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논문·평론

붓다의 입멸과 관련한 아라한의 자살 /안 양 규

실론섬 2016. 3. 23. 14:22

붓다의 입멸과 관련한 아라한의 자살

안 양 규

 

차 례

 Ⅰ. 서 언

 Ⅱ.大愛道(Mahāpajāpatī Gotamī)와 500 비구니의 般涅槃

 Ⅲ. 사리불과 목련의 반열반

 Ⅳ. 최후 제자 아라한의 입멸

 Ⅴ. 결 어    

 

 I. 서 언

    

붓다 재세시 아라한들 중 자신의 수명을 다 살지 아니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 사건이 초기경전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들 아라한의 자발적인 수명 단절은 붓다 재세시 적지 않게 행하여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라한의 자살은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유형은 질병의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육신의 수명을 단절하는 것이다.1) 둘째 유형은 붓다의 입멸과 관련하여 수명을 단축하는 경우이다. 본고에선 두 번 째 유형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두번째 유형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전에 아라한의 육신관 내지 생명관에 대하여 간략히 언급해 둘 필요가 있다. 자살이라는 용어가 상당히 부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범부의 자살과는 달리 아라한의 자살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야 한다. 범부의 자살은 윤회세계 내에서 다시 재생을 가져오지만 아라한은 이미 생사윤회에서 벗어났으므로 아라한의 자살은 범부의 자살과 달리 도덕적으로 죄악시될 수 없다.   

1) 대표적으로 박칼리 비구를 들 수 있다.(SN III pp.119f)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려한다면 아라한들의 자살 행위가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붓다가 가르친 육신관과 관련된 것이다. 육신(五蘊 중 色蘊)에 대해 붓다는 제자들에게 無常하며 苦이고 無我라고 가르치면서 집착 내지 탐착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육신이 더럽다는 不淨觀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이렇듯 육신에 대한 부정적인 가르침의 본의를 충분히 알지 못한 일부 수행자들은 집단 자살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 육신을 비롯한 모든 것에 대한 渴愛에서 벗어난 아라한들이 굳이 이 세상에 육신을 보존하려고 구차하게 힘쓸 필요가 없게 된다.2) 육신에 커다란 질병이 일어나면 육신의 상속을 스스로 단절하였고 붓다도 이런 일에 대해 비난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라한들이 모두 자신의 수명을 포기하는 것이 장려되거나 칭송된 것은 결코 아니다. 아라한의 자살 경우를 살펴보면 격심한 질병의 고통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대부분이다.3) 요컨대 붓다 재세시에 이루어진 아라한의 자살은 고통스런 질병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2) 아라한은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수명을 一劫 이상 연장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본고 p. 7 참조.
3) 아라한이 이 세상에 머무는 이유는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불법을 전승하고 포교하기 위한 
   두가지 목적 때문이라고 부파불교의 논사들은 정리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입장에서 보면 
   질병으로 더 이상 효과적으로 두 가지 목적을 성취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더 이상 
   구차스럽게 단지 육신의 지속을 위해 애쓸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아라한의 수명 포기 
   원인에 대해 다음의 졸고를 참조하세요. 안양규, “붓다의 수명포기 원인에 관하여” 『한국
   불교학』제26호 2000 p.219.

 

한편 질병이 원인이 되어 이루어진 아라한의 자살 유형이외에 또 하나의 자살 유형이 보인다. 붓다의 입멸과 관련하여 행하여진 자살 경우가 그것이다. 붓다의 입멸 즈음에 많은 아라한들이 먼저 입멸한 사건을 전승하고 있는 문헌들이 있다.4) 한 문헌에 의하면 舍利子는 비구 8만명과 함께 입멸하였고 目連은 비구 7만명과 더불어 입멸하였으며 世尊은 비구 1만 8천명과 함께 般涅槃하였다라고 한다.5)  본고에선 왜 그리고 어떻게 아라한들이 입멸하였는 지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그들의 입멸 이유와 입멸 과정을 살피는 것은 佛陀觀 즉 붓다의 입멸에 대한 불제자들의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다.  

4) 남방불교의 팔리어 경전엔 거의 보이지 않는 반면에 한역 아함경엔 더러 보인다. 유부의 
   논서에도 이런 내용에 대한 논의가 정리되어 있다.
5)『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대정장』 24 p.402下). “不忍見佛入大涅槃”.

 

Ⅱ. 大愛道(Mahāpajāpatī Gotamī)와 500 비구니의 般涅槃

1. 대애도의 입멸 이유와 입멸 과정  
붓다의 생모인 마야가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자 그녀의 누이 동생인 마하파자파티 코타미가 붓다를 양육하게 된다. 문헌에 의하면 그녀는 붓다를 친자식보다 더 극진하게 키웠다고 한다. 자신이 낳은 아들 난다는 하녀들에 의해 양육되도록 했다고 한다. 마하파자파티 코터미는 남편 숫도다나왕이 죽자 출가하게 된다. 법납이 가장 많은 비구니로 입멸하게 된다. 그때 나이는 120세였다고 한다.6)   
6) Malalasekera, Dictionary of Pāli Proper Names vol II, Oxford: The Pali Text Society p. 523.

 

大愛道의 입멸을 다루고 있는 한역 아함경엔 3종류가 있다.7) 먼저『大愛道般涅槃經』을 살펴보면 대애도는 붓다가 3개월 뒤 입멸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는 여래가 입멸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 그리고 아난이 입멸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 나 마땅히 먼저 입멸해야 하겠다.”8) 『佛母般泥洹經』에는 약간 다르게 전해지고 있다. 깊은 선정에 들어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목격한다. “世尊이 阿難, 鶖鷺子, 大目乾連을 데리고 제도해야 할 일을 마치고 장차 열반에 들어갈 날을 알게 되었다. 나는 차마 世尊 如來 無所著 正眞道 最正覺과 여러 아라한들이 입멸하는 것을 보지 못하겠다. 내가 마땅히 먼저 혼령을 끊어 本無로 돌아가야겠다.”9) 『佛說大愛道般泥洹經』에서도 대애도는 붓다와 그의 제자들이 입멸할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차마 佛의 입멸을 보지 못하겠다. 아울러 阿難, 舍利弗, 目揵連 등의 제자의 입멸도 차마보지 못하겠다. 내가 먼저 壽命行을 버리고 입멸하여 떠나야겠다.”10)    

7) 팔리어 경전엔 보이지 않는다. 단지 주석서 문헌에 보인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해당 
   한역 3종의 경전의 성립 시기는 다소 늦은 것으로 보인다. 
8)『大愛道般涅槃經』(『大正藏』 2 p.821下). “我不堪任見如來取滅度。亦復不堪任見阿難取滅度。
   我今宜可先取滅度.”
9)『佛母般泥洹經』(『大正藏』 2 p.869 中). “睹世尊逮阿難鶖鷺子大目乾連。所度已畢將欲滅度日。
   吾不忍見世尊如來無所著正眞道最正覺及諸應眞泥曰。吾當先息靈還乎本無矣.”
10)『佛說大愛道般泥洹經』(『大正藏』2 p.867中). “我不忍見佛般泥洹幷阿難舍利弗目揵連是賢者輩。
    我先捨壽命行取泥洹去.”

