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칙 세존주행 世尊周行
[본칙]
세존께서 태어나셨을 때 일곱 걸음 두루 걷고서 사방을 둘러본 후,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하
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나만이 존귀할 뿐이다.”〈운문문언(雲門文偃)의 염:
“내가 당시에 그 광경을 보았다면, 한 방에 때려죽이고 개에게 먹이로 주어서 천하의 태
평을 도모했을 것이다.”〉1)
世尊初生下時, 周行七步, 目顧四方, 一手指天, 一手指地
云, “天上天下唯我獨尊.” 〈雲門偃拈, “我當時若見, 一棒打殺, 與狗子
喫却, 媿2)圖天下大平.”〉
1) 이 공안에 대한 역대 조사들의 판단은 운문의 이 평가를 동시에 제기하여 이루
어지는 경향이 있다. 본칙을 평가하는 이하의 염·송들에서 운문의 말이 가장
중심에 배치되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운문의
말을 본칙과 함께 붙여둔 이유는 여기에 있다.『雲門廣錄』권중 大47 p.560b16
등에 나온다.
2) ‘貴’가 옳다.
[설화]
이 공안은 『보요경(普耀經)』의 구절에 따른다.3) 이 경에 다음과 같이 전
한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찰제리왕(刹帝利王)4)의 궁전에
서는 커다란 지혜의 광명이 퍼져 시방세계를 비추었고, 땅에서는 황금 연
꽃이 솟아올라 자연스럽게 부처님의 두 발을 받쳤다. 동쪽과 서쪽 그리고
남쪽과 북쪽으로 각각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두 손을 나누어 하늘과 땅을
가리킨 다음 ‘하늘 위와 아래 그리고 사방과 사유에 나보다 존귀한 자 없
다’라고 사자후를 내지르셨다.”5)
3)『普曜經』권2 大3 p.494a26, 권4 p.508c25에 나오는 내용의 대체에 근거하며 구
절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耀’는 ‘曜’와 통한다. 이 밖에『長阿含經』권1「大本經」
大1 p.4b28에는 비바시보살(毗婆尸菩薩)의 탄생담으로 나오고,『賢愚經』권10
大4 p.418c23에 나오는 석가모니불의 탄생담 등도 모두 내용상 일치한다.
4) 찰제리는 ksatriya의 음사어. 지주(地主)·왕종(王種) 등으로 한역한다. 인도의
사성계급(四姓階級) 중 바라문에 이어 두 번째 계급이며, 왕족·귀족·무사 등에
속한다. 부처님은 이 계급에 속하는 정반왕(淨飯王 śuddhodana)의 태자로 태
어났다.
5) 이상은『景德傳燈錄』권1「釋迦牟尼佛傳」大51 p.205b7 등에『普耀經』의 경문
으로 인용되어 있지만,『普耀經』자체에는 정확히 일치하는 구절은 보이지 않는
다. 이 경이 부처님의 탄생부터 초전법륜(初轉法輪)에 이르기까지의 행적을 위
주로 한 전기라는 점에서 근거로 삼은 것이라 추정된다.
두루 걸었다:주변을 돌며 일곱 걸음 걸었다는 것인가? 시방으로 각각 일
곱 걸음 걸었으니 발길을 두루 옮기며 일곱 걸음 걸었다는 뜻이다. 두루
일곱 걸음 걸은 지위는 제7위 6)에 해당되기 때문에 일곱 걸음 걸었다고 한
것일까? 인도[西天]에서는 7을 최대의 수[極數]로 생각하기 때문인가? 아
니면 칠각지7)의 상서로운 감응을 나타내는 것인가? 용왕이 땅에 떨어져
일곱 걸음 걷는다고 전하는데, 세존은 사람 중에 용왕과 같은 존재이므로
일곱 걸음 걸었다는 뜻일까? 아니면 사자가 땅에 떨어져 일곱 걸음 걷는
다고 하는데, 세존은 사람 중에 사자와 같은 존재이므로 일곱 걸음 걸었다
는 뜻일까?8)
6) 어떤 7위인지 분명하지 않다. 십주위(十住位) 중에서 제7위는 더 이상 이승(二
乘)으로 물러나지 않는 지위이지만, 이것을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다.
7) 七覺支. saptabodhyangāni. 보리의 전개를 돕는 일곱 가지의 법. 칠각지의 ‘覺’
은 보리(菩提)를 뜻하는 말이다. 37도품(道品) 중 제6품의 행법(行法)이다. 칠등
각지(七等覺支)·칠편각지(七遍覺支)·칠보리분(七菩提分)·칠보리분보(七菩提
分寶)·칠각분(七覺分)·칠각의(七覺意)·칠각지(七覺志)·칠각지법(七覺支法
칠각의법(七覺意法) 등이라고도 한다.『中阿含經』권11「七寶經」大1 p.493a18,
『法蘊足論』권8 大26 p.491c3 등 참조. 칠각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염각지
(念覺支):마음이 명백하여 항상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잊지 않고 생각하는
것. ②택법각지(擇法覺支):지혜에 의지하여 진실한 법을 선택하고 허망한 법을
버리는 것. ③정진각지(精進覺支):오로지 정법에 힘쓰면서 게으르지 않은 것.
④희각지(喜覺支):정법을 얻고 기뻐하는 것. ⑤경안각지(輕安覺支):몸과 마음
이 가볍고 즐거우며 편안한 것. 의각지(猗覺支)라고도 한다. ⑥정각지(定覺支):
선정(禪定)에 들어가 마음이 산란(散亂)하지 않은 것. ⑦사각지(捨覺支):마음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 집착이 없고 평형을 유지하는 것.
8) 용왕과 사자의 비유는『長阿含經』권1「大本經」大1 p.4c6,『修行本起經』권상
大3 p.464b1 등에 근거한다.
사방을 둘러보았다:네 가지 지견(知見)9)을 나타낸 것인가? 네 가지 지혜10)
의 보리(菩提)를 나타낸 것인가? 아니면 사성제(四聖諦)의 상서로운 감응
인가?『불조전심게(佛祖傳心偈)』11)의「문답장(問答章)」에 다음과 같이 전
한다. “‘사방을 둘러보았다는 뜻은 어떤 것인가?’ ‘사상12)을 떠나 해탈을
증득하려는 염원을 나타낸다.’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킨 뜻은 어떤 것인
가?’ ‘삼계(三界)의 속박을 벗어나 인천(人天)의 중생을 이롭게 하겠다는
뜻을 나타낸다.’ ‘다른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킨 뜻은 어떤 것인가?’ ‘삼악도
(三惡途)의 중생을 구제하여 결정코 윤회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는 뜻을
나타낸다. 법이란 이와 같다는 취지를 나타낸 것이다.’”
10) 사지(四智). 유식(唯識)에서 팔식(八識)·칠식(七識)·육식(六識)·전오식(前五
識) 등 네 가지 식이 전변(轉變)하면서 성취하는 네 가지 무루지(無漏智). 곧
대원경지(大圓鏡智)·평등성지(平等性智)·묘관찰지(妙觀察智)·성소작지(成所作
智) 등을 말한다.
11) 미상의 문헌이며, 수록된 문답도 출처를 찾을 수 없다.
12) 四相. 모든 법의 생멸변화 과정인 생(生)·주(住)·이(異)·멸(滅) 등 네 가지 차
별된 현상을 말한다.
일곱 걸음 두루 걷고서 ~ 땅을 가리키며:다름 아닌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나만이 존귀할 뿐이다’라는 한 구절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렇게
말한 까닭은 무엇일까? 진실한 법계(法界)의 도리를 증득하여 영원히 무
명(無明)을 끊고 최상의 정각(正覺)을 이루면 천계와 인간계 전체에서 가
장 존귀하게 되므로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 위와 하늘 아
래에 부처님과 같은 자 없고, 시방세계 전체에도 비교할 자 없도다. 세간
에 있는 사람 다 보았으나, 그 모든 사람 중에 부처님과 같은 자 없다네”13)
라고 하였다. 대혜(大慧)는 “석가노자는 도사천14)에서 태양처럼 밝은 코끼
리15)를 타고 마야부인의 모태로 내려왔다. 이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
어날 때의 모습, 바로 그것을 보여준 것이다. ‘태어나셨을 때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고’라 운운한 말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날 때의 본보기, 바
로 그것을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16)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바로 이 소식은
싯다르타태자 한 사람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진(悟眞)17)선
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 석가노자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두루 일곱 걸음
걸었다고 하니, 그렇게 기특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상좌18)들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무슨 기특한 일이 있었던가? 만약 없었다고 생각한
다면, 눈앞에서 보고도 회피하는 짓이다.”
13)『佛本行集經』권4 大3 p.670a7에 따르면, 석가모니불께서 과거세에 불사다타아
가도아라가삼막삼불타(弗沙多陀阿伽度阿羅呵三藐三佛陀) 곧 불사불(弗沙佛)을
찬탄하여 지은 게송이다.
14) 覩史天. 도솔천(兜率天 Tusita, Tusita, Dgah-ldan)의 다른 음사어.
15) 향상(香象). 평범한 코끼리 열 마리와 비견되는 큰 힘을 가진 코끼리. 태양과 같
이 밝다는 묘사는 부처님의 태몽인 흰 코끼리 곧 백상(白象) 또는 백향상(白香
象)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16)『大慧語錄』권5 大47 p.832b21.
17) 도오오진(道吾悟眞)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나, 인용문의 출처는 미상이다.
18) 上座. 수좌(首座)와 같은 말. 법문 때 종사가 학인들을 올려 부르는 말로 쓰인다.
‘오직 나만이’라고 할 때의 나: 인아(人我)19)라고 할 때의 자아인가? 법신(法
身)과 같은 대아(大我)20)인가? 인아의 자아 이외에 결코 법신의 대아는 없
다는 뜻이다. 곧 오 척(尺)의 가죽 주머니21)가 마음껏 삼계(三界)를 밟으며
어떤 한곳에 있다가 다른 곳으로 자유롭게 옮겨 다니니, 법계 전체를 두루
망라하는 존재는 오로지 자신 하나뿐인 것이다. 고덕이 “봄 산은 겹겹이
어지럽도록 푸르고, 가을 강물은 바닥까지 맑구나. 아득히 드넓은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서서 바라보니 끝나는 곳 어디인가?”22)라고 하였다. 하하
하! 이 무슨 뜻인가? 동서남북이 온통 나일 뿐이로다.
19) 법아(法我)와 함께 두 가지 근본 집착 중 하나. 주관인 인(人)이 실체로 존재한
다고 착각하는 집착을 말한다. 아집(我執)과 같은 뜻이다.
20) parmātman, mahātman. 인아의 집착을 떠나 자아로서『大般涅槃經』에서 말하
는 상(常)·락(樂)·아(我)·정(淨)이라는 네 가지 덕[四德] 중의 아와 통한다. 열
반에서 성취된 근본적인 자아로서 무아(無我)와 다르지 않고 자유자재한 속성
을 지닌다. 부처님의 별명이기도 하며, 인아의 견해를 없애고 모든 중생을 포괄
하여 이익을 주는 보살의 진실한 자아를 가리키기도 한다. “대아가 있으므로 대
열반이라 하고, 열반에서 성취된 무아의 경지는 완전한 자재로움이므로 대아라
한다.”(『大般涅槃經』권23 大12 p.502c15. 有大我故, 名大涅槃, 涅槃無我大自
在故, 名爲大我.);“대아란 부처님의 별명이다.”(『大日經疏』권16 大39 p.749
c24. 大我者, 佛之別名也.);“대의(大義)란 모든 중생에게 이익을 준다는 뜻이고,
대아란 모든 중생을 자기 자신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여기서 보살은 자아에 집착
하는 견해를 소멸하고 대아의 견해에 의지하여 중생에게 이익을 주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가리켜 ‘대의는 대아에 의존한다’고 한다.”(『大乘莊嚴經論』
권7 大31 p.626a4. 大義者, 利益一切衆生故;大我者, 以一切衆生爲自己故. 此中
菩薩滅自我見, 依大我見, 作衆生利益事, 是謂大義依大我.)
21) 오척피낭(五尺皮囊). 육신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말.
22) 설두중현(雪竇重顯)의 말.『雪竇語錄』권2 大47 p.679c14.
운문이 “내가 당시에 그 광경을 보았다면 ~ 천하의 태평을 도모했을 것이다”라고 한
말:세존께서 이와 같이 하신 말씀(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난을 평정하여
정도로 돌아가게 함23)으로써 태평성대를 이룬 것이지만 바람도 없는 데서
물결을 일으키고 아무 일도 없는 상황에서 일을 만든 격이니, 난세의 영웅
이면서 한편으로는 태평성대를 해치는 간교한 도적이라는 뜻이다. 곧 운
문의 기상은 왕과 같았으나 불법의 도리조차 없었으니 본래 태평성대 자
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처음부터 마음에 품고 계시던 생각
을 대신 펼친 것이다.24) 그러므로 “이 깊은 마음으로 ~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 한다”25)라고 한 것이다.
23) 발란반정(撥亂返正). 혼란을 물리치고 바르게 다스려지는 상태로 돌려놓는 것.
변란의 뿌리를 뽑고 평정한 상황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24) 세존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씀은 처음부터 어떤 분별의 단서도 없는
화두였고 운문은 바로 그 본의를 보여주기 위하여 그렇게 말했다는 뜻이다.
