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논문·평론

부파불교 불설 논쟁으로 본 불설의 의미/황정일

실론섬 2019. 2. 15. 15:30

동아시아불교문화」35집, 2018. 9, 75~99

부파불교 불설 논쟁으로 본 불설의 의미

황 정 일/동국대학교 연구교수

 

1. 들어가는 말

2. 초기불교의 불설론과 그 기준

3. 부파불교의 불설·비불설 논쟁

 1) 유부의 불설론

 2) 경량부의 비판과 중현의 반론

4. 대승경전 불설론에 미친 영향

 1) 무착의 불설론

 2) 세친의 불설론

 3) 청변의 불설론

 

5. 나가는 말

 

<국문초록>

한국불교사에서 불설․비불설 논란이 불거진 것은 1990년대 이후 초기불

교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 되는 시점부터일 것이다. 이후 이 논란은 최근 권오

민이 대․소승의 불설 기준은 전통이나 권위가 아닌 법성에 근거한다는 초종

파적 불설론을 재기하면서 다시 촉발되었다. 하지만 권오민의 주장은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의 친설·비친설론으로 변질되어 한

국불교의 종파적 입장 차이만 재확인하는 결과를 낳았다. 더욱이 부파불교

에서의 불설론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우선 초기불교에서의 불설론 제기와 부파불교에서의

불설론 논쟁을 통한 불설론의 정의 및 의미를 살펴보고, 그것이 대승경전 불

 

설론 주장에 미친 영향을 논구했다.

그 결과, 초기불교는 사대교법에 근거한 불설론을 주장했으며, 부파불교

를 대표하는 설일체유부 학파의 불설론은 사대교법을 전승 및 확대한 의미

에서의 정의였다. 즉 유부는 법성, 은몰, 밀의라는 방편을 통해, 아비달마가

법성에 위배되지 않고, 사라진 경에 있었으며, 은밀한 뜻으로 전해졌음을 주

장했다.

또한 유부의 불설론은 무착, 세친 등의 대승불교 논사에게도 영향을 주었

는데, 무착은 ?대승장엄경론?에서, 세친은 ?구사론?, ?석궤론?을 통해서 전

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청변은 기존의 불설론을 인정하지 않고,

정리와 추리에 근거한 불설론을 주장했다. 이는 무착이나 세친의 불설론이

설일체유부의 불설론에 근거한 것이며, 그러한 불설론으로는 대승불교만의

불설론을 주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불설론은 초기불교에서부터 시작해서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논의되어 왔으며, 최근의 불설론 논쟁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따라서 앞

으로의 불설론이 보다 의미 있는 논의가 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불설론을 넘

어선 새로운 정의 및 방법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1. 들어가는 말

 

한국불교사에서 불설․비불설 논란이 불거진 것은 아마도 1990년대 이후

초기불교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 되는 시점부터일 것이다.1) 이후 이 논란은

최근까지도 이어져 왔는데 이를 시기적으로 보면, 대체로 3기로 나눌 수 있

다.2)

1) 김호성은 동국대학교에서는 1980년대까지는 초기불교 경전과 대승불교 경전을 아무런 차별
   없이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미얀마 등에서 남방불교 수행법을 배운 불교도인
   이나 외국 승려들이 늘어나고, 초기불교 및 부파불교 전공자들의 연구활동이 활발해 짐으로
   써 초기불교 경전과 대승불교 경전의 가치 우월을 따지는 ‘대승비불설’과 같은 교판론이 대두
   되었다고 한다. 김호성(2010), 407-408.
2) 이홍구는 대승불교 정체성 논구 라는 글에서 그 동안 한국불교계에서 벌어졌던 불설·비불
   설과 관련한 연구들을 요약 및 정리하면서 한국불교계에서의 논쟁을 3기로 구분했다. 본 논
   문에서는 그의 구분에 근거해서 수정 및 보완해서 정리했다. 이홍구(2015).

 

제1기에 해당하는 박경준은 1990년대 한국불교계에서의 대승경전 비불설

대두와 그에 따른 학계 및 불교계의 논란을 다뤘다. 나아가 대승불교 흥기 과

정에서의 불설론과 중국, 일본의 대승경전 비불설론을 고찰했다. 이에 그는

대승경전은 역사적으로 비불설이지만 내용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불설이라는

일종의 절충론을 주장했다.3)

3) 박경준(1996).

 

2기는 김용표가 <법보신문>에 ‘초기불교 지상주의를 경계한다’라는 특별

기고에서 촉발되었다고 볼 수 있다.4) 이 시기는 주로 대승불교의 정체성과

관련한 논란이 쟁점을 이루었는데, 특히 대승불교의 다불다보살 신앙에 대한

논쟁, 대승불교의 기복신앙, 대승 위경설에 대한 관점 차이, 대승경전의 저자

문제, 한국불교의 정체성 등이 논란이 되었다.

4) 김용표는 “초기불교 지상주의를 경계한다”는 주제로 테라바다 불설의 절대화에 대한 해석학
   적 재검토를 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했다. 즉 불설에 대한 테라바다와 대승의 신봉자는 본질적
   으로 다른 해석학적 관점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많은 깨달은 제자들의 가르침도 역사적
   붓다의 언어와 동일한 경전적 권위와 지위를 가질 수 있으며, 대승경전의 궁극적 권위와 가치
   는 경전을 설한 자가 누구인가 보다도 그 경전이 주는 효용성에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특정
   경전의 절대화는 불교에서 금기로 하는 법집(法執)의 하나로 연기법과 공사상의 즉각적인 비
   판의 대상된다고 하여, 초기불전의 절대화를 경계했다.

 

한편, 2기 논쟁에서 홍사성5), 마성 스님6), 조준호7), 전재성8) 등은 주로 초

기불교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으며 김용표, 진현종9), 김성철10) 등은 대승불

교적 관점에서 대승불교의 정체성과 불설·비불설의 문제를 이해하려고 했

다. 하지만 논쟁의 범위와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 라인의 부재와 논

쟁의 장이 교계 신문사라는 제약적인 한계로 더 큰 성과를 도출해내지 못했

다는 평도 있다.11)

