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N 60. 흠 없음 경(apaṇṇakasuttaṃ)

실론섬 2016. 4. 20. 14:59

MN 60. 흠 없음 경(apaṇṇakasuttaṃ)

 

9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대중과 함께 꼬살라를 유행하시다가 살라라는 꼬살라 바라문 마을에 도착하셨다. 살라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은 들었다.

 

'존자들이여,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꼬살라에서 유행하고 있는, 사꺄의 후예이고, 사까 가문에서 출가한 사문 고따마가 살라에 도착했습니다. 참으로 세존이신 그분 고따마 존자께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퍼져있습니다.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그는 이 세간의 모든 중생들, 즉 마라들, 범천들, 축생들, 사문들, 바라문들, 천신및 인간들에게,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추신 것을 널리 알리고 선언합니다. 그는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가르침을 설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참으로 그러한 아라한을 뵙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라고.

 

그러자 살라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어떤 사람들은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주고 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께 합장하여 인사를 드리고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의 앞에서 이름과 성을 말한 뒤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한 곁에 앉았다. 

 

93. 한 곁에 앉은 살라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누구든지 그에 대한 조건의 선택으로 믿음이 얻어진 마음에 드는 스승이 있습니까(적절한 이유로 믿음이 가는 그런 마음에 드는 스승이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저희들에게는 그에 대한 조건의 선택으로 믿음이 얻어진 마음에 드는 스승이 없습니다."

"장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마음에 드는 스승을 얻지 못하였다면 이 흠 없는 법을 받아들인 뒤 실천해야 합니다. 장자들이여, 참으로 흠 없는 법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그대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장자들이여, 무엇이 흠 없는 법입니까?

 

*'흠 없는 법'은 apannaka-dhamma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apannaka를 '모순되지 않음(aviruddha)', '애매모호하지 않음(advejjhagami)', '확정적임(ekamsa-gahika)'으로 설명하고 있다.(MA.iii.116)

 

94. 장자들이여,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보시란 없다. 제물이 없다. 공양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없고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과 바라문이 이 세상에는 없다.'라고. 
장자들이여,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정반대의 주장을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보시도 있다. 제물도 있다. 공양도 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있고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다.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화생하는 중생도 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과 바라문이 이 세상에는 있다.'라고.

장자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들 사문․바라문들은 서로간에 정반대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95. "장자들이여, 여기서 '보시란 없다. 제물이 없다. 공양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없고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과 바라문이 이 세상에는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게 이런 것이 기대됩니다. 즉 몸의 좋은 행위, 말의 좋은 행위, 마음의 좋은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한 법들을 버린 뒤에 몸의 나쁜 행위, 말의 나쁜 행위, 마음의 나쁜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하지 않은 들을 받아들여 실천할 것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선하지 않은 법들의 위험과 퇴보와 오염 그리고 선한 법들의 출리에 대한 이익과 청정한 측면을 보지 못합니다. 저 세상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세상은 없다.'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삿된 견해입니다저 세상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세상은 없다.'라고 사유합니다. 그것은 삿된 사유입니다. 저 세상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세상은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삿된 말입니다. 이것은 저 세상을 아는 아라한들에게 반대하는 행위입니다. 저 세상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세상은 없다.'라고 남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그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깁니다. 이렇게 이전의 좋은 계행은 버려지고, 나쁜 계행은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삿된 견해, 삿된 사유, 삿된 말, 성자에게 반대하는 행위,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삿된 견해를 조건으로 이런 다양한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이 생깁니다.    

 

장자들이여, 거기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만약 저 세상이 없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그 자신은 안전할 것이다. 만약 저 세상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그 사문․바라문들의 말이 사실이어서 저 세상은 없다고 인정해 보자. 그래도 이 사람은 지금․여기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다. '계를 경시하고, 삿된 견해를 가졌고, 원인 없음을 말하는 자이다.'라고. 만약 원인이 있다면 이렇게 이 사람에게 양쪽 모두에서 나쁜 결과가 있을 것이다. '지금‧여기에서는 지혜로운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이처럼 이 흠 없는 법을 균형을 잡지 못하고 실천하는 자는 유익한 경우를 배제하고 한쪽 부분만 채우고 서 있습니다. 

