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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의 모음 - 2. 잠재 성향 품(Anusaya-vagga. AN7.11-20)

실론섬 2014. 8. 7. 19:08

제2장 잠재 성향 품 Anusaya-vagga(AN 7.11-20)

 

paṭhamānusayasuttaṃ (AN 7.11-잠재성향 경1)

11.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잠재성향이 있다. 무엇이 일곱인가?
감각적 쾌락의 잠재성향(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성향),
성냄의 잠재성향, 견해의 잠재성향, 의심의 잠재성향, 자만의 잠재성향, 존재에 대한(있음에 대한) 탐냄의 잠재성향, 무명의 잠재성향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잠재성향이 있다."

 

dutiyānusayasuttaṃ (AN 7.12-잠재성향 경2)

12.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잠재적 성향을 제거하고 뿌리 뽑기 위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 무엇이 일곱인가?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을 제거하고 뿌리 뽑기 위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 ··· 성냄의 잠재적 성향을 ··· 견해의 잠재적 성향을 제거하고 ··· 의심의 잠재적 성향을 ··· 교만의 잠재적 성향을 ··· 존재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을 ··· 무명의 잠재적 성향을 뿌리 뽑기 위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잠재적 성향을 제거하고 뿌리 뽑기 위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

 

비구들이여, 비구의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이 제거되고 그 뿌리가 뽑히고 윗부분이 잘리고 줄기만 남은 야자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을 때, 이것을 ‘비구는 갈애를 잘라버렸다. 족쇄를 풀어버렸다. 자만을 바르게 관통하여 마침내 괴로움을 끝냈다.’라고 한다. ··· 성냄의 잠재적 성향이 ··· 견해의 잠재적 성향이 ··· 의심의 잠재적 성향이 ··· 교만의 잠재적 성향이 ··· 존재에 대한 탐욕의 잠재적 성향이 ··· 무명의 잠재적 성향이 제거되고 그 뿌리가 뽑히고 윗부분이 잘리고 줄기만 남은 야자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을 때, 이것을 ‘비구는 갈애를 잘라버렸다. 족쇄를 풀어버렸다. 자만을 바르게 관통하여 마침내 괴로움을 끝냈다.’라고 한다.

 

kulasuttam (AN 7.13-가문 경) 
13.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요소를 갖춘 재가신도 집을 아직 방문하지 않았으면 더 이상 방문할 필요가 없고 방문했으면 더 이상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무엇이 일곱인가?
마음에 들도록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지 않고, 마음에 들도록 공경을 하지 않고, 마음에 들도록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으면서도 감추고, 많이 있지만 적게 주고, 맛있는 것이 있지만 거친 것을 주고, 성의 없이 하고 정성을 다해서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요소를 갖춘 재가신도 집을 아직 방문하지 않았으면 더 이상 방문할 필요가 없고 방문했으면 더 이상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요소를 갖춘 재가신도 집을 아직 방문하지 않았으면 방문하는 것이 좋고 방문했으면 앉아있을 만하다. 무엇이 일곱인가?
마음에 들도록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고, 마음에 들도록 공경을 하고, 마음에 들도록 자리를 내놓고, 감추지 않고, 많이 있으면 많이 주고, 맛있는 것이 있으면 맛있는 것을 주고, 정성을 다해서 하고 성의 없이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요소를 갖춘 재가신도 집을 아직 방문하지 않았으면 방문하는 것이 좋고 방문했으면 앉아있을 만하다.”

 

puggalasuttam (AN 7.14-사람 경)
14.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부류의 사람은 공양을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없는 복전[福田]이다. 무엇이 일곱인가?
양면으로 해탈[兩面解脫]한 자,
지혜로  해탈[慧解脫]한 자, 몸으로 체험한 자, 견해를 얻은 자, 믿음으로 해탈한 자, 법을 따르는 자, 믿음을 따르는 자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부류의 사람은 공양을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이다.”