25)『楞嚴經』에서 제자 아난이 부처님의 덕을 찬탄한 게송을 생략하여 표현한 말.
“이 깊은 마음으로 무수하게 많은 불국토를 받드노니, 이것을 일러 부처님의 은
혜에 보답하는 것이라 한다.”(『楞嚴經』권3 大19 p.119b15. 將此深心奉塵刹,
是則名爲報佛恩.)
또한 장경초각(長慶超覺)대사는 법좌에 올라앉아 잠깐 침묵하고 있다가
“기틀을 남김없이 보여 그대들이 자세히 살피도록 해 주었으니,26) 귀머거
리나 벙어리와 같이 되어야 비로소 깨달음의 실마리가 드러날 것이다27)”
라고 했다.
26) 잠깐 침묵하고 있었던 순간에 바로 자신의 기틀을 모조리 드러냈다는 뜻.
27) 언어에 의존하지 않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언어 이전의 그 경계에 이르러야
깨달음의 실마리[頭角]가 드러난다는 뜻. 법좌에 올라앉아 잠깐 침묵하고 있었
던 그 경계를 가리킨다.
또한 어떤 사람은 “운문이 제기하지 못했던 점을 시험 삼아 주석해 주
겠다”라고 하며, 다른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알아차리면 발밑의 일
이다. 곧 람비니(藍毘尼)28) 꽃동산[花園]의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모친
의 오른쪽 옆구리로부터 탄생하여 꼿꼿하게 섰을 때가 첫 번째인 의륜(意
輪)으로 잠깐 침묵하는 문[良久門]이며, 두루 일곱 걸음 걷고 하늘과 땅을
가리킨 것은 두 번째인 신륜(身輪)으로 뛰어난 작용을 나타낸 문[頭角作
用門]이며, 하늘 위와 하늘 아래 홀로 존귀하다고 한 것은 세 번째인 구륜
(口輪)으로 언설문(言說門)이다. 그러므로 해인(海印)이 ‘왕궁에 강림하자
마자 본래의 모습을 보이셨는데’라고 시작하는 게송을 읊었던 것이다.” 또
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세존께서 태어나셨을 때’라고 한 것은 총
괄하는 구절[摠句]이고, ‘일곱 걸음 두루 걸으셨다’라고 한 것은 한 몸으
로 시방세계에 모두 응한 것이니 본체에서 작용을 일으킨 것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라고 한 것은 사방을 모두 한눈에 모은 것이니 작용을 거두어
본체로 돌아간 것이다.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켰다’라고 한 것은 하늘을 떠받들고 땅을 받쳐 올린 것이니 중간 구
절이고, ‘하늘 위와 하늘 아래’라고 운운한 것은 마지막 구절이다.”
28) Lumbinī. 선각왕(善覺王 Suprabuddha)이 자신의 부인을 위하여 람비니에
세운 화원(花園)으로 부처님 탄생지이다. 중인도 구리(拘利)와 가비라위(迦毘羅
衛) 사이에 위치한다.
이 해설은 각 문구를 푸는 솜씨가 교묘하고 해설의 뜻이 원만하게 갖추
어져 있으나, 염송가(拈頌家)들이 드러낸 것에는 이러한 말은 없다. 아마
도 제멋대로 단정하고 생각을 짜낸 해설인 것으로 보인다.
此話, 普耀經文. 本經云,“ 佛初生下時, 刹帝利王家, 放大智
光明, 照十方世界, 地湧金蓮花, 自然奉雙足. 東西及南北,
各行於七步, 分手指天地, 作大師子吼, 上下及四維, 無能尊我者.”
周行者, 周而行七步耶? 能於十方, 各行七步, 則周足而行七步也.
周行七步, 位當第七故, 行七步耶? 西天以七爲數極故耶?
表七覺支瑞應耶? 龍王墮地行七步, 世尊人中龍王故, 行七步耶?
師子墮地行七步, 世尊人中師子故, 行七步耶?目顧四方者,
表四知見耶? 表四智菩提耶? 四聖諦之瑞應耶?佛祖傳心偈問答章云,
“ 問,‘ 目顧四方意旨, 如何?’ 答,‘ 表離四相, 願證解脫.’ 問,‘ 一手指天意旨,
如何?’ 答,‘ 表出三界,利樂人天.’ 問, ‘一手指地意旨, 如何?’ 答, ‘表救三途,
定出輪廻, 表法則如是也.’” 周行七步云云指地者, 只要道箇天上天下
唯我獨尊的一句. 伊麽道得者, 證實法界, 永斷無明, 成最正覺, 天上人間,
最尊最貴故, 如是道得也. 故云,“ 天上天下無如佛, 十方世界亦無比.
世間所有我盡見, 一切無有如佛者.” 大慧云, “釋迦老子, 從覩史天,
乘日輪香象, 降摩耶夫人胎. 只是示見箇人人生相地時節. 及至初生,
一手云云, 只是示見箇人人生相地樣子.” 則此箇消息, 非局悉達一人.
故悟眞禪師云, “他釋迦老子. 才生下時, 周行七步云云, 有如是奇特.
只如上座初生下時, 有什麽奇特? 若道無, 當面諱却.” 我者,人我之我耶?
法身大我耶? 人我之我外, 更無法身大我也. 則五尺皮囊, 橫踏三界,
從何處轉何處, 則周羅法界, 唯自一人.古德云, “春山疊亂靑, 秋水漾虛碧.
寥寥天地間, 獨立望何極?” 阿呵呵, 是什麽? 南北東西唯是我.
雲門云我當時若見云云者, 世尊伊麽道, 撥亂返正, 致得太平, 無風起浪,
無事中起事, 是亂世之英雄, 太平之奸賊也. 則雲門氣宇如王, 都無佛法道理,
則本太平也. 此暢佛本懷也. 故云,“ 將此深心, 至佛恩.”又長慶超覺大師,
上堂, 良久云, “盡其機, 與伊相看,29) 如聾若啞, 始露頭角.” 又 “雲門提不起,
試註過與.” 又 “認着卽脚之事, 則藍毘尼苑, 無憂樹下, 從母右脇誕生,
端然立地時, 第一意輪, 良久門;周行云云指地, 第二身輪, 頭角作用門;
天上天下至尊者, 第三口輪, 言說門. 故海印頌云,‘ 才降王宮示本然云云’也.”
又“ 才生下時, 摠句. 周行七步, 一身應於十方,則從體起用. 目顧四方,
四方共於一目, 則攝用歸體. 一手云云者, 撑天撑地, 則中間句也.
天上天下云云者, 末後句也.” 此說釋文巧妙, 說義圓備, 然於拈頌家發
揚無此論. 恐是臆斷圖度之說.29)
저본의 ‘著’을 대교본의 ‘看’으로 바로잡는다.
대홍보은(大洪報恩)의 송
동·서·남·북,상·하와 사유30)로다.
하늘은 높고 땅은 두터우며,31)
토끼는 뛰고 까마귀는 난다.32)
성도했을 당시 마가다국의 법령33)에서,
눈앞에 드러난 기틀을 거의 잃어버릴 뻔했구나!34)
부처님이 49년35) 동안 거듭 설명하셨으나,
페르시아36) 사람은 원래 곤륜아37)일 뿐이다.
대홍이 일어나서 큰소리로 말했다. “석가노자께서 오셨다!” 다시 좌우
로 살펴보고 말했다. “시자야, 차를 달여38) 오거라!”
大洪恩頌, “東西南北, 上下四維. 天高地厚, 兎走烏飛. 當時摩
竭令, 幾喪目前機! 四十九年重指注, 波斯元是崑崙兒.” 師乃起
立高聲呌云,“ 釋迦老子來也!” 復左右顧視云,“ 侍者, 點茶來!”
30) 四維. 사우(四隅)라고도 한다. 동서남북 사방(四方)의 사이에 해당하는 간방(間
方)으로서 남동·남서·북동·북서의 방위를 가리킨다. 사방과 사유와 상하를 합
하여 시방(十方)이 되며, 이것은 공간적으로 본 세계 전체를 나타낸다.
31) 천고지후(天高地厚).『詩經』에 나오는 말이다. “하늘이 아무리 높다 해도, 몸을
굽히지 않을 수 없고, 땅이 아무리 두텁다 해도, 조심해서 걷지 않을 수 없다.”
(『詩經』「小雅 正月」. 謂天蓋高, 不敢不局;謂地蓋厚, 不敢不蹐.)
32) 토주오비(兎走烏飛). 땅에서 뛰는 토끼는 음(陰)으로서 달[月]을, 하늘을 나는
까마귀는 양(陽)으로서 해[日]를 상징한다. 세월이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상의
변화를 나타낸다.
33) 마갈령(摩竭令). 마가다국에서 성도한 뒤 삼칠일 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은
것. 마갈이란 마가다(摩竭陀 Magadha)의 음사어 중 하나. 궁극적인 도리는 말
로 표현할 수 없다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도리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고사 중
하나로 쓰인다. 이것은 불이법(不二法)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유마거
사의 침묵[杜口毘耶]과 대칭되는 구절이다.
34) ‘동서남북 ~ 까마귀는 난다’까지의 구절에 나타난 모든 세간의 현상은 탄생 이
전이나 이후나 항상 드러나 있는 기틀이며 이것이 진실인데, 성도하신 뒤의 침
묵에 무슨 깊은 뜻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알지 못할 뻔했다는 뜻.
35) 부처님이 성도한 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설법한 기간을 말한다.
36) 파사(波斯). 페르시아의 음차이다.
37) 崑崙兒. 곤륜자(崑崙子)·곤륜노(崑崙奴)라고도 한다. 중국의 서쪽 즉 페르시아
지역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일대(곧 서역)의 이민족을 중국인들이 낮추어 부르
는 말이다. 곱슬머리에 까만 피부[卷髮黑身]가 특징이다. 페르시아인과 곤륜아
는 말만 다를 뿐 가리키는 대상이 같은 것처럼 49년 동안 부처님께서 지시한 다
양한 가르침은 ‘눈앞에 드러난 기틀’ 바로 그것에 귀착된다는 뜻이다.
38) 점다(點茶). 차 마시는 방법 중 하나. 분말차에 물을 붓고 조리[茶筅]로 저어서
거품을 걷어내고 마신다. ‘點’은 풀잎을 가루로 부순다[草葉壞]는 뜻이다. 이것
으로 볼 때 점다는 본래 분말차와 관련된 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수지
않은 찻잎은 엽차(葉茶)라고 하는데, 이것을 물에 넣고 끓이는 방법도 이전의
언어 습관을 따라 점다라 한다. “『문공가례』에서 말하였다. ‘… 옛날 사람들은
차를 마실 때 가루로 된 찻잎[粉末]을 이용했다. 점다라는 말은 먼저 말차(末茶)
를 다기에 넣고 끓인 물을 붓고서 냉수를 떨어뜨린 다음 조리를 이용해 골고루
섞는다. 요즘 사람들은 물을 끓여 엽차를 달이는데, 이것도 여전히 점다라고 하
는 이유는 남아 있는 옛날 말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다.’”(『禪林象器箋』권17
禪藏 p.1286. 文公家禮云, ‘…… 古人飲茶用末. 所謂點茶者, 先置末茶于器中,
然後投以滾湯, 點以冷水, 而用茶筅調之. 今人燒湯煎葉茶, 而此猶云點茶者, 存舊也.’)
[설화]
동서남북 ~ 까마귀는 난다:‘이 법은 법의 위치에 머문다’39)라는 뜻이다.
당시 마가다국의 법령에서 ~ 거의 잃어버릴 뻔했구나:‘세간의 차별상도 항상
머물러 있다’40)라는 뜻이다.
부처님이 49년 동안 ~ 곤륜아일 뿐이다:모든 사람이 각자 본래부터 성취하
고 있음을 뜻한다.41) 옛날 그대로 변함없이 눈은 가로로 붙어 있고, 코는
세로로 붙어 있다42)는 도리를 49년 동안 거듭 설명했다는 뜻이다.
일어나서 ~ 석가노자께서 오셨다:다만 마지막으로 궁극적인 한마디를 하고
자 했던 것이다.43)
시자야, 차를 달여 오거라:이 도리를 아직 뚜렷하게 알아차리지 못해서 다
시 건넨 말이다.44)
大洪:東西至烏飛者, 是法住法位也. 當時至目前機者, 世間
相常住也. 四十至崑崙兒者, 人人箇箇, 本成本就也. 依舊, 眼
橫鼻直, 則四十九年, 重指注也. 起立至來也者, 只要末後道得
也. 侍者點茶來者, 是道理未惺惺地也.
39)『法華經』권1「方便品」大9 p.9b10.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시거나 나타나시지
않거나 간에 관계없이 상주불변하는 진리를 나타내는 말. 제법실상(諸法實相)
과 같은 뜻이다.
40) 세간의 모든 차별상이 그대로 실상과 통한다는 뜻.
41)『法華經』의 구원성불(久遠成佛) 사상에 입각한 해설이다. 부처님은 현세에 보리
수 아래서 비로소 성불한 것이 아니라 오래전 과거세에 이미 성불했다는 구원
성불설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한 말이다.