 

96. 장자들이여, 여기서 '보시도 있다. 제물도 있다. 봉헌도 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있고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다.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화생하는 중생도 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과 바라문이 이 세상에는 있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이런 것이 기대됩니다. 즉 몸의 나쁜 행위, 말의 나쁜 행위, 마음의 나쁜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하지 않은 법들을 버린 뒤에 몸의 좋은 행위, 말의 좋은 행위, 마음의 좋은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한 법을 받아들여 실천할 것입니다. 그 원인 무엇입니까?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선하지 않은 법들의 위험과 퇴보와 오염 그리고  선법들의 출리에 대한 이익과 청정한 측면을 봅니다. 저 세상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른 견해입니다. 저 세상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고 사유합니다. 그것은 바른 사유입니다. 저 세상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른 말입니다. 저 세상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저 세상을 아는 아라한들에게 반대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저 세상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입니다. 그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전의 나쁜 계행은 버려지고, 좋은 계행은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성자에게 반대하지 않는 행위,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이런 다양한 선한 법들이 생깁니다.  

 

장자들이여, 거기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만약 저 세상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말이 사실이어서 저 세상이  없다고 인정해 보자. 그래도 이 사람은 지금․여기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것이다. '계를 중시하고, 바른 견해를 가졌고, 있음을 말하는 사람이다.'라고. 만약 저 세상이 있다면 이렇게 이 사람에게 양쪽 모두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지금․여기에서는 지혜로운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이처럼 이 흠 없는 법을 잘 균형 잡고 실천하는 자는 유익하지 않는 경우를 배제하고, 양 쪽 부분을 채우고 서 있습니다.

  

97. "장자들이여,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행하는 자와 행하게 하는자, 절단하는 자와 절단하게 하는 자, 고문하는 자와 고문하게 하는 자, 슬퍼지는 자와 슬퍼하게 하는 자, 괴로운 자와 괴롭게 하는 자, 전율하는 자와 전율하게 하는 자, 생명을 죽이는 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자, 집을 부수는 자, 약탈하는 자, 도둑질하는 자, 노상강도질을 하는 자, 남의 아내를 범하는 자, 거짓을 말하는 자에게 악은 지어지지 않는다(죄악을 범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예리한 칼이 가장자리에 달린 바퀴로 이 땅의 생명을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으깨고 하나의 살점으로 만들지라도 그것 때문에 악이 없고, 악의 결과가 없다(어떤 죄악도 없고, 죄악의 과보도 없다). 강가 강의 남쪽 기슭에 가서 죽이거나 죽이게 하는 자, 절단하거나 절단하게 하는 자, 고문하거나 고문하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악이 없고, 악의 결과가 없다. 가 강의 북쪽 기슭에 가서 보시하거나 보시하게 하는 자, 제사를 지내거나 제사를 지내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공덕이 없고, 공덕의 결과가 없다. 보시와 길들임과 자신의 제어와 사실을 말함에 의한 공덕이 없고, 공덕의 결과가 없다.'라고.

 

장자들이여,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정반대의 주장을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행하는 자와 행하게 하는자, 절단하는 자와 절단하게 하는 자, 고문하는 자와 고문하게 하는 자, 슬퍼지는 자와 슬퍼하게 하는 자, 괴로운 자와 괴롭게 하는 자, 전율하는 자와 전율하게 하는 자, 생명을 죽이는 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자, 집을 부수는 자, 약탈하는 자, 도둑질하는 자, 노상강도질을 하는 자, 남의 아내를 범하는 자, 거짓을 말하는 자 등 행하는 자에게 악은 지어진다.  만약 예리한 칼이 가장자리에 달린 바퀴로 이 땅의 생명을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으깨고 하나의 살점으로 만든다면 그것 때문에 악이 있고 악의 결과가 있다. 강가 강의 남쪽 기슭에 가서 죽이거나 죽이게 하는 자, 절단하거나 절단하게 하는 자, 고문하거나 고문하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악이 있고, 악의 결과가 있다. 강가 강의 북쪽 기슭에 가서 보시하거나 보시하게 하는 자, 제사를 지내거나 제사를 지내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공덕이 있고, 공덕의 결과가 있다. 보시와 길들임과 자신의 제어와 사실을 말함에 의한 공덕이 있고, 공덕의 결과가 있다.'라고.

