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화엄경

화엄경의 편집의 사상적 배경에 대한 고찰

실론섬 2015. 5. 6. 18:32

「인도철학」제40집(2014.4), 105~134쪽

화엄경의 편집의 사상적 배경에 대한 고찰

* 본 논문은 2007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석길암/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HK 교수

 

I  문제의 소재

Ⅱ ‘여래출현(如來出現)’ 혹은 ‘성기(性起)’와 그 의미의 확장으로서 대경의 편집

Ⅲ 여래 본원 및 보살 서원의 일체화와 그 확장으로서 대경 편집

Ⅳ 다불다신설(多佛多身說)의 확장으로서 대경 편집

Ⅴ 경명 ‘방광(方廣)’과 입법계품 에 보이는 대경 편집의 사상적 배경

Ⅵ 화엄경의 편집시기와 불교 내부적 배경

Ⅶ 맺는 말

 

[요약문] 

본 논문은 화엄경 편집의 사상적 의도를 검토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화엄경의 편집시기와 그것이 편집되던 불교사회의 내부적 배경에 대한유추를 시도한 것이다.

 

편집의 사상적 의도에 대해서는, 별행경과 육십화엄의 차이에 초점을 두고 검토하였다. 첫째 ‘여래출현’ 혹은 ‘여래성기’라는 관점의 확장, 둘째 법회 서분과 결분에 정형화되어 나타나는 동명동호(同名同號)의 다불(多佛)·다보살(多菩薩)이 화현(化現)하는 구조의 의미와 그 확장, 그리고 경명 중의 ‘방광(方廣)’과 경 전반에 걸친 성문(聲聞)에 대한 입장등이 그것이다.

 

검토 결과, 화엄경의 편집은 별행경(別行經)의 유통, 성문·소승의 불전으로부터 ‘비불략(毘佛略, vaipulya)’을 ‘보살장’ ‘대승’ ‘마하연’으로 구분하는 경론들의 한역(漢譯) 시기로부터 유추할 때 대략 4세기 초반에서 4세기 중엽에 이르는 시기라는 결론을 얻었다. 또한 화엄경이 편집된 불교사회는 불탑신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동시에 아비달마 불교가 흥성했던 지역, 그러면서 대승경전이 지속적으로 출현하였던 곳이라고 생각된다.

 

Ⅰ. 문제의 소재

 

『화엄경(華嚴經)』, 이른바 화엄대경(華嚴大經)은 어디에서 최종적으로 편집되었을까? 또 그것은 어떤 의도와 구상에 의해 편집 되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의도와 구상은 어떤 사회적 배경을 가진 것이며, 또 어떤 사상적 의도를 배경에 두고 있는 것일까?

 

『화엄경』을 둘러싼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서는 이전에『화엄경』에 관심을 가졌던 학자들이 이미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 견해들은 현존하는 자료 범주 내에서 가능한 최대의 근사치를 추구한 것이다. 특히 화엄대경의 편집 지역과 편집 시기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현재까지 학계에서는 화엄대경의 편집 하한 연대를 4세기 중엽 이전, 편집 장소를 북서인도 지역이라고 추정하는데 대체로 동의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편집 장소 문제에 있어서는 부분적으로는 호탄 편집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1)

1) 이것은 호탄 편집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호탄에서 편집본 대경에 대한 
   부분적인 재편집의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필자는 호탄에서의 부분적인 
   재편집 가능성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대경 편집의 근본 의도를 보완하는 의미에서의 
   재편집이라는 범주를 벗어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호탄 
   편집의 가능성 여부를 검토할 다른 논고에서 상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다카사키 지키도(高崎直道)는 화엄대경의 성립 장소에 대해서 선행 연구들을 종합하면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2) 

2) 高崎直道(1988a) pp. 30-32.

 

첫째, 인도 고유의 범어 자모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호탄(于闐)에서 기원하여 1세기 말 무렵 서북 인도에 전해졌다고 추정되는 Ysa(醝, 闍, 也娑, 夷娑)라는 자모가 포함되어 있다. 둘째, 『화엄경』의 별행경(別行經) 및 대경의 전래 및 번역과 관련된 인물들이 월지국(月支國) 계통의 인물들이 많다. 곧『도사경(兜沙經)』의 번역자인 지루가참(支婁迦讖),『보살본업경(菩薩本業經)』의 번역자인 지겸(支謙),『육십화엄』을 가져온 지법령(支法領) 등이 월지국 계통의 인물로 보이고, 『팔십화엄』의 번역자인 실차난타는 호탄 출신으로 모두 서북인도 지역과 관련되어 있다. 셋째, 『화엄경』의 십지설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북인도 마투라 지방을 근거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설출세부(說出世部)와 교섭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넷째, 입법계품 의 경우에 무대를 남인도로 하면서도 남인도에 대한 지리적 묘사는 정확하지 않다. 때문에 앞의 사항들을 고려하면, 오히려 편찬자가 북서인도 지방에 있어서 창작의 자유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섯째, 대승경전 일반에 통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국왕이 절대 권력을 가진 지배자로 묘사되어 부처의 절대성이 그것에 비유되는 것이나, 보살을 여래의 집안에 태어난 장자(長子)로서 왕자에 비유하는 것 등은 쿠샨왕조의 위세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화엄경』의 보살 역시 여래의 집안에 태어나 불종(佛種)이 끊이지 않을 것을 사명으로 하는데, 이는 비슷한 사회적 상황으로부터의 반영일 가능성이 크다. 

 

다카사키 지키도는 화엄의 대경이 서북인도에서 성립되었을 가능성과 함께 호탄에서의 부분적인 재편집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논자 역시 이와 같은 기존의 일반적인 추정에 특별히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그런데 다카사키 지키도의 이 같은 선행연구를 종합한 추정이 화엄대경의 등장시기와 장소를 추정하는데 유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체로서 화엄대경 자체의 성격을 명료히 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양한 별행경들이 별행경들로 남지 않고 하나의 대경으로 편집된 것은 그 자체로서 별행경들과는 다른 명료한 새로운 편집의도를 전제로 하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화엄대경의 유통 역시 별행경들의 유통과는 다른 문제라고밖에 볼 수 없는데, 대경의 편집 과정에서 명료한 의도가 개입되고, 그 명료한 의도는 유통의 문제에도 역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별행경의 성립 및 유통과 화엄대경의 그것을 분리해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며, 주로 화엄대경 편집의 배경 문제를 집중적으로 추궁하고자 한다. 곧 화엄경 자체로부터 유추되는 편집의 사상적 배경은 무엇인지 규명하려는 것이 본 논문의 첫 번째 의도이고, 그것으로부터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시대적·사회적 배경을 유추해보려는 것이 두 번째의 의도이다. 이것은 화엄경의 편집지 및 유통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위한 예적 검토의 성격을 가진 것임을 밝혀둔다.