42) 안횡비직(眼橫鼻直). 분명히 일상의 그 어디에나 드러나 있어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지만 분별하여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본분의 이치를 나타낸다.『白雲守
端廣錄』권1 卍120 p.400b17,『宏智廣錄』권9 大48 p.111b25 등에 나온다.
43) ‘석가노자께서 오셨다’라는 말은 말후구(末後句) 곧 궁극적인 화두로써 제시한
것이라는 뜻이며, 눈앞의 기틀을 직접 보여준 것이다.
44) 바로 앞에서 한 말후구를 알아차리지 못해서 또 다시 ‘차를 달여 오라!’고 하는
‘눈앞의 기틀’을 제시했다는 뜻이다.
해인초신(海印超信)의 송
왕궁에 강림하자마자 본래의 모습을 보이셨는데,
일곱 걸음 걷고서 다시 선언하시는구나.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가리켰건만 어떤 자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오직 우레와 같은 소리만 대천세계45)에 울려 퍼지네.
당시 달갑지 않게 여기던 자가
취모검46)을 빼어 들었다면, 누가 감히 앞으로 나섰으랴!
海印信頌, “纔降王宮示本然, 周行七步又重宣. 指天指地無人
會, 獨震雷音徧大千. 當時若有不甘者, 略擧吹毛孰敢先!”
45) 大千世界. mahāsāhasra-lokadhātu, mahāsahassa-lokadhātu. 인도의 우주관.
고대 인도인들은 사대주(四大洲)와 해·달 그리고 제천(諸天)을 하나의 소세계(小
世界)라 하고, 천 개의 소세계를 합하여 소천세계(小千世界)라 하였다. 또 천 개
의 소천세계를 합하면 중천세계(中千世界)가 되고, 천 개의 중천세계를 합하면
대천세계가 된다. 보통 대천세계라 하면 사람이 사는 다양한 모든 세계의 모습
을 가리킨다. 소천·중천·대천을 모두 들어서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
한다.
46) 吹毛劍. 칼날에 머리카락을 대고 바람을 불면 잘려나갈 정도로 예리한 칼이다.
어떤 말과 행위도 받아들이지 않는 본분의 수단을 나타낸다.
[설화]
송에 나온 말 중에 이미 뜻이 해석되어 있다. ‘당시 ~ 감히 앞으로 나섰
으랴!’라는 말은 운문이 개에게 먹이로 주겠다는 취지와 같다. 아래 나오
는 보령인용의 송도 이런 뜻이다.
海印:話中已消釋. 當時至孰敢先者, 雲門與狗子喫却之義也.
下保寧勇頌, 亦此義也.
정엄수수(淨嚴守遂)의 송
봄기운을 받아 위도 아래도 온통 곱디곱고,
비 내린 뒤 교목 숲에는 두견새가 우는구나.
인적 드문 그림 같은 누각의 달 밝은 밤에,
취해 노래하고 흥겹게 마시는데 눈앞에 꽃잎 지네.
淨嚴遂頌, “承春高下盡鮮姸, 雨過喬林呌杜鵑. 人靜畫樓明月
夜, 醉歌歡酒落花前.”
보령인용(保寧仁勇)의 송
혼돈47)이 나누어지기 전에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하늘과 땅이 갈라지자마자 일이 은근히 드러났다네.48)
타고난 기량으로 남다른 말과 행위를 능란하게 보였지만,
그 시작부터 남에게 눌려서 한바탕 희롱을 당했도다.49)
保寧勇頌, “混沌未分人未曉, 乾坤纔剖事潛彰. 天生伎倆能奇
怪, 末上輸他弄一場.”
47) 混沌. 천지와 만물이 나누어지기 이전의 무차별한 상태. 여기서는 세존이 탄생
하기 이전, 또는 어떤 말과 소식도 드러내기 이전의 상황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다.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의 소식인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과 통한다.『莊
子』 內篇「應帝王」에 나오는 말이다.
48) 모태에서 탄생한 다음, 사람들이 분별하고 말한 대상이 발생했다는 말.
49) 그 언행은 대단히 탁월했지만 운문에게 의중을 간파당했다는 말. 운문이 부처
님의 뜻을 바르게 알아차렸다는 뜻이다.
삽계일익(霅溪日益)의 송
일곱 걸음 걷고 온몸을 드러내니,
천상과 인간 중에 비교할 자 없도다.
새벽에 떠나면 아무도 모른다 하지 말고,
통금을 어기고 다니는 사람이 있음을 알라.50)
霅溪益頌, “周行七步露全身, 天上人閒絶等倫. 莫道早行人不
見, 須知有夜行人.”
50) 야간 통행을 금지하는 법을 어기고 밤중에 돌아다니는 자는 운문을 가리킨다.
부처님의 남다른 언행은 법을 지키고 통금이 해제되었을 때 가장 빨리 떠난 것
에 비유된다. 탁월한 것으로 위장한 부처님의 언행은 법과 같은 어떤 금지의 틀
도 인정하지 않는 운문에 의하여 화두로서의 정체를 드러냈다는 암시이다. “새
벽에 일어났다고 말하지만, 또한 통금을 어기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다.”(『雲
門廣錄』권중 大47 p.562c6. 謂言侵早起, 更有夜行人.)
자수회심(慈受懷深)의 송
한 번의 쇳물로 주물해낸 쇠 탄알이여!
둥글둥글하여 집게와 망치로 다듬을 필요도 없네.
집어 들고 만 길 봉우리에서 쏘아,
하늘 끝 흰 봉황51)을 맞혀 떨어뜨리리.
慈受頌,“ 一火鑄成金彈子! 團 都不費鉗鎚. 拈來萬仞峯頭
放, 打落天邊白鳳兒.”
51) 백봉(白鳳). 뛰어난 인물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부처님을 비유한다.
취암종의 송
천 년 묵은 돌호랑이 기린을 낳으니,52)
외뿔 달린 온몸이 오색으로 번득이네.
황금 자물쇠와 옥 빗장53) 모두 잡아끊고서,
비로자나불 법계에서 북 울리며 전투를 벌이네.54)
翠嵓宗頌, “千年石虎産麒麟, 一角通身五彩明. 金鎖玉關渾掣
斷, 毗盧界內鼓煙塵.”
52) 천 년 전에 부처님이 제시한 관문을 기린과 같이 탁월한 운문이 타파했다는 뜻
이다.
53) 금쇄옥관(金鎖玉關). 금과 옥으로 만들어진 귀한 물건이지만, 가두고 막는 장애
에 불과하다. 부처님이 영웅적이고 귀한 언행을 전한 듯하지만 사실은 뚫고 나
가야 하는 화두로 설정한 것이므로 그대로 따른다면 그것에 속박될 뿐이다.
54) 부처님을 부정한 운문의 평가에 대해 한 판의 승부를 펼쳤다는 말로 표현한 것
이다. 고(鼓)는 전투를 할 때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울리는 북, 연진(煙塵)은
전장(戰場)에서 일어나는 연기와 먼지이다.
원오극근(圜悟克勤 : 불과극근)의 송
오른쪽 옆구리에서 금빛 몸55)으로 탄생하니,
아홉 마리 용이 향기로운 물을 뿜어주었다.56)
위풍당당하게 사방으로 내딛는 걸음마다,
그 주변에 연꽃이 피어났다.
처음부터 근본적인 기틀57)을 베풀었으니,
고상한 기풍은 예부터 지금까지 늘 드높았다.
당시에 그 뜻을 알아차린 자가 있었다면,
대수롭지 않게 그 낮도둑58)을 사로잡았을 것이다.59) 이!60)
佛果勤頌,“ 右脇誕金軀, 九龍噴香水. 嶷嶷步四方, 周匝蓮花
起. 末上先施第一機, 高風亘古鎭巍巍. 當時有箇承當得, 等閑
擒下白拈賊. 咦!”
55) 금구(金軀:金身). 부처님의 몸은 황금색의 금색신(金色身)으로 인식되는데, 황
면노자(黃面老子)·황면구담(黃面瞿曇)·황면노(黃面老)·황두대사(黃頭大士)·
황두노(黃頭老)·황두(黃頭) 등이라고도 한다. 불상을 황금색으로 도색하는 것
도 같은 맥락이다.
56) 『過去佛分衛經』大3 p.452b1,『普曜經』권2 大3 p.494b1 등에 나오는 이야기.
57) 제일기(第一機). 근본적인 기틀. 또는 그런 기틀을 알 수 있는 최상의 근기를 뜻
한다. 여기서는 어떤 분별의 방편도 통하지 않는 세존의 화두를 가리킨다. 간화
선의 관점에서 보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은 ‘근원적 자아’ 등과 같은
관념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이 게송을 읊은 원오극근의 다음 말에 그 뜻이 드
러난다. “만일 근본적인 기틀로써 학인을 가르친다면 단지 그에게 ‘남의 집 종
노릇이나 하러 갈 놈!’이라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대가 ‘이와 같은 일은 어
떤 뜻인가?’라 묻는다면 더 이상 가르칠 방편이 없다. 단지 어떤 뜻이나 도리도
없어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뿐이다. 만일 이 말에 대하여 그 자리에서 알아차
리고 더 이상 헤아리지 않는다면 백수자·마삼근·일구흡진서강수 등의 화두와
조금도 차별이 없을 것이다.”(『圜悟語錄』권13 大47 p.774a3. 若是第一機爲人,
只消向他道, ‘于迪客作漢!’ 爾問, ‘與麽事作麽?’ 更無方便. 只是沒義理難話會. 若
於此直下承當去, 更不 擬議, 則與柏樹子, 麻三斤, 一口吸盡西江水, 更無差別.)
58) 백염적(白拈賊). 대낮에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 대낮에 도둑질을 하려면 재
빨라야 하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달아나야 한다. 문답하는 상대의 마
음을 잘 포착하여 자신의 선기(禪機)를 전광석화와 같이 발휘하고, 어떤 자취
도 남기지 않는 뛰어난 종사를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여기서는 부처님
을 비유한 말이다. “이 노스님은 마치 낮도둑과 아주 흡사하여 누구든 입만 열
었다 하면 그 눈동자를 바꾸어 놓았다.”(『碧巖錄』30則 「評唱」大48 p.169c9.
這老漢, 大似箇白拈賊相似, 爾纔開口, 便換却爾眼睛.)『景德傳燈錄』권12「臨
濟傳」大51 p.290c22,『雪竇語錄』권1 大47 p.676c6,『碧巖錄』30則「評唱」
大48 p.169c9 등에 나오는 말이다.
59) 부처님이라는 낮도둑의 속셈을 포착하는 또 하나의 낮도둑을 가리킨다. 원오는
다른 곳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둑이라야 도둑을 제대로 알아보고, 또 하나
의 쐐기로써 박힌 쐐기를 뽑는다.”(『圜悟語錄』권19 大47 p.805a7. 是賊識賊,
以楔出楔.)
60) 咦. 주위를 끄는 말이다. 운문의 삼자선(三字禪)이 잘 알려져 있다. “운문은 학인
을 만날 때마다 뚫어져라 돌아보고[顧]는 ‘비추어 보라[鑑]’라고 하거나 ‘이(咦)!’
라고 외쳤는데, 기록하는 자가 (동작과 말을 하나로 섞어서) ‘고감이(顧鑑咦)’라고
적었다.”(『人天眼日』권2 大48 p.312b15. 師每見憎, 以目顧之, 卽日鑑, 或日咦,
而錄者日, 而 ‘顧鑑咦.’)
장령수탁(長靈守卓)의 송
일곱 걸음 걷고 스스로 존귀하다고 거들먹거렸으니,
집안의 보기 흉한 꼴이 문 밖으로 새나가는 것을 어찌 허용하랴!61)
어머니 배 속에서 벌써 중생 제도를 마쳤다고 하니,
한 대 칠 때마다 선명하게 자국이 나도록 때려주었어야 하리라.62)
長靈卓頌,“ 周行七步便稱尊, 家醜那堪放出門! 只向母胎度人
畢, 也須一棒一條痕.”
61) 가추(家醜)란 집안의 보기 흉한 꼴. 대체로 가풍이나 종풍을 겸손하게 지칭하는
용법으로 쓰인다. 세존의 언행을 그대로 허용[放]하지 않는 부정의 형식이지만,
동시에 집안의 비밀이 그것에 들어 있다는 취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말이다.
62) 이 말 또한 세존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로지 본분사(本分事)에 철저
한 태도를 나타낸다. 장령수탁이 다른 곳에서 “그대로 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
다.”(『長靈守卓語錄』卍120. p.311a3. 放過卽不可.)라는 선가의 상용 구절로
나타낸 말에도 그 뜻이 들어 있다.
대혜종고(大慧宗)의 송
늙은이가 태어나자마자 바쁘게 허둥대며,
일곱 걸음 걷는 모습 미치광이 같았다네.63)
무수히 많은 어리석은 남녀를 속이다가,
눈뜬 채 당당하게 확탕지옥으로 들어가네.64)
大慧杲頌, “老漢纔生便着忙, 周行七步似顚狂. 賺他無限癡男
女, 開眼堂堂入鑊湯.”
63) 미치광이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이것이 사(似)라는 한 글
자에 숨은 맥락이며 3·4구로 이어지며 분명해진다.
64) 일부러 남들을 속이고, 자청하여 그 죗값을 치르러 지옥에 들어갔다는 말. 일곱
걸음 걸은 기특한 행위는 남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선(禪)의 장치로서 속임수와
같다.
