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어록/나옹선사 어록

나옹(懶翁)선사 어록

실론섬 2015. 7. 4. 15:14


탑명(塔銘) 


전조열대부 정동행중서성좌우사랑 중문충보절동덕 찬화공신 중 대광한산군 예문관대

제학지춘추관사 겸 성균대사성 지서연사 신이색 봉교찬 

〔前朝列大夫征東行中書省左

右司中文*忠報節同德贊化空臣重*大匡韓山君藝文�v大提學知春秋�v事*成均大司成知

書事*臣李穡 奉敎撰〕 

 수충찬화공신 광정대부 정당문학예문관대제학 상호군제점서운관사 신권중화 봉교서

병단전액 

〔輸忠贊化空臣翠紛大夫政堂文學藝文�v大提學上護軍提點書雲觀事臣權仲和奉

敎書幷丹*額〕 


현릉(玄陵) 20년(1370) 경술 9월 10일에 왕은 스님을 서울로 불러들이시고, 16일에는 스님이 머무시는 광명사 (廣明寺) 로 나아가셨다. 양종오교 (兩宗五敎) 의 제방 납자들을 많이 모아 그들의 공부를 시험하고, 그것을 공부선 (功夫選) 이라 하여 임금이 친히 나가 보셨다.


스님은 향을 사른 뒤에 법좌에 올라 말씀하셨다.

"고금의 격식 〔臼〕 을 모두 부수고 범성 (凡聖) 의 자취를 다 쓸어버리며, 납자의 목숨을 끊어버리고 중생의 의심을 떨어버린다. 잡았다 놨다 함이 손안에 있고 신통 변화는 작용 〔機〕 에 있으니, 3세 부처님이나 역대 조사님네나 그 규범은 같도다. 이 법회에 있는 여러 스님네는 사실 그대로 대답하시오."


그리하여 차례로 들어와 대답하게 하였는데, 모두 몸을 구부리고 땀을 흘리면서 모른다고 하였다. 어떤 이는 이치는 알았으나 일에 걸리기도 하고, 혹은 너무 경솔하여 실언하기도 하며, 한마디 하고는 물러가기도 하였으므로 임금은 매우 불쾌한 빛을 보이는 것 같았다.


끝으로 환암 혼수 (幻庵混修) 스님이 오자 스님은 3구 (三句) 와 3관 (三關) 을 차례로 묻고, 법회를 마치고는 회암사 (檜岩寺) 로 돌아가셨다.


신해년 (1371)  8월 26일에 임금은 공부상서 장자온 (工部尙書 張子溫) 을 보내 편지와 도장과 법복과 바루를 내리시고는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로 봉 (封) 하시고, 동방 제일 도량인 송광사 (松廣寺) 에 계시라고 명하셨다.


임자년 (1372)  가을에 스님은 우연히 지공스님이 예언하신 삼산양수 (三山兩水) 를 생각하고 회암사로 옮기려 하였는데, 마침 임금의 부름을 받고 회암사 법회에 나아갔다가 임금께 청하여 거기 있게 되었다. 스님은 "돌아가신 스승 지공스님이 일찍이 이 절을 중수하셨는데, 전란에 탔으니 어찌 그 뜻을 이어받지 않으랴" 하고는 대중과 의논하여 전각과 집들을 더 넓혔다. 공사를 마치고 병진년 (1376)  4월에 낙성식을 크게 열었다.


대평 (臺評) 의 생각에 회암사는 서울과 가깝기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으므로 혹 생업에 폐가 될까 염려되어 왕래를 금하였다.


그리하여 영원사 (瑩源寺:경남 밀양에 있음) 로 옮기라는 임금의 명령이 있었고, 빨리 출발하라는 재촉이 있었다. 스님은 마침 병중에 있었으므로 가마를 타고 절 입구의 남쪽에 있는 못가로 나갔다가 스스로 가마꾼을 시켜 열반문으로 나왔다. 대중이 모두 의아하게 여겨 소리내어 우니 스님은 대중을 돌아보고 말씀하셨다.

"부디 힘쓰고 힘쓰시오. 나 때문에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지 마시오. 내 걸음은 여흥(瘻興)에 가서 멈출 것이오."


한강에 이르러 호송관 탁첨 (¿) 에게 말씀하셨다.

"내 병이 심하오. 배를 빌려 타고 갑시다."

그리하여 물길을 따라간 지 7일 만에 여흥에 이르렀다. 거기서 또 탁첨에게 말씀하셨다.

"조금 쉬었다가 병세가 좀 나아지면 가고 싶소."

탁첨은 기꺼이 그 말을 따라 신륵사(神勒寺) 에 머물렀다. 5월 15일에 탁첨은 또 빨리 가자고 독촉하였다.

스승은 입을 열었다.

"그것은 어렵지 않소. 나는 아주 갈 것이오."

그리고는 그날 진시 (辰時) 에 고요히 돌아가셨다.


그 고을 사람들은 오색 구름이 산꼭대기를 덮는 것을 보았고, 화장하고 뼈를 씻을 때에는 구름도 없이 사방 수백 보에 비가 내렸다. 사리 150개가 나오니 거기에 기도하고 558개로 나누었다. 사부대중이 재 속에서 그것을 찾아 감추어 둔 것만도 부지기수였다. 신령한 광채가 나다가 3일 만에야 그쳤다.


석달여(繹達如)는 꿈에 화장하는 자리 밑에 용이 서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은 말과 같았다. 초상 배가 회암사로 돌아올 때에는 비도 오지 않았는데, 물이 넘쳐흘렀다. 사람들은 그것이 여룡 (瘻龍) 의 도움이라 하였다.


8월 15일에 회암사 북쪽 언덕에 부도를 세우고 정골사리(頂骨舍利)는 신륵사에 두었다. 화장을 하고 석종(石鍾)으로 덮은 것은 감히 잘못되는 일이 있을까 하여 경계한 것이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선각(禪覺)이라 시호를 내리고, 신 색(穡)에게는 글을 지으라 명하고, 신 중화 (仲和) 에게는 단전액 (丹額) 을 쓰게 하였다.


신이 삼가 생각을 더듬어보니, 스님의 휘 (諱) 는 혜근(惠勤)이요, 호는 나옹(懶翁)이며, 본래 이름은 원혜(元惠)이다. 향년 (享年)  57세, 법랍 (法瀘) 은 38세이며, 영해부(寧海府)사람으로 속성은 아(牙) )씨다. 아버지의 휘는 서구(瑞具)로서 선관령(膳官令)을 지냈고, 어머니 정(鄭)씨는 영산군 (靈山郡) 사람이다.


정씨는 꿈에 황금빛 새매가 날아와 머리를 쪼으며 갑자기 오색빛이 찬란한 알을 떨어뜨려 품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기를 가져 연우(延祐) 경신년(1320) 1월 15일에 스님을 낳았다. 스님은 스무 살에 이웃 동무가 죽는 것을 보고 여러 어른들에게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는데 모두들 모른다 하였다. 매우 슬픈 심정으로 공덕산(功德山)에 들어가 요연(了然) 스님께 귀의하여 머리를 깎았다. 


요연스님은 물었다.

"그대는 무엇하러 출가했는가?"

"삼계를 벗어나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지금 여기 온 그대는 어떤 물건인가?"

"말할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이것이 이렇게 왔으나 다만 수행하는 법을 모릅니다."

"나도 그대와 같아서 아직 모른다. 다른 스승을 찾아가서 물어 보라."


지정(至正) 갑신년 (1344)에 회암사로 가서 밤낮으로 혼자 앉았다가 갑자기 깨치고는, 중국으로 가서 스승을 찾으리라 결심하였다.


무자년(1348) 3월에 연도(燕都)에 들어가 지공스님을 뵙고 문답하여 계합한 바 있었다. 10년 (1350) 경인 1월에 지공스님은 대중을 모으고 법어를 내렸으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스님이 대중 속에서 나와 몇 마디하고 세 번 절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지공스님은 서천(西天) 의 108대 조사다.

그 해 봄에 남쪽 강제 (江)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가을 8월에는 평산 (平山) 스님을 찾아뵈었다. 


평산스님은 물었다.

"일찍이 어떤 사람을 보았는가?"

"서천의 지공스님을 보았는데, 그 분은 날마다 천검(千劍)을 썼습니다."

"지공의 천검은 그만두고 그대의 일검(一劍) 을 가져 오라."

스님은 좌복으로 평산스님을 밀쳤다. 평산스님은 선상에 쓰러지면서 "이 도둑놈이 나를 죽인다!" 하고 크게 외쳤다.

스님은 "내 검(劍)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하고 붙들어 일으켰다. 평산스님은 설암(雪艤) 스님이 전한 급암(及艤) 스님의 가사와 불자를 전해 신표를 삼았다.


신묘년(1351) 봄에 보타락가산(¿陀洛迦山)으로 가서 관음보살께 예배하고 임진년(1352) 에 복룡산 (伏龍山) 으로 가서 천암(千巖) 스님을 뵈었다. 천암스님은 마침 스님네들을 천여 명 모아놓고 입실 (入室) 할 사람을 뽑고 있었다. 천암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스님이 대답하자 천암스님이 다시 물었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에는 어디서 왔는가?"

"오늘은 4월 2일입니다."

그러자 천암스님은 입실을 허락하였다.


그 해에 북방으로 돌아와 다시 지공스님을 뵈오니 지공스님은 법의와 불자와 범서 (梵書) 를 주었다. 그리하여 스님은 연대(燕代) 의 산천을 돌아다니는 말쑥하고 한가한 도인이 되었다.


스님의 명성이 궁중에 들어가 을미년(1355) 가을에 황제의 명을 받들어 대도(大都) 의광제사 (廣濟寺) 에 머물렀고, 병신년 (1356)  10월 15일에는 개당법회를 열었다. 황제는 원사 야선첩목아 (院使 也先帖木兒) 를 보내 금란가사와 비단을 내리시고, 황태자는 금란가사와 상아불자(象牙拂子) 를 가지고 참석하였다. 스님은 가사를 받아 들고 대중에게 물었다.

"맑고 텅 비고 고요하여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찬란한 이것은 어디서 나왔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은 천천히 말씀하셨다.

"구중 궁궐의 금구(金口) 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가사를 입고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하고 나서 법좌에 올라 주장자를 가로 잡고 두어 마디 한 뒤에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무술년(1358) 봄에 지공스님에게 수기(授記)를 얻고 귀국해서는 다니거나 머무르거나 인연 따라 설법하다가, 경자년 (1360) 에는 오대산에 들어가 살으셨다.


신축년(1361) 겨울에 임금님은 내첨사 방절(內事 方節)을 보내 서울에 맞아들여 마음의 요체에 대한 법문을 청하고 만수가사(滿繡袈裟) 와 수정불자(水精拂子) 를 내리셨다. 공주(公主)는 마노불자를 올리고, 태후는 친히 보시를 베풀고 신광사(神光寺)에 계시기를 청 하였으나 사양하자 임금이 "나도 불법에서 물러가겠다" 하시므로 부득이 부임하셨다.


11월에 홍건적(紅巾己)이 서울 근방〔京幾〕을 짓밟았으므로 도성 사람들이 모두 남쪽으로 옮겼다. 스님네들이 두려워하여 스님에게 피란하기를 청하자 스님은, "명(命) 이 있으면 살겠거늘 도적인들 어찌하겠는가" 하셨다. 그러나 며칠을 두고 더욱 졸라대었다. 그날 밤 꿈에, 얼굴에 검은 글이 쓰여진 신인(神人) 하나가 의관을 갖추고 절하며, "대중이 흩어지면 도적은 반드시 이 절을 없앨 것이니, 스님은 뜻을 굳게 가지십시오" 하였다. 이튿날 토지신(土地神)을 모신 곳에 가서 그 용모를 보았더니 꿈에 본 그 얼굴이었다. 도적은 과연 오지 않았다.


계묘년 (1363) 에 구월산(九月山) 에 들어갔더니 임금은 내시 김중손(金仲孫)을 보내 돌아오기를 청하였다.


을사년(1365) 3월에 대궐에 들어가 물러가기를 청하여 비로소 숙원(宿願)을 이룬 뒤에는, 용문(龍門) ·원적 (元寂) 등 여러 산에서 노닐다가 병오년(1366) 에는 금강산에 들어갔고, 정미년(1367) 가을에는 청평사(淸平寺)에 머물렀다.


그 해 겨울에는 예보암(猊¿岩)이 지공스님의 가사와 친필을 스님에게 주면서 치명(治命:죽을 무렵에 맑은 정신으로 하는 유언) 이라 하였다.


기유년(1369) 에 다시 오대산에 들어갔다. 경술년(1370) 봄에는 사도 달예(司徒 達睿)가 지공스님의 영골(靈骨)을 받들고 와서 회암사에 두니 스님은 그 영골에 예배하였다. 그리고 곧 임금의 부름을 받고 나아가 광명사(廣明寺) 에서 여름을 지내고 가을에 회암사로 돌아왔으니, 그것은 9월에 공부선(工夫選) 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이 거처하는 방을 강월헌(江月軒) 이라 하였다. 평생에 세속의 문자를 익히지는 않았으나, 제영 (題詠) 을 청하는 이가 있으면 붓을 들어 그 자리에서 써주었는데 혹 경전의 뜻이 아니더라도 이치가 심원하였다.


만년에는 장난삼아 산수화 그리기를 좋아하여 권도(權道)의 시달림을 받았으니, 아아, 도를 통하면 으레 재능도 많아지는가 보다.

신 색 (穡) 은 삼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비명을 짓는다.


진실로 선을 깨친 〔禪覺〕 이시며

기린의 뿔이로다

임금의 스승이요

인천의 눈이로다


뭇 승려들 우러러보기를

물이 골짜기로 달리는 듯하나

선 바가 우뚝하여

아는 이가 드물다


신령한 새매 꿈이

처음 태어날 때 있었고

용신 (龍神) 이 초상을 호위함하여

마지막 죽음을 빛냈도다


하물며 사리라는 것이

스님의 신령함을 나타냈나니

강은 넓게 트였는데

달은 밝고 밟았도다


공 (空) 인가 색 (色) 인가

위아래가 훤히 트였나니

아득하여라, 높은 모습이여

깊이 멸하지 않으리라.

展也禪覺 惟麟之角

王者之師 人天眼目

萬衲宗之 如水赴壑

而鮮克知 所立之卓

 夢赫靈 在厥初生

龍神護喪 終然允藏

 曰舍利 表其靈異

江之闊矣 皎皎明月

空耶色耶 上下洞徹

哉高風終 終古不滅


7년 6월 어느 날 비를 세우다


비는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 회암사(京畿道 楊州郡 檜泉面 檜岩里 檜岩寺)에 있다. 고려의 폐왕(廢王) 인 우왕 (王)  정사년 (1377) 에 세우다. 비의 높이는 5척, 너비는 3척 2촌, 글자의 지름은 7푼, 예서제액자 (隷書題額字) 의 지름은 3촌 3푼. 전서 (書) 로 음기(陰記) 한 것이 닳아 없어져 읽을 수 없다.


행장 (行狀) 


문인 각굉 (門人覺宏) 지음


스님의 휘는 혜근(慧勤) 이요 호는 나옹(懶翁) 이며, 본 이름은 원혜(元慧) 이다. 거처하는 방은 강월헌(江月軒) 이라 하며, 속성은 아(牙) 씨인데 영해부(寧海府) 사람이다. 아버지의 휘는 서구(瑞具)인데 선관서령 (膳官署令) 이란 벼슬을 지냈고, 어머니는 정(鄭) 씨다.


정씨가 꿈에 금빛 새매가 날아와 그 머리를 쪼다가 떨어뜨린 알이 품안에 드는 것을 보고 아기를 가져 연우(延祐) 경신년 (1320) 1월 15일에 스님을 낳았다. 스님은 날 때부터 골상이 보통 아이와 달랐고, 자라서는 근기가 매우 뛰어나 출가하기를 청하였으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다.


20세에 이웃 친구가 죽는 것을 보고 여러 어른들에게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으나 모두들 모른다 하였다. 매우 슬픈 심정으로 공덕산 묘적암(妙寂艤) 의 요연(了然) 스님에게 가서 머리를 깎았다. 


요연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무엇하러 머리를 깎았는가?"

"삼계를 벗어나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지금 여기 온 그대는 어떤 물건인가?"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여기 왔을 뿐이거니와 볼 수 없는 몸을 보고 찾을 수 없는 물건을 찾고 싶습니다. 어떻게 닦아 나가야 하겠습니까?"

"나도 너와 같아서 아직 모른다. 다른 스승을 찾아가서 물어 보라."


그리하여 스님은 요연스님을 하직하고 여러 절로 돌아다니다가 지정(至正) 4년 (1344) 갑신년에 회암사로 가서 한 방에 고요히 있으면서 밤낮으로 언제나 앉아 있었다. 그때 일본의 석옹 (石翁) 화상이 그 절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승당(僧堂) 에 내려와 선상 (禪滅) 을 치며 말하였다.

"대중은 이 소리를 듣는가."

대중은 말이 없었다. 스님은 게송을 지어 보였다.


선불장(選佛場) 에 앉아서

정신 차리고 자세히 보라

보고 듣는 것 다른 물건 아니요

원래 그것은 옛 주인이다.

選佛場中坐 惺惺着眼看

見聞非他物 元是舊主人


그 뒤 4년 동안을 부지런히 닦다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깨친 뒤에 중국으로 가서 스승을 찾아 도를 구하려 하였다. 정해년 (1347)  11월에 북을 향해 떠나 무자년 (1348)  3월 13일에 대도(大都) 법원사(法源寺)에 이르러, 처음으로 서천의 지공스님을 뵈었다. 


지공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고려에서 왔습니다."

"배로 왔는가, 육지로 왔는가, 신통(神通) 으로 왔는가?"

"신통으로 왔습니다."

"신통을 나타내 보여라."

스님은 그 앞으로 가까이 가서 합장하고 섰다. 


지공스님은 또 물었다.

"그대가 고려에서 왔다면 동해 저쪽을 다 보고 왔는가?"

"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여기 왔겠습니까?"

"집 열 두 채를 가지고 왔는가?"

"가지고 왔습니다."

"누가 그대를 여기 오라 하던가?"

"제 스스로 왔습니다."

"무엇하러 왔는가?"

"뒷 사람들을 위해 왔습니다."


지공스님은 허락하고 대중과 함께 있게 하였다.


어느 날 나옹스님은 다음 게송을 지어 올렸다.


산과 물과 대지는 눈앞의 꽃이요

삼라만상도 또한 그러하도다

자성(自性) 이 원래 청정한 줄 비로소 알았나니

티끌마다 세계마다 다 법왕의 몸이라네.

山河大地眼前花 萬像森羅赤復然

自性方知元淸淨 塵塵刹刹法王身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서천의 20명과 동토의 72명은 다 같은 사람인데 지공은 그 가운데 없다. 앞에는 사람이 없고 뒤에는 장군이 없다. 지공이 세상에 나왔는데 법왕이 또 어디 있는가."

나옹스님이 대답하였다.


법왕의 몸, 법왕의 몸이여

삼천(三天)의 주인이 되어 중생을 이롭게 한다

천검(千劍)을 뽑아들고 불조를 베는데

백양(白陽)이 모든 하늘을 두루 비춘다.

法王身法王身 三天爲主利群民

千劍單提斬佛祖 百陽普遍照諸天


나는 지금 이 소식을 알았지만

그래도 우리집의 정력만 허비했네

신기하구나, 정말 신기하구나

부상(扶桑)의 해와 달이 서천 (西天) 을 비춘다.

