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 57. 개의 습성 경(견서계경. 犬誓戒經.kukkuravatikasuttaṃ)
7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꼴리야에서 할릿다와사나라는 꼴리야의 성읍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소처럼 사는 습성을 행하는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와 개처럼 사는 습성을 행하는 나체 수행자 세니야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소처럼 사는 습성을 실천하는 꼴리야의 후손 뿐나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개처럼 사는 습성을 실천하는 나체 수행자 세니야는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개처럼 웅크리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소 처럼 사는 습성을 행하는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개처럼 사는 습성을 실천하는 이 나체 수행자 세니야는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것을 실천합니다. 땅바닥에 던져진 것만 먹습니다. 그는 개처럼 사는 고행을 오랜 세월 철저하게(온전하게) 실천했습니다. 그의 갈 곳[행처,行處]은 어디이고, 내세의 태어남은 어디입니까?"
"되었습니다, 뿐나여. 그것을 멈추십시오. 나에게 그것을 묻지 마십시오."
두 번째에도 소 처럼 사는 습성을 행하는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는 ··· 세 번째에도 소처럼 사는 습성을 행하는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개처럼 사는 습성을 실천하는 이 나체 수행자 세니야는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것을 실천합니다. 땅바닥에 던져진 것만 먹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 개처럼 사는 습성을 철저하게 실천했습니다. 그의 갈 곳은 어디이고, 내세의 태어남은 어디입니까?"라고.
*꼴리야(Koliya)는 로히니(Rohini)강을 사이에 두고 사꺄(Sakya, 석가족)와 인접한 공화국 체제를 유지한 나라였다. 꼴리야의 선조가 사꺄의 여인과 결혼서 꼴리야 나라를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사꺄와는 형제국이나 다름없는 사이였다고 한다. 라마가마(Ramagama)와 데와다하(Devadaha)가 주요 도시였으며 그 외에도 꼴리야의 여러 곳이 초기경전에 언급되고 있을 정도로 세존과 제자들과도 인연이 많은 나라이다.(DPPN)
「디가 니까야」 제2권 「대반열반 경」(D16)에 의하면 라마가마의 꼴리야들도 세존의 사리를 가져가서 사리탑을 세웠다고 한다. 이처럼 라마가마(Ramagama, D16)와 할릿다와사나(Haliddavasana, 본경) 외에도 웃따라(Uttara, S42.13), 삿자넬라(Sajjanela, A4.57), 사뿌가(Sapuga, A4.194), 깍까라빳따(Kakkara-patta, A8.54) 등의 꼴리야의 지명이 초기경전에 나타나고 있다.
한편 초기경전에서 데와다하(Devadaha)는 사꺄의 도시로 언급되고 있다.(「상윳따 니까야」 제3권 「데하다하 경」(S22.2)) 데와다하는 세존의 어머니인 마야 왕비와 이모이자 계모인 빠자빠띠 고따미가 태어난 곳이다. 그런데 이들이 꼴리야 족 출신이라고 하는 것을 볼 때 데와다하는 꼴리야의 도시였지만 후에 사꺄로 편인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한편 「앙굿따라 니까야」 제2권 「사뿌기야 경」(A4.194)등에서는 꼴리야 사람들을 '호랑이가 다니던 길에 사는 사람들'이라 부르고 있다. 이것은 Vyagghapajja(웨약가빳자)를 풀어서 옮긴 말이다. 여기서 vyaggha는 호랑이를 뜻하고 pajja는 pada(길)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 웨약가빳자는 꼴리야의 수도인 꼴라나가라(Kolanagara)의 다른 이름이면서 동시에 웨약가빳자 즉 꼴라나가라에 사는 사람들을 뜻하기도 한다.