죽암사규(竹庵士珪)의 송
노호65)는 포태에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는데,
또한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할 줄도 알았다네.
땅과 하늘을 가리키며 스스로 최고라 했으니,
중생들은 49년 동안 그 재앙을 받게 되었네.66)
竹庵珪頌, “老胡不免出胞胎, 也解人前伊麽來. 指地指天稱第
一, 衆生四十九年災.”
65) 老胡. 선종에서 부처님 또는 달마대사를 가리키는 말. ‘老’는 존칭이고, 인도 출
신이므로 ‘胡’라 한다.
66) 스스로 최고라 한 선언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면 재앙이 된다는 뜻이다. 부처님
이 중생을 이끌기 위한 시험의 기틀로 이 말을 가설했다고 보는 것이 간화선의
안목이다.
백운지병(白雲知昺)의 송
무우수67) 아래 금빛 몸68)으로 태어나시어,
일곱 걸음 걸으시니 그 재주는 참신했다네.
만나는 자들마다 아침 일찍 일어났다 하나,
통금을 어기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 줄 누가 알랴!69)
白雲昺頌, “無憂樹下誕金身, 七步周行事斬新. 相見謂言侵早
起, 誰知更有夜行人!”
67) 無憂樹. Aśoka. 콩과(科)에 속하는 상록교목(常綠喬木). 가로수·방풍수·관상
수로 심는다. 마야(摩耶)부인이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가던 도중, 룸비니동산에
피어 있던 이 나무의 꽃을 따려는 순간, 오른쪽 옆구리에서 부처님을 출산하였
다고 한다. 고통·근심( śoka:憂) 없이 순산하였기 때문에 이 나무를 무우수라
고 불렀다.
68) 주석55) 참조.
69) 주석50) 참조. 세존이 남다른 재주를 부렸다고만 알 뿐, 그 속을 간파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는 뜻이다.
석창법공(石窓法恭)의 송
인도70)에서 쑥대 화살 한 발이 날아와,
중국 백만 병사를 어지럽게 흔들었다네.
운문이 바른 법령을 제기하지 않았다면,
저울 눈금71)을 실물로 착각할 뻔했노라.
石窓頌,“ 五天一隻蓬蒿箭, 攪動支那百萬兵. 不是雲門提正
令, 幾乎錯認定盤星.”
70) 오천(五天). 오천축국(五天竺國) 곧 인도를 말한다.
71) 정반성(定盤星). 저울대의 첫 번째 눈금. 곧 기준이 되는 영점(零點)이다. 저울의
눈금이 저울에 매달린 사물 자체가 아니듯이 밖으로 드러내는 언어 등의 수단과
방편은 진실 그대로가 아니다. 운문이 부처님의 언행(저울 눈금)에 숨은 뜻(실물)
을 간파해 내지 않았다면 그 표피적인 측면에 현혹되었을 것이라는 뜻으로 쓰였
다. “당장에 정(情)에 얽매인 분별을 털고 벗어서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으면, 본
지풍광(本地風光)을 증득하고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을 것이다. 그런 다음
에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며, 승(僧)은 승이고 속(俗)은 속이리라. 그러나 저울
눈금을 실물로 착각해서는 안 되니 더 나아가 끈끈하게 붙은 것을 풀고 묶인 줄
을 제거시켜 주는 향상의 기관(機關)이 남아 있음을 알아야 한다.”(『圜悟語錄』
권9 大47 p.751c16. 直下擺脫情識, 一念不生, 證本地風光, 見本來面目. 然後, 山
是山, 水是水;僧是僧, 俗是俗. 雖然, 莫錯認定盤星, 更須知有解黏去縛上機關, 始得.)
송원의 송
분명히 말하면 그것에 뿌리를 내리게 되거늘,72)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홀로 존귀하다 말하네.
무리를 이루고 떼를 지어 남을 따라 움직이니,
자기대로 생각이 있는 사내가 몇 명이나 될까?
松源頌,“ 開口分明便垜根, 指天指地獨稱尊. 成群作隊隨他
轉, 幾箇男兒有腦門?”
72) 타근(垜根). 활을 쏠 때 두 발을 버티고 서는 살받이터이다. 일정한 지점이나 대
상에 뿌리를 내려 근거지로 삼는 것으로 여기서는 인식의 근거를 말한다. 결정
적으로 말해 버리면 그것을 인식의 근거로 삼아 집착한다는 뜻이다. “보고 듣는
대상에 뿌리를 내리고 알아차리려 하지 마라.”(『眞覺語錄』 韓6 p.20a15. 莫向
見聞處垜根.)
무진거사의 송
일곱 걸음 걷고서 하늘을 가리켰으니,
납승73)의 방(棒)에 목숨 보전하기 어렵겠네.
모태에서 나온 뒤 무슨 일을 해냈는가?
어찌 염부제74)로 내려오기 전보다 나았으랴!
無盡居士頌, “七步周行手指天, 衲僧棒下命難全. 母胎出後成
何事? 爭似閻浮未降前!”
73) 衲僧. 납자(衲子)라고도 한다. 납의(衲衣)를 입은 스님이라는 말. 납의는 누덕누
덕 기운 옷으로, 낡은 헝겊을 모아 빨아서 바늘로 기운 옷이다. 스님이 자신을
겸칭하는 말로 쓰며, 조사선에서는 본분을 철저하게 추구하는 수행자라는 뜻으
로 쓰인다.
74) 閻浮提. Jambu-dvīpa. 고대 인도에서 남쪽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 수미산을 중
심으로 하는 동서남북 네 개의 주(洲) 중에 남쪽에 위치하므로 남염부제(南閻浮
提)라고도 한다. 섬부주(贍部洲)·남섬부주(南贍部洲) 등 이칭이 많다. 처음에는
인도를 비롯한 주변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후대에는 인간이 사는 세계를 염부
제라고 통칭하게 되었다.
열재거사의 송
힘겹게 기어서 모태로부터 나오자마자,
금빛 연꽃 위에서 곡조75)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네.
당시에 한 박자도 이해한 사람이 없었으니,
모두 홀로 존귀하다는 말에 묻혀 버렸다네.
悅齋居士頌, “匍匐方纔出母胎, 金蓮花上舞三臺. 當時一拍無
人會, 惣向稱尊獨處埋.”
75) 삼대(三臺). 악곡(樂曲)의 이름. 고대에 세 개의 대(臺)를 만들어 놓고 박수를 치
고 술을 권하며 부르던 노래에서 비롯되었는데, 일반적으로 곡조가 빠른 악곡
을 가리킨다.
[설화]
열재 송의 의미는 세존의 그러한 언행이 모든 세상 사람들을 한 번에 두
루 제접했다는 것이니, 묘한 춤이라면 반드시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뜻76)이
다. 그러나 운문(雲門)의 ‘개에게 먹이로 주겠다’는 말과 해인(海印)의 ‘당
시 달갑지 않게 여기던 자가 취모검을 빼어 들었다면, 누가 감히 앞으로
나섰으랴!’라는 말과 보령(保寧)의 ‘그 시작부터 남에게 눌려서 한바탕 희
롱을 당했도다’라는 말은 이와는 반대되니, 딱딱하게 굳은 벽돌로 바닥까
지 얼어붙은 얼음을 깨뜨리는 격이다.
悅齋意, 世尊伊麽, 是盡大地人, 一時普接, 所謂妙舞應須云云
也. 然則雲門與狗子喫却, 海印云, 當時若有不甘者云云, 保寧
云, 末上云云, 反是, 焦磚打着連底凍也.
설두중현(雪竇重顯)의 거
법안선사가 ‘운문의 기세는 매우 컸으나 불법(佛法)의 도리는 없다’라
고 말하자 어떤 노숙이 운문을 대신하여 ‘증명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었
다’라고 말한 일화를 제기하고 별도로 말했다. “의심할 것 없는 데서 걸려
들었구나.” 다시 이 공안77)과 더불어 운문의 염을 제기하고서 말했다. “곧
바로 선상을 뒤집어엎었어야 했다.” 법용이 말했다. “설두도 다른 사람의
그릇된 점만 보았을 뿐이다.”
雪竇顯, 擧法眼云,‘ 雲門氣勢甚大, 要且無佛法道理.’ 老宿
代云,‘ 將謂無人證明.’ 別云,“ 鉤在不疑之地.” 又擧此話,
連擧雲門拈, 師云,“ 便與掀倒禪床.” 法湧云,“ 雪竇要且只見
他非.”
77) 본서 2則「世尊周行」에 제시된 공안을 말한다.
[설화]
법안이 본분을 고수하는 운문의 지나친 엄격함을 비판했다는 뜻이다.
노숙이 대신 대답한 것은 운문을 대신한 것이다. 곧 법안이 간파한 내용을
부정한 말이다. 별도로 ‘의심할 것 없는 데서 걸려들었구나’라고 말한 것
은 호의적인 마음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곧바로 선상을 뒤집어엎었어야
했다’라고 한 것은 운문이 비록 그렇게 말했지만, 그래도 반드시 뒤집어엎
어야 한다는 뜻이며, 대체로 운문의 말을 그대로 남겨 두지 않는 수법이
다. 법용이 ‘설두도 다른 사람의 그릇된 점만을 보았을 뿐이다’라고 말한
것은 설두가 비록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기는 했지만, 자기에게도 과오가
있음을 모른다는 말이니 운문을 긍정하여 세워 준 것이다.
雪竇:法眼嘖他大78)高峻生也. 老宿代云者, 代雲門也, 謂破法
眼覰破也. 別云, 鉤在不疑之地者, 不是好心也. 又擧至掀倒禪
床者, 雲門雖然伊麽道也, 須掀倒, 盖不存雲門也. 法勇云, 雪
竇云云者, 雪竇雖見他非, 不知自己有過, 扶起雲門也.
78) ‘大’는 ‘太’의 오식.
낭야혜각(瑯慧覺)의 염
“운문이야말로 이 깊은 마음으로 티끌같이 많은 국토79)를 받들었다
고 말할 수 있으니, 이런 것을 두고 부처님의 은혜를 갚았다고 하는 것
이다.”
瑯琊覺拈,“ 雲門, 可謂將此深心奉塵刹, 是卽名爲報佛恩.”
79) 찰(刹). ksetra를 음사하여 줄인 말이며, 차달라(差呾羅)·찰다라(刹多羅)·차다
라(差多羅)·찰마(刹摩) 등으로 음사한다. 한역어는 토(土)·국(國)·처(處)·국토
(國土)·전토(田土) 등이다.
[설화]
본칙 설화 중에 이미 나왔다.
瑯琊:話中已出.
금산요원(金山了元)의 상당
이 공안과 더불어 운문의 염을 제기하고 말했다. “법안선사는 처음으로
운문의 말을 들었을 때 온몸에 땀을 흘리며 운문이 부처님을 비방했다고
잘못 생각했으나, 이십 년 후에 알아채고서는 크게 기뻐하며 법좌에 올라
앉아 다시 제기하고 말했다. ‘운문의 기상은 마치 왕과 같으나,80) 불법(佛
法)의 도리는 없었다.’ 운문이 이 말을 듣고 ‘나의 평생 공부가 저 절강 사
람81)에게 간파당하고 말았다’라고 했다.” 금산이 평가했다. “법안이 비록
운문의 속뜻을 간파하기는 했지만, 운문의 긍정적인 측면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나 금산이 말하겠다. ‘사마귀는 (매미를 잡으려고) 앞에서 뛰는데
참새가 그 뒤를 쫓고, 장원(莊園)에 활을 멘82) 사람은 사냥하느라 서리에
옷 젖는 줄을 모른다.’83) 누군가 이 말을 바르게 점검해 낸다면, 나 역시 방
망이 삼십 대를 맞을 잘못이 있으리라.”
金山元, 上堂, 擧此話, 連擧雲門拈, 師云, “法眼初聞, 直得通
身流汗, 將謂雲門謗佛. 二十年後覰得, 身心大喜, 乃陞座擧
云,‘ 雲門氣宇如王, 且無佛法道理.’ 雲門云,‘ 我平生功夫,
被者浙子覰破.’” 師云, “法眼雖覰破雲門, 要且扶他雲門不
得. 金山道, ‘螗蜋前頭走, 黃雀續後隨, 園中挾彈漢, 不覺露
濕衣.’有人檢點得, 金山, 也有三十棒分.”
80) 부처님의 언행까지 뒤집어엎는 것이 마치 왕이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처리
하는 기개와 같다는 말.
81) 절자(浙子). 절강성(浙江省) 출신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이 그 지역 출신이기에 이렇게 칭한다.
82) 협탄(挾彈). 활을 어깨에 메는 것을 말한다. “참새는 스스로 걱정이 없다고 생각
하고 사람들과 싸우지 않는다. 그러나 공자와 왕손들이 왼쪽 어깨에 활을 메고
오른쪽 어깨에 화살을 담고 다니는 줄을 모른다.”(『戰國策』「楚策」4. 黃雀,
自以爲無患, 與人無爭也. 不知夫公子王孫, 左挾彈, 右攝丸.)
83) 주석124) 참조.
[설화]
법안이 비록 운문의 속뜻을 간파하기는 했지만, 운문의 긍정적인 측면을 드러내지는
못했다:반드시 운문의 긍정적인 측면을 드러내야 한다는 뜻이다.
