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논문·평론

불교의 인간론에서 본 석존의 여성관

실론섬 2015. 7. 14. 13:05

佛敎의 인간론에서 본 釋尊의 여성관

구 자 상/ 동아대 석당전통문화연구원 연구원.

 

• 목 차 •  

I.  문제 제기                               

Ⅱ. 불교의 인간관

     1.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관

     2. 연기적 존재로서의 인간관

     3. 평등적 존재로서의 인간관

Ⅲ. 석존의 여성관

     1. 안티페미니즘적인 석존의 교설

     2. 페미니즘적인 석존의 교설

Ⅳ. 맺음말

 

Ⅰ. 문제제기

  

  최근 여성의 시각으로 모든 분야를 재인식하려는 작업들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여성의 정체성 찾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불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성불교’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는가?

  

이것은 일차적으로 불교에 성차별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다시 말하면 석존에 의해 제창된 불교가 ‘일체중생의 평등’을 그 근본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석존의 가르침을 전하는 佛典에 이와 모순된 것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써, 여성출가의 전제조건으로 제정된 ‘比丘尼八敬法’이나 계율상의 ‘同罪異罰’의 규정, 또한 대승경전에 있어서의 ‘女人五障’ 및 ‘變成男子成佛說’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본 논고의 목적은 바로 이것을 밝힘에 있다. 그러나 제한된 지면으로 인해 한번에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다. 따라서 여기서는 불교의 인간론을 중심으로 위에서 제기된 모순들에 대해 살펴보고, 또한 이것을 바탕으로 불교적 여성론의 단초가 되는 석존의 여성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同罪異罰’이란 동일한 죄목에 대해 비구와 비구니에게 각각 다른 벌칙이 적용됨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서 波羅夷法의 同罪異罰의 규정을 들 수 있다. 예컨대 婬戒의 경우, 비구에게는 捨戒의 자유가 있어 捨戒와 동시에 婬戒가 범해진 것이므로 波羅夷法이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捨戒를 행한 비구는 이후 다시 具足戒를 받으면 언제든지 승가로 돌아갈 수가 있다. 그러나 비구니는 이러한 규정 자체가 없기 때문에 한번 捨戒還俗하면 다시는 출가가 인정되지 않는다.)
(* ‘女人五障說’은 ?中阿含經?, ?增一阿含經?, ?法華經? 「提婆達多品」 등에 보이는 것으로, 여성이 梵天과 帝釋天, 轉輪聖王, 魔王, 不退轉의 菩薩 혹은 佛陀가 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뒤에 ‘變成男子說’로 전개된다.)
(*『無量壽經』?제35원에 나오는 ‘變成男子’는 여성이 여성 그대로 정토에 왕생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의 몸으로 바뀌어 왕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女人五障說’과 더불어 불교의 성차별적 요소로 자주 언급되는 부분이다.)

 

Ⅱ. 불교의 인간관

 

  주지하듯이 불교는 인간을 위한 종교이다. 비록 ?涅槃經?에서 ‘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 하여 모든 有情의 佛性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이러한 佛性을 자각하여 깨달음을 열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탐구가 불교의 출발점인 동시에 귀착점이며, 나아가 불교사상 전체가 인간론의 체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佛典을 통해서 인간존재의 본질을 규정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즉 佛典에는 인간을 중심테마로 해서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교설이 거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의 인간관에 대한 논의도 佛典에 나타난 단편적인 교설들을 검토함으로써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불교에 있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두 가지의 설명방식이 있다. 하나는 인간과 인간 외적인 것과의 비교를 통해서 인간만의 본질을 부각시킴으로써 설명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이와 반대로 보편적 견지에서 인간만의 본질을 부정하고, 인간과 인간 외적인 것과의 차별성을 부정함으로써 설명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첫 번째의 경우는 대체로 인간과 자연의 분리를 통한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관이 도출되며, 두 번째의 경우는 반대로 인간 본위의 사고의 틀을 벗어난 자연과 불가분적인 인간관, 소위 연기적 존재로서의 인간관이 도출된다.

 

1.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관

  먼저 인간은 본능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보호받고 있는 생물적 존재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동물의 본능과 비교하면 매우 불완전하고 미약하다. 또한 인간에게는 자신의 생존을 지켜낼 어떠한 무기도 없다. 그리하여 인간은 이러한 자연적 미약함을 보완하고,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성의 능력을 적극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 결과로서 인간은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성이 인간과 인간 외적인 존재를 구별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는데 이론의 여지는 없다. 따라서 인간존재에 대한 물음에 있어서는 대체로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먼저 거론되며, 또한 이것으로부터 다른 설명들이 이루어는 것이 보통이다.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이해는 불교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고대 베다문헌에서는 인간을 ‘생각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마누(manu), 산스크리트문헌 일반에서는 마누샤(manuṣya)라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생각한다’는 말 속에 내포되어 있는 합리성이다. 이것은 곧 인도인들의 사유 속에도 기본적으로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인식이 내재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불교도 역시 이러한 인도적 사유를 근간으로 발생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이러한 입장에서 출발하였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또한 석존에 의해 창시된 불교가 처음부터 신앙의 종교로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智者의 종교로서 출발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석존이 成道 후, 初轉法輪의 대상을 재가자가 아닌 당시 이미 智者로서 인정받고 있던 기존의 출가사문을 선택했다는 점이라든가, 또한 이성적 사유를 방해하는 음주를 경계하기 위해 ‘不飮酒戒’를 불교의 근본적인 五戒 속에 포함한 것 등이 바로 이러한 불교의 성격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불교는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었는가. 이것은 석존의 교설 자체가 이미 智者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成道 후 전도 여부에 대한 석존의 고민을 나타내고 있는 ‘梵天勸請’의 설화에서 알 수 있듯이, 석존의 근본교설인 緣起, 四諦, 三法印, 中道 등은 결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불교의 궁극적 목적인 해탈을 ‘輪廻로부터의 벗어남’이라고 정의할 때도 그 윤회가 연기 및 四諦 등의 法에 대한 무지, 즉 ‘無明’에 기인한다는 것 역시 불교가 합리적 이성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이유를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석존의 불교에서는 먼저 법을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 이성이 요청되고 있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만으로 인간만의 불교가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인간뿐만 아니라 神과 동물을 포함한 일체중생의 종교적 의의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음의 인용문을 통해서 확인된다.

