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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족 몰살의 내러티브 고찰

실론섬 2015. 7. 12. 00:44

석가족 몰살의 내러티브 고찰

__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를 중심으로__

박청환/정덕 스님. 중앙승가대 역경학과 조교수


I 시작하는 말. 

Ⅱ 내용 분석. 

Ⅲ 마치는 말.


요약문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는 다른 율장이나 경전들에 비해 내러티브가 상당히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른 율장이나 경전들이 메시지 전달에만 치중해서 단순하게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는 반면에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에 소개된 많은 이야기들은 내러티브의 구조가 상당히 복잡해지고 다양한 복선이나 장치를 설정해 놓음으로써 문학적인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의 내러티브들은 믿음(bhakti)과 業사상을 기반으로 한 공덕쌓기와 현세나 내세에서 그 과보를 받는 신앙적인 면이 강조된 아바다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본고는 석가족의 몰살 이야기를 중심으로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속의 이 이야기가 다른 율장이나 경전 속의 이야기들보다 얼마나 내러티브 기능이 우월한가를 보이고자 한다.


Ⅰ. 들어가는 말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Mūlasarvāstivādavinayakṣudrakavastu: MSVKv)에 수록된 석가족 몰살 이야기는 여러 판본중 문학적으로 가장 세밀하게 다듬어졌고 業사상을 가장 잘 드러냈다는 면에서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를 포함한 根本說一切有部 아바다나(avadana)들의 성격을 보이기에 좋은 예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쁘라세나짓(Prasenajit)왕은 석가족의 여종과 결혼하고 범어로 위류다까(Virūḍhaka), 빨리어로는 위두다바(Viḍūḍabha)라 불리는 아들을 낳는다. 출신배경 때문에 석가족에게 모욕을 당하자 위류다까는 석가족을 몰살하나 이 악업으로 인해 그 자신도 죽게 된다. 


붓다의 말년에 벌어진 이 석가족 몰살이야기는 남방 상좌부와 동아시아 대승불교권을 포함해 불교권에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다. 허구적인 다른 이야기들과는 달리 이 이야기는 역사적인 인물들과 사건들의 묘사가 잘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불교의 실제 역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바로(Bareau)는 지적하기를 이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전들의 제작시기가 아쇼카왕 통치 말기부터 무려 서기 3세기말까지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출세간과 세간을 상징하는 붓다와 그의 출신종족인 석가족을 그리는데 이는 출가자와 재가자 또는 출가자와 그의 속세 가족과의 관계를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성적이고 교리적인 관점에서 그들의 관계는 쉽게 구별된다. 그러나 감성적인 관점에서는 붓다조차도 그의 출신종족인 석가족의 몰살 앞에서 인간적인 슬픔을 참기가 힘들었을 것이라는 점이 이야기에 호소력을 부여하여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근본설일체유부는 이 이야기를 편집할 때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그들은 가능한 모든 자료를 모아 이 이야기의 ‘종결’판을 편집했다. 몰살이 일어나기 이전을 다루는 근본설일체유부의 전반부 이야기는 상좌부 자료에 기초하는 반면 후반부는 설일체유부 등 북쪽계열의 자료들에 기반하고 있다. 그 이유는 상좌부 자료들이 전반부에서 보다 상세한 이야기를 제공하고 북쪽계열의 자료들은 후반부에서 상세한 상황묘사를 하는 가운데 MSVKv는 승만(말리카) 이야기와 『담마쩨띠야 수따』(Dhammacetiya sutta)를 포함하는데 이 둘은 다른 곳에서는 간략히 언급되거나 아예 언급되지 않고 있다. 


다음으로 MSVKv의 이 이야기는 업사상을 보여주려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른 텍스트들과 비교하여 볼 때 MSVKv의 이야기들은 현재의 일들이 어떻게 과거업으로부터 파생되었는가를 보여주려는 면이 명백히 보인다. 상좌부 텍스트에서는 강에 독을 푸는 석가족들의 악업이 간략히 언급된다. 반면에 MSVKv에서는 석가족들의 여러 악업이야기들이 상세히 소개된다.


따라서 이 연구는 근본설일체유부가 어떻게 상좌부와 북쪽 계열의 자료들을 기반으로 그들의 문학적 상상에 기반하여 업에 대한 이해와 첨가를 하는가를 보여주는데 집중할 것이다.


Ⅱ. 내용 분석


1. 텍스트 비교

이 이야기는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가 가장 확장된 판본을 설하고 있지만, 『자따까』(Jātaka), 『담마빠다 주석서』(Dhammapada-aṭṭhakathā), 보디싸뜨바아바다나깔빨라따(Bodhisattvāvadāna-kalpalāta),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육도집경(六度集經)』, 화지부의 『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법장부의 『사분율(四分律)』, 『의족경(義足經)』,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 『출요경(出曜經)』과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등에서 발견된다.


경전들은 저자 내지 편집자들의 의도에 따라서 다양한 구조를 보여준다. MSVKv에서는 업에 대한 관심 이외에도 목차의 내용이 이 이야기의 개요를 보여준다.


승만(勝鬘, Mallikā)과 악생(惡生, Virūḍhaka)의 일과

다음은 모든 영락과

금선대 및 모든 패물을

금제하시어 이런 것을 지니지 말라 하셨다.


