能令
現, 目之爲緣. 亦可地有428)證教之別, 果有性淨方便之異429).
望性淨果, 證道爲因, 敎道爲緣430). 望方便果, 教道爲因, 證
道爲緣. 故復就地因說緣. 所言住者431), 當分爲言. 德成之所,
名之爲住. 所言持者, 通望因果. 如似初地望二地說持432), 乃
至望佛, 諸地望後433), 次第例然. 地法不同, 一門說十, 十名是
何? 一歡喜地, 二離垢地, 三發光地〈晋經論經同名明地〉, 四燄慧
地〈晋經論經同名炎地〉, 五難勝地, 六現前地, 七遠行地, 八不動
地, 九善慧地, 十法雲地.”
426) 韓2 p.392b3~354a13.
427)『대승의장』에 의해 令을 今으로 교감함.
428)『대승의장』에 의해 可有를 有로 교감함.
429)『대승의장』에 의해 果를 異로 교감함.
430)『대승의장』에 의해 緣을 敎道爲緣으로 교감함.
431)『대승의장』에 의해 住者住者를 住者로 교감함.
432)『대승의장』에 의해 如以初地望二持地說을 如似初地望二地說持로 교감함.
433)『대승의장』에 의해 地望諸後地를 諸地望後로 교감함.

 

첫째는『십지경론』에서 “위 없는 자리이타행을 성취하여 처음으로 성인

의 자리를 증득하여 기쁨이 많이 생겨나기 때문에 환희지라고 한다.”434)

고 하였다.

434)『십지경론』 권1 大26 p.127a18~19.

 

법장 스님이 말했다.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두 가지 이익을 처음

으로 이루었기 때문이며, 둘째는 진리를 처음으로 증득했기 때문이며, 셋

째는 성인의 머무름을 새로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본래 기약

했던 마음에서 큰 기쁨이 많이 생겨난다.”435)
435)『화엄경탐현기』권9 大35 p.287b1~3.『요결문답』의 ‘三聖住新得故’는 ‘
     三聖位新得故’이다.『요결문답』의 ‘遂本期心 多生歡喜’는 ‘遂本期心故生
     歡喜’이다.

 

혜원 스님이 말했다. “『보살지지경』에서는 정심지(淨心地)라고도 한다. 이

지에 머무를 때 진여 가운데 마음이 청정함을 깨달으니 정심지라고 한다. 또

삼보(三寶) 가운데 청정한 믿음을 증득하니 역시 정심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초지는 앞의 범부의 지위에 대해서는 마땅히 성지(聖地)라고 이름한다. 저 범

부가 자기를 취하는 장애에 대해서는 마땅히 무아지(無我地)라고 이름한다.

앞의 10신의 지위[信位]에 대해서는 마땅히 증득한 지위[證地]라고 이름한

다. 뒤의 수도에 대해서는 마땅히 견지(見地)라고 이름한다. 이처럼 많은 뜻

을 아울러 펴 보일 수 없으니, 먼저 이익에 대해서 환희라고 이름한다.”436)
436)『대승의장』 권14 大44 p.749c4~11.『대승의장』을 필요에 따라 인용하였다.

 

一論云,“ 成就無上自利利他行, 初證聖處, 多生歡喜故, 名歡
喜地.” 法藏師云, “有三義, 一二利創成故, 二真理初證故, 三
聖住新得故. 遂本期心, 多生歡喜.” 遠云,“ 經中亦名淨心地
也. 住此地時, 於真如中, 證心淸淨, 名淨心地. 又於三寶, 得
淸淨信, 亦名淨心. 然此初地, 對前凡位, 應名聖地. 對彼凡夫
取我之障, 應名無我地. 對前信位, 應名證地. 對後修道, 應名
見地. 如是多義不可並陳, 且就利益, 名爲歡喜.”

 

둘째는 그릇된 마음을 일으켜 계를 범하는 번뇌와 더러움을 벗어나 청정

한 계를 구족하기 때문에 이구지라고 한다.437) 법장 스님이 말했다. “역시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번뇌를 여의는 것이다. 곧 원인을 떠나는 것

이니, (원인이란) 그릇된 마음 등을 일으킬 수 있는 것 등을 말한다. 둘째는

악업을 여의는 것이다. 곧 결과를 낳는 행동을 떠나는 것이니, (이는) 계를

범하는 것 등을 말한다. 세 번째는 대치(對治)438)를 여의는 것이다. 청정한

계를 구족함을 말한다.”439)
二離能起誤440) 心犯戒煩惱垢, 淸淨戒具足故, 名離垢地. 藏師
云,“ 亦有三義. 一離煩惱. 卽因離, 謂能起誤441)心等. 二離惡
業. 卽果行離, 謂犯戒等. 三對治離. 謂淸戒具足也.”
437)『십지경론』권1 大26 p.127a19~20.
438) 대치(對治): pratipaks3a. 도로써 번뇌 등을 끊는 것을 말한다. 이때 도는 능대치     