 

 여기에 모인 모든 살아있는 것은 지상의 것이나 공중의 것이나 모두 환희하라. 그리고 마음을 다해 내가 설하는 바를 들어라.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석존의 가르침은 결코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숫타니파타(Suttanipāta)』에는 일체중생 모두를 윤회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인간 역시 예외는 아니다.

 

 妄執을 벗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영원히 유전하며 윤회를 벗어날 수가 없다.

 

  이처럼 불교는 기본적으로 윤회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상정한다. 뿐만 아니라 神조차도 비록 인간보다 나은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부정하며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서 간주한다. 다시 말해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인간보다 나은 존재로서 神이 있고,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로서 당시 민간에서 신앙되던 축생, 아귀, 지옥 혹은 축생, 아수라(asura), 지옥을 받아들여 五道 내지 六道라고 하는 생존영역을 세웠던 것이다.

 

  이처럼 불교는 궁극적으로는 일체중생 모두가 佛의 가르침을 듣고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불교가 설하는 慈悲도 원칙적으로는 인류조차 초월한 완전히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차별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위의 인용문에서 ‘가르침을 듣는다’는 것이 신과 동물에게는 예외적이고 우연적이지만, 인간에게는 본질적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예외적’, ‘우연적’이란 신과 동물에게는 佛의 가르침이 필연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神은 너무 안락하고 또한 너무 장수하기 때문에 가르침을 이해하고 이것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없고, 동물은 애당초 합리적 이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불교에 있어 존재의 본질적인 의의는 法에 대한 이해력과 이것에 대한 실천의지에 있다. 따라서 이것은 결코 神이나 동물에게는 불가능하며 오직 합리적 이성을 지닌 인간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불교는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한 종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불교에 있어 인간의 가치 및 의의는 합리적 이성의 소유자로서 깨달음을 얻기에 다른 어떤 생존보다도 최적이라는 데에 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불교는 ‘人身 받기 어렵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2. 연기적 존재로서의 인간관

  다음으로 두 번째의 설명방식은 첫 번째와는 반대로, 모든 존재의 상호의존성을 밝힘으로써 인간과 인간 외적인 것과의 차별성을 부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소위 연기적 존재로서의 인간분석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는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일체의 존재가 평등하다는 사고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는 다시 두 측면에서의 설명방식이 있다. 하나는 無我的 존재로서의 인간분석이며, 다른 하나는 佛性的 존재로서의 인간분석이다.

 

  먼저 석존의 연기법에 따르면, 일체의 존재는 인연의 和合에 의해서 생성, 변화, 소멸하는 것이므로 여기에 상주불변하는 실체란 있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하면 ‘諸法無我’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도 역시 인연화합의 산물이므로 無我的 존재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것을 보다 구체화한 것이 소위 ‘五蘊無我說’이다. 

 

  ‘五蘊’이란 구체적으로 色蘊․受蘊․想蘊․行蘊․識蘊을 말한다. 먼저 ‘色’이란 빛깔이나 모양이 있는 것, 즉 육체를 가리키며, ‘受’란 외계와의 접촉에 의한 감수작용으로서 苦受․樂受․不苦不樂受로 설명된다. 또한 ‘想’은 표상작용, ‘行’이란 형성하는 힘, 즉 마음의 의지작용이며, ‘識’이란 了別작용으로서 인식이나 판단작용을 말한다. 여기서 受․想․行․識은 소위 정신작용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五蘊’이란 말하자면 인간이 육체와 정신작용의 결합체에 지나지 않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불교는 이 五蘊조차도 상주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연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즉 ‘諸行無常’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나의 본질은 물론 인간의 본질과 같은 것이 있을 수 없음은 당연하다. 다시 말하면 일체의 존재가 본질적으로는 아무런 차별도 없는 평등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佛性的 존재로서의 인간분석은 ?涅槃經?의 ‘一切衆生悉有佛性’과 ?寶性論?의 ‘一切衆生有如來藏’의 교설에 근거한다. 이것들은 모두 일체중생이 예외 없이 佛性 및 如來藏을 가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것에 대해 여래장사상을 조직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寶性論?에서는 ‘如來藏의 三義’로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如來의 法身이 중생들 내부에 침투하여 遍滿해 있기 때문이며, 둘째는 여래의 眞如는 무차별이기 때문이며, 셋째는 중생에게 여래의 種姓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미 모든 존재에게 因으로서의 佛性․如來藏이 주어져 있으며, 또한 그렇기 때문에 果로서의 成佛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佛性․如來藏에는 일체의 우열이 없다. 다시 말하면 인간에게만 우월한 佛性․如來藏이 따로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일체중생 모두에게 동등한 佛性․如來藏이 무차별적으로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결국 佛性的 존재로서의 인간분석 역시 인간의 본질을 부정하는 동시에 일체중생의 평등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다 같은 미혹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우월성은 부정될 수밖에 없지만, 인간에게는 이러한 미혹을 타파하여 본래의 佛性 내지 如來藏을 발견하려는 합리적 이성 및 실천의지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불교에 있어서는 바로 이것만이 인간의 존재가치인 것이다.

