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큰 제사 품 Mahāyañña-vagga (AN 7.44-53)
sattaviññāṇaṭṭhitisuttaṃ (AN 7.44-일곱 가지 의식의 거주처 경)
44.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의식의 거주처가 있다. 무엇이 일곱인가?
비구들이여, 각자 다른 몸을 가지고 각자 다른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인간들과 어떤 신들과 어떤 악처에 떨어진 자들이다. 이것이 첫 번째 의식의 거주처이다.
비구들이여, 각자 다른 몸을 가졌지만 모두 같은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예를 들면 초선(初禪)을 닦아서 태어난 범신천(梵身天)의 신들이다. 이것이 두 번째 의식의 거주처이다.
비구들이여, 모두 같은 몸을 가졌지만 각자 다른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예를 들면 광음천(光音天)의 신들이다. 이것이 세 번째 의식의 거주처이다.
비구들이여, 모두 같은 몸을 가졌고 모두 같은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예를 들면 변정천(遍淨天)의 신들이다. 이것이 네 번째 의식의 거주처이다.”
비구들이여, 물질[色]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도달한 중생들이 있다. 이것이 다섯 번째 의식의 거주처이다.
비구들이여,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의식[識]’라고 하면서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도달한 중생들이 있다. 이것이 여섯 번째 의식의 거주처이다.
비구들이여, 일체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도달한 중생들이 있다. 이것이 일곱 번째 의식의 거주처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의식의 거주처가 있다.”
*'인간들(manussa)'에 대한 것은 헤아릴 수 없는 우주에서 한량없는 인간들의 피부색과 생김새 등은 단 두 사람도 동일하지 않다. 비록 쌍둥이 형제가 피부색과 생김새는 닮았다 하나 그들이 앞으로 쳐다보고 뒤로 돌아다보고 말하고 웃고 가고 서고 하는 것은 다르다. 그러므로 다른 몸을 가졌다 한다. 재생연결의 인식도 세 가지 원인을 가진 자가 있고, 두 가지 원인을 가진 자가 있고, 원인 없는 인식을 가진 자가 있다. 그러므로 다은 인식을 가졌다고 한다.
'어떤 신들(ekacce ca deva)'이란 여섯 가지 욕계 천상을 말한다. 그들 가운데 어떤 신은 푸르고, 어떤 신은 노란색등을 가진다. 인식도 그들에게는 두 가지 원인을 가졌거나 세 가지 원인을 가진다. 원인없는 인식은 없다.
'어떤 악처에 떨어진 자들(ekacce ca vnipatika)'이란 4가지 악처에서 벗어난 야차니(yakkhini)인 웃따라의 어머니, 삐양까의 어머니, 풋사의 어머니, 담마굿따를 비롯한 다른 천상의 아귀들이다. 이들은 노란색, 흰색, 검은색, 황금색, 검푸른색 등이고, 몸도 크거나 작거나 길어서 다르다. 인식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세 가지 원인을 가진 자가 있고, 두 가지 원인을 가진 자가 있고, 원인 없는 인식을 가진 자가 있다. 이들은 신들처럼 큰 위력을 가지지는 못하였으며, 가난한 인간들처럼 위력이 없고 겨우 몸을 가리는 천조차도 얻기 힘들고 괴로움에 압도되어 머문다.
samādhiparikkhārasuttaṃ (AN 7.45-삼매의 필수품 경)
45.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삼매의 필수품이 있다. 무엇이 일곱인가?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마음 챙김[正念]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일곱 가지 요소를 갖춘 심일경성(心一境性.cittassekaggata.)이 성스러운 바른 삼매[정정(正定)]여서 기반을 가졌다고도, 필수품을 가졌다고도 불린다."
paṭhamāggisuttaṃ (AN 7.46-불 경1)
46.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불이 있다. 무엇이 일곱인가?
탐욕의 불, 성냄의 불, 어리석음의 불, 헌공 받을만한 불, 가장의 불, 보시 받을만한 불, 나무토막 불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불이 있다.”
dutiyāggisuttaṃ (AN 7.47-불 경2)
47. 그 무렵 욱가따사리라 바라문이 큰 제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제사를 위해 오백 마리의 황소가 제사 기둥으로 끌려나왔고, 제사를 위해 오백 마리의 숫송아지가 제사 기둥으로 끌려나왔고, 제사를 위해 오백 마리의 암송아지가 제사 기둥으로 끌려나왔고, 제사를 위해 오백 마리의 염소가 제사 기둥으로 끌려나왔고, 제사를 위해 오백 마리의 숫양이 제사 기둥으로 끌려나왔다. 그때 욱가따사리라 바라문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욱가따사리라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개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는 것은 많은 결실이 있고 많은 이익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도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는 것은 많은 결실이 있고 많은 이익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두 번째로 욱가따사리라 바라문은 ··· 세 번째도 욱가따사리라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는 것은 많은 결실이 있고 많은 이익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도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는 것은 많은 결실이 있고 많은 이익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처럼 고따마 존자와 우리는 참으로 모든 것이 일치합니다.”
