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근본불교) 이야기

붓다의 45년 안거 기록

실론섬 2014. 7. 8. 14:44

45년이라는 긴 교화기간 동안, 부처님은 인도의 북부지방을 널리 편력하셨다. 그러나 우기(雨期)의 안거철에는 대개 한 곳에 머무셨다. 다음은 부처님이 안거하신 지역들을 경전에서 간추린 것이다.


첫해 : 바라나시(베나레스) - 7월 보름에 처음으로 법을 선포하신 후 부처님은 첫 우기를 이시빠따나(초전법륜지. 사슴동산)에서 보내심.


2, 3, 4년째 : 라자가하[王舍城]의 웰루와나[竹林精舍] - 유명한 재가 후원자 수다따 장자가 부처님께 귀의한 것은 이 3년째 되던 해의 일이다. 그는 자선가로 유명해 아나타삔디까 즉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돌봐 주는 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꼬살라국의 사와티[舍衛城] 사람인 그는 마가다국의 라자가하에 왔다가 부처님이 출현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 친견하고 법문을 들었다. 삼보에 깊은 신심을 발하게 된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예류과를 성취했다. 그 후 그는 부처님의 주요 후원자로 유명해졌다. 오늘날 사헤트-마헤트로 불리는 사와티에 그 유명한 제따와나 사원[祇園精舍]를 지어 부처님과 그 제자들에게 바쳤다. 이 사원의 유적지는 지금도 볼 수 있다.


5년째 : 웨살리 - 부처님은 중각강당(重閣講堂)에서 지내셨다. 숫도다나 왕이 이 해에 병이 들었다. 부처님은 부왕(父王)을 찾아가 법을 설해 드렸다. 법문을 들은 왕은 완전한 청정(아라한과)을 얻게 되었고, 일주일 동안 해탈의 즐거움을 누린 후 입적했다. 비구니 승단이 생긴 것도 이 해였다.


6년째 : 만꿀라 언덕 - 여기에서 부처님은 쌍신변(雙身變)을 나투셨다. 친족인 석가족의 아만심을 꺾기 위해서 까삘라와투에서 이러한 신통을 처음으로 보여주신 적이 있다.


7년째 : 삼십삼천 - 이 해에 부처님은 삼십삼천에 올라가 어머니 마야 부인을 필두로 한 천신들에게 수승한 법인 아비담마를 설하셨다. 마야 부인은 싯닷타 왕자를 낳고 이레만에 죽어서 삼십삼천에 남자천신으로 다시 태어났던 것이다.


8년째 : 베사깔라 숲 - 부처님이 여기 계실 때 금슬 좋은 나꿀루삐따 부부가 부처님을 친견하고 그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이 다음 생에도 이어지기를 발원했다. 부처님은 이 두 사람을 제자들 중 가장 의좋은 사이로 인정하셨다.


9년째 : 꼬삼비의 고시따 정사


10년째 : 빠아릴레이야까 숲 - 꼬삼비에서 한 비구가 저지른 사소한 잘못을 놓고 비구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 것이 바로 이 해의 일이었다. 그들은 부처님의 훈계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였으므로 부처님께서는 이 숲으로 물러나셨다. 안거가 끝날 무렵 분쟁은 해결되어 비구들은 사와티 성으로 와서 부처님께 용서를 빌었다.


11년째 : 에까날라 마을(마가다 국) - 『숫따니빠따』에 나오는 유명한 「밭을 가는 바라드와자 경」을 설하신 곳이 바로 여기다. 농사짓는 바라문 바라드와자가 부처님께 무례하게 말을 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특유의 침착성으로 이를 응대하여 결국 그 바라문을 열렬한 신도로 만드셨다.


12년째 : 웨란자 마을 - 부처님께서 율(律)을 제정하기 시작하신 것이 이 해부터라고 한다. 그리고 유명한 웨란자의 사건이 생긴 것도 이 안거기간 중이었다. 그는 부처님을 친견하고 불교 수행에 관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한 다음 부처님의 대답에 만족하여 불자가 되었다. 그는 부처님과 승단이 그 해 안거를 웨란자 마을에서 보내도록 청했다. 마침 그 해에 기근이 들었다. 부처님과 제자들은 말장수들이 올리는 매우 조악한 음식(말들이 먹는 보리)으로 그 철을 지내야 했다. 비록 브라만이 약속은 저버렸으나 부처님은 당신이 늘 행하시는 관례대로 안거를 마치고 행각을 떠나기 앞서 초청자에게 하직인사를 했다. 바라문 웨란자는 자신이 부처님과 제자를 청해 놓고도 가사에 골몰한 나머지 한철 내내 초청자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허물을 사과한 후 다음날 부처님과 승단에 음식과 옷을 보시했다.