*'소처럼 사는 습성을 행하는 자(go-vatika)'란 소처럼 머리에는 두 뿔을 달고 뒤에는 꼬리를 달고 소들과 함께 풀을 먹는 것처럼 다니는 자를 말한다. '개처럼 사는 습성을 행하는 자(kukkura-vatika)'란 개의 행동을 모두 행하는 자를 말하는데 이 두 사람은 어릴 때 흙장난을 하고 놀던 동무와도 같은 절친한 친구였다. (MA.ii.100)
79. "뿐나여, 나는 '되었습니다, 뿐나여. 그것을 멈추십시오. 나에게 그것을 묻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지만, 그대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설득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나는 그것을 설명하겠습니다. 여기, 뿐나여, 어떤 사람이 완전하게 끊임없이(중단없이) 개처럼 사는 습성을 닦고, 완전하게 끊임없이 개의 계행(戒行)을 닦고, 완전하게 끊임없이 개의 마음을 닦고, 완전하게 끊임없이 개의 행동을 닦습니다. 그는 완전하게 끊임없이 개처럼 사는 습성을 닦고, 완전하게 끊임없이 개의 계행을 닦고, 완전하게 끊임없이 개의 마음을 닦고, 완전하게 끊임없이 개의 행동을 닦았기 때문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개들의 일원으로 태어납니다. 만약 그가 '나는 이런 계나 관행이나 고행이나 범행으로 신이 되거나 다른 낮은 신이 될 것이다.'라는 견해를 가지면, 그것은 삿된 견해입니다. 뿐나여, 삿된 견해를 가진 자에게 지옥이나 축생의 두 군데 갈 곳 가운데 어떤 갈 곳을 나는 말합니다. 이렇게, 뿐나여, 개처럼 사는 습성이 성취되면 개들의 일원으로 이끌리고, 성취되지 않으면 지옥으로 이끌립니다."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개처럼 사는 습성을 행하는 나체 수행자 세니야는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소처럼 사는 습성을 실천하는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뿐나여, 나는 '되었습니다, 뿐나여. 그것을 멈추십시오. 나에게 그것을 묻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지만 그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세존이시여, 오랜 세월 개처럼 사는 습성을 철저하게 실천한 것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소처럼 사는 습성을 실천하는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입니다. 그는 오랜 세월 소처럼 사는 습성을 철저하게 실천했습니다. 그의 갈 곳은 어디이고, 내세의 태어남은 어디입니까?"라고.
"되었습니다, 세니야여. 그것을 멈추십시오. 나에게 그것을 묻지 마십시오."
두번째에도 개처럼 사는 습성을 실천하는 나체 수행자 세니야는 ··· 세번째도 개처럼 사는 습성을 실천하는 나체 수행자 세니야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소처럼 사는 습성을 실천하는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입니다. 그는 오랜 세월 소처럼 사는 습성을 철저하게 실천했습니다. 그의 갈 곳은 어디이고, 내세의 태어남은 어디입니까?"라고.
80. "세니야여, 나는 '되었습니다, 세니야여. 그것을 멈추십시오. 나에게 그것을 묻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지만 그대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는 그것을 설명하겠습니다. 여기, 세니야여, 어떤 사람이 완전하게 끊임없이 소처럼 사는 습성을 닦고, 완전하게 끊임없이 소의 계행을 닦고, 완전하게 끊임없이 소의 마음을 닦고, 완전하게 끊임없이 소의 행동을 닦습니다. 그는 완전하게 끊임없이 소처럼 사는 습성을 닦고, 완전하게 끊임없이 소의 계행을 닦고, 완전하게 끊임없이 소의 마음을 닦고, 완전하게 끊임없이 소의 행동을 닦았기 때문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소들의 일원으로 태어납니다. 만약 그가 '나는 이런 계나 관행이나 고행이나 범행으로 신이 되거나 다른 낮은 신이 될 것이다.'라는 견해를 가지면, 그것은 삿된 견해입니다. 세니야여, 삿된 견해를 가진 자에게 지옥이나 축생의 두 군데 갈 곳 가운데 어떤 갈 곳을 나는 말합니다. 이렇게, 세니야여, 소처럼 사는 습성이 성취되면 그는 소들의 일원으로 이끌리고, 성취되지 않으면 지옥으로 이끌립니다."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소처럼 사는 습성을 실천하는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는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개처럼 사는 습성을 실천하는 나체 수행자 세니야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니야여, 나는 '되었습니다, 세니야여. 그것을 멈추십시오. 나에게 그것을 묻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지만 그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세존이시여, 오랜 세월 소처럼 사는 습성을 철저하게 실천한 것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에 대해 '세존께서는 나도 소처럼 사는 이 습성을 버릴 수 있고, 개처럼 사는 습성을 실천하는 나체 수행자 세니야도 개처럼 사는 습성을 버릴 수 있는 법을 설하는 것이 가능하다.'라는 분명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뿐나여, 듣고 잘 사고하십시오. 나는 말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소처럼 사는 습성을 실천하는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81. "뿐나여, 내가 스스로 완전한 지혜로 안 뒤에 실현하여 선언한 네 가지 업들이 있습니다. 어떤 네 가지입니까?
뿐나여,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경험하게 하는) 나쁜 업이 있습니다. 뿐나여,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좋은 업이 있습니다. 뿐나여, 괴롭고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나쁘고 좋은 업이 있습니다. 뿐나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과보를 가져오지 않고, 업의 소멸로 이끄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업이 있습니다. 이것이, 뿐나여, 내가 스스로 완전한 지혜로 안 뒤에 실현하여 선언한 네 가지 업들입니다.
