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8편의 시
1. 욕망
(766)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 잘 될 때에는, 그는 참으로 인간이 갖고 하는 것을 얻어서 기뻐한다.
(767) 욕망을 이루고자 탐욕이 생긴 사람이, 만일 욕망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 그는 화살을 맞은 사람처럼 괴로워 번민한다.
(768) 뱀의 머리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것처럼, 모든 욕망을 피하는 사람은 바른 생각을 하고, 이 세상의 애착을 넘어선다.
(769) 농토, 집터, 황금, 마소(牛馬), 노비, 고용인, 부녀, 친척, 그밖에 여러 가지를 탐내는 사람이 있다면,
(770) 무력한 것(온갖 번뇌)이 그를 이기고 위험과 재난이 그를 짓밟는다. 그러므로 괴로움이 그를 따른다. 마치 파손된 배에 물이 새어들 듯이.
(771) 그래서 사람은 항상 바른 생각을 지키고, 모든 욕망을 회피해야 한다. 배에 스며든 물을 퍼내듯이, 그와 같이 욕망을 버리고 강을 건너 피안에 도달한 사람이 되라.
2.동굴(洞窟) (육신을 동굴에 비유한 것이다)
(772) 동굴(육신)속에 머물러 집착하고, 온갖 번뇌에 덮이어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사람, 이러한 사람은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참으로 이 세상의 욕망을 버리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773) 욕망에 따라 생존의 쾌락에 붙잡힌 사람들은 해탈하기 어렵다. 남이 그를 해탈시켜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래와 과거에 집착하면서 눈앞의 욕망에만 빠져든다.
(774) 그들은 욕망을 탐하고 거기에 빠지고, 인색하고 옳지 못한 일에 친근하지만, 죽을 때에는 괴로움에 짓눌려 슬퍼한다. 여기서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될까 하고.
(775) 그러므로 사람들은 여기서 배워야 한다. 세상에서 옳지 못하다고 하는 그 어떤 일에도 휩쓸려서는 안 된다. 사람의 목숨은 짧은 것이라고 현자는 말하지 않았던가.
(776) 여러가지 생존에 대한 집착에 붙들려 이 세상 사람들이 떨고 있는 것을 나는 본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생존에 대한 집착을 떠나지 못한 채 죽음에 직면하여 울고 있다.
(777) 무엇인가를 내 것이라고 집착해 동요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의 모습은 물이 말라가는 개울에서 허덕이는 물고기와 같다. 이 꼴을 보고 <내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여러 가지 생존에 대해 집착을 버려야 한다.
(778) 현자는 양극단에 대한 욕망을 절제하고, 감관과 대상의 관계를 잘 알아서 탐하는 일이 없다. 자기 자신조차 비난할 만한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보고 듣는 일에 팔리지 않는다.
(779) 생각을 가다듬고 거센 강을 건너라. 성인은 소유하고자 하는 집착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며, 번뇌의 화살을 뽑아 버리고 열심히 정진하여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바라지 않는다.
3. 분노(憤怒)
(780) 마음으로부터 화를 내고 남을 비방하는 사람이 있다. 또한 마음이 진실한 사람이라도 남을 비방하는 일이 있다. 비방하는 말을 들을지라도 성인은 그것에 동요하지 않는다. 성인은 어떤 일에도 마음이 거칠어지지 않는다.
(781) 욕심에 끌리고 소망에 붙들린 사람이 어떻게 자기의 견해를 초월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고 또한 아는 대로 떠들어 댈 것이다.
(782) 누가 묻지도 않는데 남에게 자기의 계율과 도덕을 자랑하는 사람, 스스로 자기 일을 떠들고 다니는 사람은 거룩한 진리를 갖지 못한 사람이라고,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은 말한다.
(783) 마음이 평안하고 안정된 수행자가 계율에 대해, 나는 이렇게 하고 있노라 하면서 뽐내지 않고, 이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번뇌에 불타지 않는다면, 그는 거룩한 진리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은 말한다.
(784) 때묻은 교법을 미리 만들고 고치며, 치우쳐서 자기 안에서만 훌륭한 열매를 보는 사람은 <흔들리는 평안>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785) 모든 사물에 대한 본질을 확실히 알고 자기의 견해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비좁은 견해의 울타리 안에 갇혀 진리를 등지고 또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786) 사악함을 물리친 사람은, 이 세상 어디를 가든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한 편견이 없다. 사악(邪惡)을 물리친 사람은 거짓과 교만을 버렸거늘, 어찌 윤회에 떨어질 것인가. 그에게는 이미 의지하고 가까이 할 아무것도 없다.
(787) 모든 일에 기대고 의지하는 사람은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기대고 의지함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는 집착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그는 이 세상에서 모든 편견을 쓸어 버린 것이다.
4. 청정(청정(淸淨) (참된 수행자 즉 종교인을 여기서는 바라문으로 표현하고 있다)
(788) ‘으뜸가고 청정한 사람을 나는 본다. 사람이 청정해 지는 것은 그 견해에 달려 있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을 으뜸으로 알고 청정을 생각하는 사람은, 견해((見解)를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해서 얻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789) 만일 사람이 견해로 인해서 청정해 질 수 있는 것이라면, 또 사람이 지식에 의해 괴로움을 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번뇌에 얽매인 사람이 바른 길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도 청정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말하는 사람을 ‘편견이 있는 사람’이라 부른다.
(790) 바라문은 바른 길이 아니고는 본 것, 배운 것, 계율, 도덕, 사색 중 어느 것도 청정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재앙과 복에 때묻지 않고 자아를 버려, 이 세상에서 재앙과 복의 원인을 만들지 않는다.
(791) 옛 스승을 버리고 다른 스승을 의지하며, 번뇌에 따라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은 집착을 뛰어 넘을 수 없다. 그들은 버렸다가도 또 잡아버린다. 원숭이가 나뭇가지를 잡았다가 다시 놓아 버리듯이.
(792) 스스로 맹세와 계율을 가진 사람은 생각에 잠겨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베다를 통해 진리를 알고 이해하며, 잡다한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793) 그는 모든 사물에 대해서 보고 배우고 생각한 것을 다스리고 스스로 지배한다. 이렇게 관찰하고 걸림 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어찌 이 세상에서 그릇된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794) 그들은 그릇된 생각을 하지 않고, 어떤 것을 남달리 소중하게 여기지도 않으며, <궁극의 청정>을 말하지도 않는다. 결박되어 있는 모든 집착을 버리고 어떠한 세상 사물에 대해서도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다.
(795) 바라문은 번뇌를 초월해 있다. 그가 무엇을 보거나 알아서 그것에 집착하는 일은 없다. 그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또 욕망에서 떠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는 이 세상에서는 이것이 으뜸이라고 부질없이 집착하지 않는다.
5. 으뜸 가는 것
(796) 세상에서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보는 것들을 <으뜸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 견해에 붙들려 그밖의 다른 것들은 다 ‘뒤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여러 가지 논쟁을 뛰어넘을 수가 없다.
(797) 그는 본 것, 배운 것, 계율이나 도덕, 사색한 것에 대해서 혼자서 어떤 결론을 내리고서, 그것만을 집착한 나머지, 그밖에 다른 것은 모두 뒤 떨어진 것으로 안다.
(798) 사람이 어떤 한가지 일에 치중한 나머지, 그 밖의 다른 것은 모두 가치가 없다고 본다면, 그것은 커다란 장애라고,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기 때문에 수행자는 본 것, 배운 것, 사색한 것, 또는 계율이나 도덕에 붙잡혀서는 안 된다.
(799) 지혜에 대해서도, 계율이나 도덕에 대해서도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자기를 남과 동등하다거나 남보다 못하다거나 또는 뛰어났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800) 그는 이미 가지고 있던 견해를 버리고 집착하지 않으며, 지혜에 대해서도 특별히 의존하지 않는다. 그는 실로 여러 가지 다른 견해로 분열된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어느 한쪽을 따르는 일이 없고, 어떤 견해일지라도 그대로 믿는 일이 없다.
(801) 그는 양극단에 대해서, 여러 생존에 대해서, 이 세상 대해서도 저 세상에 대해서도 원하는 바가 없다. 모든 사물에 대해 단정하는 편견이 그에게는 조금도 없다.
(802) 그는 이 세상에서 본 것, 배운 것, 또는 사색한 것에 대해서 티끌만한 편견도 가지지 않는다. 어떠한 견해에도 집착하지 않는 바라문이, 이 세상에서 어찌 그릇된 생각을 하겠는가.
(803) 그는 그릇된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어느 한가지 견해만을 특별히 존중하지도 않는다. 그는 모든 가르침을 원하지도 않는다. 바라문은 계율이나 도덕에 이끌리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피안에 이르러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6. 늙음
(804) 아, 짧도다 인간의 생명이여, 백 살도 못되어 죽어 버리는가.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결국은 늙어서 죽는 것을.
(805) 사람은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는 물건 때문에 근심한다. 자기가 소유한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 것은 모두 변하고 없어지는 것으로 알아, 집에 머물러 있지 말아라.
(806) 사람이 ‘이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물건, 그것은 그 사람이 죽음으로써 잃게 된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현명하게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 내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 잡히지 말아라.
(807) 이를 테면, 잠이 깬 사람은 꿈 속에서 만난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듯이, 사랑하는 사람도 죽어 이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만날 수가 없다.
(808) 권세가 있던 사람도 한번 죽은 후에는 그 이름만이 남을 뿐이다.
(809) 내 것이라고 집착하여 욕심 부리는 사람은, 걱정과 슬픔과 인색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평안을 얻은 성인들은 모든 소유를 버리고 떠난 것이다.
(810) 세상에서 물러나 수행을 닦는 사람은 멀리 떨어진 곳을 즐겨 찾는다. 그가 생존의 영역 속에 자기를 집어넣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811) 성인은 어떤 곳에도 머무르지 않고, 사랑하거나 미워하지도 않는다. 또 슬픔도 인색함도 그를 더럽히지 않는다. 마치 진흙에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813) 연꽃 잎에 물방울이 묻지 않듯이, 성인은 보고 배우고 생각한 어떤 일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것에 기대어 깨끗해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탐내지 않고 탐욕에서 떠나려 하지도 않는다.
7. 구도자 팃사 마이트레야(멧테야)
(814) 구도자 팃사 마이트레야가 말했다. “스승이시여, 성교에 탐익하는 자의 파멸을 말해 주십시오. 당신의 가르침을 듣고 우리도 멀리 할 것을 배우겠습니다.”