이렇게 말하자 아난다 존자가 욱가따사리라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여래들에게 이렇게 여쭈어서는 안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는 것은 많은 결실이 있고 많은 이익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라고. 바라문이여, 여래들에게는 이렇게 여쭈어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불을 안치하고자 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고자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저에게 교훈을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저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것은 저에게 오랜 세월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입니다.’라고.”
그러자 욱가따사리라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불을 안치하고자 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고자 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에게 교훈을 주십시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러면 그것은 제게 오랜 세월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입니다.”라고.
“바라문이여,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는 자는 제사를 지내기 전에 불선(不善)이고 괴로움을 초래하고 괴로움을 익게하는(괴로움의 과(果)와 괴로움의 보(報)를 가져오는) 세 가지 칼을 세운다. 무엇이 셋인가? 몸의 칼과 말의 칼과 마음의 칼이다.
바라문이여,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는 자는 제사를 지내기 전에 이런 마음을 일으켰다. ‘제사를 위해 이만큼의 황소들을 죽여라. 제사를 위해 이만큼의 숫송아지들을 죽여라. 제사를 위해 이만큼의 암송아지들을 죽여라. 제사를 위해 이만큼의 염소들을 죽여라. 제사를 위해 이만큼의 숫양들을 죽여라.’라고. 그는 ‘나는 공덕을 짓는다.’라고 하면서 악덕을 짓고, ‘선(善)을 짓는다.’라고 하면서 불선(不善)을 짓고, ‘나는 좋은 곳[善處]으로 가는 길을 추구한다.’라고 하면서 불행한 곳[惡處]으로 가는 길을 추구한다. 바라문이여,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는 자는 제사를 지내기도 전에 불선이고 괴로움을 초래하고 괴로움을 익게하는 이런 첫 번째 마음의 칼을 세운다.
또한, 바라문이여,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는 자는 제사를 지내기 전에 이런 말을 한다. ‘제사를 위해 이만큼의 황소들을 죽여라. 제사를 위해 이만큼의 숫송아지들을 죽여라. 제사를 위해 이만큼의 암송아지들을 죽여라. 제사를 위해 이만큼의 염소들을 죽여라. 제사를 위해 이만큼의 숫양들을 죽여라.’라고. 그는 ‘나는 공덕을 짓는다.’라고 하면서 악덕을 짓고, ‘선(善)을 짓는다.’라고 하면서 불선(不善)을 짓고, ‘나는 좋은 곳[善處]으로 가는 길을 추구한다.’라고 하면서 불행한 곳[惡處]으로 가는 길을 추구한다. 바라문이여,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는 자는 제사를 지내기도 전에 불선이고 괴로움을 초래하고 괴로움을 익게하는 이런 두 번째 말의 칼을 세운다.
또한, 바라문이여,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는 자는 제사를 지내기 전에 제사를 위해 황소들을 죽이는 일을 스스로 먼저 시작한다. 제사를 위해 숫송아지들을 죽이는 일을 스스로 먼저 시작한다. 제사를 위해 암송아지들을 죽이는 일을 스스로 먼저 시작한다. 제사를 위해 염소들을 죽이는 일을 스스로 먼저 시작한다. 제사를 위해 숫양들을 죽이는 일을 스스로 먼저 시작한다. 그는 ‘나는 공덕을 짓는다.’라고 하면서 악덕을 짓고, ‘선(善)을 짓는다.’라고 하면서 불선(不善)을 짓고, ‘나는 좋은 곳[善處]으로 가는 길을 추구한다.’라고 하면서 불행한 곳[惡處]으로 가는 길을 추구한다. 바라문이여,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는 자는 제사를 지내기도 전에 불선이고 괴로움을 초래하고 괴로움을 익게하는 이런 세 번째 몸의 칼을 세운다.
바라문이여,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는 자는 제사를 지내기 전에 불선(不善)이고 괴로움을 초래하고 괴로움을 익게하는(괴로움의 과(果)와 괴로움의 보(報)를 가져오는) 세 가지 칼을 세운다.
바라문이여, 제거해야 하고, 피해야 하고, 실천하지 않아야 하는 세 가지 이런 불이 있다. 어떤 셋인가?
탐욕의 불과 성냄의 불과 어리석음의 불이다.
바라문이여, 무엇 때문에 탐욕의 불은 제거해야 하고 피해야 하고 실천하지 않아야 하는가?
바라문이여, 탐욕을 즐거워하고 탐욕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속박된 자는 몸으로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저지른다. 그는 몸으로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저지른 것을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탐욕의 불은 제거해야 하고 피해야 하고 실천하지 않아야 한다.
바라문이여, 무엇 때문에 성냄의 불은 제거해야 하고 피해야 하고 실천하지 않아야 하는가?
바라문이여, 불쾌해하고 성냄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속박된 자는 몸으로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저지른다. 그는 몸으로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저지른 것을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성냄의 불은 제거해야 하고 피해야 하고 실천하지 말아야 한다.
바라문이여 무엇 때문에 어리석음의 불을 제거해야 하고 피해야 하고 실천하지 않아야 하는가?
바라문이여, 열중하고 어리석음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속박된 자는 몸으로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저지른다. 그는 몸으로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저지른 것을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어리석음의 불은 제거해야 하고 피해야 하고 실천하지 않아야 한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제거해야 하고 피해야 하고 실천하지 않아야 하는 이런 세 가지 불이다.
