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이 병들면 보살도 앓는다라는 뜻은 중생이 병들어 있는 까닭에 그들을 구하기 위해 보살도 앓는 몸으로 나타낸다는 뜻이다. 유마경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경전에서는 유마거사가 병이 든 것을 알고 부처님께서 다른 제자들을 지명하여 문병케 하였으나 그들은 한결같이 과거에 유마거사와 토론에서 혼이 난적이 있기 때문에 망설이게 되자 결국 문수보살을 문병차 보내게 된다. 그리고 유마거사와 문수보살 사이에 대화가 이어진다.
문수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유마거사를 찾아가니 아무것도 없이 텅 빈 방에 침대 하나만이 놓여 있었다. 빈 방이 공(空)을 상징함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유마거사가 먼저 문수보살에게 말을 걸었다.
[어서 오십시오 문수보살님, 당신은 온다는 모습을 취하지 않고 오셨으며, 본다는 모습을 취하지 않고 보셨습니다]
[이 방은 왜 텅 비어 있고 간호하는 사람도 없습니까]
[어떤 부처님의 나라라도 다 텅 비어 있습니다]
[왜 텅 비어 있습니까]
[공(空)이니까 비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공은 무엇에 의해 공이 되었습니까]
[사유분별(思惟分別)을 떠나는 것이 공이니까 공입니다]
[그러면 공은 사유분별을 할 수 있습니까]
[사유분별 또한 공 입니다]
이처럼 대화는 극히 철학적 상징적인 형태로 진행된다. 거기서 유마가 자기 병을 섧명한 말이 앞에 인용한 문구다. 일체의 사유분별이 떠난 것이 공이라면 유마의 병도 병이면서도 병이 아닌 것이다. 그것이 병이라는 형태로 볼이는 것은 그렇게 보는 견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이 이미 있으므로 그렇게 보이도록 보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본래 아무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니 약을 먹거나 간호를 받을 그런 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유마거사의 병은 어리석음과 탐심이 존재하는 한 생기는 병이며, 이 세상 사람들이 그런 마음에서 해방되지 않는 한 유마거사는 앓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전은 또한 이것을 부모의 마음에 비유를 하여 아이가 병들면 부모도 병들고, 아이가 나으면 부모도 낫는것처럼 유마거사의 병은 오로지 중생들 때문에 생긴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대자비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대비(大悲)란 부처님의 자비심을 말하는 것이니 중생의 괴로움을 자기의 괴로움으로 걸머지고 가는 까닭에 이를 [동체(同體)의 대비]라고도 한다. 모든 수행자/구도자(보살)들은 이러한 부처님의 대비심을 자기의 이타행의 실천정신으로 삼아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유마거사가 병든 모습을 나타낸 것도 바로 이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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