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般涅槃(parinibbāna)에 관한 고찰
안 양규/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
Ⅰ. 시작하는 말
Ⅱ. 붓다의 입멸 과정
1.「열반경」에 보이는 붓다의 입멸과정
2. 입멸과정 기술의 분석
i) 九次第定과 四靜慮
ii)멸진정과 열반
3. 붓다의 最後心에 관한 붓다고사의 견해
Ⅲ. 入滅과 正覺
Ⅳ. 붓다의 死後
Ⅴ. 맺는말
Ⅰ. 시작하는 말
「大般涅槃經」(Mahāparinibbāna-Sutanta, 이하 「열반경」)은 붓다의 입멸
을 주제로 하고 있다. 「열반경」은 편집될 시기의 불교도들이 어떻
게 붓다의 죽음 또는 그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열반경」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대승불교의
「열반경」과 초기불교의 「열반경」이 그것이다. 두 종류의 「열반경」
이 모두 붓다의 입멸을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그 접근 방식과 그
입멸에 관한 해석에는 커다란 차이가 보인다. 본고에서는 초기불
교의 「열반경」을 중심으로 붓다의 열반을 다루고자 한다. 초기 불
교도들이 어떻게 붓다의 입멸을 전승하고 이해하고 있었는가를
살핌으로써, 붓다의 본질의 해명을 도모하고자 한다.
붓다의 입멸을 다루고 있는 초기불교의 「열반경」은 붓다의 사
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두 가지 자못 서로 다른 시
도를 볼 수 있다. 첫번째 시도는 다소 소박한 것으로 붓다를 신격
화하는 것이다. 붓다 사후, 일부 불교도들은 붓다가 신통력을 통
하여 우주의 大劫(kappa)에 걸쳐 세상에 머물 수 있었다고 믿었
다.1) 아울러, 「열반경」에서 우리는 동일한 문제에 대한 또 하나의
시도를 본다. 즉 涅槃과 正覺을 동일시하는 것으로 이것은 교리적
접근이다. 본고에서는 붓다의 반열반을 그의 정각과 관련하여 다
루어 보고자 한다. 이에 앞서 붓다의 죽음과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는 반열반이라는 용어에 관하여 먼저 일언해 두면 여기서 반열
반이라는 용어는 無餘依涅槃에 다름 아니다.
1) 大衆部가 이러한 견해를 가졌고, 대승불교 경전 중, 「열반경」에도 이러한
믿음이 발견된다. 역사적인 붓다의 수명과 수명 연장 능력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의 졸고를 참조하시오. 붓다의 神格化와 反神格化---그의
수명과 수명 연장 능력을 중심으로 ,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 「종교와
문화」 Vol, 6, pp. 245-265, 2000년 5월.
Ⅱ. 붓다의 입멸 과정
1. 「열반경」에 보이는 붓다의 입멸과정
「열반경」은 붓다가 열반에 들기 전 이 세상에서의 그의 마지막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붓다는 최후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설한
다.
그리고 나서 세존은 第1靜慮(jhānaṃ)에 이른다. 제1정려에서 나와
제2정려에 이른다. 제2정려에서 나와 제3정려에 이른다. 제3정려에서
나와 제4정려에 이른다. 제4정려에서 나와 空無邊處(ākāsānañcāyatana
ṃ)에 이른다. 空無邊處에서 나와 識無邊處(viññāṇañcāyatanaṃ)에 이른
다. 識無邊處에서 나와 無所有處(ākiñcaññāyatanaṃ)에 이른다. 無所有處
에서 나와 非想非非想處(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에 이른다. 非想非非
想處에서 나와 想受滅(saññāvedayitanirodhaṃ)에 이른다. 이때 아난다 존
자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말했다: 아누룻다 존자여! 세존은 般涅槃했습
니다. (아누룻다 존자는 대답했다). “아난다 존자여! 세존은 般涅槃하지
않았습니다. 想受滅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나서 세존은 想受滅에서
나와 非想非非想處에 이른다. 非想非非想處에서 나와 無所有處에 이른
다. 無所有處에서 나와 識無邊處에 이른다. 識無邊處에서 나와 空無邊處
에 이른다. 空無邊處에서 나와 제4정려에 이른다. 제4정려에서 나와 제
3정려에 이른다. 제3정려에서 나와 제2정려에 이른다. 제2정려에서 나
와 제1정려에 이른다. 제1정려에서 나와 제2정려에 이른다. 제2정려에
서 나와 제3정려에 이른다. 제3정려에서 나와 제4정려에 이른다. 제4
정려에서 나온 즉시 般涅槃하였다.2)
2) DN, ii. p. 156.
이상의 入出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第1靜慮→第2靜慮
→第3靜慮→第4靜慮→空無邊處→識無邊處→無所有處→非想非非想處
→想受滅→非想非非想處→無所有處→識無邊處→空無邊處→第4靜慮
→第3靜慮→第2靜慮→ 第1靜慮→第2靜慮→第3靜慮→第4靜慮→般涅
槃.
우리는 여기서 입멸 직전의 붓다의 마지막 정신 상태를 전문적
이고도 학술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을 본다. 한 漢譯本을 제외하
고는 「열반경」 제본은 붓다의 입멸 과정을 대략 동일하게 기술하
고 있다.3)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붓다의 내면에서 일어난 것들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4) 레이(Ray)는 바로(Bareau)의 주
장을 인용하고 있다. “붓다의 제자들이 스스로 이러한 정신적 현
상을 관찰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또한 붓다 자신도 그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상태를 결코 알려주지 않았다.”5)
3) 다른 「열반경」 제본과 달리 「佛般泥洹經」 (大正藏1, p. 172下)은
입멸과정에 대해 명료하지 않고 매우 간결하게 기술하고 있다.
4) Dial, ii. p. 174 fn.
5) Ray, Reginald A., Buddhist Saints in India (Oxford University Press.
1994), p. 392. Bareau의 주장을 재인용 ; Bareau, André, Recherches sur
la biographie du Buddha dans les Sūtrapiṭaka et les Vinayapiṭaka
anciens. 2 : Les derniers mois, le parinirvāṇa et les funérailles. 2
volumes (Paris : École Française d'Extrême-Orient. 1970-71), pp. 152-3.
어떻게 「열반경」 편집자는 이러한 과정을 기술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붓다의 정각의 기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
전 편집자는 붓다 정각의 기술을 붓다 입멸과정에 적용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열반경」 자체 내에서, 우리는 정각에 관한
기술이 입멸에 관한 기술과 밀접히 관련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뚜렷이 볼 수 있다. 정각의 기술을 참고하지 않고서는, 입멸의 기
술을 적절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두 사건은 매우 밀접하게
대칭되어 서술되고 있다.
정각 사건의 기술을 살핌으로써 우리는 입멸 경위를 살펴볼 수
있다. 초기불교 문헌에서 붓다의 생애를 언급하고 있는 문헌을 살
펴보면 정각 전후 사정과 입멸 전후 사정에 관하여 집중되어 있
다. 현대 불교학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고타마(Gotama) 붓다의 생
애의 모든 사건 중, 정각과 초기 전도 사건이 초기불교도들에게
가장 주요한 관심사였다.6) 따라서 정각 기술이 입멸 기술에 영향
을 주었을 것이다.
6) Frank. E. Raynolds, “The Many Lives of Buddha : A Study of Sacred
Biography and Theravāda Tradition,” in The Biographical Process (ed.
by Fank, E. Reynolds and Donald Capps ; The Hague : Mouton 1976), p.
