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칙 백장야호 百丈野狐1)
1) ‘떨어지지 않는다’는 불락(不落)과 ‘어둡지 않다’는 불매(不昧)가 이 공안의 관문
을 형성하는 두 가지 요소다. 불락이라고 대답하여 윤회의 굴레에 떨어졌다가
불매라는 말을 듣고 윤회를 벗어났다는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불락은
틀린 대답이고 불매가 적절한 대답이라는 생각에 입각하여 분별하면 착각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잘못을 포착하는 것이 이 공안의 관건이다.
[본칙]
백장이 상당법문을 하는 날마다 언제나 법문을 듣고 나서 대중을 따
라 물러가는 한 노인이 있었다. 하루는 떠나지 않고 있자 백장이 물었다.
“서 있는 사람은 누구요?” “저는 과거 가섭불2) 당시에 이 산에 살았는데,
어떤 학인이 ‘큰 수행을 하는 사람도 인과(因果) 3)에 떨어집니까?’라고 하
는 질문에,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대답한 잘못으로 여우의 몸에
떨어졌습니다. 이제 스님께서 저를 대신하여 결정적인 전기가 되는 한
마디 4)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물으십시오.” 이에 노인이 “큰 수행
을 하는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라고 물었고, 백장은 “인과에 어둡
지 않다”라고 답했다. 노인은 그 말을 듣자마자 크게 깨닫고 작별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저는 이미 여우의 몸을 벗어났기에 이제 산 뒤에 머물러
있겠으니, 입적한 스님을 화장하는 의식에 따라 장례를 치러주십시오.”
백장이 유나를 시켜 건추를 울리고 대중에게 ‘공양을 마친 다음 모두 모
여 입적한 스님의 장례를 치르겠습니다’라고 알리도록 했다. 대중이 영
문을 몰라하니 만참(晩參) 때 백장이 이전의 인연을 들려주었다.〈황벽이
백장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결정적인 전기가 되는 한마디를 잘못 대답하여 여우의 몸에
떨어졌는데, 지금 누군가가 한마디 하고 또 한마디를 해서 잘못이 없을 경우 어떻게 하겠
습니까?” “가까이 오라! 그대에게 말해 주겠다.” 황벽이 가까이 다가서서 백장의 따귀를
한 대 때렸다. 백장이 껄껄대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달마대사의 수염은 붉을 것이라 생
각했었는데, 여기 또 붉은 수염이 달린 달마대사가 있었구나.”5) 당시 위산(潙山)이 백장
회하에서 전좌6) 소임을 맡고 있었는데, 사마두타가 이 공안을 제기하고 물었다. “전좌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위산이 사립문을 세 번 흔들었다. 사마가 “몹시 거칠군!”이라 하자
위산이 말했다. “불법은 그러한 도리가 아닙니다.”〉
百丈, 每日上堂, 常有一老人聽法, 隨衆散去. 一日不去, 師
乃問, “立者何人?” 老人云, “某甲於過去迦葉佛時, 曾住此
山, 有學人問, ‘大修行底人, 還落因果也無?’ 對云, ‘不落
因果.’ 墮在野狐身. 今請和尙代一轉語.” 師云, “但問.” 老
人便問, “大修行底人, 還落因果也無?” 師云, “不昧因果.”
老人於言下大悟, 告辭云, “某甲已免野狐身, 住在山後, 乞
依亡僧燒送.” 師令維那, 白槌告衆, ‘齋後普請送亡僧.’ 大
衆不能詳, 至晩叅, 師擧前因緣. 〈黃蘗問百丈, “古人錯答一轉語, 墮
在野狐身, 今人轉轉不錯時, 如何?” 丈曰,“ 近前來! 向汝道.” 蘗近前, 打師一
掌. 丈呵呵大笑云,“ 將謂胡鬚赤, 更有赤鬚胡.” 時, 潙山在百丈會下, 作典座.
司馬頭陁擧問,“ 典座作麽生?” 潙乃撼門扇三下. 司馬云,“ 大麤生.” 潙云,“ 佛
法不是這箇道理.”〉
2) 迦葉佛. Kāśyapa Buddha. 석가모니불 이전의 과거칠불(過去七佛) 중 제6불이
며, 현재현겁(現在賢劫)의 천불(千佛) 중 제3불. 석가모니 전생의 스승으로 석가
모니가 반드시 성불하리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가섭파불(迦葉波佛·迦攝波佛)이
라고도 음사한다. ‘가섭’의 한역어가 음광(飮光)이므로 음광불이라고도 한다.
3) 일정한 원인에 따라 결과를 받는 윤회의 굴레를 말한다.
4) 일전어(一轉語). 미혹에서 깨달음으로 전환(轉換)시키는 한마디 말. 또는 상황
을 반전(反轉)시키는 결정적인 한마디 말을 가리킨다.
5) 옛사람이나 지금의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는 비유로 불락과 불매의 차별이 없
는 경계를 제기한 말이다.『雲門廣錄』권상 大47 p.552c11,『大慧語錄』
권4 大47 p.827a4 등에도 보이는 구절이다.
6) 典座. 침소·음식 등을 담당하는 소임. 육지사(六知事) 중 하나이다. “전좌는 부
엌에서 죽반(粥飯)을 먹는 일을 담당하는데, 그 먹는 음식이 대중과 달라서는
안 된다. 두 때의 음식이 준비되면 먼저 승당을 바라보면서 분향하고 절을 올린
다음 음식을 분배한다.”(『禪院淸規』권3「典座」卍111 p.892b15. 典座, 係
廚中喫粥飯, 所食不得異衆. 二時食辨, 先望僧堂, 焚香禮拜訖, 然後發食.)
[설화]
큰 수행을 하는 사람:금일인인가? 본래인인가? 만약 본래인이라면 무엇
때문에 수행이라 하겠는가?7) 금일인이 이치에 맞게 수행하므로 ‘큰 수행’
이라 하는 것이다.
7) 본래인은 수행을 할 필요가 없이 본래 완성된 사람 곧 수행을 마친 것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수행’이라는 명칭이 붙을 여지가 없다.
인과:선한 원인에는 선한 결과가 따르고, 악한 원인에는 악한 결과가
따른다는 뜻을 모두 들어 보인 말이다. 어떤 사람은 ‘법계의 원인과 법계
의 과’라고 하지만, 이렇게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면 모자람만 못하다. ‘큰
수행을 하는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학인이 이렇게 의심을 일으켜
질문을 던진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인과에 떨어진다고 한다면 현자와 포
대8)가 언제 인과에 떨어진 적이 있었던가? 만약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
고 한다면 사자존자와 2조 대사는 뚜렷이 빚을 갚았거늘9) 이 어찌 인과
에 떨어지지 않은 것인가?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대답하여 여우
의 몸에 떨어졌다가 훗날 백장이 ‘인과에 어둡지 않다’라고 대답해 준 말
에서 여우의 몸을 벗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여우라는 짐승은 본성상 의심
이 많아서 언 강물을 건널 경우 한 걸음 디딜 때마다 한 번 발자국 소리를
확인한다. 곧 백장을 만나기 이전(前百丈)에는 의심을 일으키며 말했기 때
문에 여우의 몸에 떨어졌고, 백장을 만난 다음(後百丈)에는 의심이 끊어
진 상태에서 말했기 때문에 여우의 몸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고덕들은 “백장을 만나기 이전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가? 앉아 있는 자리
에서 벽에 걸린 활이 술잔에 비친 모습을 대면하고 뱀이라 착각한 것이었
다.10) 백장을 만난 다음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가? 다시 앉은 자리에서 벽
에 걸린 활이 술잔에 비친 모습이라고 바르게 알았다”라고 말했던 것이며,
또한 “백장을 만나기 이전에는 기미가 드러나기 이전의 미묘한 뜻을 이해
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우의 몸에 떨어졌고, 백장을 만난 다음에는 기미가
드러나기 이전의 미묘한 뜻을 이해했기 때문에 여우의 몸에서 벗어난 것
이다”라고도 말하고, 또 “법을 설함에 소득이 남아 있으면 이는 여우의 울
음소리이고, 법을 설함에 소득이 남아 있지 않으면 사자의 포효라 한다”라
고도 했던 것이다. 말에는 비록 차이가 있지만 속뜻은 동일한 것이다. 만
송은 “(그 노인이 여우의 몸에 떨어진 이유는) 자기 스스로 담에 기대고 벽
에 붙어 부자유하게 살면서 남들까지 구덩이로 밀어 떨어뜨렸기 때문이
다. 대지(大智:백장)에게 번뇌의 못을 빼고 망상의 쐐기를 뽑아내는 수단
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자신을 버리고 남을 따르는 자세로 대지에게 결정
적인 전기가 되는 한마디를 대신해 달라고 청했던 것이다. 이에 대지는 두
려움 없는 변설11)을 펼치며 가볍게 방향을 바꾸어 ‘인과에 어둡지 않다’고
했던 것이다”12)라고 말했다. 이것을 가리켜 ‘변화의 흐름에 따라 묘(妙)를
터득하는 것’13)이라 한다. ‘어둡다’는 말은 없다[無]는 뜻이다. 백장을 만나
기 전에는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하여 오백생 동안 살가죽과 뼈에
바짝 달라붙은 듯이14)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반드시 ‘인과에 어둡지 않
다’라고 말하여 그가 빠진 함정을 부수어야 했다. 그러므로 진정극문(眞淨
克文)은 이 공안에 대하여 “불락에 칼날을 숨겼다가 불매에서 분명히 드
러내니, 그가 이로부터 여우의 몸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다네”15)라고 읊었
던 것이다. 그러나 백장을 만나기 전에는 ‘인과에 어둡지 않다’고 말했더
라도 인간과 다른 존재에 떨어졌을 것이며, 백장을 만나 깨달은 다음에는
틀림없이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처럼 있다고 해
도 속박된 몸을 벗어날 길이 있고, 없다고 해도 속박된 몸을 벗어날 길이
있다.16)
8)『景德傳燈錄』권17「京兆蜆子傳」大51 p.338a27에 따르면, 경조현자는 동산
(洞山)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뒤로 일정한 거처가 없이 돌아다니며 계율의 형식도
따르지 않고 수행자로서 갖추어야 할 어떤 도구(道具)도 없이 강어귀에서 조개
를 잡아 배를 채우며 살았다. 어느 날 화엄정(華嚴靜)이 그의 경계를 점검하기
위하여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묻자 “신상(神像) 앞의 술받침대”(神前酒臺
盤)라고 대답하여 화엄정이 사죄하고 물러났다고 한다. 이렇게 살았어도 행적
에 집착과 걸림이 없었으므로 그 과보를 받지 않았다는 대표적인 예로 거론한
것이다. 이것은 포대화상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책 권27 「布袋和尙傳」
大51 p.434a19에 따르면, 항상 포대 한 자루를 짊어지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걸
식하며 젓갈이나 물고기도 손에 잡히는 대로 먹었다. 무엇을 물어도 “나에게 한
푼만 주시오(乞我一文錢)”라고 응답하거나, 포대를 내려놓았다 다시 짊어지고
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9) 두 사람이 모두 ‘큰 수행을 하는 사람’으로서 인과의 굴레에 떨어져 대가를 치렀
던 일화를 말한다.『景德傳燈錄』권2「師子尊者傳」大51 p.215a14에 따르면,
사자존자는 인도 카슈미르국[罽賓國]의 군왕과 법문답을 하던 중 목이 베어 떨어
져 나갔다. 또한, 같은 책 권3 「慧可傳」 大51 p.221a11에 따르면, 2조 혜가가
광구사(匡救寺)에서 무상도(無上道)에 대하여 설법할 때 당시 그 절에서 변화(辯
和)에게『涅槃經』 강설을 듣던 학인들이 빠져나가 혜가의 설법에 몰려들었다.