     (能對治)가 되고, 번뇌는 소대치(所對治)가 된다.
439『화엄경탐현기』권9 大35 p.287b3~7.440)『십지경론』에 의해 悞를 誤로 교감함. 뜻은 같음.
441)『화엄경탐현기』에 의해 悞를 誤로 교감함.

 

셋째는 듣고 생각하고 수행하는[聞思修] 것 등에 따라 법을 비추어 드러

나기 때문에 명지라고 한다.442) 풀어 말하면 명(明)은 빛을 발하는 것이다.

법장 스님이 말했다. “역시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이 지로써 넷째 지

인 지혜 광명의 모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명득정(明得定)443) 등과 같

다. 그래서 아래에서 ‘저 행함이 없고 나지도 않는 지혜, 이것을 광명이라

고 한다.’고 하였다.444) 둘째는 이 지의 선(禪)에 의지해서 다음 지의 지혜

의 광명이 일어나기 때문이니 대승광명삼매(大乘光明三昧) 등이다. 셋째는

세 가지 지혜를 얻어 법을 비추기 때문에 명지라고 한다. 이는 해당 지의

가행위(加行位) 등에 대해 해석한 것이다. 『지론』에는 오직 이 문에 대해서

만 해석하였다.”445)
三隨聞思修等照法顯現, 故名明地. 解云, 明卽所發光也. 藏
師,“ 亦有三義. 一以此地得四地智慧光明相故, 如明得定等.
故下說云, ‘彼無行無生慧, 此名光明.’ 二依此地禪, 發起後地
慧光明故, 大乘光明三昧等. 三得三慧照法, 故名明地. 此約當
地加行等釋. 地論唯就此門釋446). ”
442)『십지경론』권1 大26 p.127a20~21.
443) 명득정(明得定):보살이 4선근(四善根, 四加行位) 중의 난위(煖位)에서 얻는 선
     정. 이 선정은 초보적인 정혜의 단계로서, 대상 경계의 이름과 뜻, 자성, 차별 등
     의 4법이 모두 자신의 마음이 변화한 것으로 이들이 임시적으로 있는[假有] 것
     이며 실제로는 얻을 수 없는 것임을 관찰한다.
444)『십지경론』권5 大26 p.155a7~8.
445)『화엄경탐현기』권9 大35 p.287b8~16.
446)『탐현기』에 의해 釋 보완.

 

넷째는 불망번뇌(不忘煩惱)의 땔감을 지혜의 불로 태울 수 있기 때문에

염지라고 한다.447)
447)『십지경론』권1 大26 p.127a21~22.

 

법장 스님이 말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내심으로

증득한[內證]448) 지혜이니 미혹의 땔감을 태우기 때문에 염(燄)이라고 한

다. 즉 앞의 지위에서 듣고 지님[聞持]을 잊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것을 지

니고 오만함을 일으키므로 번뇌라고 한다. 이것은 태워지는 것이니 비유하

기를 땔감이라고 한다. 이것은 법을 이해하는데 오만한 장애이니 태워버릴

수 있는 지혜를 비유하여 염(焰)이라고 한다.449) 둘째는 후득지(後得智)450)

에서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서 아래『십지경론』에서 ‘저 증득한 지

혜의 법이 마니보주(摩尼寶珠)의 광명 중에 아함의 광명을 놓음을 밝히기

때문에 염지라고 한다.’”451)〈혜원 스님 또한 이 설과 같다.〉
448) 내증(內證, pratyātmādhigama)은 자내증(自內證). 자신의 내심이 체득하고 깨
     달아 증득하는 진리를 말한다. 이 내증에 기초하여 밖으로 드러내는 활동을 외
     용(外用)이라 한다.
449)『화엄경탐현기』권9 大35 p.287b16~20.
450) 후득지(後得智):근본지에 의하여 진리를 깨달은 뒤에, 다시 분별하는 얕은 지
     혜를 일으켜서 의타기성(依他起性)의 속사(俗事)를 아는 지혜.
451)『화엄경탐현기』권9 大35 p.287b20~26.『탐현기』의 내용을 필요에 따라 인용하
     였다. 인용하고 있는 경은『십지경론』 권6 大26 p.162c22.

