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한국불교 논문및 평론

청하지 않은 벗

실론섬 2015. 1. 24. 15:42

불청객(不請客)이라는 말이 있다. 청하지도 않았는데 찾아와 폐를 끼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청하지도 않았는데 그 사람의 친구가 되어 도와주는 사람이다.


보살이 이타행(利他行)을 닦는 모습에 대해 [대무량수경]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일체중생을 위해 보살은 자진해 벗이 되며, 그들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코자 애써서 마치 무거운 짐을 등에 메고 가는 것처럼 그들을 메고 가는 것을 자기의 사명으로 한다."


또 [승만경(勝鬘經)] 섭수정법장(攝受正法章)에도 "보살은 일체중생을 위해 청하지 않은 벗이 되어 대비로써 그들을 사랑하며 또 위로하여 세상에 있어서 법의 어머니가 된다."고 설법하고 있다. [유마경] 불국품(佛國品)에도 "진정한 벗이란 상대의 청을 기다림 없이 자진하여 그 벗이 되는 사람이니 어머니가 갓난애기가 있는 곳에 달려가 지켜 주는 것과 같다."라고도 했다.


불교에서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다 형제라고 한다. 불교의 연기나 인간관에서 본다면 우리들은 모두다 서로 남이 있음에 의해 자기가 있는 것으로 얽히고 설켜있는 존재이다. 또한 살면서 알게 모르게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도움을 받고 있다. 태어나서는 부모님에게, 자라면서 친구들에게, 전철안에서 자리를 양보해주는 사람에게서, 길을 물을 때 가르쳐 주는 사람에게서... 그 어느 한 순간이라도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적이 없다. 이러한 청하지 않은 벗에 의한 도움이 항상 내 곁에 있다는 것을 깊이 자각할 때 그 은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보답할려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날 것이다.


우리들은 청을 받고 벗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청함이 있기 전에 자진해 벗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어느 경우에거나 좋은 벗을 가진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행복임에 틀림없다. 경전에는 붓다께서 아난다에게 "좋은 벗을 가지는 것은 수행의 반이 아니라 전부다."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해탈/열반에 이르는 여러 조건중에서 선우(善友. 좋은 벗)을 가지는 것이 첫 번째 덕목으로 지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