 

대애도가 붓다보다 먼저 입멸하겠다는 이유는 자식 이상으로 양육했던 붓다가 곧 입멸할 것이다라는 사실을 알고 차마 그것을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大愛道般涅槃經』에서 아울러 아난다가 언급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대애도의 출가를 적극적으로 도운 사람은 아난다이다.11) 그래서 아난다에 관한 대애도의 애정어린 관심이 여기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大愛道般涅槃經』에선 붓다와 아난다의 임박한 입멸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비해 다른 두 경은 사리불과 목련도 언급하고 있다. 아마도 『大愛道般涅槃經』에 근거하여 나머지 두 경에서 두 상수 제자도 언급한 것 같다. 어째든 대애도가 상수 제자보다 먼저 입멸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1) 자세한 경위는 다음의 문헌을 참조하라. Vin ii pp. 253 ff.

곧 대애도는 붓다를 찾아가 자신의 의도를 알리고 승락을 받는다. 大愛道는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입멸한다. 『大愛道般涅槃經』부터 살펴보자. 

“大愛道는 虛空에 올라 머문다. 虛空 중에서 앉고 눕고 경행한다. 혹 火焰을 내뿜기도 한다. 몸 아래에선 연기가 나고 몸 위에선 불이 난다. 몸 아래에선 물이 나오고 몸 위에선 연기가 나온다. 온 몸에서 화염이 나온다. 온 몸에서 연기가 나온다. 左脅에선 물이 나오고 右脅에선 불이 나온다. 右脅에선 물이 나오고 左脅에선 연기가 나온다. 몸 앞 부분에선 불이 나오고 뒷 부분에선 물이 나온다. 몸 앞 부분에선 물이 나오고 뒷 부분에선 불이 나온다. 온 몸에서 불이 나온다. 온 몸에서 물이 나온다. 그 때 大愛道는 야간의 변화를 짓고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加趺坐를 하고 몸과 마음을 곧게 하고 정념하였다. 初禪에 들어간다. 初禪에서 일어나 제二禪에 들어간다. 第二禪에서 일어나 第三禪에 들어간다. 三禪에서 일어나 第四禪에 들어간다. 第四禪에서 일어나 空處에 들어간다. 空處에서 일어나 識處에 들어간다. 識處에서 일어나 不用處에 들어간다. 不用處에서 일어나 有想無想處에 들어간다. 有想無想處에서 일어나 想知滅에 들어간다. 想知滅에서 일어나 다시 有想無想處에 들어간다. 有想無想처에서 일어나 不用處에 들어간다. 不用處에서 일어나 다시 識處로 들어간다. 識處에서 알어나 다시 空處에 들어간다. 空處에서 일어나 다시 第四禪으로 들어간다. 第四禪에서 일어나 다시 三禪으로 들어간다. 三禪에서 일어나 二禪으로 들어간다. 二禪에서 일어나 다시 初禪으로 들어간다. 初禪에서 일어나 二禪으로 들어간다. 二禪에서 일어나 三禪으로 들어간다. 三禪에서 일어나 四禪으로 들어간다. 이미 四禪에 들어가자 곧 입멸하였다.”12)
12) 『大愛道般涅槃經』(『大正藏』2 p.822上).  

입멸직전의 대애도의 행적은 두 단계로 나뉘어 있다. 먼저 각종 신통 변화를 짓고 나서 선정에 든다. 그런데 대애도가 입멸 직전 성취한 선정은 붓다가 입멸 직전 취했던 선정과 조금의 차이도 없이 동일하다.13) 
13) 붓다의 입멸과정에 대하여 다음의 졸고를 참조. 안양규, “붓다의 입멸과정과 그 해석” 
   『인도철학』제 11호 2001 pp.175 ff.

 

『佛說大愛道般泥洹經』에선 앞의 경전보다 간략하다. 대애도는 500 比丘尼와 함께 자신들의 처소로 돌아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摩訶卑耶和題俱曇彌는 곧 스스로 사신족을 보였다. “앉은 자리에서 몸을 숨겨 사라졌다가 東方에서 나와 虛空 중에 머물었다. 나무 한 그루 높이로 올라 점차 나무 일곱 그루 높이에 올랐다. 스스로 四神足을 나투었다. 虛空에서 經行하고 經行을 마친 뒤 머물었다. 머물고 난 뒤 앉았다. 앉고 난 뒤 누웠다. 눕고 난 뒤 자신의 몸에서 다섯 가지 불꽃을 내었다. 상반신에선 五色의 불이 나오고 하반신에선 물이 나왔다. 하반신에선 五色의 불이 나오고 상반신에선 물이 나왔다. 이와 같이 東方에서 사라졌다가 西方에서 나오고 南方에서 사라졌다가 北方으로 나왔다. 곧 나무 일곱 그루 높이에서 땅으로 내려와 공중에서처럼 신족 변화를 보였다. 그때 사신족을 그만두고 열반하여 떠났다.”14) 이 경전에선 앞의 경전과 달리 9차제정의 출입에 관한 부분이 빠져있고 단지 신통변화만 기술하고 있다.   
14)『佛說大愛道般泥洹經』(『大正藏』2 p.868上). “便自現神足從坐中沒身。去從東方出在虛空中。
    上一樹間上至七樹間。自現四神足。於虛空上經行。已經行便住。已住便坐。已坐便臥。已臥 
    便自身出五色火。上身出五色火。下身出水。下身出五色火。上身出水。如是從東方沒出西方。
    從南方沒出北方。便從七樹間下至地 變化現神足如於上。時便滅神足取泥洹去.”

『佛母般泥洹經』엔 앞의 두 경전 보다 더 간략하다. “앉은 자리에서 땅으로 사라졌다가 동쬭으로 나와 虛空 중에 나타났다. 땅에서 한 그루 나무 높이로 오르고 점차 7그루 나무높이로 올랐다. 虛空 중  經行하고 잠시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였다. 상반신에서 물이 나오고 하반신에선 불이 나왔다. 상반신에서 불이 나오고 하반신에선 물이 나왔다. 다시 땅속으로 사라졌다가 東方으로 날아올랐다. 사라지는 법은 전과 같았다. 八方과 上下에서 나왔다. 大光明을 내어 모든 어둠의 세계와 인간계 그리고 위로 천상을 비추었다. 500의 除饉도 신통변화를 일으킨 뒤 동시에 입멸하였다.”15) 이 경전에서도 9처제정에 관한 부분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15)『佛母般泥洹經』(『대정장』2 p.869下). “自坐沒地從東方來。在虛空中化。去地一樹轉昇七樹。
    經行虛空中。乍坐乍臥。上身出水。下身出火。下身出水。上身出火。又沒地中飛東方來。沒法如前。
    八方上下來。放大光明以照諸冥中。人上曜諸天。五百除饉變化俱然同時泥曰.”

