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와다 불교의 관점에서 본 매춘
김한상/동국대 강사
Ⅰ. 들어가는 말
Ⅱ. 사회 ․ 문화적 관점
Ⅲ. 윤리적 관점
Ⅳ. 구원론적 관점
Ⅴ. 나가는 말
[요약문]
본 논문의 목적은 테라와다 불교의 관점에서 매춘을 고찰하고 그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으로 알려진 매춘은 불교가 흥기하기 전 고대 인도에도 존재했다. 붓다는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와 마찬가지로, 매춘을 명시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다. 빨리 텍스트들에서 웨시야(vesiyā), 가니까(gaṇikā), 나가라소비니(nagara-sobhinī)라 불리는 매춘부는 결혼 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신분이기 때문에 매춘부와 성관계를 가지는 것은 불사음계를 어기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위나야 삐따까(Vinaya-piṭaka)』에 따르면, 매춘부는 불사음계의 준수가 적용되는 10가지 아내와 20가지 여성들에 나타나는 임시 아내(muhuttikā)이다. 이는 매춘부가 다른 남자와 이미 계약되어 있다면, 그녀에게 다가가는 남자와 매춘부 양자는 모두 불사음계를 어기는 것임을 뜻한다. 테라와다 불교의 관점에서 매춘 자체는 선(善, kusala)도 불선(不善, akusala)도 아닌 무기(無記, avyākata)일 따름이다. 왜 그런지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매춘부가 자신이 전생에 지은 불선업(不善業, akusala-kamma)의 결과(vipāka)를 받기 위해 그러한 존재로 다시 태어났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는 매춘부가 부도덕한 범죄자가 아니라 괴로움(苦, dukkha)이 특징인 존재임을 암시한다. 욕계(欲界, kāma-loka)에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감각적 욕망(kāmā-rāga)의 지배를 받는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매춘을 근절할 수 없다. 사회에서 매춘을 없애버리면 통제할 수 없는 성욕이 분출되고 성도착이나 도덕의 퇴보를 조장하게 될 것이다. 빨리 성전에서 매춘이 그릇된 생계(邪命, micchājīva)로 규정되지 않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테라와다 불교가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법제도를 통해서가 아닌 치유적인 방법을 통해서이다. 다시 말하면, 성욕은 다른 욕망들과 마찬가지로 제도적 금지나 억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정 명상(asubha-bhāvanā)과 같은 명상을 통해 그 뿌리를 서서히 제거해야만 한다.
I. 들어가는 말
매춘(賣春)1)이란 금품으로 성(性)을 사고파는 행위를 말한다. 그만큼 매춘은 민감하면서도 논란거리가 되는 주제이다. 매춘은 인류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그 역사가 장구하다. 가장 오래된 기원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의 성전 매춘(cultic prostitution) 또는 사원 매춘(temple prostitution)에서 찾아볼 수 있다.2)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여성은 종교 의식의 한 형태로서 사원이나 신전에서 낮선 남자에게 자신의 성을 제공했다. 불교가 흥기한 고대 인도에서도 매춘은 낮선 관습이 아니었다. 빨리 성전(聖典)3)과 그 주석서들에는 웨시야(vesiyā), 가니까(gaṇikā), 나가라소비니(nagara-sobhinī)라 불리는 다양한 형태의 매춘부들이 등장할 정도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매춘이 상업주의와 결합하여 매우 수지맞는 섹스 산업(sex industry)으로 전락해버렸다. 이는 전통적인 테라와다4) 불교 국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전 국민의 90%이상이 명목상 불교신자인 태국은 세계적인 섹스 산업의 메카가 된지 오래이다. 비록 거의 모든 국가들은 매춘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이를 규제하기 위한 여러 법령들을 마련해놓고 있으나 그것을 완전히 없애는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쩌면 매춘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 즉 감각적 욕망(kāma-rāga)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직업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케임(Émile Durkheim,1858∼1917)에 의하면, 종교는 현실 사회를 외면하고 추상화하기는 고사하고, 사회의 모습으로 존재하며, 사회의 모든 면들, 심지어 가장 저속하고 혐오스러운 면까지도 반영한다.5) 그래서 어떠한 종교적 논의라도 먼저 그 종교가 처한 사회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실에 대해 낙관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이를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如實智見, yathā-bhūta-ñāṇa-dassana)를 강조하는 테라와다 불교는 더욱더 그래야만 할 것이다. 비록 테라와다 불교가 괴로움(苦, dukkha)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나는 열반(涅槃, nibbāna)이란 개념으로 구원을 설명하긴 하지만, 테라와다 불교인들도 열반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동안은 세상살이를 면할 수가 없다. 따라서 테라와다 불교도 좀처럼 입에 담기조차 꺼리는 거북한 주제이자 사회적 치부인 매춘에 대해 마냥 침묵만하고 있을 수 없으며 어떤 식으로든 이에 대해 자신의 명확한 입장을 취하고 해법을 제시해야만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아픈 상처는 마냥 덮어만 놓는다고 치유되지 않고 의사에게 보여야 치유되는 것처럼 매춘의 문제에 있어서도 쉬쉬하기에만 급급한 피동적 입장에서 벗어나 이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어 공론화하는 과감한 작업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본 논문은 먼저 사회 ․ 문화적 관점에서 고대 인도의 매춘을 살펴본다. 그 다음에 윤리적 관점에서 매춘이 재가신자(upāsaka)6)가 지켜야 하는 오계(五戒, pañca-sīlāni) 가운데 불사음계(不邪淫戒, kāmesu micchācāra veramaṇī sikkhāpada)에 어긋나는 것인지를 남자 고객과 매춘부7) 양자의 입장에서 살펴본다. 그리고 구원론적 관점에서 매춘과 팔정도(八正道, ariyo aṭṭhaṅgiko maggo)와의 관계를 살펴보고, 매춘은 선과 악으로 구별할 수 없는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살펴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매춘에 대한 테라와다 불교의 해법들을 정리한다.
1) 매춘(賣春)은 성매매(性賣買), 매음(賣淫), 윤락행위(淪落行爲) 등으로도 통용된다.
그러나 매춘이란 용어는 성을 사는 행위는 무시한 채 성을 파는 행위에 대한 강조
와 비난만을 함축하고 있어서 남성에게는 관대하고 여성에게만 엄격한, 남녀차별
의 성윤리를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따라서 성을 사고파는 양자 모두
의 행위와 책임을 포함하는 매매춘(賣買春)이란 용어의 사용이 더 적절하겠지만
본 논문에서는 논술의 편의를 위해서 그냥 매춘으로 통일하여 기술한다. 이성간의
성행위나 동성애 행위에서 남녀 모두 매춘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 매춘 행위는 대
부분 여자가 주체이고 남자가 고객이 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본 논문에서 기술
되는 매춘도 이러한 통념을 기준으로 한다.
2)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의 매춘에 대해서는, Christopher A. Faraone & Laura
K.McClure(1930, pp.21-39) 참조
3) 테라와다의 전통에서 성전(聖典) 즉 캐논(canon)은 기본적으로『숫따 삐따까(Sutta-
piṭaka)』,『위나야 삐따까(Vinaya-piṭaka)』,『아비담마 삐따까(Abhidhamma-piṭaka)』
의 삼장(三藏, ti-piṭaka)을 뜻한다. 이에 대해서는 K.R. Norman(1997, pp.131-148) 참조.
4) 테라와다(Theravāda)는 어원적으로 장로(thera)의 가르침(vāda)이란 뜻으로서 서기 5세기
에 붓다고사(Buddhaghosa)가 스리랑카의 마하위하라(Mahāvihāra)에 주석하면서 성문화
한 부파이다. 붓다고사는『디가 니까야(Dīgha-Nikāya)』,『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상윳따 니까야(Saṃyutta-Nikāya)』,『앙굿따라 니까야(Aṅguttara-Nikāya)』
에 대한 주석서들의 도입부에서「싱할라앗타까타(Sīhalāṭṭhakathā)」에 의거하여 자신이
번역하고 새롭게 작업한 주석서들이 마하위하라의 생각을 대표하는 것이며, 장로들의 계
통과 유산을 밝혀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전통적인 교학 체계를 거스르지 않나니 장
로들의 계보를 밝혀주고 아주 현명하고 뛰어난 판별력을 가진 마하위하라에 머무는 장로
들을 통해 거듭해서 전승되어온 의미를 모아서 이제 그 의미를 밝히고자 하니 이는 여러
착한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법이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서이다(samayaṃ avilomento
therānaṃ theravaṃsappadīpānaṃ. Sunipuṇavinicchayānaṃ Mahāvihārādhivāsīnaṃ.
