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부처임과 천인이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문답하였다.
"어떤 것이 드는 칼이며
어떤 것이 독한 약이며
어떤 것이 타는 불이며
어떤 것이 어둠입니까?"
[악한 말이 드는 칼이며
탐하는 마음이 독한 약이요
성내는 마음이 타는 불이요
무명이 가장 어두움이니라]
"어떤 사람이 이익 얻으며
어떤 사람이 손해 당하며
어던 갑옷이 가장 굳으며
어떤 칼이 가장 잘 듭니까?"
[보시하는 자가 이익을 얻고
보시받는 자가 손해를 당한다
인욕이 제일 굳은 갑옷이며
지혜가 제일 잘 드는 칼이니라.]
"무엇을 도둑이라 하며
무엇을 지혜인의 재물이라 하며
하늘과 땅 사이에
도둑질은 누가 능합니까?"
[사견을 도둑이라 이르며
계행을 지혜인의 재물이라 하며
하늘과 땅 사이에
도둑은 계행을 범한 사람이다.]
"누가 가장 안락하며
누가 제일 부귀하며
누가 항상 단정하며
누가 항상 추합니까?"
[욕심이 없으면 안락하고
족한 줄 알면 제일 부귀하며
계행을 가지면 항상 단정하고
계행을 파하면 항상 추하다]
"누가 착한 권속 되오며
누가 악한 원한을 품고
무엇이 극중한 고통이 되고
무엇이 제일의 낙이 됩니까?"
[복이 좋은 권속이 되고
죄는 악한 원한이니라
지옥은 극중한 고통이 되고
나지 않음이 제일의 낙이 되리라]
"무엇이 즐거우나 마땅치 않으며
무엇이 마땅하나 즐겁지 않습니까?
무엇이 극히 더운 병이 되고
누가 참으로 어진 의원입니까?"
[욕심은 즐거우나 마땅치 않고
해탈은 마땅하나 즐겁지 않다
탐심이 극히 더운 병이 되고
여래가 제일 가는 의원이니라]
"무엇이 이 세간을 덮으며
이 세간은 누구에게 매혹됩니까?
무엇이 친한 벗을 버리게 하고
무엇이 천상 가는 길을 방해합니까?"
[지혜가 없으면 세간을 넘어뜨리고
세간은 우리에게 매혹당한다
간탐이 친한 벗을 버리게 하고
집착이 천상길의 장애가 된다]
"어떤 물건이 불에도 타지 않고
바람도 그것을 부수지 못하며
물도 그것을 썩히지 못하는데
그것은 자유로이 세간을 가집니까?"
[복은 불에도 타지 않고
심한 바람도 부수지 못하며
물도 그것을 썩히지 못하지만
복은 세상을 자유로이 갖는다]
"무엇이 국왕과 도둑에게
용맹스럽게 마주서서 대항하며
사람이거나 사람 아닌 것에
침노하거나 침노당하지 않습니까?"
[복은 국왕과 도둑에게
용맹스럽게 마주서서 대항하며
복은 사람과 사람 아닌 것에
침노하거나 침노당하지 않는다]
"제 마음엔 아직도 의심이 있으니
원컨데 부처님께서 풀어 주소서
금세나 후세나 무엇이 있어
자기를 끝끝내 속이나이까?"
[재물이 만고 권속이 많으면
오히려 복덕을 닦지 못하고
금세나 후세나 재물 때문에
스스로 속임을 받는 것이다]
어떤 천인이 문수보살에게 물었다.
"수행자가 간탐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도 보시바라밀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도 있다."
"어째서 그런 사람도 있습니까?"
"만일 수행하는 보살이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하여 보리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버리지 않는 것은 곧 간탐이지만 중생을 성숙시키느느 것은 보시 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이 된다."
"수행하는 보살이 파계를 하고도 지계바라밀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도 있다. 수행하는 보살이 중생을 섭취하는 것은 구족계가 되지 못하지만 중생을 섭취하여 성숙하에 하는 것은 지계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이다."