이것은 이 이야기의 주 관심사가 승만과 악생이란 두 인물과 장식물의 규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경전에서와 달리 승만이 주요 인물로 여겨지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본생경』에서 이 이야기는 삼단계 서술 구조의 현재 부분을 구성하는데 붓다가 그의 동족을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보여주는 예이다. 다른 『본생경』 이야기들처럼 이것도 업(業) 사상에 기반하고 있지만,않는다. 『담마빠다 주석서』에서 이 이야기는 『본생경』의 이야기와 유사하다. 그러나 『담마빠다 주석서』는 쁘라세나짓(Prasenajit)의 배경 이야기를 조금 더하고 있다. 『본생경』처럼 『증일아함경』과 『육도집경』은 현재 상황을 과거의 업으로 설명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증일아함경』에서 이 이야기는 연기법과 인연을 가르치는데 사용된다. 여기서는 '업' 대신에 '인연' 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증일아함경』의 이야기는 MSVKv의 이야기의 원형 상태를 제공한다. 『육도집경』에서 이 이야기(story no.54)는 인욕바라밀 부분에서 이야기된다. 그리고 여기서는 설일체유부와 대승불교권에 널리 퍼진 붓다의 과거 십악업 에피소드들 중의 하나인 붓다의 두통 에피소드를 또한 포함하고 있다. 『오분율』과 『사분율』에서 이 이야기는 羯恥那衣事 (kaṭhina vastu) 부분에 포함되어 있고, 비구들에게 그들의 의복에 대해 가르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붓다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 비구들이 그들의 의복을 재가자들에게 빌려주거나 줄 수 있다고 동의한다. 『의족경』과 『법구비유경』 그리고 『출요경』은 『법구경』과 『숫따니빠따』에 대한 주석을 하려고 계획된 경들이다. 『대당서역기』에서 이 이야기는 어느 스뚜빠에 담겨진 전설이 된다. 이러한 경전들 중의 어느 것도 그들이 설하는 비극적 사건의 기억을 보존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전이 없다는 점은 또한 특기할 만하다고 바로는 지적하고 있다.20)


2. 위류다까(Virūḍhaka)의 탄생

위류다까에 대한 석가족의 모욕은 전체 이야기의 중심요소인데 왜냐하면 그 모욕으로 인해 위류다까가 석가족에 대한 몰살을 행했기 때문이다. 모욕을 한 순간부터 갈등이 유발된 것이다. 이 배경장치는 『본생경』 보다는 『증일아함경』에서 그리고 인과라는 업의 법칙을 강조하는 MSVKv에 이르러 더욱 드라마틱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위류다까'라는 이름의 기원이 판본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생경』에서 위두다바의 탄생은 환영을 받는다.


왕의 할머니가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는 “와사바까띠야는 아들을 낳지 못할 때에도 온 세상보다도 귀중하였는데 이제 그녀는 (정말로) 왕의 사랑스러운 여인(Vallabhā)이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귀먹은 이가 “사랑스러운 여인”이라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는 그녀가 Viḍūḍabha 라고 말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왕에게 돌아가서 왕자가 Viḍūḍabha 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보고했다. 왕은 생각하기를 이것은 어떤 옛 가족 이름이 틀림없으니 그를 Viḍūḍabha라 이름 했다.



『담마빠다 주석서』에서는 이야기가 유사하다. 그러나 설일체유부와 대승불교 등 북쪽 계열의 텍스트들은 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다른 이야기들을 제공한다. 『증일아함경』에서 쁘라세나짓 왕이 점술가들에게 자기 아들의 이름을 지어줄 것을 요청하자 그들은 대답한다. 


그때 왕의 말을 듣고 점술가들은 곧바로 왕에게 말했다, “대왕은 이를 아셔야 합니다. 당신께서 부인을 찾고 있을 때, 석가족들은 논쟁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는 (그에게 부인을) 주어야한다’거나 다른 이들은 ‘우리는 주지 말아야 한다’라고. 이것이 그들을 갈랐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의 이름을 비유리(毘流離)라 부를 것입니다.


『증일아함경』에서 위류다까(Virūḍhaka, 毘流離)라는 이름은 ‘분리된’ 또는 ‘두 부분으로 나뉜’(流離)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는데 왜냐하면 vi-라는 것은 ‘분리, 구별, 다름’ 등등을 암시한다. 


『오분율』에서 이름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은데 이는 『오분율』의 중국 편집자들이 이름의 산스끄리뜨 의미를 놓친 것이 아닌가 싶다.


왕은 자신의 위신력으로 그 (아이)의 어머니를 얻었습니다. 그 의미에 따라 마땅히 그를 유리라고 불러야 합니다.23)


MSVKv에서 말리까는 임신해서 사내아이를 낳는다. 쁘라세나짓 왕의 노모는 그 아이는 여종에게서 태어나 꼬살라를 멸망시킬 것이므로 대신들은 그를 ‘악하게 태어난’것을 의미하는 Virūḍhaka

(惡生) 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티벳본 MSVKv에서 상황은 반대이다.


말리카가 아기를 낳은 얼마 후에 아기의 이름이 할머니에 의해 지어졌다. 그녀는 말리카가 고귀한 태생이므로 아기도 “고귀하게 태어남”을 의미하는 “Hphags-skyes-po"라 불렀다.