 

본 논문에서는 논의의 성격상 주로 『육십화엄』을 활용하기로 한다. 대경의 체재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육십화엄』과『팔십화엄』그리고 티벳어역인『장역화엄』의 셋이 있는데, 그 중『육십화엄』이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때문에 초기의 성립과 유통을 다루는 것에는『육십화엄』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에서이다.3)

3)『육십화엄』과『팔십화엄』그리고『장역화엄』과 지엄(智儼)이 대자은사에서 보았다는 
   화엄범본의 품명들이『공목장(孔目章)』「梵本同異義」를 통해 알려져 있다. 이 중 앞의 
   셋의 비교 검토는 伊藤瑞叡(1983)의 華嚴經の成立 에서, 그리고『孔目章』「梵本同異義」 
   를 포함한 검토는 木村淸孝(1992)의「中國華嚴思想史」에서 각각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참고할 수 있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별행경들의 성립과 화엄대경의 편집은 그 각각의 사상적 배경이 전적으로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곧 각각의 별행경들을 하나로 묶게 한 공통적인 요소도 존재했겠지만, 별행경들 각각은 처음에 조금씩 다른 사상적 의도를 가지고 출발했다고 보는 편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것이다. 따라서 대경의 편집과정에서 개편과 증보 혹은 삭제와 수정이 일정한 의도 아래 진행되었을 것은 당연히 예상된다. 특정한 공통적 요소의 강화가 진행되었을 것이고, 동시에 비공통적 요소를 고려한 순서배치 및 몇몇 요소를 부가하거나 삭제하는 등의 편집과정을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논자는 대경 편집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강화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요소와 대경의 편집 과정에서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가된 요소를 구분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논자가 생각할 때, 전자에 해당하는 것은 고래(古來)의 화엄경 연구자들이 ‘여래출현(如來出現)’ 혹은 ‘성기(性起)’라고 부른 것이다. 또 본래는『십지경』의 서분(序分)과 유통분(流通分)에만 보였던 특정 구조가 대경의 편집과정에서 점차 확대 적용되었다고 생각되는 바, 이것을 논자는 후자 곧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가된 요소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먼저 양자를 구별하여 차례로 살펴

보기로 한다.

보왕여래성기품

 

Ⅱ. ‘여래출현(如來出現)’ 혹은 ‘성기(性起)’와 그 의미의 확장으로서 대경의 편집

 

고래(古來)의 화엄경 연구자들이 ‘여래출현(如來出現)’ 혹은 ‘성기(性起)’라고 부른 것 혹은 개념화한 것은, ‘여래 출현의 의미’에 대한 질문과 그 응답으로서『화엄경』을 파악하는 시각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각각의 별행경을 하나의 화엄대경으로 자연스럽게 묶어내게 만든 본래적이면서 공통되는 어떤 것으로 생각된다.

 

『육십화엄』의 보왕여래성기품(寶王如來性起品) 의 품명으로, 그리고『팔십화엄』에서는 동품이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 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한다. 동일한 품의 별행경인『여래흥현경(如來興顯經)』 역시 동일한 의미의 다른 명칭에 해당한다. ‘여래출현’이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나누어서 볼 수 있다. 하나는 말 그대로 불(佛) 곧 태자로서 보살의 탄생이며, 이른바 비람강생(毘藍降生)을 의미한다. 또 하나는 보살이 불(佛)이 되는 것, 다시 말해서 보리수 아래의 성도(成道)를 지칭한다.

 

『화엄경』은 그 중에서 두 번째의 보리수 아래의 성도(成道) 곧 정각(正覺)의 성취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정각의 성취는 무엇을 말미암은 것인가 하는 두 가지로 대분(大分)되는 질문에 대한 응답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아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곧 성도라는 사건을 계기로 하는 불(佛)의 출현이 가지는 의미와 그것의 원인으로서의 보살의 수행이라는 두 가지 내용으로 대분할 수 있는 것이다.

 

화엄의 전문적인 용어를 빌리자면, 우선 과덕(果德)으로서 깨달음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부분이 있다. 후의 화엄대경을 구성하게 되는 각각의 별행경은 성도를 이룬 직후의 석가모니불과, 성도라는 획기적인 사건과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광명(光明)의 변조(遍照)에 의해 나타나는 광경의 묘사, 그리고 성도와 광명의 변조를 말미암아 출현하는 성중(聖衆)들의 대집회의 성립이라는 형태를 공통적으로 첫머리에 취하고 있다. 여래 출현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혹은 비유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광명의 변조이다. 그것은 단순하게는 무명(無明)

에 대응되는 광명(光明)의 성취이며, 삼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화엄경은 그것을 단순히 광명의 성취라는 것에 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광명의 성취에 한정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한 장치로서 등장하는 것이 아마도 변조(遍照)일 것이다. 변조(遍照) 이른바 ‘여래성(如來性)의 일어남[起]’을 통해서 그것이 단순히 여래 자신의 성도(成道)만이 아닌 중생의 요익(饒益)을 의미하는 것임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 한 것으로 생각된다.4) 

4) 高崎直道(1988b: 188-190)는「性起經」의 ‘如來出現’이「寶性論」에 의해 3종의 성기로써 
   해명되었다고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A) 性起=如來出現=成覺(지혜의 완성); ‘性’은 여래성, 因[如來藏]이다. 부처의 三身[法身]이 
   그것의 ‘起’ 즉 果인 것이다. B) 性起=如來出現=法身의 顯現[자비의 시현]; ‘性’은 法身이다. 
   여래공덕·業이 그것의 ‘起’[중생도 ‘性起’의 한 부분이다]이다. C) 性起=(如來出現)=진여·법성의 
   현현=법계[본체의 현현]; ‘性’은 진여이다. 여래도 중생도 모두 함께 그것의 ‘起’인 것이다. 
  「성기경」은 이 가운데서 B를 설명하여 C를 포함하고,「보성론」은 B와 C를 기초로 하여 
   A를 강조한다. 그리고 ‘화엄교학’은 C를 강조하면서 그 가운데 A와 B, C의 흐름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서 C는 화엄교학의 흐름에서 말한다면 ‘법계연기’와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한다.
   高崎直道는『성기경』곧「성기품」의 ‘여래출현’을 특히 ‘법신의 드러남’ 곧 ‘자비의 시현’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평가한다.

 