Hitvā punappunāgataṃ atthaṃ atthaṃ pakāsayissāmi. Sujanassa ca tuṭṭhatthaṃ
ciraṭṭhitatthañ ca dhammassa).”(Sv.I, p.1; Ps.I, p.1; Spk.I, pp.1-2; Mp.I, p.2).
5) Durkheim, Émile. The Elementary Forms of the Religious Life, London: George Allen
& Unwin Ltd., 1964, p.421.
6) 재가자(在家者)는 글자 그대로 출가하지 않고 집에 머물러 사는 사람을 가리키며, 빨리어로
기힌(gihin), 가하빠띠(gaha-pati), 아가리까(agārika)라고 한다. 그러나 삼보(三寶, ti-ratana)
에 귀의한 재가자를 특별히 가리킬 때에는 우빠사까(upāsaka)와 우빠시까(upāsikā)라고 한다.
7)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매춘부는 여성이며, 대다수의 고객은 남성이다. 그러나 매우 제한적이긴
하지만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남창(男娼)도 존재한다. 따라서 양성을 이분하는 논리방식을 채택
하지 않는다면 매춘에는 상당수의 남창이 존재하고, 고객의 극히 일부는 여성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본 논문은 사회적 통념에 따라 매춘부를 여성에 국한시켜 논하기로 한다.
Ⅱ. 사회 ․ 문화적 관점
불교가 흥기할 무렵인 기원전 6, 5세기의 인도 사회는 인도에 침입한 아리안족의 정착이 마무리되면서 농업 생산의 증대와 더불어 상공업이 발달하여 도시의 발전이 촉진되고, 이 도시들을 중심으로 하는 많은 국가들이 형성되었다. 도시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도덕적 퇴폐가 만연하고, 성적으로도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8)
8)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원시불교 그 사상과 실천」, 정태혁 옮김, 서울: 동문선, 1993, p.22.
붓다는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삶을 누리지는 않았지만 출가하기 이전에 왕자로서 시녀(侍女)들과 무희(舞姬)들에 둘러싸여 성장하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당시에는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도 일반적이었다.9) 게다가 다른 문명권과 마찬가지로 매춘이 존재하였다. 이는 여러 텍스트들을 통해 확인된다. 「마누법전(Manu-smṛti)」 제 IV장의 209게와 219게에 매춘부로부터 음식을 절대로 받지 말라는 기술이 보일 만큼 매춘부를 멸시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10) 대략 기원전 302년부터 291년까지 마우리아(Maurya) 제국의 수도 빠딸리뿌뜨라(Pāṭaliputra)에 주재했던 그리스인 대사(大使) 메가스테네스(Magasthēnes)는 당시 인도의 풍속을 자세하게 기록한 「인디카(Indica)」를 남겼다. 여기에는 “부인들은 구태여 정절을 강제하지 않는 한 매춘하는데 지장이 없다(The wives prostitute themselves unless they are compelled to be chaste).”11)라는 기술이 보인다. 「아르타 샤스뜨라(Artha-śāstra)」에는 왕실의 매춘부를 보살피고 감독하며, 유곽(遊廓)을 조사하고, 매달 각 매춘부로부터 이틀 분의 수입을 국가의 세금으로 거두는 임무를 맡은 감독관의 임명이 나타나고 있다.12) 이를 통해서 우리는 고대 인도에서 매춘이 성행했으며 매춘부는 국가의 보호와 감독 아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9) 고대 인도의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에 대해서는 A.L.Basham(1954, pp.173-175) 참조.
10) 이재숙 외, ?마누법전?, 서울: 한길사, 2005, pp.211, 213.
11) McCrindle, J.W. Ancient India as Described by Megasthēnes and Arrian, London:
Trubner & Co.,1877, p.71; 岩本裕, ?佛敎と女性?, 東京: 第三文明社, 1980, p.6.
12) Basham, A.L. The Wonder That Was India, New York: Grove Press, Inc., 1954.
p.184에서 재인용.
고대 인도의 매춘부는 크게 둘로 나뉜다. 첫 번째 유형은 가난이나 사회적 박탈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매춘에 뛰어든 하급 매춘부이다. 이러한 유형의 매춘부는 빨리 텍스트들에서 웨시(vesī),13) 웨시야(vesiyā),14) 웨시까(vesikā)15)라고 불린다. 이 용어들은 모두 √viś(들어가다)에서 파생된 말로서 고대 인도에서는 매춘부가 ‘집의 여자’였음을 암시한다.16) 다시 말하면, 남자 고객이 성을 사려면 길거리가 아닌 매춘부의 집을 직접 방문해야 했고 매춘부는 창문이나 계단에서 이들을 응대했음을 암시한다.17) 이러한 매춘부는 반다끼(bandhakī)라고도 불린다.18) 이 용어는 묶음, 속박, 결박을 뜻하는 빨리어 반다나(bandhana)에서 파생된 여성명사로서 글자 그대로 ‘속박하는 자’란 뜻이다. 빨리성전협회(PTS)의 「빨리 ․ 영어사전(Pāli-English Dictionary)」에 따르면, 정숙하지 못한 여자(unchaste woman)를 뜻한다고 한다.19) 반다끼는 어원적으로 볼 때 매춘부를 폄하하는 뉘앙스가 짙게 담긴 말이며, 그 성격만을 본다면 사창(私娼)20)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13) Vin. III, p.138; Ja. V, p.425.
14) Vin. IV, p.278; Sn. 108게; Vibh. p.247.
15) Sn. 314게; Th. 459게.
16) 빨리성전협회(PTS)의「빨리 ․ 영어사전(Pāli-English Dictionary)」(1921-1925,
pp.650-651)에 따르면, 이 세 용어들은 빨리어 웨사(vessa) 또는 산스끄리뜨어
와이사(Vaiśya)의 여성명사형으로 간주하여 원래 ‘낮은 카스트의 여자’를 뜻한다고
한다.
17) Perera, L.P.N. Sexuality in Ancient India: A Study Based on the Pali Vinayapitaka,
Sri Lanka: The Postgraduate Institute of Pāli and Buddhist Studies, 1993, p.216.
18) Vin.IV, pp.224, 265; Ja. V, pp.425, 431.
19) Rhys Davids, T. W. and Stede, W. ed. Pāli-English Dictionary, London: PTS,1921-
1925. p.481.
20) 사창(私娼)이란 관청의 허가 없이 비밀스럽게 몸을 파는 매춘부를 말한다. 나라에서
매춘을 승인하고 그 보호 아래 두었던 공창(公娼)에 비해 비합법적인 존재이다.
두 번째 유형은 매춘이 손쉽게 돈을 버는 길이라고 생각하여 매춘에 뛰어들게 된 고급 매춘부이다. 빨리 텍스트들에서 이들은 가니까(gaṇikā)21) 또는 가나끼(gaṇakī)22)라고 불린다. 이 용어들은 조합이나 단체를 뜻하는 가나(gaṇa)와 ika(지말 접미사)에서 파생된 여성명사로서, 글자 그대로 ‘단체에 속한 자’란 뜻이다. H.C. 짜클라다르(Chakladar)에 따르면, 가니까는 한 여성을 매춘부로 집단(gaṇa)에 세우는 관행에서 비롯되었던 듯하며, 그녀의 아름다움은 공동체적 유대로 서로 연관된 남자들의 공동 재산이었을 것이라고 한다.23) 가니까는 ‘도시를 아름답게 하는 자’라는 뜻의 나가라소비니(nagara-sobhinī)24)라고도 불린다. 이와 같이 가니까나 나가라소비는 한 도시나 집단을 대표하는 고급 매춘부로서 그 성격상 공창(公娼)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가니까가 도시를 아름답게 하는 자라는 뜻의 나가라소비니로 불린 사실은 이들의 사회적인 기여도나 사회적 위치가 인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25) 고대 인도에서 가니까나 나가라소비니는 단순히 몸을 파는 매춘부가 아니라 가무나 기예에 뛰어난 사교계의 꽃으로서 국가의 수입을 올리는 재원(財源) 역할을 담당했다.26)
21) Vin.I, p.231, 268, II, p. 277; Ud. p.71; Mil. p.122; Dhp-a.III, p.104; Vv-a. p.75;
Pv-a. p.195; Ja.IV, p.249; V, p.134.