이런 이름의 해석은 다른 티벳본에서도 확인된다. 『보디싸뜨바아바다나깔빨라따(Bodhisattvāvadāna-kalpalatā)』의 티벳어 요약인 빠드마 초팰(Padma Chopel)의 sTon-pa’i-skyes-rabs-dpag-bsam-‘khri-shing (Skyes)를 보면, 


그때 말리카는 왕과의 사이에 아들을 가졌다. 소년은 현명하고, 강건하고 영웅적으로 자랐다. 그리하여 ‘고귀한 탄생’을 의미하는 ‘위류다까(Virūḍhaka)’라고 불렸다.


MSVKv조차도 판본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Virūḍhaka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vi-√rudh에서 나온 vi-ruddha 가 ‘반대하는, 방해받은’등을 의미하는 반면에 vi-√ruh에서 나온 vi-rūḍha는 “일어난, 발생한, 발아된”등을 의미하거나 또는 √vṛdh 가 ‘증가하다, 번영케 하다’를 의미한다.


한문본 MSVKv에서 Virūḍhaka의 한문 역어는 ‘악생(惡生)’이다. 한문본 MSVKv는 부정적 어근을 의미하는 vi를 '악(惡)'으로 번역했고, ‘발아한, 태어난’의 vi-rūḍha (vi-√ruh)를 ‘태어남(生)’으로 번역했다. 히라가와의 불교한범사전에 따르면, Virūḍhaka는 한역하면 ‘ 하게 태어난(勝生)’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그러나 Virūḍhaka는 실제로 한역으로는 ‘나누어진’ 또는 ‘분리된’ 것을 의미하는 ‘비유리(毘流離)’ 또는 ‘나쁘게 태어 난’을 의미하는 ‘악생(惡生)’으로 번역된다. 두 개의 가능한 상반되는 해석 중에서 의정(義淨)은 『증일아함경』이나 『오분율』에서 번역된 것처럼 부정적인 의미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Virūḍhaka라는 이름이 티벳본 MSVKv, Ja, Dhp-a에서처럼 긍정적일 때, 석가족의 악업은 더욱 생생해진다. 즉 Virūḍhaka의 복수 내지 악업을 야기한 것은 전적으로 석가족의 행위이다. Virūḍhaka라는 이름이 한역 MSVKv나 『증일아함경』에서처럼 부정적인 경우에는 이는 Virūḍhaka가 나쁜 운명아래 태어났으며 그리하여 그는 후에 뭔가 부정적인 행위를 저지르게 되어있음을 의미한다.


석가족이 동기를 제공하자마자 그는 석가족을 몰살하였고, 어느 쪽도 악업을 지었다는 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할 수 있겠다.


3. 석가족의 위류다까(Virūḍhaka) 모욕

위류다까가 석가족을 몰살한 이유는 중요하다. 『본생경』와 『담마빠다 주석서』에서는 위두다바(Viḍūḍabha)가 카필라바스뚜에 머무를 때 그는 우연히 그의 어머니가 시종의 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 이유 때문에 석가족이 그를 경멸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분노한 그는 석가족을 몰살하기를 서원한다.


상좌부 경전들과는 달리 『증일아함경』, 『오분율』, 『법구경』, 『의족경』, 『육도집경』같은 북부계열의 경전들은 다른 이유를 제공한다. 석가족은 붓다를 위한 강당을 건설한다. 그런데 강당이 붓다에게 바쳐지기도 전에 위류다까(Virūḍhaka)가 강당에 가서 붓다를 위한 자리에 앉는다. 그리하여 석가족은 화가 나서 위류다까를 모욕한다.


북부계열의 경전들은 석가족이 분노한 원인을 위류다카에게 돌리는데, 이는 업의 원칙상 더 어울린다. 상좌부 경전 속에서 석가족과 위류다까의 업의 관계가 석가족이 위류다까를 모욕해서 그 결과로 그가 몰살을 시켰다는데 비해 북부계열의 경전들 속에서는 석가족의 모욕은 위류다까의 무례함으로 인해 정당화되고 있다. 


『증일아함경』에서는 석가족이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물리적인 모욕까지 한 것으로 묘사한다. 북부계열의 경전 편집자들은 석가족이 붓다에게 강당을 봉헌하는 상황을 묘사하면서 이와같은 석가족의 믿음에 대해 위류다까가 부주의한 것으로 설정해 붓다의 종족인 석가족의 분노가 불가피하였다는 수긍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상상해 내었다.


그러나 MSVKv에서 이 상황은 다소 다르다. 위류다까가 사냥을 나갔을 때, 그의 말이 갑자기 석가족의 정원에 뛰어들었다. 이것이 석가족에게 알려지고 그리하여 그들은 그를 죽이려고 시도한다 왜냐하면 위류다까와 그의 군대가 그들의 정원을 망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MSVKv가 이 부분에서 상좌부 경전들에서 나오는 “붓다를 위한 강당에서의 위류다까의 무례함” 에피소드를 다루지 않는지 명확하지 않다. 달리 말하자면 MSVKv는 위류다까의 석가족 방문을 다루지 않는다. 게다가 석가족의 살인 동기도 명확하지 않다. 그들은 위류다까가 그들의 정원을 망쳤기에 격앙한다.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 정원이 붓다 또는 석가족 왕들에게 봉헌된 것인지에 대한 언급도 없다. 대신에 위류다까를 죽이려는 그들의 수차례 시도는 그들을 몰살하려는 위류다까의 동기만을 강화한다. 그 와중에 석가족은 참으라고 말하는 노인들에 의해 두 번이나 만류당한다. MSVKv의 이 부분은 『본생경』에 나오는 반둘라(Bandhula)와 리차비족의 에피소드 구조와 유사하다.