또 하나 언급해야 할 것은 이『입법계품』의 선지식과 선재의 관계에 대해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지혜인 문수와 사랑인 미륵, 그리고 행(行)인 보현이다. 선재는 비(悲)이다. 이 비(悲)가 지혜와 사랑과 실천 그리고 다른 것들에 인도되어, 격려되고 가르침을 받아서 깨달음을 얻는 ”5)이라고 하는 川田熊太郞의 지적이다. 화엄대경 편집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후편인 입법계품 의 구조를 비(悲)로 해석한다면, 이것은 전편에도 그대로 적용하여 ‘여래출현’ ‘여래성기’를 중생의 요익을 향한 자비의 현현으로 해석한다고 해도 별로 무리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6)
5) 川田熊太郞(1988) p. 67.
6) 화엄대경의 성립에 있어서 대부분의 다른 별행경들은 특히「도사경」을 핵심으로 하여 
   증광의 양상을 보이지만,「십지경」과「입법계품」은 대경의 성립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여전히 별행되었던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특히 입법계품 의 주제에 대해서 
   長谷岡一也(1983: 122-129)는, ‘入法界’는 ‘普賢行’이며, 보현행은 聲聞道보다 우월한 
   대승보살도의 의미로서 성문을 비판하는 자세가 입법계품 에 일관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반야경」의 반야바리밀행 곧 지혜행을 바탕으로 利他敎化·慈悲行에 특히 비중을 
   두어 강조한 것이 ‘보현행’이란 단어로 압축되었음을 지적한다. 이것은「입법계품」의 
   삼매인 ‘師子奮迅三昧’를 설명함에 “爾時, 世尊知諸大眾心之所念, 以大悲身, 大悲門, 
   大悲為首, 大悲隨順方便法, 入師子奮迅三昧”(『六十華嚴』 入法界品 , T 09, p. 677a)라고 
   하여, 佛道의 본분을 利他敎化라고 하는 자비의 실현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입법계품」
   의 두드러진 특징임을 지적한다. 이것은 화엄경이 반야사상을 계승하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반야행을 보현행의 입장에서 재해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별행경 중 가장 처음 한역(漢譯)되는『도사경(兜沙經)』(『육십화엄』의 명호품(名號品) 과 광명각품(光明覺品) 에 해당한다)이나『보살본업경(菩薩本業經)』등은 이 부분에 충실한 경전들이다. 이들 경전은 대경에서는 초회(初會)와 제2회(第二會)로 편집되는 부분들에 해당한다. 부언하자면, 여래가 성도가 광명의 변조로서 묘사됨으로서, 그 여래의 뒤를 잇는 곧 불종(佛種)을 계승하는 불자(佛子)의 출현을 적극적으로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7) 화엄이 보살도를 설하는 경전이면서 언제나 법회대중을 부르는 호칭으로 ‘불자(佛子)’를 사용하는 것에는 이 같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중생의 요익 그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래서 후대의 화엄가들은 이것을 ‘여래=출현’ ‘여래=성기’라는 형태로 적극 개념화하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7)『六十華嚴』의 初會가 여래의 출현과 그 본래의 因行을 묘사하는데 초점이 있다. 初會의 
   두 번째 품인「盧舍那佛品」에는 노사나불의 보살시절의 인행으로 보장엄동자 이야기가 
   나타난다. 그런데 보장엄동자의 인행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은 “時, 彼童子見佛無量自在
   功德善根因緣故, 即得十種三昧, 名曰諸佛具足功德三昧, 普門方便三昧, 淨方便雲三昧, 
   教化眾生三昧, 一切音聲充滿三昧, 無量功德誠向三昧, 如實覺諸法三昧, 廣地方便海三昧, 
   勝解脫三昧, 一切智光三昧”(T 09, p. 417a)와「大方廣佛華嚴經」卷42 盧舍那佛品 : 
   “爾時, 普莊嚴童子聞是經已, 宿世功德因緣故, 得一切法具足三昧, 一切法來入安住菩提
   心三昧, 法界師子光方便三昧, 法眼清淨三昧.”(T 09, p. 417b)의 두 가지가 전부이다. 
   즉 부처를 보고[見佛] 부처의 가르침을 듣는다[聞經]는 것의 두 가지이다. 이「노사나
   불품」의 ‘견불’과 ‘문경’이라는 실천의 핵심에 의해 등장하는 것이 第二會의 如來名號品 
   四諦品 如來光明覺品 이며, 菩薩明難品 淨行品 賢首菩薩品 은 이 전 3품의 체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 핵심은 부처를 보고[여래명호품] 듣고[사제품] 느끼는 것[여래광명각품]에 
   의해 체화하는 것이다. 곧 여기에서 화엄경이 생각하는 佛種을 계승하는 佛子의 출현은, 
   광명변조로 표현되는 ‘여래의 출현’에 의한 보여주기와 들려주기에 의해 촉발되는 것이다. 
   第三會 이후의 법회들이 모두 이 제2회의 견불과 문경을 기반으로 얻어진 삼매에 들어가는 
   것을 출발점으로 한다. 따라서 ‘보장엄동자가 見佛과 聞經에 의해 三昧에 들어간다’는 
   구조는 第三會 이후의 법회를 初會에 포섭하는 또 다른 구조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중생의 요익 곧 광명의 변조는 인위(因位)의 수행을 매개로 구체적인 양상을 드러내게 된다. 인위(因位)의 수행이란 것은 과덕(果德)의 원인을 묻는 것에 대한 응답이다. 하지만, 대경에서는 이것을 동시에 과덕(果德)의 구체적인 양상으로서도 제시하는 형태를 취한다. 오(吳)의 지겸(支謙)이 번역한『보살본업경』은『도사경』에 해당하는 부분을 서품으로 하고 다시 거기에 원행품(願行品) (『육십화엄』의 정행품(淨行品) )과 십지품 (『육십화엄』의 십주품(十住品) )을 덧붙인 형태이다. 그런데 『보살본업경』까지는「원행품」과「십지품」을 적극적으로 광명의 변조 안에 포섭하여 구조화하려는 양상은 보이지 않는다. 곧 서분에 등장하는 성도와 성도시의 광명변조 안에 십지품 (『육십화엄』의 십주품 법회 곧 도리천궁회) 법회를 적극적으로 포섭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에 대경인『육십화엄』의 편집자는 이것을 광명변조의 구체적인 양상으로 적극적으로 포섭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보살본업경』과 비교할 때『육십화엄』십주품 의 서분의 첫머리에 확연하게 부가된 부분이 있는데 “爾時, 世尊威神力故, 不起此座, 昇須彌頂, 向帝釋殿.”8)이라고 하는 부분이다. 동일한 양상이 불승야마천궁자재품(佛昇夜摩天宮自在品) 에서는 “爾時, 世尊威神力故, 不離道樹及帝釋宮, 向夜摩天寶莊嚴殿.”9)으로, 그리고 여래승도솔천궁일체보전품(如來昇兜率天宮一切寶殿品) 에서는 “爾時, 如來以自在神力, 不離菩提樹座及須彌頂妙勝殿, 上夜摩天宮寶莊嚴殿, 趣兜率天宮一切寶莊嚴殿.”10)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문장들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성도한 자리 곧 보리수 아래를 떠나지 않으면서 다른 회상(會上)에 향하였다’ 는 것이다. 짧고 간단한 구절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도는 간단하지 않다. 그 한 구절로 인하여 보살의 인행(因行)이 인행(因行)만이 아니라 과덕(果德)의 양상으로서 구체화된 것이라고 하는, 구조적 포섭의 의도를 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이들 구절에 의해, 각각의 법회를 초회(初會)의 구조 안에 포섭한다는 것을 대경의 편집자들은 명시적으로 선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11) 보살도의 인행(因行)으로 설시(說示)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사실은 불(佛)의 과덕(果德)을 구체적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불종(佛種)의 계승 곧 불(佛)의 본원력과 위신력에 의거하여 불자(佛子)로서 중생의 요익을 실현하고 구체화하는 양상, 그것을 성도할 때의 광명변조 안에 포섭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출현(出現)’ 혹은 ‘성기(性起)’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8)『六十華嚴』佛昇須彌頂品 , T 9, p. 441b.9)『六十華嚴』佛昇夜摩天宮自在品 , T 9, p. 463a.
10)『六十華嚴』如來昇兜率天宮一切寶殿品 , T 9, p. 478c.
11)『보살본업경』「십지품」 에는 ‘세존이 몸을 나누어 모든 제석천의 궁전에 두루하다’
    (佛意悉知, 即為分身, 遍諸釋殿. T 10, p. 449b)라는 구절이 있음이 논문심사자에 의해 
    지적되었으므로 부언하기로 한다. 이 구절은『육십화엄』 第三會에서는 菩薩雲集妙勝
    殿上說偈品 에 포함되어 재편집된 것으로 보이는데, 각각 방위의 각각의 열 세계와 그 
    세계의 여래, 그리고 동일한 이름의 보살권속으로 표현된다. 해당 구문의 수정재편집
    으로 보이는 것은 ‘又佛神力故, 化作寶藏師子之座, 結跏趺坐, 充滿十方, 如此世界須彌
    山頂, 菩薩雲集. 十方世界亦復如是.’(T 09, p. 442a)라는 구문이다. 이는 대경『육십화
    엄』각 법회의 서분과 말분에 거의 통일된 형식으로 나타나는데, 본문의 다음 장에서 
    그것이「십지경」구조의 확장결과로 보인다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보살도의 극치라고 일컬어지는 십지를 설하는『육십화엄』의「십지품」서분에는 이와 같은 구조가 시현되어 있지 않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몇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우선 첫째는 입법계품 을 제외한다면, 대경의 구조에 있어서 중심축의 역할을 하는 것이『도사경』과『십지경』이라는 것이다. 곧『도사경』이『여래흥현경』곧「성기품」 과 함께 ‘여래출현’ ‘성기’의 의미를 추궁하는 한 축을 이룬다면,『십지경』곧「십지품」은 보살도의 실천과 구체화의 양상이 가지는 의미를 추궁하는 또 다른 한 축을 이루는 것이다. 이 점은 다음 절에서 구체적으로 다룬다. 둘째는 대경이 편집되기 전에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경전인데다가 경전의 서분에 설시(說時)를 명료히 하고 있는 점도 고려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셋째는 둘째의 문제를 고려할 때, 앞의 보살도를 설하는 품들에서 이미 설처(說處)의 단계적 상승과정과 ‘성도할 때의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구조적 양상이 각인되었기 때문에, 굳이 널리 알려진 경전의 서분을 수정할 필요까지는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어쨌든『육십화엄』은『도사경』의 서분을「세간정안품(世間淨眼品)」과「노사나불품(盧舍那佛品)」으로 확장하고, 다시 보살도의 수행을 불(佛) 성도의 과덕으로 재구조화하는 양상을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불전(佛傳) 그 중에서 성도(成道)의 의미를 보살의 인행에까지 확장하여 과덕(果德)의 구체화라는 형태로 설명하려는 의도를 달성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편집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달성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보살도를 불의 과덕(果德), 여래의 출현, 성기로 차환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방면에서의 접근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경 편집의 또 다른 축을 이루었던『십지경』구조의 확장이라는 형태로 대경에 등장하게 된다.