22) Vin.III, pp.135-136.
23) Chakladar, H.C. Social Life in Ancient India: A Study in Vātsyāyana’s Kamasūtra, Calcutta,
1954, p.140.
24) Ja.II, p.367; III, p.435, 475; Dhp-a.I, p.174; II, p.201; Pv-a.p.4; Mil. p.350.
25) Perera, L.P.N. op.cit., p.224.
26) Horner, I.B. Women under Primitive Buddhism, London: George Routledge & Sons,
Ltd, 1930, p.88f.
"가니까 암바빨리는 아름답고 보기에 좋고 매력적인 최상의 미모를 갖추고 춤과 노래와 류트 연주에 뛰어났다. 원하는 사람마다 모여들었는데, 그녀는 하룻밤에 50까하빠나을 벌었고, 이 때문에 웨살리는 더욱 번창했다."27)
27) Vin.I, p.268, “Ambapālikā gaṇikā abhirūpā hoti dassanīyā pāsādikā paramāya
vaṇṇa-pokkharatāya samannāgatā padakkhiṇā nacce ca gīte ca vādite ca abhisaṭā
atthikānaṃ-atthikānaṃ manussānaṃ paññāsāya ca rattiṃ gacchati tāya ca Vesālī
bhiyyosoma-ttāya upasobhati.”
이러한 면에서 이들은 고대 그리스의 헤타이라(Hetaira)28)나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기생(妓生)29)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위나야 삐따까(Vinaya-piṭaka)』에는 이들과 하룻밤을 보내는데 50∼100까하빠나(kahāpaṇa)30)가 들었다는 기술을 볼 수 있을 만큼 이들의 화대(花代)는 굉장히 높았다.31) 따라서 가니까나 나가라소비니라 불리던 고급 매춘부들은, 매춘부가 사회적 약자라는 오늘날의 통념과는 반대로, 높은 사회적 지위와 물질적 풍요를 누렸던 것 같다. 암바빨리(Ambapālī)가 붓다에게 망고나무숲(Ambapālivana)을 정사(vihāra)로 기증할 만큼의 재력을 갖추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아무튼 가니까나 나가라소비니는 상위 카스트(caste)에 속한 부인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정들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분방한 여성들로 생각된다.32) (앞으로는 논술의 편의와 통일성을 위해서 두 가지 유형의 매춘부들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매춘부라고 부르기로 한다.)
28) 헤타이라(hetaira)는 고대 그리스의 매춘부였다. 그러나 그저 몸을 파는 여자가 아니라
철학, 정치, 예술 등을 토론할 수 있는 교양을 갖춘 여성으로서 당대의 저명한 정치인,
철학자, 장군 등의 비공식 파트너였다. 헤타이라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훈련을 받았
다고 한다. 몸을 치장하는 법과 대화술, 남성 고객의 욕구를 이해하는 법을 익힐 뿐만
아니라 문학과 예술 등 지성을 갖추도록 교육받았다. 헤타이라는 보통 유행을 따라
혼자 살거나 때로는 2∼3명이 함께 살면서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우러러볼 정도로 부
유층의 지위를 누렸으며, 국가의 보호를 받고 세금을 납부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외국인이나 노예 또는 해방노예였지만 결혼해서 격리생활을 하는 여성들보다 훨씬
더 자유로웠다. 이들의 집에는 결혼한 남자들이 자주 드나들어도 사회적으로 흠이
되지 않았다. 이들은 종종 향연과 가내 제사를 치르기 위해 연예인들을 고용하기도
했다. 코린트(Corinth)와 아테네(Athens)의 헤타이라는 특히 신체적으로도 아름답
고 문화적인 수준이 뛰어난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29) 조선시대의 기생(妓生)은 ‘말을 알아듣는 꽃’이란 뜻의 ‘해어화(解語花)’라고도 불
렀다. 기생은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나 춤 등으로 멋스럽게 흥을 돋우는 일을 직
업으로 삼았다. 기생은 사회계급으로는 천민에 속하지만 시와 글에 능한 지식인으
로서 대접받는 특이한 존재였다.
30) 까하빠나(kahāpaṇa)는 고대 인도의 화폐 단위이다.
31) Vin.I,pp.268-289.
32) Basham, A.L. op.cit., p.183.
III. 윤리적 관점
붓다는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와 마찬가지로 매춘이나 매춘부를 명시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다.33) 그 이유는 매춘이 재가신자가 지켜야 하는 오계(五戒,pañca-sīlānī) 중의 불사음계(不邪淫戒)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매춘은 불교에서 규정하는 삿된 음행(邪淫, kāmesu micchācār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불사음계는 빨리어로 “까메수 밋차짜라 웨라마니 식카빠담 사마디야미(Kāmesu micchācār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이다. 까마(kāma)라는 빨리어는 감각적 쾌락이나 감각적 욕망이라는 일반적 의미를 지닌다.34) 그러나 붓다고사(Buddhaghosa)는 이 문맥에서 까마를 ‘성관계(methuna-samacara)’35)로, 밋차짜라(micchācarā)는 ‘참으로 비난받을 만한 삿된 행동(ekantanindito lāmakācāro)’을 각각 뜻한다고 설명한다.36) 그래서 까메수 밋차짜라(Kāmesu micchācārā)는 삿된 음행(sexual misconduct)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붓다고사는 까메수 밋차짜라의 성격을 “몸의 문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범하려는 성관계의 의도”라고 공식적으로 정의하고 있다.37) 이와 같이 까마는 단순한 감각적 쾌락이 아니라 성관계를 할 수 있는 대상들에 대한 권한 즉 섹스 라이센스(Sex Licence)를 구체적으로 나타낸다.38) 미국의 테라와다 승려인 빅쿠 보디(Bhikkhu Bodhi)에 따르면,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이 계율이 지향하는 목적은 결혼관계를 외부적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고 결혼 당사자들 간의 신의와 정절을 증진시키는 데 있다고 한다.39) 정신적 향상의 관점에서 볼 때는 성욕이 커지는 성향에 제동을 걸고 이욕(離欲, virāga)의 방향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 마침내 출가자가 범행(梵行, brahmacariya)을 준수하는 데까지 이르게 한다. 그러나 재가신자의 경우 이 계는 부적절한 대상과의 성관계를 금지하는 정도에서 그친다는 점이 중요하며, 우리의 논의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하기로 한다.
33) 매춘과 매춘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자따까(Jātaka)』의 산문과『밀린다빤하
(Milindapañha)』와 같은 후대의 빨리 텍스트들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제419번 『자따까』인 「수라사 자따까(Sulasā-Jātaka)」에는 “만약 내가
저 용감한 무사를 풀어줄 수 있다면, 이 오염된 직업을 버리고서 그와 함께 잘 살 수
있을 것이다(sace imaṁ yodhaṁ samatthapurisaṁ mocetuṁ sakkhissāmi, idaṁ
kiliṭṭhakammaṁ akatvā iminā va saddhiṁ saṁvāsaṁ kappessāmīti).” 라는 기술
이 보이고(Ja.III, p.436),『밀린다빤하』에는 “나는 빠딸리뿟따라는 도시에서 가장
낮은 생계인 몸으로 먹고 사는 가니까입니다(Ahaṁ hi nagare Pāṭaliputte gaṇikā
rūpūpajīvinī antimajīvikā).”기술이 보이고 있다. (Mil. p.122) 이를 볼 때 매춘과 매
춘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붓다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빨리 성전과 그 주석
서들이 마하위하라(Mahāvihāra)의 장로들에 의해 스리랑카에서 성문화되면서부터
형성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34) Hammalawa Saddhatissa(1987, pp.60, 88-92)에 따르면 빨리어 ‘까메수 밋차짜라
(kāmesu micchācārā)’가 많은 경우에 ‘간통(adultery)’으로 잘못 번역되었다고 한다.