(815) 스승께서는 대답하셨다. “마이트레야여, 성교에 빠지는 자는 가르침을 잃고, 그 수행은 그릇되고 나쁘다. 이것은 그들 안에 있는 천박한 요소이다.
(816) 지금까지 독신으로(순결하게) 살다가 나중에 성교에 빠지는 자가, 수레가 길에서 벗어난 것과 같다.
(817) 지금껏 그가 쌓았던 명예와 명성을 다 잃게 된다. 이것을 알고 성교를 끊도록 힘쓰라.
(818) 그는 온갖 욕심에 사로잡혀 굶주린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남의 비난을 듣고 부끄러워진다.
(819) 남에게 욕을 먹으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거짓말을 한다. 이것에 그에게 커다란 장애(결점)이다.
(820) 순결을 지키고 있을 때는 지혜로운 분이라고 존경 받던 사람도, 성교에 빠지면 어리석은 사람처럼 괴로워 한다.
(821) 성인은 이 세상에서 언제든지 이러한 재난이 있음을 알아, 굳게 독신을 지키고 성교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822) 속된 일에서 떠나는 것을 배우라. 이것은 모든 성인에게 있어 으뜸가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자기가 최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만 평안에 가까워졌을 뿐이다.
(823) 성인은 온갖 욕망을 거들떠보지 않으며, 이를 떠나 수행하고 거센 흐름을 건넜기 때문에, 온갖 욕망에 속박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한다.”
8. 파수라
(824) 어떤 사람들은 ‘이것만이 청정하다’고 고집하면서, 다른 가르침은 청정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기가 따르고 있는 것만이 참된 길이라고 하면서, 서로 다른 진리를 고집하고 있다.
(825) 그들은 토론을 좋아하고, 집회에 나가 서로 상대방을 어리석은 자라고 비방하며, 스승을 등에 업고서 논쟁을 벌인다. 자신이 논쟁에서 이기고자 스스로를 진리에 도달했다고 하면서.
(826) 논쟁에 참가한 사람은 이기고자 노력 한다. 그리고 패배하면 풀이 죽어 상대방의 결점을 찾다가 남에게 비난을 받고 화를 낸다.
(827) 다른 사람들이 그가 말한 것에 대해서 ‘그대는 패배했다’’논파 당했다’고 하면, 논쟁에 패배한자는 슬피 울고, ‘저 사람이 나를 이겼노라’고 비탄에 잠긴다.
(828) 이러한 논쟁이 수행자들 사이에 일어나면, 이들 가운데에는 이기는 사람이 있고 패배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논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칭찬을 받는 것 이외에 아무런 이익도 없기 때문이다.
(829) 또는 다름 사람들 앞에서 자기 의견을 말하여 그로 인해 칭찬을 받으면, 속으로 기대했던 이익을 얻어, 그 때문에 기뻐 우쭐해진다.
(830) 우쭐해진다는 것은 오히려 그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 그는 교만해지고 허세를 부리게 된다. 그러므로 논쟁을 해서는 안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도 논쟁으로 청정이 얻어진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831) 이를 테면, 국왕의 녹을 먹고 사는 용사가 상대편 용사를 보고 고함을 지르며 달려가는 것과 같다. 용사여, 그 적이(토론자) 있는 곳으로 가라. 그러나 우리가 싸워야 하는 적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832) 자기만의 철학적 견해를 가지고 논쟁하며 ‘이것만이 진리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대는 그들에게 말하라. ‘논쟁이 일어나도 그대와 상대해 줄 사람은 여기에는 없다’고.
(833) 또 번뇌의 군대를 물리치고 , 바른 견해가 모든 편견과 부딪히지 않게 하는 사람들이다. 그대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파수라여, 오랫동안 <으뜸가는 것>이었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834) 그런데 그대는 ‘나야말로 승리를 거두리라’고 생각하며, 마음 속에 여러 가지 편견을 가지고, 사특한 악을 물리친 사람(부처님)과 같이 걸어가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진리에 이르지 못한다.
9. 마간디야 (마간디야라는 바라문이 아름다운 자기 딸을 데리고 와서 부처님께 아내로 삼아 달라는 권유를 하자, 이때 부처님께서 하신 설법이다).
(835)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예전에 도를 닦을 때에 집착과 혐오와 탐욕이라는 세 마녀를 보고도 그녀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욕망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오줌 똥으로 가득 찬 그 여자라는게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그녀들에게 발을 접촉하기조차 싫었다.
(836) 마아간디야가 말했다. “ 만약 당신이 여러 왕들이 원했던 여자나 보물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어떠한 견해를 어떠한 계율, 도덕 ,생활규범을, 그리고 어떠한 생존 상태로 태어나는 것을 말씀하십니까?”
(837)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마간디야여, ‘나는 이런 것을 말한다’고 정해 놓은 것이 없다. 모든 사물에 대한 집착을 분명히 알고, 모든 견해에는 과오가 있음을 보고, 어느 한 견해를 고집하는 일이 없이, 안으로 살피면서 마음의 평안을 알았노라.”
(838) 마간디야가 말했다. “성인이시여, 당신께서는 생각하고 정해 놓은 것을 고집함이 없이 <마음의 평안>이란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을 다른 현인들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839)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간디야여, 견해에 의해서나 학문에 의해서나, 지식이나 계율 혹은 도덕에 의해서 청정해 질 수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견해와 학문과 지식이 없이도, 계율과 도덕을 지키지 않고도 청정해 질 수 있다고도 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버리고 고집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덧없는 생존을 원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마음의 평안>이다.”
(840) 마간디야가 말했다. “만약 견해와 학문과 지식과 계율이나 도덕에 의해서도 청정해 질 수 없다 하고, 또한 무견해, 무학, 무식에 의해서도, 계율과 도덕을 지키지 않는 것에 의해서도, 청정해 질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가르침이라고 나는 생각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견해에 의해 청정해 질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841)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자기 소견에 의해서 물어 보기 때문에 집착에 빠진 것이다. 그대는 이 마음의 평안에 대해서 조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대는 나를 보고 사람을 혼란하게 만든다고 말하는 것이다.
(842) ‘동등하다’든가’‘뛰어나다’던가 혹은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는 그런 생각 때문에 흔들릴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에게는 ‘동등하다’던지 ‘뛰어나다’’뒤떨어진다’는 생각이 없다.
(843) 그런 바라문이 무엇 때문에 ‘내 말은 진실하다’고 하겠는가, 또 그는 ‘네 말은 거짓이다’라고 하며 누구와 논쟁 하겠는가. 같다든가 같지 않다든가 하는 분별이 없어진 사람이 누구와 논쟁을 벌이겠는가.
(844) 집을 버리고 거처도 없이 방랑하며, 마을 사람들과 친교((親交)를 갖지 않는 성인은, 온갖 욕망을 떠나 미래에 희망을 두어서는 안되며, 또한 군중들에게 자기만의 견해를 내세워 논쟁을 벌여서도 안 된다.
(845) 용(수행의 완성자)은 모든 편견을 떠나 세상을 두루 다니며 수행하기 때문에, 고집을 부리며 논쟁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물속의 연꽃이 물이나 진흙에 더럽히지 않듯이, 성인은 평안을 말하는 사람이므로 탐내지도 않고, 욕망에도 세속에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846) 베다에 통달한 사람은 견해나 사색에 있어서 교만하지 않다. 그의 본성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업에 의해서도 학문에 의해서도 이끌리지 않는다. 그는 어떤 집착하는 것에도 끌려 들어가지 않는다.
(847) 생각을 떠난 사람에게는 얽매임이 없다.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사람에게는 어리석음이 없다. 생각과 견해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남과 충돌하면서 세상을 방황한다.”
10. 죽음이 오기전에
(848) “어떻게 보고, 어떤 계율을 지키는 사람을 <평안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고타마여, 그 가장 뛰어난 사람을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849) 스승은 대답하셨다. “죽기 전에 집착을 떠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는 미래에 대해서도 별로 걱정할 것이 없다.
(850) 그 성인은 화내지 않고, 두려워 떨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으며, 주문을 외우고 경박하게 굴지 않고, 말을 삼간다.
(851) 미래를 원하지도 않고, 과거를 추억하며 우울해 하지도 않는다. 감관에 닿는 모든 대상에서 멀리 떨어 질 것을 생각하며, 여러 견해에도 이끌리는 일이 없다.
(852) 탐욕에서 멀리 떠나 거짓 없고 욕심 내지 않으며, 인색하거나 거만하지 않으며, 미움 받지 않고 한 입에서 두말을 하지 않는다.
(853) 쾌락에 빠지지 않고 거만하지도 않으면서, 부드럽고 상냥하게 말하며, 어떤 것을 무조건 믿는 일도 없고 욕심을 버리는 일도 없다.
(854) 이익을 기대하고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이익이 없을지라도 화내지 않는다. 집착 때문에 남을 미워하지 않으며, 맛있는 음식을 탐닉 하지도 않는다.
(855) 평온해 있고, 항상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남을 자기와 같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또 자기가 뛰어났거나 못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에게는 더 이상 번뇌의 불이 타오르지 않는다.
(856) 걸림이 없는 사람은 진리를 알아 걸림이 없는 것이다. 그에게는 생존을 위한 집착이나 생존을 끊어 버리려는 집착도 없다.
(857) 모든 욕망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 그야말로 <평안한 사람>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에게는 더 이상 얽매임의 매듭이 없고, 이미 모든 집착을 뛰어 넘었다.
(858) 그에게는 자식도 가축도 논밭도 집도 없다. 이미 얻은 것도 아직 얻지 못한 것도 그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다.
(859) 범부와 사문 또는 바라문들이 그를 비난하여 탐욕의 허물이 있다고 하겠지만, 그는 욕심 같은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여러 가지 논쟁에도 동요되지 않는다.
(860) 성인은 탐욕을 떠나 인색하지 않으며 ‘나는 뛰어나다’던가 ‘나는 동등하다’던가, ‘나는 뒤떨어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분별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릇된 생각에 빠지지도 않는다.
(861) 그는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없다. 또 무소유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그는 모든 사물에 이끌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참으로 <평안한 사람>이라 할만 하다.
11. 투쟁(鬪爭)
(862) “투쟁, 논쟁, 근심, 슬픔, 인색, 교만, 오만, 거친 말은 어디서 일어나는 것인지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863) “투쟁, 논쟁, 근심, 슬픔, 인색, 교만, 오만, 거친 말은 사랑하고 좋아하는 데서 일어난다. 투쟁과 논쟁에는 인색이 따르고, 논쟁이 일어나면 나쁜 말이 나온다.”