 

udakūpamāsuttaṃ (AN 7.15-물의 비유 경)
15.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물에 비유되는 일곱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일곱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한번 물에 잠겨서는 계속 잠겨있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 다시 잠겨버린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 머물러 있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 잘 보고 관찰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 건너간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  튼튼한 발판을 얻는다(견고한 땅에 닿는다).

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 건너고 저 언덕에 가서 땅에 선 바라문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사람이 한번 물에 잠겨서는 계속 잠겨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전적으로 삿된 불선법을 갖추어 있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한번 물에 잠겨서는 계속 잠겨있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나온 뒤에 다시 잠겨버리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선법들에 대한 믿음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뉘우칠 줄 아는 힘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정진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지혜는 좋은 것이다.’라면서 나온다. 그러나 그의 그런 믿음은 머물러 있지도 증장하지도 않고 단지 줄어들거나 없어져버린다. 그의 그런 뉘우칠 줄 아는 힘은 ··· 그런 그의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은 ··· 그런 그의 정진은 ··· 그런 그의 지혜는 머물러 있지도 증장하지도 않고 단지 줄어들거나 없어져버린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 다시 잠겨버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나온 뒤에 머물러 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선법들에 대한 믿음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뉘우칠 줄 아는 힘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정진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지혜는 좋은 것이다.’라면서 나온다. 그의 그런 믿음은 없어지지도 않고 증장하지도 않고 그냥 머물러 있다. 그의 그런 뉘우칠 줄 아는 힘은 ··· 그런 그의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은 ··· 그런 그의 정진은 ··· 그런 그의 지혜는 없어지지도 증장하지도 않고 그냥 머물러 있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 머물러 있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나온 뒤에 잘 보고 관찰하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선법들에 대한 믿음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뉘우칠 줄 아는 힘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정진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지혜는 좋은 것이다.’라면서 나온다. 그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부수었기 때문에 악처에 떨어지는 존재를 넘어섰고, 한 방향이고, 깨달음이 결정된 예류자(預流者)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 잘 보고 관찰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나온 뒤에 건너가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선법들에 대한 믿음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뉘우칠 줄 아는 힘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정진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지혜는 좋은 것이다.’라면서 나온다. 그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부서지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졌기 때문에 한 번 만 더 돌아올 자(일래자.一來者)이니,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온 뒤에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 건너간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나온 뒤에 튼튼한 발판을 얻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선법들에 대한 믿음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뉘우칠 줄 아는 힘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정진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지혜는 좋은 것이다.’라면서 나온다.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하는 자이니,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존재(불환자.[不還者)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 튼튼한 발판을 얻는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나온 뒤에 건너고 저 언덕에 가서 땅에 선 바라문이 되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선법들에 대한 믿음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뉘우칠 줄 아는 힘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정진은 좋은 것이고, 선법들에 대한 지혜는 좋은 것이다.’라면서 나온다. 그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여 성취해 머문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 건너고 저 언덕에 가서 땅에 선 바라문이다.”

 

aniccānupassīsuttaṃ (AN 7.16-무상(無常)을 이어 보는 자 경)
16. “비구들이여, 일곱 부류의 사람은 공양을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福田]이다. 무엇이 일곱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형성된 모든 것에 대해 무상을 이어 보면서(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그는 무상을 인식하고 무상을 경험한다. 언제나 한결같이 지속적으로 이것을 마음으로 확신하고(마음을 기울이고) 혜로써 여기에 깊이 들어간다. 그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여 성취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사람이 공양을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인 첫 번째 사람이다.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형성된 모든 것에 대해 무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그는 무상을 인식하고 무상을 경험한다. 언제나 한결같이 지속적으로 이것을 마음으로 확신하고 혜로써 여기에 깊이 들어간다. 그는 생명이 다하는 바로 그 순간에(앞도 뒤도 없이) 번뇌가 다한다. 비구들이여, 이 사람이 공양을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福田]인 두 번째 사람이다.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모든 형성된 것에 대해 무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그는 무상을 인식하고 무상을 경험한다. 언제나 한결같이 지속적으로 이것을 마음으로 확신하고 혜로써 여기에 깊이 들어간다.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수명의 중반쯤에 이르러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가 된다. ··· 수명의 반이 지나서 완전히 열반에 드는 자가 된다. ··· 행(行)없이 완전히 열반하는 자가 된다. ··· ()을 통해 완전히 열반하는 자가 된다. ··· 더 높은 세계로 재생하여 색구경천에 태어나는 자가 된다. 비구들이여, 이 사람이 공양을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福田]인 일곱 번째 사람이다.