45.
2. 입멸과정 기술의 분석
i) 九次第定과 四靜慮
입멸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9차
제정을 順逆으로 입출하는 것과 둘째, 四靜慮를 순서대로 입출하
는 단계이다.
붓다의 입멸과정 단계 중 9차제정을 언급하는 것은 붓다의 정
각 과정을 기술하는 문헌을 상기시킨다. 이런 입멸 과정의 초기단
계는 붓다가 九次第定을 통해 정각을 이루었다고 하는 전통과 밀
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증지부(Aṅguttaranikāya)의 한 경
전은 붓다가 九次第定을 성취함으로써 마침내 정각을 이루었다고
붓다 당신이 가르치고 있는 것을 전하고 있다. 이 경전에서, 붓다
는 九次第定을 자세히 설명하고 나서 결론짓는다. “아난다여! 非想
非非想處를 완전히 초월하여, 나는 想受滅을 얻고 거기에 머물었
다. 그리고 나는 지혜(paññā)로 번뇌가 완전히 제거되었음을 보았
다.…… 왜냐하면, 아난다여(Ānanda)! 나는 9차제정을 순서대로 그
리고 逆順으로 획득하고 거기서 나왔기 때문에, 아난다여! 나는 正
覺者로서 신들을 포함한 이 세상에서 최상의 정각을 성취한 것이
다.”7) 우리는 붓다가 九次第定을 통하여 정각을 이루었다고 하는
전통이 「열반경」의 붓다의 입멸과정 서술에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7) AN, ⅳ. pp. 483-448.
왜 붓다가 다시 四靜慮을 얻고 그리고 第四靜慮에서 나온 직후
열반에든 이유를 살펴보자. 산스크리트어본과 몇몇 한역본은 왜
붓다가 滅盡定이 아니고, 四靜慮를 통해 열반에 이른 이유를 설명
하고 있다. 붓다가 멸진정에 들어있을 때, 아난다는 붓다 자신이
직접 그에게 들려 준 가르침을 회상한다 : 붓다는 第四靜慮를성취
하고 나서 열반을 증득한다.8) 「般泥洹經」을 살펴보자. “想知滅을
사유하고 想知滅을 통과한다. 이때 阿難은 阿那律에게 佛이 이미
반열반하였는지 묻는다. ‘아직 아니다. 佛은 지금 想知滅을 사유하
고 있다’라고 대답한다. 阿難이 말했다. ‘이전에 佛이 四禪의 사유
에서 無知棄所受餘無爲之情에 이르고 이에 반열반한다고 說하는
것을 들었다’.”9) 또 하나의 한역본도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非想非非想處와 滅受想定에 이르러 조용하였다. 이때
阿難陀는 阿尼盧陀존자에게 지금 우리의 大師가 입멸했느냐고 묻
는다. ‘佛은 아직 涅槃하지 않았고 단지 滅受想定에 머물고 있다고
답한다. 阿難陀는 나는 일찍이 佛로부터 친히 다음과 같이 들었다.
만약 佛世尊이 邊際定에 들어가 조용히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에
서 곧 世間의 눈은 닫히고 반드시 입멸한다고’.”10) 이상의 세 본(v
ersions)은 佛說이라고 하면서, 붓다는 제4정려에서 반드시 입멸한
다고 밝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8) Waldschmidt(ed.), Mahāparinirvāṇasūtra, 3 (Berlin : Akademie-Verlag,
1950-51), p. 396. 42, 17.
9) 「般泥洹經」 (大正藏1 p. 188中).
“起想知滅之思惟通想知滅。是時阿難。問阿那律。佛已滅度耶。答言。末也。
佛方思念想知滅之思惟。阿難言。昔聞佛說。從四禪思惟。至於無知棄所受餘無
爲之情。乃般泥曰.”
10)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 (大正藏24 p. 399中).
“乃至非想非非想處。及滅受想定寂然宴黙。時阿難陀問尊者阿尼盧陀曰。今我
大師爲入涅槃爲未入耶。答曰。佛未涅槃但住滅受想定。阿難陀言。我曾從佛
親聞此語。若佛世尊入邊際定寂然不動。從此無間世間眼閉必入涅槃.”
왜 第四靜慮를 통해서만 입멸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열반경」에
는 보이지 않지만 部派佛敎의 논서에 자세히 다루어지고 있다. 說
一切有部의 「阿毘達磨大毘婆沙論」은 세존이 제4정려에 들어가 반
열반하는 이유에 대해 몇 가지 설을 소개하고 있다. 그들 중 다음
의 것이 주목을 끈다. “전륜성왕과 서로 비슷한 법이기 때문이다.
전륜성왕은 만약 먼저 이 자리에서 관정하여 왕위를 계승하면 훗
날 그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 이와 같이 十力을 갖춘 無上의 法
王이 먼저 제4정려에 근거하여 법왕의 자리를 받고, 훗날 되돌아
와 그곳에서 (제4정려) 반열반한다.”11) 정각과 반열반이 동일시 내
지 동등시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11) 「阿毘達磨大毘婆沙論」 (大正藏 27, p. 955下).
“與轉輪王相似法故.如轉輪王若先於此地灌頂而受王位.後卽於此地而命終.
如是十力無上法王先依第四靜慮受法王位.後還依此地而般涅槃.”
대체로 초기불교 전통에 의하면 붓다는 第四靜慮를 통하여 정
각을 이루었다고 하는 경전이 많다. 第四靜慮에서 붓다의 마음은
淨化되고 유순하게 되어서, 三明을 얻어, 그의 마음이 번뇌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그는 완전한 정각자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12)
12) MN, ⅰ. pp. 21-3 ; MN, ⅰ. pp. 247-9 ; MN, ⅰ. pp. 277-80 ; MN. ⅱ.
pp. 16 f. 이 전통은 종종 경전에 보인다. 자세한 논의는 Tilmann Vetter,
The Ideas and Meditative Practices of Early Buddhism (Leiden : E. J.
Brill. 1988), pp. xxi-xxxvii 참조.
위에서 우리는 四靜慮를 통한 정각과 9차제정을 통한 정각과정
이 「열반경」에 보이는 것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정각에 관련된 이
두 전통이 결합되어 「열반경」의 붓다 입멸 과정의 기술을 만들어
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13) 그런데, 붓다가 四靜慮을 통해 정각을
이루었다고 하는 전통이 「열반경」 편자에 의해 채택된 것으로 보
인다. 반면에 9차제정의 시스템은 폄하된 것으로 해석된다. 九次第
定은 四靜慮와 四無色定그리고 滅盡定(nirodha)로 구성되어있다. 언
제부터 이러한 체계화가 형성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처음부터 있
었던 것은 아니고 뒷날 (아마도 部派佛敎시대) 형성된 것임에 틀림없
을 것이다. 四靜慮는 처음부터 불교적인 것으로 다루어지지만, “四
無色定은 원래 불교의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四無色定은 외도
들의 견해에 포함되어 있다.”14) 우리는 초기불교 문헌에서 선정(jh
āna)을 四靜慮로만 정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15)
13) 경전에 의하면 正覺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가지이다. 붓다는 근기가 다른
중생들 개개인에게 맞게끔 열반에 이르는 길을 여러 가지로 설했다.
