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제1장 근본 법문 품 - MN 1. 근본 법문 경(mūlapariyāyasuttaṃ)

실론섬 2016. 3. 26. 08:17

제1장 근본법문의 품

mūlapariyāyavaggo

 

MN 1. 근본 법문 경(뿌리에 대한 법문 경.mūlapariyāyasuttaṃ)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욱깟타에서 수바가 숲의 큰 살라 나무 아래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그대들에게 모든 법의 근본이 법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할 것이다."라고.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욱깟타(Ukkaṭṭha)는 히말라야 산 근처에 있었던 꼬살라(Kosala)의 도시였다. 「디가 니까야」 제1권 「암밧타 경」(D3)에 의하면 이 성읍은 빠세나디 꼬살라의 왕이 뽁카라사띠(Pokkharasati)라는 당시 유명한 바라문에게 왕의 하사품이자 거룩한 마음의 표시로 그에게 영지로 준 곳이었다고 한다. 주석서에 의하면 이 성읍이 욱깟타로 불리게 된 것은 정해진 좋은 날에 공사를 완료하기 위해서 밤에는 횃불(ukka)을 켜고 작업을 하였기 때문에 이런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MA.i.9)

*본 경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모두 192가지 법문이 설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192가지 법문은 24(대상)x8(경지)=192로 되어 있다. 
①여기서 24가지 대상은 지.수.화.풍, 존재들, 신들, 빠자빠띠, 브라흐마(범천, 초선천), 광음천(2선천), 변정천(3선천), 광과천(4선천), 승자천,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본 것(見), 들은 것(聞), 감지한 것(覺), 안 것(知), 동일한 것, 다른 것, 전체, 열반의 24가지이다.
②그리고 8가지 경지는 범부, 유학, 아라한1.2.3.4, 여래1.2의 8가지이다.  
이렇게 본 경은 이 24가지 대상과 이런 대상을 아는 8가지 경지의 사람과의 관계를 8가지 경지의 측면에서 설하고 있다. 

 

2. "비구들이여, 여기 거룩한 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거룩한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가르침을 배우지 못한 범부가 있다. 그는 훌륭한 스승을 알아보지 못하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지 못해, 땅을 땅으로부터 인식(想)한다. 땅을 땅으로부터 인식하면서 땅을 생각한다(자신을 땅이라 생각한다). 땅에생각하고(자신을 땅에서 생각하고), 땅과 비교하여 생각하고(자신을 땅으로부터 생각하고), 땅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땅을 기뻐한다. 그것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그것을 철저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이라고 나는 말한다.

 