吾今識得這消息 猶是幢家弄精魂

也大奇也大奇 扶桑日月照西天


지공스님이 응수했다.

"아버지도 개요 어머니도 개며 너도 바로 개다."

스님은 곧 절하고 물러갔다.


그 달에 매화 한 송이가 피었다. 지공스님은 그것을 보고 게송을 지었다.


잎은 푸르고 꽃은 피었네 한 나무에 한 송이

사방 팔방에 짝할 것 하나도 없네

앞일은 물을 것 없고 뒷일은 영원하리니

향기가 이르는 곳에 우리 임금 기뻐하네.

葉靑花發一樹一 十方八面無對一

前事不問後事長 香氣到地吾帝喜


나옹스님은 여기에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해마다 이 꽃나무가 눈 속에 필 때

벌 나비는 분주해도 새 봄인 줄 몰랐더니

오늘 아침에 꽃 한 송이 가지에 가득 피어

온 천지에 다 같은 봄이로다.

年年此樹雪裏開 蜂蝶忙忙不知新

今朝一箇花滿卿 普天普地一般春


하루는 지공스님이 법어를 내렸다.


선 (禪) 은 집 안이 없고 법은 밖이 없나니

뜰 앞의 잣나무를 아는 사람은 좋아한다

청량대 (淸凉臺)  위의 청량한 날에

동자가 세는 모래를 동자가 안다.

禪無堂內法無外 庭前栢樹認人肯

淸凉臺上淸凉日 童子數沙童子知


나옹스님은 답하였다.


들어가도 집 안이 없고 나와도 밖이 없어

세계마다 티끌마다 선불장(選佛場) 이네

뜰 앞의 잣나무가 새삼 분명하나니

오늘은 초여름 사월 초닷새라네.

入無堂內出無外 刹刹塵塵選佛場

庭前栢樹更分明 今日夏初四月五


하루는 지공스님이 나옹스님을 불러 물었다.

"이 승당 안에 달마가 있는가 없는가?"

"없습니다."

"저 밖에 있는 재당(齋堂) 을 그대는 보는가?"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승당으로 돌아가버렸다.


지공스님은 시자를 보내 물었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두루 찾아뵙고 마지막으로 미륵을 뵈었을 때, 미륵이 손가락을 한 번 퉁기매 문이 열리자 선재는 곧 들어갔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안팎이 없다 하는가?"

스님은 시자를 통해 대답하였다.

"그때 선재는 그 속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시자가 그대로 전하니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이 중은 고려의 노비다."


하루는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보경사(普慶寺)를 보는가?"

"벌써부터 보았습니다."

"문수와 보현이 거기 있던가?"

"잘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던가?"

"그런 말을 합디다.

"차를 마시고 가거라."

그 뒤 어느 날 스님은 게송을 지어 지공스님에게 올렸다.


미혹하면 산이나 강이 경계가 되고

깨치면 티끌마다 그대로가 온몸이네

미혹과 깨침을 모두 다 쳐부수었나니

닭은 아침마다 오경(五更)에 홰치네.

迷則山河爲所境 悟來塵塵是全身

迷悟兩頭俱打了 朝朝鷄向五更啼


지공스님은 대답하였다.

"나도 아침마다 징소리를 듣노라."

지공스님은 스님의 근기를 알아보고 10년 동안 판수(板首)로 있게 하였다.


경인년(1350) 1월 1일, 지공스님은 황후가 내리신 붉은 가사를 입고 방장실 안에서 대중을 모으고 말하였다.

"분명하다 법왕이여, 높고 높아 이 나라를 복되게 한다. 하늘에는 해가 있고 밑에는 조사가 있으니 노소를 불문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면 다 마주해 보라."

대중이 대답이 없자 나옹스님은 대중 속에서 나아가 말하였다.

"분명하다는 것도 오히려 저쪽 일인데, 높고 높아 나라를 복되게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빈 소리다. 하늘의 해와 땅의 조사를 모두 다 쳐부수고 난 그 경계는 무엇인가."

지공스님은 옷자락을 들어 보이면서 말하였다.

"안팎이 다 붉다."

나옹스님은 세 번 절하고 물러갔다.


그 해 3월에 대도를 떠나 통주(通州)에서 배를 타고, 4월 8일에 평강부(平江府)에 이르러 휴휴암(休休艤)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다. 7월 19일에 떠나려 할 때, 그 암자의 장로가 만류하자 스님은 그에게 게송을 지어 주었다.


쇠지팡이를 날려가며 휴휴암에 이르러

쉴 곳을 얻었거니 그대로 쉬어버렸네

이제 이 휴휴암을 버리고 떠나거니와

사해(四海)와 오호(五湖)에서 마음대로 놀리라.

鐵錫橫賑到休休 得休休處便休休

如今捨却休休去 四海五湖任意游


   

8월에 정자선사(淨慈禪寺)에 이르렀는데, 그 곳의 몽당(蒙堂) 노스님이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 나라에도 선법(禪法)이 있는가?"

스님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부상국(扶桑國)에 해가 오르매

강남의 바다와 산이 붉었다

같고 다름을 묻지 말지니

신령한 빛은 고금에 통하네.

日出扶桑國 江南海嶽紅

莫問同與別 靈光亘古通


그 노스님은 말이 없었다. 


나옹스님이 곧 평산처림(平山處林) 스님을 뵈러 갔다. 그때 평산스님은 마침 승당에 있었다. 스님이 곧장 승당에 들어가 이리저리 걷고 있으니 평산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어디서 오시오?"

"대도에서 옵니다."

"어떤 사람을 보고 왔는가?"

"서천의 지공스님을 보고 왔습니다."

"지공은 날마다 무슨 일을 하던가?"

"지공스님은 날마다 천검(千劍)을 씁니다."

"지공의 천검은 그만두고 그대의 일검(一劍) 을 가져 오라."

스님이 대뜸 좌복으로 평산스님을 후려치니 평산스님은 선상에 거꾸러지면서 크게 외쳤다.

"이 도적놈이 나를 죽인다!"

스님은 곧 붙들어 일으켜 주면서 말하였다.

"내 칼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살리기도 합니다."

평산스님은 `하하' 크게 웃고는 곧 스님의 손을 잡고 방장실로 돌아가 차를 권했다. 그리하여 몇 달을 묵게 되었다.


어느 날 평산스님이 손수 글을 적어 주었다.

"삼한(三韓)의 혜근 수좌가 이 노승을 찾아왔는데, 그가 하는 말이나 토하는 기운을 보면 불조(佛祖) 와 걸맞다. 종안(宗眼 은 분명하고 견처(見處)는 아주 높으며 말 속에는 메아리가 있고 글귀마다 칼날을 감추었다. 여기 설암스님이 전한 급암 스승님〔先師〕의 법의 한 벌과 불자 하나를 주어 믿음을 표한다."


뒤이어서 게송을 지어 주었다.


법의와 불자를 지금 맡기노니

돌 가운데서 집어낸 티없는 옥일러라

계율의 근(根)이 깨끗해 보리(菩提) 얻었고

선정과 지혜의 광명을 모두 갖추었네.

拂子法衣今付囑 石中取出無瑕玉

戒根永淨得菩提 禪定慧光皆具足


11년 (1351)  신묘 2월 2일, 평산스님을 하직할 때 평산스님은 다시 글을 적어 전송하였다. "삼한의 혜근 수좌가 멀리 호상(湖上)에 와서 서로 의지하고 있다가, 다시 두루 참학하려고 용맹정진할 법어를 청한다. 토각장(兎角杖)을 들고 천암(千巖)의 대원경(大圓鏡) 속에서 모든 조사의 방편을 한 번 치면, 분부할 것이 없는 곳에서 반드시 분부할 것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게송을 지어 주었다.


회암(檜岩)의 판수(板首) 가 운문(雲門)을 꾸짖고

백만의 인천(人天 을 한 입에 삼켰네

다시 밝은 스승을 찾아 참구한 뒤에

집에 돌아가 하는 설법은 성낸 우뢰가 달리듯 하리.

檜巖板首罵雲門 百萬人天一口呑

更向明師參透了 廻家說法怒雷奔


스님은 절하고 하직한 뒤에 명주(明州)의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으로 가서 관음을 친히 뵈옵고, 육왕사(育王寺)로 돌아와서는 석가상(繹迦像)에 예배하였다. 그 절의 장로 오광(悟光) 스님은 다음 게송을 지어 스님을 칭찬하였다.


분명히 눈썹 사이에 칼을 들고

때를 따라 죽이고 살리고 모두 자유로워

마치 소양(昭陽)에서 신령스런 나무 보고

즐겨 큰 법을 상류 (常流) 에 붙이는 것 같구나.

當陽掛起眉間劍 殺活臨機總自由

恰昭昭陽見靈樹 肯將大法付常流


나옹스님은 또 설창(雪窓) 스님을 찾아보고 명주에 가서 무상(無相) 스님을 찾아보았다.*

또 고목영(奇木榮) 스님을 찾아가서는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았는데 고목스님이 물었다.

"수좌는 좌선할 때 어떻게 마음을 쓰는가?"

"쓸 마음이 없소."

"쓸 마음이 없다면 평소에 무엇이 그대를 데리고 왔다갔다하는가?"


스님이 눈을 치켜뜨고 바라보니 고목스님이 말하였다.

"그것은 부모가 낳아준 그 눈이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에는 무엇으로 보는가?"

스님은 악! 하고 할(喝)을 한 번 하고는 "어떤 것을 낳아준 뒤다 낳아주기 전이다 하는가?" 하니 고목스님은 곧 스님의 손을 잡고, "고려가 바다 건너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하였다. 스님은 소매를 떨치고 나와버렸다.


임진년(1352) 4월 2일에 무주 (州)  복룡산(伏龍山)에 이르러 천암 원장(千巖元長) 스님을 찾았다. 마침 그 날은 천여 명의 스님네를 모아 입실할 사람을 시험해 뽑는 날이었다. 

나옹스님은 다음의 게송을 지어 올렸다.


울리고 울려 우뢰소리 떨치니

뭇 귀머거리 모두 귀가 열리네

어찌 영산(靈山)의 법회뿐이었겠는가

구담 (曇) 은 가지도 오지도 않네.

擊擊雷首振 群聾盡豁開

豈限靈山會 瞿曇無去來


그리고 절차에 따라 입실하였다.


천암스님은 물었다.

"스님은 어디서 오는가?"

"정자선사에서 옵니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에는 어디서 왔는가?"

"오늘은 4월 2일입니다."


천암스님은 "눈 밝은 사람은 속이기 어렵구나" 하고 곧 입실을 허락하였다. 스님은 거기 머물게 되어 여름을 지내고 안거가 끝나자 하직을 고했다. 천암스님은 손수 글을 적어 주며 전송하였다.


"석가 늙은이가 일대장교를 말했지만 그것은 모두 쓸데없는 말이다. 마지막에 가섭이 미소했을 때 백만 인천이 모두 어쩔 줄을 몰랐고, 달마가 벽을 향해 앉았을 때 이조는 눈 속에 서 있었다. 육조는 방아를 찧었고, 남악(南嶽)은 기왓장을 갈았으며, 마조 (馬祖) 의 할(喝)  한 번에 백장(百丈)은 귀가 먹었고, 그 말을 듣고 황벽(黃岫)은 혀를 내둘렀었다. 그러나 일찍이 장로 수좌를 만들지는 못하였다. 진실로 이것은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형상으로 그릴 수도 없으며, 칭찬할 수도 없고 비방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저 허공처럼 텅 비어 부처나 조사도 볼 수 없고 범부나 성인도 볼 수 없으며, 남과 죽음도 볼 수 없고 너나 나도 볼 수 없다. 그 지경 〔¿際:테두리, 범위〕 에 이르게 되어도 그 지경이라는 테두리도 없고, 또 허공의 모양도 없으며 갖가지 이름도 없다. 그러므로 형상도 이름도 떠났기에 사람이 받을 수 없나니, 취모검 (吹毛劍) 을 다 썼으면 빨리 갈아두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취모검은 쓰고 싶으면 곧 쓸 수 있는데 다시 갈아두어서 무엇하겠는가. 만일 그대가 그것을 쓸 수 있으면 노승의 목숨이 그대 손에 있을 것이요, 그대가 그것을 쓸 수 없으면 그대 목숨이 내 손안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할을 한 번 하였다.


나옹스님은 천암스님을 하직하고 떠나 송강(松江)에 이르러 요당(了堂) 스님과 박암(泊艤) 스님을 찾아보았으나 그들은 감히 스님을 붙잡아 두지 못하였다. 그 해 5월에 대도 법원사로 돌아와 다시 지공스님을 뵈었다. 지공스님은 스님을 방장실로 맞아들여 차를 권하고, 드디어 법의 한 벌과 불자 하나와 범어로 쓴 편지 한 통을 주었다.


백양(百陽)에서 차 마시고 정안(正安)에서 과자 먹으니 

해마다 어둡지 않은 한결같은 약이네

동서를 바라보면 남북도 그렇거니

종지 밝힌 법왕에게 천검 (千劍) 을 준다.

百陽喫茶正安果 年年不昧一通藥

東西看見南北然 明宗法王給千劍


스님은 답하였다.


스승님 차를 받들어 마시고

일어나 세 번 절하니

다만 이 참다운 소식은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다.

奉喫師茶了 起來卽禮三

只這眞消息 從古至于今


그리고는 거기서 한 달을 머물다가 하직하고, 여러 해 동안 연대(燕代)의 산천을 두루 돌아다녔다.


그 도행(道行)이 황제에게 들려, 을미년(1355) 가을에 성지(聖旨)를 받고 대도의 광제선사 (廣濟禪寺)에 머물다가, 병신년(1356) 10월 15일에 개당법회를 열었다. 황제는 먼저 원사 야선첩목아 院使 也先帖木兒) 를 보내 금란가사와 폐백을 내리시고 황태자도 금란가사와 상아불자를 내렸다. 이 날에는 많은 장상(將相)과 그들의 관리, 선비들, 여러 산의 장로들과 강호의 승려들이 모두 모였다. 스님은 가사를 받아들고 중사(中使)에게 물었다.

"산하대지와 초목총림이 하나의 법왕신인데 이 가사를 어디다 입혀야 하겠는가?"

중사는 모르겠다 하였다. 스님은 자기 왼쪽 어깨를 기리키며 "여기다 입혀야 하오" 하고는 


다시 대중에 물었다.

"맑게 비고 고요하여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찬란한 이것은 어디서 나왔는가?"

대중은 대답이 없었다. 스님은 "구중 궁궐의 금구 (金口) 에서 나왔다" 하고는 가사를 입고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다시 향을 사르고 말하였다.

"이 하나의 향은 서천의 108대 조사 지공대화상과 평산화상에게 받들어 올려 법유(法乳)의 은혜를 갚습니다."


17년(1357) 정유년에 광제사를 떠나 연계 (燕) 의 명산에 두루 다니다가 다시 법원사로 돌아와 지공스님에게 물었다.

"이제 제자는 어디로 가야 하리까?"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본국으로 돌아가 `삼산양수(三山兩水)' 사이를 택해 살면 불법이 저절로 흥할 것이다."


무술년(1358) 3월 23일에 지공스님을 하직하고 요양(遼陽)으로 돌아와 평양과 동해 등 여러 곳에서 인연을 따라 설법하고, 경자년(1360) 가을에 오대산에 들어가 상두암(象頭艤)에 있었다. 그때 강남지방의 고담(古潭) 스님이 용문산을 오가면서 서신을 통했는데, 스님은 게송으로 그에게 답하였다.


임제의 한 종지가 땅에 떨어지려 할 때에

공중에서 고담 노인네가 불쑥 튀어나왔나니

삼척의 취모검을 높이 쳐들고

정령 (精靈) 들 모두 베어 자취 없앴네.

臨濟一宗當落地 空中突出古潭翁

把將三尺吹毛劍 斬盡精靈永沒 


고담스님은 백지 한 장으로 답하였는데, 겉봉에는 `군자천리동풍 (君子千里同風) '이라고 여섯 자를 썼다. 스님은 받아 보고 웃으면서 던져버렸다. 시자가 주워 뜯어 보았더니 그것은 빈 종이었다. 스님은 붓과 먹 두 가지로 답하였다.


신축년(1361) 겨울에 임금은 내첨사 방절(方節)을 보내 내승마(內乘馬)로 스님을 성안으로 맞아들여, 10월 15일에 궁중으로 들어갔다. 예를 마치고 마음의 요체에 대해 법문을 청하니, 스님은 두루 설법한 뒤에 게송 두 구를 지어 올렸다. 임금은 감탄하면서, "이름을 듣는 것이 직접 보는 것만은 못하다" 하시고 만수가사와 수정불자를 내리셨다. 공주도 마노불자를 보시하고, 태후는 친히 보시를 내리셨다. 그리고 신광사(神光寺)에 머물기를 청하니 스님은 "산승은 다만 산에 돌아가 온 마음으로 임금을 위해 축원하고자 하오니 성군의 자비를 바라나이다" 하면서 사양하였다. 


임금은 "그렇다면 나도 불법에서 물러가리라" 하시고 곧 가까운 신하 김중원(金仲元)을 보내 가는 길을 돕게 하였다. 스님은 할 수 없어 그 달 20일에 신광사로 갔다.


11월에 홍건적이 갑자기 쳐들어와 도성이 모두 피란하였으나, 오직 스님만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보통때와 같이 설법하고 있었다. 하루는 수십 기 (騎)의 도적들이 절에 들어왔는데, 스님은 엄연히 그들을 상대하였다. 도적의 우두머리는 침향(沈香) 한 조각을 올리고 물러갔다. 그 뒤로도 대중은 두려워하여 스님에게 피란하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스님은 말리면서, "명(命)이 있으면 살 것인데 도적이 너희들 일에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하였다.


그 뒤에 어느 날 대중이 다시 피란을 청하였으므로 스님은 부득이 허락하고 그 이튿날로 기약하였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어떤 신인(神人)이 의관을 갖추고 절하며, "대중이 흩어지면 도적은 반드시 이 절을 없앨 것입니다. 스님은 부디 뜻을 굳게 가지십시오" 하고 곧 물러갔다. 그 이튿날 스님은 토지신을 모신 곳에 가서 그 모습을 보았더니 바로 꿈에 본 얼굴이었다. 스님은 대중을 시켜 경을 읽어 제사하고는 끝내 떠나지 않았다. 도적은 여러 번 왔다갔으나 재물이나 양식, 또는 사람들을 노략질하지 않았다.


계묘년(1363) 7월에 재삼 글을 올려 주지직을 사퇴하려 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스님은 스스로 빠져나와 구월산(九月山) 금강암으로 갔다. 임금은 내시 김중손(金仲孫)을 보내 특별히 내향 (內香)을 내리시고, 또 서해도(西海道) 지휘사 박희 (朴6) , 안렴사 이보만 (按兼使 李¿萬) , 해주목사 김계생 (海州牧使 金繼生) 등에게 칙명을 내려 스님이 주지직에 돌아오기를 강요하였다. 스님은 부득이 10월에 신광사로 돌아와 2년 동안 머무시다가, 을사년(1365) 3월에 궁중에 들어가 글을 올려 물러났다. 그리고는 용문(龍門) ·원적(圓寂) 등 여러 산에 노닐면서 인연을 따라 마음대로 즐겼다.


병오년(1366) 3월에는 금강산에 들어가 정양암(正陽艤)에 있었다. 정미년(1367) 가을에 임금님은 교주도(交州道) 안렴사 정양생(鄭良生)에게 명하여 스님에게 청평사에 머무시기를 청하였다.