1) 위류다까가 석가족의 정원을 망친다.                 1) 반둘라가 왕족들이 성스런 관정수를 얻는                                                                         바이살리의 물탱크에서 목욕한다.

2) 정원사가 석가족들에게 보고한다.                     2) 관리인들이 리차비족들에게 보고한다.

3) 석가족들이 위류다까를 죽이러 나선다.              3) 리차비족들이 반둘라를 잡기위해 떠난다.

4) 노인들이 석가족들에게 참으라고 권고한다.        4) 리차비족들의 정신적 스승인 마할리가 그들                                                                       에게 멈추라고 권고한다.

5) 위류다까가 떠나고 석가족들이 도착한다.           5) 리차비족들은 반둘라를 쫓기를 멈추지 

그들은 위류다까를 욕하고 이는 위류다까에 의한        않다가 모두가 반둘라에 의해 죽임을 

가족의 몰살을 야기한다.                                    당한다.


근본설일체유부는 위류다까가 석가족을 분노하게 한 것보다 위류다까의 복수심을 일으키는 데에 더욱 관심이 있다.


마지막으로 석가족들이나 리차비족들을 만류하는 노인들은 석가족의 몰살을 위하여 출정하는 위류다까의 군대를 만류하는 붓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붓다처럼 노인들도 석가족들이나 리차비족들의 행위의 결과를 예상하고 그들을 구하려 시도하나 실패한다. 이는 석가족의 악업이나 무서운 과보가 누구에 의해서도 미리 예방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4. 위류다까의 석가족 몰살

대부분의 경전에서 위류다까의 석가족 공격 결정은 그가 원한을 기억하고 대군을 출정시킨다는 식으로 짧게 언급된다. 위류다까는 석가족을 공격하러 가던 중 붓다와 마주친다. 이 만남 장면은 붓다가 그의 종족에 대한 자비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석가족의 몰살과 붓다의 태도에 대하여 상좌부 경전들은 붓다가 석가족이 전생에 강물에 독을 푼 것을 알고는 자신의 종족을 구하려는 시도를 포기했다고 설한다. 상좌부 경전들은 석가족의 전생 악업 때문에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점을 암시한다. 반면에 북부계열 경전들은 붓다의 업에 대한 원칙을 강화하기 위해 부가적인 장면을 삽입한다. 예를 들면 MSVKv에서 위류다까는 어전회의에서 공격을 결정하는데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왕실위엄이 걸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꼭 복수하겠다고 자신이 과거에 했던 말을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36)


석가족이 붓다의 종족인 까닭에 그들의 몰살은 큰 주목을 받았다. 후기 경전들은 이 사건을 극대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극적인 요소들을 추가하였다. 이런 확대의 요점은 어떻게 붓다의 종족인 석가족이 사악한 위류다까에 의해 몰살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나카무라는 이 점에 대해 많은 불교도들이 왜 붓다가 방관자로 남았는지, 비록 붓다가 위류다까 군대의 전진을 두 번은 막았지만 왜 세 번째는 통과시켰는지, 왜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전진하는 군대 앞에 몸을 날리지 않았는지 의문을 품는다고지적한다.


MSVKv는 이 문제에 대해 어느 경전보다도 더 관심을 쏟는다. 붓다가 군대를 막지 못한 실패에 대해 위류다까의 침공을 붓다가 막는 장면에서 MSVKv는 붓다의 과도한 관여가 그가 아직도 속세에 애착을 두고 있는 것으로 오해받아 비난받을 수 있다고 암시한다. 그리하여 MSVKv에서 붓다는 그의 종족에 대하여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보호 대신에 그들이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설법한다.38) 이것이 그가 석가족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선책으로 그려진다. 즉 업의 원칙은 지키면서도 붓다는 자신의 종족에 대해 자비심을 보이는 것이다.


5. 붓다와 석가족의 과거 악업

MSVKv의 이 부분은 위류다까의 잔인함을 보이고 붓다와 석가족의 과거 악업을 서술하려고 기획된 부분이다. 위류다까는 용서받을 수 없는 악업을 저지르는 흔치않은 잔인한 인물로 묘사된다.