5) 홍사성은 “김용표 교수에 대한 반론 -대승의 다신적 신앙, 불설과 모순”을 통해, 불교가 불교이
   려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해서 설명되고 이해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
   를 문자주의라고 한다면 불설을 부정해야 하는 모순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기초해야한다는 생각을 법집(法執)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한편, 대승불교는 사상적으로 위대한 공헌을 했지만 신앙적으로는 불교를 왜곡하
   고 타락시킨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측면도 많다면서 대승의 위대성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그 문제점을 제거하는데도 관심을 기울여야한다고 당부했다.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4682[2018.9.26].
6) 마성 스님은 “한국불교는 대승 옷 입은 힌두교”라는 주제로 김용표, 진현종씨의 주장에 대해,
   한국의 대승불교를 잡다한 신앙과 기복이 혼합된 타락한 대승불교로 규정하고서 초기 대승불
   교가 붓다시대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했듯이 한국불교가 순수한 대승불교로 되돌아가
   기 위해서는 다시 초기불교에 눈을 돌려야 함을 강조했다.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679[2018.9.26].
7) 조준호는 김성철의 “대승 사상-신앙 초기불교에서 나온 것”이란 주장에 대해, “조준호 박사 김
   성철 교수에 반론”이라는 주제로, 초기불교의 귀결이 대승불교가 아니며, 기복을 대승으로 호
   도하지 말고, 기복에서 작법으로 지향해야 함을 주장했다.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762[2018.9.26].
8) 전재성은 “대승을 비불교로 보는 것은 역사-사상에 대한 이해부족”는 주제를 통해, 초기불교
   는 무한한 불교적 상상력의 원천적 보고이며, 초기경전에 반영된 하나의 사건 속에는 무수한
   사건이 중첩되기 때문에 그것을 보는 데는 시각에 따라서 오늘날 전혀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고 한다. 따라서 대승경전 역시 그러한 과정에서 생성된 것이므로, 대승불교를 비불교로 볼
   수 없다고 한다.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4706 [2018.9.26].
9) 진현종은 “초기불교의 ‘이성-합리’ 환상 버려라”라는 주제로 홍사성이 주장한 “대승의 다신적
   신앙, 불설과 모순”에 대해서 붓다의 친설을 어떻게 실증할 수 있는가, 깨달은 자의 말은 누
   구나 같다, 붓다도 과거불을 언급했기 때문에 다불·다보살도 가능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5902[2018.9.26].
10) 김성철은 마성 스님과 홍사성의 글에 대해, “김성철 교수 홍사성-마성 스님에 반론”이라는 주
    제로, 근본주의(Fundament alism)적 불교관을 견지하는 분들이 대승을 비판하면서 문제로 삼
    은 내용은 기복과 다불 사상의 비불교성, 그리고 대승 위경설(僞經說)이다고 하면서 대승불
    전이 설혹 후대에 편집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교리는 아함이나 니까야, 율장과 같은 초기
    불전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한다. 즉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의 논리적 귀결이다는
    것을 강조했다.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861[2018.9.26].
11) 이홍구(2015).

 

3기는 권오민의 불설․비불설 관련 논문12)에 대해서 <법보신문>이 “대승

불설 부정은 ‘무지’ 탓”이라는 주제로 기사화하면서 촉발되었다.13) 그는 대·

소승의 공통된 불설의 기준은 전통이나 권위가 아닌 법성[진실]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소승이나 대승 등 종파적 입장에 근거한 한국불교

계의 불설론 논쟁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권오민이 아함과 니까야

는 부파에 의해 찬집(纂集)된 불설이며, 그 정법성은 법성에 있다고 한 반면

에 마성 스님, 전재성, 황순일14) 등은 상좌부의 경전은 붓다의 친설이다는 

장으로 대응했다.

12) 권오민(2009). 
13)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57281[2018.9.26].
14) 황순일은 “니까야 체계적 전승…‘친설’ 담겼다” 라는 주제로 서구 학자들의 견해를 빌려, “빨
    리 니까야도 한역 아함경도 현재의 형태로서는 역사적으로 실재했었던 부처님의 말씀을 가
    감 없이 전달하고 있는 문헌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을 친설이란 잣대를 통해 동일선상에 놓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왜
    냐하면 구전전통의 측면이 강한 초기경전과 문자전통이 강한 대승경전은 경전의 성립과 전
    승이란 측면에서 많은 차이를 가지기 때문이다.”고 하여, 권오민과 다른 입장을 주장했다.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57932[2018.9.26].

 

이 논쟁과 논평은 불교학계에서 보기 드문 논쟁이었으며, 학자의 범위를

넘어 불교 일반에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

만 권오민의 불설․비불설의 문제제기와는 달리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의 친

설·비친설론으로 변질되어 종파적 입장에서 다루어진 것은 아쉬움으로 남

는다. 더욱이 불설․비불설의 문제에 있어, 부파불교의 역할 및 그에 따른 불

설론의 정의 등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점이 더욱 아쉽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우선 초기불교에서의 불설론 제기와 부파불교에서의

불설론 논쟁을 통한 불설론의 정의 및 의미를 살펴보고, 그것이 대승경전 불

설론 주장에 미친 영향을 논구해 보고자 한다.

 

2. 초기불교의 불설론과 그 기준

 

불교사에서 불설론과 관련한 최초의 이야기는 붓다 열반 이후의 붓다 법

문의 진위문제를 두고 설해졌다. 이에『대반열반경』15)을 통해 그 내용을 

면, 다음과 같다.

 

어떤 비구가 “세존으로부터 직접 나는 이것을 들었다. 세존의 입으로 말씀

하신 것을 수지했다. 따라서 이것은 법이고 이것은 율이고 이것은 스승의 가

르침이다.” 라고 하면, [일단] 그 비구의 주장을 칭찬하면서 그대로 받아들이

지도 그렇다고 경멸하면서 배척해서도 안된다. 칭찬이나 경멸없이 그의 문

구(文句, pada-vyañnana)는 주의 깊게 이해되고 경과 율에 견주어 보아야 한

다.16)

16) 이후의 내용은 ‘어떤 비구가 주장한 바를 경과 율에 견주어 그것과 부합한다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배척해야함’을 말하는 것으로, 뒤의 3가지 교법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본 논문에서는 분량상 이 부분을 생략한다.

 

어떤 비구가 다음과 같이 “어떤 모 주처에 승가가 있다. 장노(長老, thera)

와 지도승(指導僧, pamokkha)이 있는 그 승가 집단으로부터 나는 이렇게 들

었다. 직접 나는 이것을 수지했다.”고 하면, [일단] 그 비구의 주장을 칭찬하면

서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그렇다고 경멸하면서 배척해서도 안된다.

어떤 비구가 다음과 같이, “어떤 모 주처(住處, āvāsa)에 많은 장노들이 있

어, 그들은 학식이 있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믿음을 수지하고 이고, 법을

수지하고 율을 수지하고 논모를 수지하고 있다.”고 하면, [일단] 그 비구의 주

장을 칭찬하면서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그렇다고 경멸하면서 배척해서도 안

된다.

