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근본불교) 이야기

빠알리어(Pali) 경전의 체계적 전승과정

실론섬 2014. 3. 20. 19:04

1) 스리랑카로 불교 전래 

1.2차 경전 결집 이후에 아쇼카 대왕(bc274-237)의 적극적인 후원아래 Pataliputra(빠탈리뿌트라)에서 목갈리풋따 띠싸 (Moggaliputta Tissa )의 주관하에 1,000여분의 불교 대표들이 모여서 제3차 상가띠(bc256)가 개최 된다. 이 3차 상가띠는 무려 9개월에 걸쳐서 이루어졌으며 당시 처음 대중부와 근본분열이 되었던 상좌부의 전통을 주로 전승 했다. 또한 3차 경전결집은 목갈리풋따 띠사가 전승에 따라 "논사(Kathavatthu)" 를 설파 함으로써 "논장"의 형성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3차 경전결집의 진행상항은 디빠왕사(Dipavamsa)에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아 있다.


스리랑카에 최초로 불교가 전래된 것은 bc247년 즉 3차 상가띠가 인도에서 있은날로부터  약 8-9년후의 일이다. 당시 아쇼카의 아들이었던 마힌다(Mahinda)장로가 3차 경전 결집의 내용을 그대로 스리랑카로 전승을 하였다.  


2) 구두전승의 빠알리 경전을 음사로 문자화 함

스리랑카의 역사는 남부 인도로부터의 타밀족(힌두교를 믿음)의 끊임없는 침략과 이에 대한 싱할라족(불교를 믿음)의 격퇴로 점철되어 있다. 이런 전쟁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어 싱할라족과 타밀족간의 내전으로까지 발전하여 종족간 종교간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기원전후로 하여 타밀족의 침략과  가뭄등으로 인한 기근등으로 인하여 국토가 황폐화 되고 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직면하자, 승려들에 의해서 구전되어 오던 빠알리어 경전의 전승이 상당한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이에 붓다의 교설이 소실될 것을 우려하여 BC 44년경에 즉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밧타가마나(Vattagamani) 왕의 시대에 종래에 구전되어 오던 빠알리어 경전을 싱할라어로 음사를 하게 된다. 이 작업은 500명의 승려들이 7년간에 걸쳐서 아루비하라(Aluvihara)라는 사원에서 작업을 했다.


경전을 싱할라 문자를 이용하여 음사하기 위해서 천연 코코넛 잎(야자수 잎)을 무두질하고 찐 것을 햇볕에 말리면 파피라는 종이가 완성된다. 그 위에 철필로 문자를 새긴후에 재와 유지를 바르고 쌀가루로 덧칠을 한 후 완전히 마르고 난 후 문지르면 철필로 쓴 글자가 나타난다. 이렇게 만든 야자 종이는 현재의 종이보다 훨씬 튼튼하여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보존상태가 완벽하다.


빠알리어는 문자가 없는 언어이다, 따라서 스리랑카에서는 싱할라 문자를 이용하여 이를 음사를 했다. 음사(音寫)란 말 그대로 소리나는대로 적는다는 뜻이다. 즉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영어 알파펫을 이용하여 소리나는 대로 음사하면 sarang hap mi da 라가 되는 식이다. 한자어는 반야/아뢰야식 등등도 모두다 산스크리트어를 한문이라는 문자로 소리나는대로 음사한 것이다.


3) 구두 전송의 정확함과 정교함 

일반적으로 암송에 의존한 구전의 경우 인간 기억의 한계 때문에 완벽하게 전승되지 못하고 많은 변형과 오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상가띠(합송) 이라는 경전 전승의 몰이해에서 하는 말일 뿐이다. 다시말하자면 경전결집은 500/700/1000여명에 이르는 아라한/장로들에 의해서 결집되고 그리고 구두 전승은 어느 한 개인에 의해서 전승되는 것이 아니다. 


경전 암송은 율장 암송자(vinaya-dhara), 경장 암송자(dhamma-dhara), 아비담마 목록 암송자(mātikā-dhara) 등으로 대표되는 암송전문 행자 집단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전승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 더해서 디가 합송자(Dīgha-bhānaka) 맛지마 합송자(Majjhima-bhānaks) 등등으로 암송의 역할이 점차적으로 더욱더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었다.


한편으로 경전이 일정한 숫자의 전문암송 수행자들에 의해서 집단적으로 암송되었다는 것은 개인의 기억의 한계에 기인한 실수가 전체 수행자들의 합송을 통해서 보안되고 정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개인적 차원의 단순한 오기와 의도적인 가감이 이루어질 수 있는 문자에 의한 전승보다도 구전의 경우에 변형이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구전으로 전승된 경전은 문자로 기록되어 전승된 경전보다 훨씬더 정확할 뿐더러 나아가 오류와 가감과 같은 변형이 거의 불가능했다고 이해되어야 한다.