바라문이여,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한 뒤 바르게 행복을 가져와야 하는 세 가지 불이 있다. 어떤 셋인가?
헌공 받을만한 불, 가장의 불, 보시 받을만한 불이다.
*불(agni)은 인도의 제사에서 헌공하는 공물을 신들에게 옮겨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래서 베다 제사에서는 반드시 아하와니야(ahavaniya), 가르히빠따(garhipatya), 닥시나(daksina)의 세 가지 불을 피우는 제단을 만든다. 본경에서는 이러한 세 가지 불을 불교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헌공(ahuna)이란 공경(sakkara)이다. 헌공을 받을 만하다(arahanti)고 해서 헌공하는 불(ahuneyya)이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에 헌공을 받을만 하다.(DA.iii.994-995) 베다 제사의 '아하와니야 불'을 불교 주석서에서는 부모로 설명하고 있다.
*가장의 불(gahapataggi)의 가장(gahapati)이란 집의 주인을 말한다.(DA.iii.995) 베다 제사의 '가르하빠따 불'을 불교 주석서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보시의 불(dakkhineyyaggi)의 보시(dakkhina)란 네 가지 필수품들이다. 비구 승가는 보시받을 만하다.(Ibid) 네 가지 필수품은 음식, 의복, 거처, 약품이다. 베다 제사의 '닥시나 불'을 불교 주석서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바라문이여, 무엇이 헌공 받을만한 불인가?
여기, 바라문이여, 어떤 사람에게 어머니거나 아버지인 그들이 있다. 바라문이여, 이들 각각이 헌공 받을만한 불이라고 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그가 왔고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헌공 받을만한 불을 존중하고, 존경하고, 숭상하고, 예배한 뒤에 바르게 행복을 가져와야 한다.
바라문이여, 무엇이 가장의 불인가?
여기, 바라문이여, 어떤 사람에게 자식이거나 아내거나 하인이거나 심부름꾼이거나 일꾼인 그들이 있다. 바라문이여, 이들 각각이 가장의 불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가장의 불을 존중하고, 존경하고, 숭상하고, 예배한 뒤에 바르게 행복을 가져와야 한다.
바라문이여, 무엇이 보시 받을만한 불인가?
여기, 바라문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교만과 방일함을 멀리 떠나고, 인욕과 온화함에 확고하고, 각자 자신을 길들이고 각자 자신을 제어하고 각자 자신을 완전한 열반에 들게 한다. 바라문이여, 이들 각각이 보시 받을만한 불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보시 받을만한 불을 존중하고, 존경하고, 숭상하고, 예배한 뒤에 바르게 행복을 가져와야 한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존중하고, 존경하고, 숭상하고, 예배한 뒤에 바르게 행복을 가져와야 하는 세 가지 불이다.
바라문이여, 나무토막 불은 때맞춰 타오르게 해야 하고, 때맞춰 주의 깊게 보아야 하고, 때맞춰 꺼야 하고, 때맞춰 정리해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욱가따사리라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시듯,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방법)으로 진리(법)을 밝혀주셨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 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런 저는 오백 마리의 황소를 풀어서 살려주겠습니다. 오백 마리의 숫송아지들을 풀어서 살려주겠습니다. 오백 마리의 암송아지를 풀어서 살려주겠습니다. 오백 마리의 염소를 풀어서 살려주겠습니다. 오백 마리의 숫양들을 풀어서 살려주겠습니다. 그리고 풀을 가져와서 먹게 하겠습니다. 시원한 물을 마시게 하겠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쐬게 하겠습니다.”
paṭhamasaññāsuttaṃ (AN 7.48-인식 경1)
48.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인식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 무엇이 일곱인가?
부정(不淨)의 인식, 죽음의 인식,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 무상(無常)의 인식, 무상에 대한 괴로움의 인식, 괴로움에 대한 무아의 인식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인식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
dutiyasaññāsuttaṃ (AN 7.49-인식 경2)
49.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 무엇이 일곱인가?”
부정(不淨)의 인식, 죽음의 인식,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즐길 것이 없다(기쁨이 없다)는 인식, 무상의 인식, 무상(無常)에 대한 괴로움의 인식, 괴로움에 대한 무아의 인식이다.
비구들이여, '부정(不淨)의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한 말인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부정(不淨)의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마음은 성행위의 실천으로부터 움츠러들고, 위축되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닭의 깃털이나 힘줄을 불 위에 던지면 움츠러 들고, 위축되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부정(不淨)의 인식을 굳건하게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마음은 성행위의 실천으로부터 움츠러들고, 위축되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평온)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진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부정(不淨)의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마음이 성행위의 실천으로 달려가고 혐오가 확고해지지 않으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부정(不淨)의 인식은 닦아지지 않았고,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기지 않았고, 나에게는 정진의 힘은 얻어지지 않았다.’라고 알아야 한다.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부정(不淨)의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마음이 성행위의 실천으로부터 움츠러들고, 위축되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지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부정(不淨)의 인식은 잘 닦아졌고,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겼고, 나에게는 정진의 힘은 얻어졌다.’라고 알아야 한다.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부정(不淨)의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한 말이다.