*여기서는 먼저 범부를 지칭하신 뒤에 땅 등의 대상이 존재 더미(오취온)를 구성하고 있는 법이라고 여기면서 일어난 범부의 허황된 생각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땅을 땅이라(pathavim pathavito)' 등으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여기 '땅(pathavi)'에는 ①특징으로서의 땅 ②구성요소를 가진 땅 ③명상주제인 대상으로서의 땅, ④관습적으로 불리는 땅의 네 가지가 있다.
이중에서 ①"도반이여, 무엇이 내적인 땅의 요소인가?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는 딱딱하고 견고한 것을 내적인 땅의 요소라 한다."(MA185)라는 등에서는 특징으로서의 땅을 말한다.  
②"비구가 땅을 파거나 혹은 팍 하면"(Vin.iv.33)이라는 등에서는 구성요소를 가진 땅을 말한다. 머리털 등 20가지 부분과 아연, 구리 등 외적인 땅은 형색 등의 구성요소를 가진 땅이기 때문에 구성요소를 가진 땅이라 한다.  
③"어떤 자는 땅의 까시나를 인식한다."(MA.ii.14)라는 등에서는 명상 주제인 대상으로서의 땅을 말한다.
④땅의 까시나를 통해 禪을 얻은 자가 천상에 태어날 때 [증득의] 출현으로 인해 땅의 신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것이 관습적으로 불리는 땅이라고 알아야 한다. 여기서는 이 네가지 모두 해당된다.  
이 가운데 어떤 땅을 두고 범부는 땅으로부터 인식하고, '땅이다.'라고 인식하고, 땅의 부분을 통해 인식하고, 세상의 관습을 취하여 전도된 인식으로 인식한다.(MA.i.25)  
전도된 인식 혹은 인식의 전도는 무상.고.무아.부정인 것을 항상하고 즐겁고 자아이고 깨끗한 것으로 여기는 것을 말한다.
*"'땅을 땅이라 인식하고서는'이란 것은 '그는 그 땅을 전도된 인식으로 인식한 뒤에'라는 말이다. "인식으로 인해 사량 분별이라는 이름이 있다."라는 금구가 있다. 그러므로 그가 일단 이 땅을 이와 같이 전도된 인식으로 인식하고 나면 다음 단계에서 갈애와 자만과 사견에 이한 사량 분별은 힘을 얻는다. 여기서 그는 허황된 생각이란 이름으로 설한 이러한 사량 분별을 통해 생각하고 헤아리고 이리 저리 헤아리고 여러 측면으로 다르게 취한다. 그러므로 '땅이라 생각한다.'라고 말씀하셨다.(MA.i.25)   
*"'[자신을] 땅이라 생각한다.'는 것은 세 가지 허황된 생각(mannana)을 통해 '나는 땅이다.'라고 생각하고, '나의 땅이다.'라고 생각하고, '다른 이는 땅이다.'라고 생각하고, '다른 이의 땅이다.'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혹은 내적인 땅을 갈애에 기인한 허황된 새각을 통해 생각하고, 자만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하고, 사견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는 말이다.     
어떻게? 그는 머리털, 몸털 등에서 욕망을 일으키고, 머리털을 즐기고, 좋아하고, 기뻐하고, 집착한다. 이와 같이 내적인 땅을 갈애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 '미래에 나의 머리털은 이렇게 될 것이고, 나의 몸 털도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거기에 기쁨을 일으킨다. '이 계행과 청정범행으로 나의 머리털은 이렇게 윤기 있고 부드럽고 가늘고 검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갈망한다. 이와 같이 내적인 땅을 갈애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머리털 등에 대해 원하는 바를 성취한 것과 성취하지 못한 것을 두고 '내가 뛰어나다거나 혹은 동등하다거나 혹은 저열하다.'라고 자만을 일으킨다. 이와 같이 내적인 땅을 자만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   
"영혼이 바로 몸이다."라고 전해 내려오는 방법에 따라 머리털이 영혼이라고 천착한다. 이 방법은 몸 털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이 내적인 땅을 사견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 혹은 '내적인 땅의 요소이든 외적인 땅의 요소이든 그것은 단지 땅의 요소일 뿐입니다. 이에 대해 '이것은 내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르게 지혜로 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지혜로 보아 땅의 요소를 염오하고 마음이 땅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사라지게 합니다.(코끼리 발자국의 긴 경(MN28)라는 가르침과는 반대로 머리털 등으로 분류되는 이 땅은 내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라고 천착한다. 이와 같이 내적인 땅을 사견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    
이처럼 내적인 땅을 세 가지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외적인 땅에 대해서도 세 가지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MA.i.26-27)   
*'[자신을] 땅에서 생각한다.'라고 하셨다. 여기서 '땅에서(pathaviya)'라는 것은 문법적으로 처소격이다. 그러므로 그는 '나는 땅에서'라고 생각한다. 즉 '나에게 어떤 장애(palibodha)는 땅에 있다.'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는 '다른 이는 땅에서'라고 생각한다. 다른 이의 장애는 '땅에 있다.'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이 것이 이 문맥에 대한 뜻이다.   
혹은 "어떻게 물질에서 자아라고 여기는가? 여기 어떤 이는 느낌을 ··· 인식을 ··· 행들을 ··· 의식을 자아라고 여긴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 이 나의 자아는 이 물질에 있다.'라고 이와 같이 물질에서 자아라고 여긴다."(Ps.i.145)라고 [장소]로서의 뜻을 무애해도에서 설했다. 그 방법대로 느낌 등의 법들을 자아라고 거머쥐고 내적인 땅과 외적인 땅 가운데 어떤 땅을 자기의 장소라고 상상하면서 '이 나의 자아는 땅에 있다.'라고 땅에서 생각한다. 이것은 그의 사견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이다. 그러면 그 자아에 대해 애정과 자만도 일어나기 때문에 갈애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과 자만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도 일어난다고 알아야 한다."(MA.i.27-28)   
*"'[자신을] 땅으로부터 생각한다.'라고 하셨다. 여기서 '땅으로부터'라는 것은 문법적으로 탈격이다. 그러므로 내적인 땅과 외적인 땅으로부터 자신과 다른 이가 태어나거나 혹은 사라진다는 말이다. 혹은 땅과는 상관없이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땅으로부터 생각하는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MA.i.28)
*'땅을 내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하셨다. 여기서는 오직 땅의 근본물질에 대해서 갈애를 가지고 내 것이라는 방법으로 일어난 한 가지 허황된 생각만 일어난다고 알아야 한다. 즉 [사견과 자만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은 일어나지 않고] 갈애에 기인한 한 가지 허황된 생각만 일어난다고 알아야 한다. 이 땅이 나의 머리털이고 나의 몸 털이고 나의 아연이고 나의 구리라고 이와 같이 내적인 땅과 외적인 땅에 연결시켜야 한다. "(MA.i.28) 
*이상 땅에 적용된 네 가지 허황된 생각의 구문은 본경에 나타나는 나머지 23가지 대상에도 다 적용되어 나타난다. 이 네 가지 허황된 생각은 ①[자신을] x 라 생각한다. ②자신을 x에서 생각한다. ③[자신을] x 로부터 생각한다. ④x를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로 정리된다. 여기서 ①은 동일시, ②는 근본, ③은 별개 혹은 파생 ④는 소유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즉 범부는 ①땅과 자신을 같은 것으로 동일시하고 ②땅을 자신의 근본으로 삼고 ③땅과 자신은 다르거나 자신을 땅에서부터 생겨난 것으로 여기고 ④땅을 자신의 소유물이나 전유물로 여기는 것을 말한다. 범부는 이렇게 모든 대상에 대해서 허황되고 전도되고 잘못된 생각을 가진다고 붓다께서는 설파하고 계신다.  
*"'기뻐한다.'라고 하셨다. 여기서는 사견과 갈애에 의한 기뻐함으로 기뻐하면서 모든 것을 기뻐한다는 뜻이다."(MAT.i.79)
*"'그것을 철저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땅이라는 토대를 '철저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허황된 생각을 가지고 즐거워한다. 땅을 잘 아는 자는 세 가지 지혜를 통해 철저히 안다. 그것은 ①안 것의 지혜(nata-parinna) ②조사의 지혜(tirana-parinna) ③버림의 지혜(pahana-parinna)이다.  
이 가운데 ①어떤 것이 안 것의 지혜인가? "그는 땅의 요소를 잘 안다. 이것은 내적인 땅의 요소이고, 이것은 외적인 땅의 요소이고, 이것은 그 특징이고, 이것은 역활이고, 나타남이고, 가까운 원인이다. "라고 철저히 아는 것이 안 것의 지혜이다. ②어떤 것이 조사의 지혜인가? "물질을 무상으로, 괴로움으로, 병으로 본다."(Ps.ii.238)라고 마흔 가지 측면에서 땅의 요소를 조사하는 것이 조사의 지혜이다. ③어떤 것이 버림의 지혜인가? 이렇게 조사한 뒤 최상의 도로써 땅의 요소에 대해 욕망을 버리는 것이 버림의 지혜이다.
혹은 ①정신과 물질을 분석하는 것이 안 것의 지혜이고 ②깔라빠를 명상하는 것부터 수순의 지혜까지를 조사의 지혜라 하고 ③성스러운 도에 대한 지혜를 버림의 지혜라 한다.  
땅을 철저하게 아는 자는 이 세 가지 지혜(통달지)에 의해 철저히 안다. 범부는 이 지혜가 없기 때문에 철저히 알지 못하고 그래서 그것에 대해 허황된 생각을 가지고 즐거워한다.(MA.i.29) 