틸만 베터(Tilmann Vetter, 앞의 책, pp. xxi-xxvii)는, 본론의 두
전통이외에, 五蘊이 無我(anatta)임을 지혜로 깨달음에 의해 정각을
이루었다고 하는 제3의 전통도 언급하고 있다.
14) Norman, Collected Papers IV (Oxford : Pali Text Society. 1993), p. 135
fn 2. Bronkhorst Johannes는 四無色定은 자이나교 전통이나 유사
자이나교 전통에서 불교에 수입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Bronkhorst
Johannes, Two Traditions of Meditation in Ancient India (Stuttgart.
1986), p. 82.
15) jhānan ti pathamam jhānan dutiyam tatiyam catuttham (靜慮란 第一禪,
第二禪, 第三禪, 第四禪이다.) (Vin, iii. p. 92 ; iv p. 25).
킹(King)은 四無色定은 후기의 요가(Yoga)선정으로 이것이 불교
고유의 四靜慮에 추가된 것이라고 설명한다.16) 토마스는 서로 다
른 이 두 선정의 결합은 불교전통과 요가전통의 지속되는 상호
영향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17) 이 결합은 다시 요가
화되는 것이다.18)
16) King Winston L. Theravada Meditation : The Buddhist
Transformation of Yoga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1980), p. 15.
17) Thomas, E. J. The Life of Buddha as Legend and History (3rd ed.
1949 ; London. First ed. London, 1927), p. 15.
18) King, 앞의 책, p. 15.
四靜慮과 四無色定은 “평화스러운 머뭄”(peaceful abidings)이라고
하며, 선정이 깊어질수록 더 미묘하다가 멸진정에 이르러 정점에
이른다. 그렇지만 아무리 8等至가 평화롭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각각 경험한 뒤 다시 반성되어지고, 열반이 아닌 윤회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들은 유사 열반으로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선
정에 든 이로 하여금 무한히 九次第定에 들도록 이끌게 하고, 언
제나 가능하면 다시 선정에 들도록 만들기 때문이다.19) 선정상태
(jhanic states)는 진실로 그 방식에서 만족스럽고 당대의 요가 그룹
에서 매우 높이 평가되겠지만, 선정에만 만족해 머문다는 것은 정
체를 의미하고 최후에는 윤회의 낮은 단계로 다시 퇴보하고 말
것이다.20) 이런 이유로 알라라(Ālāra)의 無所有處와 웃다카(Uddaka)
의 非想非非想處는 붓다에 의해 열반이 아니라고 부정되었다.
19) King, 앞의 책, p. 16.
20) Werner, Karel, “Bodhi and Arahattaphala : from early Buddhism to
early Mahayana.” in Denwood Philip, and Alexander Piatagorsky, ed.
Buddhist Studies : Ancient and Modern (London : Curzon Press. 1980),
p. 166.
틸만 베터(Tilmann Vetter) 또한 四無色定이 붓다에 의해 가르쳐지
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선정을 폄하한다. 그에 의하면 四無色定은
最古期의 아비달마 교학의 논모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21)
그는 바로(Bareau)의 결론을 인용하고 있는데, 바로는 알라라 칼라
마 지도 하에 無所有處를 얻었다는 얘기와 웃다카 라마풋타(Uddak
a Rāmaputta) 下에서 非想非非想處를 얻었다는 얘기는 역사적인 근
거가 없는 허구라고 본다.22) 바로의 견지를 받아들여, 노만(Norma
n)은 “우리는 붓다의 생애에 (이 일화를) 삽입한 의도는 四無色定
을 붓다의 선정방법과 비교해 그것들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보이
기 위한 것이라고 결론 지워야 한다”고 주장한다.23)
21) Tilmann Vetter, 앞의 책, p. xxi.
22) André Bareau, Recherches sur la biographie du Buddha dans les
Sũtrapiṭaka et es Vinayapitaka anciens : de la quête de l'Eveil á la
convrsion śāriputra et de Maudgalyāna (Paris. 1963) pp. 13-27 ;
Tilmann Vetter (앞의 책, p. xxii)가 재인용.
23) Norman, 앞의 책, p. 135 fn.
「열반경」은 四靜慮와 四無色定을 구분하고 전자를 불교의 정통
적인 수행방법으로 채택하려고 하고 있는 것 같다. 바로는 「열반
경」의 원형은 멸진정을 정점으로 하는 九次第定을 포함하지 않고
오로지 四靜慮만 말하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24) 토마스(Tho
mas)도 같은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입멸과정이 이렇게 서술된
이유는 아마도 제4선에서 열반을 취하는 것이 초기전승의 원래
모습이었을 것이다. 다른 선정단계가 부가되었을 때도 제4선에서
입멸한다는 전승은 여전히 이상과 같은 방식으로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25)
24) André Bareau, 앞의 책, 1970-1. vol, ii. p. 156. 이 경용 선생님의 번역에
감사한다.
25) Thomas E. J., 앞의 책, p. 153.
9차제정이 아닌 四靜慮를 통해 붓다가 반열반에 들었다고 하는
진술은 아마도 지혜(paññā)의 방법이 매우 강조되던 시기를 반영하
고 있는지 모른다. 四靜慮는 본래 불교적인 것으로 지혜를 발생하
는 것으로 설명되는데 비해 四無色定은 지혜와 거의 관계가 없다.
“지혜 없는 자에게 靜慮(jhāna)가 없고 정려 없는 자에게 지혜 없
다. 정려와 지혜를 구족하는 것에 의해 열반에 이른다.”26) 정려의
어근을 풀이하는 붓다고사에게서 정려가 지적 측면을 본질로 하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상을 정려하는 것에 의해, 또는 장애를
불태우는 것에 의해 정려이다.”27) 그는 두 가지 점에서 정려를 설
명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jhāna는 장애를 불태워 없애준다는 것
으로 한역의 止觀중 止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jhāna가
사유라고 말하는 것으로 止觀중 觀에 상응하고 있다.28)
26) Dhp, 372.
27) Vism, p. 150.
28) 說一切有部의 阿毘達磨大毘婆沙論 (大正藏27, p. 411中)에서도
붓다고사와 마찬가지로 靜慮를 설명하고 있다.
붓다고사는 제사정려를 최상의 지식의 기초(abhiññā-pāda)로 이
해하고 있다.29) 불교적인 jhāna에서는, 황홀상태는 찾아볼 수 없
다. 오히려 고양된 생기가 있을 뿐이다.30) 三明과 6신통 중 맨 마
지막에 위치한 漏盡知는 정각을 성취함에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v
ipassana 수행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31) “Vipassana-智慧야말로
불교에 있어 결정적으로 해탈시키는 요소이다.”32) Vipassana는
절대적으로 열반의 증득에 필요하지만 四無色定은 그렇지 않다.
사마타 수행만으로는 열반에 이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시
적으로 집착, 증오, 착각을 멈추거나 약화시킬 뿐이고, 그것들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 오로지 samatha(止)와 결합된 vipassana
(觀)이 이것을 성취할 수 있다.33) 「열반경」은 jhāna의 증득은 지혜
를 발생하고 그래서 열반에 이른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의도한 것
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산스크리트어 「열반경」은 나의 해석을 뒷
받침하고 있다. “제四靜慮를 획득하고 나서, 붓다․세존은 지혜의
눈을 가지고, 不動의 적정을 이루고 대열반을 이루었다.”34) 이러
한 경향을 따라 붓다고사도 상대적으로 四靜慮에 대해서 충분한
주석을 하고 있지만 붓다가 거치고 간 나머지 四無色定에 대해서
는 거의 언급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29) DA, ii. p. 603 ; Vism 12-13 章. 三明은 뒷날 六神通(abhiññās)으로
확대된다. 새로이 부가된 셋은 : 神足通(iddhividha), 天耳通(dibbasota),
그리고 他心通(cetopariyañāna). Karel Werner, 앞의 책, pp. 169 f. 참조.