 

늠 스님이 말했다. “불망번뇌란 다른 곳에서는 망(妄)이라는 글자로 해

야 하니 망상(妄相)이 없음을 말한다. 지금 해석하여 힘들지 않게 정리하였

으니, 논에서도 망(妄)이라는 글자로 하였다. 그런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첫

째는 허망한 정념[妄情]이고, 둘째는 허망한 작용[妄用]이다. 무엇을 허망

한 정념이라고 하는가? 있다고 하거나 없다고 하는 것 모두가 망상이다. 만

일 실상에 집착하여 허망하지 않다고 하면, 이것을 허망하지 않다고 이름

붙이는 것이 번뇌의 땔감이 된다. 만일 이 허망함을 안다면 지혜로 그것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 해석으로 판별한다.〈지 앞에 있을 수 있다.〉 

둘째는 허망한 정념을 없애서 진실된 작용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때 허망함[妄]

이 진실과 다르다는 것을 보고, 진실이 허망함과 다르다는 것을 본다. (이

는) 곧 진실이 허망한 것이 아니라고 집착하는 것이어서 번뇌의 땔감이 된

다. 만일 진실도 아니고 허망한 것도 아니고 진실될 수 있고 허망하게 될

수 있는 것임을 안다면 이는 진여 그대로여서 연기의 지혜를 불태운다. 진

실에 집착함을 제거하고 허망한 미혹과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지혜의 불

이 태울 수 있다고 말한다.”〈버리고 취하는 것은 뜻에 맡긴다.〉
四不忘煩惱薪智火能燒, 故名焰地. 藏師云,“ 此有二義. 一內
證之智, 焚燒惑薪, 故名爲燄. 卽前地聞持名452)爲不忘, 持此
起慢, 名爲煩惱. 爲是所燒, 從喻名薪. 卽是解法慢障, 能燒之
智, 就喻名焰. 二就後智起用. 故下論云,‘ 彼證智法明摩尼寶
光中, 放阿含光明, 故名炎地.’”〈遠公亦同此說〉 懍師云, “不忘煩
惱者, 他云應作妄字, 謂不妄相也. 今解不勞治, 論亦作妄字.
然有二種, 一者妄情, 二妄用. 何者名妄情? 若有若無, 皆是
妄相. 若執爲實, 謂之不妄, 卽詺此不妄, 爲煩惱薪也. 若知是
妄, 則智能斷之. 今判此解.〈可在地前也〉 二者除妄情而顯真實
用. 爾時見妄異真, 見真異妄. 便以執真不妄, 爲煩惱薪. 若知
非真非妄能真能妄, 此真如爾炎緣起之智. 能除執真乖妄之惑
故, 云智火能燒也.”〈取捨任情〉
452)『탐현기』에 의해 明을 名으로 교감함.

 

다섯째는 세간을 벗어난 지혜와 훌륭한 방편을 얻어 이르기 어려운 곳에

이르기 때문에〈도(度)는 이르는 것이다.〉 난승지라고 한다.453) 법장스님이 말

했다. “세간을 벗어난 지혜를 얻었다는 것 등은 승(勝)의 뜻을 해석한 것이

며, 이를 수 있다는 것 등은 난(難)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또 앞의 3지에 대

하여 세간을 벗어난 지혜를 얻기 어렵기 때문에 아래의 논에서 ‘열 가지 평

등은 얻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세간을 벗어난 지

혜를 얻었다고 하는 것이다. 앞의 4지에 대하여 세간을 따르는 것이 어렵

기 때문에 아래 논에서 ‘또 세간을 나타내는 것이 얻기 가장 어렵기 때문이

다.’454)라고 하였다. 그래서 훌륭한 방편[方便善巧]이라고 한다. 즉 아래의

5지 중에 열 가지 평등한 마음과 오명처(五明處)455) 등은 후자의 뜻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달라서 서로 도달하기 어려운데, 이 지 중에서 서로 도달하

게 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하였다. 그래서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도달할 수