‘사마귀가 앞에서 뛴다’라는 말은 세존을 가리키며, ‘참새가 그 뒤를 쫓
는다’는 말은 운문을 나타내고, ‘장원에 활을 멘 사람’은 법안을 말한다.
곧 금산이 이렇게 한 말도 결코 긍정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 이 말을 바르게 점검해 낸다면, 나 역시 방망이 삼십 대를 맞을 잘못이 있으리
라:자신이 앞에서 긍정하지 않은 것 또한 실(實)한 뜻이 아니라는 것이
다.84) 앞에서 법안이 비록 운문을 간파하기는 했지만 운문의 긍정적인 측
면을 드러내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金山:法眼雖覰破雲門, 要且扶他雲門不得者, 要須扶起雲門
也. 螗蜋前頭走者, 言世尊也;黃雀續後隨者, 言雲門也;園
中挾彈漢者, 言法眼也. 則金山伊麽道, 並不肯也. 有人至棒分
者, 前之不肯, 亦非實義也. 前之法眼, 雖覰破雲門, 要且扶他
雲門不得之義也.
84) 선사의 말은 실(實)의 표면을 가장한 허(虛)이다. 실로 확정되지 않으므로 또 다
른 비판이 파고 들어올 허가 있는 셈이다. 부단하게 앞의 말을 활발하게 재생할
여지가 생기는 이유는 화두의 이러한 허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금산의 비판도
결정된 요소가 있는 단정적인 주장 명제가 아니다.
지해본일(智海本逸)의 상당
“이 일에 대해서 말하자면, 마가다국85)에서부터 소실봉86)과 조계87)에
이르기까지 펼쳐진 땅이 손바닥과 같이 평탄하여 본래부터 먼지 하나 없고,
유리로 만들어져 있어 기름을 뿌려놓은 듯이 미끄러우니, 누가 여기에
한 걸음인들 들여놓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천 년 전에 호명(護明)이
라는 보살88)이 천궁(天宮)에서 본분을 지키지 않고 도솔천89)을 떠나 염부
제90)의 정반왕91) 궁전에 내려와 마야부인92)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
고, 아홉 마리 용이 향수를 뿜어 금빛 몸을 목욕시켜주었다. 목욕을 마치
고 보니 그 집안이 큰 부자인데다 이 아이는 아주 예뻤는데, 유리 궁전에
서 일곱 걸음 걷고서 ‘오로지 나만이 존귀하다’라고 말했다. 이런 다음 바
닥에 넘어져 이천 년이 흐르면서 여러 대의 후손들 그 누구도 일으켜 세
우지 못했지만,93) 그중 오로지 운문선사만이 용맹하게 발분하여 ‘내가 당
시에 그 광경을 보았다면, 한 방에 때려죽이고 개에게 먹이로 주어서 천
하의 태평을 도모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법안이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대단하신 운문이여!94) 부처님을 비방하지 마시오’라고 하였다.
운문이 반쯤 일으켜 세웠는데, 법안이 다시 밀어 넘어뜨렸다.95) 지금에 이
르기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이 법회 중에 힘센 선객이 있는가? 좀
도와주시오.”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만약 없다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는 것보다 내 스스로 하는 것이 낫겠다.” 주장자를 세워 승상(繩床:
禪床)을 한 번 내리치고 “일어섰다! 지금 이후로는 보호하고 아껴서 다시
는 넘어지게 하지 마라. 내 혼자 힘으로 어찌하겠는가?”라 하고, 다시 승
상을 내리쳤다.
智海逸, 上堂云,“ 若論此事, 自摩竭陁國, 至小室峯前, 曹候96)
溪上,96) 地平如掌, 本絶埃塵, 瑠璃所成, 滑如油潑, 誰敢於中輒
措一足? 然而二千年前, 爰有菩薩號曰護明, 不向天宮守本分,
上辭兜率下降閻浮, 於淨飯王宮, 摩耶夫人右脇降生, 九龍吐
水, 沐浴金軀. 旣沐浴已, 其家巨富, 此子甚嬌, 向瑠璃殿上,
周行七步, 〈至〉唯我獨尊. 自茲倒地, 逮二千年, 積代兒孫, 扶
持不起, 於中, 獨有雲門禪師, 勇猛發憤道, ‘我當時, 〈至〉天下
大平.’ 法眼聞之, 便謂,‘ 大小雲門! 不合謗佛.’ 雲門扶得一
半, 又被法眼推倒. 直至干今, 更起不得, 此會之中, 莫有大力
禪客? 略請相助.” 良久云,“ 若無, 借人不如自下手.” 乃拈拄
杖擊繩床一下云, “起也! 而今而後護惜, 莫敎再倒. 智海獨力,
無如之何.” 復擊繩床.
85) 摩竭陁國. 부처님 재세 시 인도 16대국 중 하나로, 비하르주(州) 남부를 중심으
로 번영했던 왕국. 부처님이 성도한 후 교화를 펼치던 본거지이다. 마가다국(摩
伽陀國)·마갈다국(摩竭陁國) 등으로 음사하고, 무뇌해국(無惱害國)·무해국(無
害國) 등으로 한역한다.
86) 小室峯. 달마가 9년 동안 면벽수행한 곳이며, 이곳에서 2조 혜가(慧可)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중국 하남성에 있다.
87) 曹溪. 육조혜능이 주석하던 곳이다. 중국 광동성 소주에 있다.
88) 호명보살(護明菩薩). 석가모니불이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로서 도솔천에
머물렀을 때의 이름. 깨달음의 길로 가고자 하는 중생을 보호하고 그 길을 밝혀
주므로 호명(護明)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89) 兜率天. Samtusita, Tusita. 지족천(知足天)·묘족천(妙足天)·희족천(喜足天)·상
족천(上足天)·희락천(喜樂天) 등으로 한역한다. 욕계 6천의 네 번째 하늘로서 미
래에 부처가 될 보살의 거처이다. 도솔천에는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이 있는데
도솔천의 내원은 장차 성불할 보살이 머무는 곳으로 지금은 미륵보살이 머물면
서 늘 설법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 천인(天人)은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하여 그
생활필수품에 대하여 스스로 만족하고 팔정도에 대해서는 만족할 줄 모르고 닦
는다. 여기서의 하루는 인간계의 400년에 상당하고, 수명은 4,000세이다.
90) 주석74) 참조.
91) 淨飯王. śuddhodana. 가비라위성(迦毘羅衛城 Kapilavastu)의 왕으로서 석가
모니부처님의 생부이다.
92) 摩耶. Mahāmāyā. 석가모니부처님의 생모.
93) 아무도 부처님의 본의를 간파하여 살려내지 못했다는 뜻.
94) 대소운문(大小雲門). 운문에 대한 법안의 이러한 평가는 이 공안에 대해서는 보
이지 않고,『景德傳燈錄』의 다른 공안에서 보인다. “운문이 학인에게 물었다. ‘어
디서 오는가?’ ‘강서에서 옵니다.’ 운문이 말했다. ‘강서의 한 무리 노숙들은 여전
히 잠꼬대로 살고 계시는가?’ 학인은 대답이 없었다. 후에 어떤 학인이 법안에게
물었다. ‘운문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법안이 말했다. ‘대단하신 운문이
여! 저 학인에게 감파당하고 말았구나!’”(『景德傳燈錄』권27 大51 p.437b16.
雲門和尚問僧, ‘什麽處來?’ 曰, ‘江西來.’ 雲門曰, ‘江西一隊老宿, 寱語住也未?’
僧無對. 後有僧問法眼和尚, ‘不知雲門意作麽生.’ 法眼曰, ‘大小雲門! 被遮僧勘破!’)
95) 운문이 간파한 뜻을 그대로 수긍하지 않고 법안이 다시 비판하여 운문의 뜻에
활기를 불어 넣은 것이다.
96) ‘候’는 연문(衍文)으로 보인다.
[설화]
운문 편에 서서 운문의 긍정적인 뜻을 드러내었다.
智海:立在雲門邊, 扶起雲門意也.
장산찬원(蔣山贊元)의 상당
“싯다르타97)태자가 마야부인의 배에서 태어나자마자 한 손으로는 하
늘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킨 다음, 일곱 걸음을 걷고
사방을 둘러보며 대장부의 기개를 보여 사자후(師子吼)를 내지르며 ‘하
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나만이 존귀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 어찌
‘본분사는 남들로부터 얻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때 온 나라
안의 사람98)이 만약 각각 훤히 알아채버렸다면, 호명대사99)는 어떤 기량
을 발휘해야 했을까? 아! 근기와 인연100)이 아직 온전히 성숙되지 않았으
니 어찌 선대의 부처님이 교화의 문을 세우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방편
을 설정하고 본보기가 되는 규범을 제시하며, 전도(顚倒)된 견해를 베풀
고 임시적인 계책을 사용한 것이다. 곧 가짜 성[化城]을 열어 피로하고 궁
핍해진 무리들을 끌어들인101) 격이고, 노란 잎을 쥐고 황금이라고 속여
서 우는 아이를 달랜102) 격이다. 그렇게 한 뒤에는 사람들이 진실한 믿음
에 부합하여 근본적인 도를 곧바로 말할 수 있었기에 마침내 부처님께
서 다자탑103) 앞에서 (가섭에게 자신이 앉은 자리의 반을 내주었고,104) 靈鷲
山에서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였을 때 가섭만이 미소 짓자105)) 정법안장106)과
열반묘심을 음광존자(飮光尊者) 가섭107)에게만 전한 것이다. 이로부터 인
도에서 28대조108)가 법을 계승하고, 동토109)에서 6대조가 법의 불꽃을 이
었던 것이다. 천자의 가마[大駕]가 늠름하게 가는 길에 온갖 삿된 샛길이
어찌 끊어지지 않을 것이며, 아득히 흐르는 근원의 물이 모든 갈래 물길로
통하다가 어찌 바다에 모이지 않겠는가?”
蔣山元, 上堂云,“ 悉達太子, 纔離母胎, 一手指天, 一手指地,
周行七步, 目顧四方, 剖丈夫志, 作師子吼言,‘ 天上天下唯我
獨尊.’ 豈非其事, 不從他得? 此時, 率土之人, 若能各各曉悟
去也, 且護明大士, 更作什麽伎倆卽得. 噫! 奈以機緣未濟, 不
免立先佛化門? 設歐和, 垂軌範, 施顚倒知見, 用權假機謀, 開
化城, 接疲乏之徒;握黃葉, 誘悲啼之子. 爾後, 人符諦信, 道
可昌言, 遂於多子塔前, 以至正法眼藏涅槃妙心, 獨付飮光尊
者. 自此西天繼踵四七, 東土續焰二三. 得不大駕崢嶸, 截群邪
之異徑;眞源渺漫, 通萬派以朝宗?”
97) 실달(悉達). Siddhārtha. 출가 이전의 부처님 이름
98) 솔토(率土). 솔토지빈(率土之濱)의 줄임말. 온 나라 안. 또는 온 나라 안의 사람.
『詩經』에 나오는 말이다. “온 나라 안에 왕의 신하가 아닌 자가 없네.”(『詩經』
「小雅 北山」. 率土之濱, 莫非王臣.)
99) 護明大士. 대사는 보살( bodhi-sattva)의 한역어. 주석88) 참조.
100) 기연(機緣). 깨달음에 이르기 위하여 필요한 두 가지 계기. 곧 주관이 갖추고 있
는 바탕[機]과 객관적인 조건[緣]을 말한다.
101) 법화칠유(法華七喩) 중 네 번째인 화성유(化城喩)이다.『法華經』권3「化城喩品」
大9 p.25c26 참조. 길이 험난하고 5백 유순이나 떨어져 있는 보물성에 가고자 사
람들은 훌륭한 길잡이를 고용했다. 길잡이의 인솔에 따라 길을 떠났지만, 사람
들은 길이 너무나 험난하자 집으로 되돌아가려고 했다. 이때 길잡이는 환술로
가짜 성[化城]을 만들고 사람들을 충분히 쉬게 하여 목적지인 보물성까지 무사
히 인솔할 수 있었다. 훌륭한 길잡이는 부처님, 보물을 찾는 사람들은 중생, 환
술로 만든 가짜 성은 부처님께서 방편으로 시설한 삼승(三乘), 보배가 있는 성
은 일불승(一佛乘)을 상징한다.
102)『大般涅槃經』「嬰兒行品」에 나오는 비유이다. “아기가 마음을 쓰는 것은 이렇
다. 어떤 아기가 울고 있을 때에, 부모가 노란 버들잎으로 달래어 말하기를, ‘울
지 마라. 울지 마라. 네게 돈을 줄게’라고 하면 아기는 그것을 보고 진짜 돈이라
고 생각하고, 곧바로 그치고 울지 않는 것과 같다.”(『大般涅槃經』권20「嬰兒行
品」大12 p.485c10. 嬰兒行者, 如彼嬰兒啼哭之時, 父母卽以楊樹黃葉, 而語之言,
‘莫啼. 莫啼. 我與汝金.’ 嬰兒見已, 生眞金想, 便止不啼.)
103) 多子塔. bahuputraka-caitya. 중인도 베사리성(吠舍釐城)의 서북쪽에 있던 탑.
