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하세요...()...
붓다께서는 위파사나 수행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는 네단계가 있고 그리고 총 10가지의 족쇄중 각 단계마다 부수어야할 족쇄를 설명 하셨습니다. 그중 8번째에 "우열의식" 이라는 족쇄가 있는데 이는 천상에 태어날 불환과를 얻고 그리고 아라한의 단계에 이르는 마지막 과정인 8번째에 이 번뇌를 설정해 놓았습니다. 그만큼 우열의식이라는 번뇌는 벗어나기가 어렵고 보통의 중생들은 감히 엄두도 낼수 없는 번뇌중의 번뇌 입니다.
불자들은 흔히들 큰 스님이라고 불리우는 분들의 언행을 보고 들으면서 그분들을 존경하고 공양을 드립니다. 하지만 옳다 틀리다, 싫다 좋다, 뛰어나다 아니면 모자란다등의 8번째 족쇄를 생각해 보면 깨달았다는 그분들의 언행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천상에 태어나는 불환과만 얻어도 엄청난 경지 이지요. 7번째 번뇌까지만 끊어도 대단한 경지이겠지요.
하지만 경전을 비교우위별로 나눈 교상판석이나 또는 간화선으로 깨달은 분들의 간화선만이 최고라는 설법과 그리고 깨달은 분들이 만들어 놓으신 수많은 종파들... 교종이니 선종이니 상호 비교 하는 말들... 우열의식의 번뇌를 문뜩 문뜩 느끼곤 합니다. 대승경전은 두가지 관점에서 저는 생각을 합니다.
첫번째는 대승경전 찬술자들의 태도는 모든 경전들을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것인 양 찬술자들의 이름을 명기하지 않았고, 이 대승 경전만이 부처님의 진설이고 그 외 아함 등 부파의 전승은 소승 이라고 폄하 하였습니다. 하지만 대승운동은 새로운 경전의 생산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경전에서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참된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대승 운동이며 불교도를 참다운 삼보의 언덕으로 인도하는 길 이라고 생각 합니다. 깨달았다고 모두다 부처님이 직접 설한것인냥 경전을 만들면 도대체 수많은 경전 더미속에서 그 누가 불설. 비불설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이 위경인지 아닌지 많은 불자들이 햇갈릴 것 입니다.
즉 깨달은 분들이라면 자신들의 의견을 논.소와 같은 형식으로 저술하여 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용수같은 분은 뛰어난 깨달음과 붓다의 가르침에대해서 명퀘한 해석을 많은 책으로 남겨 놓았지만 결코 경전이라는 형식으로 남겨놓지 않았습니다.
이곳 남방불교 에서도 수많은 분들이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 했지만 그 어느누구하나 자신의 이름을 숨기면서까지 마치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것인냥 스토리를 허구로 꾸미면서까지 경전이라는 형식의 책을 찬술한 분은 없습니다. 즉 깨달은 분들이 저술한 책들은 모두다 경전에 대한 주석서 라는 형태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대승경전은 다불.다보살 사상을 내세워 부처님을 신격화 시키고 형상화 시킨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온갖 화려한 문장과 비현실적이고 허황된 스토리 그리고 기이하고도 온갖 납득키 어려운 기적등등... 자등명 법등명이 퇴색되고 무색케 한 잘못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합리적인 것에 익숙한 서양사람들이 경전 첫페이지만 넘겨도 불교는 스스로 깨닫는 것이고 타종교에서 말하는 절대자나 신이라는 존재는 없으며, 자등명 법등명이고........ 그런데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보여주고 있는 기복적인 자세와 그리고 부처님 앞에서 손과 발이 다 닭도록 비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과연 한국불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한국 불교는 그래서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입니다. 사실 명함조차 꺼낼수가 없지요. 물론 간화선을 대표적인 한국불교의 모습이라고 내세우기는 하지만... 세계 곳곳에 있는 명상센터에서 간화선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요...??