30) PED, s.v. jhāna.
31) Nyāṇatiloka, Buddhist Dictionary : Manual of Buddhist Terms and
Doctrines (4th rev. ed ; Kandy, Sri-Lanka. 1980), s.v. abhiññā.
32) Nyāṇatiloka, 앞의 책, s.v. vipassana.
33) Peter Harvey, An Introduction to Buddhism : Teachings, History and
Practices (Cambridge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0), p. 253.
34) Waldschmidt, 앞의 책, p. 396. 42, 18.
ii) 멸진정과 열반
열반과 관련하여 멸진정에 관한 아난다(Ānanda)의 언급도 멸진
정에 관한 이견이 있었음을 보여 준 것이다. 붓다가 멸진정에 들
어갈 때, 아난다는 “아누룻다 존자여! 세존은 이제 막 열반에 드
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누룻다 존자는 고쳐 잡았다. “아난다여,
그렇치 않다. 세존은 아직 열반에 드신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멸
진정에 든 것이다.”35) 상응부(Saṃyutta-Nikāya)의 한 경전에 붓다의
마지막 순간을 말하고 있다. 먼저 내용을 살펴보자. 붓다는 최후
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설한다.
35) DN, ii. p. 156.
그리고 나서 세존은 第1靜慮(jhānaṃ)에 이른다. 제1정려에서 나와
제2정려에 이른다. 제2정려에서 나와 제3정려에 이른다. 제3정려에서
나와 제4정려에 이른다. 제4정려에서 나와 空無邊處(ākāsānañcāyatana
ṃ)에 이른다. 空無邊處에서 나와 識無邊處(viññāṇañcāyatanaṃ) 에 이른
다. 識無邊處에서 나와 無所有處(ākiñcaññāyatanaṃ)에 이른다. 無所有處
에서 나와 非想非非想處(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에 이른다. 非想非非
想處에서 나와 無所有處에 이른다. 無所有處에서 나와 識無邊處에 이른
다. 識無邊處에서 나와 空無邊處에 이른다. 空無邊處에서 나와 제4정려
에 이른다. 제4정려에서 나와 제3정려에 이른다. 제3정려에서 나와 제
2정려에 이른다. 제2정려에서 나와 제1정려에 이른다. 제1정려에서 나
와 제2정려에 이른다. 제2정려에서 나와 제3정려에 이른다. 제3정려에
서 나와 제4정려에 이른다. 제4정려에서 나온 즉시 般涅槃하였다.36)
36) SN, i. p. 158. 그렇지만 이 경전의 주석서(SA, i. p. 223)는 멸진정과
아난다의 오해가 있었던 것처럼 다루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열반경」에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추측된다.
상기 인용한 경전과 「열반경」을 비교해 보면, 다른 점은 멸진정
에 관한 얘기가 빠져있고 따라서 세존이 열반에 들었다고 오해한
아난다의 말이 빠져있다. 그릿피스(Griffiths)는 이러한 문헌의 차이
를 심지어 문헌적으로, 이미 멸진정을 언급하는 것이 문제시 된
결과에서 기인한다고 해석한다.37) 오래된 전통에서는 멸진정은
불교고유의 것으로 각각 八解脫과 九次第定의 마지막 단계로 여겨
졌다.38) 그리고 멸진정은 선정수행의 정점 이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분명히 열반과 대등하게 다루어졌다. 멸진정은 몇몇 초기경
전에서 이 세상에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열반인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 것이다.39)
37) Griffiths, Paul J., On Being Mindless : Buddhist Meditation and the
Mind-Body Problem (La Salle, Ill : Open Court. 1986), p. 141. fn. 8.
38) Ray, 앞의 책, pp. 369 f. 팔해탈은 예비 삼단체, 四處(āyatana)와
멸진정으로 이루어졌다. 틸만 베터(앞의 책, p. 67)는 아마도 멸진정은
초기엔 모든 형상에서 자유로운 영역을 의미하지 않았고 불교적으로
수용된 것이고 아마도 한때 비상비비상처와 동일했으리라고 추측한다.
39) PED, p. 207.
그러나, 「열반경」에서 멸진정은 확실히 열반(nibbāna)이나 대열
반(parinibbāna)과 구별되어지고 있다. “8해탈과 九次第定의 최고 단
계로서의 멸진정은 그 자체 정신적 산물이고 조건지어 지고 만들
어진(saṃkhata) 상태로 무조건적이고 만들어지지 않은, 不生의 열반
과 동일하지 않다.”40) 바로(Bareau)는 「열반경」에서 멸진정은 열반
과 다르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도입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41)
40) Boyd, 앞의 책, p. 36.
41) Andrè Bareau, 앞의 책, 1970-1, vol. ii. p. 156. 이 경용 선생님께서
친절하게 번역해 주었다.
붓다고사는 왜 아난다가 멸진정에 관해 언급했는가를 설명한다.
“멸진정에 든 세존이 호흡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 질문을 했
다.”42) 멸진정에서는 호흡이 없어지므로, 멸진정에 든 사람은 죽
은 것으로 오해되기 쉽다. 「淸淨道論」에서, 붓다고사는 몇 가지 예
를 보여준다. 멸진정에 든 한 장노를 시체로 오인하여, 그를 화장
하려고 했지만, 그 장노는 불타지 않았다.43) 한가지 더 예를 보면,
한 수행자가 법당에서 멸진정에 들어 있는 동안, 법당에 불이 났
다. 비록 불이 그를 휩싸지만, 그 수행자는 화상을 입지 않았다.44)
이들 예들은 멸진정의 상태가 죽음의 상태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
을 보여주고 있다.45) 그렇지만 여전히 차이점은 남아있다 : 붓다
고사의 주석에 의하면, 멸진정에 들어있는 한, 죽음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46)
42) DA, ii. p. 594. 팔리어 「열반경」에서는, 아난다는 멸진정에 있는 붓다를
입멸했다고 오해하여 그렇게 말했던 것같다(DN, ii. p. 156). 주의해야 할
것은 「열반경」에서는 아난다가 붓다고사가 이해하듯이, 질문한 것은
아니고 탄식조로 열반에 들었다고 말한 것이다. 다른 본에 의하면
아난다는 이전에 붓다가 멸진정에 관해 말한 것을 회상하고 있다.
43) Vism, p. 380.
44) Vism, p. 706.
45) 죽은 사람과 멸진정에 든 사람의 차이는 MN, i. p. 296에 논의되었다.
멸진정에 든 사람에게는 생기(jivjta), 온기, 根이 남아있지만, 호흡이나
사고는 없다.
46) DA, ii. p. 544 ; Vism, p. 707.
