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의 개종조인 천태대사(538-579)는 휘를 지의(智의), 자는 덕안(德安)으로, 그는 중국 불교사상 제일의 선지식으로 동방의 작은 석가모니로 불리운다.
서기 538년 7월에 형주(荊州) 화용현(華容縣) 곧 지금의 호북성 당양현(湖北省 當陽縣)에 진(陳)씨의 집에 태어 났다. 아버지는 진기조(陳起祖), 어머니는 서(徐)씨로서 부형(父兄)이 모두 양무제 조정에서 벼슬을 했다.
7세때 부모를 따라 어떤 사찰에 가서 여러 스님들의 [법화경] 보문품(普門品)을 독경하는 것을 옆에서 한번 듣고 그것을 따라 외울 정도로 그의 지혜는 출중했다. 그때는 마침 양자강 북쪽에 있는 위(魏)나라의 흥망이 있었고 남쪽 양나라에도 난리가 일어나서 천하가 혼란 하였다.
특히 그의 고향인 화용현은 위나라와 양나라의 전쟁터가 되어 그의 아버지도 군대에 들어 가고 그는 어머니와 함께 피난하여 사방으로 유량하다가 양친이 다 죽자 고아가 되어 인생의 무상과 세상의 흥망성쇠가 덧없을 통감하고 세속을 떠나서 구도의 길을 찾게 되었다. 18세에 그의
형에게 출가할 뜻을 고백하고 드디어 불문에 들어 갔다.
천태대사는 과원사(果願寺) 법서(法緖)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다음 혜광(惠曠)율사에게 비구계를 받고 율과 대승 일반을 두루 연구 했으며 항상 참선을 부지런히 닦았다. 또한 대현산(大賢山)에 올라가 20일동안 [법화경]을 외우며 참회법을 몸소 수행 하였으며, 다음 23세가 되던 때에 처음으로 혜사(慧思)대사를 찾아뵙고 도(道)를 물었다. 혜사대사는 불교교리를 선관(禪觀)을 통해 체험하고자 많은 정진을 쌓은 스님으로, 그는 마침내 공관(空觀)을 닦아서 [법화경]을 하나의 선정삼매(禪定三昧)로써 사무쳐 깨달은 당대의 선지식 이었다.
구도심에 불타는 마음으로 처음 혜사대사를 찾아온 천태대사를 보고 "우리는 옛날 세존께서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에 들은 숙세(宿世)의 인연이 있어 금생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하며 크게 환영 하였다.
혜사대사는 그의 비범한 법기(法器)임을 간파하고 혼신(渾身)을 다하여 지도했고 천태지의 대사는 마음을 비우고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지성으로 도를 구했다. 천태 지의 대사의 위대한 교학(敎學)의 바탕은 실로 이와같이 사제(師弟)의 기연(機緣)이 서로 합치한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다.
천태대사는 스승인 혜사대사의 가르침을 따라 뼈를 깎는 수행을 하던 어느날 밤, 달빛을 받아 정진하고 달이 넘어가면 관솔불을 가지고 계속해서 경을 읽고 했는데, [법화경] 약왕품에 약왕보살이 몸을 불태워 공양하는, 소신공양(燒身供養)하는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보살의 보시행이라는 문구에 이르러 활연히 깨달음이 열렸다.
혜사대사는 천태대사의 내관(內觀)의 광경을 알아보고 "그대가 아니면 이 일은 성취할 수 없으며 또한 네가 아니면 그것을 알 수 없도다"하면서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가장 수승한 경지는 아니니 이른바 법화삼매의 전 방편일 따름이다"라고 일러주었다. 이에 천태대사는 분발하여 용맹정진하으로 27일을 지나서 [법화삼매]를 얻고 [초선다라니(初旋陀羅尼)]를 체득했다.
[초선다라니]라 함은 곧 모든 법이 공(空)하다는 원리를 체득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사가 처음 도를 본 것으로서, 대소개오(大蘇開悟)]라고 한다. 그리고 더욱 선정을 닦아 지관(止觀)의 심오한 극치에 도달했다.
이후 스승인 혜사대사는 천태대사에게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을 대신 설법하게 한바 대사는 현하의 변제(顯河之辯. 물을 쏟아 내리는 듯한 것)로 종횡무애하게 설법함으로 청중을 감탄 시켰다. 서기 567년 대사는 30세의 장년으로 왕의 명을 받고 진나라 서울 금능(金陵)에 나아가서
성대히 법회를 열고 [대지도론(大智度論)]과 [차제선문(次第禪門)]을 설법하며 선정과 지혜를 겸하여 닦는 기치를 세웠다. 그때에 군신과 서민이 다 불법에 귀의하고 법세(法歲).법인(法忍).법안(法安). 혜변(慧辯)등 석학 대덕이 모두 감복 하였으며 대사의 이름이 조야(朝野)에 떨쳤다.