 

물을 물로부터 인식한다. 물을 물로부터 인식하면서 물을 생각한다. 물에서 생각하고, 물과 비교하여 생각하고, 물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을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불을 불로부터 인식한다. 불을 불로부터 인식하면서 불을 생각한다. 불에서 생각하고, 불과 비교하여 생각하고, 불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을 기뻐한다.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바람을 바람으로부터 인식한다. 바람을 바람으로부터 인식하면서 바람을 생각한다. 바람에서 생각하고, 바람과 비교하여 생각하고, 바람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람을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3. 존재들을 존재로부터 인식한다(존재들을 존재들이라 인식한다). 존재들을 존재들로부터 인식하면서 존재들을 생각한다(존재들을 존재들이라 인식하고서는 [자신을] 존재들이라 생각한다). 존재들에서 생각하고([자신을] 존재들에서 생각하고), 존재들과 비교하여 생각하고([자신을] 존재들로부터 생각하고), 존재들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존재들을 내 것이라 생각한다). 존재들을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존재(bhuta)'라는 단어는 ①오온(pancakkhandha) ②비인간(amanussa, 유령이나 약카 등의 존재), ③요소(dhatu, 18계 가운데 네 가지 근본물질(사대.maha-bhuta), ④존재함(vijjamana) ⑤번뇌 다함(khinasava) ⑥중생(satta), ⑦나무 등의 존재(rukkhadi)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는 중생을 뜻하는 것으로 쓰였다.(MA.i.31-32)
*"'[자신을] 존재들이라 생각한다.'는 것 등에서도 세 가지 허황된 생각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
①"그는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다섯 가지의 얽어매는 감각적 쾌락을 갖추고 완비하여 즐기고 있는 것을 본다."(MA.i.461)라고 설한 방법에 따라 존재들을 아름답고 행복하다고 취하고서는 즐긴다. 보고서도 즐기고, 듣고서도 즐기고, 냄새 맡고서도 즐기고, 맛보고서도 즐기고, 닿고서도 즐기고, 알고서도 즐긴다. 이오 같이 존재들을 갈애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 
②"여기 어떤 이는 태생이나 혹은 다른 어떤 것을 근거로 이전에는 다른 이와 자신을 동등하다(sadisa)고, 그 다음에는 자신을 수승하고(seyya) 다른 이를 저열하다(hina)고 여긴다. 이러한 자만(mana)을 오만(manatimana)이라고 한다."(Vbh.355)라는 말씀이 있듯이 이와 같이 존재들을 자만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 존재들을 항상하고 굳건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다(nicca dhuva sassata aviparinamadhamma)거나 혹은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천성의 틀에 짜여서 여섯 종류의 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D.i.53)라고 생각하면서 사견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
이와 같이 존재들을 세 가지의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MA.i.32)
*"'[자신을] 존재들에서 생각한다.'라고 하셨다. 그렇게 어떻게 [자신을] 존재들에서 생각하는가?
①각각의 존재들에서 자신의 태어남이나 혹은 행복의 성취를 바란다. 이와 같이 갈애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통해 [자신을] 존재들에서 생각한다. 존재들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보시를 하고, 계를 지키고, 포살을 행한다. 이와 같이 존재들에서 갈애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
②그리고 존재들을 무리별로 취하여 그중에서 어떤 존재들은 수승하다고 보고, 어떤 존재들은 동등하거나 저열하다고 본다. 이와 같이 존재들에게 자만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
③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중생들은 청정하고 영원하다고 생각하고, 어떤 존재들은 무상하고 영원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도 존재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다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존재들에서 사견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MA.i.32-33)
*"'존재들을 내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에서는 갈애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만 일어난다. 이 땅이 내 아들이고, 내 딸이고, 내 양,개,돼지,코끼리,소,말이라고 이런 방법으로 내 것이라고 일어난다고 알아야 한다.(MA.i.33) 

 

신들을 신으로부터 인식한다. 신들을 신들로부터 인식하면서 신들을 생각한다. 신들에서 생각하고, 신들과 비교하여 생각하고, 신들은 '나의 것'

이라고 생각한다. 신들을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다섯 가지의 얽어매는 감각적 쾌락으로 즐기기 때문에 '신들(deva)'이라 한다. 혹은 자신의 신통력으로 즐기기 때문에 신들이라 한다. '향략한다.', 혹은 '비춘다'는 뜻이다.  
신들은 세 종류가 있으니 ①일상적인 표현의 신들(sammuti-deva) ②신으로 태어난 신들(upapatti-deva) ③청정한 신들(visuddhi-deva)이다.
①일상적인 표현으로서의 신들이란 왕들, 여왕들, 왕자들이다. ②신으로 태어난 신들이란 사대왕천의 신들로 태어났거나 그보다 높은 신들이다. ③청정한 신들이란 번뇌 다한 아라한이다.  
여기서는 신으로 태어난 신들을 말한다. 그러나 모두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타화자재천(paranimmitavasavatti)의 천상세계에서 마라(Mara)의 무리들은 제외하고 나머지 육욕천(六欲天,cha kamavacara)이 여기서 말하는 신들이다."(MA.i.33)
육욕천은 사대왕천, 삼십삼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의 여섯을 말한다.

