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N 12. 사자후의 큰(긴) 경(mahāsīhanādasuttaṃ)

실론섬 2016. 3. 28. 14:18

MN 12. 사자후의 큰(긴) 경(mahàsãhanàdasuttam)

14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서쪽 교외의 아빠라뿌라 숲에 머물고 계셨는데, 릿차위의 후예인 수낙캇따가 이 법과 율로부터 떠난지(환속) 오래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는 웨살리의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이 없다. 사문 고따마는 논리적이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 법을 설한다. 그는 어떤 목적을 위해 설해진 법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한다."라고.

 

*릿차위(Licchavi)는 웨살리를 수도로 한 왓지(Vajji) 국을 대표하는 종족의 이름이다. 
*릿차위의 후예 수낙캇따(Sunakkhatta Licchaviputta)는 출가하였지만 출가의 목적인 괴로움으로부터의 해탈에는 관심이 없고 밖으로 드러나는 신통이나 고행등에만 관심을 보인 사람이다. 그는 세존께서 신통을 보여주시지 않는데 불만을 품고 환속을 하였다. '디가 니까야'의 마할리 경(D6) 빠띠카 경(D24)에도 등장하고 있다. 이 두 경에는 그의 불만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맛지마 니까야의 수낙캇따 경(M105)은 세존께서 그에게 설법하신 경이다.  

*"'인간의 법(manussa-dhamma)'란 열 가지 유익한 업의 길(십선업도. dasa kusala-kamma-patha)을 말한다. '인간을 넘어선 법(uttari manussa-dhamma)'이란 이것을 넘어선 이보다 더 높은 법을 말한다.(MA.ii.21)  

 

그때 사리뿟따 존자가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웨살리로 들어갔다사리뿟따 존자는 랏차위의 후예인 수낙캇따가 웨살리의 사람들에게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이 없다(차별적 지(知)와 견(見)이 없다). 사문 고따마는 논리적이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 법을 설한다. 그는 어떤 목적을 위해 설해진 법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사리뿟따 존자는 웨살리에서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아서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법과 율로부터 떠난지 오래되지 않은 릿차위의 후예인 수나캇따가 있습니다. 그가 웨살리의 사람들에게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知)와 견(見)의 특별함이 없다. 사문 고따마는 논리적이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 법을 설한다. 그는 어떤 목적을 위해 설해진 법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한다.'라고 말합니다." 

 

147.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그 수낙캇따는 화가 났다. 화가 났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다. '나는 비난하리라.'라면서,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수낙캇따는 오히려 여래를 칭송했다. '그는 어떤 목적을 위해 설해진 법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한다.'라고 말한다면, 사리뿟따여, 그것은 여래에 대한 칭송이다.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수낙캇따에게는 나에 대한 사실과 일치하는 이런 것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사실과 일치하는' 것으로 번역한 원어는 dhamma-anvaya이다.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추론하기(anveti) 때문에 anvaya라 한다. 안다, 깨닫는다는 말이다. 법(dhamma)을 추론하여 아는 지혜가 dhamma-anvaya이다. 이것은 일체지 등의 각각의 법을 아는 지혜와 통찰지(janana-panna)의 다른 이름이다.(MA.ii.25)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수낙캇따에게 나에 대한 사실과 일치하는 이런 것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신통변화를 실행한다. 하나인 채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한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달린 새와 같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브라흐마(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서 위력을 미친다.'라고.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수낙캇따에게 나에 대한 사실과 일치하는 이런 것도 없을 것이다. 

'그분 세존께서는 인간을 뛰어 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귀의 계를 통해 멀거나 가까운 하늘과 사람의 소리를 듣는다.'라고.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수낙캇따에게 나에 대한 사실과 일치하는 이런 것도 없을 것이다. 

'그분 세존께서는 다른 중생, 다른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 차린다. 탐냄을 지닌 마음을 탐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 다. 탐냄을 떠난 마음을 탐냄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성냄을 지닌 마음을 성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성냄을 떠난 마음을 성냄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을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어리석음을 떠난마음을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집중된 마음을 집중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산란한 마음(집중되지 않은 마음)을 산란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고귀한 마음을 고귀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고귀하지 못한 마음을 고귀하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위가 있는 마음을 위가 있는 마음으로알아차린다. 위가 없는 마음을 위가 없는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삼매를 얻은 마음으로 삼매를 얻은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을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라고.

 

148. 다시, 사리뿟따여, 여래에게는 이런 열 가지 힘[如來十力]이 있다. 이러한 힘에 의해(힘을 갖춘)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대중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거룩한 바퀴[범륜. 梵輪]를 굴린다. 어떤 열가지인가? 

①여기, 사리뿟따여, 여래는 곳을 곳으로, 곳이 아닌 곳을 곳이 아닌 것으로,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안다). 사리뿟따여, 여래가 곳을 곳으로, 곳이 아닌 것을 곳이 아닌 것으로 있는 그대로 아는 것도, 사리뿟따여,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대중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거룩한 바퀴[梵輪]를 굴린다.