그 해 겨울에 보암(普艤) 장로가 지공스님이 맡기신 가사 한 벌과 편지 한 통을 받아 가지고 절에 와서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은 그것을 입고 향을 사른 뒤에 두루 설법하였다.


기유년(1369) 9월에 병으로 물러나 또 오대산에 들어가 영감암(靈惑艤)에 머물렀다. 


홍무(洪武) 경술년(1370) 1월 1일 아침에 사도 달예(司徒 達睿)가 지공스님의 영골과 사리를 받들고 회암사에 왔다. 3월에 스님은 그 영골에 예배하고 산을 나왔다. 임금은 가까운 신하 김원부(金元)를 보내 스님을 맞이하고 영골에 예배하였다. 스님은 성 안에 들어가 광명사(廣明寺)에서 안거를 지냈다. 8월 3일에 내재 (內齋) 에 나아가 재를 마치고 두루 설법하였다. 17일에 임금은 가까운 신하 안익상(安益祥)을 보내 길을 도우라 하고 스님께 회암사에 머물기를 청하였다. 9월에는 공부선(工夫選)을 마련하고 양종오교(兩宗五敎)의 제방 승려를 크게 모아 그들의 공부를 시험했는데, 그때 스님에게 주맹(主盟)이 되기를 청하였다.


16일에 선석(選席)을 열었다. 임금님은 여러 군(君)과 양부(兩府)의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친히 나와 보셨다. 그리고 선사 강사 등 여러 큰 스님네와 강호의 승려들이 모두 모였다. 그때 설산국사(雪山國師:화엄종의 종사인 千熙스님을 말함)도 그 모임에 왔다. 스님은 국사와 인사하고 처음으로 방장실에 들어가 좌복을 들고 "화상!" 하였다. 국사가 무어라 하려는데 스님은 좌복으로 그 까까머리를 때리고는 이내 나와버렸다.


사나당(舍那堂) 안에 법좌를 만들고 향을 사른 뒤에, 스님은 법좌에 올라 질문을 내렸다. 법회에 있던 대중은 차례로 들어가 대답하였으나 모두 모른다 하였다. 어떤 이는 이치로는 통하나 일에 걸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너무 경솔하여 실언하기도 하며, 한마디 한 뒤 곧 물러가기도 하였다. 임금은 매우 불쾌해 보였다. 끝으로 환암 혼수(幻庵混修) 스님이 오니 스님은 3구 (三句) 와 3관 (三關) 을 차례로 물었다.


그보다 먼저 나옹스님이 금경사(金脛寺)에 있었을 때 임금은 좌가대사 혜심(左街大師 慧深)을 시켜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법문으로 공부한 사람을 시험해 뽑습니까?"

스님이 대답하였다.

"먼저 입문(入門) 등 3구(三句)를 묻고, 다음에 공부10절(工夫十節) 을 물으며, 나중에 3관(三關)을 물으면 공부가 깊은지 얕은지를 시험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이 다 모르기 때문에 10절과 3관은 묻지 않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임금이 천태종(天台宗)의 선사(禪師) 인 신조(神照)를 시켜 공부10절을 물으시니 스님은 손수 써서 올렸다.


18일에 임금은 지신사 염흥방(知申使 廉興)을 스님이 계시던 금경사로 보내셨고, 그 이튿날 또 대언 김진(代言 金鎭)을 보내 스님을 내정(內庭)으로 맞아들여 위로하신 뒤 안장 채운 말〔鞍馬〕을 내리셨다. 그리고는 내시 안익상(安益祥 을 보내 회암사로 보내드리니, 스님은 회암사에 도착하자 말을 돌려보내셨다.


신해년 (1371) 8월 26일에 임금은 공부상서 장자온(工部商書 張子溫)을 보내 편지와 도장을 주시고, 또 금란가사와 안팎 법복과 바루를 내리신 뒤에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로 봉하시고, 태후도 금란가사를 올렸다. 그리하여 동방의 제일 도량인 송광사에 있게 하셨는데, 내시 이사위(李君渭)를 보내 길을 돕게 하여 28일에 회암사를 출발하여 9월 27일에 송광사에 도착하였다.


임자년(1372) 가을에 스님은 우연히 지공스님이 예언한 `삼산양수'를 생각하고 회암사로 옮기기를 청하였다. 임금은 또 이사위를 보내어 회암사로 맞아 오셨다.


9월 26일에는 지공스님의 영골과 사리를 가져다 회암사의 북쪽 봉우리에 탑을 세웠다.


계축년(1373) 정월에는 서운(瑞雲) ·길상(吉祥) 등 산에 노닐면서 여러 절을 다시 일으키고, 8월에 송광사로 돌아왔다.


9월에 임금님은 또 이사위를 보내 회암사에서 소재법회(消災法會)를 주관하라 청하시고, 갑인년 (1374) 봄에 또 가까운 신하 윤동명(尹東明)을 보내 그 절에 계시기를 청하였다. 

이에 스님은 "이 땅은 내가 처음으로 불도에 들어간 곳이요, 또 우리 스승 〔先師〕 의 영골을 모신 땅이오. 더구나 우리 스승께서 일찍이 내게 수기하셨으니 어찌 무심할 수 있겠는가" 하고 곧 대중을 시켜 전각을 다시 세우기로 하였다.


9월 23일에 임금이 돌아가셨다. 스님은 몸소 빈전(殯殿)에 나아가 영혼에게 소참법문을 하시고 서식을 갖추어 왕사의 인(印)을 조정에 돌렸다.

지금 임금께서도 즉위하여 내신 주언방 (周彦)을 보내 내향(內香)을 내리시고 아울러 인보(印¿)를 보내시면서 왕사로 봉하였다.


병진년(1376) 봄에 이르러 공사를 마치고 4월 15일에 크게 낙성식을 베풀었다. 임금은 구관 유지린 (具官 柳之璘)을 보내 행향사(行香使)로 삼았으며, 서울에서 지방에서 사부대중이 구름과 바퀴살처럼 부지기수로 모여들었다.


마침 대평(臺評)은 생각하기를, `회암사는 서울과 아주 가까우므로 사부대중의 왕래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으니 혹 생업에 폐해를 주지나 않을까' 하였다. 그리하여 임금의 명으로 스님을 영원사(瑩源寺)로 옮기라 하고 출발을 재촉하였다. 스님은 마침 병이 있어 가마를 타고 절 문을 나왔는데 남쪽에 있는 못가에 이르렀다가 스스로 가마꾼을 시켜 다시 열반문으로 나왔다. 대중은 모두 의심하여 목놓아 울부짖었다. 스승은 대중을 돌아보고, "부디 힘쓰고 힘쓰시오. 나 때문에 중단하지 마시오. 내 걸음은 여흥 (瘻興) 에서 그칠 것이오" 하였다.


5월 2일에 한강에 이르러 호송관 탁첨(卓詹)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병이 너무 심해 배를 타고 가고 싶소."

곧 문도 10여 명과 함께 물을 거슬러올라간 지 7일 만에 여흥에 이르러 다시 탁첨에게 말하였다.

"내 병이 너무 위독해 이곳을 지날 수 없소. 이 사정을 나라에 알리시오."

탁첨이 달려가 나라에 알렸으므로 스님은 신륵사(神勒寺)에 머물게 되었다. 며칠을 머무셨을 때, 여흥수 황희직(瘻興守 黃希直 과 도안감무 윤인수(道安監務 尹仁守 가 탁첨의 명령을 받고 출발을 재촉했다. 


시자가 이 사실을 알리자 스님은 말하였다.

"그것은 어렵지 않다. 나는 이제 아주 가련다."

그때 한 스님이 물었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님은 주먹을 세웠다. 그 스님이 또 물었다.

"4대(四大)가 각기 흩어지면 어디로 갑니까?"

스님은 주먹을 맞대어 가슴에 대고 "오직 이 속에 있다" 하였다.

"그 속에 있을 때는 어떻습니까?"

"별로 대단할 것이 없느니라."


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대단할 것 없다는 그 도리입니까?"

스님은 눈을 똑바로 뜨고 뚫어지게 보면서, "내가 그대를 볼 때 무슨 대단한 일이 있는가" 

하였다.


또 한 스님이 병들지 않는 자의 화두〔不病者話〕를 들어 거론하자, 스님은 꾸짖는 투로 "왜 그런 것을 묻는가" 하고는 이내 대중에게 말하였다.

"노승은 오늘 그대들을 위해 열반 불사를 지어 마치리라."

그리고는 진시(辰時)가 되어 고요히 돌아가시니 5월 15일이었다.


여흥과 도안의 두 관리가 모시고 앉아 인보(印寶)를 봉하였는데 스님의 안색은 보통때와 같았다. 여흥 군수가 안렴사(按廉使)에게 알리고 안렴사는 조정에 고했다.


스님이 돌아가실 때, 그 고을 사람들은 멀리 오색 구름이 산꼭대기를 덮는 것을 보았고, 또 스님이 타시던 흰 말은 3일 전부터 풀을 먹지 않은 채 머리를 떨구고 슬피 울었다. 화장을 마쳤으나 머리뼈 다섯 조각과 이 40개는 모두 타지 않았으므로 향수로 씻었다. 이때에 그 지방에는 구름도 없이 비가 내렸다. 사리가 부지기수로 나왔고, 사부대중이 남은 재와 흙을 헤치고 얻은 것도 이루 셀 수 없었다. 그때 그 고을 사람들은 모두 산 위에서 환히 빛나는 신비한 광채를 보았고, 그 절의 스님 달여 (達如)는 꿈에 신룡(神龍)이 다비하는 자리에 서려 있다가 강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은 말과 같았다. 


문도들이 영골사리를 모시고 배로 회암사로 돌아가려 할 때에는 오래 가물어 물이 얕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런데 비는 오지 않고 갑자기 물이 불어 오랫동안 묶여 있던 배들이 한꺼번에 물을 따라 내려갔으니, 신룡의 도움임을 알 수 있었다.


29일에 회암사에 도착하여 침당(寢堂)에 모셨다가 8월 15일에 그 절 북쪽 언덕에 부도를 세웠는데, 가끔 신령스런 광명이 환히 비쳤다. 정골사리 한 조각을 옮겨 신륵사에 안치하고 석종(石鍾)으로 덮었다.


스님의 수(困)는 57세요 법랍은 37세였으며, 시호는 선각(禪覺)이라 하였다. 그 탑에는 "□□스님은 항상 스스로 말하기를, `산승은 문자를 모른다' 하였다. 그러나 그 가송(歌頌)과 법어(法語)는 혹 경전의 뜻이 아니더라도 모두 아주 묘하다"라고 씌어 있다. 


이제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어 이 세상에 간행하게 되었으니, 스님의 덕행은 진실로 위대하다. 실로 이 빈약한 말로 전부 다 칭송할 수 없지만, 간략하게나마 그 시말 (始末) 을 적어 영원히 전하려는 것이다. 삼가 기록한다.


어록


1. 상당법어

 

시자 각련(覺璉)이 짓고, 광통보제사(廣通普濟寺)에 주석하는 환암(幻艤)이 교정하다.


1. 광제선사 (廣濟禪寺)  개당


스님께서는 강남에서의 행각을 마치고 대도(大都)에 돌아와 연대(燕代)의 산천을 두루 돌아다니셨다. 그 도행(道行)이 궁중에 들려 을미년(1355) 가을에 황제의 명을 받들고 광제사(廣濟寺) 주지가 되어 병신년(1356) 10월 보름날에 개당법회를 열었는데, 황제는 금란가사와 상아불자를 내리셨다.


이 날에 여러 산의 장로들과 강호의 납자들과 또 여러 문무관리들이 모두 모였다. 스님께서는 가사를 받아 들고 황제의 사자에게 물었다.

"산하대지와 초목총림이 다 하나의 법왕신인데 이것을 어디다 입혀야 합니까?"

황제의 사자가 "모르겠습니다" 하니 스님께서는 자기 왼쪽 어깨를 가리키면서 "여기다 입혀야 합니다" 하셨다.


또 대중에게 물었다.

"맑고 텅 비고 고요하여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찬란한 이 가사는 어디서 나왔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는 "구중 궁궐의 금구 (金口) 에서 나왔다" 하셨다.

이에 가사를 입고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법좌에 올라가 주장자를 가로 잡고 말씀하셨다.

"날카로운 칼을 온통 들어 바른 명령을 행할 것이니, 어름어름하면 목숨을 잃는다. 이 칼날에 맞설 이가 있는가, 있는가, 있는가. 돛대 하나에 바람을 타고 바다를 지나가노니, 여기서는 배 탄 사람을 만나지 못하리라."*


다시 불자를 세우고 말씀하셨다.

"3세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님네와 천하의 노화상들이 모두 산승의 이 불자 꼭대기에 앉아 큰 광명을 놓으면서 다 같은 소리로 우리 황제를 봉축하는데, 대중은 보는가. 만일 보지 못한다 하면 눈은 있으나 장님과 같고, 본다 한다면 어떻게 보는가. 보고 보지 못하는 것이나 알고 모르는 것은 한 쪽에서만 하는 말이니,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그리고는 불자를 던지면서 "털이 많은 소는 불자를 모르는구나"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 신광사 (神光寺)  주지가 되어


스님은 절 문에 도착하자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온 대지가 다 해탈문인데 대중은 일찍이 그 문에 들어갔는가. 만일 들어가지 못했거든 나를 따라 앞으로 가자."


또 보광명전 (普光明殿) 에 이르러 말씀하셨다.

"毘盧遮那 (毘盧遮那) 의 꼭대기를 밟는다 해도 그는 더러운 발을 가진 사람이다. 

말해 보라. 절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그리고는 손으로 불상을 가리키면서, "나 때문에 절을 받는 것이오" 하셨다. 


다음에는 거실(據室)에 이르러, "이 방은 부처를 삶고 조사를 삶는 큰 화로다" 하시고 주장자를 들고는, "이것은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이는 날카로운 칼이다. 대중은 이 칼 밑에서 몸을 뒤칠 수 있는가. 그런 사람은 이리 나와도 좋다. 나와도 좋다" 하셨다.

이어서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는, "우리 집의 적자 (嫡子) 말고 누가 감히 이 속으로 가겠는가" 하고는 악! 하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다음에 또 법당에 올라가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법좌에 올라 말씀하셨다.

"산승은 오대산(五臺山)을 떠나기 전에 이미 여러분을 위해 오늘의 일을 다 말하였다. 지금 손과 주인이 서로 만나 앉고 섬이 엄연하니 이미 많은 일을 이루었는데, 다시 산승에게 모래 흙을 흩뿌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만리에 흰구름 격이다. 그러나 관법 (官法) 으로는 바늘도 용납하지 않지만 사사로이는 거마 (車馬) 도 통하는 것이니 아는 이가 있는가?"


문답을 마치고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티끌 같은 세계에 털끝 하나 없고 날마다 당당하게 살림살이를 드러낸다. 볼라치면 볼 수 없어 캄캄하더니, 쓸 때는 무궁무진 분명하도다. 3세의 부처들도 그 바람 아래 섰고 역대의 조사들도 3천 리를 물러선다. 말해 보라. 이것이 무엇인데 그렇게도 대단한가. 확실히 알겠는가. 확실히 알기만 한다면 어디로 가나 이름과 형상을 떠나 삿됨을 무찌르고 바름을 드러낼 것이며, 가로 잡거나 거꾸로 쓰거나 죽이고 살림이 자재로울 것이다. 한 줄기 풀로 장육금신을 만들며 장육금신으로 한 줄기 풀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는 얼른 주장자를 들어 왼쪽으로 한 번 내리치고는, "이것이 한 줄기 풀이라면 어느 것이 장육금신인가?" 하시고 오른쪽으로 한 번 내리치고는 말씀하셨다.

"이것이 장육금신이라면 어느 것이 한 줄기 풀인가? 만일 여기서 깨치면 임금의 은혜와 부처의 은혜를 한꺼번에 갚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거든 각기 승당으로 돌아가 자세히 살펴보아라."


3. 결제 (結制) 에 상당하여


스님은 법좌 앞에 가서 그것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이 한 물건은 많은 사람이 오르지 못하였고 밟지 못하였다. 산승은 여기 와서 흐르는 물소리를 무심히 밟고 나는 새의 자취를 자유로이 보아서 그려낸다."


향을 사른 뒤에 말씀하셨다.

"요 (堯) 임금의 자비가 널리 퍼져 아주 밝은 일월과 같고, 탕 (湯) 임금의 덕은 더욱더욱 새로워 영원한 천지와 같다. 산승이 이것을 집어 향로에 사르는 것은 다만 성상폐하의 만세 만세 만만세를 축수하는 것이다."


법좌에 올라가 말씀하셨다.

"쇠뇌 〔弩〕의 고동 〔機:방아쇠〕을 당기는 것은 눈으로 판단해야 하고 화살이 과녁을 맞히는 것은 손에 익어야 한다. 눈으로 판단하지 않고 손에 익지 않아도 고동을 당기고 과녁을 맞히는 것이 있는가? 꺼내 보아라."


한 스님이 나와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나가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나가다가 문턱 중간에 서서 물었다.

"스님은 법좌에 앉아 계시고 학인은 올라왔는데 이것은 어떤 경계입니까?"

"동쪽이든 서쪽이든 마음대로 돌아다녀라."

"스님은 방장실에서 이 보좌(寶座)에 나오셨고 학인은 적묵당(寂默堂)에서 여기 왔습니다. 저기에도 몸이 있습니까?"

"있다."

"털끝에 바다세계를 간직하고 겨자씨에 수미산을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렇다."

"종문(宗門)의 일은 그만두고, 어떤 것이 북숭봉(北崇峰) 앞의 경계입니까?"

"산문은 여전히 남쪽으로 열려 있다."

"그 경계 속의 사람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눈은 가로 찢어지고 코는 우뚝하다."

"사람이든 경계든 이미 스님께서 지적해 주신 향상 (向上) 의 한 길을 알았는데 그래도 무슨 일이 있습니까?"

"있다."

"어떻게 하면 향상의 한 길로서, `지극한 말과 묘한 이치는 어떤 종 (宗) 인가. 이 말을 천리 밖으로 없애버려라. 이것이야말로 우리 종의 제일기 (第一機) 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무엇이 그 제일의 (第一義) 입니까?"

"그대가 묻는 그것은 제이의 (第二義) 이다."

"`장부는 스스로 하늘을 찌르는 뜻이 있어서 여래가 간 길을 가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어찌하면 그렇게 되겠습니까?"

"그대의 경계가 아니다."

"오늘 여러 관리와 선비들이 특별히 상당법문을 청하니 스님께서는 여기 와서 설법하고 향을 사뤄 축원한 뒤에 법상에 올라가 자유자재로 법을 쓰십니다. 이것이 사람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

"무엇이 스님의 본분사입니까?"

스님께서는 불자를 세우셨다. 그 스님이 또 물었다.

"오랑캐 난리 30년에도 소금과 간장이 모자랐던 적이 없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말라."

"학인이 듣기로는 스님께서 평산(平山) 스님을 친견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렇다."

"무엇이 천축산(天竺山)에서 친히 전한 한마디입니까?"

스님께서는 불자로 선상을 한 번 내리치셨다. 


그 스님이 또 말하였다.

"영남(嶺南) 땅에 천고(千古)의 희소식이 있으니, 오늘 맑은 바람이 온 누리에 불어옵니다. 이것은 그만두고 오늘 보좌에 높이 오른 것은 다른 일 때문이 아니라 축성(祝聖) 하는 일이니, 스님께서는 한마디 해 주십시오."