『大愛道般涅槃經』은 대애도가 신통변화를 짓고 9차제정을 출입한 뒤 입멸하였다고 말하고 있는데 나머지 두 경은 9차제정의 출입에 관하여 언급하지 않고 단지 신통변화만 언급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입멸과정의 묘사 부분을 살펴볼 때 『大愛道般涅槃經』은 『佛母般泥洹經』와『佛說大愛道般泥洹經』의 두 경전 보다 후에 성립된 것으로 『大愛道般涅槃經』의 편찬자의 상상력이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대애도의 입멸과정을 붓다가 취한 입멸과정을 동일하게 함으로써 대애도를 승격화시킨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입멸 전 대애도가 신통변화를 보인 것은 대애도가 아라한으로 자신의 수명을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붓다의 입멸을 지켜 볼 수 없을 정도로 붓다의 입멸은 절망적인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2. 500 비구니 아라한의 입멸 
대애도의 제자 500 비구니들도 그들의 스승 대애도와 마찬가지로 입멸하게 된다. 『大愛道般涅槃經』에 의하면 대애도가 입멸하자 500 비구니도 붓다를 찾아가 허락을 요청한다.  “우리들은 여래가 오래지 않아 입멸할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세존과 아난이 먼저 입멸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세존께서 저희들이 먼저 입멸하는 것을 허락하여 주십시요.”16) 500 비구니의 입멸 이유도 그들의 스승과 마찬가지로 세존과 아난의 입멸을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이다. 『佛說大愛道般泥洹經』에도 대애도의 제자 500 比丘尼들도 대애도와 마찬가지로 입멸 이유를 말하고 있다. “우리는 차마 佛의 입멸을 보지 못하겠습니다. 아울러 阿難, 舍利弗, 目揵連 등의 제자의 입멸도 차마보지 못하겠습니다. 우리가 먼저 壽命行을 버리고 입멸하여 떠나겠습니다.”17) 『佛母般泥洹經』에선 대애도와 500 비구니가 함께 찾아가 붓다의 입멸을 차마 지켜볼 수 없으므로 먼저 입멸하겠다고 밝히고 있다.18)   
16)『大愛道般涅槃經』(『大正藏』2 p.821下). “我等諸人聞如來不久當取滅度。我等不忍見 
    世尊及阿難先取滅度。唯願世尊 聽我等先取滅度。我等今取涅槃.”
17)『佛說大愛道般泥洹經』(『大正藏』2 p.867中). “我不忍見佛般泥洹。幷賢者阿難舍利弗
    目乾連是賢者輩。我輩亦當捨壽行取泥洹去”.
18) 優缽色比丘尼․基梨施瞿曇彌比丘尼․舍瞿離比丘尼․奢摩比丘尼․波陀蘭遮羅比丘尼․迦旃延比丘尼․
    闍耶比丘尼 등의 이름이 나열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아라한으로 여겨지고 있다.

붓다의 허락을 받은 500 비구니 아라한들은 자신들의 처소로 돌아와 신통변화를 짓고 나서 입멸한다. 『大愛道般涅槃經』에 의하면 대애도의 입멸을 지켜본 差摩比丘尼 등은19) “露地에 자리를 깔았다. 虛空으로 날아간다. 虛空중에서 앉거나 눕거나 經行한다. 18 변화를 짓는다. 내지 想知滅에 들어간다. 각각 입멸을 취한다.”20)  이 경전에선 대애도와 마찬가지로 신통변화를 보이고 9차제정을 출입하고 입멸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佛說大愛道般泥洹經』에 의하면 500 比丘尼도 대애도와 똑같은 방식으로 입멸하였음을 자구하나 틀리지 않고 기술하고 있다.21) 『佛母般泥洹經』에서도 500 비구니가 스승 대애도와 마찬가지로 신통을 부리고 입멸했다고 기술하고 있다.22)  
19) 優缽色比丘尼․基梨施瞿曇彌比丘尼․舍瞿離比丘尼․奢摩比丘尼․波陀蘭遮羅比丘尼․迦旃延比丘尼․
   闍耶比丘尼 등의 이름이 나열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아라한으로 여겨지고 있다.
20)『大愛道般涅槃經』(『大正藏』2 p.822中). “露地敷坐。飛在虛空。於虛空之中 坐臥經行。
   作十八變。乃至入想知滅。各取滅度.”
21)『佛說大愛道般泥洹經』(『大正藏』2 p.868上). 본고 p.3 참조.
22)『佛母般泥洹經』(『大正藏』2 p.869 下).

 

대애도와 500 비구니 아라한의 입멸에 이어 그들의 제자인 사미니의 입멸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大愛道般涅槃經』에 의거하면 대애도와 상수 500 비구니의 입멸을 지켜보지 못한 2명의 沙彌尼는 그들의 스승이 모두 입멸했다는 말을 듣자 두려움을 내고 세속의 법은 모두 무상하다는 것을 사유한다. 그 자리에서 三明 六通을 획득한다. “그때 두 명의 沙彌尼는 허옹으로 날아올라 머문다. 먼저 曠野에 이르러 18 신통 변화를 짓는다. 앉거나 눕거나 經行한다. 몸에서 물과 불이 나온다. 變化가 無量하다. 곧 無餘涅槃界를 향해 般涅槃한다”23) 그러나 다른 두 경전( 『佛母般泥洹經』과『佛說大愛道般泥洹經』)에 의하면 사미니는 입멸하지 않았다. 사미니들은 스승의 입멸 소식을 듣고 너무 슬퍼하자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재가 신자가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다라는 붓다의 가르침을 상기하고 그들로 하여금 세속의 감정을 소멸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24) 그들이 그들 스승의 입멸을 들고 바로 그 자리에서 정각하고 입멸했다고 서술하고 있지 않다.  
23)『大愛道般涅槃經』(『大正藏』2 p.822下). “爾時 沙彌尼 卽飛在虛空中。先至曠野之中 作十八變。
    坐臥經行。身出水火。變化無量。卽於無餘涅槃界而取般涅槃.”
24)『佛母般泥洹經』(『大正藏』2 p.870中)에 사미니의 수가 3명이라하고 『佛說大愛道般泥洹經』
   (『대정장』2 p.868下)에선 6명으로 되어 있다.

『大愛道般涅槃經』에서 사미니가 아라한이 되어 신통변화를 일으키고 입멸했다고 하는 말은 다른 두 경전에 비추어 볼 때 부가된 것으로 보인다. 왜 그들이 입멸하게 되었는 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붓다에게 허락을 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미니들의 스승은 붓다를 마지막으로 친견하고 허락을 받고 있는데 비해 그런 과정이 모두 빠져있으므로 첨가된 것으로 보인다. 첨가 이유는 붓다의 입멸과 관련하여 대애도와 500 비구니 아라한의 입멸 이유를 사미니의 입멸 이유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大愛道般涅槃經』은 다른 두 경전에 비해 다소 과장되거나 첨가된 부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 한역 경전에 상응하는 팔리어 경전은 보이지 않는다.  