어떤 비구가 다음과 같이, “어떤 모 주처에 한 장노가 있어, 그는 학식이 있

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믿음을 수지하고 있고 법을 수지하고 율을 수지하

고 논모를 수지하고 있다.”고 하면, [일단] 그 비구의 주장을 칭찬하면서 그대

로 받아들이지도 그렇다고 경멸하면서 배척해서도 안된다.17)

17) DN ⅱ, 124-126. Idha bhikkhave bhikkhū evaṃ vadeyya: “sammukhā metaṃ āvuso bhagavato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ayaṃ dhammo ayaṃ vinayo idaṃ satthusāsananti.” tassa
    bhikkhave bhikkhuno bhāsitaṃ neva abhinanditabbaṃ na paṭikkositabbaṃ.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tāni padavyañjanāni sādhunaṃ uggahetvā sutte otāretabbāni1 vinaye
    sandassetabbāni. -생략- Idha pana bhikkhave bhikkhu evaṃ vadeyya: “amukasmiṃ nāma āvāse
    saṅgho viharati sathero sapāmokkho. Tassa me saṅghassa sammukhā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ayaṃ dhammo ayaṃ vinayo idaṃ satthusāsana'nti.” tassa bhikkhave bhikkhuno
    bhāsitaṃ neva abhinanditabbaṃ nappaṭikkositabbaṃ. -생략- Idha pana bhikkhave bhikkhu
    evaṃ vadeya: “amukasmiṃ nāma āvāse sambahulā therā bhikkhu viharanti bahussutā āgatāgamā
    dhammadharā vinayadharā mātikādharā. Tesaṃ me therānaṃ sammukhā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ayaṃ dhammo ayaṃ vinayo idaṃ satthusāsana'nti.” Tassa bhikkhave bhikkhuno
    bhāsitaṃ neva abhinanditabbaṃ nappaṭikkositabbaṃ. -생략- Idha pana bhikkhave bhikkhu
    evaṃ vadeyya: “'amukasmiṃ nāma āvāse eko thero bhikkhu viharati bahussuto āgatāgamo 
    dhammadharo vinayadharo mātikādharo. Tassa me therassa sammukhā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ayaṃ dhammo ayaṃ vinayo idaṃ satthusāsana'nti.” Tassa bhikkhave bhikkhuno
    bhāsitaṃ neva abhinanditabbaṃ nappaṭikkositabbaṃ.

 

이상과 같은 내용을 일명 4대교법(四大敎法, mahāpadesa)18)이라고 하는

데, 어떤 비구가 어떤 법문을 ①붓다로부터 직접들은 것이라고 말할 경우, ②

대다수 박식한 혹은 율장에 밝은 장로로 구성된 승가로부터 직접들은 것이

라고 말할 경우, ③경과 율과 논모(論母)를 지닌 다수의 비구로부터 ④혹은

그러한 한 명의 비구로부터 직접들은 것이라고 말할 경우 그의 말을 잘 듣고

경에 포함되어 있는지 율에 나타나는지를 검토하여, 경과 율에 합치하면 불

설로, 그렇지 않으면 비불설로 판단해야 한다는 불설의 기준이었다.19)

18) 논자는 일반적인 불교용어의 측면에서 이 용어를 차용했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하시오 권오민(2009), 103, no.16 ; 안양규(2003), 51-52.
19) 권오민(2009), 103 ; 안양규(2003), 51.

 

이와 같이『대반열반경』의 내용을 근거로 보면, 붓다가 열반에 이를 시점

에 이러한 불설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것은 붓다 재세시에도 불설과 관련한

여러 논란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아비달마의 전개과정에서도 알 수 있는데, 아비달마의 전개과정을

3단계로 구분할 경우, 그 첫 번째 단계는 아함경 자체 안에 이미 교설을 정리,

조직하거나 해설, 주석하는 소위 ‘아비달마적 경향’이 나타나 있다는 것이

다.20) 즉 붓다의 대기설법으로 인해 설법의 내용이 상호 모순되는 것 등이 있

었는데, 붓다가 있는 곳에서는 직접적인 물음으로 그 의혹을 해소할 수 있었

지만, 붓다가 없는 곳에서는 제자들 간에 그 의의를 분석하는 주석적 경향이

붓다 재세시 이미 있었다는 것이다.

20) 앵부건․상산춘평, 정호영 역(1993), 129.

 

더욱이 붓다의 열반 이후, 불설과 관련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는데

이는 제1차 결집과정에서 드러난다. 제1결집과 관련해서는 여러 이설 등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수바드라(Subhadra) 비구 등이 붓다의 정법을 해손할 것

을 방비하기 위해 가섭을 중심으로 5백 아라한이 붓다의 경과 율을 결집한

것을 말한다.

 

한편, 당시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보면, 아난이 송한 경과 우팔리가 송한 

율을 모두 따른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뿌라나(Purāṇa) 존자는 가섭과 5백

명의 아라한이 법과 율을 결집했다는 것을 알고 유보조건을 명백하게 밝히

면서 자신은 붓다에게 직접 듣고 받은 대로 기억 속에 법을 간직하겠다고 하

였으며, 가밤빠띠(Gavāmpati) 존자는 결집에 참가할 것을 권유받았지만, 붓

다의 열반을 알고는 그 자신도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21)

21) 라모뜨, 호진 역(2006), 253-254.

 

따라서『대반열반경』에서 붓다가 말한 불설의 정의는 이와 같은 맥락을

감안한 것이었다. 즉 불설의 문제는 붓다 재세시에도 문제가 된 것으로, 아함

이나 니까야를 불설일 뿐만 아니라 친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대교법의

대두와 결집 과정에서의 문제점 등을 고려하면,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다.

 

3. 부파불교의 불설·비불설 논쟁

 

불설 문제는 부파불교시대를 접어들면서 더욱 본격화 된다. 이러한 현상

은 여러 부파들이 자신들만의 사상을 대변하는 소의경전을 편찬 및 주장함

으로써 제기되는데 부파분열의 단초 –특히, 북전의 5사 문제- 에서 이미 예

견된 일이다. 그러나 20개에 이르는 부파들이 각기 어떤 소의경전을 근거로

어떤 불설론을 주장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이하에서 논할 당시의 대

표적 부파인 설일체유부(Sarvāstivadin, 이하 유부로 약칭함)와 경량부

(Sautrāntika)의 논쟁을 보면,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1) 유부의 불설론

유부에서 불설론을 본격적으로 논구한 것은「대비바사론」으로, 이 논의

서두에는 저작자 및 저작 동기를 붓다와 관련시켜서 아비달마[論藏]가 불설

임을 다음과 같이 논한다.

 

①이 논은 붓다가 깨달은 법성에 근거해 지어진 것이다.

②이 논은 붓다의 말이다. 그러나 가다니연자가 받아 지니고 널리 유포했

기 때문에 이 논의 저작자를 가다니연자로 한 것일 뿐이다.