 

*'수명의 중반쯤에 이르렀다'는 것은 수명의 반을 아직 넘기지 못했다는 뜻이다.(AA.iv.7)
*'행없이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asankhara-paribibbayi)'란 노력없이, 피로함이 없이, 쉽게 열반에 드는 자란 말이다. '행을 통하여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sasankhara-parinibbayi)'란 노력하여, 피로하고, 어렵게 열반에 드는 자란 뜻이다.(DA.iii.1030)

 

비구들이여, 일곱 부류의 사람은 공양을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福田]이다."

 

dukkhānupassīsuttaṃ (AN 7.17-고(苦)를 이어 보는 자 경)

17. “비구들이여, 일곱 부류의 사람은 공양을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福田]이다. 무엇이 일곱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모든 형성된 것에 대해 괴로움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

 

anattānupassīsuttaṃ (AN 7.18-무아(無我)를 이어 보는 자 경)

18. 모든 법들에 대해서 무아를 이어 보면서 머문다. ···

 

nibbānasuttaṃ (AN 7.19-열반 경)

19. “열반에 대해 행복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그는 행복을 인식하고 행복을 경험한다. 언제나 한결같이 지속적으로 이것을 마음으로 확신하고 혜로써 여기에 깊이 들어간다. 그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런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여 성취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사람이 공양을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인 첫 번째 사람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열반에 대해 행복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언제나 한결같이 지속적으로 이것을 마음으로 확신하고 혜로써 여기에 깊이 들어간다. 그는 생명이 다하는 바로 그 순간에 번뇌가 다한다. 비구들이여, 이 사람이 공양을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인 두 번째 사람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열반에 대해 행복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언제나 한결같이 지속적으로 이것을 마음으로 확신하고 혜로써 여기에 깊이 들어간다.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수명의 중반쯤에 이르러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가 된다. ··· 수명의 반이 지나서 완전히 열반에 드는 자가 된다. ··· 행(行)없이 완전히 열반하는 자가 된다. ··· 행(行)을 통해 완전히 열반하는 자가 된다. ··· 더 높은 세계로 재생하여 색구경천에 태어나는 자가 된다. 비구들이여, 이 사람이 공양을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福田]인 일곱 번째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일곱 부류의 사람은 공양을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福田]이다."

 

niddasavatthusuttaṃ (AN 7.20-차별의 토대 경)
20.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차별의 토대가 있다. 무엇이 일곱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닦음을 성취하는 것에 대한 강한 의욕이 있고, 미래에도 닦음의 성취에 대한 열정이 떠나지 않는다.

여기 비구는 법을 관찰하는 것에 대한 강한 의욕이 있고, 미래에도 법의 관찰하는 것에 대한 열정이 떠나지 않는다.

여기 비구는 욕망을 길들이는 것에 대한 강한 의욕이 있고, 미래에도 욕망을 길들이는 것에 대한 열정이 떠나지 않는다.

여기 비구는 홀로 머묾에 대한 강한 의욕이 있고, 미래에도 홀로 머묾에 대한 열정이 떠나지 않는다.

여기 비구는 열심히 정진하는데 대한 강한 의욕이 있고, 미래에도 열심히 정진하는데 대한 열정이 떠나지 않는다. 
여기 비구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에 대한 강한 의욕이 있고, 미래에도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에 대한 열정이 떠나지 않는다.

여기 비구는 바른 견해로 꿰뚫음에 대한 강한 의욕이 있고, 미래에도 바른 견해로 꿰뚫음에 대한 열정이 떠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차별의 토대가 있다.”

 

 

제2장 잠재성향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