있다.”456)〈혜원 스님은 “세간을 벗어남을 얻었다는 등은 그 어려움을 해석하였고, 
도달하기 어려운데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뛰어남을 해석하였다”라고 하였다.457)
五得出世間智方便善巧458), 能度難度,〈度者至也〉 故名難勝地.
藏云, “得出世等釋勝義, 能度等釋難義.459) 又對前三地, 得出
世難. 故下論言, ‘十平等甚難得故.’ 故云得出世間智也. 對前
四地, 能隨世間難. 故下論云, ‘又現世間最難得故.’ 故云方便
善巧也. 卽下五地中, 十平等心, 及五明處等, 是後義也. 此二
相違, 難以相到, 於此地中, 能令相到, 故以爲難. 故云能度難
度.〈遠云,“ 得出世等也釋其難也, 能度難度解其勝也.”〉
453)『십지경론』권1 大26 p.127a22~23.
454)『십지경론』권7 大26 p.167b2~3. 又樂出世間智現世間智最難故.
455) 오명처(五明處):오명(五明). 내명(內明, 불교 진리의 학문), 의방명(醫方明, 병의
     원인과 예방하는 학문), 성명(聲明, 문법학), 인명(因明, 인도의 논리학), 공교명(工
     巧明, 여러 가지 기술학)을 말한다.
456)『화엄경탐현기』권9 大35 p.287b26~287c7.『탐현기』의 내용을 필요에 따라 인
     용하였다.
457)『대승의장』권14 大44 p.750a2~4. 이 해석은 앞서 제시한 법장의 해석과 반대이다.
458)『탐현기』에 의해 善功德을 善巧로 교감함.
459)『탐현기』에 의해 勝을 義로 교감함.

 

여섯째는 반야바라밀에 차이가 있어 큰 지혜가 앞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현전지라고 한다.460) 법장스님이 말했다. “여기에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뒤에 비해 열등함을 드러내는 것이니, 공(空)을 증득한 진실된 지혜를 반야

라고 하는 것을 말한다. 7지 이상에서는 생각마다 항상 나타나지만 지금 여

기에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둘째는 앞에 비해 뛰어

남을 나타내는 것이니, 바로 앞의 반야를 큰 지혜라고 한다. 이 지혜가 나타

나기 때문에 현전(現前)이라고 한다. 이 지는 뒤의 뜻의 입장에 대해 세운 이

름인데, 앞의 뜻을 따른다면 차이가 있는 지라고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461)
六般若波羅蜜有間大智現前故, 名現前地. 藏師云,“ 此有二
義, 一對後彰劣, 謂證空實慧, 名爲般若. 七地已上, 念念常現,
今此未能, 故名有間. 二對前顯勝, 自前般若名爲大智. 此智現
故名爲現前. 此地就後義立名, 從前義應名有間地.”
460)『십지경론』권1 大26 p.127a23~24.
461)『화엄경탐현기』권9 大35 p.287c8~14.

 

일곱째는 무상(無相)의 행(行)을 잘 닦아 공용(功用)462)이 궁극에 이르러

[究竟] 세간과 2승의 출세간을 뛰어넘기 때문에 원행지라고 한다.463) 법장 스
님이 말했다. “여기에도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이 지위 중에서 유상
(有相)을 떠나고 무상(無相)을 떠나는 행을 잘 수행하기 때문에 무상의 행
을 잘 닦는다고 한다. 이는 행(行)이라는 글자를 풀이한 것이다. 둘째는 공
용이 궁극에 이른다는 것 등은 원(遠)을 풀이한 것이다. 이 가운데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공용을 행한 지위가 끝까지 다하여 최후에는 가장 끝이
되기 때문에 궁극에 이르렀다고 한다. 둘째, 1·2·3의 3지가 유(有)에 따른
실천의 양상이 세간과 같은 것으로 보면, 지금 여기는 거기에 비해 이미 멀
리 떨어져 있어 능히 세간을 뛰어넘는다고 한다. 셋째, 4·5·6지가 도품(道
品)을 익히고 연기의 양상을 잘 관찰하여 2승의 출세간위와 같은 것으로
보면, 지금 이것은 저것을 넘어서기 때문에 2승의 출세간도를 뛰어넘는다
고 하고, 그래서 원행지라고 한다.”
464)

七善修無相行, 功用究竟, 能過世間二乘出世間故, 名遠行地.
藏師云,“ 此亦有二義. 一此位之中, 善修行離有相離無相行,
故云善修無相行. 此釋行字也. 二功用究竟等釋遠也. 於中有
三義. 一有功用行位465)至窮盡, 最爲後邊, 故云究竟. 二望前
三地, 隨有之行相同世間, 今此望彼, 已爲懸遠, 云能過世間
也. 三望四五六地, 修習道品, 諦觀緣起相, 同二乘出世間位,
今此過彼故, 云能過二乘出世間道, 故名遠行地.”
462) 공용(功用):신(身)·구(口)·의(意)로 짓는 동작과 말과 생각. 초지에서 7지에 이
     르는 보살은 진여를 증득하였으나 가행(加行)의 공을 쌓아야 하므로 이를 공용
     지(功用地)라고 한다.
463)『십지경론』권1 大26 p.127a23~24.
464)『화엄경탐현기』권9 大35 p.287c14~23.
465)『탐현기』에 의해 行을 行位로 교감함.