다자탑에 대한 설화는 여러 가지가 전하는데,『高僧法顯傳』권1 大51 p.862a7
에는 부처님이 전생에 ‘활을 버린 곳’이라고 하여 탑을 세웠다고 하며,『辟支佛
因緣論』권하 大32 p.477b25에는 60명의 자식들이 각각 결혼하여 우비고락(憂
悲苦樂)을 일으키는 것을 관한 어떤 장자가 벽지불도를 증득하자 그 권속들이 탑
을 세웠다고 한다.
104) 다자탑전반분좌(多子塔前半分座). 가섭이 선종 전등의 초조(初祖)가 된 근거인
삼처전심(三處傳心) 중 하나이다. 위경(僞經)인『大梵天王問佛決疑經』권상「初
會法付囑品」卍87 p.606b17에 이 일화가 보인다.
105) 염화미소(拈花微笑). 삼처전심 중 하나. 영취산 설법에서 부처님이 꽃송이 하나
를 들어 보이자, 제자들이 모두 무슨 뜻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해하는데 가섭만
이 미소 지은 일화에 근거한다. 본서 5則「世尊拈花」참조. 위경(僞經)인『大梵
天王問佛決疑經』권상「初會法付囑品」卍87 p.606a6에 보인다.
106) 正法眼藏. 진리를 꿰뚫어 보는 눈. 선종의 초조 가섭이 부처님으로부터 전수 받
은 지혜의 눈. ‘정법’은 최상의 진리, ‘안’은 그 정법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눈,
‘장’은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 줄여서 ‘정법안’이라고도 한다.
107) 迦葉. Mahākāśyapa. 대가섭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10대제자 중 한 명. 가섭
은 씨족 명에 해당하며, 음광이라고 한역한다. 대가섭은 인도 마가다국(摩伽陀
國) 왕사성에서 바라문 출신으로 태어났다. 항상 거친 옷과 거친 음식에 만족하
고 일편단심으로 수행에 몰두할 뿐 아니라 엄격한 계율로 두타행(頭陀行)을 하
였고, 교단의 수제자로 존경을 받았다. 부처님으로부터도 인정을 받아, 부처님
이 입멸한 후에는 오백 명의 아라한들과 함께 아난(阿難)과 우바리(優婆離)에게
경율(經律)을 결집하도록 하였다.
108) 사칠(四七). 초조 가섭으로부터 보리달마에 이르는 28대 조사가 있었다는 설은
801년(정원17) 성립된 최초의 전등록인『寶林傳』에서 완성되었고, 그 뒤에 간행
된 전등록도 대체로 이 설을 받아들이고 있다.
109) 東土. 중국. 인도를 서천(西天)이라 부르는 말에 대한 대칭어.
[설화]
장산은 세존 쪽에 서서 세존의 뜻을 일으켜 세웠다.
蔣山, 立在世尊邊, 扶起世尊意也.
보림본의 상당
“갠지스 강의 모래알과 같이 무수히 많은 고금의 방편 중에서 가장 기
괴한 것은 바로 부처님110)이 태어나자마자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로
지 나만이 존귀하다’ 라고 한 말씀이다. 그러나 이 일시적인 방편을 내
세우면서 마치 자신의 주변에 아무도 없는 듯이 오만방자했다. 그가 입
을 열기 이전에는 남들의 의심을 사지 않을 수 없었는데, 막상 하나의 소
식을 입 밖으로 드러내었을 때는 용의 머리에 뱀 꼬리를 단 것처럼 끝이
초라하게 되고 말았다.111) 이제 그대들과 함께 마지막 구절112)을 끊어 없
애고, 그 말과는 다르게 결정적인 전기가 되는 한마디 말113)을 던져 세상
의 부처님 후손들이 모두 막힌 숨을 터뜨리도록 한다면, 이 어찌 통쾌하
지 않겠는가!” 주변을 돌아보면서 “잘 살펴보라!”라 하고 법좌에서 내려
왔다.
寶林本, 上堂云,“ 古今方便, 如恒河沙, 最奇怪者, 是老胡纔
生下, 至唯我獨尊. 然則一期方便, 大似傍若無人. 看他未開口
已前, 不妨敎人疑着, 及乎吐露箇消息, 便乃龍頭蛇尾. 而今與
伊截却末後句, 別着一轉語, 令天下兒孫, 大家出氣, 豈不快
哉!” 乃顧視左右云,“ 看, 看!” 便下座.
110) 노호(老胡). 주석65) 참조.
111) 그 말은 기특하고 신비한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비판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
는 뜻이다.
112) 말후구(末後句). 마지막 구절 또는 궁극적 진리를 나타내는 한마디. 여기서는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로지 나만이 존귀하다’라는 말을 가리킨다. 이 말을
끊어 없애고 당사자의 선기(禪機)를 드러내는 것이 선사로서의 본분이다.
113) 일전어(一轉語). 상황을 반전시키는 결정적인 한마디의 선어(禪語)를 가리킨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로지 나만이 존귀하다’라는 말을 부정하고 이 굴레에
서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는 한마디를 나타낸다.
[설화]
운문의 의중과 비슷하지만 운문의 의중과 다른 점도 있어서 그 뜻이 한
없이 깊고 넓다.114)
주변을 돌아보면서 “잘 살펴보라!”고 한 말:세존께서 ‘나만이 존귀하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모든 사람의 본분을 가리킨다는 뜻이다.
寶林:義似雲門意, 亦非雲門意, 直得無限也. 乃顧視左右云
看看者, 世尊云唯我獨尊, 此則諸人分上也.
114) 직득무한(直得無限). 이 말은 <설화> 특유의 용어이며, 상황에 따라 약간 달리 해
석할 여지가 있다. 모든 언어와 분별의 한계를 벗어나게 된 것, 뜻이 한없이 깊
고 넓은 것, 모든 제한과 한계를 벗어나 자유로운 경지가 된 것 등의 의미를 나
타낸다. 여기서는 첫 번째 의미이다.
운봉문열(雲峯文悅)의 염
“운문에게는 비록 혼란을 평정하는 계책은 있었지만, 얽매인 몸을 벗어
나는 통로115)는 없었다.”116)
雲峯悅拈,“ 雲門, 雖有定亂之謀, 且無出身之路.”
115) 출신지로(出身之路). 이 화두의 난관을 뚫고 나가 자유롭게 되는 길. 일반적으로
어떤 속박을 벗어나는 길을 말한다.
116) 운문이 비록 ‘개의 먹이로 주겠다’라는 극언으로 ‘나만이 존귀하다’라는 화두에
서 오는 혼란을 잠재우기는 했지만, 온전히 그 화두의 난관을 타개하는 통로를
열어 준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문열은 이 말 다음에 “만약 이 뜻을 가려낸다면
그 사람은 정수리에 진리를 보는 하나의 눈이 붙어 있다고 인정해 주겠다.”(『列
祖提綱錄』권4 卍112 p.217a5,『雲峰語錄』古尊宿語錄40 卍118 p.675a3. 若
也辯得, 許你頂門具一隻眼.)라고 함으로써 자신의 말 또한 하나의 화두로 제시했다.
[설화]
글에 나타난 대로 뜻을 알 수 있다.
雲峯:文見可知也.
늑담홍영( 潭洪英)의 염
“석가노자는 마치 자신의 주변에 아무도 없는 듯이 오만했다고 할 만하
다. 그때 만약 밝은 눈의 납승117)과 마주쳤다면, 그가 석가노자를 하늘로
올라갈 길도 없고 땅으로 들어갈 문도 없도록 만들었을 것이다.118) 비록
이렇다 하더라도 동사라119)에 기름을 가득 담아야 한다.120)” 묘희121)의 착
어.122) “귀하다면 귀하고 천하다면 천하다.”
泐潭英拈,“ 釋迦老子, 可謂傍若無人. 當時, 若遇明眼衲僧,
直敎他上天無路, 入地無門. 然雖如是, 也須是銅沙羅裏盛油,
始得.” 妙喜着語云,“ 可貴可賤.”
117) 衲僧. 어떤 권위에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선수행자. 납
자(衲子)라고도 한다. 주석73) 참조.
118) 손가락으로 하늘과 땅을 가리킨 행위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어 그 어떤 방위로
도 통하지 못하도록 숨통을 막았을 것이라는 뜻.
119) 銅沙羅. 동으로 만든 사라. 사라는 사라(沙鑼)라고도 쓴다. 징과 같이 생긴 타악
기의 일종으로 세수하는 도구로도 쓴다.
120) 암두(巖頭)의 말. 분양(汾陽)이 이 말에 평석을 붙이면서 널리 회자되었다. “어
떤 학인이 암두에게 물었다. ‘번뇌의 경계 속에서 어떻게 주인공을 가려냅니
까?’ ‘동사라 안에 기름을 가득 담았다.’ 분양이 평가한다. ‘번뇌의 경계 속에서
주인공을 가려내는 것이 가장 밝히기 어려운 일이니, 천만 사람 중에서 이 도리
를 알아차릴 사람이 거의 없다. 동사라에 담긴 기름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청정
하니, 그것이 그대들의 눈에 박힌 망상의 못을 뽑아 주리라.’”(『汾陽語錄』권중
大47 p.611b19. 僧問巖頭, ‘塵中如何辨主?’ 巖云, ‘銅砂羅裏滿盛油.’ 塵中辨主最
難明, 千萬人中少一惺. 銅砂羅油今古淨, 與君拔却眼中釘.)
121) 妙喜. 대혜종고(大慧宗杲)의 호. 운문(雲門)이라는 호도 있다.
122) 着語 또는 著語. 선(禪)의 정취가 들어 있는 짧은 해설을 붙이는 것.
[설화]
반은 수긍하고 반은 수긍하지 않았다는 뜻이다.123) 그러므로 묘희가 “귀
하다면 귀하고 천하다면 천하다”라고 착어한 것이다.
泐潭義, 半肯半不肯也. 故妙喜著語云,“ 可貴可賤.”
123) 전적으로 긍정하지도 않고 전적으로 부정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긍정과 부정
어느 편에도 안착하지 못하도록 설정하는 화두의 특징을 나타낸다. 곧 귀와 천
을 허용하는 듯하지만 귀·천 어느 편의 선택도 허용하지 않는다.
법진수일(法眞守一)의 거
이 공안과 더불어 운문·설두·법용의 염을 제기하고 말했다. “이 몇몇
선사들은 마치 사마귀가 자기 앞에 있는 매미를 잡으려 하면서 뒤에서 참
새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줄 모르고, 참새는 자기 앞에 있는 사마귀를 잡
으려 하지만 뒤에서 사냥꾼이 자신을 겨누고 있는 줄 모르는 것과 같다.124)
알겠는가? 해마다 또 다시 새로운 가지가 돋아나겠지만, 어지럽게 흔드는
봄바람은 결코 그치지 않으리라.125)”
法眞一, 擧此話, 連擧雲門雪竇法湧拈, 師云,“ 者幾箇漢, 恰
似螗蜋捕蟬于前, 不知黃雀在其後;黃雀捕螗蜋于前, 不知挾
彈者在其後. 還知麽? 年年更有新條在, 惱亂春風卒未休.”
124)『莊子』「山木」과『說苑』등에 나오는 이야기를 선의 맥락에서 활용한 것. 이슬
을 먹으려는 매미는 뒤에 사마귀가 노리는 줄을 모르고, 사마귀는 또한 자기를
노리는 참새가 있음을 모르고, 참새는 자신을 겨누는 활잡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 한 사람의 송이나 염에 대하여 다른 사람이 비판하
고, 이 비판을 또 다른 사람이 비판하는 형식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 비유를 끌어
들였다. 하나의 공안에 대하여 어떤 단정적·결론적 평가도 있을 수 없다.
125) 앞의 주석에 나타난 취지와 같은 뜻이다. 새롭게 핀 가지를 흔드는 봄바람이 매
년 반복되듯이 새로운 평가는 언제나 가능하지만 그 또한 다른 하나의 선어(禪
語)로 허물어진다는 뜻이다. 해마다[年年]라는 표현은 대부분의 문헌에 다음 해
[來年]로 되어 있다. 본서 65則 주석10) 참조.
[설화]
법진이 제기한 말 또한 글에 나타난 대로 알 수 있다. 위에서 금산이 보
여준 뜻과 같다.
法眞擧, 亦文見可知. 上金山意同.
해인초신의 상당
이 공안과 더불어 운문의 평가를 제기하고 말했다. “운문대사는 있는 힘
을 다해 말했지만, 전체의 반만 말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칼을
차고 자신의 죄상을 스스로 고백하는 꼴이다.126)” 〈참!〉127)
海印信, 上堂, 擧此話, 連擧雲門拈, 師云,“ 雲門大師盡力道,
只道得一半. 然雖如是, 也是擔枷過狀.”〈 叅!〉
126) 표면적으로는 세존의 언행 전체를 부정한 듯하지만 긍정의 뜻을 숨기고 있으므
로 ‘반만 말했다’라고 한다. 해인은 운문의 부정에서 이 남은 반 토막을 포착했
기 때문에 그가 스스로 죄를 고백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담가과장(擔枷過狀)
이란 죄인이 목칼을 차고 자신의 죄상을 적은 서찰을 건네준다는 뜻으로, 스스
로 부정하고 있지만 그 부정 속에 자신도 모르게 숨은 것을 드러내는 경우를 가
리킨다.