불교의 보살들

 

Ⅲ. 여래 본원과 보살 서원의 일체화와 그 확장으로서의 대경 편집

 

『육십화엄』의「십지품 」에는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한『점비일체지덕경(漸備一切智德經)』과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십주경(十住經)』그리고 보리유지(菩提流支)에 의해 번역된『십지경론(十地經論)』에 포함된 이역본(異譯本)들이 존재한다. 셋의 구조는 크게 차이나지는 않지만,『육십화엄』의「십지품」과 비교했을 때는『십지경론』소수(所收)의 경문이 가장 유사하다. 하지만『십지경론』의 번역시에『육십화엄』을 참조하였다면, 양자 간의 좀더 긴밀한 유사성은 오히려 원본의 문제라기보다는 번역본 간의 영향 문제일 수도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축법호 번역본과 구마라집 번역본 그리고 십지품 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언급하기로 한다. 이 세 번역본에는 서분과 유통분에 문장의 소소한 차이를 배제한다면 거의 완전히 동일한 부분이 등장하는데, 해당 부분의「십지품」 경문은 다음과 같다.

 

a) 爾時, 金剛藏菩薩摩訶薩, 承佛威神, 入菩薩大智慧光明三昧. 即時, 十方世界於一方過億佛土微塵數世界, 有十億佛土微塵數佛皆現其身, 名金剛藏. 方世界皆亦如是. 同聲讚言, “善哉!善哉! 金剛藏! 乃能入是菩薩大智慧光明三昧, 如是十方世界微塵數等諸佛皆同一號, 加汝威神. 所謂盧舍那佛本願力故, 本威神力故, 汝有大智慧故, 欲宣一切菩薩不可思議諸佛法明故 …13)

13) (『六十華嚴』「十地品 」, T 9, p. 542b)

 

b) 如此世界四天下他化自在天王宮說十地, 十方一切世界皆亦如是. 以佛神力故, 十方過十億佛國微塵數剎, 有十億佛國微塵數菩薩, 詣此世界, 遍滿虛空, 皆作是言, “善哉! 善哉! 金剛藏善說菩薩十地之法.” 佛子! 我等皆名金剛藏, 發金剛德世界, 金剛幢佛所來, 所經歷處, 皆說是經, 眾會如是, 言辭義趣亦如是, 我等以佛神力故, 來證是事, 如我至此, 十方一切世界他化自在天王宮摩尼寶殿, 皆有十億佛國微塵數菩薩往為作證亦復如是.14) 

14)『六十華嚴』「十地品」 , T 9, p. 575c.)

 

a)는 서분에서 금강장보살이 삼매에 들어가고, 그때 시방의 일체미진수세계의 불국토에서 동일한 금강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처가 등장하여 가피하는 장면이다. 가피의 내용을 보면 금강장보살이 대지혜광명삼매에 들었는데, 삼매에 들어간 이유로 일체미진수세계의 같은 이름의 금강장불이 위신력을 더한 까닭이고, 이것은 노사나불의 본원력에 말미암은 것이며, 금강장보살 스스로의 큰 지혜 때문이라고 설명한 후에, 이들 힘에 의지하여 십지를 설 할 것임을 밝힌 부분이다.

 

b)는 십지의 설법을 마친 후에 부처님의 위신력에 힘입어 일체미진수 시방세계의 동일한 이름의 금강장보살들이 와서 십지법문의 설법을 증명하는 부분이다. 보왕여래성기품 의 경우는 이 b)에 해당하는 부분에 설법의 증명 외에도 수기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다르다.