원래의 빨리어 용법에 따르면 ‘까마(kāma)’가 복수형 처소격으로 쓰일 때에는 모든
감각들을 지나치게 자극하기 마련인 모든 비정상적이거나 불법적인 습관이나 행위들
을 함축한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까메수 밋차짜라’를 단지 성관계(methuna-dhamma)
에만 관련지어 설명함으로써 ‘까메수(kāmesu)’의 문법적 형식이 완전히 무시되어 왔
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계율의 완벽한 준수를 위해서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五欲樂, pañca-kāmaguṇā)을 중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다. M.O’C.Walshe(2006, p.3)도 빨리어 ‘까마(kāma)’는 ‘육체에 대한 정욕(the lusts
of the flesh)’이라는 기독교 성서(聖書)의 표현이 뜻하는 바와 거의 가깝게 복수형으
로 쓰였기 때문에, 비단 성욕만이 아닌 ‘감각적 쾌락’을 뜻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까
마는 식탐이나 다른 감각적 쾌락도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석서들에 따르면,
까마는 구체적으로 ‘성관계’를 뜻하는 메투나 담마(methuna-dhamma) 또는
메투나사마짜라(methuna-samacara)를 가리킨다.
35)『위나야 삐따까(Vinaya-piṭaka)』는 성관계 즉 메투나 담마(methuna-dhamma)를
이렇게 설명한다. “성관계는 부정한 법(asaddhamma)이고, 마을의 법(gāma-dhamma)
이고, 천한 법(vasala-dhamma)이고, 조악하고(duṭṭhulla), 마지막 세정(odakantika)이고,
은밀함(rahassa)이고, 성교의 성취(dvayaṃ dvayasamāpatti)이다. 이를 일러 성관계라고
한다. 실행(paṭisevati)은 남성의 성기가 여성으로 들어갈 때, 남근이 여성에 참깨씨앗
(tilaphala-matta)만큼이라도 들어가면 이를 실행이라고 부른다.”(Vin.III, p.28)
36) As. p.98, “‘까메수 밋차짜라’라는 표현에서 ‘까메수’는 성관계를 뜻한다. ‘밋차짜라’는
참으로 비난받을 만하고 삿된 행동을 뜻한다(Kāmesu micchācāro ti ettha pana kāmesū
ti methunasamācāresu micchācāro ekantanindito lāmakācāro).”
37) As. p.98, “Lakkhaṇato pana asaddhammādhippāyena kāyadvārapavattā
agamanīyaṭṭhānavītikkamacetanā kāmesu micchācāro.”
38) Story, Francis. The Buddhist Outlook, Kandy: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1973, p.186.
39) Bodhi, Bhikkhu. The Noble Eightfold Path: The Way to End of Suffering, Kandy: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2006, p.32.
여기서 우리는 불사음계에서 금지되는 부적절한 성관계의 대상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붓다는 『위나야 삐따까』에서 남자의 입장에서 부적절한 성관계의 대상을 10가지 여성(dasa-itthiyo)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① 어머니의 보호를 받는 여자(mātu-rakkhitā), ② 아버지의 보호를 받는 여자(pitu-rakkhitā), ③ 어머니와 아버지의 보호를 받는 여자(māta-pitu-rakkhitā), ④ 형제의 보호를 받는 여자(bhātu-rakkhitā), ⑤ 자매의 보호를 받는 여자(bhāgini-rakkhitā), ⑥ 친척의 보호를 받는 여자(ñāti-rakkhitā), ⑦ 가문의 보호를 받는 여자(gotta-rakkhitā), ⑧ 종교 집단의 보호를 받는 여자(dhamma-rakkhhitā), ⑨ 스스로 보호를 받는 여자(sārakkhā), ⑩ 몽둥이의 보호를 받는 여자(saparidaṇḍā)40)이다.41) 그리고 다시 10가지 아내(dasa-bhariyāyo)를 열거하고 있다. 즉 ① 재물로 산 여자(dhanakkītā), ② 욕정으로 데려온 여자(chandavāsinī), ③ 혼수품 등으로 데려온 여자(bhogavāsinī), ④ 옷을 줘서 데려온 여자(paṭavāsinī), ⑤ 부모, 보호자, 친척이 결혼시킨 여자(odapattakinī), ⑥ 물건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다른 남자에 의해 아내가 된 가난한 여자(obhatacumbaṭā), ⑦ 노예 여인을 아내로 삼은 여자(dāsibhariyā), ⑧ 하녀를 아내로 삼은 여자(kammakāribhariyā), ⑨ 전투에서 포로로 잡아 아내로 삼은 여자(dhajāhaṭā), ⑩ 잠시 빌린 여자(muhuttikā)이다.42)
40) 본 논문에서 ‘몽둥이의 보호를 받는 여자’로 옮기는 원어는 빨리어로 사빠리단다
(saparidaṇḍā)이다. 이 용어는 sa(함께)와 pari(두루, 원만한)와 daṇḍa(몽둥이)의
합성어이다. 그래서 글자 그대로는 ‘몽둥이에 둘러싸인’이란 뜻이다. 붓다고사
(Buddhaghosa)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러 이러한 여인에게 접근하는 사람
에겐 몽둥이(daṇḍa)로 이만큼의 벌을 준다고 마을이나 집이나 길에다 형벌을 알
린, 그런 여인들을 몽둥이로 보호하는 여인들이라 한다.” (Ps.II, p.330) 그래서
이 용어는 남자가 접근하는 경우 사회적 법률에 의해서 처벌을 받는 여자를 의미
한다.
41) Vin.III, p,139.『맛지마 니까야(Majjhima-Nikāya)』에서 붓다는 이 목록의 처음 여섯
가지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보호를 받는 여자(māta-pitu-rakkhitā)를 뺀 다섯 가지
를 들고 나서 남편이 있는 여자(sassāmika), 몽둥이의 보호를 받는 여자(saparidaṇḍā),
화환을 두른 여자(mālāguḷaparikkhittā)를 들고 있다.(MN.I, p.286; MN.III, p.46)『앙굿
따라 니까야(Aṅguttara-Nikāya)』에서도 붓다는 이 목록의 처음 여섯 가지에서 어머니
와 아버지의 보호를 받는 여자(māta-pitu-rakkhitā)를 뺀 다섯 가지를 들고 나서 종교
집단의 보호를 받는 여자(dhammarakkhitā), 남편이 있는 여자(sassāmika), 몽둥이의
보호를 받는 여자(saparidaṇḍā), 화환을 두른 여자(mālāguḷaparikkhittā)를 들고 있다.
(AN.V, pp.264,266-267)
42) Vin.III, p.139. As. p.98도 참조.
빅쿠 보디에 따르면, 이들은 다른 남자와 이미 결혼한 여자, 아직 보호받고 있는 여자, 관습에 의해 금지된 여자의 세 범주들로 나뉠 수 있다고 한다.43) 여기서 우리는 10가지 아내들의 범주에는 다른 남자와 합법적으로 혼인한 여자 이외에도,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남자와 같이 살거나 그의 보호를 받고 있는 여자까지도 한 남자의 아내로 간주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까메수 밋차짜라의 진정한 의미는 합법적 결혼이든 사실혼이든 다른 남자의 아내로서의 관계를 지닌 여자와 성적인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44)
43) Bodhi, Bhikkhu. op.cit., p.30.
44) Story, Francis. op.cit., p.189.
