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역 아함경/중아함경

169. 구루수무쟁경(拘樓瘦無諍經)

실론섬 2015. 9. 27. 16:09

169. 구루수무쟁경(拘樓瘦無諍經) 제 8 [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 바기수(婆奇瘦)24)의 도읍인 검마슬담(劍磨瑟曇)이라는 곳을 유행하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설법하리라. 이 법은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며, 마지막도 또한 묘하다.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梵行)을 나타낸다. 그 이름은 분별무쟁경(分別無諍經)이니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모든 비구들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극히 하천(下賤)한 업이고 범부의 행인 탐욕의 즐거움을 구하지 말고, 또한 지극히 괴롭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이치와 서로 걸맞지 않는 자신의 고행(苦行)도 구하지 말라. 이 두 가지 치우침을 여의면 곧 중도(中道)가 되나니, 그것은 눈을 이루고 지혜를 이루어 자재로이 선정[定]을 이루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간다. 


또 칭찬하는 경우도 있고, 꾸짖는 경우도 있으며, 칭찬도 꾸짖음도 없이 사람을 위해 설법하는 경우도 있다. 재(齊)를 결정하며, 결정된 사실을 안 뒤에는 언제나 마음속의 즐거움을 구하라. 서로 끌어 들여 말하지 말고, 또한 면전에서 칭찬하지도 말며, 절도 있게 말하고 절도 없이 말하진 말라.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거니 그르거니 따지지 말라. 이것이 분별무쟁경(分別無諍經)이니라.

  

'지극히 하천한 업이고 범부의 행인 탐욕의 즐거움을 구하지 말고, 또한 지극히 괴롭기만 하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이치와 서로 걸맞지 않는 자신의 고행을 구하지 말라' 함은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지극히 하천한 업이고 범부의 행인 탐욕의 즐거움을 구하지 말라' 함은 하나의 치우친 견해를 말한 것이고, '또한 지극히 괴롭기만 하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이치와 서로 걸맞지 않는 자신의 고행을 구하지 말라' 함은 또 다른 치우친 견해를 말한 것이다. '지극히 하천한 업이고 범부의 행인 탐욕의 즐거움을 구하지 말고, 또한 지극히 괴롭기만 하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이치와 서로 걸맞지 않는 자신의 고행을 구하지 말라'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이 두 가지 극단적 견해를 여의면 곧 중도로서, 눈이 되고 지혜가 되어 자재로이 선정을 이루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간다' 함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가?

  

8지성도(支聖道)가 있으니 바른 소견[正見]에서부터 나아가 바른 선정[正定]까지의 여덟 가지이다. '이 두 가지 극단적 견해를 여의면 곧 중도로서, 눈이 되고 지혜가 되어 자재로이 선정을 이루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간다'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칭찬하는 경우도 있고, 꾸짖는 경우도 있으며, 칭찬도 꾸짖음도 없이 사람을 위해 설법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했는가?

  

왜 칭찬하거나 꾸짖고 설법은 하지 않는가? 

만일 탐욕과 서로 호응하고 기쁨 즐거움과 함께하여 지극히 하천한 업인 범부의 행을 짓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苦]이 있고 번민[煩]이 있으며, 흥분[熱]이 있고 걱정[憂]과 슬픔[]과 삿된 행[邪行]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몸소 꾸짖는다.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란 무상(無常)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며 닳아 없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는 탐욕은 무상하므로 저들 모두에게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된다는 것을 안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몸소 꾸짖는 것이니라.

  

지극히 괴롭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서로 호응하는 어떤 이치도 없는 자신의 고행(苦行)을 하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몸소 꾸짖는다. 


무슨 까닭인가? 

저 사문 범지는 괴로움을 두려워하여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자들이다. 그런데 저 사문 범지가 도리어 이 괴로움을 끌어안는다면 저들 모두에게는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될 것이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몸소 꾸짖는 것이니라.

  

가령 유결(有結)25)이 다하지 않은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몸소 꾸짖는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유결(有結)이 다하지 않으면 그 생명[有]도 또한 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들 모두에게는 번민이 있고, 흥분이 있으며,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된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몸소 꾸짖는 것이니라.

  

유결(有結)이 다한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이 없고, 바른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몸소 칭찬한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유결이 다하면 그 생명[有]도 또한 다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들 모두에게는 괴로움이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게 된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몸소 칭찬하는 것이니라.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몸소 꾸짖는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는 자라면 또한 마음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들 모두에게는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된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몸소 꾸짖는 것이니라.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이 없으며, 바른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몸소 칭찬한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는 자라면 그는 또한 마음도 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들 모두에게는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이 없으며, 바른 행이 있게 된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몸소 칭찬한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칭찬하거나 꾸짖고 설법은 하지 않는다.

  

칭찬하거나 꾸짖지 않고 사람을 위해 설법하는 경우가 있다. 왜 칭찬하거나 꾸짖지 않고 사람을 위해 설법하는가? 