이에 변화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친분이 있는 읍재(邑宰) 적중간(翟仲侃)에게 혜
가를 비방하였고, 적중간은 삿된 설법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혜가를 모멸하였
다. 그러나 혜가는 기꺼이 받아들였는데, 진실을 아는 자들은 이것을 두고 ‘빚
을 갚았다’고 말했다. “호월공봉(皓月供奉)이 장사경잠(長沙景岑)화상에게 물었
다. ‘고덕이 「깨달았다면 업장은 본래 공(空)이겠지만, 아직 깨닫지 못했다면 마
땅히 묵은 빚을 갚아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사자존자와 2조대사
는 어째서 빚을 갚은 것입니까?’ ‘대덕께서는 본래의 공을 모르시는군요.’ ‘본래
의 공이란 무슨 뜻입니까?’ ‘업장이 그것입니다.’ ‘업장이란 무엇입니까?’ ‘본래
의 공이 그것입니다.’ 호월이 아무 말도 없었다.”(『景德傳燈錄』권3「慧可傳」
大51 p.221a17. 皓月供奉, 問長沙岑和尚, ‘古德云, 「了卽業障本來空, 未了應
須償宿債.」只如師子尊者, 二祖大師, 爲什麽得償債去?’ 長沙云, ‘大德不識本來
空.’ 彼云, ‘如何是本來空?’ 長沙云, ‘業障, 是.’ 又問, ‘如何是業障?’ 長沙云, ‘本
來空, 是.’ 彼無語.)
10) 본서 1299則 주석21) 및<설화> 참조. 두 <설화>의 해설 방식이 동일하다.
11) 무외변(無畏辨·無畏辯). 백수의 왕인 사자가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포효하듯
이 걸림이 없이 진실을 자유자재로 드러내는 말솜씨를 가리킨다.
12)『從容錄』8則「評唱」大48 p.232a9.
13)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모조리 없애버리는 단견(斷見)이며, 인과에
둡지 않다는 말은 변화의 흐름에 따라 묘(妙)를 터득하는 것이다.”(위의 책 8則
「評唱」 p.232a13. 不落因果, 是撥無斷見;不昧因果, 是隨流得妙.)
14) 여전히 얽매이는 단서가 남아 있는 것이 마치 뼈와 살에 이물질이 바싹 달라붙
어 떨어지지 않는 꼴과 같다는 뜻. 원오극근(圜悟克勤)이 즐겨 쓰던 비유이다.
“<본칙> 어떤 학인이 운문에게 물었다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진다는 것은 어
떤 소식입니까?’ ‘몸통째 드러내는 가을바람이구나.’ <원오의 염(拈)> 운문의 탁
월한 방편은 현상[事] 그대로 근본 이치[理]요 숨은 그대로 드러남이며, 삼구(三
句)를 분별할 수 있고 화살 한 촉이 먼 허공을 날아갔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여
전히 살가죽과 뼈에 무엇인가 달라붙어 있는 것과 같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나
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진다는 것은 어떤 소식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그에게 ‘하
늘을 지탱하고 땅을 떠받친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말해 보라! 이는 삼구인가?
화살 한 촉인가? 옥의 진가를 시험하려면 반드시 불에 집어넣어 보아야 하고,
구슬의 진가를 알려면 진흙을 벗어나면 안 된다.”(『圜悟語錄』 권18 大47 p.796
c13. 擧. 僧問雲門, ‘樹彫葉落時, 如何?’ 門云, ‘體露金風.’ 師拈云, ‘雲門善巧方便,
可謂卽事卽理, 卽隱卽顯, 三句可辨, 一鏃遼空. 雖然, 猶是粘皮著骨. 若有問蔣山,
「樹彫葉落時, 如何?」只對他道,「撑天拄地.」且道! 是三句, 是一鏃? 試玉須經火,
求珠不離泥.’)『碧巖錄』72則「評唱」大48 p.200b21 참조.
15)『雲庵眞淨語錄』古尊宿語錄45 卍118 p.751b3.
16) 불락과 불매 또는 있음과 없음 중 어떤 것도 해탈과 속박으로 서로 옮아 갈 수
있으며 규정된 의미는 없다. “사방으로 통하는 작가는 있다고 해도 터득하고 없
다고 해도 터득하니, 어느 곳에나 속박된 몸을 벗어날 길이 있다.”(『楞嚴經宗通』
권10 卍25 p.376a13. 通方作家, 道有也得, 道無也得, 在在有出身之路.)
백장의 따귀를 한 대 때렸다:이것이 한마디 하고 또 한마디를 해서 잘못이
없는 행위임을 나타낸다.
사립문을 세 번 흔들었다:따귀 한 대가 본래 갖추어진 경계를 말하는데, 백
장이 껄껄대고 크게 웃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세 번이 하나가 되니 곧 따
귀 한 대라고 한다면 틀린 생각이다.
몹시 거칠군:서로 차별된 것에 가깝다는 뜻이다.
불법은 그러한 도리가 아닙니다:이 경계에서 무엇을 가리켜 거칠다느니 세
밀하다느니 차별되게 말하느냐는 뜻이다.
大修行地人者, 今日人耶? 本來人耶? 若是木來人, 何名修
行? 今日人, 稱理修行, 故云大修行也. 因果者, 善因善果, 惡
因惡果, 都擧也. 或云,‘ 法界之因, 法界之果’者, 過猶不及.
‘大修行地人, 還落因果也無?’ 學人伊麽起疑致問者, 何也?
若道落因果, 蜆子布帒, 何曾落因果? 若道不落因果, 如師子
尊者, 二祖大師, 灼然償債, 豈是不落因果? 對之不落因果, 墮
野孤身, 後百丈云, ‘不昧因果.’ 於此脫野狐身, 何也? 狐之爲
獸, 其性多疑, 過氷河一步一聽. 則前百丈起疑, 而道得故, 墮
野狐身;後百丈絶疑, 而道得故, 脫野狐身也. 故古德云,“ 要
識前百丈麽? 對坐盤中弓落盞. 要識後百丈麽? 再坐盤中弓落
盞.” 又, “前百丈, 不會機前妙故, 墮野狐身;後百丈, 會機前
妙故, 脫野狐身.” 又,“ 說法有所得, 斯則野干鳴;說法無所得,
是名師子吼.” 言雖其異, 其實一也. 萬松云, “良由自己倚牆貼
壁, 送人墮坑落塹. 見大智有抽釘拔楔地手段, 舍己從人, 請大
智代一轉語. 大智施無畏辨, 輕輕撥轉道,‘ 不昧因果.’” 是隨
流得妙也. 昧者無也. 前百丈道, 不落因果, 五百生粘皮著骨
故, 須道不昧因果, 破他窠窟也. 故眞淨文頌云,“ 不落藏鋒不
昧分, 要伊從此脫狐身.” 然前百丈, 倘或言不昧困果, 墮在異
類;後百丈, 必須道不落因果. 然則, 道有也, 有出身之路;道
無也, 有出身之路. 墮也, 何曾墮? 脫也, 何曾脫? 一箇野狐,
全身出沒, 脫體卷舒. 打師一掌者, 是轉轉不錯也. 撼門扇三下
者, 一掌本具地, 下呵呵大笑卽此也. 三下成一, 卽一掌者, 非
也. 大麤生者, 似乎差別也. 佛法不是云云者, 這裏, 是什麽說
麤說細.
대홍보은(大洪報恩)의 송 1
떨어지지 않음과 어둡지 않음이여!
무리를 이루고 떼거리를 짓는구나.17)
사자는 흙덩이 던진 사람을 물지만,
한나라 개18)는 흙덩어리를 쫓아가네.19)
〈이것은 불락에 대하여 읊은 게송이다.〉
大洪恩頌,“ 不落不昧! 成群作隊. 師子咬人, 韓獹逐塊.”〈 此頌
不落.〉
17) 많은 사람들이 불락과 불매라는 말에 현혹되어 하나는 틀리고 다른 하나는 맞
다는 생각에 따라 패거리를 나누어 분별한다는 뜻.
18) 한로(韓獹). 전국시대 한(韓)나라의 명견(名犬). 털이 검은 것이 특징이다.
19) “모든 범부가 오로지 결과만 보고 그 조건이 되는 인연을 살필 줄 모르는데, 마
치 개가 자기에게 던져진 흙덩이를 물려 쫓아가고 던진 사람을 쫓지 않는 것과
같다.”(『涅槃經』권25 大12 p.516b12. 一切凡夫, 惟觀於果, 不觀因緣, 如犬
逐塊, 不逐於人.)라는 경전의 말을 활용한 것이다. 불락과 불매라는 말에 근거
하여 이 공안의 핵심을 파악하려는 시도를 흙덩이를 쫓는 개에 비유한 것이다.
여기서 사자는 불락과 불매를 두고 벌어지는 시비를 모두 버리고 이 두 가지를
대립시켜 설정한 바로 그 관문을 타파하기 위해 돌진하는 자를 나타낸다.
대홍보은의 송 2
어둡지 않음과 떨어지지 않음이여!
부질없이 애쓰며 시비를 주고받네.
그 자리에서 알아차린다 하더라도,
끈도 없는데 스스로 묶인 격이로다.
〈이것은 불매에 대하여 읊은 게송이다.〉
又頌,“ 不昧不落! 謾勞斟酌. 直下承當, 無繩自縛”.〈 此頌不昧.〉
[설화]
주어진 말에 얽매여 뜻을 확정하는 것은 한나라 개가 던져진 흙덩어리
를 쫓아가는 꼴이며, 또한 묶을 끈도 없는데 스스로 묶이는 것과 같다. 만
약 백장의 속뜻을 알아차린다면 이것은 바로 사자가 흙덩이를 던진 사람
을 무는 것과 같다.
大洪:若隨言定旨, 是韓獹逐塊, 亦無繩自縛也. 若會得百丈
意, 是獅子咬人也.
천복본일(薦福本逸)의 송
불락이라 한 말과 불매라 한 말이여!
백장을 만나기 전후로 갈라진 말일세.20)
반 근이면 부족하다 헤아리고,
여덟 냥은 조금 낫다고 여기네.21)
조금 모자란 것을 남겨주고,
세상 납승들이 거론토록 했노라.22)
薦福逸頌, “不落與不昧! 先後百丈語. 半斤秤不足, 八兩較些
子. 較些子留與, 天下衲僧擧.”
20) 노인이 백장을 만나서 불매라는 대답을 듣기 이전의 상황을 전백장(前百丈) 또
는 선백장(先百丈)이라 하고, 백장을 만난 다음의 상황을 후백장(後百丈)이라
한다.
21) 반 근과 여덟 냥은 같은 무게이다. 한 근이 16냥이므로 반 근은 여덟 냥이기 때
문이다. ‘조금 낫다[較些子]’는 말은 아직 조금 모자라지만 비교적 낫다는 말이
다. 전백장의 말[불락]과 후백장의 말[불매]이 표현은 다르지만 차별이 없는 것
이 이 공안의 관문인데, 불매라는 소리를 듣고 노인이 깨달았다는 바로 그 말에
현혹되어 그것이 조금 더 나은 것이라 헤아리는 잘못을 가리킨다.
22) 모자라지만 그래도 조금 나은 듯이 보이는 불매를 궁구하도록 설정했다는 뜻.
[설화]
반 근과 여덟 냥은 같은 무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장을 만나기
이전에는 부족했다 헤아리고, 백장을 만난 다음에는 조금 나아졌다고 착
각한다는 뜻이다.
薦福:半斤八兩, 是一般. 在前百丈, 是秤不足, 後百丈, 則較
些子也.
자수첩의 송
전대의 인연이 후대에 그대로 드러나니,
신령한 거북 꼬리 끌어 자취 길게 그어졌다네.