업의 절대적인 원칙 내지는 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붓다는 스스로도 과거 업의 과보를 받을 뿐 아니라 과보를 만드는 데에도 또한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석가족이 몰살되고, 위류다까가 천명의 소년 소녀들을 죽이려고 할 때에, 두 소년이 도망친다. 그러나 업의 원칙에 따라서 붓다는 그들이 죽도록 한다. 『육도집경』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있다. 붓다는 목건련에게 업의 원칙을 보이기 위하여 그의 바루 바닥에 어린아이를 두라고 말한다. 후에 아난다가 아이가 죽은 것을 발견한다. 이것은 석가족이 악행을 지은 이래로 그들이 불행한 과보를 반드시 거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붓다는 업의 실행자 겸 보호자로 묘사된다. 붓다는 석가족에게 그들의 고통은 과거 저지른 살인의 업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비록 다루는 방법은 다르지만 모든 경전들은 석가족의 몰살을 그들의 과거업 때문으로 본다. 다른 북부계열의 경전들( 『오분율』, 『사분율』)에서는 특별한 업의 에피소드 없이 업의 원칙을 언급함으로써 석가족의 몰살을 설명한다. 『오분율』에서 석가족의 과거업에 대해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과거를 알고서, 석가족이 그것을 피할 수 없음을 확신하고 붓다는 즉시 멈추고 나오지 않았다.


『사분율』에서 마하남이 석가족에게 말한다.


너희들은 위류다까왕이 사람들을 깔아뭉겨 죽이려고 커다란 코끼리를 풀었다고 단순히 생각해서는 안된다. 너희들은 석가족이 과거에 저지른 결정적인 업의 과보, 과거의 인연을 마땅히 관하여야 한다.


『오분율』과 『사분율』의 언급으로부터 석가족의 과거업에 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얻기는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오분율』과 『사분율』에서 이 이야기는 아바다나나 자따까로 고안된 것이 아

니기 때문이고 따라서 편찬자들은 과거업의 에피소드를 구술하거나 발전시킬 필요가 없었다.


상좌부 경전들은 단지 석가족이 과거에 강에 독을 푼 업만을 언급한다. 비록 상좌부 경전들이 석가족의 과거업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지만 그들의 주요 관심사가 석가족이나 붓다의 과거업이 아니었으므로 만족스런 에피소드와는 거리가 있다. 과거업 이야기로서 『본생경』는 자신의 동족을 도우려는 붓다의 과거 업을 서술한다. 『담마빠다 주석서』는 붓다가 과거에 어떻게 죽음의 괴로움을 견디고 자신감이 넘치는 자리로 갔는지를 말한다.


반면에 북부계통 경전들(『증일아함경』, 『육도집경』, MSVKv)은 석가족과 붓다의 과거업을 직접 다룬다. 그들은 석가족의 물고기 살육과 붓다의 관여, 그로 인한 그의 두통을 서술한다. 붓다조차도 악업을 저지르고 그 행위로 인한 고통을 받는다는 아이디어는 주요한 차이를 구성한다.


물고기 살육 에피소드는 『육도집경』, 『증일아함경』 그리고 MSVKv에 들어있다. MSVKv는 석가족의 악업을 강조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반면에 『육도집경』은 복과 악 사이의 차별을 두는데 더 관심이 있다. 석가족은 그들의 업에 따라 다른 과보를 받는다. 『육도집경』은 석가족이나 악업을 짓는 이들에게만 집중하고 석가족의 악업에 의해 고통 받는 이들이나 물고기들에게는 크게신경을 쓰지 않는다.


『증일아함경』은 사람들이 배고픈 기아의 시기에 물고기를 죽이는 실제적인 이유를 댄다. 이 상황은 비록 석가족을 그들의 악업으로부터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이 물고기를 죽이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도록 해준다. 이외에도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두 마리의 물고기가 과거 그들이 지은 공덕을 찾는다. 이것은 그들이 공덕 없이는 복수할 수 없음을 제시한다. 악업의 제물이 된다는 것은 그들이 받은 악업을 돌려줄 수 있는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미래악업을 상쇄할 수 있는 공덕이 필요하다.


『육도집경』이나 『증일아함경』과 비교해 MSVKv는 아바다나라는 장르의 시각적이고 감성적인 인물들을 사용하여 석가족의 악업을 강조한다. 즉 잔인한 물고기 살육에 대해 신경 안쓰는 부주의한 석가족, 죽어가는 물고기들의 비참한 시각적인 이미지와 복수를 하려는 그들의 격한 반응 등을 적절히 배치한다.


『육도집경』과 『증일아함경』에서 붓다의 실수(『육도집경』)나 붓다의 웃음(『증일아함경』)이 그의 두통의 원인으로 언급되는 것으로 그치는 반면에 MSVKv에서는 물고기가 죽는 것을 보고 즐거워한 소년의 반응은 악업으로 개념화되고 이것은 더욱 보편적인 윤리적 가치를 제공한다. 게다가 석가족의 몰살이 그들의 과거 악업의 과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MSVKv는 석가족들의 또 다른 악업 이야기를 추가한다. 이 악업 에피소드는 위류다까와 그의 대신 암바리샤(Ambāriṣa, 苦母)가 후에 비숫한 상황에서 같은 고통으로 죽을 것이라는 것을 예시한다.


MSVKv에서 석가족들이 저지른 악업의 두 가지 예들은 매우 유사한 구조이다. 이 이야기들은 산스크리트 드라마의 연결(sandhi) 구조방식으로 분석되어질 수 있다. 각각의 행위의 단계들은 자연스런 마침 내지는 종결을 보여준다.


1. 시작 (mukha)       강가에 오백명의 어부들이 살았다.     오백명의 도둑의 무리가 있었다.

2. 진행(pratimukha)  그들은 두 마리 큰 물고기를 잡았다.   그들은 어느 마을에 이르러 재물을 

                                                                            약탈했다.