스님께서 "만년의 성일(聖日) 속에 복이 영원하니 문무의 사법 (四法) 이 태양을 따르도다" 하시니 그 스님은 "온 누리에 퍼지는 임금의 덕화 속에 촌 늙은이가 태평을 축하하기 수고롭지 않구나" 하고는 세 번 절하고 물러갔다.


또 한 스님이 나와 물었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묻지 않겠습니다. 무엇이 학인의 본분사입니까?"

"옷 입고 밥 먹는 것이다."

"세계마다 티끌마다 다 분명한데, 무엇이 분명한 그 마음입니까?"

스님께서 불자를 드시니 그 스님이 물었다.

"향상의 한 길은 천 분 성인도 전하지 못한다 하는데, 무엇이 전하지 못한 그 일입니까?"

"그대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것이다."

그 스님은 절하고 물러갔다. 


또 한 스님이 물었다.

"빛깔을 보고 마음을 밝히고 소리를 듣고 도를 깨친다 하는데, 무엇이 밝힐 그 마음입니까?"

스님께서 불자를 들어 세우시니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무엇이 깨칠 그 도입니까?"

스님께서 대뜸 악! 하고 할을 하시자 그 스님은 절하고 물러갔다.


이어서 스님께 말씀하셨다.

"본래 맺음이 없는데 무엇을 풀겠는가. 풂이 없이 때를 따라 도의 흐름을 보인다. 허공을 쳐 부수어 조각조각 내어도, 독한 막대기의 그 독은 거두기 어렵도다. 언젠가 어깨에 메고 산으로 가서 그대로 천봉 만령 꼭대기에 들어가면 부처와 조사는 보고 두려워 달아나리니, 자유로이 죽이고 살리기 실수가 없다. 물결을 일으키는 것은 다른 물건이 아니며, 천지를 뒤흔드는 그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마디 소리를 꽉 밟고 있다가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다."


주장자를 들고 "보는가!" 하고는 다시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듣는가! 만일 분명히 보고 환히 들을 수만 있으면, 산하대지와 삼라만상, 초목총림과 사성육범 (四聖六凡) , 유정무정 (有情無情) 이 모두 얼음녹듯 기왓장 부숴지듯 할 것이니, 그 경지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선 (禪) 인가 도 (道) 인가, 범부인가 성인인가, 마음인가 성품인가, 현(玄) 인가 묘(妙) 인가, 변하는 것인가 변하지 않는 것인가."


또 한 번 내리치고는 말씀하셨다.

"선이라고도 할 수 없고 도라고도 할 수 없으며, 범부라고도 할 수 없고 성인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이라고도 할 수 없고 성품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현이라고도 할 수 없고 묘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변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무엇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것도 될 수 없으니 모두 아니라면 결국 무엇이란 말인가.


알겠는가. 안다면 부처님 은혜와 임금님 은혜를 한꺼번에 갚을 수가 있겠지만 혹 그렇지 못하다면 한마디 더 하리라. 즉 참성품은 반연 (攀緣) 을 끊었고, 참봄 〔眞見〕 은 경계를 의지하지 않으며, 참지혜는 본래 걸림이 없고, 참슬기는 본래 끝이 없어서 위로는 모든 부처의 근원에 합하고 밑으로는 중생들의 마음에 합한다. 그러므로 `곳곳이 진실하여 티끌마다 본래의 사람이다. 실제로 말할 때는 소리에 나타나지 않고 정체는 당당하나 그 몸은 없다'고 말한 것이다. 대중스님네들이여, 무엇이 그 당당한 정체인가?"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 "이것이 당당한 정체라면 어느 것이 주장자인가?" 하시고 다시 한 번 내리친 뒤 "이것이 주장자라면 어느 것이 당당한 정체인가?" 하시고는 드디어 주장자를 던져버리고 말씀하셨다.

"쌀 한 톨을 탐내다가 반년 양식을 잃어버렸다. 대중들이여, 오래 서 있었으니, 몸조심들 하여라."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4. 해제(解制)에 상당하여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말씀하셨다.

"4월 15일에 결제에 들어가 7월 15일이 되어서 해제를 하니 납자들은 모였다 흩어진다. 봄은 가고 가을이 오니 새로움과 낡음이 변하는구나."

주장자를 쑥 뽑아들고 말씀하셨다.

"말해 보라. 이것이 맺음인가 풂인가, 모임인가 흩어짐인가, 가는 것인가 오는 것인가, 새것인가 옛것인가, 변하는 것인가 변하지 않는 것인가?"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친 뒤에 말씀하셨다.

"맺음이라고도 할 수 없고 풂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모임이라고도 할 수 없고 흩어짐이라고도 할 수 없다. 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새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옛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변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무엇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라면 결국 무엇이란 말인가?"

주장자를 던지고는, "눈을 치켜뜨고 자세히 보라. 이것은 진실로 분명한 주장자이니라. 몸조심들 하거라" 하셨다.


5. 내원당에서 보설 〔入內普說〕 


"부처의 참법신 〔眞法身〕 은 마치 허공과 같아, 물 속의 달처럼 물건에 따라 형상을 나타낸다."

불자를 세우고는 말씀하셨다.

"석가께서 여기 이 산승의 불자 꼭대기에 와서 묘한 색신 (色身) 을 나타내고 큰 지혜광명을 놓으며 큰 해탈문을 여는 것은 오로지 우리 성상 폐하의 만만세를 위해서이니 백천의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와 세간, 출세간의 모든 법이 다 이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보십니까? 만일 환히 볼 수 있으면 산하대지와 삼라만상, 초목총림과 사성육범, 모든 유정무정들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얼음처럼 녹고 기왓장처럼 부숴지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 경지에 이르러서는 선 (禪) 도 없고 도 (道)도 없으며, 마음도 없고 성품도 없으며, 현(玄) 도 없고 묘(妙) 도 없어서 적나라하고 적쇄쇄 (赤  )하여 잡을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해 나간다면 다시 짚신을 사 신고 30년 동안을 행각하여도 납승의 기미는 꿈에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말해 보십시오. 납승의 기미가 무엇이 대단한지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밤이 고요하매 두견새는 이 뜻을 알아, 그 한 소리가 취미 (翠微:산허리. 또는 먼 산에 엷게 낀 푸른 빛깔의 기운) 속에 있구나."


6. 소참 (小參) 


"한 걸음 나아가면 천지가 가라앉고 한 걸음 물러서면 허공이 무너지며,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으면 숨기운은 있으나 죽은 사람이 될 것이다. 어떻게도 할 수 없으며 결국 어찌해야 하는가. 말할 사람이 있는가. 있거든 나와 보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어름어름하는 사이에 10만 8천리가 될 것이다" 하시고는 주장자로 선상을 한 번 내리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7. 제야(除夜)에 소참하다


"텅 비고 밝은 것 〔虛明〕 이 활짝 드러나 상대도 끊고 반연도 끊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영산회상에서는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셨고, 소림(少林) 에서는 밤중에 눈에 섰다가 마음이 편해졌던 것이니, 겁외 (劫外) 의 광명을 꺼내서 본래면목을 비추어 보라."


불자를 세우고 "이것이 본래면목이라면 어느 것이 불자인가?" 하시고는 또 세우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불자라면 어느 것이 본래면목인가? 여러분은 아는가. 여기서 당장 의심이 없어지면 섣달 그믐날에 허둥거리지 않을 것이나, 만일 의심이 있으면 지금이 바로 그 섣달 그믐날이다. 자, 여러분은 어떻게 낙찰을 보는 것인가."


불자를 들고는, "한 가닥 끄나풀〔絡索〕은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며 현재에도 그렇다. 오늘밤은 묵은해는 가지 않았고 새해는 오지 않았으니, 바로 이런 때 말해 보라. 묵은것, 새것에 관계없는 그 한마디는 무엇인가" 하시고, 불자를 던진 뒤에 말씀하셨다.

"묵은해는 오늘밤에 끝나고 새해는 내일 온다. 몸조심들 하시오."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8. 자자일(自恣日)에 조상서(趙尙書)가 보설을 청하다


"깨닫는 성품은 허공과 같거늘 지옥·천당이 어디서 생기며, 부처의 몸이 법계에 두루하거늘 축생과 귀신이 어디서 오겠습니까. 스님네든 속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할 것 없이 여러분이 나서 죽을 때까지 일상생활에서 짓는 선·악을 다 법이라 합니다. 


무엇을 마음이라 합니까. 마음은 여러분 각자에게 있는 것으로서, 자기라 부르기도 하고 주인공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언제나 그것에게 부려지고 어디서나 그것의 계획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늘을 이고 땅에 서는 것도 그것이요, 바다를 지고 산을 떠받치는 것도 그것이며, 그대에게 입을 열고 혀를 놀리게 하는 것도 그것이요, 그대에게 발을 들고 걸음을 걷게 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이 마음은 항상 눈앞에 있지만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마음을 먹고 찾되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멀어지는 것입니다.


안자(顔子)의 말에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단단하며, 바라볼 때는 앞에 있더니 어느 새 뒤에 있다' 한 것이 바로 그 도리인 것입니다.


한 생각도 생기기 전이나 한결같이 참되어 망념이 없을 때에는, 물들음 없는 옛거울의 빛처럼 깨끗하고 움직임 없는 맑고 고요한 못처럼 밝아서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가 나타나고 한인(漢人)이 오면 한인이 나타납니다. 하늘과 땅을 비추고 예와 지금을 비추되 털끝만큼도 숨김이 없고 털끝만큼도 걸림이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부처와 조사들의 경계며 또 여러분이 옛날부터 지금까지 써도 써도 다하지 않는, 본래 가진 물건입니다.


오늘 명복을 비는 조씨의 영혼과 먼저 돌아가신 법계의 혼령들과 이 자리에 가득한 사부대중은 무슨 의심이라도 있습니까. 만일 있다면 다시 한 끝을 들어 보이겠습니다."


죽비를 들고, "이것을 보십니까" 하시고는 다시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이 소리를 듣습니까? 보고 듣는 그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여기에서 분명하여 의심이 없고 또 우리 부처님의 우란 (枳蘭) *의 힘을 입으면, 고통이 없어지고 즐거움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못되어도 천궁 (天宮) 에 나고 잘되면 불국 (佛國) 에 날 것입니다.


오늘 이 법회를 마련한 시주 조씨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혼을 위해 갖가지 불사를 마련하였습니다. 이런 공덕에 어떤 죄가 멸하지 않고 어떤 업이 사라지지 않으며, 어떤 복이 생기지 않고 어떤 선 (善)이 자라지 않겠습니까. 그 때문에 결국은 불국에 왕생하고, 그 때문에 결국은 본래면목을 환히 볼 것입니다.


다시 게송 한 구절을 들으십시오.


얼음 전부가 물인즉 물이 얼음 되니

옛 거울은 갈지 않아도 원래부터 빛이 있었네

바람이 절로 불어 티끌이 절로 일지만

본래면목은 당당하게 드러나 있네.

全氷是水水成氷 古鏡不磨元有光

風自動兮塵自起 本來面目露堂堂


몸조심들 하십시오."


9. 보설(普說) 


스님께서는 법좌에 올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알겠는가. 사부대중이 함께 모여 일심으로 굳이 설법을 청하므로 산승이 이 자리에 올라왔다. 대중은 잠자코 이 설법을 들으라. 이 눈앞에 분명하고 역력하여 설법을 듣는 자는 그 누구며, 합장하고 묻는 이는 그 누구며, 머리 숙여 절하는 이는 그 누구인가. 여러분은 각자 점검해 보라.


여러분은 `설법을 듣고 아는 것은 바로 나 주인공이다'라고 말하지 말아라. 그러면 나는 여러분에게 묻겠다. 만일 그것이 주인공이라면 그것은 긴가 짧은가, 아니면 큰가 작은가. 그 면목은 어떠며 그 모양은 어떠며 그것은 어디서 안신입명 (安身立命) 하고 있는가. 


여러분이 분명히 알고 분명히 보며 분명히 말한다고 한다면, 나는 다시 여러분에게 묻겠다. 알아내고 보아내는 그 주인공이란 무엇인가? 그러므로 조사님네도, `그것은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며 물건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면 그대들은 말해 보라.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며 물건도 아니라면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만일 깨치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 산에서 1만 2천 담무갈 (曇無竭:항상 般若波羅蜜多經을 설하였다는 보살) 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며, 어떻게 1만 2천 보살이 항상 말하는 반야를 들을 수 있겠는가. 다만 높이 솟은 기이한 바위와 우거진 소나무·잣나무들만을 볼 것이니, 우리 임제 (臨濟) 의 정통종지와 무슨 관계가 있겠으며 그것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여러분은 부디 물러서지 말아라. 임제도 눈은 가로 찢어지고 코는 섰으며, 여러분도 눈은 가로 찢어지고 코는 우뚝하여 털끝만큼도 다르다거니 같다거니 하는 모양을 찾을 수 없다. 이미 우리 문중의 종자라면 같든지 다르든지 정법안장을 없애버리고 임제의 정통종지를 붙들어 일으키든지 누가 상관하겠는가.


그러면 임제의 정통종지를 어떻게 붙들어 일으키겠는가. 3현 (三玄) ·3요 (三要) 를 붙들어 일으키겠는가. 4료간 (四料揀) ·4빈주 (四賓主) ·4할 (四喝) 인가. 그런데 그 할은 죽 먹은 기운으로 하는 것이니, 누가 그것을 몰라 임제의 정통종지라 하겠는가. 비록 `한 번의 할에 빈주 (賓主) 를 나누고 조용 (照用) 을 한꺼번에 행한다. 그 속의 뜻을 알면 한낮에 삼경을 치리라'고 말했지만, 그 말로 여러분은 속일 수 있지만 이 산승은 속이지 못한다. 여러분, 자세히 점검해 보아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한 번 할 (喝) 한 뒤에 말씀하셨다.

"형상이 생기기 전에도 빈주와 조용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이 할이 사라진 뒤에도 조용과 빈주가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할을 하는 그 순간에는 빈주와 조용이 할 속에 있는가 할 밖에 있는가. 아니면 그 속에도 있지 않고 바깥에도 있지 않은가."


또 한 번 할하고 말씀하셨다.

"도리어 그 가운데의 뜻을 한꺼번에 말해버렸다. 산승의 이런 판결이 과연 임제의 정통종지를 붙들어 일으켰는가. 임제의 정통종지를 붙들어 일으키지 못했다면, 그것은 결코 조용과 4료간·4빈주·4할·3현·3요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아무 데도 있지 않다면 도대체 그것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오직 여러분 당사자 〔¿上〕 에게 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 자기에게 있다는 그 하나〔一着子〕는 하늘에 두루하고 땅에 가득하지마는, 3세의 모든 부처도 역대의 조사도 천하의 선지식들도 감히 바른 눈으로 보지 못하니 중요한 것은 그 당사자가 그 자리에서 당장 깨닫는 길뿐이다.


그러므로 선배 큰 스님네들은 그대들이 그대로 당장 깨달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방편을 드리워 그대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그 화두를 참구하게 한 것이다. 가령 예를 들면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도 불성이 있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조주스님은 `없다〔無〕' 하였으니, 그것은 벌써 있는 그대로 드러낸 〔和槃托出〕 것이다. 그대들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부득이 죽은 말을 고치는 의사처럼 그대들에게 구구하게 무(無) 라는 것을 가르치되, 먼저 4대·5온·6근·6진과 나아가서는 눈앞에 보이는 산하대지와 밝음과 어두움·색과 공·삼라만상과 유정무정 등 모두를 하나의 `무'자로 만들어 한결같이 그것을 들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다니면서도 그것을 들고, 앉거나 눕거나 자거나 밥을 먹는 등 어디서나 그것을 들되, 끊임없이 빈틈없이 한 덩이로 만들게 한 것이다. 바늘도 갈구리도 들어가지 않고 은산철벽(銀山鐵璧)과 같아 모르는 결에 한 번 부딪쳐 자기에게 있는 그 하나를 뚫으면, 깨닫기를 기다리지 않고 저절로 환히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면목도 알게 되고 4대가 흩어져 어디로 가는지도 알게 된다. 또한 이 산승이 여러분들을 속인 곳도 알게 되고, 지금까지 조사님네들이 천차만별로 틀린 곳도 알게 될 것이니, 이렇게 모두들 환히 아는 것이 바로 임제의 정통종지를 붙들어 일으키는 경계일 것이다.


그때가 되면 세상법과 불법에 조금도 틈이 없어 3현·3요·4료간·4빈주·4할과 4대·5온·6근·6진·산하대지·삼라만상 등 모든 법이 다 임제의 정통종지임을 그대로 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법도 임제의 정통종지 아닌 것이 없어 붙들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날 것이다. 그런 뒤에는 버려도 되고 세워도 되며 내가 법왕이 되어 모든 법에 자재할 것이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10. 욕불 상당 (浴佛上堂) 


스님께서는 향을 사른 뒤에 법좌에 올라, 세존께서 처음으로 세상에 내려오실 때에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눈으로 사방을 돌아보시면서, `천상천하에 오직 나만이 높다' 하신 말씀을 거론하고 말씀하셨다.


"대중스님은 아는가. 괴상한 것을 보고도 의심하지 않으면 그 괴상함이 스스로 물러간다. 싣달태자가 처음 태어난 이 날에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풍파를 일으켰다. 여러가지 괴상한 일을 만들어내 자손들의 눈 속에 모래를 끼얹으면서 해마다 오늘 8일에 이른다. 한 동이의 향수로 그 흔적을 씻지만, 아무리 씻고 씻은들 그 티끌이 다할 수 있겠는가. 나귀해〔驢年:12간지에도 없는 해) 가 될 때까지 씻고 또 씻어 보아라."


선상을 세 번 내리친 뒤에 잇달아 말하기를, "대중스님네여, 각기 위의를 갖추어 다 함께 부처를 씻습시다" 하시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1. 결제에 상당하여


스님은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또 향을 들고 말하였다.

"이 향은 오래 전에 얻은 것으로 이제껏 사른 일이 없었다. 이제 보암 (普庵) 장로를 통해 신표의 가사를 전해 왔으므로 향로에 사루어서 보지 못한 이에게 보게 하고 듣지 못한 이에게 듣게 하여 삼가 서천 (西天) 의 108대 조사 지공 (指空) 대화상에게 법유 (法乳) 로 길러주신 은혜를 갚으려 하는 것이다."


그 향을 꽂고는 법좌에 올라 말씀하셨다.

"오늘은 천하 총림이 결제에 들어가는 날이오. 청평산(淸平山) 비구 나옹은 이름도 없고 글자나 형상도 없으며, 미오(迷悟)도 없고 수증(修證)도 없으면서, 해같이 밝고 옷칠같이 검은 이 한 물건을 여러분의 면전에 흩어두리라. 북을 쳐서 운력이나 하거라. 여러분은 알겠는가. 만일 알 수 없다면 다시 이 소식을 드러내겠다."


주장자를 들고 "보았는가" 하시고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들었는가. 보고 들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당장 의심이 없어지면, 중이거나 속인이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산 사람이거나 죽은 사람이거나 계단을 거치지 않고 저쪽으로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무슨 긴 기간 짧은 기간의 결제와 해제가 있겠는가. 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석달 90일 안거하는 동안에 주장자 꼭대기를 꿰매고 포대 아가리를 묶고는 세 서까래 〔三條椽〕 * 밑과 일곱 자 단 〔七尺單〕 * 앞에서 금강권 (金剛) *을 떨쳐내고 율극봉 (栗棘蓬) *을 삼킨다면, 또 꿈속의 불사를 짓고 거울 속의 마군을 항복받아 3업이 청정하고 6근이 깨끗하여 행주좌와 (行住坐臥) 에 아무 허물이 없으며, 조사의 자리를 이어받아 영원히 끊이지 않게 한다면 어찌 참으로 출가한 대장부가 아니겠는가.