127) 參. 할(喝)·돌(咄) 등과 같은 말. 한 소리 크게 내질러 주의를 촉구하는 용도로
쓰인다. 여기서는 편집자가 해인초신의 평가를 잘 살펴보라는 뜻에서 쓴 말이
며, 해인초신의 말은 아니다.
[설화]
해인은 운문의 평가를 수긍한 것인가, 수긍하지 않은 것인가?128) 아래
나오는 정자·불타·보령의 상당법어는 세존께서 보이신 언행의 자취에
대해 전적으로 그 안목을 긍정적으로 떠받든 것이다.
海印:肯雲門不肯雲門? 下淨慈佛陁保寧上堂, 世尊行李處,
盡力扶見也.
128) ‘반만 말했다’라고 한 말이나 ‘자신의 죄상을 스스로 고백했다’라고 한 말이나
운문의 부정이 전적으로 세존을 부정하려는 의도만은 아니라는 동일한 뜻이다.
정자본의 상당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 뛰어난 방편으로 교화의 문을 베풀었
는데, 이치에 따라 헤아려 보면 다만 사람들을 깨닫도록 하려는 의도였
을 뿐이다. 2천 년 전 무우수(無憂樹) 아래서 모태로부터 나오자마자 일
곱 걸음을 걸으시고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로지 나만이 존귀하다’라
고 한 말씀을 듣고, 천계(天界)와 인계(人界)의 중생들은 부처님이 전한
이 소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4월 8일에 여래께서 탄생하셨다’라고 말할
뿐이었으니, 그들이 부처님의 뜻을 알 수 있었겠는가? 어찌 다음과 같은
말을 모르는가? ‘만약 색신(色身)으로써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써 나
를 찾으려 한다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자이니 여래의 진면목을
보지 못할 것이다.’129) 이렇게 색신으로 보거나 음성으로 찾는 것이 허용
되지 않는다면, 그는 어디에 있는지 말해 보라!”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당당하게 삼계(三界)를 벗어났으니, 누가 법 중의 왕130)을 분별해 낼 것
인가?”
淨慈本, 上堂云,“ 諸佛出世, 巧設化門, 據理而推, 只要令人
悟去. 二千年前, 於無憂樹下, 纔出毋胎, 便乃周行七步, 至唯
我獨尊, 諸天世人, 不會他者箇消息, 便道‘四月八日, 如來降
生,’ 還識佛也未? 豈不見道?‘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
人行邪道, 不能見如來.’ 旣不許色見聲求, 且道, 他家在什麽
處?” 良久云,“ 堂堂三界外, 孰辨法中王?”
129)『金剛經』大8 p.752a17.
130) 법중왕(法中王). 생각으로 알아맞히거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최상의 법. 세간의
가장 높은 지위에서 자유자재로 자신의 위력을 발휘하는 왕의 본질로써 법을
비유한 말이다. 또는 법왕(法王) 곧 부처님을 가리킨다. “왕 중에서 법왕의 지위
는 모든 왕의 최상에 있으므로 법 중의 왕이라 한다. 삼계를 훌쩍 넘어서고 우주
를 홀로 거닐므로 가장 높고 뛰어나다고 한다.”(『證道歌事實』권3 韓6 p.157c1.
王中法王, 位過百王之上, 故云, 法中王也. 高超三界, 獨步大方, 故云, 最高勝也.)
불타덕손(佛陀德遜)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운문에게 장점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
만, 견해가 한편으로 치우친 것을 어찌하랴!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고, ‘올
때도 중생을 위해 왔고, 갈 때도 중생을 위해 갔다’131)라고 말하리라.” 불자
로 선상을 쳤다.
佛陀遜, 上堂, 擧此話云,“ 雲門不道無長處, 爭奈見解偏枯!
山僧卽不然, 來爲衆生來, 去爲衆生去.” 以拂子擊禪牀.
131) 해인초신이 운문의 부정에서 포착한 긍정과 같은 맥락의 뜻을 드러낸 것이다.
‘한편으로 치우쳤다’는 말도 부정에 숨은 긍정이라는 반쪽을 보여주기 위한 복
선이며, 운문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보령인용(保寧仁勇)의 상당
“석가노자는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일곱 걸음을 걷고 사방을 둘러보
았다. 바로 그때 땅은 드넓고 사람은 드물어 마주친 자가 거의 없었다.
마침내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인
가가 적은 마을에서 이리저리 헤아리다가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로지
나만이 존귀하다’라고 말했다. 선조가 당대에 할 일을 다 마치지 못하
면, 그 재앙이 자손에게 미치는 법이다.132)” 법좌에서 내려와 손으로 선
상을 밀고서 대중에게 말했다. “30년 뒤133)에 이 말을 잘못 들먹여서는
안 된다.134)”
保寧勇, 上堂云, “釋迦老子, 初生下時, 周行七步, 目顧四方.
當伊麽時, 土曠人稀, 相逢者小. 遂以一手指天一手指地, 三
家村裏, 東卜西卜, 便道,‘ 天上天下, 唯我獨尊,’ 祖禰不了,
殃及子孫.” 下座, 以手托禪床, 却召大衆云, “三十年後, 不得
錯擧.”
132) 모두 마친 말 또는 결말을 맺은 말은 관문이 되지 못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라는 말에 그 어떤 진실이 드러나 있다고 믿고 그대로 받아들여 분별한다면
‘마치지 않은’ 이 말에 현혹당한다. 이런 맥락에서 ‘할 일을 다 마치지 못했다’라
고 하여 화두로서의 본질을 밝힌 것이다. ‘재앙이 미친다’는 말은 이러한 진실을
모르고 온전히 답습하여 착각하는 것을 가리킨다.
133) 수행하여 깨닫는 시기를 말한다. 보살이 발심하여 성불할 때까지 3아승기(阿僧
祇 asankjyeya-kalpa, asankheyya-kalpa) 백대겁(百大劫)의 수행이 요구된다는
말에서 변형된 것이다.
134) 30년 뒤 법좌에 올라 설법하는 지위가 되었을 때, 세존의 말씀이 ‘결말을 맺은
말’이 아니라 화두의 관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학인들에게 들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원통원기(圓通圓機)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삼계 전체를 속이고135) 자신 이외에는 아
무도 없는 듯이 오만했다고 할 만하다.136) 가장 좋았던 대응은 운문이 나
와서 ‘한 방에 때려죽이고 개에게 먹이로 주어 천하를 태평하게 만들었
을 것이다’라고 한 말이다. 이 두 성인은 건화문137)에서 보면 좋기는 매
우 좋고 아름답기는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본분사138)의 입장에서 점
검해 보면 여전히 한 수139)가 부족하다.140) 대중에게 묻겠다. 본분사란 무
엇인가?”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원앙 문양의 자수를 내놓고 아무나
보도록 해도 되지만, 수를 놓을 때 사용한 금침(金針)은 누구에게도 건네
주지 마라.”141)
圓通璣, 上堂, 擧此話云,“ 可謂欺視三界, 傍若無人. 最好是
雲門出來道, 至天下大平. 然, 此二古聖, 於建化門中, 善則善
矣, 美則美矣. 若於本分事中, 檢點將來, 猶欠一着在. 敢問大
衆. 作麽生是本分事?” 良久云,“ 鴛鴦繡出從敎看, 莫把金針
度與人.”
135) 부처님의 화두 자체가 속이는 말이 아니라 모든 화두는 본래 어떤 의미와 관념
도 없는 허(虛)한 장치로서 설정된 것인데, 이것을 모르고 실(實)한 것으로 분별
하는 사람이 스스로 속는 것이다. 속인다는 표현은 화두의 이러한 속성을 나타
내는 상투적인 말이다.
136) 원통원기선사 자신이 화두의 장치를 간파했다는 뜻이다.
137) 建化門. 교화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설정한 문. 어떤 방편도 용납하지 않는 본분
사(本分事)의 입장과 대립한다. “건화문의 입장에서는 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
는가? 그러나 납승의 본분에서는 그 어느 것과도 상관이 없다.”(『五燈全書』권
94「武攸雲海旻章」卍141 p.870a13. 若在建化門頭, 有何不可? 衲僧分上, 總沒
交涉.)
138) 本分事. 납승(衲僧)이 궁극적으로 성취해야 할 경지. 납승본분사(衲僧本分事) 또
는 납승분상사(衲僧分上事) 등이라고도 한다. 일대사(一大事)를 표현하는 선종
의 특수한 용어이다.
139) 일착(一着·一著). 바둑에서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한 수와 같이 본분을 나타
내는 그 무엇을 말한다.
140) 건화문과 본분사를 적재적소에 발휘하는 것이 종사의 수단이다. “공적인 일로
는 바늘 들어올 틈 하나도 허용하지 않지만, 사사롭게는 수레와 말도 통과시킨
다. 옛사람은 향상하는 길을 본분사로 삼지만, 건화문에서는 자세하게 현재의
사정을 고려하여 가르친다. 자각(慈覺)선사가 말했다. ‘유위는 비록 일시적 방편
[僞]이지만 버리면 공을 이루지 못하고, 무위는 비록 진실 그 자체[眞]이지만 가
지려 하면 성과(聖果)를 얻지 못한다.’”(『請益錄』10則「評唱」卍117 p.822b10.
官不容針, 私通車馬. 古人, 以向上路爲本分事, 以建化門頭曲爲今時. 慈覺道, ‘有爲
雖僞, 棄之則功行不成;無爲雖眞, 趣之則聖果難剋.’)
141) 앞 구절은 건화문, 뒤 구절은 본분사에 상응하지만, 나타내려는 의중은 뒤 구
절에 있다. 황룡혜남(黃龍慧南) 등이 사용한 말이다.『黃龍語錄』 大47 p.637
a22 참조.
[설화]
원통의 뜻은 위에서 설두가 “선상을 뒤집어엎었어야 했다”라고 한 취지
와 같다.
圓通義, 上雪竇掀倒禪床之意也.
승천회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말해 보라! 어떤 도리를 갖추었기에 이
와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가? 앞을 쳐다보거나 뒤를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 이외에 아무도 없는 듯이 오만했기 때문일까?
대중들은 판단해 보라. 만약 제대로 판단한다면 하늘 위와 하늘 아래뿐
만 아니라 삼천세계142)의 티끌과 같이 무수한 국토 그 어디서나 홀로 존
귀하여 비교할 상대도 없고 어울릴 짝도 없을 것이다. 만약 판단하지
못한다면, 무리들 사이에서 왕래하는 것 또한 본분이다. 왜 그런가? 앞
서 간 성인이 하신 말씀을 들어보지 못했는가? ‘자기 몸의 실상을 관찰
하듯이 부처님도 그와 같이 관찰하라.’143) 비록 그 말씀이 옳기는 하지
만 반드시 정법(正法)을 보는 눈144)을 갖추어야 비로소 관찰할 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법을 보는 눈이란 어떤 것인가?” 마침내 불자로
법좌를 치면서 말했다. “휘두르는 방(棒)에 태양처럼 밝은 눈이 달려 있
다.145) 순금의 진가를 알고자 한다면 그것을 단련시키는 용광로 속을 살
펴보라.146)”
承天懷, 上堂, 擧此話云, “且道! 具什麽道理, 便能如斯語話?
爲復不瞻前顧後耶? 爲復傍若無人耶? 大衆, 試斷看. 若斷得,
非唯天上天下, 便乃三千世界微塵國土, 獨尊獨貴, 無比無儔.
若斷未得, 且於行間往來, 亦是本分. 何故? 豈不見先聖道?
‘觀身實相, 觀佛亦然.’ 然雖如是, 也須具正法眼, 方解觀得.
且作麽生是正法眼?” 遂擊拂子云,“ 棒頭有眼明如日. 要識眞
金火裏看.”
142) 주석45) 참조.
143)『文殊般若經』권1 大8 p.728a28,『仁王經』권상 大8 p.836a23,『維摩經』권하
大14 p.554c29 등에 나오는 구절.
144) 정법안(正法眼). 정법안장(正法眼藏)이라고도 한다. 불법의 진실을 꿰뚫어 보는
지혜로운 눈을 말한다. ‘장’은 모든 것을 포괄한다는 뜻이다. “임제선사가 막 입
적하려고 할 때 자리를 잡고 앉아 말했다. ‘내가 사라진 다음에 나의 정법안장을
소멸시켜서는 안 된다.’ 삼성이 나와서 말했다. ‘어찌 화상의 정법안장을 소멸시
킬 수 있겠습니까?’ 임제가 ‘이 다음에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묻는다면 그에게
무슨 말을 해주려느냐?’라고 묻자 삼성이 한 소리 크게 내질렀다. 임제가 ‘나의
정법안장이 이 눈먼 나귀 편에서 소멸되리라는 사실을 누가 알까?’라는 말을 마
친 다음, 꼿꼿이 앉아 입적했다.”(『臨濟語錄』大47 p.506c3. 師臨遷化時, 據坐
云, ‘吾滅後, 不得滅却吾正法眼藏.’ 三聖出云, ‘爭敢滅却和尚正法眼藏.’ 師云, ‘已
後有人問爾, 向他道什麽?’ 三聖便喝. 師云, ‘誰知吾正法眼藏, 向這瞎驢邊滅却?’
言訖端然示寂.) 주석106) 참조.