(864) “세상에서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 인연이 되어 일어납니까? 또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욕심은 무슨 인연으로 생기며, 사람이 내세에 대해서 가지는 희망과 그 성취는 무슨 인연으로 생깁니까?” (865) “세상에서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과 욕심은 욕망이 인연이 되어 생긴다. 또 사람들이 내세에 대해서 갖는 희망과 성취도 이것을 인연으로 하여 일어난다.”
(866) “그러면 세상에서 욕망은 무엇을 인연으로 일어납니까? 또 형이상학적인 단정은 무엇에서 생깁니까? 분노와 거짓말과 의혹과 사문이 말하는 일들은 무엇에서 일어납니까?”
(867) “세상에서 쾌감(快感) 불쾌감(不快感) (좋거나 나쁘거나 하는 느낌)라고 하는 것에 의해서 욕망이 일어난다. 모든 물질적 존재에 있어 발생하고 소멸하는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외적인 사물에 사로 잡혔다고 단정을 내린다.
(868) 분노와 거짓말과 의혹, 이런 것도 유쾌, 불쾌의 두 가지 감정이 있을 때 나타난다. 의혹이 있는 자는 지혜의 길에서 배우라. 사문은 알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을 말하는 것이다.”
(869) “좋거나 나쁘거나 하는 것은 무엇을 인연으로 해서 일어 납니까? 또 무엇이 없을 때 이것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생기고 소멸하는 뜻과 그 인연이 되어 있는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870) “좋거나 나쁘다는 느낌은 접촉을 인연으로 해서 일어난다. 접촉이 없을 때에는 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생기고 소멸한다는 뜻과 그 인연이 되어 있는 접촉을 나는 너에게 말한다.”
(871) “세상에서 접촉은 무엇을 인연으로 일어 납니까? 집착은 무엇에서 생깁니까? 무엇이 없을 때 집착이 없어집니까? 또 무엇이 소멸했을 때 접촉을 없앨 수 있습니까?”
(872) “명칭과 형태로 인해서 접촉이 일어난다. 모든 집착은 요구에 의해서 생긴다. 요구가 없을 때는 집착도 없어지며, 형태가 소멸했을 때는 접촉도 없어지고 만다.”
(873) “어떻게 행하는 자에게 형태가 소멸됩니까? 소멸되는 모습을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그것을 알고자 합니다. 나는 이같이 생각 했습니다.
(874) “바르게 생각하지도 말고 잘못 생각하지도 말며, 생각을 가지지도 말고 생각을 없애지도 말라. 이렇게 수행하는 자에게 형태가 소멸한다. 그러나 넓혀지는 의식은 생각을 인연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875) “우리가 당신께 질문한 것을 당신께서는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것을 당신께 묻겠으니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서 어떤 현자들은 이 상태야말로 사람의 으뜸 가는 청정한 경지라고 말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청정한 경지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876) “이 세상의 어떤 현자들은 이 상태야말로 최상의 청정한 경지라고 말한다. 또 그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단멸(斷滅)을 말하고, 정신도 육체도 남김없이 소멸하는 데에 으뜸가는 청정한 경지가 있다고 말한다.”
(877) “그러나 생각이 깊은 성인은, 이 사람들은 ‘걸림이 없다’는 것, 여러 가지 걸림을 알고 ‘현자는 여러 가지 덧없는 생존을 받지 않는다’고 알아, 해탈한 사람은 논쟁에 끼여 들지 않는다.”
12. 문답 – 첫째 잇닿은 응답 - 소편(小篇)
(878) 세상 학자들은 저마다 다른 견해를 가지고, 서로 다른 편견을 가지고, 자기야말로 진리에 통달한 사람이라 하면서 여러 가지 주장을 한다. ‘이렇게 아는 사람은 진리를 아는 사람이다. 이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아직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879) 그들은 이렇듯 다른 견해를 가지고 논쟁하며 ‘저 사람은 어리석어 진리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자기야말로 진리에 이른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지만, 그들 중에 누구의 말이 진실한 것일까?
(880) 만약 남의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어리석고 저속하여 지혜가 뒤 떨어진 사람이라면, 그들은 모두 각자의 견해만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어리석고 지혜가 뒤떨어진 사람인 것이다.
(881) 또 만약 자기의 견해로 인해 깨끗해지고 완전한 지혜를 가진 자, 진리를 터득한 자, 밝은 지혜를 지닌 자가 된다면, 그들의 견해는 그러한 점에서 똑같이 완전하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지혜가 뒤떨어진 자는 없을 것이다.
(882) 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서로 비방하는 말을 듣기만 할 뿐, ‘이것이 진실이다’고 그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견해를 진실이라 생각한다. 그러기 때문에 남을 <어리석은 자>라고 보는 것이다.
(883) 어떤 사람들이 ‘진리다, 진실하다’고 말하는 그 견해를 다른 사람들은 ‘허위다, 허망하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그들은 서로 다른 편견을 가지고 논쟁한다. 어째서 사문들은 똑 같은 것을 똑같이 말하지 않는 것일까?
(884) 진리는 하나뿐, 둘은 없다. 그 진리를 안 사람은 다투는 일이 없다. 그들은 각기 다른 진리를 찬양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문들은 똑 같은 것을 똑같이 말하지 않는다.
(885) 스스로 진리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면서 말하는 사람들은, 어째서 여러 가지 다른 진리를 내세우는 것일까? 그들은 여러 가지 다른 진리를 남에게서 들은 것일까? 아니면, 자기의 사색에 의한 것일까?
(886) 세상에 여러 가지 다른 진리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원한 것으로 상상할 따름이다. 그들은 자기만의 편견에 사로잡혀 사색하고 탐구한 나머지 ‘내 말은 진리다’’다른 사람의 말은 허황하다’라고 두 가지로 말하는 것이다.
(887)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 오는 견해나 학문, 계율, 서원, 사색등 남의 말에 의존하여, 자기 학설만을 고집하며 ‘반대하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진리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다’라고 한다.
(888) 반대자들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보는 동시에, 자기는 진리에 이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스스로 자기는 진리에 이른 사람이라 하면서 남을 멸시한다.
(889) 그는 그릇된 어리석은 생각으로 차 있고 교만에 넘쳐 있다. 자기는 완전하다고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제 1인자라 자만한다. 그의 견해는 자신이 볼 때 그처럼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890) 만약 남이 자기를 어리석다고 해서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자신도 상대와 함께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이다. 또한 스스로를 베다에 통달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라 부를 수 있다면, 여러 사문 중에 어리석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891) ‘내 학설 이외의 가르침을 말하는 사람들은, 청정하지 않으며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외도들은 흔히 말한다. 그들은 자기의 견해에 빠져, 때가 끼어 있는 것이다.
(892) 자기 학설만을 청정하다 말하고, 남의 가르침에는 청정이 없다고 한다. 이교도의 무리들은 이와 같은 집착에 빠져 자기의 학설만을 완고히 내세운다.
(893) 자기의 학설을 완고히 내세우고 있지만, 어느 누구를 어리석은 사람이라 볼 수 있을 것인가. 남의 가르침을 어리석다거나 옳지 않다고 한다면, 그는 스스로 고집쟁이가 되고 말 것이다.
(894) 학설의 결정에 있어서 스스로 잘 헤아리면서도 다시 그는 세상에서 논쟁을 만들게 된다. 모든 철학적 단정과 예단을 버렸다면 사람들은 고집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13. 문답 – 둘째 잇닿은 응답 - 장편(長篇)
(895) 이렇게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면서 ‘이것만이 진리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다만 그를 따르는 일부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뿐.
(896) 가령 칭찬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순간이어서 평안을 얻지 못한다. 논쟁의 결과는 칭찬과 비난 두 가지 뿐이라고 나는 말한다. 이것을 보고 그대들은 논쟁이 없는 절대 평화의 경지를 알아 논쟁하지 말아라.
(897) 대개 저속한 무리들이 갖는 이러한 세속적인 견해를 지혜로운 사람들은 가까이 하지 않는다. 그는 보고 듣는 일에 대해 ‘이것이다’라고 단정하지 않기 때문에 걸림이 없다. 그는 무엇에 걸릴 것 인가.
(898) 계율을 으뜸가는 것으로 받드는 사람들은 ‘계율을 지킴으로써 청정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며 계율을 받는다. ‘우리는 이 가르침을 따르자. 그러면 청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고 하면서. 진리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덧없는 생존에 유혹되고 있는 것이다.
(899) 만약 계율이나 도덕을 깨뜨렸다면 그는 두려워 떤다. 그 는 ‘이곳에만 청정이 있다’라고 갈망한다. 이를테면, 대상(카라반.隊商)의 무리에서 이탈된 상인이 대상의 무리를 찾고, 집을 떠난 나그네가 집을 찾는 것처럼.
(900) 모든 계율과 맹세를 버리고, 세상에서 죄가 있든 없든 모든 행위를 다 버리고, 청정하다든가 부정하다든가 하면서 어떤 것을 구하는 바도 없이, 그것들에게 얽매이지 말고 수행하여라. 물론 평안을 고집하지도 말고.
(901) 하기 싫은 고행을 하고, 혹은 보고 배우고 생각한 것을 가지고 음성을 높여 청정을 찬탄하는 이는, 덧없는 생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902) 원하고 구하는 이에게는 욕심이 따른다. 또 계략이 있을 때는 두려움이 따른다. 이 세상에서 생도 사도 없는 사람, 그는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원하고 구할 것인가.
(903) 어떤 사람이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하는 가르침을 다른 사람들은 <천박한 것>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 어느 것이 참다운 주장일 것인가. 그들은 저마다 자기야말로 진리에 이른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904) 그들은 자기의 가르침만을 완전하다 하고, 남의 가르침을 천박하다고 한다. 그들은 이렇게 서로 다른 편견을 가지고 논쟁하며, 저마다 자기의 가르침을 진리라고 말한다.
(905) 만약 남이 천박하다고 비난한다고 하여 정말 천박해 진다면 모든 가르침 가운데서 뛰어난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가르침만 고집하고, 남의 가르침은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기 때문이다.
(906) 그들의 스스로 자기의 길을 찬양하는 것처럼, 자기의 가르침을 존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가르침은 진실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 가르침은 모두가 청정하기 때문이다.
(907) 바라문들은 남에게 이끌리지 않는다. 또한 여러 가르침에 대해서 단정을 내리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논쟁을 초월해 있다. 남의 가르침을 가장 훌륭하다고 보지도 않기 때문에.