여기서 우리는 20번째 ‘잠시 빌린 여자’로 옮긴 무훗띠까(muhuttika)라는 빨리어에 주목해야 한다. 이 용어는 muhutta(순간, 찰나, 잠시)와 ika(지말 접미사)의 합성어로서 글자 그대로 ‘잠시 얻거나 빌린 여자’이다. 『위나야 삐따까』에서는 무훗띠까(muhuttikā)가 땀카니까(taṃkhaṇika)로 나오는데 두 용어는 실제로 동의어로 나타난다.45) 그리고 문맥상 저급 매춘부 즉 웨시야(vesiyā)를 뜻하고 있다.46) 붓다고사는 땀카노(taṃkhaṇo)가 짧은 시간(acira-kāla)을 뜻하기 때문에 땀카니까(taṃkhaṇika)는 짧은 시간에 관계를 맺는 아내(acirakālādhikārika)를 뜻한다고 설명한다.47) 따라서 무훗띠까는 어떤 남자에 의해 한 번이나 며칠 동안 아내 역할을 해주거나 섹스 파트너(sex partner)가 되어주도록 돈으로 산 여자이다.48) 이는 사실상 상응하는 화대를 지불하고 그에 해당하는 시간만큼의 성적 서비스나 유흥을 제공받는 오늘날의 매춘부나 접대부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45) Vin.III, p.140, “임시 아내는 잠시 동안의 아내를 말한다(muhuttikā nāma-taṃkhaṇikā
vuccati).”
46) Vin.III, p.138-139.
47) Sp.III, pp.553-554.
48) Story, Francis. op.cit., p.188.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매춘부가 어떤 남자 고객과 화대를 받고 관계가 성립되었다면, 그와는 임시적으로 사실혼 관계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그 동안에 다른 남자를 고객으로 받아 들인다면 불사음계를 어기는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남자 고객이 다른 남성에게 화대를 받고 예약되지 않은 자유로운 상황에 놓인 매춘부를 쓰는 것은 불사음계를 깨드리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이러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남자가 매춘부에게 화대를 주고 성관계를 맺는 것은 불사음계를 깨뜨리는 것이라 볼 수 없다.
그렇다면 기혼의 남자 고객은 어떠할까? 이미 결혼하여 아내를 두고 있는 남성이 매춘부를 찾는 것은 불사음계를 어기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빨리 성전과 그 주석서들에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간접적인 해답은 도출해낼 수 있다. 전하는 바49)에 따르면, 웃따라 난다마따(Uttarā Nandamātā)라는 여인은 붓다와 그 제자들을 초대해서 공양을 올리고 가르침을 듣기 위해서 시리마(Sirimā)라는 매춘부를 고용하여 보름 동안 자신의 남편인 수마나(Sumana)의 시중을 들도록 했다고 한다. 이미 삼보(三寶,ti-ratana)에 귀의하고 오계까지 받은 웃따라 난다마따가 매춘부를 자신의 남편에게 보낸 일은 유부남이 매춘부와 성관계를 맺는 일이 불사음계를 어기는 것이 아님을 방증한다.50) 또 한 가지 예는 빔비사라(Bimbisāra) 왕이 하룻밤에 50까하빠나를 화대로 받는 암바빨리(Ambapālī)때문에 웨살리(Vesāli)가 크게 부유해지자 자신도 라자가하(Rājagaha)에서 살라와띠(Sālavati)라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나가라소비니로 선발했다는 『위나야 삐따까』의 기술이다.51) 게다가 빔비사라는 개인적으로 암바빨리의 단골 고객이자 정부(情夫)이기도 했다. 이들과의 사이에서 위말라 꼰단냐(Vimala-Kondañña)라는 사생아(私生兒)도 태어났다.52) 빔비사라는 붓다의 설법을 듣고 이미 수다원과(須陀洹果, sotāpatti-phala)를 얻은 성인(聖人, ariya-puggala)이었다. 수다원과를 얻은 성인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스스로 오계를 어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오계를 어기도록 하지 않는다. 그러한 그가 살라와띠를 라자가하를 대표하는 고급 매춘부로 선발하고 암바빨리를 가까이하여 사생아까지 두었다는 사실은 적어도 붓다 당시에 매춘이 사회적 관념으로든 불교적 관념으로든 허물로 간주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이와 같이 빨리 텍스트들에서 유부남들이 매춘부를 가까인 한 사례들이 많이 나타나고, 붓다도 이를 명시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던 이유는 어쩌면 일부다처제를 도덕적으로 나쁜 것으로 비난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던 붓다의 태도와도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53) 즉 붓다는 유부남이 매춘부를 가까이하는 것은 마치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와 같이 단지 또 하나의 아내를 두는 것과 같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매춘부가 임시 아내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물론 이러한 관념은 고대 인도에서 아내는 일반적으로 가장의 소유물로 여겨졌던 사실에서 비롯된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임을 부인할 수 없다.54)
49) Dhp-a. p.631ff; Vv-a. p.11f.
50) 나중에 시리마(Sirimā)는 수마나(Sumana)가 웃따라 난다마따(Uttarā Nandamātā)에게
미소 짓는 것을 보고 자신이 웃따라에게 고용된 줄도 모르고 질투심에 사로잡혀 그녀에
게 펄펄 끓는 기름을 부었다. 그러나 웃따라의 자애(mettā)로 인하여 펄펄 끓는 기름은
조금도 그녀에게 해를 미치지 못했다. 그러자 시리마는 웃따라에게 자신의 잘못을 빌었
고 웃따라는 그녀를 붓다에게 데리고 가서 이제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붓다에게 아뢰었
다. 붓다는 시리마에게 법을 설하였고 웃따라의 남편과 장인, 그리고 시리마는 수다원
(須陀洹, sotāpanna)이 되고, 웃따라는 사다함(斯多含, sakadāgāmī)이 되었다고 한다.
(Vv-a. p.631ff; Vv. p.11f; Dhp-a.III, pp.104, 302ff)
51) Vin.I, p.268.
52) Thī-a.I, p.146.
