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이야기

유위법 무위법 그리고 10사무기

실론섬 2016. 4. 5. 15:15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리고 좋은 질문도 감사드립니다. 올려주신 글을 모두 질문이라 간주하면 너무 많은 답변이 되겠기에 간단하게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초기경의 수백 군데에 <태어남은 다했다 ...>는 구경의 지혜(an$n$aa)의 정형구가 나타납니다. 이것은 아라한과를 얻은 분들이 선언하는 정형구로 도처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울러 초기경의 여러 곳에서 법우님과 같은 관심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관심은 아래에서 인용하고 있는 경들에서처럼 여래의 사후에 대한 네 가지 관심이나 10사무기로 대표되는 10가지 질문으로 정리되어 나타납니다. 아래에 인용하는 두 개의 경들은 상윳따 니까야 <설명하지 않음[無記] 상윳따(Avyaakata-sam*yutta, S44)>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세 번째 것은 맛지마 니까야에 나타나는 경입니다. 이들 세 경 뿐만 아니라 초기경의 여러 군데에서 특히 외도들이 아래에 올린 이런 질문을 많이 하였고 여기에 대한 부처님과 제자들의 대답은 한결같게 아래에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저도 아래의 세 개의 경들을 인용하는 것으로 답변에 대신합니다. 


조건 지워진 유위의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유위의 세상에 관한 것뿐일 것입니다. 그 유위의 세상을 부처님께서는 오온이나 12처나 12연기 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유위의 세상에 대해서는 부처님께서는 초기경의 도처에서 한결같이 무상/고/무아로 말씀하셨고 이들에 대한 염오/이욕/해탈(소멸)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면 열반을 실현하고 법우님이 적어주신 <태어남은 다했다 ...>는 구경의 지혜 혹은 해탈의 지혜를 선언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건 지워진 유위로써 조건이 소멸된 무위인 열반이나 소멸이나 해탈이 무엇이라고 적극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래의 경들에서처럼 거부하셨습니다. 어떤 말을 해도 그것은 조건이 해소되어버린 무위를 조건 지워진 유위로 끌어들이는 것 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윳따 니까야의 <무위 상윳따(S43)>에는 32가지 정도로 무위 혹은 열반의 동의어를 나열하고 있고 이 무위를 실현하는 길로 37조도품이나 팔정도 등을 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무위 혹은 열반이 무엇인지를 묘사하지 않습니다. 이 32가지를 통해서 무위 혹은 열반은 모두 <탐욕의 소멸, 성냄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로 표현되고 있을 뿐 더 이상 다른 설명은 없습니다. 다른 몇몇 경에서도 열반은 탐진치의 소멸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만일 무위 혹은 열반을 무엇이라고 설명하면 그것은 조건이 해소되어버린 무위를 조건 지워진 유위로 끌어들이는 것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할 말은 많지만 그 많은 말은 또 다시 조건이 되고 유위가 되어서 수많은 말꼬리를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에 저도 더 이상의 묘사는 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열반 혹은 무위는 초기경의 여러 곳에서 사량분별 없음(nippapan$ca)이라고 언급되고 있습니다. 사량분별(papan$ca)는 유위 제법에 대해서 적용되지 열반에는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초기경의 도처에서 나타나듯이 열반은 <탐욕의 소멸, 성냄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이고 부처님의 초기경전의 가르침을 신뢰하고 따르는 불자들은 이러한 경지를 체득하기 위해서 팔정도를 위시한 수행을 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할 것입니다. 


불자라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평생을 걸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사유해야한다고 봅니다. 이것은 대승이냐 소승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초기경의 도처에 나타나는 우리의 스승이요 불교의 출발점인 부처님과 직계제자들의 단호한 답변이기 때문입니다. 아래 말룽꺄뿟따 경 말미에서 세존께서는 <내가 설명하지 않은 것은 설명하지 않은 대로 호지하라. 내가 설명한 것은 설명한 대로 호지하라.>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내가 역사적으로 실존하셨던 부처님을 나의 스승으로 확신하고 있다면 부처님이 취하신 이러한 단호한 입장도 가슴을 열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아래의 마지막에 인용하는 말룽꺄 뿟따 경(M63)에서 세존께서는 이러한 10사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고 대신에 사성제를 말씀하신다고 단호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떤 형태의 불교를 받아들이든지 간에 이러한 불교의 근본 입장에 먼저 투철한 것이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어떻게 받아들이시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법우님의 마음입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왈가왈부할 성질의 것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에서 후대에 대승의 여러 가지 학설이 생겨왔다고 봅니다만 초기불교의 입장에서 보자면 부처님과 직계제자들의 무기에 대한 분명한 답변에는 다 미치지 못할 뿐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물론 저는 대승의 여러 견해도 시대상황과 대중들의 관심에 부합하기 위한 진지한 고뇌와 사유 끝에 나온 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너무 이런 쪽으로 강조하다보니 역사적으로 인도에서는 불교가 힌두교로 스며드는 조건을 만들어버린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법우님께서는 불교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하고 계시고 나름대로 깊은 이해를 하고 계시는 듯합니다. 이 기회에 초기불교의 이러한 입각처를 두고 더 괴로워하시고? 좀 더 분명하게 받아들이시면서 초기경전들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보시고 나아가서 아비담마도 공부하시면 금상첨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질문 감사드리며 이 정도로 답변에 대신합니다. 