*"왜 이런 가르침을 시작하셨는가? 이 가르침은 확실하게 업이 되는 행위(ekacca-kamma-kiriya)를 설한 것이다. 이 네 가지 업을 설할 때 이들의 업이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업을 설하면 그들은 알아들은 뒤, 한 사람은 삼보에 귀의할 것이고, 한 사람은 출가하여 아라한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아시고 이 가르침을 설하셨다."(MA.ii.103)
*여기서 '어두운 업(kamma kanha, 나쁜 업)'는 열 가지 불선업도의 업(dasakusala-kamma-patha-kamma)으로 검은(kalaka, 나쁜) 업을 말하고, '어두운 과보(kanha-vipaka, 괴로운 과보)'는 악도(apaya)에 태어나기 때문에 검은 과보(괴로운 과보)라 한다.
'밝은 업(kamma sukka, 좋은 업)'은 열 가지 선업도의 업(dasa-kusala-kammapatha-kamma)으로 흰(pandara, 좋은) 업을 말하고, '밝은 과보(sukka-vipaka, 즐거운 과보)'는 천산(sagga)에 태어나기 때문에 흰 과보(즐거운 과보)라 한다.
'어둡고 밝은 업(kamma kanha-sukka)'은 섞인 업(vomissaka-kamma)을 말하고, '어둡고 밝은 과보(kanha-sukka-vipaka)'는 행복하고 괴로운 과보(sukha-dukkha-vipaka)를 말한다. 섞인 업을 지은 뒤 불선업에 의해 축생계 가운데 좋은 말 등으로 태어난 자도 선업에 의해 삶의 과정에서는 행복을 느낀다. 선업에 의해 왕의 가문에 태어난 자도 불선업에 의해 삶의 과정에서는 고통을 느낀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업(kamma akanha asukka)'이란 업을 소멸하는 네 가지 도의 지혜(catu-magga-cetana-kamma)를 뜻한다. 만약 그 업이 어두운 것이라면 어두운 과보를 가져올 것이고 밝은 것이라면 밝은 과보를 가져올 것이지만, 두 가지 과보 모두 가져오지 않기 때문에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MA.ii.103)
그러면 뿐나여, 무엇이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나쁜 업입니까?
여기, 뿐나여, 어떤 자는 악의가 있는 몸의 의도적 행위[身行]를 하고, 악의가 있는 말의 의도적 행위[口行]을 하고, 악의가 있는 마음의 의도적 행위[意行]을 합니다. 그는 악의가 있는 몸의 의도적 행위를 하고, 악의가 있는 말의 의도적 행위를 하고, 악의가 있는 마음의 의도적 행위를 한 뒤에 고통스러운 세상에 태어납니다. 고통스러운 세상에 태어나 있는 그에게 고통스러운 감각접촉(촉.觸)들이 닿습니다. 고통스러운 감각접촉들에 닿아 있는 그는 오로지 괴로움뿐인 고통스러운 느낌을 경험합니다. 예를 들면, 지옥에 태어난 중생들입니다. 이렇게 뿐나여, 존재를 원인으로 존재에게 태어남이 있습니다. 행위하는 것에 의해 태어납니다. 이렇게 태어난 자에게 감각접촉들이 닿습니다. 뿐나여, 이렇게도 나는 '중생들은 업의 상속자들이다(중생들은 업을 이은 자들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뿐나여,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나쁜 업입니다.
*"'존재를 원인으로 존재에게 태어남이 있다(bhuta bhutassa upapatti hoti)'라는 것은 평소에 행한 업에 기인하여 중생의 태어남이 있다. 즉 중생이 행한 그 업에 의해서 그 업의 동질성에 따라 그들의 태어남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존재로 옮긴 bhuta는 원인의 뜻으로 사용된 탈격(nissakka-vacana)이다."(MA.ii.104)
그러면 뿐나여, 무엇이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좋은 업입니까?
여기, 뿐나여, 여기 어떤 자는 악의 없는 몸의 의도적 행위를 하고, 악의 없는 말의 의도적 행위을 하고, 악의 없는 마음의 의도적 행위을 합니다. 그는 악의 없는 몸의 의도적 행위를 하고, 악의 없는 말의 의도적 행위를 하고, 악의 없는 마음의 의도적 행위를 한 뒤에 고통없는 세상에 태어납니다.