53) Francis Story(1973, p.186)는 세계적으로 매춘이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는 직접적인
이유가 바로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의 추세에 있다고 진단한다. 왜냐하면 결혼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자신들을 부양하지 못하는 많은 가난한 여성들에게는 매춘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54) Bodhi, Bhikkhu. Dāna: The Practice of Giving, Kandy: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2006, p.9
이제 매춘부의 입장에서 윤리적 문제를 논해보자. 성을 파는 매춘부의 행위는 불사음계를 어기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 빨리 성전과 그 주석서들에는 명시적인 언급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가능한 그 해답을 추론해보기로 한다. 만약 매춘부가 불사음계를 어기는 것이라면 업(kamma)과 그 과보(vipāka)의 법칙에 따라 그녀는 네 가지 나쁜 곳(四惡趣, cattāro apāyā)55)에 태어나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빨리 텍스트들 어디에서도 그러한 사례를 찾을 수 없다.56) 오히려 제276번째 『자따까(Jātaka)』인「꾸루담마 자따까(Kurudhamma-Jātaka)」57)에는 불사음계를 어기지 않으려 노력하던 매춘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보살(菩薩,bodhi-satta)은 꾸루(Kurū)의 국왕 다난자야(Dhanañjaya)의 왕자로 태어나 왕이 죽자 인다빳따(Indapatta)를 다스린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 왕후(王后),부왕(副王), 사제관(司祭官), 바라문(brāhmaṇa), 마부, 조세관, 대신, 수위, 매춘부 등과 마찬가지로 꾸루담마(kuru-dhamma) 즉 오계를 철저하게 지켰다. 왕국은 그래서 매우 번창하고 국민들은 행복했다. 그때 깔링가(Kāliṅga)에는 가뭄이 들어 식량이 부족해졌다. 깔링가 왕은 대신들의 조언을 받고 여덟 명의 바라문들을 보내서 보살 즉 꾸루의 왕에게 비를 내린다고 알려진 국가의 코끼리 안자냐와사바(Añjanavasabha)를 빌려달라고 요청하였다. 보살은 코끼리를 기꺼이 빌려주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러자 꾸루의 번영은 왕과 다른 사람들이 지키는 꾸루담마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꾸루담마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전령들을 파견하였다. 위로는 왕으로부터 아래로는 매춘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꾸루담마를 열심히 지켰지만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자신들이 꾸루담마를 어기지 않았을까 하는 회의(kukkucca)를 품고 있었다. 그래서 전령들은 이들을 하나하나 찾아가서 꾸루담마의 목록을 금판(金版)에 새겨야 했다. 각각의 사람들이 전령들에게 설명한 사건들은 사실상 자신들이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꾸루담마를 지키며 살았는지를 강조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급 매춘부 즉 가니까의 이야기에 주목해야 한다. 천인들의 왕인 삭까(Sakka)가 그녀의 도덕을 시험하기 위하여 청년의 모습으로 찾아왔다. 그리하여 1천 까하빠나를 화대로 주고 곧 오겠다고 하고는 천상으로 돌아가 3년 동안 오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계 즉 불사음계를 깨뜨릴까 두려워하여 3년 동안 다른 남자한테는 빈랑나무 잎(tambūla) 만큼의 화대도 받지 않았다. 그러하여 차츰 생활이 곤란해진 그녀는 재판관에게 가서 판결해 달라고 하였다. 재판관은 지금부터 다시 매춘을 하여 화대를 받도록 하라고 판결하였다. 그녀가 판결을 얻고 재판소에서 나왔을 때, 어떤 사내가 그녀에게 화대로 1천 까하빠나(kahāpaṇa)를 주었다. 그녀가 그 돈을 받으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에 청년으로 변한 삭까가 나타났다. 그녀는 그를 보고 “3년 전에 내게 1천 까하빠나를 준 사람이 왔습니다. 나는 이제 당신의 돈은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내밀었던 손을 다시 거두었다. 이 이야기가 암시하는 바는 매춘부가 상응하는 화대를 남자 고객에게 받은 만큼은 그의 임시 아내이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에 다른 남자 고객을 받거나 성관계를 맺는다면 그녀는 불사음계를 어기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불사음계와 관련된 매춘부의 올바른 직업윤리도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55) 네 가지 나쁜 곳(四惡趣, cattāro apāyā)은 지옥(niraya), 아귀(petti-visaya), 축생의
모태(tiracchāna-yoni), 아수라의 무리(asura-kāya)을 말한다.
56)『상윳따 니까야(Saṁyutta-Nikāya)』의 「락카나 상윳따(Lakkhaṇa-Saṁyutta)」는
마하목갈라나(Mahāmoggalāna)가 깃자꾸따(Gijjhakūta)에 머물면서 신통으로 본,
기이한 형태의 몸을 받아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락카나(Lakkhaṇa) 장로에게 설명
해주는 21개의 경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간통을 저지른 남자와 여자, 동물
도살업자들, 말조련사, 사형집행인 등이 나오지만 매춘부나 그를 상대한 남성 고
객은 나오지 않는다. 어느 때 딸라뿌따(Tālapuṭa)라는 사람이 붓다에게 무대배우
(naṭa)는 죽은 뒤에 빠하사 천상(Pahāsa-devā)에 다시 태어난다고 주장하였다.
붓다는 이를 반박하면서 그들은 천상에 태어나기는커녕 빠하사 지옥(Pahāsa-
niraya)에 태어난다고 하였다.(SN.IV, p.305f) 마찬가지로 무사(yodhājīva)도 전
장(戰場)에서 죽어서 사라지따 천상(Sarājita-devā)에 태어나기는커녕 사라지따
지옥(Sarājita-niraya)에 태어난다고 하였다.(SN.IV, p.311) 이와 같이 내생에 지
옥에 태어나는 그릇된 직업인들로 무대 배우나 무사가 언급되고 있지만, 매춘부
는 언급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붓다는 매춘부를 스스로가 불선업(不善業,
akusala-kamma)이나 악업(惡業, pāpa-kamma)을 짓거나 남들로 하여금 그러
한 업들을 짓도록 부추기는 그릇된 직업인으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57) Ja.II, p.365ff.
Ⅳ. 구원론적 관점
테라와다 불교의 열반(涅槃, nibbāna)은 기독교의 구원(salvation)에 해당되는 말로서, 열반을 얻기 d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법인 팔정도(八正道,ariyo-aṭṭhaṅgiko-maggo)가 바로 구원론(soteriology)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이 구원론적 관점에서 매춘과 매춘부를 논의해보고자 한다. 매춘은 돈 거래를 수반하기 때문에 팔정도의 바른 생계(正命, sammājiva)와 관련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문제는 매춘부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진다. 매춘도 바른 생계로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붓다는 명시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다만 붓다는 바른 생계를 “그릇된 생계를 제거하고 바른 생계로 생명을 영위하는 것(micchāājīvaṃ pahāya sammāājīvena jīvitaṃ kappeti).”이라고 정의한다.58) 이 정의는 바른 생계가 그릇된 생계(邪命, micchājīva)를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릇된 생계를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릇된 생계란 사람이든 동물이든 모른 생명을 직 ․ 간접적으로 해치는 장사(vaṇijjā)를 모두 포함한다. 붓다가 재가신자에게 명시적으로 금지한 장사들은 『앙굿따라 니까야(Aṅguttara-Nikāya)』에 모두 다섯 가지 장사(pañca-vaṇijjā)로 나타난다.
58) SN.V, p.9, “Idha bhikkhave ariyasāvako micchāājīvaṃ pahāya sammāājīvena
jīvitaṃ kappeti. ayaṃ vuccati bhikkhave sammāājīvo.”
비구들이여, 재가신자는 다섯 가지 장사를 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 다섯인가? 무기 장사, 중생 장사, 고기 장사, 술 장사, 독약 장사다. 비구들이여, 재가신자는 이러한 다섯 가지 장사를 해서는 안 된다.
59) AN.III, p.208, “Pañc’imā bhikkhave vaṇijjā upāsakena akaraṇīyā. Katamā pañca?
Satthavaṇijjā, sattavaṇijjā, maṃsavaṇijjā, majjavaṇijjā, visavaṇijjā. Imā kho, bhikkhave,
pañca vaṇijjā upāsakena akaraṇīyā ti.”
여기서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이 중생 장사(satta-vaṇijjā)이다. 빅쿠보디는 여기에 매춘도 포함된다고 하지만,60) 이러한 견해는 주석서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붓다고사(Buddhaghosa)는 “중생 장사란 사람을 파는 일이다(sattavaṇijjāti manussavikkayo).”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61) 물론 매춘을 목적으로 인신매매를 한다거나 조직적으로 매춘부들을 관리하는 일 따위는 중생 장사에 해당된다.62) 아마도 빅쿠 보디는 이를 염두에 두고 매춘이 중생 장사에 포함된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래서 매춘 그 자체는 그릇된 생계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60) Bodhi, Bhikkhu. The Noble Eightfold Path: The Way to End of Suffering, Kandy: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2006, p.33.
61) Ps.III, p.303.
62) Payutto, Bhikkhu P. A. Beyond: Kamma in the Buddha’s Teachin g, Bangkok,
Buddhadhamma Foundation Publications, 1993, p.61.
재가자는 직업을 가지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재가자에게 재물은, 가족과 친지를 부양하는 등의 의무를 수행하고 승가를 지원하는 공덕을 지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붓다는 수단이 정당하다면 더 많은 재물을 얻어 더 많은 공덕을 짓는 것이 바람직한 재가신자의 삶이라고 인정하였다.63) 붓다가 그릇된 생계라고 규정한 다섯 가지 직업이 아니라면, 재가신자는 자기의 소질과 처지에 따라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하여 종사할 수 있다. 이는 매춘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물론 매춘보다 더 바람직한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지만, 다양한 재가신자들의 능력과 처지에서 그런 선택이 누구나 가능할 수는 없을 것이며, 어느 직업을 가지든 그 속에서 오계에 어긋나지 않는 방법으로 직업을 영위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붓다가 고급 매춘부 암바빨리가 바친 식사초대에 기꺼이 응하고, 그녀가 바친망고나무숲을 받아들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암바빨리가 붓다에게 바친 식사나 망고나무숲은 모두 그녀가 매춘을 통해서 벌어들인 재산이다. 붓다가 이러한 재산을 수락한 것은 붓다가 매춘이 그릇된 생계라고 보지 않았음을 방증하는 하나의 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63) AN.I, p.128f.