다양한 주석 문헌 전통에 이르게 되면, 이 세상의 삶에서 열반
과 동등시되곤 했던 멸진정은 그 중요성을 잃게된다. “僧院제도
가 정착되어 인도불교를 풍미하게 됨에 따라, 정각을 이해하는데
도 敎學중심의 승려의 입장에서 행해졌다. 지혜에 의한 해탈(prajñ
āvimukta)도 그러한 입장에서 널리 행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기간
동안, 멸진정의 증득(nirodhasamāpatti)은 불필요하게 생각되고, 그리
고 심지어는 열반의 증득과 무관하다고 여겨졌다.47) 이런 황홀 상
태는 阿羅漢이나 不還果(anāgāmi)를 얻은 이가 이 세상에서 실현할
수 있는 성취의 한 유형에 불과할 뿐이고,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
기 위해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닌 것이다.48) 멸진정의 폄하는
승원 제도화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승원에서는 法(D
hamma)과 律(Vinaya)이라는 문헌을 학습함으로써 얻어지는 지혜를
중요시한다.
47) Ray, 앞의 책, p. 372.
48) Boyd, 앞의 책, p. 37.
지혜(paññā)의 活現을 가능케 하는 第四靜慮와는 달리, 멸진정에
서는 어떠한 지적 활동도 보이지 않는다. 멸진정이 죽음과 유사한
종류의 상태로 묘사된다. 죽음과 유사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 어떻
게 지혜를 사용하여 열반에 이를 수 있을까? 아마도 붓다가 想受
滅(saññāvedayitanirodha)에 들었다고 하는 문장은 단지 뒷날 이론화
과정에서 생긴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멸진정에 들어 있는 상태에
서가 아니라 멸진정에서 나온 이후에야 지혜를 사용하여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는 것이다.49)
49) Norman, 앞의 책, p. 136.
3. 붓다의 最後心에 관한 붓다고사의 견해
붓다고사는 붓다의 입멸 직전의 최후의 순간에 대해 주석하고
있다. 붓다고사에 의하면 열반을 증득하는데 두 가지 방식이 있
다. 첫째는 jhāna 직후이고, 둘째는 반성(paccavekkhanā) 직후이다.
첫 번째 방식은 第四靜慮에서 나와 bhavaṅga에 들어가고 그리고
나서 거기서 반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다. 두 번째 방식은 第四靜慮
에서 나와 jhāna의 요소들을 반성하고 bhavaṅga에 들어가고, 그
리고 나서 바로 거기서 반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다.50) 이상 두 방
식의 유일한 차이는 第四靜慮에서 나온 뒤 선정의 요소를 반성하
는가 하지 않는 가에 달려 있다. 붓다고사가 붓다는 두 번째 방식
을 선택했다고 말할 때, 그는 붓다가 맑고 주의 깊은 정신으로 열
반에 들어갔음을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50) DA, ii. p. 594.
그렇지만 두 방식의 차이는 그렇게 커지 않고 중요하지 않게
보여, 붓다고사가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팔리어 「열반경」에 의하면, 붓다는 第四靜慮에서 나온
직후 즉시 반열반에 들었다. 그러나 몇몇 다른 본들에 의하면 第
四靜慮에 들어있는 동안 붓다는 반열반에 들었다. 산스크리트어본
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분명하다. 아난다는 붓다가 第四靜慮에서
대반열반에 든다고 말한 것을 상기한다.51) 다른 한역본을 살펴보
자. “身中의 四大가 惡에 露出되어 있고 하나도 가치 있는 것이 아
님을 사유하였다. 머리를 북쪽으로 하고 손을 베고 右脅으로 눕고
무릎을 굽히고 다리를 포개 챈 곧 般涅槃하였다.”52) “곧 四禪에서
나와 無知棄所受餘泥洹之情으로 돌아갔다. 곧 반열반하였다.”53)
“第四禪에 들어간다. 곧 여기에서 般涅槃하였다.”54) “四禪에서 일
어나 佛은 般涅槃하였다.”55) “初禪에서 나와 다시 第二, 第三, 第四
靜慮에 들어간다. 조용히 움직이지 않다가 곧 無餘妙涅槃界에 들어
간다.”56)
51) Waldschmidt, 앞의 책, p. 396. 42, 18.
52) 「佛般泥洹經」 (大正藏1 p. 172下).
“自惟身中四大惡露。無一可珍。北首枕手猗右脅臥。屈膝累脚。便般泥曰.”
53) 「般泥洹經」 (大正藏1 p. 188中).
“便從四靜慮反於無知棄所受餘泥洹之情。便般泥洹.”
54) 「大般涅槃經」 (大正藏1 p. 205上). “入第四禪。卽於此地入般涅槃.”
55) 「遊行經」 (大正藏1 p. 26中). “從四禪起。佛般涅槃.”
56)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 (大正藏24 p. 399中).
“從初禪出還入第二第三第四靜慮。寂然不動便入無餘妙涅槃界.”
이들 다른 견해는 붓다가 선정상태(jhāna) 상태에서 열반을 이루
었는가 또는 보통의식 상태에서 열반을 이루었는가 하는가에 이
견이 있었음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붓다가 第四靜慮에서
반열반을 이루었다고 하는 제본들은 붓다가 第四靜慮에서 정각을
이루었다고 하는 전통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앞에서
논의했듯이, 정각의 진술과 입멸의 진술 사이에는 근접한 유사성
이 있다. 입멸 과정은 정각 과정을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실론의 상좌부(Theravada) 전통은 붓다의 입멸과정을
자신의 교리에 맞게끔 진술하고 있다. 즉 그들의 교리에 의하면,
모든 중생은 아라한을 포함해 그들의 신체가 똑같은 죽음과정을
거치므로 똑같은 방식으로 죽어야 한다고 믿는다. 붓다가 第四靜
慮에서가 아니라 第四靜慮에서 나온 뒤 반열반에 들었다는 기술을
주목하고 붓다고사는 상좌부의 전문용어 “bhavaṅga”(有分)를 도입
하여 붓다는 bhavaṅga에 들어감으로써 반열반에 들어갔다고 설
명한다. 붓다고사는 좀 더 자세히 bhavaṅga를 통한 죽음을 설명
한다. “모든 사람, 諸佛이거나 벽지불이거나 聲聞이거나, 심지어
개미나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두 bhavaṅga를 통해 그들의 수명을
마친다.”57) 똑같은 죽음 과정이 붓다나 보통의 생명존재, 심지어
개미까지 포함해 적용된다는 붓다고사의 설명은 신심있는 불교도
에게 불경스럽게 들릴지도 모른다. 담마팔라(Dhammapāla) 는 붓다
고사의 주석을 부연한다. Bhavaṅgacitta(유분심)는 모든 의식 중 최
후의 것으로, 따라서 죽음은 거기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런
죽음 과정은 모든 생명체에 적용된다.58) 붓다가 보통의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bhavaṅga를 통해 수명을 마쳤다고 설명함으로써 붓
다고사는 붓다의 마지막 순간을 신바화 시키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하지 않고 있다. 대조적으로 몇몇 한역본은 붓다가 第四靜慮
를 통하여 반열반을 성취했다고 함으로써 붓다의 죽음을 신비화하
고 있는 경향이 보인다. 그러나 붓다고사의 입장에서는, 붓다가
이 세상에 육체를 가지고 살고 그의 육체가 윤회의 법칙에서 벗
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 그는 자신의 수명을 다른 생명체와 똑같
이 마쳐야 한다는 것이다.
57) DA, ii. p. 594.
58) DAT, ii. p. 240.
Ⅲ. 入滅과 正覺
앞서 우리는 「열반경」에 보이는 입멸과정이 붓다의 정각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입멸과
정각을 살펴보자.