 

②다시, 사리뿟따여, 여래는 과거‧미래‧현재의 업을 받을 때, 곳으로부터의 그리고 원인으로부터의 업의 과보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사리뿟따여, 여래가 과거‧미래‧현재의 업을 받을 때, 곳으로부터의 그리고 원인으로부터의 업의 과보를 있는 그대로 아는 것도, 사리뿟따여,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대중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③다시, 사리뿟따여,  여래는 모든 곳으로 통해 있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사리뿟따여, 여래가 모든 곳으로 통해 있는 길을 여실하게 아는 것도, 사리뿟따여,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대중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④다시, 사리뿟따여, 여래는 하나의 계[界]가 아닌, 다양한 계의 세간을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사리뿟따여, 여래가 하나의 계가 아닌, 다양한 계의 세간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도, 사리뿟따여,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대중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⑤다시, 사리뿟따여, 여래는 중생들이 다양하게 확신하는 바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사리뿟따여, 여래가 중생들이 다양하게 확신하는 바를 있는 그대로 아는 것도, 사리뿟따여,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대중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⑥다시, 사리뿟따여, 여래는 다른 중생이 지닌, 다른 사람들이 지닌 근기의 높고 낮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사리뿟따여, 여래가 다른 중생이 지닌, 다른 사람들이 지닌 근기의 높고 낮음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도, 사리뿟따여,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대중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⑦다시, 사리뿟따여, 여래는 선정과 해탈과 삼매와 선정의 상태에 관련하여, 번뇌에 대해, 청정에 대해, 벗어남에 대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사리뿟따여, 여래가 선정과 해탈과 삼매와 선정의 상태에 관련하여, 번뇌에 대해, 청정에 대해, 벗어남에 대해 있는 그대로 아는 것도, 사리뿟따여,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대중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⑧다시, 사리뿟따여, 여래는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한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사리뿟따여, '여래가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한다. 한 생, 두 생 ···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라고 아는 것도, 사리뿟따여,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대중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⑨다시, 사리뿟따여, 여래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사리뿟따여, '여래가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라는 것도, 사리뿟따여,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대중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⑩다시, 사리뿟따여, 여래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을 지녀, 현재의 법을 스스로 철저히 알고, 겪어 알아, 구족하여 머문다. 사리뿟따여, 여래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지녀, 현재의 법을 스스로 철저하게 알고, 겪어 알아, 구족하여 머무는 것도 사리뿟따여,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대중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사리뿟따여, 여래에게는 이런 열 가지 여래의 힘[如來十力]이 있다. 이런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하고, 대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149. 어떤 사람이, 사리뿟따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나에게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知)와 견(見)의 특별함이 없다. 사문 고따마는 논리적이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 법을 설한다.' 라고 말한다면, 사리뿟따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계를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 비구는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앎을 얻듯이, 이처럼, 사리뿟따여, 이것을 성취한다고 나는 말한다.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150. 사리뿟따여, 여래는 이런 네 가지 확신이 있다.(두려움이 없다.사무소외.四無所畏). 이런 확신을 갖춘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천명하고, 대중에게 사자후를 토하고,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무엇이 넷 인가?

 

①'그대는 정등각을 선언하지만, 이러한 법들은 완전히 깨닫지 못했다.'라고, 세상에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신이든 마라든 범천이든 나를 법답게 비난할 것이라는 이런 징후를 보지 못한다. 사리뿟따여, 나는 이런 징후를 보지 못하는 나는 안온(安穩)을 얻고, 두렵지 않음을 얻고, 확신을 얻어 머문다.  

[붓다께서 대중 가운데 설법을 하실 때 '나는 일체의 모든 지혜를 다 구족하고 있다.'와 같이 결정적인 말씀을 하시면서도 추호도 두렴움이 없는 마음의 자세를 말한다.]  

 

*'법답게(sahadhammena)'라는 것은 근거가 있고, 이유가 있는 말로라는 뜻이다.(MA.ii.33)
*'이런 징후(nimittam etam)'는 '이런 표상'이라는 뜻으로도 옮길 수 있다. 즉 나를 질책할 사람을 보지 못하고, 어떤 법을 보여주면서 이런 법은 그대가 완전히 깨닫지 못했다고 하면서 나를 질책할 그런 법도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MA.ii.33)


②'그대는 번뇌 다함을 선언하지만, 이러한 번뇌들은 완전히 멸하지 못했다.'라고,
세상에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신이든 마라든 범천이든 나를 법답게 비난할 것이라는 이런 징후를 보지 못한다. 사리뿟따여, 나는 이런 징후를 보지 못하는 나는 안온(安穩)을 얻고, 두렵지 않음을 얻고, 확신을 얻어 머문다.   

[붓다께서 대중 가운데서 '나는 모든 번뇌를 모두 다 소멸시켜서 번뇌가 하나도 없다.'와 같은 사자후를 토하시면서도 추호도 두려움이 없는 것을 말한다.]  

 

③'그대가 장애가 된다고 말한 그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고, 세상에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신이든 마라든 범천이든 나를 법답게 비난할 것이라는 이런 징후를 보지 못한다. 사리뿟따여, 나는 이런 징후를 보지 못하는 나는 안온(安穩)을 얻고, 두렵지 않음을 얻고, 확신을 얻어 머문다.  