 

여덟 번째는 보행(報行)이 잘 익어서 차이가 없기 때문에 부동지라고 한

다. 466) 법장스님이 말했다. “여기에도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보행이 잘

익었기 때문에 공용이 움직이지 않고, 수행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보행이

성취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힘들이지 않고 움직이는 대로 맡겨 모든 뛰

어난 행(行)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잘 익었다[純熟]고 한다. 아래 경에서 명

칭을 해석하는 가운데 ‘공용이 없는 지는 앞서 이끄는 것을 잘 일으킨다.’467)

라고 하였다. 형상이 없다[無相]는 것은 형상으로 인해 움직이지 않는 것이

다. 차이가 없다[無間]는 것은 무상이 항상 앞에 드러나는 것을 관하기 때문

에 번뇌로 인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아래 경에서 명칭을 해석하여 ‘가지

(加地)는 다른 것으로 인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468)
八報行純熟無間故, 云不動地. 藏師云,“ 此亦二義. 一報行純
熟故, 不爲功用所動, 以由修起名爲報行成就. 在此無功任運
成諸勝行, 故云純熟. 下經釋名中,‘ 無功用地善起先導469)等
也.’ 無相者, 不爲相所動也. 無間者, 以無相觀常現前故, 不
爲煩惱所動也. 下經釋名‘加地470)不他動故.’”
466)『십지경론』권1 大26 p.127a26.
467)『십지경론』권10 大26 p.184c15~16.
468)『화엄경탐현기』권9 大35 p.287c23~288a1.
469)『탐현기』에 의해 道를 導로 교감함.
470) 원문의 下經釋名, 如地不他動故는『화엄경탐현기』(권9 大35 p.287c29~288a1.)에
     는 下經釋名爲加行地, 他不動故.이며,『십지경론』(권10 大26 p.184c15~16.)에서는
     如經名爲加地, 他不能動故, 名爲無功用地, 善起先道故.이다.『십지경론』에 따라
     加地로 한다.

 

아홉째는 걸림 없는 힘[無礙力]으로 법을 설하여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

는 행을 성취하기 때문에 선혜지라고 한다.471) 법장스님이 말했다. “여기에

도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40무애변(無礙辯)472)을 얻으므로 걸림 없

는 힘이라고 한다. 이것은 혜(慧)를 풀이한 것이다. 둘째는 교묘하게 설하

여 중생을 이익되게 하므로, 법을 설하여 다른 사람을 이익되게 함을 이룬

다 등으로 말한다. 이것은 선(善)을 풀이한 것이다. 이 의미는 아래 글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473)
九無礙力說法成就利他行故, 名善慧地. 藏師云,“ 此亦二義.
一得四十無礙辯, 名無礙力. 此釋慧. 二巧474)說益生, 名說法
成利他等. 此釋善. 此義如下文辨.”
471)『십지경론』권1 大26 p.127a26~27.
472) 원문은 四十無礙辯이라 하였고,『요결문답』의 인용 원전인『탐현기』 또한 四十
     無礙辯이라 하였다.『십지론의소(十地論義疏)』는 4무애력,『간정기』는 4무애해
     지라고 하였으나, 지엄·법장·징관 등은 한결같이 40무애지를 들고 있다. 특히
    『공목장』에는「40무애변재장(四十無礙辯才章)」을 두어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
     르면 무애변재에는 40이 있으니, 10법이 있고 저마다 넷이 있어 40이 된다고 하
     였다. (권3 大45 p.575a26~28. 無礙辯才者, 謂四十無礙辯. 依其十法, 十法有四故成
     四十. 所以說十者, 欲顯無量故. 如經廣說.) 무애변재는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는
     말 잘하는 솜씨를 말하며 지혜를 본질로 하는데, 4, 7, 8, 9종의 변재를 꼽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인 4무애변재로서, 4무애지(四無礙智)·4무애(四無礙)·4무애
     해(四無礙解)·4무애변(四無礙辯) 등으로도 불린다. 법무애(法無礙)·의무애(義
     無礙)·사무애(辭無礙)·요설무애(樂說無礙)가 그것이다.
473)『화엄경탐현기』권9 大35 p.288a14.
474)『탐현기』에 의해 功을 巧로 교감함.