"수행자가 인욕하지 않고도 인욕바라밀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도 있다. 수행하는 보살이 외도를 버리는 것은 인욕을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없는 보리의 법인을 완전히 익히므로 인욕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이 된다."
"수행하는 사람이 아만심이 높고도 정진바라밀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도 있다. 수행하는 보살이 벽지불과 아라한의 도를 즐기지 않는다. 그러나 즐기지 않는 것은 아만이지만 일체지를 발휘하기 위하여 대승을 즐기어 게으름이 없이 마음이 무상의 보리를 생각하면 정진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이 된다."
"수행하는 보살이 산란한 마음으로 선정바라밀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도 있다. 수행하는 사람은 꿈에도 벽지불이나 아라한과를 즐기지 않는다. 그것은 산란한 마음이지만 오로지 무상의 보리를 구하여 선정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이다."
"수행하는 보살이 지혜가 없이도 지혜바라밀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도 있다. 수행하는 보살이 지혜가 적어서 세속의 도깨비나 주문등이 사람을 놀라게 하고 요란케 하는 것을 보고도 방편으로 구호할 지혜는 없지만 보리심을 위하므로 불지를 염하여 지혜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어느날 저녁 대림강당 앞뜰에서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설법하시었다.
"사리존자야, 모든 법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나는(生.생)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滅. 멸)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바라밀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참다운 보시에는 베풀 사람도 없고 베풀 물건도 없고 베품을 받는 사람도 없는 것이다.
계율로써 마음을 억제할 때에도 '계를 지킨다' '마음을 억제한다'는 생각이 없이 지계바라밀을 행하라. 실상에 있어서는 '허물을 범한다' '범하지 않는다'는 것이 없는 까닭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괴롭힘을 참을 때에도 '다른 사람이 나를 괴롭힌다'는 생각이 없이 인욕바라밀을 행하라. 괴롭힘에 의해서 마음이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힘을 써도 '힘쓴다'는 생각이 없이 정진바라밀을 행하라. 힘쓰고 게으르다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할 때에도 '생각한다'는 생각이 없이 선정바라밀을 행하라. 선정을 닦고 안 닦는다는 구별이 본래 없기 때문이다.
물건에 '집착한다'는 생각이 없이 지혜바라밀을 행하라. 모든 법의 체(體)나 상(相)은 다 잡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리존자야, 공(空) 성(性) 상(相)의 모든 것은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다고도 저렇다고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지혜바라밀을 행하라. 모든 것은 무상하여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사리존자야, 빨리 일체의 지혜를 얻어서 모든 번뇌를 떠나 다시는 물러서지 않는 지위에 이르려거든 지혜바라밀을 닦지 않으면 안된다. 이 지혜바라밀을 닦으면 사견을 가진 사람의 법을 따르거나 믿지 않으며 번뇌가 일어나더라도 불법승에 의지하여 기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부모나 형제와 같이 기쁘게 하는 것이다.
사리존자야, 어떤 사람이 지혜바라밀을 닦을 때에는 여러 천신들도 이것을 기뻐하여 그 사람이 음행을 떠나 처음부터 끝까지 청정행을 닦도록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욕심은 불과 같아서 마른 풀에 불붙는 것과 같이 자기 몸을 태우고 또한 더러운 것이어서 자기와 남을 더럽히며 원수와 같이 틈을 엿보는 것이다. 또 쓴 과일과 같고 칼과 같으며 불덩이와 같고 독한 그릇과 같으며 요술장이와 같고 어둠 속의 우물과 같고 거짓으로 진철히구는 적과 같기 때문이다.