 

Ⅲ. 사리불과 목련의 반열반

사리불과 목련은 붓다의 상수 제자이다. 사리불은 지혜 제일로 목련은 신통제일로 붓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사리불과 목련은 붓다 보다 몇 개월 전에 입멸한 것으로 보인다. 남방 상좌부 전통에 의하면 붓다 보다 6개월 전에 입멸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입멸할 당시의 나이는 붓다보다 4살이 많은 84세였다고 한다. 사리불과 목련 중 사리불이 2주일 먼저 입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5)  
25) Hellmuth Hecker, Maha-Moggallana. The Wheel Publication No. 263-4. Kandy: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1979. p. 47. 붓다는 봄(Vesakha 5월)에 두 상수 제자는 
    가을(Kattika 10월-11월)에 입멸했다고 상죄부는 믿고 있다. 

사리불과 목련의 입멸 이유와 그 과정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그들의 입멸 전후의 정황을 간략히 정리해 보자.26) 
舍利弗․目揵連는 세존과 더불어 왕사성에서 夏安居를 보낸다. 舍利弗․目揵連가 곧 반열반할 것임을 世尊은 알고 舍利弗에게 제자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설법하라는 요청한다. 이에 사리불은 四禪 등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의문이 있으면 자신에게 문의하라고 제자들에게 질문을 유도한다. 한편 目揵連은 왕사성에 들어가 乞食하고 있을 때 執杖 바라문이 다른 사람들과 공모하여 目連을 해치고자 하였다. 그들은 목련을 둘러싸서 돌과 기왓장 등을 던졌다. 목련의 온 몸은 고통으로 가득 차 骨肉이 문드러졌다. 목련은 걸을 수 있는 기력이 없어서 신통력으로 舍利弗의 처소에 갔다. 목련은 조금 전 일어난 사정을 이야기하고 먼저 입멸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사리불은 오히려 자신이 먼저 입멸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곧 사리불은 붓다에게 가서 입멸 허락을 받는다. 사리불은 붓다 앞에서 師子奮迅三昧라는 선정을 성취한 후 세존께 예배한 후 자리를 떠났다. 이때 많은 비구들이 사리불을 마지막 입멸 순간까지 공양하려고 하자 사리불은 그것을 사법인으로 만류하고 단 한 명의 사미를 데리고 고향으로 떠난다. 고향에 이르러 격심한 질병이 일어난다. 천신이 내려와 사리불을 돌본다. 사리불은 야밤에 입멸하게된다. 천신들은 사리불에게 갖가지 음악과 향으로 공양하고 그의 몸을 화장한 뒤 사리불의 사리와 衣鉢을 사미에게 주며 세존에게 바치라고 한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사리불의 사리를 보이며 그의 공덕을 칭송한다. 그때 목련은 사리불의 입멸 소식을 접하고 세존에게 가서 자신도 곧 입멸하겠다고 알린다. 허락을 받은 목련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에서 교화하는 동안에 몸에 질병이 일어난다. 이때 목련은 정좌하여 선정에 들어간다. 제4선에서 출정한 뒤 입멸한다. 
26)『增一阿含經』(『大正藏』2 pp.639上-642中).  

남방 상좌부 전통에도 대략 비슷한 내용을 들려주고 있다.27) 다만 몇 가지 차이가 보인다. 첫째 사리불이 성취했다고 하는 師子奮迅三昧라는 선정에 관한 부분은 없다. 둘째 사리불과 목련의 대화 사실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세째 붓다와 목련과의 대화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네째 목련은 바라문들의 공격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이나교도의 공격을 받았다.  
27) DA II pp.549-554; SA III pp.213-9.

 

1. 사리불의 입멸 이유와 입멸 과정
사리불의 입멸 이유는 사리불과 세존과의 대화에서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사리불은 세존을 친견하고 자신이 입멸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허락을 기다린다. 그러자 世尊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그대는 왜 一劫 내지 그 이상을 머물지 않느냐?”28) 四神足을 수행한 수행자는 수명을 연장하여 계속 이 세상에 머물 수 있는데 왜 머물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사리불은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친히 世尊으로부터 들었고 몸소 받들어 지니고 있습니다. 즉 중생의 수명은 극도로 짧아 그 수명이 百歲를 넘기지 못하고  衆生의 수명이 짧으므로 여래의 수명도 짧다라고 들었습니다. 만약 여래가 一劫 동안 머문다면 저도 또한 마땅히 일겁 동안 수명을 유지하겠습니다.”29) 세존은 사리불에게 여래의 수명 장단은 불가사의한 것으로 함부로 속단하여 여래가 일겁 동안 머물지 않고 입멸하려고 한다라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타이르고 있다. 세존은 자신이 더 이상 세상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사리불도 더 이상 머물지 않겠다는 대답을 반기지 않는 것 같다.   
28)『增一阿含經』(『대정장』 2 p.639下). “汝今何故不住一劫。乃過一劫.”
29)『增一阿含經』(『大正藏』2 p.639下). “我躬從世尊聞。躬自承受。衆生之類受命極短。
    極壽不過百歲。以衆生命短。故如來壽亦短。若當如來住壽一劫者。我當亦住壽一劫.”

 

사리불은 여래의 수명 장단은 불가사의한 것임을 인정하지만 자신은 오랫동안 釋迦文佛이 끝내 一劫을 더 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천신들이 와서 세존이 세상에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고 하며 말을 잇는다. “(세존의) 나이는 80세를 향하고 있습니다. 지금 世尊은 오래 지 않아 입멸할 것이다. 저는 이제 世尊이 입멸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친히 如來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모든 過去․當來․現在의 諸佛의 상수 弟子들은 먼저 입멸한다. 그런 연후 佛은 입멸한다.`따라서 世尊은 오래지 않아 입멸 할 것입니다. 오직 세존께서 저의 입멸을 허락하여 주기를 원합니다.”30)  
30)『增一阿含經』(『대정장』2 p.640上). “年向八十。然今世尊不久當取涅槃。我今不堪見世尊
    取般涅槃。又我躬從如來聞此語。諸過去․當來․今現在。諸佛上足弟子先取般涅槃。然後佛取般涅槃。
    又最後弟子亦先取般涅槃。然後世尊不久當取滅度。唯願世尊聽取滅度.”