회남에서 불현듯 남전에 대한 그리움 일어나,23)
감람 나뭇잎으로 차 끓이니 특별한 향 퍼지네.
資壽捷頌, “前代因緣後代彰, 靈龜曵尾迹橫長. 淮南瞥起泉南
思, 橄欖煎茶分外香.”
23)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대답한 결과로 오백생 동안 여우의 몸에 떨어졌
다고 보는 것은 이 공안의 핵심에 대한 오인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자수선사
는 남전(南泉)이 “죽은 다음 산 아래서 한 마리 물소가 될 것이다”라고 한 이류
중행(異類中行)으로써 이 착각을 타파한 것이다. 남전이 보살행을 실천하기 위
하여 고의로 물소가 되리라고 선언한 것처럼 여우의 몸에 떨어진 것 또한 일면
적으로 잘못의 과보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암시이다.『景德傳燈錄』권8「南泉
普願傳」大51 p.259a27 참조. “어떤 학인이 경잠에게 물었다. ‘남전은 입적한
다음 어디로 갔습니까?’ ‘동쪽 집에서는 나귀가 되고, 서쪽 집에서는 말이 된다.’
‘이 뜻은 어떤 것입니까?’ ‘올라타고자 하면 타고 내리고 싶으면 내린다.’”(『景
德傳燈錄』권10「長沙景岑傳」大51 p.274b22. 僧問, ‘南泉遷化, 向什麽處去?’
師云, ‘東家作驢, 西家作馬.’ 僧云, ‘此意如何?’ 師云, ‘要騎卽騎, 要下卽下.’)
해인초신(海印超信)의 송
불매와 불락이라고 한 말,
두 가지 모두 착각이로다.24)
취하고 버리는 마음 잊지 못하고,
망상분별로 이리저리 헤아리며,
말의 자취에 집착하여 얽매이니,
끈도 없는데 스스로 묶이는구나.
막힘없이 트인 드넓은 허공,
그 어디서 더듬으며 찾을 것인가!
봄이 되면 꽃이 피고,
가을 오면 나뭇잎 떨어질 뿐이라네.
착각이다, 착각이야!
보화가 방울을 흔든 뜻을 누가 알랴?25)
海印信頌,“ 不昧不落, 二俱是錯. 取捨未忘, 識情卜度, 執滯
言詮, 無繩自縛. 廓爾大虛, 何處摸! 春至花開, 秋來木落.
錯錯! 誰知普化搖鈴鐸?”
24) 불매라는 말을 듣고 여우의 몸에서 벗어났다는 구절을 그대로 긍정하면 착각
이다. 허당지우(虛堂智愚)가 “겉으로 보기에 부드러운 비단이지만 그 속에 딱
딱한 돌이 들어 있다”(錦包特石)라고 한 말이 그 예이다. 불락과 마찬가지로 불
매도 하나의 관문을 이루는 두 개의 빗장이기 때문이다.『虛堂語錄』권2 大47
p.995b5(僧云, ‘不昧因果, 因甚脫野狐?’ 師云, ‘錦包特石.’) 참조.
25) 보화(普化 ?~806)가 저잣거리에서 방울을 흔들며 게송을 읊었던 인연을 말한다.
여기서는 보화가 무엇이건 상대의 착각을 이용해서 때리고 물리치듯이, 불락과
불매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물리쳐야 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보화는 항상 저
잣거리를 떠돌면서 방울을 흔들고 이렇게 게송을 읊었다. ‘분명한 태도로 다가
오면 분명하게 때리고, 무분별한 태도로 다가오면 무분별하게 때리며, 사방팔
면에서 무리지어 다가오면 회오리바람처럼 휘돌며 때리고, 허공에서 다가오면
도리깨질하듯이 때려주리라.’”(『臨濟語錄』大47 p.503b20. 普化, 常於街市,
搖鈴云, ‘明頭來明頭打, 暗頭來暗頭打. 四方八面來旋風打, 虛空來連架打.’)
[설화]
‘불매와 불락 ~ 착각이로다’라는 구절은 백장을 만나기 이전이라면 이
와 같다는 것이며, 백장을 만난 다음이라면 ‘막힘없이 트인 드넓은 허공
그 어디서 더듬으며 찾을 것인가’라는 구절에 해당된다. ‘봄이 되면 꽃이
피고’라는 구절은 불매와 상응하고, ‘가을 오면 나뭇잎 떨어질 뿐’이라는
구절은 불락과 상응한다. ‘착각이다, 착각이야’라는 말은 불락도 착각이요
불매도 착각이니, 이 모든 것이 보화가 방울을 흔들며 읊은 게송의 취지와
같다.
海印:不落不昧至自縛者, 如前百丈則如此, 若後百丈, 則廓
爾大虛, 何處摸索也. 春至花開者, 不昧也;秋來木落者, 不落
也. 錯錯者, 不落也錯, 不昧也錯, 摠是普化搖鈴鐸也.
동림상총(東林常總)의 송
대웅26)이 일찍이 여우 된 원인 판결해 주었으니,
오백생 이전엔 착각하여 여우의 몸에 떨어졌다네.
불락과 불매의 차이 밝히지 못했더라면,
세월이 다시 몇 해를 더 지나야 했겠는가?
東林總頌, “大雄曾決野狐因, 五百生前錯墮身. 不落不昧如未
曉, 年華又歷幾秋春?”
26) 백장을 가리킨다. 대웅봉(大雄峰) 곧 대웅산(大雄山)에 주석했기 때문에 백장을
가리켜 대웅이라 부르게 되었다. 백장산(百丈山)이라고도 한다. 중국 남창부(南
昌府:江西省) 봉신현(奉新縣) 서쪽 120리 지점에 있는 파양호(鄱陽湖) 부근에
있다.
진정극문(眞淨克文)의 송
불락에 칼날을 숨겼다가 불매에서 분명히 드러내니,
그가 이로부터 여우의 몸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다네.
만나는 사람마다 관직을 그만두었다고들 하지만,
임하에서 언제 누구 한 사람 만난 적 있었던가?27)
眞淨文頌, “不落藏鋒不昧分, 要伊從此脫狐身. 相逢盡道休官
去, 林下何曾見一人?”
27) 임하(林下)는 벼슬·관직을 버리고 유유히 즐기며 한적하게 쉬는 곳을 나타내
며, 무사(無事)의 도가 구현된 장소를 상징한다. 번잡하고 쓸데없는 일을 그만
두었다고 말들은 하지만 진실로 그 경지를 실현한 사람은 만나기 어렵다는 뜻
이다. “어떤 학인이 물었다. ‘약교(藥嶠)의 등불이 연이어 달렸는데, 스님은 몇
번째에 해당합니까?’ ‘만나는 사람마다 관직을 그만두었다고들 하지만, 임하에
서 언제 누구 한 사람 만난 적 있었던가?’”(『景德傳燈錄』권23「藥山圓光傳」
大51 p.391a3. 僧問, ‘藥嶠燈連, 師當第幾?’ 師曰, ‘相逢盡道休官去, 林下何曾
見一人.’)
진여모철(眞如慕喆)의 송
대야의 큰 화로28)에서,
부처를 불리고 조사를 담금질하노라.
본보기를 남김없이 녹여버리니,
분별하던 자들 어찌할 줄 모르네.29)
眞如喆頌,“ 大冶洪爐, 烹佛烹祖. 規模鎔盡, 識者罔措.”
28) 대야(大冶)는 금속을 주조하는 뛰어난 기술을 지닌 대장장이로『莊子』
「大宗師」에 나온다. 큰 화로는 불매와 불락으로 설정된 관문을 비유한다
29) 불매와 불락에 대하여 선·악과 우·열 등의 대칭 구도를 본보기로 삼다가 그것
을 무너뜨리면 의지할 근거가 사라진다. 이것은 화두의 관문이 지향하는 은산
철벽(銀山鐵壁)의 궁지(窮地)와 통한다.
곤산찬원(崑山贊元)의 송
인과에서 문제를 일으켜 제기하니,
예부터 지금껏 무수하게 분별하네.
신령한 자라30)는 용문을 뚫고 벗어났건만,
어부는 낚시질하느라 헛되이 애쓰는구나.
崑山元頌, “因果之中發問端, 古今情計百千般. 靈鼇已透龍門
去, 漁者徒勞把釣竿.”
30) 영오(靈鼇). 바다에서 산을 등에 업고 있다는 전설상의 거대한 자라 또는 거북
이. 거오(巨鼇)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처음부터 불락·불매의 관문(용문)을 뚫고
벗어난 백장 등의 걸출한 선사를 상징하며, 그 말에 속박된 채 백장의 뜻을 낚으
려고 이리저리 헤아리는 자들(어부)과 대칭시켜 놓았다.
불타덕손(佛陁德遜)의 송
불락과 불매로 가까운 것과 먼 것을 정하니,
구차하여 여우의 혼령을 벗어나지 못했구나.31)
대웅봉 가팔라서 그 누구도 오르기 어렵거늘,
오랜 세월 계곡과 산은 달빛 마주하고 있네.
佛陁遜頌, “不落不昧定疎親, 區區未免野狐精. 雄峯峭絶人難
到, 千古谿山對月明.”
31) 불락은 도에서 멀고 불매는 가깝다는 구별은 이 공안을 궁구하는 데 원초적으
로 잘못된 분별이다. 하나는 가깝고 하나는 먼 듯이 설정하여 파놓은 함정에 빠
지지 않아야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법진수일(法眞守一)의 송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며,
인과에 어둡지 않다고도 하지만,
산관32)을 때려부수면 하지 못할 일이 없다네.
저울의 첫 눈금33)을 실물이라 오인하지 말지니,
익사를 피하려다 불에 뛰어드는 꼴과 같으리라.34)
法眞一頌,“ 不落因果, 不昧因果, 打破散關無不可. 莫敎錯認
定盤星, 恰似避溺還投火.”
32) 散關. 보통 대산관(大散關)이라 한다. 함곡관(函谷關)·무관(武關)·소관(蕭關)과
함께 중국의 4관문 중 하나이며, 고대 전투의 요충지이다. 섬서성(陝西省) 보계
현(寶雞縣) 서남쪽 대산령(大散嶺)에 위치한다. 이 게송에서는 불락과 불매라는
두 관문을 전투의 요충지인 산관에 비유한다.
33) 본서 2則 주석71) 참조.
34) 저울 눈금과 같이 몰자미(沒滋味)한 불락과 불매의 관문에서 불락을 버리고 불매
에 어떤 고매한 뜻이 있을 것으로 착각하며 덤벼들어 분별하는 잘못을 말한다.
굉지정각(宏智正覺)의 송
한 자 높이 물결에 한 길의 파도여!35)
오백생 과거36)에는 어쩔 수 없었노라.
불락이니 불매니 시비를 헤아리다가,
예전처럼 말의 함정37)에 빠져 버렸네.
하하하! 알겠는가?
그대 깨끗이 씻은 듯 남김없이 떨구었다면,
나의 옹알이 같은 소리38)도 알아들으리라.
아무렇게나 노래하고 춤추어도39) 저절로 아름다운 곡이 되어,
그 사이에 박수치고 노래하며 흥얼대리라.
天童覺頌,“ 一尺水一丈波! 五百生前不奈何. 不落不昧商量
也, 依前撞入葛藤窠. 阿呵呵會也麽? 若是你灑灑落落, 不妨
我哆哆啝啝. 神歌社舞自成曲, 拍手其間唱哩囉.”
35) 번뇌와 시비의 갈등을 나타낸다.
36) 오백생전(五百生前). 불락이라 대답하여 오백생 동안 윤회하며 여우의 몸으로
산 시기. 오백생이란 무수하게 반복되는 윤회의 삶을 가리킨다. 목건련이 부
모를 죽인 오역죄를 과거생에 지은 이래 오백생 동안 타살되는 업보를 받았다
는 것도 그 예이다.『增壹阿含經』권18 大2 p.636b11,『有部律雜事』권17
大24 p.290b5 참조.