 

창조주를 창조주로부터 인식한다. 창조주를 창조주로부터 인식하면서 창조주를 생각한다. 창조주에서 생각하고, 창조주와 비교하여 생각하고,

창조주를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조주을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창조주(창조의 신)로 옮긴 단어는 pajapati이다. 베다에서부터 나타나는 신이다. 베다에서는 인드라(Indra)나 아그니(Aggni)등과 같은 베다 문헌의 가장 유력한 신들을 쁘라자빠띠(Prajapati)라 부르고 있다.   
*"'[자신을] 창조주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하나의 사견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여기 어떤 이는 "창조주가 가진 법들은 모두 항상하고 영속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혹은 창조주에게는 사악함이 없다. 그에게는 사악한 업들이 달라붙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며서 사견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이 일어난다.(MA.i.34)

 

범천을 범천으로부터 인식한다. 범천을 범천으로부터 인식하면서 범천을 생각한다. 범천에서 생각하고, 범천과 비교하여 생각하고, 범천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범천을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범천(브라흐마, Brahma)'이라고 했다. 여기서는 각각 [禪의] 특별한 공덕으로 향상한 자를 브라흐마라 한다. 대범천(Maha-brahma)도 브라흐마라 부르고, 여래, 바라문, 부모, 뛰어난 자도 브라흐마라 부른다. 여기서는 처음으로 태어나서 겁의 수명을 가진 브라흐마를 말한다."(MA.i.34-35)
"처음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수승한 초선(pathamahjana)에 의해 태어났거나 혹은 초선의 세상에 처음으로 태어났다는 말이다.(MAT.i.84)    

 

광음천(光音天)들을 광음천으로부터 인식한다. 광음천을 광음천으로부터 인식하면서 광음천을 생각한다. 광음천에서 생각하고, 광음천과 비교하여 생각하고, 광음천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음천을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광음천(Abhassara)'은 색계 제2선천(二禪天)의 세 번째 천상이다. 임종할 때의 제2禪의 깊이에 따라 광명(abha)의 크기도 달라진다. 제2선천의 첫 번째는 소광천(Parittabha)이고, 두 번째는 무량광천(Appamanabha)이다.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치 횃불의 불빛처럼 이들의 몸에 광명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것처럼 흐르기 때문에 광음천이라 한다. 제2선천에 태어난 자들은 모두 포함된다. 동일한 세계에 머무는 모든 소광천과 무량광천도 광음천이라고 알아야 한다."(MA.i.35)  

 

변정천(遍淨天)들을 변정천으로부터 인식한다. 변정천을 변정천으로부터 인식하면서 변정천을 생각한다. 변정천에서 생각하고, 변정천과 비교하여 생각하고, 변정천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정천을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깨끗함으로 뒤덮여 있고, 온통 뒤덮여있다. 깨끗한 몸의 빛이 한 덩어리가 되어 금으로 만든 상자에 놓인 빛나는 금덩이처럼 광채를 발한다고 해서 '변정천(Subhakinha)'이라 한다. 변정천을 대표로 제3천에 태어난 자들은 모두 포함된다. 동일한 세계에 머무는 모든 소정천(Parittasubha)과 무량정천(Appamanasubha)도 변청정이라고 알아야 한다.(MA.i.35)   

 

광과천(廣果天)들을 광과천으로부터 인식한다. 광과천들을 광과천으로부터 인식하면서 광과천을 생각한다. 광과천에서 생각하고, 광과천과 비교하여 생각하고, 광과천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과천을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수승한 결과가 있기 때문에 '광과천(Vehapphala)'이라 한다. 색계 제4선천의 천상이다."(MA.i.35)

 

승자천(勝者天)을 승자천으로부터 인식한다. 승자천을 승자천으로부터 인식하면서 승자천을 생각한다. 승자천에서 생각하고, 승자천과 비교하여 생각하고, 승자천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승자천을 기뻐한다.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승자천'은 ABhibhu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극복하기 대문에 승자(abhibhu)라 한다. 무엇을 극복하는가? 네 가지 정신의 무더기(수.상,행.식)를 극복한다. 무상유정천(Asanna-satta, 無想有情天)의 동의어이다. 무상유정천의 신들은 광과천의 신들과 같은 천상(색계 제4선천)에 머문다."(MA.i.35)  
색계의 제4선천의 제일 아래가 광과천이고 두 번째가 이 무상유정천이다. 그 다음은 정거천(淨居天, Suddhavasa)인데 이곳에는 불환자들이 태어나는 곳이기 때문에 무상유정천은 중생으로 태어나는 경지로는 색계에서 최고로 높은 천상이다. 수행자의 마음이 제4선에 들어서 인식을 없애 버리려는 의도로 가득 배어 있고, 인식에 대해 혐오하기 때문에 그들은 무상유정천에 태어난다고 한다. 말 그대로 무상유정천에는 마음은 일어나지 않고 오직 물질로 된 몸만이 있다.   

 

4. 공무변처(空無邊處)를 공무변처로부터 인식한다. 공무변처를 공무변처로부터 인식하면서 공무변처를 생각한다. 공무변처에서 생각하고, 공무변처와 비교하여 생각하고, 공무변처를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무변처를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식무변처(識無邊處)를 식무변처로부터 인식한다. 식무변처를 식무변처로부터 인식하면서 식무변처를 생각한다. 식무변처에서 생각하고, 식무변처와 비교하여 생각하고, 식무변처를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식무변처를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무소유처(無所有處)를 무소유처로부터 인식한다. 무소유처를 무소유처로부터 인식하면서 무소유처를 생각한다. 무소유처에서 생각하고, 무소유처와 비교하여 생각하고, 무소유처를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소유처를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비상비비상처로부터 인식한다. 비상비비상처를 비사입비상처로부터 인식하면서 비상비비상처를 생각한다. 비상비비상처에서 생각하고, 비상비비상처와 비교하여 생각하고, 비상비비상처를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상비비상처를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5. "본 것을 본 것으로부터 인식한다. 본 것을 본 것으로부터 인식하면서 본 것을 생각한다. 본 것에서 생각하고, 본 것과 비교하여 생각하고, 본 것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 것을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본 것(dittha)'은 육안으로 본 것과 천안으로 본 것 모두를 말한다. 이것은 형색의 감각장소와 동의어이다. 본 것을 본 것이라 인식한다는 것도 세 가지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 즉 형색을 아름다움의 인식과 행복의 인식을 갖고 보면서 거기에 욕망을 일으키고 즐기고 기뻐하면서 갈애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일으키고 형색을 성취한 것과 성취하지 못한 것을 두고 '내가 뛰어나다거나 혹은 동등하다거나 혹은 저열하다.'라고 자만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일으키고, 형색이 영원한 것이라고 사견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일으킨다. 이와 같이 본 것을 세 가지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MA.i.37)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부터 인식한다.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부터 인식하면서 들은 것을 생각한다. 들은 것에서 생각하고, 들은 것과 비교하여 생각하고, 들은 것을 '나이 것'이라고 생각한다. 들은 것을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육체적인 귀로 들은 것과 신성한 귀로 들은 것 모두 들은 것이다. 이것은 소리의 감각장소와 동의어이다."(MA.i.37)