(908) ‘우리는 안다. 우리는 본다. 이것은 사실이다’라는 견해에 의해 청정해 질 수 있다고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비록 그가 보았다 하더라도 그 자신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그들은 바른 길에서 벗어난 채, 다른 것에 의해 청정해 질 수 있다고 하는데.
(909) 보는 사람은 이름과 형태를 본다. 보고 나서는 그것들이 영원하여, 즐거움을 주고,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보고 싶은 사람은 많든 적든 그렇게 볼 것이다.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은 그렇게 봄으로써 청정해 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910) 집착하여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견해만 존중하므로 그를 인도하기란 매우 어렵다. 자기가 믿고 있는 것만이 옳다고 하며, 그것에 의해서만 청정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와 같이 하나만을 본 것이다.
(911) 바라문은 바르게 알고 그릇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기 소견에 휩쓸리지 않고 지식에도 기대지 않는다. 그는 범속한 모든 견해를 알고 있지만 어느 것에도 마음에 두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거기에 집착하고 있지만.
(912) 성자는 이 세상에서 모든 속박을 버리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에도 어느 한쪽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는 불안한 사람들 가운데 있으면서도 평안하고 태연하며 집착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거기에 집착하고 있지만.
(913) 지난 허물은 버리고 새로운 허물을 만들지 않으며 욕심을 부리지 않고 논쟁에 집착하는 일도 없다. 현자는 모든 견해를 벗어나 세상에 물들지 않으며, 자책할 일도 없다.
(914) 현자는 보고 배우고 생각한 어떤 일에 대해서도 맞서지 않는다. 그는 모든 짐을 벗어 버렸다. 그는 계략을 꾸미지 않고, 쾌락에 빠지지 않으며,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14. 빠름(迅速)
(915) “태양의 후예이신 위대한 선인(고타마)께 세속에서 멀리 떠나는 일과 절대 평화의 경지에 대해 묻겠습니다. 수행자는 어떻게 보아야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평안에 들 수 있겠습니까?”
(916) 스승께서는 대답하셨다. “내가 존재 한다는 의식의 근본을 모두 잘라 없애고,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집착까지도 눌러 버리도록 항상 열심히 배우라.
(917) 안으로든 밖으로든, 진리를 알기 위해 노력하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교만한 마음을 내서는 안 된다. 진리에 도달한 사람은 그것이 평안이라고 하지 않는다.
(918) 이로 말미암아 ‘나는 뛰어나다’던가 ‘나는 뒤떨어진다’던가 혹은 ‘나는 대등하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러 가지 질문을 받더라도 자기가 잘났다고 망녕되게 생각하지 말아라.
(919) 수행자는 마음이 평안해야 한다. 밖에서 고요함을 찾지도 말아라. 안으로 평안하게 된 사람은 고집할 것이 없다. 하물며 어찌 버릴 것이 있으랴.
(920)l
바다 깊은 곳에는 파도가 일지 않고 잔잔하듯이, 고요히 멎어 움직이지 말아라. 수행자는 무슨 일에나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921) “눈을 뜨신 분께서는 몸소 체험하신 법, 즉 위험과 재난의 극복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바른 길을 일러 주십시오. 계율이나 정신을 안정시키는 방법도 말씀해 주십시오.”
(922) “눈으로 보는 것에 탐내지 말라. 저속한 이야기에서 귀를 멀리 하라. 맛에 탐착하지 말라.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내 것이라고 고집하지 말아라.
(923) 고통을 겪을 때라도 수행자는 결코 비탄에 빠져서는 안 된다. 생존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무서운 것을 만났을 때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924) 음식이나 옷을 얻더라도 챙겨 놓거나 쌓아 두어서는 안 된다(너무 많아서는 안 된다). 또 그런 것을 얻을 수 없다고 해서 걱정해서도 안 된다.
(925) 마음을 안정 시켜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 후회하지 말아라. 게으르지 말아라. 그리고 수행자는 한가하고 고요한 앉을 자리와 누울 곳에서 살아야 한다.
(926) 잠을 많이 자서는 안 된다. 부지런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게으름과 거짓과 수다와 이성간의 사귐과 겉치레를 버려라.
(927) 내 제자는 꿈을 해몽하거나 관상을 보거나 점을 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임신술이나 의술을 행해서도 안 된다.
(928) 수행자는 비난을 받더라도 걱정해서는 안 된다. 칭찬을 받더라도 우쭐거리지 말아라. 탐욕과 인색과 성냄과 욕설을 멀리해야 한다.
(929) 수행자는 장사를 해서는 안 된다. 결코 남을 비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가까이 사귀어서도 안 된다.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지 말아라.
(930) 또 수행자는 거만해서는 안 된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말을 꾸며서도 안 된다. 오만불손하거나 불화를 가져 올 말을 해서는 안 된다.
(931) 거짓말을 피하라. 남을 속이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생활에 대해서나 지혜에 대해서, 혹은 계율이나 도덕에 대해서, 자기가 남보다 뛰어났다고 생각 해서는 안 된다.
(932) 출가 수행자나 말 많은 세속인들 한테 욕을 먹거나 불쾌한 말을 많이 듣더라도 거친 말로 대꾸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수행자는 적대적인 대답을 하지 않는다.
(933) 수행자는 이 이치를 잘 알아, 잘 분별하고 늘 조심해서 배우라. 모든 번뇌의 소멸된 상태가 <평안>임을 알고, 고타마의 가르침을 게을리 하지 말아라.
(934) 그는 스스로 이기고 남에게 지는 일이 없다. 남에게서 전해 들은 것이 아니고 스스로 획득한 진리를 보았다. 그러므로 스승의 가르침에 게으르지 말고, 항상 예배하고 따라 배우라.”
(935) 이와 같이 스승은 말씀하셨다.
15. 무기를 만드는 일(몽둥이를 만드는 일)
(935) 서로 말다툼 하는 사람들을 보라. 몽둥이(무기)를 드는데서 두려움이 생긴다. 내가 어떻게 해서 그것을 멀리 했는지, 멀리한 일에 대해서 말 하리라.
(396) 물이 말라가는 개울의 물고기처럼 두려워 떨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또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두려워졌다.
(937) 이 세상 어느 곳도 견고하지는 않다. 어느 곳이나 모두 흔들리고 있다. 나는 내가 의지 할 곳을 찾았지만, 이미 죽음과 고통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 곳은 없었다.
(938) 모든 살아 있는 것이 결국 죽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불안해 졌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마음 속에 차마 볼 수 없는 번뇌의 화살이 박혀 있는 것을 보았다.
(939) 이 박힌 화살을 뽑지 못한 자는 사방을 헤맨다. 이 화살을 뽑아 버리면 헤매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940)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 학문을 배운다. 그러나 그 여러 가지 속박의 굴레에 빠져서는 안 된다. 모든 욕망을 완전히 알고 나서 평안을 배우라.
(941) 성자는 성실해야 한다. 오만하지 않고 더러운 탐욕과 인색을 초월해야 한다.
(942)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잠과 권태와 우울을 이겨내야 한다. 게을러서는 안 된다. 교만해서도 안 된다.
(943) 거짓말을 피하라. 아름다운 겉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또 교만한 마음을 잘 알아라. 포악하지 말아라.
(944) 낡은 것을 좋아하지 말아라. 새로운 것에 매혹 당하지도 말아라. 사라져 가는 것을 슬퍼하지 말아라. 잡아 끄는 것(애착. 욕망)에 붙잡히지 말아라.
(945) 나는 잡아 끄는 것을 탐욕, 거센 흐름, 빨아 들이는 욕망이라고 부르며, 또는 계략, 포착, 넘기기 힘든 욕망의 진흙탕이라고도 한다.
(946) 성자와 바라문은 진실에서 떠나지 않고, 확실한 언덕 위에 서 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평안(해탈)에 이른 사람>이라 불린다.
(947)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고 베다의 달인이다. 그는 진리를 알아 걸림이 없다. 그는 세상에서 바르게 행동하고, 이 세상에서 어떠한 것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948) 이 세상에서 모든 욕망을 초월하고, 극복하기 어려운 집착을 넘어 선 사람은 거센 흐름에 떠내려 가지 않고 얽매이지도 않는다. 걱정하지 않고 누군가를 사모하여 애태우지도 않는다.
(949) 과거에 있었던 것(번뇌)을 말려 버려라. 미래에는 그대에게 아무것도 없게 하라. 중간(현재)에도 아무 일에나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해탈을 얻으리라.
(950) 명칭과 형태에 대해서 내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 또는 무엇인가 없다고 해서 근심하지 않는 사람, 그는 참으로 늙지 않는다.
(951) ‘이것이 내 것이다’ 또는 ‘이것은 남의 것이다’하는 생각이 없는 사람, 그는 내 것이다라는 생각이 없으므로, 내게는 없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는다.
(952) 시기하지 않고, 탐내지 않으며, 흔들려 괴로워하지 않고, 만물에 대해 평등하다.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 대해 묻는 이가 있거든, 나는 그의 아름다운 점을 이렇게 말하리라.
(953) 지혜가 있는 사람은 흔들려 괴로워하지 않고, 그에게는 어떠한 거짓도 있을 수가 없다. 그는 거짓과 꾸밈에서 벗어나 가는 곳마다 평안을 본다.
(954) 성자는 자기가 대등한 사람들 속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뒤 떨어진 사람들 속에 있다거나 또는 뛰어난 사람들 속에 있다고도 하지 않는다. 그는 평안한 상태에 들어가 인색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가지거나 버리지 않는다.
16. 사리뿟타
(955) 존자 사리뿟타가 여쭈었다. “저는 아직 본 일도 없고 누구에게서 들은 일도 없습니다. 중생의 주인이신 스승께서 도솔천에서 내려오시어 그와 같이 훌륭하게 설법하신 것을.
(956) 눈 있는 사람은 신과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처럼, 모든 어둠을 벗겨 버리고 홀로 진리의 즐거움을 얻으셨습니다.
(957) 걸림 없이, 거짓 없이 오신 스승, 눈 뜬 사람인 당신에게 번뇌에 쌓인 많은 사람들을 위해 묻습니다.
(958) 수행자는 세상이 싫어 사람이 없는 곳이나 나무 아래, 혹은 묘지를 즐거운 마음으로 거처로 정하고 산골짜기의 동굴 속에 머물기도 합니다.
(959) 그리고 이런 곳에는 얼마나 무서운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수행자는 소리 없는 곳에서 지내더라도 무서워해서는 안 됩니다.
(960) 아무도 머문 적이 없는 곳으로 갈 때에는 위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외딴 곳에 거처를 정하더라도 그러한 위험은 이겨내야 합니다.