[붓다께서 대중들에게 '진리를 수용하고 닦고 익힘에 있어서 장애가 없다.'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추호의 두려움이 없는 것을 말한다.]

 

④'어떤 목적을 위해 그대가 설한 법은 그것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지 못한다.'라고, 세상에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신이든 마라든 범천이든 나를 법답게 비난할 것이라는 이런 징후를 보지 못한다. 사리뿟따여, 나는 이런 징후를 보지 못하는 나는 안온(安穩)을 얻고, 두렵지 않음을 얻고, 확신을 얻어 머문다.   

[붓다께서 대중 가운데서 '번뇌로부터 발생된 고통이 다 없어졌다.'고 사자후를 토하시면서도 추호도 두려움이 없는 것을 말한다.]

 

사리뿟따여, 여래에게 이런 네 가지 확신이 있다. 이런 확신을 갖춘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천명하고, 대중에게 사자후를 토하고,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어떤 사람이, 사리뿟따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나에게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知)와 견(見)의 특별함이 없다. 사문 고따마는 논리적이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 법을 설한다.' 라고 말한다면, 사리뿟따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계를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 비구는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앎을 얻듯이, 이처럼, 사리뿟따여, 이것을 성취한다고 나는 말한다.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151. 사리뿟따여, 이런 여덟 가지 회중이 있다. 무엇이 여덟인가?

끄샤뜨리야의 회중, 바라문의 회중, 장자의 회중, 사문의 회중, 사대왕천의 회중, 삼십삼천의 회중, 마라의 회중, 범천의 회중이다. 사리뿟따여, 이것이 여덟 가지 회중이다. 사리뿟따여, 여래는 이런 네 가지 확신을 갖추고 이들 여덟 가지 회중에 가서 그들 안으로 들어간다. 사리뿟따여, 나는 수백명의 끄샤뜨리야 회중에 갔던 것, 거기서도 나는 이전에 그들과 함께 앉았고, 이전에 그들과 함께 대화를 했고, 이전에 그들과 함께 토론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거기서도 내가 두려움이나 소심함을 가지고 들어 갈 것이라는 어떤 징후도 나는 보지 못한다. 사리뿟따여, 이런 징후를 보지 못하는 나는 안온을 얻고, 두렵지 않음을 얻고, 확신을 얻어 머문다.

 

사리뿟따여, 나는 수백명의 바라문의 회중에 ··· 장자의 회중에 ··· 사문의 회중에 ··· 사대왕천의 회중에 ··· 삼십삼천의 회중에 ··· 마라의 회중에 ··· 범천의 회중에갔던 것, 거기서도 나는 이전에 그들과 함께 앉았고, 이전에 그들과 함께 대화를 했고, 이전에 그들과 함께 토론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거기서도 내가 두려움이나 소심함을 가지고 들어 갈 것이라는 어떤 징후도 나는 보지 못한다. 사리뿟따여, 이런 징후를 보지 못하는 나는 안온을 얻고, 두렵지 않음을 얻고, 확신을 얻어 머문다.

어떤 사람이, 사리뿟따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나에게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이 없다. 사문 고따마는 논리적이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깨달은) 법을 설한다.' 라고 말한다면, 사리뿟따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계를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 비구는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앎을 얻듯이, 이처럼, 사리뿟따여, 이것을 성취한다고 나는 말한다.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152. 사리뿟따여, 이런 네 가지 태어남[존재의 영역]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난생(卵生), 태생(胎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이다. 사리뿟따여, 무엇이 난생인가? 사리뿟따여, 생명체(중생)가 그 껍질을 깨고 태어나면, 사리뿟따여, 이것이 난생이라고 불린다. 사리뿟따여, 무엇이 태생인가? 사리뿟따여, 생명체가 태의 막을 벗고 태어나면, 사리뿟따여, 이것이 태생이라고 불린다. 사리뿟따여, 무엇이 습생인가? 사리뿟따여, 생명체가 부패한 생선, 부패한 시체, 부패한 유제품, 물웅덩이나 연못에서 태어나면, 사리뿟따여, 이것이 습생이라 불린다. 사리뿟따여, 무엇이 화생인가? 사리뿟따여, 신들, 지옥에 태어난 자들, 어떤 인간들, 악처에 태어난 어떤 존재들을 화생이라 한다. 사리뿟따여, 이들이 네 가지 태어남이 있다. 