장자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들 사문․바라문들은 서로간에 정반대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98. "장자들이여, 거기서 '행하는 자와 행하게 하는자, 절단하는 자와 절단하게 하는 자, 고문하는 자와 고문하게 하는 자, 슬퍼지는 자와 슬퍼하게 하는 자, 괴로운 자와 괴롭게 하는 자, 전율하는 자와 전율하게 하는 자, 생명을 죽이는 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자, 집을 부수는 자, 약탈하는 자, 도둑질하는 자, 노상강도질을 하는 자, 남의 아내를 범하는 자, 거짓을 말하는 자에게 악은 지어지지 않는다. 만약 예리한 칼이 가장자리에 달린 바퀴로 이 땅의 생명을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으깨고 하나의 살점으로 만들지라도 그것 때문에 악이 없고, 악의 결과가 없다. 강가 강의 남쪽 기슭에 가서 죽이거나 죽이게 하는 자, 절단하거나 절단하게 하는 자, 고문하거나 고문하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악이 없고, 악의 결과가 없다. 강가 강의 북쪽 기슭에 가서 보시하거나 보시하게 하는 자, 제사를 지내거나 제사를 지내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공덕이 없고, 공덕의 결과가 없다. 보시와 길들임과 자신의 제어와 사실을 말함에 의한 공덕이 없고, 공덕의 결과가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게는 이런 것이 기대됩니다. 즉 몸의 좋은 행위, 말의 좋은 행위, 마음의 선한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한 법들을 버린 뒤에 몸의 나쁜 행위, 말의 나쁜 행위, 마음의 나쁜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하지 않은 들을 받아들여 실천할 것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선하지 않은 법들의 위험과 퇴보와 오염 그리고 선한 법들의 출리에 대한 이익과 청정한 측면을 보지 못합니다. 결실 있음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실이 없다.'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삿된 견해입니다. 결실 있음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실이 없다.'라고 사유합니다. 그것은 삿된 사유입니다. 결실 있음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실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삿된 말입니다. 결실 있음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실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결실 있음을 말하는 아라한들에게 반대하는 행위입니다. 결실 있음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실이 없다.'라고 남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입니다. 그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깁니다. 이렇게 이전의 좋은 계행은 버려지고 나쁜 계행은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삿된 견해 삿된 사유, 삿된 말, 성자에게 반대하는 행위,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 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삿된 견해를 조건으로 이런 다양한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이 생깁니다.  

 

장자들이여, 거기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만약 결실 있음이 없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그 자신은 안전할 것이다. 만약 결실 있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그 사문‧바라문들의 말이 사실이어서 결실 있음이 없다고 인정해 보자. 그래도 이 사람은 지금‧여기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다.  '계를 경시하고, 삿된 견해를 가졌고, 원인 없음을 말하는 자이다.'라고. 만약 원인이 있다면 이렇게 이 사람에게 양쪽 모두에서 나쁜 결과가 있을 것이다. '지금‧여기에서는 지혜로운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이처럼 이 흠 없는 법을 균형을 잡지 못하고 실천하는 자는 유익한 경우를 배제하고 한쪽 부분만 채우고 서 있습니다.

 

99. 장자들이여, 거기서 '행하는 자와 행하게 하는자, 절단하는 자와 절단하게 하는 자, 고문하는 자와 고문하게 하는 자, 슬퍼지는 자와 슬퍼하게 하는 자, 괴로운 자와 괴롭게 하는 자, 전율하는 자와 전율하게 하는 자, 생명을 죽이는 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자, 집을 부수는 자, 약탈하는 자, 도둑질하는 자, 노상강도질을 하는 자, 남의 아내를 범하는 자, 거짓을 말하는 자 등 행하는 자에게 악은 지어진다.  만약 예리한 칼이 가장자리에 달린 바퀴로 이 땅의 생명을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으깨고 하나의 살점으로 만든다면 그것 때문에 악이 있고 악의 결과가 있다. 강가 강의 남쪽 기슭에 가서 죽이거나 죽이게 하는 자, 절단하거나 절단하게 하는 자, 고문하거나 고문하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악이 있고, 악의 결과가 있다. 강가 강의 북쪽 기슭에 가서 보시하거나 보시하게 하는 자, 제사를 지내거나 제사를 지내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공덕이 있고, 공덕의 결과가 있다. 보시와 길들임과 자신의 제어와 사실을 말함에 의한 공덕이 있고, 공덕의 결과가 있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에게는 이런 것이 기대됩니다. 즉 몸의 나쁜 행위, 말의 나쁜 행위, 마음의 나쁜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하지 않은 법들을 버린 뒤에 몸의 좋은 행위, 말의 좋은 행위, 마음의 좋은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한 법을 받아들여 실천할 것입니다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선하지 않은 법들의 위험과 퇴보와 오염 그리고 선한 법들의 출리에 대한 이익과 청정한 측면을 봅니다. 분명히 있는 결실 있음을 두고 '결실 있음이 있다.'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른 견해입니다. 분명히 있는 결실 있음을 두고 '결실 있음이 있다.'라고 사유합니다. 그것은 바른 사유입니다. 분명히 결실 있음을 두고 '결실 있음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른 말입니다. 분명히 있는 결실 있음을 두고 '결실 있음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결실 있음을 말하는 아라한들에게 반대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분명히 결실 있음을 두고 '결실 있음이 있다.'라고 남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입니다. 그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전의 나쁜 계행은 버려지고 좋은 계행은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성자에게 반대하지 않는 행위,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이런 다양한 선한 법들이 생깁니다.    