3. 전개(garbha)        그들은 어떻게 그 두 물고기를          두 거사가 어느 정자에 머물고 있었다.

                           죽일가를 논의했다.                        도둑들은 그들에게 내려올 것을 요구

                                                                            하나 그들은 내려오지 않았다.

4. 위기(vimarśa)       어부들은 물고기를 죽이고 두            도둑들은 정자에 불을 지르고 두 

                           물고기는 극도의 고통을 경험했다.      거사는 고통스럽게 죽었다.

5. 결론(nirvahaṇa)     두 물고기는 다음 생에서 복수를       두 거사는 다음 생에서 복수를 서원

                           서원했다.                                      했다.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어떤 경전들은 모든 석가족이 죽지는 않았다고 한다. 즉 악업을 짓지 않은 이들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육도집경』에서 물고기를 사지 않은 마을사람들은 위류다까가 석가족을 공격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MSVKv에서 악업을 짓지 않은 이들은 도시를 빠져 나간다. 『담마빠다 주석서』에서 상좌부는 이 부분을 그들의 언어적 유머감각을 가지고 꾸미고 있다. 비두다바

의 이름이 생긴 것이 이름을 잘못 들어서(Vallabha-Viḍūḍabha)인 경우처럼 상좌부는 ‘sāka(잎)'와 ’Sākya'가 유사하게 발음된다는 것과 같은 언어적인 유희를 구사한다. 이빨 사이에 잎을 물고 있던 그들의 재치 덕분에 그들은 거짓말을 함으로써 악업을 짓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죽임을 당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6. 석가족 여인들의 업

석가족 여인들의 이야기는 증일아함경, Skyes, MSVKv에서 언급된다. 『증일아함경』에서 그들은 위류다까를 ‘여종의 자식’으로 부르면서 위류다까를 무시한다. 이것이 그를 격노하게 만들었고 그리하여 그는 여인들의 손과 발을 잘라서 깊은 구덩이에 던져버린다.


석가족 여인들에 의한 모욕은 위류다까의 살상행위에 있어서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그래서 화가 난 그는 그들의 손과 발을 잘라서 빠딸리뿌뜨라(Pāṭaliputra, 波吒羅池) 호수에 던져버린다. ㅜMSVKv에 따르면 이것이 모든 경전들의 서두에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즉 붓다가 스라와스티에 머물 때 손과 발이 잘린 호수 근처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곳이 석가족 여인들의 사연이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MSV의 아바다나들에서 종종 보이는 인연(nidāna) 이야기들 중의 하나이다. 역사적이고 문헌적인 기반이 없는 것이므로 이 인연(nidāna) 이야기는 경들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장의 『대당서역기』를 보면, 


이 장소 근처에는 스투파가 있다. 여기는 석가족 여인들이 몰살당한 장소이다. 위류다까왕은 석가족을 몰살하고 그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오백의 석가족 여인들을 그의 궁에 데려왔다....그 때 석가족 여인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서....청정한 법안을 얻었다. 그리고 그들은 죽어서 모두 천상에 태어났다. 그 때 천신들의 왕이 샤크라가 바라문으로 변신해서 그녀들의 뼈를 모아 화장했다. 후세의 사람들이 이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이 이야기가 강한 인상을 남겼고, 석가족 여인들을 위한 스투파가 세워짐에 따라 이 이야기가 전설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증일아함경』에서 고통받는 석가족 여인들이 붓다를 찾자 붓다는 그녀들을 도우러 와서 재물의 신인 바이스라와나(Vaiśravaṇa)에게 그녀들에게 옷과 물을 제공해줄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붓다는 석가족 여인들에게 법을 가르치고 그녀들이 열반에 들도록 한다. 그의 가르침은 오온과 연기법에 대한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초기불교교리를 가르치는데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요점은 붓다의 시선으로 진행된 가르침이지 붓다의 가르침을 받는 자들에 대한 고려는 그리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MSVKv에서는 업의 절대적 속성, 붓다의 위대함과 더불어 발심한 재가자들의 발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56)


다시 말해 MSVKv에서는 이성적인 면이 강조되는 교리적 가르침보다 감성적인 접근이 강조되는 절대화된 붓다와 재가자들의 발원이 중시되는 아바다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MSVKv에서 이부분의 이야기는 업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석가족 여인들의 믿음에 대한 발심과 붓다에의 귀의, 공덕으로 인한 그들의 예류과 성취와 붓다의 가르침 아래 재가자로 살려는 그들의 발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주요한 관심은 붓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을 따라서 깨달음을 성취하려는 재가자들에게 있다.


석가족 여인들의 에피소드가 아바다나로 형식을 갖추는 모습은 오백 천녀들이 붓다를 떠나는 모습이다.