비구들이여, '죽음의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하여 한 말인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죽음의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마음은 삶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움츠러들고, 위축되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닭의 깃털이나 힘줄을 불 위에 던지면 움츠러 들고, 위축되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죽음의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마음은 삶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움츠러들고, 위축되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진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죽음의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마음은 삶에 대한 집착으로 달려가고 혐오가 확고해지지 않으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죽음의 인식은 닦아지지 않았고,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기지 않았고, 나에게는 정진의 힘은 얻어지지 않았다.’라고. 알아야 한다.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만약, 비구들이여, 죽음의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마음은 삶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움츠러들고, 위축되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지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죽음의 인식은 잘 닦아졌고,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겼고, 나에게는 정진의 힘은 얻어졌다.’라고 알아야 한다.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죽음의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한 말이다.
비구들이여,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하여 한 말인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마음은 맛에 대한 갈애로부터 움츠러들고, 위축되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닭의 깃털이나 힘줄을 불 위에 던지면 움츠러 들고, 위축되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마음은 맛에 대한 갈애로부터 움츠러들고, 위축되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진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마음은 맛에 대한 갈애로 달려가고 혐오가 확고해지지 않으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은 닦아지지 않았고,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기지 않았고, 나에게는 정진의 힘은 얻어지지 않았다.’라고 알아야 한다.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만약, 비구들이여,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마음은 맛에 대한 갈애로부터 움츠러들고, 위축되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지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나의 인식은 잘 닦아졌고,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겼고, 나에게는 정진의 힘은 얻어졌다.’라고 알아야 한다.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한 말이다.
비구들이여,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즐길 것이 없다는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하여 한 말인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즐길것이 없다는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마음은 세상의 다양한 것들로부터 움츠러들고, 위축되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닭의 깃털이나 힘줄을 불 위에 던지면 움츠러들고, 위축되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즐길것이 없다는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마음은 세상의 다양한 것들로부터 움츠러들고, 위축되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진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즐길 것이 없다는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마음은 세상의 다양한 것들로 달려가고 혐오가 확고해지지 않으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즐길 것이 없다는 인식은 닦아지지 않았고,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기지 않았고, 나에게는 정진의 힘은 얻어지지 않았다.’라고 알아야 한다.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즐길 것이 없다는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때 마음은 세상의 다양한 것들로부터 움츠러들고, 위축되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하게 되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즐길 것이 없다는 나의 인식은 잘 닦아졌고,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겼고, 나에게는 정진의 힘은 얻어졌다.’라고 알아야 한다.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즐길 것이 없다는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한 말이다.
비구들이여, '무상(無常)의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하여 한 말인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의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마음은 이득(얻음)과 존경과 명성으로부터 움츠러들고, 위축되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닭의 깃털이나 힘줄을 불 위에 던지면 움츠러들고, 위축되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무상의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마음은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부터 움츠러들고, 위축되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진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의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마음은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달려가고 혐오가 확고해지지 않으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무상의 인식은 닦아지지 않았고,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기지 않았고, 나에게는 정진의 힘은 얻어지지 않았다.’라고 알아야 한다.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의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마음은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부터 움츠러들고, 위축되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하게 되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무상의 인식은 잘 닦아졌고,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겼고, 나에게는 정진의 힘은 얻어졌다.’라고 알아야 한다.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무상의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한 말이다.
비구들이여, '무상에 대한 괴로움의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하여 한 말인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에 대한 괴로움의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칼을 빼든 살인자에 대해서 강한 두려움이 있듯이, 게으름과 나태함과 방만함과 방일함과 정진하지 않음과 돌이켜 관찰하지 않음(반조하지 않음)에 대해서 강한 두려움의 인식이 생긴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에 대한 괴로움의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칼을 빼든 살인자에 대해서 강한 두려움이 있듯이, 게으름과 나태함과 방만함과 방일함과 정진하지 않음과 돌이켜 관찰하지 않음에 대해서 강한 두려움의 인식이 생기지 않으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무상에 대한 괴로움의 인식은 닦아지지 않았고,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기지 않았고, 나에게는 정진의 힘이 얻어지지 않았다.’라고 알아야 한다.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에 대한 괴로움의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예를 들면, 칼을 빼든 살인자에 대해서 강한 두려움이 있듯이, 게으름과 나태함과 방만함과 방일함과 정진하지 않음과 돌이켜 관찰하지 않음에 대해서 강한 두려움의 인식이 생기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무상에 대한 괴로움의 인식은 잘 닦아졌고,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겼고, 나에게는 정진의 힘은 얻어졌다.'라고 알아야 한다.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무상에 대한 괴로움의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한 말이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에 대한 무아의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하여 한 말인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괴로움에 대한 무아의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의식을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해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을 뛰어넘어 평화롭게 되고 완전하게 해탈하게 된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괴로움에 대한 무아의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 때, 의식을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해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을 뛰어넘어 평화롭게 되고 완전히 해탈하지 못하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괴로움에 대한 무아의 인식은 닦아지지 않았고,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기지 않았고, 나에게는 정진의 힘은 얻어지지 않았다.’라고 알아야 한다.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괴로움에 대한 무아의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러서 의식을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해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을 뛰어넘어 평화롭게 되고 완전히 해탈하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괴로움에 대한 무아의 인식은 잘 닦아졌고,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겼고, 나에게는 정진의 힘은 얻어졌다.’라고 알아야 한다.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에 대한 무아의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한 말이다.