장자들이여, 거기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만약 결실 있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天界]에 태어날 것이다.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말이 사실이어서 결실 있음이 없다고 인정해 보자. 그래도 이 사람은 지금‧여기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것이다. '계를 중시하고 바른 견해를 가졌고 결실 있음을 말하는 사람이다.'라고. 만약 결실 있음이 있다면, 이렇게 이 사람에게 양쪽 모두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지금․여기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이처럼 이 흠 없는 법을 잘 균형 잡고 실천하는 자는 유익하지 않는 경우를 배제하고, 양쪽 부분을 채우고 서 있습니다.

 

100. 장자들이여,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중생들의 오염을 위한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 원인 없음-조건 없음으로부터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 원인 없음-조건 없음으로부터 중생들은 청정해진다. 힘도 없고, 정진도 없고, 남자의 활력도 없고, 남자의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 모든 생명, 모든 존재, 모든 삶은 권한도 없고, 힘도 없고, 정진도 없이 운명과 종(種)과 본성에 의해 익어서 오직 여섯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라고.

 

*'여섯 [부류의] 태생'은 cha abhijati를 옮긴 것이다. 앙굿따라 니까야 제4권 여섯 태생 경(A6.57)과 디가 니까야 주석서(DA.i.162)에 의하면 여섯 부류의 태생(chalabhijati)는 흑인의 태생(kanha-abhijati), 청인의 태생, 적인의 태생, 황인의 태생, 백인의 태생, 순백인의 태생이다. 동물들과 도적 등은 흑인의 태생에, [불교의] 비구들은 청인의 태생에, 니간타들(자이나 수행자)은 적인의 태생에, 나체수행자들의 제자인 흰 옷을 입는 재가자들은 황인의 태생에, 아지와까(Ajivaka)의 남녀 수행자들은 백인의 태생에, 난다, 앗차, 끼사, 상낏차, 막칼리 고살라는 순백인의 태생에 속한다고 한다.    

 

장자들이여,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정반대의 주장을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중생들의 오염을 위한 원인도 있고 조건도 있다.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로부터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원인도 있고 조건도 있다.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로부터 중생들은 청정해진다. 힘도 있고, 정진도 있고, 남자의 활력도 있고, 남자의 분발도 있다. 모든 중생, 모든 생명, 모든 존재, 모든 삶은 권한도 없고, 힘도 없고, 정진도 없이 운명과 종(種)과 본성에 의해 익어서 오직 여섯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장자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들 사문․바라문들은 서로간에 정반대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101. "장자들이여, 거기서 ‘중생들의 오염을 위한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 원인 없음-조건 없음으로부터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 원인 없음-조건 없음으로부터 중생들은 청정해진다. 힘도 없고, 정진도 없고, 남자의 활력도 없고, 남자의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 모든 생명, 모든 존재, 모든 삶은 권한도 없고, 힘도 없고, 정진도 없이 운명과 종(種)과 본성에 의해 익어서 오직 여섯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라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이런 것이 기대됩니다. 즉 몸의 좋은 행위,말의 좋은 행위, 마음의 좋은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한 법들을 버린 뒤에 몸의 나쁜 행위, 말의 나쁜 행위, 마음의 나쁜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하지 않은 들을 받아들여 실천할 것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선하지 않은 법들의 위험과 퇴보와 오염 그리고 선한 법들의 출리에 대한 이익과 청정한 측면을 보지 못합니다. 원인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인이 없다.'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삿된 견해입니다. 원인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인이 없다.'라고 사유합니다. 그것은 삿된 사유입니다. 원인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인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삿된 말입니다. 원인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인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원인을 말하는 아라한들에게 반대하는 행위입니다. 원인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인이 없다.'라고 다른 사람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입니다. 그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깁니다. 이렇게 이전의 좋은 계행은 버려지고, 나쁜 계행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삿된 견해, 삿된 사유, 삿된 말,에게 반대하는 행위,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삿된 견해를 조건으로 이런 다양한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이 생깁니다.