그때, 저 오백 천녀들이 이미 소원대로 되고나니 마치 저 큰 상인이 많은 재물과 이익을 얻음과 같고, 또한 농부가 넓은 농장의 열매를거둠과 같으며, 용맹하고 굳센 자가 원수들을 항복 받은 것과 같으며, 중한 병자가 모든 병을 제거함과 같았으며 크게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하직하고 함께 천궁으로 돌아갔다. TD 24, p.243


이것은 재가자들에게 호소하는 감정적이고 시각적인 이미지들로 가득한 장면이다. 이전 부분에서 천녀들의 열반 성취가 열반, 진제, 고해제, 유, 초월 등의 이성적이고 철학적인 용어들을 사용했다면 이 부분에서 근본설일체유부는 천녀들의 상태를 재가자들의 삶과 비교해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감성적이고 시각적인 비유를 사용하여 아바다나문학의 주 대상이었던 일반 재가자나 출가자들이 그들의 메시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증일아함경』과 MSVKv의 비교는 근본설일체유부가 천상과 열반, 차선적인 목표와 궁극적인 목표 사이의 관계를 얼마나 세심하게 정리했는가를 보여준다. 천상을 해탈의 구체적 목표로서 보는 힌두적 대안론의 인기에 맞서서 불교도들은 그들 자신의 천상과 열반에 관한 개념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아바다나들은 천상을 선업의 보상장소로 열반을 궁극적 목표로 삼으려고 한다.

(Bareau(1963) p.90 는 그럼에도 천상이 선업으로 얻어질 수 있다는 견해는 불교의 근본적 교리로 보자면 ‘생소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는 윤회 속에서 구원을 희망할 수 없고 단지 더 나은 세상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재가자들에게 전달된 저급한 가르침이라고 한다.)


『증일아함경』에서 석가족 여인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고 붓다는 그가 공양, 계율 그리고 천상에서의 태어남 등을 설하기에 앞서 그들이 옷과 음식을 얻도록 한다. 그리고 카필라바스투를 떠나면서 그는 열반이 최상의 즐거움이라고 싯구로 설한다. 비록 천상에 서의 태어남이 차상의 목표이고 열반이 최상의 목표라는 가르침이 있지만 이것이 『증일아함경』에서는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근본설일체유부는 좀더 구체적인 설명을 제시할 필요성을 느낀다. MSVKv에서 천상은 열반으로 가는 길로 가르쳐지고 강조되어진다. MSVKv는 열반을 설명하기 보다는 열반으로 가는 길을 보여준다. 붓다에 대한 믿음(bhakti)은 천상에 다시 태어나 열반에 이르는 열쇠이다. 천상은 고통 없이 꽃들로 가득한 세계로 그려진다. 이 천상은 궁극적 목표인 열반으로 가는 길을 보장한다. MSVKv는 천상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다루는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는 천상의 존재론적 위상을 논하지는 않는다. MSVKv의 관심은 천상을 열렬히 원하는 신도들을 궁극적 목표인 열반으로 어떻게 인도하는 가이다. 그리하여 붓다에 대한 믿음이 신도들을 열반으로의 길인 천상으로 이끈다고 반복적으로 제시한다. 이것이 MSV가 차상의 목표인 천상과 궁극의 목표인 열반을 이야기 속에서 다룬 방법이다. 여기서 믿음은 궁극의 목표로 가는 단계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7. 위류다까의 업보

후에 위류다까는 학살을 일으킨 과보를 받는다. 북부계열 경전들(『증일아함경』, 『육도집경』, MSVKv 그리고 『대당서역기』)에서 붓다는 위류다까가 일주일 안으로 죽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 경전들에 따르면 위류다까는 불이나 물 혹은 둘 다에 의해 벌받는다. 『담마빠다 주석서』에서 그와 그의 동료는 바다로 휩쓸려가서 물고기와 거북이의 먹이가 된다. 『증일아함경』에서도 그는 홍수에 떠내려간다. 그의 궁궐은 불타버린다. 『육도집경』은 MSVKv의 판본과 비슷한 내용이다. 왕은 붓다에 의해 예언된 위험을 피하려고 바다로 나아간다. 배안에서 왕실의 한 여인이 옷 속에서 진주를 꺼낸다. 이 진주가 태양빛에 반사되어 화재를 일으키고 사람들은 지옥으로 떨어진다. MSVKv에서 위류다까는 또한 한 여인의 진주에 의해 야기된 불에 태워져 죽는다. 


이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서유기에 기록되어 있다.


석가족의 (학살을 기리는) 스투파 옆으로 멀지 않은 곳에 말라버린 거대한 호수가 있다. 여기가 위류다까왕이 지옥으로 떨어진 곳이다. 현장은 석가족의 학살을 상기시키는 기념적인 장소들을 보고한다. 이것은 비록 불교의 실제 역사와는 관계가 없지만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설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위류다까 이야기는 부정적으로 전도된 영웅이야기이다. 뿌르나(Pūrṇa, 원만장자)와 위류다까의 스토리 비교는 그 차이를 잘 드러낸다.


뿌르나                                                              위류다까

노비의 자식                                                        노비의 자식

↓                                                                     

형제들과 그 부인들에게 핍박받음                            석가족에게 모욕당함

↓                                                                      

가족을 부자로 만듬                                              아버지의 왕좌를 탈취 함

↓                                                                     

붓다의 제자가 됨                                                 왕이 되어 석가족을 몰살함

↓                                                                     

아라한 성취                                                        불에 타 죽음


양쪽 인물들은 모두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어려움 속에서 형제들에 의해서건 석가족에 의해서건 어려움을 겪는다. 여기까지는 그들은 전형적인 영웅의 길을 함께 한다. 그러나 시련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완전히 다르다. 원만장자가 시련을 극복하는 전형적이고 긍정적인 영웅의 모습을 보인 반면에 위류다까는 석가족에게 원수를 갚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경험한다. 유사한 구조의 아바다나 내러티브 형식으로 선업의 상징인 뿌르나와 악업의 상징인 위류다까가 MSV 藥事 와 雜事 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가 업을 통한 교훈을 얼마나 중시하는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8. 붓다의 역할

MSVKv의 위류다까의 석가족 몰살 이야기 속에서 붓다와 관련된 일련의 에피소드들 안에서 붓다의 역할을 주목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1) 말리까

① 그녀는 붓다에게 공양을 올린다. 그러나 붓다로부터 직접 수기를 받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녀는 후에 왕비가 된다.