만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오늘 신(申)씨가 명복을 비는 신군평(申君平)과 여러 영혼들은 이 공덕을 받을 것이니, 무슨 죄인들 면하지 못하고 무슨 고통인들 벗어나지 못하겠는가. 그리하여 시방 불국토에 마음대로 왕생하여 어디서나 즐거울 것이니 어찌 유쾌하지 않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불자를 세우고는, "이 하나는 닦고 깨닫는 데 〔修證〕 에 들어가는가, 닦고 깨닫는 데 들어가지 않는가?" 하시고 불자를 던지면서 "눈 있는 납승은 스스로 한 번 볼 일이다" 하시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2. 달마상에 점안하며 〔達磨開光祝筆〕 


스님께서 붓을 들고 말씀하셨다

"이미 가섭으로부터 28대 조사들이 다 눈을 갖추어 6종 (六宗:육사외도) 을 항복받았는데, 무엇 때문에 이 달마에게 또다시 점안(點眼) 해야 하는가. 그 이유를 말할 사람이 있는가. 말할 수 있다면 달마를 위해 숨을 토할 뿐만 아니라, 온 법계의 중생들에게도 이익을 주어야 할 것이다. 만일 말할 수 없다면 게송 한마디를 들어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가리켜 성품을 밝게 보게 했나니

노호 (老胡:달마) 는 놓을 줄만 알았고 거둘 줄을 몰랐다

그로부터 눈병이 나서 헛꽃이 피어

헛꽃이 온 세계에 어지러이 떨어졌다

쉬지 않고 어지러이 떨어지는 헛꽃이여

아득하고 막막해라. 길은 멀고 멀구나.

眞指人心明見性 老胡知放不知收

從玆眼病空花發  界紛紛峠亂墜

峠亂墜兮自不休 杳杳冥冥路轉遙


붓으로 점을 찍고 말씀하셨다.

"오늘 그에게 옛 광명을 보태 주니 푸른 눈동자에 형형한 빛이 하늘에 사무친다."


13. 지공화상 생일에


 스님께서 화상의 진영 앞에 나아가 말씀하셨다.


얼굴을 마주 대고 친히 뵈오니

험준한 그 기봉(機鋒)에 모골(毛骨)이 시리다

여러분, 서천(西天)의 면목을 알려 하거든

한 조각 향 연기 일어나는 곳을 보라.

驀而相逢親見徹 機鋒 峻骨毛寒

諸人欲識西天而 一片香烟起處看


향을 꽂고는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말해 보시오. 서천의 면목과 동토의 면목이 같은가 다른가. 비록 흑백과 동서는 다르다 하나, 뚜렷한 콧구멍은 매한가지니라."


14. 지공화상 돌아가신 날에


1.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왔어도 온 것이 없으니 밝은 달 그림자가 강물마다 나타난 것 같고, 갔어도 간 곳 없으니 맑은 허공의 형상이 모든 세계에 나누어진 것 같다. 말해 보라. 지공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향을 사른 뒤에 다시 말씀하셨다.

"한 조각 향 연기가 손을 따라 일어나니, 그 소식을 몇 사람이나 아는가."


2.

날 때는 한 가닥 맑은 바람이 일고

죽어가매 맑은 못에 달 그림자 잠겼다

나고 죽고 가고 옴에 걸림이 없어

중생에게 보인 몸에 참마음 있다

참마음이 있으니 묻어버리지 말아라

이때를 놓쳐버리면 또 어디 가서 찾으리.

生時一陣淸風起 滅去席潭月影沈

生滅去來無   示衆生體有眞心

有眞心休埋沒   此時蹉過更何尋


 3.

스님께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천검 (千劍) 을 모두 들고 언제나 활용하니

황제가 그를 꾸짖어 종 〔奴〕 을 만들었다

평소의 기운은 동쪽 노인을 누르더니

오늘은 무심코 한 기틀을 바꾸었다

바꾼 그 기틀은 어디 있는가.

千劍全提常活用 皇王罵動作奴之

平生氣壓東方老 今日等閑轉一機

轉一機何處在


향을 꽂고 말씀하셨다.

"지공이 간 곳을 알고 싶거든 부디 여기를 보고 다시는 의심치 말라."


4.

스님께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푸른 한 쌍 눈동자에 두 귀가 뚫렸고

수염은 모두 흰데 얼굴은 검다

그저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갔을 뿐

기괴한 모습이나 신통은 나타내지 않았다

혼자서 고향길 떠나겠다 미리 기약하고서 

말을 전해 윤제궁 (輪帝宮) 을 알게 하였다

떠날 때가 되어 법을 보였으나 아는 이 없어

종지를 모른다고 문도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엄연히 돌아가시매 모습은 여전했으나

몸의 온기는 세상과 달랐다

이 불효자는 가진 물건이 없거니

여기 차 한 잔과 향 한 조각 드립니다.

碧雙瞳穿兩耳    須胡兮面皮黑

但恁�來恁�去 不露奇相及神通

預期獨往家鄕路 傳語令知輪帝宮

臨行垂示無人會 痛罵門徒不解宗

儼然遷化形如古  體溫和世不同

不孝子無餘物   獻茶一 香一片


그리고는 향을 꽃았다.


15. 시중


스님께서 하루는 대중을 모아 각각에게 매일매일의 공부를 물은 뒤에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그렇다면 반드시 대장부의 마음을 내고 기어코 하겠다는 뜻을 세워 평소에 깨치거나 알려고 한 일체의 불법과 사륙체 (四六體) 의 문장과 언어삼매를 싹 쓸어 큰 바다 속에 던지고 다시는 들먹이지 말아라. 그리하여 8만 4천 가지 미세한 망념을 가지고 한 번 앉으면 그대로 눌러앉고, 본래 참구하던 화두를 한 번 들면 늘 들되,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라든가, `어떤 것이 본래면목인가?'라든가, `어떤 것이 내 본성인가?'라든가 하라.


혹은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조주스님은, `없다〔無〕' 하였다. 그 스님이 `꼬물거리는 곤충까지도 다 불성이 있다고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하십니까?'라고 한 화두를 들어라.


이 중에서도 마지막 한 구절을 힘을 다해 들어야 한다. 이렇게 계속 들다 보면 공안이 앞에 나타나 들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린다. 고요한 데서나 시끄러운 데서나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는 것이다. 그 경지에 이르거든 의심을 일으키되 다니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옷을 입거나 밥을 먹거나 대변을 보거나 소변을 보거나 어디서나 온몸을 하나의 의심덩이로 만들어야 한다. 계속 의심해 가고 계속 부딪쳐 들어가 몸과 마음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 그것을 분명히 캐들어가되, 공안을 놓고 그것을 헤아리거나 어록이나 경전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모름지기 단박 탁 터뜨려야 비로소 집에 이르게 될 것이다.


만일 화두를 들어도 잘 들리지 않아 담담하고 밋밋하여 아무 재미도 없거든, 낮은 소리로 연거푸 세 번 외워 보라. 문득 화두에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낄 것이니, 그런 경우에 이르거든 더욱 힘을 내어 놓치지 않도록 하라.


여러분이 각기 뜻을 세웠거든 정신을 차리고 눈을 비비면서, 용맹정진하는 중에도 더욱 더 용맹정진을 하라. 그러면 갑자기 탁 터져 백천 가지 일을 다 알게 될 것이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사람을 만나보아야 좋을 것이다. 그리고는 20년이고 30년이고 물가나 나무 밑에서 부처의 씨앗〔聖胎〕을 길러야 한다. 그러면 천룡(天龍)이 그를 밀어내 누구 앞에서나 용감하게 큰 입을 열어 큰 말을 할 수 있고 금강권을 마음대로 삼켰다 토했다 하며, 가시덤불 속도 팔을 저으며 지나갈 것이며, 한 생각 사이에 시방세계를 삼키고 3세의 부처를 토해낼 것이다.


그런 경지에 가야 비로소 그대들은 노사나불(盧舍那佛)의 갓을 머리 위에 쓸 수 있고, 보신불·화신불의 머리에 앉을 수 있을 것이다. 혹 그렇지 못하거든 낮에 세 번, 밤에 세 번을 좌복에 우뚝이 앉아 절박하게 착안하여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참구하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6. 장상국(張相國)의 청으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변숭 (邊崇) 의 영혼이여, 밝고 신령한 그 한 점은 끝없는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어야 할 번뇌도 없고 구해야 할 보리도 없다. 가고 옴도 없고 진실도 거짓도 없으며 남도 죽음도 없다. 4대에 있을 때도 그러했고, 4대를 떠난 때도 그러하다.


지금 을묘년 12월 14일 밤에 천보산(天寶山) 회암선사(檜岩禪寺)에서 분명히 내 말을 들으라. 말해 보라. 법을 듣는 그것은 번뇌에 속한 것인가, 보리에 속한 것인가, 옴에 속한 것인가 감에 속한 것인가, 진실에 속한 것인가, 허망에 속한 것인가, 남에 속한 것인가 죽음에 속한 것인가. 앗 ( ) !.


전혀 어떻다 할 수 없다면 그것은 무엇이며, 결국 어디서 안신입명 (安身立命) 하는가."

죽비로 향대 (香臺) 를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알겠는가. 만일 모르겠으면 마지막 한마디를 더 들어라. 영혼이 간 바로 그 곳을 알려 하는가. 수레바퀴 같은 외로운 달이 중천에 떴구나."

다시 향대를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7. 나라에서 주관한 수륙재(水陸齋)에서 육도중생에게 설하다


스님께서 자리에 올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승의공주 (承懿公主:공민왕비 노국대공주를 말함)를 비롯하여 여러 불자들은 아는가. 여기서 당장 빛을 돌이켜 한번 보시오.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을 막론하고 누가 본지풍광(本地風光)을 밟을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면 잔소리를 한마디 하겠으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살피시오.


승의공주여, 36년 전에도 이것은 난 적이 없었으나 과거의 선인(善因)으로 인간세계에 노닐면서 만백성의 자모(慈母)가 되어 온갖 덕을 베풀다가, 조그만 묵은 빚으로 고요히 몸을 바꿨소. 그러나 36년 후에도 이것은 죽지 않았으니, 인연이 다해 세상을 떠나 생애(生康)를 따로 세웠소.


승의공주여, 4대가 생길 때에도 밝고 신령한 이 한 점은 그것을 따라 생기지 않았고, 4대가 무너질 때에도 밝고 신령한 이 한 점은 그것을 따라 무너지지 않소. 나고 죽음과 생기고 무너짐은 허공과 같으니, 원수니 친한 이니 하는 묵은 업이 지금 어디 있겠소. 이제 이미 없어졌으매 찾아도 자취가 없어 드디어 허공같이 걸림이 없소. 세계마다 티끌마다 묘한 본체요, 일마다 물건마다 모두가 주인공 〔家公〕 이오. 소리와 빛깔이 있으면 분명히 나타나고, 빛깔과 소리가 없으면 그윽이 통하오. 상황에 맞게 때에 맞게 당당히 나타나고, 예로부터 지금까지 오묘하고 오묘하오. 자유로운 그 작용이 다른 물건이 아니며 상황에 따라 죽이고 살림이 모두 그의 힘이오.


승의공주여, 알겠는가. 만일 모르겠으면 이 산승이 공주를 위해 확실히 알려 주겠소."

죽비로 탁자를 치면서 악! 하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말씀하셨다.

"여기서 단박 밝게 깨쳐 묘한 관문을 뚫고 지나가면, 3세 부처님네와 역대 조사님네와 천하 선지식들의 골수를 환히 보고, 3세 부처님네와 역대 조사님네와 천하의 선지식들과 손을 잡고 함께 다닐 것이오."


또 한 번 내리친 뒤에 말씀하셨다.

"이렇게 해서 많은 생의 부모와 여러 겁의 원수 친한 이를 제도하고, 이렇게 해서 세세생생에 함부로 자식이 되어 어머니를 해치고 친한 이를 원망한 일을 제도하며, 이렇게 해서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승 저승의 모든 원수나 친한 이를 제도하시오. 이렇게 해서 갖가지 고통을 받는 모든 지옥중생을 제도하고, 주리고 목마른 아귀중생을 제도하며, 축생계에서 고생하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아수라계에서 성내는 일체 중생을 제도하며, 인간세계에서 잘난 체하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천상에서 쾌락에 빠져 있는 모든 하늘 무리를 제도하시오."


다시 죽비를 던지고 말씀하셨다.

"언덕에 올랐으면 배를 버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거니, 무엇하러 사공에게 다시 길을 물으랴."


회향 (廻向)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 향을 사른 뒤에 죽비로 향대를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승의 선가(仙駕)를 비롯하여 여러 불자들은 끝없는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깨달음을 등지고 번뇌와 어울려 여러 세계에 잘못 들었소. 그리하여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 혹은 천상에 있으면서 떴다 가라앉음이 일정치 않고 고락이 같지 않았으니, 그것은 오직 그대들이 한량없는 겁을 지나면서 본래면목을 몰랐기 때문이오.


승의선가여, 원수나 친한 이를 면하고 생사를 면하여 고해를 건너려거든 빛을 돌이켜 비추어 보아 주인공의 본래면목을 아는 것이 제일이오.


승의공주는 인간에 태어나되 왕궁에 태어나 30여 년을 인간세상에 노닐면서 한 나라의 공주가 되어 만백성들을 이롭게 하였으니, 그것은 부모가 낳아준 면목이지만,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면목은 어떤 것인가.


지금 4대는 흩어지고 신령하게 알아보는 그것 〔靈識〕 만이 홀로 드러나고 텅 비고 밝은 그것 〔虛明〕 만이 혼자 비치어 멀고 가까움에 관계가 없고, 산하와 석벽도 막지 못하니 자, 어서 오시오. 지금 여기서 내 말을 분명히 듣는 그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확실히 보아 의심이 없으면, 시방 불국토 어딜 가나 자유자재할 것이오. 그렇지 못하다면 이 산승은 또 공주를 위해 수륙재 (水陸齋) 의 인연을 조금 말할 것이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살피시오.


물과 땅의 어둡고 밝은 큰 도량에서 티끌 같은 세계를 다 드러내오. 3도 (三途) 에서는 법을 듣고 고통을 모두 떠나고, 6취 (六趣) 에서는 은혜를 입어 법체 (法體) 가 편안하오. 원한 있는 마음은 끊기 쉬우나, 끝이 없는 성품은 헤아리기 어렵소. 이 집에 가득한 형제들이여, 알겠는가. 청풍명월이 곳곳에서 반짝이니 이 법회에는 부처님네가 다 내려오셨고, 3현10성(三賢十聖)이 다 귀의하오. 마음을 편히하고 공양을 받아 기쁜 마음을 내고, 금강(金剛)의 묘각(妙覺)으로 점차 들어가시오. 중생들 이 항하수 모래만큼의 죄를 골고루 지으나, 한마디 〔一句〕 에 다 녹이고 한 기틀을 돌리시오. 이러한 공덕 한량 없거니, 승의 선가는 정토로 돌아가오. 말해 보시오. 승의 선가는 정토에 있는가, 예토에 있는가. 부처세계에 있는가. 중생세계에 있는가. 이 세계에 있는가, 저 세계에 있는가."


또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정토라 할 수도 없고 예토라 할 수도 없으며, 부처세계라 할 수도 없고 중생세계라 할 수도 없으며, 이 세계라 할 수도 없고 저 세계라 할 수도 없는 것이니, 어디라고도 할 수 없다면 결국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는 죽비를 던지고 말씀하셨다.

"미세한 의혹을 모두 없애 한 물건도 없나니, 대원경지 속에서 마음대로 노닌다."


빈당 (殯堂) 에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승의공주를 부른 뒤에 말씀하셨다.

"승의공주는 36년 동안 4대를 부지해 오다가 불과 바람은 먼저 떠나고 흙과 물만 남아 있소. 산승은 독손〔毒手〕으로 끝까지 헤쳐놓고 한바탕 소리칠 것이니, 마음대로 깨치고 마음대로 쓰시오."

할을 한 번 하고 말씀하셨다.

"승의선가는 허공을 누비되 앞뒤가 없고, 한 티끌도 붙지 않아 당당히 드러났소. 몸을 뒤쳐 바로 위음왕 밖을 뚫어, 크나큰 참바람을 헛되이 간직하지 마시오."

주장자로 널을 세 번 내리친 뒤에 또 부르고는 "승의공주여, 맑은 못에 비친 가을달을 밟아 보시오. 온 천지에 얼음 얼고 서리치리니" 하고 할을 한 번 하셨다.


18. 정월 초하루 아침에 육도중생에게 설법하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자들이여, 그대들은 마음을 씻고 자세히 들으라. 지금 4대는 각기 떠나고 영식(靈識) 만이 홀로 드러났소. 비록 산하와 석벽에 막힌 것 같으나 이 영지(靈知)는 가고 옴에 걸림이 없어 티끌 같은 시방세계에 노닌다. 그러면서도 그 자취가 끊어졌으므로 멀고 가까움에 관계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청하면 곧 온다. 지옥에 있거나 혹은 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에 있거나 그들은 지금 계묘년 섣달 그믐날 다 여기 와서 분명히 내 말을 듣고 있다. 


말해 보라. 지금 내 말을 듣는 그것은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 멸하는 것인가, 멸하지 않는 것인가? 오는 것인가, 가는 것인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앗 〔 〕 !.


산 것이라 할 수도 없고 죽은 것이라 할 수도 없으며, 멸하는 것이라 할 수도 없고 멸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도 없다. 오는 것이라 할 수도 없고 가는 것이라 할 수도 없으며,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없고 없는 것이라 할 수도 없으며, 무어라 할 수 없다는 그것조차 될 수 없는 것이니,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빨리 몸을 뒤쳐 겁 밖으로 뛰어넘으라. 그때부터는 확탕 (湯:끓는 솥에 삶기는 고통을 받는 지옥) 도 시원해지리라."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불자들은 자세히 아는가. 여기서 만일 자세히 알면 지옥에 있거나 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에 있거나 관계없이 불조의 스승이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산승이 그대들을 위해 잔소리를 좀 하리니 자세히 들으라.


그대들은 끝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망령되게 4대를 제 몸이라 여기고 망상분별을 제 진심으로 알아 하루 내내 일년 내내 몸과 입과 뜻으로 온갖 악업을 지어 왔다. 그리하여 그 정도가 같지 않으므로 지옥에 들기도 하고 아귀나 축생이나 아수라에 떨어지기도 하며 혹은 인간이나 천상에 있기도 하는데, 지금 갑진년 섣달 그믐날 모두 여기 와 있는 것이다.


그대들은 모두 인연을 버리고 온갖 일을 쉬고, 여러 생 동안 지은 중죄를 참회하여 없애고 자심3보 (自心三寶)에 귀의하라. 불법승 3보는 그대들의 선지식이 되고 그대들의 큰 길잡이가 될 것이다. 3세 모든 부처님과 역대의 조사님네와 천하 선지식들도 다 이것에 의하여 정각(正覺)을 이루고는, 시방세계의 중생들을 널리 구제하여 다 성불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미래의 부처와 보살도 이것에 의하지 않고 정각을 이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일체종지 (一切種智:모든 것을 아는 부처의 지혜) 가 뚜렷이 밝고 10호 (十號) 가 두루 빛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자심3보에 귀의해야 할 것이다.