37) 갈등과(葛藤窠). 시비로 복잡하게 얽힌 말[葛藤]의 보금자리[窠]. 불락과 불매라
는 언어의 관념을 근거지(보금자리)로 삼다가 속박되므로 그것은 함정과 같다.
오백생전에는 불락뿐이었으나, 지금은 불매까지 보금자리가 되었다는 말이다.
38) 치치화화(哆哆啝啝). 갓난아기의 옹알이. 아무렇게나 무의미하게 내뱉는 말
을 가리킨다. 파파화화(婆婆啝啝)와 같으며, 걸음마와 옹알이를 동시에 나타내
는 다다파화(多跢嘙啝)도 같은 맥락이다.『大般涅槃經』권20「嬰兒行品」大12
p.485b20 등에 나온다. 담연(湛然)은 “다다(多跢)란 걸음마를 배우는 모양이며,
파화(嘙啝)란 말을 익히는 소리이다.”(『法華玄義釋籤』권2 大33 p.822c23.
多跢, 是學行之相;嘙啝, 是習語之聲.)라고 하였는데, 소승의 삼장교(三藏敎)는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익히고 말을 배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 초보적인 가르침이
라는 뜻을 비유한 말이다.
39) 신가사무(神歌社舞). 고대 민간에서 천신[神]과 지신[社]을 불러들이기 위하여
베푸는 음악과 춤을 가리켰는데, 일반적으로 민중들이 즐기는 기예 활동을 나
타내는 말로 쓰이며, 촌가사무(村歌社舞)라는 말과 통한다. 민중들이 형식에 관
계없이 자유롭게 흥얼거리는 노래와 움직이는 대로 맡겨두고 추는 춤을 말한
다. 여기에서는 불락과 불매에 대한 분별이 사라진 무심(無心)의 경계를 말한다.
이에 대한 만송행수(萬松行秀)의 해설에 그 취지가 보인다. “말해 보라! 이것은
어떤 곡조일까? 온갖 소리도 마음이 있으면 들을 수 없지만, 우뚝한 바위는 귀
가 없어도 소리를 알아듣는다.”(『從容錄』8則 「頌評唱」大48 p.232b23. 且
道! 是何曲調? 萬籟有心聞不得, 孤巖無耳却知音.’)
[설화]
한 자 높이 물결에 ~ 어쩔 수 없었노라:오백생 과거에 여우의 몸에 떨어진 것
은 망상이 없는 경계에서 망상을 일으켰다는 뜻이다.
불락이니 ~ 빠져 버렸네:비록 불매라 해도 여우의 몸에 떨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그대 깨끗이 씻은 듯 ~ 알아들으리라:인식 주관[根]과 대상[塵]을 모두 벗어
나 소식이 모조리 깊이 가라앉고, 씻어서 정결하게 되고 벗어나서 본보기
가 될 만하면 불락이건 불매이건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곧
아무렇게나 노래하고 춤추어도 저절로 아름다운 곡이 되어 그 사이에 박
수치고 노래하며 흥얼대리라는 구절과 통한다.
天童:一尺水云云至生前云云者, 五百生前墮野狐身, 是無妄
想處, 起妄想也. 不落至藤窠者, 雖然不昧, 亦不免墮野狐身
也. 若是你灑灑至啝啝者, 根塵脫盡, 消息倂沉, 洗得淨潔, 脫
得可常, 則不落不昧, 亦不妨. 則神歌社舞自成曲, 拍手其間唱
哩囉.
승천회의 송
오백생 이래 여우로 살더니,
생선 눈을 진주라 부르는가?
불락과 불매의 큰 차이 알아야 하리니,
말하면 그대가 세밀한지 거친지 안다네.
承天懷頌,“ 五百生來在野狐, 爲將魚目作珠呼? 須知落昧爭
多少, 開口知君精與麤.”
설두법령(雪竇法寧)의 송
오백생 과거의 옛 주인에게
백장은 여우의 몸에서 벗어나는 길을 지시했다네.
총림에서는 기미 있기 전의 소식을 깨닫지 못하여,
불락과 불매 오가며 헤아리다 더욱 진실을 잃었네.40)
雪竇寧頌, “五百生前舊主人, 大雄指示脫狐身. 叢林未曉機前
妙, 昧落商量轉失眞.”
40) 불락과 불매를 실(實)로 분별하며 헤아리다 그 말이 전해지기 이전의 진실을 놓
친다는 뜻. 이 두 말은 본래 허(虛)로 설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상방일익(上方日益)의 송 1
불락과 불매라고 하며,
분명히 말로 설명하네.
달빛은 싸늘한 연못 비추고,
바람은 오래된 노송에 이네.
날랜 매 하늘 찌르며 솟고,
어리석은 개 흙덩이 쫓누나.41)
말에는 허물이 적고,
행실에 후회가 적다.42)
上方益頌,“ 不落不昧, 分明話會. 月照寒潭, 風生古檜. 快鷂
冲天, 狂狗趂塊. 言寡尤, 行寡悔.”
41)「대홍보은(大洪報恩)의 송1」주석18) 참조. 여기서는 매와 개를 대비하여 비유
한다. 대홍의 송에서 사자가 여기서의 매와 같다.
42)『論語』에 나오는 말. ‘말에 허물이 적다’는 것은 1구와 2구의 취지, ‘행실에 후회
가 적다’는 것은 5구와 6구의 취지와 상응한다. “공자가 말했다. ‘많이 들은 것
중 의심스러운 부분은 빼놓고,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말을 삼가면 허물이 적을
것이며, 많이 본 것 중 위태로운 부분은 제외하고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행실을
삼가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실에 후회가 적으면 복록은 그
속에 있는 법이다.’”(『論語』 「爲政」. 子曰, ‘多聞闕疑, 慎言其餘則寡尤;多
見闕殆, 慎行其餘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상방일익의 송 2
여기저기서 여우에 떨어진 이유 묻자,
불매와 불락에서 주저한 탓이라 하네.43)
홍문44) 한번 차버려 두 문짝 열리니,
어떤 남아가 대장부답게 이렇게 할까?
又頌,“ 江北江南問野狐, 只因昧落兩踟躕. 鴻門一踏開雙扇,
那个男兒是丈夫?”
43) 불락과 불매를 대립적 짝으로 놓고 머뭇거리며 분별한다는 뜻.
44) 鴻門. 위기에서 탈출해야 하는 관문을 나타낸다. 관문의 두 문짝에 해당하는 불
매와 불락을 모두 걷어차고 벗어나야 대장부다운 기개를 지닌 선사라 할 수 있
다는 뜻이다. 원래는 중국 섬서성 임동현(臨潼縣) 동쪽에 있는 지역으로 항우와
유방이 만난 홍문회(鴻門會)로 유명하다. 항우가 유방을 살해하려고 했으나 성
공하지 못하였고, 유방은 장량의 계책으로 홍문을 탈출할 수 있었다.
영원유청(靈源惟淸)의 송45)
45) 노인의 ‘불락’과 백장의 ‘불매’에 대하여 한편은 착각[錯]이고 한편은 이해[會]라
고 설정하여 그 이유를 추적하면 이 공안의 관문을 열 수 없다는 관점의 송이다.
분명하게 불락이라 말했다 하여,
노인은 어디서 착각한 것일까?
뚜렷하게 불매라고 말했다 하여,
백장은 어느 순간 이해했을까?
이해도 아니요 착각도 아니라!
뒤섞여 묘한 깨달음 드러내네.46)
불락과 불매여!
우뚝하게 바른 자리 나타내네.
기틀 전체가 원인이건 결과이건 근거 있고,
온몸이 오르거나 가라앉거나 거리낌 없도다.
잘못은 잘못일 뿐이나 옳은 건 누가 옳은가?
말에서 종지를 잃고 분별을 일으켰기에,
다시 물어 거듭 한 번 제기하도록 했네.47)
찬찬히 살펴보니 온통 바람과 천둥 일다가,
역풍이 더욱 거세어 천둥소리 끊어졌도다.
숨죽이고 깊은 곳에 돌아가 추한 꼴 감추었으니,
훗날 어떻게 남들에게 들려줄 것인가?
대웅봉은 가을 하늘에 뜬 달 떠받치네.
靈源淸頌, “明明道不落, 老人何處錯? 的的言不昧, 百丈幾時
會? 不會將48)不錯! 渾然宣妙覺. 不落與不昧! 卓爾標正位. 全
機因果有來由, 脫體升沈無忌諱. 非自非是誰是? 言下迷宗生
擬議, 再問重敎擧一迴. 潛觀徹底起風雷, 逆風轉喝雷聲絶. 飮
氣深歸藏醜拙, 他日如何擧似人? 雄峯撑破秋天月.”
46) 백장도 이해하지 못했고[不會], 노인도 착각하지 않았다[不錯]는 두 가지가 잘
어울려야 이 공안을 타파하는 단서가 된다는 말. 결국 노인은 착각했고 백장은
이해했다는 생각에 매몰되면 ‘묘(妙)’를 잃는다. 불락과 불매가 각각 바른 자리
를 잡고 있는 것이라는 다음 구절도 같은 맥락이다.
47) 불락이라는 말 자체의 집착을 풀어줄 목적에서 백장이 다시 묻도록 시켰다는 뜻.
48) ‘將’은 ‘與’와 같은 뜻.
숭승원공(崇勝院珙)의 송
백장산, 그 백장산에!
가섭불 때부터 살았다니 당치 않도다.
큰 수행과 큰 과보가 어찌 쉬우리오?
불락과 불매가 어려운 장애 되었도다.
어렵고 또 어려움이여!
아무 글자도 없는 경전 어떻게 보리오?
곤란하고도 곤란하도다!
수없이 뻗친 소나무 추위 빼앗았도다.49)
崇勝珙頌,“ 百丈山百丈山! 迦葉佛時大無端. 大行大果豈容
易? 不落不昧成艱難. 艱艱! 無字之經若爲看? 難難! 萬木高
松奪歲寒.”
49) 추위에 견디며 겨울을 무색하게 만드는 소나무의 푸름으로 불락과 불매의 난관
을 뚫은 경계를 비유한 구절.
자수회심(慈受懷深)의 송50)
50) 돌을 호랑이로 착각하여 쏘았을 때는 화살이 깃털 있는 데까지 박혔지만, 돌로
알고 난 다음에는 뚫지 못했다는 이광(李廣)의 고사를 비유로 들었다. 불락과
불매가 전혀 다른 차원의 말이 아니라고 보면 이 관문을 뚫을 수 있지만, 서로
다른 것이라 분별하는 순간부터는 뚫지 못한다는 비유이다.
불락과 불매여!
백장과 만나기 전후의 말이로다.
조금이라도 어긋난 점이 있다면,
철로 덮인 산이 길을 가로막으리.
감전산에서 호랑이 쏘던 당시의 장군 모르는가?51)
처음의 한 발은 깃털까지 깊이 박혔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본디 돌이었다네.
다시 쏘아 뚫고자 했으나 맞히지 못했으니,
이장군은 완전히 속는 지경에 빠질 뻔했다네.
예부터 오늘날 사람까지 공연히 탄식하는구나.
慈受頌, “不落與不昧! 前後百丈語. 毫髮若參差, 鐵山橫在路.
豈不見, 藍田當年人射虎? 初時一箭沒其羽, 子細看來元是石.
再欲射時射不入, 幾乎賺殺李將軍. 千古今人空嘆息.”