 

어떤 사람이, 사리뿟따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나에게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知)와 견(見)의 특별함이 없다. 사문 고따마는 논리적이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 법을 설한다.' 라고 말한다면, 사리뿟따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계를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 비구는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앎을 얻듯이, 이처럼, 사리뿟따여, 이것을 성취한다고 나는 말한다.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153. 사리뿟따여, 이런 다섯 가지 갈 곳이 있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지옥(地獄), 축생(畜生), 아귀(餓鬼), 인간(人間), 천상(天上)이다. 사리뿟따여, 나는 지옥과 지옥에 이르는 길, 지옥으로 이끄는 실천을 철저히 알며, 그 실천을 따라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는 것을 철저히 안다. 또한, 사리뿟따여, 나는 축생과 축생에 이르는 길, 축생으로 이끄는 실천을 철저히 알며, 그 실천을 따라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짐승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철저히 안다. 또한, 사리뿟따여, 나는 아귀와 아귀에 이르는 길, 아귀로 이끄는 실천을 철저히 알며, 그 실천을 따라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아귀로 태어난다는 것을 철저히 안다. 또한, 사리뿟따여, 나는 인간과 인간에 이르는 길, 인간으로 이끄는 실천을 철저히 알며, 그 실천을 따라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철저히 안다. 또한, 사리뿟따여, 나는 천상과 천상으로  이르는 길, 천상으로 이끄는 실천을 철저히 알며, 그 실천을 따라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난다는 것을 철저히 안다. 그리고 사리뿟따여,  나는 열반과 열반에 이르는 길, 열반으로 이끄는 실천을 철저히 알며, 그 실천을 따라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를 통한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구족하여 머무는 것도 철저히 안다.

 

154. 사리뿟따여,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이렇게 철저히 안다.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날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天眼]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나서,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불꽃이나 연기도 없이 새빨갛게 달구어진 한길이 넘는 숯불구덩이가 있다. 그런데 열기에 지치고 열기에 고통받아 피곤하고 두렵고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 오직 한 길을 따라 이 숯불구덩이를 향하여 올 것이다. 눈이 있는 자는 그것을 보고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오직 이 숯불 구덩이로 올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그는 나중에 그 숯불구덩이에 떨어져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를 볼 것이다. 사리뿟따여, 이처럼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이렇게 철저히 안다.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날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天眼]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나,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이렇게 철저히 안다.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축생으로 태어날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인간을 뛰어 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축생으로 태어나,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오물로 가득 찬 한 길이 넘는 오물 구덩이가 있다. 그런데 열기에 지치고 열기에 고통받아 피곤하고 두렵고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 오직 한 길을 따라 이 오물 구덩이를 향하여 올 것이다. 눈이 있는 자는 그것을 보고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오직 이 오물 구덩이로 올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그는 나중에 그 오물 구덩이에 떨어져서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를 볼 것이다. 사리뿟따여, 이처럼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이렇게 철저히 안다.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축생으로 태어날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인간을 뛰어 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축생으로 태어나,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이렇게 철저히 안다.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아귀 세상에 태어날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인간을 뛰어 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아귀 세상에 태어나, 고통 많은 느낌을 경험하는 그를 본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평탄치 못한 땅 위에 잎사귀와 가지가 적어 그늘이 드문드문 있는 나무가 있다. 그런데 열기에 지치고 열기에 고통받아 피곤하고 두렵고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 오직 한 길을 따라 이 나무를 향하여 올 것이다. 눈이 있는 자는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오직 이 나무로 올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그는 나중에 그 사람이 그 나무 그늘에 앉거나 누워서 고통 많은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볼 것이다. 사리뿟따여, 이처럼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이렇게 철저히 안다.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아귀 세상에 태어날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인간을 뛰어 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아귀 세상에 태어나서 고통 많은 느낌을 경험하는 그를 본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이렇게 철저히 안다.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인간들 가운데 태어날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인간을 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인간 가운데서 태어나, 행복 많은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평탄한 땅 위에 잎사귀와 가지가 많은 짙은 그늘을 가진 나무가 있다. 그런데 열기에 지치고 열기에 고통받아 피곤하고 두렵고 목마른 사람이 오직 한 길을 따라 이 나무를 향하여 올 것이다. 눈 있는 자는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 할 것이다. '이 사람은 오직 이 나무로 올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그는 나중에 그 나무 그늘에 앉거나 누워서 행복 많은 느낌을 경험하는 그를 볼 것이다.  

 

사리뿟따여, 이처럼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이렇게 철저히 안다.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인간들 가운데 태어날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인간을 뛰어 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인간 가운데서 태어나서 행복 많은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이렇게 철저히 안다.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날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인간을 뛰어 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천상 세계에 태어나, 오로지 행복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석회로 칠해지고 바람이 차단되고 빗장이 채워지고 창문이 닫힌 뾰족 지붕의 저택이 있다. 거기에는 소파, 모직 양탄자, 흰색의 모직 양탄자, 꽃무늬 양탄자, 사슴 가죽을 만든 덮개, 차양, 양면이 붉은 베개가 있다. 그런데 열기에 지치고 열기에 고통받아 피곤하고 두렵고 목마른 사람이 오직 한 길을 따라 이 저택을 향하여 올 것이다. 눈 있는 자는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오직 이 저택으로 올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그는 나중에 그 뾰쪽지붕의 저택의 소파에 앉거나 누워서 오로지 행복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를 볼 것이다. 사리뿟따여, 이처럼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이렇게 철저히 안다.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날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인간을 뛰어 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나 오로지 행복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이렇게 철저히 안다.  