  

장자들이여, 거기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만약 원인이 없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그 자신은 안전할 것이다. 만약 원인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말이 사실이어서 원인이 없다고 인정해 보자. 그래도 이 사람은 지금‧여기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다. '계를 경시하고, 삿된 견해를 가졌고, 원인 없음을 말하는 자이다.'라고. 만약 원인이 있다면 이렇게 이 사람에게 양쪽 모두에서 나쁜 결과가 있을 것이다. '지금‧여기에서는 지혜로운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이처럼 이 흠 없는 법을 균형을 잡지 못하고 실천하는 자는 유익한 경우를 배제하고 한쪽 부분만 채우고 서 있습니다.

 

102. 장자들이여, 거기서 ‘중생들의 오염을 위한 원인도 있고 조건도 있다.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하여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원인도 있고 조건도 있다.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하여 중생들은 청정해진다. 힘도 있고, 정진도 있고, 남자의 활력도 있고, 남자의 분발도 있다. 모든 중생, 모든 생명, 모든 존재, 모든 삶은 권한도 없고, 힘도 없고, 정진도 없이 운명과 종(種)과 본성에 의해 익어서 오직 여섯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이런 것이 기대됩니다. 즉 몸의 나쁜 행위, 말의 나쁜 행위, 마음의 나쁜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하지 않은 법들을 버린 뒤에 몸의 좋은 행위, 말의 좋은 행위, 마음의 좋은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한 법들을 받아들여 실천할 것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선하지 않은 법들의 위험과 퇴보와 오염 그리고 선법들의 출리에 대한 이익과 청정한 측면을 봅니다. 분명히 있는 원인을 두고 '원인이 있다.'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른 견해입니다. 분명히 있는 원인을 두고 '원인이 있다.'라고 사유합니다. 그것은 바른 사유입니다. 분명히 있는 원인을 두고 '원인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른 말입니다. 분명히 있는 원인을 두고 '원인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원인을 말하는 아라한들에게 반대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분명히 있는 원인을 두고 '원인이 있다.'라고 다른 사람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입니다. 그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서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전의 나쁜 계행은 버려지고, 좋은 계행은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성자에게 반대하지 않는 행위,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이런 다양한 선한 법들이 생깁니다.

 

장자들이여, 거기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만약 원인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말이 사실이어서 원인이 없다고 인정해 보자. 그래도 이 사람은 지금‧여기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것이다.  '계를 중시하고, 바른 견해를 가졌고, 원인을 말하는 사람이다.'라고. 만약 원인이 있다면, 이렇게 이 사람에게 양쪽 모두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지금․여기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이처럼 이 흠 없는 법을 잘 균형 잡고 실천하는 자는 유익하지 않는 경우를 배제하고 양쪽 부분을 채우고 서 있습니다.

 

103. 장자들이여,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절대로 무색계는 없다.'라고.

장자들이여,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정반대의 주장을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반드시 무색계는 있다.'라고.

장자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들 사문․바라문들은 서로간에 정반대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장자들이여, 거기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절대로 무색계는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이것은 나에게 보이지 않는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반드시 무색계는 있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이것도 나에게 알려지지 않는다. 만약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내가 한 측면에 의해 받아들인 뒤에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나에게 적절하지 않다. 만약 '절대로 무색계는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런 경우는 있다. '마음으로 이루어진 색계 신들이 있는 거기에 나는 흠 없이 태어날 것이다,'라는. 만약 '반드시 무색계는 있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런 경우는 있다. '인식으로 이루어진 무색계의 신들이 있는 거기에 나는 흠 없이 태어날 것이다. 물질 때문에 몽둥이를 들고, 무기를 들고, 싸우고, 말다툼하고, 논쟁하고, 비방하고, 거짓을 말하는 것들이 나타난다. '무색계에는 이런 것이 없다.'라는. 그는 이렇게 숙고한 뒤에 물질들을 싫어하여 떠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해 닦습니다.