51) 이장군 곧 이광(李廣)의 다음 일화를 가리킨다. “이광이 사냥을 나갔다가 풀 속의
돌을 호랑이로 보고 활을 쏘아 돌에 맞혀 화살촉이 박혔다. 살펴보니 그것은 돌이
었다. 뒤이어 다시 쏘았으나 결코 돌을 뚫을 수는 없었다.”(『史記』「李將軍列傳」.
廣出獵, 見草中石, 以爲虎而射之, 中石沒鏃. 視之, 石也. 因復更射之, 終不能復入石矣.)
원오극근(圜悟克勤)의 송
물고기 헤엄치니 물이 흐려지고,
새가 날아가니 깃털이 떨어진다.
맑은 거울에서 달아날 길 없으니,52)
허공처럼 텅 비고 넓게 트였다네.
죽은 뒤 아득한 오백생 보냈으니,
인과를 화두로 큰 수행한 탓이라.
우렁찬 천둥이 산 가르고 폭풍은 바다 흔들어도,
수없이 단련해 얻은 순금의 색은 바뀌지 않노라.
蔣山勤頌,“ 魚行水濁, 鳥飛毛落. 至鑒難逃, 大虛寥廓. 一徃
迢迢五百生, 只緣因果大修行. 疾雷破山風振海, 百煉精金色
不改.”
52) 맑고 큰 거울[至鑒]은 모든 것을 담아 비추기 때문에 어떤 형상도 피해 달아나
지 못한다는 말. 흐려진 물(불락)과 떨어진 깃털(불매) 등과 같은 자취에서 본래
의 모습을 알아채는 지혜를 나타낸다.
불안청원(佛眼淸遠)의 송 1
취해서 자고 깨어선 누워 고향 돌아가지 않더니,
홀몸으로 떠돌며 머나먼 타향 하늘 아래 산다네.
조사와 부처의 자리에 앉히려 하나 머물지 않고,
밤이 되자 이전 그대로 갈대꽃 숲에서 자노라네.
佛眼遠頌, “醉眠醒臥不歸家, 一身流落在天涯. 祖佛位中留不
住, 夜來依舊宿蘆花.”
불안청원의 송 2
기틀에 적중한 질문 하나로 같고 다른 차별 끊고,
하늘과 땅을 평정하는 화살로 공훈을 시험하노라.
요란한 따귀 한 대 뺨에 떨어지니,
대웅산의 그 노인 몹시도 우습구나.
〈이는 황벽이 따귀 한 대 올려붙인 것을 읊은 송이다.〉
又頌,“ 一問當機絶異同, 定乾坤箭驗勳功. 轟轟一掌脥腮下,
笑殺雄山這老翁.”〈 此頌黃蘗打一掌.〉
불안청원의 송 3
봄이 되자 꽃은 피었건만,
젊던 그 얼굴 어디 있는가?
안타깝다, 동산의 이 봄빛이여!
거울 안에 들어오지 않는구나.
〈이는 위산이 사립문을 세 번 흔든 것을 읊은 송이다.〉
又頌, “春至是花開, 朱顔安在哉? 可怜園裏色! 不入鏡中來.”
〈此頌潙山撼門扇三下.〉
대혜종고(大慧宗杲)의 송
불락과 불매여!
돌덩이와 흙덩어리로다.53)
길54)에서 서로 마주치고,
얼음산을 분쇄했다네.
박수치며 껄껄대고 한바탕 웃으니,
명주에는 포대를 맨 어수룩한 자55) 있다네.
雲門杲頌,“ 不落不昧, 石頭土塊. 驀路相逢, 銀山粉碎. 拍手
呵呵笑一場, 明州有个憨皮袋.”
53) 불락과 불매라는 두 가지 사이에 특별한 차이가 없다는 말.
54) 맥로(驀路). 맥로(陌路)와 같은 말. 맥로인(陌路人)이라 하면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을 말한다.
55) 명주(明州) 봉화현(奉化縣) 출신의 포대화상(布袋和尙 ?~916)을 말한다. 누가 무
엇을 물어오든지 간에 포대를 내려놓거나 다시 짊어지는 것으로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정한 거처가 없이 항상 거리에서 걸식을 하며 지내는 외형에 가려 그
의 날카로운 선기(禪機)를 알아채는 사람이 드물었다.『景德傳燈錄』권27「布袋
和尙傳」大51 p.434a29 참조. 백장이 따귀를 맞고 크게 웃었던 것이 어리석어 보
이지만 사실은 포대화상에 비견되는 선기를 감추고 있다는 뜻이다.
죽암사규(竹菴士珪)의 송
백장의 여우 공안이여!
기러기가 문 갈댓잎과 같고,56)
이광의 귀신같은 활솜씨요,
장전57)의 휘갈긴 초서로다.
竹庵珪頌,“ 百丈野狐! 塞鴈㘅蘆, 李廣神箭, 張顚草書.”
56) 기러기가 주살(새 잡는 짧은 화살)로부터 날개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 이 때문에
기러기를 두고 지혜가 있는 새 곧 지금(智禽)이라 한다. “기러기는 갈댓잎을 물
고 그물을 막고, 들소는 무리지어 대형을 짜서 호랑이를 물리친다.”(『屍子』권하.
雁銜蘆而捍網, 牛結陳以却虎.);“기러기는 바람의 방향을 탐으로써 힘을 아끼고,
갈댓잎을 물고 날아다님으로써 주살의 공격에 대비한다.”(『淮南子』「修務訓」.
夫鴈順風以愛氣力, 銜蘆而翔, 以備矰弋.)
57) 張顚. 당(唐)나라 때 초서의 대가 장욱(張旭)을 말한다. 그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머리를 풀어 먹물에 적셔서 글을 쓰는 등 미치광이와 같은 여러 행태를 벌이곤
하여 ‘전(顚)’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육왕개심(育王介諶)의 송
불락이라 하여 여우의 몸에 떨어졌다가,
불매라 하여 여우의 몸에서 벗어났다네.
바람도 없는데 저절로 풀잎이 움직이고,
보배 그릇엔 제호가 가득 담겨 있구나.
대웅산에 구름 흩어진 바로 그 다음에,
높이 솟은 천 길 봉우리 허공에 꽂혔네.
育王諶頌,“ 不落墮野狐, 不昧脫野狐. 無風自動草, 寶器盛醍
醐. 好是大雄雲散後, 嶃嶃千仞揷空虛.”
심문담분(心聞曇賁)의 송
불락이다 불매다 하는 말을,
집어내어 교활하게 그대 속이네.58)
떨어졌다가 벗어났다 하니,
누가 놓아주고 사로잡은 것인가?
백장산 봉우리에 옛 거울 밝으니,
수많은 요정들 보금자리 잃었네.59)
心聞賁頌,“ 不落不昧, 拈君狡獪. 一墮一脫, 是誰縱奪? 百丈
峯頭古鏡明, 無限夭精失窠窟.”
58) ‘불락’은 잘못된 대답이고 ‘불매’가 바른 대답이라는 애초의 이야기는 점검을 위
하여 임의로 설정된 관문이며, 본질적으로는 속임수와 같다.
59) 불락과 불매를 대칭시키고, 떨어졌다는 것과 벗어났다는 것을 대립의 짝으로
삼아 만들어 놓은 보금자리에서 분별하는 사람(요정)들은 결국 그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말 것이라는 말이다.
밀암함걸(密庵咸傑)의 송60)
60) 백장을 만나기 전후의 잘못과 깨달음을 모두 부정하는 송.
오백생 이전에는 잘못 대답했다면,
오백생 이후에는 크게 착각했다네.
큰 착각이로다!
상서로운 기린이 외뿔이라 누가 말했던가?61)
密庵傑頌, “五百生前失却, 五百生後大錯. 大錯! 誰道祥麟只
一角?”
61) ‘불매’라고 하여 여우의 몸에서 벗어났다고 한 일면만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불락’이라 하여 여우의 몸에 떨어졌다는 말의 진실까지 타파해야 진실한 깨달
음이라는 뜻이다.
혼성자의 송 1
여우는 여우의 침62)을 씹어 삼키고자 하니,
알려 하면 당나귀해에서 말해까지 걸리리라.63)
뛰어난 솜씨로 얼음 깎아 눈 만들었다지만,
애초에 얼음과 눈 모두 거짓으로 전했다네.64)
混成子頌, “野狐要嚼野狐涎, 若會驢年至馬年. 妙手將氷削成
雪, 到頭氷雪是虛傳.”
63) 불매와 불락을 명백하게 다른 차원으로 갈라놓고 이 공안을 알려고 한다면 영
원히 알 수 없다는 뜻. 당나귀해와 말해는 없으므로 그런 시기는 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64) 얼음과 눈은 각각 불락과 불매에 상응한다. 두 가지 모두 시험용으로 설정된 허
(虛)이며 실(實)이 아니다.
혼성자의 송 2
이 마음에 애착하는 여우들아!
지금 시장처럼 시끄럽게 떠드네.
무슨 오백생을 여우로 났다 하는가?
깨달았다 해도 인정하지 않으리.
又頌,“ 愛是心野狐! 如今鬧如巿. 說甚五百生? 會也不相許.”
무진거사의 송
몸 바꾸어 큰 수행에 대하여 묻자,
그 자리에서 금비65)로 망막 도렸네.
여우의 몸 바꾸어 백장이 되었지만,
밤이 깊자 여전히 여우 울음 우네.
無盡居士頌, “化形來問大修行, 當下金篦刮眼睛. 轉得野干成
百丈, 夜深依舊野干鳴.”
65) 金篦. 금주(金籌)·금배(金拜)라고도 한다. 맹인의 눈을 고치기 위하여 망막을
도려내어 사물을 볼 수 있게 하는 데 사용하던 수술 도구. 중생의 무지를 도려
내어 깨달음의 눈을 뜨게 해주는 부처님의 교설을 이것에 비유한다. “마치 수
많은 맹인들이 눈을 치료하기 위해 솜씨가 뛰어난 의원을 찾아갔고, 이때 의원
이 금비로써 눈의 망막을 도려내고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며 ‘보이는가?’라
고 묻자 맹인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하였고, 다시금 두 손가락 세 손가
락을 들어 보이자 ‘조금 보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40권본 『大般涅槃經』
권8 大12 p.411c20. 如百盲人, 爲治目故, 造詣良醫. 是時, 良醫卽以金錍, 決其眼膜,
以一指示問言, ‘見不?’ 盲人答言, ‘我猶未見.’ 復以二指三指示之, 乃言, ‘少見.’);
“승량이 말했다. ‘금비는 모든 경전의 교설을 비유한다.’”(『大般涅槃經集解』권20
大37 p.462b29. 僧亮曰, ‘金錍譬諸經教.’)
열재거사의 송
양편 모두 여우의 몸인데,
중간에 떨어져 번뇌 벗어나지 못했네.
당장에 무리를 쳐서 뒤집어버리니,
이웃집 닭 세 번 울어 행인 재촉하네.
悅齋居士頌, “兩頭俱是野狐身, 落在中間未離塵. 直下撞飜群
隊去, 隣雞三唱促行人.”
위산영우(潙山靈祐)와 앙산혜적(仰山慧寂)의 문답
위산이 황벽과 백장 사이에 오간 야호화66) 문답을 제기하고 앙산에게
묻자 앙산이 말했다. “황벽은 항상 이러한 기틀67)을 활용했습니다.” “타고
나면서 얻은 것일까? 남들로부터 배운 것일까?”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이기도 하고, 자신의 본성에 있는 종지에 통하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그렇다, 그래.”
潙山, 擧黃蘗問百丈野狐話, 問仰山, 仰云,“ 黃蘗常用此機.”
潙云, “天生得, 從人得?” 仰云, “亦是禀受師承, 亦是自性宗
通.” 潙云,“ 如是, 如是.”
66) 野狐話. 여우를 소재로 한 공안이라는 뜻으로 본칙의 별명이다.