「열반경」은 붓다의 정각과 입멸을 동등하게 다루고 있다. 말라
족의 푸쿠사가 바친 황금가사가 붓다의 몸에 입혀졌을 때, 찬란했
던 그 가사는 광채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놀란 아난다에게 붓다는 설명한다. “아난다여! 그와 같도다. 아난
다여! 두 경우에 如來의 피부는 매우 밝고 빛난다. 두 경우는 무엇
인가? 아난다여! 여래가 無上의 최고의 정등 정각을 이루는 밤과,
如來가 無餘依涅槃을 이루는 밤이다.”59) 왜 붓다의 피부가 두 경우
에 그렇게 빛난 이유는 두 경우가 서로 동등하기 때문이라는 것
이다.
59) DN, ⅱ. p. 134.
붓다고사는 왜 붓다의 피부가 그렇게 이 두 경우에 빛나게 된
이유에 대해 두 가지 측면에서 주석을 하고 있다. 첫째, 이 두 경
우에 온 세계에 있는 신들이 음식물에 영양소를 넣어 이것이 피
부로 하여금 빛나게 만든다.60) 두 사건이 똑같이 특별하므로 신들
은 특별한 영양소를 음식에 넣는다. 붓다고사의 주석은 「자타카」
(Jātaka)를 참고하면 더 분명해진다. “다른 경우엔, 신들은 영양소(oj
a)를 입안으로 들어가는 음식에만 넣지만, 정각한 날과 입멸의 날
에는 그들은 그것을 음식 그릇에 넣는다.”61) 두 번째, 이 두 경우
에 엄청난 행복감이 붓다로 하여금 특별히 광채를 나투게 한다.
정각한 날, 붓다가 “오늘, 수백만 수천 수백만 년 동안 쌓여왔던
번뇌의 더미가 버려지게 되었다.”고 사유할 때, 엄청난 행복감이
그에게서 일어났다. 이러한 행복감은 곧 붓다의 피부를 매우 빛나
게 만들었다. 입멸의 날, 붓다가 “이제 오늘 나는 수백 수천의 諸
佛이 들어간 반열반이라는 도시에 들어간다고”사유할 때, 엄청난
행복감이 그에게서 일어났다. 이것이 그의 육신으로 하여금 똑같
이 빛나게 했다.62) 정각한 날과 마찬가지로, 입멸한 날도, 붓다는
똑같은 행복을 느꼈다. 주목할 것은 열반이 슬픔으로 여겨지지 않
고, 오히려 정각과 같이 경사스러운 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붓
다고사가 특별한 음식과 엄청난 행복감이 똑같이 붓다의 육신을
빛나게 한 원인들로 이해했는데, 이 두 원인들의 이면에는 두 사
건이 동등하다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60) DA, ii. p. 570.
61) J, i. p. 68.
62) DA, ⅱ. pp. 570-1.
정각과 열반이 동등하다는 생각이 다시 붓다에 의해 피력되었
다. “두 공양 음식은 다른 어떤 공양보다도 똑같은 열매, 똑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무엇이 그 둘인가? 무상 최고의 정각을 이루기
前 여래에 의해 취해진 음식과 無餘依涅槃직전 여래가 취한 음식
이다.”63) 다른 어떤 공양보다도 이 두 음식 공양이 똑같이 더 많
은 결과를 가져오는 이유는 열반과 정각이 동일함에 기인한다. 붓
다고사는 왜 이 두 공양 음식이 똑같은 결과를 가져오는지 설명
하고 있다. “왜냐하면 열반은 똑같고, 等至(samāpatti)도 똑같고, 회상
도 똑같기 때문이다.”64) 첫 두 이유는 교리적인 측면에서 서로 밀
접하게 연결되고 있다. 세 번째 이유는 부가적인 것으로, 수자타
와 춘다가 똑같은 식으로 그들이 공양한 음식물에 대해 기억할
때 똑같이 행복했다는 것이다.
63) DN, ⅱ. pp. 135 f.
64) DA, ⅱ. p. 571.
붓다고사는 첫 번째를 설명한다. “세존은 수자타가 공양한 음식
을 드시고 有餘依涅槃에 들고, 춘다가 공양한 음식을 드시고 無餘
依涅槃에 들었다. 이리하여 그 두 음식은 똑같은 과보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두 열반은 동일하기 때문이다.”65) 붓다고사가 有餘依涅
槃과 無餘依涅槃(anupādisesa-nibbāna-dhātu)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담마팔라(Dhammapāla)는 전자를 有漏-般涅槃(kilesa-parinibbān
a)이라고 하고 후자를 五蘊-般涅槃(khandha-parinibbāna)이라고 정의
하고 있다.66) 전자는 正覺(sammāsambodhi)의 동의어이다. “최초엔
열반과 깨달음(bodhi)은 똑같은 것을 지칭하는 것이었다.”67)
65) DA, ii. p. 571.
66) DAT, ⅱ. p. 222.
67) Gombrich, How Buddhism Began : The Conditioned Genesis of the
Early Teachings (London & Atlantic Highlands : The Athlone Press.
1996), p. 66. 그러나 대승불교 전통은 이들을 분리시키고 열반이
정각보다 열등하다고 본다. (앞의 책, pp. 66 ff).
생전에 증득한 열반은 有餘依涅槃(sa-upādisesa-nibbāna)이라고 하
는데 여기에는 아직 五蘊(khandha)이 연료(upādi)로서 남아있다(sesa).
오온이 더 이상 존속하지 않을 때, 아라한은 無餘依涅槃(anupādisesa
-nibbāna)을 증득한다. 두 열반의 유일한 차이점은 執着(clining)에 있
는 것이 아니고 집착되고 있는 오온(clining aggreates)에 있다. 두 열
반은 일시적으로 달리 이름 붙여졌지만, 그들 사이의 차이는 두
열반의 궁극적인 상태의 가치에서 볼 때, 무의미하다. 각 열반은
정각이다.68) 이 두 경우에 있어 열반이라는 실재의 본질에는 어떠
한 차이도 없다. 사실 경전에서 이 두 용어가 서로 교환되어 사용
되고 있기 때문에 이 두 경우의 열반의 실재는 본질적으로 다르
지 않다. 생전의 아라한이 죽었다고 해서 아라한이 되지 않는 것
은 아니다. “아라한이 죽을 때 열반과 관련하여 더 이상 취해야
할 것은 없다. 그의 생존시 열반은 老, 死, 再生등에 속박되지 않
는다. 물론 五蘊은 그러한 것에 속박된다.”69)
68) Burford Desire, Death and Goodness : the conflict of ultimate values
in Theravāda Buddhism (New York : Peter Lang Publishing. Inc. 1991),
p. 158.
69) Boyd, 앞의 책, p. 34.
전통적인 上座部입장은 두 열반이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지 않
다고 본다.70) 「論事」는 두 열반이 동일하다고 논증하고 있다.71) A
bhidhammatthasangaha(ⅵ 14)는, “열반은 본질상 하나이지만, 논
리적으로 다루기 위해 둘로 나눈 것일 뿐이다.”라고 설명하고 있
다.72)
70) Burford, 앞의 책, pp. 156 ff.
71) Kvu, ii. 11.