귀의란 망(妄)을 버리고 진(眞)을 가진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지금 분명히 깨닫는, 텅 비고 밝고 신령하고 묘한, 조작없이 그대로인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불보 (佛寶) 요, 탐애를 아주 떠나 잡념이 생기지 않고 마음의 광명이 피어나 시방세계를 비추는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법보 (法寶) 며,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한 생각도 생기지 않아 과거 미래가 끊어지고 홀로 드러나 당당한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승보 (僧寶) 인 것이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그대들의 참귀의처이며, 이것을 일심3보(一心三寶)라 하는 것이다. 그대들은 철저히 알았는가? 만일 철저히 알아낸다면 법법이 원만히 통하고 티끌티끌이 해탈하여 다시는 3도와 6취에 윤회하지 않을 것이나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다시 옛 성인이 도에 들어간 인연을 예로 들어 그대들을 깨닫게 하겠다.


삼조 승찬 (三祖僧璨) 대사가 처음으로 이조 (二祖) 를 찾아뵙고, `저는 죄가 중합니다. 화상께서 이 죄를 참회하게 해주십시오' 하니 이조는 `그 죄를 가져 오라. 그대에게 참회하게 하리라' 하였다. 삼조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하기를 '죄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니 이조가 `그대의 죄를 다 참회해 주었으니, 불법승에 의지하여 살아가라' 하였다.


삼조가 다시 묻기를 `제가 보니 스님은 승보이지만 어떤 것이 부처와 법입니까?' 하니 `마음이 부처요 마음이 법이니 부처와 법은 둘이 아니요, 승보도 그러하다' 하였다. 삼조가 `오늘에야 비로소 죄의 본성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으며 중간에도 있지 않고, 마음이 그런 것처럼 부처와 법은 둘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하니 이조는 `그렇다' 하였다. 불자들이여, 죄의 본성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으며, 중간에도 있지 않다고 한다면 결국 어디 있겠는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일어난 곳을 찾아도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죄의 본성이 공(空)하기 때문이다. 과연 의심이 없는가. 여기에 대해 분명하여 의심이 없다면 바른 안목이 활짝 열렸다 하겠으나 혹 그렇지 못하다면 또 한마디를 들어 그대들의 의심을 풀어 주겠다. 옛사람들의 말에 `물질을 보면 바로 마음을 본다. 그러나 중생들은 물질만 보고 마음은 보지 못한다' 하였다."


불자를 세우고는, "이것이 물질이라면 어느 것이 그대들의 마음인가?" 하시고, 또 세우고는 "이것이 그대들의 마음이라면 어느 것이 물질인가?" 하셨다.


그리고는 불자를 던지고는 말씀하셨다.

"물질이면서 마음인 것이 그 자리에 나타나는데, 요새 사람들은 형상을 버리고 빈 마음을 찾는다."


19. 최상서(崔尙書)의 청으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영혼을 부르며 말씀하셨다.


"나(羅)씨 영혼이여, 나씨 영혼이여, 아는가? 모른다면 그대의 의심을 풀어주겠다.

나씨 영혼이여, 63년 전에 4연(四緣)이 거짓으로 모인 것을 거짓으로 이름하여 남 〔生〕 이라 하였으나 나도 난 적이 없었다. 63년 뒤인 오늘에 이르러 4대가 흩어진 것을 거짓으로 이름하여 죽음이라 하나 죽어도 따라 죽지 않았다. 이렇게 따라 죽지도 않고 또 나지도 않았다면, 나고 죽고 가고 오는 것이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다. 나고 죽고 가고 옴에 실체가 없다면 홀로 비추는 텅 비고 밝은 것 〔虛明〕 만이 영겁토록 존재하는 것이다.


영혼을 비롯한 여러 불자들이여, 그 한 점 텅 비고 밝은 것은 3세 부처님네도 설명하지 못하였고 역대 조사님네도 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하지도 못하고 설명하지도 못했다면 4생6도의 일체 중생들에게 각각 본래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본래 갖추어져 있다면 무엇을 남이라 하고 무엇을 죽음이라 하며, 무엇을 옴이라 하고 무엇을 감이라 하며, 무엇을 괴로움이라 하고 무엇을 즐거움이라 하며, 무엇을 옛날이라 하고 무엇을 지금이라 하는가.


삶과 죽음, 감과 옴, 괴로움과 즐거움, 옛과 지금이 없다고 한다면, 그 한 점 텅 비고 밝은 것은 적나라하고 적쇄쇄하여 아무런 틀 〔 臼〕 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 시방세계는 안도 없고 바깥도 없을 것이니, 그것은 바로 깨끗하고 묘한 불토(佛土)요 더 없는〔無上〕 불토며, 견줄 데 없는 불토요 한량없는 불토며, 불가사의한 불토요 말할 수 없는 불토인 것이다.


이런 불토가 있으므로 이 모임을 마련한 시주 최씨 등이 지금 산승을 청하여 이 일대사인연을 밝히고, 망모(亡母)인 나씨 영가(靈駕)의 명복을 비는 것이다. 말해 보라. 영가는 지금 어느 국토(國土)에 있는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티끌 하나에 불토 하나요, 잎새 하나에 석가 하나니라" 하고는 그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0. 조상서(趙尙書)의 청으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죽비로 향탁 (香托) 을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채(蔡)씨 영가는 아는가. 이 자리에서 알았거든 바로 본지풍광 (本地風光) 을 밟을 것이오, 만일 모르거든 이 말을 들으라.


50여 년 동안을 허깨비 바다 〔幻海〕 에 놀면서 온갖 허깨비 놀음을 하다가 오늘 아침 갑자기 4대가 흩어져 각각 제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밝고 텅 빈 〔虛明〕  한 점만이 환히 홀로 비추면서 멀고 가까움에 관계없이 청하면 곧 오는데, 산하와 석벽도 막지 못한다. 오직 이 광명은 시방세계의 허공을 채우고 하루 스물 네 시간을 찬란히 모든 사물에 항상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산하대지는 법왕의 몸을 완전히 드러내고, 초목총림은 모두 사자후를 짓는다. 한 곳에 몸을 나타내면 천만 곳에서 한꺼번에 나타나고, 한 곳에서 법을 설하면 천만 곳에서 한꺼번에 법을 설한다. 한 몸이 여러 몸을 나타내고 여러 몸이 한 몸을 나타내며, 한 법이 모든 법이 되고 모든 법이 한 법이 되는데, 마치 인드라망의 구슬처럼 서로 받아들이고 크고 둥근 거울〔大圓鏡〕처럼 영상이 서로 섞인다. 그 가운데 일체 중생은 승속이나 남녀를 가리지 않고, 지혜있는 이나 지혜없는 이나, 유정이나 무정이나, 가는 이나 오는 이나, 죽은 이나 산 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성불한다'라고.


채씨 영가여, 아는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 의심이 없으면 현묘한 관문을 뚫고 지나가, 3세의 부처님네와 역대의 조사님네와 천하의 선지식들과 손을 맞잡고 함께 다니면서 이승이나 저승에서 마음대로 노닐 것이요,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마지막 한 구절을 들으라."


죽비로 향탁을 한 번 내리치고는 "한 소리에 단박 몸을 한 번 내던져 대원각(大圓覺)의 바다에서 마음대로 노닌다" 하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1. 장흥사(長興寺) 원당(願堂) 주지의 청으로 육도중생에게 설법하다


스님께서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죽비로 탁자를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승의공주 선가와 이씨 영가와 여러 불자들은 아는가. 4성6범 (四聖六凡) 이 여기서 갈라지고 4성6범이 여기서 합한다. 그대들은 아는가. 만일 모른다면 내가 한마디 하여 그대들을 집으로 돌아가게 하리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살피라.


승의 선가와 이씨 영혼이여, 만일 이 일대사인연으로 말하자면 지옥세계에 있는 자나 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세계에 있는 자를 가리지 않고 각기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침에서 저녁까지 저녁에서 아침까지 다니고 서며 앉고 누우며 움직이는 동안 배고프고 춥기도 하며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며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면서 어디서나 갖가지로 작용하는데, 다만 미혹과 깨침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즐거움을 누리는 이도 있고 항상 지독한 고통을 받는 이도 있어 두 경지가 같지 않다.


불자들이여, 이 한 점 신령하고 밝은 것 〔靈明〕 은 성인에 있다 하여 늘지도 않고 범부에 있다 하여 줄지도 않으며, 해탈하여 의지하는 곳이 없으며 활기가 넘쳐 막히는 일도 없다. 비록 형상도 없고 처소도 없으나 시방세계를 관통할 수 있고 모든 부처의 법계에 두루 들어간다. 물물마다 환히 나타나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고 버리더라도 언제나 있다. 한량없이 광대한 겁으로부터 나도 따라 나지 않고 죽어도 따라 죽지 않으며, 저승과 이승으로 오가지만 그 자취가 없다. 눈에 있으면 본다 하고 귀에 있으면 듣는다 하며, 6근에 두루두루 나타나되 확실하고 분명한 것이다.


불자들이여, 과연 의심이 없는가. 여기서 분명하여 의심이 없으면, 바른 눈이 활짝 열려 불조의 혜명(慧命)을 잇고 스승의 기용(機用)을 뛰어넘어 현묘한 도풍을 크게 떨칠 것이다. 만일 그래도 의심이 있으면 또 한 가지를 들어 남은 의심을 없애 주리니 자세히 보아라."


죽비를 들고 "이것을 보는가" 하고 한 번 내리치고는, "이 소리를 듣는가. 보고 듣는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인가?" 하셨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2. 신백대선사(申白大禪師)를 위해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모든 법은 인연을 따라 생겼다가 인연이 다하면 도로 멸한다. 63년 동안 허깨비 바다에서 놀다가, 인과를 모두 거두어 진 (眞) 으로 돌아갔나니, 근진 (根塵) 을 모두 벗고 남은 물건이 없어 손을 놓고 겁 밖의 몸으로 갔구나."

그 혼을 부르면서 말씀하셨다.

"신백 존령 (尊靈) 은 과연 이러한가. 과연 그러하다면 생사에 들고 남에 큰 자재를 얻을 것이다. 혹 그렇지 못하다면 마지막 한마디를 들으라."


 밤이 고요해 거듭 달을 빌리기 수고롭지 않나니

옥두꺼비 (玉蟾:달)  언제나 허공에 걸려 있네.

 夜靜不勞重借月 玉蟾常掛大虛中


23. 해제에 상당하여

 

태후전 (太后殿) 에서 가사 한 벌을 보내오다.


스님께서 법의를 들고 말씀하셨다.

"대유령 (大庾嶺)  꼭대기에서 들어도 들어지지 않을 때에는 다투어도 모자라더니, 놓아버려 깨달았을 때에는 양보해도 남는구나."


향을 사른 뒤에 말씀하셨다.

"천 분 성인도 전하지 못하던 것을 어찌 한 사람이 친히 전하겠는가. 대중은 아는가. 접고 펴기는 비록 내게 있으나 거두고 놓기는 그대에게 있다."


가사를 입고 법좌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이 자리는 많은 사람이 오르지도 못하였고 밟지도 못하였는데, 이 산승은 한 걸음도 떼지 않고 몸도 움직이지 않은 채 올라갈테니 대중은 자세히 보라."


스님께서는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가사자락을 거두고 자리를 펴고 앉아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이것은 주구(主句 인가, 빈구(賓句)인가. 파주구(把住句)인가, 방행구 (放行句) 인가. 대중은 가려내겠는가. 가려낼 수 있겠거든 당장 흩어지고, 가려내지 못하겠든 내 말을 들으라. 맨처음 한마디와 마지막 한 기틀 〔機〕 은 3세의 부처님네나 역대의 조사님네도 알지 못하는 것인데, 지금 대중의 면전에 들어 보이니 북을 쳐서 대중운력이나 하여라.


천년의 그림자 없는 나무가 지금은 밑 빠진 광주리가 되었다. 2천년 전에도 이러하였고 2천년 후에도 이러하며, 90일 전에도 이러하였고 90일 후에도 이러하다. 위로는 우러러야 할 부처도 없고 밑으로는 구제해야 할 중생이 없는데, 무슨 장기 (長期) ·단기 (短期) 를 말하며 무슨 결제·해제를 말하는가."


주장자를 들어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양쪽을 끊었고 가운데에도 있지 않다. 빈 손에 호미 들고 걸어가면서 물소를 탄다.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가는데 다리가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는구나."

할을 한 번 하고는 "안녕히 계시오"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4. 승하하신 대왕의 빈전 (殯殿) 에서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손 가는대로 향을 집어 향로에 사르는 것은 승하하신 대왕 각경선가(覺穀仙駕:공민왕을 말함) 께서 천성 (千聖) 의 이목을 활짝 열고 자기의 신령한 근원을 증득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향을 꽂으셨다. 스님께서는 법좌에 기대앉아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주장자를 들고 말씀하셨다.

"대왕은 아십니까. 45년 동안 인간세상에 노닐면서 삼한 (三韓) 의 주인이 되어 뭇 백성들을 이롭게 하다가, 이제 인연이 다해 바람과 불은 먼저 떠나고 흙과 물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대왕은 자세히 들으소서. 텅 비고 밝은 이 한 점은 흙이나 물에도 속하지 않고 불이나 바람에도 속하지 않으며, 과거에도 속하지 않고 현재에도 속하지 않았으며, 가는 것에도 속하지 않고 오는 것에도 속하지 않으며, 나는 것에도 속하지 않고 죽는 것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아무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금 어디로 가겠습니까?"


주장자를 들고는 "이것을 보십니까?" 하고 세 번 내리치고는 "이 소리를 들으십니까?" 하고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허공을 쳐부수어 안팎이 없어 한 티끌도 묻지 않고 당당히 드러났다. 몸을 뒤쳐 위음왕불(威音王佛) 뒤를 바로 뚫고 가시오. 둥근 달 차가운 빛이 법상 (法滅) 을 비춥니다."

향대를 한 번 내리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5. 납월 8일 한 밤의 법문 〔晩參〕 


나옹스님께서 자리에 오르자 동당·서당의 스님들이 문안인사를 드렸다.


스님께서는 죽비를 들고 말씀하셨다.

"산승이 방장실에서 나와 이 자리에 오르자, 시자도 인사하고 수좌도 인사하고 유나(維那)도 인사하였다. 인사가 다 끝났는데 또 무슨 일이 있는가?"

한 스님이 나와 말하였다.

"오늘은 납월(臘月) 8일입니다."

스님께서는 "대중 속에 들어가라" 하고 죽비를 들고 말씀하셨다.

"우리 집에 한 물건이 있는데 위로 보아도 머리가 없고 밑으로 보아도 꼬리가 없다. 해같이 밝고 옷칠같이 검으며 세계가 생기기 전이나 산하가 멸한 후에도 허공에 가득 차 있다. 3세의 부처님네도 그것을 어찌할 수 없고, 역대의 조사님네도 그것을 어찌할 수 없으며, 천하의 큰스님들도 그것을 어찌할 수 없다. 그대들은 어찌할 수 있겠는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죽비로 탁자를 한 번 내리치고는, "산산조각이 났도다. 안녕히 계시오

"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6. 경술 9월 16일 나라에서 시행한 공부선장(工夫選場)에서 법어를 내리다


스님께서는 법좌에 올라가 한참 있다가 말씀하셨다.


"고금의 격식을 깨부수고 범성의 자취를 모두 쓸어버리고 납승의 목숨을 끊어버리고 중생의 알음알이를 없애버려라. 죽이고 살리는 변통이 모두 때에 맞게 하는 데 있고 호령과 저울대가 모두 손아귀에 돌아간다. 3세의 부처님네도 그저 그럴 뿐이고 역대의 조사님네도 그저 그럴 뿐이며, 천하의 큰스님들도 그저 그럴 뿐이다. 산승도 다만 그런 법으로 우리 주상전하께서 만세 만세 만만세토록 색신 (色信) 과 법신 (法身) 이 무궁하시고 수명과 혜명(慧命)이 끝이 없기를 봉축하는 것이다. 바라건대 여러분도 모두 진실로 답안을 쓰고 부디 함부로 소식을 통하지 말라."


학인들이 문에 이르자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행은 지극한데 말이 지극하지 못하면 그것은 좋은 행이 될 수 없고, 말은 지극한데 행이 지극하지 못하면 그것은 좋은 말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말도 지극하고 행도 지극하다 하더라고 그것은 다 문 밖의 일이다. 문에 들어가는 한마디는 무엇인가?"

학인들은 모두 말없이 물러갔다.


입문삼구 (入門三句) 


문에 들어가는 한마디 〔入門句〕 는 분명히 말했으나

문을 마주한 한마디 〔當門句〕 는 무엇이며

문 안의 한마디 〔門裏句〕 는 무엇인가.

入門句分明道

當門句作�生

門裏句作�生


삼전어 (三轉語) 


산은 어찌하여 묏부리에서 그치고

물은 어찌하여 개울을 이루며

밥은 어찌하여 흰 쌀로 짓는가.

山何嶽邊止

水何到成渠

飯何白米造


17일에 법어를 내리다


스님께서 향을 사른 뒤에 법좌에 올라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의심덩이가 풀리는 곳에는 마침내 두 가지 풍광이 없고, 눈구멍이 열리는 때에는 한 항아리의 봄빛이 따로 있으니 비로소 일월의 새로움을 믿겠고 바야흐로 천지의 대단함을 알 것이다. 그런 뒤에 반드시 위쪽의 관문을 밟고 조사의 빗장을 쳐부수면 물물마다 자유로이 묘한 이치를 얻고 마디마디 종지와 격식을 뛰어넘을 것이다. 한 줄기 풀로 장육금신(丈六金身)을 만들고 장육금신으로 한 줄기 풀을 만드니, 만드는 것도 내게 있고 쓸어버리는 것도 내게 있으며, 도리를 말하는 것도 내게 있고 도리를 말하지 않는 것도 내게 있다. 왜냐하면 나는 법왕이 되어 법에 있어서 자재하기 때문이다."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과연 그런 납승이 있다면 나와서 말해 보라. 나와서 말해 보라."


학인들이 문에 이르자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한 걸음 나아가면 땅이 꺼지고 한 걸음 물러나면 허공이 무너지며,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나지도 않으면 숨만 붙은 죽은 사람이다. 어떻게 걸음을 내딛겠는가?"

학인들은 모두 말없이 물러갔다.


27. 공부십절목 (工夫十節目) 


1. 세상 사람들은 모양을 보면 그 모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모양과 소리를 벗어날 수 있을까.

2. 이미 소리와 모양에서 벗어났으면 반드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 그 바른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

3. 이미 공부를 시작했으면 그 공부를 익혀야 하는데 공부가 익은 때는 어떤가.

4. 공부가 익었으면 나아가 자취 〔鼻軫〕 를 없애야 한다. 자취를 없앤 때는 어떤가.

5. 자취가 없어지면 담담하고 냉랭하여 아무 맛도 없고 기력도 전혀 없다. 의식이 닿지 않고 마음이 활동하지 않으며 또 그때에는 허깨비몸이 인간세상에 있는 줄을 모른다. 이쯤 되면 그것은 어떤 경계인가.

6. 공부가 지극해지면 동정 (動靜) 에 틈이 없고 자고 깸이 한결같아서,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움직여도 잃어지지 않는다. 마치 개가 기름이 끓는 솥을 보고 핥으려 해도 핥을 수 없고 포기하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나니, 그때에는 어떻게 해버려야 하겠는가.

7. 갑자기 120근 되는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아서 단박 꺾이고 단박 끊긴다. 그때는 어떤 것이 그대의 자성 (自性) 인가.