4) 스리랑카 빠알리 경전의 전통성

3차 경전 결집이후에 불교는 크게 두 갈래의 나뉘게 된다. 하나는 인도 대륙에서의 부파불교이고 또다른 하나는 스리랑카로 전래된 3차경전 결집의 내용을 보존한 상좌부 전통의 불교이다.


(1) 3차 경전 결집 - 부파불교의 소의 경전 - 대승불교와 함께 인도대륙에서 공존 - 중국으로 전래 - 인도에서 소멸 

(2) 3차 경전 결집 - 스리랑카로 전래됨 - 남방권(태국 미얀마 등)으로 전래 - 현재에 이름


다시말하자면 인도대륙에서의 불교는 1세기 전후의 대승불교 발생과 그리고 부파불교와 대승의 치열한 교리 논쟁과 그리고 밀교등의 탄생을 거치면서 끊임없는 갈등과 공존을 이어오다 소멸했다. 하지만 스리랑카로 전래된 불교는 이러한 인도의 불교 발전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흔히 지금 우리가 남방권이라고 하는 불교에는 대승불교의 흔적이나 대승 경전등이  없다. 이는 그만큼 인도대륙의 불교흥망사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발전을 해 왔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리고 단한번의 단절도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남방 상좌부 전통의 불교를 대승불교가 폄훼한 소승불교(인도의 부파불교)라든가 또는 부파불교의 한 종파에 불과하다는 식의 시각은 불교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와 자신들(대승불교 또는 인도 부파불교)의 입장을 옹호하고 강변하기 위한 편협된 사고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한 것이다.


5) 인도에서의 빠알리 경전 

인도 대륙에서 부파 불교는 넓은 지역으로 전파가 되고 그리고 각자의 세력에 따라서 일정한 지역적 중심지가 있었다. 그리고 지리적 사회적 여건상 각 부파들간의 원활한 교류나 인적 왕래가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 이는 다시 말해서 각자가 소지했던 빠알리 경전에 대한 오류를 줄이고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고착화 상태는 결국 각 부파별로 경전을 전승하는 형태를 띄게 되고 여러 붓다의 가르침 중에서 자신들의 부파에 맞는 경전만을 중점적으로 전승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부파별 전승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경전에서 보여주는 차이점은 가르침이 설해진 장소, 등장인물, 상황 전개순서 등과 같은 사소한 것으로서, 교리적 부파적 차이에 기인한 가르침의 차이는 아주 드물게 발견될 뿐이다. 즉 니까야(경장)/율장등 가르침 그 자체는 모든 부파가 동일했다는 것이다.


6) 아함경이란 어떤 경전인가

현존하는 한역 아함경의 경우 인도의 부파들이 소유하고 있던 빠알리 경전들이 산스크리트어등으로 문자화 되어 중국으로 전래되어 한역된 것이다. 이들 한역 아함경은 마치 단일 부파에 속하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장아함은 법장부, 중아함과 잡아함은 설일체유부, 그리고 증일아함은 대중부에 속하는 경전 문헌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시말해서 중국에서 아함경이란 단일 이름으로 번역된 것들은 실제 한 부파에 의해서 전승된 경전이 아니라 각 부파들이 전승한 여러개의 경전들을 하나로 묶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들 부파들은 각자 독립된 상태에서 인도어로 번역을 하였고 치열한 교리논쟁을 거치면서 경전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들을 변형하고 자신들의 논리를 첨가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붓다의 친설과 전통을 전승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니까야( Nikaya. 部) 와 아함 (Agama. 阿含)은 다른 경전이다. 즉 니까야는 3차경전의 결집이 고스란히 전승되어 스리랑카라는 섬나라에서 보존된 경전이고 아함은 인도대륙의 부파불교들이 각자 전승한 경전일 뿐이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어느것이 더 붓다의 친설에 가깝고 전통적으로 전승이 되어 왔나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판단해 볼 수 있는 것이다. 


7) 왜 빠알리 경전이 중요한가

빠알리 경전이 붓다의 친설이며 그 전통성과 권위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없다. 만약에 빠알리 경전의 존엄성과 전통성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그와 다른 별도의 경전이나 또는 유사한 경전이 발견되거나 전승을 한 부파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세계 어디에도 빠알리 경전과 비슷한 경전이 있거나 별도의 경전을 전승하고 있는 불교의 부파는 없다. 


또한 빠알리 경전에는 없는데 다른 경전에는 연기 사성제 팔정도와 같은 열반에 이르는 길이 있다면 전통성과 원음에 심각한 의문이 남겠지만 불행히도 이런 예는 없다. 우리가 빠알리 경전의 전통과 존엄을 의심해야 할 아무런 이유를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