 

이와 같은 구조는 지겸이 번역한『보살본업경』의「십지품」에는 이와 같은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 축법호가 번역한『불설여래흥현경(佛說如來興顯經)』은「보왕여래성기품」에 해당하지만 역시 유통분에 설법을 증명하는 부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경『육십화엄』에 이르면, 동명동호의 부처가 각각의 보살도 법회의 서분에 출현하여 삼매에 들어가고 설법하게 된 인연을 노사나불의 본원력과 위신력 그리고 동명동호의 일체미진수 시방국토에서 온 부처의 위신력과 설주보살의 선근력에 말미암은 것이라고 가피하는 부분이 등장하게 된다. 증명하는 부분에서도 역시 제불의 위신력과 동명동호의 보살들이 나타나 설법을 증명하는 구조가 등장하고 있다. 곧 별행경 혹은 지분경이었을 때의 『십지경』이 가지고 있던 구조가 대경『육십화엄』의 성립과정에서 각각의 보살도 법회의 서분과 유통분에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논자는 세 가지 의미로 읽는다. 첫째는 보살도가 노사나불의 본원력과 설주와 동명동호인 일체미진수 시방불국토의 부처들의 위신력에 힘입었다는 사실에 의하여, 그것이 불행(佛行) 곧 불(佛)의 과덕구현(果德具顯)에 일체화된 것임을 드러내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둘째는 동명동호(同名同號)가 강조되고 있다는 점인데, 노사나불의 본원력에 합치하고 동명동호인 시방제불의 위신력에 합치하는 것만이 불국토 장엄의 보살도라는 선언일 것이다. 이 역시 첫째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된다. 셋째는 동명동호(同名同號)에 대한 다른 방식의 이해인데, 어떻게 해야만 불국

토가 현실에 시현되는가 하는 점에 대한 대경 편집자의 의도가 담겨있다고 생각된다. 동명동호(同名同號)의 부처와 보살의 출현과 가피 그리고 증명과 수기라는 사고방식은 거의 『화엄경』만의 유일한 방식이라 할 수 있고, 그 구체적인 시원은 『십지경』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된다.15)

15) 석길암(2012) pp. 35-38. ; 석길암(2013) pp. 173-178.

 

이 셋째의 의미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첫째와 둘째의 의미는 대승 경전 일반이 여래 출현의 의미를 적든 많든 경전 내에 각각의 형태로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화엄경』이 유독 그것을 강조하여 집중적으로 추궁해나갔다는 데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전(佛傳)을 이해하는『화엄경』특유의 시각이라는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큰 의미가 있지만,『화엄경』에 특화된 유일의 것이라고 하기는 곤란한 부분이 있다. 후에 등장하는 여래장계 경론들은 사실 그러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강조하여 부각시킨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 셋째의 의미는『화엄경』에 독특하고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동시에 거기에는 불국토의 구체적 현현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대경 편집자들의 사유가 담겨있다고 생각된다. 이른바 노사나불의 본원력과 시방제불의 위신력과 불국토 장엄의 구체적 시현자인 보살의 선근력이 만나 불국토를 구체적으로 시현하게 하는 매개에 대한 편집자들의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논자는 이 동명동호(同名同號)의 부처와 보살을 출현시켜 가피(加被)하고 수기(受記)하고 증명(證明)하는『화엄경』특유의 구조를, ‘공감과 소통’[入三昧]에 의한 ‘원력 더하기’[加被, 證明, 受記]의 구조로 읽는다. 유독 그것이 보살도를 설하는 품에 집중되어 있는 것 역시, 현실에서의 불국토 성취와 구현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여래의 출현은 어떻게 중생을 요익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화엄경』편집자들의 구체적인 답변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Ⅳ. 다불다신설(多佛多身說)의 확장결과로서의 대경 편집

 

대경의 편집 과정에서 특별히 추가된 부분 중의 하나가『육십화엄』의 초회(初會)에 해당하는「세간정안품(世間淨眼品) 」과「노사나불품(盧舍那佛品)」 이 있다 『도사경』혹은『보살본업경』의 서분에 해당하는 부분을 대경 편집 과정에서 확장하면서 대경 전체의 서분(序分)으로 삼은 부분이라 생각된다. 동일한 부분이『팔십화엄』에서는 전체 6품으로 다시 확장되어 있다.

 

『육십화엄』을 기준으로 말한다면,「노사나불품」은 성도와 성도 직후의 법회 성립의 장면을 묘사하고, 그것을 통해서 불전(佛傳)에서 성도가 가지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시방세계로부터 출현해오는 성중(聖衆)들의 찬탄을 통해서 성도가 가지는 의미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품명 자체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의 질적인 전환이 정각의 성취에서 비롯됨을 드러내고 있다. 성중(聖衆)들의 찬탄은 그 점은 초점을 두어 이루어지고 있다. 다양한 성중들이 여러 세계로부터 운집하여 대법회를 이룬다는 구상은 반드시『화엄경』유일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화

엄경』의 법회를 묘사하는 뚜렷한 특징이라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성문이 등장하지 않는 보살을 중심으로 하는 일체 세계 성중들의 운집이라는 독특한 구성양상이 화엄법회의 중요한 특징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바로 앞 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체 미진수의 시방세계로부터 현현해오는 동명동호의 다불(多佛) 다보살(多菩薩)의 등장과 가피, 수와 증명이라는 법회의 또다른 양상과 함께『화엄경』법회의 중요한 특징으로 부각할 수 있을 것이다.

1250 성중탱화

 

반면「세간정안품」에 이어지는「노사나불품」은 ‘세간정안(世間淨眼)’을 성취하게 된 본연과 본원을 말하는데 초점이 있다. 과덕을 성취하는 인행(因行)을 밝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화엄경』수행 혹은 실천의 특징이 드러나는데, 그것을「노사나불품」의 언어로 말하면 ‘견불(見佛)’ ‘문경(聞經)’, ‘공양(供養)’과 ‘친근(親近)’ 그리고 ‘서원(誓願)’과 ‘서원의 실천[願行]’이다. 이 중에서 마지막의 것, 그러니까 서원세우기와 서원의 실천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를 보고 부처의 가르침을 듣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곧 보살은 어떤 인행(因行)으로 해서 정각(正覺)의 과덕(果德)을 성취하는가? 그 점에 대해서「노사나불품」은 부처를 보고[見佛],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聞經], 그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일으키고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도(成道)의 인행(因行)이라고 표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성도의 인행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서원의 사표가 된 부처로부터 비롯되고, 그 부처 역시 이전의 부처의 서원으로부터 비롯된 존재이다. 이것을 시간적 순차로 배열하고 있지만, 실은 그것은 종횡 곧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서로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는 구조로서 배열된다. 이것이 『화엄경』에서 다불과 다신의 부처라는 사유방식상의 특징이 등장하는 배경이라고 생각된다.

 

결국 대경의 서분(序分)은『화엄경』이 불전(佛傳) 특히 성도(成道)와 그 의미, 그리고 성도(成道)의 인행과 과덕(果德)의 구체적 양상을 드러내는 것이 대경 전체의 주제임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진리로부터 개현된 안목과 진리 실현의 구체적 양상이라는 형태로 파악할 수 있으며, 이것을 경에서는 법신불의 본원(本願)을 배경으로 시현되는 보신불(報身佛)과 다양한 화신불(化身佛)이라는 형태로 상징화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Ⅴ. 경명 ‘방광(方廣)’과 입법계품 에 보이는 대경 편집의 사상적 배경

 

『육십화엄』이든『팔십화엄』이든 그것의 원래 경명은 알려져 있지 않다. 한역의 경명은 ‘大方廣佛華嚴經’이다. 여기서는 경명 중에서 ‘방광(方廣)’의 문제를 검토하기로 한다.16) 별행경 중에 경명에 ‘방광(方廣)’이라는 어휘가 들어 있는 것으로는 실역(失譯)이긴 하지만, 서진(西晉) 시대에 번역된 ‘대방광여래성기경(大方廣如來性起經)’ 혹은 ‘대방광여래성기미밀장경(大方廣如來性起微密藏經)’의 두 가지가 있다.17) 둘 다『육십화엄』의「보왕여래성기품(王如來性起品)」에 해당하는 것이며, 같은 서진 시대에 활동한 축법호가 번역한『여래흥현경(如來興現經)』의 이역본(異譯本)으로 생각된다. 여기서는 우선 보왕여래성기품 에 해당하는 별행경의 명칭에 ‘방광(方廣)’이라는 어휘가 포함되었다는 사실만 지적해두기로 하고, 먼저 ‘방광’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자.