② 붓다는 말리까의 과거 선업을 설한다.


2) 프라세나짓

① 그는 붓다를 경배하고 붓다에게 귀의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아들, 대신들에 의해 배반당하고 비참하게 죽는다.

② 붓다는 그의 과거 악업을 설한다.


3) 석가족

① 석가족에 대한 위류다까의 공격이 붓다에 의해 지연되나 후에 결국 붓다도 포기한다. 대신에 붓다는 석가족에게 설법하여 그들이 죽기 전에 진리를 보게 한다.

②붓다는 석가족의 과거 악업을 설한다.


4) 목건련: 붓다는 그가 신통력을 이용하여 위류다까를 공격하는 것을 금한다.


5) 붓다는 두 석가족 소년들이 몰살을 피해서 도망가려 하자 업의 과보를 보이고자 커다란 바루 안에서 그들이 죽도록 한다.


6) 붓다는 두통을 겪는다. 붓다는 자신의 전생 악업을 설한다.


7) 제따(Jeta, 逝多太子): 위류다까의 의해 무고하게 죽임을 당하나 붓다는 그가 다음 생에서 복의 과보를 받을 것이라고 설한다.


8) 석가족 여인들

① 그들의 손과 발이 위류다까에 의해 잘린다. 붓다는 스루치야(Srucyā, 舍支天女)에게 명해 그녀들에게 옷과 물을 주고 법을 설해 그녀들이 붓다에게 귀의케 한다.

② 붓다는 석가족 여인들의 과거업을 설한다.


9) 위류다까: 붓다는 위류다까와 암바리샤의 죽음을 예고한다. 그들은 고통스럽게 죽는다. 붓다는 업의 원칙을 설한다.


이 이야기 전개 속에서 붓다는 항상 한발 물러서있다. 그는 각 사건들 속에서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그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그들의 고통의 원인인 과거업을 설한다. 왜냐하면 MSV

Kv의 주요 관심은 업의 원칙을 강조하는 것이고 이점에서는 붓다의 권위조차도 제한적이다. 붓다는 단지 절대적인 업의 설법자일 뿐이다.


Ⅲ. 마치는 말


MSVKv에서 석가족의 몰살 이야기는 이것이 월법죄(越法罪,Vinayātisara)와의 관련 속에서 어떻게 인연되어 삽입되어졌는가를 설명하는데 사용된다. 雜事 의 규칙들은 애초에 율장이 제정될 때 다루어지지 않은 비구들의 행위에 관한 소소한 상황들을 다루기 위해 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다른 율장들에서 율의 조항들이 어떻게 제정되었는가에 관한 이야기들은 관계된 에피소드들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MSV에서 이야기들은 종종 확장되고 다른 이야기들과 연계되어 소개되어진다.


월법죄는 애초에 특별한 위상을 갖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많은 이야기들이 종종 경범죄로 여겨지는 월법죄라는 용어 속에서 율장에 특히나 MSVKv에 삽입되었다. 석가족의 몰살 이야기가 월법죄의 패물 금지 조항과 관계되어 소개되는 것은 패물로 상징되는 세속의 삶 다시 말해 온갖 악업이 일어나는 곳에 대해 비구들 내지 일반재가자들에게 업의 과보라는 절대적인 교훈을 주기 위하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석가족의 몰살 이야기는 업 사상에 기반한 교훈을 줄 수 있다는 면에서 많은 불교경전에서 아주 인기있는 소재가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모든 내러티브들을 아바다나化시키고 있는 MSVKv의 입장에서 석가족의 몰살이야기는 무시할 수 없는 주제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MSVKv에서는 업의 인과관계를 석가족 몰살 이야기내의 모든 에피소드들에 적용하여 전체를 완성하고 있다.


이러한 아바다나가 탄생한 근본적인 배경으로는 불교 내러티브들의 주요 관심사가 교리교학이 아닌 생활종교로서의 불교의 신앙생활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MSVKv의 석가족의 몰살 이야기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믿음(bhakti)과 업 사상을 기반으로 각종 공양이나 탑 경배 등을 통한 공덕 쌓기 내지는 복업 짓기와 현세와 내세에서의 그 과보를 받는 것에 있다

.

근본설일체유부는 석가족 몰살 이야기를 아바다나라는 업 사상을 강조한 내러티브 안에서 높은 문학적 완성도를 보이는 작품으로 승화시켜 제공함으로써 업에 관한 그들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리하여 당시 출,재가자 모두의 사유와 감성에 가장 잘 부합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석가족 몰살 이야기를 포함한 근본설일체유부의 내러티브들의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