사리불은 세존의 임박한 입멸을 미리 예견하고 자신이 먼저 입멸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먼저 그는 세존의 입멸을 차마 지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모든 상수 제자들은 자신의 스승보다 먼저 입멸한다는 법칙에 따라 세존 보다 먼저 입멸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번째 이유는 다소 감정적인 것이고 반면에 두번째 이유는 다소 기계적이다. 두번째 이유는 또 하나의 질문을 불러일으키며 답을 요구하고 있다. 즉 왜 상수 제자가 먼저 자신들의 스승보다 입멸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리불은 세존으로부터  자신이 먼저 입멸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佛前에서 師子奮迅三昧라는 선정에 출입한다. 師子奮迅三昧은 붓다의 입멸과정과 똑같은 선정이다. 이상한 것은 그가 막상 입멸하기 직전에는 어떠한 선정을 취했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라는 점이다. 간단히 사리불은 야밤에 입멸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사리불은 입멸 직전 어떠한 신통 변화도 짓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31) 사리불이 신통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지혜제일인자로 칭송받는 것과 잘 부합한다. 팔리어 경전에 의하면 마가다(Magadha)의 나랄카가마(Nālakagāma)에서 질병의 고통이 원인이 되어 입멸했다라고 하고 있다.32) 여기 팔리어 경전에선 입멸 이유나 신통변화에 관한 언급은 전무하다.  
31) 『增一阿含經』(『대정장』2 p.640下) 남방 주석서에도 보이지 않는다.  
32) SN V p.161.

 

2. 목련의 입멸 이유와 입멸 과정
목련의 입멸 이유는 목련과 사리불의 대화에 잘 드러나고 있다. 목련은 사리불에게외도들의 폭력으로 전신이 고통으로 앓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입멸하고자 한다라고 밝힌다. 이에 사리불은 반문한다. “比丘․比丘尼가 四神足을 닦고 그것을 많이 넓히면, 원하기만 한다면 劫 내지 劫 이상 머물 수 있고 滅度하지 않을 수 있다. 왜 (이 세상에 더) 머물지 않고 입멸하고자 하느냐?”33) 目連은 불제자 중 신통 제일로서 당연히 사신족을 깊이 수행하였음에 틀림없으므로 원한다면 겁을 더 살수 있지 않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목련은 사신족 수행으로 수명을 더 연장 할 수 있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명을 단절한다고 밝힌다. “단지 如來가 住劫 동안 머문다면 나 또한 머물 것이다. 그러나 금일 世尊께서 오래지 않아 般涅槃할 것이다. 衆生의 수명은 극히 짧다. 또한 나는 세존이 반열반하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내 몸은 극도로 통증으로 고통 받고 있다. 나는 입멸하고자 한다.”34)  
33)『增一阿含經』 (『大正藏』 2 p.639下). “諸有比丘․比丘尼修四神足。多廣演其義。
    若彼人意中欲住劫․過劫。乃至不滅度。何以不住而滅度乎.”
34)『增一阿含經』 (『大正藏』 2 p.639下). “但如來住劫住者。我亦住耳。但今日世尊不久當取般涅槃。
    衆生之類壽命極短。又我不忍見世尊取般涅槃。然我身體極爲疼痛。欲取般涅槃.”

목련이 자신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절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붓다의 임박한 입멸 때문이다라고 목련은 밝히고 있다. 세존이 머무는 기간만큼 자신도 머물 수 있지만 세존이 곧 입멸할 것이므로 자신도 입멸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세존의 입멸 직후에 입멸할 수도 있겠지만 세존 보다 먼저 입멸하는 이유는 차마 자기 눈으로 세존의 입멸을 지켜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육체가 격심하게 고통 받고 있으므로 그 고통을 없애기 위해 입멸하겠다는 것이다. 붓다의 입멸 직전 자신이 입멸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입멸하는 것은 현재 겪고 있는 육신의 고통 때문이라는 것이다. 목련의 입멸의 주요한 이유는 세존의 입멸을 지켜보지 못하겠다는 것이고 부차적인 이유로 육신의 질병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목련은 사리불의 입멸을 듣고 신통력으로 세존에게 와서, 사리불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입멸 허락을 내려달라고 간청한다. 목련은 왕사성에서 붓다에게 자신의 입멸을 허락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 교화하던 중 병에 걸리게 된다. 바라문들로터 받은 상처가 완쾌되지 못하고 다시 재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목련은 다음과 같은 선정을 거치면서 입멸한다.   

“이때 목련은 몸소 스스로 노지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그리고 初禪에 들어간다. 初禪에서 나와 第二禪에 들어간다. 第二禪에서 나와 第三禪에 들어간다. 第三禪에서 나와 第四禪에 들어간다. 第四禪에서 나와 空處에 들어간다. 空處에서 나와 識處에 들어간다. 識處에서 나와 不用處에 들어간다. 不用處에서 나와 有想無想處에 들어간다. 有想無想處起에서 나와 火光三昧에 들어간다. 火光三昧에서 나와 水光三昧에 들어간다. 水光三昧에서 나와 滅盡定에 들어간다. 滅盡定에서 나와 水光三昧에 들어간다. 水光三昧에서 나와 火光三昧에 들어간다. 火光三昧에서 나와 有想無想定에 들어간다. 有想無想定에서 나와 不用處에 들어간다. 不用處에서 나와 識處․空處․四禪․三禪․二禪․初禪에 들어간다. 初禪에서 나와 날아 空中에 머문다. 앉고 눕고 經行한다. 윗몸에는 불이 나오고, 몸 아래에서는 물이 나온다. 또는 몸 아래에서는 불이 나오고, 윗몸에서는 물이 나온다. 18 變化와 神足變化를 지었다. 이때 大目連 존자는 다시 내려와 자리로 가서 結跏趺坐하였다. 몸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고 의식을 앞에 집중하였다. 다시 初禪에 들어간다. 初禪에서 일어나 第二禪에 들어간다. 第二禪에서 일어나 第三禪에 들어간다. 第三禪에서 나와 第四禪에 들어간다. 第四禪에서 나와 空處에 들어간다. 空處에서 나와 識處에 들어간다. 識處에서 나와 不用處에 들어간다. 不用處에서 나와 有想無想處에 들어간다. 有想無想處起에서 나와 火光三昧에 들어간다. 火光三昧에서 나와 水光三昧에 들어간다. 水光三昧에서 나와 滅盡定에 들어간다. 滅盡定에서 나와 水光三昧에 들어간다. 水光三昧에서 나와 火光三昧에 들어간다. 火光三昧에서 나와 有想無想定에 들어간다. 有想無想定에서 나와 火光三昧에 들어간다. 火光三昧에서 나와 水光三昧에 들어간다. 水光三昧에서 나와 滅盡定에 들어간다. 滅盡定에서 나와 水光․火光․有想無想處․不用處․識處․空處․四禪․三禪․二禪․初禪에 들어간다. 初禪에서 나와 第二禪에 들어간다. 第二禪에서 나와 第三禪에 들어간다. 第三禪에서 나와 第四禪에 들어간다. 第四禪에서 나와 곧 滅度를 취했다.”35)  
35)『增一阿含經』(『大正藏』2 p.641下).

그의 입멸 과정은 붓다의 입멸과정과 비교할 때 무엇보다도 신통변화가 선정 사이에 발휘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사리불이 신통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과 비교하여 보면 목련의 신통 변화의 언급은 목련이 신통 제일인자로 칭송받고 있었던 것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두 상수 제자의 입멸 이유에 대한 부파불교 논사들의 견해
유부의 논서인 『아비달마대비파사론』엔 자세하게 왜 두 상수 제자가 먼저 입멸했는가를 다루고 있다.36)
36)『阿毘達磨大毘婆沙論』(『대정장』 27 p. 954上).