사리존자야, 이 지혜바라밀을 닦을 때에는 지혜바라밀을 보지도 말고 지혜바라밀의 이름도 보지 말 것이며 행하고 행하지 않는 구별도 보지 말라. 왜냐하면 색은 그 본성이 공하기 때문에 공을 색이라 이름한 것이다. 원래 색의 자성은 공인데 자성이 공에 의하지 않고 가설로 그것을 색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이런 경우에 공은 색과 다르다. 그러나 색은 공을 떠나지 않고 공은 그대로 색인 것이며 보리니 중생이니 보살이니 하는 것도 모두 그 이름 뿐이다.
이 자성은 생(生)도 없고 멸(滅)도 없으며 또한 더러운 거도, 깨끗한 것도 없다. 이렇게 관(觀)해서 지혜바라밀을 닦아 생도 보지 말고 멸도 보지 않으며 더러움도 깨끗함도 보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가설로 이름하면서도 그 이름에 사로잡혀 분별으르 일으키고 말을 일으키며 집착을 일으키는 것이다. '나'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도 다 얻을 수 없는 공이지마는 시대를 따라 임시로 이름을 지었을 뿐이다. 거기에 무슨 집착을 일으키겠는가?
사리존자야, 이 지혜바라밀을 닦아 모든 번뇌를 떠나고 위없는 깨달음을 얻어 한량없는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원하지 않으면 안되다. 그리하여 공 무상 무아의 법을 따라 일체를 뛰어나서 다시는 물러서지 않는 지위를 얻어 모든 사람을 위한 참다운 복밭이 되어야 한다.
보리나 중생이나 보살이라 하는 것들이 다 이름뿐인 것을 말했듯이 이 지혜바라밀도 또한 이름으로 지혜바라밀이라 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름은 본래 없는 것이므로 안에도 없고 밖에도 없으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것이다. 다만 가설로 보이고 가설로 이름할 뿐이다. 따라서 유정 무정 무색의 중생들이 모두 그러하다. 비유하건데 꿈, 메아리, 그림자, 환상, 물 속의 달 등 이같은 것은 모두 표시뿐이며 나는 것도 없고 멸하는 것도 없는데 거짓 이름을 거짓으로 정한 것 뿐이다.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새로이 원을 세운 구도자가 이와 같은 지혜바라밀의 말을 듣는다면 두려움이 없겠습니까?"
"수보리야, 지혜바라밀에서 방편을 갖지 않고 또 선지식을 얻지 못하면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방편이란 것은 일체 법의 자성은 얻을 수 없는 것이고 이는 즉 일체지와 부합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마음은 다른 다섯 바라밀까지도 만족시킨다.
보살이 이 얻을 수 없는 지혜를 가지고 중생에게 가르침을 베풀고 이 가르침도 또한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보살의 보시바라밀이다.
스스로 행하고 스스로 관해서 그관과 행이 다 얻을 수 없는 것인줄 아는 것은 보살의 지계바라밀이다.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모든 법의 고.공.무아를 참고 기뻐하며 좋아하는 것은 인욕바라밀이다.
어떤 물건이나 다 얻을 수 없다는 것으로 알고 또 일체지에 상응하는 마음으로 정진해서 게으르지 않는 것은 보살의 정지나라밀이다.
보살이 지혜바라밀을 닦아서 조그마한 자리심(自利心)도 일으키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마음조차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선정바라밀이라 한다.
이러한 방편이 있는 사람이면 이 지혜바라밀을 들어도 공포심이 나지 않는다.
수보리야, 보살은 또 '색은 공이라 관하기 때문에 공이 아니다. 색은 그 자체가 본래 공하다. 또한 수상행식도 공이라 관하기 때문에 역시 공은 아니다. 자성이 공한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수보리야, 보살은 이와 같이 보살의 자성이 공해서 얻을 수 없는 것을 알고 지혜바라밀을 알기 때문에 두렵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지혜바라밀에서 방편이 있는 것이라 한다.
수보리야, 보살의 선지식이란 무엇인가?