 

3. 평등적 존재로서의 인간관

  이상과 같이, 불교에 있어서의 인간이해는 理性的․無我的․佛性的 존재로서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이해는 필연적으로 인간평등의 사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먼저 인간의 본질이 이성에 있는 한, 곧 이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불리는 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고는 필연적으로 성립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無我的, 佛性的 인간이해도 이미 언급했듯이 모든 존재의 차별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마찬가지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인간에 따라 이성적 능력 및 깨달음의 차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인간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석존의 기본입장이었다.

 

  인도에 있어 평등사상의 단초는 우파니샤드 시대 이전부터 인식되고 있었다. 아무리 신분이 낮고 태생이 천한 자일지라도 ‘진실을 사랑하는 자’는 바라문이라고까지 하였다. 이 견해에 따르면 카스트는 완전히 부정되어야 하지만, 그러나 카스트 부정론은 불교 이전에는 일반화되지 못했다.

 

  불교는 발생 초기부터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계급적 차별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뿐만 아니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계급적, 신분적 구별 자체가 무의미함을 주장한다. 이것은 다음의 일화를 통해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석존이 어떤 마을에 머물고 있을 때, 두 청년이 ‘바라문은 도대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 논쟁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청년은 ‘출생(jāti)에 의한 바라문’을 주장하고, 다른 청년은 ‘행위(karma)에 의한 바라문’을 주장하였다. 이것에 대해 석존은 모든 생물에 있어 출생에 의한 특징은 다양하고 다르지만, 인간에게는 출생에 의한 구별이 없음을 강조한다. 또한 바라문이 그의 출생이나 그가 속한 종성 때문이 아니라 덕행에 의해서 비로소 존경받는다는 것을 말한다.

  

 몸을 받은 생물 사이에는 각각 구별이 있지만, 인간 사이에는 이러한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사이에 구별표시가 설해지는 것은 단지 명칭에 의해서일 뿐이다.

  

 출생에 의해서 바라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출생에 의해서 바라문이 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행위에 의해서 바라문이 되는 것이다. 행위에 의해서 바라문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석존의 신념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 소위 ‘僧伽(saṃgha)’이다. 특히 석존은 불교교단에 출가한 수행자들에 대해 단지 출가 후의 법랍에 의한 순서만을 인정할 뿐, 그 외에는 모두 ‘釋子’라고 하여 인간평등의 사회적 이상을 표방하고 있었다.

 

 수행승들이여, 비유하자면 갠지스강, 야무나강, 아티라바티강, 사라부강, 마히강 등 이들의 大河는 大海에 이르면 이전의 이름과 성을 버리고 오직 ‘大海’로만 불리듯이, 그와 같이 이들 4계급, 즉 바라문,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는 여래가 설하신 법과 율에 출가한다면 이전의 이름과 성을 버리고 오직 ‘道人’, ‘釋子’로만 불린다.

 

  이처럼 불교교단에 있어 수행자들의 출신 카스트는 각기 달랐지만, 그들 사이에 차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인간평등의 이념이 누구나 법을 깨달아 해탈할 수 있다는 불교의 궁극적 이상에 근거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다시 말해서 ‘법의 깨달음’이라는 불교적 이상에 있어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비록 석존이 계급적 차별을 부정하며 승가를 통해서 이것을 실천했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곧 전면적인 사회개혁사상으로 전개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상 불교에 있어 인간평등의 이념은 세속과의 단절을 전제로 한 승가였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뿐, 현실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것은 석존뿐만 아니라 이후의 불교가 현실사회의 모순적 계급제도를 개혁하는데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되는 바이다.

 

  하나의 사상이 한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상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지반이 형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이것을 무시하고 성급하게 적용시키려 든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은 자명하다. 석존도 필시 이러한 시대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했듯이, 바라문의 정통성을 정면으로 부정하기보다는 인도 일반이 승인하고 있던 우월적 존재로서의 바라문의 관념에 따라 ‘진정한 바라문’의 의의를 밝히려고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인간 중에서 司祭의 職에 의해서 생활하는 자가 있으면, 그는 司祭者이지 바라문은 아니라고 알라.

 

  또 하나 주의할 것은, 석존이 비록 카스트나 세속적인 신분의 차별은 부정했지만, 사람들의 성향이나 능력에 따른 대우를 부정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正法正理論』이나 『瑜伽師地論』 등에 의하면, 국왕이란 민중에게 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하며, 사람을 잘 다스리고 외적을 항복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민중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고, 사람을 잘 다스리지도 못하며, 외적을 항복시킬 수도 없는 자는 국왕의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불교에 있어 인간평등의 이념은 누구나 똑같이 대우받는 평등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능력에 따른 구별과 대우를 인정하는 평등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상응하는 富도 없고, 또 복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의의가 없는 사람’이라든가, ?先生子經?에 재산의 1/4은 의식주를 위하여, 2/4는 이익을 얻기 위한 투자자본으로, 1/4은 비상시를 대비해 저축해야 한다는 ‘수입사분의 원칙’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인간평등의 이념이 단지 불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힌두교의 성전격인 『바가바드기타』에도 모든 인간이 신의 은총에 의해서 구제될 가능성을 승인하고 있다.

 

 실로 나에게 귀의하면 천한 태생의 자, 여자, 바이샤, 수드라라 할지라도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다.