③아비달마는 붓다 재세시 유정을 위하여 붓다가 분별하고 연설한 것으

로, 열반 이후 성문 제자들이 순서에 따라 경을 모아 편찬한 것이다. 따라서

발지론도 가다연니자가 이러한 연유로 지은 것으로 불설이다. 또한 법구가

지은 ‘오타남(鄔陀南, Udāna)’ 역시 그러한 것임으로 불설이다.

④붓다의 설이든 제자의 설이든 법성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불설이다. 이

논 역시 가다연니자가 불설을 모아서 편찬하여 정법을 오래도록 머물게 하

려고 지은 불설이다.

⑤삼장은 모두 불설이지만, 증상심에 의지하면 소달람[經]이고 증상계에

의지하면 비나야[律]이며, 증상혜에 의지하면 아비달마[論]이라는 차이가 있

을 뿐이다. 또한 경장은 아직 바른 법에 들지 못한 초심자가 바른 법에 들게

하기 위한 것이며, 율장은 중급자, 논장은 상급자를 위한 차이가 있을 뿐 모

두 불설이다.22)

22)「대비바사론」(T27, 1a8-2all). 이와 관련해 本庄良文은 4가지로 분석하고 있으나, 본고에서는
    그 내용을 참고해서 5가지로 분류했다. 本庄良文(1989), 410.

 

이와 같이「대비바사론」에서는, 이 논은 붓다가 설한 것을 가다연니자(迦

多衍尼子)가 편찬한 불설이며, 법성에 근거한 것이므로 또한 불설이라고 한

다. 나아가 삼장은 모두 불설이지만, 근기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하

여, 아비달마 불설론을 주장한다.

 

또한「대비바사론」에서는 이외에 은몰(隱沒, antardhāna)과 밀의(密意,

abhiprāya)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불설론을 주장하는데, 우선 은물설은 유부

의 독특한 인연관인 6인(因)에 관한 내용 중에 나온다.

 

"다시 어떤 이는 “여섯 가지의 인도 역시 계경에서 말했다. 증일아급마[증일

아함]의 증육(增六) 가운데서 말한 것인데, 오랜 동안 지내면서 그 글이 사라

져 버렸다[隱沒]. 가다연니자 존자 등이 원지(願智)의 힘으로써 계경 가운데 6

인에 대해 말한 것을 관하여서 아비달마를 찬집하고 지은 것이다. 이 때문에

6인을 분별한다. 일찍이 들었다. 증일아함은 일법에 하나하나 더하여 백법까

지 이러렀는데 오직 일법에서 십법까지만 남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사라져

버렸으며, 또 하나하나 더하여 십에 이른 중에도 역시 대부분이 사라지고 남

아 있는 것은 극히 적다고 한다."23)

23)「대비바사론」(T27, 79b4-10). “復有說者六因亦是契經所說. 謂增壹阿笈摩增六中說. 時經久
    遠其文隱沒. 尊者迦多衍尼子等. 以願智力觀契經中說六因處. 撰集製造阿毘達磨. 是故於此
    分別六因. 曾聞增壹阿笈摩經. 從一法增乃至百法. 今唯有一乃至十在餘皆隱沒 又於增一乃
    至十中. 亦多隱沒在者極少.”

 

이와 같이「대비바사론」에서는 유부의 6인설은 붓다가 직접 설한 것으로

증일아함경 속에 있었지만 당시에는 전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더욱이 당시

의 증일아함이 법수(法數)에 근거해 10수까지만 정리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100수까지 있었으며, 10수까지 있는 것 중에서도 6인설 등과 같이 많은 내용

들이 없어졌다고 하여, 경이 사라진 것을 ‘은몰’이라고 표현한다. 또한「대비

바사론」에서는 불설이 밀의라고 하여 다음과 같이 논한다.

 

"만일 부처님의 몸이 바로 무루(無漏)라면 무비(無比) 여인은 탐욕을 내지

않아야 하고, 앙굴리마라(央堀利魔羅)는 화를 내지 않아야 하며, 오로빈라가

섭파(鄔盧頻螺迦葉波)는 어리석음을 내지 말아아 하며, 오만(傲慢) 바라문은

교만을내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부처님의 몸은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오만을 내게 했기 때문에 반드시 이것은 유루임을 알 수 있다. 만일 그렇다

면, 그들이 인용한 경은 어떻게 회통해야 하는가. 그 경에는 은밀한 뜻으로

붓다의 법신(法身)을 설한 것이다. 이를테면 여래께서 세간에 태어나고 세간

에 머문다는 것은 붓다의 생신을 말한 것이고, 세간에 출현해서 세간의 법에

물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법신을 말한 것이다."24)

24)「대비바사론」(T27, 871c13-19). “若佛生身是無漏者. 無比女不應生貪. 央掘利魔羅不應生瞋.
    0871c15 鄔盧頻螺迦葉波. 不應生癡. 傲慢婆羅門不應生慢. 以佛生身生他貪瞋癡慢故知定
    是有漏. 問若爾者彼所引經當云何通. 答彼經密意說佛法身. 謂如來生世住世者. 說佛生身
    出現世間."

 

이와 같이 경전에서는 붓다의 몸이 무루임으로 타인으로 하여금 탐욕과

성냄 등의 감정을 일으키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앙굴라마라 등이 성냄

을 통해 붓다를 죽이려고 한 것 등을 보면, 붓다의 몸은 또한 유루라고 한 것

으로 되는데, 이러한 설에는 은밀한 뜻[密意]이 있다는 것이다. 즉 붓다는 생

신(生身)과 법신(法身)이 있어, 생신은 유루이지만 법신은 무루라는 견해로

경전 상의 논란을 회통하고 있다. 즉 이 밀의설 역시 불설의 기준은 경에 있

지만, 단지 문자에 얽매이지 않고 그 내면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불설의 기준

이 된다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대비바사론」에서의 불설론은 초기불교 4대교법에서의 경에 포함되고 율

에 나타나면 불설이라는 기준에 법성과 은몰, 밀의의 세 가지를 더하고 있다.

하지만 은몰과 밀의는 여하튼 경과 율을 근거로 한 것이므로 4대교법을 전승

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법성은 아비달마에서 새롭게 주장한 불설의 기준이

다. 그리고 이 불설론에 대해, 오직 경만이 불설의 근거가 된다는 경량부

(Sautrāntika=Dārṣṭāntika, 비유사)가 문제를 제기함을써 부파불교에서의 불설

논쟁이 점화되었다.