*'밖의 모든 표상들(bahiddha sabbanimitta)'이란 색깔의 표상, 소리의 표상, 냄새의 표상, 맛의 표상, 감촉의 표상, 영원함 등의 표상, 인간의 표상, 법의 표상 등 이러한 밖의 표상들을 뜻한다.(AA.ii.206)
*경들에서 자만은 '내가 더 뛰어나다,'는 방법, '나와 동등하다.'는 방법, '내가 더 저열하다.'는 방법의 셋으로 나타나는데 이 각각에 다시 뛰어나다(seyya), 동등하다(sadisa), 저열하다(hina)는 세 가지가 있어서 자만에는 모두 아홉 가지가 있다고 주석서들은 설명하고 있다.(VbhA.486;DhsA.372)
*'자만을 뛰어 넘었다(vidha-samatikkanta)'는 것은 세 가지 형태의 자만을 뛰어넘었다는 뜻이다. 즉 나는 남보다 뛰어나다거나, 혹은 동등하다거나, 혹은 저열하다고 하는 것이다.(AA.iv.31)
*'평화롭다(santa)'는 것은 그 적들인 오염원으로부터 평화로워졌다는 뜻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
methunasuttaṃ (AN 7.50-음행 경)
50. 그 무렵 자눗소니 바라문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자눗소니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께서도 범행을 닦는다고 천명하십니까?”
“바라문이여, 바르게 말하는 자는 오직 나에게 ‘그는 깨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결점이 없고, 얼룩지지 않고,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을 닦는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깨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결점이 없고, 얼룩지지 않고, 구속되지 않고,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을 닦습니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시여, 어떤 것이 범행의 깨짐이고, 끊어짐이고, 결점이고, 얼룩입니까?”
“여기, 바라문이여, 바르게 범행을 닦는 자라고 인정하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여인과 함께 둘이서 성행위를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①여인이 몸을 문지르고, 향수를 바르게 하고, 목욕하게 하고, 마사지하는 것을 받습니다. 그는 그것을 즐기고, 바라고, 그것에서 기쁨(만족)을 얻습니다. 이것도 바라문이여, 범행의 깨짐이고, 끊어짐이고, 얼룩이고, 결점이고, 얼룩입니다. 이것이 바라문이여, 청정하지 못한 범행의 실천이라고 불립니다. 음행의 족쇄에 묶인 자는 태어남∙늙음∙죽음 그리고 슬픔∙비탄∙고통∙번민∙근심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는 괴로움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다시, 바라문이여, 여기 바르게 범행을 닦는다고 인정하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여인과 함께 둘이서 성행위를 하지는 않고, 여인이 몸을 문지르거나, 향수를 바르게 하거나, 목욕하게 하거나, 마사지하는 것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②여인과 함께 웃고, 놀이하고, 유희를 합니다. ··· 여인과 함께 웃고, 놀이하고, 유희를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③여인에게 눈을 맞추고 바라봅니다(깊이 응시하고 바라봅니다). ··· 여인에게 눈을 맞추고 바라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④벽 너머거나 담장 너머에서 웃거나 말하거나 노래하거나 우는 여인의 소리를 듣습니다(엿듣습니다). ··· 벽 너머거나 담장 너머에서 웃거나 말하거나 노래하거나 우는 여인의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하지만 ⑤이전에 여인과 함께 웃고 말하고 유희한 것을 기억합니다(회상합니다). ··· 이전에 여인과 함께 웃고 말하고 유희한 것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⑥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타고났고 지니고 있는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빠지고 사로잡혀 탐닉하는 것을 봅니다. ···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빠지고 사로잡혀 탐닉하는 것을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는 이런 계이거나 관행이거나 고행이거나 범행으로 신이나 낮은 신이 될 것이다.'라고 어떤 신들의 무리를 지향하여 범행을 닦습니다. 그는 그것을 즐기고, 바라고, 그것에서 기쁨을 얻습니다. 이것도, 바라문이여, 범행의 깨짐이고, 끊어짐이고, 결점이고, 얼룩입니다. 이것이 바라문이여, 청정하지 못한 범행의 실천이라고 불립니다. 음행의 족쇄에 묶인 자는 태어남∙늙음∙죽음 그리고 슬픔∙비탄∙고통∙번민∙근심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는 괴로움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이런 일곱 가지 음행의 족쇄 가운데 어떤 하나의 족쇄라도 나에게서 제거하지 못했음을 보았을 때까지는, 바라문이여, 나는 하늘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범천이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의 인간 세계, 하늘 사람이 사는 세계에서 내 스스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천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라문이여, 나는 이러한 일곱 가지 음행의 족쇄 가운데 어떤 족쇄라도 제거하지 못했음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바라문이여, 나는 하늘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범천이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의 인간 세계, 하늘 사람이 사는 세계에서 내 스스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천명하였습니다. 그리고 내게는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며, 이제 더 이상의 다시 태어남[再生]은 없다.’라는 지(知)와 견(見)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자눗소니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시듯,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을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 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saṃyogasuttaṃ (AN 7.51-속박 경)
51.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속박과 속박에서 벗어남에 관한 법문을 설하겠다.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설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무엇이 속박과 속박에서 벗어남의 그 법문인가?