 

104. 장자들이여,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절대로 존재[有]의 소멸은 없다.'라고." 

"장자들이여,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정반대의 주장을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반드시 존재의 소멸은 있다.'라고.

장자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들 사문․바라문들은 서로간에 정반대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장자들이여, 거기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절대로 존재의 소멸은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이것은 나에게 보이지 않는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반드시 존재의 소멸은 있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이것도 나에게 알려지지 않는다. 만약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내가 한 측면에 의해 받아들인 뒤에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나에게 적절하지 않다. 만일 '절대로 존재의 소멸은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런 경우는 있다. ''인식으로 이루어진 무색계의 신들이 있는 거기에 나는 흠 없이 태어날 것이다.'라는. 만약 '반드시 존재의 소멸은 있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런 경우는 있다. '나는 지금‧여기에서 완전한 열반을 실현할 것이다.'라는. '절대로 존재의 소멸은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견해는 욕망에 가깝고, 족쇄에 가깝고, 기쁨함에 가깝고, 묶임에 가깝고, 집착에 가깝다. '반드시 존재의 소멸은 있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이 견해는 욕망 없음에 가깝고, 족쇄 없음에 가깝고, 기쁘하지 없음에 가깝고, 묶이지 않음에 가깝고, 집착 없음에 가깝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한 뒤에 존재들을 싫어하여 떠나고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해 닦습니다.

 

105. 장자들이여, 이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어떤 넷입니까?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자입니다.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자입니다.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자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자입니다.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입니다.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고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인 그는 지금‧여기에서 갈애가 없고, 모든 오염원들이 소멸하고, 평온하고, 즐거움을 경험하는 자여서 스스로 성스러운 존재로 머뭅니다.

 

106. 장자들이여, 어떤 사람이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사람입니까?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나체 수행자이고, 품행에 얽매이지 않는 자이고, 음식을 손에 받아 핥아서 먹고, [음식을 주려고] '오시오.'라고 하면 가지 않고, [음식을 주려고] '서시오.'라고 하면 서지 않고, 주어지지 않은 것과 내몫으로 배당되지 않은 것과 초대되지 않은 것을 받지 않습니다. 그는 그릇의 가장자리로부터 받지 않고, 항아리의 가장자리로부터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서 주는 것, 막대기를 넘어서 주는 것, 절구공이를 넘어서 주는 것, 두 사람이 먹고 있을 때 주는 것, 임신부가 주는 것,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여자가 주는 것, 남자에게 안긴 여자가 주는 것을 받지 않고, 사람이 모여있는 곳에서 받지 않고, 개가 기다리고 있는 곳에서 받지 않고, 파리 떼가 날라 다니는 곳에서 받지 않고, 생선과 고기를 받지 않고, 술과 와 발효하여 끓인 것을 마시지 않습니다. 그는 한 집에 가서 한 입의 음식을, 두 집에서 두 입의 음식을 ··· 일곱 집에서 일곱 입의 음식을 받는 자입니다. 작은 그릇 한 개의 음식으로 삶을 유지하고, 작은 그릇 두 개의 음식으로 삶을 유지하고 ··· 작은 그릇 일곱 개의 음식으로 삶을 유지합니다. 하루에 한 번 음식을 먹고, 이틀에 한 번 음식을 먹고 ···  일주일에 한 번 음식을 먹습니다. 이런 식으로 보름에 한 번 음식을 먹는 것을 실천하며 머뭅니다. 그는 채소를 먹기도 하고, 수수를 먹기도 하고, 생쌀을 먹기도 하고, 부드러운 뼈를 먹기도 하고, 수초를 먹기도 하고, 왕겨를 먹기도 하고, 쌀 씻은 물을 먹기도 하고, 깻가루를 먹기도 하고, 풀을 먹기도 하고, 소똥을 먹기도 하고, 나무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삶을 유지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고 삶을 유지합니다.   