'이 사람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인간을 뛰어 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그가 모든 번뇌를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이한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면서 오로지 행복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맑고 상쾌하고 차고 투명한 물이 담긴, 가까이에 무성한 숲이 있고, 아름다운 제방으로 둘러쌓인 매혹적인 호수가 있다. 그런데 열기에 지치고 열기에 고통받아 피곤하고 두렵고 목마른 사람이 오직 한 길을 따라 이 호수를 향하여 올 것이다. 눈 있는 자는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 할 것이다. '이 사람은 오직 이 호수로 올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그는 나중에 그 호수에 들어가 목욕하고 마시고 일체의 근심과 피로와 열기를 가라앉힌 뒤에 다시 나와서, 그 숲에 앉거나 누워서 오로지 행복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를 볼 것이다. 사리뿟따여, 이처럼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이렇게 철저히 안다. '이 사람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인간을 뛰어 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그가 모든 번뇌를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면서 오로지 행복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사리뿟따여, 이러한 다섯 가지의 갈 곳이 있다.

 

어떤 사람이, 사리뿟따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나에게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知)와 견(見)의 특별함이 없다. 사문 고따마는 논리적이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깨달은) 법을 설한다.' 라고 말한다면, 사리뿟따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계를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 비구는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앎을 얻듯이, 이처럼, 사리뿟따여, 이것을 성취한다고 나는 말한다.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155. 또한, 사리뿟따여, 나는 네 가지를 요소를 갖춘 범행을 실천한 것을 기억한다.

나는 고행자, 극단적인 고행자였다. 나는 곤궁한 자, 극단적으로 곤궁한 자였다. 나는 (해치는 행위를) 혐오하는 자,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자였다. 나는 홀로 머무는 자(은둔자), 극단적으로 홀로 머무는 자였다. 사리뿟따여, 그때 나는 이런 고행을 했다. 나는 관습을 거부하고 살았고, 손에 음식을 받아 핥아서 먹었고, [음식을 주려고]'오시오'라고 하면 가지 않았고, '서시오'라고 하면 서지 않았으며, 주어지지 않은 것과, [내 몫으로] 배당되지 않은 것과, 초대되지 않은 것을 받지 않았다. 나는 항아리의 가장자리로부터 받지 않고, 그릇의 가장자리로부터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와서 주는 것을 받지 않고, 막대기로 넘어와서 주는 것을 받지 않고, 절구공이를 넘어와서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며, 두 사람이 먹고 있는 것을 받지 않고, 임산부에게 받지 않고, 젖먹이는 여자에게 받지 않고, 남자에게 안겨 있는 여자에게 받지 않으며, [보시한다고] 널리 알린 그 음식을 받지 않고, 개가 옆에서 보고 있을 때 받지 않고, 파리 떼가 날라다니는 곳에서 받지 않고, 생선과 고기를 받지 않고, 술, 발효주, 발효하여 끓인 것을 마시지 않았다. 나는 한 집에서 한 입의 음식을, 두 집에서 두 입의 음식을 받고 ···일곱 집에서 일곱 입의 음식을 받아 먹었다. 작은 그릇 한 개의 음식으로 삶을 유지하고, 작은 그릇 두 개의 음식으로 삶을 유지하고 ··· 작은 그릇 일곱 개의 음식으로 삶을 유지했다. 하루에 한 번 음식을 먹고, 이틀에 한 번 음식을 먹고 ··· 일주일에 한 번 음식을 먹었다. 이처럼 보름에 한 번 음식을 먹는 것을 실천하며 머물렀다.

 

*'관습을 거부하며'라는 것은 세상의 관습을 던져버리고 살았다는 말이다. 즉 용변을 보는 일 등에서 세상의 선남자들이 행하던 관습을 버리고 선 채로 대소변을 보고 서서 먹고 마시다는 말이다.(MA.ii.43)
*'널리 알린 그 음식을 받지 않고'란 기근이 든 때에 나체수행자의 제자들이 나체수행자를 위해 쌀 등을 모아서 밥을 짓지만 덕망있는 나체수행자는 그곳에서 음식을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MA.ii.44)

*'개가 옆에서 보고 있을 때 받지 않고'란 개가 음식을 얻기 위해서 서 있는 곳에서 개에게 음식을 주지 않고 자기에게 가져온 음식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은 그 개의 밥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MA.ii.44)
*나체 수행자를 보고 '이 음식을 공양올려야지'하며서 사람들은 부엌으로 음식으로 가지러 간다. 그들이 부엌에 갈 때 냄비 언저리 등에 붙어 있던 파리들이 때를 지어 날아 오른다. 그곳에서 음식을 받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나 때문에 파리들의 영역이 장애를 받기 때문이다.(MA.ii.44)
*발효주란 모든 곡류를 껍질째 만든 것을 말한다.(MA.ii.44)
*'한 집에서 한 입의 음식을'이란 오직 한 집에서만 음식을 얻고는 돌아왔다는 말이다.(MA.ii.44)
*닷띠(datti)란 두세 입 분량의 공양물을 담을 수 있는 작은 그릇을 말한다.(MAT.i.353)

 

나는 야채를 먹기도 하고, 수수를 먹기도 하고, 생쌀을 먹기도 하고, 부드러운 뼈를 먹기도 하고, 수초를 먹기도 하고, 왕겨를 먹기도 하고, 뜨물을 먹기도 하고, 참깨 가루를 먹기도 하고, 풀을 먹기도 하고, 소똥을 먹기도 하고, 나무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삶을 유지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고 삶을 유지했다.