늘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각묵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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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마 경(S44:1) Kemaa-sutta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케마 비구니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케마 비구니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케마 비구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스님,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스님,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스님,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스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라고 물으면 스님은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 <스님,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물으면 스님은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세존께서는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까?" 


"대왕이여, 그렇다면 이제 제가 그대에게 다시 물어 보리니 그대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설명해보십시오. 대왕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에게 어떤 회계사나 경리인이나 셈하는 자가 있는데 그가 강가 강의 모래를 헤아려서 <강가 강에는 이만큼의 모래알이 있다.>라거나 <강가 강에는 이만큼의 수백의 모래알이 있다.>라거나 <강가 강에는 이만큼의 수천의 모래알이 있다.>라거나 <강가 강에는 이만큼의 수십만의 모래알이 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스님." "대왕이여, 그렇다면 그대에게 어떤 회계사나 경리인이나 셈하는 자가 있는데 그가 큰 바다의 물을 헤아려서 <큰 바다에는 이만큼의 양에 해당하는 물 있다.>라거나 <큰 바다에는 이만큼의 수백에 해당하는 양의 물이 있다.>라거나 <큰 바다에는 이만큼의 수천에 해당하는 양의 물이 있다.>라거나 <큰 바다에는 이만큼의 수십만에 해당하는 양의 물이 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스님.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하면, 큰 바다는 너무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사람들이 물질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 느낌으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 인식으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 심리현상들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 알음알이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이런 분이 여래다.>라고] 드러낼 그런 알음알이를 여래께서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드셨고 멸절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대왕이여, 여래께서는 알음알이라는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하셨습니다. 여래께서는 마치 큰 바다처럼 너무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케마 비구니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케마 비구니에게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그후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으뜸가는 구문에 대해 참으로 스승과 제자의 뜻과 뜻이, 문장과 문장이 합치하고 합일하고 모순되지 않으십니다. 세존이시여, 한번은 제가 케마 비구니에게 다가가서 이 뜻에 대해 물었습니다. 케마 비구니도 세존께서 설명하신 것처럼 이런 단어와 이런 문장으로 그 뜻을 설명하였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으뜸가는 구문에 대해 참으로 스승과 제자의 뜻과 뜻이, 문장과 문장이 합치하고 합일하고 모순되지 않으십니다."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케마 비구니(Khemaa bhikkhunii)는 앙굿따라 니까야 하나의 모음(A1:14:5-2)에서 "큰 통찰지를 가진(mahaa-pan$n$aa) 비구니들 가운데서 으뜸(지혜제일)"이라고 불려진다. 케마 장로니는 맛다(Madda) 지방에 있는 사갈라(Saagala)의 왕족 출신이다. 그녀는 뛰어난 외모를 가졌으며 빔비사라 왕의 첫째 왕비였다.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Vel*uvana)에 머무실 때 세존께서는 형색의 덧없음을 말씀하신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외모도 덧없다고 말씀하실 거라 여기고 세존을 뵈러 가지 않았다고 한다. 빔비사라 왕의 설득으로 세존을 뵈러갔는데 세존은 그녀의 면전에 그녀보다 훨씬 아름다운 천상의 요정을 만들어서 그 요정이 점점 늙어서 형편없이 되어 쓰러져 죽는 모습을 보이게 하셨다. 그것을 본 그녀는 낙담에 빠졌고 부처님께서는 그녀에게 형색의 덧없음을 설하셨다. 세존의 설법을 듣고 그녀는 아라한이 되었다고 하며 왕의 허락을 받아서 출가하였다고 한다.(AA.i.34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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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갈라나 경(S44:7) Moggalaana-sutta 


그때 왓차곳따 유행승이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왓차곳따 유행승은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목갈라나 존자여, 세상은 영원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세상은 유한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세상은 유한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세상은 무한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세상은 무한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392] 생명과 몸은 같은 것입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생명과 몸은 다른 것입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들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까? 목갈라나 존자여, 그러나 사문 고따마께 이런 질문을 하면 그분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사문 고따마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습니까?" 