고통 없는 세상에 태어나 있는 그에게 고통 없는 감각접촉들 닿습니다. 고통 없는 감각접촉들에 닿아 있는 그에게 오로지 즐거움인 고통 없는 느낌을 경험합니다. 예를 들면 변정천(遍淨天)에 태어난 줄생들입니다(신들입니다). 이렇게 뿐나여, 존재를 원인으로 존재에게 태어남이 있습니다. 행위하는 것에 의해 태어납니다. 이렇게 태어난 자에게 감각접촉들이 닿습니다. 뿐나여, 이렇게도 나는 '중생들은 업의 상속자들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뿐나여,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좋은 업입니다.
그러면 뿐나여, 무엇이 괴롭고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나쁘고 좋은 업입니까?
여기, 뿐나여, 어떤 자는 악의가 있는 몸의 의도적 행위도 하고, 악의가 없는 몸의 의도적 행위도 합니다. 악의가 있는 말의 의도적 행위도 하고, 악의가 없는 말의 의도적 행위도 합니다. 악의가 있는 마음의 의도적 행위도 하고, 악의가 없는 마음의 행위도 합니다. 그는 악의가 있기도 악의가 없기도 한 몸의 의도적 행위를 하고, 악의가 있기도 악의가 없기도 한 말의 의도적 행위를 하고, 악의가 있기도 악의가 없기도 한 마음의 의도적 행위을 한 뒤에 고통이 있기도 고통이 없기도 한 세상에 태어납니다. 고통이 있기도 고통이 없기도 한 세상에 태어나 있는 그에게 고통이 있기도 고통이 없기도 한 감각접촉들이 닿습니다. 고통이 있기도 고통이 없기도 한 감각접촉들에 닿아 있는 그는 고통이 있기도 고통이 없기도 한 느낌을 경험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인간들과 신들 그리고 어떤 악처에 떨어진 자들입니다. 이렇게 뿐나여, 존재를 원인으로 존재에게 태어남이 있습니다. 행위하는 것에 의해 태어납니다. 이렇게 태어난 자에게 감각접촉들 닿습니다. 뿐나여, 이렇게도 나는 '중생들은 업의 상속자들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뿐나여, 괴롭고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나쁘고 좋은 업입니다.
*"여기서 '일부의 신들'이란 욕계의 신들을 말한다. 그들은 위력이 더 강한 신들을 보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윗옷을 길게 늘어뜨리고 합장하여 손을 들어 올리는 등의 행동을 하기 때문에 때로는 괴로움이 생기기도 하며 천상의 복락을 누리기 때문에 때로는 행복하기도 하다."(AA.iii.213)
*"여기서 '일부의 악처에 떨어진 자들'이란 천궁의 아귀들(vemanika-peta)을 말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어떤 때는 즐거움을 느끼고, 어떤 때는 괴로움을 느낀다. 용과 가루다와 코끼리와 말 등은 인간들처럼 즐거움과 괴로움이 섞여있다."(AA.iii.213)
그러면 뿐나여, 무엇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과보를 가져오지 않고, 업의 소멸로 이끄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업입니까?
거기서, 뿐나여, 괴로운 과보를 가겨오는 나쁜 업을 버리기 위한 어떤 의도가 있고,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좋은 업을 버리기 위한 어떤 의도가 있고, 괴롭고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나쁘고 좋은 업을 버리기 위한 어떤 의도가 있다. 이것이, 뿐나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과보를 가져오고, 업의 소멸로 이끄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업입니다. 뿐나여, 내가 스스로 완전한 지혜로 안 뒤에 실현하여 선언한 이런 네 가지 업들이 있습니다."
82.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소처럼 사는 습성을 실천하는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불가사의 합니다.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또는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합니다."라고.
그러자 개처럼 사는 습성을 실천하는 나체 수행자 세니야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불가사의 합니다.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기를 원하고 구족계를 받기를 원합니다."라고.
"세니야여, 전에 이교도였던 자가 이 법과 율에서 출가하기를 원하고 구족계를 받기를 원하면 그는 넉 달의 수습기간(심사기간)을 가져야한다. 넉 달이 지나면 확고한 마음을 가진 비구들이 출가를 허락하고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받게 한다. 그러나 여기에 개인마다 차이가 있음을 나는 인정한다."
"세존이시여, 만일 전에 이교도였던 자가 이 법과 율에 출가하기를 원하고 구족계를 받기를 원할 때 넉 달의 수습기간을 가져야하고, 넉 달이 지나면 확고한 마음을 가진 비구들이 출가를 허락하고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받게 한다면, 저는 4년의 수습기간을 가지겠습니다. 4년이 지나고 확고한 마음을 가진 비구들이 출가하게 하여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주게 하십시오."
개처럼 사는 습성을 실천하는 나체 수행자 세니야는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홀로 외딴 곳에서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머문 세니야 존자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으로부터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목적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 범행은 성취 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알았다. 세니야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개의 습성 경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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