팔정도 가운데 바른 생계는 우리가 생계를 올바른 방법으로 꾸려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설해진 것이다. 붓다는 재가신자들이 부를 축적할 때 다음과 같은 기준들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재물은 반드시 합법적으로 획득해야 하며 불법으로 획득해서는 안 되고, 평화적으로 벌어야 하며 강제나 폭력을 써서는 안 되고, 정직하게 벌어야 하며 사기나 속임수로 얻어서는 안되고, 어떤 경우에도 남에게 해나 고통을 끼치지 않는 방법으로만 획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빨리 성전에 국한해서 말한다면, 매춘 그 자체는 그릇된 생계라고도 볼 수 없다. 매춘이 그릇된 생계가 아니라고 한다면, 매춘이라는 직업에 요구되는 직업윤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한 남자 고객으로부터 화대를 받은 상황에서는 또 다른 남자를 고객으로 받아서는 안되고, 화대를 준 그 고객에게만 충실하게 서비스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매춘부는 화대를 받는 이상 모든 고객을 차별하지 않고 충실하게 서비스할 것이 요구된 것 같다. 이는 『밀린다빤하(Milindapañha)』에서 빈두마띠(bindumatī)라는 매춘부가 아쇼까(Aśoka) 왕에게 한 말로 증명된다.64)
64) Mil. p.122, “대왕이여, 저는 무사 계급이든 바라문이든 평민이든 천민이든, 저에게
돈을 주는 사람에게는 그들을 평등하게 대합니다. 무사 계급이라 해서 존경한다거나,
천민이라 해서 경멸한다거나 하는 일이 없습니다. 저는 친애와 혐오를 떠나 저의 몸
을 사는 사람에게는 평등하게 봉사합니다. 대왕이여, 이것이 제가 진실을 실행하는
근거이며, 그 힘에 의하여 저는 큰 갠지스 강을 거슬러 흐르게 하였습니다(Yo me
mahārāja dhanaṁ deti khattiyo vā brāhmaṇo vā vesso vā suddo vāañño vā koci
tesaṁ samakaṁ yeva upaṭṭhahāmi, khattiyo ti viseso na-tthi, suddo ti atimañ-
ñanā na-tthi, anunayapaṭighavippamuttā dhanasāmikaṁ paricarāmi, esā me
deva saccakiriyā yāyāhaṁ imaṁ Mahāgangaṁ paṭisotaṁ sandāpesin ti).”
앞서 우리는 남자 고객이 매춘부와 관계를 맺는 것이 윤리적으로 허물이 되지 않음을 살펴보았다. 그러면 매춘 그 자체는 어떠할까? 이에 대한 답변에 앞서 우리는 업(kamma) 그 자체는 의도(思, cetanā)가 본질이기 때문에65) 도덕적인 잣대로 선(善, kusala)과 불선(不善, akusala)으로 구별할 수 있지만, 과보(vipāka)는 단지 그 업의 결과일 따름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판가름할 수 없는 무기(無記, avyākata)66)라는 점을 언급해야만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매춘부는 전생에 그녀가 지었을 불선업(不善業, akusala-kamma)이나 악업(惡業, pāpa-kamma)의 과보로 현생에 그러한 직업에 종사하게 되었을 뿐이므로, 매춘 그 자체는 윤리적으로 판가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에게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러한 예를 주석서에서 찾아보자. 시키 붓다(Sikhī Buddha)가 세상에서 교화를 펼치고 있을 때, 암바빨리는 출가하여 승가에 들어갔다. 아직 사미니였을 때, 그녀는 비구니들의 행렬에 참여하여 한 사당에 참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때 한 아라한 비구니가 그녀 앞에서 사당의 뜰 안에 급하게 침을 뱉었다. 그 침을 보고, 또 침을 뱉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그녀는 “어떤 매춘부가 여기에 침을 뱄었지?”라고 비난하였다. 이러한 말 때문에 그녀는 여러 번 지옥에 태어났고 마지막 생에 매춘부로 태어났다.67) 이러한 예에서 보듯이 매춘부는 현생에서 그러한 존재로 태어남으로써 자신이 전생에 지었을 불선업에 대한 죗값을 치루는 데 불과하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I. B. 호너(Horner, 1896∼1981)의 다음 주장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65) AN.III, p.415, “비구들이여, 내가 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의도이다. 의도를 통해서 사람은
몸, 말, 뜻을 통하여 업을 짓게 된다(cetanāhaṃ bhikkhave kammaṃ vadāmi; cetayitvā
kammaṃ karoti kāyena vācāya manasā).”
66) 본 논문에서 ‘무기(無記)’로 옮긴 빨리어 아브야까따(avyākata)는 a(부정의 접두사)와
vyākata/byākata(설명, 결정, 상세한 해설)의 복합어이다. 브야까따(vyākata)는 vi(분
리하여)와 ā(∼을 향하여, ∼으로)와 √kṛ(하다)에서 파생된 동사인 vyākaroti(설명하다,
결정하다, 답하다)의 과거분사형이다. 그래서 아브야까따는 ‘설명할 수 없는, 답하지
못하는, 결정하지 못하는’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숫따 삐따까(Sutta-piṭaka)』에서
쓰인 아브야까따(avyākata)는 『담마상가니(Dhammasaṅgaṇī)』에서 띠까 마띠까
(tika-mātikā)의 하나로 쓰인 아브야까따와 뜻이 다르다는 점이 중요하다. 붓다는 경
우에 따라 형이상학적 질문들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는데, 이들은 묵살해야 하거
나 판단할 수 없는 질문들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를 10무기(十無記) 혹은 14무기
(十四無記)라고 한다. 그러므로 니까야에서 형이상학적 주제를 다루는 장은 「아브야
까따상윳따(Avyākata-saṁyutta)」나 「아브야까따왁가(Avyākata-vagga)」라고 불린
다. 즉『숫따 삐따까(Sutta-piṭaka)』에서 아브야까따는 ‘판단할 수 없는’이란 뜻으
로 사용되고 있다. 반면 『담마상가니(Dhammasaṅgaṇī)』에서는 ‘선하지도 악하지
도 않은’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즉 도덕적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중립적인 정신현상
을 뜻한다. 그래서 테라와다의 아비담마에서는 과보의 마음(果報心, vipāka-citta)와
작용만 하는 마음(唯作心, kiriya-citta)의 두 가지가 여기에 포함된다.
67) Thī-a. pp.206-207.
그 당시의 관점으로 보면, (현생의) 매춘부는 자신의 업이 작용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되었다. 그것은 당시의 사회적 관례에 의해 (매춘이라는) 직업이 진솔하게 용인된다는 업의 관념에 부분적으로 기인하기 때문이며, 매춘은 지금보다 더욱 공공연하게 인정되었다. 매춘은 그녀가 전생에 저지른 불선업에 대한 죗값을 치르기 위해 그러한 조건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간주되었다.68)
68) Horner, I.B. op.cit., p.94.
이러한 관점은 매춘부가 근절해야 할 사회악이나 혐오스러운 범죄자가 아니라 괴로움(苦, dukkha)을 그 특징으로 하는 존재라는 혁명적 발상이며, 매춘부에 붙은 사악하고 부도덕한 여성이라는 윤리적 낙인을 벗겨내고, 매춘에 대해 보다 근원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새로운 서광을 제시한다. 『테리가타(Therīgāthā)』에서 보듯이, 매춘부는 깨달음을 얻는데 있어서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아무런 차별이 없었다. 오히려 매춘부로서의 경험이 남들보다 더욱 열심히 수행하게 한 동기가 되었다.69) 그래서 매춘부는 업과 그 과보라는 도덕적 인과의 법칙을 받아들이고 선업(善業, kusala-kamma)과 공덕(puñña)을 지어서 자신의 상황을 좋은 방향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69) 『테리가타(Therīgāthā)』에는 전직 매춘부였던 앗다까시(Aḍḍhakāsi), 아바야마따
(Abhyamātā), 위말라(Vimala), 암바빨리(Ambapālī)가 읊은 게송이 각각 전해온다.