16) 경명 중에서 ‘방광(方廣)’만을 따로 분리하여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대경에 해당하는 범문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大方廣佛華嚴經’이라는 명칭이 
    원문에 충실한 번역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失譯本을 포함하여 알려져 있는 經名
    들에 ‘方廣’의 명칭이 들어가는 경전들의 한역 시기는 빨라도 3세기 말~4세기 초 이전
    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는다. 게다가 서진시기의 거승로 알려진 ‘방광’을 포함하는 
    명칭을 가진 경들은 모두 화엄경의 별행경이라는 점에서 주목의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17)「華嚴經傳記」, T 51, p. 155c.

 

방광(方廣)은 9분교 혹은 12분교의 하나로 사용된다. 9분교에서 ‘Vedallam’이고 12분교에서 ‘Vaipulyam’이다. 그런데 청량징관은 이 경명에 대하여 “지금의 범본(梵本)에 의하면 ‘마하비불략발타건나표하수다라(摩訶毘佛略勃陀健拏驃訶修多羅)’라고 한다. 이것은 대방광불잡화엄식경(大方廣佛雜華嚴飾經)이라 하는 것이다.”18) 9세기 전후의 범본에 의거한 명칭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방광’은 ‘비불략(毘佛略)’ 곧 ‘vaipulya’의 역어로 나타난다.

18) 澄觀,「大方廣佛華嚴經疏」, T 35, p. 524b. “依今梵本.
    云摩訶毘佛略勃陀健拏驃訶修多羅.此云大方廣佛雜華嚴飾經.”

 

『육십화엄』보다 조금 앞서 번역된「대지도론」에서는 “비불략경(毘佛略經)[진나라 말로는 미증유경(未曾有經)이다.]은 마치 부처님께서 갖가지의 신력을 나타내면 중생들이 보고 미증유(未曾有)라고 괴상하게 여기는 것과 같다. 이른바 부처님께서 탄생할 때 몸으로 큰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의 세계와 어두운 곳을 비추셨고 다시 시방의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신 것이다. 이때 부처님의 어머님 앞에는 청정한 좋은 못이 있어서 보살을 목욕시키셨는데 범왕(梵王)은 일산을 받쳐 들고 제석(帝釋)은 몸을 씻었으며 두 마리의 용(龍)은 물을 토해냈다. 또 태어났을 때에는 붙드는 이도 없이 일곱 걸음을 걸어가셨고 그 발자국마다 연꽃이 솟아나 발을 바쳤으며 다음과 같이 나는 바로 온갖 중생들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을 제도할 이다‘고 외쳤다고 하였다. 땅은 크게 진동하고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렸으며 나무는 음성을 내고 하늘의 음악이 울렸으니, 이러한 등등의 한량없는 희유한 일들을 말씀하신 것을 바로 미증유경이라 한다.”19)고 설명한다.

19)「大智度論」, T 25, p. 308a.

 

『육십화엄』과 비슷한 시기에 담무참(曇無讖, 385~433)에 의해 번역된『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는 12분교를 12부경으로 설명하면서 ‘비불략(毘佛略)’에 해당하는 경에 대해 “어떤 것들을 이름하여 비불략경(毘佛略經)경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대승의 방등경전이다. 그 뜻이 광대하며 또한 허공과 같다. 이것을 비불략(毘佛略)이라고 이름한다.”20)고 설명한다.

20)『大般涅槃經』「梵行品」, T 12, p. 452a “何等名為毘佛略經.
    所謂大乘方等經典. 其義廣大猶如虛空. 是名毘佛略.

 

또 북인도 계빈국(罽賓國) 출신으로 전하는 구나발마(求那跋摩,367~431)가 번역한『보살선계경』에는 “보살계를 배우는 자는 마땅히 두 가지를 닦아야 하는데, 첫째는 자심(慈心)이고 둘째는 신심(信心)이다. 보살은 이러한 두 가지 법을 익혀서 신해심(信解心)을 얻는다. 법을 구한다는 것은 무엇을 구하는 것인가? 무엇을 구하며 왜 구하는가? 구하는 것이란 보살장(菩薩藏)·성문장(聲聞藏)이며, 일체세론(一切世論)과 일체세사(一切世事)이다. 보살장이란 비불략(毘佛略)을 말하며, 나머지 십일부는 성문장이라고 한다.”21)고 말한다.

21)『菩薩善戒經』, T 30, p. 976c. “學菩薩戒者當修二事, 一者慈心, 二者信心.
    菩薩修集如是二法得信解心. 求法者求何事? 云何求何故求? 求者謂菩薩藏,
    聲聞藏, 一切世論, 一切世事. 菩薩藏者, 謂毘佛, 餘十一部名聲聞藏.”

 

이와 비슷한 시기의 번역인, 북량의 삼장 도태( 泰?~?) 등에 의해 번역된「입대승론(入大乘論)」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불략이란 마하연이다. 왜냐하면 비불략의 경전에서는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닦아 대치하는 법을 설하기 때문에 비불략이라 이름한다. 또한 수많은 승(乘)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불략이라 이름하며, 많은 장엄을 갖추었기 때문에 비불략이라 이름하며, 한량없는 커다란 과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비불략이라 이름하며, 칭량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불략이라 이름하며, 일체의 모든 잘못된 견해를 끊어 없애기 때문에 비불략이라 이름한다. …… 이 비불략은 결정적인 문구가 없다. 따라서 비불략이란 대승을 드러내는 것이지 성문 소승의 언설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대승 경전에서는 보살이 행해야 할 일이 지극히 깊고 광대하니,대유경(大喩經)현겁삼매경(賢劫三昧經)해탈경(解脫經)화수경(華首經)등과 같다. 이와 같은 것들은 모두 마하연이므로 모두 비불략이라 이름한다."22)

22)「入大乘論」, T 32, p. 38b. “毘佛略者, 是摩訶衍. 何以故? 毘佛略經,    

    為諸眾生說修對治法故, 名毘佛略. 亦有眾多乘故, 名毘佛略. 亦以多莊嚴具故,    

    名毘佛略. 亦能出生無量大果報故, 名毘佛略. 非是稱量所能知故, 名毘佛略.    

    除斷一切諸邪見故, 名毘佛略. …… 是毘佛略, 若無定文. 是故當知, 毘佛略者,    

    顯發大乘, 非謂聲聞小乘說也. …… 大乘經說, 菩薩所為其事深廣, 如大喻經,
    賢劫三昧經, 解脫經, 華首經, 如是等. 悉是摩訶衍, 皆名毘佛略.”