67) 백장에게 따귀 한 대를 때린 것.
천의의회(天衣義懷)의 상당
어떤 학인이 물었다. “큰 수행을 하는 사람도 인과를 가지고 있습니까?”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는 소리만 들었지 학이 신선이 된다는 말은
모르는구나.” “옛사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본래의 공안에서 알아차려
라!” 천의의회가 이어서 말했다. “백장의 야호화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
는데, ‘여우의 몸에서 벗어났다’라는 구절에 대하여 여러 선덕들이 요즘
모두들 이렇게 말한다. ‘큰 수행을 하는 사람은 바로 인과(因果) 속에 있
다. 이전에는「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가 인과의 도리를 완
전히 부정한 결과68)가 된 까닭에 여우의 몸에 떨어졌고, 그 뒤에 백장이
「인과에 어둡지 않다」고 한 소리를 듣고 그는 곧바로 여우의 몸에서 벗어
났다.’ 이전에 노인이 한 말이 인과의 도리를 완전히 부정한 것이라면, 뒤
에 백장이 한 말은 인과의 도리에 어둡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
으로 헤아린다면 세상 전체의 모든 선지식 중 그 누구도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지 못하며 모조리 여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령 어떤 학인이 조주
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조주가 ‘없다’69)라고 대답한
것이나, ‘잣나무에도 불성이 있습니까?’라고 물음에 ‘있다’70)라고 한 대답
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한다면 조주 또한 여우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
다. 71) 또한 혜충국사에게 ‘천당에 태어나고 지옥에 떨어지는 원인과 결과
가 있습니까, 없습니까?’라고 묻자 국사가 ‘없다’라고 대답했는데, 후대에
다시 경산도흠에게 ‘천당에 태어나고 지옥에 떨어지는 원인과 결과가 있
습니까, 없습니까?’라고 물음에 경산은 ‘있다’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
두 고덕 중 누구를 여우가 되도록 하는 것이 옳겠는가? 또한 어떤 학인이
준극화상에게 ‘큰 수행을 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묻자 준
극이 ‘목에 형틀을 걸고 발목에는 족쇄를 찼다’라 대답했고, ‘크게 업을 짓
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묻자 ‘선을 수행하여 삼매에 들어간
다’라고 대답했다.72) 이는 한 사람이 두 종류의 결정적인 말로 대답한 것인
데, 이 두 대답 사이에 어긋나는 점이 있는가? 만약 어긋나는 점이 있다면
반드시 여우가 될 것이고, 만약 어긋나는 점이 없다면 어떤 부분이 하나의
이치로 모두 꿰뚫는 것일까? 무수한 질문과 끝도 없는 대답은 그만두고
도대체 큰 수행을 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만약 드러난 말 그대로
뜻을 확정한다면 구절에 막혀 미혹될 것이니, 정(情)이 한정된 범위에 예
속되어 있고 식(識)은 법의 티끌에 의지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와 같은
견해로 남들의 스승[人天師]이 된다면 자신의 말이 귀착되는 뜻조차 모를
것이니, 바르게 볼 줄 아는 자신만의 눈이 없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눈까
지 멀게 할 것이다. 안타깝고, 안타깝다! 여러 선덕들이여, 수행하는 사람
이라면 반드시 법을 가려내는 바른 눈을 갖추어야 하며, 겉만 그럴듯한 거
짓 반야73)를 배워서는 안 된다.”
天衣懷, 上堂, 僧問,“ 大修行底人, 還具因果也無?” 師云,“ 只
聞人作鬼, 不見鶴成仙.” 進云, “古人, 又作麽生?” 師云, “且
識取前話!” 師乃云,“ 百丈有野狐話, 大行於世, 至便脫野狐
身, 諸禪德, 如今盡道, ‘大修行人, 正在因果. 前來却道, 不落
因果, 成撥無因果, 所以墮野狐中;後來道, 不昧因果, 他便
得脫去.’ 若也前是撥無因果, 後是不昧因果, 作如此商量, 盡
大地善知識, 無一个得人身, 惣作野狐, 始得. 秪如僧問趙州,
‘狗子, 還有佛性也無?’ 州云,‘ 無.’ 又問,‘ 栢樹子, 還有佛性
也無?’ 州云, ‘有.’ 若恁麽道, 趙州亦須作野狐, 始得. 又問
忠國師, ‘天堂地獄因果, 是有是無?’ 國師云, ‘無.’ 後來又問
徑山欽, ‘天堂地獄因果, 是有是無?’ 徑山云, ‘有.’ 秪如此二
古德, 敎誰作野狐卽是? 又僧問峻極和尙,‘ 如何是大修行底
人?’ 極云,‘ 擔枷負鎖.’‘ 如何是大作業底人?’ 極云,‘ 修禪入
定.’ 此是一人對兩轉語. 還有相違處麽? 若有相違, 亦須作野
狐;若無相違, 那裏是一理相貫處? 千問萬對且置, 作麽生說
个大修行底人? 若以卽言定旨, 滯句迷封, 蓋爲情存分量, 識
附法塵. 若如是, 作人天師, 自語尙不知落處, 非唯自家無眼,
亦乃瞎却他人. 苦哉, 苦哉! 諸禪德, 夫行脚人, 須具正法眼,
始得, 莫學相似般若.”
68) 발무인과(撥無因果). 교학에서 단견(斷見)으로 규정된다. 본서 321則 주석20)
참조.
69) 본서 417則「趙州狗子」 참조.
70) “‘잣나무에도 불성이 있습니까?’ ‘있다.’ ‘언제 성불합니까?’ ‘허공이 땅에 떨어
질 때까지 기다려라.’ ‘허공은 언제 땅에 떨어집니까?’ ‘잣나무가 성불할 때까
지 기다려라.’”(『趙州語錄』古尊宿語錄13 卍118 p.321b14. 問, ‘栢樹子, 還有
佛性也無?’ 師云, ‘有.’ 云, ‘幾時成佛?’ 師云, ‘待虛空落地.’ 云, ‘虛空幾時落地?’
師云, ‘待栢樹子成佛.’)
71) 조주의 ‘있다’와 ‘없다’를 위와 같이 분별하면, 각각 상견(常見)과 단견(斷見)의
잘못에 빠진 대답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불락과 불매도 이러한 관점에
서 시비를 따지면 각각이 평등하게 가지고 있는 관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아래 혜충국사와 경산도흠이 동일한 질문에 대하여 ‘있다’는 말과 ‘없다’는
말로 다르게 내린 대답도 이와 마찬가지로 실제적인 유(有)와 무(無)가 아니
몰자미(沒滋味)의 화두인 것이다.
72)『五燈會元』 권2 卍138 p.54a15,『五燈全書』권4 卍140 p.219a16,『宗門拈古
彙集』권5 卍115 p.579a4 등에는 ‘선행을 닦는 사람’(修善行人)과 ‘악행을 저지르
는 사람’(作惡行人)으로 되어 있다.『宗鑑法林』권7 卍116 p.108b1, 『圜悟語錄』
권16 大47 p.790b4, 『頌古聯珠通集』 권8 卍115 p.87a15 등에는 본서와 같이
‘큰 수행을 하는 사람’, ‘업을 짓는 사람’으로 되어 있고, 준극의 말이 아니라 그 스
승인 파조타(破竈墮)의 말로 되어 있다.
73) 상사반야(相似般若). 상사반야바라밀다(相似般若波羅蜜多)의 줄임말.『大般若
經』권136 大5 p.738b16에 따르면, 상사의 6바라밀이란 유소득(有所得)의 6바라
밀을 가리키며, 상사반야도 유소득의 반야를 가리킨다. 유소득이란 집착된 마
음을 가리키는데,『大智度論』 권69 大25 p.542a19에 “집착된 마음으로 6바라밀
을 행하는 것을 ‘상사’라 한다.”(以著心, 行六波羅蜜, 是名似.)라고 한 해석이 그
뜻이다.
[설화]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는 소리만 들었지 학이 신선이 된다는 말은 모르는구나:
신선이 된 학이 어찌 다시 신선이 되겠는가?
본래의 공안에서 알아차려라:본래의 공안에 어찌 ‘인과에 떨어진다’거나 ‘인
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라는 차별이 있었던가? 많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으
며 끌어들인 여러 공안은 모두 이 뜻을 벗어나지 않는다.
天衣:只聞人作鬼云云者, 仙鶴何更成仙? 且識取前話者, 前
話何曾有落因果, 不落因果? 許多葛藤下, 多引公案, 皆不出
此義.
대홍보은(大洪報恩)의 염
“한마디가 나온 다음에는 사마(駟馬)도 쫓아가기 어렵다.74) 화와 복이
들어오는 문은 따로 없으니 오로지 사람이 스스로 불러들일 뿐이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대홍이 이러한 말을 한 사실이 있다’라
고 말하지 마라.75)”
大洪恩拈,“ 一言已出, 駟馬難追. 禍福無門, 唯人自召. 雖然,
若到諸方, 莫道‘大洪有此語.’”
74) 내뱉은 언설이 편견으로 굳어지는 것을 비유한다. 불락과 불매를 대립시켜 설
정한 화두에서 그 말의 관념에 속박되어 본래의 뜻을 상실한 것을 나타낸다. 사
마는 수레 하나를 끄는 네 마리의 말이며, 본래『論語』「顏淵」의 “사마도 혀의
빠르기는 따라가지 못한다.”(駟不及舌)라는 말에 근거한다. 구양수(歐陽修)의
『筆說』「駟不及舌說」에 “속담에 ‘한마디 말이 입에서 나오면 사마도 쫓아가지
못한다’라고 하는데,『論語』에서 ‘사마도 혀의 빠르기는 따라가지 못한다’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俗云, ‘一言出口, 駟馬難追.’ 論語, 所謂‘駟不及舌’也.)라고 풀
었다. “어느 때 ‘불은 태양의 열기를 받으면 더욱 뜨거워지고 바람은 달빛과 어울
리면 더욱 서늘해진다. 북두칠성을 향하고서 남극성을 바라본다는 구절에 대하
여 그대들이 말하기를 바라지 않고, 후인들이 그 진실을 벗겨내어 비판하도록
남겨 둔다’라고 말한 다음 학인들을 대신하여 말했다. ‘한마디 말이라도 나왔다
하면, 사마로도 쫓아갈 수 없다.’”(『雪竇語錄』권4 大47 p.693c18. 或云, ‘火
待日熱, 風待月涼. 北斗南星句, 不要儞道, 留與後人貶剝.’ 代云, ‘一言已出, 駟
馬難追.’)
75) 이런 말을 했다고 하면 그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뜻. 그러나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사실에 맞지 않다. 이 두 가지가 어울려 하나의 관문이 되는 형식
에는 다음의 일화가 좋은 예가 된다. 혜각(慧覺)이 스승인 조주(趙州)가 ‘뜰 앞
의 잣나무’라는 공안을 제시한 적이 없다고 부정한 경우와, 그에 대한 대혜종고
(大慧宗杲)의 평가가 본 공안에 대한 대홍보은의 염과 통한다. “광효혜각선사가
법안의 처소에 이르자 법안이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조주에서 옵니다.’ ‘듣
자하니 조주에게는 뜰 앞의 잣나무라는 화두가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그런
화두는 없습니다.’ ‘왕래하는 사람들이 모두 학인의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조주가 「뜰 앞의 잣나무」라고 대답했다고들 하
는데 상좌는 어째서 없다고 말하는가?’ ‘선사께서는 진실로 이러한 말을 한 적
이 없으니 화상은 선사를 비방하지 마십시오.’<경산(徑山)의 대혜종고(大慧宗杲)
가 평가했다. ‘만약 이러한 화두가 있다고 말하면 혜각[覺鐵嘴]의 뜻을 놓쳐버리며,
이 공안이 없다고 말하면 또한 법안의 뜻을 놓쳐버리고, 있다·없다는 두 가지가 모
두 아니라고 말하면 조주의 뜻을 놓쳐버릴 것이다.’>”(『法眼語錄』大47 p.591a22.