 

2) 경량부의 비판과 중현의 반론

경량부는 경장과 율장은 불설로 인정하지만 유부가 주장하는 아비달마,

즉 논장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칭우(稱友, Yaśomitra)가 경량부를 “경을 근

거[量]로 하지 논(śāstra)을 근거로 하지 않는 자들이 경량부이다.”25)고 한 것

으로도 알 수 있다. 특히, 경량부는 유부의 논장(6족․발지)을 불설로 인정하

기 않기 때문에 경량부로 불렸으며, 당시 유부와 적대적 관계를 형성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이다.26) 그렇지만 유부의 불설론에 대한 경량부의 직접적

인 비판을 담은 논서는 아직 없다. 다만, 중현(衆賢, saṃghabhadra)이 ?순정리

론?에서 유부의 불설론을 제기하면서 세친이「구사론」에서 전설(傳說, kila)

27)이라는 표현으로 불신한 것에 대한 반론을 통해서 알 수 있을 뿐이다.28) 

에 유부 불설관에 대한 경량부의 비판을 보면, 다음과 같다.

25) AKvy, 11. ye sūtra-prāmāṇikā na śāstra-prāmāṇikāh te Sautrāntikāḥ.
26) 경량부를 학파로 볼 것인가에 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本庄良文은 경량부란 ‘유부 내부
    에 있으면서 유부 논장을 불설로 인정하지 않는 학파’로 평가한다. 한편, 권오민의 연구에 따
    르면, 앵부 건은 ‘부파’라기 보다는 ‘교학설’의 형태로, 라모트는 일종의 철학운동으로 보았지
    만, 그의 연구에 따르는 한 경량부는 유부의 법성에 근거한 불설관을 비판한 상좌와 관련있
    는 독립된 학파로 보았다. 本庄良文(1989), 411 ; 櫻部建(1953), 116 ; 권오민(2012), 7-12.
27) 세친은 구사론의 본송(本頌)이나 장행의 주석 상에서는 ‘전(傳)하는 바에 따르면’, ‘전설(傳
    說,kila)에 의하면’, ‘-하였다고 전한다’ 혹은 ‘~라고 인정한다’거나 혹은 ‘허락[許]한다’는 등의
    말은 모두 세친 자신은 이에 동의하지 않지만, 카슈미르의 유부 비바사사(毘婆沙師)들의
    정설을 소개할 때 사용하는 상투적인 용어이다. 권오민, ?순정리론? 1권, 20, no.18 참조.
    *권오민 역「순정리론」은 아직 출간되지 않았지만, 역자에게 받은 문서를 기준으로 출전을
    표기했다. 이 자리를 빌어 번역본을 주신 권오민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28) 중현은「순정리론」에서 당시의 세친을 경량부적 사상에 경도된 유부의 논사로 평가하고 있
    다. 권오민(2012), 494-497.

 

①아비달마논서는 가다연니자 등이 지었다고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②붓다는 아난에게 경을 지식의 근거[量]로 삼아 그것에 의지해야 한다고

했지 대법(아비달마)에 의지하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③여러 부파의 아비달마는 그 종의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29)

29)「순정리론」(T29, 329c19-22).

 

이와 같이 경량부는 유부의 아비달마는 붓다의 친설 또는 직설이 아니라

가다연니자와 같은 논사들이 지었기 때문에 불설로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붓다가 경에 근거하고 그것에 의지할 것을 당부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아비

달마는 여러 부파마다 있으며, 또한 각기 다른 종의를 주장하기 때문에 불설

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중현은 다음과 같이 반론한다.

 

①아비달마는 사리불 등의 여러 위대한 성문들이 불타의 성교에 따라 결

집한 것이기 때문에 불설이다. 만약 붓다가 직접 설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버

려야 한다면, 성과(聖果)에 이른 제자나 천신 등이 설한 무량의 계경을 버려

야 할 것이다.

②만약 ‘아비달마에 의지하라’는 말을 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설이 아니

라고 한다면, ‘율에 의지하라’는 말도 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율장 역시 불설이 

아니라고 해야한다.

③여러 부파의 아비달마는 그 종의가 다르기 때문에 불설이 아니라고 한

다면, 경 역시 부파에 따라 전승이 다르며, 여러 부파에서 함께 전승한 경이

라도 단어나 문장이 동일하지 않다. 그리고 ?대반열반경?의 불설의 기준인

경에 따르고 율을 드러내면서 법성에 위배되지 않는 것에서의 ‘법성’은 아비

달마를 방편적으로 설한 것[正理]이므로 아비달마는 곧 불설임을 주장한

다.30)

30)「순정리론」(T29, 329c22-330c12). 이 반론과 관련해서 本庄良文은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으나,
    권오민은 상세한 분석을 통해 그 요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本庄良文(1989), 409-408 ; 권오민
    (2009), 138-141.

 

중현의 이러한 반박은「대비바사론」에서 주장한 불설론에 근거한 것으로,

중현도「순정리론」에서 은몰과 밀의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우선 은몰과 관

련해서는「대비바사론」과 마찬가지로 증일아함경의「증육경(增六經)」에서

의 6인설과 98수면 설을 등을 백증설(百增說)의 은몰로써 주장한다.31) 또한

아함경 중에 소실된 경전 등이라고 하여,「바타리경(婆拕梨經)」32) 등을 비롯

해서 12가지 경을 열거하고 있다.33)

31)「순정리론」(T29, 416b17-26 ; 604c4-6). 특히, 98수면설과 관련해서 증일아함경의 10수 이상의
    경문이 사라졌다고 하는 것은 98수면설이 증일아함경 98법수에 있었음을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
32)「중아함경」(T1, 749ab). 이 발타화리경(跋陀和利經) 에 따르면, 부처님께서는 옛날에 좋은
    말을 다루는 법에 대해 널리 설한 적이 있지만, 이러한 법문은 오늘날 전해지고 있지 않다는
    뜻. 이하 이에 준하여 해석할 것. 한편, 중현은 이 경이 사라졌다고 했지만, 현재의「중아함
    경」에는 이 경이 전해지고 있다. 더욱이 이하의 나머지 은몰경도 다수 전해지고 있다.
33)「순정리론」(T29, 604c12-605a20). ?순정리론?에서의 은몰과 관련한 자세한 논의는 권오민의
    논문을 참조하시오. 권오민(2009), 132-137

 

또한 밀의와 관련해서는 6사신(思身)과 관련해 논하는 중에 “만약 은밀한

뜻이 없다고 한다면, 이는 바로 ‘[부처님의] 말씀은 지혜에 따르지 않았다’고

세존을 비방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만약 은밀한 뜻이 있다고 한다면, 부처님

의 은밀한 말씀에는 [그같은 말씀을 설하게 된] 인연이 있다는 사실이 저절로

성립한다.”34)고 하여, 밀의가 불설에 근거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

외에 유위4상(有爲四相) 중의 주상(住相)이 설해진 것35) 등이 밀의로써 전해

졌다고 한다.