 

열 번째는 대법신(大法身)475)을 얻어 자재로움을 갖추었기 때문에 법운

지라고 한다.476) 법장 스님이 말했다. “여기에도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법의 그릇이 되는 몸이므로 법신이라고 한다. 그런데 법계에 두루할 수 있

기 때문에 대(大)라고 한다. 모든 부처님의 구름과 비 같은 설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재로움을 갖추었다고 한다. 둘째, 법을 초월한 몸이므로 법

(法)이라고 하고, 일체에 두루 미치므로 대(大)라고 하며, 법의 비를 내려

번뇌를 없애고 선함을 생기게 할 수 있으므로 자재(自在)라고 한다. 아래에

서 명칭을 풀이하는 부분 중에서 상세히 나눈 풀이를 갖추었기 때문에 법

운지라고 한다.” 477)〈명칭의 뜻은 이와 같다.〉
十得大法身具足自在故, 名法雲地. 藏師云,“ 此亦二義. 一爲
法器之身, 名曰法身. 然能普周法界, 故名爲大. 能受諸佛雲雨
說法, 名具足自在. 二爲出法之身, 名曰法, 普遍一切, 名之爲
大, 能降注法雨, 滅塵生善, 故云自在. 下釋名分中, 具廣分釋,
故云法雲地.”〈名義如是〉
475) 대법신(大法身):보살의 수행 단계 중에 최상 보살지인 10지에서 얻는 큰 법신.
     보살 10지의 열 번째 법운지는 최상의 지이고 구경의 지이기 때문에 보살이 이
     에 이르면 대법신을 얻어 자재력을 갖춘다고 한다. 또 보살이 원력과 자재력으
     로 다섯가지의 생을 받을 때 그 최후의 생은 최상의 보살지인 10지에서 받고 대
     법신을 얻어, 깨달음을 증득하고 만행이 갖추어지기를 구하여 위없는 정등정각
     을 얻는다고 한다.
476)『십지경론』권1 大26 p.127a27~28.
477)『화엄경탐현기』권9 大35 p.288a5~10.

 

2) 본체를 드러냄

혜원 스님이 말했다. “십지의 계위는 따로 본체가 없고 행(行)을 취하여

계위가 이루어진다. 계위를 이루는 행은 열고 닫음이 정해져 있지 않다. 혹

은 총괄해서 하나이다. 이른바 보살은 결정적인 선을 서원하는데, 서원은

실천을 주로 하기 때문에 그것을 두루 논한다. 혹은 둘로 나눈다. 이른바

보살의 깨달음과 교법의 두 가지 실천이다. 혹은 셋으로 나눈다. 동상(同

相)478)의 세 가지 도(道)이니 깨달음[證]·도움[助]·머물지 않음[不住]이다.

또 계율[戒]·선정[定]·지혜[慧]로 셋으로 나눌 수도 있다. 혹은 넷으로 구

별한다. 들음[聞]·생각함[思]·수행함[修]·깨달음[證]이다. 혹은 다섯 가

지로 말한다. 들음[聞]·생각함[思]·수행함[修]·보생식지(報生識知)479) 및

증행(證行)이다. 또 다섯 가지 방편도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으니, 관(觀)·