 

  그러나 여기에 표명되고 있는 인간평등의 이념은 단지 종교적인 구제에만 국한된 것일 뿐, 불교와 같은 사회적 인간평등의 인식에로는 발전하지 못하였다. 물론 불교도 처음부터 보편성에 바탕을 둔 인간평등사상을 전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이, 석존의 불교에는 먼저 합리적 이성을 갖춘 智者가 요구되었으며, 또한 초기의 불교수행자들은 사회와 단절된 채 홀로 수행하는 고행자의 측면이 강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궁극적 목표도 오로지 개인적 깨달음에 있었기 때문에 재가자는 일단 배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보편적인 인간평등의 사회적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불교가 널리 전파되고, 점점 수행자들의 대규모 공동생활이 불가피해지면서 재가자와의 공조는 필연성을 띠게 된다. 즉 재가자들의 적극적인 물질적 보시 없이는 출가생활 자체가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불교로 하여금 불교 본래의 인간평등의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다시 말해 그 동안 불교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던 재가자들을 적극적으로 불교 속에 받아들임으로써 소위 보편적 종교로서의 불교가 성립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인간평등의 이념은 석존의 악인 및 타락한 자들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석존은 살인마 앙굴리마라를 회심시키는 한편, 유녀 암바팔리의 식사초대에도 응하여 그녀에게 설법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결국 석존교설의 무차별성을 말하는 것으로써, 이것이 곧 불교가 보편적 종교로서 전개될 수 있었던 기반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불교에 있어 평등한 존재로서의 인간이해는 사회적 계급 및 신분상의 평등뿐만 아니라 남녀관계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앞서 언급한 理性的․無我的․佛性的 인간이해는 결코 남녀를 차별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佛典에 나타난 여성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즉 同罪異罰의 계율이라든가, ‘女人五障’ 및 ‘變成男子成佛說’ 등은 불교의 평등한 인간관과는 거리가 먼 인도의 남성 중심적 편견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글의 목적은 바로 이러한 모순을 분석하는데 있다. 특히 현대불교에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여성불교’는 이러한 요소들을 불교의 성차별적 근거로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것만으로 불교를 성차별적 종교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불교의 역사성 내지 현실성을 무시하고, 佛典에 나타난 기록만을 통해서 불교를 성차별적인 종교로 단정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불교도 시대적 한계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2,500년 전의 불교가 오늘날까지 사람들에게 신앙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시공을 초월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바른 논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보편성과 현실성이 함께 고려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이것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만 논의된다면 틀림없이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불교의 여성론도 이러한 이중성을 고려한 논의가 되어야만 비로소 불교에 있어서의 여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불교에 있어 여성론의 출발점이 되는 석존의 여성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Ⅲ. 석존의 여성관

 

  불교에 있어 석존의 교설은 곧 ‘法’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여기서 ‘법’이란 산스크리트어 ‘Dharma’를 번역한 말로서, ‘유지하다’, ‘보전하다’는 뜻을 가진 동사 ‘dhṛ’를 어근으로 한 명사이다. 이 말 속에는 행위규범, 의무, 법칙 등의 의미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보편적 진리’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만약 이것을 승인하면 석존의 교설은 곧 진리로서의 법이 된다. 불교는 바로 이러한 전제 하에서 성립하고 있는 종교이다.

 

  일반적으로 석존의 교설은 8만4천의 법으로 상징되고 있다. 여기서 ‘8만4천’이라는 숫자는 석존의 對機說法이라는 교수방법상 필연적인 현상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실제상의 숫자가 아니라 대기설법에 의한 수많은 교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속에는 석존의 직설뿐만 아니라 후대의 저술들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大乘經典은 불멸 후 300~400년 이후 성립한 것이기 때문에 결코 석존의 직설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은 경전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후대의 저술들이 佛說로서 인정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물론 다소의 견해차는 있겠지만, 이것은 결국 석존의 근본입장을 전승하고 있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다시 말하면 비록 시대, 사회적 변천에 따라 다양한 주제와 논의는 불가피하지만, 이것의 출발점과 귀착점이 모두 석존의 근본입장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대승불교 非佛說의 견해를 들 수 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필자는 불교의 현실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조주의적 발상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보편적 이념과 현실은 항상 대립할 수밖에 없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이념을 현실에 적용함에 있어서의 수정도 불가피한 것이다. 석존의 대기설법은 이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대승불교의 등장도 그 역사적 필연성을 갖고 있으며, 이것 역시 석존의 가르침을 계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논쟁의 이면에 있는 석존의 근본적 입장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앞으로 전개될 논의의 기본 틀을 이루기 때문에 필연적인 물음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먼저 석존의 근본적 입장을 고찰한 다음, 본 주제에 대한 서술을 전개하기로 한다.

 

  석존은 기원전 5세기경, 소위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전 생애를 전도의 여행으로 일관한 역사적 실존인물이다. 그렇다면 석존은 과연 무엇을 깨달았는가. 주지하다시피 석존의 근본문제는 四苦八苦로 대표되는 苦의 해결에 있었다. 그리고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출가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유행하고 있던 여러 방법들을 시도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들이 자신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마침내 그 자신만의 방법으로 깨달음을 성취하였다. 이 때 석존이 발견한 진리가 바로 緣起의 법이다. 예컨대 석존은 자신의 근본문제인 苦의 문제를 연기의 법으로써 해결하고, 이른바 붓다가 된 것이다. 또한 이것을 응용하여 구체화한 것이 소위 四聖諦․三法印․中道 등의 실천원리이다.