145) 조사선에서 방은 할(喝)과 함께 언어문자에 얽매이지 않고 본분을 펼치는 대표적
인 수단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이 화두에서 겉으로 표현된 거창한 허언
(虛言)에 정법안이 숨어 있다. 곧 겉말에 현혹되지 않고 단적인 본분을 드러내는
방·할과 같은 정법안을 포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화두와 같이 몰자미(沒
滋味)한 뜻으로 제시되며, 앞뒤를 살피지도 않고 휘두르는 눈먼 사이비 선사들의
방과 같지 않다. “깊은 도에 통하려는 그대들에게 알리노라. 방·할은 시기적절하
게 나와야 한다. 만일 단적인 뜻을 밝힌다면 한밤중에 태양이 빛나리라.”(『人天
眼目』권1 大48 p.302b16. 報汝通玄士, 棒喝要臨時. 若明端的旨, 半夜太陽煇.)
146) 황금은 용광로 불에 단련되어야 더욱 순수한 금으로 변한다. 불과 물이라는 상
반되는 곳을 반복하여 출입하며 순금으로 단련되듯이 반을 드러내고 반을 숨기
는 장치를 간파해야 이 화두의 본질에 들어갈 수 있다. 이상의 두 구절은『雪竇
語錄』권1 大47 p.670b18,『圜悟語錄』권11 大47 p.765a1 등에 나온다.
[설화]
서 있는 곳마다 모든 사람의 본분사(本分事)이니, 유독 석가노자만 그렇
다는 뜻은 아니다.
承天:立處在諸人分上事, 非獨釋迦老子如是也.
원오극근의 염
무리를 놀라게 하는 말은 반드시 무리를 놀라게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드러내 보여야 하고, 기특한 일은 반드시 (그것을 알아보는) 기특한 사람
을 만났을 때만 집어내야 한다. 석가노자는 무리를 놀라게 했다고 할 만
하고, 운문대사는 대단히 기특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헤아릴 수 없이
자유로운 기틀을 모든 성인의 정수리에서 굴렸던 것이다.147) 만약 이와
같이 사무치게 이해한다면 비로소 부처님은 요충이 되는 통로를 단단히
지키고 있었고148) 운문은 그러한 부처님의 은혜를 알고 갚을 줄 알았다149)
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말해 보라! 운문의 말150)은 어디에 귀착되는
가? 알겠는가? 휘두르는 방(棒)에 태양처럼 밝은 눈이 달려 있다. 순금의
진가를 알고자 한다면 그것을 단련시키는 용광로 속을 살펴보라.
佛果勤拈, “驚群之句, 須向驚群處擧揚;奇特之事, 須遇奇特
人拈出. 釋迦老子, 可謂驚群;雲門大士, 不妨奇特. 直下以不
可測度底機輪, 向千聖頂上撥轉. 若能伊麽體會, 始知釋迦
把斷要津, 雲門知恩解報. 且道! 雲門落在什麽處? 還會麽?
棒頭有眼明如日, 要識眞金火裏看.”
147) 자유로운 기틀은 기륜(機輪)을 번역한 말로서 각자가 발휘하여 나타내는 기틀
을 바퀴에 비유한 말이다. 마치 바퀴가 어디나 자유롭게 굴러가듯이 상황에 맞
게 자신의 본분을 걸림 없이 발휘하는 것을 가리킨다.
148) 파단요진(把斷要津). ‘요진’은 강을 건너 통행하고자 할 때 반드시 지나야 하는
나루터이며, ‘파단’이란 이곳에 가로막고 서서 아무도 지나가지 못하도록 단단
히 지킨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부처님의 ‘천상천하 유아독존’과 탄생하면서 일
곱 걸음 걸은 행위가 이처럼 누구나 통과하도록 설정된 언행이 아니라 아무도
통과할 수 없게 만든 ‘관문’이었음을 나타낸다.
149) 지은해보(知恩解報). ‘개에게 먹이로 주겠다’라고 한 운문의 말이야말로 부처님
의 그 관문을 제대로 꿰뚫어 보고 대응한 또 하나의 관문이었다는 뜻이다.
150) 이 평가가 나오는『圜悟語錄』권17 大47 p.792c24에는 ‘운문’이라는 말은 없다.
이 경우 운문의 말이 어디에 귀착되는지를 묻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부처님과
운문을 모두 제기하여 그 궁극적인 뜻을 묻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설화]
석가모니와 운문이 입각한 근거는 다른 점이 없었다는 뜻이다.
佛果:釋迦雲門立處, 未嘗有異也.
대혜종고의 평
“궁극적인 한 구절151)은 말로 표현하기 이전에 벌거벗은 알몸을 모조
리 드러내었으니, 하늘과 땅 그 어디에나 있고 소리와 색이 모두 그것
이다. 황면노자152)는 이 결정적인 하나의 소식을 얻고서 ‘도솔천을 떠
나기 이전에 이미 왕궁에 강림하였고, 모태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중생
제도를 벌써 마쳤다’ 라고 했던 것이다.153) 세상에 처음으로 태어났을
때 모든 세계의 그물154)을 진동시키고 곧바로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
리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사자의 포효와 같이 큰소리를
내지른 다음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로지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 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것은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성취하기 위하여 중
생에게 불지견155)을 열고, 불지견을 드러내며, 불지견을 깨닫게 하고,
불지견으로 들어가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수천 년 뒤에 절름발
이 스님156)에게 ‘한 방에 때려죽여서 개의 먹이로 주고 천하의 태평을 도
모했을 것이다’ 라는 말을 들을 줄은 전혀 몰랐다. 말해 보라! 석가노자의
잘못은 어디에 있을까?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가리키며 거창하게 말했기
때문일까? 남의 집 자식들을 미혹시키고 우롱하지 말았어야 했던 탓일
까? 아니면, 불지견을 열어서 보이고 깨닫게 하고 들어가도록 했기 때문
일까? 만약 이와 같이 헤아린다면, 석가노자를 비방하는 것일 뿐만 아니
라 또한 운문대사의 본의를 등지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이르러 운문의
말이 귀착되는 경계를 알아차린다면 자기 자신이 귀착되는 경계도 알게
될 것이다. 말해 보라! 결국 어느 곳에 귀착되겠는가?”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아득한 세월 동안 변함없는 푸른 연못에 허공의 달이 잠겼는데,
두 번 세 번 건져보고서야 비로소 달그림자임을 알았노라.”157)
大慧杲云,“ 末後一句子, 聲前露倮倮, 盖天盖地, 盖聲盖色.
黃面老子, 得箇一着子, 便道‘未離兜率, 已降王宮, 未出毋胎,
度人已畢,’ 及至初生, 卽震動一切世界網, 便一手指天一手指
地, 作大師子吼道,‘ 天上天下, 唯我獨尊!’ 爲一大事因緣故,
開佛知見, 示佛知見, 悟佛知見, 入佛知見. 殊不知, 數千年後,
被箇跛脚阿師,‘ 要一棒打殺, 與狗子喫, 貴圖天下大平.’ 且
道! 釋迦老子, 過在什麽處? 莫是指天指地開大口麽? 莫是不
合鼓弄人家男女麽? 莫是開示悟入佛知見麽? 若伊麽商量, 不
唯謗他釋迦老子, 亦乃辜負雲門大師. 到者裏, 若知雲門落處,
卽知自己落處. 且道! 落在什麽處?” 良久云,“ 萬古碧潭空界
月, 再三撈摝始應知.”
151) 말후일구자(末後一句子). 주석112) 참조.
152) 본서 1則 주석27) 참조.
153)『大慧語錄』권8 大47 p.842c8.
154) 세계망(世界網).『華嚴經』에 나오는 용어로 하나하나의 세계가 모두 그물처럼
종횡으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를 가리킨다. 이것은 화엄의 법계연기설(法界緣起
說)을 비유하는 말이다. “세계의 그물을 이룬다는 말은 하나하나의 세계가 마치
그물코와 같이 서로 교차하여 연결된 모습을 가리킨다. 마치 그물이 종횡으로
엇갈려 이어진 형태로 유지되며 모두 다른 것과 맞닿아 있는 것과 같다.”(『華嚴
經疏』권12 大35 p.584a19. 言成世界網者, 一一世界, 猶如網孔, 遞相接連. 如以
網持橫竪交絡, 皆悉相當.)
155) 佛知見. 모든 법의 실상과 미묘한 이치를 아는 부처님의 지혜로운 견해. 여기서
제시된 것은 4가지 불지견이며 이것이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근본적인 이유
인 일대사인연이다. 곧 부처님이 중생의 무명을 제거하고 실상(實相)을 열어주
며[開], 무명의 장애가 걷히고 법계의 진실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고[示], 법
의 본질을 깨달아 구체적인 현상과 걸림 없이 모두 통하게 하며[悟], 자유자재
로 활용하며 법의 본체와 하나가 되게 하는 것[入]을 말한다.『法華經』권1
「方便品」大9 p.7a21에 “모든 부처님은 오로지 일대사인연을 실현하고자 세
상에 출현하셨다.”(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라는 말에 따르며,
『法華玄義』권8하 大33 p.787c9 등에 4불지견이 해설되어 있다.
156) 운문문언(雲門文偃)을 가리키는데, 다음의 일화에서 생긴 말이다. “목주(睦州)
는 평소 학인을 대할 때에 문지방을 넘어서자마자 바로 멱살을 움켜쥐고는 ‘말
해 보라! 말해 보라!’고 하였으며 머뭇머뭇하며 말하지 못하면 바로 밀쳐내면서
‘진나라의 탁력찬 같은 놈이로다’라고 하였다. 운문이 목주를 만나러간 지 세 차
례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문을 두드리자마자 목주가 ‘누구냐?’고 물었다. ‘문언
(文偃)입니다’ 하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목주는 운문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말해 보라! 말해 보라!’라고 하였다. 운문이 머뭇거리자 곧바로 문 밖으로 밀쳐
버렸다. (운문이 미처 발을 떼어 다 나오지 못하여) 한쪽 발이 문지방 안쪽에 있는
데 목주가 문을 급하게 닫는 바람에 운문의 다리가 문틈에 끼어 부러지고 말았
다. 운문은 아픔을 참지 못하고 소리소리 지르다가 홀연 크게 깨쳤다.”(『碧巖錄』
6則 大48 p.145c16. 尋常接人, 纔跨門便搊住云, ‘道! 道!’ 擬議不來, 便推出云,
‘秦時轢鑽.’ 雲門凡去見, 至第三回. 纔敲門, 州云, ‘誰?’ 門云, ‘文偃.’ 纔開門便跳入,
州搊住云, ‘道! 道!’ 門擬議, 便被推出門, 一足在門閫內, 被州急合門, 拶折雲門脚.
門忍痛作聲, 忽然大悟.)
157) 이 구절은 선어록에 많이 등장하지만, 대혜의 말은 화두 참구의 관점에서 해석해
야 그 본질을 알 수 있다. 운문의 말은 허공에 뜬 실재의 달이 아니라 물에 비친 달
그림자와 같다. 그가 드러낸 말은 어떤 개념도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일정한 개념
에 기초하여 분별을 거듭해도 그 본의를 건져 올릴 수 없고, 결국 그러한 수단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본래의 뜻이 드러나기 때문이다.『汾陽語錄』
古尊宿語錄10 卍118 p.269b1,『白雲守端和尙語』續古尊宿語要3 卍118 p.951a2,
『圜悟語錄』권9 大47 p.755b29,『宏智廣錄』 권4 大48 p.39b22 등에 나온다.
[설화]
대혜가 ‘궁극적인 한 구절’이라 운운한 말은 1칙 ‘도솔 화두’에 나온 원
오극근의 송 의미와 같은 종류이며, 또한 2칙에 나온 승천회의 상당에 제
시된 의미와 같은 종류이다.
大慧云, 末後一句子云云, 前兜率話中, 圓悟勤頌義一般, 亦承
天上堂義一般也.
백운지병의 염
“운문의 저울158)은 보통 사람들의 표준159)을 멀리 벗어나 있으니, 마치
용이 물을 지배하고 호랑이가 산에 군림하는 것과 같아서 아름답기는 매
우 아름답다. 그러나 그도 더 높이 오르는 유일한 통로는 여전히 모르고
있으니, 밝은 눈을 가진 납자(衲子)들은 분별하여 보기 바란다.”
白雲昺拈,“ 雲門稱提, 超出人表, 如龍得水, 似虎靠山, 美則
美矣. 要且, 未知向上一竅在, 明眼衲僧, 試請辨看.”
158) 칭제(稱提). 권형(權衡)과 같은 말. 운문이 진실을 가리키기 위하여 창안한 위의
화두를 가리킨다. 그 화두로 점검하는 기준을 삼기 때문에 ‘저울’이라 한다.
159) 인표(人表). 사람들이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상식적인 인식의 틀.
[설화]
향상하는 유일한 통로는 어찌 설두가 “선상을 뒤집어엎었어야 했다”라
고 한 뜻이 아니겠는가!160)
白雲:向上一竅, 豈非雪竇掀倒禪床處!
160) 운문이 비록 용과 호랑이가 물과 산에 주인으로 살면서 다른 누구도 그 영역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듯이 몰자미한 화두로 모든 분별을 차단하고 있지만, 그
자체도 뒤집어엎는 선기(禪機)를 발휘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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