 

닿아 안 것(감각된 것, 감지한 것)을 닿아 안 것으로부터 인식한다. 닿아 안 것을 닿아 안 것으로부터 인식하면서 닿아 안 것을 생각한다. 닿아 안 것에서 생각하고, 닿아 안 것과 비교하여 생각하고, 닿아 안 것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닿아 안 것을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생각하고 인지하여 취한 것을 '닿아 안 것'이라 한다. 감각기관들이 대상들과 함께 서로서로 닿아서 안다는 말이다. 냄새와 맛과 감촉의 감각장소와 동의어이다."(MA.i.37)  
"'서로 닿아서'라는 것은 눈과 형색, 귀와 소리처럼 서로 멀리 있지 않고 이들 세 종류의 내입처와 외입처는 서로 붙어 있다는 뜻이다."(MAT.i.67)
여기서 보듯이 감지한 것은 자기에게 직접 닿은 대상들만을 말한다. 여기에는 각각 코, 혀, 몸의 대상인 냄새, 맛, 감촉이 포함된다.

 

인식된 것(안 것)을 인식된 것으로부터 생각한다. 인식된 것을 인식된 것으로부터 알면서 인식된 것을 생각한다. 인식된 것에서 생각하고, 인식된 것과 비교하여 생각하고, 인식된 것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식된 것을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여기서 '인식된 것'이란 오직 마음으로 인식된 것을 말한다.(MA.i.37)

 

6. "동일한 것을 동일한 것으로부터 인식한다. 동일한 것을 동일한 것으로부터 인식하면서 동일한 것을 생각한다. 동일한 것에서 생각하고, 동일한 것과 비교하여 생각하고, 동일한 것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일한 것을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이와 같이 '본 것'등의 네 가지로 존재 더미를 분류하는 것을 보이신 뒤 이제 증득을 얻은 것과 증득을 얻지 못한 것의 두 가지를 보이시기 위해서 여기서는 '동일한 것(ekatta)'을 설하시고 아래서는 '다른 것(nanatta)'을 말씀하신다. '동일한 것'이란 증득을 얻은 것을 나타내고 '다른 것'이란 증득을 얻지 못한 것을 나타낸다."(MA.i.37)  
한편 복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증득을 얻은 것은 색계선과 무색계선이 일어났다는 말이다. 그것은 동일한 대상에 동일한 상태로 일어나기 때문에 '동일한 것'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과보의 禪(vipaka-jjhana)이 일어난 것도 또한 이 증득을 얻은 것에 포함된다고 알아야 한다. 증득을 얻지 못했다는 것은 욕계의 법이 일어난 것을 말한다. [본삼매라는 색계선과 무색계선을 증득하기 직전의 단계이며 아직 욕계의 상태에 속하는] 근접삼매(upacara-jjhana)를 통해서도 마음은 아직 바르게 동인한 상태가 된 것이 아니다."(MAT.i.87)  

 

다른 것을 다른 것으로부터 인식한다. 다른 것을 다른 것으로부터 인식하면서 다른 것을 생각한다. 다른 것에서 생각하고, 다른 것과 비교하여 생각하고, 다른 것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픈 것을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일체를 일체로부터 인식한다. 일체를 일체로부터 인식하면서 일체를 생각한다. 일체에서 생각하고, 일체와 비교하여 생각하고, 일체를 '나의 것'

이라고 생각한다. 일체를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이와 같이 모든 존재 더미를 두 부류로 보이신 뒤 이제는 그것을 하나로 모아서 보이기 위해 '일체(sabba)'라고 하셨다."(MA.i.38)
*"'자신을 일체에서 생각한다.'라고 하셨다. 어떻게 [자신을] 일체에서 생각하는가? 그는 '나의 자아는 위대하다'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의 사견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이다."(MA.i.38)  
*"'그는 일체를 기뻐한다.'라고 하셨다. [모든 삼계의 법에서 재난을 보지 않을 때 염오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MAT.i.88] 일체를 기뻐하면서 갈애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이 일어나고, '이 중생들은 내가 만들었다.'라고 생각하면서 자만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이 일어나고 '이 일체는 전생에 지은 업 대문이다. 일체는 신이 창조한 것이다. 일체는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라는 방법으로 생각하면서 사견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이 일어난다."(MA.i.38)    

열반을 열반으로부터 인식한다. 열반을 열반으로부터 인식하면서 열반을 생각한다. 열반에서 생각하고, 열반과 비교하여 생각하고, 열반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열반을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지 못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여기서 '열반(nibbana)'이라는 것은 "존자여, 이 자아는 다섯 가지의 얽어매는 감각적 쾌락을 마음껏 충분히 즐깁니다. 존자여, 이런 까닭에 이 자아는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 것입니다."라는 방식으로 다섯 가지로 설한 지금여기에서의 구경의 열반(parama-ditthadhamma-nibbana)을 말한다고 알아야 한다. 이 열반을 즐기면서 갈애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이 일어나고, '나는 열반과 함께하고, 열반을 얻었다.'라고 자만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이 일어나고, 열반이 아닌 것을 열반이라고, 영원함 등이라고 취하하면서 사견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이 일어난다고 알아야 한다."(MA.i.38)  
한편 복주석서는 "다섯 가지 방법으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말한다는 것은 외도들의 주장인데, 그것은 감각적 쾌락의 행복과 네 가지 색계선의 행복을 말한다."(MAT.i.89)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 '다섯 가지로 설한 지금 여기에서의 구경의 열반'은 범망경(D1)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7. 비구들이여, 마음(의.意)이 달성되지 않았고, 위없는 유가안온(瑜伽安穩.열반)을 바라며 머무는 유학(有學)인 비구도 땅을 땅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안다. 땅을 땅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알면서 땅을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자신을] 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땅에서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자신을] 땅에서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땅과 비교하여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땅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땅을 '나의 것 '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땅이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땅을 기뻐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에게 철저히 알려져야 함'이라고 나는 말한다.(그는 그것을 철저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고 나는 말한다.)

