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야단법석

윌폴라 라훌라 스님의 글

실론섬 2016. 4. 6. 16:32

일반적으로 범어에서 아트만이라고 불리는 영혼이나 자아라는 것은 인간 속에 있는 영원하고 지속적이고 절대적인 실체21)이며 무상한 현상세계의 배후에 있는 불변의 본질을 나타낸다. 


어떤 종교의 견해에 따르면, 각 개인은 신이 부여한 개별적인 영혼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죽은 후에 영원히 지옥이나 천국에 살게 되며 그의 운명은 창조주인 신에게 달려있다고 한다. 또 다른 견해에 따르면 영혼은 많은 윤회를 거쳐서야 비로소 완전히 깨끗해져서 마침내 창조주인 신이나 브라흐만, 우주적 자아 또는 아트만과 결합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한 관념을 불교에서는 극단적 견해인 영원주의(常見)라고 한다. 


불교는 영혼이나 자아라는 관념을 부정한다는 측면에서 사상사적으로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자아라는 관념은 실재와 일치하지 않는 환상이고 거짓된 신념이고 그것은 '나의 것' '나' '이기적인 욕심' '갈애' '집착' '증오' '악의' '속임수' '교만' '이기주의' '더러움' '오염' 의 문제를 낳게 되는 해로운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해로운 견해로 인해서 세상의 모든 악이 생겨난다. 


인간 내부에 심리적으로 깊이 뿌리박힌 두 가지의 관념, 곧 자기보호와 자기보존이라는 것이 있다. 자기보호를 위해서 인간은 신을 창조하고 어린아이가 부모에 의존하듯이 그에게 자기의 보호와 안전과 안녕을 위탁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자기보존을 위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불멸의 영혼인 아트만이라는 사상을 만들어냈다. 무지와 나약함과 두려움과 욕망 속에서 인간은 자기를 위로할 그러한 두가지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인간은 그 두가지에 깊이 빠져드는 것이다. 


붓다의 가르침은 이러한 무지와 나약함과 두려움과 욕망 등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제거하고 파괴하고 그 뿌리를 잘라서 인간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데 있다. 붓다에 의하면 신이나 영혼이라는 우리의 관념은 환상이며 공허한 것이다. 이론적으로 고도로 발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복잡한 형이상학이나 철학의 옷을 입고 있는 극도의 미묘한 정신적 투영에 불과하다. 이러한 관념은 인간 속에 너무 깊게 뿌리박혀 있고 소중하게 여겨지고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그것과 어긋나는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거나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붓다는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사실상 그는 자신의 가르침이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을 거스르는 역류문(逆流門)이라고 말했다. 그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은 후에 4주째 되는 날 보리수 아래서 명상에 잠겨 이와 같이 생각했다. 


[붓다] "나는 깊고 보기 어렵고 깨치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고 심오하고 섬세해서 지혜로운 자만이 알 수 있는 진리를 성취했다... 갈애에 물들고 어둠에 가리운 사람들은 그 흐름을 거슬러 미묘하고 깊고 섬세한 진리를 보지 못한다." 


이러한 명상과 함께 붓다는 자기가 깨달은 진리를 세상에 설명하려한다면 헛된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나서 그는 세계를 연못에 비유하며 명상에 잠겼다. 연못에는 아직 물밑에 있는 연꽃도 있고, 수면 위에 거의 올라와 있는 연꽃도 있으며, 물위로 올라와서 수면에 닿지 않는 연꽃도 있다. 마찬가지로 이 세계의 인간은 수행정도에 따라 수준의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붓다는 가르침을 펴기로 했다. 


무아의 교리는 다섯가지 존재의 다발(五蘊)의 분석이나 연기법의 관찰을 통해서 필연적으로 또는 자연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앞에서 네가지 거룩한 진리 가운데 괴로움의 진리에 관해 논의하면서 존재 또는 개체라고 부르는 것은 다섯가지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것을 분석해보면 "나" "자아" 또는 "아트만" 이나 "어떤 불변의 본질" 은 없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것이 분석적인 방법이다. 