8. 이미 자성을 깨쳤으면 자성의 본래 작용은 인연을 따라 맞게 쓰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본래의 작용이 맞게 쓰이는 것인가.

9. 이미 자성의 작용을 알았으면 생사를 벗어나야 하는데, 안광 (眼光) 이 땅에 떨어질 때에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10. 이미 생사를 벗어났으면 가는 곳을 알아야 한다. 4대는 각각 흩어져 어디로 가는가.


28. 왕사(王師)로 봉숭(封崇) 되는 날 설법하다

    신해년 8월 26일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 불자를 들고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이 산승의 깊고 깊은 뜻을 아는가. 그저 이대로 흩어져버린다 해도 그것은 많은 일을 만드는 것인데, 거기다가 이 산승이 입을 열어 이러쿵저러쿵 지껄이기를 기다린다면 흰 구름이 만 리에 뻗치는 격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말로는 사실을 그대로 표현할 수 없고 글로는 기연에 투합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니,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뜻을 잃고 글귀에 얽매이는 이는 어둡다. 또한 마음으로 헤아리면 곧 어긋나고 생각을 움직이면 곧 어긋나며, 헤아리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면 물에 잠긴 돌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조사 문하에서는 길에서 갑자기 만나면 그대들이 몸을 돌릴 곳이 없고 영(令)을 받들어 행하면 그대들이 입을 열 곳이 없으며, 한 걸음 떼려면 은산철벽(銀山鐵璧) 이요, 눈으로 바라보면 전광석화(電光石火)인 것이다. 3세의 부처님도 나와서는 그저 벼랑만 바라보고 물러섰고, 역대의 조사님네도 나왔다가는 그저 항복하고 몸을 감추었다. 만일 쇠로 된 사람이라면 무심코 몸을 날려 허공을 스쳐 바로 남산의 자라코 독사를 만나고, 동해의 잉어와 섬주(曳州)의 무쇠소〔鐵牛〕 를 삼킬 것이며 가주(圈州)의 대상(大像)을 넘어뜨릴 것이니, 3계도 그를 얽맬 수 없고 천 분 성인도 그를 가두어둘 수 없다. 지금까지의 천차만별이 당장 그대로 칠통팔달이 되어, 하나하나가 다 완전하고 낱낱이 다 밝고 묘해질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임금님의 은혜와 부처님의 은혜를 한꺼번에 갚

을 수 있을 것이다."


주장자를 들고 "그렇지 못하다면 이 주장자 밑의 잔소리 〔註脚〕 를 들으라" 하고 내던지셨다.


29. 갑인 납월 16일 경효대왕(敬孝大王) 수륙법회에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죽비를 들고 탁자를 한 번 내리치고는 말씀하셨다.


"승하하신 대왕 각경선가는 아십니까. 모르겠으면 내 말을 들으십시오. 이 별 〔星兒〕 은 무량겁의 전부터 지금까지 밝고 신령하고 고요하고 맑으며, 분명하고 우뚝하며 넓고 빛나서 온갖 법문과 온갖 지혜와 온갖 방편과 온갖 훌륭함과 온갖 행원 (行願) 과 온갖 장엄이 다 이 한 점 (點) 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한 점은 6범에 있다 해서 줄지도 않고 4성에 있다 해서 늘지도 않으며, 4대가  이루어질 때에도 늘지 않고 4대가 무너질 때에도 줄지 않는 것으로서 지금 이 회암사에서 분명히 제 말을 듣고 있습니다.


말해 보십시오. 이 법을 듣는 그것은 범부인가 성인인가, 미혹한 것인가 깨달은 것인가.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 없는 것인가 있는 것인가, 결국 어디 있는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탁자를 한 번 내리치고는, "그 자리 〔當處〕 를 떠나지 않고 항상 맑고 고요하나 그대가 찾는다면 보지 못할 것이오" 하고 죽비를 내던지고는 자리에서 내려 오셨다.


육도중생에게 설법하다


스님께서 자리를 펴고 앉아 죽비를 가로 잡고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만일 누구나 부처의 경계를 알려 하거든, 부디 마음〔意〕을 허공처럼 깨끗이 해야 한다. 망상과 모든 세계를 멀리 떠나고, 어디로 가나 그 마음 걸림이 없게 해야 한다. 승하하신 대왕 각경선가를 비롯하여 6도에 있는 여러 불자들은 과연 마음을 허공처럼 깨끗이 하였는가. 그렇지 못하거든 다시 이 잔소리를 들으라.


이 정각 (正覺) 의 성품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위로는 모든 부처에서 밑으로는 여섯 범부에 이르기까지 낱낱에 당당하고 낱낱에 완전하며, 티끌마다 통하고 물건마다 나타나 닦아 이룰 필요없이 똑똑하고 분명하다. 지옥에 있는 이나 아귀에 있는 이나 축생에 있는 이나 아수라에 있는 이나 인간에 있는 이나, 천상에 있는 이나, 다 지금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모두 이 자리에 있다. 각경 선가와 


여러 불자들이여!"

죽비를 들고는 "이것을 보는가" 하고는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이 소리를 듣는가. 분명히 보고 똑똑히 듣는다면 말해 보라.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부처님 얼굴은 보름달 같고, 해 천 개가 빛을 놓는 것 같다."

죽비로 향대를 한 번 내리치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30. 병진 4월 8일 결제에 상당하여


스님께서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법좌에 올라 불자를 세우고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집안의 이 물건은 신기할 것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으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되, 해같이 밝고 옻같이 검다. 항상 여러분이 활동하는 가운데 있으나 활동하는 가운데서는 붙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산승이 오늘 무심코 그것을 붙잡아 여러분 앞에 꺼내 보이니, 여러분은 이것을 아는가? 안다 해도 둔근기인데 여기다 의심까지 한다면 나귀해 〔驢年〕 에 꿈에서나 볼 것이다. 그러므로 선 (禪) 을 전하고 교 (敎) 를 전하는 것은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요, 경론을 말해 주는 것도 눈 안에 금가루를 넣는 것이다.


산승은 오늘 말할 선도 없고 전할 교도 없소. 다만 3세의 부처님네도 말하지 못하고 역대의 

조사도 전하지 못했으며, 천하의 큰스님들도 뚫지 못한 것을 오늘 한꺼번에 집어 보이는 것

이다."


주장자를 가로잡고 말씀하셨다.

"알겠는가. 당장에 마음을 비울 뿐만 아니라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는 주장자를 던지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 짧은 글


1. 승종선화(勝宗禪和)에게 주는 글


이 한 점 (點) 은 전연 자취 〔巴鼻〕 가 없어, 3세의 부처님네도 말하지 못하고 역대의 조사님네도 전하지 못했다. 말할 수 없고 전할 수 없다면 어디에다 붓을 대고 어디에다 말을 붙이겠는가. 말하려 하나 말로는 할 수 없으니 숲 속에서 잘 생각하여라.


2. 일주수좌(一珠首座)에게 주는 글


이 큰 일을 기필코 해결하려거든 반드시 큰 신심을 내고 견고한 뜻을 세워, 지금까지 배워서 안 불법에 대한 견해를 싹 쓸어 큰 바다 속에 버리고 다시는 꺼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8만 4천의 미세한 생각을 한 번 앉으면 그 자리에서 끊어버리고, 그저 하루종일 행주좌와하는 중에 항상 화두를 들어야 한다. 한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조주스님은 `없다 〔無〕 '고 하였다.


여기서 마지막 한마디 힘을 다해 들되, 언제나 들고 언제나 움켜잡으면, 움직이거나 고요한 가운데서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자나깨나 늘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이 될 것이다. 그 경지에 이르러서는 그저 때만 기다려라.


혹 들어도 냉담하고 전연 재미가 없어 부리를 꽂을 곳이 없고 힘을 붙일 데가 없으며, 알아지는 점이 없고 어찌할 수가 없더라도 부디 물러서지 말라. 그때야말로 그 사람이 힘을 붙일 곳이요 힘을 덜 곳이며, 힘을 얻을 곳이요 신명을 놓아버릴 곳이다.


3. 굉장주(宏藏主)에게 주는 글


이 더러운 가죽 포대 속에 한 물건이 있는데, 위로는 하늘을 떠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며 언제나 사람들이 활동하는 가운데 있지만 활동하는 가운데서는 붙잡을 수가 없다. 이것을 비로자나 법신의 주인이라 한다.


굉스님은 아는가. 안다 해도 몽둥이 30대를 맞을 것이며, 모른다 해도 30대를 맞을 것이니 결국 어찌하겠는가? 이 나옹도 30대를 맞아야 하겠다. 말해 보라. 허물이 어디 있는가? 빨리 말하라.


4. 각성선화 (覺成禪和) 에게 주는 글


진실로 이 일대사인연을 기어코 이루려 하거든 결정적인 믿음을 세우고 견고한 뜻을 내어, 하루종일 행주좌와하는 중에 늘 참구하던 화두를 들어야 한다. 언제나 들고 늘 의심하면 어느 새 화두가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의심덩이가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되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때는 몸을 뒤쳐 한 번 내던지고 다시는 부질없고 쓸데없는 말을 말아야 한다.


혹 그렇게 되지 않아 어떤 때는 화두가 분명하고 어떤 때는 분명하지 않으며, 어떤 때는 나타나고 어떤 때는 나타나지 않으며, 어떤 때는 있고 어떤 때는 없으며, 어떤 때는 틈이 있고 어떤 때는 틈이 없거나 하면 그것은 신심과 의지가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월을 허송하면서 헛되이 남의 보시만 받으면 반드시 뒷날 염라대왕이 음식과 재물을 계산하게 될 것이다. 이른바 부질없이 세상에 와서 한번 만났을 뿐이라 하였으니, 어느 겨를에 쓸데없는 말을 하고 짧은 소리·긴소리하며, 이쪽을 가리키고 저쪽을 가리키겠는가. 생각하고 생각하여라.


5. 운선자 (雲禪子) 가 병이 있다 하기에 그에게 글을 주다


그대의 병이 중하다 들었는데 그것은 무슨 병인가? 몸의 병인가, 마음의 병인가?

만일 몸의 병이라면 몸은 흙·물·불·바람의 네 가지 요소가 거짓으로 모여 된 것으로서, 그 4대는 각각 주관하는 바가 있는데, 어느 것이 그 병인가? 만일 마음의 병이라면 마음은 허깨비 〔幻化〕  같은 것이어서 비록 거짓 이름은 있으나 그 바탕은 실로 공하다. 그렇다면 병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만일 일어난 곳을 캐보아도 찾을 수 없다면 지금의 그 고통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또 고통을 아는 그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살피되 살펴보고 또 살펴보면 갑자기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니 이것이 내 바람이다. 부디 부탁하고 부탁하노라.


6. 지득시자 (志得侍者) 에게 주는 글


그대가 진실로 이 일대사인연을 참구하려거든 하루종일 행주좌와하는 가운데 `모두 타서 흩어졌는데 어느 것이 내 성품인가?'라는 화두를 들되, 언제나 들고 항상 의심하여 고요한 데서나 시끄러운 곳에서나 부디 틈이 있게 하지 말라. 자거나 깨거나 한결같아야 하고 어디서나 언제나 분명하며, 기뻐하는 때나 성내는 때나 화두가 다시 들지 않아도 저절로 나타나야 한다. 그런 경지에 실제로 이르면 의심덩이가 부서지고 바른 눈이 열릴 때가 가까워진 것이다.


혹 그렇지 못하여 낮이나 밤이나 되는대로 하고 떼를 지어 다니면 혼침과 산란이 섞이고 순간순간에 어긋나 온갖 선악과 성색에 끄달릴 것이다. 그리하여 금년도 그렇게 보내고 내년도 그렇게 갈 것이니, 만일 그렇다면 아무리 미륵이 하생하기를 기다려도 붙잡을 때가 없을 것이다.


7. 상국 목인길(相國 睦仁吉)에게 주는 글


이 일은 재가·출가에도 있지 않고 또 초참(初參) ·후학(後學)에도 있지 않으며, 또 여러 생의 훈습이나 수행에도 있지 않습니다. 갑자기 깨치는 것은 오직 당사자의 한 생각 분명한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믿음은 도의 근원이자 공덕의 어머니여서 일체의 선법 (善法) 을 자라게 한다. 믿음은 지혜의 공덕을 자라게 하고, 믿음은 반드시 여래의 자리에 이르게 한다' 한 것입니다.


부디 상공도 집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지휘할 때나 관에서 공사를 처리할 때나, 손님을 영접하여 담소를 나누거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거나, 다니고 서고 앉고 눕거나 결국 `이것은 무엇인가' 하십시오. 다만 이렇게 끊이지 않고 참구하고 쉬지 않고 살피면 어느 새 크게 웃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그리하여 이 일이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집을 떠나 고행하고 계율을 지니는, 방석과 대의자 〔竹倚〕 에 있지 않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8. 득통거사(得通居士)에게 주는 글


만일 그대가 이 일을 참구하려 한다면, 그것은 승속에도 있지 않고 남녀에도 관계없으며, 초참·후학에도 관계없고 또 여러 생의 훈습에도 있지 않는 것이오, 오직 당사자의 한 생각 진실하고 결정적인 믿음에 있는 것이오. 그대가 이미 이렇게 믿었거든 다만 하루 스물 네 시간 무엇을 하든지 언제나 화두를 드시오.


한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니 `없다' 하였다는, 이 마지막 한마디를 힘을 다해 드시오. 언제나 끊이지 않고 들어 고요하거나 시끄러운 속에서도 공안이 앞에 나타나며, 자나깨나 그 화두가 분명하여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의심덩이가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되면, 마치 물살 급한 여울의 달과 같아서,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움직여도 잃어지지 않을 것이오. 진실로 그런 경지에 이르면 세월을 기다리지 않고도 갑자기 한 번 온몸에 땀이 흐르게 되리니, 그때는 잠자코 스스로 머리를 끄덕거릴 것이오. 간절히 부탁하오, 부탁하오.

   

 9. 상국 이제현(相國 李齊賢)에게 답함


주신 편지 받았습니다. 상국께서 떠나실 때 병에 대해 하신 말이 가볍지 않았기 때문에, 산승도 구업을 꺼려하지 않고 우리 집의 더러움을 드러내었습니다.


이 일은 승속에도 관계없고 노소에도 관계없으며, 초참·후학에도 관계없고, 오직 당사자의 진실하고 결정적인 신심에 있을 뿐입니다. 3세의 부처님네나 역대의 조사님네도 다 결정적인 신심에 의해 도과 (道果) 를 성취하셨으므로, 이것에 의하지 않고 정각 (正覺) 을 이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여서 일체의 선법을 자라게 한다' 하시고, 또 `믿음은 지혜의 공덕을 자라게 하고, 믿음은 반드시 여래의 자리에 이르게 한다' 하셨습니다.


상국께서는 젊어서 과거에 높이 올라 한 나라의 정승이 되고 또 제일가는 문장가로서 나라의 큰 보배가 되셨는데, 또 우리 불법문중에 마음을 두시니, 고금의 현인들에 비해 백천만배나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법에 마음을 두었더라도 금생에 깨치지 못하면, 아마 도력이 업력을 이기지 못해 죽고 나서는 가는 곳마다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철저히 깨치지 못했으면 꼭 하고야 말겠다는 큰 뜻을 일으켜 옷 입고 밥 먹고 담소하는 하루 스물 네 시간 어디서나 그 본래면목을 참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이의 말에, `금생에 이 세상에 나와 이런 모습이 된 것은 바로 부모가 낳아준 면목이지마는, 어떤 것이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본래면목인가?' 하였습니다. 다만 이렇게 끊이지 않고 참구하여, 생각의 길이 끊어지고 의식이 움직이지 않아 아무 맛도 없고 더듬을 수도 없는 데 이르러 가슴속이 갑갑하더라도 공 (空) 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이야말로 상국께서 힘을 얻을 곳이요 힘을 더는 곳이며, 또 안신입명(安身立命) 할 곳입니다. 간절히 부탁하고 부탁합니다.


다시 답함


전에 산매화를 보냈을 때 선물을 주시고 또 회답에 무자 (無字)  화두를 드신다 하니, 산승은 상국께서 일찍부터 `무'자를 참구하였기 때문에 친히 소식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들으매 다시 묻는 말에 이렇게 공부하리라 하시니 도리어 근심스럽고 놀랍습니다. 부디 마음을 그대로 두시기 바랍니다. 옛사람들은 한마디나 반마디를 내려 사람들로 하여금 제자리를 잡고서 움직이지 않게 하였습니다. 비록 일상생활에 천차만별한 일이 있더라도 뜻이 위에만 있어 다른 것을 따라 변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다른 화두를 참구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물며 다른 화두를 들 때에도 `무'자를 참구해 떠나지 않는다면 반드시 `무'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익숙해질 것입니다. 부디 다른 화두로 바꾸어 참구하지 말고 다만 하루 스물 네 시간 무엇을 하든지 늘 드십시오.


한 스님의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없다 〔無〕 ' 하였다는데 `무'라고 한 마지막 한마디를 힘을 다해 들되, 부디 언제 깨치고 깨치지 못할까를 기다리지 말고 재미가 있고 없음에 신경쓰지도 말며, 또 힘을 얻고 얻지 못함에도 관계치 마십시오. `무'자 그것만을 오로지 들어 그대로 나아가면, 들지 않아도 화두가 저절로 들리고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의식이 작용하지 않으며 하나도 재미가 없어 마치 모기가 무쇠소의 등에 올라간 것 같더라도 공 (空) 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거기는 과거의 여러 부처님과 조사님이 몸과 마음을 던져버린 곳이요, 또 상국께서 힘을 얻고 힘을 덜어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될 곳입니다. 거기서 몸을 뒤쳐 한 번 던져버리면 비로소 도란, 첫째는 짓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쉬지 않는 것임을 알 것입니다.


한 주먹에 황학루 (黃鶴樓) 를 때려눕히고

한 발길로 앵무주 (鵡洲) 를 차서 뒤엎는다

의기 (意氣) 에 의기를 더 보태니

풍류스럽지 않은 곳도 풍류스럽구나.

一拳拳倒黃鶴樓 一  蒜鸚鵡洲

有意氣時添意氣 不風流處也風流


10. 지신사 염흥방(知申事 廉興)에게 주는 글


진정 이 큰 일을 참구하려면 승속과 남녀를 묻지 말고 상중하의 근기도 묻지 말며 또 초참·후학을 묻지 마십시오. 그것은 오직 당사자가 결정적인 믿음을 세우고 견고한 뜻을 내는 데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여서 모든 선법을 자라게 한다' 하셨고 또, `믿음은 지혜의 공덕을 자라게 하고, 믿음은 반드시 여래의 자리에 이르게 한다' 하셨습니다.


공(公)은 젊어서 높은 벼슬에 올랐고 임금님을 만나 사무가 매우 번거로운 때인데도 우리 불법에 대해 의심없는 확실한 믿음으로 마음 닦는 방법을 물으시니, 어찌 세간 출세간을 막론하고 가장 역량있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마음 닦는 법을 따로 구하지 마십시오. 내가 광명사 (廣明寺) 에 있을 때 공에게 말씀드린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하루 스물 네 시간을 들되, 어디서나 언제나 버리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끊지 않고 들며 쉬지 않고 참구하여 조금도 틈을 주지 말고, 다닐 때도 그저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섰을 때도 그저 `이것이 무엇인가' 하며, 앉았거나 누웠을 때도 그저 `이것이 무엇인가' 하십시오. 옷 입고 밥 먹으며 대소변 보고 손님을 영접하며, 나아가서는 공무를 처리할 때나 임금님 앞에서 나아가고 물러날 때나 붓을 들고 글을 쓸 때나 필경 `이것이 무엇인가' 하십시오.