 

*'마음을 얻지 못한'으로 옮긴 원어는 appatta-manaso이다.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manasa는 욕망(raga)의 뜻으로도, 마음(citta)이라는 뜻으로도, 아라한과(arahatta)의 뜻으로도 사용된다. 여기에서는 아라한과를 뜻하고 있다.(MA.i.40-41)  
*'유학(有學,sekkha)'이라 했다. 무슨 의미에서 유학이라 하는가?
①배워야 할 법이 있기(sekkha-dhamma-ppatilabha) 때문에 유학이라 한다. "세존이시여, '유학, 유학'이라고 불립니다. 어떤 점에서 유학이라고 불립니까? 비구여, 여기 비구는 유학의 바른 견해를 갖추고 ··· 유학의 바른 삼매를 갖춘다. 비구여, 비구는 이런 점에서 유학이 된다."(「유학 경」(S45.13)  
②그리고 배운다(sikkkhati)고 해서 유학이라고 한다. 이런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비구여, 배운다고 해서 유학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무엇을 배우는가? 높은 계를 배우고, 높은 마음을 배우고, 높은 지혜를 배운다. 비구여, 배운다고 해서 유학이라고 불린다."(A.i.231)
유학에는 예류도, 예류과, 일래도, 일래과, 불환도, 불환과, 아라한도의 일곱 부류가 있다. 아라한과는 무학(無學,asekkha)이라 부른다.
*'유가안온(瑜伽安穩)'은 yogakkhema(요가케마)의 한역이다. 여기서 유가는 yoga의 음역이고, 안온은 khema의 의역이다. 이 단어는 리그로베다에서부터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요가(yoga)는 '획득'을 케마(khema) '보존, 저축'을 뜻했다. 그러나 빠알리어 주석서들에서는 예외 없이 yoga를 속박으로 해석해서 "네 가지 속발들로부터 안전하고 괴롭힘이 없기 때문에 유가안온이다(catuhi yogehi khemam anupaddutam iti yogakkhemama). 이것은 아라한과를 뜻한다."(MA.i.41)라고 설명한다. 네 가지 속박은 감각적 쾌락, 존재, 사견, 무명의 속박을 말한다.   

*"'그는 땅을 땅이라고 완전한 지혜로 잘 안다(so pi pathavim pathavito abhijanati)'는 것은 이러한 뜻이다. 그는 땅을 땅의 성질을 통해 완전한 지혜로 잘 안다. 범부처럼 모든 측면에서 전도된 인식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는 아주 특별한 지혜로 안다. 땅의 성질을 놓치지 않고 그것을 무상이라고, 괴로움이라고, 무아라고 완전한 지혜로 잘 안다."(MA.i.41)
복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여기서 '완전한 지혜로 잘 안다(abhijanati)'는 것은 세 가지 지혜와 낮은 단계의 도의 지혜로써 잘 안다는 말이다.(MAT.i.93)
낮은 단계의 도의 지혜는 예류도, 일래도, 불환도의 지혜를 뜻한다.
*'[자신을] 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pathavim ma manni를 옮긴 것이다. 먼저 주석서의 설명을 살펴보자.
"'[자신을] 땅이라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pathavim ma manni)'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유학에게는 '생각한다(manni)'라고 말해도 안되고 '생각하지 않는다(na manni)'라고 말해도 안된다는 뜻이다. 범부는 세 가지 허황된 생각을 하나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생각한다(mannati)'라고 하고, 번뇌 다한 자는 [세 가지 허황된 생각을] 모두 다 버렸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는다(na mannati)'라고 하지만, 유학은 사견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은 버렸지만 나머지 두 가지는 줄어든 상태로 남아있다. 그러므로 그를 범부처럼 '생각한다'라고 해서도 안되고, 번뇌 다한 자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해서도 안된다."(MAi.41-42)   

 

물을 ··· 불을 ··· 바람을 ··· 존재들을 ··· 신들을 ··· 창조주를 ··· 범천을 ··· 광음천들을 ··· 변정천들을 ··· 광과천들을 ··· 승자천을 ··· 공무변처를 ··· 식무변처를 ··· 무소유처를 ··· 비상비비상처를 ··· 본 것을 ··· 들은 것을 ··· 닿아 안 것을 ··· 인식한 것을 ··· 동일한 것을 ··· 다른 것을 ··· 일체를 ··· 열반을 열반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안다. 열반을 열반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알면서 열반을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열반에서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열반과 비교하여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열반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열반을 기뻐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에게 철저히 알려져야 함'이라고 나는 말한다.

 

8. 비구들이여, 번뇌를 부수고, 청정한 삶을 성취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리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아라한인 비구도, 땅을 땅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안다. 땅을 땅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알면서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 땅에서 생각하지 않고, 땅과 비교하여 생각하지 않고, 땅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땅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철저히 알았음'이라고 나는 말한다.  