만일 탐욕과 서로 호응하고 기쁨 즐거움과 함께하여 지극히 하천한 업인 범부의 행을 짓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설법한다. 왜냐 하면 '탐욕은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으로서 닳아 없어지는 법이다'라고 저 사람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탐욕은 무상한 것이므로 저들 모두에게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된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저 사람은 이 법을 알지 못하여 오직 괴로운 법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설법하는 것이니라.

  

지극히 괴롭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서로 호응하는 어떤 이치도 없는 고행을 하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설법한다. 왜냐 하면 '지극히 괴롭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서로 호응하는 어떤 이치도 없는 고행을 하면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고 저 사람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이 법을 알지 못하므로 오직 괴로운 법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설법하는 것이니라.

  

유결(有結)이 다하지 않은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설법한다. 왜냐 하면 '만일 유결이 다하지 않으면 그 생명[有]도 다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 모두에게는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된다'고 저 사람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이 법을 알지 못하여 오직 괴로운 법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설법하는 것이니라.

  

유결(有結)이 다한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설법한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유결이 다하면 그 생명[有]도 또한 다한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에게는 괴로움도 없고,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게 된다'고 저 사람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이 법은 통달하지 못하고, 그저 괴로운 법이 없고 번민이 없으며, 흥분이 없고 걱정과 슬픔이 없으며, 바른 행이 있을 뿐이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설법하는 것이니라.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설법한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으면 그는 또한 마음을 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에게는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된다'고 저 사람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이 법을 통달하지 못하여 오직 괴로운 법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을 뿐이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설법하는 것이니라.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설법한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면 그는 또한 마음도 구한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에게는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게 된다'고 저 사람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이 법은 통달하지 못하고, 오직 괴로운 법이 없고 번민이 없으며, 흥분이 없고 걱정과 슬픔이 없으며, 바른 행이 있을 뿐이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설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 칭찬하거나 꾸짖지 않고 사람을 위해 설법하느니라.

 

'칭찬하는 경우도 있고 꾸짖는 경우도 있으며, 칭찬도 꾸짖음도 없이 사람을 위해 설법하는 경우도 있다'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제(齊)를 결정하고, 결정된 줄 안 뒤에는 언제나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라' 함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가? 


어떤 즐거움이 있다. 이는 성인의 즐거움이 아닌 범부의 즐거움이며 병의 근본 등창의 근본 화살이나 가시의 근본이다. 식(食)26)이 있고 나고 죽음이 있으니, 닦아서는 안 되고 익혀서도 안 되며 널리 펴서도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즐거움은 닦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즐거움이 있다. 이는 성인의 즐거움이며, 욕심이 없는 즐거움 악을 여읜 즐거움 마음을 쉰 즐거움 바르게 느낀 즐거움이다. 식(食)이 없고 나고 죽음이 없으니, 닦아야 할 것이요 익혀야 할 것이며 널리 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즐거움을 닦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즐거움이 있다. 이는 성인의 즐거움이 아닌 범부의 즐거움이며, 병의 근본 종기의 근본 화살이나 가시의 근본이다. 식이 있고 나고 죽음이 있으니, 닦아서는 안 되고 익혀서도 안 되며 널리 펴서도 안 된다. 왜 나는 그런 즐거움을 닦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가? 


그가 만일 5욕의 공덕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낸다면, 이 즐거움은 성인의 즐거움이 아닌 범부의 즐거움이며 병의 근본 종기의 근본 화살이나 가시의 근본이다. 식이 있고 나고 죽음이 있으니, 닦아서는 안 되고 익혀서도 안 되며 널리 펴서도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즐거움을 닦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어떤 즐거움이 있다. 이는 성인의 즐거움이며 욕심이 없는 즐거움 악을 여읜 즐거움 마음을 쉰 즐거움 바르게 느낀 즐거움이다. 식이 없고 나고 죽음이 없으니, 닦아야 할 것이요 익혀야 할 것이며 널리 펴야 할 것이다. 왜 나는 그런 즐거움을 닦아야 한다고 말하는가? 


만일 어떤 비구가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한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 4 선을 얻게 되어 성취하여 노닐면, 이 즐거움은 성인의 즐거움이며 욕심이 없는 즐거움 악을 여읜 즐거움 마음이 쉰 즐거움 바르게 느낀 즐거움이다. 식이 없고 나고 죽음이 없으니, 닦아야 할 것이요 익혀야 할 것이며 널리 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즐거움을 닦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제(齊)를 결정하고, 결정된 줄 안 뒤에는 언제나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라'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서로 끌어들여 말하지 말고 또한 면전에서 칭찬하지도 말라' 함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가? 


서로 끌어들여 하는 말 중에 어떤 것은 진실하지 않고 허망하며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않고, 서로 끌어들여 하는 말 중에 어떤 것은 진실하고 허망하지는 않으나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않으며, 서로 끌어들여 하는 말 중에 어떤 것은 진실하고 허망하지 않으며 이치와 서로 호응한다.