① 입멸 전까지 오랫동안 지은 無斷業의 과보를 감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이거나 異熟의 과보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과거의 三藐三佛陀의 雙賢 弟子가 먼저 그들의 스승보다 般涅槃한 일을 보고 들어 알고 있었다. 이 즈음에 그들은 이제껏 지은 덕행과 梵行 등 일체를 迴向하면서 다음과 같이 발원하였다. “저는 未來에도 이와 같은 善士의 行들을 짓게 되고 항상 大師와 함께 현재에서 法樂을 받아 끊어짐이 없게 되기를 발원합니다.”37) 만약 佛이 먼저 般涅槃한 연후 雙賢 弟子가 입멸하면 그들이 지은 업의 과보를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붓다가 먼저 입멸하면  붓다의 입멸 전까지 스승으로부터 받았던 법의 과보를 더 이상 받지 못하고 단절되므로 단절되지 않도록 먼저 스승보다 입멸했다는 것이다.   
37)『阿毘達磨大毘婆沙論』(『대정장』 27 p. 954中). “願我未來得作如斯善士行類。
    恒與大師現受法樂而無間斷.”

② 法爾 때문이다. 法爾란 법이 그와 같아서 고치거나 논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38)  과거의 一切 諸佛의 雙賢 弟子는 그들의 스승보다 먼저 입멸하는 것이 法爾라는 것이다.   
38)『阿毘達磨大毘婆沙論』(『대정장』 27 p. 954中). “法應如是不可改易不可徵詰是法爾義.”

③ 轉輪王의 경우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轉輪王이 아직 가보지 않은 어떤 곳을 가려고 하면 먼저 勇將으로 하여금 앞서 인도하게 하면서 간다. 마찬가지로 十力을 갖춘 法轉輪王이 아직 가보지 않은 無餘依涅槃界에 가려고 할 때에도 勇將인 雙賢 弟子로 하여금 앞서 인도하여 가게 한다.   

④ 교화 받을 有情을 佛法에 들어오게끔 만들기 위해서이다. 교화의 대상인 有情 중에는 비록 佛을 가까이 하며 머물지만 衆同分이 다할 때까지 佛法을 수행하지 않는 자가 있다. 만약 雙賢 弟子의 般涅槃을 보면 곧 生死에 대해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어 붓다에게 다가가 佛法을 받아 실천할 것이다. 붓다의 위대한 제자조차도 입멸한다는 것을 목격한 후 붓다에게 귀의하고 불법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⑤ 교화할 有情의 근심을 풀어주기 위해서이다. 만약 佛이 먼저 般涅槃하면 유정의 근심을 풀어줄 수 있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雙賢 弟子가 먼저 般涅槃하면 如來는 4개월 동안 無常의 가르침을 베풀어 유정의 근심을 풀어주고 勝行을 닦도록 한다. 이 견해는 두 제자가 붓다 보다 4개월 전에 입멸하였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어떤 중생은 오로지 붓다에 의해서만 교화 받아야만 하는 경우가 상정되고 있다. 그 중생은 붓다없이 구제받을 수 없기 때문에 붓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두 제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⑥ 교화 받을 有情들로 하여금 佛이 장차 般涅槃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지니게 하기 위함이다. 雙賢 弟子가 먼저 般涅槃하면 有情은 붓다도 오래지 않아 곧 般涅槃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마치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나려하면 반드시 먼저 번개가 치는 것과 같다. 준비없이 갑자기 천둥소리를 들으면 매우 놀라고 두려워하거나 목숨을 잃는 일도 있지만 마리 준비하고 있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雙賢 弟子의 般涅槃을 보고 마음을 준비하고 있으면 붓다의 입멸에 너무 놀라거나 기절하는 일이 없다.   

⑦ 외도의 비방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이다. 外道는 항상 佛을 다음과 같이 비방하였다. “사문 喬答摩는 鄔波底沙와 俱履多를 섭수한 이래로 밤에 그들로부터 물어 알고 낮에 다른 사람에게 설한다.”39) 그런데 두 사람이 먼저 입멸한 뒤에도 변함없이 붓다는 법을 설하게 될 것이니 이에 자연히 外道의 誹謗은 모두 멈추게 될 것이다.  
39)『阿毘達磨大毘婆沙論』(『대정장』 27 p. 954下). “沙門喬答摩攝受鄔波底沙及俱履多故。
    夜從諮受晝爲他說.”

⑧ 世尊도 오래지 않아 곧 般涅槃할 것임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마치 世界가 장차 파괴하려 할 때 蘇迷盧山이 자주 難陀 鄔波難陀라는 두 龍王에 의해 휘감겼다가 풀렸다한다. 天이 이것을 보고 世界가 곧 오래지 않아 파괴될 것임을 안다. 이와같이 舍利子와 大目揵連이 먼저 般涅槃하면 사람들이 세존도 곧 열반할 것임을 안다.  

①의 설명은 다소 두 제자가 개인적인 이유를 말하고 있다. 즉 자신들이 누려야 할 과보가 단절될 것을 두려워 먼저 입멸했다는 것은 다분히 이기적인 이유로 들린다. 다른 한편 붓다의 무궁한 은혜를 강조한 측면도 보인다. 붓다의 자비가 지속되고 있는 동안에 입멸하겠다는 것은 붓다의 위대한 자비를 드러내는 측면도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③ 여기 표현상 붓다가 두 제자로 하여금 먼저 입멸하게끔 명령했다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③과 ⑧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④⑤⑥은 중생들의 교화 내지 붓다의 입멸을 준비하게 하기 위함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두 상수 제자가 먼저 입멸한 이유는 붓다의 임박한 입멸을 먼저 알려서 중생들로 하여금 붓다의 입멸을 맞을 준비를 하게끔 하기 위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경전들과 달리 차마 지켜 볼 수 없다라는 감정적인 이유는 소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Ⅳ. 최후 제자 아라한의 입멸

1. 君茶羅繫頭 比丘尼의 입멸 이유와 과정  
君茶羅繫頭 比丘尼는 비구니로써 붓다의 최후 제자가 된 아라한이다. 『증일아함경』의 한 경에 의하면 이 비구니는 붓다가 쿠시나라의 사라 쌍수 하에 이르기 바로 전에 붓다의 설법을 듣고 아라한이 된다.  世尊이 오래지 않아 입멸할 것이다라는 소문을 듣고 毘舍離城에서 나와 世尊의 처소에 가서 苦의 원인에 대한 법을 듣고 아라한이 된다.  아라한이 된 君茶羅繫頭 比丘尼는 다음과 같이 먼저 입멸 이유를 밝힌다. “저는 차마 세존께서 입멸하시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오직 원하건데 먼저 입멸하는 것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40)   
40)『增一阿含經』(『大正藏』2 p.750下). “我不堪見世尊取滅度。唯願聽許先取滅度.”