 

나는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삼베와 다른 실을 섞어 짠 거친 옷을 입고, 시체를 싸맨 헝겁으로 만든 옷을 입고, 넝마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영양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꾸사 풀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의 평평한 조각으로 만든 옷을 입고, 인간의 머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동물의 꼬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올빼미 털로 만든 옷을 입었다.

 

나는 머리털과 수염을 뽑는 고행을 실천하는 자여 머리털과 수염을 뽑고, 앉는 것을 거부하는 자여서 똑바로 서기도 하고, 쪼그려 앉는 고행을 실천하는 자여 쪼그려 앉기도 하고, 가시에 기대는 자여서 가시로 된 침상을 사용했다. 저녁에 세 번 물에 들어가는 고행을 실천하면서 머물렀다. 이처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몸을 괴롭히는 고행을 실천하며 머물렀다. 참으로, 사리뿟따여, 나는 이런 고행을 했다.

 

156. 사리뿟따여, 그때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살았다.

여러 해 동안 몸에 진흙 먼지가 쌓이고 마른 껍질이 생겼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띤두까 나무 그루터기는 여러 해 동안 마른 껍질이 생겨서 쌓인다. 이처럼, 사리뿟따여, 나에게 여러 해 동안 몸에 진흙 먼지가 쌓이고 마른 껍질이 생겼다. 그런 나에게, 사리뿟따여, '참으로 나는 손으로 이 진흙 먼지를 털어야겠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있는 진흙 먼지를 털어주었으면!'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리뿟따여, 나에게 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사리뿟따여,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살았다.

 

사리뿟따여, 그때 나는 이렇게 혐오했다.

사리뿟따여, 나는 마음챙기며 앞으로 나아갔고 마음챙기며 돌아왔다. '나는 [걷는 동안에] 울퉁불퉁한 땅의 틈새에 있는 작은 생명에 대해서도 해치지 않으리라.'라고 하면서 한 방울의 물조차도 나는 연민하였다. 참으로, 사리뿟따여, 나는 이렇게 (해치는 행위를) 혐오했다.

 

사리뿟따여, 그때 나는 이렇게 홀로 머물렀다.

사리뿟따여, 나는 어떤 숲에 깊이 들어가 머물렀다. 소치는 사람이나 가축 기르는 사람이나 풀을 베는 사람이나 땔감을 줍는 사람이나 숲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는 숲에서 숲으로, 밀림에서 밀림으로, 골짜기에서 골짜기로, 능선에서 능선으로 깊이 들어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들이 나를 보지 못하고 내가 그들을 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숲에 사는 사슴은 사람들을 보면 숲에서 숲으로, 밀림에서 밀림으로, 골짜기에서 골짜기로, 능선에서 능선으로 깊이 듶어간다. 이처럼, 사리뿟따여, 나는 소치는 사람기나 가축 기르는 사람이나 풀을 베는 사람이나 땔감을 줍는 사람이나 숲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는 숲에서 숲으로, 밀림에서 밀림으로, 골짜기에서 골짜기로, 능선에서 능선으로 깊이 들었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들이 나를 보지 못하고 내가 그들을 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리뿟따여, 나는 이렇게 홀로 머물렀다. 

 

사리뿟따여, 그런 나는 소가 떠나고 소치는 사람이 떠난 외양간에 사지를 굽히고 들어간 뒤에 젖을 빠는 어린 송아지들의 똥을 먹었다. 나 자신의 똥과 오줌이 다하지 않는 한, 나는 참으로 나 자신의 똥과 오줌을 먹었다. 사리뿟따여, 나는 이렇게 아주 더러운 것을 먹었다.

 

157. 사리뿟따여, 그런 나는 어떤 무시무시한 숲에 깊이 들어가서 머물렀다. 사리뿟따여, 거기 무시무시한 깊은 숲은 두려움을 만든다. 누구든지 탐욕을 떠난지 못한 자가 깊은 숲에 들어가면 대부분 몸의 털이 곤두선다. 사리뿟따여, 나는 눈이 내리는 차가운 겨울의 8일간의 밤 동안에는 노천에서 머물고, 낮에는 깊은 숲에서 머물렀다. 여름의 마지막 달에는 낮에는 노천에서 머물고, 밤에는 깊은 숲에서 머물렀다. 그런 나에게, 사리뿟따여, 이전에 듣지 못한 게송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두려운 숲에서 그는 뜨겁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다. 
벗었고, 불 가까이에 앉지도 못했지만, 성자는 추구에 전념한다.'

 

사리뿟따여, 나는 시체의 뼈로 무덤가에 침상을 만들었다. 사리뿟따여, 소치는 사람들이 내게 와서 침을 뱉고 오줌을 누고 오물을 던지고 귀에 풀잎을 집어 넣었다. 그러나 사리뿟따여, 그것에 대해 마음을 일으킨 것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사리뿟따여, 나는 이렇게 평온(평정)하게 머물렀다.