  

그 중에서 만일 끌어들여 하는 말이 진실하지 않고 허망하며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않으면 그것은 끝내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 중에서 만일 끌어들여 하는 말이 진실하고 허망하지는 않지만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않으면 그것도 또한 배우기는 하되 말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 중에서 만일 끌어들여 하는 말이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고 이치와도 서로 호응하면 그는 때를 알아 바른 지혜와 바른 생각으로 그것을 성취시켜야 한다. 면전에서 칭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서로 끌어들여 말하지 말고 또한 면전에서 칭찬하지도 말라'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절도 있게 말하고 절도 없이 말하지 말라' 함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가? 


절도 없이 말하면 몸이 번거롭고 잊어버리기 쉬우며, 마음은 지극히 피로하고, 목소리가 쉬기도 하여, 지혜로 나아가는 사람이 자재하지 못하게 된다. 절도 있게 말하면 몸이 번거롭지 않고 쉽게 잊어버리지 않으며, 마음도 피로하지 않고, 목소리도 쉬지 않아서, 지혜로 나아가는 사람이 자재하게 되느니라. '절도 있게 말하고 절도 없이 말하지 말라'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거니 그르거니 말하지 말라' 함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가? 무엇이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혹은 옳다고 하고, 혹은 그르다고 말하는 것인가?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은 이런 저런 것을 두고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혹은 발우라 말하며, 혹은 종지라 말하고, 혹은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이 이런 저런 일에 대해서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발우라 말하며, 종지라 말하고,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만일 이런 저런 것에 대해 그 힘을 따라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하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면, 이와 같은 것은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옳다고도 하고 또는 그르다고도 하는 것이다.

  

무엇이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다고도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는 것인가?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은 이런 저런 것을 두고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발우라 말하며, 종지라 말하고,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이 이런 저런 것을 두고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발우라 말하며, 종지라 말하고,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만일 이런 저런 것에 대해 그 힘을 따르지 않고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하다'고 한결같이 주장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것은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다고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거니 그르거니 말하지 말라'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다툼[諍]이 있는 법과 다툼이 없는 법이 있다. 어떤 것이 다툼이 있는 법이며, 어떤 것이 다툼이 없는 법인가? 


만일 탐욕과 서로 호응하고, 기쁨 즐거움과 함께하여 지극히 하천한 업(業)인 범부의 행을 지으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다. 만일 지극히 괴롭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않는 고행을 한다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느니라.

  

이 두 가지 치우침을 떠나면 곧 중도이다. 그것은 눈이 되고 지혜가 되어 자재로이 선정을 이루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가나니, 이 법은 다툼이 없다. 왜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없고 번민이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유결(有結)이 다하지 않으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다. 유결이 다하면 이 법은 다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으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다.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면 이 법은 다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그 중에서 만일 어떤 즐거움이 성인의 즐거움이 아닌 범부의 즐거움이라면, 그것은 병의 근본 종기의 근본 화살이나 가시의 근본이다. 식이 있고 나고 죽음이 있으니, 닦아서는 안 되고 익혀서도 안 되며 널리 펴서도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즐거움은 닦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다.

  

그 중에서 만일 어떤 즐거움이 성인의 즐거움이라면, 그것은 욕심이 없는 즐거움 악을 여읜 즐거움 마음을 쉰 즐거움 바르게 느낀 즐거움이다. 식이 없고 나고 죽음이 없으니, 닦아야 할 것이요 익혀야 할 것이며 널리 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즐거움을 닦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법은 다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그 중에서 만일 서로 끌어들여 하는 말이 진실하지 못하고 허망하며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못한다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다.

  

그 중에서 만일 서로 끌어들여 하는 말이 진실하여 허망하지는 않지만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못한다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다.

  

그 중에서 만일 서로 끌어들여 하는 말이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고 이치와 서로 호응한다면 이 법은 다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절도 없이 말하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다. 


절도 있게 말하면 이 법은 다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옳다고 하고 또는 그르다고 하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다.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옳다고도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으면, 이 법은 다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이것을 다투는 법[諍法]이라 하나니, 너희들은 마땅히 다툼이 있는 법과 다툼이 없는 법을 알라. 그리고 다툼이 있는 법과 다툼이 없는 법을 안 뒤에는 다툼이 있는 법은 버리고, 다툼이 없는 법만 닦아 익혀라. 너희들은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이렇게 큰 족성의 아들 수보리(須菩提)는 다툼이 없는 도로써 뒷날에 법을 법다이 알게 되었다.


  법을 진실 그대로 알아

  수보리는 게송을 읊었네.

  이 행은 진실한 공(空)이니라.

  이것을 버리고 푹 쉬어라.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25) 유결(有結, bhavasa yojana)의 유(有)는 생사(生死)의 과보를 말하고, 결(結)은 그 과보를 초래하는 번뇌를 말한다.

26) 식(食)은 범어로 Ah ra이고 끌어들이다[牽引] 유지시키다[任持]는 뜻이다. 음식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을 증장시키는 것을 모두 식(食)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