붓다의 허락을 받은 비구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의 발에 예를 표한 후 붓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입멸한다.  “虛空에 날아가서 18가지 변화를 짓는다. 혹 가기도 하고 혹 앉기도 하고 혹 다시 經行하기도 한다. 몸에서 煙火를 방출한다. 솟거나 사라지는 것이 自由로와 저촉되거나 장애되는 바가 없었다. 혹 水火를 내어 허공을 가득 채운다. 이때 比丘尼는無數한 변화를 짓고 나서 곧 無餘涅槃界에 입멸하였다.”41)  
41)『增一阿含經』(『大正藏』2 p.750下). “身飛虛空。作十八變。或行․或坐․或復經行。身放煙火。
    踊沒自由無所觸礙。或出水火。遍滿空中。是時。比丘尼作無央數之變已。卽於無餘涅槃界而取滅度.

최후의 비구 아라한 제자가 있듯이 최후의 비구니 아라한이 실재하였음에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君茶羅繫頭 比丘尼의 등장은 논리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최후의 비구 아라한 제자와 마차가지로 붓다의 입멸과 관련하여 비슷하거나 동일한 이유와 과정을 가졌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君茶羅繫頭 比丘尼가 여성임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최후의 비구니 아라한의 입멸은 비구 아라한 보다 더 극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2. 善賢(Subhadda) 비구의 입멸 이유와 과정  
선현은 불제자 중 최후의 제자로 불교도들에게 널리 알려져 온 인물이다. 붓다에게 귀의하기 전 그는 외도로써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42) 열반경 제본에 의하면 그가 붓다를 최후로 친견할 때 그의 나이는 120세였다.43) 선현의 입멸 이유와 과정에 대해 경전들은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遊行經』에선 선현이 먼저 입멸하였다라고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이유나 과정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다.44) 『佛般泥洹經』에 의하면 스승인 붓다가 먼저 자기보다 입멸하게 놓아두어서는 안된다라고 거듭 생각하고 입멸한다. 그러나 그의 입멸 직전에 그가 신통 변화를 부렸다는 언급은 없다.45) 『般泥洹經』엔 붓다가 입멸하는 것을 기다릴 수 없다라고 생각하며 입멸한다. 왜 기다릴 수 없는 지에 관한 설명은 주어지지 않고 있으며 신통변화에 관한 언급도 없다.46) 『大般涅槃經』은 앞의 경전들에 비해 다소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붓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이제 天人尊이 입멸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저는 금일 世尊보다 먼저 입멸하고자 합니다.”47)  세존이 허락하자 선현은 “佛前에서 火界三昧에 들어가 입멸한다.” 48)  
42) 4종의 베다에 능통하고 사람들로부터 극잔한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대정장』 1 p.203中; p.396上)
43)『大正藏』 1 p.25上; p.121中; p.187中; p.203中; 『大正藏』24 p.396上.
44)『遊行經』(『大正藏』 1 p.25中)
45)『佛般泥洹經』(『大正藏』 1 p.121中).
46)『般泥洹經』(『大正藏』 1 p.187中)
47)『大般涅槃經』(『大正藏』 1 p.204中). “我不今忍見天人尊入般涅槃。我於今日。欲先世尊入般涅槃.”
48)『大般涅槃經』(『大正藏』 1 p.204中). “於佛前入火界三昧而般涅槃.”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에 이르면 선현의 입멸 이유와 과정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붓다의 설법을 듣고 아라한이 된 善賢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 지금 佛이 般涅槃하는 것을 지켜 볼 수 없다. 마땅히 먼저 가는 것이 옳다.”49) 선현은 붓다에게 붓다 보다 자신이 먼저 입멸하고 싶다는 것을 밝히고  이것을 허락해 줄 것을 3번이나 간청한다. 이에 붓다는 선현이 입멸하고 싶다는 의지를 확인한 뒤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一切의 諸行이 모두 無常하다. 그대는 해야할 일에 대해 스스로 그 시기를 안다. 내 다시 무슨 말을 할 것인가?”50)  
49)『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 (『대정장』 24 p.397上). “我今不忍見佛般涅槃 宜可先去.”
50)『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대정장』 24 p.397上). “一切諸行皆悉無常。汝於所作自可知時 
    我更何言.”

선현은 다섯 가지의 加持를 통해 입멸하고자 했다. 자신의 입멸을 보러 온 사람들이 선현의 신통력을 보고 외도 보다 불도가 훨씬 더 훌륭하다는 것을 보이고자 했다. ① 삭발과 승복을 입은 모습은 보이게끔 하고 외도의 의식은 보이지 않게 한다. ② 외도들이 선현의 몸을 들지 못하게 한다. ③ 외도들이 연못에 들어가 내 몸을 씻지 못하게 한다. ④ 외도들이 물에 들어갈 때 수중의 동물들이 외도를 괴롭히게 한다. ⑤외도들이 내 몸을 태울 때 불이 붙지 않게 한다.51) 선현이 붓다에게 귀의한 것을 모르는 선현의 옛제자들은 선현의 입멸 소식을 듣고 모여들었다. 선현의 옛 제자들은 이상의 5가지를 행하려고 하였지만 그것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붓다의 제자들이 이상의 것을 쉽게 행하였다. 이 광경을 지켜본 쿠시나라 사람들은 붓다에 대해 더 깊은 존경심과 淨信心을 배가하게 되었다.  
51)『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대정장』 24 p.397上).

이상의 한역 열반경 제본들은 선현이 붓다보다 먼저 입멸한 사실을 전하고 있으나 그 이유나 그 과정에 대해 일치한 답을 전하고 있지 않다. 아마도 입멸 이유나 과정이 분명히 기술된 것은 후기에 첨가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팔리어 『대반열반경』은 선현이 먼저 입멸한 사실을 말하고 있지 않다. 52) 따라서 입멸 이유나 신통변화 따위의 언급은 없다.   
52) DN II p.153.

『증일아함경』의 한 경에는 선현의 입멸 이유를 두 가지로 밝히고 있다. 자신이 붓다의 입멸을 차마 지켜보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입멸할 뜻을 밝히자 붓다는 그의 청을 받아들인다. 경전은 世尊이 허락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過去 恒沙와 같이 많은 諸佛 世尊의 경우에도 最後로 깨달은 弟子가 먼저 입멸한다. 그리고 나서 如來는 입멸한다. 이런 일은 諸佛 世尊의 常法이다. 단지 今日만 적용된 것이 아니다.”53) 과거의 모든 붓다의 경우에도 최후 제자가 먼저 그의 스승보다 먼저 입멸해야 하는 법칙이 있기 때문에 허락했다는 것이다. 선현의 입멸 이유와 붓다가 허락한 이유가 서로 같지 않다. 오히려 경전에선 선현의 감정적인 입멸 이유 보다 불법의 常法으로 설명하고 있다. 『증일아함경』에 의하면 선현은 신통력을 사용하지 않고 입멸한다. “如來의 면전에서 正身하고 正意하여 주의를 면전에 묶어 둔 채 無餘涅槃界에 입멸한다.”54)   
53)『증일아함경』(『대정장』 2 p.752下). “過去恒沙諸佛世尊。最後取證弟子先取般涅槃。
    如來後取滅度。此是諸佛世尊常法。非適今日也.”  
54)『증일아함경』(『대정장』 2 p.752下). “在如來前。正身正意。繫念在前。於無餘涅槃界 而取滅度.”