光孝慧覺禪師, 至師處, 師問, ‘近離甚處?’ 覺云, ‘趙州.’ 師云, ‘承聞, 趙州有柏樹子話,
是不?’ 覺云, ‘無.’ 師云, ‘往來皆謂,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趙州云, 「庭前柏
樹子.」上座何得道無?’ 覺云, ‘先師實無此語, 和尙莫謗先師好.’<徑山杲云, ‘若道有此
語, 蹉過覺鐵嘴;若道無此語, 又蹉過法眼. 若兩邊俱不涉, 又蹉過趙州.’>)
[설화]
한마디가 나온 ~ 쫓아가기 어렵다: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한마디를 가
리킨다.
화와 복이 ~ 스스로 불러들일 뿐이다:다만 스스로 미혹되었기 때문에 여우
의 몸에 떨어진 것일 뿐이라는 뜻이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앞에서 한 말에 화와 복, 미혹과 깨달음, 득과 실 등
의 구별이 있는 듯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大洪:一言至難追者, 不落因果一言也. 禍福至自召者, 只爲自
迷, 墮野狐身也. 雖然如是者, 前言似有禍福迷悟得失地故也.
취암종의 염76)
76) 불락과 불매를 모두 부정하여 그것을 분별의 단서로 삼는 방법을 철저하게 차
단하는 염이다.
“인과에 떨어지지 않을 때는 어디에 떨어지는가? 인과에 어둡지 않을
때는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는가? 여러분, 딱 들어맞힐 수 있는가? 만약 딱
들어맞히더라도 여우의 견해와 같은 정도일 것이며, 딱 들어맞히지 못한
다면 여우의 견해만도 못할 것이다. 말해 보라! 다만 길흉이 있을 뿐 점을
칠 단서77)는 없으니, 거북이 껍질을 가지고 손빈78)에게 물어보는 일은 그
만두어라.”
翠嵓宗拈,“ 不落因果時, 墮在什麽處?;不昧因果時, 脫在什
麽處? 諸人, 還定當得麽? 若定當得, 見解共野狐一般;若定
當不得, 見解不如野狐. 且道! 畢竟如何? 但自吉凶無卦兆, 休
將龜殼問孫賓.”
77) 괘조(卦兆). 괘상(卦象)과 구조(龜兆)를 합한 말로 두 가지 모두 길흉을 점치는
상징물이다. 괘상은 64괘(卦)의 조합을 가지고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이고, 구조
는 거북이 껍질이 갈라진 모양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것이다. 이 공안에 대하여
점을 치는 것처럼 이리저리 분별하는 근거를 말한다. 곧 불락·불매를 중심으로
하는 이 공안의 언어가 이에 해당하지만 그것으로는 이 공안의 난관을 타파하
지 못한다는 뜻이다.
78) 孫臏.『孫子兵法』의 저자 손무(孫武)의 후손. 병법가로서 미래를 예측하는 점을
잘 쳤던 그도 점괘를 통해서만 점을 치기 때문에 점괘가 나타나기 이전의 소식
은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곧 여기서 손빈은 언어에서 실마리를 찾는 사람을 나
타낸다.
[설화]
불락과 불매에서 어느 한편이 맞고 다른 한편은 틀렸다고 헤아린다면
여우의 몸에 떨어지는 결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翠巖意, 不落不昧, 得失商量, 則未免墮野狐身.
불안청원(佛眼淸遠)의 거
사립문을 세 번 흔들었던 위산의 인연을 제기하고 말했다. “그대가 말해
보라! 위산에게 야호화에 대해 물었는데, 그는 오히려 사립문을 흔들었다.
말해 보라! 그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알고자 하는가? 모두들 금털사자의
새끼들이니 아무도 도중에 윤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佛眼遠, 擧潙山撼門扇三下因緣, 師云,“ 你道! 問他野狐話,
他却撼門扇. 且道! 緊要在什麽處? 要會麽? 盡是金毛師子子,
莫於中路却輪迴.”
[설화]
사립문을 세 번 흔들었던 경계가 모두들 금털사자의 새끼라는 것이니,
이것이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佛眼:撼門扇三下處, 盡是金毛師子子, 此謂緊要處也.
육왕불지의 상당
어떤 학인이 백장을 만나기 이전의 노인(先百丈)에게 ‘큰 수행을 하는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라고 묻자 그가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라
고 한 대답을 제기하고 “착각이다!”라고 착어(著語)를 달고, 뒤에 백장이
‘인과에 어둡지 않다’라고 한 대답에 대해서도 “착각이다!”라고 착어를 달
았다. 이어서 “오늘 만일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옳은가, 인과에 어둡지 않는 것이 옳은가?’라고 묻는다면 ‘착각이다, 착각
이야!’라고 대답할 것이다. 말해 보라! 백장과 비교하여 나은 점이나 못한
점이 있는가?”라고 말한 다음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금시전79)에 기름
을 떨어뜨려 옥기린을 쏘아 뚫는다.”
育王佛智, 上堂, 擧僧問先百丈,‘ 大修行人, 還落因果也無?’
丈云, ‘不落因果.’ 師云, “錯!” 後百丈云, ‘不昧因果.’ 師云,
“錯!”“ 今日忽更有人, 問育王,‘ 不落因果是, 不昧因果是?’
對云, ‘錯, 錯!’ 且道! 與百丈有優劣也無?” 良久云, “滴油金
鏃箭, 射透玉麒麟.”
79) 金鏃箭. 화살촉을 황금으로 장식한 화살. 신계(信契)로 쓰인다.
[설화]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과 인과에 어둡지 않다는 말을 각각 좌우
에 놓은 것이다.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옳은가, 인과에 어둡지 않는 것이 옳은가:불락과 불매
의 중간에 대해서도 모두 ‘착각이다’라고 한 것이니, 모두 긍정하지 않는
다는 뜻이다.
금시전에 기름을 떨어뜨리다:금시전에 다시 기름을 떨어뜨리면 화살촉이
예리하면서 매끄러워진다.
옥기린을 쏘아 뚫는다:불락과 불매의 중간도 뚫어버린다는 말이다.
育王:不落因果, 不昧因果, 左右也. 不落因果是云云者, 中間
皆云錯者, 皆不立也. 滴油云云者, 金鏃上更油滴, 銳而滑也.
射透云云者, 不落不昧中間, 亦透過也.
대혜종고(大慧宗杲)의 상당
어떤 학인이 물었다. “‘수행을 완성한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라는
물음에 백장을 만나기 전의 노인이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대답했
는데, 어째서 여우의 몸에 떨어졌습니까?” “누군가 만나거든 지금 말한 그
대로만 제기하여라.”80) “그렇다면 백장이 ‘인과에 어둡지 않다’라고 대답
해 준 다음에는 어째서 여우의 몸에서 벗어났습니까?” “누군가 만나거든
지금 말한 그대로만 제기하여라.” “만일 어떤 사람이 ‘수행을 완성한 사람
도 인과에 떨어집니까?’라고 묻는다면, 화상께서는 그에게 어떻게 대답하
시렵니까?” “그에게 ‘누군가 만나거든 지금 말한 그대로만 제기하여라’고
대답하겠다.” 이어서 “수행을 완성한 사람이 인과에 떨어진다”라 하고 불
자(拂子)로 선상(禪床)을 한 번 치고서 “이래도 이 본분의 소식을 벗어나
지 않는다. 수행을 완성한 사람은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라 하고, 다시
선상을 한 번 치고서 “이래도 이 본분의 소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떨어진
다는 말과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한 번의 붓질로 그어 없앤다면, 무엇을
인과라 하겠는가?”라고 했다. 또 다시 선상을 한 번 치고 “바로 이 소식을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한 뒤, 불자를 들어 올리며 대중에게 말했다. “오백
생의 과거부터 있었던 소식이니 분별하며 달리 찾아서는 안 된다.”
雲門杲, 上堂, 僧問, “大修行底人, 還落因果也無? 前百丈云,
‘不落因果.’ 爲什麽墮野狐身?” 師云,“ 逢人但恁麽擧.” 進云,
“只如後百丈道, 不昧因果, 爲甚麽脫野狐身?” 師云, “逢人但
恁麽擧.” 進云,“ 或有人問徑山, 大修行底人, 還落因果也無?
未審和尙, 向他道什麽?” 師云,“ 向他道, 逢人但恁麽擧.” 乃
云,“ 大修行人, 落因果.” 以拂子擊禪床一下云,“ 也不離這个
消息. 大修行人, 不落因果.” 又擊禪床一下云, “也不離這个消
息. 落與不落, 一筆句下, 却喚什麽作因果?” 又擊禪床一下云,
“也不離這个消息.” 乃擧起拂子, 召大衆云,“ 五百生前消息
在, 不須意下別搜求.”
80) 학인이 품은 의문 그대로 궁구할 화두와 다르지 않다는 뜻.
[설화]
누군가 만나거든 지금 말한 그대로만 제기하여라:그 말이 바로 본분의 소식이
라는 뜻이다.
이 본분의 소식을 벗어나지 않는다:다만 이렇게 말하는 것 말고 다시 무슨
말을 찾겠느냐는 뜻이다.
불자를 들어 올리며 ~ 과거부터 있었던 소식이니:여우의 몸에 떨어진 것이나
그것에서 벗어난 것이나 모두 본래 허망한 소식81)이라는 뜻이다.
雲門:逢人但伊麽擧者, 好箇消息也. 不離這箇消息者, 但伊
麽道外, 更討什麽? 乃擧起拂子至消息在者, 墮脫本空地消息.
81) 아래에 이어지는 대혜종고의 거에서 “불매와 불락이여! 두 가지 모두 텅 비어
하나도 마음에 걸려 있지 않도다.”(不昧與不落, 兩頭空索索)라고 한 말과 통한다.
대혜종고의 거
“불락과 불매여! 반은 밝고 반은 어둡도다. 불매와 불락이여! 두 가지
모두 텅 비어 하나도 마음에 걸려 있지 않도다. 오백생 이전의 여우 한 마
리가 지금은 냉정하게 가만히 따라다니며 부른다.” 한 소리 크게 내지르고
말했다. “좌중에 강남에서 온 나그네가 있다면 술잔 앞에서 자고새 울음소
리 내지 말지어다.”
又擧此話云,“ 不落與不昧! 半明兼半晦;不昧與不落! 兩頭
空索索. 五百生前个野狐, 如今冷地謾追呼.” 喝一喝云, “座中
旣有江南客, 休向樽前唱鷓鴣.”
[설화]
불락과 불매여 ~ 걸려 있지 않도다:백장을 만난 다음 ‘인과에 어둡지 않다’
라고 한 경계에 이르러서는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라는 말 또한 텅 비
어 마음에 결려 있지 않다는 뜻이다. 삭(索)〈석과 명을 반절한 음〉은 흩어졌다
는 뜻이고 사라졌다는 뜻이다.
오백생 이전의 ~ 가만히 따라다니며 부른다:여우의 몸에 떨어지거나 그것에
서 벗어나거나 모두 본래 공이라는 뜻이다.
한 소리 크게 내지르고 ~ 울음소리 내지 말지어다:나아가 이 하나의 할이 있음
을 알아야 한다.
又擧:不落與不昧云云者, 至後百丈, 不昧因果處, 不落因果,
亦空索索也. 索〈昔名切〉, 散也盡也. 五百生至謾追呼者, 墮脫
本空也. 喝一喝云云者, 更須知有這一喝.