 

158. 사리뿟따여, '음식에 의해 청정해진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그들은 '대추로 유지해야겠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대추를 먹고, 대추 가루를 먹고, 대추 즙을 마시고, 여러 가지 대추로 만든 것을 먹는다. 사리뿟따여, 나는 한 개의 대추를 음식으로 먹었던 것을 기억한다. 사리뿟다여, 그대는 '참으로 그때는 큰 대추가 있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리뿟따여,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그때도 큰 대추는, 예를 들면, 지금의 열매 크기만 했다. 사리뿟따여, 한 개의 대추를 음식으로 먹는 나에게 몸은 극도로 여위어 갔다. 예를 들면, 아시띠카 나무의 마디거나 깔라 풀의 마디가 있는데,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나의 사지는 그렇게 되었다. 예를 들면, 낙타의 발이 있는데,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나의 엉덩이는 그렇게 되었다. 예를 들면, 구슬을 엮어 놓은 사슬이 있는데,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나의 구부정한 척추는 그렇게 되었다. 예를 들면, 오래된 집의 서까래들은 부서지게 되는데,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나의 갈비뼈는 그렇게 되었다. 예를 들면, 깊은 우물에는 물에 비친 별이 깊게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나의 동공 안에서 눈동자의 빛은 깊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예를 들면, 쓴 호리병 박이 익기 전에 떨어져 바람과 햇빛에 닿으면 시드는데, 이처럼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나의 머리가죽은 갈리지고 움추려 들었다. 사리뿟따여, 그런 내가 '뱃가죽을 만져야겠다.'라고 하면 등뼈가 잡혔고, '등뼈를 만져야 겠다.'라고 하면 뱃가죽이 잡혔다. 사리뿟따여,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나의 뱃가죽은 등뼈에 달라 붙어버렸다. 사리뿟따여, 그런 내가 '대변이나 오줌을 누어야 겠다.;라고 하면,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얼굴을 아래로 하여 넘어졌다. 사리뿟따여, 그런 나에게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손으로 몸을 여기저기 문지르면 뿌리가 썩은 털들이 몸에서 떨어졌다.

 

159. 사리뿟따여, '음식에 의해 청정해진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그들은 '청녹두로 유지해야겠다 ··· '참깨로 유지해야겠다' ··· '쌀알(쌀 낱알)로 유지해야겠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쌀알을 먹고, 쌀알 가루를 먹고, 쌀알 즙을 마시고, 여러 가지 쌀알로 만든 것을 는다. 사리뿟따여, 나는 한 개의 쌀알을 음식으로 먹었던 것을 기억한다. 사리뿟다여, 그대는 "참으로 그때는 큰 쌀알이 있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리뿟따여,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그때도 큰 쌀알은, 예를 들면, 지금의 쌀알만 했다. 사리뿟따여, 한 개의 쌀알을 음식으로 먹는 나에게 몸은 극도로 야위어 갔다. 예를 들면, 아시띠카 나무의 마디거나 깔라 풀의 마디가 있는데,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나의 사지는 그렇게 되었다. 예를 들면, 낙타의 발이 있는데,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나의 엉덩이는 그렇게 되었다. 예를 들면, 구슬을 엮어 놓은 사슬이 있는데,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나의 구부정한 척추는 그렇게 되었다. 예를 들면, 오래된 집의 서까래들은 부서지게 되는데,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나의 갈비뼈는 그렇게 되었다. 예를 들면, 깊은 우물에는 물에 비친 별이 깊게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나의 동공 안에서 눈동자의 빛은 깊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예를 들면, 쓴 호리병 박이 익기 전에 떨어져 바람과 햇빛에 닿으면 시드는데, 이처럼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나의 머리가죽은 갈리지고 움추려 들었다. 사리뿟따여, 그런 내가 '뱃가죽을 만져야겠다.'라고 하면 등뼈가 잡혔고, '등뼈를 만져야 겠다.'라고 하면 뱃가죽이 잡혔다. 사리뿟따여,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나의 뱃가죽은 등뼈에 달라 붙어버렸다. 사리뿟따여, 그런 내가 '대변이나 오줌을 누어야 겠다.;라고 하면,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얼굴을 아래로 하여 넘어졌다. 사리뿟따여, 그런 나에게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손으로 몸을 여기저기 문지르면 뿌리가 썩은 털들이 몸에서 떨어졌다. 

 

사리뿟따여, 그런 행위에 의해서도, 그런 실천에 의해서도, 그런 하기 어려운 삶에 의해서도 나는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어울리는 차별적인 지와 견을 얻지 못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 성스러운 지혜를 성취하지 못했다. 성스러운 해탈로(구원으로) 이끄는 성스러운 지혜를 얻으면, 그것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이끈다.

 

160. 사리뿟따여, '윤회에 의해서 청정해진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이 오랜 세월 동안,  정거천(淨居天)을 제외하고서, 내가 이전에 윤회하지 않았던 그런 계(界)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사리뿟따여, 내가 정거천에 윤회했다면 이 세상에 다시 오지 못했을 것이다.