유부의 논서인 『阿毘達磨大毘婆沙論』에는 壽蘇跋陀羅가 붓다보다 먼저 입멸한 이유에 대해 7가지 대답이 제시되어 있다.55)
55)『阿毘達磨大毘婆沙論』(『대정장』 27 p.954下).

① 法爾이기 때문이다. 즉 諸佛의 最後 弟子가 그들의 스승보다 먼저 반열반하는 것이 정해진 이치이다.  

② 轉輪王의 法과 相似하기 때문이다. 轉輪王이 뛰어난 동산에 놀러가고자 할 때 반드시 어린 왕자를 모든 꾸미개로 장엄하게 장식하고 그로 하여금 먼저 들어가게 하고 그런 연후 자신이 뒤따라 들어간다. 마찬가지로 十力을 갖춘 無上의 法王이 뛰어난 놀이 동산과 같은 無餘依涅槃界에 들어가려 할 때에도 먼저 菩提分法으로써 最後의 弟子를 장엄하게 꾸미고 그로 하여금 먼저 涅槃하게 만든 후 자신도 뒤따른다.    

③ 蘇跋陀羅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梵行을 닦은 모든 이 들은 나 보다 먼저 有餘依涅槃界에 들었다. 나는 마땅히 나와 같이 梵行을 닦은 모든 이들보다 먼저 無餘依涅槃界에 들어야 하겠다.” 그 자신의 의지와 소원에 의거하여 붓다보다 먼저 입멸하였다.  

④ 蘇跋陀羅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聖敎의 功德을 받는 것만큼 똑같이 生死의 過患을 받는다. 내 이미 聖敎의 많은 功德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는데 어찌 오랫동안 머물면서 生死의 숱한 過患을 받겠는가?” 완전한 열반의 공덕을 이제 갖추게 되었으므로 더 이상 추구하여 받을 공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육신을 유지하고 있으면 많은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먼저 입멸하겠다는 것이다.  

⑤ 蘇跋陀羅 존자는 너무 많은 利養과 恭敬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拘尸城의 모든 力士 등은 이전부터 이 존자에 대해 위대한 스승으로 추앙 받고 있었다. 그가 이제 阿羅漢果를 성취하게 되었으니 붓다가 입멸하게 되면 그에게 지극한 공양이 모여들 것을 염려하였다. 붓다가 입멸하게 전까지는 역사들이 붓다에게 공양하겠지만 입멸한 뒤에는 존자에게 공양할 것이니 그 공양이 너무 지대할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에 붓다보다 먼저 입멸하였다.   

⑥ 존자는 분쟁의 근본을 끊어버리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존자는 다음과 같은 가능한 싸움을 미리 예견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붓다보다 뒤에 입멸하면 外道는 존자와 자신들이 同類라고 주장할 것이고 붓다의 제자 비구들은 자신들과 동류라고 주장하여 언쟁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붓다 보다 먼저 입멸하면 이런 다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먼저 입멸하였다. 앞서 우리는 존자가 입멸하기 전에 붓다의 제자임을 보여주기 위한 갖가지 기적이 소개되어 있는 것을 살펴보았다.  
  
⑦ 世尊께서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敎化의 功德에 감소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어떤 이는 世尊의 功德은 점점 退減하다가 그는 般涅槃하였다라고 생각하였다. 尊者는 世尊은 最後 순간까지 有情을 교화시키고 공덕을 圓滿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이다. 공덕을 원만하게 한다는 것은 無餘依涅槃界에 들어가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③④⑤는 선현의 개인적인 사정을 말하고 있으며 ②⑥⑦은 붓다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해 먼저 입멸하였다고 말하고 있지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감정적인 이유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   

V. 결 어

붓다의 입멸과 관련하여 스스로 생명을 단축한 아라한들에 대하여 두 가지 사항을 살펴보았다.  ① 그들의 입멸 이유는 차마 지켜 볼 수 없다. ② 그들은 입멸 직전 신통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 ①은 다분히 감정적인 요소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 아라한은 어떠한 것에도-그것이 생존이든 죽음이든-애착이나 증오를 품고 있지 않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 점을 고려 할 때 “차마 지켜 볼 수 없다(不忍見)” 라는 입멸 이유는 生死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아라한의 자질과 잘 부합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논리를 중시하는 부파불교의 논사들은 이런 감정적인 이유를 수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전들이 그들의 입멸 이유를 不忍見으로 한 것은 붓다의 입멸이 얼마나 슬픈 사건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무상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한 일반 범부에게 붓다의 입멸은 커다란 절망적인 사건이라서 범부가 고통스러워하고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아라한에게도 붓다의 입멸은 無常의 가르침으로 침착하게 받아들이게는 너무나 큰 슬픔이므로 아라한들이 스스로 먼저 입멸하게 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②에 대해 살펴보면 그들이 입멸 직전 신통변화를 보인 것은 그들이 수행을 완성한 아라한으로 원하기만 한다면 적어도 劫 내지 그 이상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스스로 끊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우리는 붓다의 입멸과 관련한 아라한의 자살을 전하는 문헌을 문학적 장치로 보고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본고에서 살펴 본 아라한들이 모두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던 점을 고려하면 자발적인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애도와 선현이 입멸할 당시 그들의 나이는 120세였고 사리불과 목련의 나이도 붓다의 나이 보다 많은 84세였던 점을 고려할 때 그들은 자신의 수명을 다 살고 입멸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몇몇 경전과 주석서에서는 이 가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역 아함경과 달리 팔리어 경전에선 간략하게 객관적으로 그들의 입멸을 전하고 있다. 不忍見이라는 이유나 신통변화에 관한 부분도 없는 점이 그들의 입멸이 자발적인 자살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어떠한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그들의 입멸이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히 이루어진 것이라고 기술하는 대신에 붓다의 입멸과 관련하여 바라보게 됨으로써 불교도들은 아라한들의 입멸을 통해 붓다의 입멸을 새롭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아라한들이 不忍見이라는 이유로 먼저 수명을 끊었다는 것은 붓다의 입멸에 관한 불교도들의 슬픔을 잘 대변하고 있은 것이다. 붓다의 입멸로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친견할 수 없다는 불교도들의 슬픔과 절망이 위대한 아라한들의 입멸 이유의 말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아라한들이 과연 붓다의 입멸과 관련하여 자살했을까라는 의문은 붓다의 입멸로 인한 불교도들의 슬픔의 표출 그리고 붓다에 대한 신앙심의 강화라는 종교적인 효과에 의해 무의미하게 된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