백운지병(白雲知昺)의 염
“만상을 모으고 유와 무를 하나로 만들며, 과거와 미래를 섞고 오늘날
과 옛날을 합한다.82) 눈에 졸음이 없으면 모든 꿈은 저절로 사라지고, 마음
에 다르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모든 법은 하나가 될 것이다.83) 대중 가
운데 조금이라도 수행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 ‘이미 알았다’라고 말하지만,
이 공안에 대하여 질문을 받게 되면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니,84) 번뇌가 완전히 끊어진 사람을 찾는 것이 마치 하늘에
서 달을 따려는 것처럼 불가능하다. ‘물에 들어가 봐야 누가 더 뛰어난지
알 수 있다’라는 뜻을 알고 싶은가?85) 강물 속에 엽전을 떨어뜨렸으면 강
물 속에 들어가 건진다.86)”
白雲昺拈,“ 會萬像齊有無, 混去來印今古. 眼若不睡, 諸夢自
除;心若不異, 萬法一如. 衆中稍稍行脚人, 惣道‘會了也.’ 及
至問着這个公案, 不免落七落八. 討个絶滲漏底漢, 如天上揀
月. 要知入水見長人? 河裏失錢河裏摝.”
82) 이통현(李通玄)의 설이다.『華嚴經合論』권6 卍5 p.745b17 참조.
83) ‘눈에 졸음이’부터 여기까지는『信心銘』大48 p.376c21의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84) 낙칠낙팔(落七落八). 일곱 단계 여덟 단계 아래로 떨어진다는 말로 근본에서 멀
리 하락한다는 뜻이다.
85) 입수견장인(入水見長人). 실제적인 상황에 닥쳐봐야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말. 측천무후(則天武后)가 북종 신수(神秀)와 더불어 숭산노안(嵩山老
安) 또는 남양혜충(南陽慧忠)을 시험한 인연에서 비롯된 이야기. “물에 들어가
봐야 누가 더 뛰어난지 알 수 있다:『요선사록』에 따르면, 당나라 측천무후가
숭산노안과 북종신수를 궁중에 불러들여 공양을 올린 일이 있었다. 두 선사를 욕
탕에 들여보내고 궁녀들에게 시봉하도록 하였는데 노안만이 거리낌 없이 기뻐
하며 한결같았다. 무후가 감탄하며 말했다. ‘물에 들어가 봐야 비로소 걸출한 사
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구나!’”(『祖庭事苑』권1 卍113 p.15b7. 入水見長
人:桉耀禪師錄, 唐武後, 召嵩山老安, 北宗神秀, 入禁中供養. 因澡浴, 以宮姬給
侍, 獨安怡然無它. 后歎曰, ‘入水始知有長人!’);“옛날에 숭악노안선사가 남양혜
충국사와 함께 측천무후의 초청으로 공양을 받으러 궁중에 들어갔다. 측천무후
는 여러 궁녀들에게 두 선사의 목욕을 시중들라고 명령했다. 혜충국사는 사양하
고 가지 않았고, 노안선사는 여러 궁녀들이 씻겨주는 대로 받아들이면서 평탄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있었다. 측천무후가 혜충국사에게 ‘어째서 가시지 않았습니
까?’라고 묻자 노안이 대답했다. ‘물에 들어가 봐야 누가 더 뛰어난지 알 수 있습
니다.’ 이 두 존숙은 모두 여색과 붙어 있으면서[卽] 동시에 여색과 떨어져 있었
으니[離] 수다원과(須多洹果:初果)를 얻은 사람이 넘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楞加經宗通』권4 卍26 p.519b11. 昔, 嵩嶽安禪師, 同南陽忠國師, 爲武則天,
迎入大內供養. 則天命諸宮女, 爲二師沐浴. 忠國師, 辭不赴;安禪師, 聽諸宮女浴,
坦然自若. 則天問忠國師, ‘何以不赴?’ 安對曰, ‘入水見長人.’ 此二尊宿, 卽女色,
離女色, 豈須陀洹人所及?);“운문이 장경과 함께 석공이 삼평을 가르친 화두를
제기하고 말했다. ‘어떻게 말해야 석공이 삼평에게 반만 생기다 만 성인이라고
부른 질책을 모면할 수 있을까?’ 장경이 ‘만약 값을 치르지 않았다면 어떻게 참
인지 거짓인지 가려 내겠는가?’라고 하자 운문이 말했다. ‘실제적인 상황에 닥
쳐봐야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雲門廣錄』권하 古尊宿語錄18 卍
118 p.392b16. 師與長慶, 擧石鞏接三平話, 師云, ‘作麽生道, 免得石鞏喚作半
箇聖人?’ 慶云, ‘若不還價, 爭辨眞僞?’ 師云, ‘入水見長人.’)
86) 이 역시 운문문언(雲門文偃)의 말이다.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
까?’ ‘강물에 엽전을 떨어뜨렸으면 강물 속에 들어가 건진다.’”(『景德傳燈錄』권
19「雲門文偃傳」大51 p.358c28. 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河裏失錢河裏漉.’);
“‘꼿꼿이 앉아 실상을 생각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강물에 엽전을 떨어뜨렸
으면 강물 속에 들어가 건진다.’”(『雲門廣錄』권상 古尊宿語錄15 卍118 p.336a1.
問, ‘如何是端坐念實相?’ 師云, ‘河裏失錢河裏摝.’)
[설화]
만상을 모으고 ~ 오늘날과 옛날을 합한다:본래 이와 같은 여러 종류의 갈등
은 없다는 뜻이다.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으로 떨어진다:미혹도 있고[불락] 깨달음도 있다[불매]
고 여기며 불락과 불매에 대하여 이러니저러니 헤아린다는 말이다.
물에 들어가 봐야 누가 더 뛰어난지 알 수 있다:마땅히 유와 무, 과거와 미래,
옛날과 오늘날 등의 대립을 마주하고도 이와 같은 차별에 떨어지지 않는
다면,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얽매인 몸을 벗어날 길이 있고,
‘인과에 어둡지 않다’고 해도 얽매인 몸을 벗어날 길이 있다는 뜻이다.
白雲:會萬像至印古今云云者, 本無如是多般葛藤也. 落七落
八者, 有迷有悟, 乃至不落不昧商量也. 要知入水云云者, 當有
無去來古今, 不落如是差別, 則不落因果, 也有出身之路;不
昧因果, 也有出身之路.
심문담분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이 한 칙의 공안을 총림에서 헤아리는 대
중이 대단히 많다. 문제는 그러한 떼거리를 늘릴 뿐 대부분 이 공안을 듣
자마자 자신의 본래의 몸을 속박에서 벗어나도록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내가 오늘 구업을 아끼지 않고 여러분에게 분명하게 말해 주겠다. 알고 싶
은가? 오백생 동안 굴욕을 당한 까닭은 바로 떨어질 락(落) 한 글자를 몰
랐기 때문이요, 무수한 대중들이 비교하며 이리저리 헤아려 왔던 까닭은
바로 어두울 매(昧) 한 글자를 몰랐기 때문이다. 어느 경우나 두 글자의
효와( 訛)87)가 평범하고 정직한 수많은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
지금 이 두 글자가 귀착되는 뜻을 알고 싶은가?” 주장자를 높이 세웠다가
한 번 내리치고, 다시 한 소리 크게 내지른 다음 말했다. “벗어났다, 벗어
났어! 주관하는 자를 비추어 살펴라.”
心聞賁, 上堂, 擧此話云, “這一則話, 叢林商量甚衆. 要且, 只
添得群隊, 多不能於言下, 脫得本體. 瑞嵓今日, 不惜口業, 爲
你諸人, 分明說破. 要會麽? 五百生中受屈, 只緣不識个落字;
千百衆中較量, 只緣不識个昧字. 都來兩字誵訛, 陷却多小平
直. 而今, 要識這兩字落處麽?” 乃卓拄杖一下, 復喝一喝云,
“脫也, 脫也! 照顧主宰.”
87) 속이는 말. 하나의 공안이 관문으로서 가지는 요소. 진실을 보여주는 말이 아니
라 사람들을 시험할 목적에서 함정과 같이 설정되므로 ‘속이는 말’과 같다.
[설화]
헤아리는 대중이 대단히 많다 ~ 벗어나도록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미혹과 깨달음
의 관점에서 이리저리 헤아린다는 뜻이다.
오백생 동안 ~ 평범하고 정직한 수많은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다만 말을
따라 마구 내달리기 때문이다.
주장자를 높이 세웠다가 한 번 내리쳤다:떨어지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다는
뜻이다.
한 번 내리친 것에서 벗어나지 않고 한 소리 내지른 것에서 한 번의
할을 반드시 이해해야 하니, 한 번 내리친 것과 한 번의 할이 같은가, 다
른가?
벗어났다, 벗어났어:한 번 내리친 것에 속한다.
주관하는 자를 비추어 살펴라:한 번의 할에 속한다.
心聞:商量甚衆云云者, 迷悟商量也. 五百年中至多少平直者,
只爲隨言走殺也. 卓柱杖一下者, 不落不昧也. 不離一下, 喝一
喝者, 要須會取一喝, 一下與一喝, 是同是別? 脫也脫也者, 屬
一下也. 照顧主宰者, 屬一喝也.
『임간록(林間錄)』의 설
『임간록』에 이렇게 전한다. 88) “도원선사는 남선사가 황벽의 적취암에 산
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그의 가르침을 따랐다. 어느 날 좌선을 하다가
선상(禪床)에서 내려오는데 두 학인이 백장의 여우 인연을 제기하고 문답
하는 소리를 들었다. 한 학인이 ‘인과에 어둡지 않다고 말하더라도 여전
히 여우의 몸을 벗어나지 못한다’라고 말하자 다른 학인이 그 말에 대응
하여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해서 또한 어찌 여우의 몸에 떨
어진 적이 있었던가?’라고 말했다. 도원이 오싹한 느낌으로 그 말을 남다
르다 여기고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암자로 걸어 올라갈 생각으로 계
곡을 건너다가 홀연히 크게 깨달았다. 남선사를 만나 그 일을 설명하다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눈물이 턱 아래로 흘러내리자 남선사가 시자의 평
상으로 가서 숙면을 취하도록 하였는데, 갑자기 일어나 게송 한 수를 지었
다. ‘떨어지지 않음과 어둡지 않음이여! 승속 모두에게 본래 꺼릴 것 없도
다. 대장부 기상 왕과 같이 막힘없거늘, 어찌 주머니에 숨기고 이불로 감
추랴! 한 자루 주장자 가는 그대로 맡기고, 여우는 금털사자 무리로 들어
들리라’. 남선사가 크게 웃었다.”
林間錄云,“ 道圓禪師, 聞南禪師, 居黃蘗積翠庵, 往依之. 一
日燕坐下板, 聞兩僧, 擧百丈野狐因緣, 一僧曰,‘ 只如不昧因
果, 也未脫得野狐身.’ 一僧應聲曰, ‘便是不落因果, 亦何曾墮
野狐身耶?’ 圓悚然異其語, 不自覺其身之起, 意行上庵頭, 過
澗忽大悟. 見南公敍其事, 未終涕交頤, 南公令就侍者榻熟寐,
忽起作偈曰, ‘不落不昧! 僧俗本無忌諱. 丈夫氣宇如王, 爭受
囊藏被盖? 一條楖任縱橫, 野狐跳入金毛隊.’ 南公大笑.”
88)『林間錄』 권하 卍148 p.634b8.
[설화]
어찌 떨어진 적이 있었던가 ~ 본래 꺼릴 것 없도다:망승(亡僧)을 화장하여 떠
나보내는 사연에 따른 것이며, 그 나머지는 풀어서 해석할 특별한 내용이
없다.
林間錄:何曾墮至忌諱者, 依亡僧燒送來由, 餘無銷釋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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