 

사리뿟따여, '재생(再生)에 의해 청정해진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이 오랜 세월 동안, 정거천을 제외하고는, 내가 이전에 재생하지 않았던 재생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사리뿟따여, 내가 정거천에 재생했다면 이 세상에 다시 오지 못했을 것이다.

 

사리뿟따여, '거주(居住)에 의해 청정해진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이 오랜 세월 동안, 정거천을 제외하고서, 내가 이전에 거주하지 않았던 거주처란 찾기 어렵다. 그러나 사리뿟따여, 내가 정거천에 거주했다면 이 세상에 다시 오지 못했을 것이다.

 

사리뿟따여, '제사에 의해 청정해진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이 오랜 세월 동안, 머리에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끄샤뜨리야 이거나 부유한 바라문이 되어, 내가 이전에 지내지 않은 제사는 찾기 어렵다.

 

사리뿟따여, '불을 섬김에 의해 청정해진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이 오랜 세월 동안, 머리에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끄샤뜨리야 왕이거나 부유한 바라문이 되어, 내가 이전에 섬기지 않은 불은 찾기 어렵다."

 

161. 사리뿟다여, '훌륭한 사람이 검은 머리의 소년이고 축복받은 젊음을 갖춘 초년기의 젊은 나이일때까지는 최상으로 지혜의 총명함을 갖춘다. 그러나 이 훌륭한 사람이 태어난 지 팔십이나 구십이나 백 년이 되어 늙고, 나이 들고, 노쇠하고, 긴 세월을 보냈고, 노후하면, 그때 그에게서 지혜의 총명함은 줄어든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그러나 사리뿟따여,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사리뿟따여, 이제 나는 늙고, 나이 들고, 노쇠하고, 긴 세월을 보냈고, 노후하여 내 나이가 팔십이 되었다. 여기, 사리뿟따여, 나에게 백 년의 수명을 가지고 백 년을 살아 온 네 명의 제자가 있어서 최상으로 마음챙김과 영리함과 능력을, 그리고 최상으로 지혜의 총명함을 갖추었다고 하자.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훈련되어 능숙하고 능력을 갖춘 숙련된 궁수는 가벼운 화살로 힘들이지 않고 야자수나무 그늘을 가로질러 과녁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특별한 마음챙김을 가지고, 이렇게 특별한 영리함을 가지고, 이렇게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이렇게 최상으로 지혜의 총명함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나에게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에 관한여 거듭 질문할 것이다. 거듭 질문받은 나는 그들에게 설명할 것이다. 그들은 나의 설명을 설명 그대로 명심할 것이다. 나에게 두 번 더 되묻지 않을 것이다.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보는 것 외에, 대소변을 보는 것 외에, 졸음과 피로를 푸는 것 외에, 사리뿟따여, 여래의 설법은 다함이 없을 것이다. 법의 구절과 표현에서 여래에게 다함이 없을 것이고, 질문에 대한 여래의 지혜는(대답은) 다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백 년의 수명을 가지고 백 년을 살아 온 나의 네 명의 제자는 백 년이 지나서 죽을 것이다. 사리뿟따여, 만약 그대들이 나를 작은 침상으로 옮긴다해도 여래에게 지혜의 총명함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사리뿟따여,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연민하기 위하여, 신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혼란스럽지 않은 법을 갖춘 분이 세상에 출현하셨다.'라고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말한다면, 그것은 나에 대한 것이다."

 

*'먹고 마시고.··· 총명함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라는 부분은 세존의 힘(Buddha-bala)을 드러내기 위해 상상으로 말한 것이다. 참으로 열 가지 힘을 침상에 얹어두고 마을과 성읍과 수도를 보호하는 시기는 없다. 세존들께서는 치아가 부러지는 상황 등을 겪지 않고 황금빛 피부가 변하지 않은 채 다섯 번째 수명의 부분에서 신과 인간들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하는 때에 열반에 들기 때문이다.(MA.ii.53)
80세 때 이후를 다섯 번째 수명의 부분이라 한다.(MAT.ii.36)

 

 

162. 그때 나가사말라 존자가 세존의 뒤에 서서 세존께 부채를 부쳐 드리고 있었다. 나가사말라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참으로, 세존이시여, 이 법문을 듣고서 저에게 몸의 털이 곤두섰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나가사말라여, 이 법문을 '몸에 털이 곤두서는 법문'이라고 명심하라."

 

*'나가사말라(Nagasamala) 장로'는 세존의 시자 중의 한분이었다. 주석서에 의하면 세존의 시자 소임을 본 분은 모두 여덟 분이었다. 깨달음을 얻으신 뒤 처음 20년 동안을 나가사말라(Nagasamala), 나기따(Nagita), 우빠와나(Upavana), 수낙캇따(Suna-kkhatta), 사미라고 불린 쭌다(Cunda samanuddesa), 사가따(Sagata), 메기야(Meghiya)가 소임을 보았고(AAT.iii.247-248), 21년째 되던 해부터 반열반하시기까지 대략 20년간은 아난다 존자가 시자 소임을 맡았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나가사말라 존자는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Mahāsīhanādasuttaṃ niṭṭhitaṃ dutiyaṃ.

사자후의 큰(긴) 경(M12)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