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현재 죄악 생사의 범부(凡夫).
자기 자신은 지금 윤회의 생사 속에서 죄악을 거듭하고 있는 범부라는 뜻이다.
불교의 신앙을 좀더 세밀하게 나눈다면 타력종과 자력종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타력종은 아미타불과 같은 부처님의 구원에 의지하는 신앙이며, 자력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깨달음을 얻고 윤회를 벗어나고자 하는 신앙일 것이다. 이를 다시 초기불교는 자력종이며 대승불교의 정토종 계통은 타력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선도(善導)라는 분은 중국 정토종의 주석(柱石)으로 추앙되는 고승이다. 그는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나오는 심심(深心), 즉 아미타불을 깊이 믿는 마음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첫째는 결정(決定. 깊이믿어 동요하지 않는것)하여 깊이 "자기는 죄악 생사의 범부로서 광겁(曠劫. 무한히 긴 시간)이래 항상 몰(沒. 잠길 몰)하고 항상 유전해서 출리(出離. 속세와 관계를 끊음. 죽고사는 고통의 세계를 떠나 평안한 곳으로 감)의 기회란 있지 못하다]고 믿음이다. 둘째는 결정(決定)하여 깊이 [저 아미타불께서 사십팔원으로 중새을 섭취하심은 의심할 것 없고 걱정할 것 없으며 그 원력에 몸을 맡기면 반드시 왕생을 얻으리라]고 믿음이다라고 했다.
그는 비록 타력적인 신앙일지라도 아미타불에 대한 귀의(歸依)에만 두지 않고 깊은 자기반성을 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다시말해서 인간이란 존재는 과거.현재.미래를 일관해서 윤회 속에 허덕이게 되어 있다는 자각을 첬재의 글로 명확하게 표명하고 있다. [자신은 현재]라고 한 것은 현재의 자기 모습, [광겁 이래]란 과거의 모습, 그리고 [출리의 기회가 있지 않다]고 한 것은 미래에 있어서도 생사 유전을 반복할 미혹의 존재임을 일컫는 말이다.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윤회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전무한 자기라고 스스로를 통찰하는 곳에 아미타불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심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 글은 그렇게 윤회하는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깨달음을 얻는 길은 오직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지해 구원되는 정토의 가르침밖에 없음을 알아서 법을 깊이 믿는 일이다.
첫째 것은 기(機. 종교의 가르침이 법이라면 이에 믿는 주체(중생)을 통틀어 "기"라고 함)에 대한 심신(深信)이요, 둘째 것은 법에 대한 심신이므로 이를 기법이종(機法二種)의 심신이라 불려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신앙심을 지닌다 해서 우리는 청정해지는가? 가령 아미타불의 본원력을 믿는 사람이 염불을 할 때, 그의 마음에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만이 떠오른다면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묘한 것이어서 별 잡념이 다 떠오르게 마련이다. 또 염불을 시작했다 해서 번뇌가 없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중국 정토종의 위대한 고승들은 이런 경우일수록 더욱 아미타불의 자비를 믿으라고 말했다. 아미타불이 죄악심중(罪惡甚重)한 중생임을 알고 그런 중생을 구하고자 정토를 건설하신 것이니 염불할 때 잡념이 일면 일수록 자기는 구원될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미타불의 48원에는 임종 때 열번만 염불하면 어떤 악인이라도 극락에 태어나게 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착하기 때먼에 구원한다는 것이 아니고 악인이기에 건져야 되겠다는 역리(逆理. 이치를 거스르는 것)를 은연중 내포하고 있어서 불교의 자비심을 극단적으로까지 확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인간심리의 가장 깊은 곳을 이해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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