대사가 32세 적에 진의 수도 금능의 와관사(瓦官寺)에 [법화연의(法華玄義)] 곧 [법화경]의 대의를 개강할 적에 당시 왕 이었던 선제(宣帝)는 칙명(勅命)으로 조정공사를 중단 시키고 군신이 다같이 그 강의를 듣게 하기까지 한것을 보아 대사에 대한 귀의가 어느정도 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금능에 머문지 8년되던 575년(38세때)에 대사는 수도를 떠나 천태산으로 들어갔다. 교리로써 대중을 위하여 설법하는 것보다 진실한 수행이 더욱 필요하다고 결심하고 다시 입산을 한 것이다. 이러한 은둔수양(隱遁修養)이 장차 천태종이라는 큰 불교의 줄기를 개척하게 된 원동력이
된 것임에는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천태산에 들어 간 대사는 다시 분발하여 고행을 닦으며 용맹정진하면서 선정을 닦았다. 이때부터 만 10년동안의 정진을 통해 정혜(定慧)가 더욱 깊어지게 됨으로 도력(道力)이 도저(到底)한 지고(至高)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48세 되던 해에 진소주(陳小主) 영양왕(永陽王)의 간청으로 산을 나와 법을 설하고 이듬해 수도 금능에 나아가서 설법 하였다. 이때에 태극전(太極展)에서 [대지도론해제(大智度論解題)]와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을 설 하였는데 왕이 친히 행차하여 [인왕반야경]의 법을 듣고
몸을 굽혀 참배 하였다.
50세 될적에 양주 보광사(楊州 寶光寺)에서 [법화경]을 강설할 때에 제자 장안법사(章安法師)가 설법하는 자리에 참여하여 그 강설을 필기한 것이 지금 전하는 [법화문구] 20권이다. 그때에 마침 수(隨)나라가 진나라를 치자 대사는 난리를 피하여 금능을 나와서 예산에 들어 갔다.
수나라 문제(文帝). 개황(開皇) 13년 대사의 53세때 고향인 형주를 찾아 옥천사(玉泉寺)를 세우고 그곳에서 [법화현의]를 다시 설 하고 또 [마하지관(摩何止觀)]을 설법 하였다.
이 [법화현의]도 장안법사가 필기한 것으로서 [법화문구][마하지관]과 함께 천태종의 삼대 교전이 된 것이다. 이 삼부교전이 갖추게 된 594년을 천태종 개종기원을 삼기도 한다.
58세 되던 해에 진왕(晋王)의 청에 응하여 [정명경소(淨名經疎)]를 짓고 이듬해에 천태산에 돌아갔다. 60세 되던해에 왕이 사신을 보네어 맞이하므로 금능으로 가는 길에 석성(石城)에 이르러 병을 얻어 드디어 입적하니 세수는 60이었다.
법을 전한 제자가 32인이며 교화를 입은 중생의 수는 헤아릴 수 없었다. 대사는 경을 강론하고 법을 설 함에 종횡자재한 걸림없는 변재로 하나의 법에서 무량한 뜻을 연걸하여 듣는이로 법열을 얻게 함으로써 세상 사람은 진단의 소석가(小釋迦)라고 불렀다.
그의 저술은 20여부 1백50여권이 되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소위 천태3대부.5소부(天台三大部.五小部)가 후대의 천태학도들에 의해서 가장 높게 존중 되었다. 3대부는 [법화현의(法華玄義)]10권, [법화문구(法華文句)]10권, [마하지관(摩何止觀)] 10권을 가리키며 5소부는 [관음현의(觀音玄義)]2권, [관음의소(觀音義疎)]2권,[광명현의(光明玄義)] 2권, [광명문구(光明文句)]6권, [관경소(觀經掃)]1권 등이 그것이다.
많은 가르침을 남긴 천태 대사는 실제로는 직접 글을 한권도 쓰지 않았으며 그의 제자인 장안(章安. 법명은 관정(觀頂)561-632)대사가 스승의 강술을 받아서 정리한 것이다.
그러므로 천태대사에게 있어 장안은 붓다에게 있어서 아난존자나 사리불이며 마하가섭이나 우팔리 존자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천태대사 자신이 실로 불교사상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위대한 스승님이지만 그에게 또 하나 더불어 생각할 것은 우수한 많은 제자들을 길러 냈다는 것이다. 우수한 제자를 양성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자신을 완성하는 것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재삼 말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훌륭한 수행승도 우수한 제자가 없다면 이러한 경우는 그분의 가르침이 일대에 그치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천태대사는 장안대사 같은 훌륭한 제자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대사로 부터 직접 법문을 듣는 것과 같은 행운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라 하겠다.
천태대사는 입적한 후 그 육신을 다비하지 않고 등신불로 봉안 되었으며, 이는 중국불교 최초의 육신불(육신보살)로 오늘날에도 천태종의 총본산인 국청사(國淸寺) 지자탑에 봉안되어 우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소리없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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