 

이상『육십화엄』의 번역을 전후한 시기에 번역되는 경전에서 ‘방광(方廣)’ 즉 ‘비불략(vaipulya, 毘佛略)’에 대한 어의(語義) 설명의 예를 검토하였다. 「대지도론」에서는 ‘방광(方廣)’ 즉 ‘비불략(vaipulya, 毘佛略)’이 확고하게 대승을 의미한다는 것과 같은 설명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육십화엄』직후에 번역되는『대반열반경』『보살선계경』『입대승론』에서는 12부경 가운데 ‘비불략(vaipulya, 毘佛略)’을 명료하게 ‘대승’ 혹은 ‘마하연’으로 확정하여 표현하고 있다.「대지도론」의 성립이 나머지의 경들보다 상당히 앞선 것임을 생각하면, ‘방광(方廣)’ 즉 ‘비불략(vaipulya, 毘佛略)’은 4세기의 한 세기 동안에 점차 대승경을 지칭하는 것으로 의미가 확정되어갔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검토한 경들의 번역시기를 고려할 때 적어도 4세기 중후반에는 ‘방광(方廣)’ 즉 ‘비불략(vaipulya, 毘佛略)’이 명료하게 ‘대승’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육십화엄』에 후편에 해당하는 입법계품 에는 잘 알려진 것처럼, “그 때에 그 모든 큰 성문들, 즉 사리불(舍利弗)·목건련(目揵連)·마하가섭(摩訶迦葉)·이바다(離婆多)·수보리(須菩提)·아니로두(阿泥盧豆)·난타(難陀)·금비라(金毗羅)·가전연(迦旃延)·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 등 이런 큰 성문들은 다 기원림에 있으면서도, 그 여래의 자재함과 여래의 장엄, 여래의 경계, 여래의 변화, 여래의 사자후, 여래의 묘한 공덕, 여래의 자재한 행, 여래의 세력, 여래의 묘한 공덕, 여래의 자재한 행, 여래의 세력, 여래의 주지하는 힘, 청정한 부처 국토 등 이런 일들을 보지 못하였다.”23)고 하여, 이 경전이 성문장이 아닌 보살장(菩薩藏)임을 명료히 드러내고 있다. 이와 같이 성문장을 보살장과 구분하는 의식이 보이는 부분들은 『육십화엄』전체에 나타나지만 일일이 언급하지는 않는다.

23)『六十華嚴』「入法界品」, T 9, p. 679bc. “爾時,
    諸大聲聞舍利弗·目揵連·摩訶迦葉·離婆多·須菩提·阿泥盧豆·難陀·金毘羅·迦旃
    延·富樓那彌多羅尼子, 如是等諸大聲聞, 在祇洹林而悉不見如來自在,
    如來莊嚴,如來境界, 如來變化, 如來師子吼, 如來妙功德, 如來自在行,
    如來勢力, 如來住持力, 清淨佛剎, 如是等事, 皆悉不見.

 

그런데『육십화엄에는「대지도론」에서 ‘비불략경(毘佛略經)’을 ‘미증유경(未曾有經)’이라 번역하면서 붙인 설명 곧 ‘부처님께서 탄생할 때 몸으로 큰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의 세계와 어두운 곳을 비추셨고 다시 시방의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신’ 것과 같은 신력(神力)을 드러내는 일들이 모든 법회의 서분과 유통분에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나가르쥬나 곧 용수(龍樹)의 시대에 이미 입법계품 과 십지품 이 존재했던 것을 생각하면,「대지도론」의 설명은 이들 별행경을 의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대지도론」이 들고 있는 예는 부처의 강탄(降誕)이므로 차이가 있다. 어쨌든 희유한 일 혹은 미증유의 일이라는 점에서는 양자에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된다. 다만 거기에는 아직 ‘비불략경(毘佛略經)’을 보살장(菩薩藏)과 성문장(聲聞藏)의 어느 하나로 구분하려는 것과 같은 의도는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대반열반경』『보살선계경』『입대승론』에서는 ‘비불략(毘佛略, vaipulya)’을 명확히 ‘보살장(菩薩藏)’ ‘대승(大乘)’ ‘마하연(摩訶衍)’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따라서 미증유의 희유한 일들을 보이면서 동시에 비성문장(非聲聞藏)으로서의 입장을 확연히 하고 있는『육십화엄』의 편집은「대지도론」보다는『대반열반경』『보살선계경』『입대승론』에 가까운 시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육십화엄』은 적어도 보살장과 성문장을 확연히 구분하기 시작하던 시기 이후에 편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보면 화엄대경의 편집은 기존의 부파불교와 대승불교를 구분하는 의식이 명료해지기 시작한 무렵, 혹은 대승이 기존의 부파불교에 대하여 자신들의 차별성을 확고히 하겠다는 의식을 명료하게 가지기 시작한 무렵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동시에 화엄경을 비롯한 이들 대승경론의 테두리 의식은, 이들 경전이 출현한 지역이 대승경론에 대하여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대승경전이 출현했던 지역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적어도 한역(漢譯) 경론들을 기준으로 볼 때, 성문·소승의 불전으로부터 ‘비불략(毘佛略,vaipulya)’을 ‘보살장’ ‘대승’ ‘마하연’으로 구분하는 것들의 번역 시기는 대략 5세기 초반이다. 따라서 간다라 일대에서 이들 경전의 성립 시기는 빠르게는 대략 4세기 전반에서 늦게는 중후반 정도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화엄대경의 편집 역시 그 즈음의 사상들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Ⅵ. 화엄경의 편집시기와 불교 내부적 배경

 

이상 화엄경의 편집과 관련한 사상적 배경의 문제를 별행경과 대경의 차이를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여기에서는 지금까지의 검토를 바탕으로 불교사적 측면에서 화엄경의 편집이 어떤 시대와 어떤 사회를 배경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가설적 검토를 시도한다. 우선 앞의 검토에서 확인된 주요 사항들을 다시 한번 정리한다.

 

첫째, 미증유의 희유한 일들을 보이면서 동시에 비성문장(非聲聞藏)으로서의 입장을 확연히 하고 있는『육십화엄』의 편집은「대지도론」보다는『대반열반경』『보살선계경』『입대승론』에 가까운 시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육십화엄』은 적어도 보살장과 성문장을 확연히 구분하기 시작하던 시기 이후에 편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한역(漢譯) 경론들을 기준으로 볼 때, 성문·소승의 불전으로부터 ‘비불략(毘佛略, vaipulya)’을 ‘보살장’ ‘대승’ ‘마하연’으로 구분하는 것들이 번역된 시기는 대략 5세기 초반이다. 따라서『육십화엄』은 이들 경전보다 조금 이르거나 비슷한 시기에 편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빠르게는 대략 4세기 전반에서 늦게는 중후반 정도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시기와 관련하여 오(吳)의 지겸이 번역한『보살본업경』의「십지품」이나 축법호가 번역한 『불설여래흥현경(佛說如來興顯經)』에는 대경『육십화엄』의 서분 혹은 유통분에 보이는 동명동호의 부처나 보살의 출현이 보이지 않는다. 지겸은 3세기 전반에 역경 활동에 종사하였고, 축법호는 3세기 말부터 4세기 초까지 돈황과 장안 등을 무대로 번역활동을 진행하였던 인물이다. 따라서 『육십화엄』의 편집은 4세기 초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육십화엄』은『도사경』의 서분을「세간정안품(世間淨眼品)」과「노사나불품(盧舍那佛品)」으로 확장하고, 다시 보살도의 수행을 여래출현의 과덕으로 재구조화하는 양상을 취하는 것이다. 동시에「십지품」서분과 유통분의 구조를 보살도 법회에 확장함으로써, 여래출현의 의미를 보살의 인행에까지 확장하여 과덕(果德)의 구체화라는 형태로 설명하려는 의도를 달성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동명동호(同名同號)의 다불(多佛)과 다보살(多菩薩)에 의한 가피와 수기 및 증명이라고 하는『십지경』에 특유한 사유의 확장 역시 포함된다.