(당시의 대표적인 수행법으로는 修定主義와 苦行主義를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석존은 Ārāḍa Kālāma와 Udraka Rāmaputra의 지도 아래 먼저 선정수행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에 만족하지 못한 석존은 初轉法輪의 상대인 5비구와 함께 극단적인 고행을 실천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 역시 무의미함을 깨달아 중지하고, 마침내 보리수 아래에서의 명상을 통하여 성불하였다. 여기서 필자가 석존만의 방법이라고 한 이유는 보리수 아래에서의 명상을 기존의 고행적인 선정수행과 구분하기 위해서다. 즉 석존의 보리수 아래에서의 명상은 아직 누구도 시험해 보지 않은 방식으로, 석존은 이것을 통해서 비로소 깨달음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면 연기란 무엇인가. 『中阿含經』의 「象跡喩經」에 ‘만일 연기를 보면 곧 법을 보고, 법을 보면 곧 연기를 본다.’고 하였다. 이것은 곧 불교의 근본원리가 연기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전 불교를 관통하는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논의의 대전제인 석존의 여성관도 기본적으로 연기의 원리에 의존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연기란 산스크리트어 ‘pratītyasamutpāda’를 번역한 것이다. 여기서 ‘pratītya’는 ‘…때문에’, ‘…에 의해서’, ‘…말미암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samutpāda’는 ‘태어남’, ‘형성’, ‘생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정리하면, 연기란 ‘…때문에 태어나는 것’,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雜阿含經?의 「法說義說經」에서는 이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

 

  이것은 일체의 존재가 그것을 형성시키는 원인(因)과 조건(緣)에 의해서, 그리고 그들의 상호관계에 의해서 존재하고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이것에 의하면 일체의 존재는 상대적이고 상호의존적이다. 석존은 이것이 존재의 보편적인 법칙임을 연기의 법을 통해서 밝혔던 것이다. 나아가 석존은 자신의 근본과제였던 苦의 문제도 이러한 연기의 법으로서 해결하고자 하였다. 즉 苦란 어떤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발생시키는 원인과 조건에 의해 생겨났기 때문에, 그러한 원인과 조건을 제거하면 苦도 역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연기의 법은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응용해 苦의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보다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연기의 법은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그러한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또한 각 개인이 처해있는 상황이나 根機가 다르기 때문에 그에 따른 교설들의 다양성도 불가피하다. 소위 대기설법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8만4천의 법도 필연적으로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연기의 법은 불교에 있어 모든 교리들의 사상적, 이론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불교의 모든 교리는 바로 이 연기의 법에 의거한 응용이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 석존의 근본입장이자 불교의 보편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8만4천의 법이란 이러한 보편성을 바탕으로 한 소위 불교의 현실적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불교를 이해함에 있어서는 이러한 보편성과 현실성이 함께 고려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석존의 보편적 입장과 상대의 근기에 따른 방편으로서의 교설, 즉 현실적 입장이 구분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불교의 이중성을 종종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즉 그들은 불교의 현실성만을 문제삼아 불교를 성차별적 종교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도 하나의 종교현상으로서 그 역사적 현실과 무관하지 않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처럼 종교의 역사성을 인정한다면 석존의 불교도 그 역사적 한계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즉 석존도 당시의 시대, 사회적 환경을 고려하여 교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 또한 대기설법이다. 그렇다면 대기설법에 의한 교설 그 자체가 결코 보편적인 진리일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시대, 사회적 환경과 상대의 근기에 따른 가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석존의 성차별적 교설도 역사적 한계에 따른 가설로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따라서 만약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표면상의 교설만을 가지고 석존의 여성관을 논한다면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이제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석존의 여성 관련 교설을 검토해 보기로 하겠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석존 당시의 인도는 인도-아리야인과 원주민과의 혼혈이 성행하고, 자유사상가의 등장으로 일대 전환의 시대이자 혼란의 시대였다. 동시에 이 시기는 후기 베다시대로서, 브라만의 교권제도가 점차 붕괴되고 힌두교가 성립하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은 철저히 멸시되었으며, 또한 그러한 풍조가 점차 정착되고 있었다. 그러면 이와 같은 힌두사회 속에서 성장한 석존은 여성에 대해 과연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불교에 있어 여성관의 출발점이 여기에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석존의 여성관은 크게 두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 측면이며, 다른 하나는 여성에 대한 긍정적 측면이다. 이 구분은 앞서 언급한 보편성과 현실성에 근거한 것이다. 즉 전자는 보편성에 근거한 측면이며, 후자는 현실성에 근거한 측면이다. 그런데 이 구분을 현대 페미니스트들은 안티페미니즘과 페미니즘으로 등식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안티페미니즘적 요소가 보인다고 해서 이것만으로 석존을 안티페미니스트로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석존의 궁극적 지향점은 보편성에 있었다. 그리고 불교의 보편성이란 남녀의 차원 자체를 초월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부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불교는 결코 성차별적 종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이것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1. 안티페미니즘적인 석존의 교설

  먼저 석존의 안티페미니스트로서의 태도는 출가자에 대한 교설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이와 관련한 것으로는 먼저 석존의 교설을 모아 놓은 『숫타니파타(Suttanipāta)』를 들 수 있다.

 

 (스승은 말했다.) 나는 (옛날 깨달음을 열려고 했을 때) 愛執과 嫌惡, 貪欲(이라는 세 사람의 악녀)를 보고도, 그녀들과 婬欲의 성교를 하고 싶다는 욕망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糞尿로 가득 찬 이 (여자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그것에 발조차도 닿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쿠루지방의 바라문인 마간디야가 자신의 딸을 석존에게 시집보내려 했을 때 석존이 한 말이라고 전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여성을 표현함에 있어 대소변이 가득한 부정한 존재로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표면상으로 볼 때 이것은 분명 안티페미니즘이다. 그렇다면 석존은 왜 이러한 말을 하였을까. 사실 대소변은 남녀를 불문하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필연적인 현상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굳이 여성을 빌어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유사한 것이 『앙굿타라-니키야(Aṅguttara-Nikāya)』에도 나타나고 있다.