비구들이여, 여자는 안으로 여자의 기능, 여자의 행위, 여자의 외모, 여자의 습관, 여자의 의욕, 여자의 소리, 여자의 장식에 마음을 기울인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한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하여, 밖으로 남자의 기능, 남자의 행위, 남자의 외모, 남자의 습관, 남자의 의욕, 남자의 목소리, 남자의 장식에 마음을 기울인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한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하여, 밖으로 속박을 갈망한다. 이러한 속박으로 인해 생긴 행복과 기쁨이 그 어떤 것이건 그것을 그녀는 갈망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여자의 성을 기뻐하고 집착하여 남자의 속박에 묶인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여 여자는 여자의 성을 극복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남자는 안으로 남자의 기능, 남자의 행위, 남자의 외모, 남자의 습관, 남자의 의욕, 남자의 소리, 남자의 장식에 마음을 기울인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한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하여, 밖으로 여자의 기능,여자의 행위, 여자의 외모, 여자의 습관, 여자의 의욕, 여자의 목소리, 여자의 장식에 마음을 기울인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한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하여, 밖으로 속박을 갈망한다. 이러한 속박으로 인해 생긴 행복과 기쁨이 그 어떤 것이건 그것을 갈망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남자의 성을 기뻐하고 집착하여 여자의 속박에 묶인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여 남자는 남자의 성을 극복하지 못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속박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속박에서 벗어나는가?
비구들이여, 여자는 안으로 여자의 기능, 여자의 행위, 여자의 외모, 여자의 습관, 여자의 의욕, 여자의 목소리, 여자의 장식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아, 밖으로 남자의 기능, 남자의 행위, 남자의 외모, 남자의 습관, 남자의 의욕, 남자의 목소리, 남자의 장식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아, 밖으로 속박을 갈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속박으로 인해 생긴 행복과 기쁨이 그 어떤 것이건 그것을 그녀는 갈구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여자의 성을 기뻐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아 남자의 속박에 묶이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여 여자는 여자의 성을 극복한다.
비구들이여, 남자는 안으로 남자의 기능, 남자의 행위, 남자의 외모, 남자의 습관, 남자의 의욕, 남자의 목소리, 남자의 장식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아, 밖으로 여자의 기능, 여자의 행위, 여자의 외모, 여자의 자만습관, 여자의 의욕, 여자의 목소리, 여자의 장식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아, 밖으로 속박을 갈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속박으로 인해 생긴 행복과 기쁨이 그 어떤 것이건 그것을 그는 갈구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남자의 성을 기뻐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아 여자의 속박에 묶이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여 남자는 남자의 성을 극복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속박에서 벗어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속박과 속박에서 벗어남에 관한 법문이다.”
dānamahapphalasuttaṃ (AN 7.52-보시의 큰 결실 경)
52. 한 때에 세존께서는 짬빠에서 각가라 호수의 언덕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많은 짬빠의 청신사들이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짬빠의 청신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시여, 우리는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설법을 들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존자시여, 우리가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설법을 들을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청신사들이여, 그렇다면 이번 포살일에 오십시오. 그러면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설법을 듣게 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짬빠의 청신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대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존경의 의미로 사리뿟따 존자의 오른쪽으로 돌아 물러갔다.
짬빠의 청신사들은 그 포살일에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섰다. 그러자 사리뿟따 존자는 짬빠의 청신사들과 함께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람의 보시는 큰 결실이 없고 큰 이익이 없는 그런 보시를 하게 되고, 또한 여기 어떤 사람의 보시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 그런 보시를 하게됩니까?"
“사리뿟따여, 여기 어떤 사람의 보시는 큰 결실이 없고 큰 이익이 없는 그런 보시를 하게 되고, 또한, 여기 어떤 사람의 보시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 그런 보시를 하게된다.”
“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사람의 보시는 큰 결실이 없고 큰 이익이 없는 그런 보시를 하게 되고, 또한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사람의 보시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 그런 보시를 하게 됩니까?”
“여기, 사리뿟따여, 어떤 사람은 기대를 갖고 보시를 하고(대가를 바라면서 보시를 하고), 과보에 묶인 마음으로 보시를 하고, 부(富)를 기대하며 보시를 하고, ‘다음 생에 이것을 누릴 것이다.’는 생각으로 보시를 한다. 그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음식과 마실 것과 의복과 탈 것과 화환과 향과 연고와 침상과 처소와 불을 보시한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리뿟따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이러한 보시를 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거기서, 사리뿟따여, 기대를 갖고 보시를 하고, 과보에 마음이 묶여서 보시를 하고, 부(富)를 기대하며 보시를 하고, ‘다음 생에 이것을 누릴 것이다.’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그는 그 보시를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사대왕천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 그는 그 업과 그 행운과 그 성공과 그 권위가 다하면 다시 돌아오는 자가 되어 여기로 되돌아오게 된다.