득(得)·증상(增上)·불퇴(不退)·진지(盡至)이다. 혹은 여섯 가지로 나누니

6결정(六決定)480)이다. 육바라밀도 여섯 개로 나뉜다. 혹은 여덟 가지로 말
한다.〈저 『상속해탈경(相續解脫經)』에서 설한 것과 같다.〉 혹은 열 가지로 말한다.
〈신(信) 등 십행과 십바라밀이다.〉 혹은 나누어 37품481)으로 한다. 다시 나누어 8만
4천의 모든 제도 법문482)이 된다.”483)
第二出體者. 遠公,“ 十地之位無有別體, 攬行以成. 成位位
之行開合不定, 或總爲一. 所謂菩薩願善決定, 以願行主, 故
偏論之. 或分爲二. 所謂菩薩證教二行. 或離爲三. 同相三
道, 一證, 二助, 三是不住. 又戒定慧亦得分三. 或別爲四. 謂
聞思修證. 或說爲五. 謂聞思修報生識智484)及與證行. 又五
方便亦得分五, 謂觀得增上不退盡至. 或分爲六. 謂六決定.
又六波羅蜜亦得分六. 或說爲八.〈如彼相續解脫485)經說〉 或說爲
十.〈信等十行, 又十度也〉 或分爲三十七品. 復得離爲八萬四
諸度法門.”
478) 동상(同相):육상의 하나. 여러 가지 차별이 있는 만물이 동일한 목적을 향하여
     서로 협력하고 조화하여 통일되려는 속성을 이른다.
479) 보생(報生)은 익혀 얻어진 과보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긴 것을 말한다. 8지 이
     상의 보살이 몸을 바꿀 때 태어남과 동시에 얻는 선정이 보생삼매이다. 본래
     수행이기 때문에 낳는 곳에 따라 저절로 일체법이 공한 것을 보고 수습하는 것
     을 기다리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대승의장』 권20 大44 p.852c2~3)
480) 6결정(六決定):①보살이 6바라밀을 실천하여 얻는 여섯 가지 공덕. ②6종선결
     정(六種善決定). 초지 이상의 보살이 성스러운 지혜에 의해 진리를 증득하는 여
     섯 가지의 선한 결정. 1.관상(觀相)선결정은 보살이 바른 지혜로 진여의 이치를
     관조함을 결정하여 일미의 잡됨이 없는 현상에 같게 되는 것. 2.진실(眞實)선결
     정은 보살이 진실한 지혜로 번뇌에 떨어지는 잘못을 떠날 것을 결정하여 이치
     를 증득하여 공허함이 없는 것. 3.승(勝)선결정은 보살의 실천이 법계처럼 크고
     넓어 일체 제불의 근본이 되어 수승한 덕을 갖춤을 결정하는 것. 4.인(因)선결정
     은 보살의 실천의 원인이 성과의 공능을 낼 수 있음을 결정하는 것. 5.대(大)선
     결정은 보살의 이타행이 일체 중생 세계를 덮어 보호하여 한계가 없음을 결정
     하는 것. 6.불겁약(不怯弱)선결정은 보살이 증득한 과덕이 일체제불의 지혜의
     지위에 들어가 결정하여 두려워함이 없는 것. 여기서는 ②의 뜻.
481) 37품:열반의 이상경(理想境)에 나아가기 위하여 닦는 도행(道行)의 종류. 4념
     처(念處)·4정근(正勤)·4여의족(如意足)·5근(根)·5력(力)·7각분(覺分)·8정도
     분(正道分).
482) 팔만사천제도법문(八萬四千諸度法門)은 팔만사천법문·팔만사천법장(八萬四千
     法藏) 등으로도 말한다.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교법 전체를 말한다. 중생에게는
     8만 4천 번뇌의 병이 있어 부처님께서는 그 병마다 맞게 8만 4천의 법문을 설하
     시어 고쳐주셨다. 혜원(慧遠)의 『유마의기』에 따르면, 부처의 350 공덕에 각각 6
     바라밀을 갖추고 있어 2100이 되고, 탐(貪)·음(婬)·진(瞋)·치(癡)의 4종 중생
     이 이로써 교화하므로 8400이 되고, 1이 변해 10이 되어 8만 4천이 된다고 한다.
483)『대승의장』의 내용에서 간추려 제시하였다.(권14 大44 p.750a26~b22. 次辨體相.
     十地是位, 位無別體, 攬行以成. 成位之行開合不定, 或總爲一. 所謂菩薩願善決定海納
     衆行, 備苞萬德諸德相攝, 皆得爲一. 以願行主故偏論之. 或分爲二. 所謂菩薩證教兩行
     備如前解. 或離爲三. 謂同相三道, 一證二助三是不住, 亦如上釋. 又戒定慧亦得分三.
     或別爲四, 謂聞思修證. 飡教名聞, 求義曰思, 進行名修, 得實云證. 或說爲五, 謂聞思修
     報生識智及與證行. 又五方便亦得分五, 如地論說, 一觀方便諸地觀解, 二得方便諸地
     得證, 三增上方便依證所成一切行德, 四不退方便前三堅固, 五盡至方便前三滿足. 或
     分爲六, 謂六決定, 如前六種決定章中具廣分別. 又六波羅蜜亦得分六. 或說爲八. 如彼
     相續解脫經說, 一方便淨, 趣地方便, 二者心淨, 初入地心, 三悲心淨, 正住地中起行方
     便四波羅蜜淨, 於諸地中所修諸度, 五見佛淨, 於地果中多見諸佛, 六成熟衆生淨, 見諸
     佛時起四攝法成熟衆生, 七者生淨, 謂十王等, 八者力淨, 謂攝根中神力十事及願智果
     或說爲十. 謂信等十行故. 地持云, 信等十法淨一切地. 又十波羅蜜亦得分十, 並如前釋.
     或復分爲三十七品. 亦得離爲八萬四千諸度法門. 廣則無量, 此等開合各據一門, 廣無
     量異盈狹減小. 地體如是.)
484)『대승의장』에 의해 執生謂知를 報生識智로 교감함.(『대승의장』권3 大44 p.514a6
     ~7. 或分爲五, 謂聞思修報生識智及與證智.)
485)『대승의장』에 의해 說을 脫로 교감함.