"왓차여, 외도 유행승들은 눈을 두고 … 코를 두고 … 혀를 두고 … 몸을 두고 … 마음[의]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합니다. 그래서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들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왓차여, 여래 아라한 정등각자께서는 눈을 두고 … 귀를 두고 … 코를 두고 … 혀를 두고 … 몸을 두고 … 마음[의]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합니다. 그래서 여래께 이런 질문을 하면 그분께서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한편 왓차곳따 유행승은 왜 이러한 10가지 질문이 생기는 가를 왓차곳따 상윳따(S33:1~55)의 55개 경들에서 세존께 질문드리고 세존께서는 <오온>을 여러 측면에서 알고 꿰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답변하고 계신다.>> 


그때 왓차곳따 유행승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세존께 다가갔다. … 


<세존께서도 목갈라나 존자와 같이 말씀하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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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역 전유경(독화살 비유경)에 해당하는 짧은 말룽꺄뿟따 경(M63)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으며 유명한 다음의 독화살 비유가 나타납니다.>> 


"말룽꺄뿟따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독이 가득 묻은 화살에 맞았다하자. 그에게 친구와 동료들과 일가친척들이 화살에 맞은 것을 치료하기 위해서 의사를 데려올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에게 화살을 쏜 사람이 끄샤뜨리야인지 바라문인지 와이샤인지 수드라인지 내가 그 사람을 알기 전에는 나는 이 화살을 뽑게 하지 않겠다.'라고.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에게 화살을 쏜 사람의 이름이 무엇이고 성이 무엇인지 내가 알기 전에는 나는 이 화살을 뽑게 하지 않겠다.'라고.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에게 화살을 쏜 사람이 큰지 작은지 중간인지 내가 알기 전에는 나는 이 화살을 뽑게 하지 않겠다.'라고.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에게 화살을 쏜 사람이 백인인지 흑인인지 황인종인지 내가 알기 전에는 나는 이 화살을 뽑게 하지 않겠다.'라고.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에게 화살을 쏜 사람이 어떤 마을이나 읍이나 도시에 사는지 내가 알기 전에는 나는 이 화살을 뽑게 하지 않겠다.'라고.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에게 화살을 쏜 그 활이 긴 활인지 석궁인지 내가 알기 전에는 나는 이 화살을 뽑게 하지 않겠다.'라고.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에게 화살을 쏜 그 활줄이 실인지 갈대인지 힘줄인지 마인지 나무껍질인지 내가 알기 전에는 나는 이 화살을 뽑게 하지 않겠다.'라고.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맞은 화살대가 야생인지 기른 것인지 내가 알기 전에는 나는 이 화살을 뽑게 하지 않겠다.'라고.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맞은 화살대에 묶여 있는 깃털이 독수리의 것인지 까마귀의 것인지 매의 것인지 공작의 것인지 황새의 것인지 내가 알기 전에는 나는 이 화살을 뽑게 하지 않겠다.' 라고.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맞은 화살대를 묶은 힘줄이 소의 것인지 물소의 것인지 사자의 것인지 원숭이의 것인지 내가 알기 전에는 나는 이 화살을 뽑게 하지 않겠다.'라고.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맞은 화살이 테를 두른 것인지 굽은 것인지 가시가 달린 것인지 송아지 이빨인지 협죽도인지 내가 알기 전에는 나는 이 화살을 뽑게 하지 않겠다.'라고. 말룽꺄뿟따여 그 사람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다. 


말룽꺄뿟따여, 그와 같이 누구든지 말하기를 '세존께서 내게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해 주시지 않는다면 나는 세존의 아래에서 청정범행을 닦지 않으리라.'라고 말한다면 여래는 그것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러는 동안 그 사람은 죽게 될 것이다." 


"말룽꺄뿟따여,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있으면 청정범행을 닦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것은 옳지 않다. … 말룽꺄뿟따여,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있으면 청정범행을 닦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것도 역시 옳지 않다.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기도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있거나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있거나 간에 태어남은 있고 늙음은 있고 죽음도 있고 근심·탄식·괴로움·슬픔·절망도 있다. 말룽꺄뿟따여 나는 지금 여기서 바로 이들의 멸절을 알게 한다." 


"말룽꺄뿟따여, 그러므로 내가 설명하지 않은 것은 설명하지 않은 대로 호지하라. 내가 설명한 것은 설명한 대로 호지하라. 말룽꺄뿟따여, 그러면 나는 무엇을 설명하지 않았는가? 말룽꺄뿟따여, 세상은 영원하다라고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말룽꺄뿟따여, 그러면 왜 나는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는가? 말룽꺄뿟따여, 이것은 참으로 이익을 주지 못하고, 청정범행의 시작에도 미치지 못하며, [속된 것들을] 염오하도록, 욕망을 빛바래도록, 그치도록, 고요에로, 초범지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끌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룽꺄뿟따여, 그러면 나는 무엇을 설명하였는가? 말룽꺄뿟따여,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나는 설명하였다.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나는 설명하였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설명하였 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나는 설명하였다." 


"말룽꺄뿟따여, 그러면 왜 나는 이것을 설명하였는가? 말룽꺄뿟따여, 이것은 참으로 이익을 주고, 청정범행의 시작이며, [속된 것들을] 염오하도록, 탐욕을 빛바래도록, 그치도록, 고요에로, 초범지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말룽꺄뿟따여, 그러므로 내가 설명하지 않은 것은 설명하지 않은 대로 호지하라. 내가 설명한 것은 설명한 대로 호지하라."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말룽꺄뿟따 존자는 마음이 흡족해져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