모든 법은 성품이 공한 것으로써 얻을 수 없으며 여러가지 선근, 수행도 끝끝내 공한 것으로서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가르쳐 작은 깨달음의 안일에 들지 않게 하고 일체지로 회항시키는 것이다.
또 악지식이란 육바라밀을 떠나라고 가르쳐서 조그마한 이익에 머물러 자기만의 깨달음에 만족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혹은 암가가 여러가지 형상으로 나타나 수행자에게 육바라밀을 떠나라고 하고 작은 가르침에 머물게 하며, 도는 일체가 다 공이면 부처도 없고 보살도 없고 따라서 불도를 구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또 모든 법은 자성이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는 가르침에 반대해서 다른 가르침을 내세울 때에 이런것은 다 악의 일이라고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 악지식이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있던 수보리가 부처님께 다시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보살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아무 의미없는 것이 보살의 의미이다. 왜냐하면 보리에는 의지할 곳도 없고 '나'도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공중을 날으는 새의 자취가 없는 것처럼, 또는 꿈, 환상, 불꽃, 소리, 그림자들을 붙잡을 수 없는 거서럼 보살의 의미도 없는 것이다. 보살이라 하고 보리라 하고 보살의 의미라고 하는 이 모든 법은 모이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색도 없고 형상도 없어서 상대가 없는 무상이며 따라서 무애인 것이다."
"부처님이시여, 마하살이란 무슨 뜻입니까?"
"수보리야, 보살은 반드시 열반에 드는 사람의 우두머리이므로 대사라고 한다. 왜냐하면 보살은 일체 법을 알고 일체 중생을 구제 하겠다는 다음과 같은 열가지의 큰 마음을 일으키는데 그 마음이 금강석과 같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1) 삼악도를 깨끗이 하겠다
2) 일체 존재의 모양에 집착을 버리겠다
3) 일체 중생과 마음을 같이 하겠다
4) 일체 중생을 구제해서 깨달음에 들게 하겠다
5) 일체 중생을 구제하여도 한사람도 구제했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겠다
6)일체 법의 생멸이 없음을 깨닫겠다
7) 일체 지혜의 마음으로서 육바라밀을 닦겠다
8) 지혜를 닦아서 모든 법을 알겠다
9) 일체 법이 공해서 모양이 없음을 알겠다
10)일체 법이 모양이 없으므로 그것을 깨닫겠다
이 열가지의 큰 원이 금강석과 같이 굳은 것이 보살의 큰 마음이다. 보살은 또 지옥 아귀의 고통에 잠긴 중생을 대신해서 그 고통을 받는 큰 마음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더러운 마음, 화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작은 이익에 만족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부동심을 일으켜 법을 믿고 법을 찾고 법을 받고 법을 수행해서 공에 머물러 열반에 드는 사람의 상수가 되므로 마하살이라 한다."
"부처님이시여, 대승에 나아가 대승을 탄다고 하는데 이 대승에 타는 물건은 어디서 출발하여 어디로 가고 어디에 머무르며 또 누가 타는 것입니까?"
"수보리야, 육바라밀이 곧 대승이다. 일체의 지혜에 계합하는 마음으로써 안팎의 모든 보시를 중생과 더불어 보리로 회향하는 것은 보시바라밀이다.
스스로 십선(十善)을 닦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행하게 하는 것은 지계바라밀이다.
자신이 일체 번뇌를 참으며 다른 사람에게도 참게 하는 것은 인욕바라밀이다.
인내와 절제로 자신을 정화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는 것은 정진바라밀이다.
선정에 들어 그 선정의 과를 받지 않을 뿐더러 다른 사람에게도 선정에 들게하는 것은 선정 바라밀이다.
일에 법에 집착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도 집착을 떠나게 하는 것은 지혜바라밀이다.
이와같이 육바라밀을 닦되 육바라밀에 걸려 있지도 않고 구속되지도 않는 것이므로 대승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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