72) Cpd, p. 137. 번역자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실론의 주석서를 인용하고
있다. 열반을 둘로 나눈 것은 열반을 언어로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부연하고 있다. (ibid. fn)
붓다고사는 어째서 이 두 열반이 동일한 지를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해 준다. 두 번째 이유를 설
명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각을 이루던 날, 그는 84,0
00 코티의 등지를 이루고, 입멸의 날, 그는 똑같은 수의 등지를 이
루었다. 따라서 등지의 수가 동일하기 때문에 이 두 열반은 똑같
은 결과를 가진다.”73) 동일한 수의 등지가 정각과 열반을 동일하
게 만드는 공통 분모라는 것이다. 나가세나 장노도 이러한 점을
지지하고 있다. 붓다의 정각의 날과 그의 입멸의 날에만 붓다는 9
차제정을 순서대로 그리고 거꾸로 들어간다고 한다.74)
73) DA ,ⅱ. p. 572.
74) Mil, p. 176.
정각을 열반과 동일시하는 것은 붓다의 죽음에 대한 충격을 최
소화하고 그의 육신의 사후 붓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주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관심을 그의 죽음에서
붓다의 정각의 본질에로 환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환원은 붓다
의 정각과 관련하여 그의 본질을 생각하도록 요구한다. 노만(Norm
an)은 여래 사후 존속 문제는 “붓다에 관한 사실을 알려는 참된
의도”에서 일어난 것이다 라고 추측한다.75) 그는 계속해 설명한
다. “붓다는 여래였고, 열반을 증득했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살
았었고, 그의 제자와 함께 지냈다. 열반의 증득이 그의 육체적 상
태에 뚜렷한 차이를 만들지는 않았다. 아마도 이처럼 어려움의 결
과로 두 개의 열반이라는 관념이 생겼을 것이다.”76)
75) K. R. Norman, Collected Papers I (Oxford : Pali Text Society), p. 252.
76) K. R. Norman, 앞의 책, p. 253.
심지어 이 세상에서의 그의 생존시에도, 붓다를 있는 그대로 보
기는 어렵다고 경전은 말하고 있다. 붓다는 바다처럼 심오하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어떠한 수단
에 의해서도 헤아려질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전에서는 붓다를 오온
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다.77) 붓다의 본질은 생시
에 五蘊과 연관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마찬가지이다.78)
여래는 오온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없음을 보이므로써, 사후 붓다
는 완전히 소멸했다고 믿는 야마카(Yamaka)를 사리풋타(Sāriputta)가
바로 잡은 후, 여래가 사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
하지 못하다고 결론짓는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살 때도 여래는
진실로, 실질적으로 파악될 수 없었다”.79) 이 세상 사람들이 붓다
에게 접근이 가능할 때조차도 그를 정확히 안다는 것은 어렵다 ;
사후 그가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논의하는 것은 더더욱 힘든 것
이다. “여래는, 내(붓다)가 말하건대, 지금 이곳에서 추적될 수 없
다.”80)
77) MN, ⅰ. p. 486 ff ; SN, ⅳ. pp. 380 ff ; SN, ⅲ. pp. 116 ff.
78) Peter Harvey, 앞의 책, p. 48.
79) SN, iv. p. 384.
80) MN, ⅰ. p. 140.
붓다는 박칼리(Vakkali)에게, “보기에 더러운 이 육신을 보는 것
에 무슨 이득이 너에게 있느냐?”라고 반문하면서 붓다는 法을 보
는 것이 여래를 보는 것이라고 가르친다.81) 그의 참된 본질은 보
리수 아래서 깨달은 法이다. 그는 성도 직후 선언했다. “내가 이제
막 증득한 이 법은 심오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세속의 즐거움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이 法을 이해하기 어렵다.”82) 하베이(Harvey)는
이 法을 열반으로 이해한다. “다른 말로, 열반을 “본다”는 것은 여
래를 “본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83) 여래와 붓다를 동일시하고
있고, 여래가 열반이기에 여래는 「法身」이라고 제안하고 있는 것
이다.
81) SN, ⅲ. p. 120.
82) MN, ⅰ. p. 167.
83) Peter Harvey, 앞의 책, p. 45.
본질적으로 여래에게 있어 유여의열반은 무여의열반과 동일하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五蘊이 현존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즉 이
세상에서 또는 저 세상에서 오온이 존속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
는 논의로 열반의 실상과 관련하여 적절하지 않다.”84) 육신을 초
월하여 붓다가 증득한 法에서 그의 본질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물론 正覺者붓다의 신체적 죽음은 더 이
상 극복할 수 없는 비극은 아니다.
84) James W. Boyd, 앞의 책, p. 34.
Ⅳ. 붓다의 死後
육신의 죽음 후, 붓다와 중생 사이에는 주요한 차이가 있다. 중
생은 태어나고 죽고 하는 윤회를 되풀이 하지만 붓다는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다. 붓다를 구성하고 있던 假和合된 오온이 분산되
어 존재하지 않게 될 때 유일하게 남은 것은 無爲法즉 열반으로
윤회의 밖에 있다. 따라서 여래는 윤회세계에서 자유로와 생노병
사 등에 구속되지 않는다.85)
85) Norman, 앞의 책, p. 260.
여래 사후의 존재 여부에 대해 「열반경」은 명확한 입장을 보이
고 있지 않다. 이러한 태도는 붓다가 14 가지(또는 10가지)의 문제에
대해 침묵을 고수한 것과 상통한다고 보인다. 14종의 문제에는 여
래 사후의 존재에 관한 물음이 포함되어 있다.
수명을 다한 여래 사후 존속문제에 대해 붓다고사는 어떻게 이
해하고 있을까? 다음의 주석에서 그의 견해를 엿볼 수 있다. “입
멸의 날, 붓다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니 행복했다. ‘이제 오늘 나도
수백 수천의 많은 붓다들이 들어간 不死의 大般涅槃(Mahāparinibbān
a)라는 도시에 들어갈 것이다.”86) 붓다고사가 열반을 도시로 비유
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
한 비유는 붓다고사가 붓다의 입멸 직전 경험한 順․逆의 9차제정
을 행복한 경험으로 주석할 때 나타난다. “열반의 도시를 들어갈
때, 法王인 붓다는 먼저 2,400,000코터에 이루는 모든 등지를 성취
하고 모든 등지의 즐거움을 경험한다. 마치 異國에 가서 먼저 모
든 친지를 포옹하고 즐거워하듯이.”87) 열반의 도시를 묘사하는데
사용된 不死(amata)라는 말도 주목할만한 의미가 있다. 붓다는 아
마도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 즉 재생이 없는 것을 추구했으므로
죽어 재생하는 일은 없다. 無常의 원리에 의하면 태어난 것은 반
드시 사멸하게 마련이다. 生者必滅의 이치가 적용되는 것이 윤회
의 세계이다. 열반은 不生이고 不死이다. 이런 이유로 열반은 태어
남도 죽음도 그리고 죽어 태어나는 일이 없는 것으로 설명된다.
따라서 열반을 성취한 붓다도 不死不生이다라고 논리적으로 유추
할 수 있을 것이다.
86) DA, ii. p. 571.
87) DA, ii. p. 594.
「淸淨道論」(Visudhimagga)에서 붓다고사는 열반을 허무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힘써 배척하고 있다. 그는 열반을 無存在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열반의 존재론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88) 눈에 띄
는 것은 붓다고사가 집중적으로 허무론적인 열반관을 공격하는
것이다. 냐나포니카(Nyanaponika)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
고 있다. “상좌부는 분명히 대승불교도들이 輕量部에 대항하여 비
난한 허무론에 속해 비난되지 않기를 바랬다.” 89)
88) Vism, pp. 507 f. 붓다고사의 견해에 따라 담마팔라도 열반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Nyāṇamoli The Path of Purification
(Colombo : A. Semase), p. 581, fn 18 참조.