34)「순정리론」(T29, 341c26-28). “若無密意. 便謗世尊. 言不隨智. 若有密意. 即自成立佛密語緣
    故說四餘行名行蘊. 理教相應義善成立.” 
35)「순정리론」(T29, 411c26-27.; 412a6-8).

 

이와 같이 대비바사론에서 순정리론에 이르기까지의 아비달마불설론의

근거를 보면, 순정리론은 대비바사론에서의 불설론인 법성, 은몰, 밀의설을

전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비달마가 비불설이라면 경(율)도 비불설이며,

경(율)이 불설이면 아비달마도 불설이다고 하는 상대적 논법을 통해 아비달

마불설론을 주장한다.36)

36) 本庄良文(1989), 407.

 

4. 대승경전 불설론에 미친 영향

 

대승경전 불설·비불설론과 관련한 문제제기는 대승불교 초기부터 대두

되었다. 그렇지만 일명 소승불교라 불리는 부파불교에서 대승경전의 비불설

을 제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승불교 측에서 소승을 거론하면서 소승이

대승경전을 비불설로 취급한다고 하여 자신들의 경전이 불설임을 강조하는

형태를 취한다. 한편, 유부가 대승불교를 비판하는 내용도 있는데, 이는 경량

부를 비난할 경우 경량부를 대승의 괴법종(壞法宗, 교법 혹은 聖法을 파괴하

는 이들)이나 도무론(都無論, 허무론)과 유사하다고 비난할 뿐 대승불교 자

체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사실, 당시로서는 대승불교가 유부의 교학에 영향

을 미칠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기 때문

일 것이다.37)

37) 이러한 주장과 관련해 권오민은 “平川彰은 그 이유를 부파불교의 교리적 결벽성 때문일 것
    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吉元信行은 교학의 전제가 달랐기 때문에 대승과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대승 측에서 빈번히 비불설을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그 자체가
    대승의 後發性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高崎直道], 그것을 구실삼아 대승이야
    말로 진정한 불설임을 변호하려는 의미도 다분히 있었을 것이다[平川彰], 혹은 대승비불설이
    라는 말로써 특정의 대승경전을 논란하는 문헌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정통파 상좌불교가 대
    승의 존재를 무시한 증거나 흔적으로 볼 수 있지만[塚本啓祥],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적어
    도 아비달마불설론을 주장하는 有部로서는 非佛說이라는 문제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권오민(2009), 91, no.5 인용.

 

반면에, 대승불교권에서는 대승경전 및 자신들의 교리가 불설에 근거한

것임을 주장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무착(無着, Asaṅga)의「대승장엄경론

(大乘莊嚴經論, Mahāyāna-sūtrālaṃkāra)」, 세친의「석궤론(釋軌論,

Vyākhyāyukti)」, 청변(淸辨, Bhāvaviveka)의「중관심론(中觀心論, Madhyamakahṛdaya-

kārikā)」이다.

 

4_1. 무착의 불설론

무착은「대승장엄경론」성종품(成宗品) 에서 다음과 같은 불설론을 주장

한다.

 

①만약 대승이 정법(正法, 불법)이 아니라 (정법을 파괴하기 위해 후세 지

어진 것이라)고 한다면, 어째서 세존께서는 다른 경우처럼 그것을 기별하지

않았을 것[不起]인가?

②대승과 소승(성문승)은 어느 것이 먼저라 할 수 없고 동시에 유행한 것

[同行]인데 어찌 대승만을 불설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③대승은 깊고 넓어 분별을 위주로 하는 이들은 믿을 수도 없는 것이거늘

하물며 행할 수 있을 것인가? 외도가 그러한 것처럼 그들은 행할 수 없는 것

이기 때문에 (그들 경에서 설하지 않은 것으로) 대승은 불설이다.‘

④지극히 상식적인 사실[成就]로서 깨달음을 얻은 다른 어떤 이(예컨대 가

섭불)가 설한 것이기 때문에 불설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는 우리의 뜻과 부합

하니, 깨달음을 획득한 자가 바로 부처이기 때문이다.

⑤만약 그러한 부처는 대승을 본질[體]로 삼지만 석가모니불은 그렇지 않

다고 주장하더라도 우리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으니, 대승의 본질은 단일하

기 때문이다. (즉 어떠한 부처도 대승을 본질로 하기 때문이다.)

⑥만약 석가모니불은 대승을 본질로 삼지 않는다[非體]고 한다면, 성문승

자체도 역시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즉 성문승은 불설이기 때문에 진실[有體]

이며, 대승은 불설이 아니기 때문에 거짓[無體]이라고 할 경우 이는 크나큰    

오류이니, 만약 대승[佛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부처가 출현하였을

것이며, 부처가 출현하지 않았다면 어찌 성문승을 설할 수 있었을 것인가?

⑦대승의 법에 의해서만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얻을 수 있고, 무분별지에

의해서만 능히 온갖 번뇌를 깨트릴 수 있다[能治]. 이러한 이유에서 대승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⑧대승은 매우 심오하여 문구(말)와 뜻이 같지 않기[文異] 때문에 한결같이

문구에 따라 뜻을 취하여 이는 불설이 아니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38)

38)「대승장엄경론」(T31, 591a8-29). 한역 번역은 권오민의 번역에 준한다. 그리고 이것의 산스끄
    리트 본은 김성철이 번역한 것이 있다. 권오민(2009), 92-93 ; 김성철(2017), 3-5. 한편, 무착의
    이 불설론은「성유식론」(T31, 14c25-15a17)에도 그대로 전승되어 있다. 한편, 산스끄리트 본
    은 이 불설론과 관련해 7가지로 정리하고 있으나 두 한역본에서는 다섯 번째 불설론을 둘로
    나누어서 8개의 불설론을 주장한다. 또한「현양성교론」(T31, 581b5-13)에서는 10가지 논거를
    제시하고 있다. 김성철(2017), 4, no.12 ; 권오민(2009), 93, no.6 참조.

 

이에 김성철은 무착의 불설론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판단할 때 ①, ②, ③,

⑤, ⑧은 설득력이 없다고 한다. 즉 ①에 대해서는 부처님이 불교에 대한 모

든 위험을 예언하지 않았다. ②에 대해서는 현대의 문헌학적 연구성과에 비

추어 볼 때 대승불전은 소위 성문승의 초기불전보다 후대에 나타난 것이다.