두번째로 대승경전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즉 대승경전의 편찬자들이 제2 혹은 3의 붓다였다는는 것을 추론 해볼 수도 있습니다. 즉 역사적으로 2500년 전에 태어났던 붓다 이후 몇백년이 흐른뒤 많은 또다른 붓다가 탄생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처님의 입장에서 경전을 찬술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초기 경전의 설법과 달리 세상도 변하고 나라도 바뀌고 했으니 또다른 모습으로 대승경전을 저술했다고 볼수 있는 것이지요. 화염경/법화경/정토삼부경/대일경/유망경등등 수많은 경전을 편찬한 그들은 모두다 붓다였다는 사실을 추론해 볼수도 있다는 것 입니다. 이런 저의 생각이 과연 합리적이고 상식적일까요...??? ^^.^^
과연 그분들이 제2.3. 의 붓다였을까요..?? 글쎄요... 물론 대승은 아함을 소승이라고 폄하 했지만 결코 아함의 가르침을 소승이라고 한 것이 아니고 부파시대의 일부 수행승을 소승적이라고 비판 했을 뿐이지요. 대승경전의 모든 가르침은 근본경전을 이해하지 않고는 그 가르침의 진리를 제대로 파악치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승의 모든 사상은 근본경전에서 나왔다고 보는게 옳은 시각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승이니 대승이니 간화선이 최고니 어쩌니 하는 말들 또한 모두다 8번째 우열의식의 번뇌를 넘지 못한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다고 해서 결코 대승경전을 폄하하는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근본경전보다 뛰어난 점도 많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더 가깝게 다가오는 부분도 있습니다. 붓다의 사상을 폭넓게 해석했고, 출가승 위주의 불교에서 재가 불교의 기치를 높이 들었고, 근본에서 생각치 못했던 더 넓은 진리의 지평을 우리들에게 보여준 것은 높이 평가 받아야 할 것 입니다.
발전을 했느냐 안 했느냐의 문제는 각자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것 입니다. 그리고 붓다의 근본 가르침을 보존하는게 오늘날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지.. 대승불교라는 한국의 불교나 중국 그리고 일본의 또다른 불교를 보면서 한번쯤 생각해 봐야 겠지요. 과연 어느 것이 진정한 발전 이었는가를요... 변화는 좋지만 변질은 절대로 안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변질을 변화나 발전으로 볼수는 없겠지요.
진리가 둘이 아니듯 붓다가 발견한 것도 진리인데 어찌 그것이 이리저리 휘둘리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해석이 되겠는지요..?? 우리가 어찌 붓다의 가르침을 우리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재단하고 변질시킬 수 있겠는지요..?? 삶의 행복이란 결코 물질적인 풍요로 판가름 할 수 없겠지요.
오늘날 남방불교는 대부분 가난한 나라에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짧은 시각의 단편적인 생각이라고 늘 주장 합니다. 왜냐하면 스리랑카의 2500년 역사상 굶어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사시사철 더운 기후와 풍부한 음식물들... 그리고 옷한벌이면 사시사철 입고 다닐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굳이 삼국시대나 고려 조선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가난하게 살았는지요... 겨울철의 그 엄청난 고통들... 미얀마/태국/스리랑카등이 1000여년전에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결코 우리나라가 이들 보다 잘 살지 못했습니다.
스리랑카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보다 경제력이 나은 나라였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게 별로 없습니다. 자연의 혜택으로 배고픔과 가난을 모르고 산 사람들 입니다. 무엇이 발전이고 무엇이 발전이 아닌지요..??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자연으로 되돌아 가자고 난리 입니다. 전원을 그리워 하고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답게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과거 오천년동안 등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 때 이곳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풍족한 삶과 부족함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오늘날 돈(물질)으로 환산된 가난과 부자의 가치 판단이 과연 얼마나 오래 갈까요..?? 근본불교로 귀의하고자 하는 분들이 엄청 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불교는 근본불교와 티벳 불교 입니다. 물론 티벳 불교는 달라이 라마의 힘이 컸지요. 과연 한국불교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은채 얼마나 한국에서 존재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회귀의 힘과 생명을 근본불교가 얼마나 빨리 넓게 한국에서 자리를 잡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위파사나 수행은 한국에서도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많은 수행센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리고 근본불교를 표방하는 사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알아 보시면 쉽게 다가 갈수 있으리라 믿으며 ... 그러한 위파사나 수행센터에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 것 입니다. 다음에 또 글을 드리겠습니다. 실론섬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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