 

*"오염원들을 멀리 여의었기(araka-kilesa) 때문에 '아라한(araha)'이라 한다. 오염원들을 멀리했고, 오염원들을 버렸다는 말이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아라한인가? 그는 정신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멀리했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비구는 아라한이다."(앗사뿌라 긴 경(MA39)라고.(MA.i.42)  
*"'번뇌를 부수었다(khinasava).'는 것은 네 가지 번뇌가 다한 것을 말한다. 즉 감각적 쾌락, 존재, 사견, 무명의 번뇌가 다한 것이다."(MA.i.42)
*"'삶을 성취했다.(vusitava)'는 것은 계가 깨끗함 등의 중요한 도닦음을 실천하거나 성스러운 도를 닦거나 열 가지 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MA.i.42) 
*"해야 할 일을 마쳤다(kata-karniya).'는 것은 네 가지 도로써 네 가지 진리에 대해서 해야 할 열여섯 가지를 다 했다는 말이다. 번뇌 다한 자는 철저히 알아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과 닦아야 할 것과 실천해야 할 것을 다 했다는 뜻이다."(SA.i.205;MAT.i.95)
*"'짐을 내려놓은(ohita-bhara)'이라고 하셨다. 세 가지 짐이 있다. 오온의 짐과 오염원들의 짐과 업형성력의 짐이다. 이것을 내려놓았다는 말이다."(MA.i.43)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다(sadattha)'은 아라한과를 말한다."(MAi.43)
*"'윤회(삶)의 족쇄(bhava-samyojana)'란 열 가지 족쇄를 말한다.(MA.i.43)
*"바른 궁극의 지혜로(sammadanna)'라고 하셨다. 이것으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무더기의 무더기(온)라는 뜻, 감각장소의 장소라는 뜻, 요소의 요소라는 뜻, 괴로움의 압박의 뜻, 일어남의 발생의 뜻, 소멸의 고요해짐의 뜻, 그리고 모든 형성된 것은 무상하다는 등의 구분을 바르게 있는 그대로 구경의 지혜로 알고 조사하고 검증하고 분명히 알고 확실하게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다."(MA.i.43)
*"'해탈(vimutti)'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마음의 해탈(cittassavimutti)과 열반이다. 아라한은 모든 오염원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기 때문에 마음의 해탈을 해탈이라 한다. 열반은 확신함(adhimuttatta)이기 때문에 열반도 해탈이다.     
그래서 '바른 궁극의 지혜로 해탈했다(sammadanna vimutto)'라고 하는 것이다.(MA.i.43) 

 

물을 ··· 불을 ··· 바람을 ··· 존재들을 ··· 신들을 ··· 창조주를 ··· 범천을 ··· 광음천들을 ··· 변정천들을 ··· 광과천들을 ··· 승자천을 ··· 공무변처를 ··· 식무변처를 ··· 무소유처를 ··· 비상비비상처를 ··· 본 것을 ··· 들은 것을 ··· 닿아 안 것을 ··· 인식한 것을 ··· 동일한 것을 ··· 다른 것을 ··· 일체를 ··· 열반을 열반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안다. 열반을 열반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알면서 열반을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에서 생각하지 않고, 열반과 비교하여 생각하지 않고, 열반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완전히 알았음’이라고 나는 말한다." 

 

9. 비구들이여, 번뇌를 부수고, 청정한 삶을 성취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리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아라한인 비구도 땅을 땅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안다. 땅을 땅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알면서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 땅에서 생각하지 않고, 땅과 비교하여 생각하지 않고, 땅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땅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의 부서짐, 탐욕에서 벗어남 때문이다.

 

물을 ··· 불을 ··· 바람을 ··· 존재들을 ··· 신들을 ··· 창조주를 ··· 범천을 ··· 광음천들을 ··· 변정천들을 ··· 광과천들을 ··· 승자천을 ··· 공무변처를 ··· 식무변처를 ··· 무소유처를 ··· 비상비비상처를 ··· 본 것을 ··· 들은 것을 ··· 닿아 안 것을 ··· 인식한 것을 ··· 단일한 것을 ··· 다양한 것을 ··· 일체를 ··· 열반을 열반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안다. 열반에서 열반을 완전한 지혜로 알면서 열반을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에서 생각하지 않고, 열반과 비교하여 생각하지 않고, 열반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의 부서짐, 탐욕에서 벗어남 때문이다.

 

10. 비구들이여, 번뇌를 부수고, 청정한 삶을 성취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리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아라한인 비구도 땅을 땅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안다. 땅을 땅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알면서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 땅에서 생각하지 않고, 땅과 비교하여 생각하지 않고, 땅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땅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의 부서짐, 성냄에서 벗어남 때문이다.

 

물을 ··· 불을 ··· 바람을 ··· 존재들을 ··· 신들을 ··· 창조주를 ··· 범천을 ··· 광음천들을 ··· 변정천들을 ··· 광과천들을 ··· 승자천을 ··· 공무변처를 ··· 식무변처를 ··· 무소유처를 ··· 비상비비상처를 ··· 본 것을 ··· 들은 것을 ··· 닿아 안 것을 ··· 인식한 것을 ··· 단일한 것을 ··· 다양한 것을 ··· 일체를 ··· 열반을 열반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안다. 열반에서 열반을 완전한 지혜로 알면서 열반을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에서 생각하지 않고, 열반과 비교하여 생각하지 않고, 열반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의 부서짐, 성냄에서 벗어남 때문이다.

 

11. 비구들이여, 번뇌를 부수고, 청정한 삶을 성취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리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아라한인 비구도, 땅을 땅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안다. 땅을 땅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알면서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 땅에서 생각하지 않고, 땅과 비교하여 생각하지 않고, 땅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땅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의 부서짐, 어리석음에서 벗어남 때문이다.

 

물을 ··· 불을 ··· 바람을 ··· 존재들을 ··· 신들을 ··· 창조주를 ··· 범천을 ··· 광음천들을 ··· 변정천들을 ··· 광과천들을 ··· 승자천을 ··· 공무변처를 ··· 식무변처를 ··· 무소유처를 ··· 비상비비상처를 ··· 본 것을 ··· 들은 것을 ··· 닿아 안 것을 ··· 인식한 것을 ··· 단일한 것을 ··· 다양한 것을 ··· 일체를 ··· 열반을 열반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안다. 열반에서 열반을 완전한 지혜로 알면서 열반을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에서 생각하지 않고, 열반과 비교하여 생각하지 않고, 열반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의 부서짐, 어리석음에서 벗어남 때문이다.