③에 대해서는 외도들의 논서에 존재하지 않으며 외도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가 대승이 위대하고 심오하기 때문이라고만 볼 수 없다. ⑤대승이 존재

한다는 사실만으로 불설로 봐야 한다면 다른 어떤 허구의 경전도 그것이 존

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불설로 될 수 있다. ⑧대승이 설혹 소리 나는 대로의 의

미가 아닌 것이라고 해도 그런 것이 모두 불설일 수는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

로 무착의 8가지 주장에 대해, ④, ⑥, ⑦만 합리적인 불설론이라고 한다. 반

면에 ④는 대승불전이 석가모니 부처가 아닌 다른 어떤 분에 의해 지어진 것

이라고 해도 그가 깨달은 자라면 이는 불설로 수용할 수 있으며, ⑥은 성불을

지향하는 대승의 수행이 있었기에 부처가 있게 되고, 부처에게 가르침을 듣

는 성문승이 가능하며, ⑦은 대승불전에서 설하는 무분별지의 가르침을 통해

서 번뇌가 제거되기 때문에 불설에 포함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39)

39) 김성철(2017), 5-6.

 

한편, 권오민은 ④와 ⑧만을 합리적 불설론으로 보고 있다. 즉 깨달음을 얻

은 이의 말은 누구의 것이든 불설이라 할 수 있다는 ④와 4의(依)40) 중의 ‘의의

(依義, 뜻에 의지하라)’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는 ⑧만이 불설론에 합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불설론은, 대승은 최고의 법이며, 불타는 바로 최고의

법(대승)을 깨달은 이라는 신념에 기초한 논증이기 때문에 선결문제 미해결의

오류를 범하고 있거나 객관적인 설득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본다. 나아가 적대

자(대승 비불설론자)가 비불설이라고 한 대승의 사상에 근거한 대승 불설론은

적대자에 대한 표방된 논증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대승은 비불설이 아니다’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한 것으로도 이해되기 때문이라고 한다.41)

40) 4의설은 불설을 경(經), 법(法), 의(義), 지(智)에 의지[依]하라는 것으로, 사대교법의 법문과 
    연관되어 체계화되었다.
41) 권오민(2009), 93-94.

 

두 학자의 분석을 보면, 김성철은 권오민의 ⑧에, 권오민은 김성철의 ⑥,

⑦에 대해 이견을 보인다. 누가 더 합리적인가는 입장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단

정할 수는 없지만, 권오민의 분석에 따른다면, 김성철의 견해는 선결문제 미

해결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된다.42) 한편, 권오민은 ⑥을 제외했지만,

⑥은 앞서 중현이 아비달마 불설론을 주장하면서 ‘아비달마가 비불설이라면

경(율)도 비불설이며, 경(율)이 불설이면 아비달마도 불설이다’고 하는 논법

과 유사해 보인다.43) 또한 ⑧은 말과 뜻을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말로만 뜻을

취하지 말하는 것은 아비달마에서 말한 밀의(密意)에 해당한다.

42) 이 문제와 관련한 두 학자의 직접적인 대론이 없었기 때문에 누가 더 합리적인 견해인가는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권오민이 무착의 견해에 대해서 직접적인 문제제기를 한 것에 준한
    논평이다.
43) 本庄良文(1989), 407

 

이와 같이 무착의 불설론은 “이 대승은 또한 세 가지의 상에 어긋나지 않는

다. 스스로 대승의 경에 들어가기 때문이며, 스스로 번뇌로부터 계율을 나타

내기 때문이며, 보살은 분별로써 번뇌를 삼기 때문이다. 넓고 크고 매우 깊은

것은 곧 보살의 법공이며 이 공(空)과 어긋나지 않으면서 큰 보리를 얻기 때

문이다.”44)고 하여, 초기불교의 사대교법과 유부의 불설관인 법성, 은몰, 밀

의에 근거한 불설론임을 알 수 있다.

44)「대승장엄경론」(T31, 591c14-17). “入自大乘修多羅故. 現自煩惱毘尼故. 由菩薩以分別爲煩
    惱故. 廣大甚深卽是菩薩法空. 不違此空得大菩提故.”

 

4_2. 세친의 불설론

세친의 불설론은 우선「대비바사론」의 불설론에 대해 전설(kila)이라는 말

로써 소극적인 불신을 나타냈다면,「구사론」파아품 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불설론을 제시한다. 즉 세친은 독자부의 유아론(有我論)을 논파함에 있어,

『잡아함경』중에서 붓다가 바라문 바타리(婆柁梨)를 위해 무아론(無我論)을

설한 일례를 들고서, 독자부가 자신들의 부파에는 이러한 경이 전승되지 않

았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러한 경은 모든 부

파가 전승하고 있으며, 법성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독자부의 주장을

흉악한 미치광이와 같은 것이라고 비난한다.45) 즉 세친은 유부의 불설론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독자부의 유아론을 비난할 때는 “이와 같은 경문

은 모든 부파에서 모두 외워 전하는 것으로, [연기의] 법성이나 그 밖의 다른

경에도 위배되지 않거늘 감히 이에 대해 빈번히 ‘우리가 외워 전승하지 않기

때문에 부처의 참된 말씀이 아니다’고 비방하고 부정하는가.”46)라고 하여, 세

친 역시 전승된 경과 법성에 근거한 불설론을 주장했다.

45)「구사론」(T29, 154b22-c12).
46)「구사론」(T29, 154c10-12). “如是經文諸部皆誦. 不違法性及餘契經. 而敢於中輒興誹撥我不
    誦故非眞佛言.”

 

또한 세친은「성업론(成業論)」에서 이숙식(異熟識, 알라야식)의 존재를『해

심밀경』으로 논증하면서 “그것에는 별도의 은밀한 뜻이 있다.”47)거나 “오늘

날 각 부파의 무량의 계경이 은몰하였다.”48)고 하여, 유부의 은몰, 밀의의 불

설론도 주장함을 알 수 있다.

47)「성업론」(T31, 785a21). “應知此經別有密意.” 
48)「성업론」(T31, 785b3-4). “又於今時一一部內無量契經皆已隱沒.”

 

한편, 세친 불설론의 종합적 견해는「석궤론에서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세

친은 불설론에 대해 5가지를 제시한다.49) 그 중에서도 경에 포함되어 있고,

율을 드러내며, 법성에 위배되지 않는 것이 불설이니, 위대한 교설을 올바른

지식의 근거로 삼았기 때문으로, 결집자(結集者)들에 의해서 결집된 경․율

과 이 두 가지에 근거하여 알려진 제법의 상인 법성이 바로 그것이다. 근본결

집은 이미 산실되었다고 이미 설했다고 하여,「대승장엄경론」과 마찬가지로

『대반열반경』의 사대교법 및 아비달마의 은몰, 밀의도 불설론으로 인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49) 本庄良文(1992), 104 ; 이종철(2001), 63-66 ; 권오민(2009), 96-97.

 

4_3. 청변의 불설론

청변의 불설론은 크게 3가지 관점으로 정리할 수 있다.

