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한국불교 논문및 평론

"여자가 백년을 해 봐라" 내 공부 재촉한 한마디

실론섬 2014. 12. 5. 20:12


[대표적 비구니 講師, 운문사 주지 一眞 스님]

부처님 생전 인도 왕비가 부처님 말씀 옮긴 경전 '승만경을 읽는 즐거움' 펴내
"누구나 부처 될 씨앗 있다"

'그 스승'을 만난 것은 40년 전이었다. 오대산 중대(中臺)에서 환희심 속에 기도하던 중 고개를 드니 이미 한밤중이었다. 도반(道伴)과 함께 숙소로 하산(下山)하는 길, 맞은편에서 오르던 '스승'은 혼잣말처럼, 그러나 들으라는 듯 한마디 했다. "여자가 백 년을 해 봐라."

국내 대표적 비구니 강사(講師) 일진(一眞·62) 스님의 현재는 그 한마디에서 비롯됐다.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동국대 3학년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여성 인권' 뭐 이런 말도 별로 없을 때였어요. 그 뿌리 깊은 차별의식은 뭘까…. 이런 생각이 제 공부를 재촉했죠. 다행인지, 너무 어두워 그 스승 얼굴도 못 봤습니다(웃음)." 쓰나미는 그 전에 이미 한 번 지나갔었다. 한 노(老)비구니 스님 입에서 "다음 생(生)에는 비구(比丘)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이 나왔을 때다. "도대체 왜? 뭔데?" 대만으로, 일본으로 그의 공부는 치열해져갔고 1985년 비구니 대강백(大講伯) 명성(明星·84) 스님의 학맥을 이어받은 전강(傳講) 제자가 됐다. 4년 전부터는 국내 대표적 비구니 교육기관인 경북 청도 운문사 주지를 맡고 있다.


	운문사 장독대 앞에 선 일진 스님. 그는 “저희 선배 스님들 때는 절에선 쓰레기가 나오지 않았다. 모든 걸 아껴 쓰고, 재활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운문사 장독대 앞에 선 일진 스님. 그는 “저희 선배 스님들 때는 절에선 쓰레기가 나오지 않았다. 모든 걸 아껴 쓰고, 재활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한수 기자
그가 '승만경을 읽는 즐거움'(민족사)을 생애 첫 책 주제로 삼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승만경(勝鬘經)'은 부처님 당시 인도 작은 왕국의 공주로 태어나 이웃나라 왕비가 된 '승만 부인'이 부처님 말씀을 들어 외고 이를 부처님이 '옳다' 해서 '경(經)'으로 엮인 책. 유마 거사의 '유마경'과 더불어 부처님 육성이 아니면서도 '경(經)'의 반열에 오른 몇 안 되는 책이다. 여성의 책으론 유일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혁명가였습니다. 온 인도 사회를 옭아매고 있던 계급 제도를 단호히 부숴버리고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승가(僧伽)에선 여전히 비구·비구니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여성 불자 가운데도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부처가 될 씨앗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설파한 '승만경'을 제대로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책은 작년 BTN 불교TV에서 강의한 내용을 좀 더 쉽게 풀어 썼다. 승만 부인은 불법(佛法)을 접하고 10가지 원(願)을 세운다. 일진 스님은 이 중 여섯 번째인 '재물을 쌓아 두지 않고 가난한 중생을 성숙시키는 데 쓰겠다'와 세 번째 '중생에 대해 화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다'를 으뜸과 버금으로 꼽았다. 보시(布施)는 자신과 이웃을 넉넉하고 평화롭게 하며, 참는 것 없인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자(佛子)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지난주 스님을 만난 날은 아침에 한 신자 가족의 49재가 있던 날이었다. 절 전체가 들썩였다. 스님은 주지로서 이것저것 챙기느라 잠시 앉을 틈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의 미간(眉間)은 언제나 펴져 있었고, 입가엔 미소가 흘렀다. 적어도 '화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데는 도가 튼 얼굴이었다. 스님은 내일(6일) 주지 소임도 내려놓고 강사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