 

첫째와 둘째의 정리를 통해서 화엄대경의 편집시기가 4세기 중반 이전에는 이루어져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은 기존의 설에 거의 근접하는 결론이라고 생각된다. 첫째에서 언급한 성문 혹은 소승의 불전으로부터 ‘보살장’ ‘대승’ ‘마하연’을 구분하는 의식과 관련하여, 다카사키 지키도(高崎直道)는『불설여래흥현경』,「성기품」 ,「여래출현품」그리고『장역화엄』 「출현품」을 비교 분석하면서 ‘여래종성(如來種姓)’ 혹은 ‘여래성(如來性)’이 tathāgata-gotra의 번역일 것이라는 추정 아래,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고 있다.

 

"하나는 gotra의 용법이 『성기경』 이전부터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 그러나 그것이 아비달마 속에서가 아니라, 같은 대승경전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대승경전 속에서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여래종성(如來種姓)’ ‘여래성(如來性)’이라 할 때의 ‘여래[불타]’의 해석과는 다르다. 결국 성문·독각과 구별되는 불타·여래가 아니고 삼승을 모두 포함하는 일불승(一佛乘)적인 입장인 여래로서, 법신·진여·법성으로서의 여래인 것이다. 따라서 gotra도 우주적·보편적인 본질로서 그대로 진여·법성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편 그것은 원초적인 용법으로서 ‘불종(佛種)’, 불교도

에게도 통하는 의미인 ‘여래종성’이다. 모든 불교도가 공통으로 갖추고 있는 성질·힘 즉 이를테면 불성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tathāgata-gotra라는 말이 아비달마에 대항해서 대승경전 내부에 점차적으로 형성되어 갔다는것을 알 수 있다."24)

24) 高崎直道(1988b) pp. 174-175.

 

다카사키 지키도의 언급과 첫 번째의 정리를 종합해보면,『화엄대경』이 편집된 곳은 아마도 아비달마 불교를 강하게 의식할 수 밖에 없었던 곳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셋째의 정리는 이 같은 불교사회 내부의 정황과 관련하여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동명동호(同名同號)’라고 하는 것은 앞에서도 설명했던 것처럼,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서원에 기반한 공동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이 동명동호의 법회공동체[혹은 신행공동체]는 자체의 법회를 통해서 그 법회의 계승자를 끊임없이 등장시키는 구조를 법회에 포함하고 있다. 가피하고, 수기하고, 증명하는 형태를 법회에 정형적 구조로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엄경이 법회대중을 일컬어 ‘불자(佛子)’라고 반복하여 칭하고 있는 것 역시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 점을 다카사키 지키도의 지적과 관련하여 생각하면, 역시 대승경전에 대하여 ‘비불설(非佛說)이라는 비난이 행해졌을 불교사회 내부의 정황을 고려하게 한다. 이것은 별행경들로부터 화엄대경의 편집이 이루어지는 불교사회의 내부적 배경이 아비달마 불교의 흥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화엄경』에는 다양한 형태로 불탑(佛塔)이 언급된다.「정행품」에는 불탑에 정례(頂禮)하고 불탑을 돌면서 신행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고,25)「십회향품」 에는 일체제불의 탑묘에 공양한다고 묘사하고 있으며,26)「입법계품」에도 여래상(如來像), 제불탑(諸佛塔), 성문과 연각의 탑 등의 표현이 등장하는27) 등, 화엄경 전반에 걸쳐서 불탑공양에 대한 예가 적지 않게 등장한다. 특히 「십회향품」에는 “혹은 대지를 보시하여 불전당(佛殿堂)을 일으키고, 승려들의 방사(房舍)를 지어 보살성중인 복전이 편안히 머물게 하고, 혹은 지어 중생들의 복전인 보살 대중을 거처하게 하며”28)와 같은 표현들이 등장한다. 이상의 예들은 화엄경의 편집이 불탑신앙이 활발하던 지역에서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29)

25)『六十華嚴』「淨行品」, T 9, p. 432c.
26) T 9, p. 505b.
27) T 9, p. 769c.
28) T 9, p. 500a. “或施大地, 起佛殿堂, 造僧房舍, 安處菩薩聖眾福田.”
29) 참고로 한지연(2011: 142-143)은 “「淨行品 」이 반복적으로 독립된 경전으로 역경되는 것은 
    아마도 당시 서역지역에서 불탑신앙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그 사상적 배경으로 가장 적당한 
    경전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정행품 의 번역사정이 호탄 지역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 배경으로 서역지역에서 불탑신앙이 활발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본『육십화엄』에도 이 같은 견해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고바(불탑)

 

 

Ⅶ. 맺는 말

 

이상으로 화엄경 편집의 사상적 배경을 검토하고, 그것으로부터 편집시기와 불교 내부적 배경을 유추해 보았다.

 

지금까지의 검토를 고려할 때, 화엄경의 편집 시기는 대략 4세기 초반에서 4세기 중엽에 이르는 시기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4세기 초반이란 것은 별행경들이 활발하게 유통되고 한역(漢譯)되던 상황을 고려할 때, 그리고 4세기 초반의『불설여래흥현경』등에 아직은『십지경』의 동명동호의 다불다보살이라는 법회구조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등의 점에서 유추된다. 또 성문·소승의 불전으로부터 ‘비불략(毘佛略, vaipulya)’을 ‘보살장’ ‘대승’ ‘마하연’으로 구분하는 경론들의 한역(漢譯) 시기가 대략 5세기 초반이고,『화엄경』 역시 그러한 흐름에 속해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편집시기의 하한은 대략 4세기 중엽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 시기의『화엄경』이 편집된 불교사회는 불탑신앙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지역이었던 곳으로 생각된다. 또한 대승경전에 대하여 ‘비불설(非佛說)’이라는 비난이 행해지던 곳이었던 동시에, 대승경전에 대하여 ‘비불설(非佛說)’이라는 비난이 일어날 만큼 대승경전의 출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던 곳이라고 생각된다. 곧『화엄경』이 편집되던 곳의 불교사회는 적어도 대승불교의 우위를 말할 수 없는, 오히려 대승불전을 공공연히 비난할 수 있는 아비달마불교의 확실한 우위가 확보되어 있던 곳이었다고 생각된다. 곧 아비달마불교의 흥성하고, 더불어 불탑신앙이 크게 유행했던 지역이 화엄경이 편집된 불교사회였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검토를 통해서 화엄경의 편집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대략적인 밑그림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결론은 화엄경의 유력한 편집지 중의 하나로 추정되어 왔던 호탄(Khotan)과는 일치하는 부분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존재한다. 따라서 화엄경의 편집지와 유통 문제에 대한 별도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상세히 다루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