 

①소승경전은 문자상의 결락(缺落) 등이 있기 때문에, 또한 웃타라경

(Uttara-sūtrānta)에서 제석천이 어떤 법문을 수지할 자로서 웃타라를 제외하

고 아무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아난다는 결집에서 불타의 법문

을 모두 망라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불완전하다.

②아난다가 경의 송출자로서 적임자 아니었던 결과 마땅히 설했어야 할

것을 설하지 않았다. 예컨대, 경에서 불타가 과거 어떤 법문을 설하였다는 사

실을 회상한 경우, 그것을 뒷받침할만한 독립된 경을 전하지 않고 있다는 것

이다.

③마하가섭 등에 의해 이루어진 근본결집이 산실되었다. 즉 그 당시 전해

진 제 부파의 성전은 각기 다른 말씀의 경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성전의 차별적인 말의 뜻을 총괄한 아비달마조차 각기 다르게 기록

되었다. “학파의 조사의 말은 이전 전승보다 증광 되었다.50)

50) 江島惠敎(1970), 98 ; 권오민(2009), 100

 

청변은 ①, ②를 통해서는 삼장 중의 경장의 불완전성을, ③을 통해서는 여

러 부파가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진 경을 갖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즉 붓다

의 설법은 대기설법으로 그 전하는 바가 각기 다를 수 있는데, 각 부파가 임

으로 취사선택했기 때문에 각 경의 의미가 다르다는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

다. 나아가 아비달마가 그러한 문제점을 수정하고자 했지만, 아비달마조차 

각기 부파의 입장에 근거해서 기록했기 때문에 불설로써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한다. 즉 청변은 경장 자체의 문제점과 더불어 부파의 논장도 문제

시함으로써 초기불교의 불설기준이었던 사대교법도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사택염(思擇炎) 에서 “대승은 정리에 따른(nyāyānusāṃ) 성전과 모순되

지 않기 때문에 불설이다. 그러나 단견처럼 추리와 모순된 것은 불설이 아니

다.”51)고 하여, 불설의 기준을 정리(正理, yukti, nyāyā)와 추리(anumāṇa)에 

다. 즉 청변의 불설론은 성문의 삼장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비달마가

불설론의 방편으로 거론한 은몰, 밀의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베단타의

말일지라도 올바르게 설해진 것은 모두 불설이다.”고 할 만큼 정리와 추리에

근거한 불설론을 제기했다.52)

51) 江島惠敎(1970), 102.; 권오민(2009), 101.
52) 권오민은 청변의 불설론에 대해, “이쯤 되면 논의의 형식은 다를지라도 지난 불교는 불완전
    한 것이며, 진리성이라는 측면에서 대승이 진정한 불설이라는 오늘 우리의 생각과 일치한
    다.”고 하여, 대승불교는 역사적으로는 비불설이지만 내용적으로나 사상적으로, 혹은 해석
    학적으로 진정한 불설로 보는 근대 우리나라 학자들의 인식은 청변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
    한다. 권오민(2009), 101, 93, no.7 참조.

 

하지만 청변은 대승경전은 성문이 아니라, 보현, 문수, 미륵 등에 의해 결

집되었다거나, 혹은 용(龍)들에 의해 결집되어 용궁 등에 보관되었다가 용수

가 그것을 인간세계에 퍼트린 것53)이라고도 했는데, 이러한 설은 그가 주장

한 불설론인 정리와 추리는 합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가 주장

한 불설론은 초기 및 부파불교의 불설론을 비판하기 위한 수단으로, 또는 대

승경전만이 진정한 불설임을 주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제시된 것으로 보인다.

53) 江島惠敎(1970), 99 ; 권오민(2009), 100, no.13 ; 高崎直道(1985), 31.

 

5. 나가는 말

 

이상 논자는 본 연구를 통해서 초기불교에서는 사대교법에 근거한 불설론

을 주장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부파불교, 특히 유부학파의 불설론은

사대교법을 전승 및 확대한 의미에서의 불설론이었다. 즉 유부는 아비달마

의 불설론을 주장하기 위해서 법성, 은몰, 밀의라는 방편을 통해, 아비달마가

법성에 위배되지 않고, 사라진 경에 있었으며, 은밀한 뜻으로 전해졌음을 주

장했다.

 

한편, 유부의 이러한 불설론은 무착, 세친 등의 대승불교 논사에게도 영향을

주었는데, 무착은「대승장엄경론」에서, 세친은「구사론」,「석궤론」을 통해서

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유부가 주장한 불설론은 극단적으로는

가설(假設)의 불설도 모두 불설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점을 야기한다. 이것

은 본 논문에서 살펴보았듯이 무착과 세친이 주장한 불설론은 소승과 대승이

라는 근본적으로 다른 교리 –법유(法有)와 법무(法無) 등- 를 주장함에도 유부

가 주장한 불설론에 근거하는 한 대승경전 불설론도 가능하게 된다.

 

한편, 청변은 기존의 불설론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는 무착이나 세친의

불설론이 유부의 불설론에 근거한 것이며, 그러한 불설론으로는 대승불교만

의 불설론을 주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전의 경들도 정

리와 추리에 의해서 검증해야한다고 하여, 삼장이 불설이라는 것에 근본적인

불신을 표했다. 그러나 대승경전은 용수 등이 용왕에서 받아왔다는 주장 등

을 보면, 그의 불설론이 정리와 추리에 근거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본 연구를 통해서도 보았듯이 불설론은 붓다 재세시부터 시작해서 대승불

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논의되어 왔다. 하지만 초기와 부파의 불설론이

대승경전 불설론의 근거가 되었듯이, 불교사에서의 불설론은 불설·비불설

의 척도가 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알려진 불설론으로는 불설․

비불설을 논할 수 없다는 것이다.54) 현재 한국불교에서 벌어진 불선․비불

설의 논란도 이와 다르지 않으며, 기존의 방법에 근거하는 한 앞으로의 논의

도 이와 같을 것이다. 따라서 향후 불설·비불설을 제기할 때는 적어도 사대

교법이나 법성, 은몰, 밀의와는 다른 것이어야 할 것이다.■

54) 시모다 마하시로가 대승경전은 ‘역사적 붓다’의 권위를 빌려 날조된 것이 아니라 앞서 설해
    진 (원시)경전의 언설을 수행 해석하면서 새롭게 읽는 과정을 통해 종류와 분량 면에서 확대
    되어 갔다고 하는 것이나, 권오민이 대승경이 비불설이라면 아함 역시 비불설이며, 아함(혹
    은 니카야)이 각 부파에 의해 그때까지 전승된 특정의 경전을 토대로 확대 생산되어 결집 전
    승된 것이라면 대승경전 또한 그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권오민(2010), 9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