“여기, 사리뿟따여, 어떤 사람은 기대를 갖고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과보에 마음이 묶여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부(富)를 기대하며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다음 생에 이것을 누릴 것이다.’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보시는 좋은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보시한다. ··· 그리고 '보시는 좋은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의 선조들이 과거에 보시를 했고, 오래된 가문의 전통을 내가 없애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한다. ··· 그리고 '나의 선조들이 과거에 보시를 했고, 오래된 가문의 전통을 내가 없애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음식을 만들지만 이들은 만들지 못한다. 음식을 만드는 자가 음식을 만들지 못하는 자들에게 보시하지 않는 것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한다. ··· 그리고 '나는 음식을 만들지만 이들은 만들지 못한다. 음식을 만드는 자가 음식을 만들지 못하는 자들에게 보시하지 않는 것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밋따, 야마닥가,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바구 등 이전의 그 선인(仙人)들이 큰 제사를 지낸 것처럼 나도 보시하여 나누어 가지는 자가 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한다. ··· 그리고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밋따, 야마닥가,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바구 등 이전의 그 선인(仙人)들이 큰 제사를 지낸 것처럼 나도 보시하여 나누어 가지는 자가 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보시를 할 때 마음이 깨끗해지고 즐거움과 만족이 생긴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한다. ··· 그리고 '내가 보시를 할 때 마음이 깨끗해지고 즐거움과 만족이 생긴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마음을 장엄하고 마음의 필수품을 위해 보시한다. 그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음식과 마실 것과 의복과 탈 것과 화환과 향과 연고와 침상과 처소와 불을 보시한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리뿟따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이러한 보시를 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거기서, 사리뿟따여, 기대를 갖고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과보에 마음이 묶여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부(富)들 기대하며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다음 생에 이것을 누릴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보시는 좋은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의 선조들이 과거에 보시를 했고, 오래된 가문의 전통을 내가 없애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음식을 만들지만 이들은 만들지 못한다. 음식을 만드는 자가 음식을 만들지 못하는 자들에게 보시하지 않는 것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밋따, 야마닥가,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바구 등 이전의 그 선인(仙人)들이 큰 제사를 지낸 것처럼 나도 보시하여 나누어 가지는 자가 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보시를 할 때 마음이 깨끗해지고 즐거움과 만족이 생긴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마음을 장엄하고 마음의 필수품을 위해 보시하는 그는 그 보시를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범신천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 그는 그 업과 행운(신통)과 명성과 권위가 다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자가 되어 여기로 되돌아오지 않게 된다. 사리뿟따여, 이러한 이유와 이러한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사람의 보시는 큰 결실이 없고 큰 이익이 없는 그런 보시를 하게 되고, 또한, 여기 어떤 사람의 보시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 그런 보시를 하게된다.”
*'마음을 장엄하고 마음의 필수품을 위해(cittalankara-cittaparikkhara)'라는 것은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의 장엄이 되고 측근들을 가진 자가 되기 위해 보시를 한다는 뜻이다.(Ibid)
*'범신천의 동료로 태어난다(brahmakayikanam sagabtatam)'고 했다. 그러나 보시를 통해서 그곳에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보시는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장엄이 되기 때문에 그 보시로 장엄된 마음으로 禪(선)과 성스러운 도를 일으켜 禪(선)으로 그곳에 태어난다는 말이다.(AA.iv.33) 범신천은 색계 초선천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초선에 해당하는 본삼매의 힘이 없이는 그곳에 태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보시만으로는 범신천에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석서는 말한다. 다만 이러한 보시를 통해 마음이 깨끗해져서 그 힘으로 본삼매를 닦아서 그곳에 태어날 수 있다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
nandamātāsuttaṃ (AN 7.53-난다마따 경)
5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많은 비구 대중과 함께 닥키나기리에서 유행을 하였다. 그 무렵에 웰루깐따끼의 난다마따 청신녀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을 때 일어나 앉아서『숫따니빠따』「도피안 품」을 암송하고 있었다.
그때 웻사와나 대왕이 어떤 일이 있어 북쪽 지방에서 남쪽 지방으로 가다가 난다마따 청신녀가「도피안 품」을 암송하는 것을 들었다. 듣고는 그것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거기에 서 있었다. 그리고 난다마따 청신녀는「도피안 품」의 암송을 마치고는 침묵하였다. 웻사와나 대왕은 난다마따의 청신녀의 암송이 끝난 것을 알고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누이여. 훌륭합니다, 누이여.”
“좋은 용모를 가지신 분이여, 그대는 누구십니까?”
“누이여, 나는 그대의 형제인(오빠인) 웻사와나 대왕입니다.”
“알겠습니다, 좋은 용모를 가지신 분이여, 그렇다면 내가 암송한 이 법문이 그대를 위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누이여. 이것은 나를 위한 선물이 됩니다. 그런데 내일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를 상수로 하는 비구 대중이 공양을 하지 않는 채 웰루깐따끼로 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 비구 승가에 공양을 올린 뒤에 내가 올린 공양이라고 말해주십시오. 이것이 내가 [누이에게] 드리는 선물이 될 것입니다.”
*웻사와나(essavana)는 사대천왕의 한 신으로 사대왕천의 북쪽을 관장하는 신이며 꾸웨라(Kuvera)라고도 이름하며 악카들의 왕이다.