(Thī. 25-26게, 33-34게, 72-76게, 252-270게)
Ⅴ. 나가는 말
현재 사회학자들과 사회이론가들의 매춘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매춘을전적으로 근절해야 하는 사회악이나 비윤리적 범죄로 보는 시각에서부터, 남자들의 억눌린 성욕을 해결해주기 때문에 사회의 원활한 기능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에 이르기까지 매춘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존재해왔으며, 매춘의 합법화에 대한 찬반논쟁도 끊이질 않아왔다. 이는 매춘부와 남성 고객도 예외가 아니다. 이를 테면, 매춘부는 단지 쉽게 돈을 벌기 위해 매춘에 뛰어든 사악하고 부도덕한 여성이라고 보는 시각이 존재하면서도, 매춘부는 남성중심의 왜곡된 사회 ․ 경제적 구조의 부당한 희생물이라는 상반된 시각도 존재한다. 매춘부를 찾는 남성 고객에 대해서도 사회적 지탄을 가하면서도, 매춘부를 찾는 일은 남자다움의 상징이라거나 심지어 미성년의 꼬리표를 떼는 성인남자의 신고식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과는 별개로, 매춘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존재해온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점을간과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 신학자 성 오거스틴(St. Augustine, 354∼430)은 매춘부의 성격을 혐오스럽지만 사회의 원활한 기능을 위해서 필요한 사형집행인의 성격과 비교하였다. 그래서 매춘부를 사회에서 없애버리면 통제할 수 없는 성욕이 분출되고 성도착이나 도덕의 퇴보를 조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70) 이와 같이 그는 매춘의 문제를 묵과하지 않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언제나 성욕을 발산을 위한 대상을 원한다는 것을 간파했다.
70) Ditmore, Melissa Hope. Encyclopedia of Prostitution and Sex Work Vols 1&2, Westport,
Connecticut, London: Greenwood Press, 2006, p.51.
테라와다 불교의 관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업과 그 과보라는 도덕적 인과의 법칙에 따른 윤회(輪廻, saṃsāra)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성욕이라는 원초적 본능이 욕계에 사는 중생들로부터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 한, 우리가 아무리 애쓰더라도 이 세계에서 매춘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으며, 매춘의 본질에 대한 바른 견해(正見, sammādiṭṭhi)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러한 노력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매춘을 제도적으로 단속하고 규제하면 할수록 매춘은 더욱 더 교묘해지고 음지로 스며들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춘부가 부당한 사회 ․ 경제적 구조의 희생물이라거나, 적극적으로 보호받아야할사회적 약자라거나,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성차별의 산물이라는 페미니스트(feminist)들의 인식에 동감하면서도, 이들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신적 지원은 구원론적 지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바, 매춘부들이 업과 그 과보라는 도덕적 인과의 법칙을 받아들이고 선업과 공덕을 지어서 자신의 상황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71) 언제나 개인으로 시작해서 개인으로 돌아오는 테라와다 불교의 관점에서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한 개인으로서만 깨달을 수 있으며, 집단으로서는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72) 물질적 지원은 매춘부들에게 의료보험 및 사회보장 혜택을 줌으로써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직업 교육이나 재활 훈련을 통해서 매춘부들이 다른 직업을 찾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특히 개발도상국들의 매춘부들 절대 다수는 빈곤의 해결을 위해서 매춘에 종사하게 된 만큼, 이는 매우 시급한 대책이라 판단된다.
71) 오디져(Odzer)에 따르면, 태국의 일부 매춘부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악업
(pāpa-kamma)의 결과로 보고, 불교 사원에 보시하고 사로잡힌 새들을 풀어
주거나 어린이집이나 홍수를 입은 피해자들에게 기부를 함으로써 악업을 상쇄
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Peter Harvey(2000, pp.405∼406)에서 재인용.
72) 테라와다 불교의 관점에서 본 공업(共業)에 대해서는 김한상(2014, pp.251∼289) 참조.
한편 매춘부를 찾는 남성의 문제에 대한 해법도 논해볼 필요가 있다. 고대인도에서 남성들이 매춘부를 찾는 것이 사회적 관념으로든 불교적 관념으로든 심각한 허물로 간주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칭찬할 만한 행동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왜 그런가? 먼저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매춘이 불법인 상황에서 그러한 행위는 법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일으킬 소지가 된다. 그리고 AIDS나 성병에 노출될 위험성도 커진다. 매춘부에게 주는 화대는 고스란히 자신의 경제적인 손실로 돌아온다. 이와 같이 매춘으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붓다는 『숫따니빠따』에서 매춘부와 놀아나는 것은 파멸의 문이라고 경고하였던 것이다.73)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심리학적 관점에서 매춘부를 찾는 행위는 감각적 욕망(kāma-rāga)에 탐닉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이 감각적 욕망은 윤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끊어야 할 10가지 족쇄(十結, dasa-saṃyojanāni)의 하나이고 마라(Māra)의 첫 번째 군대이기도 하다.74) 붓다는 『상윳따 니까야(Saṃyutta-Nikāya)』의 「담마짝까빠왓따나 숫따(Dhammacakkapavattana-sutta)」에서 감각적 쾌락의 탐닉에 몰두하는 일(kāmesu kāmasukhallikānuyoga)을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한다고 선언하였다.75) 물론 이 경에서는 출가자(pabbajita)만이 언급되어 있으나 세속에서 생활하는 재가신자도 성스러운 법을 닦고자 마음을 내었다면 이를 슬기롭게 피해야 할 것이다. 매춘부를 찾는 일은 자신의 성욕을 주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행동으로 심리적 나약함의 징표라 할 수 있으며, 마치 갈증을 해소시키기 위해 바닷물을 들이키는 꼴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테라와다 불교가 성욕을 다루는 방식은 법제도를 통해서가 아닌 치유적인 방법을 통해서이다. 성욕은 다른 욕망과 마찬가지로 억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뿌리를 서서히 제거함으로써 없앨 수 있다.76) 이를 테면, 몸의 더러움을 관찰하는 부정상(不淨想, asubha-saññā) 또는 부정 명상(asubha-bhāvanā)은 성적 매력을 약화시키고 마침내 성욕에 대항하여 마음을 재배치하는 일종의 정신 요법(mental treatment)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매춘부를 찾도록 하는 근원적 동기인 감각적 욕망(kāma-rāga)은 서서히 그 빛이 바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욕(離欲, virāga)77)이자 탐욕의 멸진(rāgakkhaya)이자 열반(涅槃, nibbāna)이다.
73) Sn.108게, “자기의 아내에 만족하지 않고 매춘부와 놀아나고 남의 아내와 어울린다면,
그것이 바로 파멸의 문이다(Sehi dārehi asantuṭṭho vesiyāsu padi’ssati, dissati
paradāresu, tam parābhavato mukhaṃ).”
74) Sn. 436게 “Kāmā te paṭhamā senā.”
75) SN.V, p.421, “Yo cayāṃ kāmesu kāmesu khallikānuyogo hīno gammo pothujjanīko
anariyo anatthasaṃhito.”
76) Story, Francis. op.cit., p.187.
77) 본 논문에서 ‘이욕(離慾)’이라고 옮긴 위라가(virāga)는 vi(분리)와 rāga(탐욕)의 합성이다.
위라가는 종종 니로다(nirodha)와 닙바나(nibbāna)와 결합되어 사용된다. 그래서 세 용어
는 거의 동의어로서 사용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잘 드러난다. “도반이여,
탐욕의 멸진, 성냄의 멸진, 어리석음의 멸진 이를 일러 열반이라 합니다(Yo kho āvuso
rāgakkhayo dosakkhayo mohakkhayo idaṁ vuccati nibbānanti).”라는 문장에서 잘 드
러난다. (SN.IV,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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