 

 아난다여, 여자는 분노하기 쉽다. 아난다여, 여자는 질투가 심하다. 아난다여, 여자는 인색하다. 아난다여, 여자는 어리석다. 아난다여, 이렇기 때문에 여자는 공공회합의 자리에 출석할 수 없으며, 직업에 종사하거나 직업에 종사하여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인용문은 ‘여성은 왜 직업을 가질 수 없는가’에 대한 아난다(Ānanda)의 물음에 석존이 답변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석존은 안티페미니스트로서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석존의 진실인가.

 

  여기서 필자는 이 교설의 상대가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지하듯이 석존의 대기설법은 상대에 따라 같은 내용도 전혀 다르게 교설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해당 교설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교설의 상대가 누구인지 알 필요가 있다.

 

  위에 인용된 『숫타니파타』의 대상은 표면상으로 보면 마간디야라는 바라문이다. 그러나 인용된 내용을 분석해 보면, 이것은 석존이 깨달음을 얻기 이전, 곧 출가수행자일 때의 여성에 대한 입장임을 알 수 있다. 즉 석존이 수행자일 때 여성에 대한 욕망을 이와 같이 물리쳤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여성 자체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출가수행자로서의 여성에 대한 마음가짐을 경계한 것으로 봐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 인용문은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출가수행자가 어떻게 여성에 대한 욕망을 물리쳐야 하는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출가비구가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서 여성이라는 존재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있는 것이 위에 언급한 ?증일아함경?의 인용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을 표면적으로만 받아들인다면 석존은 극단적인 성차별론자라는 오해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석존의 깨달음이 현실에 대한 철저한 인식에서 출발하였듯이, 이것도 역시 당시 인도여성의 현실태에 대한 석존의 철저한 분석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필자는 석존의 이처럼 현실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바로 여성출가에 대한 부정으로 연결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불교교단의 여성출가는 석존의 양모인 마하파자파티 고타미(Mahāpajāpatī-Gotamī)왕비의 세 번에 걸친 간청과 시자이자 종제인  아난다의 중재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때 석존은 8가지 조건, 곧 八敬法을 준수하겠다는 서약 하에 여성의 출가를 허락했다고 한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팔경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이것은 석존의 여성관을 밝히는 하나의 단서가 될 것이다.

 

① 비록 100세의 비구니라 할지라도 새로 수계한 비구를 보면 마땅히 일어나 합장, 예배하고, 깨끗한 자리를 펴서 내주며 앉도록 청하라.

② 비구니는 마땅히 비구를 꾸짖어 呵責하지 못하며, 破戒․破見․破威儀를 말하여 비방하지 못한다.

③ 비구니는 마땅히 비구에 대하여 擧罪, 億念, 自言케 하지 못하며, 타인의 覓罪, 說戒, 自恣를 막지 못한다. 비구니는 마땅히 비구를 꾸짖지 못하며, 비구는 마땅히 비구니를 꾸짖는다.

(여기서 ‘憶念’은 비구에게 죄가 있음을 주지시켜 기억케 하는 것이며, ‘自言’은 비구에게 自白懺悔시키는 것을 말한다. ‘覓罪’는 앞뒤가 맞지 않는 고백을 하는 것으로, 만약 비구가 이것을 하더라도 비구니는 그것을 중지시킬 수 없다고 한다. ‘說戒’는 매월 15일에 있는 布薩을 말하며, 自恣란 안거 중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행위에 대해 見․聞․疑한 것을 지적받고 참회하는 의식을 말한다.)

④ 식차마나는 學戒를 마치면 비구승으로부터 大戒를 乞受해야 한다.

⑤ 비구니는 승잔죄를 범하면 마땅히 이부승중에게 보름마다 마나타를 행해야 한다.

⑥ 비구니는 보름마다 승으로부터 敎授를 구해야 한다.

⑦ 비구니는 마땅히 비구가 없는 곳에서 하안거를 하지 못한다.

⑧ 비구니승은 안거가 끝나면 마땅히 비구승중에게 見․問․疑의 3事에 대한 自恣를 구해야 한다.

 