*웻사와나 대왕을 대신하여 난다마따가 비구 승가에 공양을 올려주고 그 공양은 웻사와나 대왕이 올리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려달라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난다마따가 신과 대화를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비구 스악가 알게 하는 이것을 난다마따에게 주는 선물로 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난다마따 청신녀는 그 밤이 지나자 자신의 집에서 맛있는 여러 음식을 준비하게 하였다. 그리고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를 상수로 하는 비구 대중이 공양을 하지 않은 채 웰루깐따끼에 도착하였다. 그러자 난다마따 청신녀는 어떤 사람을 불러서 말했다.
“여보시오, 이리 오세요. 그대는 승원에 가서 비구 승가에게 ‘존자님들이여, 출발하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난다마따의 집에 음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라고 시간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알겠습니다, 마님.”이라고 난다마따 청신녀에게 대답한 뒤 승원으로 가서 비구 승가에게 “존자님들이여, 출발하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난다마따의 집에 음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라고 시간을 알려드렸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상수로 하는 비구 승가는 오전에 옷차림으르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난다마따 청신녀의 집으로 갔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난다마따 청신녀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상수로 하는 비구 대중에게 맛있는 여러 음식을 자기 손으로 직접 대접하고 드시게 했다.
사리뿟따 존자가 공양을 마치고 발우에서 손을 떼자 난다마따 청신녀는 어떤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난다마따 청신녀에게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난다마따여, 그런데 누가 비구 대중이 올 것이라고 그대에게 알려주었습니까?”
“여기, 존자시여, 저는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을 때 일어나 앉아서 「도피안 품」을 암송하고 난서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그떼 웻사와나 대왕은 저의 암송이 끝난 것을 알고는 ‘훌륭합니다, 누이여. 훌륭합니다, 누이여.’라면서 기뻐했습니다. 저는 ‘좋은 용모를 가지신 분이여, 그대는 누구입니까?’ ‘누이여, 나는 그대의 형제인 웻사와나 대왕입니다.’ ‘알겠습니다, 좋은 용모를 가지신 분이여. 그렇다면 제가 암송한 이 법문이 그대를 위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누이여. 이것은 나를 위한 선물이 됩니다. 그런데 내일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를 상수로 하는 비구 대중이 공양을 하지 않은 채로 웰루깐따끼로 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 비구 대중에게 공양을 올린 뒤에 내가 올린 공양이라고 말씀드려주십시오. 이것이 내가 [누이에게] 드리는 선물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존자시여, 그러므로 이번 보시로 생긴 공덕과 이익은 모두 웻사와나 대왕의 행복이 되었으면 합니다.”
“난다마따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난다마따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참으로 큰 신통력과 큰 위력을 가진 신의 아들 웻사와나 대왕과 직접 마주하여 대화를 하였군요.”
“존자이시여, 저의 놀랍고 경이로운 법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다른 놀랍고 경이로운 법도 있습니다. 여기, 존자이시여, 제게는 난다라는 외아들이 있었는데 사랑스럽고 소중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어떤 이유로 강제로 끌고 가서 목숨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잡혔거나 잡힐 때나, 끌려갔거나 끌려갈 때나, 죽었거나 죽어갈 때나 저의 마음이 흔들린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난다마따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난다마따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참으로 그대는 마음의 일어남도 청정하게 하였습니다.”
“존자시여, 저의 놀랍고 경이로운 법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다른 놀랍고 경이로운 법도 있습니다. 여기, 존자시여, 저의 남편이 임종을 하여 어떤 약카의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자기의 전생의 몸을 [만들어] 제게 드러내었습니다. 그러나 존자이시여, 저는 그것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난다마따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난다마따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참으로 그대는 마음의 일어남도 청정하게 하였습니다.”
*'약카의 몸(yakkha-yoni)'이란 땅에 사는 신(bhumma-devata-bhava)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는 전생의 몸과 닮은 몸을 만들어 침실의 침상에 자신을 드러내었다.(AA.iv.37)
“존자이시여, 저의 놀랍고 경이로운 법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다른 놀랍고 경이로운 법도 있습니다. 존자이시여, 저는 어린 나이에 어린 남편에 시집을 온 이후로 마음으로라도 남편을 거역한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였겠습니까?”
“난다마따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난다마따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참으로 그대는 마음의 일어남도 청정하게 하였습니다.”
“존자이시여, 저의 놀랍고 경이로운 법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다른 놀랍고 경이로운 법도 있습니다. 존자이시여, 저는 청신녀가 되기로 맹세한 뒤로 어떤 학습계목도 고의적으로 범한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난다마따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난다마따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존자이시여, 저의 놀랍고 경이로운 법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다른 놀랍고 경이로운 법도 있습니다. 존자이시여, 저는 원하기만 하면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저는 원하기만 하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뭅니다. 저는 원하기만 하면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저는 원하기만 하면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난다마따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난다마따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존자이시여, 저의 놀랍고 경이로운 법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다른 놀랍고 경이로운 법도 있습니다. 존자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설하신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五下分結.오하분결]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 안에서 제거되지 않은 것을 보지 못합니다.”
“난다마따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난다마따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난다마따 청신녀에게 법을 설하시고 격려하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제5장 큰 제사 품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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