89) Nyanponika, “Anatta and Nibbāna : Egolessness and Deliverance”
(Kandy : The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1986) p. 7.
붓다고사는 자신의 견해를 다음의 경전(Udana 80)을 인용하여 근
거로 삼고 있다. “비구여, 태어나지 않고 변화하지 않고 만들어지
지 않고 형성되지 않는 것이 있다.” 노만의 적절한 설명은 여기서
인용할 만 하다. “죽지 않는(amata), 태어나지 않는(ajāta), 늙지 않는
(ajara)” 등의 말이 열반과 함께 사용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죽음, 재생, 늙음이 없는 곳으로, 죽음, 재생, 늙음이 있는 윤회와
대조적이다.90) 토마스는 “열반은 일시적이고 無常한 속성의 세속
적인 존재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고 확신
한다.91)
90) Norman, 앞의 책, p. 262.
91) Thomas, 앞의 책, p. 191 fn 1
붓다고사는 어떻게 열반이 불사가 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열반
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롭다.”92)
그의 견해는 상좌부 전통에서 벗어난 독특한 것은 아니고, 이 전
통에 매우 충실한 것이다. 카즌(Cousins)은 論藏에서 다루어지고 있
는 열반의 존재론적 지위를 연구하고,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
“모든 불교전통이 일치하는 점은 열반은 無爲法이고, 시간적인 것
도 공간적인 것도, 정신적인 것도 물질적인 것도 아니다. 그렇지
만 단순히 유위법의 부재나 소멸도 아니다”.93) “無爲(asankhata)라
는 말은 열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용어이다. 왜냐
하면 상좌부 불교에서 열반은 유일한 無爲法이기 때문이다.”94) 열
반은 유일하게 살아 있는 생명체를 소멸시키는 시간 너머에 존재
한다. “열반은 시간에 구속되어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궁극적 실
재이고 이 진실의 실재는 영원하다.”95)
92) Vism p. 509.
93) L. S. Cousins, “Nibbāna and Abhidhamma” in Buddhist Studies
Review 1, 2, 1983-4, p. 107.
94) Norman, 앞의 책, p. 137.
95) Pande G. C, Studies in the Origins of Buddhism (Delhi : Motilal
Banarsidass. 1974), p. 473.
붓다고사는 죽음(kālaṃ karoti)과 열반 또는 반열반을 구분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붓다는 반열반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수명(k
ālaṃ akari)을 다했다고 한다.96) 不死인 열반의 본질을 열반을 증득
한 붓다에게 적용시킬 때, 우리는 노만의 결론에 동의하게 된다.
“여래는 열반에서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열반에는 죽
음이 없기 때문이고, 열반에는 태어남도 늙음도 없기 때문이다
.”97)
96) DA, ii. p. 595.
97) Norman, 앞의 책, p. 262.
열반을 존재하는 것으로 정의함으로써, 붓다고사는 사후 붓다
의 존재 문제에 관한 허무론적인 견해를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사
후 붓다의 입멸을 붓다가 열반이라는 不死의 도시에 간다고 말함
으로써, 행복한 사건으로 다루고 있다. 「열반경」은 붓다가 죽음의
자리에 누워있는 것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사자처럼 세
존은 오른쪽으로 한발을 다른 한발에 포개고, 정신이 흐트러짐 없
이 집중해 누웠다.98) 붓다고사는 이러한 마지막 장면을 주석한다.
“그가(붓다)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침상에 누웠기 때문에, 「열반
경」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기상에 두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
만 이러한 문맥에서 "일어나지 않은"이란 말은 육체에 관해서만
한 말임을 이해해야 한다.”99) 이것이 곧 입멸한 붓다가 중생 등의
기도에 호응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98) DN, ii. p. 137.
99) DA, ii. p. 575.
붓다와 마라(Māra)사이의 대화는 붓다가 입멸할 때 더 이상 우
리 중생들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열반경」에 의
하면, 마라는 붓다의 정각직후 그에게 다가가 바로 입멸할 것을
요구했다.100) 마라의 목적은 붓다가 중생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법
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하는데 있다. 붓다는 마라가 원하고 있는
것을 예견하고 자신의 가르침이 제자들에 의해 확립되기 전까지
는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이상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붓다가 일단 반열반에 들면, 그는 더 이상 중생들을 가르칠 수 없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붓다가 열반에 들어
갔기 때문에, 더 이상 이 세상의 중생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
으로 이해해도 크게 그릇된 것은 아닐 것이다.
100) DN, ii. p. 112.
결국, 우리는 열반경과 붓다고사의 견해에 의하면, 입멸한 붓
다는 더 이상 그의 제자들에게 접근가능하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대승불교의 無住處涅槃의 개념과 매우 대조
적이다. 無住處涅槃에 의하면 붓다는 깨달은 자 이기 때문에 윤회
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또한 고통받고 있는 중생을 위해 입멸하
지 않고 구제활동을 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열반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대승불교에서는 붓다의 자비와 힘은 매우 위대하다고 믿
어지게 되어 그는 아직도 최후의 열반에 들지 않고 중생을 도우
면서 남아 있다고 생각된다.
Ⅴ. 맺는 말
붓다의 입멸과정이 정각처럼 선정과 밀접히 연계되어 있다는
것은, 붓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늘 “깨어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깨어있는 자”를 의미하는 붓다(Buddha)라는 용어
가 역사적인 붓다에게 가장 맞는 호칭일 것이다. 육신의 죽음에서
도 의식이 혼미한 것이거나 신비로운 황홀 상태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과 그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또렷하게
깨어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붓다의 입멸 과정 중 9차제정은 불교 고유의 四靜慮와 멸진정에
외도의 四無色定이 결합된 것으로 「열반경」에서는 四靜慮를 외도
의 선정과 구분시키고, 그리고 멸진정이 열반과 혼돈되는 것을 애
써 구분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순수한 불교 고유의 선정 수행인
四靜慮를 재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붓다의 반열반과정은 정각 과
정과 동일하다는 것을 논했다. 달리 말하면 유여의열반과 무여의
열반이 동등하다는 것이다. 유여의열반은 정각(sammasambodhi)과
동의어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붓다의 반열반은 정각과 동등하
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붓다의 반열반의 본질을 묻는 것은
그의 정각의 본질을 묻는 것이고, 반열반한 붓다의 존재 모습을
탐구하는 것은 정각한 붓다의 모습을 찾는 것이다. 사후 붓다의
존재 여부나 상태에 관한 물음도 생전에 정각한 붓다의 존재 모
습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열반경」의 입장이
다. 따라서 사후 그의 존재 여부를 묻는 것은 바른 접근법이 아니
므로, 「열반경」도 붓다가 반열반했다라고만 선언하고 그 이후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렇지만 열반에 관한 정확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여
러 가지 오해가 발생하게 되고, 붓다의 반열반도 그러한 오해에
기초하여 허무론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짙어지게 된 것 같다. 그
리하여 「열반경」을 주석하면서, 붓다고사는 열반을 존재론적으로
이해하면서 부정적인 열반관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열반을 정
각과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붓다고사는 붓다
의 반열반을 행복한 사건으로, 그리고 붓다의 반열반을 허무론적
으로 보는 것을 부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열
반관은 뒷날 대승불교의 적극적인 열반관과 일맥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다른 기회에 미루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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