  이 팔경법은 불교페미니스트들이 불교의 성차별적 요소로서 자주 거론하고 있는 부분이다. 물론 이 팔경법이 과연 석존의 眞說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석존의 계율은 隨犯隨制의 원칙에 따라 제정되는데, 이 팔경법은 그 원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여성이 출가하기도 전에 이미 그 전제조건으로써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비구니 교단이 성립한 이후 만들어진 ‘式叉摩那’라든가 ‘2年6法’ 등의 개념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식차마나라든가 2년6법 등은 비구니교단 성립 이후 현실도피적인 여성출가가 증가하자 이러한 문제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정된 것들이다. 셋째는 석존교단의 기본이념인 평등성이 팔경법에서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지하듯이 석존은 출가연수에 따른 순서 이외 일체의 차별을 부정하는 평등한 출가교단을 지향하였다. 그런데 이 원칙을 팔경법에서만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석존이 비록 여성의 출가조건을 제정했다고 하더라도 현행과 같은 형태가 아니었을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불멸 이후 경전이 편집되는 과정에서 삽입되거나 변질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특히 제1차 결집에서의 비구니의 배제라든가 인도의 남성 종속적인 여성관과의 내용적 유사성 등을 고려할 때, 팔경법은 비구중심의 교단이 확립된 이후의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석존의 진설이든 아니든 간에 팔경법은 여성출가와 관련한 당시 교단의 사고가 반영된 것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팔경법에 의하면 식차마나는 2년 동안 6법을 수행한 뒤에야 비로소 이부승가로부터 구족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출가당시 석가족의 여성들은 식차마나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2년 6법의 수행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따라서 팔경법 전체를 최초의 여성출가와 연관짓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오히려 필자는 비구니교단 성립 이후 현실도피성 여성출가가 증가하자, 이러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비록 팔경법이 석존의 진설이라고 해도 이것만으로 석존을 안티페미니스트로 간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앞서도 언급했듯이 석존은 여성의 현실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비구의 경우는 이미 전통적 기반이 형성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조직함에 있어서도 큰 무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교단의 경우는 사정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먼저 여성에게는 출가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지반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마누법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전통적인 인도여성은 남성 의존적 성향이 강했다. 이 의존성은 독자적인 출가생활에 있어 가장 큰 장애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또한 출가생활은 기본적으로 재가자의 보시에 의존하게 되는데, 당시 멸시의 대상이던 여성에게도 과연 그러한 보시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였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집단이 형성될 수 있는 정신적, 물질적 여건이 아직 형성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부의 출가여성이 있기는 했지만, 대규모의 출가여성단체는 역사상 그 유례가 없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문제를 예상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석존에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자칫하면 불교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러한 석존의 고민이 소위 세 번에 걸친 거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나아가 여성출가에 대한 석존의 불만으로 알려진 다음의 인용문도 오히려 이러한 석존의 고민을 보다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석존 당시 외도 중에는 파리바지카스라는 여성사문들이 있었고, 邪命外道로 유명한 막칼리 고살라가 주도한 아지바카스라는 외도 중에도 여성사문들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자이나교의 교주인 니간타 나타풋타의 제자 중에도 여성사문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 출가사문이란 소위 보시 받을 자격이 있는 자를 말한다. 이것은 곧 그들의 생활이 재가신자들의 보시에 의존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이러한 자격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 만약 편견과 혐오의 대상이던 여성이 출가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칫 잘못하여 오해라도 생기게 된다면 출가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은 당연하다. 특히 이로 인해 기존의 출가사문까지도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석존은 아마도 이것을 염려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만약 여인이 출가하여 受具足戒를 원하지 않았다면, 佛의 正法은 세상에 천년이나 머물렀을 것이다. 지금 출가를 원했기 때문에 곧 5백년 감소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석존의 교법상으로 볼 때 결코 여성의 출가를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여성출가와 관련한 석존과 아난다의 문답을 통해서 확인된다. 즉 여성출가의 시점에서 아난다는 여성도 해탈할 수 있는가를 석존에게 묻는다. 이때 석존은 여성도 아라한의 단계에 이를 수 있다고 답변하고 있다. 또한 실제적으로도 많은 출가여성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고 있음이 비구니들의 시를 수록한 『테리가타 Therī-gāthā(장로니게)』를 통해서 확인된다. 그렇다면 석존은 애초에 여성의 출가를 거절할 의사가 없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번이나 거절했던 것은 역시 현실상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석존은 이러한 시간을 통해 여성교단에 대한 설계도를 마련한 다음, 마침내 여성의 출가를 허락한 것은 아닐까.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면, 팔경법이란 여성출가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최소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봐야 한다. 이것은 위의 인용문과 함께 여성출가에 대한 석존의 불만으로 자주 언급되는 다음의 언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논이나 감자밭에 병균이 붙으면 그것들의 논밭이 머지않아 황폐해져 버리듯이 여성이 참가한 교단은 곧 혼란해질 것이다. 여덟의 조건을 붙인 것은 큰 호수에 제방을 쌓아 물의 범람을 막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표면상으로 보면 여성멸시의 언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이것 역시 여성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혼성교단에 대한 당시의 편견과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설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한 이제 막 출가하는 여성에게는 보편적 진리를 추구할 교단적 지반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석존에게는 기존 비구에게 의존케 하는 팔경법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필자는 팔경법을 성차별적 차원이 아니라 불교의 보편성과 현실성과의 거리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형식적 절차로서 이해하고 있다.

 

2. 페미니즘적인 석존의 교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석존의 출가여성에 대한 태도는 상당히 엄격한 측면이 있다. 필자는 이것이 여성으로 하여금 보편적인 불교로 유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임을 논구했다. 반면 재가여성에 대한 석존의 태도는 상당히 페미니스트적이다. 필자는 이것을 불교의 현실적 측면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시 말하면 불교의 보편성에서 보면 현실적 남녀는 부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석존에게 있어 보편적 진리는 결코 현실과의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대기설법이라는 교수방법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석존은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존재를 직시한 다음, 이들을 진리의 세계로 이끌기 위한 길을 모색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보편성 속에서는 부정될 수밖에 없는 남녀가 현실 속에서는 다시 긍정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먼저 석존의 현실적 여성관이 나타난 것으로는 『싱가라에 대한 가르침 Siṅgālovāda』를 들 수 있다. 여기에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로서 ①존경한다, ②경멸하지 않는다, ③도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④권위를 준다, ⑤장식품을 제공한다. 등의 5항목이 열거되고 있다. 그런데 이 조항들을 보면 ?마누법전? 등에 나타난 당시의 남성 종속적인 여성관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즉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여성이라는 존재 그 자체로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특히 주목한 것은 ①의 표현이다. 붓다고사에 의하면, 존경이란 ‘신들을 존숭하듯이 존경하며 담화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아내를 신 대하듯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상의 이상적인 남녀관계를 시사한 것으로,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②, ③, ④의 조항도 이상적인 부부관계의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서, 아내에 대해 예의를 지키고, 아내에게 가정 내에서의 권한을 인정하고 간섭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곧 여성이 단지 남성 종속적 존재가 아니라 당당한 가족의 구성원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⑤는 자신의 재력에 맞게 장식품을 제공하라는 말로서, 여기에는 여성의 현실적 욕망까지도 철저하게 분석하고 있는 석존의 치밀함이 엿보인다.