12.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도 땅을 땅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안다(땅을 땅이라고 완전한 지혜로 잘 안다). 땅을 땅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알면서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땅을 땅이라고 완전한 지혜로 잘 알아 [자신을] 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땅에서 생각하지 않고([자신을] 땅에서 생각하지 않고), 땅과 비교하여 생각하지 않고([자신을] 땅으로부터 생각하지 않고), 땅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땅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여래는 끝을 완전히 알았음(여래는 그것을 철저히 알았음)'이라고 나는 말한다.  

 

*"여덟 가지 이유로 세존을 '여래(tathagata)'라 한다. ①그렇게 왔기(tatha agato) 때문에 여래(tathagato)라 한다. ②그렇게 갔기(tatha gato) 때문에 여래라 한다. ③그렇게 특징을 알았기(tathalakkhanam agato) 때문에 여래라 한다. ④진실한 법들을 완전히 깨달았기(tathadhamme yathavato abhisambuddho) 때문에 여래라 한다. ⑤그렇게 드러내었기(tathadassitaya) 때문에 여래라 한다. ⑥그렇게 말했기(tathavaditaya) 때문에 여래라 한다. ⑦그렇게 행했기(tathakaritaya) 때문에 여래라 한다. ⑧정복했다는 뜻에서(abhibhavanatthena) 여래라 한다.(MA.i.45)  

 

물을 ··· 불을 ··· 바람을 ··· 존재들을 ··· 신들을 ··· 창조주를 ··· 범천을 ··· 광음천들을 ··· 변정천들을 ··· 광과천들을 ··· 승자천을 ··· 공무변처를 ··· 식무변처를 ··· 무소유처를 ··· 비상비비상처를 ··· 본 것을 ··· 들은 것을 ··· 닿아 안 것을 ··· 인식한 것을 ··· 단일한 것을 ··· 다양한 것을 ··· 일체를 ··· 열반을 열반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안다. 열반에서 열반을 완전한 지혜로 알면서 열반을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에서 생각하지 않고, 열반과 비교하여 생각하지 않고, 열반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여래는 끝을 완전히 알았음'이라고 나는 말한다.

 

13.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도 땅을 땅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안다. 땅을 땅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알면서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 땅에서 생각하지 않고, 땅과 비교하여 생각하지 않고, 땅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땅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소망은 괴로움의 뿌리다.’라고 안 뒤에,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존재에게 늙고 죽음이 있다.’라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모든 점에서 여래는 갈애들의 부서짐, 탐욕의 떠남, 소멸, 포기, 내놓음으로부터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성취했다.’라고 나는 말한다.

 

물을 ··· 불을 ··· 바람을 ··· 존재들을 ··· 신들을 ··· 창조주를 ··· 범천을 ··· 광음천들을 ··· 변정천들을 ··· 광과천들을 ··· 승자천을 ··· 공무변처를 ··· 식무변처를 ··· 무소유처를 ··· 비상비비상처를 ··· 본 것을 ··· 들은 것을 ··· 닿아 안 것을 ··· 인식한 것을 ··· 단일한 것을 ··· 다양한 것을 ··· 일체를 ··· 열반을 열반으로부터 완전한 지혜로 안다. 열반에서 열반을 완전한 지혜로 알면서 열반을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에서 생각하지 않고, 열반과 비교하여 생각하지 않고, 열반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소망은 괴로움의 뿌리다.’라고 안 뒤에,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존재에게 늙고 죽음이 있다.’라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모든 점에서 여래는 갈애들의 부서짐, 탐욕의 떠남, 소멸, 포기, 내놓음으로부터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성취했다.’라고 나는 말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세존의 말씀에 기뻐하지 않았다.

 

*‘비구들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지 않았다.’는 na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를 옮긴 것이다. “세존의 말씀을 무슨 이유로 기뻐하지 않았는가? 알지 못했기(aññāṇaka) 때문이다. 그들은 이 경의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기뻐하지 않았다. 세존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을 다른 이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해 네 아승지겁(cattāri asaṅkhyeyyāni) 동안 바라밀(pārami)을 완성하시고서 일체지(sabbaññutā)를 얻으셨다. 그런 세존께서 어찌하여 그들이 알지 못하는 이런 법문을 하셨는가? 그것은 오직 그들의 자만심을 꺾기 위해서(māna-bhañjanattha)였다. 세존께서는 이들이 자만심을 꺾지 않고서는 도와 과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모든 법들의 뿌리에 대한 법문을 설하리라.’라고 법문을 시작하셨다. 
한때 세 가지 베다에 통달한 오백 명의 바라문 학도들이 세존의 법문을 듣고는 감각적 쾌락에서 위험을 보고 출리에서 이익을 보면서 세존의 곁으로 출가했다.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존의 말씀을 모두 습득하고서는 그 배움에 의지하여 자만이 생겼다.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즉시에 안다.”라고 생각하면서 세존을 존경하지 않았고, 그때부터 세존께 문안드리지도 않았고 법문을 들으러 가지도 않았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바로 이 ‘모든 법들의 뿌리에 대한 법문’을 설하셨고, 그들은 도무지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세존은 위대하시고, 견줄 이 없다고 자만심이 꺾여 세존께 문안드리고 법을 듣는 것에 성심을 다했다.  
그 뒤 한때 세존께서 지방을 순회하시다가 웨살리에 도착하여 고따마까 탑묘에 머무실 때 이 오백 명의 비구들의 지혜가 익은 것을 아시고 「고따마까 탑 경」(A3:123)을 설하셨다. 이 경을 듣고 이 오백 명의 비구들은 그 자리에서 무애해(paṭisaṃbhidā)를 갖춘 아라한이 되었다.”(MA.i.5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