13년째 : 짤리야 바위산(짤리까 시 부근) - 이 철에는 메기야 장로가 부처님의 시봉을 들었다. 장로는 강가의 아름다운 망고 숲에 마음이 끌려 그곳에 가서 선정을 닦고 싶다고 부처님께 허락을 구했다. 다른 비구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부처님이 만류하셨건만 그는 거듭 졸랐다. 마침내 부처님의 허락을 받고 그곳에 갔지만 장로는 뜻밖에도 선정은커녕 감각적 쾌락, 악의, 해악심 따위에 시달리기만 하다가 실망해서 돌아왔다.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메기야여! 성숙하지 못한 사람의 마음이 성숙하는 데는 다음의 다섯 가지가 도움이 된다. 첫째 좋은 벗, 둘째 기본적 계율에 따른 덕 있는 행위, 셋째 탐욕을 멀리함, 고요․멸진․깨달음 그리고 열반으로 이끌어 주는 훌륭한 조언, 넷째 나쁜 생각들을 버리고 건전한 생각들을 지니려는 노력, 다섯째 사물의 발생과 소멸을 분명히 보는 지혜의 획득이 바로 그것이다.”(이 예비 수행은 보다 높은 단계의 선정을 익히기 위해 반드시 닦아야 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14년째 : 사와티의 제따와나 정사 - 이 철에, 이제껏 사미였던 라훌라 존자가 구족계(비구계)를 받았다. 율장에 따르면 구족계는 20세가 되어야만 받을 수 있는데 라훌라 존자가 그 나이가 된 것이다.


15년째 : 까삘라와투 - 싯닷타 왕자의 탄생지. 이 해에 야소다라 비의 아버지 수빠붓다 왕이 죽었다.


16년째 : 알라위 시(市)-이 해에 부처님은 사람 잡아먹기를 즐기는 야차 알라와까를 제도하여 추종자로 만드셨다. 알라와까와의 문답은 『숫따니빠따』의 「알라와까 경」에 자세히 나온다.


17년째 : 라자가하의 웰루와나 정사 - 이 철에 유명한 고급 창녀이며, 의사 지와까의 누이동생인 시리마가 죽었다. 장례식에 참석하신 부처님은 왕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그 시체를 사갈 사람을 찾는 공고를 내어 보라’고 하셨다. 살아있을 때 그토록 사람들을 매혹시키던 그 몸뚱이. 그러나 누구 하나, 돈은커녕 거저 주어도 그 시신을 가져가려 하지 않았다. 이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대중들을 향해 읊으셨다.


“보라, 이 분칠 한 모습을

상처 투성이의 (뼈마디로) 엮어 이루어진

병든, 뭇사람들의 관심의 적이던

이 몸을, 거기 어디에 항상함이 있고

견고함이 있는가.”


18년째 : 짤리야 바위산 - 이 철에 한 직조공의 어린 딸이 부처님을 친견하고, 죽음을 염(念)하는 공부법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았다. 이 가르침을 잊지 않고 부지런히 닦았던 소녀는 다음에 다시 친견했을 때 부처님이 던지신 네 가지 질문에 정확히 대답했다. 소녀의 대답은 매우 철학적이어서 부처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부처님은 소녀를 칭찬하면서 대중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이 세상은 눈멀었도다. 분명히 보는 자 적도다.

겨우 몇몇 사람만이 좋은 세계(천상계)로 가는구나.

그물을 벗어난 새처럼.”47)


소녀는 법을 듣고 성위(聖位)의 첫단계(예류과)를 성취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소녀는 요절하고 만다.


19년째 : 짤리야 바위산


20년째 : 라자가하 - 웰루와나 정사


21년부터 43년까지 : 사와티에서


이 스물네 번의 안거 중 열여덟 안거는 기원정사에서, 나머지 안거는 동원정사(東園精舍, 鹿子母講堂)에서 지내셨다. 이 기간 동안은 아나타삔디까와 위사카가 주된 시주였다.


44년째 : 벨루와 마을(웨살리 근처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추정됨) - 이곳에서 부처님은 크게 앓으셨으나 의지력으로 이겨내셨다. 


성도 후 45년째, 부처님은 우기가 시작되기 전인 5월에 꾸시나라(혹은 꾸시나가라)에서 반열반에 드셨다.


정각을 이루신 후 처음 20년 간은 다음의 수행승들이 수시로 스승을 시봉했다. 비구 나가사말라, 나기따, 우빠와나, 수낙카따, 사가따, 라다 그리고 메기야와 사미 쭌다였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후 부처님께서는 일정한 시자를 정하기를 원하셨다. 그러자 사리뿟따, 목갈라나 등 80여 명의 대 아라한들이 기꺼이 모두 스승을 시봉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부처님께서는 이들 아라한들이 당신을 시봉하기보다는 인류에게 직접 보다 큰 봉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음에 틀림없다.


그러자 장로들은 줄곧 침묵만 지키고 있던 아난다 장로에게 시자로 받아주실 것을 청해 보라고 권유했다. 아난다 장로의 대답이 흥미롭다.

“스승님께서 나를 시자로 삼기를 원하신다면 직접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다른 사람들의 권유를 기다리지 말라. 너 혼자서 나를 시봉하도록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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