 

  이와 같은 석존의 여성관은 『증일아함경』에서도 발견된다. 여기서 석존은 사위성의 급고독장자의 며느리인 수자타(Sujātā)에게 7종류의 아내에 대해서 설하고 있다. 이것 역시 석존의 현실적 여성관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① 남편을 사랑함에 있어 자애로운 어머니같이 하는 어머니 같은 아내(母婦)

② 남편을 섬김에 있어 누이동생이 오라비 섬기듯 하는 누이 같은 아내(妹婦)

③ 남편을 섬김에 있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대하듯 하는 친구 같은 아내(善知識婦)

④ 남편을 섬김에 있어 하녀가 상전을 섬기듯 하는 종 같은 아내(婢婦)

⑤ 아내로서의 예절과 의리를 지키고, 시부모를 잘 봉양하여 가정의 평화를 가져오는 아내 같은 아내(婦婦)

⑥ 남편을 남 보듯 하고, 집안 살림을 잘 꾸려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속된 짓만을 일삼는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친척들과 항상 다투려고만 하는 원수 같은 아내(怨家婦)

⑦ 밤낮 성난 마음으로 남편을 대하며 어떻게든 남편을 죽이고자 기회만을 엿보는 살인자 같은 아내(奪命婦)

 

  여기서 석존은 善惡의 양면으로 나누어 현실적 여성으로서 어떤 길이 바람직한가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당시의 관습이 상당히 수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이러한 관습들과 불교적 보편성이 일치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여성의 현실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현실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존재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여기에 숨어 있는 것이다.

 

  다음의 인용문도 이러한 석존의 현실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것은 페미니스트로서의 석존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내용이다.

 

 왕이여, 부인이라고 해도 실로 남자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다. 지혜가 있고, 계율을 지키며, 시어머니를 공경하고 남편에게 충실히 한다. 그녀가 낳은 아들이 영웅이 되고, 또한 지상의 왕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좋은 아내의 아들은 국가를 가르치고 인도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코살라국의 프라세나지트(Prasenajit)왕이 말리카(Mallika)왕비의 여아 출산을 기뻐하지 않자, 석존이 한 말이라고 한다. 물론 여기에도 독립적인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는 없다. 그러나 당시의 관습 속에서도 여성이 결코 남성 못지않다고 밝힌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지금까지 석존의 여성관을 보편성과 현실성으로 나누어 고찰했다. 이것을 통해서 필자는 불교페미니스트들이 지적하는 성차별적 요소들이 사실은 불교의 이중성을 무시한 결과임을 논구하였다. 결국 불교의 여성론이 올바르게 이해되기 위해서도 이러한 불교의 이중성이 모두 고려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Ⅳ. 맺음말

 

  주지하듯이, ‘佛敎’는 석가족의 왕자로 태어나 6년간의 출가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은 석존의 교설을 바탕으로 한 종교이다. 물론 시대, 사회적 변화에 따른 다양한 사상의 발전은 있지만, 그 근본은 역시 석존의 교설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석존의 가르침을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佛典이다. 다시 말하면 불교에 관한 모든 사항은 佛典 속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곧 불교의 여성론에 관한 논의가 기본적으로 불전의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불교도 종교라는 점에서 당시의 문화적 상황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석존은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적 진리로서의 法을 설했지만, 당시의 시대, 사회적 상황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의 단적인 예로서, 첫째는 초기의 불교교단이 기본적으로 인도전통의 출가주의를 채택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컨대 출가주의는 이미 전통바라문 사회의 삶의 일부로서 인정되고 있었으며, 석존 당시 수행자들의 이상적인 생활방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석존은 교단운영에 있어서도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채택하는 일면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곧 석존도 인도의 전통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불교교단을 상징하는 상가(Saṃgha)는 본래 회합, 집단, 모임 등의 의미였으나, 뒤에 상공업자의 조합 또는 공화정체를 채택하고 있던 부족국가를 의미하게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석존의 출현 이전부터 밧지연맹 등 이미 상가의 성공적 사례가 있었고, 또한 석가족 역시 이 공화제로서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석존은 상가를 교단의 이상태로 채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 역시 불교 내의 당시 인도문화의 습합가능성을 시사하는 일례라고 볼 수 있다.)

 

  둘째는 이처럼 석존이 인도의 전통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에 또한 對機說法이라는 교수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당시의 인도는 엄격한 카스트 사회로서 계급적 차별뿐만 아니라, 교육 및 그에 따른 지식의 격차도 현저했다. 만약 석존이 이러한 사실들을 무시했다면 불교는 결코 보편종교로서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석존은 이러한 현실을 고려한 대기설법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셋째는 석존이 불교교단 내에 있어서는 계급의 부정을 지향했지만, 당시의 불평등한 브라만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어떤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도 여기에 해당된다.

 

  이처럼 불교는 당시 인도의 현실상황과 맞물려 전개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더구나 불교교단에 있어 비구의 50% 이상이 당시 사회의 지도계층인 바라문 출신일 뿐만 아니라 불교의 지반자체가 여성을 경시한 바라문 사회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석존 및 초기불교, 대승불교에 있어서의 여성관의 배경에 당시 바라문교 및 힌두사회의 여성관이 있음은 분명하다. 

 

  결국 불교는 보편성과 현실성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종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만약 단순히 표면적인 내용만을 가지고 판단한다면 그 진실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석존의 여성관, 나아가 불교의 여성론도 당연히 이러한 불교의 이중성을 고려하여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