그는 삼베로 만든 옷도 입고, 삼베와 다른 원료를 섞어 짠 거친 옷도 입고, 시체를 싸맨 헝겊으로 만든 옷도 입고, 분소의로 만든 옷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도 입고, 영양 가죽옷도 입고, 영양 가죽 외투도 입고, 꾸사풀로 만든 옷도 입고, 뱀 껍질로 만든 담요도 입고, 올빼미털로 만든 옷도 입습니다.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고행을 실천하는 자여서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고, 앉는 것을 거부하는 자여서 똑바로 서기도 하고, 쪼그려 앉는 정진을 실천하는 자여서 쪼그려 앉기도 하고, 가시에 기대는 자여서 가시로 된 침상을 사용합니다. 저녁에 세 번 물에 들어가는 수행을 실천하면서 머뭅니다. 장자들이여, 이것이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장자들이여, 어떤 사람이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니까?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양을 도살하거나, 돼지를 도살하거나, 새를 잡거나, 사슴을 잡거나, 사냥꾼, 어부, 도둑, 사형 집행인, 옥졸이거나

또는 누구든지 다른 잔인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장자들이여, 이것이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장자들이여, 어떤 사람이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입니까?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관정(灌頂)의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끄샤뜨리야 왕이거나 큰 재력을 가진 바라문입니다. 그는 도시의 동쪽에 새로운 공회당을 짓게하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거친 가죽옷을 입고 버터와 기름을 몸에 바르고 사슴뿔로 등을 긁으면서 첫째 왕비와 왕실의 바라문 제관과 함께 새로운 공회당에 들어갑니다. 그는 거기서 이어지는 적당하고 황갈색으로 얼룩진 땅에 자리를 만들게 합니다. 같은 색깔의 송아지가 있는 한 마리 암소의 첫 번째 젖꼭지에서 생긴 젖을 왕이 먹습니다. 두 번째 꼭지에서 생긴 젖으로 첫째 왕비가 먹습니다. 세 번째 젖꼭지에서 생긴 젖으로 왕실의 바라문 제관이 먹습니다. 네 번째 젖꼭지에서 생긴 젖으로 불에 붓습니다. 나머지로 송아지가 먹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사를 위해서 이만큼의 황소를 도살하라. 제사를 위해서 이만큼의 젖을 땐 숫송아지를 도살하라. 제사를 위해서 이만큼의 젖을 땐 암송아지를 도살하라. 제사를 위해서 이만큼의 암염소를 도살하라. 제사를 위해서 이만큼의 숫양들을 도살하라. 제사 기둥을 위해서 이만큼의 나무를 베어라. 제사 풀을 위해서 이만큼의 다르바 풀을 거둬라.'라고. 그러면 그의 하인들이나 심부름꾼들이나 일꾼들은 처벌을 두려워하고 무서움을 두려워하고 눈물을 흘리는 얼굴로 한탄하면서 준비를 합니다. 장자들이여, 이것이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하는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장자들이여, 어떤 사람이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이다.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고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인 그는 지금‧여기에서 갈애가 없고, 모든 오염원들이 소멸하고, 평온하고, 즐거움을 경험하는 자여서 스스로 성스러운 존재로 머문다.'라는 사람입니까?

장자들이여, 여기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합니다. ‘그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 그는 마음의 오염원이고 지혜를 무력하게 만드는 이들 다섯가지 장애를 제거하여,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 제3선(三禪)을 ··· 제4선(四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아,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케 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도달했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합니다. 그는 여러 전생을 기억해 냅니다. 즉 한 생, 두 생 ··· 이처럼 갖가지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해 냅니다.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아,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케 하고, 안정괴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도달했을 때중생들의 죽음과 삶에 관련된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합니다. 그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영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립니다. ···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립니다.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케 하고, 준비되고, 안정괴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도달했을 때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합니다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압니다(꿰뚫어 압니다). ···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압니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그는 감각적 쾌락의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합니다. 존재의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합니다. 무명의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합니다. 해탈에서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습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압니다.

 

장자들이여, 이것이 어떤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이다.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고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인 그는 지금‧여기에서 갈애가 없고, 모든 오염원들이 소멸하고, 평온하고, 즐거움을 경험하는 자여서 스스로 성스러운 존재로 머문다.'라고 불립니다."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살라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불가사의 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희들은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희를 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귀의한 남신자로 받아 주십시오."라고.

 

 

흠 없음 경(M60)이 끝났다.

제6장 장자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