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께서는 육신통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중생들을 볼 때 마다 자동적으로 과거를 보거나 천리 떨어진 곳에서의 소리를
듣거나 볼 수 있을까요?
선정의 단계를 흔히들 구차제정(초선-이선-삼선-사선-식무변처-공무변처-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상수멸정)으로 나눕니다. 그런데 붓다께서 화장실 갈 때 이러한 구차제정의 선정
상태에서 화장실을 갔을까요 아닐까요?
붓다께서 대중들에게 설법을 할 때 상수멸정의 상태에서 설법을 했을까요?
쉽게 말씀드려서 선정의 수행이나 선정에 들어선 상태와 일반생활과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 같습니다만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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