(961)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에게는 어떠한 위험이 있습니까? 그의 행동 범위는 어떠합니까? 그가 지키는 계율이나 맹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962) 마음을 안정시켜 바르게 생각하는 어진 사람은 어떠한 학문을 몸에 지녀서 자기에게 묻는 때를 씻어 버리는 것입니까? 마치 대장장이가 은의 때를 벗겨 버리듯이.”
(963)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뿟타여, 세상이 싫어 인적이 끊어진 곳에 기거하고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경지와, 법을 따라 실천하는 것들을 내가 아는 대로 그대에게 말하리라.
(964)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분수를 지키는 지혜로운 수행자는 다섯 가지 두려움에 떨어서는 안 된다. 즉 쇠파리, 모기, 뱀, 도둑을 만나는 일과 네발 가진 짐승들이다.
(965) 이교도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그들에게 두려워할 만한 것이 있을지라도. 또한 선(善)(자비심)을 추구하여 다른 위험과 재난을 이겨내라.
(966) 병이나 굶주림, 추위나 더위를 견디어야 한다. 저 집 없는 사람은 그런 것들이 닥쳐와도 용기를 가지고 굳세게 살아야 한다.
(967) 도둑질을 하지 말아라.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약한 것이나 강한 것이나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에 대해서 자비심을 내어라. 마음의 혼란을 느꼈을 때는 <악마의 무리>라 생각하고 이것을 물리쳐라.
(968) 분노와 교만에 지배되지 말아라. 그 뿌리를 뽑아 버려라. 또 좋은 감정이나 좋지 않은 생각이나 모두 극복해야 한다.
(969) 지혜를 가장 소중히 여기고 선(善)을 좋아하며 위험과 재난을 물리치라. 거친 땅에 눕는 불편함을 참으라. 다음 네 가지 걱정을 극복해야 한다.
(970) ‘나는 무엇을 먹을까?’ ’나는 어디서 먹을까?’ ’어제 밤 나는 잠을 편히 자지 못했다.’ ’오늘밤 나는 어디서 잘 것인가’ ’집을 떠나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이러한 네 가지 걱정을 극복하라.
(971) 적당한 때 음식과 옷을 얻고, 그 양이 적더라도 만족할 줄 알아라. 옷과 음식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마을을 돌아 다닐 때는 조심하며, 비난을 받더라도 나쁜 말로 대꾸해서는 안 된다.
(972) 눈을 아래도 뜨고, 여기 저기 두리번거리지 않으며, 마음을 한군데로 모으고 똑똑하게 깨어 있으라. 마음을 고요히 하고 정신을 하나로 모아 집착과 욕망과 회한을 끊어 버려라.
(973) 남에게 충고를 들었을 때는 반성하고 감사하라. 함께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거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좋은 말을 하고, 때에 맞지 않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남을 비방해서도 해서도 안 된다.
(974) 또 세상에는 다섯 가지 티끌이 있다. 주의 깊은 사람은 그것을 억제할 것을 배우라. 빛깔(형상), 소리, 냄새, 맛, 접촉에 대한 탐욕을 이겨 내라.
(975) 수행자는 정신차려 온전히 자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이런 것에 대한 욕망을 절제하라. 그는 적당한 때에 법을 바르게 살피고, 마음을 통일하여 어둠을 없앤다.”
(976) 이와 같이 스승(고타마 붓다)은 말씀하셨다..
제5장 피안에 이르는 길
1. 서(序)
(976) 베다에 통달한 한 바라문인 바바린은 무소유의 경지에 이르고자 코살라 족의 아름다운 도시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왔다.
(977) 그는 앗사카와 아리카 두 나라의 중간을 흐르는 고다바리 강변에 거처를 정하였다. 이삭을 줍고 나무 열매를 먹으면서.
(978) 그 강변 가까이 커다란 마을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서 얻은 것을 가지고 그는 큰 제사를 지냈다.
(979) 그가 제사를 끝내자 자기 처소로 돌아왔을 때 바라문 한 사람이 찾아 왔다.
(980) 그의 발은 상처투성이고 목은 검게 탔으며, 이는 더러워지고 머리는 먼지로 뒤덮인 채 바바린에게 가까이 와서 금화 오백 냥을 구걸하였다.
(981) 바바린은 그를 보자 앉을 자리를 권하고, 그의 안부와 건강을 물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982)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은 다 베풀어 주었습니다. 바라문이여, 용서해 주시오. 내게는 금화 오백냥이 없습니다.”
(983) “내가 구걸하는데도 당신이 베풀어 주지 않는다면 지금부터 이레 후에 당신의 머리는 부서져 일곱 조각이 날 것이오.”
(984) 거짓말을 한 그 바라문은 주문을 외우며 무서운 저주를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바바린은 괴로워했다.
(985) 그는 걱정의 화살에 맞아 음식도 먹지 않고 기운이 빠져 풀이 죽어 있었다. 이런 사람의 마음은 정신의 안정을 누릴 수 없는 법이다.
(986) 바바린이 두려워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처소 주변을 지키는 여신은 그의 곁에 와서 이렇게 말했다.
(987) “그는 머리를 알지 못합니다. 그는 재물을 탐내는 거짓말쟁이 입니다. 그는 머리도, 머리가 부서지는 일도 알지 못합니다.”
(988) “그럼 당신은 알고 있겠군요. 바라건대, 머리와 머리가 부서지는 일을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당신의 말을 듣고 싶습니다.”
(989)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것에 대한 지식은 내게는 없습니다. 머리와 머리가 부서지는 일은 모든 승리자(고타마 붓다)가 알고 계십니다.”
(990) “그럼 이 지상에서 머리와 머리가 부서지는 일은 누가 알고 있습니까? 여신이시여, 그것을 내게 말해 주십시오.”
(991) “카필라 성에서 출가를 한 세상의 지도자(고타마 붓다)가 계십니다. 그는 감자왕(석가족의 시조로 알려져 있음)의 후예이고 석가족의 아들이며, 세상을 비추고 있습니다.
(992) 바라문이여, 그는 참으로 눈을 뜬 사람이고, 모든 사물에 통달했습니다. 모든 신통력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것을 꿰 뚫어 보는 눈을 가졌습니다. 온갖 것을 소멸한 경지에 이르렀고, 번뇌를 멸해 해탈하였습니다.
(993) 그 눈 뜬 사람, 거룩한 스승, 눈 있는 분은 세상에서 법(진리)을 설 하십니다. 당신은 그분께 가서 물으십시오. 그분은 말씀해 주실 것 입니다.”
(994) <눈 뜬 사람>이란 말만 듣고도 바바린은 몹시 기뻐했다. 그의 근심은 가벼워졌고 기쁨이 넘쳤다.
(995) 바바린은 기뻐 감동하여 여신에게 물었다. “세상의 지도자는 어느 마을, 어느 거리, 어느 집에 계십니까? 그곳에 가서 가장 뛰어나신 정각자에게 저는 예배 드리겠습니다.”
(996) “승리자, 지혜가 많은 사람, 티없는 사람, 머리가 부서지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황소 같은 분이신, 저 석가족의 아들은 코살라의 서울인 사밧티에 계십니다.”
(997) 그래서 그는 베다의 주문(주술)에 통달한 제자 바라문들에게 말하였다. “오너라, 제자들이여, 나는 너희에게 알려 주니, 내 말을 듣거라.
(998) 세상에 출현하기 어려운 고귀한 저 눈 뜬 사람이 지금 세상에 나타나셨다. 너희들은 어서 사밧티로 가서 그 뛰어난 분을 뵈어라.”
(999) “그러면 스승이시여, 우리가 그분을 보고 <눈 뜬 사람>이라고 어떻게 알아 볼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1000) 베다에는 서른 두 가지 완전한 위인의 상(相)이 전해져 있고, 차례로 설명되어 있다.
(1001) 이런 서른 두 가지의 위인의 상이 있는 사람, 그에게는 두 가지 앞 길이 있을 뿐, 셋째 길은 없다.
(1002) 만약 그가 집에 머문다면 이 세상을 정복하리라. 형벌에 의하거나 무기에 의존하지 않고 법으로써 통치한다.
(1003) 또 그가 집을 나와 집 없는 사람이 된다면, 덮여 있는 것을 벗기고, 더 없이 높이 눈을 뜬 사람, 존경 받는 사람이 된다.
(1004) 내가 태어 난 해와 이름과 모습의 특징과 제자들과 머리와 머리가 부서지는 것을 마음속으로만 그에게 물어라.
(1005) 만약 그가 진정 눈 뜬 사람이라면, 마음속으로 물은 질문에 말로써 대답할 것이다.”
(1006) 바바린의 말을 듣고 제자인 열 여섯명의 바라문들, 아지타와 팃사 멧티야, 푼나카, 그리고 멧타구,
(1007) 도타카, 우파시바, 난다, 헤마카, 토디야, 캄파, 현자 자투칸닌
(1008) 바드라우다, 우다야, 포사라 바라문과 현자 모가라자와 대선인 핑기야 등.
(1009) 그들은 저마다 그들의 무리들을 이끌고 있었으며, 온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정신을 안정한 자들이며, 평안한 마음을 즐기고, 현명하며, 전생에 온갖 선한 일을 행하였던 사람들이다.
(1010) 머리를 땋고 염소 가죽을 걸친 그들은 모두 바바린에게 절하고, 또 바른편으로 도는 예를 갖추고, 북쪽으로 떠났다.
(1011) 무라카의 서울 파티타나에 들어가 옛날의 서울인 마힛사티로, 또 웃제니, 고낫다 베디사, 바나사라는 곳으로
(1012) 코삼비, 사케다, 사밧티로 갔다. 다음 세타비야, 카필라밧투, 쿠시나라의 도시로 들어 갔다.
(1013) 그리고 향락의 도시 파바로, 베사리, 마가다국의 서울 라자그라아로, 아름답고 상쾌한 석묘(石廟)에 이르렀다.
(1014) 목마른 사람이 시원한 물을 찾듯이, 또 상인이 큰 이익을 구하듯이, 더위에 지친 사람이 나무 그늘을 찾듯이, 그들은 서둘러 거룩한 스승이 계신 산으로 올라갔다.
(1015) 거룩한 스승께서는 그때 여러 비구들 앞에서 사자가 숲 속에서 포효하듯, 법을 설하고 계시었다.
(1016) 빛을 비추는 태양 같고, 둥근 보름달 같은 눈 뜬 사람을 아지타는 보았다.
