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되돌아 보는 제 3차 상가띠의 정신
붓다가 열반에 드신지 곧바로 있었던 제 1차 상가띠(Sanghiti. 합송. 경전결집)가 있은 후 약 100년이 지나서 웨살리(Vesali. 비살리) 에서 제2차 상가띠가 개최 되었습니다. 이 2차 결집에서는 장로 "야사"의 지도아래 700여분의 장로들이 모여서 상가(sangha. 승가)의 규칙에 관한 율장의 이론과 실천이 심도있게 논의 되었으며, 어떤 형태의 계율 완화안이 허용 되어야 하는가의 여부가 율장 재결집의 주요 논점 이었습니다.
제 2차 상가띠가 개최된 주요 이유는 "십사(열가지 비법)" 라고 열가지의 행위에 대해서 계율을 어기는 것이라고 판정한 장로파(정통파)에 대해서 진보파(대중부) 의 젊은 수행승들이 불복을 함으로써, 장로들을 중심으로 율장을 중심으로 상가띠를 개최함으로써 불법의 전통성과 삼장의 교법의 왜곡을 방지하고 붓다의 본래 정신을 지킬려고 했던 것 입니다. 이렇게 상좌부(정통파) 와 대중부(진보파) 두개의 근본분열이 있은후 불교는 다시 100년이 지난후 (붓다 열반후 200년이 지난 싯점) 모두 18부파(근본부파였던 상좌부와 대중부 2개파를 합쳐서 모두 20부파)로 나누어 졌습니다.
불멸 후 250년경에 이르러 마우리야 (Maurya) 왕조의 아소카대왕이 불법을 받아 들임으로써 북부 인도 지역에 머물러 있었던 불교는 놀라운 확장을 하게 됩니다. 그는 인도 각지에 포교사를 파견하여 불법을 널리 알렸으며 더욱이 해외에 까지 포교사를 파견 했습니다. 불교에 대해서 남다른 열정을 가졌던 아소카왕은 불교 속에 스며드는 불순한 관습과 비불교적인 요소에 대해서 우려를 하였고, 불교의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불교 승단의 정화운동에 적극적인 역활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또한 당시 여러 부파들로 나누어져 있었던 불교에 대해서도 많은 우려를 하였고 상가 분열로 인한 정통적인 불법의 훼손을 방지하고자 노력 하였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불교를 정통적인 불교로 지키기 위해 그리고 붓다의 교설을 보다 정교한 형태로 체계화 하기 위하여 아소카 대왕의 적극적인 후원아래 Pataliputra (빠탈리뿌트라)에서 목갈리풋따 띠싸 (Moggaliputta Tissa )의 주관하에 1,000여분의 불교 대표들이 모여서 제3차 상가띠(bc241 년)가 개최 되었습니다.
정통을 숭상하는 덕높은 비구들이 붓다의 참된 가르침이 정확한 교의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 결집에 참여를 하였으며 이 3차 상가띠는 무려 9개월에 걸쳐서 이루어졌습니다. 3차 상가띠는 참된 교의가 확실하게 지속될 수 있도록 빠알리어(Pali)를 사용하여 경전 삼장을 체계적으로 편집 하였습니다. 특히 3차 결집은 여러 부파들에 의한 이단적인 견해들을 추방하고 붓다의 가르침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 하였습니다. 그리고 목갈리풋따 띠사가 전승에 따라 "논사(Kathavatthu)" 를 설파 함으로써 "논장"의 형성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3차 경전결집의 진행상항은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경전 결집 역사상 1.2차는 단순히 경.율의 결집이었다고 본다면 제3차 경전 결집은 경전 결집이라는 것 이외에도 당시 부파불교에 의해서 훼손되어 가든 붓다의 원음을 되살리기 위한 불교개혁 운동 이었습니다. 교리상의 문제나 실천수행에 있어서 이단적이고 비불교적인 요소로 인하여 교단이 분열 되고 고착화되어 가던 것을 정통의 불교로 회복시키기 위한 모든 불교인들의 노력의 결집 이었습니다.
약 2200년전 훌륭하신 스승님들은 붓다의 원음을 되돌아 보고 다시 합송하는 상가띠라는 행사를 통하여 불교속에 스며든 불손한 관습과 비불교적인 요소들을 배척하고 순수한 붓다의 원음을 회복코자 했습니다. 9개월이라는 오랜 기간동안 무엇이 붓다의 원음인가를 재삼 되새기며 후세에도 물려 줄 붓다의 올바른 가르침을 높이 세웠습니다.
한국불교의 미래는 이러한 상가띠가 이루어진 배경을 오늘날 다시한번 짚어 봄으로써 한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나 생각 합니다. 그것은 바로 비불교적인 요소를 배척하고 버림으로써 지금이라도 붓다의 원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옛날 처럼 경전 결집 행사를 치루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삼보에 귀의한 불자라면 붓다의 근본 가르침과는 동떨어진 사변적이고 이단적인 견해들을 스스로 추방함으로써 불법의 순수성을 회복하고자 한다면 불교의 앞날은 밝을 것으로 믿습니다.
끝으로 마하왕사(Mahavamasa)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 이교도들은 황색가사가 지니는 이익 때문에 그것을 입었으며, 그들이 자기의 견해를 주장할 때면 언제나 그것을 붓다의 가르침이라는 이름으로 말했다. 그들은 정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편의와 욕망에 따라 행동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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