뿐만 아니라 종합적인 연기법의 관찰을 통해서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결론에 따르면 세상에 아무것도 절대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조건지워지고 상대적이고 상호의존적이다. 무아의 가르침에 들어가기 전에 연기의 법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원리는 사행시로 간단하게 표시되어 있다. 


[붓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으며 (imasmim sati idam hoti)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난다 (imassuppada idam uppajjati)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게 되며 (imasmim asati idam na hoti)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이 소멸한다 (imassa nirodha idam nirujjhati)" 


여기서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은 '이것' 이라고 하는 것은 실체적이며 자기동일적인 '이것' 이 아니라 인과적으로 얽혀 있는 '사건' 을 말한다. 그래서 [잡아함경]에서는 '이것' 을 시사(是事)로 번역하고 있는 곳이 발견된다.


[구나발다라] "이러한 사건이 있으므로 이러한 사건이 있다. 이러한 사건이 일어남으로 이러한 사건이 생겨난다.(是事有故是事有 是事起故是事生)" 


이러한 구나발다라(求那跋陀羅)의 해석은 '이것' 이 어떤 실체라기보다는 사태나 사건임을 통찰한 예리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러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러셀] "세상의 모든 것은 '사건들' 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의 '사건' 은 하나의 작은 시공적 한계를 차지하고 있는 어떤 것이다.... 사건들은 물체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처럼 불투과적인 것이 아니다. 반대로 시공적 모든 사건은 다른 사건들에 의해서 겹쳐진다." 


이 연기법의 일반적인 조건성의 원리에 관하여 가장 잘 번역한 것은 동진(東晉)의 승가제파(僧伽提婆)가 [중아함경]의 [설처경(說處經)]에서 한 번역이다. 


[승가제파] "만약 이것이 있으면 곧 저것이 있고, 만약 이것이 생겨나면 곧 저것이 생겨난다. 만약 이것이 없으면 곧 저것이 없으며, 만약 이것이 소멸하면 곧 저것이 소멸한다(若有此卽有彼 若生此卽生彼 若無此卽無彼 若滅此卽滅彼)" 


우리의 삶과 삶의 지속과 소멸에 관하여 우리는 조건성, 상대성, 상호의존성을 나타내는 십이연기의 법칙 속에서 상세히 설명할 수 있다. 무명(無明 1)을 조건으로 의도적인 행위와 업을 구성하는 형성(行 2)이 생겨난다.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識 3)이 생겨난다. 의식을 조건으로 정신물리적인 현상인 명색(名色 4)이 생겨난다.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가지의 감역(六入 5)이 생겨난다. 감역을 조건으로 감각적, 정신적 접촉(觸 6)이 이루어진다. 접촉을 조건으로 감수(受 7)가 생겨난다. 감수를 조건으로 갈애(愛 8)가 일어난다.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取 9)이 일어난다.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有 10)가 생겨난다.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生 11)이 생겨난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老死 12)가 생겨난다.


이것은 생명이 어떻게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가 하는 실상을 나타내고 있다. 반대로 이러한 과정을 역관(逆觀)하면 모든 것들은 사라져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명이 사라지면 의도적인 행위나 업이 사라지고 마침내 태어남이 없으면 늙고 죽음과 온갖 괴로움이 사라진다. 


이러한 각 연기의 고리들은 연기되는 것(緣生,paticcasamuppanna)일 뿐만 아니라 연기하는 것(緣起, paticcasamuppada)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 상대적이고 상호의존적이고 서로 연관되어 있다. 어떠한 것도 독립적22)이나 절대적일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제일원인도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불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연기의 법칙은 하나의 원환이지 사슬이 아니다. 


자유의지의 문제는 서구의 사상과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불교철학에서 문제시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상대적, 조건적,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홀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다른 사유와 마찬가지로 의지도 조건지어져 있다. 자유 자체도 조건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다. 모든 것은 상호의존적이고 상대적이기 때문에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절대적 자유는 있을 수 없다. 


자유의지란 조건에서 독립된 의지 또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과는 무관한 의지를 말한다. 모든 존재가 조건적이고 상대적이고 인과의 법칙에 제약되어 있는데, 자유의지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인과법칙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는가? 우리는 자유의지의 이념이 기본적으로 신, 자아, 정의, 은총, 처벌 등의 개념과 연관되어 있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의지란 것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조건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