(1017) 그때 아지타는 스승님의 몸에 원만한 위인의 상호가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한쪽에 서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물었다.
(1018) “저의 스승 바바린의 나이를 말하시오. 이름과 모습의 특징을 말하시오. 베다에 통달해 있는 것을 말하시오. 제자는 몇 명이나 되는지 말해 보시오.”
(1019) “그의 아니는 백 스무살이다. 그의 이름은 바바란이고, 몸에는 세가지 특징적인 상이 있으며, 그는 3베다의 깊은 뜻에 통달해 있다.
(1020) 위인의 특별한 상과 전설과 어휘와 의례에 통달하고, 5 백명의 제자를 가르치며, 자기 교설의 궁극에 도달해 있다.
(1021) ‘번뇌를 끊어 버린 으뜸가는 분이시여, 바바린의 가진 모든 특징적인 모습을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저로 하여금 의심을 갖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1022) “그는 혀를 가지고 자기 얼굴을 덮는다. 그의 양미 간에는 흰 털이 있고, 음부는 감추어져 있다. 바라문이여, 거의 세가지 특징적인 상은 이러하니라.”
(1023) 질문자가 아무것도 직접 스승께 묻지 않았는데도 스승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시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들은 감격하여 합장하고 생각했다.
(1024) ‘그는 누구일까? 신일까? 범천일까? 혹은 수자아의 남편인 제석천일까?’ 마음속으로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도대체 누구에게 대답을 하신 것일까?’
(1025) 바바린은 머리와 머리가 부서지는 일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스승이시여, 그것을 설명해 주십시오. 선인이시여, 우리들의 의혹을 풀어 주십시오.’
(1026) 고타마 스승께서는 대답하셨다. “무명(무지)이 머리인 줄 알아라. 신앙과 생각과 명상과 욕심과 노력에 연결되어 있는 밝은 지혜가 머리를 깨어 떨어뜨리는 것이다.”
(1027) 그래서 그 바라문들은 크게 감동하여 미칠 듯이 기뻐하며, 염소 가죽으로 만든 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스승의 발 밑에 엎드려 숙이고 절하였다.
(1028) 아지타가 물었다. “거룩하신 분이여, 바바린 바라문은 그의 여러 제자들과 함께 환희하여 거룩하신 스승의 발 밑에 엎드려 예배 드립니다. 눈이 있는 분이시여.”
(1029) 고타마는 대답했다. “바바린 바라문은 여러 제자들과 함께 기뻐하라. 바라문이여, 그대도 또한 즐거워하라. 오래 살아라.
(1030) 바바린이나 그대들에게서 모든 의문이 해소 되었을 것이다. 마음 속에 묻고자 하던 것이 더 있거든 다 묻도록 해라.”
(1031) 눈 뜬 분에게서 허락을 받았으므로 아지타는 합장하고 앉아서 완전한 사람(고타마 붓다)에게 첫째 질문을 하였다.
2. 아지타의 질문 (1032) 아지타가 물었다. “세상은 무엇에 덮여 있습니까? 세상은 무엇 때문에 빛을 내지 않습니까? 세상을 더럽히는 것은 무엇 입니까? 세상의 가장 커다란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1033)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아지타여, 세상은 무명(무지)에 덮여 있다. 세상은 탐욕과 게으름 때문에 빛나지 않는다. 욕심은 세상의 더러움이며, 고뇌는 세상의 커다란 공포라고 나는 말한다.”
(1034) 아지타가 말했다. “번뇌의 흐름은 어느 곳에나 흐르고 있습니다. 그 흐름을 막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흐름을 그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1035) 스승은 대답했다. “아지타여, 세상에서 모든 번뇌의 흐름을 막아내는 것은 조심하는 일이다. 그것이 번뇌의 흐름을 막고 그치게 한다. 그 흐름은 지혜로 막을 수 있는 것이다.”
(1036) 아지타가 질문했다. “지혜와 조심하는 일과 이름과 형태는 어떠한 때 소멸하는 것입니까? 이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1037) “아지타여, 그대의 질문에 답하리라. 식별 작용이 없어짐으로써 명칭과 형태가 남김없이 사라진다.
(1038) “이 세상에는 진리를 찾아 밝힌 사람도 있고, 배우고 있는 사람도 있으며, 범부도 있습니다. 바라건대 현자께서는 그들의 행동을 말씀해 주십시오.”
(1039) “수행자는 여러 가지 욕망에 빠져서는 안 된다. 마음이 혼탁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물의 본질을 깨달아 정신을 차리고 수행하여야 한다.”
3. 팃사 멧티야의 질문
(1040) 팃사 멧티야가 물었다. “ 이 세상에서 만족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 입니까? 흔들리 않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양극단을 통달하고 깊이 생각해 양극단이나 중간에도 더렵혀지지 않는 사람은 누구 입니까? 당신은 누구를 위인이라 부릅니까? 이 세상에서 만나는 여인(번뇌)을 초월한 사람은 누구 입니까?”
(1041) 스승은 대답했다. “멧티야여, 모든 욕망에 대해서 청정한 수행을 지키고, 집착을 떠나 항상 조심하고 깊이 살펴 생각하고 번뇌를 끊어 버린 수행자, 그에게는 흔들림이 없다.”
(1042) “그는 양극단을 통달하고 깊이 생각해, 양 극단이나 중간에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그를 나는 위인이라 부른다. 그는 이 세상에서 만나는 여인(번뇌)을 초월해 있다.”
4. 푼나카의 질문
(1043) 푼나카가 물었다. “흔들리지 않는 근본을 깨달은 당신께 여쭙고자 이렇게 왔습니다. 선인이나 상인이나, 왕족, 바라문은 무엇 때문에 널리 신들에게 제물을 바쳤습니까? 스승이시여, 당신께 질문 하오니 나에게 말씀하여 주십시오.”
(1044) 스승은 대답했다. “푼나카여, 대개 선인, 상인, 왕족, 바라문들이 세상에서 널리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친 것은, 늙고 병들면서 현재 우리들이 가진 이러한 생존 상태(윤회)를 다시 희망하기 때문에 제물을 바친 것이다.”
(1045) 푼나카는 물었다. “스승이시여, 대개 이 세상에서 선인,상인,왕족, 바라문들이 모두 신들에게 공양물을 바쳤습니다만, 제사에 게으르지 않았던 그들은 생과 늙음을 초월한 것입니까? 스승이시여, 당신께 묻사오니 그것을 제게 설명해 주십시오.”
(1046) 스승은 대답했다. “푼나카여, 그들은 희망하고 찬양하고 열망하여 제물을 바친다. 이득을 얻고 욕망을 달성하고자 희망한다. 제물을 바치기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생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다. 그들은 생과 늙음을 초월하지 못했다고 나는 말한다.”
(1047) 푼나카가 질문했다. “만약 제물을 바치기에 몰두해 있는 그들이 제사로써도 생과 늙음을 초월하지 못했다면, 신과 인간의 세계에서 생과 노쇠를 초월한 사람은 누구 입니까? 스승이시여, 당신께 묻사오니 그것을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1048)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푼나카여, 세상에서 이런 저런 상태를 깊이 살펴 아무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번뇌를 떠난 평안에 머물러 연기도 고뇌도 욕망도 없는 사람, 그는 생과 늙음을 초월했다고 나는 말한다.”
5. 멧타구의 질문
(1049) 멧타구가 물었다. “스승이시여, 당신께 묻겠습니다. 이것을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은 베다에 통달한 분, 마음을 수양하신 분이라고 저는 생각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갖가지 괴로움은 도대체 어디서 생겨난 것 입니까?”
(1050) 스승은 대답했다. “멧타구여, 그대는 내게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을 물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대에게 말하리라. 세상의 온갖 괴로움은 집착으로 인해 생긴다.
(1051) 사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집착을 만드는 사람은 어리석음을 되풀이 해서 괴로움에 다가선다. 그러므로 괴로움이 생기는 것을 본 지혜로운 사람은 집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1052) “우리가 당신에게 질문한 것을 당신은 우리에게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다른 것을 또 묻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현자들은 번뇌의 흐름, 생과 노쇠, 근심과 슬픔을 초월할 수 있습니까? 성인이시여, 그것을 제게 설명해 주십시오. 당신은 이 진리를 분명히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1053) 스승이 대답했다. “멧타구여, 현세에 전해 내려온 것이 아닌 이 진리를 나는 말하겠다. 그 진리를 듣고 명심해서 수행하여 세상의 집착을 초월하여라.”
(1054) “위대한 선인이시여, 저는 그 으뜸가는 진리를 받아 그지없이 기쁩니다. 그 방법대로 행하여 세상의 집착을 넘어서겠습니다.”
(1055) 스승이 대답했다. “멧타구여, 상하 좌우 중앙에서 그대가 아는 어떤 것이라도 그것에 대한 기쁨과 집착과 분별심을 버리고, 덧없는 생존 상태에 머물지 말아라.
(1056) 이렇게 해서 조심하고 게으르지 않는 수행자는 내 것이라 고집했던 것을 버리고, 생과 노쇠, 근심과 슬픔을 버리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의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리라.”
(1057) “위대하신 선인의 말씀을 듣고 저는 기쁩니다. 고타마시여, 번뇌의 요소가 없는 경지를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확실히 스승께서는 괴로움을 버리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이 법칙을 있는 그대로(바르게) 알고 계십니다.
(1058) 성인이시여, 당신께서 가르치시고 이끌어 주신 사람들은 곧 괴로움을 버리게 될 것 입니다. 용이시여, 그럼 당신 가까이 가서 예배 드리겠습니다. 스승이시여, 저를 가르치고 이끌어 주십시오.”
(1059)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생존의 욕망에 집착하지 않는 바라문, 베다의 달인이라고 그대가 안 사람, 그는 확실히 번뇌의 흐름을 건넜다. 그는 피안에 이르러 마음이 평안하고 의혹도 없다.
(1060) 또 그는 이 세상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이고, 베다에 통달한 사람이며, 여러 가지 생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고뇌도 없고 희망도 없다. 그는 생과 사를 뛰어 넘었다고 나는 말한다.”
6. 도타카의 질문
(1061) 도타카가 물었다. “ 스승이시여, 당신께 묻겠습니다. 이 일을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위대하신 선인이여, 저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당신의 음성을 듣고 저는 열반에 이르는 길을 배우겠습니다.”
(1062)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도타카여, 그럼 이 세상에서 부지런히 수행하고 정진하라.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스스로 평안(해탈)에 이르는 길을 배우라.