그저 이렇게 끊임없이 들고 참구하다 보면 어느 새 들지 않아도 화두가 저절로 들리고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되어, 밥을 먹어도 밥인 줄 모르고 차를 마셔도 차인 줄 모르며, 또 이 허깨비몸이 인간에 있는 줄도 모르게 될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같고 자나깨나 매한가지인 곳에서 몸을 뒤쳐 한 번 던지십시오. 그런 경지에 이르면 비로소 관직이나 속인의 모양을 바꾸지 않고 화택 (火宅) 을 떠나지 않고라도, 서천 (西天) 의 스물 여덟 분 조사와 동토 (東土) 의 여섯 조사와 천하의 선지식들이 전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 본유 (本有) 의 일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간절히 부탁하고 부탁합니다.


11. 세상을 탄식함 〔歎世〕 · 4수 


1.

어지러운 세상 일 언제나 끝이 날꼬

번뇌의 경계는 갈수록 많아지네

미혹의 바람은 땅을 긁어 산악을 흔드는데

업의 바다는 하늘 가득 물결을 일으킨다

죽은 뒤의 허망한 인연은 겹겹이 모이는데

눈앞의 광경은 가만히 사라진다

구구히 평생의 뜻을 다 부려 보았건만

가는 곳마다 여전히 어찌할 수 없구나.

世事紛紛何曰了 塵勞境界倍增多

迷風刮地搖山嶽 業海漫天起浪波

身後妄緣重結集 目前光景暗消磨

區區役盡平生圍 到地依先不輓何


2.

눈 깜박이는 사이에 세월은 날아가버리나니

젊은 시절은 백발이 되었구나

금을 쌓아두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 어찌 그리 미련한고

뼈를 깍으며 생 (生) 을 꾸려가는 것 진정 슬퍼라

흙을 떠다 산을 북돋움은 부질없이 분주떠는 일이요

표주박으로 바닷물 떠내는 것 진실로 그릇된 생각이다

고금에 그 많은 탐욕스런 사람들

지금에 와서 아무도 아는 사람 없구나.

乏眼光陰賑過去 白頭換却少年時

積金候死愚何甚 刻骨營生事可悲

捧土培山徒自迫 持楞酌海諒非思

古今多少貪 客 到此應無一點知


3.

얼마나 세상 티끌 속에서 빠져 지냈나

백가지 생각이 마음을 얽어 정말로 시끄러운데

5온 (五睛) 의 빽빽한 숲은 갈수록 우거지고

6근 (六根) 의 어두운 안개는 다투어 나부끼네

명리를 구함은 나비가 불에 들고

성색에 빠져 즐김은 게가 끓는 물에 떨어지네

쓸개가 부서지고 혼이 나가는 것 모두 돌아보지 않나니

곰곰이 생각하면 누구를 위해 바빠하는가.

幾多汨沒紅塵裏 百計 心正擾攘

五睛稠林增霽鬱 六根冥務競飄 

沽名苟利蛾投焰 嗜色 聲蟹落湯

膽碎魂亡渾不顧 細思端的爲誰忙


4.

죽고 나고 죽고 나며, 났다가 다시 죽나니

한결같이 미쳐 헤매며 쉰 적이 없었네

낚싯줄 밑에 맛난 미끼를 탐할 줄만 알거니

어찌 장대 끝에 굽은 낚시 있는 걸 알리

백년을 허비하면서 재주만 소중히 여기다가

오래고 먼 겁의 허물만 이뤄놓네

업의 불길이 언제나 타는 곳을 돌이켜 생각하나니

어찌 사람들을 가르쳐 특히 근심하지 않게 하랴.

死死生生生復死 狂迷一槪不曾休

只知線下貪香餌 那識竿頭有曲鈞

喪盡百年重伎倆  成久遠劫愆尤

蒜思業火長燃處 寧不敎人特地愁


12. 지공화상(指空和尙) 기골(起骨) 


"밝고 텅 빈 한 점은 아무 걸림이 없어, 한 번 뒤쳐 몸을 던지니 얼마나 자유롭소."

죽비로 탁자를 한 번 내리치며 할을 한 번 하고는 `일으켜라!' 하셨다.


입탑 (入塔) 


스님께서 영골을 받들고 말씀하셨다.


"서천의 108대 조사 지공대화상은 3천 가지 몸가짐을 돌아보지 않았는데 8만 가지 미세한 행에 무슨 신경을 썼는가. 몸에는 언제나 순금을 입고* 입으로는 불조를 몹시 꾸짖었으니, 평소의 그 기운은 사방을 눌렀고 송골매 같은 눈은 가까이하기 어려웠다. 원나라에서 여러 해를 잠자코 앉아 인천 (人天) 의 공양을 받다가 하루 아침에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전하매 천룡팔부가 돌아오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아침에 정성스레 탑을 세우고 삼한(三韓) 땅에 모시어 항상 편안하게 하려는 것이나 그 법신은 법계에 두루해 있다. 말해 보라. 과연 이 탑 안에 거두어 넣을 수 있겠는가. 만일 거두어 넣을 수 없으면 이 영골은 어디 가서 편안히 머물겠는가. 말할 수 있는 이는 나와서 말해 보라. 나와서 말해 보라. 없다면 산승이 스스로 말하겠다."


할을 한 번 한 뒤에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기는 오히려 쉽지만, 겨자씨를 수미산에 넣기는 매우 어렵다."


13. 각오선인 (覺悟禪人) 에게 주는 글


생각이 일고 생각이 멸하는 것을 생사라 하는데, 생사하는 그 순간순간에 부디 힘을 다해 화두를 들어라. 화두가 순일하면 일고 멸함이 곧 없어지는데 일고 멸함이 없어진 그 곳을 신령함 〔靈〕 이라 한다. 신령함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그것을 무기 (無記) 라 하고, 신령함 가운데 화두에 어둡지 않으면 그것을 신령함이라 한다. 즉 이 텅 비고 고요하며 신령스럽게 아는 것은 무너지지도 않고 잡된 것도 아니니, 이렇게 공부하면 멀지 않아 이루어질 것이다.


14. 지여상좌(智如上座)를 위해 하화 (下火)하다


세 가지 연 〔三緣〕 이 모여 잠깐 동안 몸 〔有〕 을 이루었다가 4대가 떠나 흩어지면 곧 공(空)으로 돌아간다. 37년을 허깨비 바다에서 놀다가 오늘 아침 껍질을 벗었으니 흉년에 쑥을 만난 듯 기쁠 것이다. 대중스님네여, 지여상좌는 어디로 갔는지 알겠는가. 목마를 세워 타고 한 번 뒤쳐 구르니, 크고 붉은 불꽃 속에서 찬 바람을 놓도다.


15. 두 스님을 위해 하화하다


"혜징 (慧澄)  수좌와 지인 (志因)  상좌여, 밝고 신령한 그 한 점은 날 때에도 분명하여 남을 따르지 않고, 죽을 때에도 당당하여 죽음을 따르지 않는다. 생사와 거래에 관계없이 그 자체는 당당히 눈앞에 있다."


횃불로 원상 (圓相) 을 그리면서 말씀하셨다.

"대중스님네여, 이 두 상좌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57년 동안 허깨비 세상에서 놀다가 오늘 아침에 손을 떼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가운데 소식을 누가 아는가. 불빛에 함께 들어가나 감출 곳이 없구나."


16. 신백대선사를 위해 뼈를 흩다


큰 들판에 재가 날으매 그 뼈마디는 어디 갔는가. 깜짝하는 한 소리에 비로소 뇌관 (牢關) 에 이르렀다. 앗! 한 점 신령스런 빛은 안팎이 없고, 오대산 하늘을 둘러싼 흰 구름은 한가하다.


17. 지보상좌(志普上座)를 위해 하화하다


근본으로 돌아갈 때가 바로 지금이거니, 도중에 머물면서 의심하지 말아라. 별똥이 튀는 곳에서 몸을 한 번 뒤쳐, 구품의 연화대로 자유로이 돌아가라.


18. 숙녕옹주 묘선(淑寧翁主 妙善)에게 드리는 글


이 한 가지 큰 일을 성취하려면 그것은 승속이나 남녀나 초기 (初機) ·후학 (後學) 에 있지 않고, 오직 당사자의 마지막 진실한 한 생각에 있을 뿐입니다. 제가 옹주를 보매 천성이 남과 다른 데가 있어, 본래부터 사심이나 의심이나 미혹한 마음이 없고, 오직 전심으로 더 없는 〔無上〕  보리를 구하려는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이 어찌 과거 무량겁으로부터 선지식을 가까이하여 반야의 바른 법을 훈습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옛사람의 말에, `장부란 남자 여자의 형상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요, 네 가지 법 〔四法〕 을 갖추면 그를 장부라 한다' 하였습니다. 네 가지 법이란 첫째는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것이요, 둘째는 바른 법을 듣는 것이며, 셋째는 그 뜻을 생각하는 것이요, 넷째는 그 말대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법을 갖추면 참으로 장부라 하고, 이 네 가지 법이 없으면 비록 남자의 몸이라 하더라도 장부라 할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옹주님도 이 말을 확실히 믿고 그저 날마다 스물 네 시간 행주좌와의 4위의 (四威儀)  속에서 오직 본래 참구하던 화두만을 들되 끊이지 않고 들며 쉬지 않고 의심하면 고요하거나 시끄러운 가운데서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되며, 자나깨나 화두가 앞에 나타나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고 일어나려 해도 일어나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경지에 이르러 모르는 사이에 몸을 뒤쳐 한 번 내던지면, 거기는 여자의 몸을 바꾸어 남자가 되고 남자 몸을 바꾸어 부처를 이루는 곳이 될 것입니다. 간절히 부탁하고 부탁합니다.


19. 매씨 (妹氏) 에게 답함


나는 어려서 집을 나와 햇수도 달수도 기억하지 않고 친한 이도 먼 이도 생각하지 않으며, 오늘까지 도 (道) 만을 생각해 왔다. 인의 (仁義) 의 도에 있어서는 친하는 정과 사랑하는 마음이 없을 수 없지마는, 우리 불도에서는 그런 생각이 조금만 있어도 큰 잘못이다. 이런 뜻을 알아 부디 친히 만나겠다는 마음을 아주 끊어버려라.


그리하여 하루 스물 네 시간 옷 입고 밥 먹고 말하고 문답하는 등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항상 아미타불을 간절히 생각하여라. 끊이지 않고 생각하며 쉬지 않고 기억하여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생각나는 경지에 이르면, 나를 기다리는 마음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헛되이 6도 (六道) 에서 헤매는 고통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간절히 부탁하여 게송으로 말하겠다.


아미타불 어느 곳에 계시는가

마음에 붙여두고 부디 잊지 말아라

생각이 다하여 생각 없는 곳에 이르면

여섯 문 〔六門〕 에서 언제나 자금광을 뿜으리.

阿邇陀佛在何方 着得心頭切莫忘

念到念窮無念處 六門常放紫金光


20. 대어 (對語)


무제(武帝)가 달마에게 "내 앞에 있는 이는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달마가"모른다"고 대답하니 무제가 말이 없었다. 이에 대해 보녕 (保寧) 스님은 대신해 혀를 내어보였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들려 주고는 "천지가 하나로 통한다" 하셨다.


태종(太宗)이 한 스님에게 "어디서 오시오" 하고 묻자 그 스님이 "와운 (臥雲) 에서 옵니다" 하니 왕은 "와운은 궁벽한 곳이라 천자에게 조회하지 않는데 무엇하러 왔는가" 하였다. 이에 대해 보녕스님이 대신해 말하기를, "밝음을 만나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였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들려 주고는 "정치가 잘 되는데 누가 달아나겠는가" 하셨다.


적(寂) 대사가 삼계도(三界圖)를 올렸을 때 임금이 묻기를, "나는 어느 세계에 있습니까?" 하니 적대사는 대답이 없었다. 보녕스님이 대신해 말하기를, "폐하께서야 어디로 가신들 누가 존칭하지 않겠나이까" 하였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들려 주고는 "합장하고 몸을 굽히는데 누가 우러러보지 않겠는가" 하셨다.


고사인 (高舍人) 이 한 스님에게 "시방세계가 모두 부처라면 어느 것이 보신 (報身) 이며 어느 것이 법신 (法身) 입니까?" 하고 물었다. 보녕스님이 그 스님을 대신해서 "사인님, 다시 누구냐고 물어 보십시오" 하였다. 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 주고는 "비구니 〔師姑〕 는 여자로 된 것이니라" 하셨다.


설봉(雪峰) 스님이 덕산(德山) 스님에게 "옛부터 내려오는 종승 (宗乘) 의 일에 저도 한 몫이 있습니까?" 하였다. 덕산스님이 때리면서, "무어라고 말하는가?" 하니 설봉스님은 말이 없었다. 보녕스님이 대신해 말하기를, "가슴을 치고 곧 나가라" 하였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들려 주고는 "발을 밟고 나가라" 하셨다.


남전(南泉) 스님이 양흠(良欽)에게 물었다.

"공겁 (空劫)  중에도 부처가 있는가?"

양흠이 대답하였다.

"있습니다."

"그는 어떤 부처인가?"

"양흠입니다."

"어느 세계에 사는가?"

양흠이 말이 없었다.

보녕스님이 대신해 말하기를, "선상(禪滅)을 한 바퀴 돌고 나가라" 하였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들려 주고는 "어느 세계에 사는가?" 하셨다.


21. 감변 (勘辨) 


스님께서 한 좌주 (座主) 에게 물었다.

"교가 (敎家) 에서는 일시불 (一時佛) 을 말하는데, 그 부처는 지금 어디 있는가?"

좌주가 어물거리자 스님께서 할을 한 번 하고 나가다가 다시 좌주를 불렀다. 좌주가 머리를 돌리자 스님께서 "알았는가?" 하니 좌주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스님께서 "더 맞아야겠구나" 하니 좌주는 절을 하였다.


스님 셋이 와서 절하는 것을 보고 스님께서 물었다.

"세 사람이 동행하면 반드시 하나는 지혜가 있을 것이니, 지혜로 이르지 못하는 경계를 한마디 해보아라."

그 스님이 말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는 말에 있지 않다. 둘째 스님은 어떤가?"

그 스님도 말이 없자 스님께서는 "셋째 칠통 (漆桶) 은 어떤가?" 하셨다.

그 스님도 역시 말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노승이 스님네에게 감파 (勘破) 당했소. 앉아서 차나 드시오."


스님께서 한 도사 (道士:老莊) 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호주 (毫州) 에서 옵니다."

"그대가 호주에서 온다면 노자 〔老君〕 를 보았는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대 눈이 어떤가?"

도사가 절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노자가 석가에게 절하는구나."


22. 착어 (着語)


스님께서 "산 밑에 한 조각 쓸데없는 밭이다" 하신 옛 분의 말씀을 들려 주고 이에 대해 말씀하셨다.

"물건이 주인을 보고 눈을 번쩍 뜨고, 차수 (叉手) 하고 간절히 조옹 (祖翁) 에게 묻는구나."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자기 집의 본래 계약서는 어디다 두고서 몇 번이나 팔았다가 도로 사는가."

또 말씀하시기를, "경쇠소리 끊어진 뒤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나니, 가여워라, 송죽(松竹)이 맑은 바람을 끌어오도다" 하고는 또 "이익은 군자 (君子) 를 움직인다" 하셨다.


23. 결제에 상당하여 설법하다


스님께서는 법좌에 올라 불자를 세우고 말씀하셨다.


"대중스님네여, 자리를 걷어가지고 그냥 해산한다 해도 그것은 일 없는 데서 일을 만들고, 바람 없는 데서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법에는 일정한 것이 없고 일에는 한결같음이 없으니, 이 산승의 잔소리를 들으라.


담담하여 본래부터 변하는 일이 없고, 확 트여 스스로 신령히 통하며, 묘함을 다해 공(功)을 잊은 공 (空) 한 곳에서, 적조 (寂照) 의 가운데로 돌아가는 이 하나는 말 있기 전에 완전히 드러나, 하늘과 땅을 덮고 소리와 빛깔을 덮고 있었다. 서천의 28조사도 여기서 활동을 잊어버렸고 중국의 여섯 조사도 여기서 말을 잃어버렸다. 몹시 어수선한 곳에서는 환히 밝고, 환히 밝은 곳에서는 몹시 어수선하니 왕의 보검과 같고 또 취모검 (吹毛劍) 에 비길 만하여 송장이 만 리에 질펀하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땅이 산을 만들고 있으나 산의 높음을 모르는 것과 같고, 돌이 옥을 간직했으나 옥의 티없음을 모르는 것과 같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큰 코끼리 〔香象〕 가 강을 건널 때, 철저히 물결을 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3현·3요·4료간·4빈주로서 완전히 죽이고 완전히 살리며, 완전히 밝게 하고 완전히 어둡게 하며, 한꺼번에 놓고 한꺼번에 거두며, 하면서 하지 않고 하지 않으면서 하며, 진실이면서 거짓을 덮지 않고 굽으면서 곧음을 감추지 않소."


주장자를 들어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알겠는가. 떨어버릴 것이 다른 물건이 아니니 어디로 가나 티끌이 아니다."


주장자를 내던지고, "떨어버릴 것이 다른 물건이 아니라 한다면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하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말씀하셨다.

"범이 걸터앉고 용이 서린 형세요, 산의 얼굴에 구름의 그림자로다. 방 (龐) 거사가 딸 영조(靈照)에게, `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사의 뜻이라 하였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물었을 때, 영조는 `이 늙은이가 머리는 희고 이는 누르면서 이따위 견해를 가졌구나' 하였다. 다시 거사가 `너는 어떻게 말하겠느냐' 하니 영조는 `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사의 뜻입니다' 하였다.


거사는 말은 지극하나 뜻이 지극하지 못하고, 영조는 뜻은 지극하나 말이 지극하지 못하였다. 아무리 말과 뜻이 지극하더라도 나옹의 문하에서는 하나의 무덤을 면하지 못할 것이오. 말해 보라. 그 허물은 어느 쪽에 있는가."


한참 있다가 "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사의 뜻이오. 안녕히 계시오"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4. 해제에 상당하여


법좌에 올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이것은 주구 (主句) 인가, 빈구 (賓句) 인가, 파주구 (把住句) 인가, 방행구 (放行句) 인가. 대중스님네는 가려낼 수 있겠는가. 가려낼 수 있으면 해산하고 가려낼 수 없으면 내 말을 들어라.


맨 처음 한마디와 마지막 한 기틀 〔機〕 은 3세의 부처님네도 알지 못하는 것인데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 꺼내 보이니, 북을 쳐서 대중운력이나 하여라. 천년의 그림자 없는 나무가 지금은 밑 없는 광주리가 되었다. 2천년 전에도 이러하였고 2천년 후에도 이러하며, 90일 전에도 이러하였고 90일 후에도 이러하다. 위로는 우러러야 할 어떤 부처도 없고 밑으로는 구제해야 할 어떤 중생도 없다. 그런데 무슨 장기·단기를 말하며 무슨 결제·해제를 말하는가."


주장자를 들어 한 번 내리친 뒤에 말씀하셨다.


두 쪽을 다 끊고 중간에도 있지 않네

빈 손으로 호미 들고 걸어가면서 물소를 타네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가니

다리는 흐르는데 물은 흐르지 않네.

閒斷兩頭不居中 空手把鋤頭

步行騎水牛 人從橋上過

橋流水不流


할을 한 번 한 뒤에 "안녕히 계시오"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