 

법장 스님이 말했다. “열개의 문이 있다.〈혜원 스님과 대부분 같다.〉486) 대승

광명삼매를 본성으로 한다. 또 오직 깨달음으로 보면 진여가 본성이 된

다.〈(생사를) 초월한 진여이다.〉 또 오직 깨달을 수 있음으로 보면 지혜가 본성

이 된다.〈법무아지(法無我智)487)의 분위이다.〉  또 본연 그대로와 지혜를 본성으

로 삼는다.488) 또 일체의 유위와 무위의 공덕을 본성으로 삼는다.〈『성유식론』
의 설과 같다.〉
또 원인과 결과로 보면 바다의 십상(十相)과 같다. 〈십상을 땅에
비유하고 하나의 바다를 부처에 비유한다.〉 대공(大空)은 결과에 견주었고 그림은
원인에 비유하였다.”〈나머지 문은 혜원스님의 설과 같다.〉
486)『대승의장』에서 인용한 부분은 제외하고『화엄경탐현기』에서 인용하고 있다.
487) 법무아(法無我)는 일체(一切)의 존재는 모두 인연에 따라 존재하는 것으로서 그
     실체가 없다는 뜻. 법공(法空)이라고도 한다. 그 지혜를 말함.
488)『화엄경탐현기』 권9 大35 p.286b2~23. 第二因此通論十地體性差別略作十門,
     一以此六決定爲體, 以此正是所說十地之本體故. 二以前大乘光明三昧爲性, 以
     此定中具含止觀證法無礙故. 論云此三昧是法體故也. 三以教證二行爲性, 以加
     行緣修唯是教行, 本智契理唯是證行, 後智具含二義通教證. 如下論說. 四以證助
     不住三道爲體, 亦通釋可知. 五唯約所證真如爲性, 以能證智緣成相盡同真理故.
     梁攝論云出離真如爲十地體. 下文鳥迹同空等是也. 六唯約能證之智爲性, 無性
     攝論云法無我智分位名地. 此論下文亦云上來所說皆依智地, 今此亦依智地故也.
     七具含境智, 謂真理妙智如前二說. 梁論後文亦云如如及智爲性. 八約通收, 唯識
     論云總攝一切有爲無爲功德爲性. 九約因果, 如下文大海十相別喻十地總一大海
     以喻佛地. 又云地有二分, 則所畫太空以況果分能畫十相以喻因分, 是故通能所
     依俱是地體. 十通約諸門, 謂信等十行爲成地法故, 檀等十亦爾. 又三漸次等諸門
     並如下辨, 悉爲地法體,

 

늠 스님이 말했다.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체의 체를 내는 것이고, 둘

째는 행의 체를 내는 것이다. 행의 체는 다시 둘로 나뉘니 첫째는 통체(通

體)이고 둘째는 별체(別體)이다. 통체는 세 가지 인연과 세 가지 인연에 따

른 지혜를 지(地)의 체로 삼는다. 그 체는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며, 또

둘이 아님도 아니다. 언어에 의지한다면 10이 없음이 통체이고 10이 없으

면서 10인 것이 별체이다. 초지에서 깨달은 지혜는 제2지에서 깨달은 지혜

가 아님을 말한다. 지(地)와 지(地)는 각각 깨달은 지혜가 있는 것이다. 행

의 체란 깨달음과 교법의 두 개의 길[道]이다.”〈등등〉
藏師云, “十門.〈與遠多同〉 大乘光明三昧爲性. 亦唯約所證真
如爲性.〈出離真如〉 又唯約能證之智爲性.〈法無我智分位〉 亦如
如及智爲性. 又一切有爲無爲功德爲性.〈如成唯識論說〉 又約
因果, 如海十相.〈十相喻地, 一海喻佛〉 大空況果, 畵489)喻因分.”
〈餘門如遠公說〉 懍云,“ 二義. 一出體體, 二出行體. 行體復二,
一是通體, 二是別體. 言通體者, 以三緣三緣緣智爲地體. 其
體非一非二, 亦非不二. 寄言無十爲通體, 無十而十別體. 謂
初地證智, 非二地證智. 地地各有證智. 言行體, 所謂證教二
道.”〈云云〉
489)『탐현기』에 의해 盡을 畵로 교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