(1063) “저는 신과 인간의 세계에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행동하는 바라문(고타마)을 뵙고 있습니다. 널리 보시는 분이여, 저는 당신께 예배합니다. 석가시여, 저로 하여금 온갖 의혹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1064) “도타카여,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떠한 의혹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그를 의혹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못한다. 다만 그대가 으뜸가는 진리를 안다면, 그것으로 인해 그대는 스스로 번뇌의 흐름을 건너게 되리라.”
(1065) “스승이시여, 자비를 베풀어 그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그것을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저는 마치 허공처럼 여러 가지 모양을 나타내지 않고, 이 세상에서 고요하게 걸림 없이 수행 하겠습니다.
(1066)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도타카여, 전해들은 것이 아닌 이 평안을 그대에게 말하겠다. 그것을 명심해서 듣고 수행하여, 세상의 집착을 뛰어 넘으라.”
(1067) “위대하신 스승이시여, 저는 그 으뜸가는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그지 없이 기쁩니다. 그것을 알아 정신차려 수행하고, 세상의 집착을 끊겠습니다.
(1068)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도타카여, 상하 좌우 중간 어느 곳에서나 그대가 알고 있는 무엇이건, 그것을 세상의 집착이라 알고, 이것 저것 생존에 대한 집착을 가져서는 안 된다.”
7. 우파시바의 질문
(1069) 우파시바가 물었다. “석가시여, 저는 아무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혼자서 큰 번뇌의 흐름을 건널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의지해 건널 수 있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널리 보는 분이시여.”
(1070) 거룩한 스승은 대답하셨다. “우파시바여, 정신차려 무소유에 의지하면서,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으로써 번뇌의 흐름을 건너라. 모든 욕망을 버리고 의혹에서 벗어나 집착의 소멸을 밤낮으로 살펴라.”
(1071) 우파시바가 말했다. “모든 욕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무소유에 의해 모든 것을 버리고, 가장 높은 <유상해탈(有想解脫).상념>에서 해탈한 사람, 그는 물러남이 없이 거기에 편히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1072) “우파시바여, 모든 욕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무소유에 의해 모든 것을 버리고 가장 높은 무념의 해탈에 도달한 사람, 그는 물러서지 않고 거기에 편히 머무르리라.”
(1073) “널리 보시는 분이여, 만약 그가 물러나지 않고 여러 해 동안 거기에 머문다면, 그는 해탈하여 청정하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사람의 식별작용은 있는 것입니까?”
(1074) “우파시바여, 가령 사나운 바람이 의해 꺼져 버린 불꽃은 불꽃의 숫자의 포함되지 않듯이, 성인은 육체와 명칭에서 해탈하여 없어지고, 존재하는 숫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1075) “번뇌를 소멸해 버린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까? 혹은 상주(常住)하고 무병(無病) 한 것입니까? 성인이시여, 그것을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은 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고 계시니 말 입니다.”
(1076) 스승은 대답하셨다. “우파시바여, 멸해버린 자에게는 그것을 헤아릴 기준이 없다. 그것을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할만한 근거가 그에게는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깨끗이 끊어지면 논리의 길도 완전히 끊어져 버리는 것이다.”
8. 난다의 질문
(1077) 난다가 물었다. “세상에는 여러 성자가 있다고들 합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지식이 깊은 사람을 성자라고 부릅니까, 혹은 행적이 뛰어난 사람을 성자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1078) 스승은 대답했다. “난다여, 진리에 도달한 사람은 견해나 학문이나 지식을 보고 성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번뇌인 마군을 깨트려 고뇌가 없고 욕망이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성자라고 나는 말한다.”
(1079) 난다가 물었다. “대개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견해나 학문에 의해서 청정해 질 수 있다고 말 합니다. 계율이나 서원에 의해서도 청정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밖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청정해 질 수 있다고 말 합니다. 스승이시여, 그들은 거기에 의존하여 스스로 수행하고 절제하고 있지만, 과연 생과 사를 넘어선 것입니까? 존경하는 스승이시여, 당신께 묻사오니 그것을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1080) 스승은 대답했다. “난다여, 대개 이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견해로 인해 청정해지고, 계승된 학문에 의해서도 청정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계율이나 서원에 의해서도 청정해진다고 한다. 이밖에 여러 가지 방법에 의해서 청정해 진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한 것을 가지고 절제한다 할지라도, 생과 사를 초월한 것은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1081) 난다가 말했다. “대개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견해나 학문에 의해서, 또는 계율이나 서원에 의해서 청정해진다고 합니다. 이밖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해 청정해 진다고 합니다. 성인이시여, 만일 당신께서 ‘그들은 아직도 번뇌의 흐름을 건너지 못했다’고 하신다면, 신과 인간의 세계에서 생과 늙음을 초월한 사람은 누구 입니까? 스승이시여, 당신께 묻사오니 그것을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1082) 스승은 대답하셨다. “난다여, 나는 모든 사문, 바라문들이 생과 사에 갇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견해나 학문, 사색이나 계율 혹은 도덕과 서원을 다 버리고, 또 온갖 방법을 다 버리고, 집착을 깊이 살펴 그 본질을 깨닫고 마음에 때 묻지 않은 사람들, 그들은 참으로 <번뇌의 강을 건넌 사람들>이라고 나는 말한다.”
(1083) “위대하신 선인의 말씀을 듣고 저는 한없이 기쁩니다. 고타마시여, 번뇌의 요소가 없는 경지를 훌륭하게 밝혀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견해, 학문, 사색, 계율, 서원을 모두 버리고, 또 여러 가지 방법을 버리고, 집착을 깊이 살펴 마음에 때가 묻지 않은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참으로 <번뇌의 흐름을 건넌 사람들>이라고 저도 생각 합니다.”
9. 해마카의 질문
(1084) 매마카가 물었다. “고타마 이전의 옛 사람들이 ‘이전에는 이러했다. 미래는 이렇게 되리라’하고 말 해 준 것은 모두 전해 들은 바에 불과 합니다. 그것은 모두 내 사색의 혼란을 더할 뿐 입니다.
(1085) 저는 그들의 말을 즐겨 하지 않습니다. 성인이시여, 집착을 끊어 버리는 방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것을 잘 듣고 명심하여 수행해서 세상의 집착을 뛰어 넘겠습니다.”
(1086) “해마카여, 이 세상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식별한 아름다운 사물에 대해서 탐욕을 없애는 것이 영원한 열반의 경지이다.
(1087) 이것을 잘 알고 명심하여 현세에서 번뇌를 완전히 벗어버린 사람은 항상 해탈의 경지에 들어가 있다. 세상의 애착을 집착을 뛰어 넘은 것이다.
10. 토디야의 질문
(1088) 토디야가 물었다. “모든 욕망에 머물지 않고, 집착이 없이 온갖 의혹을 초월한 사람, 그는 어떤 해탈을 구하면 좋겠습니까?”
(1089) 스승은 대답했다. “토디야여, 모든 욕망에 머물지 않고 집착이 없이 온갖 의혹을 초월한 사람, 그에게는 따로 해탈이 없다.”
(1090) “그는 소원이 없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무엇인가를 소원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는 지혜가 있는 것 입니까? 또는 지혜로써 무엇인가를 계획하는 사람 입니까? 석가시여, 그가 성인임을 제가 알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널리 보는 분이여.”
(1091) “그는 아무 소원도 없는 사람이다. 그는 아무것도 소원하지 않는다. 그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지만, 지혜로써 무엇을 꾸미지 않는다. 토디야여, 성인은 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라.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며, 생존의 욕망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11. 캅파의 질문
(1092) 캅파가 물었다. “거센 급류가 밀려 왔을 때 호숫가에 있는 사람들, 노쇠와 죽음에 짓눌려 있는 사람들을 위해 섬(의지처.피난처)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 괴로움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피난처를 저에게 보여 주십시오.”
(1093) 스승은 대답하셨다. “캅파여, 아주 무서운 급류가 밀려 왔을 때 호숫가에 있는 사람들, 노쇠와 죽음에 짓눌려 있는 사람들을 위한 섬을 너에게 말하리라.
(1094) 어떠한 소유도 없고 집착하여 취할 일이 없는 것, 이것이 바로 피난처이다. 그것을 열반이라고 한다. 그것은 노쇠와 죽음의 소멸인 것이다.
(1095) 이것을 분명히 알고 명심하여 현세에서 번거로움을 완전히 떠난 사람들은 악마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들은 악마의 종이 되지 않는다.”
12. 자투칸닌의 질문
(1096) 자투칸닌이 물었다. “저는 용사로, 욕망이 없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거센 흐름을 건넌 사람(부처님)에게 <욕심 없는 것>에 대해 묻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해탈(평안)의 경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눈이 있는 분이시여, 스승이시여, 그것을 사실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1097) 거룩한 스승께서는 모든 욕망을 다스리며 사십니다. 마치 빛나는 태양이 그 빛으로 인해 대지를 이기는 것과 같습니다. 지혜 많으신 분이여, 지혜가 적은 저에게 법을 설해 주십시오. 저는 그것을 알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서 생과 노쇠를 뛰어 넘는 일에 대해서.”
(1098) 스승은 대답하셨다. “ 자투칸닌이여, 모든 욕망에 대한 탐욕을 억제하라. 버림을 평안으로 보라. 그대에게 취할 것도 버릴 것도 있어서는 안 된다.
(1099) 과거에 있었던 것 (번뇌)을 말려 버려라. 미래에는 그대에게 아무것도 없게 하라. 중간(현재)에 있어서도 아무 일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해탈을 얻을 것이다.
(1100) 바라문이여, 명칭과 형태에 대한 집착을 떠난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번뇌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죽음에 지배될 염려가 없다.”
13. 바드라우다의 질문
(1101) 바드라우다가 물었다. “집착의 주소를 버리고 애착을 끊어 괴롭거나 동요되는 일 없이, 즐거움을 버리고 거센 흐름을 건너 이미 해탈한 현명한 당신께 원합니다. 스승이시여, 당신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은 이곳에서 물러 날 것 입니다. 그들을 위해 말씀해 주십시오.
(1102) 스승이시여, 당신의 말씀을 듣고자 많은 사람들이 여러 지방에서 모여 들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잘 설명해 주십시오. 당신께서는 진리(법)를 있는 그대로 알고 계시니 말 입니다.”
(1103) 거룩한 스승은 대답하셨다. “바드라우다여, 상하좌우 중간에 걸리는 집착을 모조리 없애라. 세상에 있는 어느 것에라도 집착하면, 그것 때문에 악마가 따라 다니게 된다.
(1104) 그러기 때문에 수행자는 바르게 알고 명심해서, 세상에 있는 어느 것에라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 죽음의 영역에 집착하는 이런 사람들은 <집착하는 사람들>이라고 보아라.”
14. 우다야의 질문
(1105) 우다야가 물었다. “이 세상의 티끌과 때를 벗어나 명상에 잠겨 할 일을 다 마치고, 번뇌에 더럽힘 없이 모든 사물의 피안에 도달한 스승께 묻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무명(無明)을 깨뜨리는 일과 사물에 대한 이해에 의한 해탈을 말씀해 주십시오.”
(1106) 거룩한 스승은 대답하셨다. “우다야여, 애욕(욕정)과 근심, 이 두 가지를 버리는 일, 침울한 기분을 없애는 일, 후회하지 않는 것.
(1107) 고요한 마음과 깨끗한 진리에 대한 사색을 먼저 할 것, 이것이 무명을 깨뜨리는 일이며, 사물의 이해에 의한 해탈 이라고 나는 말한다.”
(1108) “세상 사람들은 무엇에 속박되어 있는 것입니까? 세상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끊어 버림으로써 열반이 있다고 말하는 것 입니까?”
(1109) “세상 사람들은 환희(즐거움. 쾌락)에 속박되어 있다. 분별심(생각)이 세상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 집착을 끊어 버림으로써 열반(평안)에 이른다고 나는 말한다.”
(1110) “항상 깨어 있어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의 식별작용은 어떻게 없애는 것입니까? 그것을 스승께 묻고자 저는 온 것입니다. 당신의 그 말씀을 저는 듣고 싶습니다.”
(1111) “안팎으로 감각적 느낌을 기뻐하지 않는 사람, 이와 같이 깊이 생각하며 수행하는 사람의 식별작용은 소멸되는 것이다.”
15. 포오사아라의 질문
(1112) 포오사아라 존자가 물었다. “과거의 일들을 설명하고 괴로워하지 않고 동요하지 않으며, 의혹을 끊고 모든 사물의 피안에 이른 스승께 묻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1113) 물질적인 형태의 생각을 떠나, 육체를 모두 버리고, 안팎으로 <아무것도 없다>고 보는 사람의 지혜를 저는 묻고 싶습니다. 고타마시여, 그러한 사람은 다시 어떻게 인도 되어야 합니까?”
(1114) 거룩한 스승은 대답하셨다. “포오사아라여, 모든 식별작용이 머무는 상태를 알아 버린 완전한 사람(여래)은 그가 존재하는 모양도 알고 있다. 즉, 그는 해탈하여 거기에 의존하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1115) 무소유가 성립되는 까닭, 즉 ‘기쁨은 속박이다’고 알아 그것에 대해 조용히 관찰한다. 안정된 바라문에게는 이와 같은 분명한 지혜가 있다.”
16. 모가라자의 질문
(1116) 모가라자가 물었다. “저는 지난 날 두 번이나 고타마님께 물었습니다. 그러나 눈이 있는 분께서는 설명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타마께서는 세번째에는 설명해 주신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1117) 이 세상도 저 세상도 신과 함께 있는 범천의 세계도, 명망이 높은 고타마의 견해를 모두다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1118) 이렇게 뛰어난 분께 묻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세상을 어떻게 보면 죽음의 왕에게 보이지 않겠습니까?”
(1119)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항상 조심하며 자기를 고집하는 편견을 버리고, 세상을 빈 것(공)으로 보라. 그러면 죽음을 넘어 설 수가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세계를 보는 사람을 죽음의 왕은 보지 못한다.”
17. 핑기야의 질문
(1120) 핑기야가 물었다. “나는 나이를 먹어서 기력도 없고 빛도 바랬습니다. 눈도 똑똑히 보이지 않고 귀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내가 헤매다가 그대로 죽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 원컨대 진리를 말씀해 주십시오. 알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서 삶과 죽음을 피하는 길을.”
(1121) 스승은 대답하셨다. “핑기야여, 몸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늙어가는 것을 볼 수 있고, 몸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병으로 고통을 받는다. 핑기야여, 그러므로 당신은 게으르지 말고 몸에 대한 집착을 버려 다시는 삶을 받아 세상에 돌아오지 않도록 하십시오.”
(1122) “사방과 그 사이와 위 아래 등, 이 시방세계에서 당신에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생각되지 않고, 또 인식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원컨대 법을 설 해 주십시오. 그것을 저는 알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서 삶과 죽음을 버리는 길을.”
(1123)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핑기야여, 사람들은 집착에 빠져 고뇌하고, 늙음에 쫓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핑기야여, 당신은 게으르지 말고 집착을 끊어 다시는 생존 상태로 돌아오지 않도록 하시오.”
18. 열 여섯 바라문들의 질문에 대한 결론
(1124) 스승께서 마가다국 파사나카 사당에 계실 때 위와 같은 설법을 하시고, 바바린의 제자인 열 여섯 바라문의 질문에 따라 대답하셨다. 만약 그 질문의 낱말의 뜻과 이치를 알고 이치를 따라 실천한다면, 노쇠와 죽음이 없는 피안에 이를 것이다. 이 가르침은 피안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이 법문을 <피안에 이르는 길>이라 부른다. 아지타와 팃사 멧테야, 푼나카, 멧타구, 도타카, 우파시바, 난다, 그리고 헤마카
(1125) 토디야와 캅파 두 사람과, 현자 자투칸닌, 바드라우다, 우다야, 포사라 바라문과 현명한 모가라자와 위대한 선인 핑기야등
(1126) 이들은 수행이 잘 갖추어진 선인이신 눈 뜬 사람(부처님)께 가까이 갔다.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서 으뜸가는 부처님께 다가갔다.
(1127) 그들은 질문에 따라 눈 뜬 분은 있는 그대로 답변을 하셨다. 성인은 모든 질문에 대해 시원스러운 대답을 했기 때문에, 바라문들은 매우 만족하였다.
(1128) 그들은 태양의 후예인 눈 뜬 사람, 눈이 있는 분에게 만족하여 뛰어난 지혜를 가진 그분 밑에서 청정한 수행을 했다.
(1129) 하나 하나의 질문에 대해서 눈 뜬 사람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에 이를 것이다.
(1130) 으뜸가는 길을 닦는 사람은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피안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므로 <피안에 이르는 길>이라고 한 것이다.
(1131) 핑기야가 바바린에게 돌아가 들은 대로 말했다. “<피안에 이르는 길>을 외우겠습니다. 티가 없고 지혜가 많은 사람(부처님)은 스스로 본 대로 말씀 하셨습니다. 욕심이 없고 번뇌의 숲이 없어진 분께서 어찌 허망한 말을 하시겠습니까.
(1132) 더러움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 교만과 거짓을 버린 사람을 저는 찬양 하겠습니다.
(1133) 바라문이시여, 암흑을 지워 버린 눈 뜬 사람, 널리 보시는 사람, 세상의 궁극에 이른 사람, 모든 생존 상태를 초월한 사람, 티 없는 사람, 모든 괴로움을 버린 사람, 그는 참으로 <눈 뜬 사람>이라고 불리우기에 마땅한 사람 입니다. 저는 그분을 가까이 모셨습니다.
(1134) 이를 테면, 새들이 엉성한 숲을 떠나 열매가 풍성한 숲에 내려 앉듯이, 저도 또한 소견이 좁은 사람들을 떠나 백조처럼 큰 호수에 이르렀습니다.
(1135) 고타마 이전의 옛 사람들이 ‘이전에는 이러했다, 미래에는 이렇게 될 것이다’하고 저에게 말한 것은 모두 전해 들은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두 내 사색을 혼란 시킬 뿐 입니다.
(1136) 그는 홀로 번뇌의 암흑을 지워 버리고 앉아, 빛으로 비치고 있습니다. 고타마는 지혜가 많으신 분 입니다. 그는 지혜가 넘치는 사람 입니다.
(1137) 그 즉시 효과가 있는, 시간을 초월한 진리, 즉 번뇌가 없는 집착의 소멸을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분과 견줄 사람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1138) 바바린이 말했다. “핑기야여, 그대는 지혜가 많은 고타마, 지혜가 넘치는 고타마 곁에서 잠시라도 떨어져 살 수 있겠는가?
(1139) 그가 그대에게 설해 준 그 즉시 효과가 있는, 시간을 초월한 진리, 즉 번뇌가 없는 집착의 소멸을 내게도 가르쳐 주었다. 그와 견줄 사람은 아무데도 없다고 했는데.”
(1140) 핑기야가 말했다. “바라문이시여, 저는 지혜가 많은 고타마, 지혜가 넘치는 고타마 곁을 떠나서는 한시도 살 수가 없습니다.
(1141) 그 즉시 효과가 있는, 시간을 초월한 진리, 즉 번뇌가 없는 애착의 소멸을 저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분에게 견줄 사람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1142) 바라문이시여, 나는 게으르지 않게 밤낮으로 마음의 눈을 가지고 그분을 보고 있습니다. 그분을 예배하면서 밤을 보냅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분을 떠나 살 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1143) 내 믿음과 기쁨과 마음과 생각은 고타마의 가르침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지혜 많으신 분이 어느 쪽으로 가시거나 그곳을 향해 나는 예배하겠습니다.
(1144) 나는 이제 늙어서 기력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몸은 그곳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항상 그곳에 가 있습니다. 바라문이시여, 내 마음은 그와 맺어져 있습니다.
(1145) 나는 더러운 흙탕물에 누워 여기 저기 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거센 흐름을 건넌, 티없이 깨끗한 분을 만났습니다.”
(1146) 이때 거룩하신 스승께서 나타나 말씀하셨다. “박카리와 바드라우다 또는 알라비 고타마가 믿음에 의해 깨달은 것처럼, 당신도 믿음에 의해서 깨달으십시오. 당신은 죽음의 영역에서 벗어날 것 입니다. 핑기야여.”
(1147) 핑기야가 말했다. “저는 성인의 말씀을 듣고 더욱더 믿게 되었습니다. 깨달은 사람은 번뇌의 덮임에서 벗어나 마음이 거칠지 않고, 잘 설명해 주시는 분입니다.
(1148) 신들을 초월했다는 법을 잘 알아 이것 저것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스승께서는 의심을 가지고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분명한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1149) 아무데도 비할 바 없고, 빼앗기지 않으며,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저는 틀림없이 도달 할 것 입니다. 이 일에 대해서 제게는 조금도 의심이 없습니다. 제 마음이 이와 같이 믿고 알고 있는 것을 인정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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